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진

최훈진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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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건축디자인 기사를 씁니다. 많이 보고, 듣고, 묻고 쓰겠습니다.

choigiza@donga.com

취재분야

2024-08-28~2024-09-27
사회일반57%
교육17%
보건13%
정치일반7%
사건·범죄3%
기획3%
  • “우리들 피가 끓어… 일제에 항쟁” 비밀결사 만든 여고생

    “우리들의 피가 끓고 힘이 넘쳐흐른다. 노예적 교육제도는 철폐하고 결사, 연구의 자유를 얻어 조선민족 본위의 교육제도를 실현해야 한다. 일본제국에 끝까지 항쟁하자.” 1929년 7월 전북 전주 청수정(현 완산구 교동).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전주여고보) 4학년 임부득(1911∼1987)은 집에서 이 같은 내용이 실린 선전물 ‘뉴쓰’를 만들어 등사했다. 인파가 몰리는 전주극장 앞에서 뿌리기 위해서였다. ‘뉴쓰’는 ‘3·1운동의 유래와 금후의 태도’ 토론문을 실어 당시로부터 10년 전 벌어졌던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하지만 배포 전 계획이 발각돼 임부득과 전주여고보생들은 일제 경찰에 검거됐다.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잊혔던 여성 독립운동가 임부득이 학계에 의해 조명되고 있다.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임부득을 필두로 전주여고보 여학생 19명이 결성한 비밀결사 ‘적광회’는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며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했다. ‘뉴쓰’는 “일본제국주의는 조선민족에게 박해를 가하고 있다. 실로 조선 농민을 위해 싸울 용감한 투사는 투옥되거나 혹은 학살되었다. …경찰 당국과 협력하여 불온사상 단속의 명목으로 백주에 학생의 검속, 고문, 투옥을 감행한다”(1930년 3월 5일 전주지방법원 형사부 판결문)고 고발했다. 이들의 활동은 당시 동아일보에 “같은 학교 3, 4학년생을 중심으로 사상 선전을 하는 동시에 모종의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뉴쓰’라는 선전문 창간호를 전주 청수정 임부득 여사의 집에서 등사해 준비했다”(1929년 8월 3일자 ‘여학생 중심의 비사, 격문 선포 중 발각’)고 보도되기도했다. 임부득은 이 사건으로 붙잡힌 학생 중 유일하게 치안유지법, 출판법 등 위반으로 기소돼 1년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31년 만기 출소했지만 1934년 전북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붙잡혀 또다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전주형무소 행장(교도소 기록)에 따르면 임부득은 교도소 측과의 면담에서 “우리 여성이 경제적으로 해방된다면 정치적 해방도 얻을 수 있다”면서 “여성은 빨리 인형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18세 소녀가 식민지의 모순을 깨닫고 스스로 공부하며 조직을 만들어 주변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과정이 관련 사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당대 여성이 지역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사례는 흔치 않다”고 했다. 지난해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을 통해 임부득 연구를 지원한 독립기념관의 한시준 관장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부득의 오빠 임휘영(1908∼1972)과 남편 김철주(1908∼1977) 역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임휘영은 1926년 전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동맹휴학에 참여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 임휘영과 함께 동맹휴학에 참여한 뒤 자퇴한 김철주는 3년 뒤 임부득과 혼인했고, 부인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해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 살았다. 김철주는 1945년 작성된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의 전주경찰서 요시찰 대상에도 포함돼 있다. 임부득 부부는 광복 후 조용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손자 김모 씨는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부모님께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주변에도 알리지 않고 사셨다”고 말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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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가 끓는다, 일제에 끝까지 항쟁”…18세 소녀의 항일 ‘뉴쓰’

