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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와 가까운 경기 연천군에 사는 이은하 씨(42). 유행한다는 창업 품목은 거의 다 해봤다. 주스 전문점도 했고, 치킨집도 해봤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경쟁이 너무 치열했기 때문이다. 2018년 자영업을 포기하고 남편과 함께 귀농을 선택했다. 시가의 전문 분야인 마 재배로 눈을 돌렸다. 시부모님은 연천에서 5만9500m²(약 1만8000평) 규모의 마 농사를 짓고 있다. 15일 마 농사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이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시가의 마 농사에 합류했지만 저의 관심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시부모님의 관심이 ‘어떻게 마를 잘 키울까’였다면 저는 ‘어떻게 잘 팔까’에 주목했습니다. 부가가치를 높여 제값 받고 팔아보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마는 요즘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웰빙 식품이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 해소, 피부 미용, 소화 촉진 등에 효과가 좋다. 하지만 판매 경로가 제한적이다. 대다수 마 농가는 서울 경동시장 같은 도매시장에 한꺼번에 물량을 넘긴다. 그러다 보니 도소매가 차이가 매우 크고 수급 조절도 힘들다. 이 씨의 부가가치 제고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소비자 직거래로 관심을 돌렸다. 원래는 대량으로 도매시장에 넘겼지만 최근 유통업계에서 소포장 상품이 인기인 것을 감안해 1kg들이 상자에 담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도매시장에 넘겼을 때 5만 원이었을 상품을 소포장으로 나눠 행사장에 가져가 판매해서 26만 원으로 만들었으니까요. 특히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을 받고 소포장을 했더니 까다롭기로 유명한 백화점 행사장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둘째, 소포장에 뛰어들면서 온라인이 대세라는 판단을 내렸다. 온라인 판매에서는 브랜딩이 중요하다. 이 씨는 이름 없는 마 농가가 아니라 시아버지 이름을 따서 ‘장기선 마농원’이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상표등록도 마쳤다. “온라인 고객은 편리함을 중시합니다. 소포장은 땅에서 캐낸 생(生)마 상태로 판다면 온라인에서는 진공 포장한 깐 마가 잘 팔립니다. 바로 마 주스로 만들어 마실 수 있으니까요. 한 잔 주스용 7개 세트(2만4000원 정도)가 최대 히트 상품입니다.” 지난해 폭우로 인한 뿌리작물 침수 사태로 상품 공급이 어려워져 지금은 온라인 판매가 잠정 중단됐지만, 9월 마 수확기가 되면 정상 재가동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풀 죽어 있을 수만은 없다. 요즘 이 씨는 ‘마 카페’ 메뉴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2019년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와 경기농업기술원에서 주관하는 로컬푸드 곁두리카페 사업에 선정돼 농장 근처 마을 한복판에 마 음료 디저트 전문 카페를 열었다. 시골 한가운데 카페가 있다는 의외성 덕분에 연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동네 사랑방 역할도 겸하고 있다. “마에 흑임자, 단호박 등을 추가하면 맛이 고소하고 달달한 음료가 됩니다. 나중에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며 마 한 상자를 사 가시는 고객도 많습니다. 그럴 때면 마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그는 마 음료에 그치지 않고 마 빵, 마 잼 등 각종 디저트류도 직접 개발했으며, 마의 끈적이는 성분을 이용해 앞으로 스틱젤리 생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자영업을 하던 시절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넘길까’가 당면 과제였습니다. 마에 뛰어든 지금은 장기 비즈니스 계획을 세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 씨가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영농 정착지원 사업이다. 2018년부터 3년간 월 최대 100만 원의 생활지원자금을 받았다. “혜택 기간이 끝나니까 정말 섭섭하더라고요. 정착 초기 막막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게다가 농지은행을 통해 마 농토도 저리로 임대받았죠. 무엇보다 가장 큰 도움은 소포장, 온라인 유통, 마 카페 오픈 등 저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넓혀준 겁니다. 저는 그걸 ‘분산투자’라고 부릅니다. 주식에만 분산투자가 있으란 법이 있나요? 농사에도 있습니다.”연천=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빨리 멈춰야 한다.”(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다.”(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미국 정가에서 여성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40)가 화제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크루즈 의원과 워런 의원이 얼마 전 한 목소리로 ‘브리트니 대책’을 촉구하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브리트니 문제’를 거론합니다. 점잔 빼는 워싱턴 정치인들이 팝스타에게 이렇게 관심을 두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스피어스를 둘러싼 여러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re Time)’ ‘톡식(Toxic)’ 같은 신나는 댄스곡으로 10대 후반에 인기 정상에 오른 그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성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돌연 삭발을 하고 몸무게가 크게 느는가 하면 갖가지 기행(奇行)으로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습니다. 2008년 아버지가 ‘후견인(conservator)’으로 지정돼 안정을 찾는 듯 보였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하며 자신의 근황을 알려줬습니다. 한물 간 팝스타 정도로 여겨졌던 ‘브릿(스피어스의 애칭)’이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지난달 법정 진술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박탈해달라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에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은 원격 비디오 증언이었지만 폭발력은 대단했습니다. 속기록에 따르면 스피어스는 30여분 동안 진술하면서 판사로부터 “제발 천천히 말하라”는 주의를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가슴 속에 맺힌 게 많은 듯 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아버지가 후견인이 된 뒤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서 불안으로 가족의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후견인이 됐지만 13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풀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나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결혼할 수도 없고, 임신하지 못하도록 내 몸 속에 심어놓은 피임기구(IUD)조차 제거할 수도 없다”고 증언하는 부분이 클라이맥스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고통 받는 삶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실제 상황은 그게 아닌 듯 했습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내용은 모두 아버지의 검열을 받는다고 합니다. 스피어스가 후견인 제도 때문에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소문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들려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녀의 생활을 관리하기 위해 고용한 로펌의 직원이 한 팟캐스트 방송에 관련 내용이 담긴 오디오 파일을 전달하면서부터입니다. 그녀의 팬들 사이에서 ’브리트니를 해방시켜라(Free Britney)‘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올해 1월 뉴욕타임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공개되면서 팬층을 넘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이 회자(膾炙)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적(性的) 대상으로 소비되면서 정서 불안을 겪은 개인사를 담은 다큐는 스피어스 근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고, 동정 여론에 힘을 얻은 스피어스는 소송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다큐에 이은 제2탄 격으로 아버지의 후견인 제도 악용을 고발하는 심층 기사를 실었습니다. 딸의 돈을 착복하고 자유를 말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피어스는 소송을 통해 “큰 패배, 작은 승리”를 얻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재판부는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일단 유지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스피어스에게 변호인 선임 자격을 줬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값진 승리”라는 평이 나옵니다. 유력 정치인들이 스피어스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별로 도와 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견인 제도는 개인의 재정 상황과 일상 생활에 관련된 결정권을 주 정부가 지정한 후견인에게 일임하는 제도입니다. 본래 결정력이 떨어지는 고령층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제도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가 관할권을 갖습니다. 스피어스의 상황이 나아지려면 법률적 개선이 이뤄져야 하지만 그녀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 주는 관련 법률이 전근대적이고, 몇 차례 개혁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됐습니다. 현재로선 연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 청문회를 연다든지, 제도 운영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워런 의원의 말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 모두 ’몰락한 스타의 극적인 재기 스토리‘는 좋아하니까요.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전처 매켄지 스콧(51)의 기부 선행이 화제입니다. 스콧은 2019년 베이조스와 이혼하면서 받은 합의금(아마존 전체 주식의 4%)을 잇따라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혼 후 2년 동안 약 10조 원(85억 달러)을 기부했습니다. 지난달에는 286개 사회단체에 3조 원을 내놓았죠. 스콧이 총 세 차례에 걸쳐 통 큰 기부를 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부 전략이 있습니다. 기부금을 받는 사회단체들로부터 “게임 체인저다” “혁명적이다” 등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미 언론과 자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그녀의 독특한 기부 방식에 대해 알아볼까요. 스콧의 기부는 ‘쓰리 노(3개의 아니오)’라고 불립니다. 기존의 기부 관행과는 3가지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이죠. 우선 ‘비신청(No Solicitation)’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사회단체들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 대규모 자선재단 같은 기부자에게 신청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자선재단들은 접수된 후보들 중에서 수혜 대상을 결정해왔죠. 하지만 스콧은 “영세한 사회단체들이 신청 절차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다”며 “우리가 기부를 받을만한 곳들을 찾아내겠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스콧은 기부 자문단을 가동시켜 평판조사를 하고 후보를 물색합니다. 자문단에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현장 실무자와 기금 전문가, 자원봉사자가 100명 이상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부금을 받을만한 사회단체의 리더십, 예산 운용 능력, 영업 실적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커뮤니티와 사회 분야를 개발합니다.380여개 사회단체에 4조5000억 원을 내놓았던 지난해 12월 기부 때 당초 6490개 단체를 1차 후보에 올린 뒤 2차 심사 때 822개로 줄여나갔습니다. 이 중에서 438개 단체는 실적 증거 부족, 경영의 비효율성 등의 이유로 유보 판정을 받았습니다. 자선 전문가들은 스콧의 비신청 방식에 대해 “기부금을 받기 위해 치열한 로비와 뒷거래가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신청 과정을 없앴기 때문에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은 자신들이 선정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정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각양각색의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170억원을 받게 된 ‘캔디드’라는 사회단체의 대표는 선정 통보 e메일을 스팸인 줄 알고 버렸다가 나중에 제3자가 알려줘 부랴부랴 휴지통 메일들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스콧 측이 보내온 선정 통보 e메일의 낯선 주소를 보고 열어보지도 않은 곳들이 많다고 하죠. 80억 원 상당의 기부금을 받은 ‘리페어 더 월드’라는 종교단체의 대표는 이 뉴스를 전해준 스콧 측 대리인과 통화하면서 감격에 겨워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스콧은 자선재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재 갑부들이 펼치는 기부 활동의 90% 정도는 자신 소유의 재단을 통해 운영됩니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대표적이죠. 스콧의 전 남편인 베이조스 아마존 CEO 역시 자신이 설립한 ‘베이조스어스펀드’에 기금을 신탁해 환경단체들에게 나눠줍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기부자 지정 펀드(DAF)’라고 하죠. 반면 스콧은 ‘비지정 펀드(Non-DAF)’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신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DAF는 체계적인 기금 운영이 가능하지만 집행 속도가 느리고, 외부인이 재단 내부 활동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물론 비지정 방식도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콧처럼 빨리 나눠주는 것이 목표라면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용처 제한 규정이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기부자가 사용처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는(NSA·No Strings Attached) 방식입니다. 스콧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단체들은 나중에 성과와 교훈, 사용 내역을 정리한 5쪽 미만의 보고서 제출이 유일한 조건이라고 합니다. 국제 반노예 활동기구인 ‘프리덤 펀드’의 대표는 “기부금을 가지고 다양한 모험적 시도를 하고 싶은 사회단체들에게 세세한 사용 조건은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스콧은 기부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스콧은 이 단체에 40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스콧이 운영하는 ‘미디엄’ 블로그를 보면 “나를 주목하지 말고 기부를 받게 된 묵묵히 일하는 사회단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겸손하니 좋은 평을 받지 않을 수 없죠. 반면 전 남편 베이조스 CEO의 평판은 악화 일로입니다. 