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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한국) vs 최소 10년(미국)’.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초임계 반도체 세정 장비’ 핵심 도면을 중국으로 빼돌린 전직 연구원 A 씨에 대해 법원은 지난달 징역 10년의 2심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액에 따른 형량은 0년이었다. 검찰이 피해액을 약 2200억 원으로 추산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액을 명확하게 계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미국은 법원이 피해액을 직접 산정하고 양형에 반드시 반영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7일 본보가 복수의 법학 교수, 변호사 등에게 자문한 결과, 미국 법원이 2200억 원의 피해액을 인정했다면 형은 10년 1개월∼12년 7개월 가중됐다. 이는 초범일 경우다. 법률 전문가들은 만약 범죄 전력이 있거나 죄질이 나쁘면 최대 17년 6개월∼21년 10개월의 형이 가중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연방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표에 따르면 기술 유출 범죄에는 최소 징역 0∼6개월이 부과된다. 거기에 피해액 정도에 따라 징역이 가중된다. 초범이고 피해액이 2200억 원이면 징역은 최소 1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한 법률 전문가는 “재범이거나 해외로 기술이 유출된 경우, 기술 유출범이 범죄의 대가로 돈을 받은 경우는 형량이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기술 유출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496건을 분석한 결과, 법원이 피해액을 산정해 적시한 판결은 한 건도 없었다. 23건(4.6%)엔 피해액이 적혀 있었지만, 이는 장비 절도 등 직접적인 피해액이 있는 경우였다.美, 기술유출 피해액 따져 33년刑까지 형량 가중… 韓, 반영 안해 [한국, 기술유출 ‘솜방망이 처벌’]韓, 피해액 산정 못해… 美법원, 시장 가치 등 반드시 반영英, 국가안보법 적용해 최대 종신형… 日, 전담법원 설치 재산몰수-추징韓, 피해액 산정 기준-전문기관 없어… “형 적게 살고 큰돈 번다” 먹잇감 돼 한번 기술이 유출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년간 쏟아부은 비용이 물거품이 되고 기술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히게 된다. 유출된 기술이 상용화되는 경우엔 기업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한국은 기술 유출 피해액을 산정하는 전문 기관과 체계가 없어 법원 판결에서 피해액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 법원 관계자는 “해당 기술의 가치와 유출에 따른 손실액, 피해 기업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미래 발생할 손실 규모 등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산정해야 하는데, 판사가 참고할 산정 기법이나 기준 등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법원이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액을 산정해 형량에 적극 반영한다. 피해액 산정 기준과 이에 따른 양형 기준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윤해성 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한국과 달리 피해액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이 강제 규정으로 돼 있다”며 “기술 유출범들은 피해액 산정이 안 돼서 형량이 적고, 형을 살고 나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우리 기업을 먹잇감으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美 피해액 따른 처벌 최대 33년 9개월 2021년 미국 테네시 동부 지방법원은 코카콜라에서 영업 비밀을 훔친 혐의로 화학 기술자 Y 씨에게 징역 14년형 및 약 20만 달러(약 2억66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Y 씨가 훔친 기술이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법원이 전문가 증언과 피해 자료 등을 바탕으로 Y 씨가 회사에 끼친 피해액을 약 1억2000만 달러(약 1596억 원)로 산정한 결과다. 미국 연방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법원은 ‘범죄 심각성 등급표’에 따라 기술유출 피해액 구간별로 양형에 반영할 가중등급을 30개로 나눈다. 이를 ‘양형기준표’에 대입해 피해액에 따라 최대 36등급을 부여한다. 피해액만으로 최대 405개월(33년 9개월)의 징역 선고가 가능하다. 미국 법원은 △기술 개발 비용 △기술의 시장 가치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실 △범죄로 인해 감소한 기업 가치 △기업의 미래 수익 등을 종합해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액을 산정한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민간 시장이 발달해 있고, 피해액 산정 방법도 오랜 기간 축적됐다”며 “손실 금액이나 피해자의 수, 범죄 수법의 치밀함, 전과 등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진다. 피해액을 양형에 반드시 반영해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고 말했다. 영국은 최근 기술 유출에 대한 벌금 상한을 아예 없앴다. 지난해 12월 말 ‘국가안보법’을 제정해 국가적 보호가 필요한 정보를 불법 취득해 해외로 넘기려 한 경우엔 종신형과 상한 없는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했다. 영업비밀 등을 빼돌려 국외로 유출하려는 경우에도 최대 14년의 징역 또는 상한 없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영국은 범죄자의 경제적 이득을 박탈하기 위해 벌금을 크게 높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과거엔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법률이 없어 상표법 등으로 처벌했다. 최대 처벌 수준이 징역 10년에 그쳤지만 당시에도 피해액을 산정해 형량에 반영했다. 피해자가 입은 금전적 손해액을 5개의 구간으로 나눠 형량에 반영하는 식이다. 일본은 기술 유출 범죄 전담 법원을 뒀다. 도쿄와 오사카 지방법원이 일본 전역에서 발생한 기술 범죄 재판을 전담한다. 오사카 지방법원은 2020년 “피해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업계의 시세, 해당 정보 자체의 가치, 해당 정보를 이용해 올릴 수 있는 매출 및 이익, 피해자의 영업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기술 범죄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몰수가 불가능하면 추징을 하는 규정도 있다. 특히 피해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영업 비밀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사에게만 산정 근거를 공개할 수 있는 절차도 갖췄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소속 A 조사관은 “피해 기업이 법원에서 피해액을 주장하면, 피의자 측 변호인들이 산정 자료를 보여달라고 한다. 피해 기업은 내부 정보가 공개되는 2차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이렇다 보니 아예 피해액 자체를 산정하지 않으려는 기업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산정한 피해액 인정 안 하는 韓 법원 피해액은 범죄자들이 얻은 경제적 이득을 박탈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A 조사관은 “기업들 입장에선 피해액이 산정돼야 나중에 민사 재판에 가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피해자들은 울고, 범죄자들은 떵떵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선 피해액 산정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피해를 본 기업들이 어렵게 피해액을 산정해 가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2년 국내 한 금속 관련 기업 B사는 직원이 기술을 빼돌려 동일한 업체를 차리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B사는 약 1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형사 재판에서 손해액이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이 산정된 손해액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에 관여한 류정선 법무법인 혁신 변호사는 “전문 기관에서 기술 가치 평가도 받고, 변리사와 회계사 등 전문가들이 감정해서 피해액을 산정했다. 