    “우리들의 피가 끓고 힘이 넘쳐흐른다. 노예적 교육제도는 철폐하고 결사, 연구의 자유를 얻어 조선민족 본위의 교육제도를 실현해야 한다. 일본제국에 끝까지 항쟁하자.” 1929년 7월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전주여고보) 4학년생이던 임부득(1911~1987)은 이 같은 내용이 실린 선전물 ‘뉴쓰’를 등사해 배포하려다 발각돼 경찰에 체포됐다. 임부득을 필두로 전주여고보 여학생 19명이 결성한 비밀결사 ‘적광회’(반회)의 항일 민족운동이 처음 외부로 알려진 사건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함께 관련 서적을 읽고 3·1운동의 항일 정신을 되새기며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했다.“일본제국주의는 조선민족에게 박해를 가하고 있다. 실로 조선 농민을 위해 싸울 용감한 투사는 혹은 투옥되거나 혹은 학살되었다. 게다가 심하게는 신성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압박을 가하여 학생의 언론, 집회, 연구의 자유를 빼앗고 사상 선도의 미명을 빙자하여 학생의 제적을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경찰 당국과 협력하여 불온사상 단속의 명목으로 백주(白晝)에 학생의 검속, 고문, 투옥을 감행한다.”(‘뉴쓰’의 일부, 1930년 3월 5일 전주지방법원 형사부 판결문에서 인용) 3·1운동 제104주년을 맞아 거의 잊혔던 여성 독립운동가 임부득이 학계에 의해 새삼 조명되고 있다.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18세 소녀가 식민지의 모순을 깨닫고 스스로 공부하며 조직을 만들어 주변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과정이 임부득과 관련한 사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당대 여성이 지역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하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를 정도로 활발히 활동한 사례는 보기 힘든 만큼 임부득의 생애를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부득의 행적은 당시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됐다. 동아일보는 1929년 8월 3일 ‘여학생중심의 비사(祕社·비밀리에 모여) 격문 선포 중 발각’이라는 기사를 실어 “같은 학교 3, 4학년생을 중심으로 사상 선전을 하는 동시에 모종의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뉴쓰’라는 선전문 창간호를 전주 청수정(현 교동) 임부득 여사의 집에서 등사해 준비했다“고 전했다.‘뉴쓰’의 창간 목적은 식민지 조선의 해방이었다. 학생들은 민족해방운동의 주체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인들이 교육 받을 권리를 강조했다. 이 사건으로 임부득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검거됐지만 유일하게 기소돼 1년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31년 만기 출소했지만 1934년 전북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또 다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전주형무소 행장(교도소 기록)에는 임부득의 여성해방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드러나 있다. 임부득은 상담에서 “우리 여성이 경제적으로 해방된다면 정치적 해방도 얻을 수 있다”면서 “우리 여성은 빨리 인형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부득의 오빠 임휘영(1908~1972)과 남편 김철주(1908~1977) 역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임휘영은 1926년 전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인은 불결한 저질민족’ 등 민족차별적 언행을 일삼은 일본인 교장에 반발해 항일 동맹휴학에 참여하고, 교장을 학교 밖으로 쫓아낸 사건으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임휘영과 함께 동맹휴학에 참여했던 김철주는 3년 뒤 임부득과 혼인했고, 아내와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해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 살았다. 김철주는 1945년 작성된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의 전주경찰서 요시찰 대상에도 포함돼 있다. 1920~1930년대 치열하게 항일운동에 헌신한 두 사람은 해방 후 조용한 삶을 살았다. 임부득 김철주 부부의 손자 김모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부모님께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사실이 알려지면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알리지 않고 사셨다”면서 “할머니는 1987년 광복절 다음날인 8월 16일 돌아가셨다”고 전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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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차별과 낙인’이라는 사회적 질병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외노의원)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된 무료 병원이다.