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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검사 윤석열’을 키운 것은 팔할이 선거 개입 의혹 수사였다. 2013년 10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있으면서 상부 보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가 직무 배제됐다. 며칠 뒤 국정감사장에서 상부의 외압을 폭로했고 그는 좌천의 길을 걸었지만 ‘국민 검사’가 됐다. 결국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개입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4년에 처해졌다. ● 공무원의 선거 관여 10년으로 공소시효 늘어나 당초 선거법 위반 사건은 공소시효가 6개월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2014년 2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됐거나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10년이 되도록 선거법이 개정됐다. 가히 ‘윤석열법’이라 부를 만했다. §공직선거법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등 금지) ①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신설 2014. 2. 13.>제268조(공소시효) ③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범한 이 법에 규정된 죄의 공소시효는 해당 선거일 후 10년(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10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된다. <신설 2014. 2. 13.>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인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총선 개입 의혹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수사를 벌이던 특별수사3부가 특활비 일부가 총선 여론조사에 쓰인 정황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당시 수사를 책임진 3차장검사였고 특수3부장은 현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공모해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선거 및 경선 전략을 수립해 이를 당 공천관리위원회에 반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직 대통령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도 사상 처음이었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권을 쥐던 시절에는 청와대가 여론조사를 돌리고 선거 기획, 판세 분석 등을 하더라도 죄가 안 됐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권력 분산 등을 위해 당정분리가 이뤄진 뒤에 바뀌었을 뿐이다.(노 전 대통령도 나중에 당정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2018년 7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며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한 것으로서 헌법의 근본 가치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당의 자율성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라며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20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왜곡되고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질타했다. 2심 재판부도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는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및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지위’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왜곡시켰다”고 지적했다.● 중앙지검장 시절 경찰 정보관의 총선 개입 의혹도 수사 이와 함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경찰 정보관의 선거 정보 수집 의혹도 수사해 현 전 수석과 그의 지시를 받아 이행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 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당시에도 윤 대통령이 지검장이었고 2차장검사는 박찬호 전 광주지검장, 공안2부장은 김성훈 안양지청장이었다) 현 전 수석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강조 사항 등을 확인한 뒤 치안비서관실을 통해 경찰에 ‘친박’ 후보를 위한 정보 활동을 지시한 혐의였다. 이에 당시 경찰청 정보국은 정당, 검찰, 법원, 각 정부 부처와 주요 기관에 파견된 정보경찰에 전국 판세 분석 및 선거 대책, 지역별 선거 동향 등을 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공적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며 강신명 전 청장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현 전 정무수석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미 징역형이 확정됐다는 이유로 면소(기소 면제) 판결했다.● 공정선거, 공작정치 척결에 앞장섰던 尹 이처럼 윤 대통령은 공정선거에 대한 강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관련 수사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같은 해 5월 기자와 독대한 티타임에서 경찰 정보관의 선거정보 수집 의혹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거 기획, 판세 분석 등 이런 거 해주면 선거 영향 미치는 행위로 하면 공무원은 시효가 다 10년이야. 원래 6개월이잖아. 그런데 공무원의 선거 기획,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등은 다 10년이다. 우리가 국정원 수사하면서 법이 개정됐다. 그 수사 때문에 법이 생겨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게 된 것이다.” “정보기관이나 공무원이 선거 영향 미치는 행위는 못 하게 못을 박아야지. 이 정부도 다음 정부도. 이거 한 놈들은 어느 직급 이상은 다 책임지게 만들고, 특히 고위직은 출세하려고만 하면 안 되고 조심해야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인이나 저명인사 사찰, 찌라시 마타도어 돌리고, 이야기 지어내고, 그런 짓거리 하지 말라는 거지.” - 취재 메모 중 - 그런 소신에서인지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당선인 신분으로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에서 사정, 정보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현 정부에서 아직까지 국가기관이 동향 정보 등을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국가기관의 공작정치를 척결하려는 의지에 박수 쳐 줄 일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논란 4년 가까이 지난 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노골적으로 ‘친윤(친윤석열)’ 후보를 지원 사격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주저앉힌 것이나 안철수 의원이 사용한 ‘윤-안 연대’에 대해 “실체 없는 표현으로 이득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현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박근혜 청와대가 공천에 개입한 동기는 둘 다 국회에 자기 사람을 입성시켜 국정을 원만히 이끌기 위한 ‘당정 일체’가 목표였다. 다만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공천에 대놓고 개입하지 않기 위해 이심전심이 되는 당 대표 후보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이른바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반영해주지 않을 것을 우려해 공천에 개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전대 개입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지난달 “선거 개입이라면 공직선거법에 따른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 전대는 당 행사이지 선관위가 주관하는 선거가 아니다”고 “선거 개입이 명백히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원이 당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 않으냐”며 “윤 대통령은 한 달에 300만 원, 1년에 3600만 원을 당비로 내고 있다. 당원으로서 대통령은 할 말이 없을까”라고도 했다. 실제 선거법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에서 경선과 본선거에만 적용된다. 전당대회와 관련해선 정당법에 제49~52조에 ‘당 대표경선 등의 자유방해죄’ ‘당 대표경선 등의 허위사실공표죄’ 등이 규정돼 있지만 공무원의 선거관여 금지 조항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실 해명대로라면 선관위가 주관하지 않는 학교 행사인 초등학교 반장, 회장 선거 등 다른 선거는 교원 등 공무원이 개입해도 된다는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민주주의 선거에선 공정이 생명이고, 공무원은 선거에 중립적이어야 한다. 1년에 3600만 원 당비를 내는 엄연한 당원이라는 대목에선 ‘차라리 대통령 급여를 반납하고 공무원 신분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통령 말 한마디의 무게를 모르는 듯한 대통령실의 해명이었다. 특히 ‘공정선거 지킴이’이자 ‘공정선거의 상징’이었던 윤 대통령이 법망을 피해 당내 선거에 개입한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참 이율배반적(아이러니)이다. 결국 대통령실의 바람대로 이른바 ‘윤심’을 아는 김기현 대표가 선출됐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박 전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의 1·2심 판사의 지적처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및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지위’에 부합했는지, 당의 자율성을 존중했는지, 후보자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는지 국민들은 이미 판단했을 것이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정치권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곳이 없다. 고성이 오가며 싸우다가도 ‘하하~호호~’ 웃으며 손잡고 사진을 찍는 게 여의도다. 인간관계보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더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도 배신자 프레임은 잘 먹힌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독고다이’형이다. (독고다이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어지만 특공대와는 어감이 좀 다르다) 계파에 속해 수장의 리더십을 따르며 수장의 지원사격으로 성장하는 기존 정치의 문법을 벗어나 있다. ● “당내 계파에 얽매이지 않아” vs “기회주의적 행태” 박 전 장관은 MBC 선배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DY)의 삼고초려로 영입된 대표적인 DY계였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이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2009년 3월 탈당하면서 사실상 DY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원내대표이던 시절 2010년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박선숙 전 의원과 함께 세 사람은 ‘박남매’로 불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내 경선에서 1위를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통합경선에서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뒤처졌다. 손학규 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을 맡으며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선 일찌감치 경희대 선배이자 유력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을 도왔다. 어느 계파 소속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2015년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전대 출마를 밀었다. 문재인 박지원 등보다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지원 전 원장과도 당시 이상 기류가 흘렀다. 2015년 1월 당시 박지원 전 원장의 이야기다. “지난해 9월 박영선 탈당 기사를 썼던 CBS 김○○ 기자가 ‘형님’ 하며 전화가 왔다. ‘박영선 탈당하면 당내에서 같이 나가려는 움직임이 있을까.’ 그렇게 얘기를 해서 ‘박영선이 탈당하면 129 대 1이 될 것이다. 한 명도 따라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근데 그걸 기사로 썼잖아. 그걸 박영선이 보고 불쾌하게 생각했어.” - 취재 메모 중 -반면 당시 박지원 전 원장은 박 전 장관이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를 돕기는커녕 ‘김부겸을 적극 돕겠다’고 선언하자 상당히 섭섭해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이 다시 국민의당을 만들면서 박 전 장관은 고심 끝에 민주당에 잔류했다. 탈당한 뒤 국민의당에 합류한 박지원 전 원장과 다른 길을 걸은 것.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경선 과정에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캠프에 참여했지만 같은 해 4월 문재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자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2019년 3월 중기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무엇보다 추진력과 성과를 낼 줄 안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2021년 1월까지 중기부 장관 시절은 정책을 추진하며 그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시기였다. 자신을 원내대표에서 몰아냈다고 여겼던 정세균 전 총리와의 악연도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다시 만나면서 관계가 다시 개선됐다. 박지원 전 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에 임명되고 민주당으로 복당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다. 이런 행보에 대해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이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정체성이 불분명한 기회주의자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 시련의 계절 맞았던 2014년 여름… ‘논개 전략’으로 되치기박 전 장관이 계파정치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파 청산”을 외쳤던 것은 2014년 원내대표 당시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는 2014년 5월 투표함을 까보기 전까지는 예상하기 어렵다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첫 원내대표로 당선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패배하면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는 다음 날 바로 사퇴했다. 원내대표였던 박 전 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을 잠시 겸임하게 되면서 내분이 시작됐다. 발로는 박 전 장관이 당내 의견수렴 없이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과 세월호 참사 특별법에 합의하면서다. 당시는 여야가 특별법 처리를 두고 기싸움을 이어가 장기간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받던 시기다. 야당으로선 특조위와 특검 구성 방식 등에 있어서 유가족 등에 보다 유리한 법안을 밀어붙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내 주류였던 친노(친노무현) 강경파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박 전 장관의 특별법 합의안을 거부하며 혼란이 벌어졌다. 당시 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유족이 반대하는 특별법은 반대한다”는 취지로 합의안 반대 목소리를 냈고 급기야 세월호 참사 유족인 김영오 씨의 단식에 동참했다. 박 전 장관은 의원들 설득에 나섰지만 여야 재합의안도 야당 내부에서 반대하면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비대위원장을 내려놓았지만 친노 강경파들은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그때 박 전 장관은 참 많이 울었다. 당시 박 전 장관의 옆에 있던 한 당직자의 말이다.“회의를 하는 동안 바로 옆에서 의원들이 번갈아 면전에서 박 전 장관을 조졌어. 얼마나 굴욕적이었겠어. 그런데도 박 전 장관은 그 의원들 앞에서 20~30분 꿋꿋하게 버티더라. 그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내실로 들어가 결국 소리 내서 울더라고. 분에 못 이겨서….”비대위원장을 놓고도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 등이 거론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불발되면서 ‘문희상 비대위’ 체제로 넘어갔다. 당권을 노렸던 문재인 정세균 박지원 의원도 모두 비대위원으로 합류했다. 거듭된 원내대표직 사퇴 요구에 탈당까지 시사했던 그는 선출 5개월 만에 10월 초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이 마련되자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사퇴의 변’을 의원들과 언론에 보냈다.“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범친노계의 수장이자 ‘직업적 당 대표’로 지목된 정세균 전 총리는 당시 “‘박영선’ 스러운 사퇴문”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미 당 대표를 3번 했는데도 또 욕심을 내냐는 뉘앙스가 담긴 표현이었다. 직격탄을 맞은 정 전 총리는 결국 이듬해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았다. 죽어도 혼자 죽지 않겠다는 일종의 ‘논개 전략’이었던 셈이다.● ‘무대포’처럼 센 놈만 골라 패… ‘안티’ 많은 외골수1999년 영화 에서 등장인물 ‘무대포’(배우 유오성)는 “난 한 놈만 패!”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전쟁터에서든 학교에서든 장수의 목을 가져오거나 ‘짱’의 코피를 터뜨리면 싸움이 승리로 끝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박 전 장관은 때론 ‘무대포’와 닮았다. 박 전 장관은 싸울 때 가장 센 놈만 골라 팬다. 박 전 장관은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릴 때 1등 기업인 삼성을 겨냥했고 2007년 대선 당시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의혹을 집중 공략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 전 총리에겐 ‘직업적 당 대표’라는 오명을 붙였다. 중기부 장관 때는 부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전 지역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청사 이전을 밀어붙였다. 화법도 직설적이고 단호하다. 한 우물만 파는 외골수여서 때론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싸우는 일도 많았다. 전투력이 센 만큼 당 안팎에서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꼽혔다. 대화가 안 통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를 피하거나 ‘안티’가 됐다. 감정이 ‘언스테이블(unstable)’ 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에 이 같은 점은 지도자로서의 단점으로 꼽히곤 했다. 2014년 8월 한 당직자의 이야기다.“지도자는 조지는 것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박영선이 아직 적응 중인 거 같다. 아랫사람은 싸워도 본인은 싸우지 말아야 한다.” - 취재 메모 중 -● 이재명 사법 리스크·디지털 정당에 꽂힌 박영선박 전 장관은 요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그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의 분당 가능성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현재 미국에 체류하면서도 라디오 등을 통해 “이 대표가 공천권을 내려놓는다면 사법 리스크에서 탈출할 수 있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천 혁신 없이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로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 이른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정당에 접목시킨 ‘DAO 정당’, ‘디지털 정당’ 도입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와 당원들, 기존 안티 세력들은 “누릴 건 다 누려왔으면서 합심해야 할 때 이재명 지도부를 흔든다”, “총구를 내부로 돌리며 분탕질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 반면 박 전 장관을 옹호하는 측에선 그가 18대 의원 시절부터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법안을 제출하는 등 일관된 목소리를 내온 만큼 소신 행보라고 평가하고 있다.박 전 장관은 연말까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공부할 예정이지만 국내 정치 상황과 당내 리더십의 변화에 따라 중도 귀국할 가능성도 있다.그가 계파 청산과 ‘새 물결’을 외쳤던 2015년처럼 당내 갈등도 다시 데자뷔처럼 재연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계기로 친명계와 비명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그가 과연 혁신의 아이콘이 될지, 분탕질의 낙인이 찍힐지 관전 포인트다. 내년 총선에서 박 전 장관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궁금해진다.박영선 전 장관을 다룬 <9화>에서 많은 독자들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당시 논란이 됐던 도쿄 아파트에 대해 비난 댓글을 달았습니다. 당시 박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BBK 주가조작 의혹을 적극 제기했던 본인 때문에) 2008년 회사에서 쫓겨난 남편이 일본에서 직장을 구해 거주한 것”이라는 취지로 투기용이 아닌 실거주용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즉각 해당 아파트를 처분했습니다만 여전히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산업계에선 피터팬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는 네버랜드 속 피터팬처럼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으로 남고 싶어 하는 회사를 뜻하지요. 박 전 장관은 어찌 보면 2014년 원내대표에서 중도 낙마한 뒤 그 세계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장통을 겪고 있던 것일까요? 