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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52·사진)가 제다이 마스터로 주연을 맡은 디즈니플러스의 ‘애콜라이트(The Acolyte)’ 시리즈가 6월 4일 공개된다. 이 드라마는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1999년)의 100년 전 이야기로 총 8부작이다. 스타워즈 제작진은 18일(현지 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애콜라이트 방영일이 적힌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에는 ‘빛의 시대에 어둠이 떠오른다’는 문구와 함께 스타워즈 상징인 광선검 손잡이 위로 피가 흐르는 이미지가 담겼다. 제작진은 “애콜라이트는 제다이 기사단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다”며 “하지만 은하계의 평화와 정의의 수호자에게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에콜라이트에서는 충격적인 범죄 행위에 대한 조사를 통해 존경받는 제다이 마스터가 위험한 전사와 맞서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제다이 마스터는 광선검을 사용하는 검술 기사이자 기계공학에 능한 학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웅주의에 대한 경고.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듄 파트2’는 원작 소설보다 이 점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폴(티모테 샬라메)이 꿈에서 참혹한 미래를 보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해 비극적 결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성전(聖戰)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서로를 죽이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인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방대한 세계관을 이해해야 읽을 수 있는 원작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장치다. 그 덕에 영화는 ‘듄친자’(듄에 미친 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국내 관객 150만 명을 동원했다.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1965년부터 펴낸 원작 소설 ‘듄’(황금가지)은 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원작에서 폴이 과거와 미래를 명확히 볼 수 있게 되는 시점은 1권 초반부다. 환각물질인 스파이스에 노출된 폴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확신에 차 원수인 하코넨 가문에 복수를 시작한다. 폴은 두려움 없이 전쟁을 이끌며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반면 영화에서 폴은 자주 망설인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면 곧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에 고뇌한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생명의 물’을 마시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카메라는 폴을 구원자로 맹신하는 이들을 자주 비춘다. 모래 행성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멘족은 폴을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이나 ‘마디’(낙원으로 이끌어줄 자)라고 부르며 맹종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가신(家臣)으로 폴에 복종하는 거니(조시 브롤린)는 복수를 외치며 하코넨 가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영화는 소설보다 참혹하고 암울한 미래를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영웅 찬가가 아닌 ‘환멸’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극 중 폴의 연인 차니(젠데이아 콜먼)의 역할 변화도 돋보인다. 원작에서 차니는 폴을 사랑하고 돕는 순종적 인물이다. 반면 영화에서 차니는 메시아가 되려는 폴에게 경고를 던진다. 황제가 돼 다른 가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분노와 실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폴을 떠나 홀로 사막으로 향하는 차니를 통해 영화는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원작에서 순종적인 주변 인물에 불과한 차니가 영화에선 주체적 주인공이 된다. 폴의 대척점에 선 반동자”라고 평했다. 이 같은 각색은 허버트가 고민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영화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허버트는 원작이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를 담기를 원했지만 1권 출간 후 독자가 자신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고 느꼈다”며 “자신의 생각이 확실히 드러나도록 (폴이 회의를 느끼고 지도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내용의) 2권을 썼다”고 말했다. 여성의 주체적 서사가 강조된 점도 눈길을 끈다. 극 중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는 폴에게 영웅이 될 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유도한다. 이에 비해 원작에선 남편을 잃고 당황해하며 뒤에서 폴을 도울 뿐이다. 또 영화에선 대가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초능력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베네 게세리트 소속인 일룰란 공주(플로렌스 퓨)는 황제에게 자주 조언하고, 레이디 마고트(레아 세두)는 하코넨 가문의 후계자를 매혹적으로 유혹한다. 겉으론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사실상 움직이는 건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원작의 독백을 최소한으로 줄인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원작은 영웅이 되기를 결정하는 폴의 심리를 소설 지문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4년 작 영화 ‘듄’이 내레이션을 통해 폴의 심리를 전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이번 영화에선 독백을 거의 없애 속도감을 높였다. 영화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대가문들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점도 특징이다. 곁가지를 쳐내 폴의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미장센도 특기할 만하다. 빌뇌브 감독은 하코넨 가문에서 벌어지는 음모들을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하코넨 가문의 행성에선 태양이 검다는 원작 내용을 시각적으로 살려낸 것.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제복은 나치의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모래로 가득한 아라키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투 신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를 떠올리게 한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은 “1차대전 당시 중동에 파견된 영국군 장교가 아랍의 영웅이 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서사는 이방인 폴이 원주민 프레멘을 이끄는 ‘듄’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72·사진)가 15일 폐관한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 1억50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프로듀서가 김민기 학전 대표를 걱정하며 필요한 것을 다 이야기하라고 했다”며 “만성 적자에 시달린 학전 정리에 부족한 액수를 말했더니 필요한 금액 이상을 올해 1월 보내줬다”고 말했다. 서울대 농업기계학과 출신인 이 전 프로듀서는 서울대 회화과를 나온 김 대표의 대학 후배다. 1991년 3월 개관한 학전은 15일 폐관했다. 학전은 그동안 고 김광석, 들국화, 조승우 등 수많은 스타 가수와 배우들을 배출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네이버가 언론보도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온라인으로 정정 및 반론 보도, 추후 보도 청구를 직접 받겠다고 15일 밝혔다.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가 들어온 기사에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노출하기로 했다.