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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갑자기 칼을 휘두르는 사람과 마주칠 상황에 대비해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 씨(28)는 최근 인터넷에서 호신용품을 검색하며 어떤 걸 살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번화가에서 발생한 ‘묻지 마 흉기 난동’ 사건을 접한 후 대비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김 씨처럼 호신용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할 때”라며 각종 호신용품을 비교하거나 사용 방법을 문의하는 글도 이어지고 있다. 24일 네이버 쇼핑 ‘트렌드 차트’ 순위에 따르면 23일 전 연령대(10∼50대)가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호신용품’이었다. ‘삼단봉’(사진) ‘호신용 스프레이’ ‘전기 충격기’ 등 특정 호신용품 명칭도 검색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최루가스를 분사하는 ‘후추 스프레이’는 이날 6번째로 많이 판매된 상품으로 집계됐다. 한 호신용품 전문 업체 홈페이지에는 “구매량 폭증으로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는 공지글이 올라왔다. 특히 이번 사건의 피해자 4명이 모두 20, 30대 남성으로 나타나면서 그동안 신변의 위협을 실감하지 못했던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호신용품 수요가 급증했다. 이날 20∼40대 남성 트렌드 차트 순위에선 ‘호신용품’이 모두 1위를 차지했다. 10대와 50대에선 2위였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고인에게 물어보니 학급 운영이 작년보다 10배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소리 지르는 학생이 있다면서 ‘출근할 때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 했어요.”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 여교사 A 씨(25)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생전 고인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취지의 동료 교사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서울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증언에 따르면 이 학교에 근무했거나, 근무 경험이 있는 교사들은 고인이 일부 학부모의 지속적 민원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동료 교사 B 씨는 “A 씨가 학부모로부터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 수십 통을 받았다고 했다. ‘교무실에도 이 번호는 알려준 적 없는데 소름 끼친다. 방학 후에 휴대전화를 바꿔야겠다’고 했다”고 노조에 밝혔다. 이 교사에 따르면 최근 A 씨 학급에서 한 학생이 연필로 뒷자리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긋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가해자 또는 피해자 학부모가 ‘전화 폭탄’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 교사 C 씨는 “연필로 이마를 그은 사건과 관련해 한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A 씨에게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 케어(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 학부모들이 모인 맘카페에서도 “고인이 맡은 반에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가 있었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A 씨가 다녔던 학교에 극성 학부모들이 많았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수년 전 이 초교에서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한 교사는 “민원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한 학부모로부터 ‘나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변호사야’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고 노조 측에 밝혔다. 몇 년 전 이곳에서 교육봉사를 했다는 한 현직 교사도 “아이들이 학원 버스에 제대로 탑승했는지 학부모들이 일일이 확인한다. 교사들이 운동장부터 교문까지 같이 가주지 않으면 ‘민원 폭탄’이 들어온다”고 동아일보에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1일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그동안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처음 제정돼 6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교육부가 직접 손보겠다는 방침을 밝힌 건 처음이다.“환청 들리는것 같아… 작년보다 10배 힘들어” 숨진 교사의 절규 동료 교사들 증언“선생님 때문이야 소리치는 학생있어”학부모 찾아와 ‘교사자격 없다’ 발언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검은 마스크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동료 교사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교 담벼락은 전국 교사들이 보낸 화환 약 1500개로 둘러싸였다. 교직 생활 2년 차에 세상을 떠난 교사 A 씨의 명복을 비는 이들은 담벼락 곳곳에 추모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 수천 개를 붙였다.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에도 조문객과 화환이 밀려들었다. 강남구 분향소에서 만난 김세원 씨(23)는 “올 9월 발령을 앞둔 예비 초등학교 교사인데 먼저 발령받은 동료들로부터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며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펑펑 울다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마련된 추모 게시판에는 이틀 동안 1000명이 넘는 동료 교사들의 추모글이 올라왔다.● ‘신규 임용 교사들의 무덤’으로 불려 A 씨가 다녔던 초교에서 근무했던 전현직 교사들은 이 학교가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으며 ‘신규 임용 교사들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렸다고 증언했다. 동료 교사 D 씨는 “경력이 많지 않은 교사들이 일하기 매우 힘든 학교였다. 후배 교사가 울면서 찾아와 위로해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료 교사 E 씨는 “A 씨의 학급에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고인이 매우 힘들어했다”고 노조 측에 전했다. A 씨의 지인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아이들 하나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지난주 (숨진 A 씨를) 만난 친구가 ‘평소처럼 밝았다’고 해서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황망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본인을 A 씨의 사촌오빠라고 밝힌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A 씨의) 일기장에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글과 함께 갑질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 씨의 지인들은 “집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던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교장과 교감을 포함한 해당 초교 교사 60여 명 전원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교육부는 경찰 조사와 별개로 서울시교육청과 합동조사단을 꾸려 해당 학교의 학부모 갑질 여부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24일부터 나흘간 확인하기로 했다.● 교사 87% “1년 내 이직·사직 고민” A 씨가 다녔던 초교뿐 아니라 서초·강남구 일대의 학교는 높은 학구열과 극성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 전·출입 현황을 보면 지난해 서초·강남구에서 다른 자치구로 옮긴 교사는 346명인 반면 반대의 경우는 298명으로 전출 간 교사보다 전입 온 교사가 48명 적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올 3월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한해 ‘5년 이상 근무(1개 학교 이상 근무) 후 전출’ 규정을 ‘10년 이상(2개 학교 이상 근무)’으로 변경하는 행정예고까지 했다. 교사 단체는 A 씨의 사망이 학생 인권을 강조하다 교권 침해가 발생해 생긴 일이란 입장이다.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도 “학생 인권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비통한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 5월 발표한 ‘교육현장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권 침해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26.6%였다. 또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87%였다. 이 중에서 ‘거의 매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6%에 달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고인에게 물어보니 학급 운영이 작년보다 10배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소리 지르는 학생이 있다면서 ‘출근할 때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 했어요.”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여교사 A 씨(25)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생전 고인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취지의 동료 교사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서울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증언에 따르면 이 학교에 근무했거나, 근무 경험이 있는 교사들은 고인이 일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동료 교사 B 씨는 “A 씨가 학부모로부터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 수십 통을 받았다고 했다. ‘교무실에도 이 번호는 알려준 적 없는데 소름끼친다. 