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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정에서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12살 소녀와 헤어지고 오시길 바랍니다.”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51)가 2021년 11월 성폭력 사건 고등법원 판결 선고를 앞둔 피해자 A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12세 때 사촌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었지만 10년 넘게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너희 부모님이 죽을 것”이라는 말이 두려워서였다. 그런 A 씨가 김 변호사를 찾아와 “이제는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지난한 법정 싸움을 앞둔 A 씨에게 김 변호사는 “그날의 소녀가 법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오늘의 당신이 도와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 4년간 이어진 법정싸움 끝에 유죄 판결이 내려지던 날, A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김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덜 힘들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20년 넘게 여성·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해온 변호해온 김 변호사가 에세이 ‘완벽한 피해자’(천년의상상)를 16일 펴냈다.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27일 만난 그는 “세상이 요구하는 ‘피해자다움’을 완전하게 갖춘 피해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책 제목을 ‘완벽한 피해자’로 정했다”며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지독한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친부에게 10년 넘게 성폭행을 당해온 B 씨를 대리하면서 이 같은 질문들을 맞닥뜨렸다. ‘진짜 성폭행을 당했다면 왜 그때 신고하지 않았는지, 성폭행 피해를 입고도 왜 친부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는지, 어떻게 멀쩡하게 대학과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친부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했다. B 씨는 가족 중 한 명의 부탁으로 결국 법원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피해자가 자신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아버지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친부의 가정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법원은 친부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며 이렇게 판시했다. “피해자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진 폭언과 폭력, 성폭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심리적인 항거 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재판부는 판결문으로서 수년 동안 자신을 탓해온 피해자에게 ‘이젠 자기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준 겁니다. 이런 판결문을 받아들 때 대리인으로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피해자가 자기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피해자와 헤어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는 “피해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때론 재판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2011년 50세가 넘은 한 여성이 그를 찾아와 10대 때 삼촌에게 입은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공소시효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지만 소멸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이유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그런데도 피해자는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를 법정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이 재판에서 이겼다고 생각한다”며 항소심 법정에서 재판부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셔도 좋다”는 판사의 한 마디가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은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업무상 피해자를 마주해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 수사관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며 “피해자에게 일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건 어쩌면 판결 결과보다는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 피해자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라고 했다.“‘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다’ 는 말 한마디…. 존엄을 지키기 위해 법정에 선 피해자를 향한 그런 공감이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이 됩니다.”라고 당부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끝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후속편입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낮았던 0%대 이자율로 잠시 막았던 폭탄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요. 경제 위기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경제학의 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죠.” 책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으로 유명한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60)가 말했다. 그는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사진)를 30일 출간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이후 9년 만이다. 장 교수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예고했다. 한 군데서 터진 위기가 다른 국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새 책에서 장 교수는 마늘, 멸치, 바나나 등 18가지 재료를 소재로 경제발전사와 경제학 이론을 풀어냈다. 그는 “경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미끼로 꺼냈다”고 했다. 19세기 페루는 멸치를 잡아먹고 사는 물새들의 배설물 ‘구아노’를 활용해 고급 비료를 만들어 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그 영광은 100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1909년 독일 과학자가 인공 비료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 마찬가지로 1970년대 독일과 미국 과학자들이 인공 고무를 개발하면서 전 세계 천연고무의 절반을 생산하던 말레이시아는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 쪽빛을 내는 천연염료를 생산하는 인도의 ‘인디고’ 산업은 1897년 남색 염료를 인공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된 뒤 거의 붕괴됐다. 장 교수는 “자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기술 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생산성 향상은 한국 경제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정공법”이라고 강조했다. 책에는 경제학의 특정 견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경계도 담았다. 그는 “우린 음식을 만들 때 유명 조리법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내 입맛에 따라 비법을 조금씩 바꾼다. 경제학에도 이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1980년대에 다시금 주류로 자리 잡은 신고전학파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복지제도와 보호주의를 갖추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책은 ‘경제 문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음식 이야기를 타고 경제학에 도착하는 이 여행 끝에, 앞으로 경제학을 ‘어떻게 더 잘 차려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기를 바랍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스페인어로 진지가 없는 작은 전쟁을 뜻하는 ‘게릴라’는 인류사만큼 오래된 전술이다. 