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수

이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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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책사회부 복지팀 이문수 기자입니다.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람에서부터 듣진 못했으니 무덤에 묻힐 때까지 2배로 열심히 듣겠습니다.

doorwater@donga.com

취재분야

2024-10-26~2024-11-25
사회일반54%
교육33%
인사일반10%
사건·범죄3%
  • “낮은 연봉에 365일 비상대기”… 규제묶인 국립대병원 ‘의사난’

    지난달 28일 A국립대병원 흉부외과 진료 대기실. 수술 전후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한 가운데 한 진료실이 비어 있었다. 올 초까지 흉부외과 전문의 B 씨가 환자를 보던 공간이다. 그는 이 병원에서 대동맥 박리 등 초응급 심장병 환자의 가슴을 열고 심장에 메스를 댈 수 있는 유일한 개흉술 의사였다. 하지만 365일, 24시간 지속되는 ‘온콜(on-call·비상대기)’ 근무를 견디다 못해 사직했다. A병원은 권역 내에서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다. 심뇌혈관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초응급 심장병 환자를 수술할 의사는 이제 한 명도 없다. 병원은 빈자리를 채우려 채용 공고를 올렸지만 지원 문의조차 없었다. 민간병원보다 약 2억 원 낮은 연봉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은 현행법상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소속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급여가 총액인건비로 묶여 있다. 밤새워 수술한 의료진에게 성과급도 줄 수 없고, 연봉 인상률도 정부 결정대로 일괄 적용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도 보장해야 하는데, 당직 의사를 추가로 구하기도 어렵다. 부서마다 의료진 수가 ‘교원 정원’으로 제한돼 있다. A병원이 개흉술 의사를 구하지 못한 최근 반년 새 인근에서 발생한 초응급 심장병 환자들은 수십∼수백 km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분원까지 포함해 전국에 17곳 있는 국립대병원들은 지역 의료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보건당국은 권역별로 리더 역할을 할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관리하는데, 16개 권역 중 14곳에서 국립대병원이 책임의료기관을 맡고 있다. 국립대병원은 어린이병원이나 외상센터 등 ‘돈이 안 되지만 꼭 필요한’ 공공·필수의료를 도맡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1곳은 평균 5.4개의 공공전문진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정원과 인건비를 규제하는 건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재정 안정성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해야 할 국립대병원에까지 규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지방에서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의원이 줄어들고 있다. 국립대병원이 대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병원 인건비 규제에 낮은 연봉… 심장수술할 의사 못 구해‘에이스’들 급여 불만에 개업의 유출…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도 못받아부족한 방사선사는 정원 규제에다른 직종 의료진이 대신 맡아“급여-의료진 채용 탄력 운용” 지적 C국립대병원에는 ‘인터벤션(중재)’을 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1명뿐이다. 인터벤션이란 피부를 절개하는 대신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면서 치료하는 시술이다. 심혈관질환, 비뇨기질환 등의 치료에 활용된다.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하기 때문에 흉터와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 치료 후 회복 속도도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이 시술이 가능한 의사가 1명밖에 없다 보니 해당 의사가 쉬는 날에는 환자를 받기가 어렵다. C국립대병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충원하기 위해 1년 넘게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원자가 원하는 만큼의 급여 수준을 맞춰주지 못해 채용에 실패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서울에 몰려 있다”며 “현재 국립대병원에 대한 각종 규제로 인해 민간 병원만큼 급여를 주기가 어려워 의료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 규제에 ‘스타 의료진’ 채용은 꿈도 못 꿔국립대병원이 의료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뉜다.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서는 기타공공기관도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경영과 예산 지침 등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역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기타공공기관은 ‘총액 인건비 한도’를 지켜야 한다. 국립대병원 또한 이 한도 내에서 의료진 인건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민간 병원만큼의 급여를 제안하며 의료진을 데려오기가 어렵다. 윤경철 전남대병원 안과 교수(기획조정실장)는 “실력 있는 의사를 데려와서 병원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가장 중요한 건 급여”라며 “이른바 ‘스타급 교수’를 데려오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타공공기관은 총인건비 인상률(올해 기준 1.7%)도 정해져 있다 보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당직비를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수도권 대형병원이나 사립대병원으로 의료진 유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게 국립대병원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 에이스’들이 점점 더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며 “정형외과에서 제일 수술을 잘하던 전공의가 개업하겠다고 하면 ‘교수로 남아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교수직을 포기하고 ‘촉탁의로 전환해 달라’고 신청하는 국립대병원 교수들도 생겨나고 있다. 촉탁의는 총액 인건비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1년 단위로 병원 측과 계약을 할 수 있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하지 않고 병동에 상주하며 입원 환자를 돌보는 일만 전담하는 입원전담전문의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립대병원 교수라는 자리의 명예나 고용 안정성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라며 “개원하면 연봉을 2배로 벌 수 있다 보니 의료진들은 ‘가족들이 교수를 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방사선사 부족해도 ‘정원 제한’에 못 늘려국립대병원에 가해지는 규제는 인건비 제한뿐만이 아니다. 특정 직종 의료진을 더 채용하고 싶어도 ‘정원 제한’이라는 걸림돌에 가로막힌다. 국립대병원은 직원 증원이 필요할 경우 기획재정부 심의 절차를 거쳐 확정된 인원만큼만 더 늘릴 수 있다. 이 역시 국립대병원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D국립대병원에는 수술실에 근무하는 방사선사가 현재 2명뿐이었다. 병원 측은 ‘정원을 2명 더 늘려달라’고 기재부에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수술실에서 뼈와 관절을 실시간으로 투시하는 특수영상장치(C-Arm)를 다룰 방사선사가 부족해 방사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직종 의료진이 대신하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으로 고생하는 방사선사들도 걱정되고, 결국 그 업무를 대신하는 다른 직종 의료진의 업무 과중 문제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북대병원 감염관리센터도 이 같은 정원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북대병원은 지난해 5월 총 51개의 음압병상을 갖춘 감염관리센터를 열었다. 현재 이 센터에선 간호사 약 50명이 코로나19 중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만 배정된 인원이라 올해 말에는 이 정원을 반납해야 한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중환자는 전체 확진자 수 감소와 달리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다른 부서 간호사를 데려오려고 해도 그곳 역시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국립대병원 무너지면 취약계층부터 타격”인건비 제한과 정원 제한이라는 규제로 인해 생기는 여러 제약 때문에 국립대병원 의료진 사이에서는 ‘우리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민간 병원과 달리기 경쟁을 하는 셈’이라는 하소연마저 나온다. 물론 국립대병원이 공공기관 성격을 갖고 있다 보니 정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을 필요는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국립대병원에 가해지는 모든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방만 경영 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총인건비 인상률 등 획일화된 기준을 국립대병원에 적용하면 임금 격차에 따른 의료진 유출을 막기 어렵다. 정원 제한도 의료 현장의 수요를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병원에 박힌 규제 때문에 병원 역량이 약화되면 결국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의료진과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지역 주민들에게 남는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역 국립대병원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결국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라며 “의료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는 이들과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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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명인간 하은이’ 없게… 병원서 출생 14일내 지자체 통보해야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정보를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한 ‘출생통보제’(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아일보가 2019년 1월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숨진 지 7년 뒤에야 존재가 알려진 ‘투명인간 하은이’ 사례를 보도하고 정부가 출생통보제 도입 방침을 밝힌 지 4년여 만이다.● 의료기관, 출생 14일 이내 지자체에 통보 출생통보제는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7명 중 찬성 266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미등록 아동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아이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출생통보제는 법안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의료기관은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심평원에 출생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심평원은 모친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시·읍·면의 장에게 출생 정보 등 출생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출생통보를 받은 시·읍·면의 장은 신고 기간인 1개월이 지나도록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모친 등 신고 의무자에게 7일 이내에 출생 신고를 하도록 통지해야 한다. 이후에도 신고가 되지 않으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다만 법안에는 의료기관에서 출생통보를 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 조항은 규정되지 않았다. 출생통보제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가 유기·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출생통보제는 18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발의됐지만 그동안 의료현장에서 행정 부담 및 책임 소재를 이유로 반대해왔다. 이에 여야는 민간 병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인이 진료 기록부에 출생 신고에 필요한 출생 정보를 입력해 심평원에 전달하면 심평원이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 출생통보제가 뒤늦게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미등록 아동 사각지대 해소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출생통보제 때문에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가 병원 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병원 밖 출산이나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임신부도 강제로 출생신고를 하게 돼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며 “미등록 아동 보호라는 법 취지와 정반대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5일 된 영아 시신 야산에 묻은 부부 국회에서 출생통보제가 통과된 이날 경남 거제시 등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야산에 유기된 ‘유령 아기’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9월 생후 5일 된 영아를 비닐봉지에 싸 야산에 묻은 사체은닉 혐의로 사실혼 관계인 20대 A 씨와 30대 부인 B 씨를 긴급체포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남 고성군은 B 씨가 병원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 B 씨 부부는 처음엔 “아이를 입양보냈다”고 진술했지만 계속된 추궁 끝에 “아이가 숨졌다”고 실토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서도 2019년 4월 말경 대전에서 출산한 아동을 방치해 사망하게 한 20대 친모가 긴급체포됐다. 국회부의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이날 경찰청과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에서 발견한 건과 별도로 판단되는 12건의 무연고 아동 사망 사례가 전국에서 추가 확인됐다. 2021년 9월 경기 포천시에서는 네 살로 추정되는 아이의 백골 시신과 유품이 야산에 있는 공사 현장에서 굴착기 작업 중 드러났다. 2020년 8월 충북 진천군의 생활하수 처리장에서는 16∼20주로 보이는 태아 시신이, 같은 해 6월 서울 성북구의 야산 등산로에서는 영아 시신이 각각 발견됐다. 2019년 6월 경북 구미시에서는 노상에 있던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한 살로 추정되는 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거제=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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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명인간 하은이’ 4년만에…병원이 출생 14일내 지자체 통보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정보를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한 ‘출생통보제’(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아일보가 2019년 1월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숨진 지 7년 뒤에야 존재가 알려진 ‘투명인간 하은이’ 사례를 보도하고 정부가 출생통보제 도입 방침을 밝힌 지 4년 여 만이다.● 의료기관, 출생 14일 이내 지자체에 통보 출생통보제는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7명 중 찬성 266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미등록 아동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아이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출생통보제는 법안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의료기관은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 심평원에 출생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심평원은 모친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시·읍·면의 장에게 출생 정보 등 출생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출생통보를 받은 시·읍·면의 장은 신고 기간인 1개월이 지나도록 출생 신고가 되지 않으면 모친 등 신고의무자에게 7일 이내에 출생 신고를 하도록 통지를 해야 한다. 이후에도 신고가 되지 않으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 다만 법안에는 의료기관에서 출생 통보를 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 조항은 규정되지 않았다. 출생통보제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가 유기·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출생통보제는 18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발의됐지만 그 동안 의료현장에서 행정부담 및 책임소재를 이유로 반대해왔다. 이에 여야는 민간 병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인이 진료 기록부에 출생 신고에 필요한 출생 정보를 입력해 심평원에 전달하면, 심평원이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 출생통보제가 뒤늦게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미등록 아동 사각지대 해소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출생통보제 때문에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가 병원 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병원 밖 출산이나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출산통보제 시행으로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임산부도 강제로 출생 신고를 하게 돼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며 “미등록 아동 보호라는 법 취지와 정반대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5일 된 영아 시신 야산에 묻은 부부 국회에서 출생통보제가 통과된 이날 경남 거제시에서도 출생 신고되지 않은 채 야산에 유기된 ‘유령 아기’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9월 생후 5일 된 영아를 비닐봉지에 싸 야산에 묻은 사체은닉 혐의로 사실혼 관계인 20대 A 씨와 30대 부인 B 씨를 긴급체포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남 고성군은 B 씨가 병원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 B 씨 부부는 처음엔 “아이를 입양보냈다”고 진술했지만 계속된 추궁 끝에 “아이가 숨졌다”고 실토했다. B 씨는 “출산 후 퇴원한 뒤 집에서 영아와 함께 자고 일어나니 아이가 숨져 있길래 비닐봉지에 싸서 집 근처 야산에 묻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국회부의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이날 경찰청과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에서 발견한 건과 별도로 판단되는 12건의 무연고 아동 사망사례가 전국에서 추가 확인됐다. 2021년 9월 경기 포천시에서는 네 살로 추정되는 아이의 백골 사체와 유품이 야산에 있는 공사 현장에서 굴착기 작업 중 드러났다. 2020년 8월 충북 진천군의 생활하수 처리장에서는 16~20주로 보이는 태아 사체가, 같은 해 6월 서울 성북구의 야산 등산로에서는 영아 사체가 각각 발견됐다. 2019년 6월 경북 구미시에서는 노상에 있던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한 살로 추정되는 아이의 사체가 발견됐다.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거제=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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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년째 돌보는 조현병 딸, 아플 때마다 병상 못찾아 260km ‘표류’

