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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11월 7일 CBS 라디오에 나간 문 이사장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유재석 이수근 이승기 박명수 이경규 같은 방송인들 중에서 비서실장을 딱 한 명만 고르라면 누굴 선택하겠느냐?” 문 이사장의 대답. “다들 좋은 분이고 좋아하는데 특히 유재석 씨를 고르겠다. 정말 (방송) 잘하시고 편한 것 같다.” 이어진 질문. “박명수는 어떠냐?” 그래도 문 이사장은 “한 분만 선택하는 게 아쉽다”며 유재석을 고집했다. 알다시피 유재석은 TV 예능프로에서 ‘1인자’로 통한다. ‘노무현의 그림자’ ‘노 정권의 2인자’인 문 이사장이 ‘1인자’ 유재석을 자신의 비서실장 감으로 꼽은 데 눈길이 갔다. 그러면서 예능프로에서 ‘2인자’ 캐릭터인 박명수는 ‘NO’했다.1인자 유재석 낙점한 2인자 문재인 당시 문 이사장이 박명수가 2인자 캐릭터라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신도 2인자 이미지에 물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명실상부 제1야당의 대선후보가 된 그가 이제는 2인자 콤플렉스를 벗어던졌는지 궁금하다. TV 예능에서 유재석이 1인자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박명수를 명실상부 2인자로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2인자는 박명수가 미는 캐릭터일 뿐이다. 유재석과 박명수는 각각 1인자와 2인자로 통하지만 예능권력의 차이는 엄청나다. 예능에서도 쉽게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거늘 대선이 채 50일도 남지 않은 요즘, 대통령 권력을 나눠주겠다고 야단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 인사권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권력분점의 일환으로 ‘책임총리제’를 주장해온 문 후보는 지난달 30일 “부통령제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야권 단일화 이슈에 밀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은 맞불카드로 분권형 개헌을 만지작거린다. 앞서 박 후보는 21일 “총리실이 내치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며 대통령 분권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빅3’ 후보가 모두 대통령 권력분산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하지만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도 사석에서 ‘책임총리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이 다원화 분권화라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총리가 내치의 중심이 되는 책임총리제는 실제로 운영하려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총리가 내치를 총괄하는 책임총리제의 나라다. 세 번에 걸쳐 좌·우파 대통령-총리가 공존하는 ‘동거(同居) 정부’의 폐해를 겪은 프랑스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7년)과 총리(5년)의 임기를 5년으로 같게 만들었다. 대선 총선을 같은 해에 실시해 동거정부 출현을 방지한 것이다.프랑스의 권력분점 실패 돌아봐야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을까. 개헌 이후 처음으로 같은 해 실시된 2002년 대선과 총선에선 모두 우파가 승리했다. 하지만 연임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차기를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사이에 전례 없는 ‘우-우 권력갈등’이 빚어졌다. 프랑스 언론은 ‘4번째 동거 정부’라고 비꼬았다. ‘대통령의 권력분산’ ‘공동 정부’…. 아름다운 얘기다. 하지만 1인자와 2인자가 권력투쟁을 벌이면 국정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 같은 단임제 국가에선 ‘차기 1인자’가 될지 모를 2인자에게 권력이 블랙홀처럼 빨려들 수도 있다. 지금처럼 눈앞의 표에 급급해 대한민국의 헌법체계와 국가시스템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백년대계가 걸린 권력구조 공약을 마구 던진다면, 우리의 미래를 집어던지게 될 것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올해 3월 21일 오전 청와대 인왕실.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오며 악수를 청했다. 짐짓 미소를 띠었지만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3월 26, 27일)를 앞두고 동아일보와 일본 유력지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외신 6개사 공동인터뷰 날이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터 매입의혹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다. 고단한 표정이 스친 것도 잠시, 인터뷰가 시작되자 정력적으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잠시 후 그는 기자로선 가슴이 뛸 만한 얘기를 했다. “현재 한미 간에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미사일 사거리를 300km로 제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양국 간에 사거리를 확대하는 게 맞다는 이해가 되고 있다. 조만간 타협이 될 것으로 본다.”인색한 미사일사거리 확대 평가 현직 대통령 발언의 파장은 컸다. 본보는 다음 날 “‘미사일 사거리 연장’ 11년 숙원 풀린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뤘다. 아사히신문도 1면 톱으로 올리는 등 국제적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이 밝힌 ‘한미 협의 진전’은 반년도 더 걸려서야 결실을 맺었다. 7일 ‘한미 미사일 사거리 협상 타결’ 뉴스가 그것이다. 뉴스는 일회성처럼 지나갔지만 그 함의는 메가톤급이다. 이제야 한국은 북한이 선제공격할 경우 전역을 탄도미사일로 보복타격할 수 있게 됐다. 전쟁 억제력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 개인적으로는 단연코 MB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제1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를 열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당장 우리에게 떨어지는 국익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다. 특히 이번 협상 타결은 외교안보부처보다 MB와 청와대가 직접 밀어붙여서 얻어낸 것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평가는 인색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여당인 새누리당마저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환영한다”는 논평 한 장 달랑 냈을 뿐이다. MB가 잘나가던 취임 초·중반이라도 이랬을까. 그 대신 MB는 협상 타결 발표 이틀 뒤 취임 이후 가장 주기 싫은 임명장을 줘야만 했다. 내곡동 사저 터 의혹을 수사할 이광범 특별검사 임명식이었다. 청와대는 재추천까지 요구하며 저항했지만 물러나는 대통령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현장에선 ‘임명장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말이 없었다’고 한다. MB는 취임 땐 ‘나라 구할 영웅’인 양 치켜세우고, 퇴임 무렵엔 ‘나라 망친 퇴물’처럼 매도하는 시류에 권력무상을 곱씹었던 건 아닐까. 내곡동 사저 터 의혹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분명 이 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청와대 참모진의 잘못이다. 하지만 잘못을 추궁하는 데도 격(格)이란 게 있다. 그 대상이 물러나는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렇다. 잘못은 가리되, 퇴임 대통령을 모욕하고 망신주려 한다면 스스로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미우나 고우나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라는 게 대한민국의 헌법이요, 국기(國基)이기 때문이다.역대정권 말이면 대통령 때리기 역대 정권 말이면 권력이 시퍼럴 때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이들이 달려들어 대통령을 때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라의 눈과 귀는 온통 미래권력에만 쏠린다. MB의 행보는 1년여 전에는 정치권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숨소리보다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러니 어느 대통령도 박수 받고 청와대를 떠나지 못했다. 떠나는 대통령에게 청와대 직원들만 쳐주는 박수소리는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환호에 묻히곤 했다. 새로 들어오는 이보다는 떠나는 이에게, 힘 있는 자보다는 힘 빠진 자에게 더 큰 박수를 쳐 주는 게 바로 국격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드디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무대에 오를 모양이다. 이미 안 원장에 대한 검증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그의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해 보인다. 말(또는 글)이다. 안 원장이 26세의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으로 서울 사당동에 재개발 아파트를 소유한 게 허물은 아니다. 부산에서 오래 병원을 해온 집안이 결혼한 아들에게 집을 사주는 게 그다지 이상할 것 없다. 문제는 그의 언어다.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해봐서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안철수의 생각’)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아, 안철수가 오랫동안 집 없이 전세살이를 했구나’라고 이해한다. 그게 ‘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보통사람의 생각’이다.안철수의 문제는 행동이 아닌 말 나도 강북의 집은 전세를 주고, 강남에서 전세살이를 한다. 