방학 후에 휴대전화를 바꿔야겠다’고 했다”고 노조에 밝혔다. 이 교사에 따르면 최근 A 씨 학급에서 한 학생이 연필로 뒷자리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긋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가해자 또는 피해자 학부모가 ‘전화 폭탄’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 교사 C 씨는 “연필로 이마를 그은 사건과 관련해 한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A 씨에게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 케어(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 학부모들이 모인 맘카페에서도 “고인이 맡은 반에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가 있었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A 씨가 다녔던 학교에 극성 학부모들이 많았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수년 전 이 초교에서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한 교사는 “민원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한 학부모로부터 ‘나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변호사야’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고 노조 측에 밝혔다. 몇 년 전 이곳에서 교육봉사를 했다는 한 현직 교사도 “아이들이 학원 버스에 제대로 탑승했는지 학부모들이 일일이 확인한다. 교사들이 운동장부터 교문까지 같이 가주지 않으면 ‘민원 폭탄’이 들어온다”고 동아일보에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와 관련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1일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그동안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처음 제정돼 6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교육부가 직접 손보겠다는 방침을 밝힌 건 처음이다.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검은 마스크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동료 교사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교 담벼락은 전국 교사들이 보낸 화환 약 1500개로 둘러쌓였다. 2년차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교사 A 씨의 명복을 비는 이들은 담벼락 곳곳에 추모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 수천 개를 붙였다.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에도 조문객과 화환이 밀려들었다. 강남구 분향소에서 만난 김세원 씨(23)는 “올 9월 발령을 앞둔 예비 초등학교 교사인데 먼저 발령받은 동료들로부터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며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펑펑 울다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마련된 추모 게시판에는 이틀 동안 1000명이 넘는 동료 교사들의 추모글이 올라왔다.● 신규 임용 교사들의 무덤 A 씨가 다녔던 초교에서 근무했던 전현직 교사들은 이 학교가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으며 ‘신규 임용 교사들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렸다고 증언했다. 동료 교사 D 씨는 “경력이 많지 않은 교사들이 일하기 매우 힘든 학교였다. 후배 교사가 울면서 찾아와 위로해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른 동료 교사 E 씨는 “A 씨의 학급에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고인이 매우 힘들어 했다”고 노조 측에 전했다. A 씨의 지인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아이들 하나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지난 주 (숨진 A 씨를) 만난 친구가 ‘평소처럼 밝았다’고 해서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황망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본인을 A 씨의 사촌오빠라고 밝힌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A 씨의) 일기장에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글과 함께 갑질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 씨의 지인들은 “집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던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교장과 교감을 포함한 해당 초교 교사 60여 명 전원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교육부는 경찰 조사와 별개로 서울시교육청과 합동조사단을 꾸려 해당 교의 학부모 갑질 여부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로 했다.● 교사 87% “1년 내 이직·사직 고민” A 씨가 다녔던 초교 뿐 아니라 서초구 및 강남구 일대의 학교는 높은 학구열과 극성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 전·출입 현황을 보면 지난해 서초·강남구에서 다른 자치구로 옮긴 교사는 346명인 반면 반대의 경우는 298명으로 전출 간 교사보다 전입 온 교사가 48명 적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올 3월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한해 ‘5년 이상 근무(1개 학교 이상 근무) 후 전출’ 규정을 ‘10년 이상(2개 학교 이상 근무)’으로 변경하는 행정예고까지 했다. 교사 단체는 A 씨의 사망이 학생 인권을 강조하다 교권 침해가 발생해 생긴 일이란 입장이다.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도 “학생 인권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비통한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 5월 발표한 ‘교육현장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권 침해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26.6%였다. 또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87%였다. 이중에서 ‘거의 매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5%에 달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버스 안으로 물이 차고 있습니다. 종아리까지 찼는데 문이 안 열려요!” 15일 오전 8시 39분경 청주흥덕경찰서 오송파출소에는 당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지나던 버스 내부 상황을 알리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신고에 경찰은 “우선 피신하라”고 안내했지만 이미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오송파출소 112신고 현황’에 따르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발생 전후 관련 신고가 총 11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소방본부에는 총 1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경찰은 최초 신고 이후 1시간 40분, 소방은 50분이 지나서야 본격 대응에 나선 것으로 드러나 구조 당국의 ‘늑장 대응’이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발생 1시간 지나 ‘코드 제로’ 발령112신고 현황에 따르면 당시 신고자 상당수는 지하차도 내부에 있거나, 내부에 있는 이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들이었다. 참사 발생 직후인 오전 8시 47분경에도 “차(버스) 안에 10명 정도 있는데 못 내린다. 물이 차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어 오전 8시 57분경에는 “아내가 청주에서 오송으로 오는 길인데 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어딘지 모른다고 한다”며 한 남성이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다. 접수하고 적극 대응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신고도 있었다. 오전 7시 58분경 접수된 미호천교 공사 현장 감리단장의 신고에선 “궁평지하차도 통제가 필요하다”고 장소를 특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미 지하차도가 완전히 침수된 뒤인 오전 9시 54분경에야 최단 시간 내 출동을 의미하는 ‘코드 제로’를 발령했다. 이미 침수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 넘게 지난 뒤였다. 비슷한 시간 119에도 다급한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진희 충북도의원실이 충북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오전 8시 40분경 “지하차도 전체가 침수됐다”, 오전 8시 42분경 “버스 안으로 빗물이 유입된다”, 오전 8시 43분경 “물이 가득 차 탈출이 불가하다” 등의 신고가 이어졌다. 물이 차오른다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한 시민은 오전 8시 51분경 119에 전화해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오전 9시 5분경에는 “지하차도가 잠겨 보트가 와야 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은 최초 신고 접수 40분 가량 지난 오전 8시 37분경 구조차와 구급차, 소형펌프차, 탱크차 등 7대를 배치했다. 하지만 배수가 가능한 차량은 소형펌프차 1대뿐이었다. 소방 당국은 침수가 본격화된 오전 8시 45분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추가로 54대의 차량을 투입했다. ● 합동 감식 진행…원인 조사 본격화 20일 오전 10시경 오송 지하차도 현장에선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행정안전부 등의 합동 감식이 진행됐다. 이날 공개된 지하차도 내부 곳곳에는 흙탕물이 차오른 흔적 등 참사 당시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천장에는 강물이 휩쓸고 간 뒤 달라붙은 풀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배수구는 진흙과 흙탕물로 차 있었다. 