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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한국 정치판을 뒤흔든 ‘안철수 태풍’. 그 바람을 타고 단숨에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날아오른 박원순의 드라마는 정당정치의 비상벨만 울린 게 아니다. 기존 언론의 정치 취재 관행에도 경종을 때렸다.오랫동안 정치부의 취재 시스템은 정당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하지만 ‘장외강자’들이 정당정치의 주춧돌을 흔들면서 언론사 정치부의 취재 시스템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익숙한 정치부 기자들에겐 위기감마저 들게 했다. 정치부를 책임진 나로서도 취재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안풍’은 정치 취재시스템에도 경종그런데 이들 ‘장외정치인’은 홀로 등장하지 않았다.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장외언론’과 함께 나타났다. ‘장외’라는 수식어가 달렸지만 트위터에 ‘언론’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거부감을 느낄 언론인 동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이 세계 최고로 발달해서든, SNS가 한국인의 ‘빨리빨리’ 체질에 맞아서든, 한국인의 정치 참여도가 워낙 높아서든, 여론의 ‘쏠림’ 현상이 강한 국민정서에 맞아서든, 기존 언론이 불신을 받아서든 트위터는 사실상 언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20년 넘게 기자를 해온 내가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한국 민주화의 일등공신은 박정희다. 박정희가 산업화로 국민들을 먹고살게 해주지 않았다면 민주화를 꿈이라도 꿨겠나?” 틈만 나면 ‘박정희 찬가’를 부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인터넷 라디오 시사풍자 토크쇼 ‘나는 꼼수다’의 애청자가 됐다. 걸핏하면 ‘좌빨’ 운운하던 그가 왜 ‘나꼼수’를 애청하게 됐는지 묻자 돌아온 답. “좌편향인 줄 알지만 너무 재밌다.” 기존 언론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재미’를 무기로 ‘나꼼수’ 또한 이미 장외언론의 반열에 올라섰다. 오죽하면 집권여당 대표까지 출연했겠는가.문제는 이들 장외언론이 형성하는 여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는 데 있다. 아니, 어쩌면 그 편파성 때문에 더 각광받는지도 모른다.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를 뽑은 3일, 무소속 박원순 관련 트윗(1만7377건)은 민주당 박영선 후보 관련(6777건)의 2.6배나 됐다. 경선일을 포함해 직전 일주일의 트윗도 박원순 후보 관련이 2배가량 많았다. 기존 언론이 이렇게 편파보도를 했다간 난리가 났을 것이다.‘나꼼수’에는 수많은 음모론이 등장한다. 그래서 재밌다. 동아일보 기자가 기사의 재미를 위해 이런 ‘믿거나 말거나’를 쓰면 당장 사내 기사검증 과정에서 선배들에게 박살이 날 거다. 그럼에도 아무도 트위터나 ‘나꼼수’가 편파보도를 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같은 기존 언론이 때때로 ‘편파보도 했다’고 욕을 먹는다. 언론 행세하다 책임은 예능으로게다가 장외언론의 영향력은 얼마나 강한가. 그 파워는 안철수-박원순 바람과 야권 서울시장 경선과정을 통해 입증됐다.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연예인 김제동 씨 등은 벌써 어느 기존 언론인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외언론인’이다. 그런데도 이들 언론, 언론인은 ‘내 맘대로’ 쓰고, 말하고, 칭찬하고, 비판한다. 말 그대로 ‘피 말리는’ 기사 검증과정도 없이.한국의 언론환경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 나 같은 기존 언론인의 책임이 클 것이다. 부끄럽다. 하지만 이제 장외언론도 언론인지, 사담(私談)인지, 예능프로인지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됐다. 필요할 땐 언론으로 행세하다가 책임은 사담이나 예능으로 넘긴다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장외언론인들도 정치인-학자-연예인-언론인 역할을 오가면서 좋은 점만 곶감 빼먹듯 한다면 그들을 ‘팔로’하는 이들만 불쌍해진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길 가다 지갑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돼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인구에 회자된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노무현 탄핵풍’으로 지지율이 솟구친 열린우리당을 향해 던진 말이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석권해 의석 과반수를 차지했다. 참으로 엄청난 바람이었다. 이 바람으로 금배지를 단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은 ‘탄돌이’로 불렸다.박원순 지지율은 자기 것? 안철수 것? 그 후 오랜만에 한국 정가에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안풍(安風)’이다. 그 바람을 타고 아찔하게 날아오른 이가 박원순 변호사다. 안 원장과의 단일화 이전 미미했던 그의 지지율은 단일화 이후 각종 가상 양자대결에서 50% 안팎으로 가파르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든다. 작금의 박 변호사 지지율은 자기 것인가, 안철수 것인가. 박 변호사 표현대로 ‘정치권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합의’에 국민은 감동했다. 안 원장은 10여 분간 박 변호사가 왜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지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변호사님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장면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영화의 각본, 감독, 주연은 모두 ‘안철수’다. 이 아름다운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인지도가 크게 올랐지만 ‘박원순’은 어디까지나 조연이다. 이제 영화는 끝났고, 주연은 사라졌다. 어쩌면 박 변호사는 ‘남은 조연’에게서 ‘사라진 주연’을 느끼고 싶은 심리가 만든 ‘안철수의 아바타’일지 모른다. 그만큼 박 변호사의 지지율은 불안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안 원장이 박 변호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면, 현 지지율의 원천인 안 원장의 인기가 떨어진다면 어쩔 것인가. 공연히 가정(假定)만 갖고 트집을 잡는다고?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 노무현 탄핵풍으로 당선된 ‘탄돌이’들이 4년 후 선거운동 때 노무현의 ‘노’자도 꺼내기 어려워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바람으로 당선된 그들은 18대 총선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보금자리였던 열린우리당마저 18대 총선을 치르지도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다. 박 변호사는 단일화 성사 직후 “안 원장이 갑자기 ‘양보하겠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내가 더 깜짝 놀란 건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 ‘인품과 통찰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가 그런 단일화를 받아들인 점이다. 단일화 당시 다자 지지율 기준으로 안 원장은 40%, 박 변호사는 5% 정도였다. 10∼20%포인트 차이도 아니고, 이만큼 차이 나는데 열세인 쪽으로 단일화가 되는 건 대의(大義)에 맞지 않는다. 아니, 대의를 떠나 이런 단일화를 받아들일 때 박 변호사의 인간적 자존심이 꿈틀거리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안철수 ‘선의’는 두고두고 빚 무엇보다 정치의 세계(안 원장도 사실상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으므로)에서 안 원장이 보여준 ‘과도한 선의’는 박 변호사에게 두고두고 빚이다. 박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정치적 채무는 더욱 커진다. 물론 안 원장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빚 갚으라’고 독촉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처럼 나올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진 빚이 끝내 족쇄가 되는 경우를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만일 그날, 박 변호사가 안 원장의 양보를 ‘깜짝 놀라며’ 받기보다 “나로 단일화되는 건 대의에 맞지 않는다”며 사양했다면…. 그게 시민사회에서 ‘맑은 사람’이란 평가를 들어온 그답지 않았을까.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큰 자산을 쌓았을 텐데…. 부질없는 상상이 꼬리를 문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역사의 신이 있다면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단 한 번도 허투루 치르게 하지 않았다. 전체주의 정권을 거쳐 비로소 정상적인 대선이 치러진 1987년 이후 모든 대선에는 시대적 소명(召命) 같은 것이 있었다. 1987년 대선의 소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민주화였다. 그해 6월항쟁과 6·29선언에 따른 대통령 직선제의 열매였다. 1992년 대선의 소명은 문민화(文民化). 우리는 군인 출신이 아닌 대통령을 얻었고, 마침내 군부 쿠데타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다. 1997년 대선은 호남의 해원(解寃)굿이었다. 수십 년 응어리져 더께 앉은 호남의 한은 호남 출신 대통령의 탄생으로 녹아내렸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앞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었다.대선마다 시대적 소명 있어 2002년 대선에선 처음으로 정치권력이 ‘시민권력’에 자리를 물려줬다. 정치권이란 ‘그들만의 리그’에서 독점하던 권력이 노무현을 앞세운 시민권력으로 하방(下放)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민권력에 올라타 칼자루를 쥔 좌파세력은 무능했고, 무엇보다 무책임했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이념의 칼은 우리 역사의 정통성에 생채기를 냈다. 