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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던 의대 교수들이 25일부터 순차적으로 병원을 이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수리 예정인 사직서는 없다”며 실제로 병원을 떠나는 의대 교수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사직은) 교수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며 다른 비대위 지도부 교수 3명과 함께 다음 달 1일 병원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방 위원장은 “(민법에 따라) 개별 교수 사직서 제출일로부터 30일이 지난 시점부터 개인의 선택에 따라 사직을 실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인 최창민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도 “25일 외래진료가 마지막이 될 것이며 환자를 더 보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곳곳에서 병원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교수들은 민법에 따르면 사직서 제출 후 1개월이 지나는 25일부터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병원을 떠나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립대나 사립대 총장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사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직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사표 냈으니 출근 안 한다’ 이렇게 하실 무책임한 교수님이 현실에선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교수들은 무단결근으로 징계를 받는 것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배우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 언론대응팀장은 “사직 효력이 문제가 된다면 법정에 가서 다퉈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교수들 “오늘이 마지막 외래진료” 강경… 정부 “사직접수 80건뿐” [의료혼란 장기화]의대교수들 오늘부터 사직강경파 “허풍 아냐… 진짜 떠날것”일부는 “교수직 던지되 진료 계속”… 교수들 사이서도 행보 갈릴 듯 24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에 따르면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는 전국적으로 3000∼400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항의한다’는 취지로 사직서를 냈을 뿐 실제로 병원을 떠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직 외에는 정부를 압박할 수단이 없다”며 강경파를 중심으로 병원을 떠나겠다는 교수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대 교수 한두 명만 빠져도 큰 차질” 방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으면 의료 붕괴는 5월부터 시작된다”며 “정부는 교수 사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뻥카(허풍)라고 매도하는데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말은 지키기 위해 병원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일촉즉발의 현 상황을 ‘침몰하는 타이태닉호’에 비유하기도 했다. 방 위원장처럼 공개적으로 ‘병원을 떠나겠다’고 밝힌 교수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도 있겠지만 일단 숨을 돌리고 쉬기 위해 병원을 떠나는 교수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공의 공백이 10주째 이어지면서 의대 교수 상당수가 과도한 당직과 수술, 외래진료에 시달리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직서를 낸 교수 중 일부는 “중증 환자를 떠날 순 없다”며 ‘교수직’만 포기하고 대신 임상에 남아 환자 진료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지방 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이번 주까지만 진료하려고 환자를 정리했다”면서도 “다음 주부터는 당직만 도와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장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 등을 모두 포기하고 병원을 떠날 교수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과거 사례 등을 볼 때 교수가 대거 병원을 이탈해 진료가 마비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주까지 대학본부에 접수된 의대 교수 사직서는 80건 이내”라며 “지난달 25, 26일 접수돼 주중에 한 달이 경과하는 사직서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수 비대위 등에서 제출받은 사직서를 대학본부에 전달하지 않고 보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다만 교수들이 대학병원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소수가 이탈해도 병원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 대형병원이더라도 필수의료 분과 교수는 한두 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한 서울 주요 대학병원 소속 교수는 “전공의와 달리 교수는 한두 명만 빠져도 ‘펑크’가 난다. 응급의학과 교수가 있어도 심장내과 교수가 없다면 심장마비 환자를 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협 “한 번도 경험 못 한 대한민국 될 것”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 비대위는 이날 “의사 정원에 대한 과학적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 의사 수 추계에 대한 연구 출판 논문을 공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과학적 연구를 통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의대 증원 계획을 중단하고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복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료계 차원에서 의사 수급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추계는 바람직하지만 입시 일정상 내년도 의대 정원을 재추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원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대학교수가 연이어 의료 현장을 떠나게 된다며 “5월이 되면 경험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25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 다만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주요 의사단체가 불참할 전망이라 ‘반쪽짜리’ 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 공론화 조사에서 다수안으로 선택된 ‘소득보장안’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가 입장 차를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까지 반대하고 나서면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이날 열린 연금개혁 전문가 간담회에서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차관은 “공론화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안에 대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당초 재정 안정을 위해 연금개혁을 논의한 건데 도리어 어려움이 가속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고 말했다. 연금개혁 주무 부처가 시민대표단 500명 중 과반(56%)이 찬성한 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연금특위 공론화위는 내는 돈(보험료율)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고,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늘리는 ‘소득보장안’과 내는 돈을 12%로 올리고, 받는 돈은 현행을 유지하는 ‘재정안정안’으로 연금개혁안을 압축해 13∼21일 숙의토론을 진행했다. 그리고 최종 설문조사에서 소득보장안 지지 56%, 재정안정안 지지 42.6%로 나타났다고 22일 발표했다. 소득보장안은 연금 고갈 시점을 현행(2055년)보다 6년, 재정안정안은 7년 늦추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소득보장안의 경우 2093년까지 누적 적자가 현행 대비 702조 원 늘어난다. 연금개혁안이 실현되려면 국회 연금특위가 21대 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29일까지 최종안을 만들어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소득보장안에 대해 “개악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보장 강화가 국민의 뜻”이라며 찬성하는 등 여야 간 입장 차가 뚜렷해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편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연금연구회는 이날 공론화위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재설문을 제안했다. 하지만 공론화위 관계자는 “재투표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제1여객터미널 2층 은행 앞 쓰레기통에서 생물테러 의심 물질 발견, 즉시 출동 바랍니다.” 18일 오후 2시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사무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공항 대테러상황실(TCC). 환경미화 직원으로부터 “쓰레기통 주변에 흰색 가루가 쏟아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검역소에 현장 검사를 요청한 것이다. 공항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이면서 국가 기반시설이다. 공항 내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란 곧 생물테러 의심 상황을 뜻한다. 탄저균, 두창바이러스 등 생물 테러에 사용되는 물질이 대부분 흰색 가루다. 전화를 받은 검역소는 즉시 생물테러 현장대응팀을 출동시켰다. 현장대응 요원들은 신고 접수로부터 15분 만인 오후 2시 15분 산소통이 부착된 최고 등급의 ‘레벨A’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도착했다. ● 출동 즉시 현장에서 생물테러 탐지 현장에 도착한 대응요원들의 첫 임무는 공항 이용자들이 수상한 물질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요원들은 발견된 흰색 가루 주위에 차단선을 설치한 뒤 ‘생물테러 병원체 및 독소 다중 탐지 키트’를 꺼내들었다. 이 장비를 활용하면 생물테러에 주로 사용되는 △탄저균 △두창바이러스 △페스트균 △야토균 △보툴리눔균 △리신독소 △황색포도알균 △유비저균 △브루셀라균 등 9가지 병원체와 독소를 20분 안에 탐지해 낼 수 있다. 