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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출신 사업가로 유명한 H무역 대표 한모 씨(49)가 귀환 국군포로와 탈북자들의 투자금 120억 원가량을 빼돌려 중국으로 달아난 혐의로 27일 피소됐다. 한 씨는 국군포로 대다수가 정부로부터 보상금 3억∼6억 원을 연금이 아닌 일시금 형식으로 받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처음부터 이를 노린 정황도 포착됐다. 27일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84) 등 국군포로 10명은 투자금 20억 원을 챙겨 달아난 혐의(사기)로 한 씨 등 H무역 관계자 7명을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이들 외에도 탈북자 400여 명이 투자금 100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투자액이 밝혀질 경우 정착 지원금이 끊길 것을 우려해 고소장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 회장 등은 경기 파주시의 생활용품 수출업체 H무역에 1억∼4억 원을 빌려주고 매달 원금 1.5%(연 18%)를 수익금으로 받는 조건으로 2010년 한 씨와 계약했다. 하지만 한 씨는 이달 19일 중국 선양(瀋陽) 출장 도중 회삿돈을 챙겨 잠적했다. 유 회장 등에 따르면 한 씨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H무역 본사 사무실 건물에 ‘국군포로 쉼터’를 만들어 숙식을 제공하고 팔순 잔치와 국내 여행을 주선했다. 국군포로 이모 씨(81)는 “한 씨가 마치 친아들처럼 우리를 극진히 대접했고, 투자 수익금도 은행 금리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에 믿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국군포로들의 H무역 투자 사실을 알고도 사기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물정 모르고 거액의 일시 보상금을 탈북 브로커나 친인척에게 뜯기고 외롭게 지내 사기에 취약한 국군포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정부 탓도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홍정수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시내버스 1대가 심야에 ‘광란의 질주’를 벌여 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사망한 사고 버스 운전사는 “멈추라”는 승객들의 제지에도 정해진 경로를 벗어난 채 계속 질주해 사고 원인을 두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염모 씨(60)가 모는 저상버스(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버스) 3318번(강동공영차고지↔마천동)은 19일 오후 11시 43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사거리 잠실역 방향 6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쏘나타 택시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택시 앞에 서 있던 다른 택시 2대도 연쇄 추돌했다. 버스는 사고를 내고도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해 610여 m를 이동한 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잠실역사거리에서 송파구청사거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질주를 이어갔다. 버스는 6차로 도로 580여 m를 지그재그로 휘젓고 달리며 5차로에 있던 차량 3대를 잇따라 들이받고 다른 차로에 있던 차량 2대도 연쇄 추돌한 뒤 4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던 30-1번 시외버스의 오른쪽 뒤편을 들이받고 나서야 질주를 멈췄다. 30-1번 버스가 충격의 여파로 25m가량 밀려났을 만큼 강한 추돌이었다. 3318번 버스는 1차 사고를 낸 뒤 1.19km를 더 달렸으며 목격자들은 추돌 당시 60km 이상의 속도로 주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고로 3318번 버스 운전사 염 씨와 30-1번 버스 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이상열 씨(19)가 숨지고 이 씨와 함께 맨 뒤에 타고 있던 대학생 장희선 씨(19·여)가 의식을 잃어 중태에 빠지는 등 17명이 다쳤다. 장 씨 가족은 20일 장 씨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병원 진단을 받자 뇌사 확정판정이 나면 장 씨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3318번 버스 승객 김모 씨(44)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승객들이 버스 운전사에게 ‘버스를 멈추라’고 계속 소리쳤는데 기사가 ‘어? 어?’라고만 하면서 차를 멈추지 못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30-1번 버스 운전사 김모 씨(42)는 “신호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소리가 나면서 아비규환이 됐다”며 “버스가 온통 피투성이였다”고 말했다.○ “기계 결함?” vs “운전자 신체 이상?” 동아일보 취재팀이 20일 3318번 버스를 확인해보니 오른쪽 앞 타이어가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타이어 3개는 멀쩡했다. 운행 중 타이어 한쪽이 펑크 나면 차량이 좌우로 쏠리는데 3318번 버스도 사고 직전 지그재그로 질주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타이어가 1차 사고 전에 찢어졌다면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확한 펑크 시점을 분석 중이다. 버스 운전사 염 씨가 승객들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당황한 점을 두고 브레이크 고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3318번 버스는 사고 직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가 고장 난 것으로 밝혀져 브레이크 등 다른 기계가 고장 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버스 회사 측은 “해당 버스는 사고 전날인 18일 기능점검을 받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면 현장에 스키드 마크(차량이 급정거할 때 도로면에 생기는 검은 자국)가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직후 3318번 버스를 뒤따라오던 다른 버스에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3318번 버스가 정해진 경로를 이탈해 돌연 우회전한 잠실역사거리에는 스키드 마크가 선명했다. 