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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간 ‘페티토’라는 단어로 미국 사회가 떠들썩했습니다. 약혼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후 시신으로 발견된 개비 페티토(22)라는 여성입니다. 우리 나라의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처럼 수많은 인터넷 탐정을 양산하면서 전국을 뒤흔들더니 사법당국이 약혼자 브라이언 론드리(23)를 용의자로 지목한 뒤부터 관심이 시들해진 듯합니다. 행방이 묘연한 론드리를 추적하는 지금은 언론에 기사 몇 줄 보이지 않습니다.페티토 사건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밴 라이프(Van Life)’에 대한 동경입니다.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차박’의 미국 버전이 ‘밴 라이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차에서 간단하게 생활하는 단기 차박러들이 많지만 미국에서는 차를 개조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여행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들을 ‘밴 라이퍼’라 부릅니다. 밴 라이프용 차량은 차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꾸며져 출시되는 캠핑카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 나라 봉고 스타일의 밴 차종이 개조용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내부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사계절용 차가 필요하므로 단열재와 난방 시스템을 설치하고 통풍기, 태양전지판, 발전기가 필요합니다. 직접 개조할 수 있도록 돕는 DIY용품 업체들도 성업 중입니다. 미국 캠핑 전문사이트에 따르면 개조 비용은 1~2만 달러(1200~2400만원) 수준이 많다고 합니다. 차에서 생활하면서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밴 라이퍼의 일상입니다. 구독자가 많아지면 광고가 붙고 후원기업이 생기면서 수입이 올라갑니다. 밴 라이퍼는 ‘사진 빨’ ‘영상 빨’을 중시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중에서도 특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선호합니다.페티토 역시 인스타와 유튜브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밴 라이퍼였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페티토와 론드리는 지난해 약혼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들은 자유로운 삶을 원했고, 당분간 밴 라이퍼로 살기로 했습니다. 페티토는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파트타임 약제보조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커플은 2012년형 포드 트랜짓 밴을 개조해 7월 초 4개월 일정의 대륙횡단 여행에 나섰습니다. 여행 시작 후 사건이 일어난 8월 말까지 2개월 동안 페티토는 인스타에 19개, 유튜브에 1개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밴 라이퍼 생활을 ‘모험(adventure)’이라고 표현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론드리는 자주 페티토의 게시물에 등장했고,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았습니다. 소셜미디어에 보이는 삶은 자신이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삶입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페티토-론드리 커플의 실제 밴 라이프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갈등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정폭력 신고로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크게 다퉜던 8월 12일 이후에 올린 게시물에서조차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모래밭을 맨발로 걸었다” 등 여행의 낭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난달 1일 론드리가 홀로 플로리다 주 집을 돌아오면서 사건은 표면화됐습니다. 이어 19일 페티토가 와이오밍 주 국립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귀가 후 페티토의 실종 이유에 대해 계속 함구하던 론드리는 14일 산책한다며 가출한 뒤 행방이 묘연합니다. 유명 현상금 사냥꾼까지 합세했지만 2주일 넘게 론드리 추적은 지지부진합니다. 워싱턴포스트 조사에 따르면 페티토 사건 발생 후 일주일 동안 ‘페티토’라는 단어가 폭스뉴스에서 398회, CNN에서 346회 언급됐습니다. 하루 50~60회 꼴입니다. 집중적으로 주목 받은 것은 페티토가 처음은 아닙니다. 몰리 티베츠(2018년), 미셸 파커(2011년), 나탈리 할로웨이(2005년), 로리 해킹(2004년), 레이시 피터슨(2002년), 엘리자베스 스마트(2002년), 찬드라 레비(2001년) 등도 과거 언론을 도배했던 납치, 실종,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은 10~30대 백인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해자가 백인 여성이라도 나이대가 40~50대 이상이면 사회적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가임기 여성이여야 사람들 마음 속에 내재된 종족보존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젊은 백인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해내야 하는 대상입니다. 이를 ‘위험에 처한 아가씨(Maiden in the Peril) 신화’라고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레이아 공주는 다스베이더에게 붙잡히고 루크 스카이워커 일행이 구해냅니다. 하이틴 로맨스 영화인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납치된 버터컵 공주를 구출하는 것은 평민 웨슬리입니다. 심지어 영화 ‘나를 찾아줘’는 이 신화를 한번 비틀어 여주인공이 납치 자작극을 꾸미는 스토리입니다.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된 딸을 구하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테이큰’은 죽어가던 배우 리암 니슨의 커리어까지 살려냈을 정도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제우스의 명을 받고 페르세포네 왕비를 구출하러 출동하는 헤르메스,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려다 실패한 후 오매불망하며 죽어간 오르페우스 등 그리스신화는 젊고 아리따운 여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 신화는 공식처럼 굳어져 이를 통과한 페티토 같은 여성은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됩니다.그웬 아이필이라는 미국의 유명 흑인여성 언론인은 1994년 한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행자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이 많은데 언론이 지나치게 젊은 백인 여성과 관련된 사건 사고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냐”고 묻자, 아이필은 “만약 실종 사건이 일어났고, 그 실종 대상이 젊은 백인 여성이라면 언론은 잠도 자지 않고 줄기차게 보도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맞다”고 끄덕이는 공감의 박수 소리로 행사장은 떠나갈 듯 했습니다. 당시 아이필은 “실종된 백인여성 신드롬(Missing White Woman Syndrome)‘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가 처음 나온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충북 충주에 사는 조연순 씨. 일찍 결혼한 그녀는 38세에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다. 고3뿐 아니라 고1, 중2, 초등5, 7세 등 5명의 자녀를 뒀다. 요즘 최고의 애국자인 ‘다둥이 엄마’다. 자녀 양육만으로도 바쁜 조 씨는 장류 제조 사업도 벌이는 ‘커리어 우먼’이다. 브랜드명은 ‘오색담은’. 품목별로 1호 된장, 2호 막장, 3호 간장, 4호 고추장, 5호 청국장으로 이뤄졌다. 자녀들을 생각하며 이름을 지었다는 그녀는 “독수리 5형제 콘셉트”라고 말했다. 최근 충주시 직동에 있는 조 씨의 일터를 찾았을 때 앞마당에 늘어선 600여 개의 항아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시 사람들은 항아리만 보면 감격을 하더라고요. 차를 멈추고 항아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가고, 직접 장을 맛보고 사 가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엿한 ‘여 사장님’이지만 2003년 결혼했을 때는 평범한 농부의 아내였다. 결혼 후 10년 동안 남편과 함께 5000평의 임대 토지에 과일 농사를 지었지만 수익은 변변치 않았다. 어느 날 복숭아 농사를 짓고 남는 자투리땅에 콩을 심으면서 사업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기른 콩으로 메주를 담그고 그 메주로 된장 간장 등을 제조하는 장류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된장은 주변에서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시어머니 뒤를 따라다니며 받아 적었다. 시어머니가 “눈대중, 손대중으로 해야지”라고 할 때도 조 씨는 철저히 그램 수를 따지고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했다. 젊은 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장 특유의 냄새를 줄이고 염도를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콩을 씻어 발효시키는 메주 만들기 과정, 항아리에 넣어 소금물을 붓고 치대는 된장 담그기 과정 등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표준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전문 서적을 뒤져가며 발효균을 공부했고, 성분검사를 위해 충북농업기술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염도를 조절하고 감칠맛을 내기 위해 여러 식재료를 엄선해 장에 섞어보기도 했습니다. 또 소금물에 육수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신맛이 나거나 너무 묽어 제대로 숙성되지 않았습니다. 버린 된장만 1t 트럭 여러 대 분량이 될 거예요.” 오랜 연구 끝에 항아리에서 2, 3년 숙성되는 제조 기간을 1년 6개월로 단축시킨 된장을 2018년 시장에 선보였다. 이어 표고버섯을 넣은 된장도 탄생시켰다. 현재 특허출원 절차가 진행중인 표고버섯 된장에 대한 조 씨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버섯을 넣어 감칠맛은 유지하면서 염도는 낮출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역농산물인 표고버섯을 사용해 농가끼리 상생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죠.” 요즘 효자 품목은 청국장이다. 제조 기간이 48∼52시간으로 짧고, 일반 장류와 달리 냉장식품이어서 제품 회전율이 빠르다. 지난해 매출액 3억3000만 원 가운데 80%는 청국장이 차지했다. 카카오쇼핑에서 ‘오색담은’ 청국장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이 조 씨의 설명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주요 판매망이다. 영농인들은 수확기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지만 매달 안정된 수입은 기대하기 힘들다. 조 씨도 고정 수입을 가진 직장인이 되는 것이 한때 ‘로망’이었다. 일찍 결혼하느라 중퇴했던 대학을 아쉬워하며 자격증을 따 취직할 생각에 골몰했던 적도 있었다. 안정된 수입에 도움을 준 것이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프로그램이었다. “2019년부터 받고 있는 정착지원금이 고정 수입 역할을 했습니다. 주로 공장 운영비와 식비 등에 지출했습니다.” 매달 받는 지원금 외에 농지대출자금(최대 3억 원 한도)을 융자받아 장류 사업의 기반에 되는 콩 땅콩 들깨 등을 재배하고 있다. 장래 목표는 치유농원 조성이다. 자기 손으로 장도 담그고 숲길도 거닐면서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입니다. 손에 메주를 묻혀 가며 장을 만들다 보면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곧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죠.”글·사진 충주=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무자본, 무기술, 무연고의 ‘3무(無) 세대’로 불리는 청년농업인에게 2018년 시작된 영농정착지원사업은 버팀목이 돼왔다. 신청 자격은 만 18세 이상∼만 40세 미만이며 독립 영농 경력 3년 이하여야 한다. 선발된 청년창업농에게는 최대 3년간 월 최대 100만 원의 영농정착지원금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최대 3억 원 한도의 창업자금 융자 지원,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우대 보증, 농지은행 비축농지 임대 우선 지원, 영농기술 교육 등이 연계 지원된다. 미래 농업의 핵심 분야인 스마트팜, 사회적 농업, 6차산업, 공동 창업(법인 창업) 등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가진 청년농을 우대 선발한다. 2018∼2020년에는 연 1600명씩 선발됐으나 호응도가 높아지면서 올해에는 1800명으로 인원이 늘어나 지금까지 총 6600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선발자의 80% 이상은 남성이며 연령대는 30대가 약 60% 수준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경북, 전북, 전남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선발됐다. 선발자의 절반은 농지은행 비축농지 지원 사업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농정착지원사업의 핵심은 바우처 카드 형태로 지급되는 영농정착지원금이다. 