    18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서른네 살 딸을 돌보고 있는 김경연 씨(60·전남 완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을 말했다. 3월 2일 오후 4시, 딸은 ‘이웃집이 자신을 감시한다’며 천장을 막대기로 두들기더니 이웃을 해칠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갑자기 망상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급성 복통이 오면 응급실에 가듯, 조현병도 급성 증상이 나타나면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45km 떨어진 37분 거리의 전남 해남군에 종합병원이 2곳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이다. 하지만 2곳 모두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상이 꽉 찼다며 딸을 받아주지 않았다. 107km 거리의 전남 나주시 국립정신병원은 정신건강 전문의가 퇴근해 진료 및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130km가 넘게 떨어진 2시간 거리의 광주 종합병원으로 운전대를 돌리면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딸을 받아줄 병상이 없다고 했다.● 증상 심해질 때마다 병원 찾아 표류 결국 김 씨의 딸은 어느 곳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이동한 총 거리는 약 260km다. 김 씨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이런 응급상황이 발생한다”며 “이때 치료제를 처방받고, 바로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딸의 증상이 심해질 때마다 김 씨는 정신질환자 입원 병상을 찾아 표류하고 있다. 정신질환자 표류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절대적인 병상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정신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정신과 폐쇄병상 수는 5만5364개로 2017년(6만7298개)보다 18% 감소했다. 그나마 김 씨의 딸처럼 천식 등 신체질환과 동반한 정신질환을 치료받을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 병상은 3806개뿐이다. 반면 중증 정신질환자 수는 지난해 107만2846명으로 5년 만에 25%나 증가했다. 동아일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해 △조현병 △ 지속적 망상장애 △조증 에피소드 △양극성 정동장애 △우울 에피소드 △재발성 우울장애 환자 등 자살 시도 및 발작 등 신체질환을 동반할 우려가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 수를 추산한 결과다. 정신질환자 입원 병상이 부족한 건 서울도 다르지 않다. 이문희 씨(62·서울 은평구)는 조현병과 정동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36)을 17년째 돌보고 있다. 두 달 전 아들이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며 열이 급격히 오르는 등 증상이 심해져 서울 대형병원들에 입원을 문의했지만 ‘빈 병상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이 씨는 “일반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아도 기존에 먹던 약을 조합해 처방해주는 수준”이라며 “급성기 치료를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 받는 게 필수인데, 빈 병상 찾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 정신과 병상은 유지할수록 손해 중증질환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상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내 최초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이 2018년 문을 닫았다. 지난해 성안드레아병원이 정신과 병동을 폐쇄했다. 정신과 입원진료 수가가 낮게 책정돼 병원이 수익을 내기 어렵자 아예 문을 닫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급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입원 일당 진료비는 25만134원으로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이었다. 통원보다 입원 진료 수가가 특히 낮다. 더욱이 생업을 할 수 없는 정신질환 특성상 의료급여 환자가 많은데 이들의 수가는 건강보험 환자보다 낮다 보니 병원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 폐쇄병상은 신체질환을 진료하는 다른 과목과 같이 쓸 수도 없고, 인력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를 받기 전에 ‘정신응급’ 상황에서 환자를 진정시키는 공간인 안정실도 부족하다. ‘정신응급’이란 급성 정신질환으로 자살이나 폭력 등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뜻한다. 이해우 서울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은 “정신응급 상황에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먼저 안정실에서 진정을 시키고 입원시킨다”며 “안정실도 1, 2개뿐인 병원이 대부분이라 응급상황 시 중증 정신질환자 수용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입원 어려워지면서 가족들 고통 가중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입원 절차가 어려워진 것도 가족들의 고통을 더하고 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를 비자의 입원시키는 방법은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진단으로 입원하는 ‘보호 입원’ △자해·타해 위험이 있을 때 경찰에 의해 입원하는 ‘응급 입원’ △지방자치단체장의 명령으로 입원하는 ‘행정 입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자신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많아 비자의 입원 비율이 높다. 하지만 2주 이상 입원 시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한 데다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이미 해체된 경우가 많아 보호자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 김경연 씨가 보호 입원을 문의했을 당시 전문의들이 퇴근한 뒤라 경찰관을 대동한 응급 입원밖에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씨는 “엄마로서 아픈 딸을 어떻게 경찰을 불러 강제 입원을 시키겠냐”며 “지방의 경우 당직 정신과 전문의가 적어 보호 입원 절차를 밟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족들에게만 정신질환자 돌봄의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급성기 환자를 위한 병상을 확충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한 사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인 가구가 늘고 있는데 가족들에게 정신질환자 돌봄을 일임해서는 안 된다”며 “중증, 응급 정신의료를 필수의료로 포함시켜 병상 수를 확충하고, 지역 사회에서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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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우 쏟아지고 발 아파도… 함께라서 해낼 수 있었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함께 걷다 보니 저절로 다리가 움직였어요. ‘같이의 가치’가 뭔지 알겠더라고요.” ‘2023 제5회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HO!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김민주(가명·15) 양은 9일 경기 연천공설운동장부터 강원 철원군을 지나 서울 여의도공원까지 이어지는 60km 코스를 완주했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의 꿈지원사업 일환인 ‘꿈꾸는아이들 국토대장정’은 아동,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키워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평화를 기리는 의미로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인 경기 김포시, 연천군 등을 잇는 ‘평화누리길’ 코스를 걸었다. 이번 국토대장정에는 월드비전 등록 청소년을 비롯해 전국의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15세 소외계층 청소년 244명이 모였다. ●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길이번 행사는 5∼7일 대장정에 참여한 1기(115명)와 7∼9일 참여한 2기(129명)로 나뉘어 진행됐다. 1기 참가자들은 김포함상공원부터 철원군을 지나 연천공설운동장까지, 2기 참가자들은 연천공설운동장부터 철원군을 지나 여의도공원까지 걸었다.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청소년들에게 이 길은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김 양은 다문화센터 교사의 권유로 대장정에 참가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3년간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는 김 양의 꿈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님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 양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다른 외모로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태권도를 배운 뒤부터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체력도 무척 좋아졌다. 운동으로 체력이 다져진 김 양에게도 국토대장정은 어려운 과제였다. 비오듯 땀을 흘렸고, 발바닥이 부서질 듯 아파 와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양은 더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선두에서 친구들을 이끌며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 양은 “국토대장정을 완주하고 나니 태권도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한부모 가정 이예진(가명·15) 양은 쌍둥이 동생 이서진(가명·15) 양과 함께 참여했다. 예진 양의 꿈은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사다. 예진 양은 체력과 마음이 약한 편이라 이번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싶어 참가했다. 그는 “ 꿈이 의사이다 보니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챙기고 보살펴주고 싶었다”며 “그저 걷기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우릴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생 서진 양도 “친구들과 연천과 철원의 역사적인 장소를 걸으면서 나를 알게 됐고, 뜨거운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 이번 국토대장정의 슬로건은 기적과 불굴의 의지, 희망을 뜻하는 말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었다. 대장정에 참가한 청소년들에게 굳건한 마음만 있다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뜻의 ‘중꺾마’는 큰 울림을 주는 단어였다. 이제 15세에 불과한 참가자들이 60km 대장정을 완주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가 올라와 숨이 막혔다. 때때로 갑작스러운 소나기까지 쏟아져 우비에 의지해 걷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서로를 다독이고, 가방을 들어주며 힘차게 한 발짝씩 내디뎠다. 244명의 청소년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국토대장정 코스를 완주했다. 완주 후 열린 해단식에서는 모두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참가자 김하윤(가명·15) 양은 “발바닥이 아파서 혼자 걷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솔직히 여기(국토대장정) 온 것을 후회했지만, 지금 이 순간도 이겨내지 못하면 나중에 살아가며 더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이겨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며 “완주했을 때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생각에 색다른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앞으로 아이들이 꿈을 향해 나아갈 때 만나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국토대장정의 경험을 살려 모두 이겨낼 수 있고, 완주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5∼9일 열린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국토대장정’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4년 만에 재개됐다. 총 1568명의 참가 대원이 2014년 첫 행사 이래 걸었던 국토대장정의 누적 거리는 434km에 달한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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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폐원 백병원 자리에 병원만 허용”