감식관들은 중앙에 있는 배수실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이 배수실 안에는 총 4개의 배수펌프가 있는데, 각 펌프는 분당 12t의 물을 빼낼 수 있다. 사고 당시 펌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점검한 것이다.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미호강 임시 제방에 대한 합동 감식도 이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임시 제방 등) 구조물이 제대로 지어졌는지도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청주=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대전 서구에 거주하는 조수지 씨(27)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참사 소식을 접한 후 차량 탈출용 망치를 구입했다. 조 씨는 “평소 이동할 때 차량을 자주 이용하는데 사고 소식을 듣고 불안이 커졌다”며 “언제든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두니 마음이 좀 놓여 가족 모두를 위해 망치를 추가로 살 것”이라고 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후 차량용 비상 탈출 용품을 구입하는 등 침수 상황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20일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선 차량용 망치가 ‘일시 품절’되기도 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침수 사고 시 탈출 방법이 화제의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비상탈출 용품 구매 인증 글도 줄줄이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올해는 폭우가 문제”라며 “탈출용 망치 두 개를 구매해 아내에게도 하나 선물했다”는 글을 올렸다. 차량용품 판매 업체 대표 A 씨는 “현재 차량용 망치는 주문이 폭주해 일시 품절된 상태”라며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후 (탈출 용품) 관련 문의만 100건 정도 들어왔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2, 3배 가까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온라인쇼핑몰 업체 관계자는 “참사 직전(8∼12일) 대비 15∼19일 차량 비상용품 거래량이 두 배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지하차도를 이용하는 게 불안하다며 ‘지하차도 포비아(공포증)’를 호소하는 시민도 늘었다. 직장인 김모 씨(37)는 참사 다음 날인 16일 경기에 사는 부모님 집에 갈 때 평소 이용하던 지하차도 대신 30분이 더 걸리는 우회로를 택했다고 한다. 김 씨는 “당시 서울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또 바로 옆이 하천이라 혹시 침수될까 봐 무서워서 돌아서 갔다”고 전했다. 직장인 박모 씨(38)도 이번 참사 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이용하던 광역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박 씨는 “광역버스는 대형 지하차도 두 곳을 지나는데, 혹시라도 침수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과거 50년, 100년 빈도의 강수량을 기준으로 만든 기존 매뉴얼로는 앞으로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없습니다.”(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극한호우’라는 단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최근 이상기후에 맞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매뉴얼을 만들고 재난안전대책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5일 발생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의 경우 ‘100년 빈도 강수량’(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100년에 한 번 내리는 수준의 강수량)을 기준으로 쌓은 임시 제방이 붕괴되면서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매뉴얼 전면적으로 바꿔야” 19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에 따르면 미호강의 미호천교 부분 임시 제방 높이는 29.74m였다. 2014년 착공 당시 감안했던 100년 빈도 홍수위 28.78m보다 높았지만 기록적 호우로 제방이 무너졌다. 2020년 섬진강댐 역시 100년 빈도 강수량을 기준으로 설계됐지만 당시엔 500년에 한 번 오는 물 폭탄이 쏟아지는 바람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 교수는 “침수위험도 평가 기준을 최근 이상기후에 맞춰야 하고, 인근 하천 인접 여부 등도 고려하도록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도의 도로관리사업소 매뉴얼에 ‘지하차도 중앙이 50cm 이상 잠기면 도로를 통제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미호강 옆에 있어 순식간에 물이 들어찰 수 있는 지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수 위험 시설물의 관리·대응 책임을 장마철 등 특정 기간만이라도 효율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사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의 도로 관리 책임은 충북도, 미호강 관리는 청주시, 미호천교 임시 제방 공사 감독 권한은 행복청에 있다 보니 급박한 상황에서 통합 관리가 안 됐고 사고 후 기관들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적어도 재난이 임박한 상황에선 방재 전문가를 임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 임명해 지휘체계를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4, 15일 일본 북동부 아키타현에 400mm에 이르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지만 관할 시장으로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던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민간 공조도 검토할 필요” 현재 정부 중심의 재난 대응체계에 민간을 편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대원 LIG시스템 재난안전연구소장은 “이제 재난 발생 시 일괄적으로 전달하는 경보는 효과가 떨어진다. 민간 플랫폼을 이용해 개인 위치에 맞는 경보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위치 정보를 다루는 정보기술(IT) 기업 등에 실시간 경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차량 운전자들이 다른 길로 우회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지하차도를 최근 이상기후를 감안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일정 길이 혹은 깊이 이상의 지하차도에 비상 차로를 지정해 어떤 상황에서도 지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하고, 배수펌프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반은 지상 1.5m 높이에 설치해 침수 때도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하차도의 경우 배전반이 지하에 있어 물에 잠기면 작동하지 않았다.송유근 기자 bi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드릴 수 있는 게 커피밖에 없어 오히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19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탑연리에서 1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김보실 씨(55)는 “이번 호우로 식당 일부가 물에 잠겼지만 더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날(18일)부터 수재민과 자원봉사자를 위해 무료 커피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수해 피해를 입고 상심한 이웃 등을 위해 제공한 커피가 이날까지 100잔을 넘었다. 이날 오전엔 직접 마트에서 구매한 캠핑용 물통에 커피를 담아 이재민들이 머무는 복지센터에 전달했다. 김 씨는 “수해 현장에서 만난 군인 장병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며 “피해 현장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어르신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능력이 되는 한 커피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민에게 무료 커피 주는 ‘착한가게’ 기록적 호우가 전국을 할퀸 가운데 이재민과 복구 작업을 돕는 이들에게 식사와 숙소 등을 제공하는 ‘착한 가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날 경북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의 한 카페 입구에는 ‘수해복구 관련 군인·소방·경찰·공무원분들께 아메리카노 무상 제공합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30여 명에게 무료 커피를 전달했다는 카페 주인 김소현 씨(32)는 “오전에 자원봉사에 참여한 뒤 뭐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커피 제공을 결심했다. 많은 분들이 잠시나마 편하게 쉬다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숙박업소도 있다. 경북 예천군 예천읍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김갑연 씨(69)는 17일 80대 노부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 나가 부축하며 방까지 안내했다. 부부는 산사태로 집이 무너질까봐 돌아갈 곳이 없다고 했다. 사연을 들은 김 씨는 방값의 반이라도 내겠다는 부부의 요청을 거절하며 “돈은 안 받을 테니 편히 쉬고 가시라”고 했다.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김 씨는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벅차게 감사한데 어떻게 그분들께 돈을 받을 수 있겠냐”고 했다. 김 씨는 16일에도 예천군 효자면에서 산사태 피해를 입은 일가족 4명에게 무료로 방을 내주고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다. 김 씨의 선행은 예천군청 홈페이지에 글이 올라오며 알려졌다. 당시 모텔에 묵었다는 글쓴이는 “어려울 때 받은 이 은혜를 꼭 돌려드리겠다”며 사연을 전했다.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고 수해 복구에 동참한 상인들도 있었다. 