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이 나오기 전 포털에 정정 요청만 해도 기사에 문제 소지가 있다고 표시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네이버는 서면과 등기우편 등으로 접수하던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이달 28일 청구용 웹페이지를 신설한다고 15일 밝혔다. 또 네이버에 온라인으로 정정 보도 청구가 접수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부터 해당 문구를 표시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정정 요청이 들어온 경우 언론사에 해당 기사의 댓글을 일시적으로 닫는 방안을 적극 요청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뉴스 유통업체에 불과한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 편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뉴스 서비스를 독점하는 거대 포털이 오류로 판명되지 않은 기사에 낙인을 찍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온라인 정정 보도 청구가 악용될 소지가 커진 가운데 언론의 추가·후속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가 독자적으로 뉴스에 ‘품질이 안 좋은 뉴스’라는 딱지를 붙이겠다는 것”이라며 “언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이버, 중재위 판단前 기사에 ‘정정 청구중’ 표시… 法 위반 논란“정정보도 온라인 접수”법조계 “정정보도, 서면청구 규정포털, 온라인 접수땐 법위반 소지” 언론중재법 15조 1항에 따르면 언론사에 대한 정정 보도 등은 서면으로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제17조의 2 ‘인터넷 뉴스서비스 사업자는 지체 없이 정정 보도 청구 등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고 언론사 등에 청구 내용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들어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 해석은 다르다. 류형우 법률사무소 눈 대표변호사는 “‘지체 없이’ 알리라는 의무는 서면 요청을 받은 뒤 언론사에 빠르게 전달하라는 것”이라며 “서면이 아닌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계에서는 네이버의 조치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오류가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은 기사에 대해 사기업인 네이버가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해석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네이버라는 대형 포털이 언론의 기본 역할을 침해했다. 위헌 가능성이 높은 명확한 언론 자유 침해”라고 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분쟁을 조정 및 중재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것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 등이 노출됐을 때 사람들에게 해당 기사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크다”고 했다. 사기업인 네이버가 언론중재법에 따라 설립된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을 과도하게 넘본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 정책으로 인해 언론중재위원회의 공식 절차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네이버의 새로운 정책 발표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수 세종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검증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이 자신한테 비판적인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정정 보도를 요청해 댓글 창이 막힐 수 있다”며 “의혹이 충분히 있다고 느껴져도 기사를 조심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이날 네이버의 발표 직후부터 일부 소속사 대표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공론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뉴스 유통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언론사들의 저질 연성 기사 생산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정정 보도 청구를 이유로 언론사들에 대한 영향력과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술 한잔 초대해도 될까요?” 중년여성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호텔 바에서 한 남자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다. 아나는 결혼한 지 27년 된 평범한 주부. 남편은 유명한 음악가고, 번듯한 자식 둘을 뒀다. 그러나 이날 아나는 홀로 카리브해의 섬으로 여행을 와 있다. 어머니의 기일인 8월 16일에 맞춰 섬에 있는 어머니의 묘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아나와 남자는 브랜디를 마시며 달콤한 대화를 나눈다.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1847∼1912)의 소설 ‘드라큘라’에 대한 평가를 나누며 취향을 확인한다. 프랑스 음악가 클로드 아실 드뷔시(1862∼1918)의 곡 ‘달빛’을 볼레로 스타일로 편곡한 연주를 함께 감상한다. 밤 11시 호텔 바가 문을 닫는다. 아나는 남자의 크고 노란 눈을 바라보며 “올라갈까요?”라고 말한다. 남자가 망설이자 아나는 명확하게 유혹한다. “2층 203호, 계단 오른쪽이에요. 문 두드리지 말고 그냥 밀고 들어오세요.”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 등 중남미를 대표하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유작 소설이다. 마르케스의 사후 10주기에 맞춰 전 세계에 동시 출간됐다. 신간은 중년 여성의 일탈을 다뤘다는 점에서 언뜻 ‘막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첫 불륜을 저지른 아나는 다음 해에는 다른 남성과 밤을 보낸다. 다만 아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엔 죄책감에 시달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남편의 추궁에 가슴을 떤다. 불륜은 아나가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담기 위한 장치다. 아나는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자신의 불륜을 털어놓는다. 생전 매번 어머니와 다투던 아나지만, 이제 죽은 어머니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됐다. 소설 막바지엔 아나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나와 어머니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절친’이 된 셈이다. 아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걸 이해해요. 어머니는 섬에 묻히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미 유일하게 모든 걸 이해한 분이에요.” 신간은 마르케스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이 때문에 역자는 마르케스의 글을 자주 읽던 어머니가 소설 집필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 죽음이 다가온 마르케스가 소설을 통해 세상을 뜬 어머니를 기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소설엔 마르케스가 사랑했던 음악을 찾는 묘미도 있다. 주인공 아나의 이름은 독일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두 번째 아내와 이름이 같다. 무인도에 가게 되면 바흐 음악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던 마르케스답다. 마르케스의 유언을 거스르고 출간된 점도 흥미롭다. 소설은 1999년 주간지에 1장이 발표됐지만 이후 전체 작품은 발표되지 않았다. 마르케스는 치매에 시달리며 이 작품을 처절하게 썼지만,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 두 아들에게 “원고를 찢어버리고 절대 출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신간 출간이 결정되자 두 아들이 경제적 이유로 출간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이를 의식했는지 두 아들은 신간에 “독자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아버지의 뜻을 어겼다”고 썼다. 