    1941년 개원한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누적된 적자를 극복하지 못하고 폐원 절차를 밟게 됐다. 인제의료원은 건물을 다른 사업에 활용하거나 매각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병원이 아닌 다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예상된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20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서울백병원 폐원을 의결했다. 최근 20년간 1745억 원의 적자가 발생해 더 이상은 병원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인제의료원은 의료인력을 상계·일산백병원 등으로 옮겨 고용을 유지하고, 치료 중인 환자들의 전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고용 승계와 환자 전원이 종료돼야 폐원이 가능하므로 당장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병원 부지는 매각하거나 병원이 아닌 수익사업을 추진하는 방안, 미래혁신데이터센터 운영 등을 검토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서울백병원 폐원이 확실시되자 서울시는 같은 날 오전 병원 부지를 도시계획시설 중 하나인 ‘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병원이 아닌 다른 시설을 운영하지 못하게 해 의료 공백을 막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종합의료시설 지정 절차에 바로 돌입할 것”이라며 “빠르면 6개월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날 보건복지부는 2024∼2026년 3년간 적용되는 제5기 상급종합병원 지정 계획을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이란 암 수술 등 중증질환에 대한 고난도 수술을 전담하는 병원이다. 이번 계획에는 내년 1월부터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의 상시 입원 진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시정명령이 내려지거나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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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스케어-운동 코칭받고 건강 기지개 활짝… 내년에도 꼭 참가”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정확한 정보를 얻기는 어렵거든요. 서울헬스쇼는 재미있고도 유익한 자리였어요. 내년에도 꼭 참가할 거예요.” 15일 ‘2023 서울헬스쇼-도심 속 건강축제’에서 만난 심인순 씨(66)는 “남편이랑 둘이 나들이 겸 나왔는데 건강 정보와 경품이 풍성해서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 만에 도심에서 대규모 대면 행사로 열린 서울헬스쇼를 찾은 시민들은 팬데믹이 끝난 일상을 만끽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동안 움츠러들었던 시민들이 활짝 기지개를 켜고 건강을 챙기며 최신 헬스케어서비스를 비롯한 미래 의료를 체험하는 기회가 됐다. ● “내년에도 참여” 뜨거운 호응 13∼15일 점심시간마다 인근 2030 직장인들이 서울광장을 많이 찾았다.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박희선 씨(25)는 “입사 이후 체력이 부쩍 약해진 것을 실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혼자 운동을 했는데, 이번에 서울헬스쇼에서 제대로 운동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체육대생인 강정민 씨(20)와 유승근 씨(20)는 “평소 운동을 즐겨서 행사장을 찾았는데 운동뿐 아니라 닭가슴살 등 식이요법 정보도 쏠쏠했다”고 말했다. 2030세대가 운동에 열정적이었다면 5060세대는 평소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체성분을 검사해 주는 고도일병원, 존슨앤드존슨의 백내장·녹내장 체험 부스, 혈압을 측정해 주는 대한고혈압학회 부스 등에 길게 줄을 섰다. 공인중개사 차영익 씨(67)는 “내 건강이 곧 나라의 건강 아니겠나. 서울헬스쇼 참가로 애국했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주부 오용순 씨(61)는 “손주 2명을 돌보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면서 부지런히 행사장을 돌았다. 단체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어린이집 7세반 아이 28명은 빈백(모양이 자유롭게 변하는 1인용 소파)에 삼삼오오 누워 재잘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열띤 행사장 분위기에 참가 업체도 ‘뿌듯’14일에는 하늘을 나는 응급실인 닥터헬기 2대가 서울광장 위를 날았다. 시민들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닥터헬기를 응원했다. 서울헬스쇼에는 모션인식 기술을 활용한 운동 처방, 3차원(3D) 체형 진단,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일대일 맞춤형 건강 코칭 등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가 소개됐다. 부대행사로 열린 심포지엄도 의료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어 인기였다. 13일에는 ‘메타버스(가상공간)를 향해 가는 첨단 병원들’ 심포지엄과 ‘스마트 케어 기술 기반 돌봄·의료 연계’ 심포지엄이 차례로 열렸고, 14일에는 ‘당뇨병 대란 위기관리와 대응’ 심포지엄이 열렸다. 서울헬스쇼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자 이에 참여한 정부와 기업들도 “뿌듯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예상보다 많은 시민이 찾으면서 사흘치로 준비한 경품이 첫날부터 동이 나 본사에서 추가 물품을 긴급 공수한 기업이 많았다. ‘숙면 여행’ 부스를 운영한 유재성 수면코치 겸 에스옴니 대표는 “3년간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홍보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이렇게 많은 시민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 대 1 수면 코칭 때 억눌렸던 감정을 터뜨리며 우는 시민도 많았다. 서울헬스쇼가 팬데믹 동안 겪은 외로움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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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데이터가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콕 잡아낸다