솔직히 전세살이가 편치 않다. 그렇다고 ‘집 없는 설움’을 들먹이진 않는다. 사실이 아니니까. 더구나 안 원장은 결혼 첫해부터 집을 소유했고, 지금은 ‘황제 전세’ 논란이 이는 곳에 살고 있지 않은가. 뭐, 모친이 판자촌 재개발 ‘딱지’를 매입했으면 또 어떠랴. 그땐 1988년이니까. 딱지를 사서 아파트에 입주하는 게 흔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주민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논리만으로 밀어붙이다가 용산참사 같은 사건을 초래했다. 앞으로는 도시를 재개발할 때 세입자 등 상대적 약자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하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생애 첫 자기 집을 재개발 딱지를 통해 마련한 이가 마치 ‘남 얘기하듯’ 훈계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이 사당동 아파트와 1993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를 부모 돈으로 장만하고, 서울 이촌동 장모 명의 아파트에 거주했던 일도 큰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역시 문제는 그가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못 박은 것이다. 집 문제만 살펴봐도 안 원장에겐 이처럼 적지 않은 언행 불일치가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행동에는 별 잘못이 없다. 말을 너무 ‘고상하게’ 하는 바람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보면 이런 고상한 말 천지다. 이 책이 정치 외교·통일 경제 사회 문화 등 한국사회 전 분야에 대한 ‘안철수의 고상한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사외이사나 단란주점 논란, 군 입대 일화 등에서 보듯 그가 책이나 예능프로에서 풀어놓은 많은 ‘순수한 언어’들은 역으로 그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고상한 언어가 족쇄 될 수도 그렇다면 안철수는 왜 때론 과장되거나 이상주의적인 말들을, 심지어 자신이 잘 모르거나 경험하지 못한 분야까지 풀어놓았을까. 일종의 ‘갓(God) 콤플렉스’가 아닌가 싶다. 갓 콤플렉스란 자신을 신이라고 믿지는 않아도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자기 판단이나 의견이 남들보다 언제나 옳으며 △심한 경우 자신이 대중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판사나 외과 의사, 정치인과 종교인이 이 콤플렉스에 취약한 직종으로 꼽힌다. 어쩌면 1년여 만에 일개 기업인에서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유력 대선주자로 아찔하게 비상한 그가 갓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일지 모른다. 이제 안 원장이 땅으로 내려와 링에 올라야 할 날이 다가왔다. 그가 늘어놓은 ‘고상한 언어’를 현실화시킬 정치력이 있는지 보일 때가 됐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야구선수가 되려다 실패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일화를 얘기했다.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다. 정치는 과연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 곧 드러나겠지만,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대선은 겨우 3개월 남았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때론 맥주에 타 먹는 소주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특정 브랜드 소주는 안 마신다는 이들을 적지 않게 봐왔다. 주로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소주 브랜드의 서체가 골수 좌파학자의 작품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또 어느 때부턴가 진보좌파 쪽 사람 중에서도 이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소주를 만드는 주류회사가 속한 그룹이 ‘서민 자영업자의 등골을 빼먹는’ 대형마트 사업을 하기 때문이라나.상대진영의 젓가락 한 짝까지 증오 자신과 이념이 다른 학자가 붓글씨를 썼다고, 소주를 만든 회사도 아니고 그룹이 맘에 안 든다고 몇천 원짜리 소주까지 ‘NO’해야 하나. 이념이 다른 상대를 적대시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부하는 끝 모를 증오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와 다른 생각을 일정부분 용인하는 톨레랑스(tolerance·관용)의 결여는 한국사회가 벗어던져야 할 천격(賤格)의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반대진영의 것이라면 젓가락 한 짝까지도 배척하는 진영논리에 기름을 붓는 게 음모론이다. 앞서 말한 소주도 한 병 팔릴 때마다 좌파학자가 로열티를 받고, 그 돈이 좌파운동권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돌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학자는 주류회사에서 한번에 받은 돈을 모두 자신이 봉직하던 대학교에 기부했다. 이런 얘길 하면서도 살짝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내가 그 소주회사와 무슨 연줄이 통한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이 나올까봐. 이따위 걱정까지 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 바닥까지 삼류 음모론에 축축이 젖어있는 게 현실이다. 사실 음모론은 자기보호 심리에서 나온다. 학창 시절 매일 학과가 끝나면 공부 못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나 보러 다니고 과외도 안 하는데, 시험 때면 벼락치기로 공부해 1등을 놓치지 않는 ‘엄친아’가 있었다면…. “알고 봤더니 매일 밤을 새운다더라” “비밀과외를 받는다더라”는 음모론이 돌았을 법도 하다. 이는 열등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보호 메커니즘의 일종이다. 이 정도 음모론이야 애교다. 하지만 자기보호 심리가 자기편이면 무조건 보호하려는 맹목(盲目)으로 변질된다면? 급기야 상대편을 죽이려는 음모론까지 양산해낸다면 어떨까. 대통령선거를 4개월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음모론 천국이다. 이런저런 모임에 가보면 대선 기사를 다루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기기묘묘한 음모론이 난무한다. 음모론은 대개 약자의 전유물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최근 동아일보가 4·11총선 공천헌금 의혹을 특종 보도(2일자 1면)하자 친박계 내에선 ‘박근혜를 견제하기 위한 청와대-친이명박계의 기획’이란 음모론이 흘러나왔다. 야권에서도 ‘보수신문인 동아일보가 왜 박근혜에게 불리한 기사를 내질렀을까’를 두고 가당찮은 ‘소설’들이 난무했다. 국익에 심각한 침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걸리면 쓰는’ 언론의 생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들이다.12월 대선은 또 다른 복수전의 출발? 음모론은 시간이 지나면 누추한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음모론을 착안하는 기발한 머리를 다른 데 쓰면 좋으련만, 막아도 막아도 스며드는 유독가스처럼 번지는 게 작금의 음모론이다. 이는 음모론이든, 뭐든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승리지상주의 탓이다. 이런 행태는 노골적으로 편을 가르고, ‘3대 의혹사건’을 제기해 2002년 대선에 승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신화 이후 더 심해졌다. 이제 우리도 승리가 중요하지만, 어떤 승리인지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벌써부터 12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또 다른 ‘복수전’의 출발점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하기야 대선 승리에만 혈안이 돼 있는 이들에게 이런 얘기는 귀에 안 들어오겠지만.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리는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단적으로 그는 세상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나 종교 지도자의 몫에 가깝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세상이 아니라 나라를, 그것도 조금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 내내 그에게서 느껴졌던 불화와 불안, 그리고 고독의 수면 아래에는 이런 괴리가 깔려 있다고 나는 본다. 노무현식 편 가르기 언론정책 유산결국 그는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이 비극적 최후 때문에 추종자들에겐 정치 지도자뿐이 아니라 영적인 지도자로까지 부활했다. 그의 죽음은 ‘폐족(廢族)’이었던 친노 세력도 살려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은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선 실패했다. 오죽하면 자신도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며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했겠는가.이미 실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명박 대통령의 첫 번째 문제점을 꼽으라면 인사(人事)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든 첫 번째 원인은 ‘편 가르기’였다. 동아일보는 그에 의해 ‘내편’이 아닌 ‘네 편’으로 낙인찍혔다. 당시 정치부 차장이었던 나는 툭 하면 언론중재위에 불려나갔다. 정치부 기사에 정정보도 요구 등이 접수되면 중재위에 나가 변론하는 역할이었다. 기자라면 누구나 가기를 꺼리는 그곳에 너무 자주 나가 중재위 관계자들과 친해질 정도였다. 정부기관의 정정 보도 요구가 중재위에서 관철되면 기관 평가에 가점을 주던, 황당한 시절이었다. 급기야 기자실 폐쇄의 ‘대못’까지 박았던 노무현 정부가 끝나면서 편 가르기 언론정책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노무현의 죽음으로 친노 세력이 살아나 민주통합당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옥죄기가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좋은 유산도 적잖은데, 유독 나쁜 유산만 왜 그렇게 빨리 물려받는지…. 