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서영아 본부장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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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100세 시대를 생각합니다.

sya@donga.com

취재분야

2024-10-25~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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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금안 보완해 정치적 타결을” “ICJ 사법적 해결도 대비”[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발동으로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재 한일 간 최대 쟁점은 지난해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갈등이다. 판결은 일본 측의 거센 반발을 샀고 이후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외교가에서 논의되는 해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전략적) 방치, 둘째 기금조성안, 셋째 사법적 해결이다. 지난 8개월간 우리 정부는 ‘방치’ 전략을 썼지만 그 결과 한일관계는 최악의 나락으로 빠졌다. 기금조성안은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가 일본에 제시한 안이다. 양국의 유관기업이 참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사법적 해결은 중재위,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한 분쟁 해결 방법을 가리킨다. 당장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제안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 설치 요청에 18일까지 답변해야 한다. 기금안과 사법적 해결에 각기 무게중심을 둔 지일파 학자들에게 해법을 들어봤다. 두 사람 모두 가능하다면 기금을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입장이 같았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2012년과 2016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힘을 보탠 지일파 학자. 그는 우리 정부가 6월 19일 제시한 ‘한일 유관기업에 의한 징용기금’안을 보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기금 조성안은 정치적 타협을 우선하는 것인가. “우리 정부의 이번 제안은 삼권분립을 전제로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되 ‘일본기업의 자발적 기금 참가’라는 언질을 둬 일본 측이 타협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하고 당사자 간 화해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즉각 거부했다. “일본 정부가 거부한 이유는 일본 기업이 한국 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전례가 만들어지면 향후 북-일 수교 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 정부가 8개월 만에 처음 내놓은 안이 피해 당사자와 대화가 충분하재판 기간 피해자에 너무 길어지 않았던 점도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하에 어렵사리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은 피해자와 합의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에 이르지 않았나. 일본 정부로서는 그 전철을 되밟을 이유는 없다고 봤을 거다.” ―일본이 추진 중인 중재위안은 어찌 보나. “정치적 타협이 불발로 끝날 경우 중재위는 물론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중재위는 우선 제3국 위원 임명, 중재대상과 시기, 방법 등에 대해 한일 양국이 합의해양국 정상 만나 돌파구 마련을야 하는데 첫걸음부터 장벽에 부닥칠 거다. 가령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한일 양국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불법 여부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은 강제병합을 불법으로 인정한 반면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재위는 상호 간 의견 차를 해소하지 못해 시작부터 결렬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어떤가. “우선 피해자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최소 3년 이상 걸리는데 대부분 90대인 생존자에게 시간이 남아 있을까(생존자는 지난해 2월 기준 약 5200명). 재판 과정에 한일 간 신경전이 증폭돼 외교적 소모전이 될 공산도 크다. 여기에 만에 하나 패소할 경우 치명적이다. 국내에서 정치적 역풍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양국 국민에게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기금조성은 해법이 될 수 있나. “화해치유재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6·19 제안을 보완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포스코 등 청구권 자금의 수혜기업인 16개사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전체 모금 금액과 배분방식, 재단 운영체제 등에 대해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이 필요하다. 피해자와 지원단체, 전문가들과 만나고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도 설득해야 한다. 이 밖에 피해자의 범위와 시효를 정하고 개인보상은 이번으로 최종 종료된다는 것, 노무현 정부 당시 보상을 받은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국내 입법을 통해 한국 측이 종결시킨다는 점 등도 약속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본 측이 받아들일까. “한국 측의 적극적인 해법을 일본 측에 설명하고 이를 승인하는 절차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양국관계 개선 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나 별도 한미일 정상회담, 한일 셔틀회담 형태도 좋다. 강제동원 해법을 바탕으로 양국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비핵화 등에서 한일협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지금까지 한국에서 중재위나 국제사법재판소 안은 아예 논외로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이 추진하는 안이라는 경계심이 강했고 패소의 리스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원덕 교수는 소수의견이지만 꾸준히 검토할 필요성을 말해왔다. 양국이 정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상반된 양국의 입장에 대해 객관적 시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금안이 해법이 안 되는 이유는…. “기금 조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일본이 받양국 최고법원 판결 엇갈려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인원 규모와 법적 시효를 확정하고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우선 배상받을 수 있는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 현재 법원에서 14건, 900여 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권에서는 7만2000여 명이 피해자지원법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통계로는 약 21만 명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가 존재한다. 어디까지를 범위로 할 것인가. 기금이 마련돼 소송에 의한 보상이 시작되면 자칫 소송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가령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을 받은 이춘식 할아버지의 경우 2012년부터의 지연금까지 더해 2억 원이 넘는 액수를 받게 돼 있다. 반면 2007년 피해자들은 최고 2000만 원씩 받았다. 후손들이 ‘왜 우리 할아버지는 2000만 원이고 저 할아버지는 2억 원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호사들까지 중간에 껴 엄청난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현실을 뻔히 아는 일본 정부나 기업이 기금 출연에 협력할 가능성은 없다.” ―일본이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에 의거한 중재위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양국이 3인의 중재위원 구성에 합의할 수 있을까. 혹 중재위원회가 최종 결론을 낸다 해도 한일 양국민이 승복할까도 문제다. 그보다는 국제사법재판소 공동제소에 의한 해결이 가장 현실적이다. 최종 판결까지 3∼4년간 시간을 버니 그동안 양국 간 마찰을 유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양국이 합의제3자의 판단이 평화적 방법하면 법적 강제집행을 보류하거나 정부의 배상금 대집행도 가능해진다. 한국과 일본 최고법원의 판결이 정반대이니 제3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은 평화적 분쟁해결 방식이 된다. 재판 과정에서 화해에 의해 해결책을 도출할 수도 있다.”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를 피하려는 이유는 혹시 모를 ‘패소’ 가능성 때문인데….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한국 일본 모두 부분승소, 부분패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욱 재판 과정에서 양국 간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계사에 남는 재판이 될 수도 있다. 논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와 개인의 문제, 즉 한일 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는가 여부다. 이건 한국이 이긴다. 둘째, 식민지배는 불법인가. 배상의무가 있는가. 이건 한국이 질 수도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은 신생국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선언적으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인정하더라도 배상은 하지 않는다. 셋째, 1인당 1억 원대 배상금은 적절한가. 독일이 폴란드에 배상할 때도, 일본 기업들이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할 때도 대개 2000만 원 안쪽이다. 2007년 강제징용 피해 사망자도 2000만 원, 5·18 사망자 배상금이 4000만 원 선이었다.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지는 잘 모르겠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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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쿠르트 아줌마’의 추억[횡설수설/서영아]