이 카드를 필요한 곳에서 쓰면 된다. 주로 사용하는 곳은 편의점, 슈퍼마켓, 농·축협 직영매장, 대형마트, 식당, 정육점 등으로 나타났다. 식비 관련 결제 건수가 전체 사용 건수의 약 75%에 달한다. 1회 지출이 큰 사용처로는 수리 서비스(650만 원), 농기구 구입(500만 원), 수의업(470만 원) 등이다. 사업 주체인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바우처 카드가 평상시에는 주로 생활비 용도로 쓰이고 있으나 지출 부담이 큰 영농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농정착지원사업에 쏠린 관심은 예산 증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발 인원 누적에 따라 영농정착지원금 예산 규모도 매년 크게 늘었다. 2018년 122억2500만 원에서 2019년 309억 원, 지난해에는 452억9100만 원이었다. 국비와 지방비 집행 비율은 7 대 3 수준이다. 농식품부의 지난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선발자들의 종합적인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83.17점으로 높았다. 매달 지급되는 영농정착지원금 만족도가 85.5점으로 가장 높았다. 만족도뿐 아니라 영농 실적에서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영농 기반 면적은 선정 전 평균 6500m²에서 선정 후 1만3000m²로 2배로 증가했다. 총매출도 평균 2345만 원에서 4034만 원으로 1.7배로 늘어났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청년 농부를 위한 다른 지원 프로그램은 영농교육, 비닐하우스 설치 지원 등에 주력하는 것과 달리 영농정착지원사업은 현금과 다름없는 지원금을 매달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며 “성과가 좋은 사업인 만큼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지난해 5월 미국에서 비무장 상태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목이 눌려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민들이 촬영한 동영상에서 경찰이 과잉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처럼 요즘은 어디를 가도 사건 사고만 나면 스마트 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시민저널리즘’ ‘시민기자’가 거창한 의미를 가졌지만 카메라 폰이 필수품이 된 지금은 누구나 공권력의 횡포를 감시하는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일반 시민이 현장을 포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991년 한인교포들이 큰 피해를 입었던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유발한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동영상은 조지 홀리데이라는 평범한 LA 주민에 의해 촬영됐습니다. 시민저널리즘의 힘을 보여준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는 홀리데이가 최근 향년 61세에 사망했습니다. 30년 전 어떻게 그가 역사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는지 인터뷰 내용 등을 토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31세의 홀리데이는 작은 배관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2주일 전 캠코더를 샀습니다. 1990년대 가전시장을 주름 잡던 소니의 ‘비디오8 핸디캠 CCD-F77’ 제품이었습니다. 딱히 캠코더를 쓸 일이 없던 그는 박스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26세의 로드니 킹은 LA의 흑인 무직자였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한국과 관련이 많았습니다. 1989년 한인 상점을 털다가 주인을 철봉으로 내려쳐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사건 발생 3개월 전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사건 당일인 1991년 3월 3일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신 킹은 현대 엑셀 자동차를 타고 샌 페르난도 밸리의 프리웨이(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과속 단속에 걸렸지만 차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뒤를 쫓는 경찰과 프리웨이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시속 190km의 초고속 추격전이 벌어질 정도로 상황은 살벌해졌고, 경찰 헬기까지 동원됐습니다. 킹은 나중에 “음주운전으로 걸리면 가석방 조건 위반이 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도망가려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도주를 포기한 킹의 차가 프리웨이를 내려와 홀리데이가 살던 아파트 부근 도로에 멈췄습니다. 당시 현장에 도착한 5명의 경찰 중 한 명이 “차에서 내리라”고 명령했지만 킹은 거부했습니다. 킹이 발길질을 해서 경찰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두려워진 킹은 차에서 내렸고, 경찰 여러 명이 달려들어 용의자를 엎드리게 해서 뒤쪽에서 수갑을 채우는 일명 ‘벌떼(swarm)’ 자세로 결박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경찰은 “이 때 킹이 반항하기 시작해 테이저건으로 제압해 곤봉으로 가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킹은 “반항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목격자들도 “반항하는 기미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홀리데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창밖을 보니 경찰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때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저걸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2주일 전 구입한 캠코더를 가져와 집 발코니에서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사용이라 작동에 서툴렀던 그는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9분 동안 흐릿한 상태로 촬영됐습니다. 홀리데이는 촬영 내내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범인은 이미 실신 지경인데, 왜 경찰은 계속 때리는 거지?” 아침이 밝자 홀리데이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촬영한 테이프를 누구한테 전해줘야 하나”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유튜브 등 동영상을 올릴 곳은 넘치겠지만 당시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이틀 동안 고민하다가 경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접수계 말단 직원인지 전화를 받은 사람은 홀리데이가 “경찰이 막 구타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낙심한 그는 평소 자주 시청하는 지역방송 KTLA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기자 역시 “테이프를 한번 가져와봐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테이프를 전달받은 기자는 이를 틀어본 뒤 곧바로 ‘물건’이라고 직감했습니다. 보도국장 주재로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에 대한 회의가 소집됐습니다. 특별취재팀이 꾸려져 ‘경찰 공권력 남용’에 대한 시리즈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당시 미국 TV에서는 연예인 가십이나 흥미 위주의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인사이드 에디션’ 등 선정적인 시사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홀리데이가 테이프를 ‘인사이드 에디션’에 넘겼다면 1회성 소비를 위해 단번에 빵 터뜨리고 말았겠지만 양질의 뉴스 제작 능력을 갖춘 지역방송국이었기 때문에 심층보도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시리즈1회 개시용으로 홀리데이의 9분짜리 테이프가 편집 없이 전파를 탔습니다. 반응은 어마어마했습니다. CNN 등 대형 방송사들의 테이프 복사 요청이 밀려들면서 KTLA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방송국이 됐습니다. 이 시리즈로 그해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바디상(뉴스 부문)도 받았습니다. 지역방송국으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홀리데이는 시민저널리스트의 표본이라는 명성은 얻었지만 재정 수입은 미미했습니다. 촬영 테이프는 자신이 소유한 채로 복제권이나 방영권을 판매했다면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겠지만 KTLA에 테이프를 넘기면서 받은 저작권료 500달러와 기타수입 등을 합쳐 1000달러(117만원)가 전부였습니다. 역사의 한 장면에서 만났던 홀리데이와 킹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한번 우연히 만났습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던 홀리데이에게 누군가 다가와 “헤이, 조지”하며 아는 척을 했습니다. 이어 “내가 누군지 모르지?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줬어”라며 웃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홀리데이는 킹과 악수를 나눴습니다. 홀리데이는 경찰의 구타로 퉁퉁 부은 킹의 얼굴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모습은 몰라봤던 것이죠. 그렇게 둘은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각자 자신의 길로 갔습니다. 사건 후 홀리데이와 다른 인생 경로를 밟은 킹은 LA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이겨 380만 달러(45억원)의 보상금을 받아 갑부가 됐지만 모두 탕진하고 2012년 자신의 집 풀장에서 익사했습니다. 홀리데이는 이후 부인과 이혼하고 생활도 궁핍해져 지난해 자신의 소니 캠코더를 팔려고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22만5000달러(약 2억6000만원)로 책정된 시작가가 너무 높았는지 구매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올해 3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평생 배관공으로 근근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몇 년 더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폐렴합병증이었습니다, 그는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링컨은 없었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식이 열렸습니다. 정부관계자, 학자, 일반 시민 등 수백 명이 몰려들어 철거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군중이 그 자리에 모인 것은 리 장군 동상에 대한 작별 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과 관련된 보물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보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 기회를 놓친 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리 장군 동상에서 링컨 전 대통령과 관련된 보물을 찾는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된지 않습니다. 이들이 보고 싶어 했던 ‘링컨 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역사 마니아들의 관심을 끈 것은 리 장군 동상 밑에 있다고 알려진 타임캡슐이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동상 밑에 가로세로 35cm, 높이 20cm 정도의 사각형 청동 박스가 묻혀 있습니다. 미국에는 남북전쟁 때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연합군의 총사령관 리 장군의 용병술과 인품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부의 웬만한 도시에 가면 어렵지 않게 리 장군의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불기 시작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와 맞물려 그의 동상이 여러 도시에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리치먼드의 리 장군 동상 철거가 화제가 된 것은 이곳이 남부군의 수도였고 그의 고향이 이곳 부근이라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동상이 매우 크고 정교하게 제작됐다는 점도 관심을 끈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미국은 동상을 개인 우상화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크게 짓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 동상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수많은 전쟁 무용담을 남긴 리 장군은 187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곧바로 리 장군 추모위원회가 조직돼 리치먼드에 동상을 건립하는 계획이 진행됐습니다. 설계도가 완성되자 위원회 실무자가 프랑스로 건너가 제작 계약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동상은 맨 위쪽에 리 장군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이 있습니다. 프랑스 조각가 앙토냉 메르시에의 작품입니다.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예술적 열등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마상만 4미터가 넘습니다. 