마르케스가 하늘에서 출간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까, 분노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경우처럼 작가의 의도에 반해 출간된 작품이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는 경우가 왕왕 있다. 독자로선 ‘가보’(마르케스의 애칭)의 귀환이 반가울 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권태선 이사장이 대법원의 최종 결정으로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됐다. 14일 대법원 2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권 이사장 해임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 법원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재항고를 기각했다. 앞서 방통위는 “권 이사장이 MBC 임원 성과급의 과도한 인상과 MBC 및 관계사의 경영 손실을 방치하는 등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지난해 8월 그를 해임했다. MBC의 사장 선임 과정에서 부실한 검증 등도 해임 사유로 들었다. 이에 권 이사장이 반발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처분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 결정으로 해임 처분 효력은 권 이사장이 제기한 본안 사건의 1심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정지된다. 이에 따라 권 이사장은 올 8월 12일까지인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이번 대법원 결정은 집행정지 관련일 뿐 본안 소송에서 계속 다투겠다”고 밝혔다. 권 이사장의 후임으로 보궐이사를 임명하고 야권 측 김기중 이사를 해임한 방통위의 처분도 대법원에서 효력 정지 결정이 확정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6.25 때/엄마 아빠가 다 돌아가신/슈샨보이./길모퉁이의 구두를 닦는 슈샨·보이.’ 시인 박목월(1915∼1978)이 1970년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미발표 시 ‘슈샨보오이’의 일부다. 이 시에선 전쟁의 참혹함을 딛고 살아가는 어린 구두닦이 슈샤인 보이(shoeshine boy)를 바라보는 시인의 애처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아 눈이 동그랗게 아름다운 그애 슈샨 보이/학교 길에 내일도 만날가 그애 슈샨보이.’라며 참혹함을 서정적인 어조로 그리기도 한다. 박목월 특유의 서정성을 담으면서도 역사적 상흔을 직시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청록파’의 대표주자였던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슈샨보오이’를 비롯한 박목월의 미발표 시 166편을 공개했다. 이 작품들은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85)가 자택에 소장한 공책 62권, 경북 경주시 동리목월문학관에 보관 중인 공책 18권에 담겨 있던 것이다. 공책에는 시인이 1930∼1970년대에 쓴 작품 318편이 실려 있다. 기존 발표작을 제외하면 290편인데 이 중 완성도가 높은 작품 166편만 추려 공개한 것이다. 공책은 박목월의 아내 유익순 여사(1920∼1997)가 보관했다. 유 여사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 남아 있을 때도 천장과 지붕에 남편의 공책을 숨겼다. 이후 박 교수가 보관하다 연구자들의 설득으로 시인 사후 46년 만에 공개됐다. 박 교수는 “공책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오랫동안 보자기에 싸인 채 보관돼 있었다”며 “오랜 시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후배와 제자들의 도움으로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목월은 조지훈(1920∼1968), 박두진(1916∼1998)과 더불어 청록파로 불렸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문학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사회주의 문학에 반발해 한국 시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시 ‘나그네’ 중)처럼 민요가락과 아름다운 자연을 어울리는 시구로 순수 서정시를 주로 썼다. 이날 공개된 작품들 중 눈길이 가는 건 역사적 상흔을 다룬 시들이다. 박목월은 해방 직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무제_해방’에서 ‘어두운 굴레를 쓰는 일이 없으리라/두 번 다시는/스스로 목이 메어/영원히 빛나라.’라며 해방의 기쁨을 직설적으로 표출했다. 시 ‘결의의 노래’에선 ‘절절 끓는 핏줄을 가진 자라면/이 겨레의 핏줄을 가진 자라면/바다에서 산에서 또한 들에서/일어나고야 만다.’며 해방이 우리 민족에 가져올 희망을 노래했다. 박목월의 기존 작품들과 다른 결의 작품들이다. 근대화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발견됐다. ‘뻐스를 기다리는/기다리는 사람으로/줄을 이루었다’(시 ‘무제’ 중)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에서 삶의 피로를 그렸다. 이 외에 기독교 신앙, 가족, 사랑을 다룬 시들도 있다. 우정권 단국대 자유교양대 교수는 “박 시인의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향후 박 시인의 전집을 발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이 자신의 미공개작이 세상에 나온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짓궂은 질문에 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뭐 하러 했노.’ 아버님이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 겁도 납니다. 하지만 평생 시를 껴안고 살아온 아버님의 인생을 보여 드리고 싶어 미발표작 공개를 결정했습니다. 잘 읽어 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황석영 작가(81·사진)가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2020년·창비) 영문판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랐다. 황 작가는 2019년 ‘해질 무렵’(2015년·문학동네)으로 이 부문 1차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 후보엔 포함되지 못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11일(현지 시간)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로 ‘철도원 삼대’ 등 13개 작품을 발표했다. ‘철도원 삼대’를 영어로 옮긴 소라 김 러셀, 영재 조세핀 배 번역가도 함께 후보에 포함됐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0년이 지난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1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록집 출간 기자간담회.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이었던 생존자 김주희 씨(27)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책을 위해 인터뷰를 하고 이후에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며 “참사 이후 10년 동안 나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기록집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온다프레스)와 ‘520번의 금요일’(온다프레스)의 15일 출간을 앞두고 열렸다. 신간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기획했고, 6명의 작가로 구성된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이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유해정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피해자’라는 한 단어로 호명됐던 생존자, 희생자 가족 등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며 “세월호 참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여러 재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신간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에는 생존자 9명과 희생자의 형제자매 6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참사 당시 10대 후반이던 생존자들은 20대가 된 뒤에야 참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 생존자는 참사 이후 팽목항에 가지 못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참사가 벌어진 뒤 지금까지 ‘당시 나는 팽목에 없었지’라는 생각에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것. 다른 생존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현실에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520번의 금요일’에는 작가기록단이 2022년 봄부터 2년간 희생자 가족 62명과 시민 55명을 인터뷰한 결과물을 담았다. 