기원전 1만20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수단의 ‘제벨 사하바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 61구 가운데 24구에서 돌화살촉에 공격당한 상흔이 나왔다. 이들은 기습에 당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성경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다윗의 전투’ 역시 게릴라 공격이었다. 다윗은 유대 광야에서 야인들을 이끌며 이스라엘 남부에 살던 아말렉인들의 정착지를 기습해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게릴라는 수적으로 열세인 이들이 취하는 ‘약자의 전술’이었다. 미국 외교협회 국가안보연구 선임연구원이자 군사사학자인 저자가 여전히 건재한 비정규 전쟁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1930년대 공중전, 1950년대 핵전쟁, 1990년대 네트워크 중심 전쟁을 거치며 전쟁의 양상이 새로운 전술로 대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990년대 총 전사자의 90% 이상은 내전에서 발생했는데, 내전은 주로 게릴라전으로 벌어진다. 국가 간 전통적 군사 분쟁은 줄어든 반면 게릴라와 테러 조직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1999년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에선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은 무장 게릴라 세력이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카길 지역을 침공했다. 소말리아와 르완다에서는 권력을 쟁탈하려는 씨족과 정당의 비정규군이 지금도 끝없이 내전을 벌인다. 저자는 정규군에 맞선 게릴라 부대와 반란군, 테러리스트 등 비정규군을 통틀어 ‘보이지 않는 군대’라고 칭한다. 미국 독립전쟁은 근현대 비정규전의 양상을 바꾼 변곡점이었다. 이전까지의 비정규군이 정치적 조직력 없이 ‘치고 빠지기’ 전술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영국 정규군에 맞서 반란군을 이끈 조지 워싱턴(1732∼1799) 등 미국 독립운동가들은 무력과 함께 여론을 이용해 영국의 전쟁 의지를 꺾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담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해 선전전을 벌였다. 반면 지속된 전쟁으로 사상자가 늘어난 영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국민을 설득할 동력을 잃었다. 여론은 21세기 반란군들의 무기다. 이라크 곳곳의 수니파 지하디스트 무장 세력은 미군을 공격한 뒤 민가로 숨어들었다. 미군이 민가를 공격하도록 덫을 놓는 전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규군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여온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국내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저자는 21세기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전쟁의 정당성을 안팎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21세기 반란군들이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인류사에 등장한 비정규군의 성패가 빼곡히 담겼다. 저자는 “현대 게릴라와 테러리스트의 전쟁 방식을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스페인어로 진지가 없는 작은 전쟁을 뜻하는 ‘게릴라’는 인류사만큼 오래된 전술이다. 기원전 1만20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수단의 ‘제벨 사하바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 61구 가운데 24구에서 돌화살촉에 공격당한 상흔이 나왔다. 이들은 기습에 당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성경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다윗의 전투’ 역시 게릴라 공격이었다. 다윗은 유대 광야에서 야인들을 이끌며 이스라엘 남부에 살던 아말렉인들의 정착지를 기습해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게릴라는 수적으로 열세인 이들이 취하는 ‘약자의 전술’이었다. 미국 외교협회 국가안보연구 선임연구원이자 군사사학자인 저자가 출간한 ‘보이지 않는 군대’(플래닛미디어)는 여전히 건재한 비정규전쟁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1930년대 공중전, 1950년대 핵전쟁, 1990년대 네트워크 중심 전쟁을 거치며 전쟁의 양상이 새로운 전술로 대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990년대 총 전사자의 90% 이상은 내전에서 발생했는데, 내전은 주로 게릴라전으로 벌어진다. 국가 간 전통적 군사 분쟁은 줄어든 반면 게릴라와 테러 조직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1999년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에선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은 무장 게릴라 세력이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카길 지역을 침공했다. 소말리아와 르완다에서는 권력을 쟁탈하려는 씨족과 정당의 비정규군이 지금도 끝없이 내전을 벌인다. 저자는 정규군에 맞선 게릴라 부대와 반란군, 테러리스트 등 비정규군을 통틀어 ‘보이지 않는 군대’라고 칭한다. 미국 독립전쟁은 근현대 비정규전의 양상을 바꾼 변곡점이었다. 이전까지의 비정규군이 정치적 조직력 없이 ‘치고 빠지기’ 전술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영국 정규군에 맞서 반란군을 이끈 조지 워싱턴(1732~1799) 등 미국 독립운동가들은 무력과 함께 여론을 이용해 영국의 전쟁 의지를 꺾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담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해 선전전을 벌였다. 반면 지속된 전쟁으로 사상자가 늘어나는 영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국민을 설득할 동력을 잃었다.여론은 21세기 반란군들의 무기다. 이라크 곳곳의 수니파 지하디스트 무장 세력은 미군을 공격한 뒤 민가로 숨어들었다. 미군이 민가를 공격하도록 덫을 놓는 전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규군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여온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국내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저자는 21세기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전쟁의 정당성을 안팎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21세기 반란군들이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인류사에 등장한 비정규군의 성패가 빼곡히 담겼다. 저자는 “현대 게릴라와 테러리스트의 전쟁 방식을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최초의 순 한글 관찬본(官撰本·관에서 엮은 책) 교과서인 ‘군졸교과서’로 추정되는 사료가 공개된다. 서울 동대문구 세종대왕박물관은 “올해 훈민정음 창제 580주년과 박물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23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개최하는 ‘한글·국어학 자료’ 전시에서 금속활자본 군졸교과서 추정 사료 1장을 처음 선보인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김한영 참빛아카이브 대표가 소장한 순 한글 사료 180여 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에 나오는 군졸교과서는 김 대표가 2021년 고문헌 유통상으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군졸이 되는 자에게 충절과 예절의 도리를 설파한 교과서 제2장에 해당한다. 1894년 8월 28일자 ‘고종실록’에는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의 의결을 거쳐 군졸들에게 순 우리말로 된 군졸교과서를 보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교과서로 추정되는 실물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 사료 어미(魚尾·종이의 중앙을 접은 부분)의 상단에는 지금의 국방부 격인 ‘군무아문’이 순 우리말로 인쇄돼 있어 민간이 아닌 정부가 발행했음을 알 수 있다. 군무아문은 고종이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1894년 7월 군에 관한 행정 사무를 통할하는 기관으로 설치했다가 이듬해 4월 1일 명칭을 ‘군부’로 고쳤다. 이 때문에 해당 사료는 1895년 가을 출간된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에 앞서 나온 최초의 관찬 교과서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일본인이 소장하던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사진)가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456만 달러(약 60억 원)에 낙찰되면서 경매 사상 조선 백자 최고가를 기록했다. 