충북 청주시 침수 지역 인근에서 오리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유모 씨(66)는 17일부터 장사를 접고 수해 복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유 씨는 “아랫동네에서 큰일이 발생했는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냐”며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마을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부자 입금명 ‘오송 힘내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주민 2000여 명이 활동 중인 네이버의 한 온라인 카페에는 궁평2지하차도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지역 이재민을 위한 성금 모금이 시작됐다. 19일 오후까지 150여 명이 모금에 참여해 300만 원가량이 모였다. 주민들은 형편이 되는 대로 몇만 원씩 보내며 입금자명에 ‘기부합니다’ ‘오송힘내자’ ‘힘내세요’ 등을 넣으며 유족과 이재민을 응원했다. 카페 운영자인 신효섭 씨는 “수해를 입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 모금을 시작했다”고 밝혔다.청주=이정훈 기자 jh89@donga.com예천=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독립운동부터 제헌헌법 제정까지 뒤에서 묵묵하게 아낌없는 지원을 베푸신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이 진정한 ‘건국의 어머니’입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인촌 선생 고택. ‘건국사 재인식, 대한민국 건국과 제헌국회’(2022년)의 저자 이영일 전 국회의원(84)은 헌법 제정 과정 등에서 인촌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75주년 제헌절인 이날 인촌사랑방 및 동우회 회원 50여 명은 인촌 고택에 모여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 건국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촌 선생을 기렸다. 이곳은 1948년 당시 내각책임제를 지지하던 한국민주당 인사들이 모여 제헌헌법을 논의하던 곳이다. 당시 한민당 당수였던 인촌 선생은 유진오 고려대 교수와 김준연 한민당 부당수 등과 상의해 민주공화제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이 전 의원은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제헌헌법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도 인촌 선생의 지지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대지주였던 인촌 선생의 통 큰 희생으로 농지 개혁이 이 땅에 실현될 수 있었다. 이러한 리더십이 진정한 대한민국 건국의 밑받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인촌 선생이 숨쉬고 계신 역사적 자리에 서게 돼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몸 바치신 인촌의 정신을 기릴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영대 인촌사랑방 회장, 조강환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장, 주대환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등이 참여했다. 이날 행사에선 인촌 선생이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아두던 금고도 공개됐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매주 토요일 무료급식소 자원봉사를 하면서 음식 준비부터 배식까지 도맡아 하시던 분이었어요.” 14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지추모공원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숨진 70대 노부부의 20년 지인인 공미정 강경행복나눔봉사단 단장은 15일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숨진 부부 중 아내 김모 씨(70)는 사고 직전 주말에도 무료급식소에 나와 홀몸노인 90명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 씨는 “평소 어려운 분들을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던 어르신”이라며 “사고 전날도 급식소에 나오셔서 어떤 음식을 만들까 함께 고민했는데, 너무 황망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14일 오후 4시 2분경 논산시 양촌면 양지추모공원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방문객 4명이 매몰됐다. 산사태로 토사가 흘러내려 봉안당 건물이 무너지자 이를 피해 주차장으로 향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1시간가량 구조작업을 진행해 4명을 구조했지만 남편 윤모 씨와 아내 김 씨는 숨졌다. 함께 공원을 방문했던 조카 윤모 씨(59·여)는 한때 위독한 상태였으나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자 윤모 씨(21)는 팔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다. 이들은 친척의 1주기 제사를 사흘 앞두고 가족묘를 방문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공원 관계자는 “차량 두 대가 추모공원 입구까지 토사에 떠밀려 내려올 정도로 산사태가 심했다. 추모공원으로 가는 도로들도 모두 막혔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논산의 한 장례식장은 공식 조문이 시작되기 전부터 추모객들로 붐볐다. 추모객들에 따르면 김 씨는 생전 마을 이장을 맡는 등 지역 활동에 앞장서던 ‘마당발’이었고 지역 봉사단 단원이었다. 남편 윤 씨도 묵묵히 아내의 활동을 도왔다고 한다. 이웃 주민 유모 씨(72)는 “누가 어려움에 빠지면 항상 팔을 걷으며 제 일처럼 나섰다”면서 “하루만 늦게 갔어도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고인의 지인인 60대 김모 씨는 “마지막으로 봤던 며칠 전까지 두 분 모두 정정했고, 매일 오전 5시에 나와 운동을 할 정도로 부지런했다”며 “봉사도 많이 하고 사랑을 실천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갑작스럽게 가셔서 슬픔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13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강한 비로 논산은 누적 강수량 406mm를 기록했다.논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60년 넘게 이 마을에 살면서 처음 겪는 일입니다. 완전히 전쟁터네요.” 15일 오후 3시경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최병두 씨(64)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지 약 12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계속 떠오른다고 했다. 최 씨는 “순식간에 토사가 마을을 덮치는데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말했다. 마을 뒷산 주마산은 산사태가 발생한 지 한나절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흙 색 물줄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마을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물줄기는 성인 남성이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여러 채의 주택이 흙더미에 파묻혔거나 반파 상태였고 마을 곳곳에는 나무와 진흙,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경북 북부 산사태 집중 발생 13일부터 경북 북부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예천과 봉화 영주 문경 등 4개 지역에서 산사태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기준 산사태 등으로 경북에서 1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된 상태다. 주민 17명도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경북 지역에는 13일 0시부터 16일 오전 4시까지 적게는 260mm에서 많게는 480mm의 비가 쏟아졌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산악지대로 이뤄진 경북 북부 지역은 모래 성분이 많은 마사토가 많아 폭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선 산사태로 인해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15일 오전 5시경 마을 뒷산에서 거대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주택 13채 가운데 5채를 집어삼켰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 박진녀 씨(71·여)는 “굉음과 함께 산사태가 일어나더니 흙더미와 바위 덩어리가 순식간에 옆집을 덮쳤다”며 “옆집 언니와 친했는데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 벌방리 피해도 심각했다. 15일 오전 3시경 마을 뒷산 주마산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2명이 실종됐다. 산사태로 인한 토사와 물줄기는 마을 전체 약 80가구 가운데 산 쪽에 위치한 10가구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지난해 3월 귀농한 A 씨(62)는 산사태를 피하는 과정에서 참변을 당했다. A 씨의 남편인 B 씨는 대피하기 위해 차에 먼저 오른 상태에서 토사에 밀려 내려오다가 이웃 주민이 차량 문을 열어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웃 주민 유재선 씨(67)는 “부부가 경기 수원시에서 최근 귀농했는데 잘 적응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해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도 산사태로 4명이 숨졌다. 춘양면 학산리에서 만난 박모 씨(63)는 “15일 새벽부터 바윗돌 굴러오는 소리가 나더니 산사태가 났다”며 몸서리쳤다. 경북에서 사망자나 실종자가 발생한 마을은 모두 15곳에 달한다. ● 펄밭으로 변해 수색작업 난항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각지에선 16일 소방대원, 경찰, 군인 등 2413명이 투입돼 구조 및 수색 작업을 펼쳤다. 수색 인력들은 철제 탐지봉과 손을 이용해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수색견도 현장에 투입됐다. 