그 첫째가 종합편성TV 출연 거부다. 눈 밝은 시청자는 눈치챘겠지만, 동아-조선-중앙일보의 종편TV에 야권 인사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 사실상 당론으로 종편 출연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종편TV 채널A만 해도 야권 인사 출연 섭외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런데도 선거보도심의위원회로부터 ‘여야 출연자의 비율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라’는 ‘공정보도협조요청’ 공문을 받기도 했다. 채널A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같은 종편인데도 MBN은 예외로 취급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최근 MBN에 출연했다. 엄밀히 말해 종편 출연 거부라기보다는 동아 조선 중앙, 이른바 동-조-중 종편 출연 거부다.인터뷰 전날 밤 일방 취소 비단 종편의 문제만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최근 야권의 한 대선주자와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가 전날 밤에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하기도 했다. 충분한 사과를 받았기에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본보와의 인터뷰 일정을 공표하자 당 내외에서 ‘심각한 압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나 출연 거부는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을 침해해 신뢰를 잃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교묘한 언론탄압이다. 더구나 이런 일이 언론사에 대한 개인적 호오(好惡) 때문이 아니라, 특정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다면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다. 독재와 싸웠다는 이들이 독재 때나 있던 ‘보도지침’의 칼을 휘두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에 이런 신종 언론탄압은 국격을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더구나 경제위기까지 몰려오는데 국민통합은커녕 과거의 ‘편 가르기’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래는 없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전조(前兆)가 있었다. 지난 총선이었다. 정치부 기자와 데스크로 적지 않은 총선과 대선을 치렀다. 그중에서도 지난 총선은 유별났다. ‘강간’ 따위의, 여느 총선 보도에선 등장할 수 없는 단어는 ‘양반’이었다. ‘××’ ‘×××’처럼 ‘×’라는 ‘가리개 부호’를 쓰지 않고선 도저히 활자화할 수 없는 막말이 난무했다. ‘나꼼수’와 김용민 후보가 촉발한 역대 최악의 ‘저질 총선’이었다.총선이 부실 대선의 첫째 원인 총선 보도의 실무책임을 진 부장으로 숱한 저질 막말을 보도해놓고, 이제 와서 왜 그러느냐고? 나도 그런 보도를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막말을 일삼는 그들이 일정한 정치적 파워를 갖는, 일종의 ‘정치현상’으로 부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정치현상으로 키운 건 우리 사회의 배설욕구 같은 저열함이었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정치 현실이었다. 김용민 후보의 낙선으로 ‘저질 광풍’은 한풀 꺾였다. 많은 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더 엄청난 복병이 엄습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북한의 남침과 천안함 폭침을 부인하는, 혁명이란 ‘철 지난 유행어’가 모든 수단을 합리화하는, 그래서 선거의 민주절차는 깡그리 무시하는 주사파 종북세력의 국회 입성이었다. 막말 총선에 이은 종북세력의 국회 입성의 후폭풍까지…. 총선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오늘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18대 대선이 딱 180일 남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신문들은 새누리당 당원 명부 유출사건 같은 ‘총선 설거지’ 기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D-180일이 되도록 본격 대선가도에 돌입하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은 총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총선에 이어 8개월 만에 치르는 올해 대선은 졸속으로, 부실하게 치러질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20년 전인 1992년에도 3월 하순에 총선, 12월 중순에 대선을 치렀다. 그때는 달랐다. 민자당은 김영삼, 민주당은 김대중, 국민당은 정주영이라는 부동의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총선을 치렀다. 총선이 곧 대선이었다. 각 당 모두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선으로 달려갔다. 이제 정당에 ‘주인’이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의 제도적 문제점을 들여다볼 때가 됐다. 역대 대선을 돌아보자. D-180일은 주요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 자질과 전력, 공약 검증에 본격 시동을 걸 때였다. 올해는 어떤가. 여야 모두 경선의 룰과 시기조차 정하지 못했다. ‘게임의 법칙’은 물론 플레이어조차 불투명하다. 이러니 검증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부실 검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올해 대선이 역대 최악의 선거가 되리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 10대국가인 대한민국의 대선을 이렇게 치러선 안 된다. 이기려고만 하면 이길 수 없어 이는 이른바 ‘안무(安霧)’, 즉 ‘안철수 안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장외 강자’가 링에 오를지조차 알 수 없도록 안개를 피우는데, 미리 링에 올라가 두들겨 맞으면서 전력을 노출할 바보는 없다. 하기야 안 원장에게만 책임을 돌릴 일은 아니다. 그가 안개를 피우는 것도, 야권이 그런 안 원장의 눈치를 보는 것도, 덩달아 여권 후보조차 미적거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이기면 된다’는, 일그러진 대선 역사의 산물이다. ‘3대 거짓말 사건’을 일으키든, 뭘 했든 이기면 모든 게 용서됐다. 지난 총선에서 ‘나꼼수’를 끌어들여 막말 저질판을 만든 것도, 종북세력과 야권연대를 감행한 것도 이런 ‘승리 이데올로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나. 어떻게든 이기려고만 하면 이길 수 없다. 그것이 달라진 시대정신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박근혜 리더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리더십이다. …하지만 국정운영을 후광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18일자 A5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은 누구보다 김 지사가 잘 안다. 김 지사는 최근 사석에서 “박 대표(비대위원장)는 어린 나이에 청와대에서 권력을 접하고 퍼스트레이디까지 해서 정치와 권력의 생리를 거의 본능적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정치도 조기교육이 무서워 5·16으로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게 박 전 비대위원장 아홉 살 때다. 스물두 살에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서거로 퍼스트레이디까지 됐다. 시쳇말로 ‘조기교육’을 받은 건데, 그 과목이 정치다. 내가 박 전 위원장을 ‘정치 고수(高手)’라고 느낀 건 10년 전 이맘때부터였다. 2002년 4월 파리특파원이었던 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린 한영포럼을 취재했다. 포럼에 참석했던 박 전 위원장을 인터뷰하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콘텐츠 빈약이었다.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당시는 정치에 입문한 지 몇 년 안 된 터여서 깊은 공부가 부족했으리라. 둘째는 그 빈약한 콘텐츠로 거의 ‘정답’을 말하는 놀라운 균형 감각이었다. ‘이래서 조기교육이 무섭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국 골프가 세계를 휩쓰는 건 조기교육 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머리가 굵어지기 전에, 어깨가 굳기 전에 체화된 유연한 스윙을 뒤늦게 배워 따라가기 어렵다는 걸 골프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출세하기 위해, 혹은 돈은 있지만 부족한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나중에 정치에 뛰어든 이들과 조기교육을 거쳐 정치가 체화된 박 전 위원장의 ‘스윙’은 차원이 다르다. ‘어깨에 힘 들어가면 망한다’는 이치는 골프나 정치나 마찬가지다. 박 전 위원장은 2004년과 올해 두 번의 총선 직전에 빈사상태의 당을 맡아 사실상 당을 구했다. 2004년 ‘천막당사’ 이사는 ‘고수 박근혜’의 정치 내공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선 수도권보다 충청과 강원을 집중 공략해 판을 뒤집었다. 그만큼 ‘민심의 수읽기’에 능란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것. 무엇보다 2007년 경선 승복 드라마 연출은 ‘초절정 무공’의 결정판이었다. 문제는 고수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에 있다. 고수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어쩌면 별로 들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남의 말을 들어봐야 자신의 판단을 뛰어넘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드물지 모른다. 항간에는 아무 아무개가 ‘박근혜의 멘토’라는 얘기도 있지만 내가 알기론 사실과 다르다. 박 전 위원장은 철저하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을 나눠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스타일이다.