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이세형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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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세형 국제부장입니다. 카이로특파원, 카타르 아랍센터 방문연구원을 지냈습니다.

turtle@donga.com

취재분야

2025-01-24~2025-02-23
중동73%
국제일반10%
칼럼7%
국제정세7%
국제정치3%
  • 트럼프, 중동 화약고 터뜨렸다

    이란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 담당 특수부대인 ‘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63)이 미군의 폭격으로 3일(현지 시간) 사망했다. 이란 지도부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가 즉각 보복을 선언하면서 중동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내 미국인들에게 소개령을 내렸고, 한국 정부도 이라크 내 한국인 보호조치를 취했다. 중동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세계 경제도 출렁이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군은 해외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솔레이마니의 차량을 공습했다. 이번 공습으로 솔레이마니와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조직(PMF)의 부사령관인 아부 마흐디 알 무한디스 등 최소 6명이 사망했다고 CNN이 전했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이자 이란 군부의 핵심 실세다. 하메네이는 “혹독한 복수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전체 병력 규모가 55만 명에 달하고,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미사일을 대거 보유한 군사강국이다. 중동 내 미군 기지는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등 중동의 미국 우방국을 공격할 수 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같은 이른바 ‘시아 벨트’ 지역에선 친이란 민병대를 이용한 보복 공격도 가능하다. 특히 이라크에서 정규군에 맞먹는 강력한 군사조직인 PMF도 복수에 동참하겠다고 밝혀 이라크의 정세도 악화되고 있다. 이라크 주재 미대사관은 3일 긴급 성명을 통해 “이라크와 중동의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모든 미국 국적자는 이라크를 즉시 떠나야 한다”고 공지했다. CNN은 이라크 내 미국 정유업 관계자들이 탈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는 여행금지국가인 이라크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받아 1월 초 근로자를 파견하려는 우리 기업에 이라크 방문을 취소하거나 입국 계획을 미룰 것을 권고했다. 중동 소식통은 “미국-이란 군사 충돌은 세계 경제와 중동 외 지역에도 심각한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위험 고조에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일 장중 한때 배럴당 4.1% 오른 63.69달러, 영국 런던 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4.3% 오른 배럴당 69.08달러로 치솟았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한기재 기자}

    • 20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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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폭격에 솔레이마니 이란 사령관 사망…중동 정세 ‘일촉즉발’ 위기

    이란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 담당 특수부대인 ‘쿠드스군’의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63)이 미군의 폭격으로 3일(현지 시간) 사망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즉각 보복을 선언해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다. 중동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군은 해외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했다”며 “솔레이마니는 이라크와 중동 지역의 미국 외교관과 군인들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활발하게 만들어 왔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솔레이마니의 차량을 공습했다. 최근 주이라크 미국대사관 공격을 주도한 이라크의 시아파 성향 민병대 카타입헤즈볼라(KH)의 창설자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도 사망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솔레이마니는 하메네이의 최측근이자 이란 군부의 핵심 실세다. 하메네이는 “혹독한 복수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전체 병력 규모가 55만 명에 달하고, 특수부대와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미사일을 대거 보유한 군사강국이다. 중동 내 미군 기지는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등 중동의 미국 우방국을 공격할 수 있다. 또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같은 이른바 ‘시아 벨트’ 지역에선 친시아파 민병대를 보복 공격도 가능하다. 중동 소식통은 “미국-이란 군사 충돌은 세계경제와 중동 외 지역에도 심각한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3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3월물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4.17% 오른 배럴당 69.16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탄핵심판, 이란과의 충돌까지 겹치면서 북한까지 신경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군사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로 재차 확인됐기 때문이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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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이란 軍실세 제거…“北에 강력한 경고로 작용할 것”

    이란 혁명수비대의 핵심 조직인 쿠드스군의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의 공습으로 2일(현지 시간) 사망함에 따라 2018년 5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합의(JCPOA)’ 탈퇴 뒤 고조돼온 양국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미-이란 갈등 확산은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5, 6월 중동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소속 유조선 피격, 6월 이란의 미군 무인기(드론) 격추,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생산시설 피격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란이 주도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이란은 관련 사건들이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미국이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맞서왔다. 다만 그동안 양측은 정면 대결은 자제해왔다. 하지만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이고, 군부의 핵심 실세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란으로서도 보복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했다는 점을 공개하면서 더 이상 군사력 사용을 자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미국과 이란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며 “중동 전역에서 두 진영 간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같이 이란의 정치·안보 영향력이 막대한 ‘시아벨트’ 지역에서 이란 측이 미국 또는 미국의 중동지역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국민과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이란은 시아벨트에 자국군을 일부 파견했고, 현지의 시아파 민병대들을 지휘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헤즈볼라의 경우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 전쟁을 벌여 큰 피해를 입혔고, 1983년 레바논 내 미 해병대 사령부를 공격하는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다니엘 바이맨 조지타운대 외교학과 교수는 브루킹스연구소 기고를 통해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에 이란군과 함께 다양한 현대 특수전에 참여하며 역량을 키웠고, 10만여 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거리 3000km 수준의 미사일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사우디와 UAE의 석유, 전력, 담수화 관련 시설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란은 중동 내 미군 기지와 미국의 우방국들을 공격할 수 있다. 이란과의 갈등이 깊어지면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의 탄핵심판과 이란과의 충돌까지 겹치면서 북한까지 신경을 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가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군사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기 때문이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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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G 타고 밀려오는 ‘AI 쓰나미’… “기술패권 경쟁 올해가 승부처”

