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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요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을 합한 금액이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등에서 선도적 지위를 보유한 미 대형 빅테크 기업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의 패권 갈등, 부동산시장 부실 등으로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당국의 강력한 규제까지 받고 있는 중국 대기업이 세계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불과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일 금융정보 제공업체 ‘퀵·팩트셋’ 자료를 인용해 “2일 기준 미 상장사의 시총이 51조 달러(약 6경7700조 원)에 이른다”며 “올해에만 1조4000억 달러가 늘어 세계 증시의 48.1%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3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점유율이다. 반면 중국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합산 규모가 세계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그쳤다. 2015년 6월에는 이 수치가 20%를 기록했지만 채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 기업의 시총 합계 격차는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양국 빅테크 기업이 처한 대조적인 상황을 꼽는다. 현재 세계 6위 기업인 미 엔비디아는 AI용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며 공룡 기업으로 거듭났다. 반면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중국 당국이 텐센트, 알라바바 같은 자국 빅테크 기업에 강한 규제를 가하면서 중국 기업의 시총은 연일 감소세다. 텐센트는 2020년 말엔 시총 기준 전 세계 7위 기업이었지만 현재 26위로 밀렸다. 같은 기간 알리바바도 당국의 반독점 조사 등을 겪으며 9위에서 61위로 추락했다. 시총 상위 10대 기업을 비교하면 양국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2일 기준 전 세계 시총 상위 기업 10곳 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정유사 아람코를 제외하면 나머지 9개가 모두 미국 기업이다. 2020년 말에는 미국 기업 7개, 중국 기업 2개, 아람코가 10대 기업에 포진했다. 이 중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모두 순위에서 사라졌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1일 대만의 새 입법원장(국회의장)으로 제1야당 국민당 소속인 한궈위(韓國瑜·67) 입법위원이 선출돼 곧바로 취임식을 가졌다. 집권 민진당은 지난달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같은 날 치러진 입법원(국회) 선거에서 제1당에 오르지 못했고 이날 입법부 수장 자리까지 국민당에 내줬다. 5월 취임하는 라이칭더(賴淸德) 총통 당선인의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 신임 입법원장은 국민당 내에서도 친중 성향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 친미 성향의 라이 당선인과 적지 않은 마찰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롄허보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입법원장 선거 2차 투표에서 한 원장은 전체 113명, 재적 105명인 현 입법원에서 54표를 얻어 민진당 소속 유시쿤(游錫堃) 전 입법원장을 3표 차로 제쳤다. 당초 1차 투표에서는 두 사람 중 아무도 과반을 얻지 못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제2야당 민중당이 2차 투표에 불참하는 방식으로 국민당을 우회 지원한 결과 한 원장이 승리했다. 한 원장은 2018년 민진당 텃밭으로 꼽히는 남부 가오슝에서 국민당 소속으로 시장에 올라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여세를 몰아 2020년 국민당 총통 후보로 대선에 도전했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 큰 격차로 졌다. 이후 일부 시민이 그가 시장 업무에 소홀했다며 탄핵을 주장했고 파면 선거를 통해 시장직을 잃었다. 와신상담 끝에 지난달 국민당 비례대표 1번으로 입법위원 선거에 도전했다. 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입법부 수장 자리까지 꿰찼다. 그의 승리로 민진당은 국정 운영에서 국민당은 물론 민중당의 협조가 절실한 처지가 됐다. 대중 노선에서도 일정 부분 야당의 눈치를 봐야 할 가능성이 있다. 민진당 출신 첫 총통인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집권기에도 국민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여소야대 국면이 펼쳐져 정부 예산이 삭감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민진당이 민중당 측 인사를 내각에 대거 기용하는 방식으로 연정에 준하는 연대를 시도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커원저(柯文哲) 민중당 주석의 존재감 또한 덩달아 높아졌다. 그는 지난달 총통 선거에서 26.46%를 득표해 제2 야당 후보 최초로 득표율 20%의 벽을 넘겼다. 입법원 선거에서도 4년 전보다 3석 많은 8석을 얻었다. 그는 거대 양당에 비해 열세인 지방 조직을 정비해 4년 후 총통 선거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중국이 자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의 한국 프로리그 공식 중계를 돌연 중단했다. 최근 한국의 한 e스포츠 프로게임단이 소셜미디어에서 대만을 국가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한국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의 중국 공식 중계 플랫폼인 후야는 17일 개막한 2024년 정규리그 경기를 별다른 설명 없이 중계하지 않고 있다. 후야가 LCK를 중계하지 않는 건 2018년 독점 중계를 시작한 뒤로 처음이다. LoL 제작사인 중국 게임사 라이엇게임즈는 “방송권을 가진 (중국 내) 사업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SCMP는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 등을 인용해 “LCK 중계를 포기한 가장 큰 원인은 최근 한국 e스포츠팀 ‘젠지’의 대만 관련 발언 탓”이라고 전했다. 해당 논란은 지난해 12월 젠지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글에서 촉발됐다. 젠지는 의자 제조업체와 협업 제품 출시 소식을 전하며 “(출시) 첫 번째 국가로 대만을 선정했다”고 썼다. 당일부터 중국 이용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은 젠지는 결국 하루 만에 “젠지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무결성을 단호하게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만을 지지하는 이용자들이 반발했다. 젠지가 이후 “특정 정치적 견해나 이념 관련 명확한 중립성을 지켜 나가고자 한다”며 사과문을 다시 철회하면서 사태가 더 악화됐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련의 논란이 중국 측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칭더(賴淸德) 현 부총통이 당선된 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24일에는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 선양의 타오셴공항 입국 과정에서 수첩 속 세계 지도에 대만이 국가처럼 표시됐다는 이유로 억류되기도 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중국이 자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의 한국 프로리그 공식 중계를 돌연 중단했다. 최근 한국의 한 e스포츠 프로게임단이 소셜미디어에서 대만을 국가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한국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의 중국 공식 중계 플랫폼인 후야는 17일 개막한 2024년 정규리그 경기를 별 다른 설명 없이 중계하지 않고 있다. 후야가 LCK를 중계하지 않는 건 2018년 독점 중계를 시작한 뒤로 처음이다. LCK를 주최하는 중국 게임사 라이엇 게임즈는 “방송권을 가진 (중국 내) 사업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SCMP는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 등을 인용해 “LCK 중계를 포기한 가장 큰 원인은 최근 한국 e스포츠팀 ‘젠지’의 대만 관련 발언 탓”이라고 전했다. 해당 논란은 지난해 12월 젠지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글에서 촉발됐다. 젠지는 의자 제조업체와 협업 제품 출시 소식을 전하며 “(출시) 첫 번째 국가로 대만을 선정했다”고 썼다. 당일부터 중국 이용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은 젠지는 결국 하루 만에 “젠지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무결성을 단호하게 존중하고 지지한다”라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만을 지지하는 이용자들이 반발했다. 