한 소방대원은 “산사태로 쓸려내려온 토사가 마치 펄 같아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북경찰청 특공대 관계자도 “탐지견이 차량 바퀴 등 일부 부품을 발견했지만 토사 유출이 심해 실종자의 경우 시신이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 가늠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예천=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예천=최원영 기자 o0@donga.com봉화=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매주 토요일 무료급식소 자원봉사를 하면서 음식 준비부터 배식까지 도맡아 하시던 분이셨어요.”14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지추모공원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숨진 70대 노부부의 20년 지인인 공미정 강경행복나눔봉사단 단장은 15일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숨진 부부 중 아내 김모 씨(70)는 사고 직전 주말에도 무료급식소에 나와 홀몸노인 90명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 씨는 “평소 어려운 분들을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던 어르신”이라며 “사고 전날도 급식소에 나오셔서 어떤 음식을 만들까 함께 고민했는데, 너무 황망하다”며 안타까워했다.소방 당국에 따르면 14일 오후 4시 2분경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지추모공원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방문객 4명이 매몰됐다. 산사태로 토사가 흘러내려 봉안당 건물이 무너지자 이를 피해 주차장으로 향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1시간가량 구조작업을 진행해 4명을 구조했지만 남편 윤모 씨와 아내 김 씨는 숨졌다. 함께 공원을 방문했던 조카 윤모 씨(59·여)는 한때 위독한 상태였으나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자 윤모 씨(21)는 팔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다. 이들은 일가 친척의 1주기 제사를 사흘 앞두고 가족묘를 방문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공원 관계자는 “차량 두대가 토사에 밀려 추모공원 입구까지 떠밀려 내려올 정도로 산사태가 심했다. 추모공원으로 가는 도로들도 모두 막혔다”고 말했다.15일 오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논산의 한 장례식장은 공식 조문이 시작되기 전부터 추모객들로 붐볐다. 추모객들에 따르면 김 씨는 생전 마을이장을 맡는 등 지역 활동에 앞장서던 ‘마당발’이었고 지역 봉사단 봉사단원이었다. 남편 윤 씨도 묵묵히 아내의 활동을 도왔다고 한다. 이웃주민 유모 씨(72)는 “누가 어려움에 빠지면 항상 팔을 걷으며 제 일처럼 나섰다”며 “하루만 늦게 갔어도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지는 않았을텐데”라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고인의 지인인 60대 김 씨는 “마지막으로 봤던 며칠 전까지 두 분 모두 정정했고, 매일 오전 5시에 나와 운동을 할 정도로 부지런했다”며 “봉사도 많이 하고 사랑을 실천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갑작스럽게 가셔 슬픔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13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강한 비로 충남 논산은 누적 강수량 406mm를 기록했다.논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충남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추모공원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이곳을 찾은 노부부가 토사에 매몰돼 심정지 상태로 구조됐지만 끝내 숨졌다. 함께 매몰됐다가 구조된 일행 2명도 중상을 입었다.오후 4시경 산사태가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현장에 도착한 지 1시간 반만에 토사에 매몰돼있던 70대 남성 윤모 씨와 부인 김모 씨(70), 윤 씨 부부의 조카(59·여), 윤 씨 부부의 손자(21) 등 4명을 구조했다. 부부인 윤 씨와 김 씨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나머지 2명도 골절 등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윤 씨 부부의 조카는 한 때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의식을 회복했다고 한다. 손자도 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사고 당시 의식이 있던 손자가 119구급대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추모공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인근 절에서 열린 합장 행사에 참석하려고 방문했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산사태로 토사가 흘러내리며 추모공원에 있는 봉안당 건물이 무너지자 이를 피해 주차장으로 향하다 다시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현장을 목격한 절 관계자는 “차량 두 대가 쏟아져 내린 흙에 밀려 추모공원으로 진입하는 도로까지 쓸려 나와 있었다”며 “절에서 추모공원까지 300m에 이르는 도로가 토사로 모두 막혀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11시경 윤 씨와 김 씨의 빈소가 마련된 논산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주민은 “김 씨가 평소 무료 급식도 운영하고, 이웃들을 위해 많이 베풀었다”며 “부부 모두 참 훌륭했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빈소도 마련되지 않은 장례식장에 윤 씨 부부의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조문객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조문객들은 “누구보다 점잖고, 성실하게 생활하던 부부”라며 입을 모았다. 이날 하루에만 300㎜가 넘는 비가 내린 논산시를 비롯해 충남 곳곳에선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갑자기 불어난 하천물에 제방이 무너졌다. 이날 전국에서 호우가 이어지며 산림청은 부산·경남과 제주를 제외한 12개 광역 지역에 산사태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렸다.300mm 폭우에 논산 산사태… 서대전~익산 일반열차 중단 ‘물폭탄 장마’에 전국서 피해 속출수도권 도로 잠겨 출퇴근 교통체증축대 무너져 20가구 한밤 대피도주말 충청-호남 ‘극한 호우’ 가능성 “밤중에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 보니 돌과 흙이 쏟아져 있었어요. 급하게 대피하라길래 큰일 난 줄 알고 놀랐습니다.”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재개발 지역에서 만난 빌라 주민 이모 씨(67)는 전날 오후 9시 반경 발생한 축대 붕괴 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새벽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이 씨가 살던 빌라 바로 앞까지 토사와 돌들이 쏟아져 내려 인근 20가구 46명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충남 논산에서 300mm가 넘는 집중 호우로 발생한 산사태에 노부부가 참변을 입은 이날 전국 곳곳에선 장맛비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수도권 일대에 쏟아진 호우로 한강 수위가 불어나 잠수교가 잠기는 등 도로 곳곳이 통제돼 극심한 출퇴근길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호우 대처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임진강 상류인 황해도에도 많은 비가 예상돼 북한의 황강댐 방류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전국서 4000가구 정전 비와 강풍에 가로수가 쓰러지며 전국 곳곳에서 정전과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0시경 서대문구 홍제동 안산 부근에서 강풍으로 가로수 한 그루가 쓰러지며 고압선이 끊어져 인근 2000가구 이상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광주 광산구에서도 오전 4시 반경 폭우에 가로수가 넘어지며 전깃줄을 건드려 정전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광산구 송정 1동, 신흥동 일대 945가구에 전기와 통신망 공급이 차단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인천 서구 마전동에서도 아파트 지하 전기실로 빗물이 유입돼 1000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수도권에선 경기 남양주시가 이날 오후 3시까지 누적 강수량 201.5mm를 기록하는 등 ‘물폭탄’이 쏟아져 도로 곳곳이 유실되거나 침수됐다. 서울에선 올림픽대로 일부 구간과 잠수교 등이 통제됐고 전국에서 도로 99곳, 하천변 757곳과 15개 국립공원 407개 탐방로가 통제됐다. 충청과 호남 지역에선 홍수 경보도 발령됐다. 금강홍수통제소와 대전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50분경 홍수주의보가 내려진 갑천 만년교 지점에 대해 오후 2시 20분 홍수경보가 변경 발령됐다. 경보 수위 기준인 4.5m가 넘을 것이 예상된 데 따른 조치다. 산림청은 전국 17개 시도 중 12곳에 최고 수준의 산사태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발령했다. 충북 청주에서는 무심천을 걷던 행인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는 오인 신고가 들어왔지만 행적이 확인돼 종결 처리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충북 영동군에선 빗길에 도로 옆 야산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미끄러지며 30대 운전자 남성이 숨지고 동승자 2명이 크게 다쳤다.● 충청 호남 ‘극한 호우’ 가능성… 장마 최대 고비 이번 주말이 여름 장마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충청, 호남 등에는 시간당 최대 강수량이 100mm를 넘어서는 ‘극한 호우’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6일까지 충남과 전북 일부에 400mm 이상의 비가 내리겠다. 충북, 전남, 경북 내륙 일부는 300mm 이상 쏟아지겠다. 수도권과 강원 내륙 산지 등의 예상 강우량은 30∼100mm, 경기 남부, 강원 남부 내륙은 최대 150mm로 예보됐다. 강원 동해안과 제주는 20∼70mm, 제주 산지는 최대 100mm 이상 내릴 수 있겠다. 지난해 8월 8일 서울 동작구 일대에 인명 피해로 이어진 폭우가 시간당 144mm 수준이었다. 기상청은 “강수량의 지역차가 크고, 비구름대의 남하가 정체될 경우 강수가 한 곳에 집중적으로 퍼부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집중호우로 논산역 인근 하천 수위가 상승하자 호남선 서대전∼익산 구간 일반 열차 운행을 14일 오후 6시 15분부터 15일 막차까지 중단한다고 14일 밝혔다. 영동, 태백선도 15일까지 전 구간 운행을 중단하며, 충북선과 경전선도 폭우가 내린 일부 구간에 대해 운행을 중단하기로 했다.논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정훈 기자 jh89@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파업 이틀째인 14일에도 전국 병원에서 입원 대기가 길어지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중증 응급 환자가 표류하다 골든 타임을 놓치는 등의 ‘의료 대란’은 대부분 지역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부산 부산진구 인제대부산백병원은 환자로 북적였다. 