    #1. 미국 보훈처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자살 징후를 보이는 전역 군인을 사전에 파악, 관리하는 ‘리치 벳(Reach Ve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범죄자를 예고해 검거하는 미래사회를 그려 충격을 줬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자살 위험군을 미리 판별한다는 것이다. AI는 전역 군인들 가운데 정신적 장애를 초래할 만한 대형 사건 경험, 의약품 처방 전력, 치료 기록 등 정보를 조합해 12개월 이내에 자살 가능성이 높은 상위 0.1%를 찾아낸다. AI 자살예방 시스템을 도입한 뒤 전역 군인의 자살이 연간 250명 줄었다. #2. “1∼4번 중 불량 반도체 칩이 몇 번인 것 같으세요?”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송파구 삼성SDS에서 AI 기반 불량 검출 시스템을 시연하던 직원이 질문했다. 눈으로는 네 개의 칩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AI는 불량품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중국과 베트남의 스마트폰 공장을 비롯해 전 세계 수십 곳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실제로 활용돼 불량 검출 정확도 95%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AI 시스템 ‘넥스플랜트’였다.○ 올해가 AI 기술 패권의 ‘결정적 해’ 동아일보 기자들이 찾아간 세계 각국의 AI 현장에서는 “올해가 AI 기술 패권을 잡기 위한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공통으로 나왔다. 이미 첨단산업의 패러다임을 조용히 장악해나가고 있는 AI의 물결이 5세대(5G) 통신 확산에 힘입어 쓰나미처럼 일상생활 곳곳으로 침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 횡단보도에 2017년부터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화면에는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넌 사람의 얼굴이 뜬다. 안면인식 AI가 그 사람의 이름과 정확한 시각을 기록해서 지금까지의 무단횡단 기록을 보여주고, 통신사 시스템과 연결해 당사자에게 경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개인정보를 비롯한 모든 정보가 사실상 정부에 귀속된 중국은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AI가 확산되고 있다. 안면인식 AI로 지하철·공항의 출입, 쓰레기 분리배출 관리, 수업 태도 감시까지 현실화됐다. 아예 정부의 진두지휘 아래 AI 개발 선두주자인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 커다쉰페이라는 4개 대형 기업이 각각 자율주행자동차, 의료 및 헬스, 스마트시티, 음성인식 등 특화된 기술개발 책임을 맡은 모양새다. 인구 860만 명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AI 스타트업 천국인 미국(1393개), 중국(383개)에 못지않은 362개 스타트업이 활동하며 글로벌 AI 시장의 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스타트업들이 AI 응용기술을 개발하면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사간다. 2017년 인텔이 153억 달러에 인수한 AI 기반 자율주행자동차 업체인 ‘모빌아이’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이 빠르게 소비되고 다시 탄생하는 왕성한 AI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 기술은 다 있다, 남은 건 시간 싸움 글로벌 AI 시장은 이제 시간과의 싸움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 1위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인 삼성SDS의 이은주 빅데이터분석팀 상무는 “AI의 요소 기술은 세상에 이미 존재한다. 남은 것은 누가 빨리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라고 했다. AI가 발전하려면 ①학습 가능한 양질의 데이터 ②고성능 컴퓨팅 ③차별화된 알고리즘이 필수적이다.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컴퓨팅 기술이라는 기반 조건은 이미 많다. 이제는 AI를 실생활과 산업에 접목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누가 먼저, 더 많이 개발하느냐가 글로벌 AI 패권을 쥐는 열쇠라는 것이다. 앞으로 AI가 상용화될 시장은 크게 기업과 기업 간 거래(B2B)와 기업과 개인 간 거래(B2C)로 나눌 수 있다. B2B 분야에선 크게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 △마케팅 △물류 △고객센터 △배달·컨시어지로봇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상무는 “기업마다 축적해온 데이터와 활용 분야에 따라 주력할 수 있는 부문이 다르다. 예를 들어 삼성은 제조와 물류 시장에서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B2C 분야에선 △음성인식 비서 △콘텐츠 큐레이션 △학습 △의료복지 △금융 시장이 있다. 전문가들은 아침에 일어나 AI 스피커에 그날의 스케줄과 날씨를 묻고, 개인의 취향을 알고 있는 AI가 골라준 음악을 들으며, AI가 추천해준 펀드에 투자하는 일상이 ‘구보 씨의 하루’가 될 것으로 본다. 일상에 스며든 AI 시장은 얼마나 커질까.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매킨지에 따르면 2025년 AI 시장은 최대 6조7000억 달러(약 775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진형 중앙대 석좌교수(전 인공지능연구원 원장)는 “현재로선 시장의 규모를 가늠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 AI는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 기초가 될 것이다. 마치 증기기관―전기―컴퓨터와 같은 인류 범용기술이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인지, 학습 등 인간의 지적능력(지능)의 일부 또는 전체를 컴퓨터를 이용해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1956년 존 매카시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가 만든 ‘다트머스 회의’라는 학술회의에서 AI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초기에는 프로그래머가 각각의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주고 정해진 로직 안에서만 생각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인간의 뇌신경망을 본뜬 ‘딥러닝’ 기술이 확립되면서 AI의 연산 능력은 2.3개월에 2배씩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텔아비브=이세형 특파원}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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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승부는 올해부터 시작”…산업과 일상 곳곳으로 파고드는 AI

