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진

최훈진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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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건축디자인 기사를 씁니다. 많이 보고, 듣고, 묻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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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8-28~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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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추문’ 고은 시집, 판매 재개했다 논란 일자 중단

    실천문학사가 올해 초 비판 여론에 서점 공급을 중단했던 고은 시인의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이달 초부터 온라인 서점을 통해 다시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이 같은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출판사 측은 ‘무의 노래’ 판매를 다시 중단했다. 교보문고, YES24 등에 따르면 실천문학사는 이달 4일부터 두 책의 판매를 재개했다. 고 시인이 여전히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도 슬쩍 판매가 재개됐다는 비판이 나오자 7일 출판사는 ‘무의 노래’의 도서 상태를 다시 ‘일시 품절’로 변경했다. ‘고은과의 대화’는 이날 오후 현재 여전히 판매 중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문단의 상징적 존재였던 고 시인의 행위로 상처 입은 이들에게 사과 없는 복귀는 2, 3차 가해”라며 “출판사는 책의 공급을 재개하기 전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의 노래’와 ‘고은과의 대화’는 2018년 성추행 의혹이 폭로되면서 활동을 중단한 고 시인이 지난해 12월 20일 출간한 신작이다. 고 시인의 ‘사과 없는 복귀’에 대해 문단 안팎에서 비판이 일자 실천문학사는 올 1월 20일 두 책의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 출판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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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추문’ 고은 시집, 공급중단 석달만에 슬그머니 재판매

    실천문학사가 올 초 비판 여론에 서점 공급을 중단했던 고은 시인의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이달 초부터 온라인 서점을 통해 다시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 시인이 여전히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도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슬쩍 판매를 재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보문고, YES24 등에 따르면 실천문학사는 이달 4일 인터넷 서점 구매팀에 “공급 중단이었던 ‘무의 노래’, ‘고은과의 대화’를 4월을 맞아 출고하기로 했으니 많은 주문 부탁 드립니다”라는 e메일을 보내고 판매를 재개했다. 7일 고 시인의 도서가 판매 중인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실천문학사는 ‘무의 노래’의 도서 상태를 다시 ‘일시 품절’로 변경했다. ‘고은과의 대화’는 이날 오후 현재 여전히 판매 중이다. 인터넷 서점 관계자는 “도서 판매 여부는 출판사의 권한”이라고 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문단의 상징적 존재였던 고 시인의 행위로 상처 입은 이들에게 사과 없는 복귀는 2, 3차 가해”라며 “출판사도 책의 공급을 재개하기 전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무의 노래’와 ‘고은과의 대화’는 2018년 성추행 의혹이 폭로되면서 활동을 중단한 고 시인이 지난해 12월 20일 출간한 신작이다. 고 시인의 ‘사과도 해명도 없는 복귀’에 대해 문단 안팎에서 비판이 일고, 출판사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이자 올 1월 20일 윤한룡 실천문학사 대표는 “여론의 압력에 출판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날 때까지” 두 책의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이날 판매 재개에 대한 실천문학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최훈진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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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랑시문학상에 김선태 ‘짧다’… “남도의 서정-가락 만개”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0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김선태 시인(63)의 시집 ‘짧다’가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오세영, 서정춘, 이형권 시인은 최종 후보작 5개 중 김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수상작은 쉽고 함축적인 언어로 강렬한 깨달음과 울림을 전한다. ‘밥그릇과 무덤은 닮았다/밥그릇을 엎으면 무덤이 되고/무덤을 뒤집으면 밥그릇이 된다/엎었다 뒤집다를 반복하는/우리들 생사의 리듬/밥그릇과 무덤을 합하면 원이다/둥글게 돌아간다’(시 ‘밥그릇과 무덤’ 중)라고 쓴 시구가 대표적이다. 김 시인은 5일 전화통화에서 “밥그릇과 무덤의 모습이 닮은 데서 착안한 시다. 삶과 죽음은 둥글게 돌아간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에 나타난 김 시인의 시적 확장성에 주목했다. 그동안 김 시인이 추구해 온 전통적인 시 세계와 구분되는 새로움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짧다’라는 제목처럼 시집에 실린 시의 형식이 현격히 짧아진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평생토록 지은 집이/못마땅해 부숴 버렸더니/비로소 마음에 드는 집이 생겼다…정신의 뼈대만 앙상한 집이/없으니까 있다’(시 ‘있다’ 중)처럼 대체로 5행 내외다. 심사위원들은 “다변의 시대에 말을 아끼는 시법(詩法)은 그 자체로 새롭다”며 “시집에 실린 시 ‘있다’에서 보이는 자아에 대한 역설적 인식이나 시 ‘단짝’에서 간명하면서도 따사롭게 그린 봄 풍경, ‘밤낚시·2’에서 드러난 우주적 상상과 결합한 세련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짧은 시형(詩型)에 대해 “시 본래의 진정성과 의의를 되찾고 바쁘게 흘러가는 지금 시대에 시를 잃지 말고 살아가자는 의도였다”고 했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남도의 서정과 토속적 언어에 천착해 왔다. 심사위원들은 “김영랑에서 송수권, 고재종 등으로 이어지던 남도의 서정과 가락이 김선태에 와서 다시 만개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중학교 1학년 때 영랑 시집을 읽으며 처음 시를 습작했고, 영랑과 같은 순수 서정시인이 되길 꿈꿔 왔다”며 “뛰어난 가락, 섬세한 언어의 운용, ‘촉기(눈빛 등에서 느껴지는 생기와 재기)의 미학’ 등 영랑 시의 남도적 특징으로부터 시 작법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가장 받고 싶었던 상을 받아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목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와 원광대에서 각각 국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 시인은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제9회 시작문학상(2017년)과 제4회 송수권시문학상(2018년)을 수상했다. 시집 ‘간이역’ ‘작은 엽서’ ‘동백숲에 길을 묻다’ ‘살구꽃이 돌아왔다’ ‘그늘의 깊이’ ‘한 사람이 다녀갔다’ ‘햇살 택배’ 등을 펴냈다. 문학평론집으로는 ‘풍경과 성찰의 시학’ ‘진정성의 시학’ 등이 있다. 시상식은 14일 오후 3시 전남 강진군 영랑생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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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전의 김지하 “한류 열풍은 恨의 그늘서 피어난 ‘흰’ 신명”