인양, 조직, 기억, 가족 등 12개의 키워드로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규가 절절하게 실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희생자 가족들은 신간을 통해 ‘그날’을 다시 기억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희생자 아버지 김종기 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무엇을 위해 10년 동안 활동해 왔는지를 알리고 싶었다”며 “자화자찬 일색의 백서가 아니라 10년간 왜 이런 일을 해올 수밖에 없었는지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희생자 가족인 남서현 씨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청년들의 삶을 관통했다. 참사가 내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스즈메의 문단속’ 557만 명, ‘슬램덩크 더 퍼스트’ 487만 명. 지난해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관람객 수다. 반일 감정 때문에 흥행에 실패할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각각 지난해 국내 개봉 영화 흥행 순위 4, 6위에 올랐다. 일본 콘텐츠의 힘이 여전히 건재함을 인정받은 것이다. 일본 콘텐츠는 왜 인정받을까. 구독자 16만 명을 지닌 유튜버인 저자는 신간에서 일본 ‘서브컬처’(하위문화)를 꼽는다.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는 서브컬처가 일본 콘텐츠를 끊임없이 다채롭고 새롭게 만든다는 것. 저자는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한 가지 취향이 담긴 대중문화보다는 서브컬처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브컬처를 이끄는 건 ‘오타쿠’다. 획일화를 강요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오타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듯 몰두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2차 창작한다. 예를 들어 만화 ‘슬램덩크’ 오타쿠는 “포기하는 순간 거기서 시합 종료예요”라는 안자이 선생님의 대사에 “포기하면 편해”라는 대사를 추가한 뒤 이를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논다. 팬들이 아이돌을 소재로 가상소설을 쓰는 ‘팬픽’ 문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콘텐츠를 재생산하며 콘텐츠의 파급력을 높이는 것이다. 콘텐츠가 지닌 의미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도 서브컬처의 힘이다. 오타쿠는 욕망을 채워주는 즉각적인 만족감만 준다면 콘텐츠를 소비한다. 한 예로 오타쿠는 버추얼(가상) 유튜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버추얼 유튜버를 보는 순간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특히 만화 ‘원피스’를 보고 자란 30대, 만화 ‘드래곤볼’을 읽으며 큰 40대가 일본 서브컬처를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일본 영화가 인기를 끈 비결이다. 저자가 일본 콘텐츠 68개를 여러 키워드로 분석한 내용도 눈길이 간다. 저자는 만화 ‘마징가Z’에서 패전한 일본인의 그림자를 읽는다. 만화 ‘꽃보다 남자’에서 여성 오타쿠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오타쿠로서 일본 서브컬처를 즐겨온 저자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서브컬처를 분석하는 과정이 흥미롭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장편소설 ‘듄’(전 6권·황금가지)은 영웅주의를 경고한 작품이다. 처음에 주인공 폴은 자신을 메시아로 부르는 이들을 두려워한다. 추종자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때의 문제를 예견한 것. 하지만 아버지를 잃고 적에게 쫓기며 궁지에 몰린 폴은 스스로 메시아가 되기로 한다. 폴의 복수는 성공하지만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듄의 세계’는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이 소설을 쓰기 전 경험하고 공부한 여러 배경을 다룬 책이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듄: 파트2’를 봤다면 함께 읽어보며 작품을 여러 각도로 해석하기 좋다. 허버트는 잡지기자로 일하던 1957년 미국 오리건주의 연구기지를 취재했다. 기지에선 녹초로 가득한 비옥한 땅의 사막화를 막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그는 특히 모래가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사막화를 예방하는 방법을 취재했다. 대중적 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사가 지면에 실리진 못했지만, 이 경험은 소설 배경인 모래 행성 ‘아라키스’를 구상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아라키스를 초원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 실험하는 장면도 이 경험 덕에 만들어졌다. 그는 이슬람 지도자인 이맘 샤밀(1797∼1871)의 생애에 관심이 많았다. 샤밀은 러시아에 맞서 이슬람의 저항 전쟁을 이끌었다. 카리스마를 지니며 모든 추종자를 동등하게 대했다. 아라비아 전역을 휩쓸며 러시아군을 물리쳤다. 작품 속 아라키스에서 살아가는 토착민 프레멘을 이끌며 지배자 하코넨 가문과 싸우는 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특히 소설에서 그는 샤밀을 다룬 역사서 ‘낙원의 사브르’에 쓰인 문장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칼끝으로 죽이는 건 예술적이지 않다”는 폴의 말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1953년 멕시코 여행 중 환각제를 복용한 적이 있다. 우연히 대마가 들어간 과자를 무심코 먹었다. 향정신성 의약품인 LSD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나팔꽃 씨앗으로 만든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이 경험 덕인지 소설에서 중독성이 매우 강한 스파이스를 복용했을 때 느끼는 환각상태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 “인생이 패턴을 만들어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모든 인생의 속도가 빨라진다”, “바람이 불고 불꽃이 번쩍였다. 빛의 고리들이 팽창했다가 수축했다”는 문장은 그가 환각제를 흡입한 경험에 기반해 썼다고 해석할 만하다. 흔히 우리는 위대한 소설을 쓴 작가를 천재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자신이 천재로 여겨지는 걸 싫어했다. 그는 소설의 구상 단계에서 6년 동안 자료를 조사했다고 주위에 밝혔다. 2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이슬람 신화, 천문학, 선불교, 아메리카 원주민의 부족의식 등 온갖 것을 공부했다. 그는 작품에서 ‘영웅 숭상’을 경고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종이책으로 다시 읽으려 합니다.” 지난달 21일 장편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오리지널스)가 종이책으로 재출간되자 온라인 서점에는 이런 독자 댓글이 달렸다. 앞서 이 소설은 올 초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돼 2만 명이 읽으면서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다른 독자는 “밀리의 서재 구독자가 아니라 못 읽었었는데 종이책을 사려고 한다”고 했다. 최근 전자책으로 먼저 나온 뒤 종이책으로 재출간되는 작품이 늘고 있다. 정보라의 장편소설 ‘호’(포션),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북스피어) 등은 종이책 출간 전 온라인서점 예스24를 통해 전자책이 먼저 나왔다. 에세이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오리지널스)도 전자책이 먼저 출간됐는데 베트남, 태국, 러시아에 판권이 수출됐다. 종이책에 앞서 전자책이 출간되는 사례가 늘어난 건 독서 행태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중 1년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이의 비율은 전자책의 경우 2015년 10.2%에서 2021년 19%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종이책의 독서율은 65.3%에서 40.7%로 줄었다. 전자책 플랫폼의 지식재산권(IP) 확보 경쟁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는 밀리의 서재가 운영하는 창작 플랫폼 ‘밀리 로드’에서 연재된 뒤 전자책으로 출간됐다. 책을 펴낸 오리지널스도 밀리의 서재가 만든 종이책 출판사다. 한 출판사 대표는 “전자책 플랫폼이 종이책 출간 예정작을 가져오기 위해 5000∼1만 부의 선인세를 보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책 선출간 작품 중에는 소설이나 에세이가 많다. 