하지만 이 스키드 마크가 3318번 버스로 인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스키드 마크가 3318번 버스의 영향인지 확인할 방침이다. 사고 직전 염 씨는 1차 사고 지점에서 300여 m 떨어진 중앙버스전용차로 1차로 정류장에서 승객을 내려준 뒤 돌연 6차로로 이동해 정차했다가 50m가량을 돌진해 앞에 있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주변에서 수차례 “버스를 멈추라”고 고함치며 제지했지만 질주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 염 씨가 갑자기 신체 이상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염 씨는 16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했을 만큼 건강했지만 사고 당일 14시간 동안 운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3318번 버스의 블랙박스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으며 운전사 염 씨가 갑작스러운 신체 이상을 일으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임현석 ihs@donga.com·홍정수·박성진 기자}
17일 수업을 마친 서울의 모 대학 2학년생 남모 씨(20)가 찾은 곳은 1.6m²에 못 미치는 화장실 칸이다. 편의점에서 산 김밥 한 줄과 음료수가 남 씨의 점심 메뉴였고 뚜껑을 닫은 세라믹 변기가 식탁이었다. 학과 및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 친구가 적은 남 씨는 신입생이었던 지난해부터 이렇게 화장실에서 점심을 때울 때가 많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선택한 습관이지만 간혹 ‘왜 숨어서 식사해야 하나’라며 서러워할 때가 있다. 새 학기를 맞아 활력이 도는 캠퍼스의 한구석에는 점심을 ‘혼밥(혼자 먹는 밥을 뜻하는 은어)’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화장실이나 빈 강의실 등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있다. 이런 ‘혼밥족’ 중에는 남 씨처럼 또래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같은 일정으로 생활했던 중고교 시절에 익숙해져 있다가 대학 생활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지난 학기 복학생 임모 씨(25)는 “정신을 차려 보니 한 학기가 다 지나가도록 휴대전화에 대학 친구의 전화번호가 10개도 저장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간관계가 점차 개인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혼밥족’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식사는 여럿이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과 충돌을 일으킨 탓에 몰래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식재료 보관이 어려워 여럿이 함께 밥을 먹었던 과거 습관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 혼자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 탓에 주변 사람과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발적 혼밥족’도 많다. 이들은 밥을 혼자 먹으면 △식사 약속을 잡거나 식당을 찾는 데 허비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성균관대 재학생 김누리 씨(24·여)는 “‘혼밥’에 익숙해지면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을 찾는 데 쓸 에너지를 아끼고 수업준비 등 생산적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대학가에는 이런 ‘혼밥족’을 위한 식당도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학가 ‘혼밥족’의 모습은 자신의 생활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인증 놀이’와 결합해 ‘혼밥 인증’이라는 독특한 문화로 재탄생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이달 초부터 각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화장실과 벤치 등에서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안을 얻고 더 나아가 ‘밥은 식당에서 여럿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 쾌감을 느끼려는 행위”라고 진단했다.조건희 becom@donga.com·홍정수 기자}
"창업 아이디어는 아주 가까운 데 있어요. 밤에 택시 잡는 게 고역이라면 그게 바로 훌륭한 출발점입니다. '이지택시'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우관 강당에 선 브라질의 '이지택시' 창업가 탈리스 고메즈(27)는 창업을 고민하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데서 나온다"고 조언했다. 그는 택시를 잡기 위해 1시간 동안 헤맸던 경험을 토대로 2011년 택시와 승객을 1대 1로 연결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이지택시를 개발해 순식간에 백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이지택시는 현재 한국을 포함한 26개국 92개 도시에서 500만 승객이 이용 중이다. 고메즈는 대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브라질의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안정적인 기업에서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전할만한 창업 아이디어가 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회사를 뛰쳐나가 실패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대학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포럼' 일환으로 진행된 이날 강연은 15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채 1시간동안 진행됐고 질의응답도 30분가량 이어졌다. 고메즈는 "내년에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여기 있는 학생 중 몇 명은 과감히 창업했길 바란다"며 강연을 마쳤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