    “한류 미학의 핵심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이 컴컴한 질병과 죽음의 시대가 요구하는 치유의 예술, 치유의 약손입니다. 대혼돈 속에서 신음하는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일체를 다 같이 거룩한 우주공동체로 들어 올리는 모심의 세계문화대혁명, 이를 위한 아시아 네오 르네상스의 미학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고 김지하 시인(1941∼2022)이 2016년 5월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문학평론가)와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권위주의 시대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었으며 생명사상가, 미학이론가로 족적을 남긴 김 시인과의 대담집 ‘김지하 마지막 대담’(도서출판 작가·사진)이 고인의 1주기(다음 달 8일)를 앞두고 최근 출간됐다. 책은 2003∼2017년 홍 교수와 고인이 8차례 벌인 대담 내용을 담았다. 김 시인은 대담에서 자신이 정립한 생명사상과 미학이론을 바탕으로 촛불시위, 한중일 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사안에 대한 의견을 냈다. 김 시인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응원, 2000년대 초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유행 등을 민족적 미학의 원형인 ‘흰 그늘’로 해석했다. ‘흰 그늘’은 굴곡진 삶에서 한(恨)을 인내하며 생겨나는 깊은 ‘그늘’과 그 속에서 ‘흰’ 빛, 즉 신명이 피어난다는 원리다. 김 시인의 미학이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을 함부로 흩어버리면 안 돼. 이를 악물고 견디고 참아야 해. 그러면서 삭혀야 해. 삭히고, 발효. 김치나 식혜처럼. 절에서 참선하는 중처럼. … ‘흰’ 빛이라는 것 자체가 불, 빛, 광명, 신명, 신바람으로서 아우라입니다. 그래서 그늘에 아우라가 플러스된 거예요.” 김 시인은 시를 생명 자체로 여겼다. “근본적인 시학 자체가 생명의 진행, 시간의 움직임, 변화 이런 것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지. 그걸 떠나면 시는 아무 가치가 없어. …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 숨겨진 것이 겉으로 드러나고 가시화되어 지각되는 것. 그게 진화고 생명이고 물질이지.” 홍 교수는 3일 전화 통화에서 “김지하 선생은 어떻게 하면 생명의 세계가 구현될 수 있는지에 가장 관심을 뒀다”며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1995년 김 시인을 처음 만나 20년 넘게 교분을 나누는 한편 그의 사상을 연구해 왔다. 대담집 출간 계기에 대해 “2016년쯤 김 시인의 사상에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간의 대담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다”며 “팬데믹 기간 만남이 차단된 데다 지난해 선생이 운명하면서 2017년 대담이 마지막이 됐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김 시인의 사상이 위기에 직면한 현대 사회에 빛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시인은 근대문명이 가져온 생명 가치 상실, 기후위기 등을 고민하며 대안을 찾아 나갔습니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김 시인의 사상이 출구를 제시해줄 겁니다.”(홍 교수)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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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하 “한류도 ‘흰 그늘’…질병·죽음의 시대가 요구하는 치유의 예술”

    ‘오적(五賊)’(1970년), ‘황토’(1971년), ‘타는 목마름으로’(1975년)…1970년대 김지하 시인(1941~2022)의 문학은 저항과 투쟁의 표상이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김 시인은 한일회담 반대 시위, 민청학련 사건 같은 시국 사건으로 수차례 투옥되면서 옥중에서 유불선(儒佛仙), 동학사상·생태학 공부에 몰두했다. 1980년대 석방 후엔 생명사상가, 미학이론가로서 족적을 남겼다. 다음달 8일 고인의 1주기를 앞두고 최근 김 시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김지하 마지막 대담’(도서출판작가)이 출간됐다. 20여 년간 김 시인을 연구해온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문학평론가)가 2003~2017년 고인과 8차례 대담한 내용을 쉽게 풀어 정리한 것이다. 김 시인의 시와 사상을 해설한 평론 2편도 함께 수록됐다. 홍 교수는 3일 전화통화에서 “2016년쯤 김지하 선생과 함께 그의 사상을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간 대담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다”면서 “팬데믹 기간 만남이 차단된 데다 지난해 선생이 운명하시면서 2017년 대담이 마지막이 됐다”고 했다. 저자는 1995년 김 시인을 처음 만나 20년 넘게 교분을 나눴다. 그는 대담에서 김 시인이 정립해온 생명사상과 미학이론에 집중했다. 홍 교수는 “80년대 이후 선생께서는 생명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생명의 세계가 구현될 수 있는지에 가장 관심을 두셨다”면서 “생명을 중시한 민족 고유사상인 동학사상(1860년 창시)은 김지하 생명사상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동학에서는 ‘님을 높여서 부모 모시듯 친구 삼는다’는 말이 있다. 높이긴 높이는데 친구고 친군데 높인다 이 말이야. 그래서 님이라고 하는거야. 미의식의 핵심 안에서 모심이라는 윤리적이면서 철학적 태도가 있다.”(김 시인) 김 시인의 미학 이론의 핵심인 ‘흰 그늘’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흰 그늘’은 굴곡진 삶에서 한(恨)을 인내하며 생겨나는 깊은 ‘그늘’과 그 속에서 ‘흰’ 빛, 즉 신명이 피어난다는 이진법적 원리다. 대담에는 한류, 촛불시위, 남북관계 등 다양한 문화·정치적 현상에 대한 김 시인의 분석도 담겼다. 김 시인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이나 한류 열풍 등의 문화적 현상도 민족적 미학의 원형인 ‘흰 그늘’로 해석한다. 김 시인은 대담에서 한류 미학의 핵심에 대해 “이 컴컴한 질병과 죽음의 시대가 요구하는 치유의 예술, 치유의 약손”이라며 “‘흰 그늘’을 이에 대응하는 미학적, 문학적 담론의 원형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혼돈 속에서 신음하는 인격과 비인격, 생명과 무생명 일체를 다같이 거룩한 우주공동체로 들어올리는 세계문화대혁명, 이를 위한 아시아 네오 르네상스의 미학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김 시인) 홍 교수는 김 시인의 사상은 기후위기 등 인류가 현재 직면한 위기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16세기부터 서양을 중심으로 근대문명이 질주하면서 기후위기, 생명 가치 상실, 팬데믹 창궐 등이 심각해졌잖아요. 김 시인은 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아나갔던 분입니다. 우리가 그를 더 깊이 공부하고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김 시인의 사상이 출구를 제시하지 않을까요.”(홍 교수)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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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언론사 사이트 연결’ 자의적 차단 논란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를 통한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 연결을 자의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계와 정보기술(IT) 업계에선 기사를 통해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용자의 권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달 30일 뉴스 서비스 제휴 언론사를 대상으로 ‘뉴스 콘텐츠 제휴 약관 개정안’을 통보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뉴스 콘텐츠 관련 추가 정보 확인을 위해 (네이버가 아닌) 언론사 등 제3자의 인터넷 사이트로 연결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네이버는 약관 개정에 대한 사전 협의 없이 언론사들에 이달 30일까지 별도의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네이버 측은 인터넷 사이트 주소(URL)의 경우 연결되는 인터넷 사이트의 공익성 등 내용에 따라 금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기사에서 동영상, 웹 페이지 등 추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많이 활용되는 큐알(QR)코드 사용은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URL 표시에 대해 네이버가 허용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언론 자율성 침해가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등이 소속된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4일까지 각 사의 의견을 취합한 뒤 네이버에 의견을 전달하는 등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네이버, 이용자들이 더 많은 양질의 콘텐츠 볼 기회 막아” 언론사 사이트 연결 차단 논란인터랙티브 등 콘텐츠 혁신 저해… URL 표기 제한 객관적 기준 없어네이버 “어뷰징 막기 위한 조치”… 언론학자들 “명백한 편집권 침해” 국내 1위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가 자사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에 네이버가 아닌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주소(URL)나 큐알(QR)코드 등을 넣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네이버는 공익적 목적이나 독자가 뉴스를 더 깊게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URL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허용한다는 방침이지만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편집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QR코드를 원천 금지한다는 것도 뚜렷한 이유가 없어 독자들의 정보 접근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언론사 사이트 연결 금지는 콘텐츠 발전 저해” 최근 국내 주요 언론사들은 뉴스 소비자들이 3차원(3D) 그래픽, 음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뉴스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독자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사를 자사 홈페이지나 별도의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 서비스의 경우 줄글과 사진, 동영상 중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운용이 자유로운 다른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웹사이트를 일반 이용자들에게 안내하려면 보통 URL이나 QR코드가 사용된다. 