젠지가 이후 “특정 정치적 견해나 이념 관련 명확한 중립성을 지켜나가고자 한다”며 사과문을 다시 철회하면서 사태가 더 악화됐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련의 논란이 중국 측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온다.중국은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칭더(賴淸德) 현 부총통이 당선된 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24일에는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 선양의 타오셴공항 입국 과정에서 수첩 속 세계 지도에 대만이 국가처럼 표시됐다는 이유로 억류되기도 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중국 세관 당국이 보유하고 있던 수첩 속 대만 지도를 문제 삼아 한국인을 1시간가량 억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선양 한국총영사관은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영사관 등에 따르면 24일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편으로 중국 랴오닝성 선양 타오셴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정모 씨(72)는 현지 세관원의 요구에 따라 여행가방을 열었다. 이후 세관원들은 수첩을 꺼내 뒤적거리더니 부착돼 있던 가로 30cm, 세로 20cm 규모의 ‘세계전도’를 문제 삼았다. 세관원들은 “대만이 다른 국가들처럼 별개의 국가인 것처럼, 타이베이도 다른 국가 수도와 동일하게 표기돼 있다”면서 “‘하나의 중국’(중국과 대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며 정 씨를 억류했다. 정 씨가 이에 항의하며 교민들에게 연락을 취하자 세관원들은 1시간여 뒤 풀어줬다. 중국은 대만을 수복해야 할 자국 영토로 여기며 대만을 독립국가처럼 표기한 지도의 유통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입국 외국인을 억류한 건 이례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선양 한국총영사관은 “경위를 파악하고 있으며, 정 씨에 대한 중국 세관 당국의 조치가 과도한 것으로 확인되면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입국 때 논란의 소지가 있는 지도를 휴대하는 것에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최근 깊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판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미국이 “중국이 판다를 이용해 ‘징벌적 외교’를 펼친다”고 비판하자 중국 관영 매체는 “오히려 미국이 판다를 표적 삼아 정치 쟁점화하며, 학대 의혹도 있다”고 맞받아쳤다. 중국 기관지 런민일보 계열인 환추시보는 16일 “판다 문제의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미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에 머물던 판다 가족 3마리가 지난해 10월 임대 기간 만료를 이유로 중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매체들이 ‘징벌적 외교’라고 비난한 것에 반박한 것이다. 환추시보는 사설에서 “일부 미국인이 판다를 중국의 대표 소프트파워로 여기고 비난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 야야는 학대를 당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며 “미국은 판다에게 적합한 생활 여건과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판다는 1972년 이후 미중 우호의 상징이었다. 한때 미국 내 15마리가 있었지만 임대 계약 종료로 지금은 애틀랜타 동물원에 있는 4마리가 전부다. 이들 역시 올해 임대 기간이 끝난다.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공개 연설에서 “판다는 미중 양국 국민의 우호를 전달하는 사자”라며 “미국과 계속 협력해 두 국민 간 우정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고 했으나 추가 임대나 연장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 1호 아기 판다’ 푸바오도 올해 중국으로 돌아갈 처지다. 중국 외교 소식통은 15일 “에버랜드와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가 반환 시기와 절차를 논의하고 있어 이달 안에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며 “푸바오가 만 4세가 되는 7월 20일 이전에 반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최근 깊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판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미국이 “중국이 판다를 이용해 ‘징벌적 외교’를 펼친다”고 비판하자, 중국 관영 매체는 “오히려 미국이 판다를 표적 삼아 정치 쟁점화하며, 학대 의혹도 있다”며 맞받아쳤다.중국 기관지 런민일보 계열인 환구시보는 16일 “판다 문제를 정치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미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 동물원에 머물던 판다 가족 3마리가 지난해 10월 임대 기간 만료를 이유로 중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매체들이 ‘징벌적 외교’라고 비난한 것에 반박한 것이다. 환구시보는 “오히려 일부 미국인들이 판다를 중국의 대표 소프트파워로 여기고 비난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지난해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 아야는 학대를 당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며 “미국은 판다에게 적합한 생활 조건과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한때 판다는 미중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72년 워싱턴에 처음 보낸 판다가 전국적인 인기를 끈 뒤 다른 동물원에도 임대를 늘려갔다. 한때 미국 내에는 15마리의 판다기 있었지만, 지금은 애틀란타 동물원에 있는 4마리가 전부다. 이들 역시 올해 임대 기간이 끝난다.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판다 외교 재개’를 시사했으나, 미중 갈등이 지속되며 추가 임대나 연장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푸바오도 올해 중국으로 돌아갈 처지다. 중국 외교소식통은 15일 “에버랜드와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가 반환 시기와 절차를 논의하고 있어 이달 안에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며 “푸바오가 만 4세가 되는 7월 20일 이전에 반환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대만은 이미 주권국이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필요가 없다.”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 당선인이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외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서 줄곧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대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입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같은 해 4월 민진당 총통 후보로 선출됐을 때는 “대만은 세계 민주주의의 ‘MVP(최우수 선수)”라며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과 맞서겠다는 뜻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중국은 이런 라이 당선인의 선거 승리를 막기 위해 선거 과정 내내 군사 위협, 구두 경고 등을 가했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중국의 공세가 오히려 반(反)중국 성향이 강한 유권자를 결집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투표 열흘 전인 2일 대만 언론 롄허보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라이 후보와 제1야당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인 5%포인트였다. 실제 투표에서 1, 2위 간 격차는 6.6%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광부 아들→의사→총통 당선 라이 당선인은 1959년 수도 타이베이 인근 작은 마을 완리에서 태어났다. 광부였던 그의 부친은 라이 당선인이 태어난 지 95일 만에 탄광 사고로 숨졌다. 그의 어머니가 홀로 라이 당선인을 포함한 6명의 자녀를 키웠다. 가난한 집안의 수재인 그는 국립 대만대 의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공보건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1994년 정계에 입문했고 민진당 지지세가 강한 남부 타이난에서 4선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어 타이난 시장, 행정원장(총리)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총통에 올랐다. 부인과 두 아들, 손자가 있다. 라이 당선인은 역시 반중 성향으로 유명한 차이 총통보다 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 높은 ‘대독파’로 꼽힌다. 