병원은 “인근 병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환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우리 병원으로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서구 고신대병원 응급실도 환자 대기 시간이 평소보다 1, 2시간 길어졌다. 서울에서도 13일 밤 무릎을 다친 40대 중반 남성이 병상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에 탄 채 2시간가량 헤매는 일이 있었다. 다만 전국 상황을 종합했을 때 부산·경남 지역을 제외하면 혼란은 크지 않았다.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의료기사 등으로 이뤄진 보건의료노조는 당초 예정대로 14일 오후 5시를 기해 총파업을 종료했다. 다만 일부 병원 노조원은 총파업과 별개로 개별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부산대병원지부는 500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60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벌였다. 대구 부산 세종에서도 시위를 이어갔다. 노조는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 대 5 수준으로 간호사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언제까지’ 간호 인력을 확충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노조는 간병인 없이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라고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노조의 간호 인력 확충 요구에 공감한다면서도 막대한 예산과 건강보험 재정이 드는 정책인 만큼 점진적으로 늘려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전국이 일시에 시행할 경우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질 우려가 커 비수도권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과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도합 8500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도심 집회를 벌였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충남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추모공원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이곳을 찾은 노부부가 토사에 매몰돼 심정지 상태로 구조됐지만 끝내 숨졌다. 함께 매몰됐다가 구조된 여성도 중상을 입었다. 14일 오후 4시경 산사태가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현장에 도착한지 1시간 반만에 토사에 매몰돼있던 80대 남성과 70대 여성, 60대 여성, 20대 남성 등 4명을 구조했다. 부부사이인 80대 남성과 70대 여성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부부의 조카로 알려진 60대 여성과 조카로 추정되는 20대 남성은 골절 등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60대 여성은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추모공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인근 절에서 열린 합장 행사에 참석하려고 방문했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산사태로 토사가 흘러내리며 추모공원에 있는 납골당 건물이 무너지자 이를 피해 주차장으로 향하다 다시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현장을 목격한 절 관계자는 “차량 두 대가 쏟아져 내린 흙에 밀려 추모공원으로 진입하는 도로까지 쓸려나와있었다”며 “절에서 추모공원까지 300m에 이르는 도로가 토사로 모두 막혀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하루에만 250㎜가 넘는 비가 내린 논산시를 비롯해 충남 곳곳에선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갑자기 불어난 하천물에 제방이 무너졌다. 강원 정선군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했다. 앞서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도로를 미리 통제한 덕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전국에서 호우가 이어지며 산림청은 부산·경남과 제주를 제외한 12개 광역 지역에 산사태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렸다.논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정훈 기자 jh89@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폭우가 내린 13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2만 명 넘게 집결해 집회를 진행했다. 3일 총파업 개시 이후 최대 규모다.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는 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 약 1만7000명을 포함해 화섬식품노조, 사무금융노조 등 약 2만2000명(경찰 추산)이 집결했다. 보건의료노조 등은 이날 오후 1시 반경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건의료인력 확충’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사전 집회를 열었다. 오후 3시부터 본집회가 시작되면서 종로구 동화면세점부터 세종대로 대한문 방향으로 편도 5개 전 차로 900m가량을 점거하고 집회를 진행했다. 건널목도 함께 통제돼 시민들은 인근 지하차도로 돌아가 길을 건너는 등 통행에 불편함을 겪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4시경 집회를 마친 후 용산구 대통령실과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방면으로 나뉘어 각각 3000명, 9000명이 행진했다. 대통령실 방면 행진은 집회 신고 시간인 오후 5시가 넘으면서 용산구 숙대입구역 인근에서 중단됐다. 해산 과정에서 경찰이 2차례 해산 명령을 내렸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장맛비 속 대규모 시위로 일대는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었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규승 씨(57)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착 예정 시간이 11분 남았다고 했는데 25분으로 늘어났다”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한국전력에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하라고 하고, 관리사무소는 들은 게 없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법적으로 TV 수신료와 전기요금 분리 납부가 가능해진 12일 서울 성북구에서 만난 아파트 주민 김모 씨(27)는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는 “한전과 관리사무소가 서로 책임을 미루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황당해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방송법 시행령이 통과되면서 KBS 수신료 위탁 징수를 맡은 한전은 전기요금과 별개로 KBS 수신료 전용 청구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자동이체로 전기요금을 내는 경우 이날부터 고객센터(123)에 전화하면 전기요금만 자동이체하고 TV 수신료 계좌는 별도로 안내할 방침이다. 문제는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다. 한전은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를 통해 전기요금과 TV 수신료 등을 통합 징수해 온 만큼 관리사무소가 별도 수납 시스템을 갖춰야 분리 납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성북구 아파트의 한 관리사무소는 “(분리 징수 내용을) 뉴스로만 들었고 한전 측에서 따로 공지나 공문을 받은 게 없다”며 “공문이 언제 내려올지도 모르는데 주민들 전화는 계속 오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주상복합 관리사무소 역시 “아직 관련 공문이나 지침을 받은 게 없다”며 “주민들에게 현재로서는 따로 낼 방법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측에도 TV 수신료 분리 납부 방법에 대한 문의가 오전부터 빗발쳤다. 한전은 “이날 오후 4시까지 약 7만 건의 고객 문의가 접수됐는데 이는 평소 대비 15%가량 늘어난 것”이라며 “이 중 70%가량인 약 5만 건이 분리 납부 관련 문의였다”고 밝혔다. 문의가 늘면서 전화 연결도 잘 안 됐다. 강북구 주민 조모 씨(27)는 “한전에 전화 연결이 안 돼 오전부터 몇 번이나 시도했다”며 “오후에 7분 이상 기다린 끝에야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전 측은 “12일 오전 전국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에 수신료를 따로 낼 수 있도록 별도의 수납계좌를 만드는 등의 방법을 안내했다”며 “일부 관리사무소와 소통이 잘 안 이뤄진 것 같은데 전국 한전 사업소에서 관리사무소 2만8000곳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며 분리 징수 방법을 안내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분리 징수 시스템을 완전히 구축하기까지 3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3일 시작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총파업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12일에는 처음으로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약 3000명(경찰 추산)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이날 오전 9시 반경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서문 맞은편에서 집회 준비를 시작해 서빙고로 약 200m 편도 3개 차로가 통제됐다. 이 때문에 박물관을 찾은 관광버스들이 도로에 몰리며 한때 차량 통행 속도가 시속 10km까지 떨어졌다. 오후 2시부터는 서빙고로 일대에서 본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윤석열 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쳤고 1시간 가량 집회를 한 후 오후 3시부터 신용산역 방면으로 약 1.7km를 행진했다. 이 때문에 이촌역~신용산역 구간 서빙고로 2개 차로가 통제됐다. 신자유연대 등 보수 집회가 신용산역 맞은편에서 ‘맞불 시위’를 열었지만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당초 경찰은 행진을 불허했지만 민노총 측이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 효력을 멈춰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서 받아들이며 행진이 이뤄졌다. 