그 아래쪽에 남북 방향으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이 조각된 화강암 받침대가 있습니다. 그 아래쪽에 초석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동상의 총 길이는 18미터에 달합니다. 이 동상을 단순히 “조각상(statue)”이 아니라 “건축물(monument)”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최근에 열린 동상 철거식은 기마상을 받침대에서 분리시키는 행사였습니다. 기마상은 세 등분으로 쪼개져 분쇄될 예정입니다. 동상이 완전체의 형태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90년 5월이었습니다. 당시 12톤 무게의 기마상을 프랑스로부터 배로 실어와 받침대 위에 조립시켰습니다. 받침대와 초석은 그보다 3년 전인 1887년 설치됐습니다. 1887년 10월 27일 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를 보면 받침대 및 초석 헌정식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초석 위에 받침대를 얹고 리 장군의 이름을 새겨 헌정하는 행사였습니다. 당시 매우 큰 인파인 2만 5000여명이 몰렸습니다. 옆 동네인 메릴랜드 주민 450여명이 구경하러 올 정도였습니다. 타임캡슐은 초석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타임캡슐을 묻었습니다. 물론 “타임캡슐”은 현대인들이 만든 용어입니다. 당시에는 “연합군 박스(Confederate box)” “전쟁 박스(war box)” 등으로 불렸습니다. 헌정식에서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리치먼드 타임스를 보면 37명의 개인과 기관으로부터 60점의 물품을 기증 받아 타임캡슐에 넣었습니다. 남북전쟁(1861~65년)을 끝내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던 만큼 전쟁을 추억하는 기념품들이 많았습니다. 군복, 단추, 총알, 전쟁지도 등이었습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물건들도 있었습니다. 조개껍질을 넣은 사람도 있고,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으로 유명한 삭스 앤 컴퍼니는 자사의 광고전단을 기증했습니다. 가장 독특한 물건을 넣은 사람은 패티 캘리스 리크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링컨이 관에 누워있는 사진(picture of Lincoln lying in his coffin)”을 기증했습니다. 남군의 영웅 리 장군을 기리는 타임캡슐에 북군을 지지했던 대통령의 시신 사진을 넣은 것이라 눈길이 안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물건들에 대해서는 형태나 넣은 이유 등의 설명이 있는 반면 이 기증품은 한 줄의 문구 외에는 아무런 기록도 없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든 사진의 가치는 매우 큽니다. 링컨 시신 사진은 단 한 점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링컨 시신 사진은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의 링컨기념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경매 전문가들은 두 번째 링컨 시신 사진이라면 30만 달러(3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링컨 보물”이라고 불릴 만 하죠. 링컨 전 대통령은 1865년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남군 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라는 배우에 의해 암살됐습니다. 제16대 대통령이었던 그는 암살된 최초의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가 암살되자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정치적 고향인 스프링필드에 묻히기 전에 3주 동안 국민들이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주요 도시들을 도는 순회 투어가 마련됐습니다. 1865년 4월 24일 링컨 시신이 뉴욕 시청 중앙홀에 도착했습니다. 12만 명의 조문객이 몰렸습니다. 조문객을 받기 전 사진사가 관 속의 링컨 시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사진입니다. 당시는 방부처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회 투어 중인 링컨의 시신은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부인인 메리 토드 여사는 온전치 못한 남편의 시신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뉴욕 시청에서 찍은 시신 사진도 없애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메리 토드 여사의 부탁을 받은 에드윈 스탠턴 전쟁장관은 단 한 장 있는 대통령의 시신 사진을 차마 없앨 수 없었습니다. 사진은 스탠턴의 아들 앞으로 남겨졌고,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여러 서류더미 속에 섞인 채로 링컨기념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가 1952년 어느 날 아이오와에서 기념관에 구경 온 14세 소년이 먼지 쌓인 서류철 속에서 링컨 시신 사진을 찾아내게 됩니다. 로널드 리트벨드라는 아이오와 촌뜨기 소년이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사연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는 스토리입니다.두 번째 링컨 시신 사진이 100년 넘게 간직돼온 타임캡슐 속에서 발견된다면 첫 번째 사진 못지않은 극적인 사연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빨리 사진을 보고 싶어서 리 장군 동상을 허물고 타임캡슐을 캐낼 날만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설사 그림이라고 해도 그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리 장군 동상 철거 당일 제임스타운발굴위원회는 12시간 동안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초석 부근에 구멍을 내고 내부를 조사했습니다. 동상 철거보다 타임캡슐 찾기가 이날의 ‘핫 이벤트’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위원회는 “있어야 할 곳에 없어서 놀랐다”며 “단지 과거에 대한 로맨틱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역사와 과학, 고고학적 자료들을 동원해 타임캡슐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실망감을 전했습니다. 이어 “미스터리는 해결되지 못했지만 할 수 없다. 역사는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타임캡슐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동상의 구조상 도굴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1887년 헌정식 때 마지막 순간에 묻기를 포기한 것일까요. 애초에 링컨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높았던 리치먼드에 사는 여성은 왜 그의 시신 사진을 타임캡슐에 넣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또 그녀가 넣은 것은 정말로 링컨 시신 사진이었을까요. 역사는 쉽고 간단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비밀을 간직한 채로 흘러갑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오리온 ‘꿀버터 오!구마’가 출시 6주 만에 누적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했다. 신제품인데도 1분에 16개꼴로 팔릴 정도로 인기다. 지금까지 매출액이 12억 원에 이른다. 오!구마는 요즘 대중적인 요리로 자리 잡은 ‘허니버터고구마’를 스낵으로 구현하여 젊은층이 좋아하는 달콤한 간식으로 만든 것이 주효했다. 주원료 고구마에 바삭한 식감을 살려주는 감자를 더한 두 가지 원재료 조합과 꿀 시럽 코팅으로 스낵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식감을 강화한 것도 인기 요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고구마맛탕의 바삭한 버전” “고구마 덕후들의 최애 과자” “맛이 없을 수 없는 맛” 등의 후기가 확산되고 있다. 7월에 첫선을 보인 오!구마는 오리온의 대표 장수제품인 ‘오!감자’의 자매품으로 맛뿐만 아니라 식감과 소리까지 맛있게 구현했다. 달콤한 고구마에 바삭한 식감의 감자를 더해 차별화된 식감과 맛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특유의 긴 스틱형 과자 겉면을 버터와 꿀, 군고구마로 만든 시럽으로 코팅해 달콤 고소하면서도 입안에서 ‘빠삭’ 씹히는 경쾌한 식감을 극대화했다. 오리온은 최근 ‘허니버터고구마’가 젊은층들이 특히 선호하는 대중적인 고구마 요리로 자리 잡은 것에 착안해 수십 가지의 레시피를 연구한 끝에 오!구마를 출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리온은 국내 인기를 바탕으로 8월 중 중국에서도 오!구마를 선보일 계획이다. 오!감자(현지명 ‘야투도우’) 제품이 지난해 중국에서 224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신제품 오!구마에 대한 관심도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꿀버터 오!구마가 재택 등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젊은층에게 달콤한 ‘집콕 간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감자와 옥수수를 조합한 ‘고추칩’, 고구마와 감자를 조합한 ‘오!구마’ 등 두 가지 이상의 원재료를 조합한 스낵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 “질, 왜? 무슨 일인데?”(조 바이든 대통령) “지금 비행기 또 한 대가…, 다른 쪽 건물을….”(질 여사)30~4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2001년 9·11 테러 순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만큼 충격파는 컸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9·11 테러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행적이 관심입니다. 비상 상황에서 국가 리더급 인사들의 행동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 삶과 정치에 대해(Promise to Keep: On Life and Politics)’에 당시 상황이 나와 있습니다. 20년 전 바이든 대통령은 환갑을 바라보는 59세의 실세 상원의원으로 상원 외교위원회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9월 11일 화요일 아침 델라웨어 자택에서 워싱턴으로 기차로 출근하던 중이었습니다. 부인과의 통화에서 뉴욕 트레이드센터 쌍둥이빌딩 폭파 소식을 듣게 됩니다. 워싱턴 중앙역인 유니언 역에 도착하자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워싱턴 도심에서 멀지 않은 펜타곤(국방부 청사)이 공격을 받은 겁니다.테러 목표 건물이 많은 워싱턴에서는 모두 탈출하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하늘에서 헬기들이 쉴 새 없이 오갔습니다. 바이든 의원은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 국회의사당 쪽으로 갔습니다. 딸 애쉴리가 “제발 워싱턴을 떠나라”고 전화로 호소했지만 바이든 당시 의원은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목표물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며 안심시켰습니다. 당시 의회는 회기 중이었습니다. 상원 건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로부터 제지를 당했습니다. 바이든 의원의 입에서 “빌어먹을!”이라는 욕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존 워너 공화당 상원의원(현재 작고)이 보였습니다. 당적도 다른 두 의원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의회를 속개할 수 있을지, 누가 속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논했습니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의회 개원 여부를 따진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의사당이 다음 목표물이라는 얘기도 떠돌았습니다. 그래도 바이든 의원은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나라가 평상시처럼 돌아가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당시 의사당 앞에서 대피 상황을 취재 중이던 ABC방송 여기자의 눈에 바이든 의원이 들어왔습니다. 바이든 의원은 즉석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당시 현장 클립을 보면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테러의 충격으로 떨리는 목소리의 바이든 의원이 “차분하고 침착하고 냉정해지자(Cool and Calm and Collected)”고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이든 의원은 “이 나라는 너무 거대하고 강하고 결속됐으며,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분열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를 인터뷰했던 ABC 여기자는 나중에 CNN과의 인터뷰에서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정치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을 타고 미 중부에 있는 모종의 대피 장소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은 백악관 지하 벙커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바이든 의원은 행방이 묘연한 국가 지도자를 비난하기보다 힘을 실어줬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앞으로 사태 수습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던 온전히 지지할 것이다.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있을 수 없다. 단결된 국민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죠. 