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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보내는 여름 깃발. 냉면집 깃발이 철을 만난 듯.’(동아일보 1921년 4월 26일) 냉면 좀 안다고 자부했던 이라면 지나치기 어려운 책이다. 물론 그간 ‘정보’에 치중한 관련서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평양냉면을 문학적 문화사적 측면에서 다뤘다. 소문만 들었던, 냉면 노포(老鋪)를 드디어 찾아간 기분이다. 명성만큼 맛도 만족스러울까. 일단 다양한 구색은 갖췄다. 조선 시대부터 최근까지 냉면을 언급한 글을 모아 호기심을 돋운다. ‘길게 뽑은 냉면 가락에 배추김치 곁들인다네’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시를 마주하면 괜스레 흐뭇하다. 일제강점기 성업했다는 냉면 배달을 담은 신문 삽화는 정겹기도 하지. 역시 냉면의 내공은 진득하니 깊다. 하나 이렇게 ‘기획’으로 태어난 책이 지닌 한계도 또렷하다. 잡학사전 이상의 감흥을 전하진 않는다. 하긴 그래서 이런 무더위엔 더 안성맞춤일지도. 갈수록 솟구치는 냉면 값만 야속할 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침잠(沈潛)의 무게란 이런 것일까. ‘나의 우울증을…’은 묵직하다. 쉽사리 평을 내놓기 어렵다. 소설가이자 출판평론가인 저자는 1954년생. 환갑이 넘어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에 평생 사투를 벌인 삶의 여정을 담았다. 그 대상은 바로 ‘우울증’이다. 솔직히 정신질환을 두고 싸웠단 표현을 쓰는 게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터. 저자 역시 그런 시선을 잘 안다. 특히나 그처럼 집안이 유복하면 “배부른 푸념”으로 여겨지는 것도 익숙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충동. 저자에게 삶이란 지옥 같은 고통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우울증은 전 세계 3억5000만 명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이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600만 명이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었고 2014년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망자 수가 4만 명을 넘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 슬픔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길 원치 않는 듯하다.” ‘나의 우울증을…’은 모두보단 누군가를 위한 글이다. 어차피 겪어보지 못한 이에겐 신세 한탄으로 들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거나 마음의 상처가 짙은 이에겐 위안이 되리니. “내 우울증에 대해 승리를 선포하지는 못하지만 밀쳐내고 피하며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으며, 우울증의 반대는 상상도 못 할 행복이 아닌 대체적인 자족감”이라며 서로를 다독인다. 다소 현란하긴 하나, 새겨둘 만한 값진 문장이 빼곡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꾀는 줄 알면서도 꾀였다. 왜 아니겠는가. 이 날씨에 ‘폭염 사회’라니. 못 본 척하는 게 더 이상하다. 요맘때 이 책을 낸 의도야 뻔하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다. 부제처럼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는 이제 우리에게도 절체절명의 화두니까. 흔쾌히 유혹당하련다. 미리 말하면, 이 책은 초판이 2002년에 나왔다. 2015년 나온 재판을 번역했지만, 새로 실린 서문 말곤 ‘옛날 일’이란 소리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521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뤘으니 자그마치 23년 전. 그런데 ‘지금, 여기’를 마주한 듯한 이 기시감은 뭘까. 뉴욕대 교수인 저자는 재난이 발생했던 시카고 출신. 자기 고향에서 벌어진 사태를 끈질기고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사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폭염을 사회학 측면에서 분석한다는 건 여간해선 엄두가 나지 않을 일. 자연재해인 데다 지진이나 태풍처럼 극적이질 않다 보니 더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 때문에라도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autopsy)”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세월 동안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기상이변은 폭염이었다. 폭염은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에서 기후변화는 연구와 대중의 참여가 집중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는 점이다.” 얼핏 자연재해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숱하게 겪어 봤지 않나. 대부분 천재(天災)는 인재(人災) 탓에 호미면 됐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당시 시카고 역시 그랬다.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이상고온이지만, 그걸 최소화하기는커녕 기름을 끼얹은 건 인간의 우매함이었다. 저자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점잖게 짚었지만. 물론 폭염이 참화로 이어진 데는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켰다. 희생자들이 대다수 빈곤층 홀몸노인이었던 건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시카고의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둘 다 못사는 데다 바로 길 건너 동네인데도 사망률이 크게 차이 났다. 노스론데일은 경제가 낙후되며 많은 주민이 떠난 뒤 범죄자의 터전이 됐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밖으로 나오질 않고 고립돼 버렸다. 반면 사우스론데일은 가난해도 인구가 밀집돼 여전히 거리에 은행이나 가게가 성행했다. 비상사태가 벌어져도 도움을 구할 지역 커뮤니티 덕분에 최악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정 없는 이웃들 문제라고 봐선 곤란하다. 이 지경이 된 건 위기상황에 대한 시청(혹은 정부)의 대응전략이 부재했고, 응급구조 시스템의 원활한 운용이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수록 지자체도 기업처럼 ‘효율성’만 추구하는 경향과 자극적인 사건만 쫓는 언론의 생리도 한몫했다. 나아가 당시 시카고 시장은 약점을 감추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시정이란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더라도 묵묵히 도시 저변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폭염 사회’는 읽을수록 후덥지근해지는 책이다. 아, 저자의 분석은 선명하고 깔끔하다. 곳곳에서 겹쳐지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단 얘기다. 남의 나라도 엇비슷하게 후졌구나 하며 위안 삼기엔 입맛이 씁쓸하다. 해마다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는데, ‘인재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는지. 불현듯 제목이 ‘폭염 지옥’으로 읽힌다. 