희망 이용자에 한해 URL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거나 스마트폰으로 QR코드로 사진을 찍어 접속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네이버의 이번 조치가 독자들의 정보 접근성을 침해하고 언론사들의 콘텐츠 혁신 시도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도연 국민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최근 많은 언론사들이 양질의 프리미엄 콘텐츠를 QR코드를 통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네이버의 약관 변경은 언론사들이 현재 추구하는 전략을 꺾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네이버의 자의적 허용은 편집권 침해” 네이버는 이번 조치를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일부 언론사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URL 클릭을 유도하는 ‘어뷰징 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미 출고된 기사의 일부 내용만 별도로 노출 시키면서 다른 웹페이지에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등 이용자에게 혼란을 주는 행위를 막기 위해 약관의 내용을 기존보다 명확하게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론계와 학계에서는 이마저도 ‘어뷰징 행위’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한 데다 URL 허용 여부를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정하게 되면 문제라고 지적한다. 언론사의 편집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상업적인 목적의 인터넷주소나 QR코드가 있더라도 그에 대한 판단은 뉴스제휴평가위원회와 같은 거버넌스 체제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이뤄져야 한다”면서 “포털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상업성을 판단하겠다는 방침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메타 플랫폼인 네이버가 뉴스 기사의 인터넷주소나 QR코드의 사용 여부를 일괄적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랍다”면서 “이는 엄연히 편집권의 개입이고 포털에 그럴 권한은 없다”고 비판했다. 네이버는 기사 내에 어뷰징 의도가 없는 언론사 URL이나 취약계층 보조금 지급 사이트 등 공익적 목적의 URL이 들어가는 것은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고용우수기업 신청, 아이디어 공모전, 사업공고 등 다양한 사례에 해당 웹사이트의 URL을 안내하고 있다. 워낙 다양한 사례가 있어 공익성 여부를 판가름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 일방적 변경, 일괄 통보도 비판 네이버가 뉴스 유통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약관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이를 언론사에 일괄 통보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등이 속한 한국온라인신문협회(온신협)는 지난달 31일 네이버의 일방적인 약관 변경 통지 사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협회는 4일까지 각 사의 의견을 취합해 정리한 뒤 네이버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아웃링크 도입’ 의견 듣겠다더니… 손 놓고 있는 네이버 2월 아웃링크 운영 가이드 제안제휴사들 지나친 규제 반발 잇달아도입 연기하곤 협의-개선 없어 네이버는 사용자들이 자사 뉴스 서비스에서 다른 웹사이트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유지하며 ‘가두리 양식장’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언론계 안팎의 개선 요구가 커지자 지난해 11월 ‘아웃링크’ 도입 방침을 발표했다. 아웃링크란 언론사의 선택에 따라 네이버 이용자가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올 2월 네이버는 구체적인 아웃링크 운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론사 홈페이지 로그인 요구 금지’ 등 네이버가 언론사의 자체 서비스 영역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내용이 여럿 담겨 반발을 샀다.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등이 소속된 한국온라인신문협회(온신협)도 3월 6일 “편집권과 영업권이 침해되고 이중 규제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의견서를 냈다. 하루 뒤 네이버는 “제휴사, 언론 유관 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다시 숙고하고자 한다”며 아웃링크 도입 연기를 발표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일방적인 아웃링크 도입 연기 후에도 별다른 협의나 개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아웃링크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만나야 할 것 같았다”며 “다음 주부터 윤곽을 잡고 들으려고 하고, 여러 방식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가 외부 웹사이트 이동을 유도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한 약관을 추가로 내놓은 것이다. 그간 언론계와 정치권은 네이버의 언론사별 뉴스 서비스 등에 아웃링크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지난해 5월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자발적인 아웃링크 전환 유도’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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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어천은 시적 사유의 모태… 시 통해 위안받길”

    60년 전 대구 범어천은 논밭이던 도심을 가로질러 흘렀다. 겨울이면 물이 말라 자갈밭이 됐다. 당시 중학생으로 등하굣길 자갈을 밟으며 사색했던 정호승 시인(73)은 이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나는 왜 세상에 오게 됐나’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 ‘우리 집은 어째서 이토록 가난할까’…. 사춘기 소년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시와 만났다. 지난달 31일 대구에서 만난 정 시인은 “범어천은 나의 시적 사유의 근원이 되는 ‘모태(母胎)’와 같다”고 했다. 범어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날 정호승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정 시인이 자란 수성구 들안로 옛 범어3동의 행정복지센터 자리다. 복지센터가 이전하며 공실이 된 건물이 정 시인의 문학 세계를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454.76㎡(약 136평) 규모다. 문학관의 한쪽 벽면은 그가 유년기와 학창 시절 살았던 기와집 터를, 또 다른 한쪽 벽면은 범어천을 마주하고 있다. 외벽은 정 시인의 어린 시절 여름마다 범어천 둑 위로 흘러 넘쳤던 황톳물처럼 진한 붉은색으로 칠했다. 문학관 2층엔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으로 꼽히는 정 시인의 발자취가 담겼다. 정 시인이 지난해 8월 수성구(구청장 김대권)에 기증한 육필원고와 시집, 사진, 소장품 등 100여 점이 전시됐다. 그는 “가장 소중한 전시품을 꼽자면 1970년에 쓴 초기작의 육필원고”라고 했다.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로 시작하는 ‘첨성대’(瞻星臺·1973년)는 정 시인의 등단작이다. 그는 창비에서 처음 출간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에서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썼다. 모두 슬픔과 고통의 정서를 다뤘다. 정 시인은 “삶의 본질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남궁산 판화가가 2005년 제작한 정 시인의 장서표(藏書票·소유자를 나타내기 위해 책에 붙이는 표)에는 낙타 문양이 있다. 문학관에도 낙타 그림이나 공예품들이 전시됐다. 정 시인은 “광막한 사막 속 낙타를 보면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마주하는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 시를 쓰는 나를 보는 듯하다”며 “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다. 모든 전시물에 대한 설명은 정 시인이 쓰고, 다듬었다. 노래로 만들어진 정 시인의 시 약 80편을 감상하는 공간도 문학관에 마련됐다. 북카페인 1층에는 국내 다양한 시인들의 시집이 전시됐다. 지하는 강연, 콘서트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정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열네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를 펴냈다. 올해는 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비채)을 출간한다. “신작 시집이 나오고 6개월이 지난 요즘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배고프면 밥을 먹듯, 시인은 시를 써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죠. 인생은 고통과 함께 사는 것이지만 우리는 시를 통해 위안을 받고,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학관에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쉬다 가시길 바랍니다.”대구=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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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통해 고통 속 위안 받길”…대구서 정호승 문학관 개관