    #1. 미국 보훈처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자살 징후를 보이는 전역 군인을 사전에 파악, 관리하는 ‘리치 벳(Reach Ve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범죄자를 예고해 검거하는 미래사회를 그려 충격을 줬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자살 위험군을 미리 판별한다는 것이다. AI는 전역 군인들 가운데 정신적 장애를 초래할 만한 대형 사건 경험, 의약품 처방 전력, 치료 기록 등 정보를 조합해 12개월 이내에 자살 가능성이 높은 상위 0.1%를 찾아낸다. AI 자살예방 시스템을 도입한 뒤 전역 군인의 자살이 연간 250명 줄었다. #2. “1∼4번 중 불량 반도체 칩이 몇 번인 것 같으세요?”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송파구 삼성SDS에서 AI 기반 불량 검출 시스템을 시연하던 직원이 질문했다. 눈으로는 네 개의 칩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AI는 불량품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중국과 베트남의 스마트폰 공장을 비롯해 전 세계 수십 곳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실제로 활용돼 불량 검출 정확도 95%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AI 시스템 ‘넥스플랜트’였다.○ 올해가 AI 기술 패권의 ‘결정적 해’ 동아일보 기자들이 찾아간 세계 각국의 AI 현장에서는 “올해가 AI 기술 패권을 잡기 위한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공통으로 나왔다. 이미 첨단산업의 패러다임을 조용히 장악해나가고 있는 AI의 물결이 5세대(5G) 통신 확산에 힘입어 쓰나미처럼 일상생활 곳곳으로 침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 횡단보도에 2017년부터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화면에는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넌 사람의 얼굴이 뜬다. 안면인식 AI가 그 사람의 이름과 정확한 시각을 기록해서 지금까지의 무단횡단 기록을 보여주고, 통신사 시스템과 연결해 당사자에게 경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개인정보를 비롯한 모든 정보가 사실상 정부에 귀속된 중국은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AI가 확산되고 있다. 안면인식 AI로 지하철·공항의 출입, 쓰레기 분리배출 관리, 수업 태도 감시까지 현실화됐다. 아예 정부의 진두지휘 아래 AI 개발 선두주자인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 커다쉰페이라는 4개 대형 기업이 각각 자율주행자동차, 의료 및 헬스, 스마트시티, 음성인식 등 특화된 기술개발 책임을 맡은 모양새다. 인구 860만 명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AI 스타트업 천국인 미국(1393개), 중국(383개)에 못지않은 362개 스타트업이 활동하며 글로벌 AI 시장의 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스타트업들이 AI 응용기술을 개발하면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사간다. 2017년 인텔이 153억 달러에 인수한 AI 기반 자율주행자동차 업체인 ‘모빌아이’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이 빠르게 소비되고 다시 탄생하는 왕성한 AI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 기술은 다 있다, 남은 건 시간 싸움 글로벌 AI 시장은 이제 시간과의 싸움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 1위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인 삼성SDS의 이은주 빅데이터분석팀 상무는 “AI의 요소 기술은 세상에 이미 존재한다. 남은 것은 누가 빨리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라고 했다. AI가 발전하려면 ①학습 가능한 양질의 데이터 ②고성능 컴퓨팅 ③차별화된 알고리즘이 필수적이다.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컴퓨팅 기술이라는 기반 조건은 이미 많다. 이제는 AI를 실생활과 산업에 접목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누가 먼저, 더 많이 개발하느냐가 글로벌 AI 패권을 쥐는 열쇠라는 것이다. 앞으로 AI가 상용화될 시장은 크게 기업과 기업 간 거래(B2B)와 기업과 개인 간 거래(B2C)로 나눌 수 있다. B2B 분야에선 크게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 △마케팅 △물류 △고객센터 △배달·컨시어지로봇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상무는 “기업마다 축적해온 데이터와 활용 분야에 따라 주력할 수 있는 부문이 다르다. 예를 들어 삼성은 제조와 물류 시장에서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B2C 분야에선 △음성인식 비서 △콘텐츠 큐레이션 △학습 △의료복지 △금융 시장이 있다. 전문가들은 아침에 일어나 AI 스피커에 그날의 스케줄과 날씨를 묻고, 개인의 취향을 알고 있는 AI가 골라준 음악을 들으며, AI가 추천해준 펀드에 투자하는 일상이 ‘구보 씨의 하루’가 될 것으로 본다. 일상에 스며든 AI 시장은 얼마나 커질까.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매킨지에 따르면 2025년 AI 시장은 최대 6조7000억 달러(약 775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진형 중앙대 석좌교수(전 인공지능연구원 원장)는 “현재로선 시장의 규모를 가늠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 AI는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 기초가 될 것이다. 마치 증기기관―전기―컴퓨터와 같은 인류 범용기술이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곽도영기자 now@donga.com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텔아비브=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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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美대사관 공격’ 시위대 철수…美국무부 “배후엔 이란”

    미국이 이라크 내 주요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중 하나인 카타이브헤즈볼라(KH)를 공격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해 12월31일 바그다드에 있는 미 대사관을 공격했던 시위대가 1일 밤 시위를 멈추고 철수했다. 1일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대사관을 지키던 미군의 최루탄과 섬광탄 발사 같은 강경 대응에도 이틀간 밤샘 시위를 벌인 시위대는 민병대 지도자들이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에야 대사관 근처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민병대 구성원들과 달리 KH 소속 시위대는 KH의 최고 지도부에서 직접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이라크에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KH를 포함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는 현지에선 이라크 정부군과 협력해 이슬람국가(IS)를 퇴치한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고, 정치인들도 다수 배출하고 있다. 시위 대응 과정에서는 이라크인들이 미국의 KH 공격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이라크 전역에서 발생한 민생고와 부정부패 항의를 위한 반정부 시위 때 이라크 군과 경찰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라크 정부, 사법부, 시민단체가 구성한 인권감시 기구인 인권위원회는 군경의 유혈 진압으로 최소 490명이 숨지고 2만20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 대사관을 지키던 이라크 군경은 미 대사관 시위 때는 최루탄도 발사하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시위대를 막았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은 이번 이라크 시위대의 미 대사관 공격과 시위 배후에도 이란이 있다고 주장한다. 브라이언 후크 국무부 대(對)이란특별대표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사관 공격은) 그들이(이란)이 사용하는 형태의 전술”이라며 “그들은 40년 전 우리 대사관(주이란 대사관 점거 및 외교관 억류 사건 의미)을 습격했고, 40년 후에는 테러리스트 집단들에게 우리 대사관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국방장관은 1일 예정돼 있던 우크라이나 방문을 취소하고 이라크 미 대사관 습격 사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여기고 있는 민병대 지도자들이 시위 현장에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사진을 올리며 “이들이 공격을 조직하고,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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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의 벵가지’ 우려… 트럼프, 이라크에 특수부대 투입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미국대사관을 습격한 것에 맞서 미국이 특수진압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하는 등 강경 대응하면서 중동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서는 큰 악재를 만났다. 시위대는 지난해 12월 31일 미국대사관에 진입한 데 이어 1일에도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면서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가 불어나자 대사관을 지키는 미 해병대원들이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습격 당일인 지난해 12월 31일 성명을 내고 “육군 82공수사단 신속대응부대(IRF) 750명의 파병을 승인했다. 즉시 이라크에 배치하고 수일 내에 추가 병력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IRF는 강도 높은 폭동을 전문적으로 진압하는 특수부대다. 폭스뉴스는 대사관 습격 직후 82공수사단 내 4000명 규모의 낙하산 부대원이 “수일 내에 투입될 수 있도록 군장을 챙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아파치 헬기 2대와 해병대 100명도 급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란은 미국 시설에서 발생한 인명 손실이나 피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경고가 아닌 협박”이라고 밝혔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당신(트럼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건이 ‘제2의 벵가지 사태’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2012년 9월 리비아 2대 도시 벵가지에서 무장 시위대가 무슬림 모독을 이유로 미 영사관을 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당시 주리비아 미국 대사 등 총 4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줬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참사’로 각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 벵가지 사태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향해 “미 대사도 보호하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공격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똑같은 논리로 공격받을 처지에 놓이자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군사 대응이 현지의 반미 감정만 부추겨 이라크 내 이란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미국대사관이 위치한 바그다드 안전지대(그린존)는 정부청사, 국회의사당, 외국 공관 등이 밀집해 평소에도 경계가 삼엄하다. 그런데도 친이란 시위대가 쉽게 대사관에 접근한 것은 이라크 측이 사실상 이를 묵인했기 때문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알자지라는 “대사관 습격은 이라크인들이 미국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3년 이라크전쟁 후 미국이 수조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이라크는 이번 사건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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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대사관 습격’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해 12월31일 발생한 이라크 시위대의 바그다드 미국대사관 습격 사건으로 카타이브헤즈볼라(KH)를 비롯한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12월27일 미국이 이라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중 하나로 꼽히는 KH를 이라크 정부의 반대에도 공격하면서 촉발됐다. 현지에선 미군의 KH 공격으로 ‘미-이란 대리전’과 ‘미국의 주권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 IS 퇴치에 앞장서며 영향력 키우고 국민지지도 크게 받아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들은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부터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진 이라크에서 힘을 키워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실상 정부를 대신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2014~2017년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국가를 선포할 정도로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 위세를 떨칠 때 IS를 척결 대상으로 여긴 시아파 맹주 이란의 핵심 군사조직이며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혁명수비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들은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이 소극적으로 나섰던 IS와 지상전에서 큰 성과를 올렸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이라크 정부는 아예 친이란 시아파 계열 민병대들을 중심으로 ‘인민동원군(PMF·아랍어로 하시드 알사비)’이란 조직을 구축해 정부군과 함께 IS와의 전쟁에 나서게 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바로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미국의 KH에 대한 공격을 일반인과 이라크 정부가 동시에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KH 공격 사태가 터진 뒤 이라크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은 이라크 주권에 대한 침해다. 하시드 알사비는 이라크의 국가 군대고, 이라크군 조직의 일부로 이라크군 총사령관의 지휘를 받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라크내 수니파와 미국과 친미 국가들은 ‘이란의 대리인’이라고 비판 커 하지만 이라크 국민 중 약 35%인 수니파는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들을 정치·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으로 본다. 이라크보다 이란에 충성하며 이란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처럼 정세가 불안정하며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에서 자국군 파병과 현지 시아파 민병대 지원을 통해 정치·안보 영향력을 키우는 정책을 구사해왔다. 특히 이라크와 레바논에선 민병대 소속 혹은 가까운 인사들이 의회에 진출해 이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략을 펼치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같은 친미, 반(反)이란 국가들이 이란의 핵개발 못지않게 민병대 지원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역시 KH의 최고지도자인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등 상당수 민병대 지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할 정도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카타르 아랍조사정책연구원의 마르완 카발란 정책분석센터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에 초점을 맞췄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지역 영향력 확장 문제도 핵개발 못지않게 우려하고 있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민병대를 통한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최대한 약화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헤즈볼라 때문에 깊어진 친이란 민병대에 대한 우려 일각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반이란 국가들의 친이란 민병대에 대한 두려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성장 과정을 통해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으로 성장해온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민병대는 물론이고 정치단체의 기능까지 하며 레바논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현재도 레바논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특히 헤즈볼라는 2006년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을 놀라게 할 만한 역량을 보였다. 당시 헤즈볼라는 혁명수비대로부터 지원받은 수백 대의 로켓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인 160여 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도 추가 충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됐을 정도다. 레바논 소식통은 “헤즈볼라의 사례를 통해 이란의 집중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들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여론도 생길 정도였다”며 “미국과 친미 국가들로서는 친이란 민병대 문제를 결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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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공습 감행’ 후폭풍… 親이란 시위대, 이라크 美대사관 습격