하여 2007년 대선의 소명은 정상화(正常化)였다. 상처 나고 비뚤어진 역사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국민은 이념과잉 세력과는 정반대의 실용주의 정권을 택했다. 그러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실용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대기업 프렌들리’로 변질됐고,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로 귀결돼가고 있다. 그러면 내년 대선의 소명은 뭘까. 역사의 소명은 대체로 사후(事後)에 밝혀지지만, 대한민국의 기존 패러다임을 뜯어고치는 선거가 됐으면 한다. 정치권에선 나라의 주춧돌(초석·礎石)을 새롭게 놓는다는 의미에서 ‘정초(定礎) 대선’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왜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됐을까. 2008년과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대로는 안 된다’, 즉 시장에 떠맡기는 기존 경제시스템으론 안 된다는 비상벨을 울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위기 때마다 유독 한국이 더 휘청거린다는 사실은 우리 경제의 대외적 취약성을 웅변한다. 국내적으로는 대기업을 제외하곤 쓸 만한 일자리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계열사를 늘려가며 자손만대 누리려는 재벌의 독점 폐해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데 민의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본주의 본산 미국에서도 거대기업 AT&T의 독점 폐해가 너무 심해지자 법원의 명령에 따라 8개의 독립회사로 쪼갠 일이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쓸 만한 일자리는 민(民)의 본(本)이자, 국가를 떠받치는 토대다. 청년 백수, 혹은 청년 백수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뭔가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 때, 포퓰리즘은 ‘팜 파탈’같은 매혹으로 다가온다. 독(毒)인 줄 알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定礎 대선’이란 말도 나와 국제정치 상황마저 새로운 도전을 요구한다. 슈퍼 파워 미국은 21세기 들어 제국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자국 경제문제에 얽매여 세계에 대한 악력(握力)이 약해졌다. 그 틈을 타 동북아에선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앞세운 중국의 ‘그립’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우리의 제1외교전략인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한국의 대선은 그 폐해가 적지 않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실마리를 잡을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변화를 요구하는 폭발적인 민의를 담아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의의 용광로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조해낼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됐다. 그게 2012년 대선의 소명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정치공학(政治工學·Political Technology)은…인간의 생물적·심리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만 보는 경향을 띠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정치공학’이란 단어를 찾아본 것은 최근 공대 출신 지인이 불만을 토로하면서다. “공학은 순수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의 편의를 위한 과학이다. 그런데 정치공학이란 말은 온통 기계적 비인간적인 의미로만 쓰인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차기 대선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솔직히 답하자면 이렇다. “당신보다 내가 더 알고 싶다.” 그렇다고 이렇게만 대답할 순 없지 않은가. 이럴 때 가끔 정치공학적인 수사(修辭)를 동원한다. 주관적인 얘기를 해도 덜 주관적으로 들리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대선은 상수와 변수의 대결 따라서 지금부터 얘기하는 대선의 정치공학 또한 철저히 주관적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부득이 정치공학이란 용어를 쓰는 점에 양해를 구하면서. ①대선은 상수(常數)와 변수(變數)의 대결이다. 상수는 본격 대선가도 초반부터 자타가 인정하는 부동의 후보. 1987년의 노태우, 92년의 김영삼, 97년의 김대중, 2002년의 이회창 후보다. 2007년에는 대선 레이스 이후 부동의 지지율 1위였던 이명박 후보가 상수였다. 변수는 비교적 단시일에 부상해 상수에 도전한 후보. 정치 규제가 풀려 한꺼번에 대선에 나선 87년의 3김, 92년의 김대중, 97년의 이회창, 2002년의 노무현 후보다. 2007년의 변수는 박근혜 후보였다. 그해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미 대선 승부가 갈렸기 때문. ②상수는 대체로 직전 대선의 변수였다. 상수였던 92년 김영삼, 97년의 김대중, 2002년의 이회창은 직전 대선의 변수였다. 변수로서 도전과 검증 절차를 거쳐 다음 대선에 상수의 위치에 오른 것. ③변수의 부상(浮上)은 드라마를 동반한다. 짧은 기간에 대선 변수로 부상하려면 정치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 87년의 변수인 3김의 등장은 그해 ‘6월항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2년의 김대중은 사실상 정치야합에 가까웠던 3당 합당에 맞섰고, 97년의 이회창은 국무총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2002년의 노무현은 서울 종로 국회의원 자리를 마다하고 부산에 출마해 ‘바보 노무현’의 신화를 만들었다. 2007년의 박근혜는 ‘차떼기 당’의 오명에 ‘탄핵풍’까지 뒤집어쓴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2004년 총선 때 당을 구했다. ④상수는 대체로 변수를 이겼다. 87년 이후 5번의 대선에서 변수가 상수를 이긴 건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유일했다. 그만큼 변수가 상수를 뒤집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2002년 대선도 ‘노무현의 승리’라기보다는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던 ‘이회창의 패배’라는 말이 나온다.대선 드라마의 콘텐츠는 자기희생 자, 이런 대선 공학으로 차기 대선을 들여다보자. 먼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부동의 상수라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지난 대선의 변수였던 박 전 대표는 ②에 따라 상수가 됐다. ④에 따르면 차기 대선의 승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변수는 누가 될까? 대선의 변수가 되려면 ③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드라마를 만들 만한 후보감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시간은 있다. 2002년 대선 1년 5개월 전까지 노무현 후보가 야당 대선후보에 이어 대통령까지 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문제는 대선 변수로 부상하는 드라마의 콘텐츠가 자기희생이라는 점. 역대 대선이 그걸 말해준다. 정치공학으로 따져도 대권(大權)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자기희생에 있다. 그러니, ‘큰 꿈’을 꾸는 이들이여. 대선 장기판의 수 계산은 이제 거두고, 어떻게 자신을 내던질지부터 고민하라.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지난 주말 만난 탈북자 출신 사업가의 얘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지켜야 한다. 자본주의를 지키려면 한나라당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선거 때마다 가까운 사람 중에 다른 당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다. 솔직히 내년 총선과 대선에선 한나라당을 찍고 싶지 않다.”“계열사 느는 건 자손 늘기 때문” 무엇이 그를 한나라당에 열 받게 했을까. “나도 자본주의 국가에 와서 사업을 하고 보니 사업에도 도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요즘 대기업은 너무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이 하는 작은 사업까지 손댄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대기업 욕하는 소리가 쏟아진다.” ‘한나라당=대기업 우호세력’으로 인식하는 그가 대기업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방식은 한나라당 지지 철회였다. 동석했던 사업가(물론 남한 출신)가 좌중에 질문을 던진다. “대기업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중소기업 업종에까지 손대는 이유가 뭔 줄 아나? 계열사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럼 대기업 계열사는 왜 많아지는 줄 아는가?” “….” “답은 간단하다. 자손이 점점 늘기 때문이다. 서구 기업은 대체로 사업을 확장해 기업 자체가 커지는 일은 있어도 계열사 수가 점점 늘지는 않는다. 한국 대기업 오너는 자손들에게 계열사를 하나씩 떼 줘서 미래를 보장해주려고 한다. 자손은 많아지고 대기업의 고유 업종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질구레한 식음료 사업 등 중소기업이 해온 업종에까지 발을 뻗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 오너가 자손들이 맡은 계열사를 밀어주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은 변칙 상속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횡령이다”라고 열을 올렸다. 