이 장르를 선호하는 젊은 여성들이 전자책 시장에서 핵심 구매층이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30.5세로, 여성(57.7%)이 남성(42.3%)보다 많다. 출판계 일각에선 전자책 선출간이 종이책 판매량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출판사 대표는 “전자책이 출간되면 종이책 판매량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일부 계열사의 책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작품을 전자책 플랫폼에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자책 선출간이 전체 출판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장르소설 등이 전자책으로 선출간되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웹툰에 뺏긴 젊은 독자를 끌어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승자가 되는 것만이 인생에서 노력할 만한, 유일한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승자가 되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베어타운 3부작’을 썼죠.”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43)은 5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8년 ‘베어타운’(다산책방), 2019년 ‘우리와 당신들’(다산책방), 지난해 12월 ‘위너’(전 2권·다산책방)까지 3편의 연작 장편소설을 내놓은 이유를 밝힌 것. 그는 “승자는 나쁜 행동을 저질러도 얼마나 자주 용서받는지도 짚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1300만 부가 팔린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2015년·다산책방)로 유명해졌다. 이 소설을 비롯해 그의 작품들은 국내에서 총 53만 부가 팔렸다. ‘베어타운 3부작’은 스웨덴 북부의 시골마을 베어타운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전도 유망한 청소년 하키 선수가 한 여성을 성폭행한 것.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앞날이 창창한 선수를 옹호하고 여성의 행실을 비난한다. 그는 “스포츠 경기에서 편을 나눠 경쟁하고 관중들이 갈라서서 응원하는 모습은 일종의 사회현상”이라며 “스포츠의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마을사람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하키 선수가 잘못된 일을 저질렀을 때의 반응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짚고 싶었다는 것. 그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려고 할 때 맹렬히 보호하려고 한다. 선한 사람들도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오베라는 남자’는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아내까지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남성을 엉뚱하고 따뜻한 유머를 담아 그려냈다. 이에 비해 ‘베어타운 3부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세밀한 장면과 심리묘사로 풀어낸다. 그는 “시종일관 웃기는 ‘오베라는 남자’와 달리 ‘베어타운 3부작’에선 코미디적 요소를 적게 썼다”며 “주인공 오베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오베라는 남자’와 달리 ‘베어타운 3부작’엔 여러 마을사람들이 등장해 (성폭행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펼친다”고 말했다. “진실이 있다면 그들의 인생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할 뻔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같은 문장처럼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엿보인다. 좋은 문장을 쓰는 비법을 묻자 그는 “난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가면 이 산책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어떤 것이 ‘딸깍’한다”고 했다. ‘당신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이에게 조언을 부탁한다’고 하니 이렇게 답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힘들면 힘을 내려고 노력해요.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당신을 ‘울게 하는 것들’을 찾으러 가야 하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는 만화보다 더 높은 ‘리얼리티’(현실성)를 필요로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의 원작 웹툰에선 살인의 의도를 담담히 전하기 위해 귀여운 2등신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선 해당 캐릭터들이 멍한 눈빛과 사연을 지닌 듯한 표정을 짓는 인물들로 재창조됐다. 웹툰은 느슨한 컷 속에서 살인자 ‘이탕’(최우식)의 감정을 조용히 따라가지만, 드라마는 이탕에게 살해당하는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그를 쫓는 형사들의 발소리를 생생히 담으며 리얼리티를 더한다. 지난달 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한국,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1위에 오른 비결이다. 원작은 이질감으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악인을 죽이는 일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라는 심오한 주제의식을 귀여운 그림체의 2등신 캐릭터에 담아 2011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실사화를 택해 현실감을 높였다. 원작을 그린 꼬마비(필명) 작가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극화체(사실적인 그림체)로 그려진 작품을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에 근접한 답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이창희 감독은 “원작과 달리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려 했다. 실사화 캐스팅에서도 가장 중시한 건 리얼리티”라고 설명했다. 극에선 시청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도록 살인 장면을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이탕이 공원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를 밀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직감에만 의존해 여자를 악인으로 추정해 살인한 것. 드라마에선 이 에피소드가 삭제됐다. 여자가 영유아 살해범임이 나중에 드러나지만, 이탕이 불가피하게 살인에 연루되는 서사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 감독은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실적인 각색을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팬들은 원작이 조금만 다쳐도 크게 아파하곤 한다. 하지만 연출자는 냉정한 외과의사처럼 차갑게 메스를 들이대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원작은 이탕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자기정당화 등 복잡한 내적 갈등에 집중한다. 예컨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7년)을 언급하며 단죄에 무게감을 더한다. 꼬마비 작가는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인 건 독자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납득이 돼야 했기 때문”이라며 “(살인에 대한 고민이 없는) 황당무계한 심리 변화로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다. 이탕이 첫 살인을 하고 마주하는 환상, 상상, 독백은 고민의 결과”라고 했다. 이에 비해 드라마에선 이탕의 자기 고뇌 대신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추적 내용을 늘렸다. 이 감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장난감의 원칙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주제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극에선 청년 문제에 대한 고민도 담겼다. 원작은 이탕의 살인을 첫 장면으로 내세운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목적 없는 삶으로 방황하는 대학생 이탕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원작이 연재된 2010∼2011년에 비해 한층 팍팍해진 청년들의 삶을 구현한 것. 