이혼 과정에서 불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던 베이조스는 지난해 첨단 대기업 CEO들의 의회 청문회 때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이미지가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3월 “‘베이조스어스펀드’에 10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재산 규모로 볼 때 “너무 적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1회분 기부 후 후속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말이 있지만 미국에도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Living well is the best revenge)”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남다른 기부 철학을 실천하고, 자선 분야에서 일하는 시애틀 과학교사 출신 남성과 재혼도 한 스콧을 보면 “잘 사는 게 뭔지 알게 된다”고 미국인들은 입을 모읍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경기 전 족히 한두 시간은 거울 앞에 앉아있었을 듯한 ‘풀메(풀메이크업),’ 대회 때마다 달라지는 머리 색깔, 너무 길어 일상 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듯한 인조 손톱…. 미국 여성 육상선수 샤캐리 리처드슨(21)은 ‘블랙 글램(화려하게 치장한 흑인)’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입니다. 말도 당차게 잘 합니다. 자신을 “저 아가씨(That Girl)”라고 불러달라고 합니다. “나를 주목해 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리처드슨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언변도 뛰어난, 즉 상품적 가치가 높은 스포츠 스타를 좋아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TV 출연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미국은 스포츠의 엔터테인먼트화, 비즈니스화가 고도로 발전했습니다. 리처드슨은 최근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전 100m 결선에서 1등으로 골인했다가 도핑 테스트에서 마리화나 사용이 드러나 자격이 박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를 당당히 밝히면서 많은 미국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흥행성을 인정받은 리처드슨이 마리화나 파문 때문에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지자 국민적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백악관도 관심을 보입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이자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뛰는 선수인데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리처드슨처럼 실력도 외모도 뛰어난 여성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미국 도핑방지위원회(UADA)는 리처드슨에게 내린 출전 정지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국민 청원도 뜨겁습니다. UADA,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반도핑기구(WADA) 등을 상대로 벌이는 리처드슨 지지 운동이 인터넷에서 여러 개 생겨났습니다. 시민단체 ‘무브온’이 조직한 가장 큰 규모의 40만 명 서명 운동 ‘샤캐리를 뛰게 하라’는 개시 하루 만에 3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불법 약물 사용은 스포츠 스타들에게 불명예의 극치인데 리처드슨의 경우는 왜 이렇게 동정론이 들끓고 있는 걸까요. 아직 미래가 밝은 젊은 선수라는 점, 경기 직전 오래 전 헤어진 친어머니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충격을 덜기 위해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안타까운 사연, 부인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순순히 “내 책임”이라며 시인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리처드슨은 마리화나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가족을 잃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이겨내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심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에서 자신의 허약한 멘탈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미국 스포츠계는 “불굴의 투지” “정신력의 승리” 같은 ‘멘탈 갑’ 수사(修辭)들이 우리나라보다 덜 강조되기는 합니다만,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이 많은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부담감도 큽니다. 많은 선수들이 개인 사정에 관계없이 자신만만한 겉모습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지난달에는 아시아계 테니스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사카는 프랑스오픈 기자회견을 거부하고 윔블던대회 출전도 포기했습니다. 오사카와 마찬가지로 ‘소수인종 롤 모델’로 각광 받던 리처드슨이 비슷한 정신적 고민을 호소하자 미국인들은 이들의 약한 멘탈을 비판하기보다 이해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과거에는 선수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숨기는데 급급했다면 리처드슨이나 오사카 같은 신세대 스타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치료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미디어의 집요한 캐묻기식 취재 경쟁을 자제해줄 것을 호소합니다.이들의 호소가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은 불안한 정신 건강이 단순히 스포츠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MZ세대는 ‘우울증을 달고 사는 세대’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중에서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가 “보통이거나 나쁘다”고 답한 비율은 27%인 반면 4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13%였습니다. “전문가로부터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MZ세대에서 70%가 넘는 반면 중장년층에서는 10~20%이었습니다. “나에 대해 쉬운 판단을 내리지 말아 달라. 나도 사람이다. 내가 바로 당신이다. 단지 조금 빨리 달릴 뿐(Don‘t judge me because I am human. I am you - I just happen to run a little faster).” 리처드슨은 마리화나 사용 시인 직후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법 약물 사용은 분명히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그녀만큼 많은 미국인들에게 정신 건강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스포츠 스타는 흔치 않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경기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포천딸기힐링팜’에 가면 6644m² 규모의 거대한 스마트팜 시설이 맞아준다. 스마트팜 앞쪽에는 ‘청년농업인 대상 수상’이라는 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주인공은 ‘힐링팜’을 경영하는 안해성 농부(38). 조만간 현수막을 몇 개 더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안 씨는 24일 환경부 주최 에코디지털 탄소중립 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도 받았다. 도시농업박람회 농업영상 공모전 최우수상, 농산업 창업아이디어 경영대회 우수상, 대통령 농특위 공모전 입상 등 농업에 뛰어든 지 2년도 안 된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안 씨의 배경은 독특하다. 서울대 지질학과 대학원 졸업에 현대건설 인공지능 빅데이터 연구원. “이렇게 똑똑한 젊은이가 농사를 짓겠다고?” 2019년 가을 그가 딸기 농사를 짓겠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 마을 주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 씨는 25일 ‘힐링팜’을 찾아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는 풍광은 수려하지만 대규모 돈사(豚舍)가 많아 악취가 심한 편입니다. 모두 떠나려는 곳에 정착하겠다고 하니 놀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은 현수막이 내걸릴 정도로 ‘동네 자랑’이 됐다. 아버지가 카센터를 접고 2000년대 초 귀농했기 때문에 “농업은 앞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결심은 언제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 씨는 지금 포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직접 시공에 참여한 스마트팜에서 모두 생산된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으로 설계돼 온도, 습도부터 일조량까지 원격제어가 가능하다. 농장 안팎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수집된 기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전송해 딸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찾는다. 스마트팜을 구경하러 오는 예비 농업인, 단체 연수생들이 늘면서 관광 체험학습 기회도 제공하게 됐다. 안 씨는 스마트팜을 최고 자랑거리로 여긴다. 직접 설계한 데다 지난해 1월부터 토목공사, 골조 양액 시설 등 10개 업체를 분리 발주시켜 8월에 완공했다. 설치 비용은 총 4억여 원. 만약 시공업자에게 설계부터 사후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맡기는 턴키 계약 방식을 택했다면 비용이 5억 원 이상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10억∼20억 원이 들어가는 최첨단 유리온실만이 스마트팜이라고 여겨 엄두를 못 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ICT 복합 환경제어 시설만 설치하면 2억 원 정도로 한국형 스마트팜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안 씨는 초기 정착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 정착 지원사업’을 연구해 활용했다. “농사는 매달 들어가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매달 최대 100만 원씩 받는 정착지원금은 생활비, 유류비, 농기자재 수리비 등으로 썼습니다. 창업 자금도 3억 원을 저리로 융자받아 토지를 구입했죠. 농업진흥청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등이 제공하는 6개월 이상 코스의 청년귀농 장기 교육을 이수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구실을 떠나 농사꾼으로 변신한 안 씨는 다른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이 터득한 비법을 전수하는 농업 교육 및 컨설팅 사업이다. 기자와 만나는 중에도 각종 기관과 학교들로부터 스마트팜 및 창농 강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이달에만 600여만 원의 강연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안스팜티비’라는 유튜브 채널도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젊은 농업인들 사이에서 유튜브 스타인 그는 사업계획서 작성법부터 창업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스마트팜 시공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이제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네가 이래서 농사를 짓겠다는 거구나’ 하고 말씀하세요. 재래식 농법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연구하고 비즈니스 모델로 접근하는 아들을 신뢰하는 거죠.” 月 100만원 정착금 - 3억 융자에 컨설팅까지… ‘영농 집중’ 도우미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정부, 창농 초기 소득 불안정 보전올해는 1800명까지 지원 확대…심리안정-자신감 향상에도 도움 A 씨는 3년 전 30세의 나이에 회사원 생활을 접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초기 창농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기간 동안 수입이 불안하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가정을 꾸리고 식구가 늘어난 때였기 때문에 창농 실패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됐다. 청년농업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런 고민에 답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다. 청년층의 농업 분야 창업 활성화와 조기 경영안정화를 위해 월 최대 100만 원의 생활안정자금을 3년간 지원한다. 청년농업인을 돕는 사업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꽤 많이 있다. 대부분은 농기자재, 온실 설치 등을 현물 지원하거나 농업실습 및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유일하게 ‘생활비’를 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돈으로 마트에 갈 수 있고, 분유 값도 충당할 수 있다. 물론 농기계를 수리할 수도 있고 유류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생활비와 함께 융자 및 교육 컨설팅도 병행한다. 토지 농기계 영농시설 등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정 금리 2%대로 최대 3억 원의 창업자금을 융자해준다. 농지은행을 통해 비축 농지도 우선적으로 임차할 수 있다. 이 밖에 영농기술 교육 및 영농 경영 투자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생활비 지원의 경우 (농협)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게 된다. 이 카드에 월 최대 100만 원씩 꼬박꼬박 적립돼 편의점, 마트, 대형 할인점, 식당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원래 사용 용도가 아닌 유흥비로는 쓸 수 없다. 생활비는 3년 동안 연차별로 차등 지급된다. 1년 차는 100만 원, 2년 차는 90만 원, 3년 차는 80만 원이다. 3년 차까지 100만 원 일률 지급, 5년으로 혜택 기간 연장 방안 등의 개선안이 논의되고 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2018년 시작돼 매년 1600명씩 선발해오다가 올해는 1800명으로 늘렸다. 올해까지 총 6600명의 청년농이 혜택을 받았다. 지자체 산하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농식품부 관계자는 귀띔했다. 올해 선발자를 보면 지역은 경북(304명), 전북(294명), 전남(282명) 등의 순이었으며, 생산 품목은 채소류(26.1%)가 가장 많고 과수류(15.5%), 축산(13.3%) 등이 뒤를 이었다. 신청 자격은 만 18세 이상 40세 미만이며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하는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상태여야 한다. 본인 명의의 독립적인 영농 기반을 갖추고 있고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임차 형태의 농업에 종사한다면 혜택을 받기 힘들다. 김정희 농식품부 농업정책국장은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농의 소득을 직접적으로 보전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농외소득 활동을 줄이고 영농에 집중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 및 자신감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포천=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일주일 후면 미국 독립기념일입니다. 영어로는 ‘인디펜던스 데이’라고 하죠.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공휴일도 개명해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대체공휴일 문제로 뜨겁지만 미국은 조금 다른 앵글의 ‘공휴일 고민’이라 할 수 있죠. 