    60년 전 논밭이던 대구 도심을 가로질러 흐른 범어천은 겨울이면 물이 말라 자갈밭이 됐다. 등하굣길 자갈을 밟으며 사색했던 정호승 시인(73)은 이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나는 왜 세상에 오게 됐나’,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 ‘우리 집은 어째서 이토록 가난할까’ 사춘기 소년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시와 만났다. 지난달 31일 대구에서 만난 정 시인은 “범어천은 나의 시적 사유의 근원이 되는 ‘모태(母胎)’와 같다”고 했다. 범어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호승문학관이 이날 들어섰다. 정 시인이 유년기를 보낸 대구 수성구 들안로 옛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 자리다. 센터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공실이 된 건물이 정 시인의 문학 세계를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54.76㎡(약 136평) 규모다. 문학관의 한쪽 벽면은 그가 학창시절 살았던 기와집 터를, 또 다른 한쪽 벽면은 범어천을 마주하고 있다. 외관은 정 시인의 어린시절 여름철마다 범어천 둑 위로 흘러 넘쳤던 황톳물 색깔인 진한 붉은색으로 칠했다.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 정호승의 발자취가 문학관 2층에 담겼다. 정 시인이 지난해 8월 수성구에 기증한 육필원고와 시집, 사진, 소장품 등 100여 점이 전시됐다. 그는 “가장 소중한 전시품을 꼽자면 1970년에 쓴 초기작의 육필원고”라고 했다.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로 시작하는 시 ‘첨성대’(瞻星臺·1973년)는 정 시인의 등단작이다. 그가 창비에서 처음 출간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에는 동명의 시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는 시가 실려 있다. 모두 슬픔과 고통의 정서를 다뤘다. 정 시인은 “삶의 본질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판화가 남궁산 씨가 2005년 제작한 정 시인의 장서표(藏書票·책에 붙이는 표)에는 낙타 문양이 있다. 문학관에도 낙타 그림이나 공예품들이 전시됐다. 정 시인은 “광막한 사막 속 낙타를 보면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마주하는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 시를 쓰는 나를 보는듯하다”면서 “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다. 모든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 시인이 직접 쓰고, 다듬었다. 정 시인의 시는 음악, 미술과도 맞닿아있다. 그의 시 약 80편이 노래로 작곡됐다. 문학관 한쪽 복도엔 이 노래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가수 김광석(1964~1996)은 정 시인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노래했고, 안치환은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불렀다. 정 시인은 1999년부터 20여 년간 시노래 모임 ‘나팔꽃’ 동인활동을 하며 안치환과 140여 차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는 “시와 노래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북카페인 1층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시인들의 시집이 전시됐다. 지하는 강연이나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정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열 네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를 펴냈다. 올해는 비채에서 시에 얽힌 서사를 풀어내는 산문집 시리즈인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비채)가 출간된다. “신작 시집이 나오고 6개월이 지난 요즘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배고프면 밥을 먹듯, 시인은 시를 써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죠. 인생은 고통과 함께 사는 것이지만 우리는 시를 통해 위안을 받고,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학관에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쉬다 가시길 바랍니다.”(정 시인)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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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치에 동조한 독일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가치로 여겨지지만 과거에는 공적인 활동을 통해 느끼는 감정을 가리켰다. 분노는 오래전에는 신의 감정으로 여겨졌고, 개인이 표출하는 분노는 광기로 간주됐다고 한다. 무서움, 고독, 행복 등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기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표현해 왔을까. 각 시대를 대표하는 감정은 무엇이고, 시대에 따라 감정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감정사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다. 동아대 사학과 교수로 나치즘 연구에 몰두해온 저자가 16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 약 500년간 독일 사회를 대표해온 감정의 역사를 파헤쳤다. 근대 의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파라셀수스(1493∼1541)가 16세기 남긴 논고와 편지부터 19세기 기업가 베르너 폰 지멘스(1816∼1892)의 회고록, 20세기 학자들의 나치즘 연구까지 방대한 자료를 넘나든다. 근대 독일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은 공포였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가 1529년 작성한 ‘소교리문답’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내용이 반복된다. 당시 나온 예언서나 점성술에는 공통적으로 재앙과 종말론이 담겼다. 공포가 당시 종교와 결합해 개인의 내밀한 감정의 표출을 억제하는 도덕적 장치로 작동한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분석을 통해 “16∼18세기 감정은 종교 및 도덕적 규율 장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종교 전쟁의 시대였던 17세기부터는 ‘감정 레짐(규범 틀)’의 변화가 포착된다. 이 시기 한 궁정인의 일기에는 이전 시대에서 볼 수 없던 슬픔, 사랑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19, 20세기에는 신뢰, 충성, 기쁨 등 감정이 노동의 동기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생산자원이 됐다. 이 시기 감정은 ‘노동의 기쁨’으로 축약된다. 저자가 살펴본 지멘스의 회고록에서 ‘인간이 기획하고, 행동하고, 성과로 얻는 행위’인 노동은 기쁨과 결부됐다. 이 개념은 저자의 주 전공인 나치즘과도 연결된다. 1933년 집권한 나치는 노동조합을 없앤 뒤 ‘노동전선’을 조직하고 그 산하에 ‘기쁨의 힘’이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신뢰, 충성, 명예 등 감정을 핵심 기제로 하는 노동법을 제정했다. 저자는 “나치의 노동법은 감정법이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나치 치하 독일 일반인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저자는 ‘차분한 열광’이었다고 분석한다. 1938년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한 개 이상의 나치 기구에 속했다. 1940년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하인리히 슈푀를이 출간해 선풍적 인기를 끈 소설 ‘가스검침관’에서 당시 독일인의 진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속 인물은 겉으로 나치 독재에 동조하지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차분함을 유지한다. 차분함의 근저에는 국가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인의 차분함과 공포는 1960년대 후반부터 따스함과 진정성이라는 새로운 감정으로 이어진다. 감정의 역사를 짚다 보면 감정과 연결된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감정의 역사는 나의 감정을 상대화한다”고 표현했다. 분노와 혐오로 대표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감정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책을 읽으며 찬찬히 반추해 보게 된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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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 치하 독일인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가치로 여겨지지만 과거에는 공적인 활동을 통해 느끼는 감정을 가리켰다. 