타이난 시장 시절인 2014년 처음 중국 본토를 방문했을 때 중국이 금기로 여기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거론하며 “톈안먼 시위는 애국운동”이라고 했다. 또 중국식 병음 표기를 거부하는 조례를 제정했고, 시 공용어에 영어를 추가했다. 지난해 10월 남부 가오슝 유세 현장에서는 “‘92 공식’(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1992년 양측의 구두 합의)을 받아들이는 건 대만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외쳤다. 이런 그를 중국은 ‘배신자’ ‘말썽쟁이’ ‘분열주의자’로 부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習 믿어야” 마잉주, 반중 정서 결집시켜 선거 직전 제1야당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의 ‘신습론(信習論)’ 발언도 되레 민진당에 호재가 됐다. 마 전 총통은 최근 독일 매체 인터뷰에서 “양안 관계가 좋아지려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민당 허우 후보마저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거세진 유권자의 반중 정서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시 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주장해 대만인의 불안감을 키웠다. 이에 국민당 지지층은 선거 패배 확정 직후 마 전 총통의 소셜미디어로 몰려가 ‘패배의 주범’이라는 댓글을 달며 비판했다. 외신 또한 중국의 거듭된 위협이 오히려 민진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대만의 팔을 거듭 비튼 중국의 강경 행보가 오히려 대만 유권자로 하여금 중국을 넘어서야겠다는 열망을 키워줬다”고 분석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지지율이 낮은 총통 당선인을 보유하고, 입법원(국회) 제1당에서 제2당으로 전락해 ‘이중(二重) 소수’에 빠졌다.” 13일 대만 총통 선거와 같은 날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현지 언론 롄허보의 평가다. 민진당은 이날 총통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라이칭더(賴淸德) 당선인의 득표율은 40.1%에 그쳤다. 입법원 내 민진당 의석 또한 4년 전보다 10석이 줄어 제1야당 국민당에 원내 제1당 지위를 내줬다. 집권당 의석이 총 113석인 입법원 과반(57석)에 미달한 것은 입법원 의석이 현재 의석으로 확정된 2008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1996년 총통 선거에 직선제가 도입된 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 민진당과 국민당이 번갈아가며 8년씩 집권했던 공식 또한 깨졌다. 국민당은 제1당에 오르긴 했지만 민진당보다 불과 1석이 많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 안정적인 의회 운영을 위해 8석을 얻은 제3당 민중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이에 다음 달 1일 입법원장(국회의장) 선출 때 민중당이 어떤 당의 후보를 지지할지 관심이 주목된다. 입법원장 후보로 국민당에서는 2020년 총통 선거에 도전했으며 갖가지 논란을 몰고 다니는 한궈위(韓國瑜·67·사진) 전 가오슝 시장, 민진당에서는 유시쿤(游錫堃) 현 입법원장이 거론된다.● 국민당이 제1당… 16년 만의 여소야대 총통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국민당은 13일 11대 입법위원 선거에서 52석을 얻었다. 4년 전보다 14석이 많다. 반면 대권을 거머쥔 민진당은 10석을 잃은 51석에 그쳤다. 4년 전 5석이었던 민중당 의석은 8석으로 늘었다. 입법위원 선거에서 국민당의 승리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인물론이 중시되는 총통 선거와 달리 입법원 선거는 전국적 인지도가 낮아도 후보 개개인의 지역구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 ‘대(對)중국 강경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집권 8년간 민진당이 반중 정책을 강조하느라 민생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었다는 유권자의 불만도 상당한 상황이었다. 타이베이 시민 리이루이(李依叡·36·회사원) 씨는 12일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중국의 군사 위협 등을 우려하기에 총통 선거에서는 라이 후보를 지지하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국민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당 후보가 민진당 후보보다 일을 잘하고 지역구 사정에도 밝다고 했다. 민진당은 2022년 11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도 21개 지역에서 불과 5곳에서만 승리해 13개 지역에서 이긴 국민당에 참패했다. 이런 흐름이 이번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이어졌다. 차이 총통은 이번 유세 과정에서 “입법위원은 국정 운영의 동력”이라며 라이 당선인과 민진당 입법위원 후보를 모두 찍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국민당 전 총통 후보, 입법원장 가능성 그간 여러 논란을 일으키며 화제를 몰고 다녔던 한궈위 전 시장이 입법원장에 오를지도 관심이 크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 비례대표 1번 후보로 입법원에 입성하게 됐다. 한 전 시장은 2018년 민진당 텃밭으로 꼽히는 남부 가오슝에서 국민당 소속으로 시장에 올라 큰 관심을 모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역시 대머리인 지지자를 유세장으로 불러모아 대머리를 강조하는 이색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세를 몰아 2020년 국민당 총통 후보가 됐지만 과도한 친중국 성향 등으로 차이 총통에게 대패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총통 선거에만 신경 쓰느라 시정을 등한시했다”는 이유로 실시된 시장 파면 선거가 통과돼 시장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와신상담한 그가 입법원장에 오르려면 총통 선거와 입법원 선거에서 모두 선전한 민중당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총통 선거에 출마했던 민중당 커원저(柯文哲) 주석은 13일 “민중당은 나의 1인 정당이 아닌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며 15일 지지 후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타이베이=이지윤 기자 asap@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친(親)중국 성향의 마잉주(馬英九·사진) 전 대만 총통이 “시진핑(習近平)을 믿어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만 총통 선거가 요동치고 있다. 이 발언이 마 전 총통이 소속된 제1야당 국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커지고 있다. 11일 중앙통신사 등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마 전 총통은 전날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평화적 대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시 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만 사회에서 퍼지고 있는 ‘중국 위협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의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反)중국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이 발언을 문제 삼아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특히 마 전 총통이 지난해 4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 당국으로부터 유례없는 환대를 받았다는 점까지 꺼내들어 국민당을 압박했다.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는 연설에서 “이번 선거는 시진핑을 믿느냐, 대만을 믿느냐의 선택”이라면서 “중국의 선거 개입이 성공해 중국 지시를 받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만의 민주주의는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국민당과 단일화를 추진했던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도 마 전 총통을 겨냥해 “시 주석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게 더 안전하다”고 비꼬았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는 “나와 마 전 총통의 중국 노선은 조금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다. 허우 후보는 “대만의 민주와 자유 시스템을 지킬 것”이라면서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부총통 후보인 자오사오캉(趙少康)도 “무조건 신뢰가 아닌 조건부 신뢰”라며 의미 축소에 나섰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영국 비밀정보국(MI6)이 제3국 인물을 이용해 오랫동안 중국의 국가기밀을 빼낸 사실을 최근 적발했다고 중국 국가안전부가 8일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7월부터 간첩 행위의 범위와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한 ‘반(反)간첩법’을 시행하면서 이에 위배되는 외국 기업인, 언론인 등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거나 억류했다. 