높이 45.1cm로, 일반적인 달항아리보다 큰 이 작품은 추정가 100만∼200만 달러(약 13억∼26억 원)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으로 새 주인을 맞았다. 낙찰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크리스티는 “단색의 담박함과 순수함을 보여주며 내면을 중시하는 유교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한 번도 보수된 적 없는 훌륭한 상태로 최근 10년 동안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매에서는 이보다 작은 30.2cm 높이의 18세기 달항아리도 10만800달러(약 1억3000만 원)에 낙찰됐다. 박수근 화백의 1962년 작품 ‘앉아 있는 세 여인’은 44만1000달러(약 5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관찬본(官撰本·관에서 엮은 책) 교과서인 ‘군졸교과서’로 추정되는 사료가 23일부터 서울 동대문구 세종대왕박물관에서 처음 공개된다. 세종대왕박물관은 “올해 훈민정음 창제 580주년과 박물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23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개최하는 ‘한글·국어학 자료’ 전시에서 군졸교과서 추정 사료를 최초로 선보인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30년 넘게 4만 점이 넘는 고문헌을 수집해온 김한영 참빛아카이브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순 한글 사료 180여 점을 공개한다. 특히 김 대표가 2021년 고문헌 유통상에서 매입한 군졸교과서 금속활자본 추정 사료 1장이 눈길을 끈다. 해당 사료는 군졸이 되는 자에게 충절과 예절의 도리를 설파한 제2장에 해당한다. 1894년 8월 28일자 ‘고종실록’에는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의 의결을 거쳐 군졸들에게 순 우리말로 된 군졸교과서를 보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사료가 그 실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군졸교과서는 고종실록을 통해 기록으로만 전해져 전체 매수 등은 그동안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료 어미(魚尾·종이의 중앙을 접은 부분)의 상단에는 지금의 국방부 격인 ‘군무아문’이 순 우리말로 새겨져 있어 민간 발행이 아닌 조정 주도 발행이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군무아문은 고종이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군에 관한 행정 사무를 통할하는 기관으로 1894년 7월 설치했다가 이듬해 4월 1일 그 이름을 ‘군부’로 고쳤다. 이 때문에 해당 사료는 1895년 가을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관찬 국어교과서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 등보다 앞선 시기 인출된 최초의 관찬 교과서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종대왕박물관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되는 군졸교과서 추정 사료는 국한문을 혼용한 ‘국민소학독본’ 등 초창기 교과서들과 달리, 순 한글로 서술됐다는 점에서 한글 사료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종로구 신영동 신축건물 공사장에서 고려 행궁일 가능성이 있는 건물지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수도문물연구원이 지난해 12월부터 신영동 도시형생활주택 신축 부지 1382㎡를 발굴 조사한 결과 서쪽에서 건물지 3기와 담장, 배수로 등이 나왔고 동쪽에서 건물지 1기가 출토됐다”고 밝혔다. 함께 출토된 기와 조각 1000여 점 가운데 ‘승안 3년(承安 三年)’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돼 해당 유적은 12세기 말 조성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승안은 중국 금나라 제6대 황제 장종(章宗)이 쓰던 연호로, 승안 3년은 1198년을 가리킨다.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고려시대 유적이 나온 건 처음이다. 유구가 고려 왕실과 인연이 깊었던 승가사(僧伽寺·현 서울 종로구 구기동)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점으로 미뤄 볼 때 행궁이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승가사는 중국 당나라 승려인 승가대사(629∼710)를 숭배하며 신라 승려 수태(秀台)가 삼각산(현 북한산) 남쪽에 바위를 뚫어 만든 굴이 시초다. 1106년 편찬된 ‘삼각산중수승가굴기(三角山重修僧伽崛記)’에 따르면 고려 역대 왕들이 승가굴을 빈번하게 찾아 예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정계옥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은 “이번에 발굴된 유구는 승가굴을 방문한 왕들이 머물렀던 행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해당 유적으로부터 400m가량 떨어진 곳에 고려 예종, 인종, 의종이 남경을 방문하며 찾았다는 사찰 장의사(莊義寺) 터가 있어 이번 유구 역시 계획적으로 조성된 공공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발굴지에서 나온 장대석(長臺石·축대에 쓰이는 길게 다듬은 돌)의 길이가 약 2m에 이르는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서쪽 건물지 3곳 중 1곳은 길이 20m, 너비 5.5m에 달했을 것으로 보이다. 문화재청은 후속 연구를 진행해 건물의 성격을 규명할 방침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국보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된 지 52년이 됐지만 장마철이 되면 여전히 물에 잠긴다. 이 유적을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83)와 30년 동안 연구해온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64)가 각각 ‘울산 반구대 암각화’(지식산업사)와 ‘반구대 이야기’(성균관대학교출판부)를 최근 펴냈다. 이들은 “당장 보존에 나서지 않으면 세계적 암각화 유적을 잃어버릴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네 주민 제보로 운명같은 만남… 댐 수위 낮춰 보존하는게 급선무”반구대 암각화 첫 발견 문명대 교수“반질반질한 암면(巖面)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춤추는 무당과 거북 세 마리, 고래 머리가 새겨져 있었어요. 물에 잠겨 일부만 보였지만 바로 직감했죠. 이건 대단한 유적이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사진)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1971년 12월 25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 책임자로 울산 천전리 암각화 조사를 하던 때였다. “동네 절벽에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는 대곡리 주민의 제보를 받고, 배 한 척을 빌려 울산 울주군 대곡천 암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반도 선사문화의 정점’으로 불리는 반구대 암각화를 운명처럼 만났다. 14일 만난 문 교수는 “이후 이 유적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인생을 바쳤다”고 했다. 암각화의 전모를 파악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65년 건설된 사연댐 때문에 1년 중 최장 5개월간 암면이 물에 잠기는 탓이었다. 가뭄이 들어 물이 빠진 1974년에야 제대로 된 실측 조사를 처음 진행했다. 그는 “혹시라도 암면이 떨어져 나갈까 봐 표면에 점토를 일일이 붙인 결과 높이 2.5m, 너비 9m에 이르는 암면에서는 고래,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 동물 문양은 물론이고 고래를 잡는 선원들의 모습 등 문양 300여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1984년 그가 펴낸 최초의 반구대 암각화 종합 보고서 ‘반구대’(동국대학교)에는 손수 그린 ‘대곡리 암각화 전면 실측도’가 담겼다. 국내 선사시대 암각화 연구가 전무하던 시절 이 책이 나온 뒤 반구대 암각화 연구가 본격화됐고, 한국암각화학회가 결성됐다. 문 교수는 “여러 시기에 걸쳐 한곳에 집중적으로 겹쳐 그려진 암각화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렵다”며 “‘세계미술사’에도 구석기시대에는 라스코 동굴 벽화, 신석기시대에는 한국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고 쓰일 정도로 손꼽히는 유적”이라고 했다. 문 교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댐으로 인해 60년 가까이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됐다는 것. 그는 “첫 발견 때만 해도 하단부에 빈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밑부분이 모두 탈락되고 없다”며 “돌 등으로 메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암면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연댐 수위를 낮춰 유적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세계가 인정한 신석기 문화유산… ‘멸실위기 유산’으로 지정될 위기” 30년째 암각화 연구 전호태 교수“유네스코에서는 사연댐 수위 조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멸실 위기 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국보로 지정해놓고 수십 년째 보존 계획도 세우지 못해 이 같은 말이 나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최근 ‘반구대 이야기’(성균관대학교출판부)를 펴낸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사진)는 13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후보 목록에만 올라 있다. 