경제 지식이 깊지 않은 나로서는 이들의 얘기가 얼마나 실체적 진실에 들어맞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최근 들어 각종 모임이나 식사 자리에서 전에 없이 대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먹고살 만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오너,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같은 전문직종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이른바 ‘강남좌파’라서 그럴까.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대기업으로부터 물질적 심리적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의혹 폭로는 논란거리였다. 삼성으로부터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받은 그가 ‘자신이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을 자격이 있느냐’는 거였다. 그럼에도 그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약 16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이면을 삼성 관계자들은 가벼이 받아들여선 안 된다. 보너스도 변변치 않아 그렇지 않아도 추운 연말, ‘삼성이 사상 최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뉴스를 듣는 이들의 선망 아래 깔린 질시(嫉視)를. 삼성은 29일 “내수경기 진작에 1000억 원을 풀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관건은 진정성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먼저 ‘존경받는 기업’이 돼야 한다.포퓰리즘 파도는 대기업부터 때려 유럽 귀족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문을 지키는 수단이기도 했다. 전쟁이 나면 자식을 가장 먼저 참전시키고 흉년이 들면 성문을 열어 식량을 퍼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혁명과 전란이 빈번한 와중에 언제 가문이 쑥대밭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자유시장경제의 대표선수인 대기업 때문에 더는 시장경제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선 안 된다. 자유시장경제에 회의가 드는 순간,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것이 포퓰리즘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의 파도가 거세지면 가장 먼저 때리는 건 대기업의 굳게 닫힌 성문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박희태 국회의장이 단상에 올랐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주당 의원들이 서류와 물병 등을 단상을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순식간에 단상으로 몰려갔고, 의장석을 에워싸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과 ‘활극’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야당 의석에서 날아온 시계에 맞았다. 단상으로 날아올랐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당 의원들에게 밀려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됐다.주어 바꾸면 똑같은 한국·대만 국회 가상의 시나리오 같지만, 머릿속 상상으로만 나온 얘기는 아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을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으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대만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으로 △‘민주당’을 ‘민진당’으로, ‘한나라당’을 ‘국민당’으로 바꿔보자. 동아일보가 최근 연재한 ‘정치가 한국病이다’ 시리즈의 4번째 ‘한국정치 닮은꼴 대만을 가다’의 서두 부분과 꼭 들어맞는다. 지난해 7월 대만 입법원(국회)의 폭력사태를 묘사한 대목이다. 주어만 바꾸면 똑같을 정도로 한국과 대만의 국회 수준은 비슷하다. 더 씁쓸한 것은 국회 폭력에 관한 한 한국이 ‘원조’라는 게 현지 취재 결과다. 대만 야당이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전투방법’을 배웠다는 것. 대만 정치인이 “우리도 몸싸움은 하지만 보좌진과 사무처 당직자까지 동원하진 않는다”며 한국에는 ‘졌다’는 표정을 짓는 장면에선 읽는 사람의 얼굴까지 화끈거린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그래도 정치를 한국병으로까지 표현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실 ‘한국병’이란 표현은 ‘영국병(British Disease)’에서 따왔다. 영국병은 1960, 70년대 영국에서 만연한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의 노동시장 구조가 부른 만성 생산성 저하를 말한다. 60년대 세계 9위였던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6년 18위까지로 추락했다. 1997년 1만 달러를 넘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십여 년간 1만 달러의 늪에서 헤매다 지난해에야 2만 달러에 턱걸이했다. 여기엔 좌파정권 10년 고비용·저효율 정치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실용주의’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에 와서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를 공약했지만 이대로라면 3만 달러도 턱없다. 정치를 감히 ‘한국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작금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과 그에 따른 수도권 규제완화 반대 열풍,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설치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을 둘러싼 지역 간 대치상황을 보자. 국가적 갈등을 치유하는 백신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상처에 모래를 부어 병증(病症)을 키우고 있다. 겉으론 지역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자명하다. 권력을 유지해 자기세포를 증식하기 위해서다.영국병 고친 대처도 두 손 들 한국병 정치자금법을 개악하고 공직선거법 당선무효 규정을 완화하려는 것도 자기세포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보호막을 두껍게 하려는 것이다. 전직 의원에게 세금으로 매월 120만 원을 지급하는 법안까지 슬그머니 통과시킨 것도 ‘마르고 닳도록’ 자기세포를 온존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한국병을 정치권 스스로 치료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정치가 민주화된 1992년 14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148건의 의원 징계안이 국회 윤리위에 접수됐다. 하지만 징계를 발효시킬 본회의에는 단 한 건도 상정하지 않았다. 한국병은 오늘도 두꺼운 보호막을 치고 갈등을 자양분 삼아 병을 키우고 있다.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두 손 들고 갈, 이 한국병을 어찌할꼬.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4·27 재·보선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둘러싼 여권의 암투는 2011년 3월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축도(縮圖)다. 비전 없는 ‘돌려막기’ 후보 충원 기도에, 안전판부터 확보하려는 ‘웰빙정당’의 구태, 구원(舊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치졸한 자리다툼, 금배지 하나에 목숨 거는 용렬함까지…. 한나라당은 15일 재·보선 후보등록을 마감했다. 하지만 분당을 예비후보 명단에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이름은 없었다. 그의 출마 여부를 놓고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왜 정 전 총리일까.정운찬 후보론엔 親李의 不姙공포 여기엔 정권을 창출하고도 아직까지 마땅한 후계자를 내지 못한 친이(친이명박) 집권세력의 불임(不姙) 공포가 숨어 있다. 충청 출신인 정 전 총리가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검증까지 거치면 내년 대선정국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정운찬 후보론’의 바닥에 깔려 있다. 그리고 이를 물밑에서 밀어붙이는 이가 이재오 특임장관이란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문제는 이 장관이 정 전 총리를 미는 게 ‘친이 재집권’ 전략 차원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 장관은 2006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강재섭 후보에게 패한 뒤 칩거했다. 결국 당무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두고두고 반목했다. 이 장관의 ‘정운찬 밀기’가 일찌감치 분당을 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배제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더구나 이 장관은 2008년 18대 공천 때도 ‘이재오 사천(私薦)’ 논란을 빚지 않았던가. 이번 재·보선에선 좀 자제하는 게 본인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더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정운찬 후보론’을 둘러싼 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정 전 총리 자신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 전 총리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마다 모호한 말로 논란을 키웠다. 2007년 대선 때도 몇 개월을 저울질하다 중도 포기했다. 