원제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꾀는 줄 알면서도 꾀였다. 왜 아니겠는가. 이 날씨에 ‘폭염 사회’라니. 못 본 척 하는 게 더 이상하다. 요맘때 이 책을 낸 의도야 뻔하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다. 부제처럼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는 이제 우리에게도 절체절명의 화두니까. 흔쾌히 유혹 당하련다. 미리 말하면, 이 책은 초판이 2002년에 나왔다. 2015년 나온 재판을 번역했지만, 새로 실린 서문 말곤 ‘옛날 일’이란 소리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521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뤘으니 자그마치 23년 전. 그런데 ‘지금, 여기’를 마주한 듯한 이 기시감은 뭘까. 뉴욕대 교수인 저자는 재난이 발생했던 시카고 출신. 자기 고향에서 벌어진 사태를 끈질기고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사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폭염을 사회학 측면에서 분석한다는 건 여간해선 엄두가 나지 않을 일. 자연재해인데다 지진이나 태풍처럼 극적이질 않다보니 더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 때문에라도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autopsy)”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세월 동안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기상이변은 폭염이었다. 폭염은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에서 기후변화는 연구와 대중의 참여가 집중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는 점이다.” 얼핏 자연재해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숱하게 겪어봤지 않나. 대부분 천재(天災)는 인재(人災) 탓에 호미면 됐을 일을 서까래로도 막지 못한다. 당시 시카고 역시 그랬다.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이상고온이지만, 그걸 최소화는커녕 기름을 끼얹은 건 인간의 우매함이었다. 저자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점잖게 짚었지만. 물론 폭염이 참화로 이어진 데는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켰다. 희생자들이 대다수 빈곤층 독거노인이었던 건 누구나 예상가능하다. 하지만 시카고의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둘 다 못 사는데다 바로 길 건너 동네인데도 사망률이 크게 차이 났다. 노스론데일은 경제가 낙후되며 많은 주민이 떠난 뒤 범죄자의 터전이 됐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밖으로 나오질 않고 고립돼 버렸다. 반면 사우스론데일은 가난해도 인구가 밀집돼 여전히 거리에 은행이나 가게가 성행했다. 비상사태가 벌어져도 도움을 구할 지역 커뮤니티 덕분에 최악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정 없는 이웃들 문제라고 봐선 곤란하다. 이 지경이 된 건 위기상황에 대한 시청(혹은 정부)의 대응전략이 부재했고, 응급구조시스템의 원활한 운용이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수록 지방자치단체도 기업처럼 ‘효율성’만 추구하는 경향과 자극적인 사건만 쫓는 언론의 생리도 한몫했다. 나아가 당시 시카고 시장은 약점을 감추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시정이란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더라도 묵묵히 도시 저변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폭염 사회’는 읽을수록 후덥지근해지는 책이다. 아, 저자의 분석은 선명하고 깔끔하다. 곳곳에서 겹쳐지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단 얘기다. 남의 나라도 엇비슷하게 후졌구나하며 위안삼기엔 입맛이 씁쓸하다. 해마다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는데, ‘인재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는지. 불현듯 제목이 ‘폭염 지옥’으로 읽힌다. 원제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출판사 편집인 수전은 짜증이 났다. 인기 추리소설 작가 앨런 콘웨이의 원고 때문이다. ‘탐정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최종판을 받았건만, 마지막 장이 없는 게 아닌가. 뭔가 착오가 생겼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뉴스에서 앨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속보가 쏟아진다. 어찌 됐건 수전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원고를 찾으려 동분서주. 그런데 앨런의 죽음에 께름칙한 구석이 있음을 눈치챈다. 심지어 소설이 현실과 무척 닮았다는 것도 깨닫는데…. 제목에서 짐작 가듯, 이 책은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살인 사건과 탐정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액자소설 형태를 취했는데, 퓐트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은 1950년대 영국이 무대. 수전이 원고의 누락분을 찾는 얘기는 2015년이 배경이다. 원래 소설가는 주위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은 거의 앨런의 지인들을 빼닮았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이 얼기설기 얽히며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렇다고 ‘맥파이…’가 굉장히 복잡한 소설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쪽에 가깝다. 영국표 정통 추리물이라고나 할까. 액자소설의 안팎 분량이 거의 반반인데, 퓐트 탐정 얘기는 애거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을 읽는 기분도 든다. 끝내 찾아든 마지막 원고엔, 익숙하지만 기다려지는 ‘범인은 바로 당신!’ 장면도 나오고. 원래 추리나 스릴러, 호러물은 여름철 단골손님이다. 올해는 워낙 무더워서인지 특히 이런 장르의 소설이 확 늘었다. 그런데 ‘맥파이…’는 엄청 새롭거나 충격적인 스토리는 아니다. 어느 외신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전율을 일으킨다”고 썼던데, 솔직히 그 정도까진 아니다. 하지만 간만에 클래식이 지닌 풍미를 맛보려는 이에겐 딱 맞는 메뉴 선택이리니. 그래, 아무리 끈끈해도 가끔 정찬이 당길 때가 있지 않나. ‘추리’라 쓰고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실은 이 책은 그다지 설명할 게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뭐라 보탤 말이 굳이 필요 없다. 표지부터 포근한 기운이 물씬한 ‘나무가…’는 그 기대에서 반 뼘도 벗어나질 않는다. 아마 저자 설명만 봐도 다들 촉이 오리라.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골에서 나고 자라 산림학 전공. 목수였던 아내의 할아버지에게 얻은 교훈과 자신이 평생 산림관리사로 일하며 얻은 경험을 담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울창한 숲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온다. 그렇다고 그저 잔잔하지만 않은 게 또 매력적이다. 원래 현지에선 20년 전 나왔다는데 아홉 번 수정을 거쳤고, 요즘 시대에 맞게 크게 개정한 최신판을 이번에 국내에 출간했단다. 