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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계 미국인 엘리 최(23)가 3위에 오르는 등 입상자 6명 가운데 한국계 2명이 포함됐다. 한국은 2022년 첼로 최하영과 지난해 성악 김태한에 이어 3년 연속 우승을 기대했으나 아쉬움을 삼켰다. 2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콘서트홀 보자르에서 열린 콩쿠르 결선(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가 1위를 차지했다. 결선 진출자 12명 중 6명이 입상했는데, 엘리 최와 5위 줄리언 리(24)가 한국계였다. 2001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난 엘리 최는 3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며 ‘바이올린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9년부터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에 다니며 동시에 컬럼비아대에서 경제철학도 전공하고 있다. 줄리언 리는 미 시카고 아카데미 음악원을 거쳐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미리엄 프리드 교수를 사사했다. 7세에 미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클래식계에 데뷔했다. 한국 연주자 최송하(24)와 유다윤(23), 아나 임(27) 등 3명은 결선에 진출했으나 입상하지 못했다. 1937년 창설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성악,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부문이 해마다 번갈아 개최된다. 폴란드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한편 이날 우승한 우도비첸코는 심사위원 13명과 인사를 나누던 도중 러시아 심사위원과는 악수를 거부했다. 그는 “그와 악수하기 싫었다”며 “오늘 우승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당연히 우크라이나인으로서 이 영광을 우리나라에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브뤼셀=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입상자 6명 중 한국계가 2명 포함됐다. 한국계 미국인 엘리 최(23)는 3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이들을 포함해 아시아계 입상자는 4명으로 전체 입상자의 절반을 넘었다.2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콘서트홀 보자르에서 열린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우크라이나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가 1위를 차지했다. 결선 진출자 12명 가운데 6명이 입상을 했는데 3위는 엘리 최, 5위는 줄리안 리(24)가 차지했다. 입상자 중 한국계 미국인이 2명이나 됐고, 이들을 포함해 아시아계는 4명이었다.2001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난 엘리 최는 3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일찌감치 ‘바이올린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최유경’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국내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2009년부터 미국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는 동시에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철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띈다. 그는 음악을 하면서도 경제철학을 전공한 점에 대해 “대학에서 공부하며 음악을 해 큰 도움이 됐다”며 “더 많은 세상과 인간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5위에 오른 줄리안 리는 미 시카고 아카데미 음악원을 거쳐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미리암 프리드 교수를 사사했다. 줄리안 리도 7세에 미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일찌감치 클래식계에 데뷔했다.한국 연주자 최송하(24), 유다윤(23), 아나 임(27) 등 3명의 바이올리니스트는 결선 진출자 12명에 포함됐으나 입상에 속하는 6위 내에는 들지 못했다. 한국 국적 결선 진출자는 미국 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아 눈길을 끌었다. 현지에선 한국인 결선 진출자가 많은 점과 함께 한국계 연주자가 2명 입상한 점에 주목했다. 플로리안 리엠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 사무총장은 이날 “한국인은 매우 강하고 준비가 돼 있다”며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기에 미국과 유럽 연주자들은 우울에 빠졌는데, 한국 등 아시아에선 이 기간을 잘 보내며 공연을 잘 준비해 지금 성과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5위를 차지한 한국계 줄리안 리 씨는 “한국 연주자들은 좋은 성과를 내려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며 “한국 내에서 클래식 음악가들에 대한 지원도 다양하다”고 한국의 활약 비결을 분석했다.1937년 창설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젊은 음악가의 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성악,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부문이 번갈아 개최된다.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과 함께 세계 3대 권위의 콩쿠르로 꼽힌다. 브뤼셀=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유럽 지도자들 사이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를 활용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도록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이 이를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이 본토 타격을 허용하면 전쟁이 러시아 내부로 강도 높게 번질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을 부르며 핵 보유국인 러시아와 서방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러시아 본토 타격이 실제로 허용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미 백악관에서도 찬반양론이 거세게 부딪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세가 확연해진 우크라이나의 패배 시 책임론과 러시아와의 전면 대결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美,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 첫 시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9일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몰도바를 찾아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방어할 방안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미 정부는 필요에 따라 적응하고 조정할(adapt and adjust) 것”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발언을 내놓았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 한 기자가 “적응과 조정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하면 러시아 본토 타격도 가능하단 얘기냐”고 묻자, 블링컨 장관은 “맞다”고 답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본토 타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았지만,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에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전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서방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군사기지 타격을 허용해야 한다”고 발언한 직후 나왔다. 최근 유럽에선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 등이 잇따라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미국에서도 백악관에 ‘금기’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29일 전직 관료와 학자 60명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 지원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나토 전 사령관이던 필립 브리드러브 전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등도 동참했다.