고수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 측근이라도 함부로 자신의 판단이나 해석을 들이밀었다가는 정 맞기 십상이다. 한때 친박 핵심이었던 김무성 유승민 의원이 박 전 위원장과 소원해진 주요 이유다. 박 전 위원장은 이정현 의원처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스피커’ 타입을 선호한다. 박 전 위원장의 이런 스타일 때문에 그가 집권할 경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대통령이 남의 말을 잘 안 들으면 국가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 전 위원장의 스타일은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성기의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와도 겹친다. ‘대세론’을 업고도 두 번이나 대선에서 패한 주요 원인으로 소통 부족이 꼽히지 않았는가. 이 전 대표는 대통령 자리가 멀어진 뒤에야 ‘정답 이회창’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로 귀를 열었다.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뒤였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내가 사는 이 세계가 모두 가짜라면…. 그래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마저 모두 허상이었다면….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이 아득한 실존적 각성의 순간은 수많은 예술 작품, 특히 영화에 모티브가 돼 왔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식스 센스’의 막판 반전. 주인공인 아동심리학자 맬컴 크로의 눈으로 영화 속 세계를 들여다보던 관객들은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었다는 사실에 일종의 현기증을 느낀다. 영화 속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대한민국엔 두 개의 세계가… 걸작 ‘매트릭스’ 3부작에서 실존적 각성의 순간은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가 빨간약을 선택하는 때다. 그가 빨간약을 들이켜면서 영화 속 세계는 두 개로 나뉜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고, 인류는 그 컴퓨터의 배터리 역할을 하는 2199년의 끔찍한 현실세계가 하나다. 다른 하나는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에 주입한 프로그램 ‘매트릭스’가 만들어낸 1999년의 가상세계다. 네오와 그 일행은 매트릭스에 접속하고, 깨어나면서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든다. 2012년 대한민국.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영화 같은 일이 펼쳐지고 있다. 편의상 A와 B세계로 나누자. A, B세계는 지배구조와 작동원리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까지 다르다. A세계인이 B세계의 언어를 해독하려면 ‘통역’이 필요한 수준이 됐다. B세계에선 ‘초딩’ ‘중딩’ ‘고딩’에 이어 ‘유딩’(유치원생) ‘직딩’(직장인)이란 단어까지 나온 지 오래다. A세계의 주축인 중·노년층과 B세계의 주축인 청년층의 언어불통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을 증폭하고 있다. 언어가 다르니 사물에 대한 개념 규정도 달라진다. 언어와 개념이 다르면 토론은커녕 대화조차 불가능해진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안보론이냐, 환경론이냐’로 접근하면 토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B세계 쪽에서 제주기지를 ‘미제(美帝)의 대중국 군사기지’라고 규정한다면 대화조차 불가능해진다. 제주기지에 대한 개념이 원천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A, B세계에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도, 오피니언 리더도 다르다. B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기관은 ‘나꼼수’, 가장 잘나가는 오피니언 리더는 ‘콩국수’(공지영·조국·이외수)다. 이들이 생산한 메시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리트윗된다. B세계에선 A세계의 언론매체인 신문을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신문기사를 인터넷이 아니라 지면으로 읽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희귀종’이다.두 세계의 충돌로 치닫는 대선 A, B세계에선 잘나가는 연예인도 다르다. A세계에서 조연급에도 못 미치는 한 연기자는 B세계에선 톱스타급 ‘개념연예인’이다. 무엇보다 A와 B세계는 권력자가 다르다. A세계의 권력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정권 말 권력누수현상)을 맞은 지 오래다. B세계의 권력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나눔과 위로’를 키워드로 B세계인의 마음을 얻은 안 원장은 정치 참여와 불참으로 가르는 담장 위를 걸으며 연말 대선을 향해 가고 있다. 권력자와 연예인, 언론과 오피니언 리더, 심지어 언어와 개념까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엄존하는 대한민국의 오늘. 국론 분열 수준이 아니라 지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국가적 해리(解離)현상이요, 남북 분단보다 심각한 남남분열이다. 문제는 4·11총선에선 어정쩡하게 봉합된 A, B세계의 갈등이 12·19대선에선 충돌상황으로 치닫는다는 점이다. 엄청난 후폭풍과 국가적 탈진을 몰고 올 두 세계의 충돌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아찔하다. 매트릭스에서처럼 두 세계를 넘나들며 평화를 가져다주는 네오를 기다려야 하나.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로켓 발사를 강력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면서 추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이 있을 때 안보리가 자동으로 개입하는 ‘트리거(Trigger·방아쇠) 조항’을 넣었다. 추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할 경우 사전 협의 없이 곧바로 안보리를 열어 결의안이나 의장성명 등 제재조치를 논의하는 것을 말한다. 2009년 4월 북한의 로켓 발사 때 나온 것과 비교해 보면 여러모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번 의장 성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9항 ‘트리거’ 조항이다. 김숙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는 “이 조항은 14일 나온 시리아 결의안에도 없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트리거’ 조항을 넣자는 미국의 제안에 처음에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다 결국 토요일인 14일 오후 수용했다. 중국은 트리거 조항 외에도 제재 대상을 넓히는 것까지 미국이 요구한 조항을 거의 100%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외교가는 중국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 대해 “이번 기회에 아예 북한에 치명적인 질병 예방주사를 놓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2006년과 2009년에 이어 이번에도 북한을 설득했지만 실패한 데 대해 실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되면 더는 북한을 비호할 수 있는 어떤 명분도 사라진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의장성명에 대해 유엔 대표부 관계자는 “결의안 못지않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를 계기로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이른바 ‘게임 체인지(Game Change)’가 일어나고 있다고 워싱턴 외교소식통이 16일(현지 시간) 전했다. 소식통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를 의제로 설정한 게임에 이끌려가는 식이었는데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미국에서 최근 북한 인권문제를 부각하고 한국도 북한의 민생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17일 “2·29 북-미 합의는 깨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이 우리 정부에도 그렇게 이야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당국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에 대해서도 “북한에 IAEA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2·29 북-미 합의에 의한 것인 만큼 (합의가 깨진 상황에서) 그것을 계속하는 게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때는 1905년 2월 2일 밤. 모스크바엔 눈보라가 몰아쳤다. 한 대의 마차가 눈발을 가르며 크렘린 궁에서 볼쇼이 극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마차 안의 푹신한 쿠션에 몸을 기댄 이는 제정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숙부이자 모스크바 총독인 세르게이 대공(大公). 마차가 광장으로 꺾어질 무렵이었다. 시의회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겼던 한 남자가 거리를 가로질러 마차를 향해 달렸다. 손을 들어 폭탄을 던지려던 순간 흠칫 놀란 남자는 그대로 물러서고 만다. 그는 왜 절체절명의 순간에 뒷걸음질쳤을까?남자가 폭탄을 거둔 까닭은… 남자가 본 건 마차에 함께 탄 대공의 어린 조카 2명이었다. 어린아이들을 보고 놀라서 폭탄을 거둔 남자는 사회혁명당 소속의 전투대원 이반 칼리아예프(당시 28세)였다. 그의 ‘테러리스트답지 못한 머뭇거림’은 이후 숱한 논란을 낳았다. 프랑스 지성 알베르 카뮈는 이를 모티브 삼아 희곡 ‘정의의 사람들(Les Justes·1950)’을 썼다. 희곡에는 칼리아예프가 ‘거사’에 실패하고 아지트로 돌아온 뒤 동지들이 벌인 논쟁이 재구성돼 있다. 스테판: 두 달 동안이나 끔찍한 위험 속에서 별일을 다 겪었는데 날려 보내다니…. 그러고 나서 다시 시작한다고? 도라: 만약에 우리가 던진 폭탄에 어린애들이 산산조각 난다면, 그때야말로 조직의 권위도 영향력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는 거야. 