그런데 형사소송에서 재판부는 평가 자체를 믿기 어렵다면서 피해액을 배척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액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형량이 징역 2∼3년에 그쳤다. 지금도 범죄를 저지른 기업은 유출한 기술로 만든 제품을 버젓이 사용하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5·사법연수원 16기·사진)이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사법 농단 사건으로 유죄가 선고된 3명 중 가장 높은 형이 선고됐지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등 재판 개입과 일명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 핵심 혐의는 무죄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6-1부(부장판사 김현순)는 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해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과 청와대를 지원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2018년 11월 검찰이 구속 기소한 지 5년 3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관련 법원 결정의 문제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홍일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 등의 ‘재판 청탁’ 사건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 중인 사건을 심의관에게 검토하도록 한 것은 재판 윤리에도 반하는 것일뿐더러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핵심 혐의인 강제징용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 법원은 “임 전 차장의 지시는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고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법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준 혐의도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사법농단’ 14명 모두 재판개입 혐의 무죄… 법원 “실체 사라져” 사법농단 혐의 법관 14명 1심 마무리“사법공정성 대한 국민 신뢰 해쳐”… 핵심 임종헌 직권남용 일부 유죄기소 14명중 3명만 1, 2심서 유죄‘檢의 무리한 기소’ 피하기 힘들듯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2018년 11월 구속 기소됐다. 당시 사법부의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 개입하는 등 재판을 ‘로비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엄중 책임” 물었지만 핵심 혐의는 무죄 5일 1심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을 가진 법관이 다시는 피고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피고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법원 구성원들에게도 커다란 자괴감과 실망감을 안겼다”며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한 중대한 범죄”라고 임 전 차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공보관실 예산을 위법하게 사용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했다는 핵심 혐의에 대해선 “개입할 직권이 없거나,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재판 거래 등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나 목적으로 심의관들에게 부적절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수많은 검사가 투입돼 공소사실이 약 300쪽으로 정리되는 동안 ‘사법 농단’ 의혹 대부분은 실체가 사라진 채 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만 남게 됐다”며 “(검찰이 기소한) 이런 혐의도 대부분 범죄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사법 농단’ 혐의 대부분이 실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양승태 사건 재판부’와도 다른 판단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1부(부장판사 이종민)가 지난달 26일 1심 판결을 내리면서 임 전 차장을 유죄 취지로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형사합의 35-1부는 사법행정에 비협조적인 법관 연구모임을 와해시키는 방안을 검토한 혐의에 대해 “임 전 차장이 법관들로 하여금 연구회를 탈퇴하도록 한 행위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지만, 임 전 차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법관의 중복가입 방지 규정은 유효한 행위”라며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된 범행들도 임 전 차장이 단독으로 저질렀거나, 예산에 관한 범행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임 전 차장)이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오랜 기간 질타의 대상이 됐고 5년 동안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 하는 사회적 형벌을 받은 점, 500일 넘게 구금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14명 중 3명만 1, 2심서 유죄 이날 판결로 사법 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법관 14명 가운데 임 전 차장 등 3명만 1심 또는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 11명은 하급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거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상태여서 검찰은 무리한 기소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2022년 4월 무죄가 확정됐고, 같은 의혹으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부장판사,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등 5명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6일 1심에서 47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022년 1월 항소심에서 벌금 1500만 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은 상태다. 이들이 상고하면서 현재 대법원이 심리를 진행 중이라 유죄가 확정된 사람은 1명도 없다. 특히 사법농단 사태의 뼈대를 이루는 ‘재판 개입’ 의혹의 경우 14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검은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전두환 군부세력의 12·12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맞서다 전사했지만 총기 사고사로 처리됐던 정선엽 병장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2단독 홍주현 판사는 정 병장의 유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5일 “유족 1명당 각 2000만 원씩 총 8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 병장은 국방부 B-2 벙커에서 근무하던 중 반란군의 무장해제에 대항하다 살해돼 전사했음에도 국가는 계엄군 오인에 의한 총기 사망 사고라며 순직 처리해 사망을 왜곡하고 은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고인의 생명과 자유, 유족들의 명예나 법적 처우에 관한 이해관계 등이 침해된 게 명백하다”며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따라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전역을 3개월 앞둔 정 병장(사망 당시 23세)은 육군본부 벙커에서 근무 중 반란군에 저항하다 총탄에 맞아 숨졌다. 