분노는 오래 전에는 신의 감정으로 여겨졌고, 개인이 표출하는 분노는 광기로 간주됐다고 한다. 무서움, 고독, 행복 등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기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표현해 왔을까. 각 시대를 대표하는 감정은 무엇이고, 시대에 따라 감정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져왔을까. 감정사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다.나치즘 연구에 몰두해온 김학이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책 ‘감정의 역사’(푸른역사) 16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 약 500년간 독일 사회를 대표해온 감정의 역사를 파헤쳤다. 근대 의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파라켈수스(1493~1541)가 16세기 남긴 논고와 편지부터 19세기 기업가 베르너 폰 지멘스(1816~1892)의 회고록, 20세기 학자들의 나치즘 연구까지 방대한 자료를 넘나든다.근대 독일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은 공포였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가 1529년 작성한 ‘소교리 문답’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내용이 반복된다. 당시 나온 예언서나 점성술에는 공통적으로 재앙과 종말론이 담겼다. 공포가 당시 종교와 결합해 개인의 내밀한 감정의 표출을 억제하는 도덕적 장치로 작동한 것이다. 저자는 이같은 분석을 통해 “16~18세기 감정은 종교 및 도덕적 규율 장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종교 전쟁의 시대였던 17세기부터는 ‘감정 레짐(규범 틀)’의 변화가 포착된다. 이 시기 한 궁정인의 일기에는 이전 시대에서 볼 수 없던 슬픔, 사랑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19, 20세기에는 신뢰, 충성, 기쁨 등 감정이 노동의 동기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생산자원이 됐다. 이 시기 감정은 ‘노동의 기쁨’으로 축약된다. 저자가 살펴본 지멘스의 회고록에서 ‘인간이 기획하고, 행동하고, 성과로 얻는 행위’인 노동은 기쁨과 결부됐다. 이 개념은 저자의 주 전공인 나치즘과도 연결된다. 1933년 집권한 나치는 노동조합을 없앤 뒤 ‘노동전선’을 조직하고 그 산하에 ‘기쁨의 힘’이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신뢰, 충성, 명예 등 감정을 핵심 기제로 하는 노동법을 제정했다. 저자는 “나치의 노동법은 감정법이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나치 치하 독일 일반인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저자는 ‘차분한 열광’이었다고 분석한다. 1938년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한 개 이상의 나치 기구에 속했다. 1940년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하인리히 슈푀를이 출간해 선풍적 인기를 끈 소설 ‘가스검침관’에서 당시 독일인의 진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속 인물은 겉으로 나치 독재에 동조하지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차분함을 유지한다. 차분함의 근저에는 국가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독일인의 차분함과 공포는 1960년대 후반부터 따스함과 진정성이라는 새로운 감정으로 이어진다. 감정의 역사를 짚다 보면 감정과 연결된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감정의 역사는 나의 감정을 상대화한다”고 표현했다. 분노와 혐오로 대표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감정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책을 읽으며 찬찬히 반추해보게 된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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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라운지]도광문화포럼, 31일 학술대회 개최

    도광문화포럼(대표 이원복)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31일 서울 동작구 양녕회관에서 고구려를 주제로 학술대회와 기념식을 개최한다. 포럼은 2013년 국내 박물관 출신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학술연구 모임으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여는 등 지역 풀뿌리 문화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포럼에서는 양정석 수원대 사학과 교수가 고구려 후기 도성인 장안성(長安城) 연구의 추이에 대해 발표한다. 윤종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이 고구려 초기 고분벽화인 안악3호분을, 김성명 전 국립제주박물관장이 고구려인의 악기인 뿔나팔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오영찬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이태호 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토론에 참여한다. 김길식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한국고고학회장)이 종합토론을 진행한다. 최훈진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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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초등교과서 ‘조선인 징병’ 표현 없애고, ‘간토 대학살’ 아예 빼

    내년부터 사용하는 일본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징병됐다’는 표현이 삭제되는 등 일본의 강제동원 책임이 희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교과서는 올해 발생 100년이 되는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재일 조선인 학살 관련 서술을 삭제했으며,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서술도 계속됐다. 대통령실은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과 관련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게 대통령실의 단호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항의했다.● ‘조선인 징병’ 삭제, ‘한국이 독도 불법 점거’ 서술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날 초등학교에서 내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3∼6학년 사회 교과서 12종의 검정을 확정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교육부 등이 이들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을 분석한 결과 역사 분야가 포함되는 6학년 교과서 3종 가운데 2종에서 징병에 대한 서술이 변경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점유율 2위인 교육출판의 6학년 사회 교과서는 “식민지였던 조선의 사람들에게…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2019년 검정본)는 기존 기술에서 ‘징병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점유율 1위인 도쿄서적의 6학년 사회 교과서는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 병사로서 징병당하고”라는 표현을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 병사로서 참여하게 되었고, 후일 징병제가 시행되게 되었습니다”로 바꿨다. 같은 교과서에 실린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는 사진 설명에는 앞에 ‘지원해서’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인이 자원해 일본 군인이 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넣는 등 동원의 강제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서술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제 징용과 관련해서는 도쿄서적 교과서가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왔다”는 기존 기술을 “…강제적으로 동원됐다”로 교체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각의를 통해 ‘강제 연행’ ‘연행’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한 바 있다. 1923년 일어난 간토대지진 관련 서술이 대폭 간소화되면서 조선인 학살 내용이 아예 빠지기도 했다. 일본문교출판은 지진 후 참상이 담긴 사진과 함께 실었던 설명을 줄이면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있다’ 등의 잘못된 소문이 퍼져 많은 조선 사람들이 살해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라는 문장을 삭제했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은 4∼6학년 교과서 9종에 모두 담겼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일본 교과서는 그동안 독도를 ‘일본 영토’ ‘고유 영토’ 등으로 썼으나 이번에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표현으로 통일됐다. 일본문교출판 6학년 사회 교과서는 기존에 “일본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竹島)”라고 기술했으나 이번에는 “일본 고유 영토인…”으로 바뀌었다. 8종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된 지도가 포함됐고, 5종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 우리 정부 “日, 무리한 주장 답습 유감”대통령실은 이날 “한일 양국의 미래 지향적 관계를 위해서라도 일본은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는 영토에 대한 무리한 주장을 자제하는 게 옳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무리한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일본 정부가 스스로 밝혀온 과거사 관련 사죄와 반성의 정신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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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성대는 천문대 아닌 우물 형상화… 선덕여왕 정통성 상징”