지난달 분당을 출마 여부를 묻는 본보 기자의 질문에는 “동반성장위원회 등의 업무가 바빠 출마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도 “출마한다, 안 한다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정 전 총리가 이렇게 ‘햄릿형 행보’를 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전략공천하지 않는 이상 분당을 당선이 불안한 마당에 섣불리 나섰다가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출신’이란 정치적 상품가치를 더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 흔한가.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이 일개 지역구 출마를 놓고 너무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은 보기가 좀 그렇다.정 전 총리는 모호한 말로 논란 키워 분당을에 매달리는 강재섭 전 대표는 측은함마저 자아낸다. 한때 그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 빗대 ‘토니 강’으로 불리며 이회창의 아성에 도전하려던 ‘TK(대구경북)의 적자(嫡子)’였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룰 파동 때는 대표직은 물론이고 의원직 사퇴까지 내걸어 분란을 잠재웠고, 2008년 공천심사 갈등 때는 ‘총선 불출마’ 카드도 던졌다. 그렇게 대표직, 의원직을 ‘초개처럼’ 던졌던 그가 오늘날 갖은 수모를 무릅쓰고 분당을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이러니 “18대 총선 불출마는 박근혜 바람 때문에 대구에서 떨어질 것 같으니 선수 친 것 아니냐”는 말이 도는 것도 당연하다. ‘정운찬은 실패한 총리’ ‘강재섭은 5공 인사’라며 돌아가면서 정 전 총리와 강 전 대표의 분당을 출마에 발목을 잡는 홍준표 최고위원은 또 어떤가. 지금 전 지구촌이 일본에 닥친 미증유(未曾有)의 재앙에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이 가장 앞장서야 할 때, 지역구 하나를 놓고 물밑 다툼을 벌이는 집권세력 지도급 인사라는 분들이 참으로 작아 보인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아내와 한 살짜리 딸이 일본에 있습니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덮친 이와테 현 바닷가인데 제대로 피했는지…. 정말 피가 마를 지경입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닷새가 지나도록 일본에 있는 가족, 지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던 분들이 다급한 마음을 동아일보에 전해 왔습니다. 외교통상부 영사콜센터(02-3210-0404)에도 소재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일본의 가족, 지인과 연락이 끊긴 여러분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메일(find@donga.com) △동아닷컴(dongA.com)의 ‘지금 어디 있나요’ 코너 △트위터(@dongamedia)에 찾는 분의 이름과 사연 등을 남겨 주세요. 정부기관과 민간단체, 독자들과 함께 소중한 가족과 친지를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e메일 find@donga.com ● dongA.com ‘지금 어디 있나요’ ● 트위터 @dongamedia}
“돌아보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최대 우군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어떤 네거티브 공격에도 지지율이 빠지지 않는 ‘이명박 현상’의 가장 단단한 버팀목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빚어낸 ‘노무현 효과’였다.”MB 3주년에 겹치는 노무현 3주년 내일은 이명박(MB) 대통령 취임 3주년. MB가 당선된 날 내가 썼던 기사를 찾아봤다. ‘이명박 시대-압승 의미와 과제’라는 해설에서 위와 같은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3주년은 어땠을까. 5년 전 이맘때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봤다. 놀랍게도 ‘안티 노무현’ 민심에 크게 힘입어 당선된 MB의 3주년과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2006년 2월 25일. 노 전 대통령은 MB가 20일 했던 것처럼 취임 3주년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등산을 했다. 그는 산에 오르며 “대통령이나 정부, 국회든 5년의 계획을 세워 제대로 일을 하려면 중간에 선거가 너무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해 취임 후 처음 개헌 논의를 촉발했다. MB도 이달 1일 “개헌은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그렇게 복잡할 것은 없다. (지금 하는 것은) 늦지 않고 적절하다”고 말했다. 취임 후 사실상 처음으로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기 3주년에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 두 대통령. 비로소 일할 만한데 남은 임기가 더 짧다는 초조함이 5년 단임 헌법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했을까. 2006년 2월 22일.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건 유출자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은 외교통상부가 미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외교각서를 교환하면서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용. 당시 한미관계는 물론이고 국내정치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렀다. 더 충격적인 일은 이 문건이 대통령 집무실 옆방인 제1부속실에서 새나왔다는 것.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던 이 ‘사고’는 최근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과 겹친다. 대통령직속 특급보안기관의 나사 풀린 시스템, 외교적 파장과 국제적 망신은 물론이고 유출을 둘러싼 권력투쟁설까지…. 당시는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첨예할 때였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돈 3주년은 임기 초와 같은 활력과 긴장감을 유지할 수 없다. 레임덕은 대통령과 지근거리인 청와대나 국정원으로부터 시작되기 십상이다. 주군(主君) 퇴임 이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측근이 늘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임기 말로 치닫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잡으려는 ‘궁중암투’도 치열해진다. 이런 정치적 요인들이 부닥치면서 ‘국정 안전사고’도 이어지게 마련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던가. 특히 한국의 5년 단임 대통령의 역사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3주년은 5년 후 MB 3주년을 예고하는 ‘오래된 미래’였다.노 정권 末이 ‘오래된 미래’ 안 되길 더 큰 문제는 ‘3주년 이후’다. 노 전 대통령이 개헌의 운을 뗀 날, 청와대는 “개헌과 연결시켜 기사가 나가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펄펄 뛰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뒤에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고, 결국 좌절했다. 3주년을 맞아 개헌 의지를 보인 MB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NSC 문건 유출에서 드러난 외교안보 난맥상과 권력암투는 급기야 노무현 정권 말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때 현직 국정원장이 자신은 물론이고 정보원의 신분까지 노출하는, 희대의 ‘김만복 쇼’로 이어졌다. MB는 구제역 침출수처럼 흘러나온 특사단 사건의 국정운영시스템 누수를 어떻게 처리할까. 노무현 정권 말이 MB 정권 말을 예고하는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한나라당의 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은 최근 지역구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예배 때마다 공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온 담임목사가 이슬람채권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이렇게 해서 이 대통령이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겠느냐”고 경고하는 듯한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중동 석유자금(오일머니)을 유치하기 위해 이슬람채권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이슬람채권법안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핵심 법안 중 1순위로 이슬람채권법안을 정했다는 본보 기사(14일자 A8면)가 나간 뒤 기독교계가 한나라당 지도부를 찾아와 법안을 처리하면 낙선운동에 나설 의사까지 밝혔고,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지역 교계의 민원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 논의 초반부터 이슬람채권법안에 대해 “과도한 특혜”라며 반대해온 이혜훈 의원에겐 기독교계의 민원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기독인회 회장을 지낸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에게도 법안 처리를 막아 달라는 직간접적인 요청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 친이계에서도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친이계의 한 의원은 “장로 대통령이 나왔다고 기뻐하고 성공을 기도해 왔는데 이슬람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법안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며 “이러다가 기독교계가 여권에 등을 돌리면 내년 총선이고 뭐고 어떻게 치르겠느냐”고 말했다. 친이계 의원 몇몇은 당 지도부와 청와대에 지역 교계의 불만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선 22일 오전 당 기독인회(회장 이병석 의원)가 여는 조찬기도회를 주목하고 있다. 이날 조찬기도회는 이슬람채권법안 논란이 커진 뒤 처음 열리는 행사다. 