● 바이든, 유럽서 전략 수정 메시지 내나 백악관은 일단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도 “현재 정책에 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가 지상전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155mm 포탄의 생산량을 늘려 대폭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다음 달 6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기념식과 이탈리아에서 예정된 13∼15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전략 수정을 시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토 창설 75주년을 맞아 동맹국의 단결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은 무기 사용을 허용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공격과 직접 연루된 러시아 국경 군사목표물로 무기 사용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한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전쟁은 러시아 본토로 강도 높게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 NYT는 “미국이 (러시아에서) 무기 사용을 승인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부에 엄폐한 포병과 미사일 기지를 반격할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럴 경우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전술핵무기 훈련을 실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 서방이 러시아 내부 공격을 허용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확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러시아 싱크탱크인 외교국방정책협의회의 드미트리 수슬로프 의원은 푸틴 대통령에게 서방을 위협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핵폭발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우체국 ‘로열메일’이 체코 억만장자의 손에 넘어간다는 소식에 영국이 발칵 뒤집힌 분위기다. 영국 곳곳에 17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빨간색 우체통이 영국의 상징으로 꼽히듯 로열메일은 영국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강해 공기업으로 운영되던 우편서비스가 민간으로, 그것도 외국인 소유로 넘어간다는 소식에 영국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생겨나고 있다.아마존, 알리바바 등 신기술로 날개를 단 물류서비스가 진가를 내고 있는 요즘 영국의 로열메일은 왜 외국인 주인에게까지 팔리며 고전하고 있는 것일까. ● ‘출혈 경쟁’에 1조 원 넘는 손실 영국 더타임스는 29일(현지 시간) 로열메일의 모회사 국제소포네트워크 GSL이 로열메일을 체코의 억만장자 다니엘 크레틴스키에게 파는 데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크레틴스키는 로열메일을 주당 약 370파운드(약 64만 원), 총 35억7000만 파운드(약 6조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크레틴스키는 자신의 투자사 EP그룹을 통해 주당 320파운드에 매입하기로 1차 제안을 했다가 최근 입찰가를 370파운드로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로열메일의 지주회사인 IDS주가는 321.25파운드(약 56만 원)로 약 50파운드(약 9만 원)의 프리미엄이 책정됐다.크레틴스키는 에너지 분야에 주로 투자하다 분야를 넓히며 유럽 전역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영국에선 대표적인 식료품점 세인즈베리와 프리미어 리그 축구 클럽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유나이티드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1516년 헨리 8세가 설립한 로열메일은 근대 우편제도의 효시로 꼽힌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이 그려진 세계 최초의 우표를 발행한 바 있다. 정부 산하기관으로 운영되던 로열메일은 경영이 어려워지며 2013년 민영화됐다.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우정사업을 민영화해 높은 수익을 거둔 사례를 벤치마킹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민영화도 효과를 못 내고 오히려 경영이 악화되자 다시 공공의 손으로 넘어갔다.● 수술통보 우편 ‘배송사고’까지현재 공기업으로 운영되는 로열메일이 다시 민간에 팔리게 된 이유는 경영 악화 때문이다. 로열메일의 지주회사 IDS는 2023년 회계연도에 6억7600만 파운드(약 1조 원)의 손실을 냈다. 그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편지 발송이 감소해 수요가 줄었다. 여기에 로열메일은 온라인 쇼핑몰의 급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출혈 경쟁’이 심한 소포 시장에 주력했다가 더 타격을 입었다. 노동조합과의 갈등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통신노조 조합원들은 작년에 몇 달 간의 파업 이후 새로운 임금협상을 하기로 투표를 했다”며 “이 때 노조원들은 경영진이 우편 서비스보다 소포 서비스를 우선시한다고 비판했다”고 설명했다.여러 난맥이 얽히며 서비스는 현저히 악화됐다. 로열메일은 영업일 기준으로 1일 내에 1급 우편물의 93%를 배달한다는 품질 목표를 뒀지만, 실제론 1급 우편물의 73.7%만 해당 기간에 배송했다. 배송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탓에 당국으로부터 벌금을 여러 차례 부과 받았다.로열메일에 치명적인 과오는 아픈 어린 아이의 가정에 병원의 검진 일정 통지서를 제때 배송하지 못한 사례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로열메일을 통해 자스민 몰튼 씨 가정에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검진 일정을 통보하는 우편을 보냈다. 하지만 이 편지가 제때 가정에 전달되지 못하는 바람에 아이들은 지난해 12월 말 진행했어야 할 수술을 놓쳐 버렸다. ● 총선 앞두고 정치권 개입할 듯로열메일이 실제 크레틴스키의 손으로 넘어가기까진 난항이 예상된다. 로열메일이 유서 깊은 영국의 기업인만큼 정치권이 인수를 막도록 개입할 의지를 밝히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거래는 영국에서 총선발표가 난 지 불과 며칠 만에 이뤄졌다”며 “7월 4일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 유력한 야당 노동당은 이 거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소속인 조너선 닐 레이놀즈 영국 산업 및 무역부 차관보는 “로열메일은 우리 사회와 인프라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영국의 상징적 기관”이라며 “노동당은 로열메일의 부인할 수 없는 정체성과 공공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사람 손을 타지 않고 55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 낸 우리 숲의 본모습입니다.” 이봉우 광릉숲보전센터장은 9일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경기 포천시 광릉숲 안에 있는 생태연구타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755ha(헥타르) 규모의 천연림 핵심구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축구장 1000개가 넘는 광활한 숲에 바람이 일자 마치 초록색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광릉숲은 1468년 조선 세조대왕릉의 부속림으로 지정된 이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소리봉과 죽엽산 일대에 있는 광릉숲 핵심구역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556년 동안 훼손이나 인위적 간섭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숲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연구용 시설물과 숲길인 임도(林道)뿐이다. 그러다 보니 동식물과 곤충의 생태계가 촘촘해 생물다양성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숲의 성장 과정이 남아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이 센터장은 “숲 전체가 하나의 연구실”이라며 “현재 생물다양성 목록화, 인공림 자연 회복성, 천연기념물 복원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 이곳은 2010년 6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748곳뿐이다. 국내에는 광릉을 포함해 설악산, 제주, 강원 등 9곳이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광릉숲에서 관찰 기록된 자생 생물은 곤충 3932종, 식물 946종, 고등균류 694종, 조류 187종 등을 포함해 모두 6251종에 이른다. 광릉숲은 ‘K원시림’으로 국내 숲 발전 방향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출입 통제 속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온대 중부 일반 산지 식생’(해발 800m 이하)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숲의 식생 변화 가운데 안정기에 접어든 온대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이루고 있다. 556년이 응축된 숲의 정보는 훼손된 숲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뜬 9일 정오에도 숲 안은 온통 그늘졌다. 이곳에서 접한 수령 250년 넘은 갈참나무의 몸통은 성인 3명이 팔을 벌리고 안아도 넘칠 만큼 웅장했다. 썩어서 쓰러진 나무에서는 버섯과 곤충, 이끼류 등이 둥지를 틀어 작은 생태계가 꾸려졌다. 김아영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살아서 병충해 약을 뿌리지 않아도 숲 스스로 건강을 유지한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해발 800m 이하 일반 산지는 대부분 농업이나 땔감용, 인공림 등으로 쓰이며 온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광릉숲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 활엽수림을 중심으로 저해발 산지 식생의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광릉숲은 봉우리, 능선, 사면, 하천 범람원 등 모든 환경이 연결돼 상호작용하면서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가 됐다”면서 “숲을 조성할 때 답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저장고”라고 평가했다. 생태계에서 자연적으로 자라 가슴높이의 몸통 둘레가 3m 이상 자란 나무를 ‘큰 나무(산림유존목)’라고 한다. 