서방은 중국이 반간첩법을 통해 체제 비판적인 해외 민간인을 억압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안전부에 따르면 중국이 이번에 적발한 인물은 중국이나 영국 국적자가 아닌 제3국 국적의 컨설팅기업 대표 황모 씨다. MI6는 2015년 황 씨와 협력 관계를 맺은 뒤 여러 차례 중국에 입국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그는 신분을 숨긴 채 중국 관련 정보를 수집하거나 MI6에 넘길 사람들을 물색했다. MI6 또한 황 씨에게 전문적인 정보 훈련과 특수 장비 등을 제공했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이다. 국가안전부는 “황 씨가 영국 측에 넘긴 정보는 국가기밀 9건을 포함해 총 17건”이라면서 “그의 간첩 활동 증거를 발견하고 형사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다만 황 씨의 국적과 그가 대표로 있는 기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은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와 미 뉴욕에 본부를 둔 기업실사업체 민츠그룹의 중국 내 사무소를 조사했다. 일본 제약사 아스텔라스 직원들과 미 중앙정보국(CIA)에 협력한 스파이 2명 등도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국가안전부는 소셜미디어 계정, 홈페이지 등을 통한 시민들의 간첩 발견 직접 신고도 독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밤중에 해군기지를 몰래 촬영하던 외국 스파이를 신고한 주민에게 큰 포상을 내렸다”며 더 많은 시민이 간첩 신고에 나서라고 강조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20세기 초에 태어나 111세로 이탈리아 최고령이던 남성이 2024년 새해가 밝기 하루 전 세상을 떠났다. 1일(현지 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1912년 8월 20일생인 트리폴리 잔니니(사진)가 지난해 12월 31일 토스카나주 체치나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잔니니의 아들 로마노는 소셜미디어에 “아버지는 스스로를 불멸의 존재라고 믿었지만, 새해 전날 오전 9시 30분에 돌아가셨다”며 “111세 133일이라는 기록적인 나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늘에서) 40년 넘게 그를 기다린 아내이자 나의 어머니와 재회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잔니니가 태어난 1912년은 타이태닉호가 북대서양에서 침몰했던 해다. 같은 해 6월 그보다 75일 먼저 태어난 프랑스의 앙드레 루트비히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잔니니는 1918년 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겨냈지만 결국 111세로 사망했다. 그는 작년 8월 자신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 “와인을 곁들인 가벼운 식사와 스트레스 없는 생활”을 장수 비결로 꼽았다. 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장수 나라지만, 최근 출산율 하락과 인구 고령화가 겹치며 연금·의료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0세 이상 인구가 2만20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합계 출산율 역시 2021년 기준 1.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20세기 초에 태어나 111세로 이탈리아 최고령이던 남성이 2024년 새해가 밝기 하루 전 세상을 떠났다. 1일(현지 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1912년 8월 20일 태생인 트리폴리 지아니니가 지난해 12월 31일 토스카나주 체치나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지아니니의 아들 로마노는 소셜미디어에 “아버지는 스스로를 불멸의 존재라고 믿었지만, 새해 전날 오전 9시 30분에 돌아가셨다”며 “111세 133일이라는 기록적인 나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늘에서) 40년 넘게 그를 기다린 아내이자 나의 어머니와 재회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지아니니가 태어난 1912년은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서 침몰했던 해다. 같은 해 6월 그보다 75일 먼저 태어난 프랑스의 앙드레 루드비히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지아니니는 1918년 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겨냈지만 결국 111세로 사망했다.그는 작년 8월 자신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 “와인을 곁들인 가벼운 식사와 스트레스 없는 생활”을 장수 비결로 꼽았다. 또 “담배를 피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장수 나라지만, 최근 출산율 하락과 인구 고령화가 겹치며 연금·의료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0세 이상 인구가 2만20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합계 출산율 역시 2021년 기준 1.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반도체와 핵심 광물 희토류의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최신식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해 온 미국이 21일(현지 시간)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까지 규제할 뜻을 밝히자 중국 또한 전략물자인 희토류의 가공 기술 수출을 금지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미국과 중국에 모두 진출해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 또한 어떤 식으로든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는 이날 “다음 달부터 미 기업들이 범용 반도체를 어떻게 조달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며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속한 100여 개 기업의 범용 반도체 수급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또한 “중국이 범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면서 미 기업이 (해당) 시장에서 경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려스러운 징후를 확인했다”며 “미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하는 외국 정부의 비(非)시장적 행동에 대처하는 것은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규제로 해당 시장에 진입할 길이 막히자 구형 범용 반도체 시장에 집중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이에 조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 또한 블룸버그통신에 범용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관세나 기타 무역 수단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기업이 수입하는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는 희토류의 제조 및 정련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중국 수출금지·제한 목록’ 개정판을 발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60%, 희토류 가공 및 정제 산업의 약 90%를 점유했다. 이번 조치로 특히 전기자동차, 의료기기, 무기 등에 쓰이는 희토류의 공급 및 가공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범용 반도체 실태 조사가 시작되면 미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 또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 범위와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미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범용 반도체구형 설비로 제작하는 저성능 반도체. 통상 2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보다 큰 반도체를 뜻한다. 10나노급 이하 최신식 반도체보다 처리 속도가 느리나 세계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美 “中 보조금으로 반도체 장악 막아야”… 중국産에 관세 부과 시사 [美, 피아 구분 없는 경제전쟁]격화되는 美-中 패권갈등美 “中, 반도체 시장 왜곡 안돼"… 범용 반도체 공급망 수급실태 조사中 “美, 수출통제 남용 타국기업 차별”… 희토류 광물 이어 가공기술까지 통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에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규제로 최신식 반도체 시장에 진입할 길이 막힌 중국이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자국산 범용 반도체 시장을 적극 육성하자 이 또한 좌시할 수 없다며 “미 주요 기업의 중국산 반도체 수급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산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올해 내내 갈륨, 게르마늄, 흑연 등 주요 광물 자원의 수출을 통제해 온 중국 또한 가만히 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또한 핵심 광물 자원을 가공하고 제련하는 기술의 수출까지 금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18∼2021년 기준 미국의 중국산 희토류 수입 의존도는 74%에 달한다. 