다른 이들이 체급을 올릴 동안 ‘정치 인생이 역전당한 것’이지요. (박 전 장관이 2007년 정동영 대선 후보의 총괄지원실장이었던 자신 밑에 이재명 대표가 부실장으로 있었다는 것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한 표현입니다.)중기부 장관을 지내며 그 트라우마는 상당히 극복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어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선주자급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대란에 이어 민주당이 보궐선거 사유 제공 시 무공천하겠다고 한 약속을 뒤집으면서 이미 민심은 기운 상태였습니다.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박 전 장관이 자주 인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처럼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박 전 장관은 국회 법사위원장 출신으로 한 때 ‘검찰 저격수’로 불렸습니다. 그만큼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검사(檢事) 출신 여권 인사들에게 맞서 민주당이 박 전 장관을 ‘자객 공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전력이었지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했듯 총선에서 빅 매치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법정모독 1~10화에선 한동훈 윤석열 이낙연 안철수 박영선 등 법조인과 여야 정치인을 번갈아 다뤘습니다. <11화>에선 법조계 인사로 넘어갑니다. 가끔 조선시대 대사헌(大司憲)을 AI(인공지능)로 구현해 놓으면 이분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11화는 2주 뒤인 23일 공개됩니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수감 중)이 7일 법정에 처음 출석해 “말도 안 되는 기소”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반면 검찰은 그간 공개되지 않은 물증을 재판에서 공개하며 “대장동 개발 매개 유착관계 뿌리인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 김용 “투망식 기소” 혐의 전면 부인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한 김 전 부원장은 “10억 원, 20억 원 등 억대의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고, 수수하거나 공모한 적도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검찰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수년간 유착관계 유지하던 김 전 부원장이 이 대표의 대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로부터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등을 거쳐 8억4700만 원(실수령 6억 원)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검찰은 남 변호사의 측근 이모 씨가 정민용 변호사에 전달한 금액의 규모와 일정 등을 적은 수기 메모도 처음 증거로 공개했다. ‘Lee list(Golf)’라는 제목의 메모에는 ‘4/25 1’ ‘5/31 5’ ‘6 1’ ‘8/2 1430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어 검찰은 2021년 4~8월 정치자금이 전달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김 전 부원장 측은 “하나만 걸리라는 식의 투망식 기소”라며 “공소사실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증거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돈을 받은 날짜가 특정되지 않아 방어할 수도 없고, 김 전 부원장이 돈을 받았다는 증거도 사실상 유 전 직무대리의 증언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 “대선을 앞두고 돈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부도덕하고 어리석으며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며 “돈을 달라는 얘기조차 꺼낸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檢, 쇼핑백·상자 등 현금 전달 방법 공개검찰은 이날 정 변호사가 유 전 직무대리에게 돈을 전달할 때 사용했다는 골판지 상자를 직접 법정에 가져와 시연했다. 박스가 예상보다 부피가 크지 않고 현금 5억 원을 전달할 수 있다는 취지로 버스정류장 앞, 도로 근처 등에서 돈이 오갔다는 검찰 주장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김 전 부원장 측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검찰은 ‘상자 5개를 담은 나이키 가방’ ‘발렌티노 상자’ ‘타이틀리스트 쇼핑백’ 등 돈이 오간 구체적 정황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부원장이 2021년 9월 이후 대장동 일당 중 유일하게 구속되지 않은 정 변호사를 3차례 만났고 당시 둘이 공중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은 정황도 공개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첩보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연락을 주고받았다”며 “김용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지 않았다면 대선 기간에 공범인 정민용을 만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한편 김 전 부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올해 1월 서울구치소를 찾아 자신을 ‘장소변경 접견’ 방식으로 면회한 게 언론에 공개된 것을 문제삼았다. 그는 “구치소에서 규정에 따라 교도관이 입회한 가운데 저와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이 찾아와 위로 몇 마디를 한 것을 검찰의 책임 있는 분이 ‘증거인멸’이라며 언론에 흘렸다”며 “이게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부드러운 직선’은 시인인 도종환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그의 시를 따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63)에게 붙여 준 별명이라고 한다. 부드러움과 곧음, 철과 여인. 모두 정반대의 성질을 띠고 있어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박 전 장관은 부드러우면서도 올곧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엘레강스’한 공주과인 듯하면서도 억척스러운 무수리과다. 외강내강이면서도 외유내강인 듯하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군주의 자질로 언급한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함이 있다. 둘 다 가지기 어려운, 양립불가능한 품성이 동시에 내재된 듯한 미묘하고 복합적인 ‘멋’과 ‘맛’이 있다. 마침 이같이 모순적인 표현을 취재 메모에서 발견했다. 같은 당 중진 A 의원이 2014년 1월에 했던 이야기다. “박영선이 성질은 ○○워도 외국인투자촉진법안을 소신껏 저지하는 모습은 아름답잖아. 나는 다행히 박영선한테 아직 안 찍혔어.” - 취재 메모 중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박 전 장관은 2013년 12월 31일 여야 지도부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재벌 특혜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심야까지 버텼다. 이에 따라 ‘2014년 예산안’은 해를 넘겨 처리가 지연됐고 당시 여당으로부터 “몽니를 부렸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직언직설하고 소신이 있다는 점에서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자신의 강성 이미지를 의식한 듯 박 전 장관은 그해 5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선거 당일 정견발표에서 이같이 호소했다.“제가 그렇게 센 여자가 아닙니다. 저도 눈물 많은 여자입니다. 저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의원님들께 그렇게 다가가겠습니다.”그는 결국 국회사상 최초로 첫 여성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두 달 뒤 당시 한 재선 의원은 또 이렇게 평가했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된 것은 참 잘됐어. 일단 당이 참 조용해. 다른 사람이 원내대표가 됐으면 당이 난리 났을 것이다. 이미 탄핵당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의총 때도 발언 신청자가 없다(웃음).” - 취재 메모 중 -의원들을 휘어잡은 박 전 장관의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박영선을 읽는 첫 번째 코드는 ‘여성’… 남성 주류 사회에 ‘도장깨기’ “여자의 뉴스 진행 솜씨가 남자를 따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어요.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여성도 단독 앵커를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일 겁니다. 한국의 바버라 월터스가 되겠습니다.” - 1983년 3월 30일자 동아일보 -40년 전인 1983년 3월 동아일보에 처음 등장하는 23세 박 전 장관의 인터뷰 기사다. 당시 그는 밤 11시 50분에 방영되는 MBC TV 마감뉴스의 단독 앵커를 맡아 화제가 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아나운서로 1981년 KBS 춘천지국에 입사한 뒤 1982년 MBC에 입사한 그 직후 기자 직군으로 옮겨 입사 5개월 만에 ‘수습 여기자’ 신분으로 단독 앵커를 맡았다. 이처럼 한국의 대표적 여성 앵커를 꿈꿨던, 청초했던 20대 청년(靑年)은 MBC의 첫 여성 특파원, 여성 첫 경제부장 등의 꿈을 이룬 뒤 여성 첫 대변인, 첫 정책위의장, 첫 법제사법위원장, 첫 원내대표 등을 지내며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남성이 주류였던 사회에서 ‘도장깨기’(유명한 무술 도장을 찾아가 그곳의 유명한 강자들을 꺾는다는 의미)한 결과다. 박 전 장관이 2012년 낸 저서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라>에 따르면 그는 MBC LA특파원이던 시절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가 됐던 페라로 여사를 인터뷰했을 당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보다 두 배 더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여성이라는 것이 왜 콤플렉스가 돼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극복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남성도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박 전 장관은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도 물길질을 끊임없이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편견 섞인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업무에 빈틈없이 하려고 보다 노력했다. 소신을 지키면서 노력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기회를 만들었다.박 전 장관은 어린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데 안타까워하는 ‘워킹맘’이기도 했다. 엄마로서의 미안함과 반성 차원에서 똑같은 교재를 두 권 사서 보며 전화로 하루 30분씩 통화하며 아이에게 수학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수학 책을 들고 다녀 놀림도 받았다고 한다. ● 스타 여성앵커 1세대… 겉은 ‘백조’ 속은 ‘악바리’ 박 전 장관은 어린 시절부터 위인전과 고전, 시 등을 읽는 ‘독서광’이었다. 한 아나운서를 보고 방송의 꿈을 키웠다. 고교 2학년 때 방송반에 들어갔고 방과 후에 방송실에 남아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몰입하다 보니 성적이 계속 떨어져 1, 2학년 때 갈 수 있던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대학에서 그는 남들이 잘 하지 않던 토플시험을 준비했다. 1학년 때부터 4년간 꾸준히 영어공부를 하면서 향후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추는 데 기반이 됐다. 유학을 다녀온 뒤 대학교수가 되라는 부모님의 희망과 방송국을 놓고 진로를 고민했지만 결국 방송국을 선택해 스타 앵커로 성장했다. 박 전 장관은 MBC에서 이름을 떨친 여성 스타 앵커 1세대다. 169cm의 큰 키와 수려한 외모, 또박또박한 발음과 고유의 음색. 박 전 장관이 이후 백지연 김은혜 김주하 등 후배들이 전성기를 이어갔다. MBC 마감뉴스 앵커 시절부터 ‘악바리’였다. 그는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 군사정권인 전두환 정부 시절 9시 메인뉴스 ‘뉴스데스크’에는 기사 삭제 등 문화공보부의 제재를 많이 받았다. 당시 동료였던 인사의 전언이다. “마감뉴스가 뉴스데스크보다 시끌벅적했어. 뉴스데스크에 못 나간 리포트를 방영하고 장관들 출연시키고 인터뷰도 하고. 감시의 눈이 덜하니까.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을 빛나게 해야 된다는 일념과 욕심…지금도 비슷한 거 같은데? 그런 열정 때문에 지금까지 온 거야.” 당시 11시 50분에 시작하는 마감뉴스 ‘뉴스데이트’는 15분짜리 방송이었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이 여러 정치적 이유로 ‘킬’된 여러 리포트를 편성하면서 방송시간이 15분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문공부에서 “빨리 방송을 끝내라”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박 전 장관은 조명에도 민감하다. 방송에선 조명의 성능과 위치 등에 따라 화면에 얼굴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한번은 미국 방송국 관계자까지 불러 2000만 원 안팎의 예산을 들여 조명기기를 손봤다고 한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당시 박 전 장관이 주재하는 원내대책회의 등 회의실에도 조명기기가 설치됐다) 이런 열정으로 박 전 장관은 기자 시절 발로 뛰며 많은 유명인사를 직접 인터뷰했다. 베니그노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등 해외 인사는 물론 김영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정몽준 부자와 아티스트 백남준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 “깨끗한 정치로 나라를 바꾸겠다”는 정동영 설득에 정치 입문MBC 기자 시절 박 전 장관은 한 번도 정치인을 꿈꾸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권에 많이 진출했던 정치부 기자는 한 번도 하지 않고 경제부와 문화부, 국제부 등에서 근무했다. 정치부 청와대 출입을 하면서 영부인 관련 보도를 담당하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경제부 기자 출신으로 오히려 한 우물을 판 게 국회의원으로서 도움이 됐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국회 재경위(현 기재위)에서 재벌개혁을 외치며 ‘재벌 저격수’,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MBC 선배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당 대표격)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는 2004년 당 대변인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정 전 의장은 지인인 이원조 국제변호사를 박 전 장관에게 소개시켜 줬던 사이다. (두 사람은 1997년 3월 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당시 박 전 장관의 나이는 37세였고 이 변호사의 나이는 43세로 여섯 살 차이다) 박 전 장관이 2015년 발간한 저서 에는 박 전 장관이 정 전 의장의 제안을 수락한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2004년 1월 11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가 열리던 날 오후 4시경 정 전 의장이 전화를 걸어 저녁에 남편과 함께 보자고 했다.“중요한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보자고 했소. 깨끗한 정치를 국민께 전달하려면 그 이미지에 걸맞은 당 대변인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꼭 맡아주시오. 당선 축하 모임에도 가지 못하고 여기로 왔습니다. 당 의장이 돼서 처음하는 간절한 부탁이니 맡아주시오.” 예상하지 못한 제의였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정치하는 것은 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며, 정 의장을 당 공식 축하모임에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중에서 -사실 그가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은 것은 사실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쪽으로 제안이 들어왔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남편은 “대한민국 사회는 좀 더 깨끗해질 필요가 있고, 정 의장이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가서 한번 도와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라고 찬성했다. 이틀 뒤 아침 정 의장은 깨끗한 정치로 나라를 바꿔 보겠다고 거듭 설득했고 “남편을 중매해 줬으니 그 빚을 갚으라”는 말까지 하자 박 전 장관은 그날로 MBC에 사표를 내고 당 대변인직을 수락했다.● 3번의 서울시장 낙마… 축적과 변신의 기회로 정치인으로 변신해 2004년부터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박 전 장관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치권 입문을 이끌었던 정 전 의장은 17대 대선에서 후보로 나섰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 등으로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이명박 대선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 제기에 앞장섰지만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됐다. 가족과 주변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게 그에겐 큰 상처였다.2008년 3월 검찰로부터 출석요구서가 날아와 검사와 직접 통화를 했는데 그 검사는 “혹시 이번 선거에 출마 안 하십니까. 출마하시면 소환을 조금 뒤로 미룰 수 있을 것 같아서…”라며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고 한다. 그 말을 계기로 재선 출마 결심을 굳힌 박 전 장관은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출마해 당선된다. 박 전 장관은 그해 5월 말 검찰 조사를 받았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국에서 근무하기 힘들어진 남편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가족이 흩어진 건 평생 회한이 됐고 울화가 쌓인 계기가 됐다. 비례대표에 이어 서울 구로을 지역구 선거에서 3번 당선됐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선 경선을 포함해 3번이나 실패했다. 3번 중 2번은 모두 당의 뜻에 따라 떠밀려 나간 선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알았다. 재선 의원이 되면서 그는 상임위를 법무검찰을 담당하는 법사위로 바꾸며 ‘검찰 개혁’의 선봉에 섰고 3선 의원 때는 법사위원장을 맡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박 전 장관은 점점 강인해지고 ‘철의 여인’이 되고 있었다.<8화> 커튼콜에서 박영선 전 장관에 대해 ‘부드러운 직선’과 ‘철의 여인’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댓글을 단 독자 중에 정확히 맞히는 분도 계셨지만 지인 중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박 전 장관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섬세하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선구자적인 면모가 있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언젠가 박 전 장관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렴풋이 앵커 시절 박 전 장관을 TV 브라운관에서 본 것 같지만 제 기억 속엔 정치인의 모습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뒤늦게 그가 20대 방송기자 시절부터 ‘스타’였음을 실감했습니다. 이 같은 대중성은 다른 여성 정치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그의 자산입니다.박 전 장관은 올해 초부터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낙마한 뒤 9월부터 3개월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으로 활동하며 미국 내 기업, 연구소, 대학 등 최첨단 산업기지를 둘러본 데 이어 두 번째 미국행입니다. 박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저명한 교수들의 수업 내용을 공유하며 국제정치와 미국 지도자들의 전략 등을 배우며 한국의 외교안보전략을 고민 중입니다. 그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눈길을 끄는 것은 두 차례 유학의 주제가 ‘서울시장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겁니다. 그는 언론, 경제, 법조, 산업, 외교안보 등 전문분야들을 하나하나씩 ‘도장깨기’하며 폭넓게 고민하고 천착해 왔습니다.이번 글에선 박 전 장관 인생의 전반전을 주로 다뤘습니다. SNS와 유튜브를 즐겨 보는 세대에게 좀 더 그의 과거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이 글에 담겼습니다. 다음 주 9일 공개되는 <10화>에선 인생 후반전에 해당하는 ‘정치인 박영선’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그가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는 디지털정당과 공천개혁, 그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향후 행보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왜 있잖아. 전교 1등 하고 모범생이라 인기 많던 아들이 험한 동네로 전학을 간 다음에 동네 친구랑 형들한테 자꾸 얻어터지고 오는 거야. 성적도 떨어지고 맞고 다니니까 답답하고 ‘이사한 내 탓인가’ 싶어 속 터지는데 쳐다보고 있으면 선한 눈망울에 안타깝고 짠한… 그런 부모 심정 있잖아. ‘찰스’를 볼 때 딱 그 느낌이야.”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지지자였던 지인과의 대화 중에 나온 얘기다. 하지만 안 의원은 10년 정치인 생활을 하며 그 기대를 깎아 먹었다. 승률 30%. 10번의 주요 선거에서 7번 패배하거나 물러섰고 3번 승리했다. ‘국민 멘토’에서 이제는 ‘국민 금쪽이’(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아이들)로 불리며 짠한 마음을 갖게 한다. 안 의원 주변에선 위기 때마다 “안철수는 살려줘야 된다는 심리가 작동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실제 언더도그(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효과도 적지 않았다. 고전하고 있는 ‘안철수의 길’에 대해 혹자는 안 의원 개인의 문제(내부 요인)로, 혹자는 정치권의 속성, 그를 이용하는 주변인들의 문제(외부 요인)로 여기기도 한다. ● 안철수를 떠난 측근들 “사회성·공감능력 떨어져” 2014년 하반기에 사실상 결별했던 금태섭 전 의원. 그는 2015년 8월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 화제가 됐던 내용 중 안 의원에 대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먼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13년 초, 그가 샌프란시스코로 안 의원을 찾아갔을 때의 두 가지 장면이다. 