전국에 837그루가 있는데 광릉숲에만 18그루가 있다. 광릉숲 천연림을 대표하는 식생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다. 서어나무는 풀, 작은 나무, 침엽수, 활엽수 단계로 이어지는 숲 식생의 변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 우위를 점해 ‘숲의 지배자’로 불린다. 이 덕분에 주로 말라서 죽은 서어나무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광릉숲에서만 살고 있다. 이 밖에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까막딱따구리 등 천연기념물 19종(조류 17, 포유류 1, 곤충 1종)이 산다.● 기후변화 대응할 숲의 기준으로 광릉숲의 촘촘한 생태계는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이곳의 연구 결과는 미래 K숲의 기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광릉숲의 각종 생태 정보들을 통해 숲의 자연성 회복 과정과 변화 속도를 파악해 미래 인공림을 만들 때 천연림과 비슷한 생태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광릉숲은 직접적인 탄소저감 효과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건강한 후대 숲을 양성하는 기준이 된다. 국립수목원이 발행한 광릉숲 시험림 보고서에 따르면 1ha 면적에 서어나무, 갈참나무 등 30개 종의 나무가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연간 이산화탄소 저장량은 1ha당 639.2t(2022년 기준)으로 파악됐다. 연간 1만5000km 주행한 승용차 266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638.4t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후대 광릉숲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강원, 충남, 경북, 전북, 인천, 대구, 부산 등 24개 지역 56ha에 대해 산림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절반은 비무장지대(DMZ) 일대 복원사업이지만, 산림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작업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구 남구 수목원에서는 희귀식물로 지정된 가침박달나무 복원이 한창이다. 2000년 9월 300그루가 자생하던 가침박달나무는 현재 50그루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림은 보전과 이용이 균형을 이뤄야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 경쟁력이 있다”며 “생태계가 두터운 광릉숲은 연구 대상이자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곤충 왕국 광릉숲, 장수하늘소 멸종 막을 최후의 보루” 식생 풍부하고 고목 등 환경 조성매년 15마리 자연방생 ‘복원 작업’ 광릉숲의 또 다른 이름은 ‘곤충 왕국’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보고된 곤충은 총 2만710종이다. 이 가운데 19%인 3932종이 광릉숲에 산다. 전국에 있는 곤충 5종 중에서 1종이 이곳에 사는 셈이다. 식생이 풍부해 나무가 다양하고, 나무가 죽어 고목이 되면 그 안에 곤충이 모일 수 있는 환경 덕분이다. 광릉숲을 대표하는 곤충인 장수하늘소는 최근 5년 동안 야생에서 총 30마리가 발견됐다. 2020년에 만든 산림곤충스마트사육동에서는 장수하늘소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자연에서는 부화하려면 최대 7년이 걸리지만, 사육동에서는 16개월이면 성충이 된다. 연간 500여 마리 개체수를 유지하고 매년 15마리 정도를 자연에 돌려보낸다. 몸에는 소형 위치추적기를 달아 2∼3주 정도 움직임을 파악한다. 지난해에는 방생한 암컷과 야생 수컷이 교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일권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장수하늘소는 중남미에도 분포해 지구 형성 초기 판게아 대륙이 갈라졌다는 증거가 되는 중요한 곤충”이라며 “광릉숲은 장수하늘소 절멸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광릉숲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에 ‘광릉’이 붙은 곤충도 있다. 2017년 3월 서어나무 고사목에서 광릉왕맵시방아벌레 10여 마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맵시방아벌레류는 서어나무에서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데, 그동안 일본 산간 지역에서 발견돼 일본 특산종으로 알려졌다가 국내 서식이 확인됐다. 맵시방아벌레는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유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릉왕모기는 다른 모기에 비해 몸집 크기가 두 배 이상 크다. 애벌레(장구벌레)는 나무구멍이나 지표면의 고인 물에 서식하며 다른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고 자라 ‘모기를 먹는 모기’로 유명하다. 초록하늘소는 1986년 광릉 채집 기록 이후 29년 만인 2016년에 다시 발견됐다. 이처럼 광릉숲에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 281종 가운데 21종이 서식한다. 조류 6종, 곤충류 6종, 포유류 4종, 파충류 2종, 양서류, 육상식물, 고등균류(버섯) 각 1종씩이다. 산림 생태계 안정에 필요하고 학술적 가치가 높아 우선 보호해야 하는 특별산림보호대상 53종 가운데 광릉골무꽃, 참작약 등 식물 2종과 노란달걀버섯, 산호침버섯, 연기색만가닥버섯, 잎새버섯, 자흑색불로초, 차가버섯 등 버섯 6종이 광릉숲에서 자란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유럽에서 서방 무기를 활용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대대적인 공세로 전쟁의 추가 기울자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을 향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8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 지점을 공격하면 안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무기는 제공하겠지만 당신들은 스스로 방어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셈”이라며 서방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군사기지 타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숄츠 총리 역시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상 모든 권한을 갖고 있고, 이를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동의의 뜻을 밝혔다. 양국 정상의 발언은 최근 여러 유럽 지도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4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나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 군사시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도 이달 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서방 무기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방은 앞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며 나토와 러시아의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경계해 무기 사용 제한 조건을 걸었다. 이 때문에 전쟁 2년 3개월여 동안 우크라이나는 자체 생산한 무인기(드론)로 러시아 영토 내 정유시설 등을 제한적으로 공격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무기 지원 공백을 틈타 러시아의 영토 점령이 거침없이 빨라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7일 AFP통신에 “서방이 제공한 무기를 러시아 영토 공격에 쓸 수 없다 보니 러시아가 전쟁에서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의 ‘큰손’인 미국은 이날 “현재 시점에서 우리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당장 전략이 바뀔 가능성은 낮지만 유럽 지도자들이 계속 가세하며 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본토 공격론에 대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날을 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28일 “유럽 국가들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놀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며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은 러시아 영토 공격 전에 꼭 명심할 게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전술핵 등으로 반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다음 달 6∼9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대표 극우 여성 정치인인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의원(56)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47)에게 연대 러브콜을 보냈다. ‘극우 여걸’로 불리는 두 정치인이 손을 잡을지 주목받고 있다. 르펜 의원은 26일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단결해야 할 때”라며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큰 정치그룹이 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공식 연대를 제안했다. 르펜 의원이 이끄는 RN은 유럽의회 내에서 일종의 교섭단체인 ‘정체성과 민주주의(ID)’에 속해 있다. 또 다른 이탈리아 극우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 전 부총리의 ‘동맹’ 또한 ID에 속해 있다. 