    “지난달 청소년 대상 식욕억제제 판매 등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 기획 감시를 할 때는 직원 20여 명이 전국 의료기관 60곳을 돌아다녔어요. 소수 인원이 전국을 담당하느라 바쁩니다.” 송현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오남용감시단 태스크포스(TF) 단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감시단은 프로포폴, 펜타닐 등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올해 4월 26일 신설된 식약처 산하 기구다. 검찰에 따르면 올해 3월 향정신성의약품 단속 건수는 1195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45% 증가했다. 올해 1∼3월 마약류 사범 단속 건수 4124건 중 3106건(75.3%)이 향정신성의약품 단속이었다. 감시단은 민간 전문가 협의체를 포함해 120명 규모로 구성돼 있으며 프로포폴, 펜타닐, 식욕억제제, 졸피뎀 등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과 의료쇼핑 환자에 대한 감시를 총괄한다.● 마약류통합관리센터에서 유통 정보 감시감시단은 정기적으로 ‘테마’를 정해 기획 감시도 실시한다. 지난달에는 청소년 대상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과 ‘식욕억제제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 성지’를 테마로 점검을 실시했다. 송 단장은 “지난달 청소년 대상 마약류 의약품 4종(졸피뎀, 프로포폴, 펜타닐, 식욕억제제)에 대한 60개 의료기관의 ‘취급보고’를 점검했고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식욕억제제 오픈런’ 성지로 유명한 5개 의료기관에 대한 합동점검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감시단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활약하는 데는 ‘마약류통합관리센터’의 역할이 크다. 마약류통합관리센터는 병원, 약국 등 마약류 의약품 취급자의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의 취급보고를 모니터링한다. 취급보고란 마약, 향정신성의약품의 수출입, 제조, 판매, 폐기, 투약 등의 유통 정보를 말한다. 센터에서는 마약(펜타닐, 모르핀 등)와 프로포폴은 ‘중점관리 대상’, 그 외 향정신성의약품(졸피뎀, 식욕억제제, 항불안제 등)은 ‘일반관리 대상’으로 관리한다. 중점관리 대상과 일반관리 대상은 관리, 취급보고 기한이나 항목에서 차이가 있다. 마약류통합관리센터에서는 하루에 40여만 건, 1년에 1억 건 이상의 마약류 의약품 취급보고가 이뤄지며, 5년간 6억 건의 데이터가 누적돼 마약류 의약품 관리 체계의 ‘빅데이터화’를 이뤄냈다.● 분석한 정보는 검찰-국회 등에 공유센터에서는 마약류 의약품의 취급보고 데이터를 감시 항목에 맞게 추출해 식약처나 국회, 검찰 등에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 씨도 취급보고 데이터에서 2021년 프로포폴 과다 처방 정황이 포착돼 덜미를 잡혔다. 경기 안양시에 있는 마약류통합관리센터는 (마약류)정보분석팀, 시스템운영팀, 제도지원팀 등 3가지 팀으로 나뉘어 있다. 정보분석팀은 매일 들어오는 수십만 건의 취급보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시스템운영팀은 마약류통합관리 시스템의 기술적인 부분을, 제도지원팀은 공무원 대상 교육 등 외부 교육 부문을 담당한다. 정보분석팀 관계자는 “정보분석팀의 경우 식약처는 물론이고 통계청, 검찰, 국회 등 연계 기관에 대외 자료를 제공하는 일이 잦다”며 “주로 데이터를 분석, 추출하는 일이 많다 보니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코딩에 능해야 하고 무엇보다 꼼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분석팀 내 데이터 품질관리파트는 매일 40여만 건의 취급보고를 일일 점검하고, 오류를 찾아내 수정한다. 센터의 데이터 오류율은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인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다. 장재혁 마약류시스템운영팀장은 “마약류통합관리센터 내 취급보고 오류율은 0.07% 정도로, 미국 등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치”라며 “취급보고에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곧바로 취급처에 연락해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하수처리장에서도 마약류 동향 감지 식약처에서는 데이터 관리뿐만 아니라 하수처리장을 통해서도 마약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8일 식약처는 2020∼2022년 하수역학 기반 불법 마약류 사용 행태 결과를 발표했다. 하수역학이란 하수처리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잔류 마약류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고 인구 대비 마약 사용량을 추정하는 기법이다. 식약처가 전국 17개 시도 하수처리장에서 필로폰, 암페타민, 엑스터시, 코카인, LSD 등 마약류 7종의 잔류량을 분석한 결과, 필로폰이 3년 연속으로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검출됐으며 엑스터시의 사용추정량이 3년 만에 1.5배로 증가했다. 필로폰의 경우 3년 연속 조사 대상이었던 34개 하수처리장에서 모두 검출됐으며, 인구 1000명당 평균 사용추정량은 약 20mg 내외로 조사돼 마약류 중 가장 높은 사용량을 보였다. 엑스터시 사용추정량의 경우 2020년 1.71mg에서 2022년 2.58mg으로 3년 만에 1.5배로 증가했다. 검출된 하수처리장도 2020년 19곳에서 2022년 27곳으로 늘어났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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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간호사도 해외로 떠난다…“美 업무량 절반-연봉은 4배”

    더 나은 처우를 찾아 국내 간호사들이 해외로 ‘취업 이민’ 가는 사례가 최근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선진국의 간호사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인데, 안 그래도 부족한 국내 간호 인력이 대거 유출되면서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3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NCSBN)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인 ‘엔클렉스(NCLEX)’에 응시한 한국인 수는 1816명에 달했다. 2018년 783명이었던 것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 1∼3월 응시자 수만 1758명에 달해 연간 최대치 경신이 확실시된다. 이 통계는 처음 응시한 이들을 기준으로 집계돼 2차례 이상 시험을 본 이들까지 포함할 경우 응시자는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들이 미국 등 해외로 취업을 나서는 것은 국내의 경우 보수 대비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취업에 성공한 A 씨는 “미국은 한국에 비해 노동 강도는 절반가량인데 연봉은 4배나 된다”고 했다. 또 간호사 집단 내 괴롭힘 문화인 이른바 ‘태움’ 때문에 못 견디고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의료 현장에선 “간호사 구인난이 응급의료 공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의 한 중소병원은 2년 전 간호사 인력난으로 중환자실을 폐쇄했다. 병원 관계자는 “추가 간호사 채용이 어려워 여전히 중환자실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간호사들 “美업무량 韓의 절반, 연봉은 4배”… 이탈 늘어 의료공백 뉴욕 병원에 취업한 한국 간호사…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 없어”주60시간 넘는 근무에 처우는 열악간호인력 유출로 중소병원들 타격응급구조사가 간호사 대신하기도“한국에서 일할 때는 앉아서 점심을 먹은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어요.” 지난해 말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 취업한 이모 씨(29)는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국내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3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간호사가 됐지만 과중한 업무와 선배 간호사들의 폭언 등으로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그는 “미국은 한국에 비해 노동 강도는 절반에 불과한데 연봉은 4배 가까이 높다”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열악한 처우’에 해외로 떠나는 간호사들 국내 간호사들이 해외 취업을 택하는 것은 국내 병원에서 수행하는 업무가 과중한 반면 처우는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2년간 신경외과 병동 간호사를 하다 지난해부터 호주 멜버른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이모 씨(33)는 “한국 병동에선 간호사 한 명당 한 번에 환자를 20명씩 담당할 때도 있었는데 호주에선 4명만 돌본다”며 “그만큼 환자 한 명에게 더 집중할 수 있고 업무 피로감도 적다”고 말했다. 올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직 간호사의 42.5%가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하는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의 간호사는 주 60시간 근무를 넘기는 것도 예사라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 3개월간 이직을 고려한 간호사 비율이 74.1%나 됐다. 반면 업무량 대비 보상은 적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 평균 연봉은 4675만 원으로 연봉이 9000만∼1억 원 안팎인 미국의 절반 남짓이다. 또 한국에선 3교대 근무가 대부분인 반면 미국 간호사들은 주 3일을 2교대로 일하고, 4일은 휴식하는 방식이 보통이다. 또 미국의 경우 정년이 따로 없고 ‘전담 간호사 제도’가 정착돼 업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적인 간호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올 3월 미국 간호사 시험에 합격해 이민을 준비 중인 오모 씨(26)는 “한국에선 3교대인데도 연장근로가 당연하게 여겨져 하루 12시간씩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진료 차트로 머리 맞는 일 비일비재” 병원 내 엄격한 조직 문화도 간호사들이 국내 병원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 간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2년 차 간호사 신모 씨(27)는 “실수를 하면 선배들에게 진료 차트로 머리나 등짝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중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30.1%나 됐다. 괴롭힘의 유형은 폭언(77.8%)이 제일 많았고, 업무 몰아주기(36%), 따돌림(34.5%) 순이었다. 간호 인력의 사직과 해외 유출이 이어지면서 중소 병원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형 병원이 퇴사자 대체를 위해 신규 간호사를 대거 채용하다 보니 중소 병원에서 간호 인력 구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수간호사 박모 씨(57)는 “젊은 간호사가 자꾸 빠져나가 정년퇴직한 60대 간호사를 다시 채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남은 간호사들의 업무량이 늘면서 연차를 하루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간호사 부족으로 응급구조사 등이 간호사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간호사 유출을 막으려면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신수진 이화여대 간호대 교수는 “처우 개선을 위해선 간호사 한 명당 환자 수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며 “의료법에 관련 규제는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 보니 유명무실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금선 고려대 간호학과 교수는 “지방 중소병원 간호사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일하는 등 근무 여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처우를 개선해야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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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아과 탈출 학술대회’ 연 의사들 “보톡스 공부”