탐지 키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에게 익숙해진 자가검사 키트와 유사한 구조지만 시약을 뿌리는 칸이 총 9개다. 현장대응 요원들은 조심스럽게 흰색 가루를 채취해 즉석에서 시약을 만들고 각 칸에 시약을 5방울씩 떨어트렸다. 키트가 시약에 반응해 두 줄을 보이면 양성, 한 줄을 보이면 음성이다. 오후 2시 36분. 신고 접수 36분 만에 검사가 끝났다. 결과는 모두 음성. 검사를 맡은 현장대응 요원은 9칸 모두에 1줄이 선명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한 후 머리 위로 양팔을 들어 엑스자를 그려 보였다. 현장을 통제하며 검사를 보조하던 다른 요원도 따라서 엑스자를 그렸다. 레벨A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선 요원들 간 대화가 원활하지 않아 수신호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 현장대응 요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호복 속으로 보이는 요원들의 얼굴에선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현장검사 후 실험실 보내 정밀검사 이날 상황은 생물테러 의심 신고 접수를 가정한 모의 훈련이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인천공항에선 통상 일주일에 1건꼴로 실제 생물테러 의심 신고가 접수된다. 인천공항검역소는 생물테러 대비·대응 실험실 네트워크(LRN) 소속의 ‘레벨 A’ 기관으로 생물테러에 대비해 3인 1조의 현장대응팀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전국 13개 공항 항만의 검역소와 지방자치단체별 보건소 등이 레벨 A 기관에 해당한다. 검역소 차원에서 수행한 현장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공항은 즉시 테러 대응 태세로 전환된다. 출입국장에 있는 전체 직원과 이용객들을 공항 밖으로 대피시키고, 군과 소방당국이 출동한다. 공항에는 제독소와 진료소가 설치되고 환자가 발생한 경우 병원으로 이송한다. 검역소와 방역 당국은 접촉자 등을 대상으로 역학조사에 착수한다. 현장대응팀은 정밀 분석 검사를 위해 검체를 수집해 상위 등급 실험실로 보낸다.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자가검사 키트로 먼저 간이 검사를 한 뒤 유전자증폭(PCR) 검사로 ‘확진’ 판정을 받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현장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더라도 현장대응팀은 검체를 삼중수송용기에 담아 질병관리청 산하의 권역별 질병대응센터와 시도 보건환경연구원, 국방부 유관기관 등의 ‘레벨 B’ 실험실로 보낸다. 유전자 검출 및 배양 검사를 통해 보다 정밀하게 검사 결과를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날 검역소 현장대응팀은 수도권 질병대응센터로 검체를 이송했다. 이 센터 진단분석과 김영지 주무관은 “전달받은 검체는 독성을 없애는 ‘불활화’ 과정을 거친 뒤 감염 방지를 위한 생물안전작업대로 옮겨 성분 검사를 한다”며 “생물테러 의심 상황이 발생하면 전 직원에게 즉시 문자로 통보돼 24시간 검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장검사에서 보툴리눔균이나 리신 등에 양성 반응이 나온 경우는 바로 최고 등급(레벨 C)인 질병청 고위험병원체분석과 실험실에서 정밀 검사가 이뤄진다.● 생물테러 대비 백신-검사법 개발 박차 질병청이 레벨 A∼C 기관으로 구성된 실험실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건 생물테러 의심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인 병원체를 신속하게 감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테러 의심 상황 대응뿐 아니라 토양 등 환경 검체에 대해 이뤄지는 연 1만 건 내외의 생물테러 병원체 환경 감시 검사도 실험실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실험실네트워크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질병청은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진단검사 체계를 개선하고 신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연구는 국민 건강과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보니 민간 기업 차원에서는 시도하기 어렵다. 질병청은 최근 녹십자와 함께 세계 최초의 재조합단백질 기반 탄저백신을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하기도 했다.인천=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 공론화 조사에서 다수안으로 선택된 ‘소득보장안’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가 입장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까지 반대하고 나서면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이날 열린 연금개혁 전문가 간담회에서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차관은 “공론화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안에 대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당초 재정안정을 위해 연금개혁을 논의한 건데 도리어 어려움이 가속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고 말했다. 연금개혁 주무부처가 시민대표단 500명 중 과반(56%)이 찬성한 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연금특위 공론화위는 내는 돈(보험료율)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고,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늘리는 ‘소득보장안’과 내는 돈을 12%로 올리고, 받는 돈은 현행을 유지하는 ‘재정안정안’으로 연금개혁안을 압축해 13~21일 숙의토론을 진행했다. 그리고 최종 설문조사에서 소득보장안 지지 56%, 재정안정안 지지 42.6%로 나타났다고 22일 발표했다. 소득보장안은 연금 고갈 시점을 현행(2055년)보다 6년, 재정안정안은 7년 늦추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소득보장안의 경우 2093년까지 누적 적자가 현행 대비 702조 원 늘어난다.연금개혁안이 실현되려면 국회 연금특위가 21대 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29일까지 최종안을 만들어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소득보장안에 대해 “개악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소득보장 강화가 국민의 뜻”이라며 찬성하는 등 여야 간 입장차가 뚜렷해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편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연금연구회는 이날 공론화위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재설문을 제안했다. 하지만 공론화위 관계자는 “재투표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국민연금 개혁안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대표단 10명 중 6명이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대표단 500명을 대상으로 3차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공론화위는 지난달 내는 돈(보험료율)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고,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늘리는 ‘소득보장안’과 내는 돈을 12%로 올리고, 받는 돈은 현행을 유지하는 ‘재정안정안’으로 연금개혁안을 압축해 공론화 숙의토론을 진행했다. 토론 전 진행한 1차 설문조사에선 소득보장안 지지 36.9%, 재정안정안 지지 44.8%로 나타났지만 숙의토론 후 3차 설문조사에선 소득보장안 지지 56%, 재정안정안 지지 42.6%로 역전됐다. 연금특위는 설문 결과를 참고해 최종 연금개혁안을 만든 뒤 다음 달 29일 21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37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 간 입장 차가 여전해 연금개혁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가급적 이번 주 연금특위를 소집해 공론화위 보고를 받고 정치적 결단에 의한 합의를 여당에 촉구하겠다”며 서둘러 입법에 나설 방침을 밝혔다. 반면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여야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입장 표명을 해버리면 (거대 야당이) 힘으로 누르겠다는 소리 아니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1970년생 9%, 2025년생 30% 연금 내야… 미래세대 부담 커져” [연금개혁 공론화]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는 案’ 채택땐초반 ‘그대로 받는’ 재정안정 선호… 한달새 ‘더 받는’ 소득보장 기울어“소득보장 선택땐 누적적자 눈덩이… 세계적 연금개혁 흐름에 역행” 국민연금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55년 기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막기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는 연금개혁안을 두 가지로 압축해 시민대표단 500명 앞에서 숙의토론을 진행했다. 연금개혁에 대해 학습한 시민대표단 과반(56%)이 최종 설문에서 선택한 안은 내는 돈(보험료율)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고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늘리는 ‘소득보장안’이었다. 이 안은 연금 고갈 시기를 2061년으로 6년 늦출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현행보다 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망설이던 시민들 ‘소득보장안’에 쏠려 연금특위는 시민대표단을 대상으로 총 3차례 설문을 진행했다. 첫 설문(지난달 22∼25일)에선 내는 돈을 9%에서 12%로 늘리고 받는 돈은 현행을 유지하는 ‘재정안정안’이 44.8%의 지지를 얻어 소득보장안(36.9%)을 앞섰다. 하지만 의제 학습과 13∼21일 4차례 토론을 거친 뒤 결과가 뒤집혔다. 이는 첫 조사에서 ‘잘 모르겠다’며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던 18.3%가 대거 소득보장안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3차 조사에선 1.3%로 대폭 줄었지만 재정안정안을 택한 이들은 1차 조사에서 44.8%, 3차 조사에선 42.6%로 큰 변동이 없었다. 재정안정안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토론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국민 입장에선 본인 부담 대비 받는 돈이 크게 늘어나는 걸 지지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초반에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던 참가자들도 소득보장안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문제없다’고 설득하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소득보장안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토론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50, 60대 중에서 처음엔 얼마 안 내고 많이 받는 것 아니냐며 미안해하던 참가자가 많았다. 