이상득 의원과 친박계 이경재 의원, 정몽준 전 대표를 비롯해 기독인회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의원 1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인회 소속 의원 중 이혜훈 황우여 김기현 의원이 공개적으로 법안 반대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기독인회 차원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 적은 없었다. 기독인회 소속 한 의원은 “기도회인 만큼 예배 중 이슬람채권법안 처리에 대해 우려를 밝히는 내용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슬람채권법안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가 다음 달 4일 비공개 공청회를 개최한 뒤 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해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국회 관계자는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이 있는데도 경제적 사안이 종교논리에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일정 궤도에 올라선 중소기업 오너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누구 내공이 더 깊을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대개는 전자가 깊고 강한 내공의 소유자라는 걸. 왜 그럴까? 오너는 때론 사업의 성패를 걸고, 드물게는 전 인생을 걸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그 결단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대기업의 CEO라도 최후의 비빌 언덕은 남아 있다. 바로 오너다. 그게 오너와 CEO의 근본적 차이다.이명박 정권의 오너는 MB 이명박 정권의 오너는 누군가. 국민? 아니다.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오너지, 일개 정권의 오너는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 정권의 오너는 단연코 이 대통령이다. 보름 후면 정권의 오너가 취임한 지 3년.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정권의 성공을 위해 정치적 명운을 걸고 혼신을 던지는 오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까. 재산까지 기부하고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철주야 일하는 MB로선 섭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에게선 정권의 성패를 온 어깨로 떠받치는 오너의 이미지보다는 최후의 결단만은 누군가에게 미루는 듯한 워커홀릭 CEO 이미지가 느껴진다. 왜 그런지, 개헌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이 대통령은 이미 1년 반 전인 2009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청와대는 “국회에서 논의돼야 하고 청와대는 일단 지켜볼 것”(이동관 대변인)이라며 팔짱을 꼈다. 때는 임기 초반. 친이명박계는 개헌을 위해 뛰어야 할 갈증을 못 느꼈다. ‘미래권력’을 자신하는 친박근혜계도 뛸 리 없었다. MB는 1년 뒤인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개헌 필요성을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고권력자인 MB가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실었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개헌은 국회 몫’이라며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이렇게 1년 반 동안 ‘남 얘기 하듯’ 하다가 올해 신년좌담회에서 ‘아직도 안 늦었다’고 밀어붙이니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황당하게 느낀다. 친이계는 뒤늦게 개헌 의총 판을 벌였지만 동력 떨어진 지 오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임기 후반 개헌 추진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기 쉽다. MB가 정말로 개헌 의지가 있었다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임기 초부터 추진했어야 했다. 그래야 정권의 진정한 오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는 또 어떤가. 대선후보 때는 “정치적 이슈이니 정치가에게 맡겨달라”고 했다가 올 신년좌담회 때는 “과학적인 문제이니 과학자에게 맡기자”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고 있다. 정국 경색을 푸는 키포인트가 될 수 있을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도 “연초니까 한번 만나겠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했다.개헌도 1년 반 동안 남 얘기 하듯 앞서 세종시 문제도 이런저런 ‘정치적 눈치’를 보다가 결국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사실상 희생양이 됐다. 각종 인사도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두기 일쑤다. 오죽하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MB는) 정주영 회장이 시키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였을 뿐 무엇을 결정해본 적이 없다”고 독설을 퍼부었을까. 도를 넘은 말이지만, 담고 있는 일말의 진실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또한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 정권에서 보듯, 오너의 아집이 너무 강한 정권은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반대로 오너가 결단을 미루고 ‘정치적 눈치’를 보는 듯한 정권은 국민을 못 미덥게 한다. 미국의 6·25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이런 문구의 팻말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원 발기인 중 박 전 대표를 제외한 77명의 구성은 정·관·재계와 학계, 법조계 등을 망라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중 75%인 58명이 대학교수(강사 포함)다. 연구원에 학자가 많은 걸 시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연구원이 아직까지 부동의 지지율 1위 대선주자의 싱크탱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무원이나 언론인, 기업인이나 직장인이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려면 자신의 직(職)이나 업(業)을 걸어야 한다.리스크 없고 잘되면 대박 교수는 다르다. 밑져야 본전이다. 발기인 4명 중 3명이 교수인 것은 이런 신분보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국가 미래를 연구하고, 어쩌면 향후 국가정책의 산실이 될 수 있는 연구원 발기인이 특정 직업에 편중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연구원에는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순수한 열정으로 참여한 교수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사회참여 열의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선이나 총선의 계절이 다가오면 ‘정책’보다는 ‘정치’를 노리는, 너무 많은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횡행하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14∼16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10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17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54명이 출마해 26명, 18대에는 42명이 출마해 19명이 당선됐다. 교수라고 금배지 달지 말란 법은 없다. 문제는 금배지를 달고도 대부분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캠프에 참여하는 교수들은 훨씬 많다. 일찌감치 한나라당 대선주자가 이명박, 박근혜 후보로 압축된 2007년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많은 교수들이 뛰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폴리페서의 계절’이란 시리즈를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1000명도 넘는 교수들이 크고 작은 대선캠프에서, 공개리에 혹은 물밑에서 활동했다. 이번 대선은 어떨까. 지난해 개인적으로 대학가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벌써 교수 사회가 어느 대선보다 조기에, 한층 더 광범위하게 과열될 조짐이 보인다. 대선을 2년 앞두고 1위 주자의 싱크탱크가 출범한 것도 그런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을 것 같다. 대선캠프에 참여해도, 총선에 출마해도 교육공무원법상 교수직은 보장된다. 폴리페서가 문제될 때마다 법 개정 움직임이 일지만, 교수 출신 의원 등의 저지로 통과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러니 정치에 뛰어들어도 리스크는 거의 없다. 잘되면 대박이다. 너도나도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 중 교수 출신 13명 가운데 장관 5명, 장관급 5명, 국회의원 1명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조각(組閣)에서도 장관 내정자와 대통령실장, 수석비서관 24명 가운데 교수 출신이 절반(12명)이나 됐다. 선진국에선 공직에 진출하면 교수직 사임이 상식이다. 공직에 나가도 국정 경험이 없는 교수가 일약 장관에 발탁되는 일은 드물다.밤늦게 불 밝히는 교수 의욕 꺾어 왜 한국만 장관으로 직행이 가능할까.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보좌했던 한 의원의 얘기. “대선캠프에선 하루라도 일찍 뛰어드는 게 나중엔 큰 차이가 난다. (대선) 후보의 눈으로 볼 때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는 어려웠던 시절부터 도와준 인사에게 상대적으로 큰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 일찍부터 후보를 도운 사람 가운데 교수가 많다는 것. 뒤집어 생각해보면 교수니까 이런 ‘조기 베팅’이 가능하다. 폴리페서의 만연은 오늘도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꺾는다. 