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2011년부터 공중보건의로 이곳에서 3년간 일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환자들은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고통과 통증을 호소했다. 저자는 이들을 진료하며 각각의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과 이주 노동자로 겪는 차별과 낙인이 그들이 호소하는 증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족(중국동포) 환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수많은 증상을 호소한다. 저자는 인류학자들의 분석을 인용해 그 원인을 찾는다. 중국 문화대혁명기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겪으며 생긴 트라우마가 이주 노동이라는 비슷한 현실 속에서 재현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개인이 호소하는 고통과 통증은 어쩌면 개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질환에 얽힌 삶의 서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한 네팔 출신 남성은 음주로 인한 심부전을 앓았다.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낙인으로 직장에서 해고될까 두려워하며 한사코 입원을 거부했다.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용 불안에 그 역시 시달리고 있었다. 뒤늦게 환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저자는 책을 통해 “질병에 붙어 있는 은유와 낙인까지 함께 짐을 지워 미안하다”고 말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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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이어령 前장관 1주기 추모전… 서재-육필원고-초판본 등 전시

    “이번 전시로 이어령 선생님이 무덤에서 나와 다시 사는 인생의 서막을 열게 됐습니다.”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90)은 남편의 1주기(26일)를 앞두고 열린 추모 특별전 ‘이어령의 서(序)’ 개막식에서 “전시 덕분에 이어령 씨가 영혼의 시대를 살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영인문학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시대의 지성’이 살며 가장 오래 머문 곳이자 마지막까지 유작을 쓴 공간인 서재를 전시장에 구현했다. 3개의 원형 공간으로 구성된 ‘창조의 서재’ 코너는 고인이 총괄 기획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해 평화의 상징이 된 굴렁쇠를 본떠 만들었다. 고인의 손때가 묻은 필기구, 육필원고 등 유품을 볼 수 있다. 고인이 집필한 책 185권 가운데 ‘저항의 문학’(1959년) 등 대표작 5권의 초판본도 전시됐다. 전시실 벽면 곳곳엔 그가 남긴 글귀가 쓰였다. “생각을 춤추게 하라. 그리고 춤추듯 살아라.”(‘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관람객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벽면에 떠 있는 이 전 장관의 얼굴 화면 위로 글귀가 덧입혀져 나타나는 미디어아트도 선보인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열린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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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상징의 미학으로 팬데믹 극복 노력… 아름답고 처절”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0회 영랑시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예심 심사위원회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17일 심사를 진행해 5개 작품을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영랑시문학상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그의 시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현한 시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지난달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 시인)는 올해 운영 요강과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 기준을 확정하고 예·본심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예심 위원인 이지엽 배한봉 이근화 시인은 ‘등단한 지 20년 이상 된 시인이 2021, 2022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기존 수상작 제외)으로 올해 1월부터 15개 작품을 선정했다. 이 중 심사를 거쳐 5개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선태 시인의 ‘짧다’ △김제현 시인의 ‘시간’ △박판식 시인의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임선기 시인의 ‘피아노로 가는 눈밭’ △최영철 시인의 ‘멸종 미안족’이다(이상 작가명 가나다순). 