    4월 영국 BBC 아시아판은 방문판매 중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가 유제품을 건네주고 잠시 말벗도 해드리는 16년 차 야쿠르트 아줌마 한영희 씨의 활동을 소개했다. 방송에서 81세 차미자 할머니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는데, 이분이 오면 말동무도 해주고…”라며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홀몸노인 돌봄 활동은 1994년 서울 광진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국 617개 지자체와 연계해 3만여 명을 돌보는 규모로 커졌다. 주 5회, 노인들의 안부를 살피고 뭔가 걱정스러우면 행정기관에 연락해 고독사 예방에도 힘을 보탠다. 홀로 쓰러져 있던 홀몸노인의 생명을 구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노란 옷에 챙 모자, 가방을 메고 이 집 저 집을 오가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대한민국 주부 일자리의 원조였다. 1971년 47명으로 시작해 1998년엔 1만 명으로 불어났다. 지금도 1만1000여 명이 일한다. 개인사업자 형태지만 수입이 안정적이고 근무시간이 짧아 예나 지금이나 주부들에게 인기다. 그동안 가방은 카트로, 다시 냉장설비가 갖춰진 전동카트로 진화했다. 아줌마들의 역할도 시대 변천에 따라 달라졌다. 바야흐로 고령사회, 홀몸노인의 안부를 살피고 돕는 일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정보통’ 노릇을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이 든든한 조직을 만들고 키워온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2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90세를 넘기고도 매일 출근했다고 하니 1969년 창업 이래 만 50년간 현역으로 뛴 셈이다. 요즘이야 유산균 식품을 건강과 장수를 부르는 슈퍼 푸드라고 알아주지만, 창업 당시만 해도 “균을 돈 주고 사서 먹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불모지였다. 창업이념 자체가 ‘건강사회 건설’이었던 만큼, 고인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평생 힘을 쏟았다. 1975년부터 사내에 불우이웃돕기 조직을 만들었고,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전국어린이건강글짓기대회 등을 뚝심 있게 지원했다. ▷첨단 정보기술(IT) 자동화 시대에 사람이 유제품 한 병 한 병을 집집이 배달하는 조직이 건재하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 따스함을 확인하고 정을 나누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아닐까. 한국야쿠르트는 3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야쿠르트 아줌마’란 호칭을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로 바꾸었다. 현장, 특히 노인들 사이에선 여전히 ‘야쿠르트 아줌마’가 우세하겠지만, 이 호칭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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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과 놀자!/주니어를 위한 칼럼 따라잡기]탈(脫)플라스틱

    캐나다 정부가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12일, 온라인에서는 특이한 비닐봉지가 화제를 모았다. 캐나다 토론토의 한 마트가 도입한 일회용 봉투 겉면에는 ㉠‘대장(大腸) 청소회사’ ‘사마귀 연고 도매상’ ‘성인 비디오 천국’ 같은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찍혔다. 창피를 면하고 싶으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라는 권고다.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던 플라스틱이 요즘 천덕꾸러기 신세다. 포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매장이 늘면서 소비자들은 집에서 가져온 빈 병이나 빈 통에 물건을 담아 계산대로 가져간다. 매장 한쪽에는 ‘포장지는 쓰레기’라는 문구가 붙었다. 석유에서 뽑아내 대량 사용한 지 70여 년. 편하고 가성비 좋은 소재로 주목받던 플라스틱은 이제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생산에 5초, 쓰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 걸리는’ 특성 탓이다. 북태평양에서 발견된 폐플라스틱 더미로 이뤄진 섬, 인간이 버린 비닐봉지나 빨대 탓에 생명을 잃는 바다 생물의 모습이 충격을 던져줬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한 사람이 일주일간 신용카드 한 장(5g)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무서운 지적을 내놓았다. 플라스틱 퇴출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지난해 초 중국이 당겼다. 전 세계 폐플라스틱 산출량의 절반을 흡수해온 중국이 돌연 쓰레기 수입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눈앞의 편리함만을 누리며 무심하게 쓰레기를 배출하던 세계인들이 풍요로운 소비와 그 대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1초의 편리함을 위해 자원을 낭비하기보다는 불편함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글로벌리즘(세계화)에 지쳐 보호주의 색채가 강해지는 세계에서 쓰레기의 생산과 소비, 처리와 재활용은 가장 먼저 로컬시대(지역 중심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싸고 편리하면서 환경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 없는 대체재 개발에 대한 기대도 커져 간다. 그런 신물질이 나오기 전까지는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유일한 길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소비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 시대다.동아일보 6월 17일자 서영아 논설위원 칼럼 정리칼럼을 읽고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1. 밑줄 친 ㉠은 행동경제학 이론인 ‘넛지(nudge·부드러운 개입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가 적용된 사례입니다. 다음 중 넛지의 예로 적절한 것으로 고르세요.① 길거리 휴지통을 골대 모양으로 디자인해 사람들이 휴지통에 쓰레기를 넣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만든다.②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하는 비장애인에게 높은 벌금을 내게 한다.③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골목마다 2인 1조의 방범대가 주기적으로 순찰한다.2. 밑줄 친 ㉡에서 활용된 ‘방아쇠를 당기다’는 표현의 의미로 적절한 것을 고르세요. ① 강한 충격을 주다.② 무언가를 시작하다.③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다. 김재성 동아이지에듀 기자 kimjs6@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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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심수관의 恨

    “고향이, 고향이 그립소이다….” 1598년 정유재란으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은 살기 좋은 성내로 옮길 것이 허락되자 이런 말로 거절했다. 이들이 정착한 규슈 나에시로가와(현 미야마)는 언덕 너머로 한반도를 향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70여 명이 대대손손 한복을 입고 모국어를 사용하며 살았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작가인 시바 료타로가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1969년)에서 이런 모습을 그려냈다. 16일 향년 93세로 별세한 심수관 옹은 이때 정착한 심당길의 14대손이다. ▷2년 전 찾아본 그는 가업을 15대에게 물려주고 애견과 함께 한가롭게 집과 요(窯)를 오갔다. 명문대를 나온 그도, 아버지 13대도, 또 그 아버지인 12대도 궁극의 목표는 가업 계승이었다. 혈기왕성한 소년 시절 14대가 “사관학교에 가겠다”고 하자 13대는 마당의 나무들을 가리켰다. “저들은 스스로 원해 여기 심겨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심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노력한다. 우리도 저 나무와 같다.” 14대는 1998년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서 심수관가(家) ‘400년 만의 귀향전’을 열었고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불씨를 채취해 미야마에 옮겼다. 아버지 13대의 유언을 34년 만에 이뤄낸 거였다. ▷조선의 도예가 일본에서 꽃핀 이유로 14대는 ‘다도(茶道)’의 존재를 들었다. 조선의 다완은 일본의 성(城) 하나와 바꿀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다.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 불린 이유다. 조선이 천시했던 도공들을 일본은 사족(사무라이)으로 대우했고 이 장인들이 빚어낸 도예품은 서구사회에 일본 문화를 알리며 팔려나갔다. 이렇게 이뤄진 일본 근대화와 부의 축적이 제국주의로 이어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가 1965년 첫 방한 때 서울대에서 한 강연 얘기가 새롭다. 당시 대학은 한일 수교 반대운동으로 들끓었다. 계란 맞을 각오로 말했다. “당신들이 36년의 한을 말한다면 나는 360년의 한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것 아닌가.” 강연장은 일순 고요해졌고 곧이어 눈물바다가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다시 50여 년, 과거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더 쿨해져 있을까. ▷2년 전, 그는 말끝마다 “다시 한국에 가보고 싶다”며 눈을 가늘게 뜨다가도 “나이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청명한 날씨를 그리워했다. 지금쯤 ‘천 개의 바람’처럼 자유로워진 그의 혼백이 바다 건너 고향땅을 돌아보고 있기를 빌어본다.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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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탈(脫)플라스틱

