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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이 20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 정상회담 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백악관은 “정상회담을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면서도 회담 시기를 언급하지 않은 채 “러시아의 침공이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러시아 대통령실 크렘린궁은 21일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혀 온도차를 보였다. 엘리제궁은 20일 성명을 통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에게 미-러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양측이 원칙적으로 수락했다”고 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1시간 45분간, 바이든 대통령과 15분간 통화했다. 이어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탱크가 실제로 굴러가기 전까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면 모든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4일 유럽에서 만나 양국 정상회담의 준비 작업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크렘린궁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언제라도 미-러 정상 간 회담이나 통화가 성사될 수 있다면서도 “회담 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라브로프, 블링컨 장관 수준에서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는 점만 합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의 원인은 친러 반군과 정부군이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정부군이 도발했기 때문”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돈바스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러시아 역시 나토에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이라는 사실상의 (협상) 전제조건을 내건 셈”이라고 프랑스 르몽드는 진단했다. 미 CNN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이 미-러 양측의 “마지막(last minute) 외교”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 정상회담 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다만 미국이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제시해 실제 회담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은 20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에게 미-러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양측이 원칙적으로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때만 회담이 가능하다’고 밝혔다고도 전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1시간 45분, 바이든 대통령과 15분 씩 통화했다. 이어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또한 CNN에 출연해 “탱크가 실제로 굴러가기 전까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면 모든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4일 유럽에서 만나 양국 정상 회담의 준비 작업을 논의하기로 했다. 러시아 대통령실 크렘린궁도 이날 “푸틴 대통령이 외교적 해결 방안의 필요성에 동의했다”며 회담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날 마크롱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의 원인은 친러 반군과 정부군이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에서 정부군이 도발했기 때문”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돈바스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러시아 역시 나토에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이라는 사실상의 (협상) 전제 조건을 내건 셈이라고 프랑스 르몽드는 진단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및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라는 러시아의 기존 요구도 미국과 서방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회담 성사에 상당한 장애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러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와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모든 증거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의도가 분명함을 시사한다”며 이번 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이 양측의 “마지막(last-minute) 외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반군 세력인 자칭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이 20일(현지 시간) “정부군의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등 돈바스 교전이 격화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쟁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 하원의장이 19일 “(돈바스) 시민들의 생명에 위협이 있다면 이들을 보호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언급한 입장”이라고 말한 지 하루 만에 민간인 사망 주장이 나온 것. 러시아 정부는 즉각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이를 침공을 정당화할 이유로 내세울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교롭게도 타스통신은 러시아 하원 부의장이 “우크라이나군이 48시간 안에 돈바스를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격 시작일을 21일로 지목했다고 20일 보도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핵 탑재가 가능한 극초음속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훈련을 참관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등에서 미사일을 즉각 발사 가능한 태세로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라루스 국방부는 돈바스 긴장 고조를 이유로 20일 끝나기로 예정됐던 러시아군과의 연합 훈련이 계속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경 북부에 3만여 러시아군이 철수하지 않고 계속 주둔한다는 얘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모든 징후가 러시아의 전면 공격(full fledged attack)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 돈바스 이미 전쟁터, 외신도 공격친러 반군은 18일 “돈바스 내 루간스크에서 정부군 공작원에 의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송유관과 주유소 등이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반군은 정부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며 예비역 총동원령을 내리고 “여성과 어린이 등 70만 명을 대피시킬 계획이다. 러시아로 철수하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19일 루간스크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발 등에 대해 “반군 용병들이 러시아 특수부대와 협력해 도발을 감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러시아 자작극의 또 다른 증거”라고 했다. 19일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이 뉴욕타임스 등 서방 취재진과 동행해 도네츠크를 방문했을 때 취재진 차량 주변에 여러 발의 박격포탄이 떨어져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이날 하루에만 포격 등 2000여 건의 돈바스 휴전협정 위반 행위가 집계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돈바스 지역에서 난민이 밀려들 것에 대비해 로스토프 지역 국경 15곳을 개방했다며 “돈바스 주민 약 4만 명이 러시아 남부로 대피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스타니슬라프 자스 사무총장은 로이터통신에 “필요하면 돈바스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5∼10km 떨어진 러시아 영토에는 하얀색 페인트로 ‘Z’ 마크를 표시한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 등이 속속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의 태스크포스(TF) 표시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 민간 위성사진 업체가 촬영한 사진에서는 크림반도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의 지대공 미사일이 발사 가능 상태로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평상시 수평을 유지하는 미사일 발사대가 하늘로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英 총리 “러, 1945년 이후 최대 전쟁 계획”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9, 20일 주말에도 델라웨어주 사저가 아니라 백악관에 머물며 현 사태에 대한 실시간 보고를 받았다. 미군은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등을 우크라이나 상공에 띄워 러시아 침공 대비에 나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0일 BBC에 출연해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전쟁을 계획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증거가 침공 임박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전쟁 위험이 고조되면서 독일과 프랑스는 19일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는 국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나토 역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주재 직원을 모두 철수시켰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우크라이나 전쟁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한 막바지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고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서 이달 7일 모스크바를 직접 찾아 푸틴 대통령과 만났고 5일 뒤 통화했다. 20일 통화까지 포함해 2주 만에 3번이나 푸틴 대통령과 대화했다. 