우리 정부와 반도체 업계 또한 양국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규정하는 범용 반도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까지 포함되는지에 따라 파장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후폭풍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민관 합동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몬도 “中 보조금으로 범용 반도체 장악” 미 상무부는 다음 달부터 국방과 자동차, 항공우주 등 주요 분야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조사하겠다고 21일(현지 시간) 밝혔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이번 조사는 선제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며 “관세 부과, 수출 통제, 동맹국과의 협력 등을 통해 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의 보조금 지원이 전체 반도체 시장을 왜곡하도록 만들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범용 반도체는 구형 공정으로 제작된 반도체로, 업계에서는 통상 28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보다 큰 반도체를 뜻한다. 반도체는 회로의 선폭이 좁을수록 처리 속도가 빠르고 소비 전력이 감소한다. 이에 삼성전자 등 반도체 선도 기업은 최근 10나노급 이하 첨단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전체적인 반도체 수요로만 보면 범용 반도체의 비중이 최신식 반도체보다 높다. 특히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의 95%가 범용 반도체라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분석했다. 이에 중국 또한 ‘반도체 선도국’의 상징성은 떨어지지만 ‘매출 확대’가 용이한 범용 반도체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국 주도로 최소 1조 위안(약 182조 원) 이상의 반도체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범용 반도체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SMIC 등 중국 반도체 기업 또한 2026년까지 범용 반도체 분야에서 26개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 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세계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은 현재 29%에서 2027년 33%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러몬도 장관이 “중국이 보조금을 받는 (범용) 반도체를 쏟아내 미 기업이 (해당) 반도체를 만들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中, 희토류 가공 기술까지 무기화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 또한 21일 웹사이트에 희토류의 추출, 정제, 가공 등의 기술에 관한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첨단산업의 쌀’로 불리는 희토류는 자동차, 의료기기, 무기 등 최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17가지 희귀 광물이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강화되자 올 8월 반도체 생산의 주요 재료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로 맞섰다. 이달 1일부터는 2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재료인 흑연의 수출 또한 규제했다. 이 와중에 이제는 희토류 가공 기술까지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왕원빈(王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관련 질문을 받고 “기술 발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일상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범용 반도체 실태 조사에는 반발했다.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미국이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해 외국 기업에 차별적이고 불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영향에 촉각 국내 업계는 사태의 향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7nm 이하 최첨단 반도체 공정에 주력하고 있지만 일부 범용 반도체 공정 또한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반도체는 사용처가 워낙 넓고 다양해 미국의 조사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급망 파악 목적으로 끝날지, 제한적으로라도 규제 조치가 이뤄질지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철중 기자 tnf@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곽도영 기자 now@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반도체와 핵심 광물의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최신식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해 온 미국이 21일(현지 시간)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까지 규제할 뜻을 밝히자 중국 또한 전략 물자인 희토류의 가공기술 수출을 금지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미국과 중국에 모두 진출해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 또한 어떤 식으로든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미 상무부는 이날 “다음 달부터 미 기업들이 범용 반도체를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며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등 첨단산업 분야의 1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들 기업의 범용 반도체 수급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또한 “중국이 자국 기업의 범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면서 미 기업이 (해당) 시장에서 경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려스러운 징후를 확인했다”며 “미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하는 외국 정부의 비(非)시장적 행동에 대처하는 것은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규제로 해당 시장에 진입할 길이 막히자 구형 범용 반도체 시장에 집중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 또한 블룸버그통신에 범용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관세나 기타 무역 수단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기업이 수입하는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관세를 대폭 인상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같은 날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는 희토류를 사용한 고성능 자석 등의 제조 기술, 정련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중국 수출금지·제한 목록’ 개정판을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조치로 특히 전기자동차, 의료기기, 무기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공급 및 제련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미국의 범용 반도체 실태 조사가 시작되면 미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 또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 범위나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미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철중 기자 tnf@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중국 북서부 간쑤성에서 규모 6.2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118명이 숨졌다. 인명 피해를 기준으로 보면 2014년 8월 윈난성에서 발생한 규모 6.5의 지진으로 617명이 숨진 이후 중국 내 가장 큰 지진 피해다. 19일 중국지진망센터(CENC)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 59분 간쑤성 린샤후이족자치주 지스산현 북쪽 15km 지점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는 이번 지진으로 이날 오후 3시 현재 간쑤성에서 105명, 인근 칭하이성에서 13명 등 최소 11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중상을 포함한 부상자 수도 500명을 넘어섰다. 