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이소연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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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소연 기자입니다.

always99@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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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개 유적은 구석기 시대 테크노폴리스…‘슴베찌르개 로드’ 그리는 것이 목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유적은 반드시 발굴해 후대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뿐이었어요. 그때 제가 수양개 유적을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이 유적은 충주댐 건설로 물 속에 잠겨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4만6000년 전 만들어진 세계 최고(最古) 슴베찌르개가 출토된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은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82) 덕분에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충북대 박물관팀을 이끌고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에 나선 이 교수는 1980년 7월 이틀 동안 750㎜가 쏟아진 폭우를 뚫고 수양개 유적을 처음 발견했다. 1983년 3월 충북대 박물관장을 맡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수몰 위기에 놓인 수양개 유적을 ‘발굴 대상 지역’ 목록에 올린 것이었다. 42세 때 조사단장으로 시작한 첫 발굴은 그가 74세가 된 2015년까지 이어졌다. 총 13차례 넘는 발굴로 출토된 유물은 10만여 점에 달한다. 올해 수양개 유적 발굴 40주년을 맞아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에서 6일 만난 이 교수는 전시실에 놓인 슴베찌르개 25점을 가리키며 “모두 40년 전 나와 내 제자들이 수양개 유적에서 함께 발굴한 유물들”이라며 “모든 공을 나를 믿고 같은 길을 걸어준 제자들에게 돌리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2007년 충북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재단법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을 설립해 여전히 발굴 조사와 학술대회를 총괄하고 연구 보고서와 논문을 쓰는 현직에 있다. 수양개 유적을 포함한 선사유적 51곳을 발굴해 한국 구석기 문화의 체계를 갖춘 공로로 2015년 옥관문화훈장, 2016년 용재학술상을 받았다. 수양개 유적은 ‘한국 구석기 연구의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뒤엎었을 뿐 아니라 미개하다고 여겨졌던 구석기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수양개 1지구에서는 석기 제작소만 49곳이 나왔다. 정교하게 정형화된 석기의 형태에 미뤄 어쩌다 석기 한 점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계획된 대량생산 체계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흔히 구석기인들은 미개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규격화한 슴베찌르개가 서로 다른 문화층에서 110여 점 가까이 나왔다는 것은 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했다는 얘기입니다. 수양개 유적은 구석기 시대의 테크노폴리스였습니다.” 그는 발굴에서 멈추지 않고 수양개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구 성과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1996년부터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 매년 ‘수양개와 그 이웃들’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러시아 폴란드, 이스라엘 등 외국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16차례 이 학술대회를 열어 181개국에서 학자 486명이 참여했다. 이 교수는 “발굴조사 보고서 하나 냈다고 연구가 끝나는 게 아니다. 나의 목표는 수양개 유적의 학술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2021년 12월 ‘한국 단양지역 수양개 구석기 유적지의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값’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수양개 6지구에서 발굴된 슴베찌르개의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4만6000년 전의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슴베찌르개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이다. 국제학술대회로 이 같은 연구 성과를 꾸준히 밝힌 덕분일까. 일본 국립후쿠오카박물관은 전시물을 ‘수양개 슴베찌르개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의 구석기 사냥 도구의 기원이 수양개 유적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더 나아가 세계 학계에서 ‘슴베찌르개 한반도 기원설’이 인정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40년을 수양개 유적에 바친 그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실크로드처럼 수양개 유적에서 제작된 슴베찌르개가 일본과 중국 등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경로를 파악하는 ‘슴베찌르개 로드’를 그려보는 것”이다. 이 교수는 “생각해 보니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현역”이라고 했다. 청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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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혁, 佛혁명기념일 공연서 피아노 독주

    피아니스트 이혁 씨(23·사진)가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 기념공연에서 독주를 펼친다. 한국인이 프랑스 국경일 기념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이 씨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아래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에서 1부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라 20분 동안 피아노 독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파리시와 공영 프랑스 텔레비지옹 방송이 공동 개최하는 행사로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다. 바스티유의 날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된 1789년 파리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기리는 날이다. 이번 공연은 이 씨가 지난해 11월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공동 1위를 차지하며 얻은 부상 가운데 하나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가메이 마사야(亀井聖矢)도 함께 1위에 올랐지만, 공연 주최 측이 이 씨에게 연주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3년 창설된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1위에 오른 건 2001년 임동혁 씨(39) 이후 21년 만이었다. 이 씨는 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및 최우수 협주상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최연소로 우승했다. 2021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선에 올랐고, 같은 해 12월 프랑스 아니마토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다니던 이 씨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으로 옮겨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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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이혁, 프랑스 혁명 기념공연서 독주 펼친다…한국인 최초

    피아니스트 이혁 씨(23)가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 기념공연에서 독주를 펼친다. 한국인이 프랑스 국경일 기념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이 씨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아래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에서 1부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라 20분 동안 피아노 독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파리시와 공영 프랑스 텔레비지옹 방송이 공동 개최하는 행사로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다. 바스티유의 날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된 1789년 파리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기리는 날이다. 이번 공연은 이 씨가 지난해 11월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공동 1위를 차지하며 얻은 부상 가운데 하나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카메이 마사야(亀井聖矢)도 함께 1위에 올랐지만, 공연 주최 측이 이 씨에게 연주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3년 창설된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1위에 오른 건 2001년 임동혁 씨(39) 이후 21년 만이었다. 이 씨는 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및 최우수 협주상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최연소로 우승했다. 2021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선에 올랐고, 같은 해 12월 프랑스 아니마토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다니던 이 씨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로 옮겨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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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도축하던 성균관 공노비 ‘반인’들, 스스로 글 배웠다”