미국인들이 많이 읽는 ‘아메리칸 헤리티지’라는 역사 사전에는 ‘미국의 폭력’이라는 챕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으로 “미국 역사에서 폭력은 가장 원초적 문제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널리 알려졌듯 미국 역사는 침략의 역사이고, 정복의 역사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개척자들은 원주민과 싸웠고, 식민 상태에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영국과 대결했으며, 남북전쟁 때는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노예 제도를 둘러싼 흑백 대립도 심각했습니다. 미국인들은 “폭력을 통해 현재의 민주주의를 얻었다”고 위로하지만 과거가 피로 점철됐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문제는 공휴일의 대부분이 폭력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물들을 기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국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폭력적 면모를 갖고 있지만 짧은 기간 안에 국가를 세우고 분열을 잠재웠던 미국은 폭력의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휴일 개명(Rename Holidays)’은 휴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름에서 폭력적 색채를 덜어내야 한다는 운동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전개돼온 운동이지만 최근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요즘 미국은 ‘우오크(woke)’ 즉 ‘깨어나라’ 정신이 대세입니다. 약자 입장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지요. 강자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인 휴일을 이름만이라도 약자를 배려하는 식으로 바꿀 것을 우오크 시대 정신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의 배경에는 독립 전쟁이라는 영국과의 폭력적 대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명론자들은 독립기념일이 결국 후세에 평화를 물려주기 위해 싸운 날이라는 점을 강조해 ‘피스데이 원(평화의 날 1)’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피스데이’ 뒤에 ‘원’이 붙는 것은 두루뭉술한 의미의 ‘피스데이’는 웬만한 곳에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다목적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피스데이 투’도 있고, ‘쓰리’도 있습니다.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전몰자 추도기념일·5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는 ‘피스데이 투,’ ‘마틴 루터 킹 데이(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1월 세 번째 주 월요일)에는 ’피스데이 쓰리‘라는 이름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킹 목사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 인권을 위해 싸웠으므로 그의 기념일은 개명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특정 인물을 기리는 날은 결국 개인 우상화 위험이 있다 해서 ’피스데이‘군에 합류하게 됐습니다.가장 확실하게 개명 움직임이 일고 있는 날은 ’콜럼버스 데이(10월 두 번째 주 월요일)‘입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1937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많은 지자체들이 회의를 거쳐 ’콜럼버스 데이‘라고 하지 않고 ’인디지너스 피플스 데이(원주민의 날)‘라고 부를 것을 정식 결의했습니다. 그러자 콜럼버스가 태어난 나라인 이탈리아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미국 내 이탈리아 커뮤니티는 “왜 수십 년 동안 잘 불러오다가 갑자기 없애느냐”고 반발했습니다. 꼭 개명을 해야 한다면 ’원주민의 날‘이 아닌 ’이탈리아 유산의 날(이탈리안 헤리티지 데이)‘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이렇게 개명은 쉽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이익 집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휴일 개명 운동은 이념 대결 양상도 보이고 있습니다. 개명을 주장하는 쪽은 진보 세력이고, 반대하는 쪽은 보수파입니다. 보수 운동가들은 “왜 역사를 부정하느냐”며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온 휴일 이름을 바꿔 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미국의 과거사를 일일이 들춰보자면 사실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공휴일은 개명 대상입니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 재향군인의 날, 대통령의 날 등이 모두 개명 대상으로 오르내립니다. 최근 뉴저지 주 랜돌프 고교 사례는 휴일 개명이 얼마나 쉽지 않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총 학생수 1500여명의 이 작은 학교가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올해 학사 일정을 공개하면서 공휴일 명칭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공휴일 명칭을 쓸 경우 누군가의 반발을 살 것을 우려해 아예 생략하고, ’학교 문 닫는 날(School Closed)‘ ’쉬는 날(Days Off)‘ 등의 큰 제목 아래로 날짜만 공고했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봐온 공휴일 명칭이 사라진 것에 반발한 학부모들이 생략 결정을 내린 학교 이사회 퇴진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돌입하면서 학교가 이념 대결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공휴일 개명은 역사 바로 잡기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돼온 휴일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쉽게 고쳐지기도 힘듭니다. 바짝 코앞으로 다가온 독립기념일부터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쩍 살이 빠진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비만 문제가 심각한 미국이 김 위원장의 체중 감소를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이리저리 뜯어보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Diet or Health Scare? Kim Jong Un Is Looking Noticeably Slimmer.” 누군가 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궁금증은 “다이어트 때문인가, 아파서 그런가”입니다. 김 위원장의 체중 감소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 역시 대부분 제목이 비슷합니다. 전문가들의 추측은 다이어트 쪽이 우세합니다. 건강 문제 때문이라면 아예 공식석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미 언론에 김정은 건강이상(설) 기사가 나올 때마다 ‘health scare(건강 우려)’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됩니다. ‘몸무게를 줄이다’는 ‘lose(잃다)’ 또는 ‘shed(덜어내다)’ weight라고 합니다. △“The baggy suit is hanging a bit more loosely.” “배기 스타일의 슈트가 좀 더 느슨하게 걸려 있다.” 한 외신은 김 위원장의 살 빠진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초고도 비만이어서 원래 꽉 끼지 않는 배기 스타일을 즐겨 입죠. 이 배기 스타일의 슈트가 ‘더 헐렁해진 듯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hang’은 ‘(옷을 몸에) 걸치다’고 할 때도 씁니다.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을 “옷걸이가 좋다”고 하죠. △“Kim Jong Un appears to have lost some weight-and that could have geopolitical consequences.” “과연 우리가 김 위원장의 체중 문제까지 세세하게 상관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물론 핵무기를 가진 북한 지도자의 건강 문제는 안보상의 이유로 중요하지만 시곗줄을 더 바짝 조인 것까지 체크해 가며 살 빠진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입니다. “김 위원장이 살이 좀 빠졌다. 그리고 그것은 지정학적으로 중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걸 ‘비꼬는(sarcastic)’ 제목이라고 합니다. “그게 뭐 대수냐”는 의미죠.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햄버거’와 ‘슈퍼히어로’ 둘의 공통점이 뭘까요.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것? 맞습니다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최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건의 대형 오보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이 오보 사건을 계기로 가짜뉴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선 ‘햄버거’ 사건. 얼마 전 폭스뉴스는 정정 보도를 냈습니다.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가 직접 발표한 정정 보도는 “며칠 전 우리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That is not the case)”라는 것입니다. 발단은 사흘 전 폭스뉴스가 방송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붉은 고기(쇠고기 돼지고기 등) 공급 제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뉴스는 “고기 섭취를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2020년 미시건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정정 보도는 “연구결과 내용은 맞다. 하지만 마치 그것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틀렸다”고 했습니다. 오류를 인정한 것은 다행입니다만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원래 보도 내용이 폭스뉴스의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널리 퍼진 후 정정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재탕 삼탕 수준이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이번 독립기념일부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금지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확대 발전됐습니다. 어떻게 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1개월에 1개씩”이라는 구체적인 햄버거 규제 량까지 추산해 보여줬습니다. 미국인들이 즐기는 햄버거다 보니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햄버글러<햄버거와 버글러(도둑)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바이든, 내 부엌에서 떨어져”라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원래 보도 내용의 파급력이 컸기 때문인지 정정 보도는 묻혀 버렸고, 정정 보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햄버거 정정 보도 다음날 뉴욕포스트 기사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기사는 “중남미 불법이민자 자녀들이 머무는 임시 수용소의 ‘환영 선물 키트’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저서 ‘슈퍼 히어로는 어느 곳에나 있다’가 포함돼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의 책은 ‘부모나 선생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린이들에게는 슈퍼 히어로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는 임시 수용소에 입소하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부각했습니다. 기사에는 수용소 침대에 이 책이 놓여 있는 로이터통신 사진도 곁들여 있었습니다. 뉴욕포스트 1면 머리기사로 실렸고 온라인판에도 보도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이민정책 전반을 위임받은 해리스 부통령은 종합적인 이민 대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기사까지 나와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그동안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물밀 듯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 급증 사태를, 민주당은 이민자를 곧바로 본국에 소환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아왔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양당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국경 지역 방문도 하지 않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뉴욕포스트 기사는 해리스 부통령이 주어진 임무에는 소홀한 채 저서 배포를 통한 자기 홍보와 이윤 추구에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기사는 ‘햄버거’ 사건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오류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가 “회사 측 강요에 못 이겨 썼다”고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이 기사가 보도된 다음날 자신의 트위터에 “카멀라 해리스 기사는 틀린 기사다. 나는 이 기사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점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포스트는 사흘 뒤 “우리는 기자에게 사실 관계가 틀린 기사를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양쪽의 진실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기자가 사표까지 감수하며 폭로한 것이니만큼 회사 측 강요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입니다.왜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이민자 수용소에 비치돼 있었는지 워싱턴포스트가 팩트체킹한 기사에 따르면 한 지역 단체가 수용소 도서관에 기부한 여러 권의 책들 중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뉴욕포스트 기사에 나온 대로 이민자 ‘환영 선물 키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기사는 뉴욕포스트에서 20여년의 취재 경력을 가진 여기자가 썼습니다. 어떻게 베테랑 기자가 거짓 기사를 썼는지 시사 잡지 베니티페어가 뉴욕포스트의 사내 분위기를 추적해보니 발단은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이민자 침대에 놓여 있는 로이터통신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사내 결정권자들은 이 사진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해당 기자에게 “왜 이 책이 여기에 있는지 취재해서 기사를 써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회사 측 강요 내지 회사와 기자의 합의 하에 가공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회사입니다. 연이어 터진 오보 스캔들에 소셜미디에서는 “머독은 창피한 줄 알라” “머독은 괴물” “다음에는 또 무슨 거짓말을 퍼뜨릴 거냐”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주의의 독”이라며 머독 소유 언론사들에 대한 불매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와 CNN은 머독 언론 왕국의 실체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동 제작 중입니다.머독은 미 언론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좀처럼 외국 자본이 뚫고 들어오기 힘든 미국 언론산업에 호주 출신의 머독은 영국을 거쳐 성공적으로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머독은 많은 비판을 받는 만큼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재벌 가문 내부의 암투를 그린 HBO 드라마 시리즈 ‘석세션’이 머독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흔히 가짜뉴스 하면 ‘듣보잡’ 매체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오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크고 잘 알려진 매체들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머독 소유 매체들이 원래 높은 질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곳은 아닙니다만, 뉴스 신뢰도에 중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와 머독 매체들 간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선별할 줄 아는 언론 이용자의 부지런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정치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좌우하는 세계다. 