김선태 시인의 ‘짧다’는 서정시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언어의 압축미를 잘 구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간결한 진술이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고 평가했다. 김제현 시인의 ‘시간’은 언어의 아름다움과 운율의 미학을 웅숭깊게 보여주는 시조시집이다. “세계와 사회, 인생의 형이상학적인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물 흐르듯이 펼치는 사색과 통찰의 깊이가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인의 ‘나는 내 인생에…’는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심사위원들은 “엄살 피우거나 과장하지 않고 감상을 늘어놓지도 않는다”며 “단단한 힘이 맺히는 것은 일상의 구체적 생생함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임 시인의 ‘피아노로 가는 눈밭’은 상투성을 배제한 간결한 언어를 사용했다. “간소한 아름다움 속에 낯선 울림과 매혹적인 호흡이 전해진다. 오랜 시간 언어를 매만지며 고심한 끝에 건져 올린 미감이 드러나 있다”고 평했다. 최 시인의 ‘멸종 미안족’은 서민의 삶을 서정적으로 담았다. “지치고 허기진 존재들이 둘러앉아 더운밥을 나누며 험한 세상 살아내느라 그동안 애썼다고 서로 등을 다독이며 오순도순 얘기를 건네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햇발 같은 숨결, 샘물 같은 리듬을 보여주는 중견시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며 “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한 시기에도 어려운 현실을 은유와 상징의 미학으로 극복해 낸 시인들의 노력이 처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본심은 다음 달 17일 열린다. 시상식은 4월 14일 전남 강진군 영랑 생가에서 개최된다. 상금은 3000만 원.“영랑의 시대정신과 주옥같은 시 오래도록 남길것”강진원 강진군수 축하 메시지“영랑의 시대정신과 주옥같은 시를 오랫동안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진원 전남 강진군수(64·사진)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군수는 “시인은 시로 기억되지만, 시인이 품었던 시대정신은 시인의 이름이 걸린 문학상을 통해 더 큰 힘을 받고 후대로 면면히 계승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영랑시문학상을 동아일보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강 군수는 올해 20회를 맞는 영랑시문학상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랑 김윤식은 일제강점기 주권을 되찾으려 뜨겁게 항거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자 한글이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 한국 근대시의 보배”라며 “영랑을 기리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근대시를 함께 기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는 인류의 노래이고 텍스트의 정수이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미래와 아름다운 비전을 눈에 보이는 감각적 언어로 담아낸다”며 “아름다운 시 한 줄의 힘은 어떤 산문의 논리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강 군수는 “영랑시문학상이 아름답고 음악적인 시어와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성을 느낄 수 있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면면히 계승하는 축제이자 즐거운 이벤트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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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해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 1억5100만원 낙찰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사진)이 22일 온라인 경매에서 국내 근현대 문학 서적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코베이옥션은 “‘님의 침묵’ 초판본이 시작가 5500만 원으로 출발해 1억5100만 원에 낙찰됐다”며 “이는 2015년 1억3500만 원에 낙찰된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초판본의 기록을 깬 것”이라고 23일 밝혔다. 한용운은 1925년 강원 백담사에서 시 ‘님의 침묵’을 썼고, 이듬해 출판사 회동서관에서 시와 같은 제목의 시집 초판을 출간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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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2·8독립선언서 ‘육필 영문본’ 104년만에 발견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독립선언서 육필(肉筆) 영문본(육필본·사진)이 104년 만에 처음 발견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하나뿐인 육필본 2·8독립선언서로, 춘원 이광수(1892∼1950) 등 거사를 주도한 일본 도쿄 조선인 유학생이 직접 쓴 선언서 초고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20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에서 대여해 온 자료를 분석하다 육필본을 발견했다고 22일 밝혔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도쿄 YMCA 강당에서 조선인 유학생 600여 명이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한 사건이다. 