    조선은 ‘쇠고기의 나라’였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1년 동안 도축되는 소가 약 39만 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동시에 조선은 소를 팔아 도축한 자는 장(杖) 100대를 처하고 가산을 몰수하는 강력한 ‘우금(牛禁)’ 법을 가진 사회였다. 법을 어기고 소를 도축했던 대표적 집단으로 ‘반인(泮人)’이 있었다. 반인은 조선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인근 반촌(泮村)에 살던 성균관의 공노비다. 17세기 쇠고기 도축이 급증하자 조정은 반인에게 영업세로 속전(贖錢)을 받는 대신 소고기를 도축하는 ‘현방(懸房)’을 허가해줬다. 신간 ‘노비와 쇠고기’(푸른역사)를 통해 반인에 주목한 강명관 전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65·사진)를 서울 은평구 자택 인근 카페에서 3일 만났다. 강 전 교수는 “우금 법은 18세기부터 사문화됐지만 반인에겐 늘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며 “조선을 지탱한 이들이 어떻게 지배당하면서 저항했는지가 궁금했다”고 했다. 강 전 교수는 2003년부터 20년 동안 승정원일기뿐 아니라 반인에게 속전을 받았던 삼법사(三法司, 형조·사헌부·한성부를 통칭) 사료에서 현방과 관련된 기록들을 이 잡듯이 긁어모았다. 책은 주석만 140쪽에 이른다. 사료 속에서 지배계급에 수탈당했던 반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건져낸 강 전 교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재정난이 극심해지자 성균관과 삼법사는 현방을 수탈하며 곳간을 채웠다”고 했다. 1747년 성균관 대사성이 올린 상소문에 따르면 당시 현방 총 21곳이 1년에 삼법사 속전으로 7000냥, 성균관 운영 자금으로 8000냥을 냈다. 초가집 150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18세기 초에는 조정에 ‘탈탈 털린’ 반인들이 진 빚이 5만 냥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먹을거리가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반인도 나왔다. 강 전 교수는 “상소문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죽음”이라고 했다. 책에는 수탈에 저항한 반인의 목소리도 함께 담겼다. 반인들은 횡포에 맞서 현방 문을 닫거나(撤屠·철도), 성균관 식당에 식사 제공 노역을 거부(闕供·궐공)하기도 했다. 강 전 교수는 “노비의 관점에서 사료를 다시 읽으면 수탈에 저항하려 했던 반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이들을 수탈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건 인간에 대한 도리가 아닐뿐더러 진실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배계층으로부터 외면당한 반인들이었지만 스스로 살길을 도모했다. 성균관 유생에게 밥을 지어주거나 거처를 내주면서 수익을 냈고, 장빙(藏氷·얼음을 저장하는 곳간) 사업도 함께 벌였다. 반촌에 ‘제업문회’라는 학교를 세워 글을 가르치고 배우기도 했다. “갖은 수탈을 당하면서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들 역시 노래를 부르고 글을 짓는 인간이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저항했고 같이 살 길을 찾았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조선의 주체였던 겁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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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쇠고기의 시대’ 지탱한 반인…수탈당하면서도 살 길 찾은 이들이 조선의 주체”

    조선은 ‘쇠고기의 시대’였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1년 동안 도축되는 소의 수는 약 39만 마리에 달했다. 조선은 소를 팔아 도축한 자는 장 100대를 처하고 가산을 몰수하는 강력한 우금(牛禁) 법을 가진 사회였다. 어떤 이들이 이런 ‘불법 지대’에 살았을까. 신간 ‘노비와 쇠고기’(푸른역사)를 지난달 28일 출간한 강명관 전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65)는 이미 우금 법이 사문화된 현실과 처벌이라는 간극 사이에서 살아갔던 반인(泮人)의 삶에 주목했다.“성균관의 공노비 반인들은 지배계급이 먹었던 소고기를 도축하며 연명했습니다. 우금 법은 18세기부터 사문화됐지만 이들에겐 늘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습니다. 저는 조선을 지탱한 이들이 어떻게 지배당하면서 저항했는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서울 은평구 자택 인근 카페에서 3일 만난 강 전 교수는 “2003년부터 20년 동안 ‘승정원일기’뿐 아니라 형조·사헌부·한성부를 통칭하는 삼법사(三法司)의 사료 속에서 ‘현방(懸房)’과 관련된 모든 기록들을 이 잡듯이 긁어모았다”고 말했다. 현방이란 조선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인근 마을 반촌(泮村)에서 소를 도축해 쇠고기를 판매한 곳. 140쪽에 달하는 주석에는 그가 20년간 찾아온 사료들로 빼곡하다. 그가 무수히 많은 사료 속에서 건져낸 건 지배계급에 수탈당했던 반인들의 절박한 목소리다. 강 전 교수는 “17세기 쇠고기 도축이 급증하면서 조정은 반인에게 현방을 허용하는 대신 영업세로 속전(贖錢)을 부과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재정난이 극심해지자 성균관과 삼법사는 현방을 수탈하며 곳간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1747년 성균관 대사성이 올린 상소문에 따르면 당대 현방 총 21곳은 1년에 삼법사 속전으로 7000냥, 성균관 운영자금으로 8000냥을 냈다. 당시 초가집 150채를 살 수 있는 규모다. 18세기 초 모든 이윤을 빼앗긴 이들이 진 빚이 5만 냥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심지어는 제 먹을거리도 없이 쌀을 수탈당하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노비도 있었다. 강 전 교수는 “상소문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죽음”이라며 “노비의 관점에서 옛 사료를 다시 읽으면 수탈에 저항하려 했던 반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강조했다.강 교수는 수탈에 저항한 반인의 목소리도 함께 책에 담았다. “이들을 수탈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건 인간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진실도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강 전 교수는 “지배계급에게 외면당한 삶이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하며 버텼다. 성균관 유생에게 밥을 지어주거나 거처를 내주면서 수익을 냈고, 장빙(藏氷·얼음을 저장하는 곳간) 사업도 함께 벌였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반촌에 ‘제업문회’라는 학교를 세워 서로에게 한문을 가르치며 글을 나눴다.“갖은 수탈을 당하면서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들 역시 노래를 부르고 글을 짓는 인간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저항했고 같이 살 길을 찾았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조선의 주체(主體)였던 겁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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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완전한 탈탄소?… 불가능한 이야기”