스테판: 그런 애들 문제 따위를 잊어버리기로 굳게 마음먹을 때, 바로 그날부터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되고, 혁명이 승리를 거두게 되는 거야. 도라: 그날이야말로 혁명이 증오의 대상이 되는 날이지. 스테판: 너희가 진정 혁명을 믿는다면, 그까짓 어린애 둘쯤 죽는 것이 뭐 그리 큰 문제가 된단 말인가. 칼리아예프를 비난하는 스테판과 옹호하는 도라. 둘의 논쟁은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할 수 있느냐’는 철학적 논제를 던진다. 결국 ‘혁명도 삶을 위한 것’이라고 외치는 칼리아예프는 이틀 뒤 세르게이 대공 암살에 성공한 뒤 처형된다. 서론이 길었지만, 불현듯 1980년대 대학 시절에 접한 칼리아예프의 실화를 떠올리고 카뮈의 희곡을 다시 꺼내든 이유가 있다.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진 통합진보당 내 주류세력의 행태 때문이다. 경선 여론조사 조작을 한 것도 모자라 ‘얼굴’인 이정희 공동대표가 사퇴 압력에 몰리자 ‘몸통’인 이상규 후보를 대타로 내세웠다. 다른 자파 후보가 성추행으로 낙마하자 역시 자파 소속으로 ‘돌려막기’도 했다. 이 세력은 또 2000년 이후 당내 선거에서 자파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위장전입 흑색선전 문서위조 등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자칫 주사파가 19대 국회 좌우 세력 확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행태는 ‘혁명이란 목적이 모든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극중 인물 스테판의 논리와 놀랍게 닮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카뮈는 스테판이란 인물을 통해 마르크시즘의 전체주의 성향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 카뮈는 좌파였음에도 이 희곡을 발표한 이듬해부터 스탈린 체제를 옹호한 사르트르와 사실상 결별했다. 결국 공산주의는 전체주의가 초래한 비능률 때문에 망했다. 오직 한반도 북쪽에서만 공산주의의 변종(變種)인 주체사상으로 갈아탄 체제가 연명해오고 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세례를 듬뿍 받은 통진당 주류 주사파 세력이 국회의사당 내 최루탄 투척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현재 선거구도라면 통진당이 19대 국회 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공산이 크다는 점. 자칫 주사파 세력이 대한민국 국회를 좌지우지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득해진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이명박 대통령(사진)은 21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선언 등으로)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이 바뀌었다”며 “한미 양국 간에 (한국의 탄도) 미사일 사거리를 확대하는 게 맞다는 이해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에서 26, 27일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주재를 앞두고 진행한 내외신 공동 인터뷰에서 “현재 한미 간에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미사일 사거리를) 300km로 제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이날 인터뷰에는 한국의 동아일보를 비롯해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데일리 텔레그래프 △프랑스 르몽드 등 서방 4개국의 유력 신문과 잡지 6개사도 참여했다.이어 이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이 제주도까지 날아올 수 있으니까 (사거리를 늘리는 것이) 대칭적으로 우리도 필요하다”면서 “미국에서도 한국의 입장이 ‘한미 공동전략을 짜는 데 상당히 합리적이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조만간 타협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한미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한계를 300km로 규정한 미사일지침을 개정키로 의견이 접근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국은 2001년 개정된 한미 미사일지침에 따라 탄두중량 500kg, 사거리 300km를 넘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10년 넘게 묶여 있었다. 반면 북한은 이미 2009년 발사한 장거리로켓이 3200km 이상을 날아 한국의 10배가 넘는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확보했다.이 대통령은 한일 간의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본이 ‘1965년 합의(한일협정)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원래 65년엔 군 위안부 문제가 없었다”며 “합의되고 20년 정도 지나서 위안부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법률에 얽매이지 말고 인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이재오 의원이 현 정권 실세로 한창 잘나갈 때다. 주말을 맞은 고위 공직자 A 씨가 북한산 둘레길을 돌다가 이재오 의원 일행과 마주쳤다. “멀리서 그분이 오는 게 보였다. 평소 안면이 있어 인사하고 악수를 나눈 뒤 길옆으로 비켜섰다. 두 사람도 마주쳐 지나치기에 불편한 좁은 길이었다. 뒤따라오는 일행에게도 목례를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많아야 십수 명일 거라고 생각했던 일행이 끝이 없었다. 내가 목례를 하니,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계속 답례를 하는 바람에 인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한 200명이나 됐을까. 길옆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계속 눈인사를 해야 하는 뻘쭘한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정권 실세 이재오와 마주치자… A 씨는 왜 길옆에 비켜서서 이재오 의원도 아닌, 일행에게까지 계속 어색한 인사를 해야만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권력이다. 이재오 권력의 정점은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학살’이라고 불린 2008년 공천 때였다. 당시 공천 작업에 깊이 관여한 인사의 얘기. “그때도 ‘개혁공천’을 내세웠지만, 철저한 나눠먹기였다. MB(이명박 대통령)가 꼭 챙겨야 할 몇몇 인사를 제외하면 이재오, 이상득 의원의 나눠먹기나 다름없었다. 그 틈새시장에서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비롯해 공천에 직접 관여한 이들이 자기 사람을 심었다.” 이들 핵심실세 가운데 이상득 의원은 최근 측근 비리의혹 등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자칫 검찰에 소환될 처지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의 급전직하(急轉直下) 추락이다. 이방호 전 사무총장은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진 뒤 권토중래를 꿈꿔왔지만 지역구(경남 사천)가 하필 남해-하동(현역 의원은 새누리당 여상규)과 합구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은 이 지역을 전략공천 대상으로 선정했다. 권력무상이다. 이재오 의원의 경우는 새누리당 공천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가 시끄럽게 격돌한 뒤에야 공천이 확정됐다. 공천위는 ‘이 의원이 지역구(서울 은평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했지만, 내심 친이(친이명박)계를 포용하는 상징적 제스처로 공천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그런 공천위의 의도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점. 이재오를 살렸다고 해서 친박이 친이를 보듬었다고 느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친이가 형해화(形骸化)된 지 오래인 터에 그런 발상이 썰렁할뿐더러 이재오 공천으로 새누리당의 헌 이미지만 강화시켰다. 오히려 ‘이재오를 살리는 대신 친이를 다 죽이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재오 의원의 처신이다. 민중운동가 출신 4선 의원에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실세 중의 실세가 자신 때문에 소속 당이 분열 위기에 처했음에도 선수(選數)를 하나 더 늘리기 위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도대체 정치가 뭐기에…’라는 근본적인 물음마저 던지게 만든다.공천 반납 드라마로 윈윈해야 본인에겐 섭섭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재오 의원은 분열의 아이콘이다. 18대 공천 파동에 따른 집권당 분열사태는 결국 MB 정권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자신과 함께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던 이상득 의원처럼 떼밀려서 나갈 것인가. 아직도 이재오 의원과 새누리당이 모두 윈윈하는 길은 남아 있다. 공천을 자진 반납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은 포용력은 보여줬으되, 정권심판론엔 덜 묶일 수 있다. 이 의원으로선 그동안 덧씌워진 분열과 권력욕의 이미지를 한번에 털고 감동적인 정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다시 설 수 있다. ‘제 몫만 챙긴다’는 인상의 보수우파에도 큰 힘을 보태줄 것이다. 그것이 이재오가 죽어서 사는 길이다. 인물정보에 실린 이재오 의원의 가훈은 이랬다. ‘가난하더라도 정의롭게 살자.’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사진)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희태 캠프 ‘돈봉투’ 사건과 관련한 ‘윗선’의 실체에 대해 8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고승덕 의원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은 뒤 이 사실을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고 씨는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고백의 글’이라는 제목의 A4 1장짜리 글을 건네며 심경을 밝혔다. 