    “박혁거세가 탄생한 경주 나정(蘿井)에는 우물자리를 빙 둘러 5개의 구덩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물 기둥이 세워졌던 흔적으로 봤지만 저는 북극오성(北極五星·북쪽 밤하늘에서 제왕을 상징하는 5개의 별)을 상징하는 항아리 같은 것을 묻었을 거라고 봅니다. 구덩이의 배치는 북극오성을 이루는 별의 배열과 같아요.” 최근 책 ‘경주 첨성대의 기원’(주류성)을 출간한 정연식 서울여대 사학과 명예교수(67)는 2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신라 종묘에선 구덩이 6개에서 항아리 5개가 출토됐는데, 나정 주변 구덩이와 마찬가지의 상징이라는 것. 정 교수는 “이 같은 배치는 옛 사람들이 북극오성의 정기를 받은 우물에서 제왕이 탄생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왕들은 언제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삼국유사에는 “나정 옆에 벼락빛(별빛)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워 있고 …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하나가 있었다”는 혁거세의 탄생설화가 기록돼 있다. 정 교수의 이 같은 해석은 경주의 대표적 유물인 첨성대가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의 상징물이라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첨성대의 정체는 학계의 오랜 논쟁거리다. ‘별을 바라본다(瞻星)’라는 이름 탓에 조선시대부터 천문대라고 보는 의견이 많지만 출입구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높고 좁은 창구를 비롯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정 교수는 천문대설의 한 근거가 되는 7세기 첨성대 건립 이후 천문 기록의 증가에 대해 “당시 여러 가지 특이 현상에 대한 기록이 전반적으로 급증했다”며 “역사적으로 삼국통일전쟁 등 동아시아가 뒤흔들리던 시기라 기록을 많이 남겼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1990년대 말에는 정(井)자형 장대석 등 첨성대의 모양으로 볼 때 생산, 생명을 상징하는 ‘우물’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됐다. 정 교수는 우물설을 지지하는 한편 더 나아가 첨성대가 형상화한 우물의 기원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연구해왔다. 우물설이 옳다면 첨성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정 교수는 “사람이 올라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이 아니라 우물이 별을 쳐다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시조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앞에 보이는 세 산봉우리의 능선을 그리면 탄생을 상징하는 세 별인 삼태성의 형상이 보여요. 나정 우물이 삼태성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지요. 첨성대도 이와 마찬가지로 별을 바라보는 우물을 형상화한 건축물입니다.” 정 교수는 “세 개의 별이 탄생을 상징한다는 건 경기 파주의 고려 말기 고분 벽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추론을 통해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왕권의 정통성과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축조한 것이라고 본다. 박혁거세의 탄생뿐 아니라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첨성대의 디자인은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의 몸(엉덩이와 옆구리)을 형상화한 것으로 선덕여왕이 석가모니의 후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조선사회경제사가 전공인 정 교수는 첨성대에 빠져 수십 편의 관련 논문을 써 왔다. 정 교수는 “고(古)천문학과 음운학을 넘나들어야 하는 힘든 연구였지만 첨성대의 기원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 같아 손을 뗄 수 없었다”며 웃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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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되어 느끼는 수치심-상실감… 그 연원을 찾아서”

    “어른이 되어 느끼는 수치심, 상실감 등 감정의 연원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소설집 ‘사랑의 꿈’(문학동네)으로 돌아온 손보미 작가(43)의 말이다. 개별적 인간의 눈높이에서 삶과 세상에 대해 세밀하게 풀어온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10대 소녀 ‘나’의 내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펼쳐놓는다. 손 작가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며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벌어지는 일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썼다”고 했다. 각각의 소설 속 ‘나’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하는 주변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밤이 지나면’에서 부모의 이혼으로 외삼촌 집에 맡겨진 ‘나’는 낯선 여자에게 자신을 데리고 “사라져 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나는 그냥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2일 만난 손 작가는 “보통 어린 시절을 일생에서 가장 보호받는 시기라고 여기지만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고, 무언가를 어이없게 빼앗긴 경험도 있다”며 “어른이 돼 느끼는 감정 대부분은 사실 우리가 이미 어릴 때 한 번쯤 겪어 봤던 것들”이라고 했다. 소녀가 주인공인 1인칭 소설을 잇달아 쓴 것은 작가에게는 지난해 8월 출간한 추리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만큼이나 새로운 시도였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경남 마산의 평범한 10대 소녀였던 작가 내면의 목소리가 소설에 담겼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손 작가가 초등학생 시절 불조심을 주제로 쓴 글로 상을 타자 선생님은 “네가 아니었어도 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글이 특별히 뛰어난 건 아니라는 의미였다. 선생님은 부상으로 받은 소화기도 학교에 기증하라고 요구했다. 작가는 낭패감과 비정함을 느꼈다고 한다. 손 작가는 “어리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쉽게 빼앗기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에서 이번 소설이 출발했다”고 했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번 소설집에 실린 ‘불장난’에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는 ‘나’는 옥상에 올라가 종이에 불을 붙인다. 손 작가는 “소외감이나 수치심,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해소하는 의미”라고 했다. 표제작 ‘사랑의 꿈’과 ‘해변의 피크닉’은 하나의 이야기를 각각 엄마와 딸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15년차 소설가인 그는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2013년) ‘디어 랄프 로렌’(2017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2018년) 등을 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치지 않고 소설을 쓰는 비결을 묻자 손 작가는 “‘내일 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내 기준에선 성공작”이라며 “항상 ‘이 작품은 나의 최고작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하루에 2000자 이상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예기치 못한 전개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며 쾌감을 주면서도 인간의 본질, 존재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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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의 시점으로 어른이 되어 느끼는 감정들의 연원을 얘기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느끼는 수치심, 상실감 등 감정의 연원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근 출간된 소설집 ‘사랑의 꿈’(문학동네)으로 돌아온 손보미 작가(43)의 말이다. 