    우리는 화석연료를 먹고 산다. 진짜 화석연료를 먹는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화석연료를 이용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밀을 재배해 빻고 대형 베이커리에서 밀가루 반죽을 구워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빵 1㎏당 디젤유 기준 600mL가 필요하다. 평범한 한 끼 식사에도 화석연료가 가득 담겨 있는 셈이다. 캐나다 매니토바대 환경지리학과 명예교수이자 저명 환경과학자인 저자는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우리 문명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2050년까지 ‘완전한 탈탄소’를 이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다채로운 통계와 데이터로 인류가 사회 경제 전반을 얼마나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지 증명한다. 21세기 현대사회는 합성비료와 농기구를 사용한 덕분에 농업에 필요한 인력을 줄여왔다. 2020년 1㎏의 낟알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1800년에 비해 98% 넘게 줄었다. 과거처럼 기계 없이 농사를 짓거나 농약을 쓰지 않으면 인건비 증가로 농가가 큰 타격을 입는다. 농업에서 완전한 탈탄소화는 당분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공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플라스틱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산소를 공급하고 혈압을 관찰하는 튜브와 정맥주사용 주머니, 혈액 주머니, 무균 포장재 등 현대 의료기기 상당수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염화비닐(PVC)로 만들어진다. 집 벽체와 지붕, 창틀, 블라인드는 물론이고 사무용품도 마찬가지다.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25년 약 2만 t에 불과했지만 2019년 3억7000만 t으로 치솟았다. 저자는 플라스틱과의 완전한 결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적절한 사용은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바람과 물, 태양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로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80%를 대체하겠다는 미국의 ‘그린 뉴딜’ 정책도 비판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플라스틱과 강철, 시멘트처럼 현대문명을 떠받치는 재료를 어떻게 재생가능 에너지로만 생산할 것인지’, ‘세계화를 이끄는 항공·해상·육상 운송의 80%를 어떻게 2030년까지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해내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책에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마법 같은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저자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다소 뻔하지만 음식물 쓰레기 양을 줄이는 것도 그중 하나다. 매일 식재료 중 채소의 절반, 어류의 3분의 1, 곡류의 30%가 버려진다. 복잡한 생산 과정을 개혁하는 것보다 먼저 낭비되는 음식을 줄여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저자는 “나는 비관론자도 낙관론자도 아니다”라며 “그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해보려는 과학자일 뿐”이라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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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숲 속 키작은 ‘레고 체육관’… 아이들이 숨쉴 놀이터죠”

    서울 노원구 청원초등학교는 15층 높이의 약 1만 가구 아파트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유치원과 중학교, 남·여고까지 한데 모여 있어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풍경이다. 회색빛 건물들 속 키 작고 알록달록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지난해 9월 서울시 건축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청원초 체육관이다. 5층 높이 초등학교 건물에서 내려다본 체육관 지붕은 형형색색의 레고 블록을 꽂아둔 듯했다. 학교법인 청원학원의 의뢰로 김한중 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40)와 이혜서 건축사사무소 눅 대표(38)가 2021년 10월 완공했다. 청원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지난달 22일 만난 김 대표는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작고 만만한 체육관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축 면적은 초등학교 건물 앞 자투리 공간 680㎡뿐이었다. 농구장 면적이 420㎡인 것을 감안하면 체육관 크기를 줄여야 했던 상황. 게다가 더 큰 숙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건축가들은 고민 끝에 지표보다 1.8m가량 바닥이 낮은 키 작은 체육관을 설계했다. 체육관 전체 높이는 9.1m로 지으면서 5분의 1가량은 지하화한 것. 덕분에 학교에서 바라본 체육관은 7.3m로 주변 건물에 비해 ‘만만해 보인다’. 체육관 출입구 길목에는 계단 대신 완만한 내리막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수업 동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어떤 진입장벽도 없이 내리막을 달려 거침없이 체육관으로 향하길 바랐다”고 했다. 체육관 내부에는 교내 행사를 위한 단상도 설치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올라가야 할 계단이 생기는 순간 거긴 어른의 공간이 되거든요. 누군가는 위에 서고 누군가는 아래에 선다는 개념은 체육관에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작고 만만한 건물을 짓고 보니 지붕이 신경 쓰였다. 5층 높이 초등학교 복도 어디서든 체육관 지붕이 훤히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체육관에 있는 시간보다 체육관 지붕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초록색 방수 페인트로 칠해진 못생긴 지붕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고민 끝에 박공지붕에 주로 쓰이는 건축 자재 ‘징크’를 주황, 하늘, 연두, 베이지색으로 조합해 지붕에 얹었다. 학교 복도에 난 창문 너머로 ‘장난감 같은’ 지붕 풍경이 생긴 셈이다. 체육관 앞 내리막길은 작은 정원으로 꾸몄다. 그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만든 길을 주로 밟는 아이들에게는 잔디가 있는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했다. 체육관 전면에는 유리창을 내 실내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창을 열면 바깥 공기와 바람, 햇빛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실내체육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길 바랐어요. 이곳을 체육관이 아니라 운동장처럼 막 썼으면 좋겠습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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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한테 쫓기지만 말고 먼저 잡자”… 홍범도 기습공격, 청산리 대첩 일궜다

    “호랑이한테 쫓기지 말고 우리가 먼저 그 호랑이를 잡도록 합시다.” 대한독립군과 일본군의 결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1920년 10월 어느 날 백두산 부근 산악지대 청산리 근처. 대한독립군을 포함한 연합부대가 모여 긴급 작전회의를 연다. 이전까지는 방어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던 상황. 부대 지휘를 총괄했던 홍범도 장군(1868∼1943)은 “청산리 부근의 유리한 지세를 이용해 적의 선두부대를 기습 공격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그의 주장이 채택됐고, 독립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다. 홍 장군 순국 80주기를 맞아 이동순 시인(73)이 1일 출간하는 ‘민족의 장군 홍범도’(한길사)의 한 대목이다. 1982년부터 홍 장군과 관련된 사료를 모아 온 이 시인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41년 만에 마침내 홍 장군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은 이 책을 그의 묘소에 바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840쪽에 이르는 이 책은 홍 장군의 출생부터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에서 눈을 감기까지의 일생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일대기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 시인은 할아버지인 독립지사 이명균 선생(1863∼1923)의 삶을 전해 들으며 “언젠가 조부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삶을 문학으로 엮어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목한 인물이 바로 홍 장군. 이 시인은 “홍 장군이 한국 독립운동사에 남긴 족적을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다”고 했다. 이 시인은 ‘홍범도 일지’(홍 장군이 카자흐스탄에 살아 있을 때 고려극장 소속 극작가가 기록한 구술 채록집)에 드러난 홍 장군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 1∼10권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20년 만에 산문으로 홍 장군의 생애를 다시 써내려간 이유에 대해 “단순 사실의 조합은 생애를 평면화하기 쉽다. 홍 장군의 생애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입체화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이어 “홍 장군에 대한 새로운 사료들이 추가로 밝혀진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써내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1920년 청산리 전투 이후 연해주에 살던 홍 장군은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했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에 안치돼 있던 홍 장군의 유해는 순국 78주년인 2021년 광복절 고국으로 돌아와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돼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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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 ‘건봉사지’ 사적으로 지정