필기체로 된 6쪽 분량의 육필본은 첫줄 제목에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조선독립선언)”라고 썼다. 한일 강제병합을 두고 “a great blot on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세계 흥망사에 특필할 인류의 큰 수치이자 치욕)”라고 표현하고, “we shall fight to the last drop of blood(일본에 대해 영원한 혈전을 선언하리라)”라고 쓰는 등 2·8독립선언서 국문본의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육필본의 필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1919년 1월 말경 유학생들이 거사 전 대한인국민회로 발송한 영문 초고본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우리말-영어-일본어 선언서 중 유일 육필본 2·8독립선언서 육필 영문본 발견“독립운동, 해외동포와 연대 보여줘” 2·8독립선언서는 이광수와 최팔용(1891∼1922)을 비롯한 유학생들이 함께 우리말(국한문 혼용)로 작성한 뒤 각국 대사관과 언론에 배포하기 위해 영어와 일본어로도 작성했다. 이광수는 1월 31일 중국 상하이로 파견됐고, 영문본 선언서는 2월 8일 오전 각국 대사관에 뿌려졌다. 일본 외무성 자료인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에 따르면 배포된 영문본은 타자기로 친 원고였다. 선언서 분석을 맡은 진주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은 “육필본이 미국으로 보내진 건 선언서를 타자기로 치기 전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3·1독립선언서도 최종 서명자가 확정되기 전 만주로 보내진 바 있다. 이명화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이광수가 자신과 긴밀한 관계였고, 당시 미국에 있던 안창호의 대한인국민회에 미리 따로 이 육필본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수는 당시 일본에 머물던 미국 선교사 조지 섀넌 매큔(한국명 윤산온)으로부터 소개받은 미국인 박사에게 영문본을 감수받았는데, 육필본을 쓴 이가 감수자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8독립선언서의 육필 원본은 이 선언서가 유일하다. 독립기념관은 등사본인 국한문 혼용본과 육필이지만 사본인 일문본 선언서를 1980년대 입수해 소장하고 있다. 영문 인쇄본은 2014년에야 ‘3·1운동의 진상과 독립선언서’라는 소책자에 실린 채 발견됐다. 이번 육필본은 미주사회에 배포된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진 연구원은 “육필본과 함께 발견된, 타자기로 친 원고와 인쇄본 등 3가지를 비교한 결과 ‘육필본→타자기로 친 원고→인쇄본’ 순으로 오탈자나 문법적 오류가 교정된 흔적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독립운동이 미주와 만주, 러시아 등 동포사회와 연대해 벌어졌다는 걸 육필본은 다시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은 올해 3·1절 104주년을 맞아 이번 육필본을 비롯해 그동안 국내외에서 두루 수집해온 독립선언서 원본 32점을 충남 천안시 기념관 밝은누리관에서 27일 오전 10시 반 공개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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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령이 생전 마지막까지 고르고 다듬은 전집, 9년만에 빛 본다

    《‘저항의 문학’(1959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년)…. 출간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의 대표작들이다. 이 전 장관의 1주기(26일)를 앞두고 고인이 생전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이어령 전집’(전 34종 24권·21세기북스·사진)이 23일 출간된다. 문학사상사가 2006년 완간한 ‘이어령 라이브러리’ 전집 시리즈를 정본으로 당시 빠졌던 ‘공간의 기호학’(문학평론), ‘문화코드’(문화비평) 등 3개 작품이 추가됐다.》고인의 부인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21일 서면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만진(직접 작업한) 마지막 전집이다. 그런데 전집이 나오는 걸 선생님이 못 보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 이 전 장관은 일생 동안 총 185권의 책을 남겼다. 소설, 희곡, 평론, 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썼다. 이번 전집에는 그중 고인이 2014∼2015년 2년간 손수 고르고 다듬은 것이 실렸다. 