바이든 의원이 인터뷰 후 델라웨어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바이든 의원은 그제야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대통령님, 빨리 백악관으로 돌아오십시오”라고 말이죠. “국민은 지하 벙커에 숨어있는 리더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통화 후 부시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의 방향을 돌려 워싱턴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바꾼 것이 전적으로 바이든 의원의 충고 덕분은 아니었겠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20년 전 각본도 없이 방송마이크 앞에 섰던 바이든 의원의 떨리는 목소리 한마디 한마디는 최근 9·11 테러 추모식에서 세심하게 포장된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보다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가집니다. 연설력이 뛰어나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의 최고 연설은 “9·11테러 당시 즉석 인터뷰였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자서전에서 밝힌 에피소드이니 어느 정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있었겠지만 의미 있는 9·11 테러 당시 행적인 것만은 확실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언론의 자유? 그 질문은 페이스북한테 해라.”지난달 17일 아프가니스탄 점령 후 탈레반 고위급 인사가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에 등장한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아우라를 내뿜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몇 주 만에 아프간 전역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 탈레반답게 기세등등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과거와 같은 ‘무자비한 탈레반’이 아닌 국제 질서를 지키는 ‘우호적인 탈레반’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이슬람율법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건부 변화’라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그는 느닷없이 페이스북을 언급했습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지만 이슬람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그 질문은 페이스북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탈레반 계정을 차단한 페이스북이 언론의 자유를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비난한 것이죠. 이슬람 무장조직의 리더급 인사 입에서 페이스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fp 튀어나올 정도로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정보기술(IT)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입니다. 아프간 정보통신 부처의 통계에 따르면 인구 3200만 명 중 30%에 가까운 1000만 명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휴대전화 보급률은 70%(2300만 명)를 넘습니다. 1994년 탄생한 탈레반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처음 아프간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만 해도 IT 기술을 배척했습니다. “이슬람 정신에 어긋난다”면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금지했습니다. 탈레반이 첨단 기술을 적극 받아들인 것은 2001년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권력에서 쫓겨난 뒤였습니다. 인터넷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고, 나중에 보급된 소셜미디어도 활용했습니다. 그동안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소셜미디어는 탈레반이 자사 플랫폼을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1999년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제정된 경제 제재 행정명령에 따라 탈레반 소유의 공식계정은 차단시켰습니다. 하지만 친탈레반 세력들이 올리는 콘텐츠까지 일일이 추적해 금지시키지는 않았습니다.지난달 탈레반이 대공세를 취하면서 아프간 점령이 임박하자 소셜미디어 매체들은 대응책 마련에 바빠졌습니다. 페이스북은 강력하게 탈레반 금지 정책을 몰아붙이는 쪽입니다. 페이스북은 “탈레반은 규정상 위험단체로 분류되기 때문에 서비스가 금지된다”고 거듭 확인했습니다.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도 마찬가지입니다. 탈레반 구성원들 간의 연락망으로 종종 사용된다는 의혹을 받아온 메신저 앱인 왓츠앱은 탈레반 관련 계정들을 막았습니다. 유튜브도 “우리는 탈레반 차단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트위터는 탈레반 공식계정은 차단시켰지만 탈레반 소속 인사들의 개인 계정은 막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페이스북을 비난했던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트위터 상에서 3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탈레반과 소셜미디어의 관계는 아직 혼란스럽습니다. 우호적 이미지 구축이 시급한 탈레반에게 소셜미디어는 선전도구로 유용하지만 탈레반의 집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외부에 정보를 알리는 도구로도 활용됩니다. 아프간 소셜미디어에서는 카불 시내의 시위나 탈레반이 인권을 억압하는 실태를 보여주는 인플루언서들의 동영상이 자주 올라옵니다. 아직 탈레반은 시민들의 소셜미디어 접근을 허용하지만 소셜미디어의 존재 자체를 막아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탈레반과 소셜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위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셜미디어는 탈레반이 과거 인터넷을 막았던 것처럼 자사 플랫폼들도 금지시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탈레반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안전에도 비중을 둬야 합니다. 최근 소셜미디어는 아프간 사용자들에 대해 프로필의 비공개 전환이나 과거에 올렸던 내용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레반이 미국 편에 섰던 아프간 조력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정보 흐름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은 프로필 공개를 막는 윈클릭 잠금 기능을 추가하고 인스타그램에 대해서는 계정 보호를 위한 팝업 알림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트위터도 과거 트윗 지우기와 일시적 계정 접근 중지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링크트인은 “프로필 차단과 연락망 공개 제한 등 일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조만간 탈레반은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에게 “아프간에서 계속 운영하려면 차단시켰던 공식 계정을 해제해라”는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셜미디어로서는 탈레반이 테러조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권이 된 이상 계속 계정을 막아둘 명분은 없습니다. 아직 소셜미디어들은 탈레반 계정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탈레반 계정 인정은 단순히 소셜미디어 차원이 아닌 국제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 유엔이 탈레반의 정당성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소셜미디어의 입장도 달라질 것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기자에게 데드라인(마감시간)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데드라인은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철저히 받습니다. 기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인이라면 데드라인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데드라인’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때입니다. 조지아 주 앤더슨빌 전쟁터에서 북군들을 포로로 잡아 감옥에 넣었던 남군은 탈출을 막기 위해 감옥 장벽 안쪽으로 길고 깊은 웅덩이를 파놓았습니다. 탈옥하는 병사들이 벽에 도달하지 못하고 웅덩이에 처박혀 죽도록 말이죠. 데드라인은 이렇게 ‘죽는 선’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 죽을 듯한 각오로 데드라인을 지키려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설정한 아프가니스탄 철군 데드라인은 8월 31일.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미국의 허를 찌르는 탈레반의 신속한 아프간 점령에서부터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IS-K)의 카불공항 자폭 테러와 미국의 보복 공격까지 이 데드라인을 지키는 과정에서 혼란에 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데드라인은 꼭 지킨다”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마이 웨이’를 고수합니다. 취임 후 8개월 동안 통치 스타일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데드라인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데드라인 대통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데드라인을 딱 못박아놓고 “이 때까지 성과를 내겠다”며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띕니다. 데드라인 설정은 바이든 대통령 같은 임기 초 리더들에게 유용한 전략입니다. 정책 담당자들의 사기를 고취하고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하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최근 2개월 동안 바이든 대통령에게 2개의 중요한 데드라인이 걸려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7월 4일 독립기념일까지 전 국민의 70% 1회 이상 백신 접종’ 목표였습니다.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펼쳤지만 이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두 번째 데드라인인 8월말 아프간 철군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앞선 접종 데드라인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주목을 받았던 ‘트윈 데드라인’이 실패 내지는 혼란 양상을 보이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연타석 홈런을 맞은 투수 꼴”이라고 비유하는 언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데드라인 성공률이 바닥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취임 초에 설정했던 다른 데드라인들은 술술 잘 풀렸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 달성 능력을 과신하고 방심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당선인 시절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100일까지 1억 회 백신 접종”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이 목표를 취임 후 60일도 안 돼 조기 달성한 뒤 “취임 후 100일까지 2억 회 접종”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 목표도 취임 후 92일이 지난 시점에 거뜬하게 달성했습니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자축 팡파르 분위기였죠. 하지만 이 때부터 벌써 ‘데드라인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접종률 조기 달성을 데드라인을 설정한 덕분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죠. 팬데믹 초기에 너도나도 백신을 원하는 상황에서 정해진 기한 내에 접종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데드라인을 대국민 캠페인에 이용하는 전시용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데드라인 이론은 마케팅 분야에서 자주 쓰입니다. 데드라인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 돌발변수 예측과 360도 시나리오 수립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철군 데드라인 전략은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탈레반의 군사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허술한 정보수집망, 수송기 탈출 과정에서 보여준 출구전략 부재, 문제의 핵심을 외적 요인으로 돌리는 정책 담당자들의 이기주의 등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데드라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모아집니다. 데드라인은 동기 부여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기한 내 목표 달성이 지상 과제가 되면 균형적인 판단력을 잃고 과도한 속도전에 매몰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데드라인 설정은 정치인 바이든의 오랜 습관입니다. 