    미국이 이라크의 친(親)이란 성향 시아파 민병대 ‘카타입헤즈볼라(KH)’에 대대적 공습을 감행한 뒤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라크 내 친이란 시위대가 지난해 12월 31일 사상 최초로 수도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을 습격했고, KH는 보복을 다짐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수십 명의 시위대가 대사관 차량 출입용 문과 감시 카메라를 부수고 외벽과 감시 초소에 불을 질렀다. 바그다드 미대사관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위대는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내부 진입을 시도했지만 대사관 본관에는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슈 툴러 대사 등 직원들은 시위대를 피해 대사관을 비웠다. 하지만 대사관을 지키는 미군과 보안요원들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바그다드 외에도 북부 키르쿠크, 남부 바스라 등 전역에서 시위대가 미 성조기를 불태우고 짓밟으며 반미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의 미대사관 습격은 경제난 등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계속된 이라크 내 ‘반정부 시위’가 ‘반미 시위’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듭된 시위로 대통령과 총리까지 퇴진했지만 정국 혼란이 여전해 국민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KH를 공격한 것을 이라크 국민들이 주권 훼손으로 받아들이면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의회 일각에서는 “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KH는 “미국과의 전쟁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보복을 예고했다. 이라크 외교부도 “툴러 대사를 초치해 폭격에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대사관 공격은 전적으로 이란 책임”이라며 “이라크 정부가 미대사관 보호를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그는 미국의 KH 공격이 지난해 12월 27일 친이란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키르쿠크 미군 기지에 대한 로켓포 공격으로 미 민간인 1명이 숨진 것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KH 공격이 되레 이라크에서 수세에 몰릴 뻔했던 이란의 입지만 넓힐 기회를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나라는 1980년대 전쟁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축출 이후 이란은 주요 시아파 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이라크 내 영향력을 빠르게 키웠다. 또 이란에 우호적인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 이란의 내정 간섭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진 상황에서 미군이 KH를 공격해 시아파들을 응집시키고 반미 시위가 일어날 명분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KH는 친이란 성향이지만 이라크 정부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 동참했고 미국의 국익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현재 이라크에는 약 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2014년 IS가 이라크 영토 약 3분의 1을 점령했을 때 이를 탈환하는 일을 돕기 위해 미국이 보낸 군대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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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親이란 민병대 보복 공습… 폼페이오 “혁명수비대 좌시안해”