특히 원작에서 이탕은 경품 당첨된 벽시계를 걸기 위해 편의점 사장에게 살인 도구인 망치를 빌리지만, 극에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꿈꾸며 구입한 로키산맥 액자를 벽에 걸기 위해 망치를 빌린다. 이 감독은 “로키산맥에는 요새 젊은이들의 상실감에 더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욕구를 반영했다. 로키산맥은 이탕에게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으로 살인 후 점점 멀어져 간다”고 했다. 극에서 이탕이 첫 살인을 저지른 후 로키산맥 액자를 버리고 쓸쓸히 걸어가는 장면은 꿈의 좌절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원작과 달리 빠르게 여러 장면을 중첩시킨 드라마 연출도 돋보인다. 이탕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 폭행당하는 장면을 과거 고교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장면과 겹쳐 보여주며 이야기를 빠르게 펼쳐낸다. 원작에선 직감과 우연에 의존한 살인자였던 이탕이 드라마에선 악한을 적극적으로 심판하는 ‘다크 히어로’로 묘사되는 점도 특징이다. 이 감독은 “드라마가 ‘다크 히어로’ 장르라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은 없다. 어쩌면 장르라는 건 관객분들이 정해주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제작비가 너무 많이 올라 충무로에선 저예산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다.”(영화감독 A 씨) “좋은 대본을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다 쓸어가 버렸다. 국내 방송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 이야기는 씨가 말랐다.”(영화 제작사 대표 B 씨) 최근 콘텐츠업계에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대형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OTT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 알려진 뒷면엔 콘텐츠업계가 겪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OTT가 거대한 자본력으로 제작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방송계와 영화계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OTT와 불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배우 몸값 상승에 제작비 인플레이션‘경성크리처’, ‘무빙’, ‘스위트홈’…. 최근 콘텐츠업계에서는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들로 그야말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제작비가 해마다 천정부지로 올라 ‘1000억 원짜리 작품’ 탄생이 목전에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온다. 제작비가 한계를 모르고 치솟는 가장 큰 요인은 배우들의 출연료다. 최근 배우 이정재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출연하면서 회당 10억 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며 화제가 됐다. 한국 드라마계에선 전무후무한 출연료라 업계가 술렁였다. 배우 김수현, 박형식, 박보검 등도 회당 5억 원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부작 드라마라면 주연 배우 1명의 출연료로만 50억 원이 투입된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을 감안해도 출연료는 높은 수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1조573억 달러(약 1406조9491억 원)였다. 한국은 753억 달러(약 100조2017억 원)로 규모가 14배가량 차이 난다. 반면 배우 출연료 차이는 크지 않다. 2022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HBO 시리즈 ‘동조자’에 출연하며 회당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받았다. 그 뒤는 배우 크리스 프랫으로, 아마존프라임 드라마 ‘터미널리스트’에서 회당 140만 달러(약 18억 원)를 받았다. 여타 제반 제작비가 한국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할리우드의 제작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배우들 몸값이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배우 몸값 인플레이션의 시작에는 글로벌 OTT가 있다. “전 세계에 공개된다”는 명목으로 톱배우들이 출연료를 높게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통할 만한 소위 ‘A리스트’ 톱배우가 한국에 많지도 않거니와,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고위험 투자라는 점에서 흥행을 위해 톱스타를 캐스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톱배우들 출연료 요구를 맞춰주다 보니 다른 제작사들 역시 이에 맞춰 출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출연료가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분야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단역 배우 출연료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개한 ‘2023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제작사와 방송사 모두 ‘단가 하향 조정이 필요한 항목’에 압도적으로 ‘출연료’라고 답했다. 제작사들은 “제작비의 대부분이 출연료로 나가 수익이 거의 남지 않거나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결국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OTT가 좋은 작품을 과점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원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지 못한 채 넷플릭스의 외주제작 국가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100% 대고 IP를 모두 가져가는 방식인 ‘오리지널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결국 한국 제작사는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것. 한 투자·제작사 관계자는 “현재 콘텐츠 시장 내 모든 좋은 시나리오는 자금력 있는 넷플릭스에 먼저 제안이 간다.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선점하다 보니 한국 제작사들은 점점 외주 업체화되고 있다. 점점 (체급 차이가 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모양새”라고 했다.● 더 잔인하고 더 자극적으로글로벌 OTT가 확산되며 콘텐츠가 더욱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크다. 몰아 보기를 많이 하는 플랫폼 특성상 시청자를 TV 앞에 묶어두려면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국내에서 흥행한 넷플릭스의 ‘킹덤’(2019년), ‘오징어 게임’(2021년), ‘지금 우리 학교는’(2022년), ‘솔로지옥’ 시리즈는 모두 선정성·폭력성 논란을 낳았다. 지난해 6월부터 OTT가 자체적으로 등급 분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선정적인 콘텐츠가 더 많이 양산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김성수 의원실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받은 ‘OTT 영상 등급분류 현황’에 따르면 자체등급분류 도입 이전(2023년 1∼5월 기준) 넷플릭스의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는 32.7%였으나 시행 이후(2023년 6월∼9월 12일 기준) 18%로 급감했다. 한국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고 한국 콘텐츠를 통해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내는 세금은 이에 비해 적은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제출받은 넷플릭스 한국법인(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2022년 한국에서 매출 7733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한국엔 법인세 33억 원을 냈다.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0.4%에 불과한 셈이다. 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같은 해 미국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의 매출은 316억1555만 달러(약 42조708억 원), 미국에 낸 법인세는 7억7200만 달러(약 1조273억 원)다.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2.4%다. 