36년간 상원의원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일하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목표일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반대파와 막후 협상을 벌이는 일에 워낙 능숙해 “스무드 오퍼레이터”로 불립니다. 데드라인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협상 타결에 촉진제가 된 사례도 많았습니다. 데드라인 홍보는 유권자들에게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다른 자리입니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기한을 못 박으면 정책의 완성도와 실행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거래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데드라인을 설정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도 “언제 어느 선까지 완료 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사업적 본능을 가지고 있던 그는 데드라인 정치의 홍보 효과와 정치적 부담을 저울질한 뒤 어느 쪽이 유리한지 판단을 내린 것이죠. 아프간 철군에 대한 지지 여론은 높지만 성급한 철군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데드라인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아직도 의원인줄 착각하는 듯 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 민주당 전략가는 말합니다. “원래 정치인은 데드라인을 지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바이든 대통령은 데드라인에 의해 지배되는 형국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SPC그룹의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16일 프랑스 파리에 ‘생미셸점’을 열었다. 이번 매장에선 파리바게뜨 특유의 ‘베이커리 카페’ 콘셉트를 야외 테라스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파리 유명 호텔 출신 파티시에와 프랑스 요리학교 르코르동블뢰 교수 출신의 셰프 등 현지 전문 인력을 강화했다. 앞서 파리바게뜨는 4일 싱가포르 유명 쇼핑몰 ‘파야 레바르 쿼터(PLQ)몰’에 신규 점포(사진)를 개점했다. ‘PLQ몰점’은 예상 매출의 3배에 달하는 실적을 거두는 등 현지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싱가포르에서 연말까지 추가 신규 점포를 열 계획이다. 이 밖에 상반기 캄보디아 프놈펜에 현지 파트너사 HSC그룹과 함께 파리바게뜨 캄보디아 1호점을 열었다. 파리바게뜨는 2004년 9월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미국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등에 진출해 현재 430여 개 해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미국과 중국에서 해외 가맹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잠시 숨 고르기를 했지만 올해는 글로벌 사업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hy(옛 한국야쿠르트)가 3월 사명 변경 후 물류 사업, 프로바이오틱스 B2B, 금융사 제휴 서비스 등 다양한 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hy는 7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전략적 물류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배송망을 갖추고 있다. 1만1000명의 ‘프레시 매니저(FM)’는 전국 단위 물류 네트워크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hy의 통합 물류 체계 구축을 위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지원한다.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FM과 IT 플랫폼이 연동된 근거리 ‘퀵커머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hy는 8월 신한라이프와 ‘고객 기반 확대를 위한 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정기구독 서비스와 보험을 결합한 제휴 상품을 선보인다. hy의 인기 제품 ‘헬리코박터프로젝트 윌’과 ‘장케어프로젝트 MPRO3’를 정기 배송으로 신청하는 고객에게 위, 장 건강 보장 혜택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오프라인 조직인 ‘hy FM’과 ‘신한라이프 FC’를 결합한 사업모델 발굴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김병진 hy 대표이사는 “기존 사업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신한라이프와 제휴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미스터 메뚜기입니다.” 경기 광주시에서 메뚜기 농장을 경영하는 복현수 씨(38)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농장 2곳 6000m²(약 1800평)에서 벼메뚜기 10만 마리와 풀무치 10만 마리를 키운다. 하루 종일 메뚜기에게 둘러싸여 사는 그의 꿈은 ‘메뚜기 월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육 규모를 현재 벼메뚜기 10만 마리를 포함해 20만 마리를 200만 마리로 늘리고 종류도 6, 7종에서 최대 20종까지 늘릴 계획이다. 곤충 사육은 농업계의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식용 사료용 학습용 애완용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국내 곤충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으로 2650억 원에 이른다(서울대 자료). 2030년에는 2.5배 늘어난 6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메뚜기는 ‘해충’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복 씨는 “알고 보면 이로운 곤충”이라고 말한다. 그가 메뚜기에 주목한 것은 높은 영양 성분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식용곤충으로 허가받은 9종의 곤충 중에서 메뚜기의 단백질 함량이 가장 높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내 곤충 사육 농가는 2000여 곳에 달한다. 이 중에서 메뚜기 사육 농가는 20여 곳도 안 된다. 시장잠재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메뚜기 농가가 적은 것은 온도 습도 햇볕 등 사육 조건을 맞추기가 까다로운 곤충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7일 복 씨의 농장을 찾았을 때 그는 고민에 싸여 있었다. 최근 폭염으로 메뚜기가 더위를 먹어 떼죽음을 당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메뚜기 사육 6년 차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메뚜기는 부화해서 성충이 되기까지 2개월 반 정도 걸리죠. 이 기간 동안 그 어떤 복병을 만나 사육에 차질을 빚을지 모릅니다. 최적의 사육 조건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복 씨는 사료회사와 양돈회사에서 7년여를 근무한 샐러리맨 출신이다. 어느 날 “곤충은 미래 식량”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접한 것이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꿔 놓았다. 고민 끝에 농장을 임대차해 도전하기로 했다. “2년 반 동안 직장생활과 메뚜기 농장을 병행했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메뚜기 농장으로 이동해 먹이를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퇴근길에도 농장에 먼저 들러 먹이를 주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2018년 6월 아예 퇴사를 하고 전업농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벼메뚜기 위주로 사육했다. 식용으로 건조시켜 온라인 스토어를 개설해 판매했다. 여름 곤충인 벼메뚜기 특성상 겨울에는 사육이 어렵다. 그런데 고객 주문은 꾸준히 밀려들었다. 그래서 메뚜기와 비슷한 풀무치로 영역을 확대했다. 자연 햇볕이 중요한 메뚜기와 달리 풀무치는 인공조명으로도 사육이 가능하다. “풀무치를 시험 사육해 인터넷에 500마리 한정으로 올렸더니 순식간에 매진됐습니다. 인공조명 시설을 갖춘 풀무치용 두 번째 농장을 마련했죠. 이들 곤충의 먹이로 쓰이는 옥수수, 피 등의 사료도 농장에서 직접 키워 경영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급성장하는 시장은 희귀 반려동물 먹이용이다. 도마뱀, 타란툴라 등을 키우는 애호가들이 늘면서 이들 동물의 먹이로 메뚜기 풀무치 등이 각광받는다. 복 씨는 “식용은 배설물을 배출한 뒤 건조해 판매하는 반면 먹이용은 사육망 박스에 산 채로 넣어 배송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자녀 체험 학습용이나 취미용으로 곤충을 사육하는 가정이 늘면서 먹이를 함께 넣은 2만 원 상당의 메뚜기 사육통 세트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장마로 사육에 고전했지만 메뚜기 판매로 50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올가을에는 현재 임차 형태에서 벗어나 경기 이천시에 농장 부지를 구입해 이전할 계획이다. 토지 구매 자금은 2019년부터 혜택을 받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사업의 창업자금 융자(최대 3억 원 한도)로 충당했다. 이 사업의 또 다른 혜택인 월 최대 100만 원의 정착지원금은 농장 운영과 생활비로 절반씩 쓰고 있다. 메뚜기 사업 초기에 막노동과 간판 그리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생활이 힘들었을 때 정착지원금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저의 3대 목표인 사육 대량화, 안정화, 연중 사육에 근접해 가는 과정입니다. 오늘도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메뚜기처럼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도전할 겁니다.”광주=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백신을 맞고 나면 기뻐야 정상인데 말이죠.” 미국 워싱턴 주에 사는 제임스 씨(54)는 4월 코로나19 백신을 맞았을 때 기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백신을 맞는 것은 지극히 옳은 선택인데 왜 우울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제임스 씨는 아내 몰래 백신을 맞았습니다. 아내 알리나 씨는 ‘안티 백서(anti-vaxxer)’라고 불리는 백신 접종 거부자. 아내는 자신의 접종 거부는 물론 남편에게도 “백신을 맞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아내로부터 “만약 나 몰래 백신을 맞으면 이혼”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임스 씨는 “백산을 맞은 뒤 ‘아, 이제 나는 이혼이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씨처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둘러싼 부부 갈등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부부 중 어느 한 명이 열렬한 백신 거부자일 경우 접종 여부가 가정불화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허핑턴포스트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는 부부 5쌍의 사연을 조명했습니다. 5쌍 부부 중 3쌍이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백신 거부론이 강한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와 사정이 많이 다르죠. 오랫동안 미국의 백신 거부론이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음모론에 뿌리를 둔 거부론이 급속히 파고들었습니다. 뉴스맥스, OAN 등 극우 언론매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백신 거부 논리들은 의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음모론적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국제 비영리 정보분석 기구 ‘퍼스트 드래프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음모론과 안전성 문제는 이제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백신 거부 논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알리나 씨가 접종 거부자가 된 것은 2016년 우연히 ‘백스트(Vaxxed)’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뒤부터였습니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다큐입니다. 이후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각종 백신 정보를 익힌 알리나 씨는 백신 음모론으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는 “백신은 세계 질서를 뒤엎기 위한 사악한 계략”이라는 주장이 담긴 수백 건의 비디오와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제임스 씨는 밤을 새워가며 반박 자료를 만들어 아내에게 보여줬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자 알리나 씨는 산 속에 통나무집을 빌려 접종 거부자 모임을 열고 “종말에 대비한다”며 채소밭을 가꾸고 닭을 키웠습니다. 접종 며칠 뒤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한 제임스 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당신의 근거 없는 백신 논리 때문에 우리 결혼 생활이 끝장 나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나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을 수도 있다”도 답했습니다. 