    미군이 29일 이라크의 친(親)이란 성향 시아파 민병대인 ‘카타이브헤즈볼라(KH)’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이틀 전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의 군 기지에 대한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 민간인 1명이 사망하고 미군 4명이 부상당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공습이 이라크 내 3개 기지와 시리아 내 2개 기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최소 25명의 KH 대원이 숨지고 55명이 다쳤으며 기지 내 무기 저장고, 지휘 통제소 등이 파괴된 것으로 전해졌다. KH는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도 불리는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아왔다. 혁명수비대는 중동 주요 시아파 무장세력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이란의 대외 영향력 확대를 도모해 왔다. 이번 공습이 사실상 이란을 직접 공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이라크와 시리아 공습이 성공했다. 필요하다면 추가 행동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인을 위태롭게 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올해 5, 6월 중동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소속 유조선 피격, 6월 이란의 미군 무인기(드론) 격추,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생산시설 피격 등이 발생할 때마다 “이란이 배후에 있다”고 비난해왔다. 그럼에도 경제 제재만 강화했을 뿐 군사 대응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무인기 격추 때 이란 본토에 대한 보복 공습을 준비했지만 인명 피해를 우려한 군 수뇌부의 만류로 “공습 10분 전 이를 철회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를 감안할 때 KH에 대한 공격은 미국이 이란을 향해 ‘직접적인 군사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장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두 나라는 지난해 5월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과 맺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후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이날 공격이 이란, 러시아, 중국 등 대표적 반미 국가 3개국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미군을 겨냥한 공동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도중에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군 소식통은 AFP통신에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은 IS보다 미군에 더 큰 위협”이라고 밝혔다. 이란 측의 반격도 거세다. KH와 마찬가지로 역시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은 이날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전쟁을 중단하지 않으면 두 나라의 유전과 군사기지 등 민감 시설 9곳을 공격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를 감안할 때 중동 전역이 미국을 필두로 미국과 가까운 사우디, UAE 등 수니파 국가 대 이란과 이란을 추종하는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시아파 무장단체의 대결 구도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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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띄워준 군인에… 네이비실 동료들 “그는 악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 수뇌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사면 및 진급을 지시한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소속 에드워드 갤러거 중사(사진)를 두고 ‘악마 같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나왔다. 갤러거 중사는 2017년 이라크에서 17세 이슬람국가(IS) 대원을 칼로 살해하고 시신을 옆에 둔 채 사진까지 찍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27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갤러거 중사의 동료들은 관련 조사 과정에서 그에게 부정적 증언을 거듭했다. 일부는 그가 자신의 무공을 과대포장하기 위해 일부러 테러단체 IS의 공격에 노출되도록 팀을 이끌었다고도 덧붙였다. 네이비실 팀7의 크레이그 밀러 중사는 “갤러거는 끔찍한 악마”라고, 의무병 출신인 코리 스콧 중사도 “누구든 죽일 수 있으면 죽이려고 했다”고 각각 증언했다. 저격수 출신인 조슈아 브리언스는 “유해한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동료들은 갤러거 중사가 민간인을 공격하려 했고 종종 포로를 칼로 찔렀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증언 도중 눈물을 참으려고 벽을 보는 등 감정적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네이비실에선 다른 대원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고발하거나 증언하지 않는 암묵적 규칙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관행을 깨고 동료들이 갤러거 중사의 비행에 관해 상세한 증언을 한 것은 그만큼 그의 행동이 잔혹무도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군의 핵심 전력 중 하나인 네이비실의 위상과 입지가 약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30년간 네이비실 대원으로 복무한 뒤 제대한 릭 하스는 NYT에 “이번 사태로 네이비실 내 분열이 극심하다. 과거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갤러거 중사는 소년 IS 대원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시신 옆에서 사진을 찍은 행위에 대해서는 군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사면을 강하게 반대한 리처드 스펜서 해군장관을 사실상 경질하며 갤러거 중사를 사면했다. 갤러거 중사 부부는 21일 인스타그램에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찍은 사진도 올리며 친분을 과시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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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카에다 조직, 소말리아서 자폭테러 100여명 사망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국제 테러단체들의 대규모 테러가 잇따라 발생했다. CNN 등에 따르면 28일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의 사망자와 15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배후를 자처하는 세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9·11테러의 주범 알카에다와 연계된 현지 무장단체 알샤밥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27일 이라크 키르쿠크의 군 기지에서도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추정되는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 민간인 1명이 숨지고 다수의 미군 및 이라크군이 부상했다. 26일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IS의 서아프리카지부(ISWAP)가 기독교인 11명을 살해하는 동영상을 선전 매체 아마끄통신을 통해 유포했다. 소말리아 테러는 28일 오전 8시경 사람이 붐비는 도심 사거리에서 발생해 인명 피해가 매우 컸다. 테러 현장 근처에 세무서, 검문소, 바나디르대 등이 몰려 있는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풀이된다. 부상자 중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랍어로 ‘청년’을 뜻하는 알샤밥은 간통 여성을 돌로 죽이는 등 극단적 이슬람 율법을 추종하고 있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소말리아는 1991년부터 무장 군벌들의 파벌 싸움으로 약 30년간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군벌 간 싸움도 심각한 데다 알샤밥 등 테러단체가 난립해 사망자 수가 많은 대형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에도 폭탄 테러로 각각 52명, 10명이 숨졌다. 2017년 10월 테러 때는 무려 587명이 사망했다. ISWAP의 기독교인 참수는 10월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시리아의 은신처에서 자폭해 숨진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풀이된다. 기독교 최대 명절인 25일 성탄절을 맞아 서구 사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참수 동영상에 등장한 ISWAP 조직원은 “바그다디와 IS 대변인 아부하산 알 무하지르에 대한 복수”라고 주장했다.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테러단체 보코하람의 전문가인 압둘바시트 카심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테러단체들이 바그다디의 복수에 관한 동영상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IS 수뇌부에서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IS가 바그다디 사망 이후에도 궤멸되지 않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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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 파병으로 복잡해진 리비아…중동 강대국 대리전 가능성

    터키가 리비아통합정부(GNA)의 요청에 따라 리비아에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터키군의 파병이 이뤄질 경우 중동 강대국들이 대거 개입돼 있는 리비아 내전이 한층 심화되며 중동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집권 정의개발당(AKP) 행사에서 “파예즈 알 사라즈 리비아 총리가 파병을 요청했고, 우리는 모든 형태의 지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터키)는 초대 받는 곳에 가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안 갈 것”이라며 “리비아에는 (GNA의) 초청이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GNA는 터키의 군사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혀왔다. 특히 GNA는 자신들이 약세를 보이는 공군력과 관련된 터키의 군사 지원을 받는데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터키와 GNA는 지난달 27일 안보·군사 협정을 체결했다. GNA의 요청이 있을 경우 터키가 군사 장비와 훈련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유엔이 인정한 합법 정부안에 따르면 GNA는 터키와 카타르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GNA에 대항하는 리비아 동부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사우디, UAE, 이집트는 카타르 단교사태를 주도한 나라들이고 카타르는 단교 뒤 사우디의 지역 라이벌인 터키와 이란과 관계를 강화해 왔다. 또 사우디, UAE, 이집트가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운동세력인 무슬림형제단에 비판적인데 반해 카타르와 터키는 이들에 우호적이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이 확산될 때도 카타르와 터키는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이었고 사우디 등은 비판적이었다. 자칫하면 리비아에서 양진영의 대리전 성격을 지닌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근 화해 분위기가 감지되는 카타르 단교사태가 리비아 사태로 다시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의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2014년부터 서부를 통치하는 GNA와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동부 군벌 세력이 세력 다툼을 하는 내전 상황을 겪어왔다. 올 4월에도 하프타르 진영 부대들이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해 지금까지 1000여 명이 숨졌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이달 12일에도 다시 트리폴리 진격을 명령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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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년 9개월 장기집권’ 네타냐후, 부패 스캔들에도 당대표 경선서 압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70)가 집권당인 리쿠드당 대표 경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열린 당대표 경선에서 개표 마감 결과 72.5%를 확보해 경쟁자였던 27.5%를 얻는 데 그친 기드온 사르 의원(53)을 크게 눌렀다. 이로써 뇌물수수 같은 비리 혐의와 연립정권 구성 실패로 위기를 맞았던 네타냐후 총리는 내년 3월 총선까지는 확실한 당내 리더십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큰 승리를 거뒀다. 지지해준 당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이스라엘이 전례없는 업적을 이루도록 이끌겠다”고 밝혔다. 역대 이스라엘 총리 중 가장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네타냐후 총리는 이 나라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총리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총리 재임기간 총 13년 9개월에 이른다. 팔레스타인 분쟁과 이란과의 갈등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 같이 국제사회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 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올해 4월과 9월 총선에서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했고, 지난달에는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에 따라 내년 3월까지 네타냐후 총리가 당 대표와 총리직을 유지하더라도 검찰 수사와 관련된 우려가 계속 제기될 전망이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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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美전역 사정권 SLBM 시험발사… 러-이란과 연합훈련도