프랑스 대통령실 엘리제궁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발생한 교전을 언급하며 “위험이 커지고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은 마크롱 대통령이 또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전했다. 23일로 예정된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장관 회담도 주목된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1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의 제안을 수용해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기로 했다. 외교의 문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블링컨 장관은 19일 “그것(침공)이 일어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이날 마크롱 대통령과 통화한 뒤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에게 만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서방은 푸틴 대통령이 침공을 결정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뮌헨안보회의에 미 행정부 대표로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전례 없이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금융 기관과 핵심 산업을 겨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러시아의 침공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가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을 향해 “경제가 붕괴하고 영토 일부가 점령된 뒤 당신들의 제재는 필요 없다”며 “동맹국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다리지 말고 당장 러시아를 제재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1세기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다. 이 전쟁에 대응할 단일 정책은 없다.” 토드 헬머스 미국 싱크탱크 랜드코퍼레이션 연구원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한 말이다. 복합 전쟁, 비(非)대칭 전쟁으로도 불리는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은 무기 외에도 해킹, 가짜 뉴스, 경제 침투, 정치 공작 등을 결합한 현대전의 양상을 일컫는 용어다. 공격 주체와 공격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신속한 방어가 어렵고 소셜미디어, 드론 등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정규군과 비정규군, 군인과 민간인, 전시와 평상시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최강국’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 또한 선전포고, 국가 대 국가의 대립, 최신식 무기를 동반한 지상군 교전 등으로 표현되는 기존 전쟁의 문법을 바꿔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10만 대군을 보낸 러시아는 현재까지 약 넉 달 동안 직접적인 교전을 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에 대한 잇따른 사이버 공격, 가짜 뉴스와 음모론 유포 등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실제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한 것 이상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및 나토 동진(東進) 금지 같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러, 소련 붕괴 뒤 하이브리드戰 전력러시아가 하이브리드 전쟁에 천착하게 된 계기로 소련 붕괴가 꼽힌다. 고질적 경제난에 직면한 러시아는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에서 속속 최신식 무기를 시험하는 미국에 맞설 수 없었다. 이런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러시아가 들고나온 전략이 바로 하이브리드 공격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 뉴스와 왜곡 정보를 퍼뜨리고 해킹을 통해 상대국 주요 정부기관, 발전소, 교량 등 핵심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데에는 최신식 미사일과 전투기를 개발할 때만큼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로 인한 사회 혼란은 상당해 공격 효과가 크다. 책임 소재를 회피하기도 쉽다.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을 총괄하는 사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총참모장(67)이 꼽힌다. 그는 2013년 러시아 군사 매체에 소위 ‘게라시모프 독트린’으로 불리는 새로운 안보 전략을 담은 글을 기고해 큰 반향을 불렀다. 당시 그는 “전쟁은 더 이상 선전포고로 시작되지 않으며, 일단 시작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법과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게라시모프는 현대전을 정치 경제 정보 등 비군사적 조치를 현지 주민의 항의와 결합시킨 비대칭적 군사 행동으로 정의했다. 여론 조작과 선전선동 등으로 아군과 적군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 간의 분열과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멀쩡한 국가가 순식간에 무정부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라시모프를 비롯한 러시아 수뇌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우크라이나 조지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지역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 2011년 ‘아랍의 봄’ 같은 반정부 시위가 서구의 개입으로 이뤄졌다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특히 2013년 말부터 벌어진 ‘유로마이단’ 반정부 시위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축출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이런 위협에 대응하려면 러시아 또한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러시아 또한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의 정부군과 친러 반군의 교전에 하이브리드 전쟁 형태로 깊숙이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영 언론도 대거 동원러시아투데이(RT), 타스통신, 스푸트니크통신 같은 국영 언론을 동원해 대대적인 선전선동에 나서는 것 또한 러시아 특유의 하이브리드 전술로 꼽힌다. 이들은 러시아를 찬양하고 서방을 비판하는 일방적인 기사를 거듭 내보내면서 여론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2005년 설립된 국영방송 RT가 있다. 설립 직후만 해도 주로 러시아 문화를 소개했지만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후 본격적으로 푸틴 정권을 칭찬하고 서방을 비난하는 콘텐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영국 솔즈베리에 거주하던 전 러시아 정보 요원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야가 독성 물질 ‘노비초크’에 노출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건이 벌어졌다. 노비초크는 2020년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암살 미수 때도 사용된 물질이다. 당시 영국 정보기관은 “러시아 정보 요원의 소행이며 이들의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RT는 “용의자로 지목받는 사람들은 모두 영국 관광을 갔을 뿐이며 암살과 무관하다”며 서방을 규탄했다. 이런 보도에 거듭 노출된 러시아인으로선 ‘서방은 언제나 러시아만 문제 삼는다’는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서방 언론학계는 RT를 ‘허위 정보와 음모론의 공급자’라고 비판한다. 2일 독일 정부 또한 자국 내 RT 채널의 독일어 방송을 중단시켰다. 영국, 프랑스 미디어 규제당국 또한 수차례 “RT가 중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콘텐츠를 거듭 방송하며 공정성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2016년 미 대선에도 러 개입 의혹러시아가 직접적으로 관련됐거나 관련 의혹을 받는 하이브리드 공격의 사례는 상당하다. 뉴욕타임스(NYT) 등 서구 언론은 러시아가 체제 전복, 사보타주, 암살 등이 전문인 ‘29155’ 특수부대와 대외정보국(SVR) 내 해커 집단 ‘ATP-29’ 같은 하이브리드 전쟁에 특화된 조직, 민간 해커 고용 등을 통해 수많은 공격을 벌였다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침공 당시 지상군 파견과 별도로 조지아 대통령실, 국방부, 외교부, 의회, 주요 언론 등에 무차별 디도스 공격을 가했다. 2014년 초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강제 병합 때도 2000여 명의 러시아군이 소속 부대, 계급, 명찰 식별이 어려운 국적 불명의 군복을 착용한 후 크림반도에 투입됐다. 크림반도 병합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정부군과 친러 반군이 교전을 시작한 후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군복에서 부대 기장을 떼어내 민간인처럼 가장하고 친러 반군을 돕는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이와 별도로 돈바스 지역에 수천 명의 정보 요원을 보내 중앙정부를 공격하고 분리 독립 혹은 러시아와 합병을 해야 한다는 여론을 설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대선 때도 친러 성향 해커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 당시 ‘초콜릿 왕’으로 유명한 제과 재벌 페트로 포로셴코 후보가 월등히 앞서고 있는데도 러시아 채널1방송은 “극우 정당 후보가 이기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거듭 보도했다. 2016년 쿠바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처음 발견된 후 현재까지 약 750건이 보고된 ‘아바나 증후군’의 배후에도 러시아가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해외 파견된 미 외교관과 정보 요원이 두통, 환청, 어지럼증, 인지 장애 등에 시달리는 현상이다. 