이곳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이탈리아형제들(FdI)’ 또한 들어오라고 손짓한 것이다. 이 제안은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이 ID를 떠난 직후에 나왔다. ID는 최근 나치 친위대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AfD 의원 9명을 제명했다. 이에 따른 빈자리를 FdI를 통해 채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멜로니 총리가 르펜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멜로니 총리는 26일 관련 질문을 받고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현직 총리라는 자신의 위치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반면 2027년 프랑스 대선에서 집권을 노리는 르펜 의원은 멜로니 총리와의 연대를 통해 세력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상당하다. 두 사람은 모두 반(反)이민 정서를 자극하는 민족주의적 발언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차이점도 있다. 르펜 의원은 RN의 전신 ‘국민전선’의 창립자인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의 딸이다. 멜로니 총리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주요국 지도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독일을 국빈 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6일 베를린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만났다. 두 정상은 유럽 곳곳의 극우 세력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연대를 촉구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명품 매장들이 점령한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 드립니다.”(마르크앙투안 자메 샹젤리제 상인협회 대표)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명소인 샹젤리제 거리가 거대한 카펫이 깔린 소풍 장소로 변신했다. 프랑스 문화와 예술의 상징이던 상젤리제는 최근 명품 매장과 관광객들이 가득한 거리로 바뀌었지만, 모처럼 파리시민들이 즐길 행사가 펼쳐진 것이다. 개선문 앞에서 콩코르드 광장 방향으로 길이 약 216m, 너비 약 20m의 재활용 섬유로 만든 대형 체크무늬 카펫이 거리에 깔리자, 시민 약 4000명이 몰려 무료로 제공된 샌드위치와 음료 등을 즐겼다. 시민들에겐 유명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단골 식당으로 알려진 ‘푸케’와 마카롱집 ‘라뒤레’ 등 샹젤리제 거리 유명 음식점 8곳의 대표 메뉴가 제공됐다. 이날 행사는 LG전자가 무드업 인스타뷰 냉장고의 현지 판매에 맞춰 마련한 대규모 이벤트다. 파리시와 샹젤리제 상인협회는 매달 한 번씩 일요일에 샹젤리제 거리의 교통을 통제하고 행사를 연다. 이날은 LG전자가 홍보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LG전자가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에 출시한 무드업 인스타뷰 냉장고는 발광다이오드(LED) 도어 패널에 최대 17만 가지 색상 조합을 적용할 수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올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나가 되면 잘 이겨낼 수 있다.”(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양국 관계는 늙지도 젊지도 않고, 유럽을 위해 살아 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독일이 24년 만에 프랑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26일, 두 정상은 독일 대통령 관저가 있는 베를린 벨뷔 궁 앞에 함께 서서 양국의 연대를 강조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패전으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6월 6일)을 열흘 앞두고 당시 공격을 가한 연합국 중 한 곳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이했다.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독일과 프랑스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서로 원한이 층층이 쌓였고, 현재는 유럽 최대 라이벌로 주요 현안마다 정상 간 기싸움을 벌이는 관계다. 그럼에도 11월 미국 대선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을 위협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과 유럽의회 선거(6월 6∼9일)를 앞두고 극우 세력의 약진 조짐에 연대를 과시한 것이다. ● 마크롱, 연합군 폭격받은 성당서 연설 프랑스 대통령이 국빈 방문으로 독일을 찾은 것은 2000년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초 지난해 7월 독일 국빈 방문을 계획했지만 프랑스에서 알제리계 청년 사망 사건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며 취소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흘간의 방문 일정 중 첫날 독일 헌법(기본법) 제정 75주년 기념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2차대전의 패배 경험과 반성을 바탕으로 1949년 만든 헌법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다. 독일이 자신의 과오를 드러내는 자리에 프랑스 원수를 불러 각별한 우정을 드러내려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 28일에는 동독 드레스덴과 서독 뮌스터를 각각 방문한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연설하는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는 1945년 연합군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재건된 곳이라 의미가 깊다. 마크롱 대통령과 의원내각제 국가인 독일의 실권자 올라프 숄츠 총리 간 정상회담도 예정됐다.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에 대해 “양국 간 우정의 깊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 관계는 유럽에 없어선 안 되는 중요한 요소”라며 “지난 수십 년간 양국 문제에 관한 말이 많았지만 우리는 함께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갈등 뒤로하고 美-中 위협에 공동 전선 유럽연합(EU)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갈등의 순간이 많았다. 젊으면서 돌출적인 마크롱 대통령과 노숙하면서도 신중한 숄츠 총리가 너무도 다른 리더십으로 삐걱거린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표적으로 숄츠 총리는 미국 중심의 안보 체제를 여전히 우선시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방위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거듭 언급하고 있는데 숄츠 총리는 이에 “독일은 그럴 계획이 없다”며 냉랭하게 대응했다. 어색한 관계 속에서도 양국이 우정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대외적으로 위협 요인이 산재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 국가는 올해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유럽 공동안보 체제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대책을 고심 중이다. 중국의 과잉 생산과 밀어내기식 수출에도 대응하기 위해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유라시아 그룹 싱크탱크의 유럽 담당 전무이사인 무즈타바 라흐만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양국 관계는 아직 어색하고 적대적”이라면서도 “(이번 방문은) 양국 관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시도”라고 평했다. 파리 소르본대의 독일 역사 전문가인 엘렌 미아르들라크루아 교수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양국은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유엔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공격을 즉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결정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파괴적 공격으로 세계에서 얼마나 고립됐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ICJ는 이날 오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심리에서 이같이 밝히며 이스라엘에 한 달 내에 후속 조처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와프 살람 ICJ 소장은 판결문을 낭독하며 “이스라엘은 (공격에) 대피하는 주민들이나, 이미 라파를 떠난 팔레스타인 주민 80만 명을 위해 식량, 물, 위생, 의약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법원은 이스라엘이 라파 공격으로 생긴 우려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ICJ는 인도적 지원을 위해 이스라엘에 이집트와 가자 사이의 라파 교차로를 열 것을 명령했다. 조사관들이 포위된 지역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이날 판결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달 10일 ICJ에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제지하기 위해 임시 조처 성격의 긴급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판사 15명으로 구성된 패널 중 우간다, 이스라엘 판사를 제외한 13명이 찬성했다. 