그 속엔 나무와 목재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도 쏠쏠하다. 꽤 전문적인 구석이 많은데도, 이렇듯 편안한 게 신기할 정도. 저자는 “세계적으로 선인들의 지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며 “그 지혜를 얻는 길이 바로 나무와 자연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권한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어도 곁에 두고 봄 직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참, 책꽂이를 서성거렸다. 몇 번의 이사. 여러 책을 떠나보냈다. 그 와중에 남아준 이들. 애정이라 부르며 집착으로 붙잡았다. 귀퉁이에서 곰삭은 먼지의 때깔. 겨우 찾아든 옛 친구는 무표정했다. 그래도, ‘곽재구의 포구기행’(열림원)은 다시 곁을 내줬다. 16년. 닳아빠진 세월은 찰나의 영겁. 2002년 우린 어디서 무얼 했던가. 몇 줄로 채워질 추억에 섞이지 않는 마음.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법처럼. 책을 펼치면 몽실몽실 빚어지는 흑백사진. 조심스레 양손에 담아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을 맞아들였다. 시인은 왜 다시 포구로 돌아온 걸까. 전화를 걸어 우문(愚問)을 던지려다 꾹 눌렀다. 답은 책에서 구해야지. 작가는 글로 전했건만. 지름길만 찾는 심보 같으니. 길이 어긋나도, 혹은 가로막혀도. 목적지는 각자의 몫이다. “생의 어느 신 하나는 내게 이 포구마을의 불빛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시간들 속에서 나는 위로받고, 갈망뿐인 나의 시가 더 좋은 인간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은 물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 하늘과 땅이 함께 아름다운 색 도화지가 됩니다. 다시 새로운 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없이 평범하고 누추하면서도 꿈이 있는 새로운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를 따라 떠난 두 번째 여행은 옹골지다. 뭉툭한 현실에서 길어 올린 시어(詩語)가 메마른 목젖을 두들긴다. 고맙고 미안하다. 주머니 털어 시집 한 권 샀던 게 언제였던가. 남 탓, 세상 탓하며 바스러진 기억. 부끄러워 성마르다 짐짓 외면한 채 잊어버린. 매몰찼던 우리네를 포구는 나지막이 불러 세웠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쓰노라고. 당신과 나의 노래를. 물론 전작과 신작은 ‘다르다’. 문장은 간명한데도 깊어졌다. 선창을 때리던 파도는 잦아들었건만, 발목을 적시는 물살은 더 찐득해졌다. 외로운 절창이 여백마저 채우던 지난날. 오늘은 마주 잡은 합창이 굳이 공간을 비워낸다. 후회건 희망이건 상념이건 다짐이건. 퍼 담든지 게워 내든지 알아서 할밖에. “망상 해변으로 가는 동안 망상이란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헛된 꿈(妄想)이라면 충격일 것이다. 이정표에서 망상(望祥)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삶은 여전히 꿈꾸는 자의 것이며 쓸쓸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기약하는 이의 것이 아니겠는가. 동해의 파도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시인은 여전히, 때로는 아프다. 팽목항에서 삼킨 울음. 학동에서 짊어진 서글픔. 그래도 그는 다독인다. 서럽다 읊조린들 붙잡지 못하는 이별. 잊지 말되 걸음을 옮기자고. 시계가 만든 인연의 씨줄날줄을 고르게 펴가며. 당신이 찾아와서, 만나서, 알아봐서 참 좋았단 기척을 보낸다. 어쩌면 뒷목을 움켜쥐던 열정은 다시 오지 않겠지. 처연했던 생채기도 이미 포구 멀리 휩쓸렸을 테니. 그런들 바다가 아닐까. 시가 아닐까. 우리가 아닐까. 만선의 뿌듯함은 지워졌을지언정. 노를 젓는 삶은, 지난해도 기대가 영근다. 시인이 발걸음마다 반겼던 붉은 우체통처럼. “우체통은 종일 그 자리에 서있을 것이고 노을은 하루에 한 번 꼭꼭 그 우체통을 쓰다듬고 지나갈 것”이기에. 우린 또, 길 떠날 채비를 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설이다. 실은 의아했다. 무대는 20세기 초 러시아. 시류에 영합하지 못한 구시대 백작 얘기가 왜 이다지 화제였단 말인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추천 도서’ ‘뉴욕타임스 58주 베스트셀러’…. 숱한 월계관들이 거품은 아닐지 흘겨보았다. 꽤 두툼하지만 스케일도 그리 크진 않다. 오로지 백작, 알렉산드로 로스토프의 일생이다. 끝내주던 귀족으로 누리고 살다가, 혁명 뒤 기거하던 호텔에서 평생 머물라는 ‘종신 연금 형(刑)’을 받는다. ‘도시의 로빈슨 크루소’까진 아니지만…. 2004년 영화 ‘터미널’의 빅터(톰 행크스)랑 비슷한 처지가 된다. 호텔이란 섬에 갇힌 백작은 그래도 의연하다. 스위트룸에선 쫓겨났지만, 일단 꿍쳐둔 돈푼이 꽤 있으니까. 게다가 고결한 품성과 박식함도 갖춘 편이라 사람도 잘 사귀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예속됐을지언정, 우정과 사랑을 만나는 인생은 여기서도 굴러간다. 다시 말하지만, ‘모스크바의 신사’는 기품 있다. 사극(史劇)이라 그런지 클래식의 향취가 찌릿하다. 20년 동안 투자전문가로 일했다는 양반이 어찌 이리 글이 좋을꼬. 2013년 ‘우아한 연인’이 ‘원 히트 원더’가 아니었음을 또 한 번 홈런으로 증명했다. 게다가 고전의 외피를 썼지만, 굉장히 쫀쫀하다. 20세기 옛날영화가 아니라, 21세기에 새로 만든 싱싱한 역사물이다. 딱히 추리나 스릴러 같은 장르적 혼용도 없건만, 느슨한 구석이 없다. 백작 등등이 야밤에 몰래 부야베스(프랑스식 스튜)를 만들어 먹는 장면처럼 오랫동안 잔상에 남을 만한 대목도 잦다. 하지만 ‘선’이 뚜렷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굳이 짚자면 ‘백인(白人)의 소설’이랄까. 뭔가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분위기도 있고. 현지에선 반응이 엄청났다는데, 좀 살 만한 이들이 좋아했겠지 싶은 근거 없는 추측을 던져본다. 너무너무 재밌긴 한데, 괜히 삐죽거리게 된다. 잘 읽고 나선 웬 심통이람. 역시 신사가 되긴 글렀나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도 사랑하는 세계적 장난감 ‘레고(LEGO)’로 만든 환상의 세계가 서울에 찾아온다. 동아일보와 ㈜자하가 주최하는 전시 ‘아이 러브 레고’의 월드투어 첫 번째 전시가 20일부터 서울 강서구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문화홀에서 열린다. ‘아이 러브 레고’는 덴마크 레고그룹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레고 타이틀을 허락한 전시회다.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아이 러브 레고’는 들어간 레고 조각이 총 101만6000여 개에 이른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고대 중세의 로마부터 현대의 도시, 먼 미래의 우주 세계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제작 기간만 몇 년씩 걸린 작품이 많은데, 그 압도적 위용은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섹션은 ‘그랜드 시티’다. 현대 도시의 이모저모를 재현한 이 작품은 2010년부터 제작해 지금까지 28만 개의 레고 조각이 들어갔으며, 여전히 계속 확장하고 있다. 높다란 초고층 빌딩부터 움직이는 열차와 행인까지 세세하게 만들었다. 전시 측은 “다양한 도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레고 색상만 1000가지나 된다”고 설명했다. 뭣보다 로마브릭은 이번 서울 전시를 기념해 특별 신작도 선보인다. 