그런데 기존에 낸 부분에 대해선 소득대체율 인상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소득보장안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 소득보장안 누적 적자 702조 늘어 소득보장안은 연금 고갈 시점을 현행 2055년보다 6년, 재정안정안은 7년 늦추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득보장안의 경우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2093년까지 누적 적자가 현행 대비 702조 원 늘어난다. 반면 재정안정안을 선택하면 2093년까지 누적 적자가 1970조 원 줄어 재정 안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누적 적자가 늘어나는 만큼 미래 세대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보장안은 재정 적자를 악화시키고 미래 세대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세계적 연금개혁 방향에 역행하는 안”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공론화 진행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소득보장안이 선택되면 내년에 태어날 아이들은 평균 29.6%의 보험료율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정보들이 시민대표단에 제공된 자료에서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37일 남았지만…여야 합의 미지수 시민대표단의 선택이 곧바로 연금개혁안 최종안이 되는 건 아니다. 김상균 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론화 조사 결과는 참고자료이고 국회에서 최종 결정을 할 때 국민 뜻을 이해하고 결정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며 “마지막은 국회의 몫”이라고 했다. 결국 국회 연금특위가 21대 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29일까지 37일 동안 최종안을 마련해 본회의 통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여야의 견해차가 여전해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중 하나인 연금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공약집에서 “국민 누구나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개혁하겠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소득보장안이 많은 지지를 얻은 것에 내심 흡족한 반응이다. 국회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회 본회의를 다음 달 28일에 개최하자고 국민의힘에 제안했다”며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국회 연금특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대 간 보험료율에 차등을 두거나 재정 안정화를 위해 법률로 어떻게 정할 건지 등 구조개혁안을 확정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정부가 19일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를 사실상 철회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의사단체는 ‘증원 원점 재검토’만이 해법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 단체도 “이 정도로는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은 이날 정부 발표에 대해 “기존 의대 증원 결정 과정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이뤄졌는지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 정도로는 솔직히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공보를 담당하는 고범석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도 “증원 원점 재논의가 모든 의사단체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숫자를 일부 조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도 싸늘한 반응이었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정부는 몇몇 대학 총장이 제안한 걸 별다른 논의도 없이 하루 만에 덜컥 받아들였다. 2000명이란 숫자에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병원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다른 전공의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직서를 낸 교수들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필수의료과 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정부·여당이 물러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끝까지 가겠다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며 “사직서 철회는 없다”고 말했다. 증원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의대에선 “배정된 정원의 50%만 늘려도 교육 여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충북대 의대의 한 교수는 “현재 정원이 49명인데 많아야 70, 80명까지만 교육시킬 수 있다”며 “증원분의 절반만 반영해도 125명인데 현실적으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대생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과학적 추계 기구를 설치해 정원을 조절해야 하고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은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부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다음 주 열겠다고 밝혔다. 특위는 민간위원장을 비롯해 정부위원 6명, 민간위원 20명으로 구성된다. 민간위원으로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단체 10명, 환자·소비자 단체 5명, 분야별 전문가 5명이 참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사와 전공의들은 여전히 특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비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이번 발표는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에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정부가 19일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를 사실상 철회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의사단체는 ‘증원 원점 재검토’만이 해법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 단체도 “이 정도로는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은 이날 정부 발표에 대해 “기존 의대 증원 결정 과정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이뤄졌는지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 정도로는 솔직히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공보를 담당하는 고범석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도 “증원 원점 재논의가 모든 의사단체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숫자를 일부 조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도 싸늘한 반응이었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정부는 몇몇 대학 총장이 제안한 걸 별다른 논의도 없이 하루 만에 덜컥 받아들였다. 2000명이란 숫자에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병원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다른 전공의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사직서를 낸 교수들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필수의료과 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정부 여당이 물러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끝까지 가겠다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며 “사직서 철회는 없다”고 말했다. 증원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의대에선 “배정된 정원의 50%만 늘려도 교육 여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충북대 의대의 한 교수는 “현재 정원이 49명인데 많아야 70, 80명까지만 교육시킬 수 있다”며 “증원분의 절반만 반영해도 125명인데 현실적으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대생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과학적 추계 기구를 설치해 정원을 조절해야 하고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은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 연세대 의대는 이날 교육부의 ‘동맹휴학 불허’ 방침에도 “휴학 승인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다.정부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열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다음 주 열겠다고 밝혔다. 특위는 민간위원장을 비롯해 정부위원 6명, 민간위원 20명으로 구성된다. 민간위원으로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단체 10명, 환자·소비자 단체 5명, 분야별 전문가 5명이 참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사와 전공의들은 여전히 특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비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이번 발표는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에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저, 이 병원 졸업했어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회송상담센터. 2020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원희 씨(63·여)는 간호사와 상담을 마친 뒤 웃으며 일어났다. 이 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후 경과 관찰을 위해 퇴원 후에도 6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울산에 사는 이 씨는 검사를 받을 때마다 직장에 이틀씩 휴가를 내고 왕복 600km 거리를 오갔다. 