간쑤성의 가옥 4700여 채 등 진원지 인근의 가옥과 수도, 전기, 도로 등 기반 시설도 대거 파괴됐다. 중국 당국은 4000여 명을 투입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진이 늦은 밤 발생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주민들이 건물에 깔렸을 가능성이 높다 보니 중장비 동원에 제약이 있는 데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 탓에 수색과 구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긴급 지시를 통해 “수색 구조를 전개하고 부상자를 적시에 치료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인민해방군은 지방정부와 적극 협력해 긴급 구조 및 구호 활동을 수행하라”고 주문했다. 중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도 이번 지진에 애도를 표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대만은 재난 대응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이 총통은 친미·독립 성향으로,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 그도 애도 메시지를 영어와 함께 대만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번체가 아닌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간체로 적어 마음을 전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농촌에서 열리는 프리미어리그(영국 최상위 축구 리그)라는 뜻의 ‘춘차오(村超)’빡빡한 일정의 가성비 여행을 의미하는 ‘특전사식 여행(特種兵式旅游)’올해 중국에서 가장 유행한 신조어들이다. 중국 국가언어자원모니터링센터는 16일 이런 표현들이 포함된 ‘2023년 10대 신조어’를 발표했다. 올 1월부터 11월 말까지 신문,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포털 사이트 뉴스에 등장한 신조어들 중 가장 널리 쓰인 표현을 선정한 것이다. 춘차오는 ‘농촌(村)’과 ‘프리미어리그(超)’가 합쳐진 단어로 중국 구이저우성 룽장현의 마을 축구 리그를 빗댄 말이다. 올 5월 열린 이 대회에 수만 명의 관중이 몰리자 이를 본 중국 누리꾼들이 열광적인 영국 프로축구 리그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특전사식 여행이란 표현은 지난해 말 ‘제로 코로나’ 정책이 중단된 뒤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중국인들이 예전처럼 장기 여행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가능한 많은 곳을 둘러보는 ‘가성비’ 여행을 찾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군대가 작전을 하듯 빠르게 여행을 다닌다는 뜻이다.이번에 발표된 10대 신조어에는 중국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단어들도 대거 포함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3월 언급했던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 코로나 이후 중국 내수 진작을 위해 지정한 ‘소비 진작의 해’ 등이 대표적이다.이밖에 최근 챗GPT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생성형 AI’,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셴옌바오(顯眼包)’,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로 올해 처음 제정된 ‘전국 생태의 날’ 등도 포함됐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출산과 육아는 부모가 함께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유독 여성들만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해야 하죠?” 지난해 10월 16일 대만 타이베이시의 부동산중개회사 융칭팡우(永慶房屋)에서 만난 라이이콴 씨(34)의 말이다. 그는 한국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다는 기자의 얘기에 의아해했다. 라이 씨는 2년 전 첫아이를 출산한 뒤 6개월간 육아휴직을 쓰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애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게 쉽지 않지만 육아 때문에 회사를 관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성차별이 거의 없는 나라, 대만 라이 씨는 오전 8시경 아이를 보모 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퇴근 후 오후 6시 반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도 주로 그녀의 몫이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다. 그 대신 집안일은 남편이 도맡아 한다. 라이 씨는 “설거지나 빨래는 물론 요리까지 남편이 주로 한다”며 “주말에도 남편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주말 오후 타이베이시 중심가 공원에선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어린아이를 유모차나 자전거에 태우고 나와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만 사회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거의 없는 상태다. 라이 씨는 “회사에서도 ‘여성’ 또는 ‘엄마’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녀가 근무하는 부서의 사무직 중 60%가 여성이다. 라이 씨는 “비서로 처음 회사에 들어와 현재 어시스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며 “영업소 점장은 물론 사내 고위 간부도 여성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대만의 높은 성평등 의식은 각종 수치로 확인된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주요 아시아 국가의 성불평등지수(GII)는 한국(0.067), 싱가포르(0.068), 일본(0.116) 순이다. GII는 0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 정부가 UNDP의 GII 공식을 활용해 자체 조사한 결과 대만의 GII는 0.058로 한국보다 낮았다. 아시아권에서는 성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인 셈이다. 직장 내 성평등은 남녀의 낮은 임금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대만의 남성 근로자 대비 여성의 월평균 임금 격차는 17.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4.7%에 근접해 있다. 한국(36.7%)에 비하면 절반 이상 낮은 수준이다. 황링샹 대만 여성인권촉진재단 전문이사는 “1990년대 이후 서비스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여성 노동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최근에는 서비스업은 물론 관리·기술직 등에서도 성별에 따른 직업 장벽이나 차별이 적다”고 설명했다.○ 모성 보호에서 시작되는 남녀평등 대만의 신베이시에 있는 리크루팅 업체 ‘104정보기술’에 근무하는 정자오쥐안 씨(39)는 둘째 출산으로 2년간 육아휴직을 쓴 뒤 지난해 복직했다. 한국에서는 ‘애 낳고 1년 넘게 쉴 거면 그냥 퇴사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육아휴직자를 은근 압박하는 회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 씨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복직 2개월 전쯤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휴직 전 맡은 연구직을 계속 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고, 기존 업무 대신 원하는 보직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상담해줬어요.” 가족돌봄휴가 제도도 정 씨처럼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에게 큰 힘이 된다. 가족돌봄휴가는 연가와 별도로 1년에 최대 14일까지 가족을 위해 쓰는 무급 휴가다. 얼마 전 정 씨의 첫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내부 사정으로 3일 동안 휴교를 했을 때 정 씨는 돌봄휴가를 내고 아이를 직접 돌봤다. 그는 “자녀 2명 모두 몸이 약해 번갈아 가며 자주 아픈 편인데, 급할 때마다 하루씩 휴가를 나눠 쓸 수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대만은 조부모나 보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개인 양육을 선호한다. 