지난해 8월 추리소설의 색채를 띤 장편 ‘사라진 숲의 아이들’을 선보인 그는 이번 단편집에서 10대 소녀 ‘나’의 내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펼쳐놓는다. 2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우린 어린시절을 일생에서 가장 보호받는 시기라고 여기지만 돌이켜보면 사소한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고 어이없게 무언가를 빼앗긴 경험도 있다”면서 “어른이 되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사실 우리가 이미 어릴 때 한 번쯤 겪어봤던 것들”이라고 했다. 손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초등학교 시절 불조심 관련 글로 상을 탄 그에게 “네가 아니어도 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은 낭패감과 비정함을 안겨줬다고 회고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쉽게 빼앗기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1인칭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잇달아 쓴 것은 추리 장르였던 전작만큼이나 작가에게 새로운 시도였다. 손 작가는 “‘여자 아이’의 이미지와 소재 거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때 경남 마산의 평범했던 10대 소녀였던 작가의 내면의 목소리가 소설에 담겼다. 소설 속 ‘나’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하는 주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헤쳐나 간다. 단편 ‘밤이 지나면’에서 부모의 이혼으로 외삼촌 집에 맡겨진 ‘나’는 낯선 여자에게 자신을 데리고 ‘사라져 달라’고 애원한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자 이번 소설집에 실린 6편의 단편 중 하나인 ‘불장난’에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는 ‘나’는 옥상에 올라가 종이에 불을 붙인다. 손 작가는 “소외감이나 수치심,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 등을 해소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표제작 ‘사랑의 꿈’과 ‘해변의 피크닉’은 하나의 이야기를 각각 엄마와 딸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2009년 등단한 15년차 소설가인 그는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2013년) ‘디어 랄프 로렌’(2017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2018년) 등을 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젊은작가상을 2012년부터 4년간 연달아 받기도 했다. 지치지 않고 써내려가는 비결을 묻자 손 작가는 “소설을 쓸 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작업이 재밌느냐, 없느냐’”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내일 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제게는 성공작이예요. 항상 ‘이 작품은 나의 최고작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하루에 2000자 이상 쓰는 걸 목표로 씁니다. 처음 구상할 때는 2000자 채우기도 힘들지만 작품 중반쯤 가면 하루에 4000자를 쓸 때도 있죠.” 그는 장대한 이야기보다는 개별적인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일을 소설로 풀어내왔다. 손 작가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서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보호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쓴 게 이번 작품”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예기치 못한 전개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순간이 많은 작품을 쓰고 싶다. 소설을 통해 인간의 본질, 존재성을 이끌어내는 작가가 되겠다”며 웃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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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어느 봄, 통영에서 만난 그녀는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휴식을 위해 경남 통영을 찾은 37년 차 소설가 이로. 그에게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찾아온다. 커피와 셔벗의 맛에 빠져 통영 한 카페의 단골이 된 그는 그곳에서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카페 주인 희린을 알게 된다. 희린은 20대에 대공 보안 분실에 끌려간 뒤 평생 왼팔을 쓸 수 없게 됐고, 젊은 시절 그가 동시에 사랑했던 두 사람을 잃었다. 한 명은 주사파였던 첫사랑 은후다. 그는 종적을 감춘 지 7년 만에 나타나 희린의 마음을 휘젓지만 결국 경찰에 쫓겨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또 다른 한 명은 대공 보안 분실에서 처음 본 희린을 지키려고 고문 실태를 폭로한 뒤 경찰복을 벗은 상헌이다. 상헌은 은후와 재회한 뒤 갈등하는 희린을 놓아주기 위해 말없이 그녀를 떠난다. 희린은 그런 상헌을 찾지 않은 채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키운다. 많은 청춘이 스러져간 1980년대 어딘가에 실제 있었을 법한 사랑 이야기를 참신한 형식으로 담아냈다. 소설가 이로의 일상과 이로가 자신의 일상을 형에게 전하는 편지, 그리고 희린의 회고록까지, 총 3가지 형식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각각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소설은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아름다운 통영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로 벚꽃 잎 흩날리는 풍경과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아 내리는 커피, 산양유로 만든 셔벗 등 다양한 음식 묘사는 읽는 맛을 더한다. 통영 중앙시장 상인들의 모습과 바닷마을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된다. 희린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오가다 보면 복잡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피할 수 없었던 비극적 운명을 가까스로 극복한 한 여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바다 위를 나는 저 갈매기가 없다면 과연 시간은 흐를까. 바람과 저 낙화가 없다면. 나는 그것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산다. 흘러가 줘서 고맙다.”(희린)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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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지민, 첫 솔로 음반 ‘페이스’ 발표 “팬데믹 감정 담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지민(28·사진)이 24일 첫 공식 솔로 음반 ‘페이스’(FACE)를 발표했다. ‘페이스’에는 경쾌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타이틀 곡 ‘라이크 크레이지’와 선공개 곡인 ‘셋 미 프리 파트2’를 비롯해 총 6곡이 담겼다. 소속사 빅히트뮤직 관계자는 “지민은 이번 음반에 지난 2년여 동안 팬데믹을 겪으며 느낀 진솔한 감정을 담았다. 특히 네 번째 트랙인 ‘얼론’에 이런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고 설명했다. 지민은 제이홉, 진, RM에 이어 BTS 멤버 중 네 번째 솔로 주자로 나섰다. 지민은 앨범의 기획 단계부터 곡과 뮤직비디오 작업 전반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날 공개된 유튜브 영상에서 지민은 “어디서도 꺼내지 않은 제 진솔한 감정을 이번 앨범에 녹여냈다”며 “공허함, 쓸쓸함, 방황을 직면했더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의지와 힘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저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페이스’라는 앨범 제목을 짓게 됐다”고 전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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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작가가 프랑스어 소설로 공쿠르상… 많은 이들에 희망 줬을 것”