미 정보당국은 조사를 통해 극초단파 공격이 원인임을 밝혀냈지만 배후에 관한 직접적 증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강한 부인에도 러시아가 배후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말 러시아를 방문한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아바나 증후군의 배후가 러시아로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미 의회는 2016년 미 대선에도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러시아가 친러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피자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다는 ‘피자게이트’ 같은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데 관여했다는 것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와 프랑스 대선, 독일 연방하원 총선거 등이 줄줄이 치러진 2017년 유럽 주요국의 정치 일정에도 러시아가 관여해 반EU 및 무슬림 혐오 여론을 조성하고 극우 후보를 지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5월에는 미 최대 송유관 운영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러시아 해커 집단의 공격을 받아 뉴욕 등 미 17개 주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일도 벌어졌다.○ 우크라 사태에서도 하이브리드 공격 기승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하이브리드 공격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자작극을 연출하는 데 열심이다. 미 정보당국은 지난달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서 정부군이 러시아계를 공격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동영상을 퍼뜨려 침공 명분을 쌓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나토 무기처럼 보이는 듯한 무기로 정부군이 친러파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줘 러시아계의 공분을 유도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14일에도 우크라이나 7개 정부 부처, 국가응급서비스 등 70여 개 주요 기관의 웹사이트가 해킹으로 몇 시간 동안 마비됐다. 이달 15일에도 우크라이나 최대 상업은행 프리바트와 대형 국영은행 오샤드, 국방부 웹사이트가 먹통이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두 러시아 소행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에서 집단학살(genocide)이 일어나고 있다”는 과격한 주장을 펴는 것, 서방이 직접적인 철군 증거가 없다고 거듭 지적하는데도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철군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술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돈바스 지역의 소셜미디어에는 정부군이 화학무기까지 사용해 친러파에 대한 집단학살을 자행했고, 시신을 묻은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는 가짜 정보까지 퍼지고 있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 교수(노어과)는 “러시아가 유로마이단 시위 때부터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를 본격적으로 악마화했다”고 진단했다. 시위대가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을 반헌법적 방식으로 축출했고, 친서방파의 대부분은 과거 나치 독일의 부역자 후손이라는 식의 선전선동을 통해 친러와 반러로 우크라이나 국민을 완전히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RT 같은 선전 매체를 통해 옛 소련 국가의 국민에게 자국 정보와 언론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것도 러시아 특유의 하이브리드 전술”이라고 진단했다. 지금보다 소련 시절이 훨씬 살기 좋았다는 식으로 친러파를 자극해 러시아와의 합병 여론을 고조시킨다는 것이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도 총 한번 쏘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던 러시아가 이번 사태에서도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유사한 전략을 펴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에 참석해 “러시아가 침공의 구실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쟁 지역인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러시아 국영 매체들의 보도가 침공을 위한 ‘위장전술’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러시아는 안보리에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은 범죄”라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미국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맞받았다. 러시아는 또 자국 내 미국대사관 고위 인사를 추방했다. 다만 미 국무부는 이날 우크라이나 침공이 없으면 다음 주 블링컨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유럽에서 만나 외교적 해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美 추산 러 병력 15만→19만 명 블링컨 장관은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첫째로 러시아가 공격을 위한 구실을 만드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나 공격을 조작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언론도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허위 주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두 번째는 이런 조작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최고위급 비상회의를 소집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자국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대응해야 한다고 선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그다음으로 러시아는 공격을 시작하고 미사일과 폭탄을 우크라이나 전역에 투하할 것”이라며 “통신이 두절되고 사이버 공격으로 주요 기관들이 셧다운되며 러시아 탱크와 군인들이 인구 280만의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주요 목표물로 진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이를 전 세계와 공유해 러시아가 전쟁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 회의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날카로운 설전도 벌어졌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는 병력을 줄였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세르게이 베르시닌 러시아 외교차관은 “근거 없는 비난을 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그는 국경지대 병력 배치에 대해 “러시아 영토에서 필요한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진짜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추산하는 국경 배치 러시아 병력은 15만 명에서 19만 명으로 늘었다. 마이클 카펜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OSCE 회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에 병력 16만9000∼19만 명을 집결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 러 “안전 보장 없으면 군사 대응”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며칠 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 차석 대사인 바트 고먼 부대사를 추방하며 미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러시아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워싱턴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공사, 참사를 근거 없이 추방한 것에 대한 대응 조치”라고 밝혔다. 반면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당하지 못한 조치다. 미-러 간 긴장을 높이려는 조치로 보고 대응할 것”이라고 맞섰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미국에 보낸 안전 보장 협상 관련 답변 문서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공급을 중단하고 이미 전달된 무기는 철수시켜야 한다”며 “중·동부 유럽에 주둔 중인 모든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안전 보장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가 없으면 군사·기술적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8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유럽 정상들과 우크라이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화상 정상회의를 열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조만간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긴장 완화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 침공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발발한 것처럼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16일(현지 시간) 수도 키예프 공항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떠난 현지 한국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15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집결해 전쟁 공포를 조성하다 미국이 침공 디데이로 지목한 이날을 하루 앞둔 15일 국경지역 일부 병력이 철수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곧바로 “철군 주장은 가짜(false)”라며 러시아가 오히려 병력 7000명을 증강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러시아 국영매체들은 17, 18일 이틀 연속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친러시아 반군세력 지역에 우크라이나군이 먼저 포격을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모두 친러 반군들의 주장을 인용하는 형식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첫 포격 주장 이후인 17일 기자들에게 “그들(러시아)이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가짜 깃발(false flag) 작전에 관여하고 있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 내부에서는 러시아가 대규모 침공만 안 했을 뿐 이미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21세기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실제 15일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군 웹사이트가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최대 상업은행인 프리바트은행과 대형 국영은행 오샤드은행 웹사이트도 수 시간 동안 집중적인 디도스 공격을 받아 인터넷뱅킹과 전국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일제히 마비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13일에는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이 친러시아 성향의 정치인을 포섭해 정권 교체를 노린다는 첩보 내용이 공개돼 우크라이나 정치권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찰에 따르면 1월 한 달간 가짜 폭탄테러 협박 이메일이 1000건 이상 접수됐고 수백 명이 대피하는 혼란이 수시로 발생했다. 