강 관장은 “‘공간의 기호학’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이 선생이 8년 가까이 붙잡고 탐구하던 작품들”이라며 “‘저항의 문학’과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20대의 첫 평론집과 에세이여서 아마 제일 애착이 갔을 것”이라고 했다. 고인은 1956년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주목을 받은 뒤 첫 문학평론집 ‘저항의 문학’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한국 문화를 분석한 에세이로 영어판과 일본어판, 러시아어판, 중국어판까지 포함하면 반세기 동안 2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인이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쓴 문화비평집이다. “창조하는 시간은 절대 고독을 요구하잖아요. 이어령 선생은 서재가 있는데도 더 고독해지고 싶어 10년에 한 번쯤은 외국에 가 자취하며 글을 썼어요. 전화가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는 거죠. 그렇게 나가 있으면 꼭 좋은 책이 나와요. ‘축소지향의 일본인’처럼 40년간 계속 독자를 지니는 책요.”(강 관장) 이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나기 8년 전부터 시작한 전집 발간 작업은 그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전면 중단됐다. 다시 작업이 이어진 건 지난해 3월부터다. 강 관장은 반년 가까이 밤낮없이 원고를 들여다보며 ‘결정판’이 될 이어령 전집의 교정을 손수 봤다. 눈 밝기로 이름난 소설가 김도언, 구경미 등도 교정교열 작업에 참여했다. 강 관장은 “선생님(이 전 장관)이 안 계시니 출판사에서 다 고쳐 온 마지막 교정지를 살펴봤을 뿐”이라고 했다. 전집과 함께 발간되는 이어령 추모 에세이 ‘신명의 꽃으로 돌아오소서’에는 이 전 장관의 지인 72명의 추모 글이 담겼다. 강 관장은 “용비어천가같이 칭찬만 하는 폐단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일을 했거나 사건을 겪은 분들께 글을 청탁했다”며 “우리가 살아온 한 시대의 연대기가 될 것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김병종 화백(서울대 명예교수)은 고인이 죽음에 가까울 때 남긴 말을 글로 적었다. “나는 가도 그 생명의 ‘밈(meme)’은 사방에 퍼져 있을 것입니다. 문자를 가진 자의 행복이지요.” 영인문학관은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고인의 1주기 추모식을 연다. 고인의 애장품, 육필원고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 ‘이어령의 서(序)’도 이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막한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님을 일반인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공감대를 탐색해 새로운 언어로 제시해준 크리에이터로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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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령의 손길 닿은 전집 9년 만에 빛 본다…‘절대 고독’ 속에 쓴 수작 모아

    ‘저항의 문학’(1959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년)… 출간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의 대표작들이다. 그는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났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책으로 ‘시대의 지성’을 만난다. 이 전 장관의 1주기(26일)를 앞두고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작업한 ‘이어령 전집’(34종 24권)이 21세기북스에서 23일 출간된다. 문학사상사가 2006년 완간한 ‘이어령 라이브러리’ 전집 시리즈를 정본으로 당시 빠졌던 ‘공간의 기호학’(문학평론) ‘문화코드’(문화비평) 등 3개 작품이 추가됐다.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21일 서면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만진(직접 작업한) 마지막 전집이다. 그런데 전집이 나오는 걸 선생님이 못 보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 이 전 장관은 일생동안 총 185권의 책을 남겼다. 소설, 희곡, 평론, 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썼다. 그중 엄선된 24권은 고인이 2014년 초부터 2015년 말까지 약 2년간 손수 고르고 다듬은 것이다. 강 관장은 “‘공간의 기호학’과 ‘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이 선생이 8년 가까이 붙잡고 탐구하던 작품들”이라며 “‘저항의 문학’과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20대의 첫 평론집과 에세이여서 아마 제일 애착이 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1956년 문단 권력을 비판한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주목을 받은 뒤 첫 문학평론집 ‘저항의 문학’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한국 문화를 분석한 에세이로 영어판과 일본어판 등 반세기 동안 200만 부가 넘게 팔린 책이다.