국방부 산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사망 43년여 만인 지난해 3월 “반란 세력에 대항한 정 병장의 명예로운 죽음을 군이 오인에 의한 총기 사고로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전두환 군부세력의 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맞서다 전사했지만 총기사고사로 처리됐던 고(故) 정선엽 병장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2단독 홍주현 판사는 정 병장의 유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5일 “유족 1명당 각 2000만 원씩 총 8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 병장은 국방부 B-2 벙커에서 근무하던 중 반란군의 무장해제에 대항하다 살해돼 전사했음에도 국가는 계엄군 오인에 의한 총기 사망사고라며 순직 처리해 사망을 왜곡하고 은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고인의 생명과 자유, 유족들의 명예나 법적 처우에 관한 이해관계 등이 침해된 게 명백하다”며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1항에 따라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전역을 3개월 앞둔 정 병장(사망 당시 23세)은 육군본부 벙커에서 근무 중 반란군에 저항하다 총탄에 맞아 숨졌다. 국방부 산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사망 43년만인 지난해 3월 “반란세력에 대항한 정 병장의 명예로운 죽음을 군이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조작했다”고 결론내렸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조희대 대법원장이 올 1월 1일 퇴임한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후임으로 엄상필 서울고법 부장판사(56·사법연수원 23기)와 신숙희 양형위원회 상임위원(55·25기)을 2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조 대법원장 취임 후 첫 대법관 임명 제청이자 윤석열 정부 들어 4, 5번째 대법관 임명 제청이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인준 투표를 거쳐 최종 임명되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맡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의 구도가 중도·보수 8명 대 진보 5명 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대법 ‘중도 보수 8 vs 진보 5’ 재편 전망대법관 후보 엄상필-신숙희후보 2명 중도성향으로 분류돼嚴, 정경심 항소심서 4년형 선고申,젠더법 분야 전문가로 꼽혀 대법원은 두 후보자에 대해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바라는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며 “공정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충실히 보장할 수 있는 전문적인 법률 지식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의지 등을 겸비했다”고 밝혔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첫 임명 제청 경남 진주 출신인 엄 후보자는 진주동명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7년 2월 서울지법 판사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요직을 거친 중도 성향의 정통 법관으로 꼽힌다. 엄 후보자는 202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항소심을 맡아 자녀 입시비리 관련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댓글 부대’에 국가정보원 예산 63억 원을 지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에서도 직권남용 혐의 등을 추가로 인정해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서울 출신인 신 후보자는 창문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96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고법 판사와 수원고법 판사 등을 지냈다. 지난해엔 여성 최초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발탁돼 양형기준 대상 범죄군 확대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후보자는 한국젠더법학회 부회장과 법원 내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는 등 젠더법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201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한 초동 대응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며 1심보다 국가 책임을 무겁게 보고 손해배상금을 증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신 후보자의 남편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특별재판소(ECCC) 국제재판관을 지낸 백강진 광주고법 부장판사(23기)로 ‘부부 판사’이기도 하다.● 중도·보수 우위로 재편 전망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두 후보자가 대법관에 임명되면 ‘김명수 사법부’ 때부터 이어진 ‘진보 편중’ 대법관 구도가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들어가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중 8명이 중도·보수 성향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도·보수 성향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동원 노태악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대법관 등 6명, 진보 성향으로는 김선수 노정희 김상환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 등 5명이다. 여기에 올 8월에 이동원 대법관과 함께 진보 성향인 김선수 노정희 대법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할 예정이라 대법관 구도는 추가로 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 주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사진)에 대한 특별사면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앞서 2012년 총선과 대선 전후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 댓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8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 재상고했던 김 전 장관은 최근 취하서를 제출해 형이 확정됐다. 사면은 형이 확정돼야 가능하다. 김 전 장관은 현재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사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다. 여권 관계자는 “아직 최종 확정되진 않았다”면서도 “김 전 장관은 설 특사 명단에 포함되는 게 유력하다”고 전했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됐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최근 대법원에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각각 징역 2년, 1년 2개월의 형이 확정됐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치인 사면은 한 자릿수 규모로 최소화할 것”이라며 “야당 정치인도 포함될 것” 이라고 했다. 사면 대상엔 여객·화물업, 운송업,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징계 사면도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공무원 중 파렴치범을 제외하곤 경징계 기록을 없애주는 조치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며 “공무원 사기 진작 차원”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2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고 윤 대통령에게 건의할 설 특별사면 대상자를 선정했다. 