당국은 테러 위협 이메일의 발신지가 러시아로 나타났다고 했다. 독일 dpa통신은 17일 “러시아가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벌이고 있다는 등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관련 가짜뉴스가 지난해 12월에 비해 약 3배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 기존 재래전에 더해 가짜 뉴스, 심리전, 사이버 공격, 정치공작 등의 수단까지 총동원해 상대국에 공포와 혼란을 일으키는 현대전을 가리킨다.가짜 깃발(false flag)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국으로부터 공격받은 것처럼 조작하는 군사 작전 또는 정치 행위를 가리킨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수립한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이 17일(현지 시간)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일대 9곳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먼저 포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군이 먼저 공격했다고 보고받았다. 끔찍한 도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은 “반군이 먼저 공격했으며, 우리는 대응 사격을 안 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 반군 세력 간 분쟁이 이어져온 돈바스는 미국과 서방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무력 충돌 자작극’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목한 곳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미국과 동맹들이 우리 안보를 보장할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를 할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군사·기술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 리아노보스티, 타스통신은 이날 일제히 “우크라이나군이 17일 오전 4시 반부터 2시간 동안 박격포와 수류탄, 유탄발사기, 중기관총 등으로 LPR, DPR 내 마을 9곳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통신들은 돈바스 지역 휴전협정을 이행하는 공동통제조정위원회(JCCC)에 파견된 친러 반군 세력의 주장을 인용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반군 세력의 성명과 러시아 보도가 나온 직후 선제공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국방부는 “(친러 반군이) 122mm 중포 32발을 발사해 아이들과 교사가 있던 유치원 건물이 파손되고 직원 3명이 부상했다”고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러시아가 (이번 사태를) 우크라이나 침공의 빌미로 만들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일 “돈바스에서 친러파에 대한 ‘집단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러시아의 철군 주장은 거짓(false)이며 오히려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병력 7000명이 증강됐다”고 밝혔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러시아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반군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2014년부터 분쟁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17일(현지 시간) 새벽 벌어진 ‘공격’에 대한 진실 공방이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특히 돈바스 지역은 미국 등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핑곗거리를 만들어낼 곳으로 꼽아 왔다. 러시아는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의회, 고위 외교관 등이 잇따라 돈바스 관련 발언을 쏟아내 서방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17일 돈바스 공격에 대한 질문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 구실을 준비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영국 리즈 트러스 외교장관도 트위터에 “돈바스의 비정상적 군사활동은 침공을 위한 날조이며 러시아의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올렸다.○ 반군-우크라군 “우리가 공격 받았다” 돈바스 지역 반군 세력이 루간스크와 도네츠크에서 각각 수립한 자칭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은 17일 각각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이날 2시간에 걸쳐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 9개 마을을 120mm, 82mm 박격포, 유탄발사기 등 민스크 협정이 철수시키기로 한 중화기로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마을 지명과 공격 부대까지 공개한 반군 측은 “민간인을 보호하고 적을 억제하기 위해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DPR 민병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 동부 아조프해 연안 포위를 위해 상륙작전을 계획했다는 첩보를 들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친러 반군의 공격, 특히 유치원 공격은 큰 도발”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반군이 122mm 중포 32발을 발사했는데 루간스크 지역 유치원 건물 벽에 한 발이 맞아 교사와 아이들이 대피했고 직원 3명이 다쳤다”며 구멍 뚫린 유치원 건물 사진과 내부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우크라이나군도 “반군은 (돈바스 휴전협정인) 민스크 협정이 금지한 무기로 먼저 포격했지만 대응 발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이날 “중화기(heavy artillery)가 사용됐다면 러시아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 의혹 이번 사태는 러시아가 15일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와 크림반도에서 훈련 중이던 러시아군 일부를 원주둔지로 철수시켰다고 발표한 뒤에 벌어져 배경을 놓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침공 디데이’ 16일이 지나갔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네츠크를 방문해 군 관계자들과 만난 이튿날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굳이 친러 반군을 공격해 무력 충돌의 명분을 제공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서방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는 ‘가짜 깃발(false flag)’ 작전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16일 미국 정부 고위 관료도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제라도 돈바스에서 거짓 핑계를 띄울 수 있다”고 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15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돈바스에서 친러파 ‘집단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는 푸틴 대통령에게 LPR와 DPR 독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배치된 일부 군 병력과 장비의 철수를 시작했다고 밝힌 반면 서방은 “믿지 못 하겠다”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철군을 확인할 구체적인 증거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서방이 러시아군의 철수를 믿기 위해서는 우선 ‘위성사진’ 등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군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실제 미국 인공위성 전문기업 맥사테크놀로지가 13, 14일 공개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 위성사진에는 러시아 군이 철수를 준비하는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격용 러시아 헬기, Su-34 전투기, 병력이 등이 새로 배치되는 모습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국경지대 최전선에 있는 러시아군의 자대 복귀가 위성사진으로도 두드러지면 철수에 대한 신빙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16일 나토 국방부 장관 회담에서 “위성사진을 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더 보내고 있다”며 철수에 회의론을 내비쳤다. 위성사진에서 만으로는 러시아군의 철수와 진위를 알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군이 최전선에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해도 일부 부대의 주둔지는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언제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전문가들은 러시아 철군 확인하는 지표로 우크라이나 국경 일대 인근에 세워진 야전병원과 연료 저장소의 해체를 꼽았다. 