    캐나다 정부가 2021년부터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12일, 온라인에서는 특이한 비닐봉투가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의 한 마트가 도입한 1회용 봉투 겉면에는 ‘대장(大腸) 청소회사’ ‘사마귀 연고 도매상’ ‘성인 비디오 천국’ 같은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찍혔다. 창피를 면하고 싶으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라는 권고다.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던 플라스틱이 요즘 천덕꾸러기 신세다. 독일의 식료품점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영국의 슈퍼마켓 언패키지드, 미국의 더 필러리 등 포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매장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집에서 가져온 빈 병이나 빈 통에 곡물이나 커피 세제 샴푸 벌꿀 우유 등을 필요한 만큼 담아 계산대로 가져간다. 됫박으로 쌀을 사고 빈 병에 기름을 담고 우유병을 회수해 재활용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풍경이다. 종업원이 챙기지 않아도 소비자가 알아서 구매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매장 한쪽에는 ‘포장지는 쓰레기’라는 문구가 붙었다. ▷석유에서 뽑아내 대량 사용한 지 70여 년. 편하고 가성비 좋은 소재로 각광 받던 플라스틱은 이제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생산에 5초, 쓰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 걸리는’ 특성 탓이다. 북태평양에서 발견된 폐플라스틱 더미로 이뤄진 섬, 인간이 버린 비닐봉지나 빨대 탓에 생명을 잃는 바다생물의 모습이 충격을 던져줬다. 미세먼지처럼 잘게 부서진 미세 플라스틱이 물과 어패류를 통해 인체에 유입돼 쌓인다는 점도 알려졌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한 사람이 일주일간 신용카드 한 장(5g)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무서운 지적을 내놓았다. ▷플라스틱 퇴출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지난해 초 중국이 당겼다. 전 세계 폐플라스틱 산출량의 절반을 흡수해온 중국이 돌연 쓰레기 수입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눈앞의 편리함만을 누리며 무심하게 쓰레기를 배출하던 세계인들이 풍요로운 소비와 그 대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1초의 편리함을 위해 자원을 낭비하기보다는 불편함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글로벌리즘에 지쳐 보호주의 색채가 강해지는 세계에서, 쓰레기의 생산과 소비, 처리와 재활용은 가장 먼저 로컬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싸고 편리하면서 환경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 없는 대체재 개발에 대한 기대도 커져 간다. 그런 신물질이 나오기 전까지는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유일한 길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서도 소비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 시대다.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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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고령사회의 혐로(嫌老)

    ‘자아도취적 직장 상사, 고압적인 아저씨, 부패한 정치인….’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아시아판)가 한국의 ‘꼰대’에 관해 집중 조명했다. 서열문화에 집착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로 꼽고 여기에 저항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세태를 ‘변화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지금은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막상 윗사람이 되면 역시 꼰대라는 조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오랜 경로사회의 전통도 빛이 바래듯 노인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표현들이 기승을 부린다. 국가인권위 노인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 80%가 노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65세 정년 연장 논의가 시작되면 더 심해질 수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일자리를 노인들이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짚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인구 4명 중 한 명이 고령자인 일본에서는 2010년을 전후해 ‘혐로(嫌老)사회’라는 신조어가 확산됐다. 윗세대에 비해 머릿수도 돈도 적은 청년들의 눈에 노인들은 평생 호시절을 보내고 노후복지마저 알뜰하게 챙기는 ‘먹튀’ 세대로 보였다. 40년 뒤면 현역 세대 1.2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된다니,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면 암담할 법도 하다. 급증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서 보듯 ‘마음 같지 않은’ 노년의 현실도 전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공해 대신 ‘노해(老害)’, 약육강식 대신 ‘약육노식(若肉老食)’ 같은 신조어들이 유행했다. 이런 가운데 고령 세대 스스로가 ‘현명하게 늙어가는(賢老)’ 사회를 만들자는 원로 작가의 제언이 나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노인의 현실은 더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가장 오래(평균 73세까지) 일하고, 가장 가난하며(빈곤율 46%), 자살률에서도 1위(OECD 평균의 3.5배)를 기록했다.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에 ‘올인’한 뒤 자신의 노후 준비가 부족한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 조금 뒤처지면 버려놓고 저만치 내빼는 세상에서, 노인들은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 하나 하기도 힘들어졌다. ▷15일은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자 우리 복지부가 정한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학대에는 방치나 무관심 빈곤도 해당된다. 누구나 공평하게 1년에 한 살씩 늙는다. 자신에게 반드시 닥칠 미래를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면 그 인생 사이클은 얼마나 비참할까. 노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후대도 살기 좋은 세상임을 새겨봐야 한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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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日청년들의 해외기피

    ‘따뜻한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원숭이들.’ 한 일본인 지인은 일본 내에만 머물려는 자국 청년들을 이렇게 비유했다. 밖은 춥고 불편하니 그저 따뜻한 물속에 앉아 있다는 것. 일본 청년들의 이런 특질은 최근 일본 내각부가 7개국 13∼29세 10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 조사대상국 중 가장 많은 65.7%의 젊은이가 해외 유학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다음이 65.4%의 미국이고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순. 일본은 가장 적은 32.3%였다. ▷일본 청년들의 ‘국내 지향’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해외 유학생 수는 2004년 8만3000여 명으로 고점을 찍은 뒤 2015년 5만5000여 명으로 떨어졌다. 직장에서는 해외 지사에 발령만 내면 그만둬 버린다. 어딜 가나 일손이 부족하니 아등바등 자리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고도성장기인 1960, 70년대 남극이건 열대정글이건, 세계 그 어떤 오지에 가도 일본 ‘상사맨’들과 마주친다던 시절의 헝그리정신은 모두 옛 얘기가 된 듯하다. ▷이들은 흔히 ‘사토리(달관) 세대’라 불리는 세대적 특성이 있다. 1990년대 초반 버블붕괴기에 태어나 성장기간 내내 ‘잃어버린 20년’을 목격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버렸다. 집이나 차에 욕심이 없고 연애나 결혼도 멀리한 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국내에 있는 게 편하고 안전하다는 인식, 해외 학위를 그리 높이 여기지 않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고도성장과 대량소비 사회에 대한 반동도 작용한 듯싶다. ▷반면 한국 청년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해외로 나가고 싶어 한다. 해외 유학을 원하는 사람 비율이 일본의 2배가 넘는 것은 물론 해외 취업도 선호한다. 지난해 해외 취업자 수는 5783명으로 5년 만에 3.16배로 늘었다. 한국 청년들의 해외 지향은 의욕 있는 청년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적극적이고 영어 잘하는 한국 청년들은 일본 기업에서 대환영을 받는다. 일본인이 기피하는 해외 지사 근무에 손을 번쩍번쩍 들어 인사 담당자들을 기쁘게 한다. ▷일본 청년들을 해외로 보내기 위해 관민 합동 대책회의까지 꾸린 일본 정부가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일일 터다. 하지만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도 실업대란을 겪는 한국 청년들의 해외 지향에는 ‘헬조선’이란 표현에서 보듯 더 나은 세계로의 탈출 욕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추운 해외 대신 따뜻한 온천에 머물 수 있는 일본 청년들이 부러운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다.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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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중장년된 日 은둔형 외톨이