바로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고심한 끝에 5000여 개의 조각으로 1개월 이상 작업해 숭례문을 만들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팬이라면 3년 동안 제작해 완성한 ‘독수리 요새’도 꼭 봐야 할 작품.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하는 아린 가문의 성을 형상화한 것으로, 2016년 유럽 토스카나 만화축제에 첫선을 보여 약 30만 명이 관람하는 기록을 세웠다. 모형인데도 성 높이가 1.8m에 이르며 들어간 레고 조각은 약 33만 개다. 이 밖에도 고대 로마의 모습을 형상화한 ‘네르바 광장’과 카리브해 해적의 모습을 담은 ‘해적선’, 제작 기간만 4년이 걸렸다는 ‘중세시대 성’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전시 배경을 알고 보면 관람이 더 흥미롭다. 레고는 덴마크 장난감인데, 전시 부제가 ‘From Italy To Seoul’이다. 실은 이번 전시를 선보이는 이들이 이탈리아 레고 사용자 모임인 ‘로마브릭(Romabrick)’이기 때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레고 사용자 모임 가운데 하나인 로마브릭은 주로 이탈리아 로마 출신들로 레고그룹의 인증을 받아 직접 레고 조각을 제작하기도 한다. 로마브릭 측은 “참여 멤버 중에는 실제 건축가와 엔지니어도 여럿 있어 더욱 사실감을 높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들이 선보이는 ‘아이 러브 레고’ 전시는 2016년 말 처음 이탈리아에서 소개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관람객이 50만 명 이상 다녀갔다. 전시 관계자는 “이런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월드투어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 도시로 서울에 오게 됐다”며 “현지에서는 아동, 청소년만큼 많은 성인 관람객이 몰려들어 높은 전시 수준에 찬사를 보냈다”고 귀띔했다. 12월 30일까지. 9000∼1만5000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직장인 신혜영 씨(24)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든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그가 손에 든 건 스마트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삼성 갤럭시 노트 S펜으로 그린 그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아 더욱 자신을 갖게 됐다. 그는 “S펜으로 그린 그림을 업로드하는 모바일 앱 ‘펜업(PENUP)’에 올리면 다양한 평가도 받고, 수준 놓은 아티스트의 테크닉도 배울 수 있어 더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미술이나 문화재 등 순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첨단기술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문화 향유의 트렌드가 번지고 있다. 바뀐 모바일 환경 덕에 그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는 데다 실물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큼 생생한 화질의 관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지난달 구글이 공개한 사이트 ‘코리안 헤리티지’가 대표적 사례. 온라인 예술작품 전시 플랫폼인 ‘구글 아트 앤드 컬처’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무형유산원 등과 협력해 조선 왕실 유물 2500여 점과 민속 유물 2만8000여 점을 제공한다. 구글이 자체 개발한 ‘아트 카메라’로 10억 픽셀 이상의 고화질로 피사체를 정밀하게 담아냈다. 심지어 직접 육안으로 봐도 분별이 어려운 붓 터치나 질감까지도 즐길 수 있다. 자그마한 휴대전화 화면으로 성이 차지 않을 경우에는 TV로 연결해 볼 수도 있다. 스마트TV로 화면을 송출할 수 있는 ‘크롬 캐스트’를 설치하면 집 거실의 대형 화면으로 예술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프 스타일 TV ‘더프레임’은 55∼65인치 초대형 화면을 통해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집 안의 미술관’으로 불린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작품의 명암과 색감을 자동 조정하는 ’조도 센서‘까지 탑재돼 현장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기분을 전해준다.이미 더프레임은 미술계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현대미술축제 ‘유니온 아트페어 2017’에서는 전시작 일부를 이 새로운 TV로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으로 관심을 끌었다. 구본창 박형근 이완 등 국내 유명 아티스트 19명의 작품을 더프레임을 통해 선보였는데 어떤 이질감도 없었다. 이완 작가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방식에 더프레임은 좋은 표현 매체가 되어줬다. 기술의 발전은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와 역량을 준다”고 기대했다. 예술과 더프레임의 조우는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아쿠아리오 치비코’에서 열려 현지에서 관심이 드높았다. 5월에는 시민들이 S펜으로 직접 그린 ‘내 아이의 방에 걸고 싶은 그림’을 공모했는데 1846점의 응모작이 쏟아졌다. 입상작은 더프레임의 ‘아트 스토어’에 올려져 TV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더프레임은 TV가 꺼져 있을 때는 내장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트 스토어’에 올려져 있는 그림을 전시해 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걸작 명화는 물론이고 가족사진도 띄울 수 있어 집 안 거실에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던져준다. 지난해 전시회에서 대표작 ‘백자’를 선보였던 구본창 작가는 “이런 시도는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좋은 도전이다. 일상의 순간이 아름다워지면 그만큼 예술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진다. 더프레임이 생활 속에서 예술의 영감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미국(美國)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미친’ 나라였나 보다. 소설가이자 언론가,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다. 초기 디즈니랜드 한 파트의 이름이었던 판타지랜드. 아마도 그건 이상향이나 행복의 나라를 일컫는 뜻이었을 게다. 여기선 ‘환상에 빠진’ ‘환상에 사로잡힌’ 정도로 정의된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읽어보면 거의 전자로 기울지만). 자국 역사를 이리도 매몰차게 ‘엿 먹이는’ 저자의 속내는 뭘까. 대략 500년쯤 된 시간 동안 미국은 참 다사다난했던 나라다. 16세기 금과 신세계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오면서부터 숱한 역경과 모험을 겪었다. 안팎으로 전쟁과 갈등도 꽤나 치렀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월등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근데 이게 결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지적 자유라는 위대한 계몽주의적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와 실험되는 동안, 모든 개인은 뭐가 됐든 각자 바라는 대로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처음부터 영웅적인 꿈, 때로는 영웅적인 환상과 연결됐다. … 미국인들은 온갖 종류의 신비한 생각 및 무차별적인 상대주의와 더불어 우리를 위로하거나 흥분시키거나 공포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공상들과 기발한 설명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왔다.” 