사면심사위가 특별사면과 복권 건의 대상자를 선정하는 회의를 마친 만큼, 곧 사면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명단을 보고하고 6일로 예정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상자를 최종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사건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밝혔다. 26일 판결 후 사흘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입장이다. 2019년 2월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한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휘하에서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 사법부 수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한 위원장은 29일 오전 국민의힘 당사 출근길에 “아직 중간 진행 상황에서 수사에 관여했던 사람이 직을 떠난 상황에서 말하는 건 적절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 위원장은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이 있던 사안이고 나중에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한 위원장은 5년 전 기소 당시 “재판 내용에 대해 방향을 정해 준다든지 재판 절차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이 재임 당시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법조계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 모두가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한 위원장과 검찰에서 무리한 수사는 아니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한 위원장은 본인이 수사팀장이었던 만큼 다른 곳으로 화살을 돌리지 말고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이원석 검찰총장 역시 검찰을 대표해 사과하고 항소 포기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유무죄는 법원의 판단이라고 방치하는 검사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검사”라며 “검사가 정치에 맛 들이면 사법적 정의는 사라지고 세상은 어지러워진다”고 적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다주택 보유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 승진을 취소시킨 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경기도 공무원 A 씨가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강등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 강화를 추진하던 2021년 8월, 경기도는 A 씨를 4급에서 5급으로 강등했다. 그가 4급 승진임용대상자였던 2020년 12월에 주택 2채와 오피스텔 분양권 2건을 보유하고 있었었는데도 경기도가 소속 공무원을 상대로 벌인 주택보유조사에서 ‘주택 2채를 보유하고 있다’고만 답변했다는 이유였다. 2021년 2월 4급으로 승진한 A 씨는 경기도가 뒤늦게 ‘허위 답변’을 문제 삼아 자신을 강등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A 씨가 승진한 당시 전체 후보자 132명 중 다주택 보유자로 신고한 35명은 승진하지 못했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였다. 1심과 2심 모두 징계 사유는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강등 처분에 관한 판단이 엇갈렸다. 1심에선 “비위 정도가 강등 처분할 정도로 심하다고 볼 수 없다”고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주택 보유 현황을 거짓으로 진술해 인사의 공정성을 해친 것으로 비위 정도가 약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1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징계 자체부터 부당하다고 봤다. 경기도 공무원에 대한 주택보유조사는 법령상 근거가 없고, 직무수행능력과 무관한 다주택 여부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주택 보유 현황 자체가 공무원의 직무수행능력과 관련되는 도덕성·청렴성 등을 실증하는 지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승진임용 심사에서 일률적인 배제 사유 등으로 반영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법령상 근거가 없는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면, 이는 공무원이 부당한 지시에도 복종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재판 개입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3명 중 판결이 선고된 12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핵심 범죄 사실로 내세웠던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 사법부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 중 재판 개입 의혹을 판단한 4곳 모두 헌법상 판사가 독립적으로 하는 재판에 대법원장을 비롯한 다른 법관들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했다. ● 사법농단 핵심 혐의 ‘재판 개입’ 모두 무죄 사법농단 사태의 뼈대를 이루는 직권남용 혐의는 크게 재판 개입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나눌 수 있다. 13명 중 재판 개입 의혹에 연루된 판사는 12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는 8명이다. 사법농단 사건 관련 피고인은 14명이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유일하게 아직 1심 선고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76·사법연수원 2기)의 핵심 범죄 사실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 개입’을 꼽았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는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의 주심 대법관에게 법원행정처 입장을 전달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려면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판사도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 같은 판단은 다른 재판부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이를 놓고 앞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 전 대통령 등 핵심 피고인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과 달리 다른 기준을 적용해 사실상 면죄부 판결을 내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 개입에 연루된 일부 피고인에 대해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했으면서 형사처벌만 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수도권 법원 판사는 “월권이라 무죄냐”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지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개입이 인정된 것”이라며 “사법농단 사건에선 재판부가 독립돼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단순히 비교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도 유죄는 2명뿐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범죄 사실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사법부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2명만 유죄로 판단했다. 