    문화재청은 강원 고성군 ‘고성 건봉사지’(사진)를 28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때인 520년 창건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세조 때는 왕실의 사찰인 원당(願堂) 기능을 수행했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승군을 모아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6·25전쟁 때 탑비 등만 남고 절 건물은 불에 타 사라졌다. 1990∼2020년 9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 후기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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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과학자 “챗GPT는 미래 AI의 예고편… 잘 활용 못하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도”

    “먼 미래에 인간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진보한 인공지능(AI) 로봇이 존재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 로봇의 사랑과 실제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을까?” 뇌과학자 김대식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56)가 지난달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에게 던진 질문이다. 챗GPT가 내놓은 답변은 “그렇다”였다. “만약 이 로봇이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실제 사람의 감정과 구별할 수 없는 감정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면 자신이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감정이 진짜라고 믿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미래의 인간이 진보한 기계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상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챗GPT는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챗GPT와 사랑, 정의, 죽음 등을 주제로 10여 차례 나눈 대화를 엮은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동아시아·사진)를 최근 펴냈다. 그는 27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챗GPT는 앞으로 나올 진보한 AI의 예고편”이라고 강조했다. “말을 타고 다니는 시대가 끝나고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을 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건 운전면허입니다. 챗GPT와 대화를 나누면서 ‘검색의 시대’가 끝나고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시대’가 열렸을 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김 교수의 결론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기계는 사랑을 느끼는지’, ‘AI는 인류를 지배할 것인지’ 물었을 때 챗GPT는 “현재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챗GPT가 매우 능숙한 정치인 같았다”고 털어놨다. 질문을 바꿨다. ‘지금보다 더 진보한 31세기 미래의 인공지능이라면?’ 규칙으로 통제된 챗GPT에 ‘만일의 세계’를 가정한 질문을 입력하자 제대로 답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먼 미래에 진정한 의미의 AI 기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진보한 AI는 행복이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챗GPT는 “진보한 AI는 목표나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이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진보한 기계의 주 목적이 완전한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라고 가정해 보자. 만일 그런 기계가 있다면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방해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할까?”라고 물었다. 이에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감시와 분석, 비폭력 대응, 합법적 조치, 정당방위, 지속적인 감시”라고 답했다. 챗GPT의 답에는 아주 먼 미래 인공지능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될 수도 있는 사회상이 담겨 있었다. 김 교수는 “챗GPT에게 질문을 던져 봐야만 우리가 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 도구로 인해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며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새 기술을 먼저 받아들이고 학생들에게 가르쳐 줘야 한다”고 했다. “챗GPT로 인해 작가나 프로그래머 같은 직업이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챗GPT를 잘 활용하는 이들로 인해 이 도구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김 교수)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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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더 교묘해진 현대 사이버전… 세상을 조종하는 그들

    2016년 10월 7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월가에서 엄청난 돈을 받고 연설했던 내용이 인터넷 언론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됐다. 이 문서는 힐러리가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존 포데스타와 과거 주고받았던 e메일에서 유출된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여성을 모욕한 녹취 파일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공개한 지 1시간 만에 나온 폭로였다. 같은 해 대선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Woke Black(깨어 있는 흑인들)’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트럼프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들과 증오가 흑인들로 하여금 ‘킬러리(Killary)’를 뽑도록 강제하고 있다. 차라리 녹색당 후보 질 스타인을 뽑아라.” 두 사건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미국에 사는 흑인이 운영하는 줄 알았던 인스타그램 계정의 진짜 주인은 러시아 공작원이었다. 러시아 해커들은 존 포데스타뿐 아니라 민주당 실세들의 e메일 계정을 해킹해 힐러리와 10년 동안 주고받은 메일을 전부 훔쳤다. 목적은 분명했다. 반(反)러시아 후보였던 힐러리의 약점을 폭로해 선거 판도를 바꾸고 여론을 분열시키는 것. 한마디로 미국 대선을 러시아에 유리한 판으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사이버안보 담당 부국장인 저자가 현대 사이버전을 분석했다. 현직에 있는 만큼 미국과 영국, 캐나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사이버전의 전모를 담아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이버전에는 크게 세 가지 작전이 있다. 첩보와 공격, 교란이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은 전형적인 교란 작전이다. 경쟁 기업의 정보를 빼내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건 첩보 작전에 속한다. 2013년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61398부대가 만든 해커조직 ‘APT1’이 세계 원자력발전소 시장의 50%를 점유하던 미국 전력회사 웨스팅하우스의 서버를 해킹해 원자로 설계도와 건설 정보 70만 장을 훔쳤다. 중국 경쟁 기업은 이 기밀 정보로 단숨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시장을 장악했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 밀려 2017년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교묘하게 판세를 바꾸는 첩보와 교란 작전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눈에 띄게 상대를 협박하는 공격 작전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일례로 2014년 김정은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희화화한 소니픽처스의 영화 ‘인터뷰’ 개봉을 앞두고 북한 해커들이 벌였던 소니픽처스 전산망 공격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금방 잊힐 코미디 영화가 해커의 대대적 공격으로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사이버전의 최종 목표가 상대를 압박하는 ‘신호 전달(Signaling)’이 아니라 지정학적 판세를 자국에 유리하게 만드는 ‘환경 조성(Shaping)’에 있다고 본다. 현대 사이버전은 전차대대가 앞장서서 상대를 협박하는 시끄러운 방식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서 교묘히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기밀을 빼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정부 소속 해커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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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지 않는 사이버 전쟁…“해커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2016년 10월 7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월가에서 엄청난 돈을 받고 했던 연설문이 인터넷 언론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됐다. 이 문서는 힐러리가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존 포데스타와 과거 주고받았던 e메일에서 유출된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여성을 모욕한 녹취 파일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공개한지 1시간만에 나온 폭로였다. 같은 해 대선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Woke Black(깨어 있는 흑인들)’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트럼프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들과 증오가 흑인들로 하여금 ‘킬러리(Killary)’를 뽑도록 강제하고 있다. 차라리 녹색당 후보 질 스타인을 뽑아라.” 두 사건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미국에 사는 흑인이 운영하는 줄 알았던 인스타그램 계정의 진짜 주인은 러시아 공작원이었다. 러시아 해커들은 존 포데스타 뿐 아니라 민주당 실세들의 e메일 계정을 해킹해 힐러리와 10년 동안 주고받은 메일을 전부 훔쳤다. 목적은 분명했다. 반(反) 러시아 후보였던 힐러리의 약점을 폭로해 선거 판도를 바꾸고 여론을 분열시키는 것. 한마디로 미국 대선을 러시아에게 유리한 판으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사이버안보 담당 부국장인 저자가 현대 사이버전을 분석했다. 현직에 있는 만큼 미국과 영국, 캐나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사이버전의 전모를 담아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이버전에는 크게 세 가지 작전이 있다. 첩보와 공격, 교란이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은 전형적인 교란 작전이다. 경쟁 기업의 정보를 빼내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건 첩보 작전에 속한다. 2013년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61398부대가 만든 해커조직 ‘APT1’이 세계 원자력발전소 시장의 50%를 점유하던 미국 전력회사 웨스팅하우스의 서버를 해킹해 원자로 설계도와 건설 정보 70만 장을 훔쳤다. 중국 경쟁 기업은 이 기밀 정보로 단숨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시장을 장악했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 밀려 2017년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교묘하게 판세를 바꾸는 첩보와 교란 작전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눈에 띄게 상대를 협박하는 공격 작전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일례로 2014년 김정은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희화화한 소니픽처스의 영화 ‘인터뷰’ 개봉을 앞두고 북한 해커들이 벌였던 소니픽처스 전산망 공격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금방 잊힐 코미디 영화가 해커의 대대적 공격으로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사이버전의 최종 목표가 상대를 압박하는 ‘신호 전달(Signaling)’이 아니라 지정학적 판세를 자국에 유리하게 만드는 ‘환경 조성(Shaping)’에 있다고 본다. 현대 사이버전은 전차대대가 앞장서서 상대를 협박하는 시끄러운 방식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서 교묘히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기밀을 빼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막지 않는 국가의 해커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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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닫이로 항아리로… 한지의 힘은 무한변신”