하지만 2002년 양성고용평등법을 제정한 이후 기업들이 점차 사내 탁아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정 씨가 다니는 회사 역시 3년 전 약 4억 원을 들여 본사 건물 안에 보육센터를 마련했다. 0∼3세 아동 59명을 돌보는 데 보육교사부터 간호사까지 정식 직원만 15명을 채용할 정도로 보육 여건이 우수한 편이다. 104정보기술 부총괄 매니저인 웨버 정 씨는 “평균 1∼2년이던 육아휴직 기간이 보육센터를 운영한 뒤로 6∼12개월로 줄었다”며 “휴직 기간이 짧아지면서 인력 운용에 숨통이 틔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회사의 여성 직원 출산율은 대만 전체의 2배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다만 대만에서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의 경우 탁아시설과 같은 모성 보호 시설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또 20, 30대 여성의 경력 단절이 문제인 한국과 달리 대만은 30대부터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황링샹 전문이사는 “성평등 인식 수준에 비해 공공 육아에 대한 인프라나 투자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대만은 세금 징수율이 높지 않아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대만 ‘양성고용평등법’, 한국보다 10년 늦었지만 정착은 먼저▼도입때부터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 위반시 회사명 공개 등 강력 처벌1987년 대만 국부기념관의 여성 안내원 57명은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30세가 넘었거나 결혼을 했거나 혹은 임신을 해서다. 이곳 안내원들은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입고 일했다. 기념관 측은 안내원들의 몸매가 망가지는 걸 막기 위해 ‘임신 및 결혼 방지’ 규정을 계약서에 넣었다. 이때 해고된 여성들이 차별적인 제도에 맞서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 대만에서 직장 내 성평등 관련법이 만들어진 시작점이다. 대만의 양성고용평등법은 안내원 해고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 만인 2002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이 1987년에 제정된 것에 비하면 10년 이상 늦었지만, 한국보다 빨리 제도가 기업이나 업무 현장에 뿌리 내렸다. 왕야펀 대만 노동부 양성평등과 전문위원은 “도입 초기부터 벌칙 규정을 명문화하고 휴직 시 임금 보전 방안 등 여성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대만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외에도 유산·임신·산전검사 등 모성 보호와 관련된 다양한 휴가 제도가 있다. 회사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휴가 종류와 기간별로 유급과 무급이 구분돼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의 경우 한국과 대만 모두 2002년에 도입했지만 한국에서는 2007년에야 의무 규정이 생겼다. 대만은 도입 당시부터 유급 휴가로 의무화했다. 처벌 조항에서도 대만 정부의 실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대만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양성고용평등법에서 규정한 모성 보호 제도를 위반한 기업에 1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위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회사명, 책임자 성명까지 공개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개선하지 않으면 누적 처벌이 이뤄진다. 근로자가 제도를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대만의 0∼3세 자녀가 있는 근로자라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쓸 수 있다. 업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급여도 줄지만 원하는 기간 동안 1시간씩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정착시키기 위한 정부 지원도 활발하다. 대만 정부는 2014년부터 ‘워라밸 우수 기업’을 시상하고 있다. 휴가나 탄력근무 제도, 가족 친화 정책, 직원 건강 프로그램 등이 평가 대상이다. 기업이 가족 친화 행사를 하고자 하면 정부는 프로그램별로 최대 700만 원까지 보조금을 준다.타이페이·신베이=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출산과 육아는 부모가 함께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유독 여성들만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해야 하죠?” 지난해 10월 16일 대만 타이페이시의 부동산중개회사 용칭팡우(永慶房屋)에서 만난 라이이콴 씨(34)의 말이다. 그는 한국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경험한다는 기자의 얘기에 의아해했다. 라이 씨는 2년 전 첫아이를 출산한 뒤 6개월간 육아휴직을 쓰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애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게 쉽지 않지만 육아 때문에 회사를 관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성차별이 거의 없는 나라, 대만 라이 씨는 오전 8시경 아이를 보모 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한다. 퇴근 후 오후 6시 반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도 주로 그녀의 몫이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다. 대신 집안일은 남편이 도맡아 한다. 라이 씨는 “설거지나 빨래는 물론, 요리까지 남편이 주로 한다”며 “주말에도 남편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주말 오후 타이페이시 중심가 공원에선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어린 아이를 유모차나 자전거에 태우고 나와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만 사회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거의 없는 상태다. 라이 씨는 “회사에서도 ‘여성’ 또는 ‘엄마’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녀가 근무하는 부서의 사무직 중 60%가 여성이다. 라이 씨는 “비서로 처음 회사에 들어와 현재 어시스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며 “영업소 점장은 물론, 사내 고위 간부도 여성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대만의 높은 성평등 의식은 각종 수치로 확인된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주요 아시아 국가의 성불평등지수(GII)는 한국(0.067), 싱가포르(0.068), 일본(0.118) 순이다. GII는 0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 정부가 UNDP의 GII 공식을 활용해 자체 조사한 결과 대만의 GII는 0.058로 한국보다 낮았다. 아시아권에서는 성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인 셈이다. 직장 내 성평등은 남녀의 낮은 임금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대만의 남성 근로자 대비 여성의 월 평균 임금 격차는 17.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4.7%에 근접해 있다. 한국(36.7%)에 비하면 2배 이상 낮은 수준이다. 황링샹 대만 여성인권촉진재단 전문이사는 “1990년대 이후 서비스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여성 노동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최근에는 서비스업은 물론, 관리·기술직 등에서도 성별에 따른 직업 장벽이나 차별이 적다”고 설명했다.● 모성보호에서 시작되는 남녀평등 대만의 신베이시에 있는 리쿠르팅업체 ‘104정보기술’에 근무하는 정자오쥐안 씨(39)는 둘째 출산으로 2년간 육아휴직을 쓴 뒤 지난해 복직했다. 한국에서는 ‘애 낳고 1년 넘게 쉴 거면 그냥 퇴사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육아휴직자를 은근 압박하는 회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 씨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복직 2개월 전쯤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휴직 전 맡은 연구직을 계속 할 수 있는 지 설명해주고, 기존 업무 대신 원하는 보직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상담해줬어요.” 가족돌봄휴가 제도도 정 씨처럼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에게 큰 힘이 된다. 가족돌봄 휴가는 연가와 별도로 1년에 최대 14일까지 가족을 위해 쓰는 무급 휴가다. 얼마 전 정 씨의 첫째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내부 사정으로 3일 동안 휴교를 했을 때 정 씨는 돌봄 휴가를 내고 아이를 직접 돌봤다. 그는 “자녀 2명 모두 몸이 약해 번갈아 가며 자주 아픈 편인데, 급할 때마다 하루씩 휴가를 나눠 쓸 수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대만은 조부모나 보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개인 양육을 선호한다. 