국경일대 야전병원 설립과 연료 공급을 위한 시설들은 침공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이다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15일 스카이뉴스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에 야전 병원을 세우고 있어 이는 침공을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벨라루스에 파견된 러시아군의 원대 복귀 여부도 철수를 증명할 중요한 요소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재 인접국 벨라루스에서 러시아군은 합동훈련 중이며,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북부를 거쳐 수도 키예프를 언제든 공습을 가능할 수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러시아군의 철수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지금도 명백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부 병력이 철군했다고 밝힌 데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침공 위협이 여전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16일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부대들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며 군사장비를 실은 열차가 이동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서부군관구 전차부대도 귀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백악관 연설에서 “아직 우크라이나 국경에 러시아군 15만 명이 둘러싸고 있다”며 “러시아군은 여전히 매우 위협적인 태세”라고 말했다. 13만 명으로 추산했던 국경 집결 러시아군 규모가 오히려 15만 명까지 증강됐다고 공개하며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이 기만 작전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외교를 지속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외교가 성공을 거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담한 뒤 “우크라이나 긴장에 대한 외교 논의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바이든, 푸틴 대통령 모두 협상 의지를 내비친 만큼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가운데 치열한 외교전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제노사이드(인종학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해 충돌의 새로운 불씨로 떠올랐다. 서방이 강하게 반대하는 이곳 독립을 러시아가 제기했기 때문이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분쟁 중인 지역이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친러시아 세력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분리독립 문제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현재까지 돈바스에서는 친러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 의회, 러시아 고위 외교관이 동시다발적으로 8년간 분쟁이 이어져 온 돈바스를 새삼스레 언급한 것을 두고 러시아가 사실상 돈바스를 합병할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5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돈바스에서 친러파 ‘집단 학살(genocide)’이 일어나고 있다”며 러시아어 사용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차별 또한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우크라이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4개국이 돈바스 지역의 정전을 위해 서명한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는 것이 사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 또한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돈바스 내 친러 분리주의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폴리티코유럽’ 등은 ‘집단 학살’ 같은 자극적 용어까지 사용한 푸틴 대통령의 행보가 돈바스 합병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국제 사회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전체 합병 대신 친러 세력이 많은 돈바스를 손에 넣으려 하되, 틀어지면 이를 구실 삼아 침공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의미다. BBC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돈바스에서 자국민이 피해를 보는 ‘자작극’을 연출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즉각 “러시아가 돈바스 독립을 승인하면 민스크 협정 파기로 받아들이겠다”며 반발했다. 특히 숄츠 총리는 “돈바스를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건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 돈바스를 긴급하게 찾아 분리독립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 @donga.com}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전쟁 직전으로 치닫던 미국과 러시아의 ‘강 대 강’ 대치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공 디데이로 꼽히던 16일(현지 시간)을 하루 앞둔 15일 협상 뜻을 내비치면서다. 다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가 여전히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능한 주력 부대를 국경에 배치하고 있다고 본다. 러시아의 일부 병력 철수가 미국의 정보전에 맞선 러시아의 위장 전술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날 우크라이나 사이버보안센터는 국방부와 외교부를 비롯한 주요 정부 부처와 대형 은행 2곳 등 최소 10곳의 주요 웹사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디도스(DDOS) 공격을 받아 마비되거나 서비스 장애를 겪었다며 러시아를 공격 배후로 추정했다. 유럽 주요국 정상들을 잇달아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협상력을 높인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유지하면서 향후 외교전에서 미국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철군 주장 러, 국경 전력 증강바이든 대통령은 15일 백악관 연설에서 “러시아 국방장관은 일부 부대가 우크라이나 인근 주둔지를 떠났다고 밝혔다”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원래) 주둔지로 돌아갔는지 검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에서 러시아의 현재 병력을 15만 명이라고 공개한 것도 주목된다. 13만여 명으로 추정됐던 러시아군이 오히려 증강된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14일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T-80 탱크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30∼80km 떨어진 곳들에 배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 BBC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어떤 철수 움직임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줄리앤 스미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지난해 12월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다라 마시코 수석정책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러시아가 ‘셸 게임’(일종의 야바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이날 크림반도에서 탱크와 장갑차들을 열차에 실어 원주둔지로 복귀하는 남부군관구 소속 부대들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전날 남부·서부군관구 부대들이 철수한다고 밝힌 뒤 미국이 믿을 수 없다고 하자 보란 듯이 영상을 공개한 것. 유리 필라토프 아일랜드 주재 러시아대사는 이날 러시아 부대들의 철수 시점을 “3∼4주 뒤”라고 특정하기도 했다. ○ “러, 일부 철수로 美 신뢰 하락 노려”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움직임 관련 첩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침공 디데이를 지목하자 러시아가 “미국이 틀렸다”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협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벼랑 끝 전술’ 뒤 철군을 발표해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것. 러시아에서 오래 근무한 한 외교관은 “16일 침공이 없으면 미국의 국제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을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러시아군 철군에 대해 “현장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하는지 보고 철군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BB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을 오래 끌어 최대한 이득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러시아가 며칠 또는 몇 주 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세상은 러시아가 불필요한 죽음과 파괴를 선택한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인명 희생(human cost)이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확실한 긴장 완화 조치를 요구했다. 특히 러시아가 조만간 미국에 러시아의 안전보장과 관련한 새로운 요구조건을 담은 문서를 보내기로 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외교의) 기본 원칙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전쟁 직전으로 치닫던 미국과 러시아의 ‘강 대 강’ 대치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공 디데이로 꼽히던 16일(현지 시간)을 하루 앞둔 15일 협상 뜻을 내비치면서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가 여전히 우크라아니 침공이 가능한 주력 부대를 국경에 배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가 주장한 일부 병력 철수가 미국의 정보전에 맞선 러시아의 기만전술일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날 우크라이나 사이버보안센터는 국방부와 외교부를 비롯한 주요 정부 부처와 프라바트방크 등 최대 은행 2곳 등 최소 10곳의 주요 웹사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디도스(DDOS) 공격을 받아 마비되거나 서비스 장애를 겪었다며 러시아를 공격 배후로 추정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을 잇따라 안방인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협상력을 충분히 높인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유지하면서 향후 외교전에서 미국과 유럽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철군 주장 러, 국경 전력 증강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러시아 국방장관은 오늘 일부 부대가 우크라이나 인근 주둔지를 떠났다고 밝혔다”며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원래) 주둔지로 돌아갔는지 검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군 일부가 실제로 철수했는지, 또 일부 군부대의 이동이 있었더라도 러시아로 완전히 돌아갔는지 확인되지 않은 만큼 러시아가 실질적인 긴장 완화 조치를 취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에서 러시아의 현재 병력을 15만 명이라고 공개한 것도 주목된다. 