이 전 실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한 혐의가, 이 전 상임위원은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관련 보고서를 행정처 심의관에게 작성하게 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법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지시한 점이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직접적인 재판 개입 혐의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선고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의 재판 개입 의혹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일부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서기호 전 국회의원의 판사 시절 재임용 탈락 관련 사건’과 관련해 당시 담당 재판부에 ‘신속종결’ 의견을 전달한 것과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게 한 행위 등에 대해 “직무권한에서 벗어난 행위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에 대해 사법부가 다음 달 5일 1심 선고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임 전 차장의 1심 선고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판사 김현순)가 맡아 별도로 진행한 만큼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재판개입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3명 중 판결이 선고된 12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핵심 범죄 사실로 내세웠던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사법부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 중 재판개입 의혹을 판단한 4곳 모두 헌법상 판사가 독립적으로 하는 재판에 대법원장을 비롯한 다른 법관들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했다. ● 사법농단 핵심 혐의 ‘재판개입’ 모두 무죄사법농단 사태의 뼈대를 이루는 직권남용 혐의는 크게 재판개입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나눌 수 있다. 13명 중 재판개입 의혹에 연루된 판사는 12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는 8명이다. 사법농단 사건 관련 피고인은 14명이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유일하게 아직 1심 선고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76·사법연수원 2기)의 핵심 범죄 사실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개입’을 꼽았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는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의 주심 대법관에게 법원행정처 입장을 전달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려면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판사도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같은 판단은 다른 재판부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이를 놓고 앞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 전 대통령 등 핵심 피고인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에 비해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개입에 연루된 일부 피고인에 대해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했으면서 형사처벌만 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수도권 법원 판사는 “월권이라 무죄냐”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지우기도 했다.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개입이 인정된 것”이라며 “사법농단 사건에선 재판부가 독립돼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단순히 비교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도 유죄는 2명 뿐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범죄 사실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사법부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2명만 유죄로 판단했다. 이 전 실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한 혐의가, 이 전 상임위원은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관련 보고서를 행정처 심의관에게 작성하게 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법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지시한 점이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직접적인 재판개입 혐의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다만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선고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의 재판개입 의혹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일부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서기호 전 국회의원의 판사 시절 재임용 탈락 관련 사건’과 관련해 당시 담당 재판부에 ‘신속종결’ 의견을 전달한 것과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게 한 행위 등에 대해 “직무권한에서 벗어난 행위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임 전 처장에 대해 사법부가 다음 달 5일 1심 선고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임 전 차장의 1심 선고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판사 김현순)가 맡아 별도로 진행한 만큼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첫 법원장 등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축소한 법원행정처 조직을 확대했다. 김 전 대법원장이 도입해 ‘인기 투표’ 논란을 빚었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 없이 실력과 평정 위주의 인사를 단행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역대 가장 많은 4명이 여성 법원장으로 승진했다. 대법원은 법원장 16명과 각급 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에 대한 보임·전보 인사를 다음 달 5일 자로 실시한다고 26일 밝혔다. 고법 부장판사, 고법 판사 전보 인사는 다음 달 19일 자다. 이번 인사에서 전국 13개 지법과 가정·행정·회생법원 모두 지법 부장판사가 법원장으로 승진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까지는 고법 부장판사가 법원장에 임명됐고, 김 전 대법원장 체제에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거쳐야만 지법 부장판사가 지방법원장에 임명될 수 있었다. 지법 부장판사가 추천체 없이 지방법원장에 임명된 건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서울행정법원장에는 김국현 창원지법 부장판사(24기), 서울동부지법원장에는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민사제1수석부장판사(26기)가 임명됐다. 수원지법은 김세윤 수원지법 수석부장판사(25기), 대전지법은 김용덕 대전지법 부장판사(27기), 전주지법은 정재규 전주지법 부장판사(22기)가 이끌게 됐다. 지난해 3월 개원한 수원회생법원은 같은 법원 김상규 수석부장판사(26기), 부산회생법원은 권순호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26기)가 법원장을 맡는다. 법원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판사들이 사법행정을 진두지휘할 수 있도록 법원장에 적극 배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성 법원장은 4명이 임명됐다. 