로이터통신은 “ICJ가 명령을 집행할 수단은 없지만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파괴적 공격으로 세계적 비난을 받으면서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풀이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영국 집권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44)가 7월 조기 총선을 깜짝 발표했다. 보수당이 2010년 이후 14년째 집권 중이지만 최근 지지율에서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는 데다 7월은 통상 휴가철로 꼽히는 시기라 정치적 도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낵 총리는 22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영국이 미래를 선택할 순간”이라며 7월 4일 조기 총선 계획을 돌연 선언했다. 그는 찰스 3세 국왕과 만나 다음 총선을 위한 의회 해산을 요청했고, 찰스 3세가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총선은 내년 1월 28일까지 치르면 되지만 총리는 이를 앞당길 수 있다. 노동당은 이달 초 지방선거 압승을 바탕으로 조기 총선을 주장해왔고, 이 시점에서 총선을 치르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런데도 수낵 총리가 승부수를 던진 것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각해진 고물가가 최근 회복 조짐을 보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3% 상승하며 오름폭이 2021년 7월 이후 최저치였다. 경제가 호전되는 시점에 총선을 치러야 유리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보수당 내부에서도 혼란이 있는 모습이다. 한 보수당 의원은 BBC방송에 “경제가 막 좋아지고 있는데 조기 총선을 지금 발표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블룸버그통신은 보수당이 반전 승리를 노리는 게 아니라 인기가 더 떨어지기 전에 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62)는 조기 총선 발표 직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공유한 영상에서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라며 “답은 보수당의 5년을 더 연장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실패했다”고 말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세계 주요 선진국 정부에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단계에 걸쳐 검토 및 제어 장치를 두고 있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정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소한 결점이 지적돼 국민적 반발이 커지면 정책 전체가 좌초돼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책 취약점만 찾아내는 ‘레드팀’을 정부 내에 운영하는 미국, 외부 전문가 회의와 당정 회의를 상시로 열며 정책을 ‘크로스체크’하는 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 경고 전담 ‘레드팀’ 운영하는 美 미국은 정책의 취약점을 경고하는 ‘선의의 비판자’, 이른바 레드팀을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5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레드팀을 소집해 군사전략 관련 기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당시 레드팀은 이라크에 미군 증파를 검토하던 부시 전 대통령에게 “이라크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로 반군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는 등 전략 수정을 권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레드팀 역할을 맡겼다고 밝혔다. 레드팀 운영에도 정책 오판에 따른 실패가 발생하면 ‘핫 워시(Hot wash·뜨거운 세척)’로 불리는 내부 평가 절차를 거친다. 핫 워시는 문제 발생 직후 기억이 생생할 때 하는 사후 검토를 뜻한다. 군인들이 훈련이나 임무 직후 무기를 세척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데서 유래했다.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전 분야에 활용된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국방부의 장기간에 걸친 회의에도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미군 사상자 발생을 막지 못하자 정책 기획과 집행 과정에 대한 핫 워시 조사를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최악의 시나리오와 후속 조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내용의 사후 보고서를 펴냈다.● 日·佛 등에선 ‘사전 여론 탐색’ 상시화 일본 정부의 정책 추진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 회의와 여당 내, 여당과 정부 간 다양한 회의체를 가동한다.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지지율이 떨어지면 의원내각제 특성상 임기와 상관없이 언제라도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작된 방위비 인상이 대표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2021년 10월 총선에서 ‘방위력 정비계획’ 조기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 발표 수개월 전 언론에 정책 내용을 흘리며 사전 여론 탐색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그해 말 국회에서 “향후 1년에 걸쳐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1월 ‘유식자(有識者) 회의’라는 외부 전문가 회의체를 가동했다. 자민당 내 정책조정심의회, 총무회, 당정 회의 등은 상시적으로 열렸다.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정책이 추진된 게 그해 12월이다. ‘방위비 인상’이라는 정답을 정해 놓고도 1년 넘게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프랑스 정부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민 참여’ 제도를 두고 있다. 시민 참여 제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첫 집권 때인 2019년 11월 신설된 총리실 산하 ‘시민 참여를 위한 부처 간 센터(CIPC)’가 담당한다. CIPC는 의견 수렴을 위한 플랫폼인 홈페이지에 “시민들은 개혁정책, 공공정책,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유럽연합(EU)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포괄적인 인공지능(AI) 기술 규제법인 ‘AI법(AI Act)’을 최종 승인했다. 이로써 11월부터 EU 27개 회원국에선 실시간 안면 인식을 한 뒤 프로파일링을 하는 등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지닌 AI 서비스가 모두 금지된다. 내년엔 인간 수준의 사고력을 지닌 범용인공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 대한 규제도 시행된다. 세계 주요국들도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맞춰 다양한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 및 사용’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중국은 지난해 8월 생성형 AI로 국가 전복, 테러 조장을 하는 콘텐츠를 만들 경우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한국은 AI 규제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1년 넘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계류된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기반 조성에 관한 법안’(AI기본법안)은 29일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EU, 인권침해적 AI 서비스 11월 규제 EU 교통·통신·에너지이사회는 21일(현지 시간) “AI법을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2021년 초안이 발의된 지 3년 만으로, 올 3월 EU 의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AI법을 통과시킨 뒤 법안 수정 등 절차를 거쳐 이날 확정했다. 이 법은 AI 기술을 위험 수준에 따라 4단계로 나눠 규제한다. 최고 단계인 ‘허용될 수 없는 위험’부터 ‘고위험’ ‘제한적 위험’ ‘저위험’ 등이다. 인권침해적 AI 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6개월 뒤인 11월부터 시작된다. 스마트폰 안면 인식 결제 시스템처럼 사람 얼굴을 촬영해 이용자의 성적 취향, 정치·종교적 신념, 인종 등 민감한 정보를 알아내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AGI 규제는 내년 5월경부터, 관련된 모든 규제가 시행되는 건 2026년 중반으로 전망된다. 법을 위반할 경우엔 해당 회사 세계 매출의 최대 7%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벌금 상한선은 3500만 유로(약 517억 원)다. EU는 AI법 시행을 위해 회원국에 ‘AI 사무국’을 두고 시행을 지원하는 과학 전문가 패널을 둘 예정이다.● 韓, ‘AI 기본법안’ 21대 국회 문턱 못 넘어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첫 AI 규제에 해당한다. 해당 명령에 따라 기업들은 AI 개발 단계부터 취약점을 찾아 안전성 테스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보고엔 AI가 안보에 어떤 위협을 끼칠 수 있는지도 포함되도록 했다. 