    경찰에 둘러싸여 자택을 나오는 76세 전직 엘리트 관료의 모습은 초췌했다. 구마자와 히데아키 씨. 농림수산성의 2인자인 사무차관과 주체코 일본대사를 역임한 그는 이날 집에서 아들(44)을 흉기로 살해한 뒤 경찰에 전화해 자수했다. 나흘 전 가와사키시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의해 벌어진 무차별 살상사건을 본 뒤 아들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다고 했다. 중학생 때부터 은둔형 외톨이였던 아들은 부모에게 폭력을 휘둘러 왔다. 사건 당일 근처 초등학교에서 들리는 운동회 소리에 “시끄럽다”며 “모두 죽여버리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구마자와 씨를 걱정시킨 가와사키 사건은 지난달 28일 터졌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어린이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자살한 범인(51)은 전형적 은둔형 외톨이였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서는 물론이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같은 소통 수단도 없기 때문. “정말 존재했던 인물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명인간처럼 살았다고 한다. 범인은 어린 시절 부모 이혼 후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 80대 후반인 삼촌이 1월경 그의 방 앞에 ‘생활을 좀 바꾸라’는 메모를 붙인 것에 화를 냈고 이게 뇌관을 건드린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처음 40∼64세 중장년 외톨이들을 조사해 보니 전국 61만여 명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부모나 친지를 최후의 피난처 삼아 지내왔지만 부모 세대가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부모자식의 나이를 붙여 ‘8050 문제’, 또는 ‘7040 문제’라 부른다. 부모들은 자식을 떼어놓고 양로원에 들어갈 수도,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방문을 걸어 잠근 중년 자녀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내고자 전문단체에 의뢰해 문을 부수고 설득하는 장면이 종종 TV로 방영된다. ▷비극은 수십 년 전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과 연결되기도 한다.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들은 청년기인 1990년대에 경기침체와 취직 빙하기를 겪은 세대다. 연애 결혼 취업을 포기하고 ‘프리터’로 연명해야 했고, 몇 년 뒤 경기가 좋아졌어도 구제받지 못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린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얘기 같지 않은가. 한국의 청년들도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하는 말을 듣는다. 높아지는 청년실업, 낮아지는 결혼율, 부모 세대의 부담까지, 우리도 머잖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까 걱정이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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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인보사’ 파문

    주로 노인에게 많은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 주위 뼈와 관절막 등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환자들은 “몸도 오래 쓰면 여기저기 탈이 나게 마련”이라며 통증을 감내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 헤매게 된다. 최근에는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이나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케이주(인보사)’ 등 첨단 의학을 활용한 치료 방법도 부쩍 늘었다. ▷코오롱 생명과학이 2년 전 내놓은 신약 인보사는 한국이 개발한 세계 첫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로 바이오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술 대신 주사 한 방이면 그 지긋지긋하던 무릎 통증에서 한동안 해방된다는 점은 환자들에게 낭보였다. 1회 치료에 700여만 원이 드는 고가인 데다 약효도 2∼3년에 불과하지만 수술이 아닌 치료법을 찾던 중증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국내에서는 2017년 7월 판매 허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임상시험(3상)에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미국에서 3상 승인을 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신약 성분 일부에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가 사용된 사실이 밝혀졌고, 인체 세포 중에서도 신장세포는 암세포와 마찬가지로 무한 증식하는 특성이 있어 종양 유발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오롱 측은 사전에 방사선 처리로 문제 세포를 죽였다고 해명했지만 의학적 안전성을 인정받지는 못하는 듯하다. ▷3월 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국내 제조 및 판매를 잠정 중단시켰다. 이어 코오롱 측이 이 같은 사실을 어느 시점에 알았는지가 쟁점이 되면서 기업의 신뢰성마저 도마에 올랐다. 3일 코오롱생명과학의 미국 자회사가 이미 2년 전에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알았다는 정황을 공시하자 관련 주식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덜컥 주사를 맞아버린 이들의 불안이 가장 크다. 인보사의 임상시험 단계나 시판 후 치료를 받은 환자는 모두 3900여 명. 피해자들을 위한 모임 사이트에는 “암세포를 몸에 주입한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 방송에 나오던데 걱정이 많다”거나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거냐”며 분노를 드러내는 환자와 가족들이 적지 않다. 비싼 가격을 감내하면서도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술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배신감은 더욱 크다. 식약처는 20일 미국 현지 실사를 한 뒤 빠르면 이달 말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회사와 보건당국은 무엇보다 처방받은 환자들의 불안에 신속 정확하게 답해줘야 한다. ‘황우석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을 겪은 국민들의 우려와 혼란을 덜어줄 유일한 방법은 진실 규명뿐이다.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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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나쁜 리더십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리더십의 요체로 ‘해야 할 일의 명확한 설정, 책임, 신뢰’를 꼽는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이 2010년 파산선고를 받은 일본항공(JAL)의 경영을 맡고 가장 먼저 손댄 일은 자리보전에만 연연하며 책임감이라곤 없는 간부들에 대한 리더십 교육이었다. 산하 노조만 8개에 이를 정도로 관료화돼 있던 회사를 2년 8개월 만에 부활시킨 뒤 아무 대가 없이 회사를 떠난 그는 “리더는 높은 뜻, 맹렬한 투지로 개인적 욕심을 버리고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경영의 신’ 수준까지 가지 않아도 리더의 역량에 따라 조직의 성과와 구성원의 행복도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2008년 구글은 관리자 인사자료 1만 건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좋은 리더의 10가지 요건을 추출해냈다. 즉 △좋은 코치가 되어야 하고 △권한 위임을 잘해야 하며 △팀원의 성공과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등이다. 그러나 당장 성과 내기에 바쁜 리더들에게는 버거웠던 듯, 별 효과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SK아카데미 리더십개발센터 김성준 매니저에 따르면 국내 한 기업은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최악의 리더가 되지 않기 위해 꼭 피해야 하는 행동 지침을 마련했다. 이른바 ‘안리특’(안타까운 리더의 특징을 찾아서) 프로젝트다. 조직 내 리더십 평가에서 하위 20%를 차지한 리더들의 특징 5가지를 추출해냈다. △책임 전가 △사익 우선 △언행 불일치 △감정 기복 △주관적 선호 등이 꼽혔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이 특징들의 반대로 하려고 노력하면 된다는 결론이다. ▷‘기업인(Entrepreneur)’지가 뽑은 나쁜 리더의 8가지 특징도 있다. △공감능력 결여 △지나치게 권위적 △우유부단 △사람 보는 눈이 없다 △균형감각이 없다 등이 그것들이다. 여기 더해 ‘일취월장’이라는 경영서에 따르면 나쁜 리더가 진짜 나쁜 이유는 나쁜 리더 아래서 또 다른 나쁜 리더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진다. ▷좋은 리더를 언급할 때와 달리 나쁜 리더의 특징을 따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평가해보게 된다. 경우에 따라 마음속에서 심판자가 되어 누군가를 욕하거나 혐오감을 키우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리더 역할을 하기도 하고 팔로어가 되기도 한다. 나쁜 리더의 사례를 보며 먼저 나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가를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아리스토텔레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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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나루히토 왕과 마사코 비