인천지법원장에는 김귀옥 의정부지법 부장판사(24기), 수원가정법원장에는 이은희 수원지법 부장판사(23기), 대전가정법원장에는 문혜정 대전지법 부장판사(25기)가 각각 임명됐다. 정계선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27기)는 서울서부지법원장으로 승진했다. 이에 따라 여성 법원장은 서경희 울산지법원장(24기)을 포함해 5명이 됐다. 대전고법원장에는 박종훈 부산고법 부장판사(19기), 특허법원장에는 진성철 대구고법 부장판사(19기)가 보임됐다. 김 전 대법원장 시절 법관 인사 이원화 정책으로 법원장 보임 기회가 없었던 19기 고법 부장판사 2명을 고법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 이후 3분의 1로 축소됐던 법원행정처도 확대된다. 배형원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21기)를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임명하고, 기고문 등을 통해 ‘재판 지연’ 문제를 강하게 비판해온 이형근 특허법원 고법판사(25기)를 사법지원실장에 임명했다. 일반직 공무원이 맡아온 정보화 관련 조직을 신설된 사법정보화실로 통합해 원호신 대구고법 판사(28기)에게 맡겼다. 차세대전자소송시스템과 인공지능(AI) 등을 도입하고 사법행정 기능을 강화하면서 재판 지연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대법원은 “장기간 재판 업무를 담당하면서 훌륭한 인품과 경륜 및 재판 능력 등을 두루 갖춰 법원 내 신망이 두터운 법관을 법원장으로 보임했다”고 밝혔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판사 출신인 조한창 법무법인 도울 변호사(59·사법연수원 18기)와 신숙희 양형위원회 상임위원(55·25기) 등 6명이 이달 1일 퇴임한 안철상 민유숙 전 대법관의 후임 후보로 추천됐다. 조 변호사를 제외하면 5명 모두 현직 법관이고 여성은 3명이다. 대법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25일 오후 대법원에서 회의를 갖고 심사 대상자 42명 중 6명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조 대법원장은 추천받은 후보들의 주요 판결 등을 공개하고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한 뒤 후보자 2명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예정이다. 통상 추천위의 추천 후 대법원장이 임명을 제청하기까지 열흘가량 걸린다. 후보자가 제청되면 윤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하게 된다. 추천 명단에는 조 변호사와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55·22기), 엄상필 서울고법 부장판사(56·23기)가 이름을 올렸다. 조 변호사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내고 2021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박 차장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도 지내는 등 사법행정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엄 고법부장판사는 2021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의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여성은 신 상임위원과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58·25기), 이숙연 특허법원 고법판사(56·26기)가 추천됐다. 신 상임위원과 이 고법판사는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박 고법판사는 대법원 노동법 실무연구회 등에서 활동한 노동법 전문가다. 법원 안팎에선 조 대법원장이 남성과 여성 각각 1명을 임명 제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대법원 3개 소부 가운데 1부에는 오경미, 3부에는 노정희 대법관이 있지만 2부에는 민유숙 전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여성 대법관이 없는 상황이다. 이광형 추천위원장은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 보호에 대한 사명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 의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통찰력과 감수성 등을 두루 갖춘 후보자를 추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이 공탁한 돈을 받아갈 수 있게 하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공탁금을 배상금으로 받기 위해 청구한 압류추심명령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이모 씨 측이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낸 공탁금회수청구권 압류추심명령 신청을 23일 인용했다. 이 결정과 공탁금에 대한 담보 취소 결정이 모두 확정될 경우 이 씨는 처음으로 일본 기업의 돈을 받는 피해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히타치조선은 2019년 한국 내 자산의 강제 집행을 막기 위해 담보 성격으로 6000만 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이 씨 측은 이 돈을 배상금으로 받고자 압류추심명령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법원 결정이 정부로 송달되면 이 씨 측은 송달 증명서를 근거로 서울고법의 담보 취소 결정을 구하게 되고, 결정이 나면 공탁금을 수령할 수 있다. 법조계에선 서울고법의 담보 취소 결정 역시 정해진 수순이라 이르면 2∼3개월 내에 이 씨가 60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사소송법은 담보 권리자의 동의를 통해 담보 취소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법원 결정으로 이 씨 측이 히타치조선이 낸 공탁금에 대한 ‘실질적 권리자’가 됐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이 담보 취소 결정을 내리면 히타치조선은 즉시항고를 통해 불복할 수 있다. 그러나 히타치조선 역시 공탁금을 회수하려면 이 씨처럼 담보 취소 결정을 받아내야 하는데, 법원이 히타치조선의 항고 이익이 없다고 보고 각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모든 강제징용 피해자가 이 같은 절차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강제동원 기업이 한국 법원에 공탁금을 낸 것은 히타치조선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법원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 41명이 일본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등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5일 확정했다. 일본 정부는 “극히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3월 6일에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는 취지의 뜻을 이미 표명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대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이 공탁한 돈을 받아갈 수 있게 하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지난달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공탁금을 배상금으로 받기 위해 청구한 압류추심명령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이모 씨 측이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낸 공탁금회수청구권 압류추심명령 신청을 23일 인용했다. 이 결정과 공탁금에 대한 담보 취소 결정이 모두 확정될 경우 이 씨는 처음으로 일본 기업의 돈을 받는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히타치조선은 2019년 한국 내 자산의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담보 성격으로 6000만 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이 씨 측은 이 돈을 배상금으로 받고자 압류추심명령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법원 결정이 정부로 송달되면, 이 씨 측은 송달 증명서를 근거로 서울고법의 담보 취소 결정을 구하게 되고, 결정이 나면 공탁금을 수령할 수 있다.