안 의원이 금 전 의원이 머무르는 호텔로 차를 몰고 왔는데 주차장이 길 건너편에 있었다. 호텔 입구라 차가 거의 없어 금 전 의원도 차도를 건너다녔었는데 그날 안 의원은 좁은 인도를 따라 앞마당을 빙 돌아서 오더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안 의원이 법과 규칙을 잘 지킨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금 전 의원은 “사소해 보이는 이 장면이 왜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하고 희망을 품었는지 알게 해주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고 썼다. 두 번째 장면은 이렇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사람은 안 후보의 차를 타고 대학 캠퍼스로 가 두 시간 정도 학교 뒤 언덕을 걸으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시멘트로 포장된 산책길은 편도가 둘이 걷긴 비좁았다. 한 사람은 진흙길을 걸어야 했다. 안 의원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 가장자리 쪽으로 바짝 붙어서 걸었고 금 전 의원은 진흙길을 걸어야 했다. 다음은 원문.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오랜 기간은 아니라도 함께 대선을 치렀기 때문에 안 후보(안철수)의 성품을 어느 정도는 안다. 자신이 편하자고 일행에게 불편함을 강요하거나 혹은 다른 이유에서라도 누구를 괴롭히는 유형은 전혀 아니다. 내가 진흙길로 걷는다고 해서 안 후보가 더 편한 것도 아니었다. 만일 알았다면 나보고 시멘트길로 걸으라고 권유했을지도 모른다. 안 후보는 단지 내가 불편한 길로 걷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란히 함께 걷는데 옆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것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 금태섭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중 -그가 자신의 주변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는 의미다. 책이 나온 직후 이에 대한 안 의원의 반응이 기록에 남아 있었다. 취재원은 익명으로 처리한다. 누구의 말이 맞았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안 의원이 금태섭 변호사가 낸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책과 관련해 ○○○에게 금태섭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했다고. (중략) 안 의원은 “금 변호사가 흙길로 걷겠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며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으로 억울해했다.” - 취재 메모 중 -또 다른 일화도 있다. 한 다음 날이었다. 첫 일정이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였다. 행사를 마치고 그를 돕던 인사들과 중국집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노원병 출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시 열심히 하자”고 의기투합하는 자리였다. 안 의원이 먼저 나간 뒤 남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식당을 나서는데, 식당 주인이 불렀다. “여기 계산 안 하셨는데요.”당시 자리에 있던 한 인사는 “안 의원이 ‘덤터기’ 씌우려고 한 건 아니라는 걸 다 알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대선 때 고생하고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또 고생하겠다고 모인 건데…. 그 뒤 의원이 된 뒤로는 이날 얘기를 하진 않고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안 의원은 기억도 못 할 거다”고 했다. 안 의원의 옛 측근은 “안철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마이너스의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며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진다. 정치는 플러스를 계속해야 되는데 주변 사람들을 자꾸 버리고 마이너스를 하는데 정치가 되겠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공통적으로 안 의원이 다른 정치인에 비해 무심하고 공감능력이 낮다는 평가인 것이다. 특히 선거 때 모든 걸 걸고 뛰어들었던 캠프 인사들은 안 의원과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며 서운해하거나 실망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 ‘마이너스(―)의 정치’ 130석→38석→30석→3석“별 하나에 박경철과 별 하나에 김한길과 별 하나에 박지원….”시인 윤동주의 ‘별헤는 밤’처럼 그를 떠나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봤다. 도저히 셀 수 없을 것 같아 숫자 세기를 포기했다. 그를 떠난 인사들과 안 의원이 이끌었던 정당의 의석수를 세보면 왜 ‘마이너스’, ‘뺄셈’의 정치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지 자명하다. 2012년 진심캠프를 시작으로 안 의원을 따르던 많은 캠프 자원봉사자, 의원, 보좌진, 멘토 등이 그를 떠나거나 아예 정치권을 떠났다. 그가 이끌던 정당의 의석수는 2014년 130석에서 2020년 3석으로 줄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주인공이 나이를 거꾸로 먹듯.지금 그의 옆에 있는 주요 인물은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캠프에서 처음 안 의원을 돕기 시작한 김영우 전 의원과 그의 핵심 브레인인 이태규 의원, 최측근인 김도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극소수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가 정치권에 입문할 때 큰 역할을 했던 ‘시골의사 박경철’은 2014년경 이전 이미 관계가 끊겼고, 그를 야권으로 데려와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했던 김한길 전 대표도 여러 차례 실망한 채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을 도우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국민의당 대표이자 호남의 맹주였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안 의원의 발언을 계기로 결별했다. 그러자 박 전 원장은 전북 정읍 유세 현장에서 “(총리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초대 평양대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2017년 4월 대선 TV 토론회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등에게 공격을 받자 “그분의 말씀은 북한과 언제 관계가 개선되겠나,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농담 삼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인 박 전 원장으로선 안 의원이 DJ의 철학과 이념, 햇볕정책 등을 부정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때 박 전 원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매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비판한다는 의미로 ‘문모닝’한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안 의원 당선에 전력을 다하던 때였다. 이처럼 주변인은 자신의 제안이나 정체성을 부정당하거나 안 의원이 말을 바꾸거나 자신을 안 챙기거나 할 때 그를 떠났다. 다음은 2017년 대선을 석 달 앞둔 2월 국민의당 한 의원이 했던 이야기다. “안철수가 대화를 해도 피상적인 얘기만 되지, 깊이 있는 대화가 안 된다. 솔직하게 자기 얘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대화를 할 수 없다. 광주에서 안철수 10번 넘게 만나고 돈도 1억 원 넘게 썼다는 지지자가 있는데, 안철수가 자기를 만나도 못 알아본다고 화냈다고 하더라. 권노갑 고문도 목포 행사에서 안철수 만났는데 다른 사람 악수하듯이 그냥 악수만 하고 지나가서 권노갑 측근들이 부글부글하더라고.” - 취재 메모 중-● 정대철 “사람들 마음을 얻으려면 돈을 좀 써야 된다고 했는데…”2000억 원에 육박하는 자산가인 안 의원에 대해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이 계속 따라다녔다. 2015년 10월 들은 이야기다. “김한길 전 대표가 나에게 안철수 전 대표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안철수 짠데 어떡하냐’고 했다. 예전에 전당대회 때 점심을 시켜먹는데 전단지 2, 3개를 놓고 가장 싼 3800원짜리 짜장면을 시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하더라.” - 취재 메모 중 -3800원짜리 짜장면을 먹는 건 안 의원이 검소하다는 증거다. 다만 문제는 주변 사람들한테도 베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월급이 나오지 않는 선거캠프 식솔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면 마음이라도 써야 한다. 부자인 안 의원이 돈도 마음도 쓰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서운하게 느낄 수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선거 때 정해진 비용이 아니더라도 경조사를 포함해 밥값 등 사람에 투자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 선거 때마다 이는 반복됐다. 2017년 8월 국민의당 정대철 상임고문의 이야기다. “안철수가 전대 출마하기 전에 한번 만나자고 해서 고문단 몇몇이랑 만났어. 권노갑 상임고문한테 ‘같이 가자’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라고 그래서 권 고문은 안 왔지. 그날도 전당대회 나가면 안 된다고 말렸는데 듣기만 하고 알겠다고 하더니 자기 논리를 주장하더라고. 결국 말도 안 들어. 그 뒤론 전화도 한 번 안 와. ‘사람들한테 마음을 얻으려면 돈을 좀 써야 된다’고 했는데 고개만 숙이고 있더라. 결국 대선 때 우리가 쓴 교통비 밥값 등 3000만 원도 우리가 그냥 썼잖아. 달라졌다고 스스로 얘기하는데 하나도 안 바뀌었어….” - 취재 메모 중 -안 의원이 ‘짠돌이’가 된 데에는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재정권을 쥐고 있는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김 교수가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많다. 2017년 2월 서울 노원구의 한 극장에서 ‘안철수, 김미경과 함께하는 청춘데이트 행사’에서 나온 김 교수의 발언을 듣고 뜨악했다는 측근들도 있었다. “저희 집에는 아이가 4명이 있다. 첫 아이가 딸, 둘째가 안랩, 셋째가 동그라미 재단, 넷째가 국민의당이다. 넷째는 부모가 많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말을 하지 않나. 국민의당은 전 국민이 키우고 계신다. 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잘 키워보는 게 저희 인생에 마지막 목표다. 내리사랑이라고 제일 막내라서 마음이 많이 쓰인다.”김 교수 스스로 안 의원의 창업부터 창당까지 같이 기여했다는 뜻이다. 동등한 부부관계를 강조한 것이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이 개입했다면 그게 비선이다. 그걸 공개적으로 내세운 것도 역시 문제다. ● 결승점 향해가는 마라톤이제 안철수의 마라톤도 결승점을 향해 가고 있다. 그가 만약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도전에 성공해 총선 승리에 기여한다면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높다. 당 대표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의미있는 패배를 하고 여권의 대안으로 가능성을 계속 보여준다면 그의 길이 또 있을 것이다. 산 정상을 여러 차례 등반했던 안 의원은 이제 사실상 다시 입구로 내려왔다. 그만큼 새로 시작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3년 반 넘게 안 의원과 그 소속 정당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국회 의원회관 518호였던 그의 사무실과 지금은 사라진 옛 국민의당 당사를 문턱이 닳게 다녔습니다. 출입처가 바뀌었어도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안 의원의 ‘단맛’을 다룬 <7화>에 이어 ‘짠맛’을 예고한 이번 글에는 오랜 마크맨으로서 궁금했지만 그동안 직접 하지 못한 질문과 쓴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여러 번 지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과거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습니다만 여전히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15일 TV조선에서 진행된 전당대회 토론회에서 ‘전 재산과 대통령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이라는 밸런스 게임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는 (재산보다) 우리나라를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전자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안 의원은 지난해 대선후보 등록 당시 1979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습니다. 그 돈을 모두 딸에게 상속하거나 세계적 부호들처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우주여행이나 장수·회춘 프로젝트에 돈을 쓸 것 아니라면 다른 좋은 일에 통 크게 쾌척할 일이 많지 않을까요. 물론 돈을 쓰고 욕먹는 경우가 제일 억울합니다. 그런데 △한 번 사주고 열 번 생색낼 때 △어떤 목적을 위해 돈을 쓸 때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할 때 등의 경우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1500억 원을 환원한 동그라미재단이 왜 존재감이 미미한지 등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시와 선거의 공통점은 계속 떨어져도 ‘한 번만 더 하면 될 거 같다’는 점입니다. ‘중꺾마’를 외치며 계속 매달려선 안 되는 영역입니다. 한국의 중요한 자산인 안 의원에게 2027년 대선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간 공교롭게 남성 법조·정치인만 다뤘습니다. 다음 달 공개되는 <9화>에선 야권의 여성 정치인으로 넘어갑니다. 스스로 ‘부드러운 직선’을 표방한 적이 있고 저도 ‘철의 여인’이라고 여기는 분입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먼저 승리를 확보하고 전쟁에 임하라.” 손자병법에 나오고 이순신 장군이 자주 인용했던 ‘선승구전(先勝求戰)’의 뜻이다. 평소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사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에 대해 이 총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목소리를 냈다. 영장 청구 당일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부동산 개발업자와 브로커들이 나눠 가지도록 만든 지역 토착 비리로 극히 중대한 사안으로 본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는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이 총장의 자신감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총장이 미진하다고 생각하는 건 법원에서 기각되고, 발부된다고 생각하는 건 다 영장이 발부되더라. 그래서 내부에선 총장이 ‘족집게’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2016∼2017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장 시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구속시켰다. 당시 특수1부에서 영장을 청구한 21명 중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 1명을 제외하곤 기각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증거와 법리를 신중하고 꼼꼼히 따져 ‘이기는 싸움만 했다’는 의미다. 이 총장의 결재를 거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이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공이 넘어갔다. 한 장관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며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는 등 공개되지 않았던 증거를 밝혔다. 27일 국회 본회의장에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예정되면서 이날 등판하는 한 장관에게 다시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검찰 안팎에선 현직 의원 구속과 관련된 한 장관 관련 일화도 다시 회자된다. 그는 2004년 1월 대검 중앙수사부 평검사 시절 김승연 한화 회장으로부터 1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구속시켰다. 그런데 10여 일 만에 한나라당 주도로 국회에서 석방요구결의안이 통과됐다. 한 달 뒤 국회 회기가 끝나자 검찰은 서 전 의원을 다시 재수감시키며 반격에 나섰다. 한 장관이 헌법 규정이 ‘회기 동안에만 석방’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찾아 재구속을 관철시킨 것이다. ‘독종’ 별명을 얻은 계기 중 하나다. 사법연수원 27기 동기인 한 장관과 이 총장은 1996년 입소 후 같은 반, 조에 배치돼 6반 A조에서 2년간 동고동락했다. 한 조는 17∼20명에 불과했다. 두 사람을 가르쳤던 연수원 교수는 “그 시절부터 둘 다 총명하고 눈에 띄었다. 단 1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이 구속될 때 이들을 향해 박수쳤던 민주당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서가 공개되자 민주당에선 “용두사미” “옹색한 범죄사실”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나온 이름이 이 대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더라도 민주당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지 의문이다. 무혐의라는 자신이 있다면 당당히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응하면 된다. 불체포특권 뒤에 숨는 것은 옹색할 뿐이다. 사정·사법정국에 지친 국민들은 재판 전 법원의 1차 판단을 궁금해하고 있다.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하루에 사람이 집중해서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보통 3시간밖에 안 된다. 공부도 하루 종일 하는데 3시간 집중해서 할 수 있는 학생은 드물다. 하루 3시간 1년이면 1000시간. 매일 3시간 집중해서 노력하면 10년 걸리는 거다. 집중해서 1만 시간 정도 하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2017년 6월 한 강연회에서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인용해 이같이 10년과 1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했다.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벤처기업가, 대학교수에 이어 정치인이란 5번째 직업을 가진 지 이제 10년 5개월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시험 9수를 했지만 안 의원 역시 만만치 않은 ‘정치 장수생’인 셈이다.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혜성같이 등장해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안 의원.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담긴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실 정치는 녹록지 않았다.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출사표를 낸 뒤 10년 동안 대선을 3번 치르며 1번은 본선에서 패배했고 2번은 중도 하차했다. 창당만 3번 하는 등 산전수전을 겪었다. 그동안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만들었던 국민의당,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재창당한 국민의당 등 정당 대표직을 세 번 지냈다. 이제 네 번째로 보수 여당인 국민의힘 대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가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당 대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것인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당 대표에 당선되면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기록이 된다.● 공익 활동에 관심… 2000년 출마 제의 받곤 “정치가 중요하다”안 의원은 단국대 의대 교수였던 1990년 처음 언론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나이 28세 때다. 국내 최초로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며 ‘컴퓨터 의사’로 명성을 떨쳤다.그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 생리학을 전공했고, 의대 본과 2학년 때인 1983년 ‘애플’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컴퓨터에 대해 알게 됐다. 의대 박사과정 시절인 1988년 자신이 갖고 있던 디스켓이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국내 최초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해 치료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7년간 새벽 3시에 일어나 오전 6시까지 하루 3시간씩 백신 개발에 매달리며 낮에는 의사, 밤에는 개발자의 이중생활을 했다.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만들어 V3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백신 프로그램으로 맞서며 명성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 코스닥 상장을 하며 벤처기업가로 거듭났다. 자금난을 겪던 중 100억 원 매각 제안을 받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생각해 회사를 해외 자본에 팔지 않는 등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보폭도 넓어졌다. △1999년 국민은행 사외이사 △2000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컴퓨터수사자문위원 △2001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03년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2001년 김대중 정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등 직함과 네트워크도 늘었다.그가 언제부터 정치에 뜻을 뒀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어느 정도 정치의 중요성과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한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가 했던 이야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인터넷, 전자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한 태스크포스(TF)를 하며 안철수 의원과 처음 만났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안 의원과 (MBC 기자이자 앵커였던) 박영선 손석희 엄기영 씨 등이 영입 대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식으로 거절했는데 안 의원은 좀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정치가 중요하다. 