    미국이 이란에 대해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를 지속하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가 이란과 함께 인도양 북부와 오만해에서 사상 처음으로 해상 연합 군사훈련에 나선다. 중국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핵탄두 탑재 가능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시험 발사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중국, 러시아가 손잡고 미국과 맞서는 모습이 지속되고 있어 주목된다. 25일 AP통신과 이란 메르통신 등에 따르면 세 나라 해군이 참가하는 이번 훈련은 ‘해양 안보벨트’라는 이름으로 27∼30일 진행된다. 이 지역은 걸프해의 입구이며 세계 최대 원유 수송 해역인 호르무즈해협과도 가깝다. 이란군은 “이번 훈련은 중동 지역의 국제 교역 안보 강화가 목적이다. 이란, 러시아, 중국이 안보 경험을 교환하고, 테러와 해적 행위에 맞서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훈련은 미국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및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이란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높이기 위해 우방국들과 걸프 해역에서 활동하는 해군 군사 연합체인 ‘호르무즈 호위연합’을 결성했고,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중동 지역의 안정을 위협한다’며 반발해왔다. 한국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예멘 후티 반군이 자신들의 행위라고 밝힌 올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석유 생산시설과 유전에 대한 무인기(드론) 및 미사일 공격에도 이란이 직접 개입했다며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아람코 피격 사태 후 사우디에 미군을 증파했고, 미사일방어(MD) 시스템도 추가 설치했다. 이란은 이번 훈련을 중국,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활용할 의지를 내보였다. 이란 파르스통신에 따르면 이란 해군의 호세인 한자디 소장은 “이번 훈련은 중국 러시아 해군과의 광범위한 협력의 한 부분이며, 여기에는 잠수함과 구축함 생산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처럼 반미 성향이 강한 나라가 향후 중국 러시아 이란의 연합 군사훈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22일 보하이(渤海)에서 미국 전역을 사거리로 하는 ICBM급 SLBM인 ‘쥐랑(巨浪)-3’을 서쪽 방향으로 시험 발사했다. 중국 관영 관차저왕(觀察者網)은 쥐랑-3 발사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베이징(北京)에서 (미사일 궤적인) 이상한 구름들이 목격됐다”며 “중국 정부가 20∼27일 보하이에서 군사 임무를 이유로 항행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쥐랑-3은 중국의 094형 전략 핵추진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거리가 1만 km에 달해 핵탄두를 탑재하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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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AE서 만든 채팅앱 ‘투톡’, 美-중동 이용자 정보 빼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발돼 최근 중동과 미국 등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투톡(ToTok)’이 UAE 정부의 스파이앱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UAE 정부는 앱 사용자들의 대화, 움직임, 약속, 이용 영상 등을 파악하기 위해 투톡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정보보안 전문가들은 투톡을 제작한 ‘브리제이 홀딩’은 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사이버 정보 및 해킹회사인 ‘다크매터’와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크매터에는 UAE 정부의 정보 분야 관계자들,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과 이스라엘 군사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투톡이 다크매터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데이터분석 회사인 ‘팍스 AI’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팍스 AI는 UAE 정부의 신호정보국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UAE는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미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지만 언론 통제, 반대 세력 견제, 주변국 동향 파악 등을 위한 다양한 정보보안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인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정부에 부정적인 글을 올리는 자국민들의 소셜미디어도 체계적으로 감시한다. 2017년 카타르 단교사태가 터졌을 당시 카타르에 대한 음해성 가짜뉴스의 상당수가 UAE에서 만들어져 확산됐다는 의혹도 받았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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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불평등 심한 동유럽, 소수자 배척 ‘극우 포퓰리즘’ 득세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공산정권도 줄줄이 붕괴한 지 꼭 30년이 흘렀다. 겉으로는 30년간 이 지역에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뿌리내린 듯하다. 하지만 최근 인종주의 및 국수주의 성격이 강한 민족주의를 뜻하는 ‘종족 민족주의(Ethnonationalism)’를 앞세운 극우 정당 및 정치인이 득세해 우려를 낳고 있다. “난민이 몰려드는 국경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외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난민이란 ‘무지개색 흑사병’이 폴란드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집권 법과정의당 대표, “난민에게 문호를 개방해 독일의 불안정이 심해졌다”고 주장하는 외르크 모이텐 ‘독일을위한대안(AfD)’ 공동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난민 구조선 입항 봉쇄로 ‘제2의 무솔리니’란 비판까지 받은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 대표 겸 전 부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강대국 권위주의 지도자와 같은 큰 영향력은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주목과 견제가 소홀한 틈을 타 더욱 노골적인 극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10월 폴란드 총선에서 카친스키 대표는 ‘낙태 제한, 성소수자 없는 도시 만들기’ 등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공약을 내걸었다. 그래도 하원 460석의 과반을 손쉽게 확보했다. 같은 달 AfD도 옛 동독 지역인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집권 기독민주당을 밀어내고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는 유럽연합(EU)의 난민 할당을 준수하지 않아 EU와도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 7월 타계한 헝가리 유명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가 “종족 민족주의가 전체주의(Totalitarianism)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유럽에서 종족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로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경제에 따른 불평등을 이유로 꼽는다. 10월 미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가 옛 공산권 17개국 약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폴란드, 동독,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응답자의 대부분이 ‘체제 변화로 누가 이득을 누렸느냐’는 질문에 “정치인과 사업가”를 꼽았다. 응답자의 53%는 “건강보험 제도가 공산주의 때보다 후퇴했다”고도 했다. 비(非)유럽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난민 대신 자국 내 소수계를 탄압하는 극우 정책을 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900만 인구의 약 15%인 아랍계를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아랍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했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위한 국가’라고도 규정했다. 모디 총리도 최근 이웃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3개국 출신 불법 이민자 중 힌두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파시교, 기독교 신자에게만 시민권을 허가한 시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12억 인구의 약 14%를 차지하는 이슬람교 신자들은 “종교 차별을 금지한 헌법 위반이자 무슬림에 대한 인종청소”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초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시민법 개정 반대 시위에서 6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전문가들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수혜를 폭넓게 누리지 못한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 등으로 종족 민족주의를 이용하려는 정치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파키스탄 이민자 후손인 사디크 칸 영국 런던시장은 “현재의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헝가리, 폴란드 등 민주주의 연식이 짧은 국가에서 자유주의가 비자유적 형태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한기재 기자}