보존 계획을 세우지 못해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에 제출할 서류도 못 만드는 실정이다. 전 교수는 “2011년 훼손 실태 조사 결과 이미 고래 문양의 입 주변을 포함해 암면 56군데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간 사실이 확인됐다”며 “장마철마다 물에 잠기면서 지금도 조금씩 유적 일부가 부서져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1994년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연구했고 1995년과 2000년, 2018년 등 세 차례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실측 조사해 고래 57점을 포함한 문양 355점의 전모를 밝혀냈다. 2011년부터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이번 책은 암각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첫 발견 순간부터 최신 연구까지 알기 쉽게 풀어낸 대중서다. 1965년 지어진 사연댐은 수문이 따로 없어 비가 오면 쉽게 물이 불어나는 구조다. 고고학계에서는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식수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생태 제방을 쌓는 안, 물길을 돌리는 방안, 투명 물막이 설치 방안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되거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실현되지는 않았다. 부족한 물을 인근 다른 댐에서 충당하는 방침이 추진됐지만 역시 물 부족을 우려하는 대구와 경북 자치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전 교수는 “역대 울산시장들은 식수 부족을 우려하는 시민을 설득하지도, 타 지역을 통한 식수 지원 방안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며 “취수원을 조정해 사연댐의 물을 빼서라도 암각화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일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적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동화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가 인정하는 신석기 문화유산입니다. 한데 정작 우리가 그 가치를 몰라보고 물속에 가둬두고 있습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 이우영 작가가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 측과 저작권 공방을 벌이던 중 별세한 가운데 만화계 단체가 20일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 등은 이날 ‘이우영 작가 사건대책위원회’ 명의로 성명을 내고 “소송에서 승리해 작가님의 명예를 되찾고, (검정고무신의 캐릭터인) 기영이, 기철이, 막내 오덕이와 그 친구들을 유가족의 품으로 되돌려 드리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한국만화가협회 자문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지원하고, 관련 정책과 제도 개선에도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검정고무신 저작권을 놓고 형설앤 측과 수년째 법적 분쟁을 벌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너무 가난해 아이를 꿈꿀 수조차 없던 30대를 지나 이제야 숨통이 조금은 트였는데…. 노산이 되고 말았다. 2020년 1월 간절한 마음으로 난임 병원에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에 ‘임신을 준비하는 자들의 세계’가 펼쳐졌다. 병원 대기실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진료실을 빠져나오는 여자들의 눈가에서 결과가 읽혔다. 이번에도 실패인지 유산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소설가 김의경(45)이 13일 펴낸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에는 그가 지난 3년 동안 난임 병원에서 만난 세상이 담겼다. 2014년 첫 장편소설 ‘청춘파산’(민음사)에서 엄마에게 빚을 물려받아 30대에 파산한 자전적 이야기를 전한 그는 이번에도 가장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냈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17일 만난 그는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난임 병원을 찾는데, 왜 이들의 이야기는 여태 세상에 없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며 “난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경찰, 변호사, 수의사, 전업주부 등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진 30, 40대 여성 7명이 난임 병원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단체 메신저 대화방 ‘헬로 베이비’로 뭉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시험관 시술을 받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성들은 고립되기 쉽다.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난임 병원에 다니는 동안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 외로웠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과배란 유도 주사를 스스로 몸에 놓고, 난자 채취를 비롯한 각종 난관을 이겨내며 10여 차례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지만 실패만 거듭됐다. 그는 “난임 병원에 다니느라 본업을 뒤로 미뤘는데, 이러다가는 엄마도 작가도 못 되겠다는 불안감이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병원에서 만난 여성들도 같은 불안을 느꼈다. 그는 “난임 휴가를 받으면 직장에 폐를 끼칠까 봐 상당수는 휴직을 하거나 일을 관둔 채 임신을 준비한다. 일은 물론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20년 1월 첫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아이를 잃은 그가 기댄 건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 ‘맘카페’였다. 그는 “이전에는 카페에 글을 쓰는 여자들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유산을 한 뒤에야 아이를 잃은 아픔을 알아줄 데가 이곳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가 유산 경험을 털어놓은 글 아래엔 ‘공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집 주소를 말해주세요. 보약을 지어 보낼게요.’ ‘엄마가 먼저 마음을 추슬러야 해요.’ 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과 나눈 대화가 나를 견디게 했듯,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도 서로가 서로를 견디게 하는 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난임 병원에서 만난 여성들을 단체 대화방에 모으는 소설 속 캐릭터 마흔네 살 프리랜서 기자 강문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곁을 지킨다. 김 작가는 지금도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다. 그는 요즘도 틈날 때마다 맘카페를 찾는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한 여성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그는 “10년 가까이 시험관 시술을 받아온 제 또래 여성이 요즘 카페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그녀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오래 기다렸어요. 우리 같이 맛있는 밥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 나눠요. 실패담도, 포기담도 괜찮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꿈꿀 수조차 없던 30대를 지나 조금은 숨통이 트였는데, 이젠 노산(老産)이 되고 말았다. 2020년 1월 간절한 마음으로 난임 병원에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에 ‘임신 이전의 세계’가 펼쳐졌다. 병원 대기실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진료실을 빠져나오는 그녀들의 눈가에서 결과가 읽혔다. 이번에도 실패인지, 유산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해졌다. 