하지만 2002년 양성고용평등법을 제정한 이후 기업들이 점차 사내 탁아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정 씨가 다니는 회사 역시 3년 전 약 4억 원을 들여 본사 건물 안에 보육센터를 마련했다. 0~3세 아동 59명을 돌보는 데 보육교사부터 간호사까지 정식 직원만 15명을 채용할 정도로 보육 여건이 우수한 편이다. 104정보기술 부총괄 매니저인 웨버 정 씨는 “평균 1~2년이던 육아휴직 기간이 보육센터를 운영한 뒤로 6개월~1년으로 줄었다”며 “휴직 기간이 짧아지면서 인력 운용에 숨통이 틔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회사의 여성 직원 출산율은 대만 전체의 2배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다만 대만에서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의 경우 탁아시설과 같은 모성보호 시설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또 20, 30대 여성의 경력단절이 문제인 한국과 달리 대만은 30대부터 여성의 경제활동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황링샹 전문이사는 “성평등 인식 수준에 비해 공공 육아에 대한 인프라나 투자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대만은 세금 징수율이 높지 않아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대만의 다양한 성평등 관련 제도 살펴보니…▼1987년 대만 국부기념관의 여성 안내원 57명은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30세가 넘었거나 결혼을 했거나 혹은 임신을 해서다. 이곳 안내원들은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입고 일했다. 기념관 측은 안내원들의 몸매가 망가지는 걸 막기 위해 ‘임신 및 결혼 방지’ 규정을 계약서에 넣었다. 이때 해고된 여성들이 차별적인 제도에 맞서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 대만에서 직장 내 성평등 관련법이 만들어진 시작점이다. 대만의 양성고용평등법은 안내원 해고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 만인 2002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이 1987년에 제정된 것에 비하면 10년 이상 늦었지만, 한국보다 빨리 제도가 기업이나 업무 현장에 뿌리 내렸다. 왕야펜 대만 노동부 양성평등과 전문위원은 “도입 초기부터 벌칙 규정을 명문화하고 휴직 시 임금 보전 방안 등 여성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대만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외에도 유산·임신·산전검사 등 모성보호와 관련된 다양한 휴가 제도가 있다. 회사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휴가 종류와 기간별로 유급과 무급이 구분돼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의 경우 한국과 대만 모두 2002년에 도입했지만 한국에서는 2007년에야 의무 규정이 생겼다. 대만은 도입 당시부터 유급 휴가로 의무화했다. 처벌 조항에서도 대만 정부의 실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대만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양성고용평등법에서 규정한 모성보호 제도를 위반한 기업에 1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위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회사명, 책임자 성명까지 공개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개선하지 않으면 누적 처벌이 이뤄진다. 근로자가 제도를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대만의 0~3세 자녀가 있는 근로자라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쓸 수 있다. 업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급여도 줄지만 원하는 기간동안 1시간씩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정착시키기 위한 정부 지원도 활발하다. 대만 정부는 2014년부터 ‘워라밸 우수 기업’을 시상하고 있다. 휴가나 탄력근무 제도, 가족친화 정책, 직원건강 프로그램 등이 평가 대상이다. 기업이 가족친화 행사를 하고자 하면 정부는 프로그램별로 최대 700만 원까지 보조금을 준다. 타이페이·신베이=김철중기자 tnf@donga.com}
“갑상선(샘)암이라는데 수술하는 게 맞나요? 아니면 경과를 지켜봐도 될까요?”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 A 씨는 최근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여러 병원을 돌며 수술 여부를 상담하던 그는 지난해 12월 17일 남편과 함께 동아일보의 ‘톡투 갑상선’ 행사장을 찾았다. A 씨의 남편은 “병원에선 진료 시간에 쫓기다 보니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늘 아쉬움이 남았는데 톡투 갑상선을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건강콘서트 ‘톡투’는 동아일보가 주요 질병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정확한 치료법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건강정보 공유 프로그램이다. 이날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톡투 갑상선’은 앞서 11월 17일 진행한 ‘톡투 건선’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한 톡투 행사다. 행사장에는 갑상선암 환자와 가족 및 평소 갑상선암에 궁금증을 가진 일반인 등 2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갑상선암 인식, 여전히 낮아 갑상선은 목의 앞쪽 한가운데 튀어나온 부분, 흔히 ‘목울대’나 ‘울대뼈’라고 부르는 갑상연골의 2, 3cm 아래에 위치한 나비 모양 기관이다. 갑상선호르몬은 우리 몸 에너지 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체중이 늘거나 추위를 많이 탄다. 반대로 너무 많이 분비되면 땀이 많아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갑상선암은 갑상선에 악성 혹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강연에 나선 김정수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장은 “처음엔 증상이 없다 보니 대부분 암이 상당히 진행된 뒤 목에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목소리가 바뀌었을 때 병원을 찾는다”며 “정기적인 검진과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인의 갑상선암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톡투 갑상선이 일반인 500명을 대상으로 갑상선암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96.2%가 갑상선암을 들어봤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73.6%가 갑상선암의 증상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답한 점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갑상선암 갑상선암은 발생률이 매우 높다. 2015년 기준 국내 갑상선암 환자는 2만5029명으로 전체 암 환자 가운데 11.7%를 차지했다. 갑상선암 발생률이 해마다 빠르게 늘면서 ‘과잉 진료’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일부 의료진이 무리하게 갑상선암을 판정해 환자 수를 불필요하게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갑상선 수술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수술을 미뤄 종양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면 자칫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갑상선암은 종양의 크기뿐 아니라 발생 위치와 형태, 림프절 전이 여부 등에 따라 그 예후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갑상선암 가운데 90%가 넘는 유두암은 암에 걸려도 10년 동안 살 확률이 90%에 달한다. 반면 발생 빈도가 1% 미만인 미분화암은 10년 생존율이 1% 미만으로 치명적이다. 남기현 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교수는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은 90%와 치명적인 1%를 모두 포함한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며 “종양의 크기가 1cm 미만인데도 3기로 판정하는 경우가 27%나 될 정도로 의사들도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빈치 로봇수술 등 치료법 다양 초기 치료법 가운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술이다. 직접 목 부분을 절제해 암을 제거하는 수술법 외에도 ‘다빈치 로봇수술’이 있다. 목 부분을 절제하지 않고 내시경을 이용해 가슴이나 겨드랑이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부위로 들어가 정교하게 진행하는 수술법이다. 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암의 크기가 작을수록 수술 시 생존율이 높고 부작용이 적다”며 “초기에 암을 발견하고 주변 임파선까지 깨끗하게 청소하는 게 암의 재발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갑상선암을 예방하려면 생활 속에서 목 주변이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갑상선호르몬을 생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해조류를 적당히 섭취하는 게 좋다. 김지수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는 “수술 뒤 재발을 막기 위해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하기도 한다”며 “심장질환 유무나 골 손실 위험인자 등에 따라 복용 여부와 용량이 달라지므로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