이 집회와 별개로 민노총 조합원 20여 명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중단과 윤석열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 중 2명은 동상 위에 올라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다 10여 분 뒤 해산했다. 13일에는 서울 광화문 도심 한복판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2만4000명이 참여하는 총파업 결의대회가 예고돼 일대 극심한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한국전력에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하라고 하고, 관리사무소는 들은 게 없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법적으로 TV 수신료와 전기요금 분리 납부가 가능해진 12일 서울 성북구에서 만난 아파트 주민 김모 씨(27)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는 “한전과 관리사무소가 서로 책임을 미루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황당해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방송법 시행령이 통과되면서 KBS 수신료 위탁 징수를 맡은 한전은 전기요금과 별개로 KBS 수신료 전용 청구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자동이체로 전기요금을 내는 경우 이날부터 고객센터(123)에 전화하면 전기요금만 자동이체하고 TV 수신료 계좌는 별도로 안내할 방침이다. 문제는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다. 한전은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를 통해 전기요금과 TV 수신료 등을 통합 징수해 온 만큼 관리사무소가 별도 수납 시스템을 갖춰야 분리 납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성북구 아파트의 한 관리사무소는 “(분리 징수 내용을) 뉴스로만 들었고 한전 측에서 따로 공지나 공문을 받은 게 없다”며 “공문이 언제 내려올지도 모르는데 주민들 전화는 계속 오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주상복합 관리사무소 역시 “아직 관련 공문이나 지침을 받은 게 없다”며 “주민들에게 현재로서는 따로 낼 방법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측에도 TV 수신료 분리 납부 방법에 대한 문의가 오전부터 빗발쳤다. 한전은 “이날 오후 4시까지 약 7만 건의 고객문의가 접수됐는데 이는 평소대비 15% 가량 늘어난 것”이라며 “이 중 70% 가량인 약 5만 건 가량이 분리 납부 관련 문의였다”고 밝혔다. 문의가 늘면서 전화 연결도 잘 안 됐다. 강북구 주민 조모 씨(27)는 “한전에 전화 연결이 안 돼 오전부터 몇 번이나 시도했다”며 “오후에 7분 이상 기다린 끝에야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전 측은 “12일 오전 전국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에 수신료를 따로 낼 수 있도록 별도의 수납계좌를 만드는 등의 방법을 안내했다”며 “일부 관리사무소와 소통이 잘 안 이뤄진 것 같은데 전국 한전 사업소에서 관리사무소 2만8000곳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며 분리 징수 방법을 안내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분리 징수 시스템을 완전히 구축하기까지 3개월 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13일부터 19년 만의 총파업에 돌입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200여 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영양사, 약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일선 의료현장의 혼란과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응급·수술실은 제외지만 차질 불가피 보건의료노조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주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91.63%가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은 2004년 ‘의료민영화 저지와 주 5일제 시행 요구 파업’ 이후 처음이다. 노조 측은 조합원 총 6만4000여 명 중 4만50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서울아산병원, 이대목동병원 등 서울 소재 주요 상급종합병원과 비수도권 주요 대학병원들을 포함해 총 145곳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응급실과 중환자실, 분만실 등 필수유지 업무 인력은 파업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파업으로 입원 병동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 응급실과 수술실에까지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은 10일부터 응급실에 온 환자들 중 기존에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일반 병동에 입원시키지 않기로 했다. 파업을 앞두고 새 입원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응급실이 운영되더라도 입원실이 함께 운영되지 않으면 응급실에 환자가 쌓이고 응급 진료 차질로 이어진다. 하루 45건꼴로 암 수술이 이뤄지는 국립암센터 소속 조합원들도 파업을 예고했다. 암센터 측은 대규모 파업이 예상되는 13, 14일에 잡힌 모든 암 수술을 취소했다. 수술실엔 인력이 있지만 환자가 회복하며 경과를 지켜볼 입원실에는 간호 인력이 없어 병실 운영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술이 취소된 환자들이 크게 좌절하고 있다. 현재로선 언제까지 수술이 취소될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양산부산대병원도 12일까지 모든 입원 환자를 퇴원시키기로 결정했다.● 노조 “환자 5명당 간호사 1명 확보돼야”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의 가장 큰 이유로 ‘만성적인 간호 인력 부족’을 내세웠다. 국내 의료환경에서는 간호사 1명이 통상 입원 환자 10∼12명을 돌봐야 한다. 이는 현장 간호사들의 과로와 의료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를 확충해 상급종합병원 기준으로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 대 5’로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간호조무사 등 병원에서 일하는 다른 직종 인력에 대해서도 적정 인력 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현재 3058명인 의대 신입생 정원을 즉시 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가 부족해 응급 환자가 병상을 찾지 못하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발생하고, 의사의 일을 불법적으로 대신하는 이른바 ‘PA 간호사’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노조는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전면 시행,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중단, 임금 10.73% 인상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간호법 제정 무산도 파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10일 오후 조규홍 장관 주재로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파업 기간 비상 진료 대책을 논의했다. 조 장관은 “보건의료노조는 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해선 안 된다. 의료현장에서 환자 곁에 남아 달라”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국제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인도 북서부에는 ‘한국의 대치동’에 비견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코타(Kota)라는 도시인데요. 도시 자체가 세계 최대 학원가라는 명성답게 도시 골목마다 입시학원 광고와 원생들의 시험 순위표가 붙어 있습니다. 인도의 명문 공대인 인도 공과대학(IIT), 인도 국립공과대학(NITK) 등 입학생을 대거 배출하는 공장 같다고 해서 ‘코타 팩토리’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인도의 사교육 열풍은 이미 10년 전부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인도의 2030세대 역시 사교육으로 ‘초집중 관리’를 경험한 세대라고 합니다. 특히 신분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유력한 경로로 꼽히는 공대 입시는 더욱 치열합니다. 기자는 최근 10년 사이 인도에서 공대 입시 경험이 있는 인도 출신 엔지니어 4명과 인도의 뜨거운 사교육 실태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 엔지니어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도시가 통째로 입시학원…내 주변 모두가 경쟁자”인도의 공대 입시 과정은 간단합니다. 바로 공대 입학시험인 JEE(Joint Entracne Examination)를 통과하는 겁니다. 시험은 1차(Mains)와 2차(Advanced)로 나뉘는데, 최상위 공대에 합격하기 위해선 2차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문제는 1차 통과 이후 2차 시험을 볼 기회가 단 두 번 주어진다는 겁니다. 기회가 두 번 뿐이다 보니 고교 졸업 이후 1, 2년 ‘갭 이어(gap year)’를 가지며 시험공부를 한 뒤 1차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수학, 물리, 화학 3과목으로 구성된 JEE는 세계에서 가장 ‘극악한’ 난도로 악명이 높습니다. 특히 2차 시험의 경우 정규교육 과정만으로 통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터뷰 참가자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근 떠들썩했던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이 시험 곳곳에 포진돼 있는 겁니다. 이에 최상위 공대에 입학하려면 사교육은 필수라는 얘깁니다. ▽기자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사교육 없이 IIT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보시나요?▽라지어렵다고 봐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상자 속’ 지식이라면 JEE는 ‘상자 밖’의 문제들을 묻는 시험이거든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부터 새롭게 배워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어요. ▽스리카르학교에서는 언어, 사회, 역사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우잖아요. 