그런데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였다.” ―취재 메모 중그 뒤에도 노무현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등에도 참여했다. 그는 봉사 및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본과 2학년부터 4학년까지 3년 동안 서울 구로동과 지방 ‘무의촌’ 등에서 진료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사회가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1년 후배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를 만나 결혼했다. 안랩을 운영하면서도 아름다운재단 등과 함께 물품 등을 기부하고 기부문화 확산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다. 정치 입문에 앞선 2011년 11월엔 자신이 보유한 안랩 지분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동그라미재단이 설립돼 현금 722억 원과 안랩 발행 주식 총수의 약 10%에 해당하는 100만 주를 현물 기부했다. 이후 재단은 기술 연구개발과 창업 등에 20억 원 가까운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다만, 동그라미재단은 ‘짠 내’가 나고 솔직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존재감이 없다. 빌 게이츠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에 한화 90조 원에 달하는 700억 달러를 기부하고 연간 8조 원에 달하는 60억 달러 이상 지출하고 있다).KAIST 석좌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교수로 활동하며 청년들과 함께 미래를 고민했다. ● 스스로 외유내강(外柔內剛)·대기만성(大器晩成)형으로 여겨2016년 6월 국민의당 대표 사퇴 당일 그의 태도에 대한 일화를 듣고는 외유내강형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당시 측근이 했던 얘기다. “사퇴한 날 취재기자들이랑 카메라기자들이 2층 대표실부터 엘리베이터, 1층 로비까지 계속 따라붙었잖아. 마지막에 차에 타기 전에 나랑 몇 마디 나눴다. 그때 나한테 한 말이 ‘오후 교문위(당시 상임위) 회의는 어떡하죠?’였어. 그래서 내가 ‘오늘은 좀, (회의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지. 하여튼 진짜 모범생이야.” ―취재 메모 중안 의원은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스스로 ‘외유내강’과 ‘대기만성’형이라고 했다. 그가 강연에서 자주 했던 얘기 중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권투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강한 펀치를 날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강한 펀치를 맞고도 버티는가가 핵심이다. 그게 권투에서 이기는 비결이다. (중략) 시간이 흐르는 걸 x축이라고 하고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을 y축이라고 하자. 보통 열심히 노력하면 그래프로 따지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자기 실력도 (우상향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주위 사람의 평가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조금만 성취해도 주위 사람들이 과대평가한다. 언론에 나올 정도면 과대평가된다. 그러다가 좀 더 지나면 오히려 관심 없어지고 아주 과소평가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좀 더 실력이 올라갔는데 주위의 평가가 낮아지는 그런 순간이 온다. 처음에 저보다 훨씬 더 능력 있고 인정받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한 사람씩 낙마하는 거 봤다. 공통점을 보니까 외부 평가가 진짜 자기인 줄 착각하면서 교만해지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주 평가절하되고 과소평가될 때 그 실망감 때문에 너무 절망하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이다. 주위에서 비아냥거려도 그래도 나는 이 정도도 예전보다는 훨씬 더 발전했다고 자기중심을 잡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2016년 7월 ‘알파고와 우리의 미래’ 강연, 취재 메모 중이런 마인드로 무장한 그는 세간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 정치권에 샛별처럼 등장한 인물 중 윤석열 대통령을 제외하면 안 의원처럼 장거리를 뛰고 있는 인사도 없다. 고건 전 국무총리,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정치 신인은 모두 잠깐 빛나다 스러져 갔다. ● 소명 의식과 책임윤리 갖춘 전문가정치 입문 10년이 지났지만 그도 정치권에서 최고가 되진 못했다. 본격적인 정치 입문 전 2011년 서울시장 출마 양보,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와 2014년 신당 추진 등 과정에서 잇따라 물러서면서 그는 ‘또 철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에도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하고 국민의힘에 입당을 하면서 중도개혁정당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안 의원도 1990년 3당 합당 당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느 곳, 어느 정당에서라도 정치 변화를 이끌고 자신이 구상해온 정책을 만들겠다는 게 안 의원의 생각이라고 한다.그는 초지일관 정치권의 혁신을 촉구하는 ‘메기’ 역할을 해왔다. 여전히 안 의원은 기성 정치인에 비해 때가 덜 묻고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여전히 다른 정치인에 비해 안 의원이 정의와 공정 가치에 걸맞다”라며 “인수위원장을 하면서도 일을 잘한다는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미 모든 검증을 다 거쳤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실용의 정신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임질 줄 알았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 7·30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김한길 당시 대표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26.7% 정당 득표율, 의석수 38석을 얻으며 원내 3당에 자리 잡았지만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이 터지고 주요 인물이 구속되자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라며 대표직을 던졌다.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아들과 관련된 제보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7월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최근 경기 성남시장 시절부터 최측근으로 꼽히던 민주당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구속 기소에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다른 모습이다. 아래는 최근 썼던 칼럼이다.▶실종된 책임정치와 민주당의 선택 [광화문에서/황형준]● ‘미래’ 화두 제시하는 정치인안 의원은 모범생이다. 선한 인상에 정치인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말씨가 고와 오히려 단점이 될 정도다. 아재개그를 구사하며 활짝 웃는다. 특히 늘 배우는 자세로 공부하는 노력파다. 생리학 박사 출신에 정치인 이전에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를 마쳤고 정치적 휴지기에도 독일 막스플랑크 혁신과경쟁연구소 방문연구원, 미 스탠퍼드대 방문연구원 등을 다녀왔다. 책만 10권 넘게 썼다.대학 시절부터 영화 감상과 독서가 취미였고 바둑은 아마추어 2단이다. 연구소 대표 시절 마음이 답답할 때 사무실이 있는 서초역 인근에서 삼성역까지 걸었다던 그는 2017년 대선 패배 이후 독일에서 휴지기를 갖던 중 뒤늦게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풀코스도 3번이나 완주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배낭을 메고 걷던 ‘뚜벅이 유세’를 하더니 2020년 총선 기간엔 마라톤 유세를 벌이며 국토 종주를 했다. 정치권에서 유례없는 ‘신공(神功)’이다.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 등을 맞히며 한때 ‘안스트라다무스(안철수+노스트라다무스)’와 ‘안파고(안철수+알파고)’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도 자기 문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듯이 자기 미래와 운명은 제대로 예언하지 못했다. 다음 달 8일 치러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2027년 대선을 향한 그의 길에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친윤 후보를 선택하며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것인가, 수도권 대표론을 내세운 안 의원을 사령관으로 뽑을 것인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철수 마크맨’이던 2016년경 ‘주말에 무엇을 하시냐’고 물었습니다. “넷플릭스를 본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보기술(IT) 문외한인 기자에게 안 의원이 ‘블라블라’ 설명은 했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야기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공유파일 서비스 등에서 다운로드를 해 영화를 보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 뒤 넷플릭스는 이미 우리의 안방으로 들어왔고 저도 작년부터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졌습니다.그는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몇 안 되는 정책 전문가입니다. 특히 IT에 대한 전문성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라는 화두를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그는 2016년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수 있게 교육과정이 바뀌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교육과 코딩 교육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정치권엔 낯선 문장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에서부터 코딩 교육은 일반화됐습니다. 이렇게 그는 앞서갔습니다. ‘퍼스트 무버’이자 ‘트렌드 세터’였습니다. 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다 밝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메일 등을 보내주시면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법정모독 1~6화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를 다루는 내내 첫 화는 장점을 주로 부각하고 두 번째는 단점을 지적하며 애정 어린 ‘쓴소리’를 했습니다. 당근과 채찍 스타일입니다. 한 지인은 ‘단짠단짠’(달면서 짠맛)의 반복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글은 단맛이 좀 강한가요? 23일 공개될 8화에서는 안 의원의 짠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짜 짭니다.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
정치인과 연예인의 공통점이 있다. 잊혀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본인의) 부고기사만 빼고 비판이든 미담이든 언론에 나오면 다 좋다”는 말이 있는 이유다.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의 사전에 ‘잊혀질 권리’란 없다. 대선에서 패배한 유력 대선 주자는 해외로 떠난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5개월 동안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갔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대표적 사례다. 귀국한 뒤 “정치 절대 않겠다”는 말까지 했던 그는 결국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받고도 15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다. 이후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대선에서 패배한 뒤 연구와 견문 등을 목적으로 출국해 휴지기를 가졌다. 국민들이 다시 불러주기를, 돌아오는 공항 입국장에 환영인파로 가득 차길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DJ 이후 그렇게 ‘재기’에 성공한 이는 없다. 대부분 국민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된다. 올해 6월 미국에서 귀국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박지원, 이낙연에게 “당신이 DJ야?” “이 전 대표는 미국 간 것부터 잘못됐어. 그리고 그는 대통령후보로 낙선한 게 아니라 경선에서 패한 것이다. 대선 후보 코스프레하는 꼴이 됐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 간다는 이 전 대표에게 “당신이 DJ야? 가지 마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DJ는 낙선을 해도 민주당과 호남에서 ‘우리 대통령 후보다’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재기에 성공했다”며 “근데 이 전 대표는 당의 대선 후보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에 안 가고 지금 현장에서 이재명 대표와 함께 투쟁을 해 나갔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낙연이 사는 길은 확실하게 이재명을 도와야 된다. (미국에서라도) 관련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 ‘검찰독재’ 등으로 규정하며 민주당은 6년 만에 장외투쟁까지 나섰다. ‘전장’을 떠나 있는 이 전 대표에게 민주당 지지자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세계일보 의뢰로 한국갤럽이 지난달 26~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로 누구를 선호하나’라는 질문에 이 전 대표를 꼽은 응답자는 2.1%에 불과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24.6% △한동훈 법무부 장관 11.1%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6.9% △홍준표 대구시장 4.9%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3.8% △오세훈 서울시장 2.7% 등 순이었다. 이는 이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 시절 수개월 동안 대선 주자 1위를 달렸던 것과 천지 차이다. ‘에이스’의 위치에 있던 득점왕이 4년 만에 벤치로 밀려난 격이다. 미국 워싱턴 조지워싱턴대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내는 동안 잊혀진 탓도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페이스북 등 SNS에 15개의 글을 썼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일본 아베 신조 총리 별세 등 이슈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눈에 띄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구속되자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뒤집고 지우는 현 정부의 난폭한 처사를 깊게 우려한다”고 점잖게 비판했을 뿐이다. 이어 “전임 정부 각 부처가 판단하고 대통령이 승인한 안보적 결정을 아무 근거도 없이 번복하고 공직자를 구속했다.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의 대외신뢰는 추락하고, 공직사회는 신념으로 일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 호남-중도층-당심(黨心) 잃어… 이낙연계, 10명도 안 돼 그의 최대 기반이었던 호남도 흔들리고 있다. 앞선 세계일보 의뢰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전 대표에 대한 광주·전라 지역의 지지율은 2.1%에 그친 반면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호남 지지율은 48.5%였다. 2021년 9월 대선 경선에서 지역 중 유일하게 이재명 대표보다 이 전 대표에게 표를 줬던 광주·전남 민심조차 그에게 등을 돌리고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다. 전남 영광군 출신으로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그의 지역 기반이 사실상 무너진 셈이다. 호남 지역에선 이 전 대표에 대해 “뒤에서 관망하며 기회만 엿보지 말고, 정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 시절 중도층을 흡수하며 외연 확장을 이끌었던 이 전 대표는 대표 시절 여러 차례 실망감을 줬다. 2020년 11월 ‘당 소속 공직자가 중대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실시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전 당원투표로 고쳤다가 결국 이듬해 6월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모두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대선 경선 과정에선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기 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흔히 계파라고 불리는 당직자와 의원 등 세력도 적다. 2012년 5월 당시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박지원 유인태 전병헌 의원에게 밀려 4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당시 박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전남도지사 시절 ‘이 주사(6급 공무원)’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깐깐하고 엄격한 업무 스타일은 당 대표로 재직하는 동안 오히려 독이 됐다. 당직자는 물론 동료 의원들까지 이 전 대표에게 ‘깨진’ 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여권 고위 관계자가 했던 이 전 대표에 대한 평가다. “당의 힘을 하나로 묶어내야 되는데 전남도지사나 국무총리할 때야 상명하복이잖아. 근데 당은 상명하복이 아니잖아. 의원총회하면 초선이 당 대표한테 삿대질하고 물러나라 하고 난리인데….” - 취재 메모 중 - 그는 정책에서 대관소찰(大觀小察·크게 보고 작은 것도 살핀다)을 강조했지만 정작 당내 구성원들의 마음은 살피지 못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전 대표의 대선 경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기가 아직도 총리인 줄 아는 ‘꼰대’ 같았다. 의원들과 스킨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으로 느껴졌다”며 “호남 후보로는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당내 분위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당 대표로 있으면서도 ‘이낙연계’라고 불리는 의원은 현재 10명 수준에 불과하다. 설훈 박광온 전혜숙 윤영찬 양기대 이병훈 홍성국 오영환 의원 등과 오영훈 제주도지사 정도만 ‘찐이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명(비이재명)계라고 해도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친이낙연계 의원이 적으니 향후 대선을 위해 이 전 대표를 지원하는 기초·광역의원은 물론 필요한 전국 조직 구성 등 조직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 대선 패배 책임론, ‘올드 보이’ 이미지도 장애 당내에서 이어지는 ‘대선 패배 책임론’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당내에선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이 전 대표 캠프에서 먼저 거론하면서 검찰 수사로 이어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득표율 0.73%포인트 차로 정권을 내줬다고 보는 측면이 있어 거부감이 크다. 총리로서 존재감을 보여줬던 이 전 대표의 리더십이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당 리더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통화한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의 이야기다. “2022년 대선을 거치면서 윤석열 정부 탄생과 함께 요구되는 리더십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 정부를 극복하는 리더십은 이낙연처럼 디테일한 정책능력이나 갈등조정능력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거처럼 ‘전선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민주 대 반민주, 검찰독재 대 민주공화정의 싸움 등 전선 대 전선으로 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에 호남을 기반으로 좋은 스펙과 디테일한 정책을 가진 인물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선명하면서도 그걸 뛰어넘는 지도력이 있어야 된다. 그런 면에서 이낙연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 거지….” 1952년생으로 71세인 이 전 대표가 현 정치권을 주도하는 세대보다 고령으로 ‘올드 보이’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2027년 대선 때는 75세다. 유승민 전 의원(65)과 김부겸 전 총리(65)를 제외하면 윤석열 대통령(63)은 물론 이재명 대표(59), 안철수 의원(61), 오세훈 서울시장(62) 등 예비 대선주자들은 모두 1960년대생이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50)은 1970년대생으로 보다 젊다.● ‘이재명 구하기’냐, ‘당 정상화’냐… 이낙연의 돌파구는? 차기를 노리는 이 전 대표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관심이다. 정치권 징크스 중 하나지만 아직까지 ‘2인자’인 총리 출신이 대선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반면 이 전 대표 측 생각은 다르다. 지난달 중순 미국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나고 온 민주당 윤영찬 의원의 말이다. “지금 국내 상황이 가변적이니까 뭘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고 하기보다는 본인은 당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당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으면 몸을 던져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표 개인과 측근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당 전체의 문제로 치환시켜 대응하고 있는 게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전 대표는 미국에서 외교·안보 관련 저서를 집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1일(현지 시간)에는 연수 중인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주제로 한 초청 포럼에도 참석한다. 친이낙연계에선 2021년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패배한 이유로 준비 기간이 짧았고 본인이 대권을 갖겠다는 권력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꼽고 있다. 