본인의 지장이 찍힌 이 글에는 “세 번에 걸친 검찰 공개소환 외에 검찰 비공개조사를 통해 그동안의 진술을 번복하고 진실 그대로를 진술하였다는 점을 고백한다”고 썼다.그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고 의원 측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은 뒤 그날 오후 김 수석을 직접 만나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그동안 검찰 조사에서 고 의원 측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돌려받은 300만 원은 내가 썼고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왔다. 이에 따라 김 수석의 검찰 소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수석은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의 돈봉투 살포건’과 관련해서도 이를 공개한 구의원들로부터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돼 왔다.고 씨가 동아일보에 전달한 ‘고백의 글’ 첫머리에는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는 “‘책임 있는 분’은 누구를 지칭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라고만 답했다. 다만 “그분이 처음에 고 의원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고 거짓 해명을 하면서 여기까지 일이 이어졌다”고 말해 김 수석임을 시사했다. 돌려받은 300만 원의 용처에 대해서는 “조만간 밝히겠다”고 말했다. ▼ “진실 감추려 시작된 거짓말, 들불처럼 번져” ▼그는 글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윗선’의 압력에 따른 허위진술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파장이 예상된다.그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바로 나라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면서 “검찰은 이미 진실을 감추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혀 검찰 수사가 알려진 것보다 진척됐음도 시사했다.고 씨는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나약함과 한때 모셨던 주인을 물어뜯은 배신자가 되어야 했던 죄책감은 내가 평생 치러야 할 죗값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또 “이번 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며 “나의 첫 직장이자 12년 동안 일했던 국회를 떠나려 한다”고 썼다.한편 검찰은 이날 전당대회 직전 고 의원실에 전달된 돈봉투 속 300만 원은 박 의장(당시 당 대표 후보)이 직접 마련해 선거캠프에 제공했다는 박 의장 측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전당대회 직전 선거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지 대의원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박 의장이 서둘러 돈을 마련해 캠프 재정을 총괄하던 조정만 국회의장 수석비서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한 물적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의장으로부터 해명을 듣기 위해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아직 조사 방식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9일 오후 2시 조 수석을 다시 소환해 박 의장으로부터 300만 원을 받은 구체적인 경위와 고 의원 외 박 의장이 돈봉투를 건네라고 지시한 또 다른 의원이 있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또 검찰은 2008년 2월 박 의장 측이 라미드그룹에서 사건 수임료로 받았다는 1000만 원짜리 수표 10장 중 4장을 박 후보 캠프에서 재정·조직 업무를 담당했던 조 수석이 6월 말 현금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또 라미드그룹에서 사건을 수임한 박희태·이창훈 법률사무소 측에서 같은 해 6월 말 박 후보 캠프의 공식회계책임자였던 보좌관 함모 씨에게 1000만 원을 보낸 사실도 확인했다.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대통령을 ‘가카새끼’라고 원색적으로 비꼬아도 괜찮은 시대다. 백주에 대통령 조각상 머리를 종이뭉치로 툭툭 때리다가 급기야 해머로 박살을 내도 괜찮은 대한민국이다. 북한의 조선중앙TV가 그 동영상을 내보내며 ‘민심의 버림을 받은 이명박 역도의 가련한 몰골’이라고 조롱해도 괜찮은, 허탈한 ‘MB독재’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게 MB 탓’인 듯하지만 5년 전에도 그랬다. 당시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고, 가족·측근은 부패의 상징이었으며, 친노(親盧)는 폐족(廢族)이었다. 모든 게 ‘노무현 탓’이었다.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음으로 부활하기 전까지는.조각상 박살내도 괜찮은 ‘MB독재’ 이처럼 당대의 평가는 어쩌면 간사하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이명박 대통령이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한 것 같지만 내게는 딱 한 가지 잘못만 두드러져 보인다. 문제는 그 한 가지 잘못이 MB와 MB정권의 모든 걸 규정해 버렸다는 점이다. 왜냐고?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이기 때문이다. 임기 초 ‘고소영’부터 시작된 인사 잘못을 일일이 짚을 생각은 없다. 말하는 입이나 듣는 귀나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도 답답해서 여권 인사에게 물어봤다. ―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진언해 봤는가. “못했다.” ―왜? “기업 오너에게 돈 문제를 말 못하듯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인사 문제는 말 못한다. 기업 오너에게 돈 문제 진언하면 오너는 당장 ‘그게 네 돈이냐’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VIP’(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직언하면 겉으론 표현하지 않더라도 당장 ‘너나 잘하세요’란 반응이 나오기 쉽다. 자칫 잘못했다간 ‘저X이 자리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줄 수도 있다.” 다른 여권 인사에게도 물었다. ―이 대통령이 총애하는 사람만 싸고도니 ‘불통(不通) 인사’란 얘길 듣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기업 CEO(최고경영자) 출신이라 그런 거 같다. 기업의 세계에선 실수한 사람을 한번 봐 주면 감읍(感泣)해서 언젠가는 실점을 만회하고 공을 세운다. 정치의 세계에선 그게 아니다. 실수한 자를 봐주면 더 큰 실수를 한다. 무엇보다 권력 주변에 나쁜 신호를 보내게 된다. ‘저 정도까지는 봐주는구나’ 하는. 내곡동 사저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대통령실장과 경호처장, (대통령)총무기획관을 신속하게 ‘처리’했어도 일이 그렇게 커졌을까.” ‘군왕무치(君王無恥)’라고 했다. 군왕이라고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사사로운 시시비비(是是非非)에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잘잘못을 일일이 따지며 인사를 질질 끌기보다는 민심의 소재를 살펴 적기에 단행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이다.인사 때문에 ‘불통 정권’ 이미지 그럼에도 MB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위한 인사를 해왔다. 편하게 쓸 사람을 고르고, 보호해왔다. 바로 그 인사 때문에 ‘불통 대통령’ ‘불통 정권’ 이미지가 굳어졌으며 레임덕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벌써 만 3년째 자리를 지키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체제 아래서 ‘정보 기능이 무너져 내렸다’는 얘기가 국정원 안팎에서 나오지만 원 원장의 정권 내 입지는 요지부동이다.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는데도 자리에 연연하는 박희태 국회의장에 대해선 여권 수뇌부가 ‘정치력’을 발휘해야 정상적인 정권이다.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만은 ‘MB스럽지 않은’, 신속하고 시원한 인사를 보고 싶다. 무엇보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은 인사를 못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겨서야 되겠는가.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묘한 느낌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속 얘기를 듣는 건. 박 위원장은 최근 SBS ‘힐링캠프’에 나와 지금까지 어떤 인터뷰에서도 털어놓지 않은 개인사의 보따리를 풀었다. “프랑스 공항에서 현지 신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 볼트의 전기가 확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구멍이 숭숭 나고, 심장이 없어진 것 같은….” “(아버지 서거 이후) 국상(國喪) 기간에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이 이상해요. 병원에 갔더니 부황을 뜨면 퍼런 멍이 생기듯, 온몸에 그런 게 생겨 너무 놀라서….”정치부 기자로 자괴감 느껴 불과 스물둘의 나이에 총격으로 어머니를, 5년 만에 다시 총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20대 처녀 박근혜의 ‘깊은 슬픔’이 배어나오는 말들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문구용 커터 피습) 당시 상처가 깊어 얼굴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한쪽 손으로 해도 벌어지는 상처를 막을 길이 없어서 두 손으로 꼭 쥐고 병원에….” 박 위원장은 보통 사람 같으면 단 한 번으로도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엄청난 일을 세 번이나 겪었다. 그럼에도 담담한 그의 어조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자괴감도 들었다. 