나아가 나라 발전의 기초체력인 아카데미즘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대로 놔둘 것인가.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23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의 K주유소. 줄지어 선 차량들로 주유소 앞은 물론 주변 차로까지 붐볐다. 이날 이 주유소의 L당 휘발유 값은 1729원. 2km가량 떨어진 여의도의 또 다른 K주유소. 이날 L당 휘발유 값은 400원 이상 비싼 2135원이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기름값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이날 서울의 평균 휘발유 값은 1862원. 전국 평균은 1790원으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도림동 K주유소의 휘발유 값은 왜 그렇게 쌀까? 이 주유소엔 정유사 상표를 뜻하는 폴 사인이 없다. 이른바 무폴 주유소. 이런 주유소는 2008년 주유소 상표 표시제가 없어지면서 급증해 전국에 563곳이 영업 중이다. 무폴 주유소는 기름을 싸게 구할 수 있다. 한 무폴 주유소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많이 팔아주는 주유소일수록 기름을 싸게 준다”며 “우리처럼 ‘박리다매’를 하면 똑같은 기름도 일반 주유소보다 싸게 받는다”고 말했다. 또 특정 정유사 기름만 써야 하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정유사별 단가를 비교한 뒤 싼 곳의 기름을 들여와 보다 싸게 팔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정유사가 가맹 주유소로 공급하는 양이 들쭉날쭉해 남는 기름은 현물시장으로 나온다”며 “그런 기름은 일반 주유소에 들어가는 것보다 싸기 때문에 그걸 가져다 팔면 가격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 조사 결과 무폴 주유소가 생기면 주변 반경 1km 안에 있는 경쟁 업소들의 휘발유 가격이 L당 22원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사석유 유통 등 불법 판매로 적발되는 사례는 무폴 주유소가 일반 주유소보다 많다. 기름 유통과정을 정유사가 관리하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무폴 주유소의 품질 관리는 주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는 “대부분 무폴 주유소는 품질 면에서 일반 주유소와 다를 게 없지만 유통과정에서 위험요소는 조금 더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독 당국도 무폴 주유소에 대해선 보다 엄격히 단속한다. 이 때문인지 전체 주유소 가운데 무폴 주유소는 4.3%에 불과하지만, 부정행위로 적발되는 건수는 전체의 30%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무폴 주유소 중에는 일반 주유소보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관리하는 경우도 많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운전자들이 안심하고 무폴 주유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신청 업소에 한해 매달 품질 검사를 한 뒤 안전성을 입증해주는 ‘품질 보증제’를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무폴 주유소 ::정유사 상표를 뜻하는 폴 사인(pole sign)이 없는 주유소. 특정 정유사 기름만 써야 하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정유사별 단가를 비교해 싼 곳의 기름을 들여와 팔 수 있다.미친기름값 때문에 ‘무폴 주유소’ 찾는다는데…▲2010년 12월23일 동아뉴스스테이션}
사람도 그렇지만, 국가도 세 부류다. 말만 앞서는 나라, 행동이 앞서는 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나라…. 언행이 일치하는 나라의 대표는 미국이다. 1962년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소련의 기도를 무산시킨 ‘쿠바사태’부터 최근의 아프간, 이라크전쟁까지 미국 대통령의 말은 곧 행동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가 내심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 대통령의 입을 주목한다.이스라엘은 말보다 행동 앞서 행동이 앞서는 나라의 대표 선수는 이스라엘. 자국에 위협이 되는 시설은 말없이 날아가 폭격해 버린다. 2007년 9월에는 시리아가 비밀리에 건설하던 원자로 시설을 폭격했다. 말보다 주먹부터 날리는 스타일은 종종 비난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섬뜩한 공포, 그 자체다. 말만 앞서는 나라의 대표 선수는 북한이었다.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부터 ‘핵전쟁’ 운운 등 북한이 가한, 그 수많은 위협이 행동으로 옮겨졌다면 한반도는 물론이고 미국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북한이 달라졌다. 천안함 사건 때는 이스라엘 식으로 말없이 기습하더니, 연평도 포격 때는 미국 식으로 경고하고 타격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달 22일 남측의 호국훈련을 겨냥해 “참혹한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연평도를 포격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 말만 앞세우던 북한이 행동하니까 도리어 우리가 말만 앞서는 나라가 돼 버렸다. 8월 9일 북한은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해상에 해안포 130여 발을 쐈다. 합동참모본부는 “포탄이 모두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10여 발이 NLL 남쪽 1∼2km 해상에 떨어졌다”고 말을 바꿨다. 이 때문에 북한의 포탄이 사실상의 국경을 넘어왔다고 밝힐 경우 파장이 두려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만일 탄착점을 몰라서 그랬다면 더 한심한 ‘당나라 군대’다. 8월 24일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의 NLL 이남 포 사격 시 2, 3배 화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북측의 NLL 이남 포격에 응사하지 못한 채 보름 후에야 ‘말 펀치’만 날린 것. 연평도 포격의 예행연습이나 다름없었던 그 해안포 사격 때 북한은 느꼈을 것이다. 찌르면 썩은 호박처럼 쑥 들어가는 남측의 물컹한 속살을. 북한이 거리낌 없이 연평도를 유린한 데는 이런 ‘말로만 대응’이 한몫했을 것이다.입만 나불거리면 가소롭게 들려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국방장관의 ‘2, 3배 화력 대응’ 운운도 결국 말뿐이었다. 북측으로부터 170발을 맞고도 절반도 안 되는 80발밖에 쏘지 못했기 때문이다. 11월 30일 군은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의 핑계로 삼은 연평부대 사격훈련을 한 차례 더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훈련을 미국이 반대하자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 12월 6일 군은 동·서·남해에서 해상 사격훈련을 시작했다. 여기서도 당초 예정됐던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 사격훈련은 제외됐다. 12월 13일 군은 전국 해상 27곳에서 사격훈련을 시작했다. 또 서해 5도 해역은 제외됐다. 서해 5도 제외 이유에 대해 군은 “날씨가 나빠서” “계획에 없어서”라고 설명하지만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입만 나불거리는 사람의 말은 가소롭게 들린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행동하기가 그렇게 두려운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대공황을 맞아 두려움에 떠는 국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하나는 두려움 그 자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인정하기는 편치 않지만 반세기 가까이 살아 보니 맞는 구석도 많은 말이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첫발을 디딘 사람이 에드먼드 힐러리냐, 그의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냐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등산가나 셰르파가 누군지 나는 알지 못한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 오은선이냐,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이냐는 논란도 따지고 보면 ‘세상이 기억하는 1등’이 누구냐는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경쟁을 겪는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경쟁에서 이긴 적도, 진 적도 있었다. 30년 전의 추운 겨울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한 대학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합격자 수험번호가 내 번호를 건너뛴 걸 확인한 순간, 발밑의 땅이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자장면을 먹었다. 자장면 먹는 나를 어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 걸까. 며칠 전 아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봤다. 그전까진 아들의 수능 준비는 ‘아내 몫’으로 돌리고 짐짓 모른 체했다. 그런데 시험 전날 저녁부터 수능이 끝나는 다음 날 저녁까지 가슴 한쪽을 뭔가가 누르는 듯했다. 수능 때만 되면 한국의 수많은 부모가 겪는 이런 증상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자식의 성적에 좀 더 대범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 역시 속물’이라는 자괴감이 들면서도 자식 공부에 기가 살고, 죽는 게 한국 보통 부모의 비극이다. 그리고 이 비극의 뿌리는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데 있다. 프랑스는 그야말로 ‘1등’이 지배하는 사회다. 정·관·재계의 핵심요직을 상위 1%도 안 되는 그랑제콜 출신이 사실상 독차지한다. 그래도 ‘그랑제콜 폐지론’은 미미하다. 비교적 평등한 교육기회에서 이룬 성취를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쟁에서 탈락해도 기본적인 생활은 위협받지 않는 사회안전망이 있다. 