제임스 씨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수많은 부부들을 인터뷰한 허핑턴포스트 기자는 제임스 씨 부부가 결코 놀랍거나 드문 사례가 아니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임스 씨가 최종적으로 백신 접종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경우 이혼 위협을 받는 배우자는 “내가 이혼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신을 맞아야 하나”는 생각에 접종을 포기한다는 것이죠, 40대 중반 캐리 씨의 경우는 남편이 접종 거부자입니다. 남편 앤서니 씨는 2월 무증상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2주 격리 기간 동안 “왜 나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가”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찾던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당국의 사망자 집계는 조작된 것이다” 등의 정보를 믿게 됐습니다. 캐리 씨에게 “백신을 맞으면 2년 내에 사망한다”고 주장을 펴기 시작한 그는 아내가 자기 몰래 접종을 완료하자 “당신은 곧 죽게 됐다”며 통곡을 했습니다. 또 “만약 8살짜리 딸도 접종시킬 경우 이혼 도장을 찍으라”는 서면 통보장을 아내에게 보내왔다고 합니다. 더 심한 경우는 부모와 자식 간 갈등입니다. 부모가 접종을 반대할 경우 자식은 부모와 대립해야 합니다. 미국의 접종 거부자들은 40~60대 중장년층 공화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삶의 가르침을 줬던 부모와 가장 기초적인 의학 상식을 두고 싸우는 것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고 합니다. 백신 접종을 둘러싼 부모 자식간 갈등 사례들도 분석한 허핑턴포스트는 “절연(絶緣)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합니다. 아만다 씨(26)의 사례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백신에 위치 추적 마이크로칩 물질이 내장돼 있다고 믿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죠. 어머니는 딸은 물론 암 투병 중인 남편(아만다 씨 아버지)의 접종마저 막고 있습니다. 눈물로 설득도 해보고 소리를 질러가며 싸움도 해봤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무력감을 느낀 아만다 씨는 어머니를 더 이상 찾지 않고 관계를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열렬한 백신 접종 거부자가 있는 가정의 구성원들은 대응 매뉴얼이 없는 점을 가장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는 접종 거부자들의 신념을 고취시키는 거짓 정보는 난무하지만 접촉 빈도가 높은 가족 구성원들이 이들을 어떻게 설득시켜 접종 대열로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접종 문제로 갈등을 겪는 가정을 위한 지원 상담 네트워크도 갖춰져 있지 못합니다. 8월 중순 현재 1회 이상 접종 60%, 2회 접종 완료 51%(미질병예방센터 통계) 수준에서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는 미국의 접종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가족 설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설득 과정을 ‘재교육(deprogram)’ 또는 ‘온건화(deradicalization)’라고 부릅니다. 미국 백신 거부자들의 그릇된 신념을 깨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줍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카불 미대사관은 지금 당장 철수합니까?”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진격할 줄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영영 잃은 겁니까?”12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아프간 수도 카불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간 날입니다. 그러나 “다음 일정이 있다”며 질문을 받지 않고 급히 마스크를 쓰고 외출 준비를 하는 대통령. 그가 향한 곳은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당초 이날 연설의 주제는 제약사들의 약값 인하였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아프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한가한 주제였지만 기자들은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연설이 끝나면 아프간에 대한 질문을 하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기다린 보람도 없이 대통령이 준비해온 약값 원고만 읽고 자리를 뜨자 기자들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또 윌밍턴?”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전쟁을 벌여온 아프간이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은 탈레반에 의해 점령되는 위기에 처했는데도 백악관에서 상황을 주시하기보다 고향 집을 찾은 대통령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윌밍턴에 꿀을 발라놨는지 시간만 나면 그곳을 향합니다. 이날도 윌밍턴에서 백악관으로 컴백한지 이틀 만에 기자회견 후 또다시 윌밍턴에 갔습니다. 기자들은 물론 백악관 직원들까지 자주 집을 비우는 대통령을 두고 수군거립니다. 백악관 조리사들은 취임 후 8개월이 지났지만 거의 ‘집밥’을 먹지 않는 대통령의 식성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CNN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월 취임 후 8월 둘째 주까지 29차례의 주말 중 65%에 해당하는 19번을 윌밍턴에서 보냈습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윌밍턴에 가서 월요일에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대부분입니다. 윌밍턴에서 지낸 날짜 수가 백악관에서 보낸 날보다 많습니다. 취임 후 지금 시점까지 백악관을 비운 날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습니다. 2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타운홀 미팅에서 백악관 생활을 ‘도금새장(gilded cage)’에 비유했습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갇혀있는 기분이라는 겁니다. 취임 1개월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답답함을 토로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8년간 부통령을 지내면서 수없이 드나들었으니 백악관 생활에 꽤 익숙할 텐데 말이죠.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을 잘 모른다”고 합니다. 부통령 시절 방문했을 때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의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내부를 돌아다닌 적도 없고 백악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백악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성격을 두고 부통령 시절 몸에 밴 ‘보스 존중 신드롬’이라고 분석합니다. “백악관은 보스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침범할 수 없다”는 심리가 확고하다는 것이죠. 반면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권력 2인자 자리를 거치지 않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오히려 적응이 빨랐다는 것이죠. 대통령의 개인사로 설명하려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1972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첫 번째 부인과 딸이 윌밍턴 교회 뒤뜰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도 이 교회에서 주말 예배를 보고 묘지를 찾습니다. 당시 엄마를 잃은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상원의원이던 그는 워싱턴에서 살기보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윌밍턴까지 매일 열차로 오가는 고된 일정을 택했습니다. 열차와 쌓은 인연 덕분에 ‘암트랙(전미여객철도공사) 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죠. 대통령이 된 지금은 열차로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용 헬기 머린원이나 전용 비행기 에어포스원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한번 움직일 때마다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수십 명의 수행 인력을 대동하기 때문입니다. 잦은 고향 출타로 인한 연료비와 경호비용 등은 모두 국민 세금에서 충당된다는 점이 공화당에게 좋은 공격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향을 자주 찾은 것은 바이든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좋게 말하면 “정국 구상,” 실상은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자주 고향에 갔습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 목장을 즐겨 찾았습니다. 고향은 아니지만 재임 중 매사추세츠 마서스비니어드 섬을 즐겨 찾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이곳에 집까지 장만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빈번한 윌밍턴행(行)도 마찬가지로 격무에 시달리는 일정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한번은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기자가 “대통령은 왜 그렇게 델라웨어에 자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젠 사키 대변인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그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를 향해) 당신도 집에 가고 싶죠? 대통령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은 인간이니까요.” 바이든 대통령이 윌밍턴에 가서 하는 일을 보면 확실히 인간적입니다. 윌밍턴 지역에 집 뿐만 아니라 별장도 갖고 있는 그는 부인 질 여사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장면이 자주 카메라에 잡힙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목욕가운 차림으로 부엌 식탁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때”라고 합니다. 1996년 지어진 윌밍턴 자택은 바이든 대통령이 문손잡이 디자인까지 직접 결정했을 정도로 애착이 큽니다. 자식에 손자까지 모두 이 집에 모여 일요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바이든가(家) 전통이라고 하죠. 그러나 마러라고 리조트나 뉴저지 골프장을 자주 찾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빈번한 ‘워싱턴 공백’을 대선 유세 때 문제 삼았던 바이든 대통령이 비슷한 전철을 밟는다면 비난을 피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제2의 백악관’이라고 불리는 윌밍턴 자택의 출입객 명부를 공개하기를 거부하면서 정보 투명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카불 함락에 빗대 “제2의 사이공 모먼트(미국의 치욕적인 베트남 철수작전)”라는 소문이 파다한데 윌밍턴에서 아무리 “아무 문제없다”고 얘기한들 믿을 사람은 없겠죠. 위기 상황일수록 컨트롤센터에서 진두지휘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형, 이런 면봉이었어? 아니면 이만한 면봉? 이것도 아니면 이만한 사이즈?” 동생은 점점 더 큰 면봉을 보여줍니다. 나중에는 성인 머리 사이즈만한 초대형 면봉을 가지고 나옵니다. 동생의 장난에 형도 척척 장단을 맞춥니다. “동생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는 전혀 힘들지 않아. 작은 면봉을 콧속에 찔러 넣기만 하면 돼. 나처럼 콧구멍이 작은 사람도 문제없더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쿨한 녀석(cool dude)이잖아.”지난해 5월 CNN 앵커 크리스 쿠오모(50)가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 ‘쿠오모 프라임타임’에 형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64)가 출연했습니다, 당시 뉴욕의 코로나19 검사율을 높이기 위해 쿠오모 주지사가 솔선수범해 콧속에 면봉을 밀어 넣는 항체검사를 한 것을 두고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이렇게 형제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인터뷰가 이뤄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터뷰 분위기도 지나치리만큼 자유분방해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뉴스 인터뷰라기보다 개그 코너에 가깝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일명 ‘쿠오모 형제의 코미디 아워(시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두고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를 코미디 소재로 삼을 수 있느냐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유명 앵커 동생이 정치인 형을 출연시켜 업적 홍보 기회를 준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동생 쿠오모 앵커가 발끈하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지금 미국은 위로와 웃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재미있게 꾸몄다”고 했습니다. 