어떻게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정치부 기자들은 현 정권 내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이자 ‘안철수 바람’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여권 주자의 이다지도 진솔한 인터뷰를 놓쳤을까. 그것도 TV 예능프로에. 변명을 하자면, 꼭 정치부 기자들의 무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자신만의 성(城)에 자신을 가둬왔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인사는 사석에서 “어떻게 대표인 내가 (박 위원장) 만나기가 대통령보다 더 어려우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지인은 “TV에서 박 위원장이 등장할 때마다 경호원인 듯한 덩치 좋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나타난다. 이해는 되지만, 일반인과 괴리된 것 같은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모를 모두 총격으로 잃고 그의 표현대로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거나,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갔다면 생명을 잃었거나 마비가 오는 치명상’을 당한 사람이 자신을 ‘삼성동 자택’에 가두고, 일반과 유리(遊離)시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보호본능일 것이다. 일종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따른 반응이라는 전문가들도 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20대부터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겪고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박 위원장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건 개인 차원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칸막이를 치는 박 위원장의 스타일은 친박근혜계 내부에서도 문제로 지적돼왔다. 국가 및 당내 현안에 대한 그의 침묵이 계속돼도 친박 의원들조차 직접 의중이 뭐냐고 물어보기를 꺼려온 게 사실이다.朴의 트라우마는 개인 차원 넘어 박 위원장이 늦게나마 ‘소통의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런 노력이 TV 예능프로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친박 진영에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의 남자’들마저 말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 스타일은 박 위원장이 그 엄청난 시련과 트라우마를 딛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27세의 이준석 비대위원이 “너무나 진지하고, 가끔은 무서울 때도 있다”고 느낀다면 많은 젊은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박 위원장은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IMF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면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의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너무 진지하고, 가끔은 무서운’ 리더보다는 ‘너무 부드럽고, 가끔은 따뜻한’ 리더를 원하는 게 시류(時流) 아니던가.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정명가도(征明假道).’ 임진년(壬辰年) 그해, 조선(朝鮮)은 길이었다. 해양세력 왜(倭)가 대륙세력 명(明)을 치러 가는 길. 왜는 그 길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일대 전란이 벌어졌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둘 사이에 낀 조선의 혼전이었다. 그로부터 60갑자(甲子)가 여섯 번이나 흘러간 1952년. 한반도에서는 미국을 위시한 해양세력과 중국·소련 등 대륙세력이 다시 격돌하고 있었다. 각각 다른 편으로 선 남과 북도 상잔(相殘)을 벌였다. 다시 임진년이었다. 한반도에 또다시 임진년이 찾아왔다. 올해는 그 어느 임진년 못지않게 비상(非常)한 해다. 세계적으로 60개국에서 대선과 총선 마당이 열린다. 더 이상 기존 자본주의는 ‘해답’이나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 자본주의를 토양으로 열매 맺은 민주주의도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전 지구적 권력 대이동(글로벌 파워 시프트·Global Power Shift)이 펼쳐지게 된다. 무엇보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표주자 격인 미국과 중국·러시아에서 대통령선거 또는 권력교체가 예정돼 있다. 그 결과가 양 세력이 맞붙는 최전선 한반도의 지각에 어떤 용틀임을 일으킬까. 벌써부터 아득해진다. 직접 맞닥뜨려 힘 겨루는 남과 북의 변화는 더욱 코페르니쿠스적이다. 북에선 김정일이 죽고, 사상 초유의 3대 세습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29세 청년에게. 밖에서 보기엔 무난하지만 김정은은 올 임진년 말에도 ‘위대한 영도자’일까. 남쪽도 북쪽 못지않게 마그마가 끓고 있다. 기성 정당정치가 무너져 내리는 ‘민주주의 대공황’을 온 나라가 겪고 있다. ‘가카’부터 판사까지 권위란 권위는 모조리 실종됐다. 절제는 사라졌고, 만인이 ‘내 얘기부터 들어보라’고 외치는 형국이다. 춥다고 물대포를 쏘지 않으면서 원칙은 물대포의 포말처럼 흩어져버렸다. 이 소용돌이 속에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치러진다. 이번 총선과 대선은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새로 놓는 ‘정초(定礎) 선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포퓰리즘으로 멍든 중남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미끄럼 선거’가 될까. 전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달려 있다. 동아일보와 종합편성TV 채널A는 2012 선거의 해를 맞아 키워드를 ‘약속’으로 정했다. 표를 얻고자 하는 이는 표를 주는 이에게 다짐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아니,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표를 가진 이는 먼저 그 약속이 건강한지, 실현 가능한지를 살펴야겠다. 또 약속을 잘 지킬 사람인지, 혹은 잘 지켜온 사람인지를 판단하고 심판해야겠다. 그것이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유권자가 밝은 눈으로 약속을 살피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을 돕고자 한다. 참으로 엄중한 올 임진년을 맞아 독자와 시청자께 드리는 또 하나의 약속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대공황(大恐慌). 말 그대로 대공황이다.…2500년 전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산정에서 세웠던 다수결의 원리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근대 영미(英美)의 전통이 일군 대의민주주의가, 피비린내 났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 꽃피운 정당 정치가, 1987년 6월 서울의 함성이 쟁취한 직선 대통령제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민주주의 대공황’이다.”(동아일보 12월 1일자 A1면) 본보는 1∼7일자에 ‘2012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1부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에 왜 ‘대공황’이 밀려왔는지를 진단하고, 2부는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기 위한 대안으로 ‘공존 민주주의’를 제시했다.왜 한국만 민주주의 대공황? 정치가 흔들리는 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부구조’(경제시스템)가 흔들리니, 그 위에 선 ‘상부구조’(정치체제)가 요동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에선 민주주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는 다수결과 대의제, 정당정치가 요동치는 진폭이 한국만큼은 아니다. 유독 한국만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뽑혀나갈 지경이다. 도대체 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과도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그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올해 여든 살의 이용희 의원은 무소속→신민당→민한당→민주당→평민당→열린우리당→자유선진당 등으로 당을 바꿔가며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서만 5선을 했다. 그런 이 의원이 내년 총선에선 민주당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인 아들 재한 씨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다 선진당으로부터 ‘해당(害黨) 행위자’로 찍혔다.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민주당에 입당 신청을 했다.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집정관 당시 아들 두 명이 왕정복고 음모에 가담하자 직접 사형을 결정했다. 아들들이 채찍질 당한 뒤 도끼로 목이 잘리는 장면까지 입회했다. 최근 이탈리아 복지부 장관은 국민들에게 ‘복지 축소’를 발표하다 눈물을 흘렸다. 그가 흘린 눈물은 과거부터 내려온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의 결정체다. 우리는 어떤가. 소위 노블레스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는 ‘꼬불친다’는 속어가 어울릴 정도다. ‘꼬불친다’는 자기 몫을 챙기려고 감춘다는 뜻. 판사는 임용되면서 3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일반 정부부처에선 고시 붙은 5급 사무관이 20년 가까이 근무해야 3급이 된다. 법원에는 일반 부처에 2∼4명 정도인 차관급 이상도 150여 명이나 된다. 