한국은 어떤가. 경쟁에서 탈락할수록 생활은커녕 생존까지 위협받는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는 본보 칼럼에서 최근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급격히 악화되는 추세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의 공식 통계가 작성된 이래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가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0년 초 통계에는 상·하위 10%의 격차가 무려 20배에 이른다.”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최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부(國富)의 총량을 키우되 경쟁에서 패배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수능 때만 되면 자식이 부담을 느낄까 봐 ‘시험 잘 보라’는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한국 보통 부모의 이상증세도 완화될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개그가 먹히는 사회는 불행하다. 광저우 아시아경기 평영 200m에서 우승한 정다래의 눈물은 아름다웠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 연기를 마친 뒤 김연아가 쏟은 눈물은 감동적이었다. 그런 승리의 눈물도 있지만, 경쟁에서 패배해 차마 소리 내 울지 못하고 가슴으로 우는 피눈물도 있다. 그런 피눈물을 닦아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몫이다. 이번 수능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 학생과 학부모가 많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기엔 너무 이르다. 대입시험은 기나긴 인생 경쟁에서 보면 첫 출발점 정도다. 아니, 그 첫 출발에 실패했던 내가 이렇게 칼럼을 쓰고 있으니 어쩌면 첫 출발점도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젊은 친구, 힘 내! 아직 시작도 안 해봤잖아….”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여의도 국회의 10월은 ‘호통의 계절’이다. 국정감사장마다 날선 지적들이 넘친다. 하지만 호통 치는 사람만 바뀔 뿐 피감기관장의 답변은 매년 한결같다. “검토 후 조치하겠습니다.” 금융감독원(금감원) 퇴직자들이 금융기관 감사로 가는 낙하산 관행은 최근 5년간 국정감사에서 매번 지적됐다. 그때마다 금감원장은 “시정하겠다”고 답했지만, 간부들의 금융기관 재취업은 해마다 늘었다. 국감 질의와 답변이 재탕 삼탕되는 사례는 금감원뿐이 아니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 임직원 특혜 등도 해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 이처럼 해마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데자뷔 국감’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국회와 피감기관의 핑계는 이렇다.○ 피감기관의 핑계 ▽“지적만 말고 국회가 법을 바꿔라”=금감원은 간부들의 금융기관 재취업을 방치해 감독당국과 금융기업의 유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감원 간부들의 재취업에 대해 금감원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퇴직 전 3년 이내에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는 퇴직 후 2년간 취업을 금지한다’는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금감원 간부들은 퇴직 전 총무팀 등 비감사 부서로 자리를 옮겨 ‘신분 세탁’을 한 뒤 금융사로 가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실 김덕수 보좌관은 “보험에 관여하던 사람들은 은행으로 가고, 은행 쪽에 관여하던 사람들은 보험사로 간다.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피해 가는 편법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금감원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건 하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국회가 법을 고치라’고 항변한다. 실제 국회에는 공직자의 재취업 요건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2008년 7월부터 10건이나 발의됐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담당 입법조사관은 “계류 중인 법안만 1000건이 넘고 매달 50∼60건씩 새로 올라와 처리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선진국선 문제 안 된다”=2008년 국감에서 김종창 금감원장은 “금융기관에서 요청하는 경우에 보내는, 전문가로서 데려가는 그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러브콜에 금감원이 화답하는 관행을 시인한 셈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으로부터 “금감원이 직업소개소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은 퇴직자들의 취업을 제한하지 않고 유착 사실이 나올 때만 처벌하는데 우린 규제가 심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간부들은 퇴직 전 1년 동안 두 달 이상 담당했던 회사에 대해 퇴직 후 1년 동안 입사할 수 없다. ▽“노조때문에…”=농수산물유통공사는 2008년 국감 때 직원들에게 1∼2.5%의 파격적 금리로 돈을 빌려줘 지적을 받았다. 시중 금리는 6∼8% 선. 이달 18일 국감에서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이 “바꾸겠다고 해놓고 왜 아직 그대로냐”고 질타하자 윤장배 사장은 2년 전처럼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성과급을 적게 받아 대출 이자까지 올리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노조가 ‘급여 깎인 거 내놓고 얘기하라’면서 논의 자체를 거부하니까…”라는 설명. 농수산물공사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5200여만 원. 직장인 평균 연봉인 3800여만 원보다 37%가 많다. ▽“밥줄이 걸려 있어서…”=국무총리나 외국 정상들의 국내 이동을 위해 만든 한국철도공사 귀빈열차. 5년간 이용률이 32차례에 불과했고, 그마저 공사 간부들이 절반 이상 사용했다. 열차 3량 개조비용만 20억 원이 들었지만 최근 3년간 코레일 사장만 3차례 이용해 사실상 사장 전용열차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국감에서 여러 번 제기됐다. 귀빈열차가 주차돼 있는 서울역 보관소에서 만난 한 직원은 취재를 막으며 하소연했다. “예전에 3000명 가까이 있던 직원을 100명이라도 놔두려는 건데 보도가 나가면 여기도 없어져요. 제발 좀 놔두세요.”○ 국회의원의 핑계 ▽“시정 안 해도 제재 방법이…”=피감기관은 국감 전 전년도 지적에 대한 사후조치를 보고하지만 형식적 답변이 대부분이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피감기관이 시정조치를 하지 않아도 국회가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고 말한다.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청구가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다. 피감기관장(건설교통부 장관)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지가 바뀐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오늘 하루만 잘 버티면 끝난다는 게 피감기관장의 속마음이다. 현장에서 의원들하고 부딪히는 것보다는 대체로 수용해주는 답변을 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상임위 옮겨서” “보좌진 부족해서”=‘오늘 하루만 넘기자’는 생각은 국회의원도 다르지 않다. 본보 기자가 만난 국회의원 11명 중 자신의 지적사항을 추적 확인한 경우는 한 명뿐이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2년마다 담당 상임위가 바뀌고, 지적사항이 수십 가지라 한정된 인력으로 모니터링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일단 호통 쳐야 주목받아”=10분 남짓한 질의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국민 정서를 자극할 만한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피감기관의 사후보고 내용도 확인하지 않거나 피감기관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경우가 다반사.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똑같은 지적이 나오니 답변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도 국감 사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용섭 의원은 2008년 10월 국감 사후관리 부서를 만들자는 국정감사법 개정안을 동료의원 18명과 함께 발의했다. 국감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기관장 징계나 해임 등 구체적 조치를 하자는 내용. 그러나 이 법안마저 2년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dongA.com 뉴스테이션에 동영상}