법조계에선 서울고법의 담보 취소 결정 역시 정해진 수순이라 이르면 2~3개월 내에 이 씨가 60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사소송법은 담보 권리자의 동의를 통해 담보 취소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법원 결정으로 이 씨 측이 히타치조선이 낸 공탁금에 대한 ‘실질적 권리자’가 됐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담보 권리자인 이 씨가 요청하는 담보 취소를 고법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서울고법이 담보 취소 결정을 내리면 히타치조선은 즉시항고를 통해 불복할 수 있다. 그러나 히타치조선 역시 공탁금을 회수하려면 이 씨 처럼 담보 취소 결정을 받아내야 하는데, 법원이 히타치조선의 항고 이익이 없다고 보고 각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다만 모든 강제징용 피해자가 이 같은 절차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강제동원 기업이 한국 법원에 공탁금을 낸 것은 히타치조선이 유일하기 때문이다.한편 대법원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 41명이 일본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등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5일 확정했다.일본 정부는 “극히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3월 6일에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는 취지의 뜻을 이미 표명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대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히타치조선 공탁금에 대한 법원 결정에 대해서도 “한국의 지난해 3월 조치에 따라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올해 4월 10일 치러지는 총선에선 지방공사 직원도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교회 등 종교기관에서의 선거운동은 지금처럼 계속 금지된다.헌법재판소는 25일 지방공사 상근직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안산도시공사 직원들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헌재는 “공직선거법은 지방공사 상근직원이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상근직원에까지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밝혔다. 반면 이종석 헌재 소장과 이영진 재판관은 “직급이 낮다고 하여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헌재는 2018년 2월 정부 공기업인 코레일 직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2022년 6월 지방공사인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정당 내 경선 선거운동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헌재 결정을 반영해 지방공사 직원이 정당 내 경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난해 8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했는데, 이날 헌재 결정으로 당내 경선은 물론, 총선 등 일반 선거에서 모두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다만 헌재는 종교기관에서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 목사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 2번, 황교안 장로 당입니다. 2번 찍으시고”라고 말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만 원이 확정되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전남 광주의 한 교회 목사도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대선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며 표를 주지 말라고 신도들에게 말했다가 1심에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법원행정처가 경륜 있는 판사의 전문성과 경험을 계속 활용하는 ‘시니어 판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관 부족과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니어 판사 도입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2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시니어 판사 제도 도입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니어 판사란 정년을 마치거나 정년에 임박한 판사를 법원에 계속 남도록 하는 제도다. 법관들이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판사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특히 만성적인 법관 부족과 재판 지연, 전관예우 논란 등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시니어 판사를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년(65세)에 임박한 현직 판사 가운데 시니어 판사를 선발해 정년을 75세로 10년 늘려주는 대신, 보수는 일반 법관보다 낮게 책정하는 게 기본 구상이다. 다만 시니어 판사들을 ‘정원 내 법관’으로 둘 경우 사무 분담 등에서 다른 판사들의 불만을 살 우려가 있어 ‘정원 외 법관’으로 운영하는 안이 유력하다. 법원행정처는 시니어 판사가 정착된 미국 등 해외 사례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원은 ‘80의 원칙(Rule of 80)’에 따라 65세 이상인 판사의 법관 재직 기간과 나이를 합친 수가 ‘80’이 되면 퇴직하지 않고 시니어 판사 트랙을 선택할 수 있다. 원로 판사들이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여생을 헌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일본도 일반 판사 정년(65세)을 넘어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간이재판소 판사’ 제도를 운영한다. 시니어 판사 도입에 대한 법원 내부 반응도 긍정적인 편이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지금도 판사들의 만성적 과로와 재판 지연으로 법원 내 위기 의식이 상당하다”며 “우수한 경력 법조인들이 법관에 지원하도록 할 유인책으로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선 정년 이후 근무를 보장하는 ‘정원 외 법관’을 시니어 판사 제도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안건이 가결되기도 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법관이 중도 퇴직해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전관예우 논란이 유독 심하게 나오는 풍토가 있다”며 “전관예우 논란을 줄이면서 평생법관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시니어 판사 도입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 채모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사진)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의 수사가 해병대 수뇌부와 국방부 고위층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전날 경기 화성시 봉담읍 해병대사령부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김 사령관과 부사령관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김 사령관은 지난해 7월 폭우 당시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순직한 채 상병 사건 조사와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수처는 채 상병 사건을 조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려고 하자,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 보고서를 불법적으로 회수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16∼17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사무실 및 자택, 박진희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의 사무실 등도 압수수색했다. 