나는 옷을 입을 때마다 이 원칙을 염두에 둔다.” 패셔니스타로 이름을 날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자서전 ‘비커밍’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출신의 공부벌레로 외모를 꾸미는 일에는 관심 없던 그녀가 남편의 정치 입문과 함께 패션의 정치적 효과를 깨닫게 됐다는 것이죠.미셸의 이런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동행한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일 것입니다.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보여준 그녀의 분별 있는 패션 센스가 화제입니다. 전임 퍼스트레이디였던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처럼 주변을 압도하는 화려한 패션 감각은 갖추지 못했지만, 또 그런 타고난 몸매도 나이도 아니지만, 본인 특유의 적재적소 형 패션으로 남편의 든든한 정치적 조력자가 되고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 바이든 여사는 G7에서 ‘패션 리사이클링’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대개 유명인들은 한 번 입고 공개석상에 등장했던 옷을 다시 입는 것을 꺼립니다. 하지만 ‘한번 입었다고 해서 비싼 옷들을 옷장 속에서 썩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질의 패션관인 듯 합니다. G7 때 입었던 대부분 옷들이 ‘재활용’ 패션입니다. G7 개막 리셉션에서 입었던 오스카 드 라렌타표 꽃무늬 원피스는 지난해 남편의 대선 승리 후 대국민연설 때 입은 옷입니다. 당시 눈도장이 확실히 찍혔던 의상인데도 카메라 플래시가 집중적으로 터지는 G7 개막식에서 또 다시 선보인 것이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부부를 만날 때 입은 등 쪽에 ‘LOVE’라고 새겨진 자딕앤볼테르 브랜드의 재킷은 2019년 남편 대선 유세 때 처음 입은 뒤 몇 차례 입었습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와 함께 지역 초등학교 방문 때 선보인 핑크색 재킷과 안에 받쳐 입은 흰색 원피스는 4월 일리노이 주 대학 방문 때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이든 여사는 역대 최초의 ‘직장인 퍼스트레이디’라는 점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습니다. 노던버지니아커뮤니티칼리지(NOVA)에서 영어를 가르치죠. 대부분 직장 여성이 그렇듯 ‘출근 옷’이 필요하고, 매번 꼼꼼히 따져가며 옷을 차려입을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한번 입은 옷을 입고 또 입는 것에 개의치 않는 것도 이런 ‘직장인 마인드’ 때문인 듯 합니다. 퍼스트레이디 담당 백악관 스타일리스트는 “바이든 여사는 패션에 무신경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를 가리켜 “주저하는 패셔니스타(Reluctant Fashionista)”라고 부릅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퍼스트레이디라는 직함 때문에 얼떨결에 패션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죠. ‘곱창밴드’ 사건은 어쩌다 보니 패셔니스타가 된 그녀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질은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한국에서 ‘곱창밴드’로 불리는 천 고무줄 밴드로 머리를 묶고 마카롱 가게에서 남편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어마어마한 환호를 받습니다. 유행이 지난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철칙인 냉엄한 패션의 세계에서 1980~90년대 유행했던 곱창밴드로 머리를 묶은 그녀의 소박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일명 ‘곱창밴드 영부인’의 탄생입니다.그녀의 소감은 “얼떨떨하다”였습니다. 인기 토크쇼 ‘켈리 클락슨 쇼’에 출연한 그녀는 “딸 애쉴리로부터 곧바로 ‘엄마, 소셜미디어에서 난리 났어’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그게 왜 화제가 되는지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고 털어놨습니다. 진행자 켈리 클락슨은 한술 더 떠 “기왕에 추억 소환이라면 곱창밴드 외에 ‘바나나 클립(헤어 집게)’도 다시 유행시켜 주세요”라는 애교 섞인 주문까지 했습니다. 비주얼이 중시되는 현대 정치에서 퍼스트레이디에게 패션은 사치가 아닌 필수가 되는 추세입니다. 패션에 유달리 관심이 많던 미국 퍼스트레이디로는 재클린 케네디 여사(남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베티 포드 여사(남편 제럴딘 포드 대통령), 낸시 레이건 여사(남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이 꼽힙니다. 반면 패션과 담 쌓고 살았던 퍼스트레이디로는 로절린 카터 여사(남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가 있습니다. 그래도 전담 스타일리스트와 미용사가 있고, 의상 구매 담당자도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백악관 안주인들은 금세 ‘환골탈태’합니다. 도수 높은 안경에 값싼 기성복 슈트 차림으로 놀림을 받았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퍼스트레이디를 지내면서 갈고 닦아 나중에는 패션지 표지 모델로 등장했습니다.질 여사는 대중의 관심이 지나치게 패션에만 집중되는 것에 대해 불편감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퍼스트레이디 대변인은 “앞으로는 패션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코멘트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왜 그 옷을 선택했는지 등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퍼스트레이디 담당 공보팀은 언론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디자이너 이름, 옷을 입은 사연 등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어떤 때는 언론 요청이 없어도 백악관이 먼저 나서 패션 보도 자료를 뿌리기도 하죠. 앞으로는 시시콜콜하게 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새로운 유형의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제스처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최우선 역할은 ‘패션 내조’라는 인식이 너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바이든 여사에게 앞으로 3년 반은 패션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적당한 균형을 잡아가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대중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정치인들은 물리적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 남성으로부터 뺨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공격을 당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나겠죠. 노련한 정치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는지 볼까요. △“That was a size 10 shoe he threw at me, you may want to know.”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이라크 방문 기자회견 중 ‘신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옆에 서 있던 이라크 총리의 도움으로 신발을 용케 피한 부시 전 대통령은 기자들을 향해 “혹시 여러분이 궁금해할까봐 말씀드립니다. 저 사람이 던진 신발 사이즈는 10이네요”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수습합니다. 우리는 종종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선수를 쳐 답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죠. “혹시 네가 알고 싶어 할까봐 말해주는데…”라는 뜻으로 “You may want to know”를 씁니다. △“This guy owes me bacon now.” 2003∼201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할리우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2003년 롱비치에서 유세 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오를 때 ‘계란 세례’를 받습니다. 슈워제네거는 “그 사람 나한테 베이컨 빚졌어”라며 웃어넘깁니다. 계란과 베이컨은 아침식사 메뉴로 잘 어울리는 ‘단짝’이죠. “어디 베이컨도 한번 던져 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 하나”라는 의미겠죠. △“It could’ve been worse. Imagine a tuna sandwich!” 2013년 줄리아 길라드 당시 호주 총리는 ‘샌드위치 세례’를 받습니다. 길라드 총리는 “내가 배고픈 줄 알았나봐”라며 재치 있게 넘어갑니다. 당시 소셜미디어에서도 재미있는 반응이 많았는데요. “그만하길 다행이야. 참치 샌드위치였다고 상상해봐!”라는 댓글이 눈에 띕니다. 날아온 샌드위치는 이탈리아식 소시지인 살라미를 넣은 것이었죠. 만약 참치, 야채 등을 넣고 질척하게 버무린 샌드위치였다면 더 ‘끔찍한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라는 위로성 댓글입니다. 속으로는 살짝 재미있어 하면서 겉으로는 위로하고 동정하는 척할 때 “It could’ve been worse(그 정도인 게 다행이야)”라고 합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최근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2년간 정지하기로 했습니다. 트럼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 대법원’의 판결에 근거해 2년 정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페이스북 대법원’이 뭐하는 곳일까요. 저커버그 CEO를 가상법정의 증인으로 출석시켜 질의응답(Q&A)을 통해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언론 보도와 법률 블로그 등을 참조했습니다. Q(페이스북에 대해 궁금한 일반인들): ‘페이스북 대법원(Facebook Supreme Court)’이라고 하면 회사 내부에 법원이 있다는 것인가.A(저커버그): 아니다. 일종의 별명이다. 정식 명칭은 ‘감독위원회(Oversight Board)’다.Q: 위원회는 뭐하는 곳인가.A: 페이스북에는 가짜 뉴스나 공중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뉴스가 종종 올라온다. 그런 콘텐츠는 빨리 찾아 내릴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자동 알고리즘을 작동시켜 찾아내고 페이스북 경영진이 가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중대하거나 법리적으로 까다로운 결정은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심사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는 콘텐츠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곳이다. 하급 법원에서 올라온 사안들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Q: 누가 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하나.A: 나를 포함한 페이스북 경영진이 요청하기도 하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위원들이 내부적으로 안건을 내기도 한다. ‘트럼프 건’은 내가 요청했다.Q: ‘트럼프 건’이 뭔지 설명해 달라.A: 페이스북은 1월 워싱턴 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 트럼프 계정 정지 결정을 내렸다. 워낙 중요한 결정이므로 나는 위원회에게 다시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요청했다. 첫째, 결정의 타당성과 둘째, 정지 기간에 대한 것이다. 난입 사태 후 나는 ‘무기한 정지(indefinite suspension)’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에게 구체적으로 기간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지난달 위원회는 판결을 내렸다. 첫째 안건에 대해서는 “정지 결정은 타당하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기간 문제는 “페이스북 경영진이 결정해야 한다”며 다시 안건을 우리에게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나는 2년 정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Q: 당신은 페이스북의 1인자다. 그런 당신이 순순히 따르는 것을 보면 위원회의 권한이 상당히 큰 것 같다. A: 위원회는 페이스북의 콘텐츠 관련 최종 결정 기구다. 위원회 판단은 나의 결정을 인정할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위원회 결정에 따른다. 그만큼 내가 공들여 만든 조직이라는 뜻이다.Q: 만들게 된 계기를 말해 달라.A: 과거 나는 “페이스북은 진실의 중재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의견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거짓 정보와 공중 안전에 해가 되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감독 필요성이 커졌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2년 전쯤 어느 날 노아 펠트먼 하버드대 법대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셰릴 샌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담당자(COO)의 친구인 그는 샌버그 집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비슷한 독립적 감독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한다. 위원회는 2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10월 활동을 개시했다. Q: “공들여 만들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A: 내가 설립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인맥 소개를 통해 위원들을 선정할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다들 자기 주변 지인들만 추천해서 비슷한 분야 사람들로만 채워질 듯 했다. 그래서 공개모집 포털 사이트를 마련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추천을 하기도 했다. 88개국에서 접수된 1200여명 후보 중 250차례의 대면 면접과 22차례의 라운드테이블 미팅, 8차례의 심층 워크숍을 통해 정치 법조 인권 언론 학계 등에서 20명을 선정했다(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대만, 인도, 파키스탄 출신 4명). 앞으로 4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위원 급여, 운영 비용 등은 페이스북이 자체 마련한 1억3000만 달러(1450억원) 규모의 펀드에서 충당한다.Q: 그렇게 공들여 선정했다는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이 별로 없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가.A: 대중적인 지명도로 보자면 덴마크 전 총리, 2011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도가 가장 유명하다. 첫째 이유는 이름을 걸어놓는 명예직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진짜로 일을 하는 위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위원들의 팀플레이 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은 아무래도 ‘에고(자아 의식)’가 클 수밖에 없다.Q: 위원회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심이 지대하다고 하던데….A: 위원 선정 때 장녀 이방카를 추천했다. 위원회가 꾸려진 후에는 전화를 걸어와 “불만족스럽다(unhappy)”고 했다. 첫 번째 탄핵 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스탠퍼드대 법대 교수가 포함된 것에 기분이 상한 듯 했다. 