주말 골퍼의 착각 시리즈. 첫 번째 착각은 남성 골퍼에겐 보편적이다. 자신의 드라이버 티샷이 적어도 200야드(약 183m)는 넘게 날아간다고 믿는 것. 골프 전문가와 캐디들에 따르면 200야드를 넘기는 주말 골퍼는 별로 많지 않다. 두 번째 착각은 드물지만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린 플레이를 마치고 나가면서 퍼터 대신에 홀 표시 깃발을 들고 나가는 경우. 나도 앞 팀 플레이어가 깃발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대개 초보이거나 지나치게 자기 플레이에 집착했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다.자신만은 레임덕 없을 것으로 착각 세 번째 착각은 아무래도 우스개 같다. 벙커 샷을 한 뒤 고무래로 모래를 평평하게 다진 후 벙커 언저리에 놔둬야 할 고무래를 들고 가는 경우. 이 희한한 광경을 봤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물론 이런 착각은 주말 골퍼라면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아니 세계의 권력자들은 임기 초·중반까지는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레임덕이 오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7년 5월에도 “정부 내에 레임덕이 없다”고 호언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절반을 맞은 8월 25일 ‘임기 반환점’이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했다. “반환점은 목적지를 다 가고 난 뒤 돌아오는 걸 말하는데, 대통령 임기는 앞으로 쭉 가는 것 아니냐”는 것. 그러나 ‘임기 반환점’만 해도 많이 봐준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적 단임 대통령제에서 임기 후반 레임덕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임기 절반이 지나는 때는 단순한 반환점이 아니라 정상에 올랐던 대통령의 하산(下山)이 본격화되는 지점이다. 항간에는 ‘청와대가 무리하게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차기 청장 임명권 행사를 통해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얘기가 있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그런 발상을 했다면 200야드도 못 날리는 주말 골퍼가 워터 해저드 건너 250야드 지점을 겨냥했다가 볼을 물에 빠뜨리고 마는 것 같은 착각이다. 한국 대통령의 두 번째 착각은 차기 대선구도 개입이다. 대통령도 자신의 플레이가 끝나면 홀에 다시 깃발 꽂아두고 조용히 나가면 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기 플레이에 집착하다가 다음 팀이 써야 할 깃발을 들고 나가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대통령도 벙커에 빠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국무총리로 앉히려던 것은 노 전 대통령 임기 초 ‘정동영, 김근태 키우기’를 연상케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두 사람을 ‘장관→책임장관’으로 지명해 국정경험을 넓혀주려 했다. 대통령이 차기 구도에 개입하려 하면 할수록 산통이 깨지는 게 한국 대통령의 또 다른 숙명이다. ‘나만은 임기 말 게이트가 없을 것’이란 생각, 바로 세 번째 착각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8월 국무회의에서 “게이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결과가 어땠는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게이트의 수렁을 피하지 못했다. MB 역시 알 수 없다. ‘대통령은 측근이 웬수’라는 말이 있듯, 게이트를 일으키는 건 대통령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이 정권의 도덕성 둔감증은 임기 말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골퍼도, 대통령도 벙커에 빠진다. 일단 벙커에 빠졌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볼(문제점)을 쳐내고, 고무래로 뒷정리해야 한다. 숨기려고 몰래 볼을 쳐내거나, 한꺼번에 만회하려고 무리한 샷을 시도하다간 그야말로 게이트의 늪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 그렇게 허둥지둥하다 고무래까지 들고 나오는 날엔 게임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8월 31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지난 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후계체제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의 아들 김정은의 동행 여부는 북한 세습과정을 읽는 중요한 열쇠입니다.(김정안 앵커) 과거 김 위원장 본인이 아버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승계 받은 과정도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겠죠. 자세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갑작스런 중국 방문. 최대 관심사는 그의 아들 김정은의 동행 여부였습니다.추측이 난무했지만 중국이나 북한 당국은 이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과 1962년 김 위원장도 김일성 주석의 수행원 자격으로 옛 소련과 인도네시아를 극비 방문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도 지금 그의 아들 정은처럼 아직 공식적인 후계자로 추대되지 않은 상황.스포트라이트는 피하면서 관련국 인사들과 눈도장을 찍는 첫 데뷔무대였던 셈입니다.이후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공인받고 북한 내 기반을 다진 뒤인 1983년, 중국을 처음 방문했고 북한 지도자가 돼 2000년 두 번째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김정은 역시 아버지인 김 위원장처럼 '비공식 수행원->공식 후계자->그리고 지도자'라는 3단계 과정을 거친 뒤에야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따라서 이번 방중을 통해 첫 단추는 이미 끼운 만큼 김 위원장이 당분간 김정은을 후계자로 급부상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북한 내부 김정은에 대한 지지 기반 다지기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전화 인터뷰)쓰인홍/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은 중간급 직책만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후계자 지위에 맞는 최고위급 직책으로 당장 고속 승진하지는 않을 것이다."물론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이 위독해지면 예정된 권력 세습 과정이 단축될 가능성은 급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이 같은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인터뷰)데니엘 핑스턴 박사/국제위기감시기구(ICG)선임 연구위원"김 위원장이 위중하다면 열차로 여행하는 것도 삼갔을 것이다… 세습과 관련해서는 북한 의 내부적인 절차와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본다."김 국방위원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세간의 조명을 받고 있는 김정은.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그의 위치와 세습 구도는 보다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동아일보 김정안입니다.}
개인사무실, 비서, 운전기사. ‘한 사람이 성공했는지 알려면 이 세 가지가 있는지 보라’는 얘기가 있다. 당신이 아직도 개인사무실이 아니라 공동사무실에서 ‘옹기종기’, 나쁘게 말하면 ‘바글바글’ 일하고 있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직을 갓 나온 한 인사는 “(운전) 기사가 떨어져 나가는 게 마누라가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더 섭섭하다”고 농반 진반을 했다고 한다. 위의 세 가지가 주로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조건이라면 한국의 특권층을 가르는 조건은 좀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부터 꼽는 특권층의 조건은 20년 남짓한 기자생활 경험에다 최근의 세태 등등을 참작해 지극히 ‘주관적으로’ 정한 것이니 맞다, 틀리다 따질 생각은 마시길….첫째는 휴대전화 번호 두 개 이상 첫째, 휴대전화 번호 두 개 이상. 왜 전화기도 아니고 전화번호 두 개 이상이 특권층의 조건인지 의아해한다면 당신은 아직 특권층과 접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특히 새로 나오는 스마트폰을 구매 예약하고 손에 넣을 날을 고대하는 당신은 특권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예약구매 같은 거 안 한다. 누가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번호가 두 개 이상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영양가 없는’ 전화와 긴요한 전화를 구분하기 위해서, 은밀한 사생활을 위해서, 도청(盜聽)으로부터의 보안 필요 때문에…. 이 중 도청을 신경 쓰는 쪽이 가장 특권층이다. 둘째, 위장전입. 두말할 필요 없는 필수불가결 조건. 잘나가는 이들이 나오는 인사청문회를 보라.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 후보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특히 ‘재산증식’보다 ‘자식교육’을 목적으로 했다면 특권층으로 진입하는 문의 빗장을 연 것이다. 셋째, 독수리 여권. 원정출산을 했든, 주재원으로 가서 낳았든 미국 여권을 가진 자식이 한 명도 없다면 특권층에선 한발 멀어진 것이다. 천안함 사태처럼 전쟁이 연상되는 때마다 자식의 독수리 여권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짓는 이는 특권층 자격이 있다. 넷째, 미화 1만 달러 이상. 특권층이라면 집안에 항상 미화 1만 달러 이상은 구비하고 있다. 다섯째, 로펌 고문 경력.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로펌에 고문으로 영입됐거나 영입된 적이 있다면 확실한 특권층이다. 거기선 아무나 영입해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1년에 수억 원씩 주질 않기 때문이다. 여섯째, 부인의 노후대비. 언제나 노후대비는 부인 몫이다. 특히 아내의 노후대비 투자(혹은 투기)를 남편은 ‘일이 바빠서 몰랐다’면 진정한 특권층의 자격이 있다. 일곱째, 돈 꿔주는 선배. 전화 한 통이면 즉각 수천만 원을 꿔주는 고향 또는 학교 선배가 한 명 이상은 있어야 한다. 단, 이 돈은 검찰수사나 인사청문회가 없다면 안 갚아도 된다. 여덟째, 가족 특혜 의혹. 자신만 특혜를 받는다면 진짜 특권층이 아니다. 세금으로 부인의 차를 굴리든, 부인이 전공과 관계없는 회사에 취직해 월급을 받아오든, 동생의 사업이 갑자기 번성하든….금도장 받으면 특권층 ‘확실’ 아홉째, 묵비권. 뜬금없이 웬 묵비권? 의아해할 분도 있겠다. 하지만 보통사람은 건물만 쳐다봐도 오금이 저리는 검찰에 소환돼서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배짱이야말로 특권의 상징이다. 열째, 금도장. 최근 새 조건으로 추가됐다. 금도장을 선물 받았다면 ‘대한민국 특권층’이라는 도장을 확실히 찍은 거다. 자, 당신은 위의 10개 조건 중 몇 개나 해당되는가. 너무 많아서 뜨끔한가? 반대로 하나도 해당되지 않으면 깨끗해서 떳떳한가, 아니면 어딘가 허전한가.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