병원 측은 이날 상담을 마친 후 앞으로 이 씨가 집에서 가까운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해당 병원에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기록도 전송했다. 이 씨는 “만약 상태가 악화되면 수술했던 이 병원 교수님이 다시 진료해주신다고 해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환자 돌려보내면 지원금 준다 보건복지부는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 개선을 위해 올 1월 말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대형병원이 미리 네트워크를 구축한 중소형 병원에 경증 외래 환자들을 보내 진료를 맡기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울산대병원, 인하대병원이 참여했는데 정부는 성과를 평가해 병원 3곳에 4년 동안 총 3600억 원을 준다. 복지부는 또 2월 중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대거 병원을 이탈하자 대형병원을 응급·중증 환자 위주로 전환하면서 경증 입원 환자를 중소형 병원에 보낼 때 지원금을 늘려 대형병원과 중소형 병원에 건당 각각 9만 원 이내를 주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경증 환자 회송을 위해 전국 병원 약 5200곳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다. 급성 치료가 끝났거나 경증인 환자가 회송 대상이다. 이 병원은 이날 진료를 받던 70대 간암 환자의 복수천자(복수를 빼내는 것) 시술을 동네 병원에 의뢰하기도 했다. 이 병원 회송센터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 후) 응급실이 포화 상태다 보니 대여섯 시간 기다려야 시술을 받을 수 있다”며 “마침 대기가 필요 없는 환자 거주지 인근 병원이 있어 연락해 예약까지 잡아줬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은 환자 회송 전담인력을 기존 22명에서 34명으로 늘렸다. 회송하는 환자 수는 1월 하루 평균 251명에서 지난달 297명으로 20% 가까이 늘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의 영향으로 회송 건수가 급증한 면이 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외래환자 회송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사업 참여 병원들은 향후 3년간 매년 5%씩 외래 환자를 줄여야 한다.● “응급·중증 중심 진료 정착돼야” 회송은 환자가 동의해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안심하고 집과 가까운 동네 병원으로 향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양지혁 삼성서울병원 파트너즈센터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은 “회송 후에도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안심을 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협력 병원들에 진료 프로토콜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회송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면 다시 이송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도 마련했다. 가벼운 질환은 동네 병원에서 맡고 응급·중증 환자만 대형병원을 찾게 하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는 국내 의료의 오랜 과제였다. 복지부는 그동안 대형병원의 경증 환자 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 후 대형병원이 비상진료 체계로 전환되며 의사들 사이에선 “의도치 않게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추세가 정착되려면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체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사의 개별 행위마다 수가를 매겨 지불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선 뇌, 심장 등 어려운 수술의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다 보니 대형병원들이 질환의 경중에 관계없이 환자를 많이 볼수록 이윤이 남는 구조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대형병원들이 집중해야 할 중증·고난도 진료를 정의하고 그에 따라 수가 제도를 조속히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부산에서 급성 심장질환이 발생한 50대 남성이 119 신고 후 병원 10곳 이상에서 응급실 수용을 거절당한 뒤 5시간 만에 울산에서 수술을 받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집단 사직 후 의료 공백의 영향인지 조사 중이다. 11일 의료계와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경 부산 동구의 주택 주차장에서 50대 남성이 흉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한다는 가족의 신고가 접수됐다.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는 대학병원을 포함해 인근 병원 응급실 10곳 이상에 전화를 돌렸고 신고 접수 후 46분 만인 오전 6시 59분경 환자를 10km가량 떨어진 부산 수영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 종합병원에선 2시간가량 검사한 후 대동맥 내부 혈관 벽이 파열되는 ‘급성 대동맥 박리’로 진단했다. 하지만 당시 흉부외과 전문의가 다른 수술에 들어갔던 탓에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대동맥 박리의 경우 발생 직후 사망률이 30∼40%에 이르며, 이후엔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망 확률이 1%씩 올라간다. 종합병원 의료진은 병원 3곳에 전화를 돌린 후 57km가량 떨어진 울산 중구의 다른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 환자는 결국 신고 후 4시간 50분가량이 지난 오전 11시경에야 수술실로 들어갔고, 수술 6일 만인 이달 1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대동맥 박리는 제때 수술을 받아도 10명 중 1명은 사망하는 중증 질환”이라며 “환자가 사망해 안타깝지만 구급차 표류 사례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A 씨 수용을 거절한 부산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사직 후 응급실이 60% 수준으로 운영 중인데 당시 여력이 없어 수용하지 못했다”고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부산에서 급성 심장질환이 발생한 50대 남성이 119 신고 후 병원 10곳 이상에서 응급실 수용을 거절당한 뒤 5시간 만에 울산에서 수술을 받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집단 사직 후 의료 공백의 영향인지 조사 중이다.11일 의료계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경 부산 동구의 주택 주차장에서 50대 남성이 흉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한다는 가족의 신고가 접수됐다.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는 대학병원을 포함해 인근 병원 응급실 10곳 이상에 전화를 돌렸고 신고 접수 후 46분 만인 오전 6시 59분경 환자를 10km 가량 떨어진 부산 수영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종합병원에선 2시간가량 검사한 후 대동맥 내부 혈관 벽이 파열되는 ‘급성 대동맥 박리’로 진단했다. 하지만 당시 흉부외과 전문의가 다른 수술에 들어갔던 탓에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대동맥 박리의 경우 발생 직후 사망률이 30~40%에 이르며, 이후엔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망 확률이 1%씩 올라간다.종합병원 의료진은 병원 3곳에 전화를 돌린 후 57km가량 떨어진 울산 중구의 다른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 환자는 결국 신고 후 4시간 50분가량이 지난 오전 11시경에야 수술실로 들어갔고, 수술 6일 만인 이달 1일 병원에서 사망했다.정의석 강북삼성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대동맥 박리는 제 때 수술을 받아도 10명 중 1명은 사망하는 중증 질환”이라며 “환자가 사망해 안타깝지만 구급차 표류 사례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다만 부산에 대학병원이 5곳 있음에도 환자를 울산으로 옮겨야 했던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 수용을 거절한 부산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사직 후 응급실이 60% 수준으로 운영 중인데 당시 여력이 없어 수용하지 못했다”고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이 8주째 이어지며 진료와 수술을 줄인 대형병원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휴업'을 언급했다. 대형병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 지방의료원 중에는 급여를 체불하는 곳까지 생겨 의료 공백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휴업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 닥쳐올 것”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수련병원 50곳의 외래환자는 전공의 이탈 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9% 줄었고 의료 수입은 15.9% 감소했다. 5대 대형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중에는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이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이들 병원의 하루 손실은 10억 원대에 달한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19일까지 의사 외 직군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 병원의 박승일 병원장은 이달 초 “(전공의 이탈 후) 40일 동안 의료 분야에서 적자가 511억 원 났는데 정부가 수가 인상으로 지원한 건 17억 원에 불과하다”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연간 4600억 원의 손실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의 외래환자 감소율은 17%, 입원환자 감소율은 43%에 달한다. 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약 900병상인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이달 초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휴업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이 닥쳐올 것”이라고 했다. 이 병원은 전공의 이탈 후 병상 가동률과 수술·외래진료가 40%가량 줄어 다음 달부터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병원을 대신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지역의료원 중에도 경영난으로 급여를 못 주는 곳이 나오고 있다. 