미국은 지난달 26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이 참여하는 ‘AI 안전보안이사회’도 출범했다. AI 개발을 지원하는 빅테크들이 AI의 위험에 대한 책임도 지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지난해 기준 15개 주가 AI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1월 1차 AI 정상회의를 주최한 영국은 정부와 기업의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AI 규제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 기업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국은 AI 규제를 위한 기초 작업조차 국회에서 막혀 버렸다. AI 기본법안은 AI 산업 육성에 필요한 정부 전담 조직 신설과 연구개발(R&D) 지원, 규제 대응 등을 담고 있다. 이 법이 제정돼야 AI 기업 규제나 지원 등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지난해 2월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7개 법안을 병합한 대안이 과방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1년 3개월 동안 논의 없이 방치됐다. 21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21일 전체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안건에 대한 여야의 견해차로 결국 무산됐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러시아가 2년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코앞에서 전술핵무기 훈련을 벌였다. 최근 수차례 ‘훈련 예고’로 위협했던 러시아가 21일 실제 훈련에 돌입하며 이번 전쟁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단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남부군관구에서 전술핵무기 준비 및 운용을 위한 훈련 1단계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남부군관구 미사일 편대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와 극초음속 장거리 미사일 ‘킨잘’ 등을 훈련에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군관구는 우크라이나 국경과 맞닿은 러시아 남부 지역과 러시아가 편입을 주장하는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지역 및 크림반도를 관할하는 러시아 연방군이다. 우크라이나와 현재 전쟁을 벌이는 격전지 바로 앞에서 핵 훈련을 벌인 셈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훈련은 서방의 도발적 발언과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시사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이 “우크라이나가 영국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6300여 기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2000기가 전술핵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이스칸데르 같은 단거리미사일을 이용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국경을 맞댄 폴란드나 벨라루스, 약 600km 떨어진 독일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훈련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핵무기 카드를 꺼내든 가장 분명한 경고”라고 평했다. 러시아는 최근 미국 등의 위성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공격 위성(anti-satellite)’도 발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16일 새로운 대(對)우주 무기로 보이는 저궤도 위성을 발사했다”며 “미국은 우주 영역을 보호하고 방어할 준비가 돼야 한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인구 1200명 남짓 사는 작은 마을에 매년 숲을 보겠다고 1만 명씩 오니 ‘효자 숲’이죠.” 지난달 30일 강원 양구군 해안면 ‘비무장지대(DMZ) 펀치볼 숲길’ 근처에서 만난 이 지역 토박이 주민이자 숲밥 운영자 중 한 명인 박옥근 대표(63)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국내 최북단 민간인통제선 내 유일한 숲길이다. DMZ와 백두대간 생태축이 교차하는 분지 형태의 특수 지형이다. 화채그릇(Punch Bowl·펀치볼)을 닮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역사적, 생태적으로 관광 가치가 높은 숲길로 입소문이 나면서 탐방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방문객이 1만 명에 이른다. 2022년 기준 양구군 일대와 같은 국내 산촌의 89.5%는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양구군은 DMZ 숲길로 인구소멸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DMZ 숲길은 강원도 지역경제에 연간 약 63억 원의 직간접적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운영 관리비와 숲길 등산지도사 인건비 등에 필요한 예산 3억3700만 원 대비 19배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내는 셈이다.● ‘숲밥’으로 연간 매출 5800만 원 올려 DMZ 펀치볼 숲길에는 길목마다 발길을 멈추고 꽃을 유심히 바라보는 탐방객이 많았다. 탐방객 원명옥 씨(68)는 “발길이 뜸해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 못 본 야생화가 많이 피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원 씨를 비롯한 탐방객 38명은 숲 해설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연둣빛 봄옷으로 갈아입은 숲을 만끽했다. 이곳은 지금도 미확인 지뢰가 남아 있어 숲길 등산지도사가 동행해야만 탐방할 수 있다. 하루 탐방객도 200명으로 제한된다. 그 대신 금강초롱 등 희귀식물과 산양, 삵 같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숲길은 DMZ 인근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한계 탓에 개발이 제한됐던 이곳 주민들에게 알짜배기 관광 수입원이 됐다. 특히 탐방 코스 중간에 출장 뷔페 형식으로 제공되는 ‘13찬 숲밥’은 DMZ 숲길의 대표 먹거리이자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숲밥은 사단법인 DMZ 펀치볼 숲길이 해안면 2, 3개 농가와 계약을 맺고 판매한다. 연평균 5800만 원에 달하는 전체 매출액의 5%는 법인에 가고 나머지는 숲밥을 제공한 주민 수익으로 돌아간다. 판매 가격은 1만 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기회로 농수산물 택배 판매 활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숲밥 먹으러 1년에 5번 찾아온 손님도 있을 정도라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산림청은 DMZ 숲길처럼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숲 가운데 지역사회의 발전 자산으로 육성 가능성이 있는 숲을 ‘100대 명품 숲’으로 지난해 지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촌 지역에 있는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숲, 전남 장성군 편백숲은 매년 각각 336억 원, 274억 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구소멸 지역이 매년 30만 명 찾는 관광지로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숲은 지역 인구 3만여 명의 10배가 넘는 32만 명이 연평균 방문할 정도로 관광객이 몰린다. 자작나무숲은 줄기와 잎이 하얗게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보여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관련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자작나무숲 작은 음악회, 숲속 음악회에는 매년 1000여 명이 참여한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 단위 방문객은 유아 숲 체험원에서 숲속 교실, 인디언집 등 자연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재방문율이 높고 주말에는 평균 1690명 넘게 찾는 명소다. 자작나무숲이 지역의 대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방문객 대부분 숲 한 곳만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춘천, 양구 등 인근에 있는 다른 지역을 찾는 것도 지역경제에 청신호다. 다만 전문가들은 관광 숲 수목 보호를 위한 휴식 시간을 적절히 확보해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제 자작나무숲은 국립공원 및 산림청 국유림 중에서도 면적(6ha) 대비 방문객 밀도가 높은 수준이다. 방문객이 집중되는 구역을 중심으로 토양 답압(踏壓·밟는 압력) 피해나 자작나무 껍질 훼손 등이 발생하고 있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자연의 활용과 보전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명품 숲’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강원 평창군 ‘봉평 잣나무숲’은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 잣송이 줍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과 숲속 야영장으로 이름났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잣나무와 트레킹 코스가 어울리는 가볼 만한 장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치유의 숲’은 60년 이상 된 삼나무와 편백 숲길을 따라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다. 차룽치유밥상 등 지역 상생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 효과도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킬러 콘텐츠’가 숲과 함께 어우러져야 침체한 지역사회를 되살린다고 입을 모았다. 