특히 이 땅에서 천변만화한 종교(특히 개신교)는 이런 비뚤어진 환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주범이다. 제도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건 좋았는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봤다. 자유에 방점을 찍은 나머지, 맘대로 해석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보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진실이고 정답인’ 이상한 상대주의가 뿌리내려 버렸다. 그런 사상의 자양분은 결국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제1의 가치로 작용한다. “어떤 상상적 이론이 흥미진진하고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없다면, 미국인인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도 그런 태도는 변치 않는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진화생물학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외계인의 존재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믿는 세력이 미국에선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은 이를 반증한다. ‘판타지랜드’는 굉장히 재밌다. 솔직히 시간 제약 탓에 서평을 쓸 땐 빨리빨리 읽는 게 미덕인데, 한 글자도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정독하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이나 올리버 색스가 떠오를 정도로 ‘글발’도 끝내준다. 다만 목적의식 탓인지 백인의 역사에만 치중해, 유색인종을 곁다리로 만들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읽고 나니 뇌 한쪽에서 이런 ‘의심’도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 ‘까려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미국 지성인들에게 작금의 현실은 참혹할 정도로 개탄스러웠던 걸까. 이 방대한 자료를 엮어낸 재주는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탄스럽지만, 왠지 입맛에 맞게 재단한 의도도 보인다. 하나 더. 미국 얘긴데 자꾸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인지. 괜히 찔려서 머리만 긁적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美國)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미친’ 나라였나 보다. 소설가이자 언론가,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다. 초기 디즈니랜드 한 파트의 이름이었던 판타지랜드. 아마도 그건 이상향이나 행복의 나라를 일컫는 뜻이었을 게다. 여기선 ‘환상에 빠진’ ‘환상에 사로잡힌’ 정도로 정의된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읽어보면 거의 전자로 기울지만). 자국 역사를 이리도 매몰차게 ‘엿 먹이는’ 저자의 속내는 뭘까. 대략 500년쯤 된 시간 동안 미국은 참 다사다난했던 나라다. 16세기 금과 신세계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오면서부터 숱한 역경과 모험을 겪었다. 안팎으로 전쟁과 갈등도 꽤나 치렀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월등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근데 이게 결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지적 자유라는 위대한 계몽주의적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와 실험되는 동안, 모든 개인은 뭐가 됐든 각자 바라는 대로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처음부터 영웅적인 꿈, 때로는 영웅적인 환상과 연결됐다. … 미국인들은 온갖 종류의 신비한 생각 및 무차별적인 상대주의와 더불어 우리를 위로하거나 흥분시키거나 공포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공상들과 기발한 설명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왔다.” 특히 이 땅에서 천변만화한 종교(특히 개신교)는 이런 비뚤어진 환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주범이다. 제도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건 좋았는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봤다. 자유에 방점을 찍은 나머지, 맘대로 해석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보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진실이고 정답인’ 이상한 상대주의가 뿌리내려 버렸다. 그런 사상의 자양분은 결국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제1의 가치로 작용한다. “어떤 상상적 이론이 흥미진진하고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없다면, 미국인인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도 그런 태도는 변치 않는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진화생물학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외계인의 존재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믿는 세력이 미국에선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를 반증한다. ‘판타지랜드’는 굉장히 재밌다. 솔직히 시간 제약 탓에 서평을 쓸 땐 빨리빨리 읽는 게 미덕인데, 한 글자도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정독하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이나 올리버 색스가 떠오를 정도로 ‘글발’도 끝내준다. 다만 목적의식 탓인지 백인의 역사에만 치중해, 유색인종을 곁다리로 만들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읽고나니 뇌 한쪽에서 이런 ‘의심’도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 ‘까려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미국 지성인들에게 작금의 현실은 참혹할 정도로 개탄스러웠던 걸까. 이 방대한 자료를 엮어낸 재주는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탄스럽지만, 왠지 입맛에 맞게 재단한 의도도 보인다. 하나 더. 미국 얘긴데 자꾸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인지. 