진흙탕에 같이 뒹굴려고 하지 않고 선비 스타일을 고수하며 당 대표 시절에도 인사권 활용 등 당을 사당(私黨)화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한 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 언론인 20년, 정치인 20년, 총리와 당 대표를 거친 이 전 대표의 나이는 오히려 연륜과 안정감을 줄 수 있고, 귀국해 활동을 시작하면 지지율은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게 측근 그룹의 생각이다. 다만 이 전 대표가 ‘반명(반이재명) 전선’의 선봉에 설 경우 단일대오를 강조하는 친명계와 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적전 분열”이라는 강한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미 이 전 대표는 2021년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 논란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폭락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결국 4개월 뒤 정치적 상황과 그가 귀국 후 어떤 어젠다(의제)를 들고 오는지,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사법 리스크’로 안갯속에 갇힌 민주당에서 ‘이재명 구하기’에 나설지, 이재명 대표와 각을 세우며 ‘반명’의 선봉에 설지 그의 선택이 2027년 대선을 향한 1차 관문이 될 것이다. 대선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요즘 법조계와 정치권을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모독’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집니다. 개인 측근 비리에 대해 대표직 사퇴 등 책임지는 태도는 취하지 않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 과거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직하던 시절로 시계를 돌리며 당대표 선출까지 사실상 오더를 내리는 여권. 여야는 모두 정당을 사당화하기 바쁩니다. 후지고 후진적입니다. 이 전 대표는 한때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안겨 줬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총리 시절인 2019년 11월 강기정 정무수석이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우기는 게 뭐예요? 우기다가 뭐냐고?”라고 고성으로 항의해 논란이 됐을 때입니다. 그는 “정부에 몸담은 사람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회 파행의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한 것은 온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송구스럽다”며 사과했고 이에 당시 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야당인 저도 감동이고 국민들이 정치권에서 이러한 총리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 아닌가 한다”라며 이 총리를 치켜세웠습니다. 국민들은 지금도 그런 정치를 보고 싶어 합니다. 지금 한동훈 법무부 장관처럼 총리 시절 이 전 대표의 말과 글은 유튜브 등 영상으로도, 책으로도 출간되며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잊혀지고 여야가 뒤바뀌는 게 정치권입니다. 그가 다시 에이스로 뛸 수 있을까요? 4개월 뒤 이 전 대표가 귀국하는 날 공항 입국장의 풍경이 궁금해집니다. 16일 공개될 <7화>에선 다시 여권 인사 ‘찰스’로 넘어갑니다. 요즘 모습이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 같습니다. 이미 미들급 경쟁자도 기권을 선언했는데 라이트급인 이분이 KO패를 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세부 혐의) 8, 9개 정도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판사 마성영)가 선고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유죄 판결을 받은 부분에 대해 항소해 더욱 성실히 다툴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조 전 장관은 기소된 혐의 12가지 중 5가지가 무죄였는데, 혐의를 더 세분해 보면 20가지 중 9가지 혐의가 무죄였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제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사모펀드와 관련해선 거의 모두 무죄”라며 “2019년 법무부 장관 지명 후 검찰과 언론, 보수 야당은 제가 사모펀드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유죄 판결을 받은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과 정 전 교수가 수감 중인 점 등을 고려해 조 전 장관을 법정 구속하진 않았다. 이에 따라 조 전 장관의 2심 재판은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된다. 앞서 정 전 교수는 지난해 1월 딸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이날 판결에 따라 정 전 교수는 징역 1년이 추가됐다. 조 전 장관은 이날 법정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되자 인상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부가 퇴정하자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정 전 교수를 토닥이며 위로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뇌물, 공직자윤리법 위반, 증거인멸 등 (혐의) 8~9개 정도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판사 마성영)가 선고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1심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유죄 판결을 받은 부분에 대해 항소해 더욱 성실히 다툴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그는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제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사모펀드 관련해선 거의 모두 무죄”라며 “2019년 법무부 장관 지명 후 검찰과 언론, 보수 야당은 제가 사모펀드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고 했다. 이어 “오늘 재판과는 큰 관계가 없지만 이 사건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죄 판결을 받은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재판부는 조 전 장관 부부에 대해 각각 징역 2년(조 전 장관)과 징역 1년(정 전 교수)을 선고하면서도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과 정 전 교수가 수감 중인 점 등을 고려해 조 전 장관을 법정 구속하진 않았다. 이에 따라 조 전 장관의 2심 재판은 수감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다.앞서 정 전 교수는 지난해 1월 딸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불법투자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이날 1심 판결 형량을 합치면 부부가 총 징역 7년형을 받은 것이다. 정 전 교수는 지난해 11월 허리디스크 수술 등을 위해 1개월 동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입원했던 것을 제외하면 2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해왔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국무총리 시절, 모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인사를 하며 수행과장을 가리켜 ‘이 친구도 고향이 전주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NY를 수행하는 과장과 식당 주인의 고향 모두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행과장은 종일 이 얘기를 자랑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소소한 일화이지만, 무심한 듯했던 직장 상사가 불쑥 던진 자신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게 되면 거기서 오는 감동은 꽤 큰 모양입니다.” -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 양재원 지음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의원실에서 오래 근무한 그의 측근인 양재원 전북도 디지털소통팀장은 2020년 1월 발간한 자신의 저서에서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 일본어인 ‘츤데레’(ツンデレ)라는 표현을 썼다. 츤데레는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에 ‘훈장님’, ‘엄중 낙연’ 등 별칭 붙어 “자네,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나? 대학은 어디 나왔나? OO대 출신 맞나?”기자 시절 이 전 대표는 후배들이 쓴 기사에 대해 이 같은 지적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신이 고등학교, 대학이라도 마쳤으면 기사를 이렇게 쓸 수가 있냐’는 질책이었다고 한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에 혹자는 모멸감을 느꼈다.이 전 대표의 밑에 있던 기자 후배들은 그의 꼼꼼함과 치밀함에 ‘학을 뗐다’고 한다. 기자 시절부터 원고지 200자 5장의 기사를 쓰면 1000자를 딱 맞출 정도로 완벽주의적인 성격이었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낸 그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이 팀은 우승한 날 밤에 모여 그 다음 시즌을 계획한다는 것이다. 그는 넥타이도 전날 밤에 고른다고 하지 않은가. 특히 글에 대해 엄격했다. 의원 시절, 작은 지역 언론사의 창간기념일 축사 초안을 보좌진이 써서 이 전 대표에게 가져갔다. 보좌진이 쓴 ‘지역 최고의 언론사’라는 표현을 본 그는 “이 언론사가 최고의 언론사면 자네 얼굴이 장동건 닮았다는 것과 같다”는 지적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대가 가진 고유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하려는 노력이 게으르니 허위의 과장된 표현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상대를 축하하려 든다는 취지로 꾸짖었다고 한다. 그는 혼낼 때는 복도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통을 치며 보좌진의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옛 보좌진은 “중저음에 목소리가 커서 호랑이굴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소리에서 오는 공포감이 크고 머리가 새하얘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남지사였던 그가 총리로 발탁되자 깐깐하고 엄한 도지사가 떠나니 전남도 직원들이 환호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 ‘군기반장’이었던 총리 시절엔 “총리에게 보고하러 가는 게 무섭다” “장관은 물론 고위공무원들이 언제 질책을 받을지 몰라 긴장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았다. “공직자는 4대 의무(국방, 근로, 교육, 납세) 외의 ‘설명의 의무’가 있으며, 이에 충실하지 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 - 2017년 8월, 차관급 인사 임명장 수여식에서2020년 총리를 마치고 당에 복귀한 뒤로는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진중하고 안정감 있지만 가르치려고만 하는 ‘꼰대’ ‘호랑이 훈장님’ 이미지 등도 반영됐다.● 아들에게도 ‘엄부(嚴父)’그는 후배나 아랫사람뿐만 아니라 실제 아들에게도 ‘엄부(嚴父)’였다. 외동아들인 이모 씨(41)는 2012년 12월 국립춘천병원 레지던트 생활을 앞두고 아버지 몰래 출퇴근용으로 외제차 ‘아우디’를 구입했다. 뒤늦게 재산신고 과정에서 이를 알게 된 이 전 대표에게 크게 혼이 났고, 8개월 만에 차를 팔고 국산차를 샀다고 한다. 2018년 3월 총리 시절 모친상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전 대표를 포함한 7남매는 2007년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냈는데, 당시 조문객들에게 이 책을 나눠드렸다. 장례식 마지막 날 새벽, 빈소를 정리하는 중에 이 전 대표는 장례식 도우미들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걸 본 이 전 대표의 조카들이 똑같이 사인을 받고 싶어 아들 이 씨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엄한 삼촌에게 직접 부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날도 이 씨는 아버지에게 “장례식장에서 가족들끼리 사인이나 받고 있어야겠냐”며 혼났다고 한다. ● 품격과 위트 있는 말과 글신문기자로 20년간 글을 닦아 온 이 전 대표는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언어를 자신의 장기로 삼았다. 초선 시절 아무 인연 없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그의 취임사까지 쓸 수 있었던 것도 쉬우면서도 품격 있는 말과 글 덕이었다.동아일보 기자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회사 출신의 선배지만, 정치권에 입문한 그를 보면 ‘어렵고 까칠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기사 때문에 혼났다”거나 “따로 후배들을 챙기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5월 전남 강진에서였다. 당시 강진 만덕산에서 칩거 중이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인터뷰를 위해 다른 선배와 함께 내려갔는데, 손 전 대표가 전남지사였던 그를 식사 자리에 불렀다. 이 전 대표는 당시까지 손학규계에 속했다. 막걸리를 마시던 그의 말이다. “국민의당(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은 안철수 의원 주도 정당) 초선 중에 손금주 의원이랑 이용주 의원이 있어. 내가 최근에 이분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당 방침이 뭐냐, ‘금주’(손금주 의원)냐 ‘용주’(이용주 의원)냐 했더니 황주홍 의원이 ‘주홍’. 술을 넓게 마시자는 것이라고 답해. 내가 이제 전남도 삼당(금주 용주 주홍) 체제가 됐다, 첫 번째 안주는 ‘삼합’이라고 했다.” - 취재 메모 중다시 취재 메모를 봐도 인상적인 ‘위트’였다. ‘아재개그’의 성격도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에게는 “자네는 이름도 순하고 생긴 것도 덕스러운데 왜 글은 독하게 쓰느냐”고 했다고 한다. 김 대기자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임명된 뒤 인기를 누렸다. 이 전 대표는 2017년 9월 대정부질문에서 능숙한 답변과 ‘촌철살인’ 화법으로 관심을 끌었다. 당시 야당 의원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한국이 대북 대화 구걸하는 거지 같다는 그런 기사가 나왔겠냐”고 하자 이 전 대표는 “의원님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상대방과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위트가 있었다. ● “김대중은 존경받는 지도자, 노무현은 사랑받는 지도자”2019년 12월 말 당시 총리였던 이 전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말이었다. 기사화를 위해 다듬기 전 ‘날것’의 워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존경받는 지도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랑받는 지도자였다. 노 전 대통령은 때로는 보통 사람과 다른 대응을, 때로는 거칠게 보였다. 그런 것마저도 대중적 사랑의 원천이 됐다. 한 번은 그때 충청권에 수도를 이전한다는 게 공약이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관습법 위반이라고 해서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일고 수도권에서 들썩들썩했다. 그 무렵 수도권을 안심시키려고 부천역에서 유세했는데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제가 충청권에 옮기려는 기관은 시끄럽고 돈 안 되고 더러운 기관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대변인이었던 나는 ‘야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화가 나서 ‘말 좀 조심하시라’고 하려고 전화했어. ‘여보세요’. 첫마디가 ‘제가 사고쳤지예~’. 항의하려다가 힘이 빠져서..‘약속 있어요? 소주 한잔 합시다’ 했어. 어휴 미워할 수도 없고. 그런 게 있다.”인터뷰 말미엔 “많은 국민으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좋은 총리였다’고 기억된다면 영광이겠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이낙연 총리 “신발 신고 발바닥 긁는 것 같은 정책은 곤란… 현장이 시작이자 끝”● 수비엔 능했지만 공격엔…문 전 대통령의 강한 신뢰를 받는 총리였던 이 전 대표는 후광 효과를 누렸다. 기자 20년, 정치 20년 등의 경력과 총리를 지내며 ‘수비’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은 차기 대선 주자로서 중도 성향의 이 전 대표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는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며 수개월 동안 대선 주자 1위를 달렸다. 최장수 총리를 마친 뒤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2020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본인도 서울 종로에서 당선되며 ‘상한가’를 쳤다. 당 조직을 장악하려던 그는 그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당의 전면에 나선 게 오히려 독배가 됐다. ‘꼰대’ 이미지와 “남자는 아이를 안 낳아서 철이 없다” 등 말실수가 이어지면서 점수를 깎아먹었다. 수비엔 능했지만 신중한 태도는 공격수로선 적합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능숙한 화법은 오히려 ‘미꾸라지’ ‘능구렁이’ 같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독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과거 누리꾼들이 풍자해 화제가 됐던 이 전 대표 화법이다. 2021년 신년 특사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주장했다가 친문 지지층의 외면을 받으며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사이다’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타고난 공격수인 이재명 대표에게 후보직을 내줘야 했다. 사면 논란 당시 이 전 대표도 “정말 뼈저린 후회를 했다”고 한다. 본인이 총대를 멘 것 자체가 오만함이었다는 후회였다. 논란 이전엔 이 전 대표를 신선하다고 보는 국민들이 있었지만, 정치공학적인 시도로 비춰지면서 대중들이 실망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 이재명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친 것이 오히려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는 반응도 있다. 열린우리당과 분당됐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에 남았다는 것도 다시 회자됐다. 이 전 대표는 대선이 끝난 뒤 지난해 6월 출국해 현재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복귀를 독촉하고 있지만 차기 대권 가도가 녹록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본인이 존경받는 지도자와 사랑받는 지도자라고 표현했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1년간 총리와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이었던 그의 ‘마크맨’이었습니다. 특별히 후배라고 챙겨주지 않았고, 특히 다른 기자들 앞에선 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만 챙기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을 차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대신 한 번은 대정부질문이 있던 날 저녁 자리를 마치고 가다가 바깥에서 보이는 1층 김치찌개집에 총리 경호원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대정부질문을 마치고 몇몇 장관들과 함께 요기를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장관 등도 같이 있길래 후배 기자와 함께 ‘쳐들어’ 갔습니다. 가서 인사를 했더니 “앉아서 막걸리 한잔 먹고 가라”고 합석을 권유했습니다. 총리 시절 몇 차례 만났습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당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국회에서 따로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총리님” 하고 인사했더니 돌아온 말은 “자네, 왔는가”였습니다. 두 단어였지만 왠지 모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따뜻한 속정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츤데레’라는 별명이 그에게 잘 맞다고 봅니다. 후배들에게 엄하고 따끔한 질책을 하더라도 그들의 발전을 위해 옳은 소리를 한 것일 뿐이고 ‘뒤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차례 대선 경선에서 낙마한 그는 이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9일 <법정모독 6화>에서는 이 전 대표의 대선 주자로서의 전망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