판사에게 ‘공무원 최고 대우’를 보장해주는 건 이런저런 눈치 보지 말고 ‘법관의 양심’(판사 개인의 양심이 아니다)에 따라 재판을 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이런 판사들이 ‘SNS상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사실상 ‘집단행동’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적어도 판사라면 자신들의 문제보다는 국가적인, 공적인 어젠다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SNS 탓보다는 자기희생을 검경 수사권 싸움은 또 어떤가. 검사와 경찰대 출신 고위 경찰의 이전투구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시앗(남편의 첩) 싸움보다 덜하지 않다. 여기에 일반 국민과는 비교가 안 되는 노후연금을 받으면서도 ‘전관예우’ 폐지에 불만을 터뜨리는 공무원, 자손들이 ‘마르고 닳도록’ 해먹게 계열사를 늘려 중소기업 업종에까지 끼어드는 대기업까지…. ‘꼬불칠 것’이라곤 없는 2040세대를 분노케 한다. 우리 사회 노블레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사회 질서 전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 ‘민주주의 대공황’을 부른다. 내년 총선·대선을 맞아 한국의 노블레스들도 먼저 자기희생을 보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계속 SNS 탓만 하다간 그야말로 ‘대한민국 대공황’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치달을 것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황후 무덤 주위의 작은 기둥에 은이 박혀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습기가 찼다. 자연법칙에 따라 거기에 버섯이 자랐다. 그 모습을 본 콘스탄티누스 9세는 ‘주님이 황후의 무덤에 기적을 일으켰다’고 떠들고 다녔다.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황제의 말에 동의했다. 어떤 이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이는 아부로 얻을 수 있을 이익을 생각하면서….”(‘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이노우에 고이치)10·26 선거 참패 다음 날의 인사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재위 1042∼1055년)의 측근이었던 프셀루스가 황제 사후에 남긴 글이다. 그런데 그 일을 ‘주님의 기적’으로 만든 건 황제가 아니었다. 프셀루스 자신이었다. 그는 생전의 황제 앞에서 “황후의 무덤에 ‘자연 법칙을 어기고’ 꽃(버섯)이 피었다”고 아부를 떨었다. 아첨도 이 정도면 예술의 경지다. 언제부턴가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 프셀루스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그 ‘그림자의 장막’이 국민과 대통령 사이를 차단하는 느낌이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MB는 뼈저리게 느꼈어야 했다. 적어도 10·26 서울시장 보선 참패 때는. ‘성난 2040’ 민심의 쓰나미를…. 말로는 “선거 결과에 담긴 젊은 세대의 뜻을 깊이 새기겠다”고 해놓고, 내놓은 대책이 ‘선 민심수습, 후 인적개편’이었다. 민심을 수습하는 데 인적개편만큼 효과 있는 대책은 없는데 말이다. MB는 도리어 선거 다음 날인 10월 27일 어깃장을 놓았다. 내곡동 사저 문제로 서울시장 보선에 치명타를 안긴 경호처장을 바꿨는데, 그 인사(人事)가 더 문제였다. 여권에는 2008년 촛불사태 때의 무능한 대응으로, 야권에는 ‘명박산성’으로 비난의 표적이 된 인물을 임명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문제를 경호처장이 단독으로 처리했을 거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측근들도 관여했을 거란 게 ‘상식’이다. 경호처장 인사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인사였다. 졸지에 보선 참패의 ‘원흉’이 돼 쫓겨난 김인종 전 경호처장도 속으론 할 얘기가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꼬리’를 잘라 내고 ‘몸통’을 들인 것이다. 9일 임명된 이강덕 서울경찰청장 인사는 또 어떤가. 지난해 8월 임기를 7개월 남긴 강희락 경찰청장을 조현오 청장으로 바꿀 때부터 ‘조 청장은 이강덕 경찰청장 임명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말이 돌았다. 한 번 더 경찰청장(임기 2년) 인사를 해 동향인 이강덕 당시 경기경찰청장을 앉힐 수 있도록 강 총장 임기를 줄였다는 얘기다. 이런 ‘음모론’이 각종 언론에 보도될 정도면 아무리 이 청장이 예쁘더라도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의 인사다. 그래야 만사(萬事)의 기본인 인사 기강이 선다. 그런데도 MB는 오히려 이 청장을 경찰청장 자리에 한층 가까운 서울청장에 올렸다. ‘음모론’이 현실이 되는 순간, 국가 기강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不通이미지 주범은 인사 MB가 지금처럼 불통(不通) 이미지를 굳히게 된 주범은 인사다. 그런데도 정권 초부터 지금까지 그 숱한 인사 잘못이나 인사 검증 부실 때문에 인사 라인의 누군가가 문책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주군의 눈과 귀를 막는 프셀루스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까닭이다. 하기야 프셀루스를 신하로 쓰든, 위징(魏徵·당태종에게 직언했던 충신)을 쓰든 이는 전적으로 주군(主君)의 몫이다. 다만 첫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이 “기업에서 ‘내맘대로 인사’를 했던 CEO 출신 대통령은 인사를 못 한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한 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가기로 최종 결정했다. 또 사저 인근 경호시설은 예산을 책정해 국회에 청구하지 않고 국회가 결정해주는 예산에 맞춰 설치하기로 했다.임태희 대통령실장은 30일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초구 내곡동 사저 터 매입 과정에서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 드린 만큼 경호시설 예산은 국회의 판단과 처분에 따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31일 새해 청와대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이 같은 뜻을 밝힐 계획이다.내곡동 사저 건립 방안이 백지화되면서 대통령실 경호처가 42억8000만 원에 매입한 땅(2140m²·약 648평)은 용도 폐기돼 국가의 일반 재산이 된다. 관리 주체도 경호처에서 국가 재산 총괄관리부처인 기획재정부로 넘어간다.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와 공동으로 매입한 땅은 가급적 빨리 매각해 지분 비율대로 국가와 시형 씨가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 정부안을 짤 때 최초 계획대로 내곡동에 정착하는 것을 전제로 경호시설 건축비 32억 원을 신청했지만 그 청구 자체를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10·26 선거 결과에 영향을 받은 결정은 아니다. 국민 앞에 낮은 자세로 사저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뜻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운영위에서 내곡동 사저 터와 관련해 각종 의혹이 제기될 경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4일 야권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 의사를 밝혔다.안 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안국동 박 후보의 선거캠프를 전격 방문해 박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멀리서나마 계속 성원하고 있었다. 오늘은 응원하러 왔다”며 “열심히 해서 꼭 원하는 바를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은 응원 메시지를 담은 A4용지 2장 분량의 자필 편지를 박 후보에게 전달했다. 안 원장은 편지에서 55년 전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불씨를 지핀 여성운동가 로자 파크스를 거명하며 “로자 파크스처럼 우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선거는 부자 대 서민, 보수 대 진보와 같은 대결 구도가 아니라 누가 화합을 이끌고 누가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특히 박 후보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많은 사람의 투표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투표율이 60%를 넘었으면 좋겠는데 투표일 아침 기온이 1도로 뚝 떨어진다고 해서 (투표율이) 걱정”이라며 사실상 부동층과 20, 30대 젊은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또 그는 “박 후보가 이겨서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뿌리가 뽑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박 후보 측 송호창 공동 대변인이 전했다.한나라당과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측은 안 원장과 박 후보를 비판하면서 안풍(安風·안철수 바람) 차단에 나섰다. 나 후보 캠프는 즉각 논평을 내고 “(안 원장은) 박원순 후보 뒤에서 상왕(上王)정치라도 하겠다는 오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나 후보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 원장이 등장한 것은 박 후보가 어려워졌음을 자인한 셈”이라며 “남자가 쩨쩨하게 치졸한 선거캠페인을 하지 말라”고 공격했다. 나 후보는 이날 거리 유세에서도 “박 후보가 협찬을 넘어 협박 수준으로 안 원장을 끄집어냈다”고 주장했다.홍준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립대 교수가 특정 정파에 함몰돼 편향된 정치 행위를 하는 건 옳지 않다”며 “교수직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정치를 하려면 교수직을 버리고 정치판에 들어오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구 서구와 경북 칠곡을 거쳐 부산으로 이동하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자들을 만나 안 원장의 박 후보 지원 방문에 대해 “오늘은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만 했다. 박 전 대표는 25일 나 후보의 선거캠프를 방문해 막판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