괜히 찔려서 머리만 긁적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 천주교의 성체(聖體)를 훼손한 사진이 10일 올라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천주교에서 성체는 빵의 형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체를 신성시하며 이를 훼손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천주교 측은 11일 “공개적 모독 행위는 절대 묵과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10일 ‘워마드’ 게시판에는 ‘예수 ××× 불태웠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익명의 글쓴이가 자신이 성당에서 받아온 성체에 빨간 펜으로 예수를 모독하는 욕설을 쓴 뒤 이를 불로 태워 훼손한 사진을 게시한 것이다. 해당 글에는 천주교가 낙태죄 폐지와 여성인권에 반대한다며 성체를 훼손한 이유가 적혀 있다. 글쓴이는 “그냥 밀가루 구워서 만든 떡인데 천주교에서는 예수××의 몸이라고 ××떨고 신성시한다. 천주교는 지금도 여자는 사제도 못 하게 하고 낙태죄 폐지를 절대 안 된다고 여성인권 정책마다 ××× 떠는데 천주교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라고 적었다. 또 “밀가루를 구워 만든 과자를 두고 예수라고 말하는 게 황당하다. 난 오로지 성별이 여자인 신만 믿는다”고 썼다. 게시글이 온라인에 급속히 퍼지면서 천주교를 모독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체 훼손 글과 사진을 올린 사람을 처벌하고 워마드 사이트를 폐쇄하라고 촉구하는 글이 수십 건 게재됐다. 한 청원자는 “이번 사건은 일반 국내 사건이 아니라 국제 이슈가 될 문제”라며 “성체를 훼손한 과정과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야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11일 ‘워마드’에는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도 또 다른 성체 훼손 글이 올라왔다. 피 묻힌 성체를 유리컵에 담근 사진이다. 글쓴이는 예수를 가리켜 ‘꽃뱀 같은 ×’이라고 적고 “여기저기 몸 팔고 다니는 국제 ××”라고 비난했다. 천주교 측은 ‘워마드’의 성체 훼손 행위를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성체 모독과 훼손 사건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발표문에서 “이는 천주교 신앙의 핵심 교리에 맞서는 것이며 천주교 신자에 대한 모독 행위이며 개인의 일탈이라 할지라도 종교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온 모든 종교인에게 충격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또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일은 자유롭게 허용되지만, 보편적 상식과 공동선에 어긋나는 사회악이라면 마땅히 비판받고 법적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 한국 사회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정양환 기자}
야호, 이럴 줄 알았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며 쾌재를 불렀다. 잘나가는 ×들. 그동안 배 아팠다. 딱히 대단치도 않아 보이건만. 근데 유명 경제학자가 그게 ‘운발’이라 해주다니. 어찌 아니 기쁠쏘냐. 게다가 미 코넬대 석좌교수인 이 양반, 거물 아닌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와 공동 집필한 ‘경제학’은 낯설다 치자. 2000년대 후반 국내에도 출간됐던 ‘승자독식사회’ ‘이코노믹 씽킹’은 꽤 뜨거웠다. 식견 높은 학자가 글도 어찌나 재미난지. 저자가 건네는 위로는 대략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실력주의’ 신화가 존재한다.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만들었다는 이 용어는 성공은 오로지 당사자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뤘다고 믿는 걸 일컫는다. 그런데 여기에 슬쩍 태클을 건다. 정말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이뤄진 거냐고. ‘실력과 노력으로…’는 거기에 상당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도 그렇다. 물론 그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1960년대 귀하디귀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가 있는 사립학교를 안 다녔다면 그런 성공이 가당키나 했을까. 심지어 게이츠는 처음엔 IBM의 MS-DOS 개발 의뢰를 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행운이 성과에 작은 영향만을 미치는데도 운이 좋지 않고서는 경쟁자가 많은 상황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행운은 필연적으로 임의성을 띠기 때문에 가장 능력 있는 경쟁자라고 해서 남보다 운까지 좋을 수는 없다. 둘째, 경쟁자 수가 많으면 재능 수준이 최고에 가까운 사람 또한 많기 마련이고, 그들 가운데 적어도 누군가는 운마저 굉장히 좋을 수 있다.” 한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보통 반대로 생각한다. 자신의 실패는 운이 나빴다고 “기꺼이 그리고 재빨리” 받아들인다. 반면 성공은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흔하디흔한 ‘내로남불’이랄까. 그러다 보니 사회가 가져다준 ‘복’에 감사할 줄 모른다.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이바지할 수 있어야 세상이 좀 더 윤택해진다. 이 책은 읽다 보면 다소 당황스럽다. 편한 술자리인 줄 알고 반바지 차림으로 갔더니, 정장을 갖춘 공식 만찬이랄까. 슬렁슬렁 드러누워 읽다가 쭈뼛쭈뼛 자세를 고쳐 앉는다. 심지어 뒤로 갈수록 만찬마저도 아닌 학술 포럼이었다. 스포일러 하고 싶진 않지만, ‘누진소득세’ 얘기까지 나올 땐 어쭙잖게 피라미드 조직에 끌려온 기분이다. 그래도 이 피라미드, 굉장히 설득력이 좋긴 하다. ‘자석 요’를 수십 장 사들고 나오게 생겼다. 중언부언이 있긴 한데, 그게 세뇌를 시킨다고나 할까. 특히 “행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금언은 새겨둘 만하다. 다만 괜스레 의심도 든다. 저자는 정말 이런 이상사회 도래를 확신하는 건가. 글은 명불허전인데, 뭔가 마지막 카드는 감춰놓은 듯한 이 찝찝함은 왜일까. 원제 ‘Success and Luck’(2016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야호, 이럴 줄 알았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며 쾌재를 불렀다. 잘 나가는 X들. 그 동안 배 아팠다. 딱히 대단치도 않아 보이건만. 근데 유명 경제학자가 그게 ‘운 빨’이라 해주다니. 어찌 아니 기쁠쏘냐. 게다가 미 코넬대 석좌교수인 이 양반, 거물 아닌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와 공동 집필한 ‘경제학’은 낯설다 치자. 2000년대 후반 국내에도 출간됐던 ‘승자독식사회’ ‘이코노미 씽킹’은 꽤 뜨거웠다. 식견 높은 학자가 글도 어찌나 재미난 지. 저자가 건네는 위로는 대략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실력주의’ 신화가 존재한다.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만들었다는 이 용어는 성공은 오로지 당사자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뤘다고 믿는 걸 일컫는다. 그런데 여기에 슬쩍 태클을 건다. 정말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이뤄진 거냐고. ‘실력과 노력으로…’는 거기에 상당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도 그렇다. 물론 그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1960년대 귀하디귀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가 있는 사립학교를 안 다녔다면 그런 성공이 가당키나 했을까. 