공수처는 “국방부 및 해병대 관계자를 대상으로 수사상 필요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뒤 김 사령관 등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 의혹은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박 전 수사단장이 윗선의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시작됐다.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지난해 8월 23일 국방부 김동혁 검찰단장과 유 법무관리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도 같은 해 9월 5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김 사령관, 대통령실 관계자 등 7명을 고발하자 공수처는 수사에 착수했다. 한편 김 사령관은 다음 달 1일 열리는 박 전 수사단장의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검찰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보류 지시를 어기고 채 상병 사건 조사 보고서를 지난해 8월 2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혐의(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등)로 박 전 수사단장을 재판에 넘겼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대검찰청은 17일 전국 검찰청에 소방대원과 응급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에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했다.대검은 소방대원과 응급 의료인에 대한 폭력 범죄는 원칙적으로 정식 재판에 넘기며, 일반 형법보다 법정형이 중한 특별법(119구조구급에관한법률, 소방기본법,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의료법 등)을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행한 폭력에 대해서는 주취감경(심신미약 감경)을 배제할 수 있는 특별법의 특례규정을 적극 적용하도록 한다. 특별법은 일반 형법상 폭행·상해보다 형량이 무겁고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줄일 수 없도록 특례 규정 조항이 있다.대검은 구조·구급, 응급의료 기능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거나 상습·반복적인 폭력을 저지른 사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하고, 양형자료를 법원에 적극 제출해 중형을 구형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소방청에 따르면 구급대원 폭행사건은 2020년 196건, 2021년 248건, 2022년 287건, 2023년 244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호흡이 곤란하다’는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의식 확인을 위해 가슴을 누르자 욕설을 하며 주먹으로 구급대원의 목을 때린 피고인에게 지난해 10월 징역 1년이 선고된 사례가 있다. 최근 강원도 강릉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주취자의 폭력으로 응급실 업무가 마비되는 사건도 있었다.대검은 “소방대원과 응급의료인에 대한 폭력 행위는 위급상황에 직면한 국민이 적시에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하도록 해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경기 일산소방서를 직접 방문해 소방대원들을 격려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사진)이 퇴임을 앞두고 휴가를 낸 뒤 해외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공수처장 후보 인선이 늦어져 처장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처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처장은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휴가를 내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반부패학회에 참석했다. 김 처장은 지난해에도 이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공수처 안팎에서는 “퇴임 직전이라도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기관장이 자리를 비운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최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차기 처장 후보를 추천하지 못하고 파행돼 공수처장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운 것은 신중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 처장이 영국을 다녀오는 사이 공수처와 검찰의 갈등이 노출돼 부패 사건이 붕 뜨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수처가 검찰로 보낸 감사원 3급 공무원의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공수처로 돌려보냈는데, 공수처가 “법률적 근거가 없는 조치”라며 접수를 거부한 것이다. 공수처 측은 김 처장이 학회에서 해외 반부패 수사기관장들과 교류하며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출장이 아닌 휴가를 내고 비용을 자비로 충당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아일보는 김 처장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한편 19일 퇴임하는 김 처장은 1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수처 무용론’ 등 비판 여론에 대해 “오해가 많다. 나중에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처장이 이끈 ‘1기 공수처’는 직접 기소한 사건 3건 중 현재까지 유죄 판결을 받아낸 사례가 없고, 공수처가 직접 청구한 구속영장 5건이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다.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천대엽 법원행정처장(60·사법연수원 21기·사진)이 15일 취임하면서 사법부의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판사가 한 재판부에서 근무하는 기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판사가 사건 심리 도중 교체되면 새 판사가 사건을 파악하느라 재판이 길어질 수 있는 만큼, 한 곳에서 근무하는 기간을 늘려 재판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천 처장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당면한 과제는 재판 지연 해소”라며 이같이 밝혔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의 인사, 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한다. 천 처장은 “분쟁 해결 적기를 놓쳐 처리 기간이 장기화되는 등 사법부 역량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제기되는 현실이 뼈아프게 느껴진다”며 “신속, 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사법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재판 지연 해소 방안에 대해 천 처장은 “법관 및 직원들의 잦은 사무 분담 변경은 전문성 약화, 직접심리주의의 왜곡과 재판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속성 있는 재판을 위해 한 법원에서는 가급적 한 재판부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인사 및 사무 분담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법원행정처는 법관이 한 재판부에 근무하는 기간이 늘어나도록 법원 예규를 개정할 방침이다. 재판장은 최소 2년에서 3년으로, 배석판사는 최소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주 중 이런 방안을 법원 내부망에 공지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천 처장은 “재판과 민원 업무의 인공지능(AI) 활용 등 대국민 사법서비스 편의성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천 처장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뒤 2021년 5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