“법률학의 발달, 사법사무, 변호사사무의 쇄신 개선, 변호사의 품위 보전과 국제 친선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1949년 11월 만들어진 변호사법 제정안 43조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설립 목적에 대해 이같이 규정하고 있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 수는 16명에 불과했고 1952년 창립된 대한변협의 회원도 대부분 현직 판검사 등 공직자였다. 당시 법엔 대한변협이 13번 등장하지만 현행법엔 111번 나온다. 그만큼 기능과 역할이 방대해졌다는 의미다. 그뿐만 아니라 협회장은 대법관, 검찰총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대법원장 지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각종 후보추천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권한과 영향력이 막강한 52대 협회장에는 김영훈 변호사(59·사법연수원 27기)가 선출됐다. 김 신임 회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협회관에서 열린 당선증 교부식에서 “이번 선거는 산업 자본의 법률시장 침탈이란 위기 상황에서 치러졌다”며 “사설 플랫폼 퇴출 및 공공 플랫폼 ‘나의 변호사’ 혁신을 약속드리겠다”고 했다.‘3만 변호사’ 수장의 첫 일성이 로톡 등 사설 플랫폼 퇴출인 것은 민망한 일이다. 몇 년 전부터 대한변협은 로톡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로톡 이용 변호사를 징계하는 등 소속 단체가 일부 회원들을 사실상 ‘왕따’시키는 것도 모양새가 사납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출마 후보 모두가 로톡 퇴출을 구호로 내세워 회원들의 눈총을 샀다. 선거운동 과정에선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문자 폭탄’까지 보냈다. 변호사들 사이에선 “이런 선거는 처음이다. 정치판이 따로 없다”는 반응이 상당수였다. 선거에 회의를 느낀 일부 회원들이 투표를 거부하면서 이번 선거에선 전체 회원 중 약 37%만 투표를 했다. 47∼51대 회장 선거 투표율 55∼60%와 비교하면 3분의 2가량만 투표한 것이다. 70년 전에 만들어진 제도를 시대에 맞게 고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전관 변호사는 “과거엔 공익단체 성격이 강해 각종 권한이 주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공직을 안 거친 회원들이 90%에 가깝고 단체 성격도 이익단체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로톡의 처지가 불법 콜택시 영업 논란을 빚다가 사업에서 철수한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와 비슷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타다 서비스가 사라진 후 심야 택시 승차난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격 인상 등으로 소비자들의 편익이 저해됐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에 갇히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코끼리 생각이 난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이 사설 플랫폼 퇴출을 언급할수록 상당수의 국민들은 “대한변협이 법률 소비자는 고려하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나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한변협은 사설 플랫폼 퇴출보다 시급한 과제가 많다. 인권 보호, 법률제도 개선, 청년 변호사들의 수임 및 고용 문제 등이다. 판사나 검사는 한자로 ‘일 사(事)’를 쓰지만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쓴다. 선비는 시장의 필부와는 달라야 한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하다 보면 더 꼬이게 된다. 쾌도난마(快刀亂麻)로 과감하게 끊어낼 건 끊어내고 버릴 건 버려야 한다. 측근이고 ‘내 새끼’여도 엄정하게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한 결과 수천 년 뒤에도 제갈공명은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언행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국민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5가지 테마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살펴봤다. ① 인사 : “인사로 국민 달랠 기회 날려” 과거에 대통령이 느닷없이 국면 전환 차원에서 인사를 하던 시절에도 책임을 물을 뭐가 있어야 했지, 그냥 사람을 바꾼 적은 없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많은 언론과 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2일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선을 그었다. 이어 3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당분간 개각은 없다”며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개각설을 일축했다.장관과 정책수석, 불난 집은 놔두고, 불똥 튄 옆집에만 물세례를 퍼부은 ‘엇나간 인사’. 청와대는 인사로 국민을 달랠 기회마저 날려 버렸다.이 장관 해임을 주장해온 더불어민주당의 논평 같지만 이는 김은혜 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2020년 8월 당 대변인 시절 문재인 정부를 향해 냈던 논평이다. 당시 청와대 참모진의 다주택 보유 등 부동산 민심이 격화되고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질 때였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9%로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도 높았다. 위기가 계속되면 위기인지 모른다. 성적이 조금만 오르면 괜찮은 점수인 듯 좋아한다. 간신히 낙제점을 벗어난 것인데도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 극복을 외치며 대선에 도전했던 윤 대통령도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보호했던 문 전 대통령과 별 차이가 없다. 잘라야 할 ‘제 식구’는 보호하기 바쁘고 자르지 않아야 할 참모들은 해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자를 수 없으니 대신 자르라고 있는 게 정무직 공무원과 대통령실 참모진이다. 물론 이상민 장관은 취임한 지 8개월도 안 됐다. 대통령실의 ‘선(先)진상조사 후(後)문책’이라는 방침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반쪽’짜리로 끝났다. 야당은 이상민 장관 탄핵을 추진하는 등 정국은 계속 꼬이고만 있다. 정국 경색을 풀어내지 못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윤 대통령은 아집과 오기로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충암고 후배이자 대통령 측근인 이상민 장관 스스로 시한부 거취를 표명함으로써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그해 연말 해수부 예산안이 처리된 뒤에 스스로 거취를 표명했다. 이상민 장관이 이 전 장관처럼 유가족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도 아니다. ② 정무 : 무능한 참모진, 귀 닫는 대통령 꼬인 것은 이뿐만 아니다. 나경원 전 의원의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둘러싼 갈등은 점입가경, 화룡점정이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17일 배포한 나경원 전 의원 관련 보도자료를 보고 헛웃음을 터뜨린 사람이 적지 않다. 먼저 대통령께서는 누구보다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대통령께서는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서 공적 의사결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나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입니다. 국익을 위해 분초를 아껴가며 경제외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입니다.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및 기후환경대사 해임 결정과 관련해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했다가 친윤 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은 데 이어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나선 것이다. 김 비서실장의 워딩은 그 자체로 낯 뜨겁다. 국정 현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첫 번째 문장부터 동의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경제외교 활동을 하기 바쁜 분이 이렇게 당무에 개입했다는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런 인식을 가진 이가 비서실장을 하고 있으니 지금 누가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김 비서실장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김 비서실장이 과연 본인의 의사대로 저렇게 문구를 작성했겠냐”고 했다. 윤심(尹心), 대통령의 뜻이 직접 또는 누군가를 거쳐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김 비서실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나 전 의원은 20일 “관련된 논란으로 대통령님께 누(累)가 된 점, 윤석열 대통령님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출마를 고심하던 그는 결국 25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 간 공천 파동이 일찌감치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당 대표가 여섯 군데 지역 공천장에 당인(黨印)을 찍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가버린 ‘옥새들고 나르샤’와 같은 초유의 사태가 향후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를 보는 국민들은 불안하다. ③ 언어 : 잇단 말실수… ‘사과’는 없어그는 첫 만남에선 ‘하십시오체’를 썼지만 이후 ‘해요체’는 쓰지 않았다. 바로 ‘하게체’와 반말로 넘어갔다. ‘석열이형’, ‘보스’ 이미지가 강해 친근하면서도 고개를 수그리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발음이 정확하고 억양이 강해 말에 힘이 있었고 말과 함께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 손동작이 컸다.사석에서 그의 입에선 ‘이 X끼’ ‘저 X끼’ ‘이 놈’ ‘저 놈’ 등 거친 단어가 튀어나왔다. 편하게 후배 검사들을 지칭할 때나 적개심이 있는 상대방을 향해 썼던 단어다. 당시 그의 이런 언어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검사 선후배들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어는 아니다. 이런 언어습관이 결국 방미 중 벌어진 MBC의 자막조작 논란을 빚은 사고로 이어졌다. 그의 육성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귓속에서 ‘그 음성’이 실시간 재생됐을 것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또는 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하면 그가 입법부를 비하한 게 된다. 대통령보다 한수 아래로 보거나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 그런데도 그는 사과나 송구스럽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냥 말실수 했다고 사과하면 끝날 일이었다. ‘자막 조작’ 등 MBC의 보도가 왜곡됐다고 대통령전용기 ‘1호기’에 태우지 않았다. 관련 보도에 일부 문제가 있었더라도 1호기를 못 타게 한 것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연달아 1호기에서 언론사 기자 2명만 콕 찍어 부른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1호기에 태우지 않는 것은 ‘참 사소한 보복’이다. 총장 시절 그를 정치적 위기에 빠뜨렸던 MBC의 ‘검언유착’ 보도 등에 대한 반발이 담겼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그가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던 시절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찾아보니 민주당 강훈식 의원도 지난해 똑같이 지적했다. 사람 생각은 비슷하다.) 그나마 이달 중순 중동·스위스 순방에선 탑승 금지가 해제된 것은 다행이다. 이번 순방에서 문제가 된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발언도 비슷하다. 이란 측이 자국 주재 윤강현 한국대사를 부르자 우리 외교부도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했다. 상대국 입장에선 방귀 뀐 놈이 성 내는 격이다. 외교관들이 물밑에서 사과하거나 대통령실이 인정했으면 될 일이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오게 하는 것(近者說遠者來)”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주변 참모진은 물론 야당 의원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중도층과 야당 지지층, 외국 정상 등에게 좀 더 마음을 살 필요가 있다. ④ 대국민·대언론: 신년 기자회견 대신 단독 인터뷰1월 2일자 조간 신문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통령이 한 언론사와 단독 인터뷰를 하는 일은 드물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그나마 공영방송인 KBS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검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이던 시절 조선일보 사장의 변호인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그가 조선일보 사장과 만났다는 보도가 난 뒤 만나서 얘기했던 내용이다. 내가 태평양에서 변호사 할 때 변호인이었다. 변호사 때는 자주 뵈었지. 그러다가 검찰에 복귀하고 나서 1년에 한 번씩은 옛날 팀들하고 만났는데 못 뵌 지 꽤 됐어. 근데 얼마 전에 결혼식에서 만났어. 저녁 한번 하자고 하시길래 ‘합시다’ 했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자들에 대해 “가장 먼저 만나는 국민”이라고 했다고 한다. 언론의 대표인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물먹이는 건 대통령의 판단 미스다. 1개 언론사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사들을 적으로 돌리는 건 쉽사리 이해가지 않는다. 대통령이 모든 언론과의 신년 기자회견 대신 우호적인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기자들만 따로 불러 만남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다. 차라리 걸리지라도 말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원래 ‘프레스 프랜들리’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도어스테핑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에 데었다고 해서 신년 기자회견이 아니라 특정 언론만 상대하며 ‘편 가르기’를 해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공정이다. 대통령은 사적인 인연과 감정에 연연하면 안 되는 자리다. ⑤ 검찰·사정: 尹이 언급했던 검찰이 망하는 지름길은?각종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은 성역 없이 반드시 해야 된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선봉에 섰던 윤 대통령이 그 폐해를 알고서도 이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지금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과제를 안고 있고 당시에도 똑같이 정치보복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난 기본 방침이 야당 관계자는 털도록 해보고 안 털리면 남은 걸로 기소한다.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설명 들어보고 다 털어줄 거 털어주고 그래도 객관적인 게 남으면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검찰이 망하는 지름길… 이우현하다보니 홍문종이 나온 거고. 일부러 뒤지려고 한 게 아니다. - 취재 메모 중2018년 10월 당시 ‘예산정보 유출 의혹’ 관련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에 대한 수사가 막 시작됐던 시기 그가 했던 말이다. 서울중앙지검은 그 시기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이우현 홍문종 전 의원 등 당시 야권 관계자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야당 탄압이라는 뒷말을 낳지 않기 위해 표적수사는 물론 하지 않고 가급적 야당을 향한 수사일수록 ‘(무혐의로) 털어준다’고 했던 그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에도 이같이 말했다. 제가 집권해 정치 보복을 한다면 아마 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저부터 정치적 기반과 국민들의 동의를 상실할 거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청와대가) 그런 개입들을 많이 하고 있을 거라고 저는 추측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나중에 굉장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권력이 셀 때 남용하면 반드시 몰락하게 돼 있다. 그런 무모한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자칫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공안부서를 모두 야권이나 전 정권 인사에 투입해 수사하고 있다. 최근 쓴 칼럼에서 이를 다룬 바 있다. ▶檢 저인망식 야권 수사로 미제사건 늘고, 국민도 피로감[광화문에서/황형준]한동안 윤석열 정부가 뭐를 하겠다는 게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윤석열 정부에선 법무부, 검찰만 보였다. 그나마 최근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이라는 과제를 강조하면서 성과를 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3대 개혁 추진을 밝히자 검찰과 공안당국이 개혁을 위한 집행기관이라도 된 것인 양 민노총 연계 간첩 사건, 노조 사건 등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⑥ 조언: 선출된 권력은 국민 앞에 겸허해야 요즘 대통령이 ‘마이웨이’를 걷는 외골수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예전과 달리 주변의 직언을 안 받아들이고 쓴소리를 하면 서운해한다는 것.비선 논란도 계속 제기된다.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며 잠시 숨죽이던 김건희 여사도 다시 공식 무대로 올라오며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김 여사의) 오빠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후보 시절부터 천공 스님 등 무속 논란까지 빚어졌다. 최순실 씨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던 그야말로 ‘비선 실세’ 논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관련 보고를 받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보를 하려 했지만 이를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윤 대통령이 실제 직언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직언을 하는 참모가 없는지 궁금하다. 선출된 권력은 국민 앞에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들에게 ‘항명’해선 안 된다.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하던 2019년에 그가 3년 뒤 대통령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합리적인 중도 성향으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잘할 것 같다’는 개인적 기대가 있었습니다. 검사였던 그와 여러 차례 만나 생각을 엿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법조 출입에서 다시 국회 출입으로 옮길 때 선약을 취소하고 송별 점심을 사줄 만큼 정이 많은 분이었습니다.현 시점에서 대통령실 출입기자도 아니고 최근에 본 적이 없는 제가 그의 과거 생각을 일부 공개하는 게 적절한지 고민이 컸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와 선출한 대통령에 대해 역사의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판단, 그리고 의무감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대선 당선 후 그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검찰 출신 편중 인사, 무속 논란, 잇따르는 설화 등 8개월 성적표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4년 4개월의 임기가 남았습니다. 국민들은 그의 ‘통 큰 정치’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야당과 그 지지층도 국민들이 다수결로 뽑은 대통령을 존중해야 합니다.해외기업 및 해외프로젝트 유치, 경제회복, 청년일자리 창출, 미래산업 육성,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 논의 등 성과를 낼 분야가 많습니다. UAE서 300억 달러 유치한 것도 분명 국민들이 박수쳐야 할 성과입니다. 지지층만 보고 가는 정치, 국민을 통합시키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단기적으론 지지율을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양극단의 정치가 심해질수록 국민갈등은 커집니다. 그가 후보 시절 내세웠던 포용과 협치, 화해와 통합 등의 가치가 다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2월 2일 공개될 <5화>에선 야권 인사로 넘어가 ‘츤데레’ 별명을 가진 분을 다루겠습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어떤 음악을 듣거나 어떤 영화를보거나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오감이 자극될 때 추억으로 소환되며 함께 했던 사람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의 감각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는 처음 술자리부터 강렬한 인상을 줬다. 어느 날 저녁 한 식당에서 ‘1차’가 끝날 무렵 누군가 한잔 더 하러 가자며 2차를 제안했다. 말석에 앉아 ‘소맥’을 잇따라 마시고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였다. 귀가할 분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길을 걸어가며 지하에 있는 위스키바에 들어갔다. 그는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위스키(아마 싱글몰트 위스키였을 것이다)를 주문한 뒤 야구공 같은 얼음을 위스키 잔에 넣었다. 온 더 락으로 위스키를 가득 채워 넣었다.훗날 손바닥에 ‘王(왕)’ 자가 그려져있어 논란이 된 그 큰 손이었다. 잔을 부딪친 뒤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많은 위스키를 원샷한 것은 그날이 거의 처음이었다. (이날인지 다른 날인지 모르겠지만 화채그릇에 위스키 등 남은 술을 담아 나눠마시는 폭탄주도 처음이었다.)● 고시생들 “저 선배랑 놀면 시험 못 붙는다…후배들 피해다녀” 그는 대학시절부터 ‘호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법시험 9수를 하며 많은 책을 읽고 달관할 줄 알아서 ‘신림동 신선’으로 불렸다. ‘말술’을 하며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 것. 최근 만난 서울대법대 1년 후배이자 검찰 출신 변호사의 전언이다. 압구정동에 독서실이 좋은 데가 생겨서 사시 준비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다녔다. 나랑 그도 다녔다. 아침에 오면 신문을 쭉 읽고 점심에 공부하는 후배들 불러서 정치 사회 이런거 쭉 토론을 해. 그러면 논쟁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지지를 않았다. 자기 주장이 왜 맞는지 계속 토론을 해. 그러다가 저녁시간까지 가고… 그러고 술을 마시고 떡이 돼서 다음날 공부를 못하게 되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됐다. 그래서 ‘저 선배랑 놀면 시험 못 붙는다’고 다들 피해 다녔다. 안 마주치거나 다른 독서실로 가거나. 나도 다른 데로 독서실을 옮겼다.(웃음)그는 신림동과 연희동, 압구정동 등 여러 곳에서 공부하며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난해 4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저는 시험에 붙고 사법연수원을 마칠 때까지도 검사 한다는 생각을 안 했다”며 “저는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공직 생활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을 해줘서 검찰에 발을 디뎠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검사로 일하다 옷을 벗고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에 들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배달시킨 짜장면 냄새를 맡고 검사 시절이 그리워 1년 만에 검사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2003년 눈에 띄는 수사를 이어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도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11년엔 부산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그의 수사 스타일을 두고 ‘일단 밀어붙인다’거나 ‘터프하게 몰아간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지만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와 가까운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론스타 수사할 때 그가 책을 갖다주더라. “광주에서 배임 수사할 때 참고했다”며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의 그늘(번역본의 제목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을 줬다. 