    오늘 일왕으로 즉위하는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에겐 ‘처음’이란 수식어가 여럿 붙는다. 1960년생으로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세대 첫 국왕이고 200여 년 만에 처음 생전양위로 왕위를 계승했다. 영국에서 공부한 유학파이자 부모가 직접 양육한 첫 왕이기도 하다. 어제 퇴임한 아버지 아키히토(明仁) 상왕만 해도 만 3세가 된 날부터 시종들의 손에 맡겨졌고 부모와는 주 1회 식사 때 만나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1993년 맞아들인 부인 마사코(雅子·55)에 대한 순애보, 혹은 그 이후의 왕실 잔혹사도 적잖이 회자됐다. 미모의 촉망받는 외교관이던 마사코 비는 결혼 직후부터 줄곧 ‘아들 낳아라’라는 범국가적 압력에 시달렸다. 왕실법(왕실전범)에 따르면 왕위 계승은 아들만 가능한데 당시 왕세자의 남동생인 후미히토(文仁)에게도 딸만 둘이었다. 8년 만에 인공수정 끝에 낳은 자식이 딸 아이코(愛子·17)다. 이후로도 “왕가의 대를 끊을 거냐”는 무언의 압력이 이어졌지만 왕세자는 꿈쩍 않고 아내를 감쌌다. 마사코 비는 의사로부터 ‘적응장애’ 판정을 받고 오랜 요양생활을 했고 당시 왕세자는 “궁내에서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듯한 일이 없지 않았다”며 아내를 감쌌다. ▷이런 이유일까. 일본 일각에서는 왕실과 관련해 젠더(性) 격차 논란도 일고 있다. 즉위식에 왕비조차 참석할 수 없는 현실이 이상하다는 지적부터 남성 직계 혈통을 고집한다면 왕실은 조만간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들려온다. 일본 국민 4분의 3 이상이 여성 왕위 계승을 지지하지만 현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2006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여왕 승계가 가능하도록 왕실전범을 개정하려 했으나 마침 후미히토 왕자 부부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그해 9월 히사히토(悠仁·13) 왕자가 태어나자 열도는 축하 분위기에 빠졌다. 그는 1일부터 아버지에 이어 왕위계승 순위 2위다. ▷1일 0시부터 ‘레이와(令和)’ 시대가 시작됐다. 2021년까지 장기 집권 발판을 굳힌 아베 신조 총리는 개헌을 통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내걸고 있다. 아키히토 상왕은 이런 아베 총리를 견제하며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피력해 왔다. 나루히토 왕세자도 2014년 공식 석상에서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며 호헌을 강조한 바 있다. 2007년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우정의 가교 콘서트’에서 정명훈 씨와 함께 비올라를 연주하며 양국 우호를 호소한 적도 있다. 나루히토 일왕 시대 일본이 어디로 갈지 관심이 쏠린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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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꿀잠’ 산업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이는 OECD 평균보다 41분 짧고 중국의 9시간 2분, 프랑스의 8시간 50분과 비교하면 한참 동떨어졌다. 그래도 꼴찌는 7시간 22분의 일본에 내줬으니 위안이 될까. 다만 조사 대상을 직장인으로 좁히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6시간 6분으로, 만성 수면 부족 상태다. ▷잠 부족은 고혈압, 심부전, 뇌경색 등 각종 질병의 원천이 되고 판단력은 물론 행복감에도 악영향을 준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스탠리 코런은 저서 ‘잠도둑들’에서 전구를 발명해 인류의 밤을 밝힌 토머스 에디슨을 인류의 적으로 돌렸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해온 인류가 에디슨 탓에 ‘잠 빚’에 시달리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또 스스로 잠을 점차 줄여가며 효율적인 수면시간을 찾아봤더니 하루 5시간 이하로 자면 “바보가 되더라”는 결론도 내렸다. 호주의 연구진이 24시간 동안 자지 않은 사람의 뇌 기능을 조사해 보니 혈중알코올농도 0.1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졌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운전자라면 면허가 취소되는 수치다. 수면 부족이 사회적 비용과 위험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잘 자는’ 데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불면증이나 수면무호흡증을 다루는 수면클리닉이 성업 중이다. 산업계에서는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경제)’란 신조어가 생겨 첨단기술인 ‘슬립테크(Sleeptech)’를 곁들여 현대인의 숙면을 돕는다. 숙면을 위한 국내 시장규모는 2012년 5000억 원에서 최근 2조 원대로 부풀어 올랐다. 숙면 매트리스나 ‘기절 베개’에서부터 백색 소음을 들려주거나 수면의 질을 체크하는 애플리케이션 등 첨단 상품들이 소비자에게 ‘꿀잠’을 안겨주겠다고 유혹한다. 자투리 시간에 낮잠을 자게 해주는 수면 카페, 시에스타 영화관, 수면 캡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현대인의 잠 부족은 시간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저널리스트 브리지드 셜트는 저서 ‘타임 푸어’에서 현대인들이 시간에 쫓기는 이유를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없고 일정이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찾았다. 결국 숙면은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조금이라도 갖는 것, 욕심과 압박감을 내려놓는 것, 혹은 이런 상태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 아닐까. 여기에 수면에 적당한 환경과 운동, 그리고 담배 커피 술 등 자극적인 성분의 조절은 기본이다. 잘 자야 건강을 지키고 행복해지며, 행복해야 잘 잘 수 있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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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 현장칼럼/서영아]정치가 악화시킨 한일관계, ‘경제’만으로 풀 수 있을까