소설가 김의경(45)이 13일 펴낸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에는 그가 지난 3년 동안 난임 병원에서 만난 세상이 담겼다. 2014년 펴낸 첫 장편소설 ‘청춘파산’(민음사)에서 엄마에게 사채 빚을 물려받고 31세 때 파산한 자전적 이야기를 전한 그는 이번에도 난임이라는 가장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냈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17일 만난 그는 “노산, 난임, 유산과 같은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렇게도 많은 여성들이 난임 때문에 병원을 찾는데 왜 이들의 이야기는 여태 세상에 없었을까…. 이런 의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난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상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은 경찰, 변호사, 수의사, 전업주부 등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30, 40대 여성 7명이 난임 병원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단체 메신저 대화방 ‘헬로 베이비’로 뭉치는 이야기다. 그는 “시험관 시술을 받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여성들은 고립되기 쉽다”며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난임 병원에 다니는 3년 동안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 외로웠다”고 했다. 10여 차례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지만 실패만 쌓였다. 그는 “난임 병원에 다니느라 본업을 뒤로 미뤄뒀는데, 이러다가는 엄마도 작가도 못 되겠다는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가 난임 병원에서 만난 또래 여성들도 같은 불안을 느꼈다. 그는 “난임 휴가를 쓰면 직장에 민폐를 끼칠까 봐 상당수는 휴직을 하거나 일을 관둔 채 임신을 준비한다. 난임 병원에 다니는 여성들은 일은 물론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2020년 1월 첫 시험관 시술로 찾아온 아이를 유산했을 때 그가 기댄 건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인터넷 ‘맘카페’였다. 그는 “이전의 나는 맘카페에 글을 쓰는 여자들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유산을 한 뒤에야 이 아픔을 알아줄 데가 이곳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가 유산 경험을 털어놓자 순식간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집 주소를 말해주세요. 보약을 지어 보낼게요.’ ‘엄마가 먼저 몸을 추슬러야 해요.’ 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댓글이 나를 견디게 했듯,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도 서로가 서로를 견디게 하는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난임 병원에서 만난 또래 여성들을 단체 대화방에 모으는 소설 속 캐릭터 44세 프리랜서 기자 강문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곁을 지킨다. 그는 요즘도 틈날 때마다 맘카페를 찾는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한 여성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그는 “10년 가까이 시험관 시술을 받아온 제 또래 여성이 요즘 카페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그를 다시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오래 기다렸어요. 우리 같이 맛있는 밥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 나눠요. 실패담도, 포기담도 괜찮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탈리아 피렌체대 교수이자 세계적 식물생리학자인 저자는 “식물”이라고 말한다. 표면적이 5억1000만 ㎢에 달하는 지구는 우리가 사는 공동주택인데, 이 주택의 총 책임자는 지구 전체 단위 면적당 생물체량의 80%를 차지하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식물이 만든 생태 조건과 규칙이 ‘지구의 헌법’을 결정했다고 보고 주권과 평등권, 불가침권 등 식물 생태계가 만든 8가지 ‘헌법’ 규정을 정리했다. ‘이주의 자유’는 식물은 물론이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게 필요한 권리 중 하나다. 식물은 씨앗을 퍼뜨려 자기 존재를 확장하고, 생존을 위해 터전을 옮기며 이주의 자유를 추구한다. 일례로 스웨덴에서는 1955년까지 해발 1095m 이상 높이에서 단 한 그루도 발견되지 않았던 ‘털자작나무’가 오늘날 1400m 고도에서 자라고 있다. 전쟁이나 재난 위기를 겪은 인간에게도 이주의 자유가 필요하듯, 식물에게도 그렇다는 얘기다. 저자는 공생을 추구하는 식물의 ‘상호부조’ 법칙이야말로 인간이 특히 본받아야 할 핵심 가치라고 강조한다. 균류과 식물 뿌리가 결합한 마이커라이지(Mycorrhizae·균근)가 대표적이다. 균류는 식물에게 인과 질소를 공급해주는 대가로 생명 유지에 필요한 탄소를 공급받는다. 살아남기 위해 공생의 길을 선택한 것. 저자는 “협력은 생명체가 번성하는 힘”이라며 “우리는 식물의 관계에서 공존의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 김규아 작가의 ‘그림자 극장’과 5unday(글)·윤희대(그림) 작가의 ‘하우스 오브 드라큘라’ 등 한국 작가의 작품 4편이 선정됐다. 라가치상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BIB(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상으로 꼽힌다. 올해 수상작 중 ‘이사 가’의 이지연 작가(46)와 ‘벤치, 슬픔에 관하여’의 미아 작가(32)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고 했다.픽션 부문 우수상 이지연 작가개미 움직임 파노라마처럼 표현수백마리 생김새 모두 다른 형태로“차기작, 눈에 안 띄는 식물이야기”가로로 기다란 그림책에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떼의 움직임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아이의 손길이 닿고 발을 내딛는 곳 아래, 개미들이 꿈틀대며 부단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사 가’(엔씨소프트)의 주인공은 놀이터에서 뛰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들 발아래에 놓인 개미 떼다. 지난해 10월 이 책을 펴낸 이지연 작가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모래놀이터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내가 놓쳤던 개미들의 세상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습관처럼 자신의 걸음이 찍힌 발자국을 뒤돌아보다가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작가는 “어릴 적 따뜻한 햇볕 아래 놀이터 바닥에 앉아 모래를 휘저으며 놀았던 기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순간을 분명 행복하게 기억할 테지만 과연 우리의 발 아래 있던 개미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개미들은 우리 손발이 닿는 곳을 피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 책은 나 때문에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이사를 가야 했던 개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가는 “어린 시절의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됐다”면서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알게 된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책에 그려진 수백 마리의 개미는 모두 생김새가 다르다. 그는 “똑같은 개미를 ‘복붙’(복사 붙여넣기)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사람처럼 개미도 서로 다 같지 않고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른 형태로 손수 그렸다”고 했다. 2015년 펴낸 ‘우리 집에 갈래?’(엔씨소프트)에선 어둑한 골목에 버려진 곰 인형에게, 두 번째 책에선 놀이터 바닥의 개미에게 향한 그의 시선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이 작가는 “차기작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내가 놓쳐온 세상은 없는지 뒤돌아보며 그림을 그려 나가겠다”고 말했다.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 미아 작가“천편일률적 책 형태 벗어나고파책 구조 결정… 소재-주제 뒤따라다음은 겹겹이 접는 형태, 숲 소재”“어린 시절 읽은 그림책들은 전부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형태였어요. 천편일률적인 책의 형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신인상 격인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받은 그림책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는 책의 형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이 책을 펴낸 미아(본명 이서연) 작가는 14일 인터뷰에서 “무엇을 그릴지보다 어떻게 넘길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자 소재와 주제는 뒤따라 왔다”고 말했다. 책은 벤치 끝에 앉은 사람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주쳤다 헤어지는 식으로 구성됐다. 