반면 우리 회사 내부와 진보 운동계에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인종차별적 판결을 내린 보수 성향의 전 연방 순회법원 판사가 포함된 것에 반발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진보와 보수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Q: 독립적 성격의 위원회라고 하지만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페이스북 대법원’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A: “위원회가 결국 이사회와 비슷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아니다. 성격이 다르다. 이사회는 주주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결국 회사의 경영 방침과 대체적으로 부합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반면 세계 각국에서 멤버들을 선정한 위원회는 미국 내에 존재하는 정치적, 경제적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규제의 필요성은 소셜 미디어 이용자와 운영자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다. 페이스북이 위원회를 꾸려 조금 먼저 고민을 시작했을 뿐이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폭스뉴스의 피터 두시 백악관 담당 기자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괴롭히는 질문을 잘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가 양국 정상 기자회견 때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두시 기자: “미스터 프레지던트, 마지막 질문을 해도 될까요?”조 바이든 대통령: “음, 평소처럼 못된 질문 하면 안 받아주겠어.”두시 기자: “아닙니다. 매우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늘을 떠다니는 UFO(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한 동영상과 자료들을 정부 당국이 수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물체들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대통령은 이 물체들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바이든 대통령: “(웃으며) 오바마한테 다시 물어볼게.”기자의 황당 질문과 이를 교묘히 빠져나가는 대통령의 재치에 회견장에는 폭소가 터집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삐 퇴장 준비를 합니다. 한국 대통령을 나 홀로 단상에 세워놓으면 안 되니까 “빨리 갑시다. 대장(Come on, boss. Let‘s go)”이라는 말과 함께 ’어서 여기를 떠나자‘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보스”라고 부른 것이 미국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친한 사이의 호칭이죠. 양국 대통령은 정말 사이가 좋은 듯 보였습니다. 이보다 더 큰 화제가 된 것은 심각한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 UFO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UFO에 대한 미국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그동안 UFO 하면 연상돼온 ’사이비‘스럽고 황당무계한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질문을 받은 바이든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지만, UFO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죠. 이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 설명을 하자면 기자회견이 있기 나흘 전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UFO를 화제에 올렸습니다. 그는 “심각하게 하는 말이다. 정부는 미확인물체에 대한 동영상과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이 뭔지 정확하게 모른다. 그 물체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비행 궤도를 설명하기 힘들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패턴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현상을 진지하게 조사해서 밝혀내려는 (정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UFO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낙인찍힌 주제였습니다. ’유에프올로지스트(Ufologist)‘라고 불리는 UFO 연구자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일반 사람들의 대화에서 지나치게 UFO에 관심을 보이면 “제 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아닙니다. 공정과 신뢰를 중시하는 주류 언론이 UFO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CBS 유명 시사프로그램 ’60분‘은 “자주 출몰하는 UFO”라는 제목으로 학자, 정부 당국자, UFO를 직접 목격한 군 조종사들의 인터뷰를 엮어 내보냈습니다. 지식인들이 많이 읽는 잡지 ’뉴요커‘는 “펜타곤(국방부)은 언제부터 UFO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나”라는 긴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리가 UFO에 대해 믿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미 정계의 ’UFO 전도사‘격인 해리 리드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렇게 언론이 일제히 주목한다는 것은 조만간 UFO 관련 대형 ’이벤트‘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정보국(DNI)과 국방부가 공동 작성해 이달 중 의회에 제출 예정인 UFO 보고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UFO 관련 첫 정부 보고서입니다. 정치인들끼리 돌려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에게도 공개되는 보고서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정확한 공개 날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데이비드 노퀴스트 당시 국방 부장관은 “펜타곤 내에 UFO 현상을 연구하는 극비 태스크포스가 있다”는 중대 발표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펜타곤은 의회를 상대로 태스크포스의 연구 결과를 모은 비공개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당시 마르코 루비오 상원 정보위원장은 “브리핑 내용이 부족하다”며 추가 정보를 수집해 종합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번에 나올 보고서가 바로 그 보고서입니다. 오랫동안 UFO 존재를 부인해온 정부가 갑자기 브리핑을 열고, 보고서도 내기로 한 데는 2017년 말 NYT 보도가 계기가 됐습니다. UFO 학계에서는 2017년 12월 16일이 역사적인 날입니다. NYT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반짝이는 아우라와 ’검은 돈‘: 펜타곤의 비밀스러운 UFO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날입니다. NYT는 이 기사에서 ’외계인의 지구인 납치‘ 같은 허황된 주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 내의 UFO 극비 부서 운영과 자금 조달에 초점을 맞춘 ’소박한‘ 기사였습니다. 그래도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UFO를 열성 팬덤의 영역에서 일반인의 대화 주제로 끌어낸 것이죠. NYT는 이 기사와 함께 UFO 동영상도 공개했습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04년 USS 니미츠 항공모함 전투기 조종사들이 샌디에이고 상공에서 촬영한 미확인물체 동영상입니다. UFO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입니다. 지난달 방송된 ’60분‘ 프로그램에는 당시 UFO를 동시에 목격했던 4명의 조종사 중 2명이 출연해 UFO의 형태와 비행 속도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NYT 보도 후 미 정부 방침은 크게 바뀝니다. 더 이상 감춰봤자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2018년 8월 통과된 2019년도 국방수권법은 국방부가 UFO 부서를 계속 유지하고 연구하도록 명시했습니다. 국방수권법에 UFO 관련 내용이 들어간 것은 처음입니다. 2019년 국방부는 군 조종사들에게 UFO 관련 첫 가이드라인을 배포합니다. “미확인물체를 발견할 경우 검열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주고 상부에 적극 보고토록 한 것입니다. 이달 중 모습을 드러낼 정부 보고서에 대해 기대가 큰 만큼 회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UFO에 대해 많은 정보를 축적한 정부가 단번에 보따리를 크게 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UFO가 공론의 영역으로 나와 무엇이 진실인지 토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UFO 연구에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요즘 미국은 “UFO”라고 하지 않고 “UAP”라고 부릅니다. ’미확인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라는 단어가 주는 비과학적 이미지 때문에 미 정부와 언론 등은 ’미확인대기현상(Unidentified Aerial Phenomena)‘이라고 부르는 추세입니다. 우선 “UAP”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정동길은 우정의 길입니다.” 걷기 좋은 길, 덕수궁 돌담길, 향긋한 5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는 길(노래 ‘광화문연가’ 중에서)…. 서울 중구 정동길을 부르는 별칭은 많다.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정치 경제 문화 분야를 총괄하는 패트릭 헤베르 참사관(50)에게 정동사거리에서 덕수궁 대한문에 이르는 811m 정동길은 양국 우정의 길이다. 우정이라는 단어가 다소 부담스럽다면 ‘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길’이라는 게 그의 추천사다. 1년 중 가장 아름답다는 5월의 정동길을 헤베르 참사관과 함께 한 바퀴 돌았다. 출발은 정동길 중간 지점 이화여고 건너편에 있는 캐나다대사관 앞. 아는 사람은 아는 웨딩사진의 명소다. 이곳은 역설적으로 6·25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가장 치열했던 가평전투를 기리는 대형 그림이 대사관 외벽에 걸려 있다. 캐나다가 6·25전쟁 참전국 중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만7000여 명의 군인을 보낸 나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기 연천 고왕산 355고지를 사수하는 전투에서는 200여 명의 캐나다군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잊었지만 캐나다는 매년 이들 전사자를 기억해 왔다. 올해는 가평전투 70주년을 맞아 기념사진집을 발간하고 당시 참전했던 캐나다 전쟁화가 테드 주버의 작품 ‘가평에서 버티며(Holding at Kapyong)’를 전시하는 등 행사 규모가 커졌다. 헤베르 참사관은 다음 코스로 교회당(정동제일교회) 부근에 있는 ‘보구여관터’라는 작은 표지판 앞으로 안내했다. ‘여성을 보호하고 구하는 장소’라는 의미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이 있던 자리다. 캐나다 ‘슈퍼우먼’ 로제타 셔우드 홀이 활약한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과 캐나다는 1963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처음 캐나다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은 때는 훨씬 전이다. 1888년부터 1945년까지 200여 명의 캐나다인이 선교사 학자 의사 기자 등의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1890년 도착한 의사 로제타 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미국 출신이었지만 캐나다 선교사와 결혼하면서 캐나다인이 됐다. 여성이 제대로 병원에조차 갈 수 없던 시절에 그녀는 보구여관의 안주인으로 하루 수십 명씩 밀려드는 한국 여성들을 진료했다. 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박에스더)을 길러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가 성공적으로 구순구개열(일명 언청이) 수술을 하는 것에 감명받은 김점동이 그녀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최초의 여의사가 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장애인 치료에 관심이 많던 홀은 한국어를 독학해 한국어 점자책을 처음 만들고, 평양에 최초의 시각 및 청각 장애인학교를 설립했다. 자식도 잘 길러내 그녀의 아들인 선교사 제임스 셔우드 홀은 193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 ‘크리스마스 실’을 소개했다. 우정의 정점을 찍는 인물이라면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정동사거리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안에는 스코필드 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헤베르 참사관과 함께 기념관에 들어서니 호랑이 한 마리가 맞아준다. 한국 애칭인 ‘석호필’(호랑이처럼 굳건하게)로 불렸던 스코필드 박사를 기리는 실물 크기 호랑이상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생전에 “강자 앞에서는 호랑이처럼, 약자 앞에서는 비둘기처럼 행동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서슬 퍼런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3·1운동 현장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써 세계 각국에 타전했다.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에 ‘조선 발전을 위한 제언’이라는 기고를 남기기도 했다. 1867년 건국한 신생 독립국 캐나다는 먼 타국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는 스코필드 박사에게 깊은 존경심을 나타냈다. 지금도 토론토 동물원에 ‘한국의 34번째 민족대표’라는 표지판과 함께 그의 동상이 서있다. 정동길 역사 순례는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와 530년 된 회화나무 앞에서 마무리됐다. 헤베르 참사관은 “정면이 아닌 측면 방향으로 설계된 대사관의 독특한 디자인은 서울시 지정 보호수인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대사관 건물 밑으로 조선시대부터 서있는 나무의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양국 간 우정의 깊이를 말해 주는 게 아닐까요.”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증오범죄방지법에 서명했습니다. 주요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의 정상회담 직전에 열린 서명식이라 의미가 깊었습니다. 서명식과 이후 열린 리셉션에서는 아시아계 정치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법안 통과 과정을 되돌아보며 감회를 밝혔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 지침 이후 열린 백악관의 첫 대형 행사여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인도 출신의 어머니를 둔 아시아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57)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말할 때 아시아계라는 점은 별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해리스=흑인’이라는 공식이 통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아시아계라는 것을 모르는 미국인들도 많습니다. 서명식에는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한 공로가 아닌, 부통령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미국 내 2000만 명에 달하는 급성장 커뮤니티인 아시아계는 그런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아시아계로서 행정부 최고위직까지 오른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한 일이 없다”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애틀랜타 총격사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나도 아시아계다. 당장 아시아계를 향한 폭력을 멈춰라”는 식의 공감 가는 발언을 기대했지만 없었습니다. 미지근한 연설을 했죠. 아프리카계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어머니를 둔 해리스 부통령은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는 미국의 현 주소를 보여줍니다. 