‘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고인이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절대 고독’ 속에서 쓴 문화비평집이다. “창조하는 시간은 절대 고독을 요구하잖아요. 이어령 선생은 서재가 있는데도 더 고독하고 싶어 10년에 한 번 쯤은 외국에 가 자취하며 글을 썼죠. 전화가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나가 있으면 꼭 좋은 책이 나와요. ‘축소 지향의 일본인’처럼 40년간 계속 독자를 지니는 책이요.”(강 관장)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8년 전부터 시작한 전집 발간의 대장정은 고인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전면 중단됐다. 그러다 다시 작업이 이어진 건 지난해 3월부터다. 강 관장은 ‘결정판’이 될 이어령 전집의 교정을 손수 보느라 반 년 가까이 밤낮없이 원고를 들여다봤다. 눈 밝은 것으로 이름난 소설가 김도언, 구경미 등도 교정교열 작업에 참여했다. 강 관장은 “선생님이 안계시니 출판사에서 다 고쳐온 마지막 교정지를 살펴봤을 뿐”이라며 “한자나 불어의 표기법 등을 점검해 보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전집과 함께 발간되는 이어령 추모 에세이 ‘신명의 꽃으로 돌아오소서’에는 이 전 장관 곁에서 삶을 함께한 지인 72명의 추모 글이 모였다. 강 관장은 “용비어천가 같이 칭찬만 하는 폐단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선생과) 함께 일을 했거나 사건을 겪은 분들께 추모 글을 청탁했다”며 “우리가 살아온 한 시대의 연대기가 될 것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김병종 화백(서울대 명예교수)은 고인이 죽음에 가까울 때 남긴 말을 글로 적었다. “나는 가도 그 생명의 ‘밈·meme’은 사방에 퍼져 있을 것입니다. 문자를 가진 자의 행복이지요.” 영인문학관은 24일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고인의 1주기 추모식을 연다. 고인의 애장품, 육필원고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 ‘이어령의 서(序)’도 이날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막한다. “이어령 선생님을 일반인들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공감대를 탐색해 새로운 언어로 제시해준 크리에이터로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강 관장)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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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프다, 말법의 승려”… 불교 타락 비판한 ‘생육신’ 김시습 책 발견

    “슬프다, 말법(末法·불법이 쇠퇴해 수행자나 깨달음을 이루는 이가 없는 시기)의 승려는 제어하기가 어렵구나. 속인에게 설법하여 재물을 얻고, 불법을 희롱하여 살기를 추구한다. 오만무도하여 큰 불법이 깊고 넓음을 모르고, 부처 마음이 크고 광대함을 깨우치지 못하여 살아서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살다가 죽어서는 곤궁한 귀신이 되니 장차 무엇을 하려 하는가! 자포자기한 자가 아닌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조선 초기 불교의 타락을 비판한 저술 ‘임천가화(林泉佳話)’가 일본의 공문서관에서 발견됐다. 제목만 전해온 이 책이 실제 확인된 건 처음이다. 고전문학자인 차충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019년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 내각문고(內閣文庫)에서 임천가화가 별집으로 포함된 매월당집(梅月堂集) 필사본 전권(총 9책 19권)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차 교수는 이를 3년여에 걸쳐 번역, 분석한 논문을 지난달 27일 한국한문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은 1453년 세조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절의를 지키고자 승려가 돼 일생을 방랑하며 살았다. 국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유교·불교·도교를 넘나든 사상가로 유명하다. 그의 당대 불교에 대한 시각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확인된 것이다. 책 제목은 ‘자연 속에 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다. 차 교수에 따르면 임천가화에 실린 글 70화 중에는 불교의 본질을 논하는 글과 함께 사찰, 승려의 부정한 모습이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많다. 김시습은 “어떤 중은 법회에 참여하면서 때가 많아 냄새를 풍기고 땀에 젖어 이와 서캐가 옷깃에 버글거린다. 심한 자는 가는 비단으로 납의(衲衣)를 짓고서 안에는 가볍고 따뜻한 옷을 입어 화려함을 다투어 과시한다”고 비판했다. 책에서는 유·불·도를 아우른 김시습의 사상도 엿볼 수 있다. “무릇 도(道)라고 하는 것은 천지를 담아도 남음이 있고, 만유(萬有·모든 현상)를 포괄하여도 형태가 없다. 만상(萬像)을 만들고 무리를 짓지 않으니 오묘한 근원은 비어서 막힘이 없고, 고요하면서 여러 일에 드러난다. 