미아 작가는 2020년 ‘벤치…’의 초안을 구상하며 “책장이 양쪽으로 열리는 양문 형태를 가장 먼저 정했다”고 했다. 가로로 긴 책 구조가 결정되자 기다란 벤치가 생각났다. 그는 “책을 양쪽으로 넘기는 구조 자체로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벤치 위에 어떤 얼굴들을 그려 넣느냐’였다. 모르는 얼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로 가득한 가족 앨범을 펼쳤다. 미아 작가는 “사진첩을 보다가 어린 시절 내 곁에 있어준 가족들이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만남과 헤어짐에는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슬픔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빈 벤치에 익숙한 가족의 얼굴을 그려 넣자 슬픔이란 감정이 떠올랐던 것. 책을 채운 푸른색도 그렇게 정해졌다. ‘블루’는 ‘우울한’이란 뜻도 갖고 있다. 그는 “차기작은 겹겹이 접힌 책을 펼쳤다 다시 접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이번에도 책의 형태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숲의 이미지가 생각났다”고 했다. “숲에선 우리가 걸어 들어간 깊이만큼 다시 빠져나와야 하듯, 독자가 펼친 만큼 다시 접어 닫는 책을 만들려고 해요. 다른 형태를 상상하면 다른 이야기가 나와요. 앞으로도 색다른 형태의 책을 선보이고 싶습니다.”신진 그림책 작가 발굴한 숨은 조력자들스튜디오 움, 지망생에 무료 수업엔씨소프트, 李작가 재능 알아봐신진 작가들의 그림책이 2023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데에는 이들의 진가를 미리 알아본 이들의 덕도 컸다. 미아 작가의 ‘벤치, 슬픔에 관하여’를 펴낸 독립출판사 ‘스튜디오 움’은 2020년부터 작가를 발굴해 출판을 지원하고 있다. 5∼10명의 작가 지망생이 모여 수개월 동안 그림책을 준비한다. 스튜디오 움의 손서란 대표(60)는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수업한다”고 했다. 미아 작가는 2021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첫 그림책인 ‘벤치…’를 펴냈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도 2015년부터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이지연 작가도 이를 통해 처음 책을 냈다. 이 작가는 “당시 내가 가진 건 그림 5장뿐이었지만 그때 내 속의 이야기를 알아봐 준 덕분에 계속 그림책을 그려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까지 작가 12명을 발굴해 그림책 12권을 펴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에 한국의 신진 작가들이 선보인 그림책 4권이 선정됐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BIB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 상으로 꼽힌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이 주목한 한국의 그림책들 중에서 ‘이사 가’(엔씨소프트)를 펴낸 이지연 작가(46)와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를 만든 미아 작가(본명 이서연·32)를 최근 인터뷰했다. 신진 작가인 이들은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고 입을 모았다.●미아 작가, “색다른 형태의 그림책 만들 것”“어린 시절 읽은 그림책들은 전부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형태였어요. 천편일률적인 책의 형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받은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는 책의 형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이 책을 펴낸 미아 작가는 14일 인터뷰에서 “무엇을 그릴지보다 어떻게 넘길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자 소재와 주제는 뒤따라왔다”고 말했다. 신진 작가인 그가 2020년 초 ‘벤치…’의 초안을 구상하며 가장 먼저 정한 건 형태였다. 그는 “양쪽에서 열리는 양문 형태를 결정한 게 첫 번째”라고 했다. 가로로 긴 책 구조를 결정하자 이와 동시에 기다란 벤치가 생각났다. 그는 “벤치 끝에 앉은 사람들이 양쪽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주쳤다 헤어지는 식”이라며 “책을 양쪽으로 넘기는 구조 자체로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벤치 위에 어떤 얼굴들을 그려 넣느냐’였다. 모르는 얼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로 가득한 가족 앨범을 펼쳤다. 그는 “사진첩을 보다가 어린 시절 내 곁에 있어준 가족들이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만남과 헤어짐에는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슬픔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라고 했다. 텅 빈 벤치에 실체가 있는 익숙한 가족의 얼굴을 그려 넣자 ‘슬픔’이란 감정이 떠오른 것. 그렇게 부제와 색깔이 정해졌다. 표지와 페이지를 채운 색 ‘블루(blue)’는 ‘우울한’이란 뜻도 갖고 있다.“차기작은 겹겹으로 접힌 책을 펼쳤다 다시 접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귀띔한 그는 “이번에도 형태를 먼저 떠올리자 자연스레 숲의 이미지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숲에선 우리가 걸어 들어간 깊이만큼 다시 빠져 나와야 하듯, 독자가 펼친 만큼 다시 접어 닫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다른 형태를 상상하면 다른 이야기가 나와요. 저는 앞으로도 색다른 형태의 책을 만들 겁니다.”●이지연 작가, “어린 시절 내가 놓친 세상 그릴 것” 가로로 기다란 그림책에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떼의 움직임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아이의 손길이 닿고 발을 내딛는 곳 아래, 개미들이 꿈틀대며 부단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사 가’(엔씨소프트)의 주인공은 놀이터에서 뛰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들 발아래에 놓인 개미 떼다. 지난해 10월 이 책을 펴낸 이지연 작가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모래놀이터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내가 놓쳤던 개미들의 세상을 담았다”고 말했다.“어린 시절의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어른이 된 나는 이제 그 세계를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됐잖아요.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알게 된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습관처럼 자신의 걸음걸이가 찍힌 발자국을 뒤돌아보다가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작가는 “어릴 적 따뜻한 햇볕 아래 놀이터 바닥에 앉아 모래를 휘저으며 놀았던 기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순간을 분명 행복하게 기억할 테지만 과연 우리의 발아래 있던 개미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어쩌면 개미들은 우리 손발이 닿는 곳을 피해가려 안간 힘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 책은 나 때문에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이사를 가야 했던 개미들의 이야기입니다.” 책에 그려진 수백 마리의 개미는 모두 다른 생김새다. 그는 “똑같은 개미를 ‘복붙(복사 붙여넣기)’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사람처럼 개미들도 서로 다 같지 않고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른 형태로 손수 그렸다”고 했다. 2015년 펴낸 전작 ‘우리 집에 갈래?’(엔씨소프트)에선 어둑한 골목에 버려진 곰 인형에게로, 두 번째 책에선 놀이터 바닥의 개미에게로 향한 그의 시선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이 작가는 “차기작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내가 놓쳐온 세상은 없는지 뒤돌아보며 그림을 그려나가겠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수용소 같은 곳에서 얇은 벽 너머의 자유를 꿈꿨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그토록 만나길 꿈꿨던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재일 조선인 2세 양영희 감독(59)의 첫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마음산책·사진)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양 감독은 북한 체제에 갇힌 재일 조선인 가족사를 풀어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년)과 ‘굿바이 평양’(2011년),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년)를 만든 이로, 소설은 친(親)북한계 단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운영하는 일본 도쿄 조선대 학생 박미영의 이야기를 그렸다. 