속초의료원은 지난달 의사를 제외하고 간호사 등 직원 260여 명의 급여를 60%만 줬다. 속초의료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며 줄어든 내원 환자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만 빼고 희생 이해 안 돼” 의료 수입 외에 식당 등 부대시설에서 발생하는 수입도 줄면서 대형병원들은 간호사 등에 대한 무급 휴가, 신규 발령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로 발생한 경영난을 이유로 다른 직군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행정직원은 “의사 없이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특수성은 알고 있지만 왜 일반 직원들만 희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정부에 건강보험 진료비 ‘선지급’을 요구 중이다. 진료비를 ‘가불’ 형태로 미리 받고 경영이 호전되면 갚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시기 이 같은 방식으로 병원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선 “민간 대형병원 매출을 국민건강보험료로 보전해선 안 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조성된 대화 분위기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내분 등으로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대화파’로 분류되는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등 비대위 지도부는 이날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을 향해 “근거 없는 비방과 거짓 선동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강경파’로 다음 달 1일 취임하는 임 차기 회장은 “이번 주중 김 위원장이 안 물러나면 전체 회원 대상 재신임투표를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의협 비대위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협상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도 밝혀 4·10총선 후에도 의정 간 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이 8주째 이어지며 진료와 수술을 줄인 대형병원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휴원을 검토 중이다. 대형병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 지방의료원 중에는 급여를 체불하는 곳까지 생겨 의료 공백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금난 이어지면 휴원 검토”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수련병원 50곳의 외래환자는 전공의 이탈 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9% 줄었고 의료 수입은 15.9% 감소했다. 5대 대형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중에는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이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이들 병원의 하루 손실은 10억 원대에 달한다.특히 서울아산병원은 19일까지 의사 외 직군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 병원의 박승일 병원장은 이달 초 “(전공의 이탈 후) 40일 동안 의료 분야에서 적자가 511억 원 났는데 정부가 수가 인상으로 지원한 건 17억 원에 불과하다”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연간 4600억 원의 손실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의 외래환자 감소율은 17%, 입원환자 감소율은 43%에 달한다.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약 900병상인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이달 초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휴원까지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병원은 전공의 이탈 후 병상 가동률과 수술·외래진료가 40%가량 줄어 다음 달부터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대형병원을 대신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지역의료원 중에도 경영난으로 급여를 못 주는 곳이 나오고 있다. 속초의료원은 지난달 의사를 제외하고 간호사 등 직원 260여 명의 급여를 60%만 줬다. 속초의료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며 줄어든 내원 환자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만 빼고 희생 이해 안 돼”의료 수입 외에 식당 등 부대시설에서 발생하는 수입도 줄면서 대형병원들은 간호사 등에 대한 무급 휴가, 신규 발령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로 발생한 경영난을 이유로 다른 직군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행정직원은 “의사 없이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특수성은 알고 있지만 왜 일반 직원들만 희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대한병원협회는 정부에 건강보험 진료비 ‘선지급’을 요구 중이다. 진료비를 ‘가불’ 형태로 미리 받고 경영이 호전되면 갚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시기 이 같은 방식으로 병원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선 “민간 대형병원 매출을 국민건강보험료로 보전해선 안 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조성된 대화 분위기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내분 등으로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대화파’로 분류되는 의협 비대위 지도부는 이날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을 향해 “근거 없는 비방과 거짓 선동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강경파’로 다음 달 1일 취임하는 임 차기 회장은 의협 비대위 조기 해산을 요구 중이다. 또 의협 비대위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협상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혀 4·10총선 후에도 의정 간 대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이 지난달 말부터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지만 의대 3곳 중 1곳에선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진 의대 중에는 참여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그동안 외부에는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두드러졌지만 교수 상당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떠난 병원을 지키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의대 40곳 중 15곳 사직서 미제출 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의대 40곳 중 최소 15곳(37.5%)은 교수 단체에서 대학본부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사직서 제출은 교수 단체에서 사직서를 모아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15곳 중 14곳은 교수협의회 등에서 사직서를 취합했지만 실제로는 대학·병원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가톨릭대 의대는 교수협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사직서를 취합했지만 9일까지 대학·병원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중앙대 한양대 등도 마찬가지였다. 취합한 사직서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서울의 한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최대한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다. 가천대 의대의 경우 아예 교수 단체에서 사직서 취합도 하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참여율이 낮은 곳도 있다. 제주대 의대 관계자는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는 전체 교수(153명) 중 10% 수준인 10여 명”이라며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 중에서도 실제로 병원을 떠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응급실 지켜야…집단 사직 부적절” 교수 사직서 제출은 전국 의대 20곳 교수들이 모인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서 지난달 16일 “3월 25일부터 의대별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의대 전체 40곳 교수들의 모임인 전의교협뿐만 아니라 전의비 내부에서도 “교수까지 떠나면 안 된다”며 사직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의대에서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사회적 혜택을 받아 교육자가 됐으니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의대 증원에는 반대하지만 사회적 이슈 때문에 사직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인하대 응급의학과의 한 교수는 “제가 나가면 다른 누군가는 응급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교수협의회가 사직서를 취합할 때 안 냈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는 “의사가 집단행동에 참여할 경우 대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수·응급의료 서비스와 치료가 계속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는 세계의사회 권고에 따라 병원을 비우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대생 유급-전공의 면허 정지 땐 제출” 다만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교수협이나 교수 상당수는 전공의 면허 정지나 의대생 집단 유급이 현실화되면 사직서를 내겠다는 분위기다. 오세옥 부산대 의대 교수협회장은 “전공의 면허 정지나 의대생 유급이 이뤄지면 ‘마지막 카드’로 취합된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법정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현재 의협을 이끄는 ‘대화파’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과 다음 달 취임하는 ‘강경파’ 임현택 차기 회장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비대위원장 자리를 넘기라는 임 차기 회장의 요구를 거절하며 “대내외적으로 비대위를 흔들려는 시도가 있는데 비대위 활동은 4월 30일까지”라고 했다. 