얼마 전까지 13만여 명으로 추정됐던 러시아군이 오히려 증강된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14일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T-80 탱크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30~80㎞ 떨어진 지역들에 배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가 위장전술을 전개할 수 있다”고 했다. 줄리앤 스미스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가 지난해 12월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다라 마시코트 수석 정책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러시아가 ‘쉘 게임(공을 넣은 컵을 이리저리 옮겨 맞추는 일종의 야바위)’을 하고 있다”고 했다.●美의 정보전에 심리전으로 맞선 러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한 첩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자 러시아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벼랑 끝 전술’ 속 철군을 발표해 ‘긴장완화 조치를 내놓았다’는 식의 고도의 심리전으로 주도권을 쥐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러시아군 철군과 관련해 “현장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며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지 보고 철군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러시아가 며칠 또는 몇 주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세상은 러시아가 불필요한 죽음과 파괴를 선택한 것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한 제재를 경고하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확실한 긴장완화 조치를 요구했다. 특히 러시아가 조만간 미국에 러시아 안보보장과 관련한 새로운 요구 조건을 담은 문서를 보내기로 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외교의) 기본 원칙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말이 아닌) 검증 가능한 긴장완화 조치”를 요구했고 라브로프 장관은 “안전보장안 협의가 중요하다”며 입장차를 드러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무슨 일이 생기면 총을 쏠 준비가 됐다. 아이들과 고향을 지키겠다.”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 사는 발렌티나 콘스탄티노우스카야 씨(79)는 13일 우크라이나 언론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고령에도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AK-47’ 소총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도 유력 정치인과 부호들은 해외로 대거 탈출해 비판받고 있다.○ 부호들은 도피 vs 시민들은 소총 훈련 13일 하루에만 수도 키예프에서는 유력 정치인과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등을 태우고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전세기가 최소 20대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최고 부자인 광산 재벌 리나트 아흐메토우, 철강 재벌 빅토르 핀추크, 해운왕 안드레이 스타브니체르, 유명 야당 정치인 바딤 노빈스키 등도 포함됐다. 14일 현재 해외로 떠난 국회의원만 23명에 달한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으로 서방 주요국 항공사가 우크라이나 운항을 중단하면서 전세기를 이용한 특권층의 탈출 행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령층, 아이 등 평범한 시민들은 정부가 진행하는 사격, 탄약 장전, 무기 조립 등 각종 군사 훈련을 받으며 러시아와의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키예프 주부 마리아나 자글로 씨(52)는 AFP통신에 “내 아이들이 더 이상 이런 위협을 물려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전투 훈련에 참가한 이유를 설명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해외로 떠난 정치인과 기업가는 24시간 내 귀국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 예상 디데이로 지목한 16일을 ‘단결의 날’로 지정하고 “우리의 단결을 세계에 보여주자”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6일 오전 10시에 전국 모든 도시에 국기를 게양하고 전 국민이 국가를 제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 정부 ‘나토 가입 오락가락’ 젤렌스키 정권의 어설픈 대응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BBC에 따르면 바딤 프리스타이코 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겸 전 외교장관은 14일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낮추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세르게이 니키포로우 정부 대변인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명했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주요 인사 대부분이 희극 스튜디오 출신이라며 젤렌스키 정권이 러시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도 엇갈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으로부터 유럽에 대한 액화천연가스(LNG) 지원 의사를 타진받았지만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한국이 가시적인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길 원할 경우 우크라이나인들은 환영할 것”이라고 했지만 외교부는 15일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만 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러시아 주요 인사의 입국 제한 및 자산 동결,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 제한 등의 제재안 등 미국과 협의할 내용을 논의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lovesong@donga.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시점으로 미국이 지목한 디데이인 16일(현지 시간)이 임박하면서 전쟁 공포가 높아지자 각국은 막판 총력 외교전을 벌였다. 러시아가 일단 서방과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실낱같은 외교적 타협의 문이 열린 가운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5일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담판에 나섰다.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집결한 병력 일부가 원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병력을 증강하는 등 침공 징후도 포착됐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CNN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안전보장 문제에 대해 (서방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크림반도 등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집결한 병력 일부인 남부와 서부 군관구가 훈련을 마치고 원래 기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군사훈련은 계획대로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은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의 러시아 병력 13만 명 중 약 1만 명이 복귀했다고 했지만 주요 훈련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낙관론의 근거를 제공하지만 아직 진짜 긴장완화의 신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4일 숄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나토 가입을 계속 추진하겠다”면서도 “우리에게 나토 가입은 하나의 꿈과 같다. 우리가 언제 그곳에 도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유보는 외교적 해법의 전제 조건으로 거론된다. 그럼에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가 국경지역 병력을 증강시키고 있다고 보고 침공 대비를 가속화했다. 미 국무부는 키예프 미국대사관을 폐쇄하고 러시아 국경에서 먼 서부의 리비우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지난 24시간 동안에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증강시켰다”며 “사전 경고 없이 침공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5일 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를 방문한 뒤 폴란드, 리투아니아를 찾아 러시아 침공 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이날 영국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러시아군 14개 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증파됐다고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15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WSJ는 러시아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부대와 다연장로켓 부대를 우크라이나 국경에 추가 배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이날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조건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치조프 유럽연합(EU) 주재 러시아대사는 “우크라이나 돈바스에서 러시아인이 살해되면 우리가 반격해도 놀라면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유럽 내에서의 전쟁은 (우리도) 원치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70)이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64)와 정상회담 후 밝힌 메시지다. 