    “경제 교류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우려하는 일본 기업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오랜만에 듣는 전향적 표현이었지만 악화된 한일관계가 이미 경제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 현실인 데다 ‘남의 얘기하듯’ 하는 화법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문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서울저팬클럽(SJC) 모리야마 도모유키(한국 미쓰이물산 대표) 이사장. SJC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으로 산하에 400여 기업법인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사상 최악’이라는 한일관계는 한국에서 일하는 일본 기업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한국 내 日기업인들의 불안과 걱정 한일 관계의 현주소는 일본 기업인들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두가 “(한일) 어느 쪽에서건 욕을 먹게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처음에는 응하겠다고 했다가 다음 날 생각이 바뀐 사장도 있었다. “한국인 직원들이 ‘공연히 주목받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걱정하더라”고 했다. 강제징용 소송의 대상이기도 한 중공업회사 서울지점장인 A 씨(50대)는 “재판 결과가 50여 년 전 국제협정을 무효로 돌리려 한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며 “만약 우리 회사에 소장이 정식으로 와서 압류와 강제징수 절차에 돌입한다면 본사 차원에서 즉각 한국에 대한 국가 리스크를 재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 리스크는 글로벌 기업이 해외 투자 시 평가하는 특정 국가의 정치적 대외신인도. 이 경우 한국은 분쟁국가 수준의 리스크 국가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고 A 씨는 전망했다. 서울 근교에 공작기계부품 생산회사를 설립해 30년 이상 사장직을 맡아온 B 씨(70대)는 “요즘 한국은 국가로서의 일관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생국가처럼 군다면 국제사회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부쩍 심해진 반일 기류에도 걱정이 많다. “나를 제외한 전 직원이 한국인인데, 이들도 위축되고 있다”고 전한다. 40대부터 한국에서 일하며 모범납세기업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는 그는 “우리 세대가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해두면 아들 손자 세대에는 양국 간에 더 나은 관계가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요즘 허무감이 많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 정부에 세금 많이 내기 싫어’ 직원 80여 명에게 연말 보너스를 1600%씩 안겨줘 버렸다고 했다. ○ 2012년후 급속히 준 日의 한국투자 한국에 대한 일본 기업의 투자는 양국관계의 부침(浮沈)에 따라 오르내렸다. 정점은 2012년의 45억 달러. 그해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 발언(일왕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독립유공자들을 찾아가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한일관계에 치명타가 됐고, 투자액은 이듬해 26억 달러대로 폭락한 뒤 지난해 13억 달러를 기록했다. 2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전범의 아들’ 일왕이 직접 위안부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한 발언은 일본인들을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의 결과는 올해 말에나 숫자로 나올 터다. 물론 투자 감소의 요인은 좀 더 복잡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 대기업 간부는 “일본이 수십 년 전 미국 유럽에 투자하던 것을 한국 중국으로 옮겼듯 요즘은 이를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돌리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올 초 내놓은 한중일 각 100개사의 경영자 설문조사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옮기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2019년도에 설비투자를 늘릴 대상국을 묻는 질문에 “한국”이라 답한 일본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日은 한국때리기, 韓은 일본 ‘패싱’ 지금까지 한일 간에는 수없는 도발과 반응이 있었지만 이번엔 양상이 좀 다르다. 과거 일본이 도발하고 한국이 화내는 구도였다면 이번에는 한국에서 분쟁 요인이 터져 나오고(강제징용 판결 등) 일본이 반발한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한국 ‘배싱’(bashing·때리기)이, 한국에서는 일본 ‘패싱’이 진행 중이다. 이런 갈등의 밑바탕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2012년 말 재집권에 성공한 뒤 과거 일본이 국제사회에 해온 사과와 반성인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재검증을 하고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우경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 깔려 있다. 일본에서는 3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경제 보복을 거론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에 경제 보복하자”거나 “단교(斷交)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식인들이 보는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4월호가 ‘한일 단교 시뮬레이션’을 특집기사로 실었을 정도다. 전직 외교관과 교수, 자위대 간부, 경제인, 언론인이 함께 점검한 분야별 시뮬레이션 결과는 “(일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 경제 제재를 한다면 한국에 피해를 주는 만큼 일본도 피해를 본다. 일본 정밀부품 메이커들은 삼성과 LG가 주요 납품처이고 양국은 서로 3대 교역 상대국이다. 양국 경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구조를 파괴하는 데서 오는 피해액은 계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는 결론이다. 일본 내에서는 양국관계가 삐걱대는 이유로 ‘한국의 성장’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대 교수는 “한국의 정권이 지지율을 높이려 대일 비판을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너무 거기 갇히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커져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나 의존도가 저하했기 때문에 대일 정책을 가볍게 취급하는 점도 있다는 것. 다만 경제 성장에 걸맞은 행동양식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따라온다. 한국에서 40년을 거주한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산케이신문 객원논설위원은 “일본의 가장 큰 불만은 문재인 정권 이래 한국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 바탕에는 문재인 정권의 일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근본적으로는 한국은 식민지배 피해자니까 일본에 대해 ‘마구 대해도 괜찮다’는 의식이 남아 있는 탓이라고 분석한다.○ 한미일 3국 공조도 혼란 악화되는 한일관계는 외교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한일관계가 삐걱대면 한미일 관계도 어려워진다. 미국으로부터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서도 한일관계를 개선해 달라는 신호가 자꾸 오는 이유다. 한반도는 중국 러시아의 대륙세력과 미국 일본의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각축장이다. 누구와 제휴해 강자에 대항할 것인가는 불가피한 선택지다. 한국이 북한만 바라보는 사이 중국과 일본은 2012년 센카쿠 갈등 이후의 대립관계를 풀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일을 앞두고 있다. 국제사회는 철저히 실리를 챙기는 각축장인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 정부는 돈(경제)을 내고 외교관계(정치)가 성립됐다. 지금 세계는 북한 핵(정치)를 포기시키기 위해 경제제재(경제)를 한다. 정치와 관계없이 경제만 잘 된다는 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얘기다. 다행히도 재계를 중심으로 한일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에 시동이 걸렸다. 전경련은 15일 한일 긴급 좌담회를 열고 정부와 기업이 참여하는 재단 설립을 통한 법률적 화해 추진 등 관계정상화를 일본 측에 제안했다. 5월 일본은 레이와(令和)를 연호로 하는 새 일왕시대가 열리고 6월에는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있다. 경제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정치가 나서야 할 순서다. 서영아 논설위원sya@donga.com}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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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일본 새 연호 ‘레이와’