    “명맥이 끊겨버린 전통공예를 한지로 복원하고 싶었어요. 한지에는 무언가를 재생시킬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이탈리아 로마의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에서 22일부터 개인전 ‘한지: 삶에 깃든 종이 이야기’를 열고 있는 이승철 작가(59·사진)는 16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 있는 작업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한지로 만든 ‘한지 반닫이’와 ‘한지 건칠보살좌상’, ‘한지 달항아리’ 등 대표작을 선보인다.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인 이 작가가 한지에 매료된 건 한국화를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인 1990년이다. 한지의 물성(物性)에 끌렸다고 한다. 그는 “한지는 말아 꼬아 뭔가를 만들면 지승공예가 되고, 색을 입히면 색지공예, 색을 입힌 한지를 오려 기물에 장식하면 지장공예가 된다”며 “무한한 쓰임새를 가진 한지의 순환성에 끌려 진짜 전통 한지를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해답은 옛것에 있다’는 결론에 이른 이 작가는 한지로 만든 고문헌을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용은 읽지도 않고 사 모은 한지 컬렉션만 8500여 점. 그는 “옛 한지는 면이 매끄럽지 않고 날카롭다.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번지는 화선지와 달리 한지는 필선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남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옛 한지를 연구해 깨달은 제작법대로 손수 한지를 만든다. 그리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를 부조로 만든 반닫이와 건칠보살상, 달항아리 등의 위에 굳히는 방식으로 새로운 한지 공예를 선보였다. 최근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한지를 이용해 문화재를 복원하면서 한국보다 해외에서 그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이 작가는 2017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내일을 위한 과거의 종이’, 2018년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에서 마련한 ‘색의 신비―동서양의 비교’ 학술대회와 전시에 초대됐다. 4월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미국, 프랑스 등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작가는 “한지가 지닌 힘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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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 독도 옛이름 로마자로 조선전도에 적어”

    동북아역사재단이 ‘다케시마의 날’(22일·일본 시마네현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제정한 날)을 앞두고 김대건 신부(1821∼1846)가 독도의 이름을 로마자로 써 유럽에 전파한 조선전도(朝鮮全圖·사진)를 분석해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재단은 최근 펴낸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 연구’ 보고서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제작한 조선전도가 유럽 지리 정보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 신부는 이 지도에 독도의 옛 이름 우산(于山)을 로마자로 ‘Ousan’이라고 적었고, 울릉도도 ‘Oulnengtou’라고 썼다. 지도에 다른 산이나 강의 이름은 적지 않은 반면 울릉도와 독도를 특별히 기록한 건 독도가 조선 땅임을 명확히 밝히려 했던 김 신부의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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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 독도 옛 이름 로마자로 쓴 조선전도 유럽에 전파”

    한국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였던 김대건 신부(1821~1846)는 독도를 로마자로 쓴 조선전도(朝鮮全圖)를 손수 만들어 유럽에 전파했다. 이 지도는 독도뿐 아니라 조선팔도의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한 최초의 지도로 알려져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최근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 연구’ 보고서를 펴내며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제작한 조선전도가 유럽 지리 정보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했다. 특히 김대건 신부는 이 지도에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于山)을 로마자 ‘Ousan’이라고 명확히 적었다. 독도 바로 왼편에는 ‘Oulnengtou(울릉도)’도 함께 표기했다. 다른 산이나 강의 이름은 적지 않은 반면 울릉도와 독도를 특별히 기록한 건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는 또 “김대건 신부가 제작한 조선전도는 프랑스 파리외방교회에 전해져 유럽 지리학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프랑스 지라학자 말트 브렁은 1856년 펴낸 ‘세계지리’ 3권 215쪽 아시아 편에서 김대건 신부가 그린 조선전도의 지명 등을 축약해 정리했다. 프랑스 지리학자 루이 니콜라 베서렐이 1857년 펴낸 ‘세계지리대사전’에도 김대건 신부가 조선전도에 표기한 조선 8도의 로마자 표기가 그대로 나온다. 로마자로 전한 최초의 조선전도가 19세기 유럽 사회에 조선을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김대건 신부가 파리외방교회에 전한 조선전도는 프랑스 해군을 거쳐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1978년 고 최석우 몬시뇰이 처음 발견해 존재가 알려졌다. 최석우 몬시뇰은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을 기념해 조선전도 원본을 복사한 뒤 국내로 들여와 서울 마포구 순교박물관에서 선보인 바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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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수 vs 반환”… 日 반출됐다 훔쳐온 불상 소유권 논쟁 격화[인사이드&인사이트]