그 숲에 가야만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핵심 콘텐츠가 있어야 두고두고 찾는 명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경남 거창군 ‘거창 북상 잣나무숲’은 1973년부터 산림녹화에 힘쓴 모범 독림가(篤林家)가 육성한 숲이다. 임업 노하우와 경험담을 산림 분야 대학생 등에게 전파하는 현장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남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과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한 덕에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연간 방문객 67만 명을 유치하고 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숲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100대 명품 숲’ 각각의 특색을 잘 큐레이션해야 하고, 지금의 아름다운 숲이 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로 잘 풀어내면 ‘이것 때문에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사업가들이 귀농·귀촌해서 산림관광 활성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예를 들어 국내 숲 관광지 중에는 강원 인제군 곰배령 야생화 단지처럼 왕복으로 오가는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원래 머물던 지역으로 운송해주는 서비스 등을 도입해 일자리 등을 새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숲 해설가, 숲 유치원, 숲 초등학교, 탐방객에 대한 도시락 제공 등 숲을 매개로 하는 사업 아이템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졌다”며 “지역 주민들이 숲 공간을 경제 활동과 연계된 하나의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방문 둘째날인 17일에 하얼빈을 찾아 양국의 경제·군사 협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미국은 “양손에 떡을 쥘 순 없다(can‘t have its cake and eat it too)”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과거 러시아의 조차지(租借地)였던 하얼빈은 러시아 양식 건물이 즐비하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헤이룽장성의 행정 수도로 양국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곳에서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군사대학인 하얼빈공업대학(HIT)도 방문했다.푸틴 대통령은 이날 세계2차대전 당시 중공군과 함께 싸우다 숨진 소련군 전사자 기념비에 헌화하며 하얼빈 일정을 시작했다. 이후 제8회 ‘러시아-중국 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참가자들은 양국의 막대한 경제적 잠재력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서면 축사에서 “이 박람회는 양국 경제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플랫폼”이라고 화답했다.2004년 시작된 엑스포는 해마다 양국이 번갈아 개최해왔다. 올해는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1400개 이상 기업이 참가했으며, 최근 러시아와 우르라이나 전쟁에서 주목받은 무인기(드론)도 전시됐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중러 과학자들이 개발한 소형 ‘나비’ 드론은 공중에 던지면 내부 칼날이 날개처럼 펼쳐지는 형태”라고 소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이 서방 제재에 맞서 협력하고 있단 사실을 부각시켜 노력했다. 그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우리의 전략적 동맹이 계속 강화될 것을 확신한다”며 “러시아는 중국 기업과 도시에 친환경적이고 저렴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미국은 양국의 협력 강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논평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도와) 유럽 안보 위협을 부추기면서, 유럽 등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북한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이 중-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나라가 북한의 불안정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되레 한반도 긴장 고조를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같은 미국의 도발 탓으로 돌린 것이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관세 폭탄’ 등으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재를 겪고 있는 러시아의 정상은 이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국제사회에 밀착을 과시했다. 특히 ‘신뢰할 수 있고 적절한 안보 구조’를 건설하는 방안을 거론하며 미국에 맞설 안보협력체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냈다.● 習 “오랜 친구”, 푸틴 “우리 협력은 견고” 시 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찾은 푸틴 대통령에게 “내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중국 국빈 방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러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며 “중국은 언제나 러시아와 함께 좋은 이웃, 친구, 동반자가 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협력은 기회주의적이지 않고, 누군가를 해하지도 않는다”고 화답했다. 미국이 패권을 추구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단어 7000개 분량의 공동성명에서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바꾸려는 미국의 패권적 행위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은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낳을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략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언급하며 “남중국해의 안정 문제에 대한 역외 세력의 간섭에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 안보협력체에 맞서 새로운 안보협력체를 만들 수 있다는 뜻도 시사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새로운 안보 프레임 구축’에 대해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우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폐쇄적인 군사정치 동맹에 속하지 않는, 신뢰할 수 있고 적절한 안보 구조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美 주도 제재에 맞서 ‘경제 연대’ 강조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적 연대’에도 방점을 찍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중국의 자동차 생산 능력을 칭찬하며 “공정한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동차 생산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밀어내기’식 헐값 수출을 문제 삼아 14일 중국산 전기차 등에 100%에 이르는 ‘관세 폭탄’을 부과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이날 회담에도 외교·안보수장뿐 아니라 경제 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르 노바크 에너지·경제 지원·제재 부총리와 러시아 금융시장을 통제하는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 등이 나왔고, 중국에서는 ‘경제 실세’로 불리는 허리펑(何立峰) 부총리와 딩쉐샹(丁薛祥) 상무부총리 등이 함께했다. 두 정상은 또 “세계무역기구(WTO),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 다자기구들이 정치화됐다”면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김이 큰 다자기구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비시장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외교무대에서 두 나라가 공조 강화를 예고한 것이다. 시 주석은 7개월 만에 중국을 찾은 푸틴 대통령에게 현지 음식과 중국 전통주 등으로 극진하게 대접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만찬에는 베이징덕 오리구이, 전복 소스를 곁들인 야채, 농어를 넣은 새우죽 등이 나왔다. 또 중국 전통주인 마오타이주가 곁들여졌다. 만찬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군악대는 러시아 군가 등도 연주했다.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북한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이 중-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나라가 북한의 불안정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되레 한반도 긴장 고조를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같은 미국의 도발 탓으로 돌린 것이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관세 폭탄’ 등으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재를 겪고 있는 러시아의 정상은 이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국제사회에 밀착을 과시했다. 