    ‘레이와(令和).’ 일본 정부가 어제 공표한 새 연호(年號·元號)다. 다음 달 1일이면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하며 ‘레이와 시대’를 열게 된다. 새 연호는 일본 최고(最古)의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서 따왔다. 과거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247개의 연호와 달리 첫 ‘일본제’ 연호다. 만요슈 ‘매화의 노래’ 서문에 등장하는 ‘초봄 좋은 달이 뜨니 공기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初春令月氣淑風和)’에서 두 글자를 따왔다. 아베 신조 총리는 새 연호에 대해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뜻”이라고 밝혔다. ▷왕의 치세를 뜻하는 연호는 기원전 중국에서 유래해 한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됐다. ‘황제는 시간도 지배한다’는 사고에 근거해 왕의 권위를 높이는 데 쓰였지만 백성들의 안녕도 염원했다. 그 뒤 각국에서 연호가 사라지면서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쓰는 현대 국가가 됐다. 지금도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연도를 표기할 때 연호를 사용하니 일상생활에 밀접하다. 다만 사용자는 감소 추세다. 마이니치신문 1975년 조사에서는 82%가 ‘주로 연호를 사용한다’고 했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34%로 줄었다(연호와 서기를 병용한다는 답을 합하면 68%). 최근 몇몇 시민이 “연호가 바뀌는 것이 시간의 연속성을 끊어 ‘개인의 존엄’과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민이 ‘왕의 시간’에 갇혀 세계와 유리된다는 주장이다. ▷일본인들에게 일왕이 국가 통합의 상징이듯 연호도 단순한 연도 표기법은 아닌 듯하다. 특정 시기 민족의 정치와 문화가 어우러진 집단기억과도 같다. 그러니 왕이 바뀌어 연호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수십 년 만에 ‘시대가 바뀌는’ 엄청난 일이 된다. 어제 일본 언론은 이른 아침부터 연호 결정 과정을 생중계하며 기대감에 들썩이는 자국 분위기를 전했다. 일왕이 바뀌는 걸 한일관계의 새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쇼와(昭和·1926∼1989) 시대가 침략전쟁과 패전, 전후 복구와 고속 경제성장기였다면 이달 말 막을 내리는 헤이세이(平成·1989∼2019)는 평화로웠지만 동일본 대지진 등 거대 재해와 ‘잃어버린 20년’, 저출산 고령화가 본격화한, 일본이 움츠러든 시기였다. 아베 총리는 어제 만요슈의 의미를 강조하며 “매화처럼 피어나는 일본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강대국일수록 자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글로벌 세태에 더해, 유독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국수성의 그림자가 엿보였다면 지나친 걸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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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오버투어리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 더발런은 관광객들이 성매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홍등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시가 내년 1월부터 홍등가 가이드 투어를 금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주민 85만 명인 암스테르담에 지난해에만 관광객 1900만 명이 몰렸고, 2025년에는 29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취해진 조치다. 성매매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에서 “성 노동자들을 구경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회 결의도 한몫했다고 한다. ▷과도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를 점령하고 현지 주민의 삶을 침범하는 오버투어리즘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살던 곳이 관광지화하면서 주민들은 환경생태계 파괴, 교통 대란, 주거난 등에 시달리게 된다. 땅값이 오르면서 임대료도 급등한다. 결국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관광+젠트리피케이션)마저 일어난다. 60여 년 전 17만 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3분의 1로 졸아든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대표적인 경우다. ▷유명 관광도시들은 온갖 대책을 내놓는다. 연간 5000만 명이 찾는 일본 교토는 휴대전화 망을 활용해 방문자를 측정하고 관광 인파를 분산시키고 있지만 별로 뾰족해 보이진 않는다. 몰려드는 관광객은 물론 지역경제에 큰 힘이 된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은 2013년 1036만 명에서 지난해 3100만 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들이 창출하는 내수가 해외로 나갔던 기업을 되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 효과까지 낳고 있다. 가령 관광객 수요 덕에 매출이 급증한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는 36년 만에 일본 국내에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 1990년대 이후 침체돼 있던 일본 전국의 땅값도 지난해 27년 만에 올랐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 1535만여 명. 서울 북촌 한옥마을과 전주 한옥마을, 제주도 등에서는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와 소음,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의 불편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북촌에서는 시간제로 관광을 허용하는 등의 자구책 도입에도 나섰다. 차제에 지방과 외곽 등에 좀 더 많은 관광자원을 개발해 관광객을 분산함으로써 오버투어리즘을 피하면서도 관광 특수를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할 듯하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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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한국인의 ‘스위스 안락사’

    한국인 2명이 2016년과 2018년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발적 안락사를 지원하는 국제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의 도움을 얻었다. 같은 방식으로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준비 중인 한국인이 107명에 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안락사는 크게 의사의 도움으로 약물을 주입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인 것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 즉 존엄사로 나뉜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목적은 유사하다. 세계에서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된 곳은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미국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일부 주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외국인의 안락사를 지원하는 곳은 스위스가 유일하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3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치명적 질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한 호주의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그런 예다. 그는 104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고령 탓에 삶의 질이 악화됐고 행복하지 않다”며 안락사가 합법화된 스위스로 가겠다고 공표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뜨기 하루 전까지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94)가 2016년 말 “나는 안락사로 가고 싶다”는 글을 잡지에 기고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죽음을 논하는 것이 금기시돼온 일본에서 관련 논의와 연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는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안락사 합법화는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이며 고령자가 늘어나는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사회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인류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돼 3만5000여 명이 연명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했고 11만4000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는 가운데 이미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해외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논의, 좀 더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필요는 없을까.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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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트럼프식’ 국가비상사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이유로는 미국 남부 국경지역에 마약과 성폭력 문제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자신의 선거공약인 국경장벽 설치를 위해 사상 최장기 ‘셧다운’마저 불사했지만 충분한 예산 확보에 실패하자 ‘의회를 뛰어넘는’ 해결 방안으로 이 같은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웬만한 한국인들에게 ‘국가비상사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단어다. 1971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선포했고 당시 국회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법적 뒷받침을 해주면서 이듬해 10월 유신 독재체제 수립으로 이어졌다. 국가비상사태는 1979년 10·26사태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비상계엄 확대 과정에서 다시 선포됐다. 이후 1981년 12월 국회에서 관련 법이 폐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전쟁이나 내란, 천재지변 등이 닥쳤을 때 행정부가 위기에 빠르게 대처하도록 1976년 국가비상법이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국가적 비상상황’이라고 선언(declaration of a national emergency)하면 의회 승인 없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후 40여 년간 대통령들이 58회에 걸쳐 국가비상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을 보면 권력 강화나 강압적 물리력 동원 수단으로 주로 이용됐던 한국이나 제3세계의 비상사태 선포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령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11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신종 플루가 유행하자 국가비상을 선언했다. 대부분 국제 분쟁이나 국민의 안전 및 건강과 직결되는 이슈였다. ▷미국 내에서는 멕시코와의 국경장벽 문제가 ‘비상사태’인가에 대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야당은 대통령이 가공의 비상사태를 만들어 냈다며 무효화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 2020년 재선 가도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승부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높다. 1971년 한국의 사례에서 그러했듯 비상사태는 위정자의 권력 강화에 악용되는 일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에서 ‘트럼프식 비상사태’는 얼마나 먹힐 수 있을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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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사망사고 낸 96세 운전