흑인과 아시아계라는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진 해리스 부통령의 정치 행보를 보면 흑인 정체성은 뚜렷한 반면 아시아계로서의 모습은 희미했습니다. “그 흑인 소녀가 바로 나다.” 해리스 부통령의 흑인 정체성을 이만큼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도 없습니다. 지난해 7월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토론회에서 그녀는 조 바이든 후보를 공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이든 후보가 1960년대 흑백 인종 학생들을 버스에 같이 태워 등교시키는 이른바 ‘버싱 정책’에 반대했던 전력을 몰아붙이며 자신을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밝히는 장면이었습니다. 부통령이 된 뒤에도 흑인 커뮤니티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4월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 런치카운터를 예고 없이 방문했습니다. 1960년 흑인 4명이 백인 전용 식당 공간에 앉아 침묵 시위를 벌였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또 알 샤프턴 등 흑인 운동가들과 TV 인터뷰에 자주 나서고, 백신 접종률이 낮은 흑인 커뮤니티에 접종을 독려하는 동영상에 출연했습니다.반면 아시아계를 위해서는 애틀랜타 사건 현장을 방문한 것 외에는 두드러진 활동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나라인 인도의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을 때도 별다른 언급이 없어 인도인들로부터 “차라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리를 더 잘 챙겨줬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인도를 수차례 방문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미국에 모셔와 초대형 스타디움에서 연설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등 각별한 친(親)인도 정책을 벌였습니다.해리스 부통령은 19세 때 미국에 유학 와서 결혼해 자신을 낳은 인도 어머니를 “나의 우상”이라고 부릅니다. 7세 때 부모가 이혼한 뒤 계속 어머니와 살았고 아버지와는 매우 드물게 만났습니다. 이런 성장 환경으로 볼 때 어머니 쪽인 아시아계에 친밀감을 느낄 듯하지만 오히려 흑인 정체성을 더 부각시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머니는 “그 시절에는 흑인으로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고 말합니다. 1960년대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주도했고 주민 4명 중 1명꼴로 흑인 비율이 높은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자녀를 키우려면 흑인다움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흑인 교회에 다녔으며,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시절 클럽 활동조차 흑인 여학생 전용인 ‘알파 카파 알파’에서 마쳤습니다. 미국에는 아직 ‘한방울 원칙(one-drop rule)’이 뿌리 깊게 남아있습니다.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흑인’이라는 사회적 통념입니다. 주로 흑백 혼혈인들에게 적용되는 인종차별 시대의 잔재이지만 해리스 부통령 같은 흑인-아시아계 혼혈에게도 해당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었겠죠.그렇다고 해리스 부통령이 아시아적 특성을 모두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카멀라’라는 독특한 이름은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연(蓮)’을 뜻하고, ‘데비’라는 가운데 이름은 힌두교 여신에서 유래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인도 쌀 요리인 ‘비리야니’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석상이나 정치 행사에 등장하면 예외 없이 ‘흑인 해리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의 친한 친구인 유명 코미디언 하산 미나즈는 “해리스는 대다수 인도계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다. 흑인으로 비쳐지기를 원한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다른 소수 인종들도 사회적 성공을 이뤘을 때는 차별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것이고,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차별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이라는 흑인사회 특유의 인종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죠. 미 언론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70대 30 규칙이 적용된다고 비꼽니다. 대부분 시간은 흑인으로서의 자신에 투자하고 필요할 때는 아시아계에 “나도 당신들 중 한 명”이라고 구애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정치적 야망이 큰 그녀는 조만간 인종적 정체성을 확실히 ‘교통 정리’ 해야 합니다. 2024년 재선 도전이 불투명한 바이든 대통령은 벌써부터 해리스 부통령을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후계자 수업을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종은 매우 복잡하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옮겨 다닌다던지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기회주의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됩니다. 해리스 부통령에게도 결정의 시간이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농심 백산수가 친환경으로 새 단장을 했다. 백산수는 5월부터 온라인 채널과 가정 배송에서 무라벨 판매를 시작했다. 페트병 겉면에 부착되는 라벨용 필름을 제거한 것이다. 라벨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제품명과 수원지(水源池)를 페트병에 음각으로 새겨 넣어 간결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제품 상세정보는 묶음용 포장에 인쇄했으며 박스 단위로만 판다. 라벨을 떼어내는 번거로움을 없애 분리배출 때 편리하고 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였다. 농심은 무라벨 백산수로 연간 60t 이상의 라벨용 필름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판매 제품으로도 확대해 올해 연말까지 백산수 전체 판매 물량의 50%를 무라벨로 전환한다. 2L 페트병 경량화도 추진하고 있다. 연내에 2L 제품에 경량화를 적용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기존보다 4% 절감할 계획이다. 이미 2019년 0.5L 제품을 경량화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13.5% 줄인 바 있다. 농심은 페트병 경량화로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을 기존 대비 440t 이상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산수는 백두산 해발 고도 670m에 위치한 내두천이 수원지다. 내두천 일대는 너비만 2100km²에 달하는 청정 원시림 보호구역이다. 설악산 천연 보호구역보다 13배나 큰 광활한 지역이다. 백산수는 내두천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를 담는다. 지하에 있는 물을 기계의 힘으로 뽑아내 담는 일반 생수와는 다른 취수 방식이다. 또한 내두천에서 3.7km 떨어진 생산라인까지 별도의 수로로 연결함으로써 백두산 청정 원시림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백산수는 물맛과 품질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 전문가’로 알려진 신호상 공주대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그네슘과 칼슘의 비율이 1에 가까운 생수가 건강수로 분류된다. 백산수는 이 수치가 0.9 이상의 비율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 교수팀이 백산수를 1년간 연구 관찰한 결과 1월부터 12월까지 연중 미네랄 수치가 일정하다고 발표했다.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 미네랄 함량과 비율이 계절적으로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수원지 원수와 생산된 백산수의 미네랄 함량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측은 “백산수는 ‘백두산의 자연을 그대로’라는 철학으로 만드는 믿고 마실 수 있는 물”이라며 “깨끗한 물을 오랫동안 마실 수 있도록 친환경 행보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지루했다(Boring).” “그저 그랬다(Forgettable).” 이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더 심한 평도 있습니다. “오글거렸다(Cringey).”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오글거림을 유발했다면 최악의 평입니다. 쉽게 말해 ‘발연기’라는 거죠. 그래서 점수는? “C학점.” 미국의 권위 있는 엔터테인먼트업계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스’가 준 평점입니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나 봅니다. 요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화제죠. 그가 8일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이하 SNL)’에 진행자로 출연한 것을 두고 혹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가 가상화폐 도지코인에 대해 언급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미국에서는 ‘퍼포먼스’에 더 관심을 두는 분위기입니다. “경제계의 슈퍼스타지만 연기력은 평균 이하”라는 것이 SNL 방송 후 나오는 평가입니다. 토요일 밤에 방송되는 SNL은 매주 새로운 진행자를 초대해 100여분 동안 7~8개의 코미디 코너를 진행합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최근 시청률 침체를 겪는 SNL이 한달 전쯤 비장의 카드로 머스크 출연을 예고하자 여론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억만장자 머스크는 SNL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뉴욕에서 제작되는 SNL은 기득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SNL에 고정 출연하는 코미디언 2명은 “왜 경영진이 머스크를 출연시키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말 어색했습니다. 코미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고 자막 모니터를 열심히 읽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머스크가 출연하지 않은 코너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진행자인 머스크보다 초대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의 연기가 더 낫다”는 굴욕적인 평까지 나왔습니다.직업배우나 코미디언이 아닌 머스크가 SNL 진행자로 나서 호평을 얻기는 힘듭니다. 본인도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도전한 것일까요. 머스크뿐만이 아닙니다. SNL에는 연예인이 아닌 다른 분야 거물들이 종종 진행자로 나섭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회,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3번 출연 경력이 있습니다. 경제잡지 포브스 발행인 스티브 포브스도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비(非)연예계 인사들이 SNL에 출연하는 것은 이미지 개선 차원입니다. 비록 능숙한 진행 솜씨를 보여주지는 못해도 자신을 코미디 소재 삼아 부정적이거나 모호한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5년 대선을 앞두고 출연했고, 줄리아니 전 시장은 뉴욕의 흑백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시장 자격으로 나왔습니다. ‘사이클의 황제’로 불렸던 랜스 암스트롱은 2005년 프랑스 언론이 약물 복용을 폭로한 직후 출연해 “나는 억울하다”고 항변했습니다.머스크 역시 ‘이슈 메이커’로서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SNL에 출연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가상화폐, 코로나19 규제, 소수그룹 역차별, 마리화나 합법화 등 많은 이슈에서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논란을 피하고 회사 경영에 전념하는 대다수 젊은 첨단 경영인들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그에게는 자기 목소리를 들어줄 5400만 명에 달하는 소셜 미디어 광팬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팔로워 숫자입니다. 머스크가 자주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하는 이유는 사업적 필요성 때문입니다. 전기차, 우주 개발, 가상화폐 등 새로운 사업영역들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대중의 사고를 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팔로워들은 머스크를 “선지자(visionary)”라고 부르고, 미 언론은 그런 추종자들을 ‘머스크 사교집단(Musk Cult)’이라고 부릅니다. 딱히 사업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도 그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을 즐깁니다. 유명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리화나를 피우며 2시간 동안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성적 소수자 호칭 문제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화나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서는 보수와 진보, 기업의 자유시장 논리와 사회적 책임 의식 사이에서 모순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갑부의 기행’ 정도로 관대하게 이해됩니다.머스크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SNL 출연을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이번 시즌 방송된 SNL 중에서 세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유튜브 조회수도 방송 이틀 만에 300만회를 돌파하면서 관심도 측면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SNL 도입부에서 진행자가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모노로그’에서 머스크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신경발달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고, 모델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를 무대 위로 불러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많은 논란을 의식한 듯 “사람들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했습니다. “그건 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전기로 가는 차를 만들고 사람을 우주에 보내는 내가 평범할 줄 알았나?”라고 간단하게 넘어가더군요. 결국 ‘나는 비범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자기 과시인 듯 했습니다. SNL 출연만으로 머스크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는 힘들겠지만 열성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래 창조자” “원대한 계획가”의 모습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한낮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오르는 에티오피아 베할레 난민캠프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한국에서 공수된 쌀을 배급받는 날. 태극무늬가 선명하게 찍힌 쌀 포대를 당나귀 등에 옮겨 싣느라 바쁜 난민 케디야 씨(여)는 “25kg을 배급받았다”며 “우리 가족 2주 치 식량”이라고 말했다. 쌀 전달에 관여했던 세계식량계획(WFP) 현지 사무소 관계자는 “케디야 씨가 ‘하루에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도 힘들었는데, 쌀을 받게 돼 눈물이 날 것처럼 기쁘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2018년 식량원조협약(FAC)에 가입해 유엔 산하 WFP를 통해 쌀을 원조하기 시작했다. FAC의 1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한국은 2018년부터 매년 460억 원 상당의 쌀 5만 t씩을 에티오피아, 케냐, 예멘, 우간다 등 아프리카 4개국에 무상 지원해 왔다. 