이와 함께 이날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배치됐던 러시아군의 부대 일부가 ‘훈련 종료’를 이유로 원대 복귀하면서 16일 러시아 침공 우려 및 군사충돌 위기가 완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졌다. 반면 러독 회담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은행 등이 이날 사이버 공격을 받으면서 사태가 계속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 푸틴-숄츠 회담 “외교적 방법 찾기, 유효하다”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완화 방안을 논의했다. 회담 후 공동회견에서 푸틴은 “러시아가 전쟁을 원하느냐. 당연히 아니다”라며 “우리가 협상 과정을 제안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이어 미국이 주장한 ’16일 우크라이나 침공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는 각각의 상황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행동하겠지만 서방 파트너들과 합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러시아 인접 나토 회원국 내 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 서방과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빠른 시간 내에 찾길 원한다고 푸틴은 강조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러시아의 요구에 대한 (서방의) 건설적인 대응이 아직까지 없다“며 서방으로 책임을 돌렸다. 푸틴 대통령은 친러시아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교전 중인 동부 돈바스 지역 상황에 대해서도 ”집단학살(genocide)“이라며 민스크 협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5년 체결된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 지역의 무력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 아래 체결한 평화협정이다. 이날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는 돈바스 지역 내 분리주의 반군이 세운 공화국들의 독립 승인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표결을 통해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러시아 정부가 돈바스 분리주의 공화국들의 독립을 승인하면 이를 러시아의 ’민스크 협정‘ 탈퇴로 받아들이겠다“고 경고했다. 그간 돈바스 지역 내 친러 세력의 독립과 러시아인에 대한 공격을 빌미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예측이 계속돼왔다. 이날 하원의 결의안으로 돈바스 지역 내 군사충돌 우려가 제기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돈바스 지역 내 친러 공화국 독립을 인정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푸틴의 발언에 대해 숄츠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은 전혀 소진되지 않았으며, (해결) 방법 찾기는 가능하다“고 회답했다. 특히 숄츠는 이날 ’국경지대에서 훈련을 마친 남부군관구, 서부군관구 소속 부대가 원래 주둔하던 기지로 복귀를 시작할 것‘이란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를 언급하며 ”좋은 소식으로, 더 많은 (좋은) 소식이 뒤따르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과 러시아의 안보는 상호보완적이라고 강조했다. ● 서방 ”아직 러시아군 복귀 움직임 없어“… 우크라 정부 ”러시아가 또 사이버 공격“ 두 정상은 이날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2‘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은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이라며 ”가스관이 가동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요구하면 우크라이나 경유 유럽행 가스관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점을 이용해 푸틴이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와 독일이 진행한 노드스트림2 사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날 러시아-독일 회담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군사충돌 위기가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군이 기지로 복귀한다’는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와 나토와 미국은 ”아직까지 국경지대에 러시아 군대가 복귀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드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실제로 러시아 군의 철수 모습을 확인해야 (러시아 정부의) 말과 군사 충돌 완화를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날 스카이뉴스 방송 인터뷰에서 ”영국 정보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상황이 고무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존슨 총리는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에 야전 병원을 세우고 있으며. 이는 침공을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방안을 위한 긴급안보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에 이날 우크라이나 국방부 웹사이트 등이 ‘사이버 공격’을 받으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이버보안센터는 이날 오후 ”국방부 웹사이트, 프리바트 은행, 오샤드 은행 등이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러시아가 공격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서방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사회 중요 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무슨 일이 생기면 총을 쏠 준비가 됐다. 아이들과 고향을 지키겠다.”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 사는 발렌티나 콘스탄티노우스카 씨(79)는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언론 우크라인스카야프라우다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고령에도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AK-47’ 소총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도 유력 정치인과 부호들은 해외로 대거 탈출해 비판받고 있다.●부호들은 도피 vs 시민들은 소총 훈련 13일 하루에만 수도 키예프에서는 유력 정치인과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등을 태우고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전세기가 최소 20대 이상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최고 갑부인 광산 재벌 리나트 아흐메토우, 철강 재벌 빅토르 핀추크, 해운왕 안드레이 스타브니체르, 유명 야당 정치인 바딤 노빈스키 등도 포함됐다. 또 다른 야권 지도자 이고르 아브라모비치는 가족 등 50명과 함께 전세기로 이미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다. 14일 현재 해외로 떠난 국회의원만 23명에 달한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으로 서방 주요국 항공사가 우크라이나 운항을 중단하면서 전세기를 이용한 특권층의 탈출 행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령층, 아이 등 평범한 시민들은 정부가 진행하는 사격, 탄약 장전, 무기 조립 등 각종 군사 훈련을 받으며 러시아와의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키예프 주부 마리아나 자글로 씨(52)는 AFP통신에 “내 아이들이 더 이상 이런 위협을 물려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전투 훈련에 참가한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 여군이었던 올레나 빌로제스카 씨(42) 또한 “예비군이 속속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해외로 떠난 정치인과 기업가는 24시간 내 귀국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 예상 디데이로 지목한 16일을 ‘단결의 날’로 지정하고 “우리의 단결을 세계에 보여주자”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6일 오전 10시에 전국 모든 도시에 국기를 게양하고 전 국민이 국가를 제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 정부 ‘나토 가입 오락가락’ 젤렌스키 정권의 어설픈 대응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BBC에 따르면 바딤 프리스타이코 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겸 전 외교장관은 14일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낮추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세르게이 니키포로우 정부 대변인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명했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주요 인사 대부분이 희극 스튜디오 출신이라며 젤렌스키 정권이 러시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도 엇갈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으로부터 유럽에 대한 액화천연가스(LNG) 지원 의사를 타진받았지만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한국이 가시적인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길 원할 경우 우크라이나인들은 환영할 것”이라고 했지만 외교부는 15일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만 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러시아 주요 인사의 입국 제한 및 자산 동결,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 제한 등의 제재안 등 미국과 협의할 내용을 논의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를 향해서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의 48시간 내 긴급 소집을 요청했다. 이르면 16일 러시아가 대규모로 침공할 수 있다는 경고에 다급해진 우크라이나가 긴급 구조신호(SOS)를 보낸 것. 