그런데 냉정히 말해서 JEE를 통과하려면 이런 과목들은 쓸모가 없어요. 최상위 공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과감히 이런 과목들은 포기해야 하는 거죠. JEE 준비생들은 보통 8학년(15, 16세), 빠르면 6학년(13, 14세)부터 시험에 나올 딱 3과목(수학·물리·화학)만 집중적으로 파요. 사교육을 통해 ‘JEE 맞춤 대비’를 하는 거죠. ▽심피사실 저는 IIT 응시 자체를 포기했어요. 입시를 준비하며 단 한 번도 사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학원이나 과외 도움 없이 혼자서 2차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대신 CGPET(Chhattisgarh Pre Engineering Test)라고, 차티스거주(州) 내 공대 입학시험을 봤어요. 이 시험은 정규교육 과정에서만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저 같이 사교육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어요. ▽기자입시 학원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스리카르저는 기숙학원을 다녔어요. 숙소, 강의실, 식당까지 전부 한 건물 안에 있었어요.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내려가서 공부하고, 아침 먹으러 식당 갔다가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고…. 학원 수업은 보통 오후 3시면 끝나요. 그럼 한 시간 정도 쉬다가 오후 4시부터 다시 자습을 시작하죠. 그렇게 밤 12시나 새벽 1시까지 공부하는 거예요. 하루에 16~17시간 정도 공부했어요. (학교는 안 갔어요?) 학교는 안 가도 됐어요. 사실 공부를 잘해서 학원에서도 최상위 반에 있었거든요. 최상위 반 학생들은 학원에서 알아서 모든 걸 처리해줘요. 학교도 안 가도 되고, 학교 시험도 안 쳐요. JEE에만 집중하는 거죠. ▽라비요새는 일부러 사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등교가 필수가 아닌 사립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라지저는 JEE 2차 시험을 위해 도시 자체가 세계 최대 학원가라고 불리는 코타로 갔어요. 원래 살던 곳에서 약 300km 이동해야 했지만 최고의 강사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그나마 가까운 거고 정말 1000km 넘게 이동해서 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시험 준비하는 1년간은 매일 매일이 똑같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후 3시에 수업이 마치면 자취방으로 돌아와 자습을 해요. 그때부터는 혼자만의 싸움이죠. 덥고, 열악하고, 쉬고 싶지만 쉴 수가 없어요. 바로 옆방에서 경쟁자가 공부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기자입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요?▽스리라카경쟁이요. 저희 학원은 철저한 ‘계급제’였어요. 매주 시험을 보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강등되고 성적이 올라가면 월반하죠. 좋은 반일수록 선생님들도, 시설도 모두 좋아져요. 무엇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 부모님 부담도 덜어드릴 수 있어요. 단, 떨어지면 혜택도 끝이에요. 시험 성적은 항상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돼요. 매일매일 사다리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어요.▽라지모두가 경쟁자이니 뒤쳐지지 않게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해요. 숙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 준비를 꼼꼼히 못해 뒤쳐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저 아니어도 인도 공과대학(IIT)에 들어갈 똑똑한 학생들은 충분히 많거든요. 농담 같지만, 친구한테 잔다고 거짓말하고 밤새서 공부한 적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친구도 똑같이 그렇게 할 거니까요. 학생들의 부담이 심할 수밖에 없어요. 그거 아세요? 인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도시가 바로 코타에요. ▽라비코타에서 공부한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한 반, 아니 한 도시 전체가 너와 똑같은 시험을 통해 똑같은 대학을 준비하는 사람들 밖에 없어. 어떤 기분일거 같아?” 그 말 듣고 섬뜩했어요. 엔지니어가 아니면 인생 전체가 실패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데, 저는 위험하다고 봐요. ● “명문 공대생이라니까 버스에서 자리도 양보해줘”▽기자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IIT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명문 공대’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알렸을 때 얼마나 좋아하셨나요?▽라비(웃으며) 엄청요. 제가 나온 인도 국립공과대학(NITK)는 인도에서 인도 공과대학(IIT) 다음으로 유명한 공대에요. 아버지는 아직도 주변 사람들에게 저에 대해 “NITK를 졸업한 자랑스러운 엔지니어”라고 소개하세요. 대부분의 인도 학생들이 그렇듯, 저 역시 공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어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항상 의사와 엔지니어 중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물으셨거든요. 10년 이상 의대 공부를 할 자신은 없었고, 결국 공대 진학을 결심했죠. ▽스리카르인도에서 명문 공대를 나오면 부모님은 물론 친척, 이웃,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도 존중해줘요.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험에 통과했다는 뜻이니까요. 한 번은 버스를 탔는데, 우연히 옆에 앉아서 가던 승객과 대화하다가 제가 IIT 나온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분이 “열심히 살았다”며 저에게 자리를 양보하더라고요. IIT를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인도에서는 ‘훈장’ 같은 거죠.▽라지제 아버지는 농부예요. 저 하나만 바라보고 재산도 팔고 대출도 받으셔서 겨우 저를 코타에 보내셨죠. IIT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아버지께 그랬어요. “이제 어머니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 저로 인해, 저희 집안 전체가 일어설 수 있는 거예요. ▽기자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공대 진학을 꿈꾸는 걸까요? 돈이나 사회적 지위 때문일까요?▽라지일자리 때문이죠. 엔지니어가 아닌 이상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인도에서는 직업을 물을 때 엔지니어이거나, 엔지니어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란 이야기도 있어요. 말 그대로 한 다리 건너 한 명이 엔지니어에요. 이 분야밖에 자리가 없어요. ▽라비한국에서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잖아요. 스포츠가 될 수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요. 기자가 되는 것도 한 방향일 수 있죠. 꼭 거창하지 아니더라도 성공의 경로가 다양하잖아요. 하지만 인도는 아직 다양하지 못해요. 성공하기 위해선 일단 공대나 의대에 가야 해요. ▽기자한국에선 ‘의대 열풍’이 과열되고 있어요. 상위권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로 쏠리다 보니 아무리 좋은 공대여도 등록 포기자들이 많이 나와요.▽라지인도에서도 의사의 사회적 지위나 연봉이 엔지니어보다 높은 건 사실이에요. 문제는 ‘꼭 의사여야만 하나’인 거죠. 의대는 매년 뽑는 수도 적고, 최소 10년은 공부해야 돈을 벌 수 있어요. 반면 공대는 의대보다 상대적으로 정원이 많고, 졸업하면 바로 돈을 벌 수 있죠. 안정적 지위가 보장되는데 굳이 의대로 갈 필요가 없어요. ▽스리카르물론 일반 엔지니어와 의사를 비교하면, 의사가 우위에 있겠죠. 중요한 건 ‘좋은 공대’에 나왔냐는 거죠. 가령, IIT에 나오면 의사 부럽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니까요. ● “땅 팔고 대출 받아 학원 보내는 건 다반사”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사교육은 학생들의 일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교육에 진입하는 연령대도 통상 8학년(15, 16세)에서 점차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본격적인 입시를 시작하기 전부터 기초 수학, 과학 등 준비 단계에서부터 사교육을 받는 사례가 많습니다. 기자가 만나본 인도 출신 공학도들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도 “경제력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라지사교육 비용이 만만찮다 보니 빈부에 따른 교육 격차가 점차 심각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저만 해도 부모님 수입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당시 친척 중에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에게 사정사정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 그렇게 돈을 구해야만 자녀를 학원에 보낼 수 있어요. ▽스리카르제가 다녔던 학원 친구들도 대부분 큰 돈을 구하기 위해 부모님이 가진 재산을 내놓아야만 했어요. JEE 2차 시험은 절대로 학교 교육만으로 통과할 수 없거든요. 그걸 부모님들도 알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하실 거예요. ▽라지특히 JEE는 카스트제(인도의 세습적 신분제도로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등 4대 계층으로 구성)의 영향을 받아서 계층이 높을수록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정원 규모가 더 커져요. 계급이 높을수록 합격에 더 유리한 거죠. 안 그래도 기회가 적은데다 계급에 따른 빈부격차로 좋은 교육조차 받지 못하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질 거예요.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돈도 많이 들고, 경쟁도 치열하고, 엄청난 압박을 견디면서까지 그렇게 입시를 준비하는 게 가치가 있나요?라지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연하죠. 제가 명문 공대에 가서 성공하는 게 제 자식을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걸요.”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