    •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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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伊출신 이란 명문축구팀 감독, 美제재로 급여 못받아 시즌 도중 귀국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유명 구단인 인터밀란과 우디네세의 감독을 지낸 안드레아 스트라마치오니(43)가 올해 6월부터 활동해 오던 이란 프로축구리그의 명문클럽 에스테그랄FC 감독직을 갑자기 떠났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시즌 중 감독직에서 물러나 조국인 이탈리아로 돌아간 것이다.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클럽이 급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이 재임 중 에스테그랄FC는 우승을 노릴 정도로 성적이 좋아 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팬들은 온라인 상에서 클럽을 비판하고, 수백여 명은 거리에서 시위도 펼쳤다. 일부 이란 팬들은 축구협회와 이란 체육·청소년부의 무능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자 이란 외무부 차관은 주이란 이탈리아 대사와 주이탈리아 이란 대사에게 ‘스트라마치오니 감독 복귀’를 도와 달라 요청했다. 또 이란 의회에서는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선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이 급여 문제만 해결되면 이란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선수들이 그립다”고 밝혔고, 부인인 데릴라도 처음에는 이란에서 생활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집처럼 편안하게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현지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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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레바논 반정부 시위 공개 지지…‘헤즈볼라’ 압박

    미국이 두 달 전 시작돼 최근 거세지고 있는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이 나라 정치권의 최대 세력인 친이란계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에 들어갔다. 헤즈볼라에 대한 무기와 재정 지원을 해온 이란의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레바논 출신 사업가 2명을 헤즈볼라를 후원해온 혐의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같은 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레바논 국민들이 부정부패와 테러리즘과 싸울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 헤즈볼라의 위협에 맞설 수 있도록 모든 도구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짓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압박해 왔다. 이란의 막강한 지원을 바탕으로 헤즈볼라는 다른 반미,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정파들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안겼다. 1983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사령부 건물을 공격해 미군 241명이 숨지게 했다. 이 사건은 미군의 레바논 철수로 이어졌다. 또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선 34일간 수백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하며 큰 피해를 입혔다. 현지 중동 전문가는 “그 어느 때보다 레바논 국민들의 헤즈볼라에 대한 반감이 고조돼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헤즈볼라와 이란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기 좋은 기회로 현 상황을 바라볼 것”이라며 “미국의 헤즈볼라에 대한 압박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국제기구에서도 레바논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달 11일 유엔과 프랑스 주도로 열린 레바논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에선 레바논 정부의 경제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독일, 아랍에미리트(UAE),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레바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기 전까지는 재정 지원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중동 외교가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정부 구성을 ‘헤즈볼라 영향력 축소’로 해석한다. 실제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임시총리(총리직에서 10월29일 사임)는 전문 관료들이 중심이 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헤즈볼라의 반대로 이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마하티르 모하멧 말레이시아 총리는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외교안보행사인 ‘도하포럼’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비판했다. 그는 도하포럼 연설에서 “말레이시아는 미국이 이란에 대해 일방적으로 제재를 재부과한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이란에 대한 제재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어긋나고, 유엔 헌장에선 제재는 유엔만이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 제재로 인해 말레이시아와 다른 나라들은 ‘큰 시장’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행사장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 관련 핵심 인사 중 하나인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참석해 있어 화제가 됐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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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포커스]“개방 이미지 쌓자” BTS 야외공연 열어… 유적지서 복싱 경기도