쌀 5만 t은 현지에서 연 300만 명에게 3개월분 주식으로 공급된다. 원조 수행 기관으로 운송 배분 모니터링 업무를 담당하는 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한국 농업인의 날에 화상 메시지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아낌없는 지원 없이는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혼란 속에서도 예정대로 6월에 쌀을 공급했다. 국제원조 전문가들은 한국 쌀이 수혜국의 영양 균형에 기여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기존에 WFP가 공급하던 주식은 밀가루, 수수, 옥수수 등 서구형 곡물이 대부분이었다. 2018년 WFP가 실시한 에티오피아 327개 수혜 가구 설문조사에서 94%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품질이 좋은 것으로 이름 난 한국 쌀(자포니카)은 돌이나 이물질이 섞여 있지 않아 조리가 간편하고 현지인 입맛에도 맞는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의 쌀 원조 사업이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지난해 20개 WFP 국가사무소에서 30만 t의 추가 지원 요청이 접수됐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수혜국을 기존 아프리카 4개국에서 라오스와 시리아를 추가해 6개국으로 늘린다. 지원 물량은 내년까지 5만 t을 유지하고 성과 평가 후 2023년부터 6만 t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018년 쌀 원조 이전부터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저개발국의 식량 위기 타개에 기여해왔다. ODA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을 계기로 농업기술 전수, 수자원 인프라 구축, 가축 질병 대응 등 근본적인 방식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가 소득 증대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에티오피아의 건조하고 메마른 땅에서 수십 년간 어렵게 옥수수를 재배하며 살아온 테스파네 말리 씨(30대)는 “한국이 관개 시설을 구축하고 기자재를 지원해준 덕분에 연간 3000m²의 밭에서 생산한 옥수수가 1000kg에서 2000kg으로 늘었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말리 씨 같은 농민들이 도움을 받은 1차 수자원 ODA 사업(2011∼2014년)에 대해 에티오피아 정부가 지속적인 지원 요청을 해옴에 따라 관개 시설을 유지, 관리하고 저수지를 신규 구축하는 2차 사업이 2016년 시작돼 올해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이 밖에 농림축산식품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연계해 우즈베키스탄에 저장유통 시설 유리온실 등을 지어주는 K시설농업 지원, 베트남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가축질병 진단 기술 전수 등도 ODA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상만 농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은 “우리나라는 한 세대 만에 식량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유일한 모범 국가”라며 “앞으로도 유엔의 기아종식(zero hunger) 목표 달성을 위해 개도국에 대한 식량원조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Woke.’ 미국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발음도 쉬워서 여기저기서 “우오크”라는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Wake(깨우다)’의 과거형으로 ‘깨어있는’ ‘정신을 차린’ 정도의 뜻이 되겠죠. 미국은 ‘정치적 올바름(PC)’ 정신이 크게 발달한 나라입니다.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을 삼가자는 것이지요. 우오크는 PC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생긴지 1,2년 밖에 안 된 신조어지만 벌써 미국인의 일상 대화 속에 많이 침투했습니다. “저 사람 참 우오크해” “그 드라마 우오크하지”라고 하죠. 우오크 열풍이 가장 뜨겁게 부는 곳은 문화와 교육 현장입니다. 문화 쪽에서는 월트 디즈니 영화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디즈니라고 하면 오랫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Happiest Place on Earth)’이라고 불려왔던 기업입니다. 그런데 요즘 별명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깨어있는 곳(Wokest Place on Earth).’지난해 말부터 디즈니는 자사가 제작했던 ‘알라딘’ ‘피터팬’ ‘인어공주’ ‘덤보’ ‘판타지아’ 등의 명작 만화영화 도입부에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다”는 경고문을 부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수 그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등장 인물 이름이나 내용도 전체 스토리라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손을 봤습니다. 최근에는 사내 의식 개혁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미래를 다시 그리자’라는 제목의 캠페인은 다양한 세미나, 집단 토의, 가이드북 배포 등을 통해 직장 내 차별 관행, 특히 인종적 차별을 뿌리 뽑자는 것입니다.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22쪽짜리 캠페인 교재 자료에는 “당신의 서재를 탈식민지화하라” “지역 흑인운동 단체에 기부하라” “경찰 해체 운동을 포용하라” 등 미키마우스 왕국에서는 보기 힘든 운동권 용어들로 장식돼 있습니다. 인종차별주의는 일상 생활에 고착화된 만큼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전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재에 따르면 직원 간의 대화에서 “평등(equality)” 대신 “공정(equity)”이라는 단어를 쓰라고 합니다. 과정을 중시하는 평등보다 결과로서의 공정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흑인 동료 직원과의 공감대 형성 대화법도 나와 있습니다. 인종 차별 경험 얘기를 들었을 때 “섣불리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 네 기분 알겠어” 보다 “잘 들었어. 더 말해줘”라고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기득권 체감 정도를 알아보는 자가 체크리스트도 있습니다. “나는 백인이다” “이성애자다” “남성이다” 등 기본 인적 사항에서부터 “나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성폭행을 당해본 적이 없다” “테러리스트라고 불려본 적이 없다” 등 상세한 개인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문항도 있습니다. 체크된 문항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반성이 필요한 기득권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디즈니 직원들에 따르면 의식 개혁 캠페인은 “최근 몇 개월간 점점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거의 매일 주의 사항 메모, 추천도서 목록, 패널, 세미나 등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기본 강의 코스는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고강도 토론과 독후감 발표 등은 선택적 참여가 가능합니다. 외부 시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왜 지금 대규모 인종 다양성 운동을 전개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직원들의 이해를 구하지 않아 자발적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죠. 오랫동안 디즈니 왕국을 이끌다가 지난해 말 물러난 밥 아이거 전 CEO의 “퇴임 작품”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논란에도 불구하고 우오크 열풍에 동참한 곳은 디즈니뿐만이 아닙니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오크 운동은 초등학교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집니다. 인종 차별 정신은 어린시절에 굳어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주의 체리크레스트 초등학교는 인종 문제를 토론하는 학생회의를 매월 개최합니다. 또한 ‘인종 차별에 대항하는 학생연합(SOAR)’라는 조직을 만들어 9~11세 학생들이 학교 차원의 인종 차별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의 메이어홀츠 초등학교 3학년생들은 자신의 인종 경제 수준 종교 성별 가족 관계 등에 기초해 ‘신분 지도’를 만듭니다. 교사는 “우리는 백인 기독교 남성 위주의 지배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신분 지도’와 지배 문화의 특성을 서로 매칭시키면서 토론하는 훈련을 진행합니다. 일리노이 주 록우드의 초등학교 5학년생들은 최근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M) 운동’의 설립자의 연설문을 읽어오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연설문에는 “시위가 세상의 새로운 규칙이다. 권력이 없는 자들은 시위를 통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매사추세츠 주의 한 초등학교는 4학년생들에게 “성적 취향” 같은 단어들을 가르치고 타인을 부를 때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립적 호칭을 붙이도록 교육합니다.최근 뉴욕 사립학교 ‘브리얼리’의 한 학부모는 딸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겠다고 학교 측에 통보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학교는 캐럴라인 케네디 등 유명 동문을 배출한 연 학비 5만6000달러(약 6300만원)의 뉴욕 명문 학교입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 학부모의 편지에 따르면 이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매달 인종 관련 강의를 의무적으로 듣게 하고,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BLM 운동과 마르크스 사상을 옹호하는 커리큘럼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또한 선생님들이 “공정” “다양성” “포용” 같은 단어들을 마치 직업 운동가들처럼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 “(개인의 자유가 말살된) 중국 문화혁명 시대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이 많이 변했습니다. 사회적 약자 보호, 공정, 다양성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때 매우 ‘힙’하게 들렸지만 지금 ‘우오크’는 ‘취소 문화(cancel culture)’처럼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단어가 돼가고 있습니다. 고삐 풀린 ‘깨어 있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미국의 우오크가 보여줍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정의는 이뤄졌다.” 10년 전 이맘때쯤입니다. 2011년 5월 1일은 미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9·11테러를 일으킨 장본인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날입니다. 이날 한밤중 백악관 단상에 오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의라는 말로 대(對)국민 성명을 끝맺습니다. 빈라덴 제거 작전에 대한 언론 보도는 많이 나왔습니다. 책도 여러 권 출간됐고,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영화도 있죠. 대부분 작전에 투입된 특수부대원이나 현장 요원들의 무용담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 ‘컨트롤타워’에 해당하는 백악관 깊은 곳에서 언제, 어떻게, 어떤 결정이 이뤄졌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빈라덴 사살 10주년을 맞아 정부 당국자 증언, 관련 블로그 등을 통해 당시 비화들이 상당 부분 공개되고 있습니다. 빈라덴 작전 개시 1개월 전쯤인 2011년 3월 29일 백악관 회의가 분수령이었습니다. 이날 정보 기밀을 다루는 500평방미터의 시츄에이션룸에 국가안보 각료들이 모였습니다. 시츄에이션룸에서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까지 끄고 열릴 정도의 극비 회의였죠. 각자 책상 위에는 두툼한 브리핑 북이 놓여있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A), CIA(중앙정보국), NGIA(지리정보국) 요원들이 1년 넘게 발로 뛰고 위성 사진을 판독해 모은 빈라덴 은신처 자료였습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은 이날 처음으로 빈라덴 추적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회의명은 ‘미키마우스 미팅.’ 회의명을 알리지 않으면 다른 백악관 직원들이 이상하게 여길까봐 존 브레넌 백악관 국가안보·대테러 보좌관이 급조해낸 이름이었습니다.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목표 장소를 “AC원”이라고 지칭합니다. 파키스탄 외곽에 있는 ‘아보타바드 목표물(Abbottabad Compound One)’의 약자죠. 그는 장관들에게 “다음 회의 때까지 제거 작전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달라”고 합니다. 급습할 경우 수반되는 여러 외교적 문제를 고려해 ‘예스’ 또는 ‘노’ 의견을 제시해 달라는 것입니다. 장관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리허설’이 펼쳐집니다. 특수부대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비밀 장소에 모여 3주간에 걸쳐 작전 실행 모의 연습을 합니다. 이들은 막 아프가니스탄 임무를 끝내고 귀국해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죠. 처음에는 왜 소집 명령이 떨어졌는지 모르다가 “이건 훈련이 아니다. 우리 목표는 빈라덴이다”라는 지휘관의 한마디로 분위기는 싹 바뀝니다. 파키스탄 레이더망을 피해 언제 헬기를 띄울 것인지, 착륙 때 소음은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서부터 목표물 16km 내에 위치한 파키스탄 핵시설에 충격을 줄이는 방법, 요원들의 건물 진입 때 가려줄 나무 위치까지 세밀한 시나리오가 완성됩니다. 작전에 동원되는 무기가 파키스탄 정부나 중국의 손에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재빨리 수거하는 훈련도 이뤄집니다.4월 27일 2차 회의가 열립니다. 첫 발언권을 가진 게이츠 국방장관은 “노” 의견을 냅니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 실패가 지미 카터 행정부의 종말을 고(告)했다는 점을 주지시키죠. 다음에 나선 힐러리 국무장관은 파키스탄과의 외교 마찰에 대한 긴 설명을 시작해 “노”인가 싶었는데, “이번만큼 확실한 정보는 없다”면서 “예스”로 마무리합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실패할 경우 오바마 재선에 미칠 영향과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들어 “노”쪽으로 기웁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은 선의의 비판자인 ‘데블스 애드버킷’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실질적으로 찬성 내지 중립 태도를 보입니다. 실패 가능성이 적지 않은 공격이었던 만큼 찬성률은 40~80%였습니다. 반대론자들은 빈라덴이 은신처를 계속 옮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지도 모르는데 ‘AC원’을 공격해 망신을 자초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장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어차피 50대 50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시간만 흐를 뿐이다”며 상황 정리에 나섭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해 닷새 후인 5월 2일까지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합시다(It‘s a go).” 예상을 깨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틀 후인 29일 아침 7시 30분 공격 재가를 내립니다. 옷은 점퍼 차림. 