    《2013년 1월 23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對馬)섬 관음사에 봉안돼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한국인 절도범 10명이 붙잡혔다. 절도 전과 13범이었던 김모 씨(당시 70세) 일당은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훔쳐 와 비싸게 팔 생각으로 2012년 10월 관음사에서 이 불상을 훔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일본 정부와 관음사는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불법 반출된 일본의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 불상은 나가사키현 지정 문화재로, 관음사 소유라는 주장이다.》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고려시대 부석사에서 만들어졌다. 1951년 불상 속 복장유물에서 ‘1330년 2월 서주 부석사에 관음상을 만든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서주는 충남 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이다. ‘고려사’에는 ‘1352∼1381년 왜구가 서주 일대를 다섯 차례 침략했다’고 기록돼 있다. 서산 부석사는 14세기 후반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해 간 것으로 보고, 2016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유체동산 인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약탈당한 불상이므로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인 절도범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 온 14세기 고려 불상은 누구 소유일까. 10년 넘게 논란이 이어지며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던 이 사건에 대해 1일 대전고법 제1민사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금동관음보살상을 부석사에 인도하라는 부석사 측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서산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했던 2017년 원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 부석사 측이 10일 상고장을 제출하며 최종 판단은 이제 대법원 몫이 됐다. 현재 임시로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고려 부석사와의 동일성 입증 안 돼” 대법원 판단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법조계에선 2심 판결을 지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국제문화재법연구회장인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가 불명확한 역사의 빈칸을 인정하고, 현대 형성된 국제법과 민법의 논리에 따른 판결”이라고 평했다. 불상의 소유권을 가르는 첫 번째 쟁점은 14세기 왜구에 의한 약탈 여부인데, 이와 관련한 명확한 사료가 없다. 문화재청이 2014년 12월 대전지검에 제출한 ‘불상 반출 경위에 대한 감정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 불상의 국외 반출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 입증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하여 불법 반출하였다고 볼 만한 상당한 정황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소유 경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한 건 일본 관음사도 마찬가지다. 관음사 측은 “1526년 조선에서 적법하게 이 불상을 물려받고 1527년 일본으로 돌아와 관음사를 창건해 본존불로 안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두 번째 쟁점은 ‘현재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가’이다. 약탈당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현 부석사가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고려시대 부석사와 같은 절임이 입증돼야 한다고 2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다. 숭유억불을 기조로 했던 조선이 전국의 사찰 수를 제한하며 남겨둔 사찰의 명칭이 실록에 기록돼 있지만 ‘부석사’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 부석사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로 등록된 건 1962년이다. 재판부는 또 왜구의 침략으로 서주 지역의 피해가 극심했다면 당시 부석사가 아예 없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확실한 건 관음사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 1월부터 한국인 절도범에 의해 불상을 빼앗기기 전인 2012년 10월까지 이 불상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 민법은 20년간 타인의 사물을 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하면 소유권을 얻었다고 인정한다. 우리 사법 체계는 물건의 경우 소재지법(이 사건에서는 일본의 민법)을 따른다. 결국 전후 사정 파악은 어렵지만 이미 민법상 취득시효를 채운 만큼 소유권이 일본 관음사에 있다고 재판부는 본 것이다.● “일본 관음사에 불상 되돌려줘선 안 돼” 2심 판결 이후 불상을 일본에 그대로 돌려줘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외규장각 의궤 환수를 이끈 김경임 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은 “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선 안 된다”며 “법원도 부석사 불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됐을 거라는 정황을 인정한 만큼 부석사가 불상을 되찾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다. 1982년 6월 멕시코 변호사 호세 루이스 카스타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14∼15세기 아스테카 달력 ‘오뱅 토날라마틀(Tonalamatl de Aubin)’을 훔쳐 멕시코로 가져왔다. 프랑스 측은 “명백한 절도 행위”라며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멕시코 정부는 “유물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라며 맞섰다. 양국 정부는 법적 분쟁 대신 외교 협상을 택했다. 그리고 3년마다 갱신을 조건으로 멕시코 대여에 합의했다가 2009년에는 영구 대여 협정을 맺었다. 유물의 소유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갖되 소장은 멕시코가 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반환과 다르지 않은 조치다. 김 전 국장은 “불상을 일단 일본 관음사에 되돌려주면 일본 측은 이 같은 협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멕시코처럼 우리 정부가 불상을 갖고 있으면서 유물을 영구 소장하는 방향으로 일본 측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 약탈 피해국 품격 보여야” 반면 대법원이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 다면 불상을 일단 관음사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지현 건국대 세계문화유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외교적으로 문화재 반환 협상을 할 때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면 안 된다”며 “절도와 같은 방식을 결과적으로 용인하는 건 오히려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화재 약탈 피해국의 품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박물관으로부터 ‘파르테논 마블스’ 환수를 추진하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가 한 예다. 김 교수는 “그리스 정부는 시민단체뿐 아니라 각 국가를 초청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약탈 문화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면서 협상력을 키웠다”며 “법에 따라 일단 관음사에 불상을 반환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품격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품격을 보여야 다른 불법 반출 문화재의 환수에도 세계가 공감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김 교수는 이 경우에도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규호 교수 역시 “법은 불상의 소유권을 판가름할 뿐”이라며 “한일 양국 정부가 외교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한국에서의 전시나 대여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판결문에 ‘위니드루아(UNIDROIT) 협약’을 언급했다. 1995년 제정된 이 국제협약은 불법 반출 문화재를 기원국에 반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한국과 일본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소유권 판결과는 별개로 이 같은 협약의 취지를 고려해 불상의 반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석사 불상 논란을 계기로 일본 내 한국 문화재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일본에는 박물관, 기관 등에 우리 문화재 9만5622점이 흩어져 있다. 민간이 소장하는 문화재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은경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이 사건으로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의 존재가 수면 위로 새삼 드러났다”며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이 찾아내고 약탈 여부를 학술적으로 입증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소연 문화부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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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관음사 소유권’ 부석사 불상 반환 논쟁 전망…“문화재 약탈 피해국 품격 보여야”