임 차기 회장의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의협은 또 조율된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예고했던 12일 합동 기자회견을 무기한 연기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이 지난달 말부터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지만 의대 3곳 중 1곳에선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진 의대 중에는 참여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그 동안 외부에는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두드러졌지만 교수 상당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떠난 병원을 지키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의대 40곳 중 15곳 사직서 미제출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40개 의대 중 최소 15곳(37.5%)은 교수 단체에서 대학본부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집단사직서 제출은 교수 단체에서 사직서를 모아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15곳 중 14곳은 교수협의회 등에서 사직서를 취합했지만 실제로는 대학·병원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가톨릭대 의대는 교수협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사직서를 취합했지만 9일까지 대학·병원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중앙대 한양대 등도 마찬가지였다. 취합한 사직서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서울의 한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최대한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다. 가천대 의대의 경우 아예 교수 단체에서 사직서 취합도 하지 않았다.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참여율이 낮은 곳도 있다. 제주대 의대 관계자는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는 전체 교수(153명) 중 10% 수준인 10여 명”이라며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 중에서도 실제 병원을 떠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응급실 지켜야…집단 사직 부적절”교수 사직서 제출은 전국 의대 20곳 교수들이 모인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서 지난 달 16일 “25일부터 의대별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의대 전체 40곳 교수들의 모임인 전의교협에선 물론, 전의비 내부에서도 “교수까지 떠나면 안 된다”며 사직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서울의 한 의대에서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사회적 혜택을 받아 교육자가 됐으니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의대 증원에는 반대하지만 사회적 이슈 때문에 사직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인하대 응급의학과의 한 교수는 “제가 나가면 다른 누군가는 응급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교수협의회가 사직서를 취합할 때 안 냈다”고 했다. 일부 교수들은 “의사가 집단행동에 참여할 경우 대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수·응급의료 서비스와 치료가 계속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는 세계의사회 권고에 따라 병원을 비우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대생 유급-전공의 면허정지 땐 제출”다만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교수협이나 교수 상당수는 전공의 면허 정지나 의대생 집단 유급이 현실화되면 사직서를 내겠다는 분위기다. 오세옥 부산대 의대 교수협회장은 “전공의 면허정지나 의대생 유급이 이뤄지면 ‘마지막 카드’로 취합된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한편 법정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현재 의협을 이끄는 ‘대화파’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과 다음 달 취임하는 ‘강경파’ 임현택 차기 회장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비대위원장 자리를 넘기라는 임 차기 회장의 요구를 거절하며 “대내외적으로 비대위를 흔들려는 시도가 있는데 비대위 활동은 4월 30일까지”라고 했다. 임 차기 회장의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의협은 또 조율된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예고했던 12일 합동 기자회견을 무기한 연기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정부가 9일부터 치매, 만성편두통 등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일부 만성질환에 대해 검사를 생략하고 바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했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만성질환자들이 제때 검사를 못 받아 병이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일부 치매 약의 경우 6개월 간격으로 인지기능검사 후 계속 투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대형병원 진료가 축소되면서 필요한 검사를 제때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앞으로 지속 투약 중인 의약품 처방은 검사를 생략하고 재처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환자의 안전을 고려해 한 번에 30일 이내의 분량만 처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의사 판단에 따라 처방 일수를 연장할 수 있게 했다. 또 정부는 국민 약 4000만 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를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실손보험이 도수치료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미용 등 비필수 분야로 의사가 몰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또 한시적으로 합법화된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2700여 명 추가로 충원해 1만1700여 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PA 간호사는 현재 상급종합병원(3차병원)과 공공의료원에 5000여 명, 종합병원(2차병원)에 40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달 중순부터 대한간호협회에 위탁해 표준화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조속한 시일 내 법적 근거도 마련하겠다”고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정부가 9일부터 치매, 만성편두통 등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약을 처방 받을 수 있는 일부 만성질환에 대해 검사를 생략하고 바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했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만성질환자들이 제때 검사를 못 받아 병이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일부 치매 약의 경우 6개월 간격으로 인지기능검사 후 계속 투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대형병원 진료가 축소되면서 필요한 검사를 제때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앞으로 지속 투약 중인 의약품 처방은 검사를 생략하고 재처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환자의 안전을 고려해 한 번에 30일 이내의 분량만 처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의사 판단에 따라 처방 일수를 연장할 수 있게 했다.또 정부는 국민 약 4000만 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를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실손보험이 도수치료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미용 등 비필수 분야로 의사가 몰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또 한시적으로 합법화된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2700여 명 추가로 충원해 1만1700여 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PA 간호사는 현재 상급종합병원(3차병원)과 공공의료원에 5000여 명, 종합병원(2차병원)에 40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달 중순부터 대한간호협회에 위탁해 표준화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조속한 시일 내 법적 근거도 마련하겠다”고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대표가 4일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뒤 전공의 내부에서는 대표 탄핵에 동의해 달라는 성명서가 나왔다. 전공의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수련병원 대표들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다며 대표의 ‘독단적 행동’을 경고했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부터 전공의들 사이에선 온라인으로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비대위원장) 탄핵 성명서’라는 문건이 공유되고 있다. 본인을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로 소개한 작성자는 “박 위원장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강행했다”며 “전공의 다수가 찬성한다면 탄핵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면담 후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짧은 문구를 발표한 이후 (면담 내용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며 “알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종 결정을 전체 투표로 진행하겠다’고 했으나 무엇에 대한 투표를 할 것인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도 박 위원장을 비판했다. 