한국법인과 미국법인의 매출액 대비 법인세 비율이 6배 차이 나는 것이다. 글로벌 OTT가 국내 통신업계에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엘지유플러스 등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넷플릭스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요금과 넷플릭스 요금제를 결합해 총요금을 할인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 요금 할인의 대부분은 ISP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ISP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넷플릭스는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광고 없이 보기 위해선 스탠다드 요금제(월 1만3500원)를 구독해야 한다. 사실상 구독료가 월 4000원 인상된 셈”이라며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신비 인하 정책 때문에 ISP의 넷플릭스 요금제는 가격을 인상하기 쉽지 않다. 결국 월 4000원씩 ISP가 추가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홀드백, 토종 OTT 지원해야”콘텐츠업계에선 방송사와 OTT를 구분해 적용하는 규제 방식 때문에 선정성이 높은 글로벌 OTT가 급성장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이젠 플랫폼 규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 산업을 어떤 망으로 전송하느냐(전송 방식), TV로 보느냐 스마트폰으로 보느냐(콘텐츠 소비 기기)로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른바 ‘통합 방송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OTT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기도 한 글로벌 OTT에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유럽연합(EU) 최초로 ‘홀드백’을 법제화했다. 홀드백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뒤 OTT 플랫폼으로 가기까지의 기간을 법으로 정해놓은 제도다. 극장 개봉 영화가 곧바로 OTT에 직행해 극장 관람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당초 36개월이던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당기는 대신 넷플릭스가 3년간 연매출의 4%(최소액 4000만 유로)를 10편 이상 영화에 투자하도록 협상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계에 어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고 홀드백 필요성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영화계와 OTT 업계의 공생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토종 OTT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독과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업체가 경쟁해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에 최대 30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00세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은퇴 이후 소비생활이나 여가활동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액티브 시니어’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늙음에 대해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축 처진 주름살을 들여다보고, 병원을 드나들며 요양원에 가야 하나 걱정한다. 통장을 들여다보며 얼마 남지 않은 은퇴자금을 헤아린다. 노년의 삶은 진짜 행복할 수 있을까. 노년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살펴보기 위해 ‘인생 2막’의 비법을 담은 책 2권을 함께 소개한다. 신간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는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노인의학과 의사와 미국 생물학자가 100세 이상 장수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을 찾아가 그 비결을 들은 책이다. 저자들이 만난 노인들은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를 만들라”고 입을 모은다. 은퇴 이후 방황하며 기력이 처진 이들이 해야 하는 건 삶의 목적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 돈을 벌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방 안에 갇혀 취미생활을 영위하라는 것도 아니다. 지역사회 봉사처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를 해야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라”고도 조언했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일상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 특히 이 계획엔 건강관리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심혈관질환 등 노인들이 자주 앓는 질병들은 운동으로 예방할 수 있다. 직접 기른 채소로 식단을 꾸리고, 스스로 밥을 해 먹는 습관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젊은 시절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건 노년뿐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을 갉아먹는 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교수인 아서 C 브룩스는 신간 ‘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에서 “청년 때 즐기던 인생은 노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노년기엔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뛰어난 성취를 거둬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은 노년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1859년 저서 ‘종의 기원’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노년기 연구가 주목받지 못하자 좌절에 빠진 것. 반면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청년기에 이어 노년기에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 젊은 나이부터 천재 음악가로 명성을 떨친 그는 나이가 든 뒤 주목받지 못했지만,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으로 자신의 인생을 재설계했다. 노년에 접어들어 지혜와 통찰력은 오히려 깊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인생의 경로를 바꾼 것이다. 두 책이 전혀 듣지 못한 참신한 비법을 소개하는 건 아니다. 누가 방법을 몰라서 불행하게 사느냐고 반박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는 이야기도 다시 듣고 되새기면 다르게 다가온다. 이들의 조언처럼 살면 행복한 노년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일할 생각을 해야지. 한가하게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김 부장’은 회사에 출근한 뒤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는 젊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대기업에 25년째 다니고 있는 그는 연봉 1억 원을 받으며 서울에 집 한 채를 샀다. 집에서는 과묵하지만 누구보다 아내와 자식을 챙긴다고 자부한다. ‘꼰대’라고 불릴지언정 회사에서는 책임감 있는 리더로 인정받으며 산다고 믿는다. 남의 자식, 남이 타는 차, 남이 사는 집의 이야기에 집착하지만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상무가 그를 호출한다. 며칠 전 회사 동기가 사직 권고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순간 떠오른다. 그에게도 드디어 위기가 찾아온 걸까. 지난해 12월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평범한 서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화요 웹툰 중 2위를 기록하며 인기다. 독자 평점에서 10점 만점에 9.9점을 받은 건 사실적인 묘사로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내가 다니는 직장 이야기 같다”, “웹툰을 보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웹툰계에서 극사실주의(일상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르) 작품이 떠오르고 있다. 