    “다리에 생긴 피부염이 잘 낫지 않는다면 정맥류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40세 이상 여성에게서 발병 확률이 높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세미나실. 서울에서 흉부외과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이 단상에서 ‘하지정맥류’를 설명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의사들은 열심히 메모해가며 A 원장의 노하우를 경청했다. 자리가 모자라 강연장 맨 뒤 임시 의자에 앉은 의사도 있었다. 여느 의료 학술대회와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이 있었다. 객석의 의사들은 흉부외과가 아니라 전부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의였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연 이날 학술대회 명칭은 ‘소아청소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였다. 어린이 진료로는 병원 유지가 힘든 소청과 전문의들이 다른 진료과목을 배우는 자리다. 소청과 내용 대신 ‘고지혈증 1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 ‘바로 적용하는 보톡스’ 등 소위 ‘돈 되는’ 과목 관련 강연이 이어졌다. 여기에 소청과 전문의 800여 명이 몰렸다. 경기 파주에서 소청과를 운영 중인 A 씨는 “‘10년 뒤에도 소아 환자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강연을 찾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소청과 개원의 연봉(평균 1억875만 원)은 모든 진료과 중 가장 낮았다. “소아과 환자수 하루 10명 안팎… 보톡스 시술로 전업 생각”소아과 탈출 학술대회초저출산 추세에 환자 수 급감비급여 적어 진료비 최하위 수준소아과 의사 20% 간판 바꿔 일해 “(보톡스 시술로) 의미 있는 수익이 창출된다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간판을 내리고 완전히 ‘전업’할 생각도 있습니다.” 11일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 현장에서 보톡스 강연을 들은 B 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에서 15년째 소청과 의원을 운영해 온 ‘베테랑’ 의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 환자 수가 10명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며 소청과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B 원장은 “경영난으로 병원이 존폐 위기”라고 털어놨다.● “간판 바꿔야 할지” 소청과 의사들 고민이날 학술대회가 열린 강당은 오전 9시 첫 세션 ‘고지혈증 핵심정리’ 강의부터 772석 규모의 객석이 가득 들어찼다.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10년째 소청과 의원을 운영 중인 C 원장은 “소아과 타이틀을 꼭 유지하고 싶지만 지난 2년간 영업 이익이 거의 없다 보니 수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C 원장은 소청과를 유지하면서 만성질환이나 미용 환자도 추가 진료할 생각이라고 했다. 일종의 ‘부업’이다. 다른 소청과 전문의는 “일부에서 소아과 오픈런 같은 현상도 있지만 독감 유행 등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고,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환자가 몰린다”며 “동네 의원들은 소아 환자가 너무 적어 병원 운영이 어려운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날 강연에 앞서 “우리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소청과를 선택했지만 도저히 우리 과를 운영할 수 없게 돼 이런 학술대회를 기획하게 됐다”며 “몇 년 전부터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고령화와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네 의원은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에서 운영 중인 의원은 3만5225개로, 10년 전 2만8328개에 비해 24.3%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청과 의원은 2200개에서 2147개로 오히려 2.4% 감소했다. 주요 과목 중 의원 수가 줄어든 건 소청과와 산부인과뿐이다. 이미 소청과를 ‘탈출’한 전문의도 적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소청과 전문의 중 20%(3338명 중 667명)는 소청과가 아닌 다른 과 간판을 내걸고 일하고 있다. ● 의사들 중 최하위 연봉… “악순환 반복”소청과 의원들의 형편이 어려워진 건 기본적으로 초저출산으로 환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약 24만9000명이다. 86만 명이 넘었던 1980년의 3분의 1 미만으로 줄었다. 소청과 의사들은 “환자 수는 급감하는데 환자 1명을 봐서 벌 수 있는 돈도 업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소청과 진료는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비교적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비급여’ 항목도 적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맞는 예방 접종이 비급여 항목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며 건보 적용 대상이 됐다. 임 회장은 “아이 1명당 진료비가 1만3000원 안팎인데, 이 정도면 의사 1명이 하루에 환자 100∼200명을 봐야 직원 월급을 주고 병원 유지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진료비에 대한 소아 가산율이 2∼9% 수준이다. 소아 가산율이란 소아 환자를 진료했을 때 성인 환자 대비 추가로 얹어주는 진료비 비율을 뜻한다. 일본은 소아 가산율이 26∼100%에 달하고, 3세 미만 영아를 야간에 진료하면 진료비를 3∼5배까지 높게 쳐준다. 박양동 아동병원협회장은 “한계에 도달한 아동병원들이 진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소아 진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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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버스 활용 진료” 미래 의료 심포지엄… 닥터헬기, 4년만에 서울광장 상공 비행

    ‘2023 서울헬스쇼―도심 속 건강축제’ 부대행사로 의료의 미래를 논의하는 심포지엄이 마련됐다. 13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인근 더플라자호텔에서는 ‘메타버스를 향해 가는 첨단 병원들,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심포지엄에서 전상훈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장윤정 국립암센터 교수 등이 환자 진료에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헬스케어 서비스 분야의 미래를 진단한다. 오후 2시에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동아일보 공동 주관으로 ‘스마트케어 기술 활용 기반, 돌봄의료 연계 건강관리 강화’를 주제로 스마트케어(돌봄) 정책포럼이 열린다. 스마트케어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노인의 건강 관리 및 돌봄을 지원하는 고령 친화 시스템이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가 고령인구 비중이 20%가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살던 집과 동네에서 노년을 보내고자 하는 스마트케어 서비스 수요가 늘고 있다. 이튿날인 14일 오전 10시에는 ‘당뇨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수는 예상보다 30년이나 빠른 2020년에 600만 명을 넘어섰다. 권혁상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와 문준성 영남대병원 교수가 ‘당뇨병 대란의 현황과 대응 과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서고, 곽순헌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장 등이 당뇨와 관련된 정책 방향 등에 대한 토론에 패널로 참석한다. 하늘을 나는 응급실인 닥터헬기도 4년 만에 서울광장 하늘을 날아오른다. 닥터헬기는 14일 낮 12시 10분부터 2대가 응급출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서울광장 상공을 선회 비행할 예정이다. 서울광장은 원래 비행금지 구역이지만, 닥터헬기는 응급환자 발생 시 어디서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날 서울광장 위를 비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응급의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비보잉 그룹 진조크루가 응급의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비트박스와 비보잉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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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신 기증 70대, 5명에 새 생명 선물하고 하늘로

    장을 보러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던 장영만 씨(75·사진)가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16일 인하대병원에서 장 씨가 뇌사 장기 기증으로 좌우 안구와 신장, 간장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5일 밝혔다. 장 씨는 4월 27일 시장에 갔다가 쓰러져 119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장 씨는 평소에도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해 삶의 끝에서 누군가를 위해 나눌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사후 시신 기증을 신청했다. 원래 장 씨는 장기 기증을 하고 싶었으나 60세가 넘으면 장기 기증을 못 하는 걸로 오해해 사후에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 씨가 뇌사에 빠진 뒤 가족들은 의료진으로부터 장기 기증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고, 생전 장 씨의 뜻을 떠올리고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장 씨가 나이가 들어 은퇴할 때까지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했던 가정적인 사람이었다며 “건강하게 오래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떠나게 돼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 해 죄송할 뿐”이라며 그리워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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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년 역사의 서울백병원도 폐원 수순…누적적자 1749억↑