임 차기 회장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부 내부의 적은 외부에 있는 거대한 적보다 나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내용의 영문 글을 게시했다. ‘내부의 적’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의협과 상의하지 않고 대통령과 면담한 박 위원장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제 막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라며 “유연하게, 그러나 원칙을 지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독단 행동에 분노” “대표에 힘실어야”… 둘로 쪼개진 전공의 박단, 비대위에만 면담 내용 공유“논의 없이 대통령 면담” 탄핵 주장“의견취합땐 협상전략 노출” 반론도정부 “대화 추진 비판 말아야” “1만여 명의 사직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은 사전에 의사 반영이 되지 않고 비대위에서 독단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불안에 휩싸였다.” 전공의 대표 탄핵을 주장한 한 전공의는 4일 성명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사진)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을 총회나 투표 등의 방식으로 사전에 합의하지 않아 “의사 커뮤니티에 수많은 비판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일대일 면담에 응해 많은 이들에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상기시켰다”고 지적했다. 2020년 집단휴업(파업) 때 최대집 당시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전공의와 의대생을 배제한 채 ‘9·4 의정합의’를 도출해 반발을 샀던 사례를 거론한 것이다.● 대통령 면담 후 비대위원만 내용 공유 박 위원장은 4일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뒤 대전협 비대위원들과 온라인 회의를 열어 면담 결과를 설명하고 대화 지속 여부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대위원 이외에는 면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전공의들 사이에선 “의견을 취합하는 절차도 없이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대화 후에도 왜 아무런 설명이 없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위원장이 전체 의견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수도권 대학병원 전공의 김모 씨는 “대통령 만남에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전공의들의 의견을 대표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인턴 대표는 “박 위원장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차단당했다”며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공통점은 불통”이라고 주장했다.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내부에선 대통령 면담을 둘러싸고 분열 조짐마저 나왔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박 위원장이 의협과 상의 없이 윤 대통령을 만났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반면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전공의에게 만남을 요청했는데, 의협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권 위임받은 비대위… 힘 실어줘야” 주장도 성명서 주장처럼 박 위원장 탄핵이 실제 비대위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대전협 총회를 통해 비대위에 전권을 위임했다”며 “박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대통령 면담과 관련해서 의사결정 과정에 아쉬움이 있지만 전공의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취지다. 일부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의견을 취합했다면 오히려 협상 전략이 외부로 새어 나가며 잡음만 커졌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정부도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비난 여론에 우려를 나타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대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다만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에 대해선 “(의료계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특별한 변경 사유가 있기 전까지 기존 방침은 그대로 유효하다”고 했다. 한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5일 정부의 의대 증원 강행으로 교육의 자주성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총선일(10일) 이전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6건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이 중 3건은 법원에서 각하됐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의사단체들은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만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면담에서 최대 쟁점인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박 위원장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없다”는 부정적인 후기를 남기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의사단체 사이에선 박 위원장의 짧은 후기를 두고 윤 대통령이 증원 규모 등에서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이란 점을 확인한 후 실망감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온다. 의대 교수들의 모임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 김창수 회장은 “(증원 규모 등을 두고)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 간 시각차가 컸던 것 같다”며 “사태가 장기화될 텐데 앞으로가 정말 암울하다”고 했다. 역시 교수 단체인 전국 의대교수 비대위(전의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1일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입장과 비슷한 얘기를 박 위원장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다른 의사단체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결정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다음 달부터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이끌게 되는 임현택 차기 회장은 “박 위원장이 의협과 충분한 상의 없이 윤 대통령을 만났다”며 “본인 행동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수의료 패키지 및 의대 증원 백지화 등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7대 요구’와 정부 입장의 차이가 현격한 상황에서 정부 측에 “대화했다”는 명분만 쌓게 해줬다는 것이다. 의대 교수 사이에선 당초 전향적인 결론이 나기 어려운 면담이었다는 반응도 나왔다. 전의비 관계자는 “갑자기 대통령이 마음을 바꿔서 ‘증원 규모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됐겠느냐”며 “대화의 성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면담 제안을 마냥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소재 한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만남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요청에도 안 만났다’며 비판의 대상이 됐을 것”이라면서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박 위원장 입장에선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2월 중순부터 병원을 집단으로 이탈한 후 보건복지부 장차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대화 제의에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 수반인 윤 대통령의 대화 요청마저 거부할 경우 ‘불통’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여론전에서 더 불리해졌을 것이란 취지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대표와 면담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에 반발해 2월 19일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를 시작으로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45일 만이다. 의정(醫政) 갈등 장기화 국면에서 4·10총선 사전투표 하루 전 의정 대화 물꼬가 트였다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의대 정원 확대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입장차는 여전해 다각적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함께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을 140분가량 면담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박 위원장이 지적하는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경청하고 전공의 처우, 근무여건 개선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윤 대통령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 아래로 재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공의 요구대로 정원 확대 백지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면담엔 성태윤 정책실장과 김수경 대변인이 배석했다. 정부가 2월 6일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확대를 밝힌 뒤 윤 대통령이 의사단체 대표를 만난 건 처음이다. 면담은 의정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였지만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대 증원 규모는 얘기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박 위원장 얘기를 주로 듣는 자리였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면담 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썼다. 