    해외 언론의 취재와 대중문화 행사를 거의 허용하지 않아 ‘은둔의 왕국’으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디어 산업 육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달 2, 3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힐턴호텔에서는 사우디 최초의 국제 언론 행사 ‘사우디 미디어 포럼(SMF)’이 열렸다. 각국 언론의 중동 문제 보도 실태와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처음 열린 행사였지만 세계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동아일보를 포함해 미국 블룸버그뉴스와 CNBC, 영국 가디언과 스카이뉴스, 프랑스 르피가로, 유럽 EPA통신 관계자들이 발표자와 패널로 참석했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대형 소셜미디어도 행사장에 대형 홍보공간을 마련했다. 사이드 알감디 킹사우드대 언론학과 교수는 기자에게 “몇 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언론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부 차원의 미디어 산업 육성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사우디에는 최근까지도 카타르 알자지라처럼 해외에 알려진 유명한 언론사도 없었다. 무엇보다 왕실을 비판하는 사람은 극형에 처해질 정도로 언론 자유가 전무한 것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10월 피살된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배후에 왕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만 봐도 사우디의 언론 현실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과연 사우디 정부는 무엇을 기대하고 미디어 산업 육성에 나섰을까.○ 아람코 상장에 따른 국가 이미지 개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아랍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미디어 분야에선 별다른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웃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보다 ‘몇 수 아래’라는 평가가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우디도 정부 차원에서 종합방송사인 MBC, 뉴스전문 채널인 알아라비야를 설립했다. 하지만 알자지라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 실패했다. 특히 지난해 카슈끄지 피살 사건은 국가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국영 석유사 아람코가 이달 11일 리야드 타다울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거래를 시작했다. 5일 기업공개(IPO) 당시 아람코 1주는 32리얄로 책정됐지만 거래 첫날인 이날 상한가 10%까지 오르며 주당 35.2리얄(약 1만1200원)로 뛰었다. 12일 현재 아람코의 기업 가치도 약 1조9600억 달러로 불어나 사우디의 목표치인 2조 달러에 거의 근접했다. 기존 세계 1위였던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 약 1조3000억 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사우디는 아람코 상장 자금으로 탈(脫)석유와 산업 다각화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당초 100% 왕실이 보유한 전체 지분 중 5%를 매각해 미국 뉴욕 및 영국 런던 증권거래소 등에도 상장하려 했지만 공모가에 대한 이견 등으로 해외 상장은 일단 잠정 중단됐다. 그 대신 이번에 국내에서만 1.5%의 지분을 풀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반드시 해외 상장을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아람코 상장, 관광 개방, 해외 기업 투자 유치 등 개혁, 개방에 나서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뒤늦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해외 언론과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 및 자국 미디어 육성에 공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투르키 알샤바나 공보부 장관도 2일 “나라 안팎으로 더 많은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며 해외 언론에 적극 문호를 개방할 뜻을 드러냈다.○ 산업 다각화에 기여하는 미디어 산업 미디어 산업 육성이 사우디가 공을 들이는 산업 다각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카타르와 UAE는 1990년대부터 중동의 허브를 지향하며 미디어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해왔다. 1996년 ‘중동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을 설립한 카타르가 대표적이다. 수도 도하의 교육특구인 ‘에듀케이션시티’에는 미국 미주리대, 컬럼비아대와 함께 ‘최고의 기자 양성소’로 불리는 미 노스웨스턴대 저널리즘스쿨 분교가 있다. 2012년에는 정부 주도로 스포츠 전문채널 비인(BeIN)이 탄생했다. 이 채널은 중동의 ESPN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다.UAE 역시 2000년부터 두바이에 일종의 미디어 산업 특구인 ‘미디어시티’를 조성했다. 해외 유명 언론의 중동 지국도 집중 유치했다. 아랍권 언론사 중 상당수도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UAE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는 과정에 두바이 미디어시티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이웃 나라들의 성공 사례를 보며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육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올해 10월 한국 ‘방탄소년단(BTS)’의 야외공연을 허락하고 지난달 리야드 인근 고대 유적지 디리야에서 세계 헤비급 권투 타이틀전을 연 것도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특히 사우디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한 나라다. 아랍권, 나아가 이슬람권을 상징하는 나라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 만큼 이슬람교 관련 콘텐츠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우디에서 제작된 뉴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책 등이 이슬람권 전역에서 주목받기에도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9월에는 유럽의 영화 제작진들이 만든 3대 국왕인 파이살 국왕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왕으로 태어나다(Born a King)’의 개봉도 허용했다.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반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으려 했던 과거 행보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사우디의 20, 30대 인구 비율이 높고, 최근 정부 차원에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디어 산업의 특성상 젊은 세대와 여성들의 입김이 세고,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감디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미디어 교육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화와 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사우디의 미디어 산업에 대한 관심에 작용하고 있다.○ 아직도 멀기만 한 중동의 언론 자유 사우디 정부 차원의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전제군주 체제, 낙후된 인권 등의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일종의 눈 가리기 도구로 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와 달리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한들 왕실과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과거 사우디는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인기리에 방영되던 터키 드라마의 방영을 금지했다. 2015년 반정부 인사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설립된 지 불과 하루가 지났던 신생 방송사 알아랍도 전격 폐쇄했다. 사우디 내에서는 알자지라도 접할 수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자주 해왔다는 이유로 방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세라 엘리차니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 언론학과 교수는 “사우디는 미디어를 이용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자유로운 비판까지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사우디보다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인 카타르와 UAE 언론조차 자국 왕실 및 정부 비판을 좀처럼 못 하고 있다. 특히 2013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이 집권한 후 알자지라에서는 정권 비판 보도를 찾아볼 수 없고 ‘정권 홍보’ 보도만 대폭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2017년 6월 사우디, UAE,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국가들은 카타르가 시아파 이란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전격적으로 단교했다. 알자지라는 이후 단교를 주도한 사우디와 UAE를 비판하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집중 편성해 내보냈다. ‘사우디, UAE, 정부군’ vs ‘이란, 후티 반군’이 대립하고 있는 예멘 내전 소식을 전할 때도 이런 성향이 두드러졌다. 알자지라는 이란과 후티 반군의 소식은 거의 보도하지 않은 채 사우디와 UAE, 정부군의 잘못을 부각하는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와 UAE가 민간인을 오폭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관련 뉴스를 속보로 전하고 있다. 모두 왕실과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보도 행태가 알자지라의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과거의 위상마저 해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 살리고 이미지 바꾸고… 사우디-카타르-UAE 행사 경쟁 ▼중동 산유국들 너도나도 “국제포럼 초청합니다”사우디 매년 사막의 다보스포럼, 카타르는 외교안보 도하포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은 국가 이미지 개선,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치열한 ‘국제포럼 개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권력을 잡은 2017년부터 매년 ‘사막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를 개최하고 있다. 경제에 방점을 둔 포럼답게 해외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7년 첫 포럼에는 홍해와 인접한 지역에 대규모 메가시티를 개발하겠다는 ‘네옴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올해 10월 말 열린 3회 포럼에는 JP모건, 씨티그룹, 블랙록자산운용, 영국 HSBC 등 세계적 금융사가 대거 참여했다. 아람코 기업공개(IPO)와 상장을 앞둔 시점인 만큼 이들의 참여는 관심을 끌었다. 사우디는 이들 금융사에 수도 리야드에 건설 중인 킹압둘라금융지구(KAFD) 진출 가능성 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기간에 사우디를 방문했던 국내 기업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R&D) 시설 유치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카타르는 2000년부터 외교안보 등을 주제로 한 ‘도하 포럼’을 매년 말에 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행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14, 15일 열리는 올해 포럼의 주제도 시리아 사태, 세계 극단주의 확산 등이다. UAE도 2008년부터 매년 초 ‘아부다비 지속 가능성 주간’이란 경제 포럼을 열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경제정책 주제들을 주로 다룬다. 최근에는 항공, 사이버보안, 에너지 등 첨단 정보기술(IT) 산업과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춘 포럼도 다수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서 만난 한 유럽 컨설팅사 관계자는 “사우디, 카타르, UAE 모두 뿌리 깊은 경쟁의식을 지니고 있다. 상당 기간 국제 대형 행사 개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한국 경제인들을 포럼에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금융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중동에서 열리는 여러 포럼에서 매년 초청받고 있다. 단순한 참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 발표자나 패널로 참여해 달라고 한다”며 “그만큼 한국 경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20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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