이날 예정된 앨라배마 주 태풍 피해지 방문, 플로리다 주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발사 참관을 위해 백악관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미국 최대의 적을 제거하는 작전을 벌이는 것인데 마치 자잘한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국가안보보좌관 등 몇 명에게 서서 얘기하고 외출합니다. 결정은 신중하게 내리고,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오바마 스타일입니다.공격 예정일은 5월 1일로 정해집니다. 바로 전날은 백악관기자단 연례만찬(WHCD)이 열리는 날이었죠. 만찬은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유머 보따리를 풀어놓는 날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머 주제를 선정하는 작업과 빈라덴 사살 계획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유머 주제는 ’버서 운동‘(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적이 아닌 아프리카 케냐 출신이라 피선거권이 없다는 주장)을 TV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빗대 조롱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만찬에 버서 운동의 주모자이자 ’어프렌티스‘ 진행자인 도널드 트럼프 부부가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여유롭게 유머를 소화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듭니다. 한방 먹은 트럼프는 분노한 얼굴이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바탕 청중을 웃긴 뒤 “신이시여, 우리 군을 보호 하소서”라는 진지한 대사로 마무리합니다. 당초 연설문에는 없는 문구였지만 만찬 시작 1시간 전에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추가됐습니다. 다음날 예정된 군 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겠죠. 공격일 백악관 앞에 이색 풍경이 펼쳐집니다. 일요일인데도 장관들을 태운 세단들이 백악관에 줄지어 들어옵니다. 시츄에이션룸에 아침 일찍 집결한 이들을 위해 요기 거리를 사오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인근 코스트코에서 샐러드가 공수됩니다. “왜 샐러드냐”라는 장관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피자도 주문합니다. 각료 모임이라기보다 대학 동아리 파티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지휘센터는 3곳. 시츄에이션룸, 버지니아 근교 랭글리의 CIA 본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기지입니다. 오후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골프도 치러 가고 카드 게임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지나치게 작전에 생각을 골몰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죠. 미 동부 시간 오후 3시 30분 작전이 개시됩니다. 목표물 앞마당에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헬기가 착륙합니다. 1대는 빈라덴 호위대의 총격으로 부서집니다. 건물에 진입한 대원들은 빈라덴이 은거한 3층에 진입합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신과 나라를 위해, 제로니모 제로니모 제로니모” 무전이 들려옵니다. ’제로니모‘는 빈라덴 제거 완료 암호명입니다. 아프간 기지에 작전을 진두지휘한 윌리엄 크레이븐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총사령관은 “제로니모 에키아(EKIA)?”라고 물으며 재차 확인합니다. “적은 사살됐나?(Enemy Killed in Action?)”라는 뜻이죠. “예스. 제로니모 에키아”라는 대답에 백악관, 랭글리, 아프간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당초 공격 과정을 시츄에이션룸의 대형 모니터를 통해 지켜볼 예정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옆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옮깁니다. 장관들도 대통령을 따라갑니다. JSOC의 브래드 웹 장군이 공격 현지에서 위성을 받아 시츄에이션룸 모니터로 송출하는 방이었죠. 그의 이름을 따서 ’웹룸‘으로 불렸습니다. 시츄에이션룸 모니터가 갑자기 고장 나 모두 웹룸에 몰려와 어깨를 맞대고 작은 모니터를 들여다봅니다. 유명한 사진이죠. 웹 장군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이라는 대통령은 고개를 흔듭니다. 공격에서 철수까지 48분이 걸립니다. 공격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지만, 시신을 비닐로 말아 포장한 뒤 착륙할 때 파손된 헬기 잔해를 수습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착륙 당시 소음으로 인근 주민들이 눈치를 챘기 때문에 아프간기지의 크레이븐 총사령관은 몸이 달아오릅니다. 작전 개시 후 45분쯤 지나자 대원들에게 “하던 일 모두 스톱. 빨리 짐 싸들고 철수”를 지시합니다. 아프간기지에서 포장을 풀자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나옵니다. 얼굴 정면에 총격을 받아 식별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우선 키를 통해 가늠해 봅니다. 빈라덴의 키가 6.4피트(195cm)인 것을 알고 있는 크레이븐 총사령관은 6.2피트(189cm) 키의 한 대원에게 “시신 옆에 한번 누워보라”고 즉석에서 지시를 내립니다.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빈라덴의 귀를 통한 ’95% 본인 확인‘ 판정을 받습니다. 파키스탄 군부는 현장에 즉시 조사 인력을 파견해 사살된 인물이 빈라덴임을 확인합니다. 작전이 성공해 미국이 시신을 가지고 사라진 만큼 외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축하한다”는 의사를 전해옵니다. 파키스탄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으니 미국은 공식 발표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 등 6명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빈라덴 사살을 알립니다. 발표문 준비를 거쳐 오후 11시35분 오바마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으로 긴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부하들의 충고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여러 의견을 종합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근거로 신속하게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한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라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리더의 조건‘입니다. 빈라덴을 잡기 위해 2년여에 걸친 치밀한 작전 수립과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준 오바마 전 대통령이야말로 리더십의 표본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미국은 연예인의 정계 진출이 매우 드문데요, 우리 나라는 선거 때마다 연예인들이 정계 러브 콜을 받고 ‘금배지’를 다는 성공 사례가 꽤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워싱턴행이 가뭄에 콩 나듯 이뤄집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서 연예인은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럼없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고, 대중도 그런 소신파 연예인을 좋아하니까 굳이 정치에 뛰어들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민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를 선언한 케이틀린 제너(72)가 눈길을 끕니다. 그녀는 최근 트위터에 주지사 출마신청서 사본과 함께 “출마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적극 후원해주세요”라고 올렸습니다. 제너는 올림픽 육상 금메달 리스트 출신으로 4년 전 성전환 수술을 해 남성에서 여성이 된 인물입니다.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의 어머니 크리스 제너와 결혼했다가 2015년 여성 선언과 함께 이혼했죠. 원래 이름은 브루스 제너입니다. 화제성으로 본다면 제너의 출마는 2003년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아놀드 슈왈제네거 이후 가장 주목을 받습니다. 슈왈제네거가 출마했던 곳 역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습니다. 슈왈제네거는 유럽 이민자, 제너는 성적 소수자( LGBT)라는 ‘소수그룹’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주당 주지사가 무능 논란으로 탄핵 대상이 되면서 그 후임 자리에 도전하는 공화당 출마자라는 것도 겹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접점은 여기까지. 슈왈제네거 출마 때부터 ‘거버네이터’<거버너(주지사)와 터미네이터의 합성어>로 불리며 높은 당선 가능성이 점쳐졌던 것과는 달리 제너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흥행 요소는 될 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왜 슈왈제네거는 되고, 제너는 안 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슈왈제네거는 준비된 후보였고, 제너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슈왈제네거는 촌스러운 영어 사투리를 구사하는 ‘무식한 근육남’ 이미지가 강했지만 정계 진출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고, 그런 포부를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케네디 가문 출신의 방송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하며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데 성공했죠. 보디 빌딩 ‘미스터 올림피아’ 7회 우승이라는 유명세를 적극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함도 가졌습니다. ‘터미네이터’ 이후 인기가 절정이던 시절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조직했던 스포츠건강영양위원회(PCSPF)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PCSPF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진 유서 깊은 대통령 직속 생활체육 장려 기관입니다. 이후 부시 대통령과 미국 전역을 돌며 건강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장모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여동생인 유니스 슈라이버가 조직위원장으로 있던 장애인 스페셜올림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방과후 체육활동 기금 조성을 위한 ‘제안49호’의 발의자로 나서기도 했죠. 물론 케네디가의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지만 발로 뛰면서 캘리포니아 지역 정치에 터를 닦은 것이죠.반면 제너는 너무 조용합니다. 처음 자신을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이라고 공개했던 2015년 무렵 LGBT 운동의 지도자, 또는 얼굴 마담 정도는 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후 뚜렷한 공개 활동이 없습니다.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치자금 후원 실적도 없고 모금 활동을 벌인 적도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정치에 얼굴을 알릴 수 있도록 어젠다를 제시한 적도 없습니다. 개인적 자질뿐 아니라 정치 환경도 다릅니다. 슈왈제네거가 대단했던 것은 민주당 출신 주지사만을 줄줄이 배출해온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으로 출마해 당선됐기 때문이었습니다. 2003년 그가 출마를 선언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훌륭한 주지사감”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9·11 테러 이후 정점을 찍었던 때였죠. 인기 있는 공화당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출마한 덕분에 슈왈제네거의 당선 가능성은 높았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면 이를 가는 캘리포니아에서 제너는 “트럼프 지지자이며 지난 대선 때 그를 찍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선 캠페인에서 몇몇 유명 선거 전략가를 모셔오기까지 했으니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그를 차갑게 바라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화당에서 제너만 출마하는 것은 아닙니다. 10월 내지 11월로 예정된 선거에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후보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너를 비롯한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이번 선거는 주민소환 제도의 유용성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주 헌법에 따라 무능하고 부패한 선출직 공무원을 소환(탄핵) 대상으로 삼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30~35개 주가 소환 제도를 도입하고 있죠. 가장 활발한 곳은 캘리포니아로 1970년대 이후 모든 주지사가 소환투표 시험대에 오르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기업가 출신으로 최연소 샌프란시스코 시장, 부지사 등을 거쳐 2019년 초 주지사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임기 4년의 자리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그에 대한 소환 운동이 불붙었습니다. 원인은 주지사가 내건 강력한 방역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음식점 및 상점 실내 운영 금지, 밤 10시 이후 통행금지령 등에 지친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주지사 축출을 위한 소환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엄격 방역에도 불구하고 올 1월 인구 4000만 명에 육박하는 캘리포니아의 코로나19 누적 환자 수가 50개 주중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민심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주민 불만에 직접 불을 댕긴 것은 뉴섬 주지사가 지난해 11월 방역 수칙을 어기고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열린 로비스트 생일 파티에 참석한 것이 들통 났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야외 파티여서 괜찮다”고 해명했다가 “뉴섬 일행이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야외 출입문을 닫아 사실상 실내 파티가 됐다”는 종업원 증언이 나오면서 두 배로 욕을 먹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헌법상 주지사 소환을 위한 주민 투표를 벌이려면 15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의 서명은 당원들을 동원하면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죠. 서명 제출 시한은 지난달 17일로 마감됐고, 현재 서명 확인 과정을 거쳐 29일 소환 투표를 벌일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공화당 측은 200여만 명의 서명을 모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투표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환 투표에서 유권자는 2개의 질문에 답하게 됩니다. 우선 주지사 재신임 여부를 묻고, 다음으로 주지사를 대체할 후보를 선택하게 됩니다. 불신임 쪽 표가 과반수를 넘으면 출마자 중 최다 득표자가 당선됩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소환 반대가 우세합니다. ‘내로남불’ 사건이 리더십에 큰 타격이 되기는 했지만 강력 방역 자체를 부실 행정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부패한 정치인을 탄핵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소환투표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더 들끓고 있습니다. 소환투표 덕분에 당선된 슈왈제네거 역시 재임 기간동안 소환 대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번 주지사 선거는 제너의 당선 여부보다는 소환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듯 합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