    “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흑인으로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프랑스어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 저의 공쿠르상 수상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장편소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2021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은 세네갈 출신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33)가 말했다. 한국을 찾은 그는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22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흑인 작가가 공쿠르상을 수상한 것은 1921년 이후 100년 만이었다. 공쿠르상은 노벨문학상, 영국 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인간들의…’는 시인을 꿈꾸는 세네갈 청년 디에간이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는 책을 출간한 뒤 표절 시비에 휘말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작가 T C 엘리만의 발자취를 쫓는 여정을 그렸다. 소설은 디에간의 추적을 통해 치열하게 문학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우리말로 출간(엘리출판사·사진)됐다. 사르 작가는 간담회에서 “1960년대 말리 출신 작가가 파리에서 단 한 권(‘폭력의 의무’)의 책을 출간한 뒤 표절 시비와 인종 차별에 얽히면서 문단에서 사라진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문학은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시간을 두고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창과 같다”고 했다. 그는 “외부에서는 작가가 구사하는 문체나 나이 등으로 작가를 다양한 칸에 분류하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작가’라는 칸”이라고 했다. 이어 “식민지 잔재인 프랑스어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속한 문화권의 언어이고, 그 언어를 통해 세계 문학을 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문학의 보편성은 특수성에 있다”며 “유럽과 아프리카의 교차로라는, 내가 처한 세네갈의 현실 속에서 글을 쓰는 것이 보편적 문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번 방한은 주한 프랑스대사관 등이 주관하는 ‘공쿠르 문학상―한국’ 행사를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국내 프랑스어 교육기관 22곳의 학생 87명이 지난해 공쿠르상 최종 후보작 4편을 읽고 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는 행사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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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인간 사이 갈등 해결하는 직업 생겨날 것”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별도의 직종이 생겨날 겁니다.” 최근 ‘챗GPT 기회를 잡는 사람들’(알투스)을 펴낸 장민 포스텍 겸직교수 겸 뉴럴웍스랩 대표(53·사진)는 15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이같이 말했다. 뉴럴웍스랩은 인공지능(AI) 기술의 활용을 돕는 스타트업으로, 코딩을 모르는 이도 빅데이터를 다룰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장 대표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 모델이 널리 보급되면 그동안 창조적 직업이라 여겨온 화가, 작가도 살아남기 힘들어진다”며 “AI가 만든 것인지, 사람이 만든 것인지 구별하는 직업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스타트업 오픈AI는 지난해 11월 ‘챗(chat)GPT-3.5’를 출시한 지 약 4개월 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인 ‘챗GPT-4’를 이날 내놓았다. 장 대표는 “어제까지만 해도 챗GPT에 ‘무기 제조 방법을 알려줘’와 같이 위험하거나 성소수자 등과 관련해 차별적인 질문을 해도 거침없이 답이 나왔는데, 새 버전은 그런 부분까지 걸러내도록 파인튜닝(미세조정)이 됐다”며 놀라워했다. 챗GPT의 등장으로 AI 기술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 대표는 “인간과 기계의 접점, 즉 인터페이스 환경이 비로소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 한마디, 글 한 줄로 명령을 내리고 답을 얻을 수 있게 된 덕이라는 것이다. 장 대표는 기존 데이터와 비교 학습을 통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생성 AI 시대에 새로 등장하거나 유망한 직업군으로 특정 AI에서 원하는 결과물을 얻도록 도와주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AI를 활용해 음악과 동영상 등 여러 콘텐츠를 만드는 ‘디지털 애셋 창작자’, AI를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 분석가와 데이터 과학자를 꼽았다. 그는 “AI가 인간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를 외면하면 직업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기획력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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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 외면하면 ‘직업을 잃지 않을 기회’를 놓치게 될 것”

    “챗GPT를 쓰고 기계가 인간과 같은 모습을 보일때 자존감의 상처를 입는 분들도 계시죠. 그렇다고 인공지능(AI)의 발달을 외면하면 직업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챗GPT 기회를 잡는 사람들’(알투스)을 펴낸 장민 포스텍 겸직교수 겸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뉴럴웍스랩 대표(53)의 말이다. 15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장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챗(chat)GPT-3.5’ 이용자수는 지난해 12월 출시 후 4개월만에 수억 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챗(chat)GPT-3.5’가 나온지 약 4개월 만에 ‘챗GPT-4’가 출시된 이날 장 교수는 기존 버전에서 새롭게 추가된 그래픽 인식 기능 등을 직접 시험해보고 있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챗GPT에게 ‘무기제조법‘과 같이 위험하거나 성소수자 관련 민감한 질문을 하면 거침없이 답했는데, 새 버전은 그런 부분까지 걸러내도록 파인튜닝(미세조정)이 됐다”며 놀라워했다. 장 교수는 포스텍 박사(인공지능과 기계학습) 출신으로 20년 가까이 AI업계에 몸담았다. 이날 발표된 ‘챗GPT’의 새 버전의 미국 대입 자격시험인 SAT 성적은 상위 10%수준을 기록했다. AI가 인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장 교수는 책에서 “챗GPT와 같은 모델이 많이 보급된다면 그동안 창조적 영역이라 여겨져 온 화가, 작가 등 직업도 단순 창조력만 가지고 살아남기 힘들어진다”라며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으로 위기관리 전문가,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등을 꼽았다. 인간 감성의 영역을 지원하거나 상대방을 협상, 설득하는 직업은 대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장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AI가 상당수 일자리를 대체하는 ‘기술적 실업’이 일반화되면 그에 따라 벌어질 빈부격차에 대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며 “다만 세상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획력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챗GPT 시대를 연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2010년대부터 기술의 진보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기회의 평등이 주어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AI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대결’로 이미 잠재성을 드러낸 AI기술이 챗GPT의 등장으로 더 큰 주목을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장 교수는 “비로소 인간과 기계의 접점, 즉 인터페이스 환경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라며 “말 한마디, 글 한 줄로 코딩 작업을 명령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코딩을 배우지 않아도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인문학을 전공하더라도 기획력을 잘 배양한다면 좋은 직장을 갖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사람의 작업물을 가려내는 감별사와 같은 직업은 물론, 사람이 직접 만든 작품을 인증하는 제도나 시장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떤 지시어를 입력해야 하는지 그 관계를 설정해주는 직업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챗GPT시대의 유망 직업으로 꼽힌다. 책에는 챗GPT로부터 적합한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한 프롬프트(지시 메시지) 작성 방법 등도 소개됐다. 장 교수는 “AI와 인간의 공존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대비할 때 우리는 인간만이 가진 존재의 가치를 잃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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