    서울 중구에 자리한 83년 역사의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이달 중 폐원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서울백병원에 따르면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20일 이사회를 열어 ‘서울백병원의 폐원안’을 상정해 폐원 여부를 결정한다. 서울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환자가 줄면서 더 이상 병원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때문이다. 서울백병원은 2004년 73억 원 적자를 기록한 이래 20년간 꾸준히 적자가 쌓이면서 경영난에 시달려 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161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누적 적자가 1749억 원을 넘어섰다. 2016년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구조조정 및 병원 리모델링 등의 자구 방안을 7년간 시행했지만 흑자 전환에는 결국 실패했다. 병원 측은 폐원안 검토에 앞서 요양병원, 전문병원 등 다른 용도의 의료기관으로 전환하는 등 병원 회생 방안도 강구했으나 외부 경영 컨설팅 업체로부터 투자 비용 대비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백병원이 폐원 위기를 맞은 데에는 서울 내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한 환자 수 급감과 주변 대학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있다. 서울백병원은 주거지가 아닌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데다 주변에 서울대병원 등 대학병원들이 있어 환자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서울백병원이 상징성이 있다 보니 일산백병원 등 4곳 형제병원의 수익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적자폭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한일병원은 도봉구 쌍문동으로, 을지대병원은 노원구 하계동으로 이전했고 남아 있던 병원들은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2008년 이대동대문병원, 2011년 중앙대 용산병원에 이어 2021년에는 제일병원이 문을 닫았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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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복지등기 왔습니다”… 위기의 1100가구 구했다

    “김지호(가명) 씨, 김지호 씨, 계신가요? 우체국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허름한 4층짜리 원룸 건물 계단. 서울 용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유인준 씨(57)는 무더위 속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낡은 철문을 향해 여러 번 외쳤다. 반응은 없었다. 문에 귀를 바싹 갖다 대고 숨을 죽여도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문을 손으로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안에 누군가 있는데 대답할 힘이 없는 것일까’. 유 씨는 문 틈새로 가만히 코를 갖다 댔다. 냄새를 맡기 위해서다. 그 1, 2초 동안 적막과 긴장이 흘렀다. 혹시라도 ‘낯선 악취’가 코끝에 도달한다면…. 생각하긴 싫지만 그것은 위험 신호다. 굳게 닫힌 철문 너머에서 누군가 쓸쓸하게 홀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는, 말하자면 ‘고독사’다. 이날 유 씨가 생면부지의 김 씨를 찾아다닌 건 ‘복지등기’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복지등기 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주민 중 누군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체납했거나 병원비 지출이 급증했거나 하는 위기 징후가 보이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포착하고 해당 가구에 복지등기를 발송한다. 그러면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지역 집배원이 이 등기를 들고 직접 그들을 찾아간다. 집배원 유 씨의 가방에는 구청에서 보낸 복지등기 봉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봉투 속에는 마스크, 관절 통증용 파스 등 기본 의약품,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이 신청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정리된 팸플릿 등이 있었다. 하지만 유 씨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물품을 전달하는 것보다도, 직접 수취인을 만나 눈으로 그들의 생사(生死)를 확인하고, 위기에 처해 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21년 3378명이 고독사했다. 한 해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명꼴이다. 서울 용산구와 강원 삼척시 등 8개 지자체에서 복지등기를 시범 운영한 결과 9개월 동안 위기 가구 1100여 곳을 발견했다. 4월부터는 참여 지자체가 47곳으로 늘었다.“인기척 없는 쪽방촌에 TV소리만 들릴때 고독사 위기 직감” “복지등기 왔습니다” 고독사 막는 집배원들복지등기 배달 현장복지 안내문-기본 의약품 등 배달연락처도 없고 주소도 불분명해집배원 유 씨는 이날 김 씨를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째다. 유 씨가 전날 김 씨의 집 문에 붙여둔 스티커도 그대로였다. ‘우편물 도착안내서’라고 적힌 스티커에는 ‘5월 24일 13시 04분 방문하였지만 부재중인 관계로 배달 안내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다녀갔는데 스티커를 못 본 것일까, 봤는데도 떼지 않은 것일까.’ 유 씨는 동행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한 번 나올 때마다 5가구 중 1가구만 직접 만날 수 있어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밖으로 나온 뒤 건물 1층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주인 이모 씨(45)를 불렀다. 이 씨는 이 건물의 건물주이자 부재중인 수취인 김 씨의 ‘30년 지기’다. 이 씨는 친구의 사연을 털어놨다. 김 씨는 1년 전부터 친구 이 씨의 건물에 있는 한 원룸에서 혼자 지내왔다고 한다. 몇 년 전 뇌혈관 수술을 받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상환에 실패해 신용 불량 상태에 빠졌다.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 이 씨는 “친구가 평소 혈압이 200mmHg(수축기)를 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동네에서 슈퍼를 운영한 5년간 어렵고 외로운 분들을 많이 봤다. 그나마 유 씨 같은 집배원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와 준다니, 이웃으로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집배원이 ‘위기가구 체크리스트’ 작성 베테랑 집배원인 유 씨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과 동자동 일대 우편 배달을 30년간 담당하고 있다. 스마트폰 지도 없이 봉투에 적힌 주소만 보고도 담당 구역 내 모든 집을 척척 찾아다닌다. 웬만한 주민들은 그와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사이다. 용산우체국 관내에선 매달 200여 통의 복지등기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중 절반 이상은 ‘쪽방촌’으로 불리는 후암동과 동자동 일대로 배달된다. 저소득층 가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이날 유 씨는 김 씨 외에도 다른 4명에게 복지등기를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배원이 근무하는 낮 시간 동안 복지등기 대상자(수취인)들은 주로 무료 급식소에 가서 줄을 서 있거나, 폐지 줍기 등 경제 활동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 씨는 다른 수취인들을 찾아다니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들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렸고, 그들의 우편함에 우편물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운 좋게 이웃들을 마주치면 “아무개 씨 혹시 본 적 있으시냐”며 행방을 물었다. 유 씨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복지등기 수취인을 찾아 나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여인숙’이었다. 한 사람이 걷기도 비좁은 여인숙 입구를 지나자 33㎡(약 10평) 남짓한 복도에 공용 세탁실과 화장실을 둘러싼 방 5개가 보였다. “이태우(가명) 씨 계십니까.” 유 씨가 큰 소리로 불렀다. 그의 시선은 문 옆의 우편함, 쓰레기통, 주변 집기들을 빠르게 훑었다. 복지등기 담당 집배원은 우편물을 배달할 때 수취인이 수령하지 않은 우편물이나 재활용품이 많이 쌓여 있진 않은지, 악취가 나진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파악한 주거환경과 생활실태를 6개 항목 ‘체크리스트’로 작성해 지자체로 보낸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위기 가구를 파악하고, 필요한 공공과 민간 복지서비스로 연계해 지원한다. 이번에도 유 씨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 씨는 “쪽방촌은 주소지가 하나인데, 한 층에 수십 가구씩 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는 집주인을 통해 전달하거나 우체통에 넣어두고 근처에 올 때마다 살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을 마칠 때쯤 유 씨의 얼굴은 땀범벅이 돼 있었다.● “우체국이 외로웠던 내게 손 내밀어줘” 복지등기 덕분에 어려운 상황을 빠져나온 사람들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주거급여(기초생활수급의 한 종류)를 받으며 살고 있던 이은종(가명) 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자신들에게 복지등기를 배달하러 온 집배원을 처음 만났다. 부부를 본 집배원은 체크리스트에 ‘수취인의 거동이 불편하다’고 기록을 남겼다.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것을 관찰한 것. 이윽고 집배원은 이 씨 부부에게 “어디가 편찮으시냐, 좀 어떠시냐”고 말을 걸으면서 안부를 물었고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주민센터는 이 씨에게 보행기 등 보조기구를 지원했다. 광주 북구 오치동에 혼자 살던 차윤택(가명) 씨는 실직 후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구직에 실패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점점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사회적 관계도 단절됐다. 올 1월 그의 집을 방문했던 복지등기 집배원은 차 씨의 집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맡았고, 위기 징후를 포착했다. 그 후속 조치로 복지담당 공무원이 차 씨의 집을 방문했다. 차 씨는 저소득 구직자에게 생계비와 일자리를 알선하는 국민취업지원 신청을 안내받았고, 최근에는 취업에 성공해 집 밖으로 나왔다. 차 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말 막막하고 외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준 우체국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총 7434가구에 복지등기가 배달됐다. 지자체는 이 중 719가구가 생계급여 등 공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도왔고, 443가구에는 생활필수품 지원 등 민간서비스를 연결해 줬다. 복지등기를 받은 가구 중 15.6%(1162가구)가 복지서비스를 지원받은 것이다. 김경일 용산우체국 집배실장(49)은 “복지서비스 연계율이 언뜻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는 다르다”며 “2주 동안 100가구에 복지등기를 배달했을 때 복지서비스가 절실한 위기가구 15가구가 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복지등기 우편에는 연락처는 물론이고 정확한 주소조차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단순히 일반 우편물처럼 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취인의 위기 징후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4, 5배 더 걸린다. 김 실장은 “복지등기는 배달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일일이 대상자를 살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배달한다”고 말했다. ● 2030 젊은 ‘위기 가구’ 늘고 있어 복지등기를 배달하는 현장에서는 2030세대, 즉 젊은 청년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도 최근 많이 포착되고 있다. 용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심현석 씨(41)는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서 복지등기 배달을 담당한다. 이 지역은 숙명여대 인근이어서 20, 30대 자취생들이 많이 산다. 지난달 24일 오후 심 씨는 복지등기 수취인으로 선정된 20대 초반 이지우(가명) 씨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복지등기 봉투를 받아 든 이 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으로 심 씨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우편물이냐’는 뜻이었다. 심 씨는 이 씨에게 복지등기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며 눈으로는 재빨리 집 안쪽을 살폈다. 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지는 않은지, 쓰레기가 쌓여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이 씨도 조곤조곤 이어지는 심 씨의 설명에 조금씩 경계를 풀었다. 이 씨가 개인용디지털단말기(PDA)를 받아들고 우편물 수령 확인 사인을 하는 동안 심 씨는 “요즘 잘 지내시냐, 본가에는 자주 가시냐”라며 안부를 물었다. 수취인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지는 않은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달을 마친 심 씨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PDA로 복지등기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복지등기를 받아 든 젊은이들은 자신이 대상자로 선정된 것 자체를 의아해하거나 “내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체크리스트도 복지등기 대상자가 기분 나빠 하지 않도록 배달을 마치고 나와서 작성한다. 심 씨는 “보통 위기가구는 누가 봐도 감이 온다. 집 안팎과 우체통, 재활용통 등을 먼저 살피고, 인기척이 없는데 TV가 켜져 있진 않은지 등의 위기 징후를 철저하게 체크한다”고 했다. 그는 “가장 위험한 고독사 위험 징후는 인기척 없는 주택이나 쪽방촌 같은 곳에 TV 소리가 새어나오거나 불빛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수취인이 병으로 쓰러졌거나 최악의 경우 이미 사망한 상태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에서 30대 이하 청년 219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독사자의 6.5%에 해당한다. 복지등기 서비스를 통해 실제 청년 위기가구를 찾아낸 적도 있다. 서울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장재헌(가명) 씨는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으며 생계가 막막해졌다. 장 씨는 구직활동을 계속했지만 일자리가 잘 구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름에 잠긴 그를 본 집배원이 위기 징후를 포착해 복지등기 대상자로 선정됐고, 집배원의 도움을 받아 국가 긴급복지 생계지원 신청 및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위기가구 발굴 ‘총력’, 우리 동네 사회복지사 정부는 지난해 8월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던 ‘수원 세 모녀’가 외롭게 세상을 등진 사건이 알려진 뒤 복지 사각지대 해소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단전이나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생계가 어려워진 가구를 찾기 위해 수집하는 위기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늘렸고, 12월부터는 44종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전산망에 뜨는 수치화된 정보를 아무리 많이 수집하더라도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집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쓰레기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등은 반드시 현장에 사람이 직접 가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복지등기 서비스를 시작한 건 이러한 ‘현장의 위기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민간 인력을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활성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지역 주민이 이웃에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방식이다. 위기가구 중에선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럴 때는 오히려 공무원이 아닌 ‘이웃 사람’이 다가가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인천 연수구에서 7년째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고 있는 서인숙 씨(60)는 “위기가구를 처음 방문할 때는 마음을 닫고 대화를 거부하는 분이 많은데, 실없는 담소도 나누고 전화도 드리면 차차 얼음이 녹듯 문이 열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에선 ‘희망텃밭 가꾸기’ 사업으로 홀몸노인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자리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민간에 일선 복지 서비스를 일부 맡기는 것은 효율성이 높은 만큼 정부의 활동비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충남 아산에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고 있는 박충서 씨(62)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오랫동안 지역 복지 일선에서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협의체 회원들이 사비를 걷어가며 활동을 하고 있다”며 “복지 일선에서 봉사하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주민자치회처럼 식대나 교통비만 지원해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등기 우편서비스집배원이 단전, 단수, 체납 등에 처한 위기의심 가구를 방문해 복지정보 우편물을 전달하면서 생활 상태 등을 파악해 지방자치단체에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지원으로 이어진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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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계경보에 방한 태도국 정상 행사 파행… 외국인들 “전쟁난줄 알고 항공편 알아봐”