특히 ‘신뢰할 수 있고 적절한 안보 구조’를 건설하는 방안을 거론하며 미국에 맞설 안보협력체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냈다.● 習 “오랜 친구”, 푸틴 “우리 협력은 견고”시 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찾은 푸틴 대통령에게 “내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중국 국빈 방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러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며 “중국은 언제나 러시아와 함께 좋은 이웃, 친구, 동반자가 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협력은 기회주의적이지 않고, 누군가를 해하지도 않는다”고 화답했다. 미국이 패권을 추구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단어 7000개 분량의 공동성명에서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바꾸려는 미국의 패권적 행위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은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낳을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략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언급하며 “남중국해의 안정 문제에 대한 역외 세력의 간섭에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 안보협력체에 맞서 새로운 안보협력체를 만들 수 있다는 뜻도 시사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새로운 안보 프레임 구축’에 대해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우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폐쇄적인 군사정치 동맹에 속하지 않는, 신뢰할 수 있고 적절한 안보 구조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美주도 제재에 맞서 ‘경제 연대’ 강조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적 연대’에도 방점을 찍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중국의 자동차 생산 능력을 칭찬하며 “공정한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동차 생산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밀어내기’식 헐값 수출을 문제 삼아 14일 중국산 전기차 등에 100%에 이르는 ‘관세 폭탄’을 부과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이날 회담에도 외교·안보수장뿐 아니라 경제 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경제 지원·제재 부총리과 러시아 금융시장을 통제하는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 등이 나왔고, 중국에서는 ‘경제 실세’로 불리는 허리펑(何立峰) 부총리와 딩쉐상(丁薛祥) 상무부총리 등이 함께 했다.두 정상은 또 “세계무역기구(WTO),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 다자기구들이 정치화됐다”면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 맞게 개혁해야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김이 큰 다자기구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비시장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외교무대에서 두 나라가 공조 강화를 예고한 것이다. 시 주석은 7개월 만에 중국을 찾은 푸틴 대통령에게 현지 음식과 중국 전통주 등으로 극진하게 대접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만찬에는 베이징덕 오리구이, 전복 소스를 곁인 야채, 농어를 넣은 새우죽 등이 나왔다. 또 중국 전통주인 마오타이주가 곁들여졌다. 만찬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군악대는 러시아 군가 등도 연주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당신은 멋지고 건강해보여요. 비결이 무엇인가요?”몇 년 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이런 질문이 올라오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두 단어로 답했다. ‘단식’, 그리고 ‘위고비’.머스크 덕분에 더욱 유명세를 탄 위고비는 체중 감량 효과를 낳는 비만치료제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어 아직 국내 소비자에겐 낯설다. 국내에선 아직 미지의 세계이지만, 해외에선 치료 효과가 쏠쏠한 것으로 알려지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매출이 치솟아 위고비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덴마크 기업 노보노디스크는 유럽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우뚝 섰다.● 미국에서 180만 원대에 판매유럽연합(EU) 의약청에 따르면 위고비는 체중 감량을 돕는 약품으로 비만, 과체중, 당뇨 및 고혈압 등의 문제가 있는 성인에게 사용된다. 일주일에 한 번 투약하면 1년 만에 체중이 최대 17%가량 감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체중 감량 효과와 관련해 최근 주목을 끈 연구 결과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보노디스크는 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유럽 비만학회에서 위고비를 접종한 환자들이 치료 4년 뒤에도 평균 10%의 체중 감소를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위고비는 체중 감소 효과와 함께 부작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복통, 현기증과 함께 알려지진 않은 장기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사용을 중단한 사람들도 많다. 네이처 뉴스에 따르면 2021년 위고비 사용을 시작한 환자의 약 3분의 2는 1년 이내에 약물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체중 감소 효과가 워낙 귀하다 보니 환호하는 이들이 많다.위고비는 현재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영국 아이슬란드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를 승인한 만큼 출시가 점쳐지고 있다.비싼 가격은 항상 비판을 받고 있다. 위고비의 판매정가는 미국의 경우 1349달러(약 180만 원)나 된다. 영국 판매가의 약 14배 수준이다. 경쟁업체들이 악착같이 뒤쫓아 비만치료제를 개발하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긴 하다. 카르스텐 문크 크누드센 노보노디스크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이달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제약사인 일라이릴리 등과의 경쟁이 심해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 증대에 나서며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업가치, 덴마크 GDP를 넘어서위고비의 두드러진 매출 증대로 노보노디스크는 시가총액이 5700억 달러(약 770조 원)를 넘게 됐다. 이는 2022년 기준으로 4002억 달러(약 540조 원)인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훌쩍 넘어선다. 이 기업의 대주주인 노보노디스크 재단의 규모는 게이츠 재단의 두 배에 달하며 세계 최대 규모가 됐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에서도 이 기업은 시가총액 1위가 됐다. 세계적인 명품 대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시총을 지난해 이미 훌쩍 넘어섰다. 이어 올해 3월엔 미국 테슬라의 시총까지 추월했다.위고비가 세계적 스타처럼 급부상하다 보니 노보노디스크가 신생 혁신기업처럼 보일 법하지만 사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덴마크에서 1923년 노벨상 수상자 아우구스트 크로그가 동료 과학자이자 당뇨병 환자였던 부인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부부는 캐나다를 여행하다가 황소 췌장에서 추출된 인슐린 제제(製劑)를 구입해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당뇨병 치료 효과를 실험하게 됐다. 이 제제를 구입할 당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구입하게 돼 약품의 수익금을 의료 연구 전용 기금으로 축적했다. 이 기금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보노디스크 재단으로 발전했다.노보노디스크의 성공 비결로는 공동체적이고 인간적인 덴마크의 직장 문화와 수십 년간 당뇨병에만 집중한 집념이 꼽힌다. 이 두 요소가 단기 연구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줬다.● 제2의 노키아 리스크 부르나노보노디스크의 성공은 덴마크 경제에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회사의 성공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가의 경제가 불어났지만 국가 경제가 지나치게 노보노디스크에 의존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노키아 리스크’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핀란드의 통신 대기업 노키아가 2000년대 초반 붕괴하며 핀란드 경제를 위축시킨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버지니아대의 허먼 마크 슈워츠 교수는 블룸버그통신에 “노보노디스크가 덴마크 경제 성장을 계속 주도한다면 노보노디스크의 이익이 줄어들 때 덴마크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며 “그리고 이익은 줄어들긴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