도쿄에 있는 양 감독을 13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 미영은 대학 담장 너머 다른 세상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나”라고 말했다. 양 감독은 1983년 도쿄 고다이라(小平)시에 있는 조선대 문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하던 때가 생생하다고 했다. 학교는 입학 첫날부터 그에게 “다른 꿈은 허락되지 않는다. 조직에 네 모든 것을 위탁할 것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학생들은 4년 내내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다. 청바지 금지, 오후 6시 이후 통행금지, 주말 외출 금지…. ‘금지의 세계’를 살았던 그는 학교와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무사시노미술대 학생들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다. 소설 속 미영처럼 양 감독이 조선대 진학을 택했던 건 도쿄에서 마음껏 연극을 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양 감독의 고향은 총련 소속 재일 조선인이 많았던 오사카다. 양 감독은 “남편에게 종속된 채 평생을 살아온 한 여자가 이혼을 요구하며 자기 삶을 찾으러 집을 떠나는 연극을 14세 때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형의 집’과 비슷한 내용의 당시 연극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속 미영이 학교를 나와 도쿄 중심가에 연극을 보러 다니다가 교사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는 장면은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대학의 외출 금지 조치에 ‘아르바이트를 못 하면 학교에 다닐 돈이 없다’며 맞섰고, 결국 내가 이겼다”고 했다. 양 감독은 미영과 마찬가지로 ‘조직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맹세를 끝내 거부한 채 극단에 들어갔다. 미영이 무사시노미술대에 다니는 일본인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대목은 창작했다. 양 감독은 “그 시절에는 국적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 남학생과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자유롭고 싶고,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그들과 나는 서로 닮았다”고 했다. “1980년대 도쿄 조선대 같은 곳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어요. 어딘가 혹은 무언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끝내 자기 목소리를 지키는 이야기로 읽히길 바랍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제게 ‘아무것도 꿈꾸지 말라’고 하는 수용소 같은 곳에서, 저 얇은 벽 너머의 자유를 꿈꿨습니다. 이 책은 제가 그토록 만나길 꿈꿨던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재일조선인 2세인 양영희 감독(59)은 1983년 일본 도쿄 코다이라(小平)시에 있는 조선대 문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하던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운영하는 학교는 입학 첫 날부터 그에게 “너에게 다른 꿈은 허락되지 않는다. 조직에 네 모든 것을 위탁할 것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청바지 금지, 오후 6시 통행금지, 주말 외출금지…. ‘금지의 세계’를 살았던 그는 학교 담장 너머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무사시노미술대 학생들의 삶을 상상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선 북한체제, 다른 한쪽에선 도쿄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다니는 예술대학이 맞붙어 있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나와 청바지를 입은 저 아이는 정말 같은 세상을 사는 게 맞을까. 다른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양 감독이 조선대에서 지낸 4년 동안 품었던 질문이다. 북한체제에 갇힌 재일조선인 가족사를 풀어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년)과 ‘굿바이 평양’(2011년),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년) 3부작을 만든 양 감독이 최근 첫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마음산책)를 펴냈다. ‘디어 평양’은 2006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2021년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바 있다. 13일 화상으로 만난 양 감독은 “소설 속 조선대생 박미영은 학교 담장 너머 다른 세상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나”라고 했다. 주인공 미영처럼 양 감독이 조선대 진학을 선택했던 건 “도쿄에서 마음껏 연극을 보기 위해서”였다. 양 감독의 고향은 조총련 소속 재일조선인들이 많았던 오사카다. 14세 때 연극을 접하고 난생 처음 ‘다른 세상’을 만났다. 양 감독은 “남편에게 종속된 채 평생을 살아온 한 여자가 이혼을 요구하며 자기 삶을 찾으러 집을 떠나는 연극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홀로 집을 나서는 여자가 무대 위에서 웃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무대가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걸 무대 위 그 여자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학교에선 양 감독에게 외출 금지를 강제했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양 감독은 “‘아르바이트를 못하면 학교에 다닐 돈이 없다’고 맞불을 놓은 끝에 결국 내가 이겼다”며 “엄격한 조선대에서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유롭게 연극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소설 속 미영이 학교 밖을 나와 도쿄 중심가에 연극을 보러 다니다가 교사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는 장면은 실제 양 감독의 탈선 경험에서 나왔다. 양 감독이 그랬듯 소설 속 미영도 ‘조직에 모든 것을 위탁한다’는 맹세를 끝내 하지 않고, 대신 극단에 들어간다. 양 감독은 “도쿄 조선대에서의 일상과 북한 주민들의 삶은 실제 1980년대 내가 겪고 목격한 것”이라며 “소설에서 내가 100% 지어낸 건 미영이 무사시노미술대에 다니는 일본인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그 시절 나는 그들과 내가 국적도 이념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섰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넣게 됐다”고 했다. 양 감독은 “그때의 내가 내지 못했던 용기를 지금의 나는 낼 수 있다. 자유롭고 싶고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소설 속 시공간은 1980년대 도쿄 조선대이지만 이런 곳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어요. 이념, 사상뿐 아니라 어딘가 혹은 무언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끝내 자기 목소리를 지키는 이야기로 읽히길 바랍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문화재청이 지난해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들여 국내로 환수한 16세기 실경산수화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13일 독서당계회도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며 “이 작품은 기존 보물로 지정된 계회도(과거 급제 동기, 관아 동료 등의 친목 모임을 그린 그림) 13점과 비교해 두 번째로 이른 시기에 제작됐다”며 “상단 표제와 중단 그림 등이 후대 제작된 계회도의 전형이 되는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그림은 선비들이 현재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일대 한강변인 두모포(豆毛浦) 앞에 나룻배를 띄워 놓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실경산수화다. 조선 중종 때인 1516∼1530년 사가독서(賜暇讀書·젊은 문신에게 휴가를 줘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제도)를 했던 관료들의 모임 풍경을 담았다. 특히 강 건너 절벽 위에 세워진 독서당 등 두모포 일대를 섬세하게 그린 실경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 하단에는 모임에 참석한 관료 12명의 이름과 호, 과거 급제 연도 등이 상세히 적혀 제작 연대를 가늠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과 옛 문헌에 나타난 품계 및 관직 정보를 바탕으로 그림이 1531년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은 일본 국립교토미술관 초대 관장인 간다 기이치로(神田喜一郞)가 소장해 오다 그가 사망한 뒤 유족이 다른 일본인에게 판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본인 소장자가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은 작품을 지난해 3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매입했다. 