    서울시의 경계경보 재난문자 오발령 사태로 해외 정상을 초청한 정부 행사도 파행을 빚었다. 한국어와 행정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보건복지부는 31일 제1차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5개국 정상 부부 등을 초청해 진행하려던 한국 안과 의료 서비스 체험 행사를 축소해서 진행했다. 당초 바누아투,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솔로몬제도 총리 부부, 투발루 총리, 사모아 환경장관 등이 서울 소재 안과 3곳에서 시력 검사, 망막질환 검사 등 안과 의료 서비스를 체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경계경보 재난 문자 오발령에 당황한 정상들이 불참을 통보하는 바람에 행사가 취소될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3개국 4명만 예정대로 참여하기로 하면서 행사가 축소돼 진행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장거리 이동에 피로감을 느낀 참석 예정자들이 일정을 변경했다고 통보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도 혼란이 빚어졌다. 대학원을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장모 씨(25)는 “전시 상황인 줄 알고 항공편을 알아봤다”며 “얼마 있지 않아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아침을 생각하면 손이 떨릴 정도”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외국인들의 혼란상을 전하는 다수의 글이 올라왔다. 외국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는 A 씨는 이날 트위터에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남편과 재난 가방을 싸서 나왔다”며 “대피소로 가는 길에 통신이 재개됐는데 한국어를 못 하는 남편 친구들에게서 계속 전화가 오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전했다. 고시원에 산다는 B 씨는 “같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데 재난 문자가 울리고 나서 외국인들이 잔뜩 복도에 나와서 우왕좌왕했다”며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한 외국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북한 때문에 당황스럽고 짜증 나는 일을 겪고 있다”며 서울시로부터 받은 재난 문자를 올렸다. 특히 그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재난 문자에는 경보 발생 시각이 ‘오후’ 6시 32분(6:32 p.m.)으로 표기돼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오전, 오후도 틀리게 작성한 재난 문자를 발송한 것이냐”는 불만이 쏟아졌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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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용거부 12곳중 7곳이 권역외상-응급센터… “병상-수술의사 없어” 필수의료 붕괴 드러나

    30일 70대 남성이 경기 용인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응급실을 찾아 122분간 ‘표류’하다가 숨진 사건은 ‘필수의료 붕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119가 이 남성의 수용을 문의한 병원 12곳 중 8곳이 중환자실에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2곳이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나머지 2곳에선 환자 상태가 너무 위급하니 가까운 곳으로 가거나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응급 환자를 수용해야 할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응급의료센터조차 중환자실 병상이 없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3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확충하는 응급의료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환자실과 의료진 부족을 해소하지 않고 단순히 시설만 늘려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상센터 3곳 모두 ‘중환자실 없어’이날 숨진 구모 씨(74)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12곳 중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은 아주대병원과 단국대병원, 가천대 길병원 등 3곳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 환자의 응급 소생부터 수술까지 담당하는 ‘최종 의료기관’이다. 전국 15개 병원에서 운영 중이다. 하지만 119구급대가 첫 번째로 전화했던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엔 빈 중환자실 병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구 씨는 복강 내 출혈이 의심돼 곧장 개복(開腹)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는데, 이런 경우 수술을 마쳐도 인공호흡기 등 생명 유지 장비를 갖춘 중환자실로 옮겨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24시간 전문 의료진이 지켜봐야 한다. 충남 천안시에 있는 단국대병원도 사정이 비슷했다. 외상중환자실 병상 20개가 가득 차 전날 오후 11시 7분부터 소방당국 등에 ‘환자 수용 불가(바이패스)’를 통보한 상태였다. 장성욱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상태가 그나마 나아진 환자를 일반 입원실로 옮기는 식으로 빈자리를 확보하는데, 이날은 중환자실 입원 환자가 모두 위중했다”고 말했다.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권역외상센터 측도 “외상중환자실 20개가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대학병원들도 “의사 없어 수술 불가”구 씨를 수용하지 않은 나머지 병원 9곳 중 7곳은 대학병원이었고, 그중 4곳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이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권역 내 중증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기관인데 이곳에도 구 씨가 치료받을 병상은 없었다. 30일 오전 1시 6분경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은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인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전화했다. 하지만 이 병원엔 중증외상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없었다. 병원 관계자는 “당시 외과 전문의가 당직을 서고 있었지만 중증외상이 아닌 간암 환자를 주로 수술하는 의사였다”라며 “1명뿐이었던 외상외과 전문의가 2년 전 사직한 후 줄곧 공석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수술 의사와 중환자실이 부족한 필수의료 붕괴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올 3월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권역외상센터를 현행 15곳에서 17곳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44곳에서 50∼60곳으로 각각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지정된 센터들도 의료진이나 중환자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설만 늘리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구 씨의 이송 과정과 관련해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박향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사건 당시 각 병원의 병상, 인력 상황과 소방 측 자료를 종합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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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협회 “현 21대 국회서 간호법 재추진”