면담에 앞서 대전협 비대위는 “행정부 최고 수장을 만나 전공의 의견을 직접 전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만남”이라며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도 했다. 대전협은 2월 20일 전공의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 △업무 개시 명령 폐지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등 7가지를 요구한 바 있다. 4·10총선 사전투표 하루 전날 면담이 성사된 데 대해 여권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은 자체만으로 여권은 부담을 덜어내는 셈”이라고 했다.전공의와 비공개 140분… “문제점 경청, 증원 규모 얘긴 안나눠” [의료공백 혼란]박단 “대통령에 의견전달 의의”… 내부반발 의식 “투표로 최종 결정”전공의 내부 강경파들 거센 반발… “朴 대표성 없어” 재신임 거론도 “윤석열 대통령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사진)으로부터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경청했습니다.”(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 윤 대통령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45일 만에 전공의 대표인 박 위원장을 만나며 의료 공백 사태 해법을 찾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면담 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부정적 반응을 내놔 대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공개로 140분 동안 진행 이날 면담은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과 김 대변인만 배석한 가운데 오후 2시부터 4시 20분까지 140분 동안 진행됐다. 면담 자리에선 박 위원장이 주로 얘기하고 윤 대통령은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필수의료의 낮은 수가 등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와 전공의 처우 개선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 2월 20일 대전협이 발표한 성명에서 요구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기구 설치 △업무개시명령 폐지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등 ‘7대 요구’에 대해서도 시간을 들여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대 쟁점인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선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 후 대통령실에선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만 발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입장 존중’이 전공의 요구대로 ‘정원 확대 백지화’를 뜻하는 건 전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한 인터넷 매체는 대통령실이 박 위원장에게 의대 증원 규모를 600명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으나 대통령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박 위원장은 이날 면담을 마친 후 기자들에게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같은 내용을 올렸다. 내부 강경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윤 대통령을 만났지만 기대한 만큼 성과가 없었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강경파 전공의 “밀실 협의’ 반발 박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을 만나기 전 전공의들에게 “한 번쯤 전공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고 해결을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7대 요구) 기조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병원 복귀 등)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해를 구했다. 대전협 비대위도 “(그동안) 외부 노출을 꺼리고 무대응을 유지한 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자를 움직이기 위함이었다”며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 내부 강경파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인턴 비대위 대표는 “다수의 의견은 의대 증원 백지화 등에 대해 정부가 신뢰할 만한 조치를 보이지 않으면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박 위원장과 비대위원 11인의 독단적 밀실 결정이다. 대전협 비대위는 대표성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부적으로는 탄핵 가능성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공의는 “조만간 박 위원장에 대한 재신임을 묻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첫 면담의 후폭풍이 거센 만큼 향후 대화가 진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 사직 전공의는 “정부와 전공의들의 증원 규모 인식 차가 커서 합의안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2시간 넘는 면담에도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한 걸 두고 환자단체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료대란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정부와 의사단체는 원론적 주장보다는 조속한 합의를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최근 의료 공백 사태와 관련해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공의를 만나겠다”고 밝힌 걸 두고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틀째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두고 대전협 비대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통령실은 3일에도 “시간, 장소, 의제 등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대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전공의 사이에선 ‘회의적 반응’ 우세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사이에선 윤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일지를 두고 의견이 나뉘는데, ‘증원 재검토 약속 정도는 있어야 만날 수 있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5대 대형병원 소아청소년과의 한 전공의는 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태도가 지금과 달라지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 전공의는 “최소한 그동안 정부가 전공의들을 ‘악마화’하며 자존감을 훼손한 것을 사과하는 발언과 필수의료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대화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협상 테이블에는 참여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나 대폭 축소 약속이 없으면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는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전공의 사이에선 박 위원장이 전체 전공의를 대표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 비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의 한 전공의는 “전공의들은 개별적으로 사직한 것”이라며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만나 얘기하더라도 개인 의견일 뿐 전공의 전체 의견을 대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의협 “환영할 일”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윤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의협 비대위에서 제안했던 대통령과 전공의의 직접 만남은 환영할 일”이라고 밝혔다. 의협 비대위 김성근 언론홍보위원장도 “저희는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에) 긍정적”이라며 “대통령이 먼저 만나자고 요청한 만큼 정부도 어느 정도 준비한 게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수 단체 입장은 다소 엇갈렸다.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성명을 내고 “원칙적으로 환영하지만 ‘의료계와 협의해 합리적 방안을 만들겠다’는 전제조건을 대통령께서 제안해 달라”고 했다. 전날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제안했던 조윤정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3일 “업무개시명령 철회와 사과가 전제조건”이라며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했던 전날 발언을 철회했다. 또 “전의교협 입장이 아니라 개인 의견을 밝힌 것”이라며 비대위 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회신 기다리는 중”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공의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했지만 아직 회신이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정원 2000명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전공의와 만날때) 내용이나 형식, 공개 여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금명간 전공의와의 만남 성사 여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국민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30명 이내 규모의 대화 협의체 구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인턴 대상자 3068명 중 등록 마감 시한 2일까지 등록자는 131명(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날 등록률을 12%로 추산했는데 실제로는 더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등록하지 않은 의대 졸업생이 수련을 받으려면 올 9월이나 내년 3월에 등록해야 한다. 한편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3일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 18명이 교육부·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의대 2000명 증원 처분을 중단하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제기된 집행정지 신청 6건 중 두 번째 각하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