쿠오모 형제의 인기에 워낙 높아 비판론은 흐지부지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1년 3개월 후 뉴욕 검찰의 수사 결과 쿠오모 주지사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쿠오모 형제의 인기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사퇴를 촉구합니다. 동생 쿠오모 앵커의 신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녁 9시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쿠오모 프라임타임’ 앵커 직에서 물러나라는 요구가 빗발칩니다. 그의 고용주인 CNN도 비판을 면치 못하는 상항입니다.일각에서 쿠오모 앵커에 대한 동정론도 나옵니다. “연좌제도 아닌데 형의 잘못에 동생까지 연대책임을 지고 사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쿠오모 앵커가 형의 성추행 대책 모의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동정론은 설 곳이 없어졌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조차 의심받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쿠오모 앵커는 성추행 의혹 무마 대책회의에 수차례 참가하고 언론 발표문도 직접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쿠오모 앵커가 썼다는 발표문은 ”나(쿠오모 주지사)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장난 치고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즐긴다. 나의 의도는 분위기를 돋우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행동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언론감시단체인 포인터 인스티튜트는 ”형의 행동 때문에 쿠오모 앵커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행동 때문에 탓하는 것이다“고 비판했습니다. 쿠오모 앵커가 앞으로 공인들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할 때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MSNBC의 유명 칼럼니스트는 ”언론인이 정치인에게 조언을 해주고 발표문을 작성해준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라며 ”쿠오모 앵커는 앞으로 정치 분야 취재를 금지시키거나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쏟아지는 비난에 쿠오모 앵커는 침묵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형의 성추행 사건 조사 결과는 핫뉴스이므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쿠오모 프라임타임‘에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습니다. 관련 뉴스가 실종되면서 프로그램 연결 때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앞뒤 시간대 앵커들이 서로 교대할 때 온에어(방송 중) 상황에서 농담이나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쿠오모 프라임타임‘의 다음 시간대인 ’돈 레몬 투나잇‘의 앵커 레몬은 쿠오모 앵커와 웃으며 잡담을 나눈 뒤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오늘의 톱뉴스는 쿠오모 주지사 성추행 사건 조사 결과입니다“라며 정색 모드로 돌변합니다.CNN의 소극적인 대응도 논란거리입니다. 쿠오모 앵커가 형에게 도움을 준 것이 처음 알려진 것은 5월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통해서입니다. WP에 따르면 쿠오모 앵커는 형에게 사퇴 압력을 거부하고 미국 사회에 번지고 있는 ’취소 문화‘(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상대편 세력을 삭제해버리는 문화 현상)의 희생양이라는 이유로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도록 충고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WP 보도 이후 쿠오모 앵커의 자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CNN은 ”앞으로 형 쿠오모 주지사에 대한 취재를 금지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게 무슨 징계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번 수사 결과 발표 후에도 CNN은 쿠오모 앵커에 대한 공개 질책 수준의 징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미 WP 보도 때 우리는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CNN의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이나 경쟁사인 폭스뉴스 경영진의 성추행 사건 때는 상세 보도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던 전력이 있으니까요. CNN 내부에서도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쿠오모가 스타 앵커가 아닌 일반 직원이었다면 이렇게 덮고 지나갈 수 있겠느냐는 거죠. 지난해에는 띄워주기 바빴던 쿠오모 형제 때문에 이렇게 골머리를 썩게 될 줄은 CNN은 당연히 몰랐겠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얼마 전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 파병 부대인 청해부대에서 80%가 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대부분 부대원들은 무사히 완치됐지만 군은 부실한 방역 체계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죠. 미국 군대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떨까요. 주한미군은 한국이 아직 접종 기미도 없던 지난해 12월 본국에서 백신을 수송해와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벌써 접종을 시작했다면 7,8개월이 지난 지금쯤 미군은 매우 높은 접종률에 도달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육해공군 해병대, 현역군 방위군에 따라 조금씩 수치가 다릅니다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7월말 현재 1회 이상 접종자는 51%(군사전문지 밀리터리타임스 보도 통계)입니다. 군인 2명 중 1명꼴로 접종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이는 미국 평균 접종률(1회 이상) 57%보다 낮습니다. 지난해 12월 비영리 군 이익관련단체 블루스타패밀리즈가 현역 군인 6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군인의 49%, 군 가족의 54%가 “접종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일부 군인들 사이에서는 “먼저 맞았다가 ‘기니피그(실험 대상)’ 신세가 되기 싫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합니다. 미 군부가 일선 군인을 대상으로 화학 실험을 실시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백신 접종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가시지 않는 것이죠. 과거 화학 실험의 대표 사례로는 미 육군이 1955~75년 메릴랜드 주 에지우드 애버딘 세균실험장에서 250여개의 화학전 약물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7000명 군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군인들의 백신 거부감에 대해 “대부분 근거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분위기가 강한 것은 “군인들의 젊은 연령대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대다수 군인들은 젊고 건강에 대한 확신이 강해 백신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미군 사병의 평균 연령은 27세, 장교급은 34.5세로 미국 중위 연령(나이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연령) 38세보다 낮습니다. 미군은 의무 접종이 아닙니다. 군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가 정부가 강제성을 부여한 의무 접종이 아닌 자발적 희망 접종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물론 한국도 명목상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백신이 부족한 한국은 사전 예약 단계부터 북새통을 이루지만 여러 이유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이 깊은 미국은 다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여러 묘수를 짜내고 있지만 임팩트 있는 ‘한 방’이 없습니다. 그러자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정부의 권한 행사가 용이한 공무원과 군에 대한 접종 의무화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군은 군대로 반발이 큽니다. 공무원 부문에서는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등 지난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동조합 단체들이 나서 정부에 ‘우려’ 의견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군 쪽에서는 정치인들이 군 의무 접종을 금지하는 법안(HR 3860)을 발의했습니다. 법안은 “아무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백신을 접종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일선 군인들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의무 접종이 실시되면 군을 그만 두겠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도입니다. 군을 그만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모병제인 미국에서 백신 접종 문제가 전력(戰力)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접종 의무화 정책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최근 1만3000명이 주둔한 콜로라도 주의 포트카슨 기지가 ‘군인들이 접종을 거부하는 12가지 이유’라는 홍보물을 제작했습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접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든 홍보물이었지만 오히려 반대 이유 자체가 관심을 끌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백신이 식품의약국(FDA)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거나 “나는 위험 그룹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또는 “나는 이미 코로나19를 앓았기 때문” 등 건강 안전 상 이유에서부터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면 굳이 접종할 이유가 있나” 등 심리적 이유까지 다양했습니다. 그중에는 “내가 군에게 ‘싫다(NO)’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포트카슨 측은 백신의 안전성 문제보다 자유 선택권을 이유로 반대하는 군인들이 더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집단 조직 문화와 상명하복 시스템이 중시되는 군대에서 자유의사 표시 영역으로 남아있던 백신 접종마저 선택권을 빼앗지 말라는 의미겠죠. 백신 접종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개인의 권리 존중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나라에서 세밀한 여론 분석 없이 의무화 정책을 밀고 나갔다가는 만만찮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에서 클래식 선율을 듣는 ‘PLZ(Peace & Life Zone)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PLZ 페스티벌은 강원도 ‘평화 5군’으로 불리는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의 역사 명소에서 열리는 온-오프라인 음악 축제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우리 시대의 화두인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올해 행사는 ‘평화와 생명의 땅’을 모토로 열린다. 24일 철원 화강문화센터에서 개막공연이 열렸으며, 10월 말까지 강원 5개 지역을 돌며 진행된다. PLZ 페스티벌은 지난해까지 야외 음악회 형태로 열렸다. 올해 개막공연도 천년고찰이자 6·25전쟁 당시 많은 부상자를 치료했던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야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철원 화강문화센터로 변경 개최됐다. PLZ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올해 행사에는 빈필하모닉 제1악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라이너 호넥이 예술감독을 맡아 이끄는 비엔나-베를린 챔버오케스트라,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과 두 부문의 청중상을 차지하며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조나탕 푸르넬, 3위에 오른 일본 피아니스트 무카와 게이고 등이 해외에서 참가 소식을 전해왔다. 국내에서는 9월 11일 양구 파로호 꽃섬에서 열리는 ‘피아노데이’ 행사에 김희진 상명대 교수, 강우성 강원대 교수, 아비람 라이헤르트 서울대 교수 등이 예정돼 있다. PLZ 페스티벌과 함께 국제평화음악캠프(8월 11~13일)도 열린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이 캠프에는 음악 전공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마스터클래스, 음악을 통한 평화교육, 유엔세계평화의 날 캠페인 참여 및 바디 퍼커션과 음악코딩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임미정 PLZ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개막식 인사말에서 “역사의 현장이자 생명의 장소에서 아름다운 음악 메시지와 평화 이야기를 전해드리겠다”고 밝혔다. PLZ 페스티벌 공연은 무료로 진행된다. 