심지어 게이츠는 처음엔 IBM의 MS-DOS 개발 의뢰를 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행운이 성과에 작은 영향만을 미치는데도 운이 좋지 않고서는 경쟁자가 많은 상황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행운은 필연적으로 임의성을 띠기 때문에 가장 능력 있는 경쟁자라고 해서 남보다 운까지 좋을 수는 없다. 둘째, 경쟁자 수가 많으면 재능 수준이 최고에 가까운 사람 또한 많기 마련이고, 그들 가운데 적어도 누군가는 운마저 굉장히 좋을 수 있다.” 한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보통 반대로 생각한다. 자신의 실패는 운이 나빴다고 “기꺼이 그리고 재빨리” 받아들인다. 반면 성공은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흔하디흔한 ‘내로남불’이랄까. 그러다보니 사회가 가져다준 ‘복’에 감사할 줄 모른다.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이바지할 수 있어야 세상이 좀더 윤택해진다. 이 책은 읽다보면 다소 당황스럽다. 편한 술자리인 줄 알고 반바지 차림으로 갔더니, 정장을 갖춘 공식만찬이랄까. 슬렁슬렁 드러누워 읽다가 쭈뼛쭈뼛 자세를 고쳐 앉는다. 심지어 뒤로 갈수록 만찬마저도 아닌 학술 포럼이었다. 스포일러하고 싶진 않지만, ‘누진소득세’ 얘기까지 나올 땐 어쭙잖게 피라미드 조직에 끌려온 기분이다. 그래도, 이 피라미드 굉장히 설득력이 좋긴 하다. ‘자석 요’를 수십 장 사들고 나오게 생겼다. 중언부언이 있긴 한데, 그게 세뇌를 시킨다고나 할까. 특히 “행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금언은 새겨둘 만하다. 다만 괜스레 의심도 든다. 저자는 정말 이런 이상사회 도래를 확신하는 건가. 글은 명불허전인데, 뭔가 마지막 카드는 감춰놓은 듯한 이 찝찝함은 왜일까. 원제 ‘Success and Luck.’(2016)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선시대 ‘민화(民畵)’는 대중에게 친숙하게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오해가 많은 그림이죠.”(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정말 그렇다. 미술품이나 문화재에 약한 초심자라도, 왠지 민화라고 하면 마음가짐이 느슨해진다. 살짝 만만하다고나 할까. 당대 일상생활이 깊숙이 투영돼 편안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고. 하지만 그게 민화의 전부일까. 4일부터 열리는 갤러리현대의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은 어쩌면 우리가 민화를 바라보던 선입견을 확실하게 깰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고 교수에 따르면 ‘민화’는 일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처음으로 쓴 용어다. 이전까지 ‘속화(俗畵)’라 뭉뚱그려 불렸던 작품들을 나름 지위를 갖춘 예술장르로 격상시킨 셈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상류층과 서민 할 것 없이 즐기던 광의의 문화가 ‘아마추어 예술’ ‘백성의 그림’이란 이미지로 제한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 선보인 예술품 60여 점을 보면 ‘화조도’나 ‘화훼도’ ‘낙도’ 등 대단히 기품 있는 문화재가 많다. 물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도 더러 있지만, 그 역시 상당한 공력이 느껴진다. 17∼19세기 민화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있지만, 궁중화원의 솜씨임이 분명한 작품도 적지 않다. 고 교수는 “19세기 민화의 주요 고객은 대부분 사대부 양반 상류층으로 왕실과 대갓집을 장식했다”며 “다양한 소재와 표현방식을 자유롭게 오가다 보니 오히려 예술적 성취가 더 높은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민화의 재발견은 해외에서 민화가 새로운 ‘K아트’로 각광받으며 더욱 분위기를 타고 있다. 2016년경부터 미국의 유명 박물관과 언론이 민화에 상당한 관심을 표하기 시작하면서 국내로 그 열기가 옮겨 붙는 모양새. 갤러리 관계자는 “현대회화 못지않은 색감과 화풍이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선보인 현대작인 이돈아 작가의 ‘花鳥圖(화조도) in Space’도 눈길을 끈다. 전통적인 민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해온 이 작가는 디지털영상을 이용해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유명 작곡가 김형석 씨의 음악이 함께해 더욱 인상적이다.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본관&신관, 두가헌갤러리. 5000∼8000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월드컵 덕에 살짝 열기가 식긴 했지만, 올해 한반도 정세는 몇 달 내내 최고의 핫이슈였다. 특히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초대형 이벤트였다. 그걸 지켜보는 속내야 각양각색이었겠지만, 다들 한번쯤 엇비슷한 의문을 품어봤음 직하다. ‘왜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이러지 못했을까.’ 북한학 박사로 동아일보 국제부장과 워싱턴특파원 등을 역임한 저자는 이 궁금증의 실마리를 기존 시각과 다른 방향에서 풀어낸다. 인물보다는 미국이 추구하고 지속한 대북정책의 흐름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거의 입만 열면 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난해 왔다. 하지만 저자가 볼 때 트럼프의 강도 높은 압박은 오바마 정부가 8년 동안 펼친 ‘대북정책 패키지’(흔히 ‘전략적 인내’로 상징되는)의 연장선에서 가능했다. 연속성이란 측면에서 줄기를 파악하면 차이점도 눈에 들어온다. 오바마 정부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대북정책의 비전으로 삼았다면,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에 더 핵심 가치를 두고 있다. 이런 결정적 차이에 국내외 정세 변화까지 감안하면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만큼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짚어볼 수 있다. 이 책은 솔직히 그리 만만하지 않다. 관련 사안을 꾸준히 들여다보지 않은 초심자라면 걸리는 대목도 잦다. 하지만 생생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큰 틀을 조망하려는 저자의 ‘전략적 인내’를 찬찬히 따라가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라틴아메리카의 사진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전시 ‘태평양동맹: 올라! Hola!’가 21일부터 서울 중구 KF갤러리에서 개최됐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주한 콜롬비아대사관이 주최하는 ‘태평양동맹…’은 콜롬비아와 칠레 페루 멕시코 등 중남미 4개국의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는 자리다. 콜롬비아는 세계적 사진작가로 이름 높은 페르난도 카노 부스케츠(62)의 작품 21점을 소개한다. 40년 넘게 조국의 일상 풍경을 흑백으로 담아온 그의 사진은 콜롬비아의 독특한 색채가 물씬 풍긴다. 칠레 출신인 크리스티안 하메트(38)는 미국과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역시 사진을 통해 칠레의 사회상을 조명한 작품들이 많다. 페루는 13명의 현지 작가들이 아마조니아 지역을 조명한 사진을 선보인다. 