이 밖에도 문화재청은 14세기 제작된 경기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과 조선 중기 문신 이항복(1556∼1618)이 손자 이시중(1602∼1657)의 교육을 위해 쓴 ‘이항복 해서 천자문’, 1462년 간행된 불경 ‘수능엄경의해(首楞嚴經義海) 권9∼15’도 이날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8세기 서구 유럽의 산업화를 이끈 건 어쩌면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1694∼1778)는 1755년부터 21년 동안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에 사는 지식인들과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최근 사회과학자들은 혁신을 보상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서신 교환을 통해 싹텄다고 분석한다. 의회제의 정착, 교통망 발전, 증기기관의 발명…. 이 같은 혁신들이 비슷한 시기 한꺼번에 서구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천재적인 발상을 나누는 편지의 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두 저자는 ‘부(富)의 기원’을 추적한다. 2세기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94%는 하루 2달러(2016년 물가 기준) 이하를 쓰며 살았다. 2015년 그 비율은 10%로 줄었다. 20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세계를 경제 성장으로 이끌었을까. 저자들은 답을 찾기 위해 지리뿐 아니라 제도, 문화, 인구 등이 부와 빈곤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이들은 다양한 데이터를 살핀 뒤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섬나라 영국은 18세기 운하와 철도 등 운송 인프라를 확충해 내수 운송 체계를 갖췄다. 내수 시장을 연결해 유럽 대륙과 연결돼 있지 않은 지리적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미국 역시 철도망을 촘촘하게 건설해 멀리 떨어진 지역을 한데 묶고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을 확보했다. 철도망이 없었다면 1890년 미국의 총생산성은 25% 감소했을 것이란 최근의 연구 성과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타고난 지리적 운명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운송 인프라로 ‘지리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프로테스탄티즘 문화가 서구 유럽을 자본주의로 이끌었다’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주장도 반박한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노동윤리를 강조한 자본주의 정신은 존재했다는 것. 오히려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효과에 집중한다. 성경을 직접 읽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을 중시한 덕분에 문해력이 향상돼 두꺼운 인적 자본이 구축됐다는 얘기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개신교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어 부를 쌓았다. 경제 성장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종교개혁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선진화라는 분석이다. 부의 기원을 하나로 꼽을 수는 없지만 저자들은 근현대 경제를 성장시킨 핵심 요인으로 문화를 꼽는다. 21세기 산업을 지탱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어째서 미국에 몰려 있을까. 18세기 서구 유럽의 지식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생각을 공유했듯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유한다. 좋은 발상을 나누는 성장 문화가 혁신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사회경제학 논문과 보고서 550여 편을 참고한 탄탄한 데이터가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 복잡다단한 조건들이 촘촘히 담겼다. 저자들은 “과거의 청사진은 우리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규격화된 슴베찌르개가 서로 다른 문화층에서 110점 가까이 나왔어요. 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했다는 얘기입니다. 수양개 유적은 구석기 시대의 테크노폴리스였습니다.” 4만6000년 전 제작된 세계 최고(最古) 슴베찌르개(사진)를 비롯해 10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된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은 1980년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82·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가 이끄는 충북대 박물관팀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해 7월 21일 충주댐 수몰 예정지역 지표조사 중이던 조사팀이 이틀째 쏟아진 기록적 폭우를 뚫고 극적으로 발견했던 것.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에서 6일 만난 이 교수는 “배를 타러 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돌아가려는데, 제자들이 ‘계속 가보자’고 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적을 발굴해 후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발견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구석기 연구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수양개 유적이 올해 발굴 40주년을 맞는다. 1980년 발견돼 3년 뒤 발굴한 수양개 유적은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구석기 유적으로 꼽힌다. 나머지 두 유적이 미국인에 의해 발견된 데 비해 수양개 유적은 처음부터 우리 발굴팀이 발견해 의미가 더욱 크다. 그러나 첫 발견 뒤에도 한동안 충북대 박물관의 잠정 발굴 대상 목록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교수는 1983년 3월 박물관장을 맡자마자 가장 먼저 수몰 위기에 놓인 수양개 유적 발굴을 추진했다. 그리고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를 지원하는 한국수자원공사를 4개월 동안 설득해 그해 7월 첫 발굴에 나섰다. 이 교수가 “수몰 전 반드시 발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충주댐 건설로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를 유적이다. 이 교수는 74세가 된 2015년까지 13차례 수양개 발굴을 이어갔다. 수양개 유적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댐 수위가 낮아지면 발굴을 계속한 것. 그렇게 수양개에서 출토된 유물은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는 식민사관을 뒤엎었을 뿐 아니라 ‘미개하다’고 여겨졌던 구석기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이 교수는 “수양개 1지구에서는 석기 제작소만 49곳이 나왔다”며 “정교하게 정형화된 석기의 형태로 미뤄 대량 석기 생산 체계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양개 유적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96년부터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 ‘수양개와 그 이웃들’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25차례 개최했다. 미국과 러시아, 폴란드 등 해외 대학과 기관에서 연 것만도 16차례다. 그동안 181개국에서 학자 486명이 참여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일까. 일본 국립후쿠오카박물관은 전시물 설명에서 ‘수양개 슴베찌르개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 구석기 사냥 도구의 기원이 수양개 유적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나아가 ‘슴베찌르개 한반도 기원설’도 세계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40년을 수양개 유적에 바쳤지만 그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고 했다. 수양개 유적에서 제작된 슴베찌르개가 일본과 중국 등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경로를 파악하는 ‘슴베찌르개 로드’를 그리는 일이다. 이 교수는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현역”이라며 “유적의 가치를 밝히는 데 힘을 쏟고 싶다”고 했다.슴베찌르개날 부분을 찌를 수 있게 가공한 마름모꼴 석기로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도구. 자루에 꽂기 위한 뾰족한 부분을 일컫는 ‘슴베’와 ‘찌르개’를 합쳐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가 만든 학술용어다. 나무나 짐승 뼈로 만든 자루에 달아 사냥용 창 등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