웹툰 ‘개꿈’은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여성의 연애 이야기를 다뤘다. 웹툰의 주 독자층인 20, 30대의 공감을 얻어 네이버 토요 웹툰 1위에 올랐다. ‘대학원 탈출일지’는 대학원 신입생이 연구실 선배들의 군기 잡기에 시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고든 것도 인기 비결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육아용품을 파는 여성의 삶을 다룬 ‘팔이피플’은 유명인의 삶을 꼬집는다.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은 아파트에 계속 살기 위해 친구의 죽음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30대 회사원을 통해 부동산 값이 폭등한 현실을 지적한다.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은둔형 청년을 그린 ‘무직백수 계백순’은 청년 문제를 다룬다. 억울하게 죽은 주인공이 다시 태어나 복수하는 회귀물에 대한 독자들의 피로도 영향을 미쳤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판타지보단 현실 소재의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쉬운 제작 여건도 극사실주의 웹툰 작품이 많아진 배경”이라고 분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 최초의 신소설인 소설가 이인직(1862∼1916)의 장편소설 ‘혈의 누’ 재판본(사진)이 28일 온라인 경매에서 국내 근현대 문학 서적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매업체 코베이옥션에서 열린 온라인 경매에서 1908년에 발행된 ‘혈의 누’ 재판본이 2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이전까지 국내 근현대문학 경매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9월 케이옥션에서 낙찰된 김소월 시인(1902∼1934)의 시집 ‘진달래꽃’이 세운 1억6500만 원이었다. ‘혈의 누’는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란길에서 부모를 잃은 여주인공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근대소설 이행기의 면모를 보여주는 최초의 신소설로 꼽힌다. 1906년 신문에 연재된 뒤 1907년 초판본, 1908년 재판본이 나왔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직후 발행 불허 처분을 받아 현존하는 판본이 극히 드물다. 코베이옥션 관계자는 “국내에 초판본이 경매된 적이 없어 재판본이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부끄럽습니다. 두 권 쓰는 데 5년이나 걸렸습니다.” 윤흥길 작가(82)는 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전 5권·문학동네)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부끄럽고 민망해했다. 그는 “5권짜리를 차마 대하소설이라고 할 수 없어서 ‘중하(中河) 소설’이라는 신조어로 부르고 있다”며 머쓱해했다. ‘문신’ 1∼3권을 2018년 12월 출간하고 5년 3개월 만에 4, 5권을 낸 것에 대해선 “작품이 늦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편집자가 ‘21세기를 빛낼 새로운 고전’이라고 높게 평가하자, 그는 “고전이란 말은 민망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덧붙였다. “지병인 심혈관 질환이 악화돼 세 번 정도 심하게 아팠어요. 작품을 쓰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썼어요. 제 작가 인생에 남을 필생의 역작입니다.” 1968년 등단한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약자로 전락한 노동자의 애환을 다룬 중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년), 6·25전쟁의 비극을 다룬 단편소설 ‘장마’(1980년)로 이름을 알렸다. ‘문신’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 욕망, 갈등을 치밀하게 그렸다. 첫 집필부터 탈고까지 25년이 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의 연장선에 있다. 200자 원고지 6500장으로 전 5권 세트가 209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제목은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따왔다. 그는 “어릴 적 6·25전쟁 때 동네 청년들이 입영 통지를 받고 입영 직전에 팔뚝이나 어깨에 문신 새기는 걸 자주 봤다”며 “청년들이 며칠 동안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떠들고 동네 시끄럽게 하다가 군대에 갔던 기억을 소설의 한 요소로 녹여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인간쓰레기들을 그냥 청소한 것뿐이다.”(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o난감’ 중) “법에는 구멍이 나 있다. 이제 내가 그 구멍을 메우겠다.”(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비질란테’ 중) 최근 선악의 경계에서 사회 정의를 묻는 ‘다크 히어로’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히어로물이 착한 영웅 위주로 전개된다면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다크 히어로는 인간 심리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한국,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1위에 오른 ‘살인자ㅇ난감’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이탕(최우식)이 우연한 살인으로 시작해 ‘죽어 마땅한 자’를 처단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탕이 선악을 넘나들며 악한을 살해하는 장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자를 사법당국이 아닌 개인이 직접 처단하는 게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다. 지난해 11월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된 뒤 한국 TV쇼 부문 1위에 오른 ‘비질란테’도 다크 히어로 콘텐츠다. 주인공 김지용(남주혁)은 낮에는 모범적인 경찰대 학생이지만, 밤이면 범죄자들을 찾아가 직접 심판한다. 어릴 적 지용의 엄마가 눈앞에서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었지만, 범인이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낮은 형량을 받고 출소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역시 SNS에서 악인 중에서도 죽어 마땅한 자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처벌은 무엇이 합당한지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크 히어로가 각광을 받는 건 악랄한 범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지난해 2월 방영돼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 2’처럼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한 복수극이 현실에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줬다는 것. 이와 관련해 ‘살인자o난감’과 ‘비질란테’를 비롯해 지난해 8월 방영돼 사형제 논쟁을 촉발시킨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모두 웹툰이 원작이다. 독자들의 실시간 반응에 민감한 웹툰 원작들이 범행에 비해 법적 처벌이 미약하다고 여기는 대중의 공분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시각도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사법기관에 의한 공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대중의 분노가 다크 히어로 열풍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크 히어로물은 악을 신속하고 통쾌하게 처단하는 방법이 결국은 폭력이라는 부조리함을 고발하기도 한다. ‘살인자o난감’에서 형사 장난감(손석구)이 이탕을 향해 “네가 뭐 신이라도 되냐? 네가 뭔데 벌을 줘?”라고 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중심으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현상의 연장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7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 2는 군 복무 개선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은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OTT 콘텐츠를 접한 시청자들이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사회적 공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다룬 콘텐츠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