전통 아마존 마을의 현재를 사진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멕시코는 고대 원주민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고문서(코디세·codice)들을 전시한다. 사료적 가치도 크지만, 당대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 자체가 매우 높다. 8월 17일까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애니메이션, 파인아트(fine art·순수미술)의 무대에 오르다.’ 실은, 젠체하는 선긋기와 상관없이 애니메이션은 이미 ‘차고 넘치게’ 훌륭한 예술이다. 일민미술관이 “애니메이션 장르의 예술적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를 기획한다 했을 때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예술은 굳이 따로 멍석을 깔 필요가 없다. 미술관에 가야 퀄리티가 올라가는 건 결코 아니니까. 하지만 18일 시작한 일민미술관의 기획전 ‘플립북(Flip Book): 21세기 애니메이션의 혁명’을 직접 관람해 보니 편견은 오히려 반대로 작용했음을 깨닫는다. 정형화할 필요가 없는 공간은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서건 그 ‘앙꼬’(혹은 정수)만 만끽하면 되는 것을…. 애니메이션이란 작품 자체는 물론이고, 그 이면의 스토리까지 담아냈기에 이 전시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미술관에서 “본편”이라 부르는 ‘동화제작소’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동화(動(화,획))란 말 그대로 ‘움직임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런 과정에 필요한 스케치와 콘티 북, 스토리보드 등이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일단 출품작들이 쟁쟁하다. 2011년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던 ‘나의 저승길 이야기’로 유명한 루마니아의 안카 다미안과 지난해 부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1917, 붉은 시월’을 연출한 카트린 로테 등 최근 해외에서 눈부신 명성을 쌓아가는 감독들의 작품이 포진했다. 한국의 이성강 오성윤, 일본의 아라이 후유와 사와코 가부키도 요즘 ‘힙한’ 작가들. 개막 전날인 17일 만난 로테 감독은 “애니메이션 역시 세상을 담고 드러내는 표현 수단”이라며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밌는 건, “번외편”이라 부르지만 ‘#해저여행기담_상태 업데이트’도 본편 못지않게 인상 깊다.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에 따르면 우리 땅에 처음으로 소개된 SF소설은 쥘 베른의 19세기 고전 ‘해저 2만 리’다. 1907년 일본에서 유학하던 한국 학생들이 이를 ‘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談)’이란 이름으로 번역해 ‘태극학보’에 그해 3월부터 1908년 5월까지 연재했다. 이 작품은 원본에 충실하기보단 조국의 근대화에 기여하려는 계몽적 목적으로 상당 부분을 번안했다고 한다. 미술관은 예술가 8개 팀에 당시 중단됐던 연재의 ‘이어 쓰기 혹은 다시 쓰기’를 맡겼다. 회화와 설치미술, 애니메이션과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뒷이야기 혹은 전혀 새로운 스토리를 선보인다. 관객들이 박혜수 작가와 함께 직접 슬라이드 필름 위에 그림을 그려보는 하이브리드 참여형 프로그램도 있다. 아울러 미술관이 소장한 1883년판 ‘해저 2만 리’ 원본과 고려대 도서관이 소장한 1908년 ‘태극학보’ 원본도 함께 만날 수 있다. 8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특별프로그램도 푸짐하다. 다음 달엔 아라이, 사와코 감독이 내한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7, 8월엔 이성강 오성윤 감독도 참여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와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등의 강연도 있다. 자세한 일정은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02-2020-2083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위안과 건강, 비움 그리고 꿈과 희망을 찾아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템플스테이를 단지 ‘불교 체험’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예 틀린 소린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다. 2002년을 기점으로 널리 퍼진 템플스테이는 크게 종교와 상관없이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는 길일 뿐이다. 다만 과거엔 휴식이나 수행 위주로 나뉘었다면, 최근엔 △위로 △건강 △비움 △꿈 등 좀 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22일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특별 템플스테이가 열리는 주요 사찰들을 소개한다. △백담사=설악산 대청봉에서 절에 이르기까지 백 개의 못이 있다는 뜻인 백담사. 예로부터 천혜의 수행처로 꼽힌 이곳은 최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거나 삶의 가치관을 세우지 못한 이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로도 이름이 높다. 자신의 희망을 담은 연꽃등을 만들어 ‘탑돌이’에 참여하고, 세상 사물의 울림을 듣는 ‘소리명상’ 등이 특히 인기있다. 요가와 결합한 108배 배우기는 몸 건강도 챙기는 보너스다. △용주사=신라 문성왕 16년(854년) ‘갈양사’로 창건됐다가 병자호란 때 소실된 뒤, 조선 정조가 중창하며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은 용주사. 그래서 용주사는 정조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효심의 본찰’로도 불린다. 이곳 템플스테이는 몸과 마음, 생각을 쉬게 도와주는 데 중점을 둔 게 특색. 대표적인 프로그램 ‘소금만다라’는 색 소금으로 그림을 채워가며 무상함을 깨닫고 집착을 버리는 수행을 체험한다. △보성 대원사=대원사는 절 자체도 훌륭하지만, 국내에선 보기 힘든 티베트박물관이 함께 있기로 유명하다. 올해 4월부터 이 박물관에서 ‘어서와, 저승은 처음이지’ 특별전이 열리는데, 이와 연계한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다. 영화로도 큰 인기를 모은 웹툰 ‘신과 함께’를 소재로 다양한 저승 체험을 마련한 것. ‘지장보살도’ ‘시왕도’ 등을 돌아보며 유서 쓰기와 입관체험 등을 하다 보면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를 얻을 수 있다. △선운사=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창건한 선운사는 절 자체가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곳. 사계절 언제 찾아가도 실망하지 않는다. 템플스테이 역시 유별난데, 사찰이 소장한 전북유형문화재 14호인 ‘선운사 석씨원류’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이 목판에 대한 강연은 물론 부처님오신날 당일에는 경판을 머리에 이고 옮기는 ‘이운식’에도 참여할 수 있다. △법주사=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창건한 법주사의 템플스테이는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희망풍선 띄우기’는 물론 제등행렬, 불꽃놀이, 축하공연을 마련했다. 체험 부스에선 ‘12가지 목걸이 만들기’와 ‘연꽃 컵 등 만들기’ ‘페이스페인팅’도 운영한다. 이 밖에도 ‘나를 깨우는 108배’ ‘스님과의 차담’ 등 체험거리가 풍부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