행사 일정과 참가 신청 등은 홈페이지(www.PLZfe.com)에 나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CNN 유명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63)가 난소암을 진단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약 한달 동안 앵커 데스크를 비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암 투병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그동안 암 진단을 받았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후속 치료가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다른 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조기 진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아만푸어를 계기로 투병 중인 또 다른 유명 언론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NBC 저녁뉴스 앵커 출신의 톰 브로커(81)입니다. 암에 맞서는 아만푸어의 선배 격인 그는 10년 가까이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multiple myeloma)’과 싸우고 있습니다. 1982년부터 2004년까지 22년 동안 ‘NBC 나이틀리 뉴스’를 진행했던 브로커는 미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얼굴입니다. 올해 초 60여 년간의 언론인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그는 71세였던 2013년 ‘MM’이라고 불리는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았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백혈구의 일종인 형질 세포입니다. 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분화되고 증식하면서 생기는 병이 다발골수종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급증 추세입니다. 통증 없는 암은 없겠지만, 다발골수종은 특히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발골수종 커뮤니티에 따르면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고 으스러지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브로커는 투병 중에도 다발골수종의 위험성과 조기 진단의 필요성, 고액의 치료비 문제 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발골수종협회 교육 동영상에도 자주 출연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교통 경찰”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몸에 밴 저널리스트로서의 기질 때문인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병원에 가봐라” “저런 치료제가 있다”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죠. 통증이 너무 심할 때는 의학용 마리화나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플로리다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주 정부를 상대로 복잡한 마리화나 사용 법규 개선을 위한 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기자 시절 주요 취재 대상이었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평전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브로커는 최근 환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서바이버닷넷과의 인터뷰에서 삶의 좌우명을 “꼿꼿하게 버티자(Stay Vertical)”라고 소개했습니다. 중병을 앓는 상황에서 정력적인 활동들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병에 의해 지배되는 삶이 싫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브러커는 자신이 많은 혜택을 누리는 부유층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자신처럼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는 흔치 않다”는 것이죠. 앵커 직을 오래 유지했던 그는 8500만 달러(980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요 질병, 특히 암 치료비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자신 같은 유명인의 역할은 고액의 치료비 문제를 자주 거론하고 사회적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2015년 발간된 브로커의 자서전 제목은 의미심장합니다. ‘행운의 삶, 방해 받다(A Lucky Life Interrupted).’ 언론인으로 승승장구해온 삶이 병으로 인해 중단됐다는 뜻이겠죠. 다발골수종을 진단 받고 2년 뒤에 나온 자서전이라 그런지 이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느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극도의 심리적 혼란을 겪은 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브로커는 병이 알려지면 쏟아지게 될 동정의 눈길이 싫어 끝까지 함구할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부인이 대소변 처리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소변 배출도 쉽지 않아 엉거주춤한 채로 오래 유지하고 있어야 해 브로커 부부는 “태극권 기공 소변 자세(Tai Chi Pee)”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한다고 합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에피소드를 자서전에서 가장 가슴 울컥하는 장면으로 꼽았습니다. 미국 방송계에는 ‘묘한 우연’이 있습니다. 브로커나 아만푸어 외에도 뉴스 진행자들의 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난해에는 NBC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의 기상 앵커인 알 로커가 전립선암 진단으로 방송을 중단했다가 최근 복귀했습니다. 2012년에는 ABC ‘굿모닝 아메리카’의 여성 앵커 로빈 로버츠가 골수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로버츠는 앞서 2005년에도 유방암을 이겨낸 전력이 있습니다. 2013년 ABC의 또 다른 여성 앵커 에이미 로박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성공적인 치료를 받은 뒤 지금은 시사 프로그램 ‘20/20’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NBC ‘투데이’를 오래 진행했던 브라이언 검블은 2009년 폐암을 이겨냈습니다. 2005에는 브로커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ABC 월드뉴스 투나잇’의 앵커 피터 제닝스가 폐암으로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이 정도로 많다보니 ‘앵커직과 암 발병 사이에 관계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하지만 전문가들은 ‘TV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TV 화면에서 자주 접하는 앵커들에게 친근함과 신뢰감을 느끼고, 그들의 암 소식에 더 마음이 쓰이게 된다는 것이죠. 앵커를 비롯한 기자 등 언론인의 역할은 객관적 시각에서 사회 현상을 전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그들 자신이 뉴스의 주인공이 돼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때도 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1인 가구와 혼술족, 홈술족이 늘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스낵류가 인기다. 스낵은 식품업계에는 날씨가 더워질수록 매출이 증가하는 제품으로 알려졌다. 더운 날씨에 빙과류, 음료 등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스낵 매출이 느는 것은 의외다. 이는 주류업계 매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름철 맥주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덩달아 안주 매출도 늘기 때문이다. 주류업계에서 6∼9월은 성수기로 다른 계절보다 맥주 판매량이 10∼20% 늘어난다. 오리온이 최근 3년간 자사 스낵 매출을 분석한 결과 2∼5월에 비해 6∼9월의 매출이 평균 10%가량 높았다. 포카칩, 오징어땅콩, 썬 등 ‘안주형 스낵’들이 인기가 높은 편이다. ‘포맥(포카칩+맥주)’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맥주와 잘 어울리는 스낵으로 포카칩은 최근 3년간 2∼5월에 비해 6∼9월의 매출이 평균 15% 이상 높았다.오리온은 4월 포카칩 브랜드에서 33년 만에 신제품 ‘콰삭칩’을 내놓으며 여름 성수기 공략에 나섰다. 1.3∼3mm인 기존 감자칩 두께를 0.8mm로 크게 줄인 ‘콰삭칩’은 선보인 지 1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 봉을 넘을 정도로 감자스낵 시장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회사 측은 “열대야가 지속되며 시원한 맥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이 각광받고 있다”며 “‘포맥’에 이어 ‘콰맥(콰삭칩+맥주)’ 트렌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처음에는 ‘이 마을에 청년농부가 나 혼자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30여 가구가 있는 마을에 다섯 가구는 저 같은 20, 30대 귀농인 가족이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A 씨(28)가 대도시 생활을 접고 전북지역으로 귀농한 것은 2018년 봄. 귀농하기 전 6개월 동안 주말마다 사전 답사를 하며 철저히 조사했다. 그가 관심 있게 알아본 것 중 하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동료 청년농업인의 존재였다. 과학으로 농사를 짓는 요즘 시대에 유망 작물과 농법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려면 비슷한 또래의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A 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처음 농촌에 정착할 때 동료 청년농이 주변에 있다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귀농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노년층만 남아있던 농촌에 다시 청년이 돌아오는 추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30대 이하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2010년대 후반부터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그동안 농가 인구는 꾸준히 감소해 왔다. 1960년 전체 인구의 72%였던 농촌 인구는 2010년 16%까지 감소했다. 특히 두드러진 것이 핵심 노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20∼40대 청장년층의 탈출이었다. 농촌의 ‘역피라미드 구조’가 고착화됐다. 양극화 현상도 진행됐다. 대농과 영세농은 증가한 반면 중간 그룹은 감소한 것. 통계청 농업총조사에 따르면 40세 미만의 농가 중에서 경지 규모 5.0ha 이상인 대농의 비중은 2000년 3.7%에서 2015년 6.9%로 늘었다. 0.5ha 이하 영세농의 비중도 33.8%에서 48.5%로 증가했다. 반면 대농과 영세농 사이에 끼인 중간 그룹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청년층 감소와 양극화라는 양적·질적 위기 속에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3분기쯤부터다. 우리 주변에서 “청년농부”라는 단어가 자주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탈도시화 현상, 고학력 취업난 가중, 귀농 및 청년 정책 활성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청년농 중에서 특히 독립경영체로 창농한 자영업자군, 가족 농업활동에 참가하는 무급가족종사자군이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청년농 유입에 맞춰 정부의 지원사업도 본격화됐다.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농촌 청년불패’(농림축산식품부), ‘청년농부사관학교’(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행정안전부), ‘신규농업인 현장실습교육’(농촌진흥청) 등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인 농식품부의 영농정착지원사업은 2017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8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영농정착지원사업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찾는다면 초기 정착기 3년 동안 생활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현재 생활비를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은 영농정착사업이 유일하다. 40세 미만을 대상으로 선발된 청년농에게 매달 100만 원(1년 차), 90만 원(2년 차), 80만 원(3년 차)씩 지급된다. 최대 3억 원 한도의 창업자금 융자지원, 농지은행 비축농지 임대 우선지원, 농신보(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우대보증, 영농기술 교육 프로그램도 연계 운영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선발 인원이 1800명(올해 기준)으로 많고 신청서 접수도 내년 1월에 진행되므로 지금부터 준비하면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