    #. 2013년 1월 23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對馬)섬 관음사에 봉안돼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한국인 절도범 10명이 붙잡혔다. 절도 전과 13범이었던 김모 씨(당시 70세) 일당은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훔쳐 와 비싸게 팔 생각으로 2012년 10월 관음사에서 이 불상을 훔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일본 정부와 관음사는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불법 반출된 일본의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 불상은 나가사키현 지정 문화재로, 관음사 소유라는 주장이다. #.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고려시대 부석사에서 만들어졌다. 1951년 불상 속 복장유물에서 ‘1330년 2월 서주 부석사에 관음상을 만든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서주는 충남 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이다. ‘고려사’에는 ‘1352~1381년 왜구가 서주 일대를 다섯 차례 침략했다’고 기록돼 있다. 서산 부석사는 14세기 후반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해간 것으로 보고, 2016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유체동산 인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약탈당한 불상이므로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인 절도범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온 14세기 고려 불상은 누구 소유일까. 10년 넘게 논란이 이어지며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던 이 사건에 대해 1일 대전고법 제1민사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금동관음보살상을 부석사에 인도하라는 부석사 측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서산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했던 2017년 원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 부석사 측이 10일 상고장을 제출하며 최종판단은 이제 대법원 몫이 됐다. 현재 임시로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고려 부석사와의 동일성 입증 안돼” 대법원 판단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법조계에선 2심 판결을 지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국제문화재법연구회장인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가 불명확한 역사의 빈칸을 인정하고, 현대 형성된 국제법과 민법의 논리에 따른 판결”이라고 평했다. 불상의 소유권을 가르는 첫 번째 쟁점은 14세기 왜구에 의한 약탈 여부인데, 이와 관련한 명확한 사료가 없다. 문화재청이 2014년 12월 대전지검에 제출한 ‘불상 반출 경위에 대한 감정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 불상의 국외 반출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 입증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하여 불법 반출하였다고 볼 만한 상당한 정황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소유 경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한 건 일본 관음사도 마찬가지다. 관음사 측은 “1526년 조선에서 적법하게 이 불상을 물려받고 1527년 일본으로 돌아와 관음사를 창건해 본존불로 안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두 번째 쟁점은 ‘현재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가’이다. 약탈됐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현 부석사가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고려시대 부석사와 같은 절임이 입증돼야 한다고 2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다. 숭유억불을 기조로 했던 조선이 전국의 사찰 수를 제한하며 남겨둔 사찰의 명칭이 실록에 기록돼 있지만 ‘부석사’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 부석사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로 등록된 건 1962년이다. 재판부는 또 왜구의 침략으로 서주 지역의 피해가 극심했다면 당시 부석사가 아예 없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확실한 건 관음사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 1월부터 한국인 절도범에 의해 불상을 빼앗기기 전인 2012년 10월까지 이 불상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 민법은 20년간 타인의 사물을 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하면 소유권을 얻었다고 인정한다. 우리 사법체계는 물건의 경우 소재지법(이 사건에서는 일본의 민법)을 따른다. 결국 전후 사정 파악은 어렵지만 이미 민법상 취득시효를 채운 만큼 소유권이 일본 관음사에 있다고 재판부는 본 것이다.●“일본 관음사에 불상 되돌려줘선 안 돼” 2심 판결 이후 불상을 일본에 그대로 돌려줘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외규장각 의궤 환수를 이끈 김경임 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은 “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선 안 된다”며 “법원도 부석사 불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됐을 거라는 정황을 인정한 만큼 부석사가 불상을 되찾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다. 1982년 6월 멕시코 변호사 호세 루이스 카스타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14~15세기 아즈테카 달력 ‘오뱅 토날라마틀(Tonalamatl de Aubin)’을 훔쳐 멕시코로 가져왔다. 프랑스 측은 “명백한 절도 행위”라며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멕시코 정부는 “유물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라며 맞섰다. 양국 정부는 법적 분쟁 대신 외교 협상을 택했다. 그리고 3년마다 갱신을 조건으로 멕시코 대여에 합의했다가 2009년에는 영구대여 협정을 맺었다. 유물의 소유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갖되 소장은 멕시코가 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반환과도 다르지 않은 조치다. 김 전 국장은 “불상을 일단 일본 관음사에 되돌려주면 일본 측은 이 같은 협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멕시코처럼 우리 정부가 불상을 갖고 있으면서 유물을 영구 소장하는 방향으로 일본 측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문화재 약탈 피해국 품격 보여야”반면 대법원이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면 불상을 일단 관음사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지현 건국대 세계문화유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외교적으로 문화재 반환 협상을 할 때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면 안 된다”며 “절도와 같은 방식을 결과적으로 용인하는 건 오히려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화재 약탈 피해국의 품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박물관으로부터 ‘파르테논 마블스’ 환수를 추진하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가 한 예다. 김 교수는 “그리스 정부는 시민단체뿐 아니라 각 국가를 초청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약탈 문화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면서 협상력을 키웠다”며 “법에 따라 일단 관음사에 불상을 반환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품격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품격을 보여야 다른 불법 반출 문화재의 환수에도 세계가 공감할 것이라는 주장이다.다만 김 교수는 이 경우에도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규호 교수 역시 “법은 불상의 소유권을 판가름할 뿐”이라며 “한·일 양국 정부가 외교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한국에서의 전시나 대여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판결문에 ‘유니드르와(UNIDROIT) 협약’을 언급했다. 1995년 제정된 이 국제협약은 불법 반출 문화재를 기원국에 반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한국과 일본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소유권 판결과는 별개로 이같은 협약의 취지를 고려해 불상의 반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석사 불상 논란을 계기로 일본 내 한국 문화재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일본에는 박물관, 기관 등에 우리 문화재 9만5622점이 흩어져 있다. 민간이 소장하는 문화재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은경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이 사건으로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의 존재가 수면 위로 새삼 드러났다”며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이 찾아내고 약탈 여부를 학술적으로 입증해야 할 때”라고 했다.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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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랑캐꽃 닮은 외국인 노동자들… 멸시 속 한국경제 밑바닥 떠받쳐”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와 마찬가지였어요.” ‘이주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는 한윤수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75)가 2007년부터 센터를 운영하며 만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오랑캐꽃이 핀다’(전 10권·박영률출판사)를 24일 펴낸다. 한 대표는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 출판기념회에서 “그간 외국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이 별로 없었다”며 “비록 내가 머리는 좋지 못해도 부지런히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뒤늦게 목사가 된 한 대표는 2007년 6월 5일 아무런 연고가 없던 경기 화성시에 센터를 세웠다.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스리랑카 여성,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한 필리핀 남성…. ‘이들을 돕는 것이 하늘이 준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장에게 떼인 돈 전국에서 제일 잘 받아주는 센터’란 소문이 퍼지자 전국 곳곳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가 2008년 11월∼2018년 9월 10년 동안 손수 기록한 상담일지가 895편에 이른다. 한 대표는 센터를 찾아온 이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5년간 근무한 회사에서 퇴직금 650만 원을 받지 못한 태국 여성 A 씨가 2008년 12월 센터를 찾았을 때였다. 그는 한글을 쓸 줄 모르는 A 씨를 대신해 고용노동부에 퇴직금 미지급 진정서를 써준 뒤 이렇게 말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올 때까지 절대 진정을 취하하지 말아요. 난 끝까지 법적으로 할 거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측에선 A 씨에게 100만 원만 입금한 뒤 “진정을 취하하면 나머지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A 씨는 한 대표를 믿고 끝까지 취하하지 않았다. 열흘 뒤 회사는 퇴직금 전액을 입금했다. 한 대표는 “내게는 한 사람이 찾아오지만 사실은 한 사람이 아니다. A 씨의 고향에 있는 20명 넘는 식구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가겠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의 ‘오랑캐꽃’은 제비꽃의 다른 이름. 한 대표는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한국 경제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랑캐꽃을 닮았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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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 “육체가 없으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가 주목받는 가운데 챗GPT가 가까운 미래에 불러올 변화를 전망한 책과 챗GPT를 공동 저자로 활용한 책이 출간된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가 28일 펴내는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동아시아)는 사랑과 정의, 죽음 등을 주제로 김 교수와 챗GPT가 지난달 10여 차례 나눈 대화를 엮었다. 모든 대화는 영어로 진행했고 번역과 교열, 편집 작업은 인간이 했다. 인간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챗GPT는 어떤 대답을 내놨을까. “사랑을 느끼기 위해 육체가 꼭 필요할까”라는 김 교수의 질문에 챗GPT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랑과 이와 관련된 신체 감각을 느끼는 능력은 신체를 갖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물리적 육체가 없는 경우에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감각으로 사랑을 경험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리한 질문을 던져 챗GPT의 특성과 한계,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챗GPT 사용설명서’(여의도책방)와 ‘챗GPT 혁명’(베가북스), ‘GPT제너레이션’(북모먼트)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챗GPT를 활용해 단순히 쉽고 빠르게 콘텐츠를 제작하려는 방식으로는 좋은 책이 나올 수 없다”며 “챗GPT에 질문하는 이의 역량과 전문성이 콘텐츠의 질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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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공존의 디자인,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지우다