노벨경제학상을 받고 세계은행 부총재했던 사람이다. 그가 ‘썰을 잘 푼다’고 하지만 내공없이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책을 읽고 의견서를 쓸 정도로 정교하다.그 시절부터 그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가 직접 했던 이야기다.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가 2014년에 메신저를 통해서 재보선에 나오라고 하길래 ‘정치 안 합니다’라고 했어. 2016년에도 민주당, 국민의당(안철수 의원이 주도해 만들었던 정당)에서도 전화가 오더라고. 근데 내 적성도 아니고 국정원 사건 재판 진행 중인데 정치판 간다는 게 말이 안 돼서 좋게 거절했어. 재판 진행 중인데 성향이 그래서 기소한 거 아니냐는 말 나오니까 당에 부담될 거라고 말했어. 2004년에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서 총선 나오면 원하는데 공천 준다고 했다. 대선자금 수사하면서 삼성 돈이 민주당, 한나라당 간 수사하고 하니까. 대검에서도 내가 왜 이거 제대로 수사 안하냐고 하니까 휴가 갔다 오라고 해서 휴가 중인데도 찾아오고 그랬어. 그때 했으면 내가 지금 4선은 하고 있지. 2016년 국민의당 창당을 앞두고 안철수 대표와 정대철 고문이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됐던 윤 검사장을 불러 만났다고. 비례대표 후보를 제안했는데 윤 지검장이 큰 절을 하면서 “아직은 검찰에 하고 싶은 게 많다”며 제안을 거절했다고. -당시 취재메모● 후배들 술값 내느라 결혼 전 전 재산 2000만 원그는 호탕하고 술도 잘 마셔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후배들 술 사주느라 검사 월급은 거의 탕진했다. 52세의 나이에 김건희 여사와 결혼하던 2012년,전 재산은 2000만 원에 불과했다. 수사와 관련해 지휘부가 주저하거나 외압을 행사하면 들이받았다. 후배들에게 쪽 팔리는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베테랑 대사처럼.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시절 한 가지 일화는 다음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법무법인 ‘n분의 1’과 윤석열 당선인의 권력 나누기이후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으로 활동하다 윗선과 부딪히면서도 수사를 밀어붙이다 한직을 전전했다. 그는 거침없는 강골 검사이자 대표적인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다가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사팀장에 임명되며 ‘국민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임명됐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적폐 청산’ 수사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특별히 그의 성향이 민주당에 맞거나 문재인 정부와 가까웠던 건 아니었다. 가끔 방에 차를 마시러 갈 때마다 정치뉴스를 보고 있었다. 보수가 제대로 서야 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 보수 진영이 내분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 시기로 싸울 게 아니라 물갈이 등 쇄신부터 하자고 했어야 된다. 3선 이상 못하게 하는 규정 만들어야 돼. 미국 대통령도 봐라. 대부분 주지사나 상원의원 한 두 번하고 대선 주자가 된다. 민주당도 경제정책 바꿔야 된다. 주52시간, 최저임금 정책 수정해야 돼. 중산층이 잘 되게 해야 되는데 이러다 중소기업 다 망한다.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밀턴 프리드먼’ 신봉자인 그는 미국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9수를 하는 동안 석사 학위도 땄다. 그의 석사 논문의 주제는 ‘클래스 액션(class action)’, 즉 집단소송이라고 한다. 반독점(antitrust)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공교롭게 그의 자택 인근 단골가게 이름도 미국의 한 주(州) 이름이다. 미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등 전직 대통령이태어난 지역이다. 당선인 시절 서초동 자택 옆 단골가게에서 술자리를 갖다 사진이 찍혔던 곳 중 하나다. 요즘엔 지지자들이 ‘성지순례’를 다닌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시련을 겪은 건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뒤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를 하면서부터다. 조 전 장관을 수사하며 문재인 정부와 ‘맞짱’을 뜨기 시작했고 뒤이어 추미애, 박범계 전 장관과 각을 세우다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결국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며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이 됐다.그는 검사 때 뒤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 때 지휘부에들이받았고 검찰총장 때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에게 ‘항명’했다. 옳다고 믿으면 상사에게도 거침없었던 그를 국민들이 선택했다. 이제 그의 위엔 그를 불러낸 국민밖에 없다. 국민에게는항명해선 안 된다. 1·2화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글이 나가자 어떤 유튜버는 “정부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한동훈 장관을 띄워주는 기사가 나온다”는 음모론적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칼럼에선 ‘핫 피플’을 다뤄야 된다는 대선배의 조언을 따라 인물을 골랐고 평소 쓰고 싶었던 한 장관을 다룬 것 뿐입니다.이 코너는 제가 총감독입니다. 동아일보의 편집 방향 등과는 무관합니다. 저희 회사는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조직입니다. 3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그 분’에 대한 마음을 담아 썼을 뿐입니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설 연휴가 지난 뒤 26일 4화에선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국정운영에 대한 아쉬움과 생각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5화부턴 야권과 법조계 인물도 다루려고 합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1화 바로가기 “정치인 다 됐다. 여직원들이 1 대 1 사진 촬영을 요청할 때마다 싫은 기색 없이 응했다더라.”지난달 22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하 존칭생략)이 참석한 춘천지검 속초지청 개청식에 다녀온 한 검찰 간부는 이 같이 전했다고 한다.법무부 장관은 정무직 공무원이다. 검사 출신이 많이 임명되지만 검사 신분은 아니다. 정무직 공무원선거로 취임하거나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공무원. 고도의 정책결정 업무를 담당하거나 이러한 업무를 보조하는 공무원으로서 법률이나 대통령령(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의 조직에 관한 대통령령만 해당한다)에서 정무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국가공무원법 2조 3항 1호) 한동훈이 장관에 취임한 지 240일이 넘었다. 취임식 영상만 유튜브와 방송을 통해 수백만 명이 볼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았다. 그는 취임한 뒤에는 법무부 직원이 장관의 관용차 문을 열어주는 의전을 없애고, 장관‘님’ 호칭을 없애는 등 눈에 띠는 행보를 이어갔다. 간결하고 명료한 말의 힘도 ‘한동훈 팬덤’을 낳는 데 기여했다.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범죄자뿐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부패범죄를 제대로 수사하라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겁니다.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등의 말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아직 한동훈이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에선 이미 여권 유력 대선 주자 1,2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가 국민들을 대하는 모습도 정치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장 시절 여론조사에 포함되자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했다. 하지만 한동훈은 이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아직 출마표를 주머니 안에 넣어두고 있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동훈 동기 “지금 보면 알 수 없어”“검찰에서 나가면 더는 공직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현 정부 출범 전인 2021년 하반기. 사석에서 그에게 정치권과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정치권 출마 권유에 대해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게 “귀찮다”고도 했다.그가 요즘 자신의 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지난주 한동훈과 친한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적으로 내가 아는 한동훈은 절대 정치 안 한다. 철학도 안맞고 지역구 관리하면서 술 마실 사람이 아니잖나. 그런데 요즘 보면 ‘야 이거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께서도 안 하신다고 했는데 흐름을 따라갔다. 이 양반 지금 얘기해보면 전혀 생각 안하고 장관 열심히 한다고 한다. 몇 달 전에 물었을 때도 안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알 수 없다. 총선 나가는 게 아니고 (대선 직행 등) 다른 길도 있는 분위기다. 한동훈이 정치 감각은 있고 말을 귀에 딱딱 꽂히게 하는 걸 잘한다. 물 만난 거다. 하지만 스타일이 은근히 게으르고 자유로운 걸 좋아하니까. 일하다가 나가서 자유롭게 사는 걸 갈구했는데 본인한테도 예상 못한 송사도 생겼고, 장관 끝나고 나갈 때 상황에 따라 봐야 될 것 같다. 윤 대통령이 그냥 놔줄지도 관건이다.(웃음)정치인으로서의 약점‘정치인 한동훈’의 약점은 뭘까. 한동훈은 검사 시절 수사에 ‘얄짤(’일절없다‘는 말에서 변형된 말로 표준어가 아니지만 ’봐주지 않는다‘는 뜻의 신조어로 등록)’이 없었다. 원래 특수부 선배 검사들은 “혐의의 70%만 수사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혐의 중 주요한 것만 하고 모든 것을 다 털털 털어 수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탈탈 털면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고 반발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또는 신호 위반에 적발됐을 때 대부분 항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만약 하루 종일 경찰이 내 뒤를 쫓아다니면 누구라도 똑같이 반발할 것이다. 한동훈은 100% 수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국이 ‘멸문지화’를 거론하고 야당 지지층이 거세게 항의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수사를 했던 기업인이나 판사 등은 한동훈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정치의 영역에선 대화와 타협, 갈등 해소, 포용과 용서를 이뤄낼 줄 알아야 한다. 엘리트 법조인 등에 둘러싸인 인간 관계도 한계라면 한계다. 정치권에선 그간 많은 서울법대 출신 정치인들이 대선에 줄줄이 실패한 것을 두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거나 민심을 읽지 못한다는 등 이유로 분석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그 징크스를 깨고 이번에 처음 탄생했다. 정치인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갈등을 조정하는 게 일이다. 하지만 스타일상 그게 쉽지도 내키지도 않을 것이다. 당장 법무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린다. 장관 취임 이후 기존에 간부회의와 확대간부회의 등을 대거 줄였다. 기존 법무부는 실국장 이상 등 간부들이 참여하는 간부회의와 기획검사 및 주요 선임 보직자들도 함께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 등 주2회에 걸쳐 간부회의가 이뤄졌거든. 그런데 장관 취임 이후로 일주일에 간부회의와 확대간부회의를 포함해 전체 회의를 한 번만해. 그 중에서도 절반은 서면 회의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어 한달에 사실상 2번 대면회의를 하는 거지. 그래서 다른 간부들끼리도 서로 만나는 기회가 줄었다. 직원과 밥도 거의 안 먹는다. 대신 장관은 매일 아침 출근 후 자신의 최측근인 권순정 기획조정실장, 신자용 검찰국장과 3인 회의를 하거나 신동원 대변인과 이노공 차관까진 참여하는 5인 회의를 매일 진행해. 외부 사람들과도 만나 목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잘 소통하지 않는다. 정치하려면 밥도 먹고 스킨십도 해야 되는데 말이야. -지난해 9월 한 법무부 고위간부싸가지와 ‘얄짤’은 종이 한 장 차이정치권에선 한동훈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필자는 9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바로가기 조용필이 매일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다. 마지막에 등장하면 된다. 매번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나설 필요가 없다. 말을 아낄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과, 언론과 싸우려 해선 안 된다. 품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인 한동훈’은 자신의 몫정치권에선 △국민들에게 강한 임팩트(인상)를 주거나 △스토리가 있고 △고정 지지층 또는 당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대선 주자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운도 중요하다. 김종필 박찬종 고건 문국현 황교안 등이 대권가도에서 미끄러진 것은 이것 중 1~2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일단 임팩트와 ‘잘나가던 검사가 한직을 떠돌게 된’ 스토리, 국민의힘 지지층 등 고정 지지층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명세를 치를 ‘깡다구’와 돌파력이다. 그만큼 권력의지는 물론 정치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직 한동훈은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검사와 법무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할지, 정치인으로 새 출발할지 그의 결단과 향후 정세에 달려 있다. 커튼콜독자 여러분과 소통하겠다는 거창한 문패를 걸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댓글 질문 일부에 대해 한 장관 측 인사들에게 몇 가지 취재를 했습니다. 1. MBTI : 한 장관이 본인도 확인해보지 않았답니다.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질문 수가 생각보다 많아서 끝까지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2. 책 : 1화에 나온 ‘밥 딜런’ 관련 책은 그의 가사집입니다. 지금 법무부 책상에는 ‘핏빛 자오선’(코맥 맥카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김보영), ‘종의 기원’(다윈), ‘알렉산더 해밀턴 전기’(론 처노), ‘미스테리아 44호’(엘릭시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등이 놓여 있다고 합니다.3. 건강관리 및 운동 : 그는 골프를 안 칩니다. 지금도 사무실과 집에 철봉을 설치해 놓고 턱걸이나 딥스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4. 사무실 : 요즘도 장관 집무실에 종종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장관님이 직접 타이핑할 일은 많지 않아 모션데스크는 없답니다. 나머지 궁금증은 언젠가 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개하길 기대합니다. 19일 법정모독 3화는 별명이 ‘엉덩이탐정’인 분이 검사이던 시절 만난 이야기로 써볼까 합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 2005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같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한 유명한 평가다. 유 전 장관은 정치권에서 논쟁적 인물이다. 그는 대학생 때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돼 1985년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직접 쓴 ‘항소이유서’로 유명해졌다. 이후 칼럼니스트와 작가, 방송인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자문 역할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워졌고 2003년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며 친노(친노무현) 그룹 핵심이 됐다. 2006년 노 전 대통령이 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유력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급부상했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말’이 발목을 잡았다. ‘싸가지’ 딱지가 주홍글씨처럼 계속 따라붙었고,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강준만 교수 책 제목처럼 진보 진영에서 그의 존재가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경기도지사 선거 등에서 잇따라 패배하자 그는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계 복귀론이 거론됐지만 자의든 타의든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유 전 장관을 상대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유 전 장관은 2019, 2020년 유튜브 방송 등에 출연해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한 장관이 자신과 노무현재단의 계좌를 조회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 장관이 반발하자 유 전 장관은 공개 사과했다. 한 장관은 민형사 소송을 걸었고 유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심이 진행 중이지만 이미 승기는 한 장관 쪽이 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분쟁 중인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았다. 둘 다 말과 글이 논리정연하고, 타고난 ‘쌈닭’이다. 노사모와 후니월드 등 팬덤이 있고 각각 ‘빽바지’와 ‘뿔테안경’ 등으로 주목받은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각 정권의 황태자로 차기 여권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한 장관은 유 전 장관을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 장관이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보고한 걸 두고 논란이 일었다. 공개되지 않은 노 의원 혐의와 관련한 새롭고 디테일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체포동의안 부결이 유력한 상황에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돈을 줘서 고맙다고 하는 노 의원의 문자메시지도 있다. 돈 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그대로 녹음돼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한 장관에 대해 “명백히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중죄를 저질렀다”고 반발했다. 법무부는 두 차례나 설명 자료를 내며 “장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국회에 나가 한 장관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올바른 얘기도 계속 면전에서 ‘따박따박’하며 맞설 경우 상대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 한 장관이 정말 ‘정치인 한동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로 했다. 이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는 건 2018년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한 이후 4년 2개월 만이다.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6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10일 오전 10시 반에 성남지청에 출석하는 일정이 합의됐다”며 “이 대표는 당당하게 출석해서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5∼2018년 네이버, 두산건설, NH농협은행, 차병원, 알파돔시티, 현대백화점 등 관내 기업 6곳에 부지 용도변경 등을 대가로 160억여 원의 성남FC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지난해 9월 성남시 전략추진팀장이었던 A 씨를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하며 공소장에 이 대표와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수감 중)을 ‘공모자’로 적시했다. 검찰은 이 대표를 상대로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 뇌물’을 받았는지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검찰은 당초 이 대표 측에 지난해 12월 28일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 대표 측이 “일방적 통보에는 응할 수 없다”고 해 일정이 연기됐다. 李측 “성남FC 정상적 후원 받아”… 檢 “대가성 입증 자신” 이재명, 10일 검찰 출석野, 9일부터 임시국회 소집 요구與 “빈틈없는 이재명 방탄” 비판檢요구로 제1야당 대표 출석 처음 “법과 원칙에 따른 정상적 후원 절차였고 대가성이 없었다.”(이 대표 측) “두산건설, 네이버 등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에 대해선 충분히 혐의 입증이 됐다.”(검찰 관계자) 10일로 예정된 이 대표 검찰 조사에서 양측의 입장은 이렇게 갈린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인 2014년 축구단을 인수한 후 ‘잘 운영해 능력을 보이겠다’는 정치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성남시로부터 인허가 등을 받아야 하는 기업을 접촉해 후원금을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 대표 측은 “후원금 유치는 규정에 따른 광고영업”이라며 “각종 인허가 처분은 정해진 법규와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재명, “정치보복” 공개 메시지 낼 듯 이 대표는 10일 성남지청 앞에서 “정치보복이자 야당 탄압”이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는 이번 검찰 조사에 대한 준비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직접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선 “유례없는 제1야당 대표 소환은 국론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란 반발이 나왔다. 