블룸버그통신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방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한 주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美 “외교 위한 시간 줄어들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며칠 안에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주면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 안보 없이 유럽 안보는 불가능하다”며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확고하게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우리는 아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아니지만 강력한 우크라이나 군대만이 우리 안보를 보장한다”고 말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백악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요청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내 미국인의 즉각 철수령을 내린 상황이어서 사실상 거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도 긴급 회담을 요청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13일 트위터에 “(미국 러시아 등) 모든 OSCE 참가국과 48시간 내 회담을 열고 우리 국경 및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력 재배치 관련 논의를 하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4, 15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잇따라 회담한다. 미국이 디데이로 제시한 16일을 앞두고 ‘최후 중재’에 나서는 셈이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13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외교를 위한) 시간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의 공격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 뮌헨협정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밝혔다. 뮌헨협정은 1938년 체코 국경을 보장하기로 합의했지만 다음 해 히틀러가 이 협정을 무시하고 체코를 병합했다. 다만 CNN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4일 “서방과 외교적 노력을 위한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벨라루스에서 진행 중인 군사훈련 일부가 끝났으며 나머지도 곧 끝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현지 진출 韓 기업도 직원 철수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14일 현재 39개국 정부가 자국민과 외교관,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 노보예브레먀가 전했다. 일본은 이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고 현지 대사관 직원의 국외 대피를 결정했다. 이날 재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각각 현지 법인과 판매지사를 두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 10여 개사 대부분이 이날까지 현지 직원 철수 조치를 완료했다. 외교부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우리 국민 281명이 체류 중이고 15일까지 100여 명이 추가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니아 현지 언론 ‘우크라인스카야 프라브다’는 우크라이나 내 아홉 번째 부자로 알려진 올렉산드르 야로슬라프스키를 비롯해 다수의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정치인들이 전용기 등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하고 있다고 13일 보도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유럽 정상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푸틴 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로 규정하고 유럽 내 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 막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 유럽정상들, 전쟁 막기 위해 최후 총력전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64)는 14~15일 우크라이나 키에프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연달아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 미국이 “16일 러시아 침공이 우력하다”고 주장한 가운데 ‘최후 중재’에 나서는 셈이다. 독일 정부는 13일 “러시아에서는 군사 충돌 완화를 위한 외교적 방안, 우크라이나에서는 무기 공급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이동식 대공 미사일, 전함, 방공시스템을 공급을 요청했다. 독일은 “살상무기는 줄 수 없다”고 버텨왔다. 하지만 전쟁 위기감 고조에 살상무기 공급까지 14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게 된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날 “우크라이나 위기가 중요한 시점에 접어들었다”며 이번 주 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발트3국 정상들과 전쟁 방지를 위한 추가회담을 가질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자 그간의 중립 노선에도 불구하고 ‘나토 가입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인접국들은 16일 침공 가능성에 비상이 걸렸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은 연합훈련을 위해 벨라루스에 대규모 파견한 러시아군이 영구 주도 가능성이 있다며 나토에 병력 증원을 요청했다. 현재 벨라루스에는 3만 명가량의 러시아 병력과 대규모 전투기, 미사일 포대 등이 배치돼있다. 특히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지난해 9월 연합국가(Union State) 창설 로드맵을 발표하고, 국가 통합을 진행 중이다. 전쟁 발발 시 대규모 난민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마리우스 카민스키 내무장관은 13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난민 유입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 발발 시 폴란드 동부 치에하누프의 크쥐시토프 코신스키 시에 임시 난민 수용소가 마련될 전망이다. ● 러시아 잠수함 터키 지나 흑해 진입 외교적 합의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에도 러시아 군의 침공 준비는 계속되고 있다. 터키 언론들은 러시아 해군의 디젤전기추진식 잠수함 로스토프-나-도누호가 13일 터키의 내륙 인근 마르마라해를 지나 발칸반도 밑에 있는 흑해를 진격했다고 보도했다. 침공 방법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도 제시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만 명의 러시아 군이 벨라루스, 러시아 서부와 크림반도, 흑해 등 3개 방면에서 우크라이나는 포위 중”이라며 일정 지역을 신속히 점령할 수 있는 대대전술단(BTG) 80개 이상, 제공권을 장악할 수호이(Su)-35 전투기 등이 각각의 침공을 위해 준비태세를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러시아 침공 시 수도 키예프 일대를 신속히 점령하거나, 친러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교전 중인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의 남부 해안선을 장악해 동남부 거점 도시 마리우폴를 장악한 후 크림반도와 연계한 러시아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러시아 군이 주요 도시에서 친러 세력을 쿠데타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일간 가디언은 “영국 정부는 러시아군이 키예프 등 일부 지역을 1차 공격한 후 러시아 첩보 기관 연방보안국(FSB)이 2차로 우크라이나 주요도시에 쿠데타를 일으켜 친러시아 지도부를 설치하는 2단계 전략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반영하듯 월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13일 언론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탱크 엔진을 끄고 우리도 다들 집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서방 진영의 일각에서는 ‘뮌헨 협정’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밝혔다. 뮌헨 협정은 1938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이 모여 체코 내 독일인 거주 지역인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기는 대신 체코 국경을 보장한다는 협정이다. 그러나 다음해 히틀러는 이 협정을 무시하고 체코를 병합했다.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14일 현재 39개국 정부가 자국민과 외교관,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 노보예브레먀는 전했다. 미국, 영국, 카나다 등은 남은 외교관들을 수도 키예프에서 육로 탈출이 가능한 서부 도시 리비우로 이동시키고 있다. 일본 NHK도 “일본 외무성이 13일 밤 극소수를 제외하고 현지 일본 대사관 직원에게 대피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주가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방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한 주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러, 점령지 치안 통제 헌병까지 배치”현재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미루어 볼 때 단순한 ‘위협용’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나왔다. 국제안보전문 칼럼니스트 세바스찬 로블린은 13일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브스에 기고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한 12가지 이유’에서 러시아군 총 병력의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됐고, 이달부터 이 병력들이 점점 우크라이나 국경과 점점 가까운 곳으로 이동 중이라고 분석했다. 또 러시아 포병이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발사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공수부대와 공군도 이동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보여주기용’이라면 무기만 배치했을 테지만 후방 지원을 위한 의료, 물자 지원까지 이뤄진 점, 전쟁 뒤 점령지의 치안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위군(헌병) 30만 명도 동원된 점은 전쟁이 실제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러시아의 협상이 잇달아 결렬되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 대사관이 철수하고 있다는 점도 전쟁 징후로 꼽혔다.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