    96세 노인이 몰던 차량에 치여 31세 보행자가 사망했다. 사고를 낸 노인은 12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주차장 입구를 들이받은 뒤 후진하던 중에 보도를 걷던 행인을 치어 숨지게 했다. 정확한 경위는 차차 나오겠지만 노인은 지난해 고령 운전자 적성검사를 무난히 통과한 데다 음주 상태도 아니었다고 한다. ▷장수사회의 재앙일까. 고령 운전자들이 일으키는 교통사고 소식은 해외에서도 들려온다. 올해 98세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은 지난달 맞은편 운전자를 다치게 하는 사고를 일으킨 뒤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했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에서는 2017년 교통사고 사망자 35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고령자가 일으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 경위가 보도될 때마다 “브레이크인 줄 알고 액셀을 밟았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고령자들의 설명이 판박이처럼 반복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곤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을 과거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다. 일부 지자체가 노인들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유인책으로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1998년부터 65세 이상 운전면허 자진반납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해부터는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때 인지기능(치매) 검사를 도입했다. 그런 덕인지 최근에는 연간 고령자 30만 명 이상이 면허를 반납하고 있다. ▷이런 캠페인이 먹히는 가장 큰 힘은 본인의 자각과 가족의 격려에서 나오는 듯하다. 일본 미디어에는 자발적으로 면허를 반납한 고령 명사들의 체험담과 주변 어르신을 어떻게 설득해 마음의 상처 없이 면허를 포기시킬까 고심하는 사연들이 자주 소개된다. 장애물이 있으면 멈춰서는 자동 브레이크도 보급되고 있다. 노화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충격은 과거 너끈히 할 수 있던 일을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지기능과 운동 반응속도는 떨어지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마음은 한결같다. 그렇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자신감만으로 운전대를 잡기에는 본인은 물론 타인의 생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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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서영아]‘성실한 사죄’란….

    ‘정의를 위해 싸워온 전시 성노예 피해자.’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NYT)가 이 같은 표현으로 고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는 부고를 싣자 7일 일본 정부가 반론을 보냈다.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에게 성실한 사죄(sincere apologies)를 해왔다’는 주장이 골자다. 외무성 보도관 명의의 이 반론문에는 “일본 정부는 이미 전 위안부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거나 “NYT는 화해·치유재단의 지원을 모든 위안부가 거절한 것처럼 썼지만 생존 위안부 47명 중 34명이 (지원금을) 받았다”는 주장도 담겼다. ▷사죄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실’이란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가해자가 성실했다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죄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성실한 사죄라 하기 어렵다. 그것도 여성의 명예와 존엄,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무척 다루기 힘든 과제를 거론하면서 ‘성실’이란 그리 가볍게 쓰일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비근한 예로 2015년 12월 이뤄진 한일 간 위안부 합의는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이뤄진, ‘성실함’이 결여된 내용이 문제였다. 합의문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도 담겼지만 피해자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일본이 과거 몇 차례 사과를 한 것은 사실이다.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했고 1995년 무라야마 당시 총리는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사죄편지와 지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모리 등 역대 총리 4명이 피해자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냈다. 이렇다 보니 그들 표현대로 ‘골포스트를 옮기는 경기’를 강요당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과와 반성을 통해 조금씩 틔울 수 있었던 치유의 싹을 짓밟은 것은 바로 아베 정권이다. 2012년 말 집권 이래 고노 담화의 검증에 나서는 등 역사수정주의에 치우치는 태도를 보여 기존의 반성과 사과의 진솔성마저 훼손했다. 정말 일본의 명예와 위신을 생각한다면 부고 기사에까지 일일이 반론하는 속 좁은 행태보다는 인류 보편의 관점에서 여성 인권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역사인식을 재고해보는 게 어떨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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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서영아]한일관계, 정치인 책임이다

    “지금의 한국처럼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일본인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일본 자민당 나가오 다카시(長尾敬) 중의원 의원이 10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강제징용판결부터 레이더 갈등까지,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들어 일본인이 한국에 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리트윗에는 많은 ‘보통’ 일본인의 한국 경험담이 달렸다. 나가오 의원의 ‘우려’를 뒤트는 내용이 많다. “음…. 무슨 일을 당하냐면, ‘일본인? 먹는 법 알아요?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요’라며 고기 굽는 걸 도와주거나 길을 헤매면 서툰 일본어로 알려주는 사람이 많아 너무 힘들더라.” “매운 고등어조림을 시켰는데 ‘일본인이 시키는 건 처음 봤다’며 왠지 엄청 기뻐하더니 기본반찬을 잔뜩 담아주고 더 먹으라고 강제로 리필도 해주고 선물이라며 김치와 김을 싸주더라. 한국에선 정말 뭘 당할지 몰라, 상식을 벗어난 나라야.” 직설적인 면박이 아니라 유쾌하게 비틀어 풍자하는 격조는 물론이고 ‘도발하는’ 정치인에게 조용히 논박하는 민초의 현명함이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어디건 현명한 시민들만 있는 건 아니다. 한일 양국이 평행선 공방을 거듭해온 ‘레이더 갈등’ 때, 양국 인터넷에서는 “그때 격추했어야 한다”(한국 측)거나 “침몰시켜버리지 그랬느냐”(일본 측)는 ‘용감무쌍’한 여론도 보였다. 특히 한국에는 “전쟁불사” 등 극단론이 꽤 있었다. 이들은 혹 전쟁이라도 하게 되면 자신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또 방공식별구역을 수시로 침범하는 중국에 대응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일본까지 적대한다는 게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될까. 한일관계가 가히 최악이라고 할 상황, 이달 말로 일본 근무를 끝낼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수습하려는 노력 자체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한일관계 방치가 관계 악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들린다. 재일교포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조차 20일 지상파 TV에서 “문 정권의 태도는 반일이라기보다 경일(輕日), 즉 무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일본과의 관계는 아무래도 좋다”는 감각이 만연한 듯하다. 레이더 공방은 21일 일본 방위성이 한국과의 실무자 협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일단 ‘쿨 다운’ 분위기다. 더는 논란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사태 초기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이 트위터를 통해 제기했던 의견, 즉 “이 정도의 일은 세계에서 군이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난리를 피울 일이 아니다”라는 식의 지적이 다시 떠오른다. 그의 견해에 비춰보자면 공해상 경계감시 체제에서 충돌 위기가 수시로 있다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중국과 일본이 동맹국도 아니면서 비상시 군사 충돌 회피 시스템인 ‘해공 연락 메커니즘’을 만들고 핫라인을 설치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충돌도 한일관계가 좋은 상황이었다면 서로 충분히 양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네 탓 공방’이 격화되다 보니 서로 감정만 악화됐다. 배후에는 정치인의 입김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의 상황 인식은 현명하다지만 양국에는 반일 감정, 반한 감정을 조장하고 이용하려는 무책임한 정치인도 적지 않다. 정치가 적대 일변도로 가면 지금은 상대국에 호의적인 민간인들마저 돌아설 수 있다. 국가 간 관계는 ‘전부 또는 전무’의 세계가 아니다. 접점을 찾고 갈등을 해소하고 윈윈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일 간 문제에 이젠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다. 더 이상 방기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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