제1야당 대표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해 조사를 받는 건 처음이다. 2019년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의 경우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출석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또 민주당은 이날 국회 의사과에 1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임시국회를 요구할 수 있다. 임시국회는 9일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관계부처 장관을 상대로 현안 질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빈틈없는 이재명 방탄’을 위해 임시국회를 단독 소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면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는 체포할 수 없다. 당초 이 대표 측은 검찰 출석 여부를 두고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지난해 8월 대선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출석을 요구했을 때 이 대표는 서면답변서만 제출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성남FC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출석은 검찰과의 공방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혐의 입증 자신감 보이는 檢 반면 검찰은 이 대표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검찰은 A 씨 공소장에서 이 대표가 2014년 11월경 성남FC 운영자금을 현금으로 받을 적법한 수단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도 “용도변경에 따른 이익 중 일부를 환수하는 방안도 검토 보고 바람”이라고 보고서에 직접 썼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검토할 방침이다. 1월 임시국회가 소집된 만큼 이 대표를 구속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처리돼야 한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요건인데, 현재 민주당이 299석 중 169석을 차지하고 있어 가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지난해 12월 28일 본회의에서 찬성 101명, 반대 161명으로 부결됐다. 이 대표에게는 이후에도 검경의 추가 출석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조만간 이 대표를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경은 또 변호사비 대납 의혹(수원지검)과 백현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경기남부경찰청) 등에도 이 대표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로 했다. 이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는 건 2018년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한 이후 4년 2개월 만이다.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6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10일 오전 10시 반에 성남지청에 출석하는 일정이 합의됐다”며 “이 대표는 당당하게 출석해서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5∼2018년 네이버·두산건설·NH농협은행·차병원·알파돔시티·현대백화점 등 관내 기업 6곳에 부지 용도변경 등을 대가로 160억여 원의 성남FC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지난해 9월 성남시 전략추진팀장이었던 A 씨를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하며 공소장에 이 대표와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수감 중)을 ‘공모자’로 적시했다. 검찰은 이 대표를 상대로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 뇌물’을 받았는지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검찰은 당초 이 대표 측에 지난달 28일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 대표 측이 “일방적 통보에는 응할 수 없다”고 해 일정이 연기됐다. “법과 원칙에 따른 정상적 후원 절차였고 대가성이 없었다.”(이 대표 측) “두산건설, 네이버 등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에 대해선 충분히 혐의 입증이 됐다.”(검찰 관계자) 10일로 예정된 이 대표 검찰 조사에서 양 측의 입장은 이렇게 갈린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이었던 2014년 축구단을 인수한 후 ‘잘 운영해 능력을 보이겠다’는 정치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성남시로부터 인허가 등을 받아야 하는 기업을 접촉해 후원금을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 대표 측은 “후원금 유치는 규정에 따른 광고영업”이라며 “각종 인허가 처분은 정해진 법규와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재명, “정치보복” 공개 메시지낼 듯 이 대표는 10일 성남지청 앞에서 “정치보복이자 야당 탄압”이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는 이번 검찰 조사에 대한 준비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직접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선 “유례없는 제1야당 대표 소환은 국론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란 반발이 나왔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대한민국 정치사에 제1야당 당수를 구속시킨 전례가 없다”며 “(이 대표의 경우) 명백한 100% 증거도 없다”고 했다. 또 민주당은 이날 국회 의사과에 1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임시국회를 요구할 수 있다. 임시국회는 9일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은 “외교부·통일부·국방부 등 관계부처 장관을 상대로 현안 질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빈틈없는 이재명 방탄’을 위해 임시국회를 단독 소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면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는 체포할 수 없다. 당초 이 대표 측은 검찰 출석 여부를 두고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지난해 8월 대선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출석을 요구했을 때 이 대표는 서면답변서만 제출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성남FC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출석은 검찰과의 공방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혐의 입증 자신감 보이는 檢 반면 검찰은 이 대표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검찰은 A 씨 공소장에서 이 대표가 2014년 11월경 성남FC 운영자금을 현금으로 받을 적법한 수단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도 “용도변경에 따른 이익 중 일부를 환수하는 방안도 검토 보고 바람”이라고 보고서에 직접 썼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대표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검토할 방침이다. 1월 임시국회가 소집된 만큼 이 대표를 구속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처리돼야 한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요건인데, 현재 민주당이 299석 중 169석을 차지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지난해 12월 28일 본회의에서 찬성 101명, 반대 161명으로 부결됐다. 이 대표에게는 이후에도 검경의 추가 출석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검경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외에도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특혜 의혹(서울중앙지검) △변호사비 대납 의혹(수원지검)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경기남부경찰청) 등에도 이 대표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황형준기자constant25@donga.com허동준기자 hungry@donga.com}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떡잎부터 눈에 띤 ‘워커홀릭’ 한동훈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검찰 선배들에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하 존칭 생략)이 딱 그런 평가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에 합격한 뒤 남들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놀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음주가무를 즐기고 마작과 골프 등을 배우기 바빴다는 군법무관 시절.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한동훈은 소속 부대 영관급 간부를 혼자 인지수사해 수뢰죄로 구속시켰다. 이 때부터 검찰 조직에서 한동훈을 눈여겨봤다는 게 한 검찰 출신 변호사의 전언이다. 그는 평검사 시작부터 탄탄대로였다. 사법연수원 성적 등이 톱이어야 배치되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초임검사를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금융조세조사부의 전신)에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시절 대선자금 수사와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중수부 근무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윤 대통령 등 다른 검사들이 늦은 밤 조사를 마치고 “한 잔하러 가자”며 술자리에서 회포를 풀 때 혼자 남아 밤새 회계장부 등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한 검사였다. 2007년부터 부산지검에서 근무할 땐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시켰고 이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통령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법무부 검찰과 검사,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사부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국정농단 특검팀에 파견돼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 아래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순실 씨 조카인 장시호 씨 등을 조사했다.다음은 특검팀 시절 장 씨 조사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한동훈이 했던 이야기다. “(최순실 씨) 그 집안이 머리가 좋아. 박근혜 전 대통령 대포폰 번호는 장시호가 특정해낸 것이다. 당시 번호가 특정이 안 되면 양측이 통화해서 논의했다는 게 입증이 잘 안 될 수도 있었다. 최순실은 당시 파우치에 포스트잇 붙여진 대포폰 등 휴대폰 10개 정도를 넣어서 갖고 다녔다고 한다. 그 중 하나로 전화가 오면 항상 최순실이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받고 나와서는 박 전 대통령 얘기를 하는 게 장시호 입장에선 수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는 최순실이 폰을 놓고 자리를 비웠을 때 장시호가 몰래 번호를 봤다고 한다. 저장된 이름은 ‘큰집 이모’ 뭐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 번호를 패턴으로 외워서 우리한테 알려줬다. 내가 술은 안 먹어도 단 거를 좋아해서 내 방 냉장고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같은 걸 쌓아두고 밤에 먹었는데 하루는 장시호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이스크림 좀 주세요’하는 거야. 번호를 특정해냈는데 뭘 못주겠어.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웃음).”합리적-세련됨-친절함 갖춘 ‘아메리칸 스타일’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지 세 달 뒤인 2017년 8월. 그는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3차장에 임명됐다. 그의 사무실엔 아메리카노의 향이 가득했고 재즈가 흘렀다. 슬림핏 양복은 그의 옷매무새를 눈에 띄게 해줬고, 걸음걸이 하나에도 자신감과 힘찬 기운이 느껴졌다. 하얀 얼굴에 세련된 검정 뿔테 안경에 얼리어답터 느낌을 주는 최신 전자기기들까지. 항상 눈에 띄었다. 강남 출신(태어난 곳은 춘천)에 압구정 현대고, 서울대 법대, 엘리트 검사 등 모자란 것 없어 보이는 ‘엄친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키우는 고양이 사진이 걸려 있었고 취미는 음악듣기와 독서, 게임 등이었다. 보기 힘든 부류의 검사였다. “한동훈 3차장 방에는 재즈가 틀어져 있는 등 여느 검찰 간부 인사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풍겨 화제. 책상에는 ‘밥 딜런’에 대한 원서가 놓여 있음. 책상에 증권 트레이더처럼 모니터도 2개를 쓰고 서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정하는 책상(모션데스크)이 놓여 있음.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운동기기도 놓여 있어.” -당시 2017년 8월 취재 메모그는 항상 친절했고 거만하지 않았다. ‘O기자님~’ ‘O반장님~’이라고 응대를 하고 말 한 번 놓은 적이 없다. 기자들의 수십통의 전화를 받으며 같은 질문을 받으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콜백은 뒤늦게라도 항상 하면서도 바쁠 땐 사무실 앞에 기다리더라도 ‘지금 시간이 없다’며 면담은 딱 잘라 거절했다. 언론을 다룰 줄 아는 특수부 출신 검사였다. 중수부 막내 검사 시절부터 선배들을 따라 검찰 출입 기자들과 만나며 외압에 부딪힐 때 언론을 활용해 ‘박수 받는 수사’를 이어가는 법 등을 체득한 것 같았다. 전군표 전 청장 수사 때는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경영권 승계 의혹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쌈닭’이었다. 전쟁을 피하려하지 않았다. 누군가 검찰 수사에 대해 부당하게 비난을 하면 피하려하지 않고 ‘맞짱’을 떴고 논리에서 지지 않았다. 그럴 땐 특히 말이 빨라졌다.뛰어난 머리를 가진 그는 말이 남들보다 배 이상 빨랐고 그러면서도 정확한 용어를 사용했다. 기자들과 티타임을 진행할 때도 막힘이 없었다. 후배 검사들에게도 ‘나이스’하긴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좋아 사건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고 완벽하게 수사 방향과 맥락을 짚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사심 없이 사건 처리는 엄격했다. 특히 법원을 상대로 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지휘하며 뒷말이 많았지만 엄격한 자기관리로 치우침 없이 사심 없이 본연의 역할을 다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하며 입법-행정-사법 등 권력을 모두 수사한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기고 “조선제일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표적수사를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 뛰어나”그렇다보니 검찰 내부에선 지나치게 냉정하다, 냉혹하다는 류의 평가도 있다. ‘엄친아’일수록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가 없을 수 없다. “대학 친구 중에 한 명이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다가 죽었다. 부대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 3시쯤 들어가던 길에 관사 문 앞에서 쓰러져 잔 것이다. 5월이었는데 아침에 발견됐다. 그때 바로 비가 와서 저체온증으로 몇 시간만에 그렇게 된 것. 그래도 그게 부대원들이랑 회식 자리를 하고 죽은 거여서 공상처리가 됐다. 공상으로 처리되면 혜택이 상당하다. 매월 돈도 200만~300만 원 나오고. 가족들 취업 등 각종 혜택이 많다. 그래서 당시 든 생각이 ‘아 이거 비리가 많겠다’였다.”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수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만큼 워커홀릭이었다. 전형적인 특수부 검사라는 평가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표적수사를 표적수사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검찰이 하는 수사에 표적수사가 아닌 게 없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진모 전 대통령민정2비서관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구속 수사하면서 “자신을 키워준 검찰 선배의 등에 칼을 꽂았다“, ”배은망덕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취재원은 기자에게 좋은 취재원은 아니다. 늘 맨정신으로 흐트러짐이 없어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이어도 형이라 부를 수 없었다. 한동훈은 술은 마시지 않지만 언론과는 ‘제로 콜라’와 ‘햄버거’ 등으로 소통했다. 2019년경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상가를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선배랍시고 유세 떠는 꼴이 보기 싫어서 안 간다. 가서도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온다. 친하면 뭐 상중에 두 번 세 번 가긴하지만 그때도 인사만 하고 나온다. 나는 술을 안 마시는데 가면 내 이름만 알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술을 따라주면 내가 그걸 거절하면서 술 안 마시는 이유를 또 구구절절 설명해야 된다. 그것도 싫다.”이렇게 그는 쿨(cool)한 검사였다. 그런 그가 대중들 눈에 띠기 시작했다.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조국 수사를 지휘한 것을 계기로 당시 윤석열 총장과 정권이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그도 좌천당했다. MBC는 ‘검언유착’이라는 프레임 하에 신라젠 의혹을 취재하던 채널A 기자와 그를 엮었다. 그는 억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맞섰다. ‘후니’라는 애칭과 함께 팬클럽이 결성됐고 그의 안경과 머플러 등 패션과 어록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몇 개월 뒤 대선이 끝난 뒤 윤석열 정부는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 발표했을 때만큼 신선하고 임팩트 있는 순간이었다. 기수상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에도 많이 빨랐지만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었다.그런 그가 이제 정치인의 길을 걸을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그는 더이상 ‘검사 한동훈’이 아니다.다음주 목요일(12일) 2화로 이어집니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쓰다보니 날이 좀 무딥니다. 잘나갔지만 역경을 딛기도 한 ‘검사 한동훈’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보다 냉정합니다. 2화에선 날을 좀 더 세우겠습니다. 댓글을 남기시면 한 장관에 대해 궁금한 점 등을 속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들 캐비닛에는 최근 처분되지 않은 이른바 ‘미제사건’이 매달 1인당 200∼300건씩 쌓이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 송치 사건이 줄면서 지방검찰청 미제사건이 한 달에 1인당 50∼100건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불과 1년여 전이다. 수원지검의 이런 상황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에서 시작됐다. 정작 해당 사건 수사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동안 수사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며 쌍방울그룹의 배임·횡령 의혹과 이화영 전 국회의원의 뇌물수수 의혹으로 번졌다. 이제는 쌍방울과 KH그룹 등이 관여된 대북송금 의혹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대표와 관련된 진술이 나오지 않다 보니 주변으로 파고들며 저인망식 수사를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원지검은 관련 수사에 ‘올인’했다. 주무부서인 형사6부와 공공수사부에 이어 다른 형사부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 등의 소속 검사들을 관련 수사팀에 파견했다. 다른 검사가 하던 일을 갑자기 떠안게 된 검사들 사이에선 원성이 자자하다. 해를 넘기기 전 밤새워 일해도 미제사건이 줄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수원지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남지청에선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이 대표 측근들 수사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반부패수사2부는 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에서 시작된 노웅래 의원 뇌물 의혹을 맡았다. 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가 모두 야권만 겨냥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서울중앙), 월성원전 조기 폐쇄 의혹(대전), 블랙리스트 의혹(서울동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의 이스타항공 취업특혜 의혹(전주) 등 전국 지검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타깃으로 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 연루된 사건으로 알려진 건 창원지검에서 진행되는 하영제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정도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정부에서 수사를 막았던 사안”이라거나 “(혐의가) 나오는 대로 수사를 할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나오는 대로’ 수사하는 게 아니라 야권의 비위가 ‘나올 때까지’ 수사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놈만 패는’ 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인 공정과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검찰이 정치적 사건을 파고드는 사이 민생사건 처리는 지연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한 부장검사는 “지방의 소규모 지청 검사들을 정치적 사건에 다수 투입하거나 파견 보낸 결과 지청에서도 미제사건이 폭증하고 있다. 형사부 인력 부족을 공판부 검사로 메우다 보니 공판 대응 역량도 급격히 줄어 무죄 선고 사건이 늘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5년 전 적폐청산 수사 때 과거 정부와 현재 여권을 상대로 전방위적 수사가 이뤄졌다. 당시에도 2017년 해가 넘어갈 무렵부터 ‘적폐청산 피로감’이라는 말이 많이 거론됐다. 도려내야 할 부위만 빠르게 절제하는 외과의사식 수사를 다시 상기해 봐야 할 때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