    대한간호협회(간협)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재표결 끝에 부결되자 간호법에 반대해온 정치인에 대해 내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벌이는 한편 현재 21대 국회에서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영경 간협 회장은 간호법 부결 직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간호법안 재투표에서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발의하고 심의했던 간호법의 명줄을 끊었다”며 “대통령의 거부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에, 62만 간호인과 시민들은 저항권 발동 및 21대 국회 임기 만료 전의 간호법 재추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이 부당하게 간호법을 거부했지만 우리 간호사는 의사와 의료기관에 의한 부당한 불법 진료 지시를 거부할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부패정치와 관료를 심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기자회견 도중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며 “다시 시작할 간호법 제정 투쟁은 위로부터 솔선하고 아래로 넘쳐 흐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간협은 별도로 낸 성명 자료에서도 “2024년 총선에서 불의한 국회의원을 반드시 심판하고, 국민을 속이고 간호법을 조작 날조한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을 단죄할 것”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간협 관계자는 “간호법 재표결의 부결에 맞서 ‘준법 투쟁’ 수위를 높이는 등 추가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표결 전에도 간협은 오전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예비 간호사 6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간호법 재표결 통과를 촉구했다. 국회 의석 분포를 고려할 때 부결이 유력했으나 간협 회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재표결 과정을 방청하며 통과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재표결 결과 부결로 나오자 고개를 숙이거나 탄식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앞서 간협은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후 서울 광화문 집회, 의료현장 준법투쟁 등을 벌여 왔다. 다만 일선 병원 등 의료현장에서는 수술이나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의 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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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창녕서 올해 첫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발생

    올해 첫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가 지난해보다 41일 빠르게 발생했다. 온열질환이란 장기간 열에 노출될 경우 발생하는 급성질환으로, 두통과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등의 증상을 보인다. 열사병과 열탈진이 대표적인 질병이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1일 경남 창녕군에서 올해 첫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가 나왔다. 사망자는 중국 국적의 외국인 남성으로 알려졌다. 최근 단기비자로 입국한 이 남성은 21일 오후 4시경 밭에서 양파를 수확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의료진은 이 남성에게서 특별한 외상을 발견하지 못해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경남 창녕군의 낮 최고 기온은 30.2도였으며 사고가 발생한 오후 4시경 기온은 29.7도였다. 경남 창녕군에서는 지난해에도 7월 1일 첫 온열질환 사망자가 발생했다. 올해는 그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졌다. 질병청이 파악한 지난해 온열질환 사망자는 1564명이었다. 이중 사망자는 9명이었으며 사인은 모두 열사병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경기(353명), 경남(152명), 경북(142명), 충남(135명), 전남(124명), 서울(110명)순으로 많았다. 최근 10년간 가장 폭염 일수가 많았던 2018년(31.4일)에는 온열질환자가 4526명이었으며 열사병 추정 사망자는 48명이었다. 기상청 장기예보에 따르면 올 여름이 평년보다 더 더울 것으로 전망돼 온열질환에 더욱 주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질병청은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가장 더운 시기인 오후 12시부터 5시 사이의 야외 작업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물을 자주 마시고, 헐렁하고 밝은 색의 가벼운 옷을 입고 양산과 모자 등을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문수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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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법 거부권 반발 집회 “총선서 심판”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지 사흘 만인 19일 간호계가 대규모 집회를 열고 정부를 규탄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고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낙선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간호계의 대규모 단체행동으로 환자 진료에 지장이 초래돼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 간협 “간호법 반대 정치인, 총선서 심판” 이날 오후 간협은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과 대한문 일대에서 ‘간호법 제정 거부권 행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총선기획단 출범 선언문’을 발표했다. 간협은 “국민의힘과 복지부가 간호법 반대 단체의 허위 주장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했다”며 “진실은 감춰지고 거짓에 기반해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간협은 “입법 독주라는 가짜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간호법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주도한 자들이 다시는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도록 심판할 것”이라며 “간호인들은 모두 내년 총선 투표에 참여하고 1인 1정당 가입에도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만 명, 경찰 추산 2만20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간호법’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간호법을 제정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발언대에 선 간호사들은 “언제까지 헌신이라는 단어로 희생해야 하나”, “존재하지도 않는 간호사 단독 개원 가능성이라는 이유로 지역사회 환자들이 간호법을 통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휴일(오프) 간호사, 간호대 재학생들이라 의료 공백은 없었다. 서울의 A종합병원 관계자는 “간호사 업무 특성상 교대근무 일정이 미리 짜여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연차를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의료 공백은 없어… 정부, 긴급점검회의 간호법은 현재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의 지위와 업무를 따로 떼어내 독자적으로 규정하는 법으로 간호계의 숙원이었다. 지난달 2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 대통령이 16일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 의석수를 고려할 때 재의결은 어려워 보인다. 간호계가 총선을 겨냥한 ‘정치 개입’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간호사는 개원 의사들과는 달리 대부분 피고용인이기 때문에 집회 참석이나 단체 행동이 쉽지 않다. 또 환자를 외면하고 단체 행동을 강행하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 그래서 ‘표심(票心)’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간호사는 50만 명, 간호대 재학생은 12만 명으로 추산된다. 간협은 17일부터 대리 수술 등을 거부하고 의사의 불법적인 지시는 따르지 않겠다는 ‘준법 투쟁’도 사흘째 이어갔지만 아직 의료 공백은 없는 상황이다. 19일 서울 B종합병원 관계자는 “수술 지연 등 차질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간호사의 집단 행동이 의료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날 오전 조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7차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간호사들은 환자 곁을 지키며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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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현행 유지땐… 2020년생, 1970년생보다 8000만원 덜 받는다

    현행 국민연금의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조정하지 않으면 2020년생은 1970년생에 비해 평생 동안 연금 보험료를 1200만 원 더 납부해야 하지만, 연금액은 8000만 원 적게 받는다. 18일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민연금제도 내 청년층의 다중불리 경험과 지원방안 검토’ 보고서에서 현행 연금제도 및 개편안에 따른 1970년생과 2020년생의 납부 보험료와 수령 연금액의 차이를 계산했다.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인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20년생은 1970년생보다 연금액이 약 7944만 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험료는 1255만 원을 더 내야 해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라는 2개의 연금 개편안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보험료와 납부액 차이도 계산했다. 보험료율을 12%로,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렸을 경우, 2020년생은 1970년생보다 평생 보험료를 4763만 원 더 납부하지만, 연금액 격차는 5581만 원까지 줄어든다.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50%까지 올렸을 경우, 2020년생은 1970년생보다 6050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납부하지만, 연금액 격차는 3408만 원으로 더 줄어든다. 청년층의 연금 기여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낮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청년층(18∼34세)의 공적연금 가입률(60.4%)은 비청년층(35∼59세)의 83%보다 22.6%포인트 낮았다. 보험료 납부율도 청년층(44.3%)이 비청년층(69%)보다 24.7% 낮았다. 청년들의 미래 연금 수령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데다 노동시장에서의 불안정성 탓에 국민연금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희원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료를 낸 만큼 연금 수령액이 결정되는 국민연금제도의 특성상 보험료 미납 기간이 늘어날수록 노후소득의 불안정성은 커진다”며 “청년층의 연금 기여도를 높일 방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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