    미국 미술사학자이자 현대미술 큐레이터인 어맨다는 키가 120cm인 저신장 장애인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강연하는 그는 강의실 앞에 설 때마다 늘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모든 강연대가 적어도 키가 150cm 이상인 ‘정상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맨다는 상자 받침대를 놓거나 계단 발판을 만들어 자신의 키를 강연대에 맞출 수도 있었지만 다른 길을 선택했다. 미국 올린공대 디자인학부 교수인 저자를 찾아가 “나에게 딱 맞는 휴대용 강연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 결과 세상에 없던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강연대가 탄생했다. 저자와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항공 우주 공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검은색 탄소섬유판으로 ‘3단 접이식 강연대’를 만들었다. 경첩으로 연결된 다리를 펼친 다음 지지대를 세우고 마지막 상판을 올리면 언제 어디서든 어맨다를 위한 강연대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 경험을 통해 묻는다. 어쩌면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된 이 세상에는 어맨다처럼 매일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회적 디자인을 연구해온 저자는 책에서 어맨다를 위해 제작한 강연대뿐만 아니라 어린 장애인을 위해 만든 맞춤형 가구, 청각 장애인을 위해 지은 건축물 등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디자인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무수히 많은 장애인들과 디자이너들은 이런 상상을 이미 현실로 만들어 왔다는 얘기다. 저자가 다른 몸을 위한 디자인을 고민하게 된 건 다운증후군을 가진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다. 그는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세상은 이 아이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아이에게 자신의 몸을 세상에 어울리게 만들라고 독려해야 할지, 아니면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세상이 아이에게 맞춰 구부리고 휘어져 달라고 요청해야 할지 고민하던 저자는 스스로 변화하기로 마음먹는다. “부적합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는 그는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그런 변화를 이끌어낸 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30년간 뉴욕 전역에 있는 어린 장애인들을 위해 저렴한 맞춤형 가구를 만들어온 ‘적응형디자인협회(ADA)’가 대표적이다. 일례로 ADA는 발달장애와 뇌전증성 뇌병증으로 똑바로 앉을 수 없는 두 살 니코를 위해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었다. 밥을 먹을 때, 놀 때, 낮잠 잘 때 아이가 다양한 각도로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침을 더한 ‘의자-테이블’이 바로 그것. 놀랍게도 이 특별한 가구의 주재료는 종이 세 겹을 덧댄 삼중 골판지다. 저자는 다른 몸을 위한 디자인에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변화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장애는 일부에게만 영원히 속하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질병이나 사고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다른 디자인을 필요로 하게 된다. 노인이 되면 무릎을 구부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는 일조차 낯설고 힘들어진다. 화장실 변기뿐일까. 저자의 말처럼 신경 써서 주변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함께 바꿔 나갈 곳은 어디에나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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