어떤 사업에 적용하여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를 깨달아서 무위(無爲)에 이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있다.” 차 교수는 “유교와 불교, 도교의 근본 이치가 동일하다고 강조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임천가화는 조선 중기 학자 김휴(1597∼1638)가 1637년 남긴 도서해제목록집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등을 통해 제목과 머리말만 전해 왔다. 지금껏 알려진 매월당집 완질은 1583년 선조의 명에 따라 간행된 경진자본(일본 호사·蓬左문고 소장)이 유일했지만 거기에도 임천가화는 실려 있지 않았다. 차 교수는 “관이 발행한 매월당집엔 유교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불교와 관련된 임천가화를 제외시켰을 것”이라며 “이번에 발견한 매월당집 필사본은 표지에 찍힌 에도 막부 직할 교육기관의 인장으로 보아 늦어도 19세기 초에는 일본에 전해진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호사문고본에는 빠져 있는 세조 찬양 시문도 눈에 띈다. ‘신역연경(新譯蓮經)’이라는 시 뒷부분에는 “우리 전하처럼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역대의 제왕보다 초월하면서…”라며 세조를 극찬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 다른 시 ‘망경운백관치하(望卿雲百官致賀)’ 역시 세조의 성덕과 불교 숭상을 찬미했다. 차 교수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김시습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면서도 “당대 제왕과 신하의 절대적 관계를 고려해보면 그가 자신의 속마음과 관계없이 겉으로는 세조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시습은 1463년과 1465년 법화경 언해, 원각사낙성회 등 세조의 불교 관련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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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프다, 말법의 승려는 제어하기 어렵구나”…생육신 김시습의 ‘임천가화’ 발견

    “슬프다, 말법(末法)의 승려는 제어하기가 어렵구나. 속인에게 설법하여 재물을 얻고, 불법을 희롱하여 살기를 추구한다. 오만무도하여 큰 불법이 깊고 넓음을 모르고, 부처 마음이 크고 광대함을 깨우치지 못하여 살아서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살다가 죽어서는 곤궁한 귀신이 되니 장차 무엇을 하려 하는가! 자포자기한 자가 아닌가?”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1435∼1493)이 조선 초기 불교의 타락한 모습을 비판한 저술 ‘임천가화’(林泉佳話)가 일본의 공문서관에서 발견됐다. 제목 등만 전해져온 임천가화의 내용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시습은 1453년 세조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절의를 지키고자 승려가 되어 일생을 방랑하며 산 생육신 중 한 명이다. 국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유교·불교·도교를 넘나든 사상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임천가화는 그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살면서 쌓은 불교 지식과 사찰을 방문하고 승려들을 만나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글 70화를 묶은 것이다. 고전문학자인 차충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019년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을 방문했다가 이곳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된 김시습의 문집인 매월당집(梅月堂集) 필사본 전권(9권·별집 임천가화 포함)을 찾아냈다. 차 교수는 이를 3년여에 걸쳐 번역,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27일 한국한문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매월당집은 조선시대에 여러 번 편찬, 간행됐다. 하지만 지금껏 알려진 완질은 1583년 선조의 명에 따라 율곡 이이(1536~1584)가 지은 ‘김시습전’을 함께 실어 간행한 경진자본(庚辰字本)이 유일했다. 경진자본은 일본의 호사(蓬左)문고가 소장해오다 1970년대 들어 국내에 소개됐다. 임천가화는 호사문고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별집에 담겼다. 주로 불교의 본질을 논하고 사찰, 승려의 부정한 모습이나 행태를 비판한 내용이다. “어떤 중은 법회에 참여하면서 때가 많아 냄새를 풍기고 땀에 젖어 이와 서캐가 옷깃에 버글거린다. 심한 자는 가는 비단으로 납의(衲衣)를 짓고서 안에는 가볍고 따뜻한 옷을 입어 화려함을 다투어 과시한다.” 유·불·도의 정신을 아우른 김시습의 사상도 엿보인다. “무릇 도(道)라고 하는 것은 천지를 담아도 남음이 있고, 만유(萬有·모든 현상)를 포괄하여도 형태가 없다. 만상(萬像)을 만들고 무리를 짓지 않으니 오묘한 근원은 비어서 막힘이 없고, 고요하면서 여러 일에 드러난다. 어떤 사업에 적용하여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를 깨달아서 무위(無爲)에 이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있다.” 차 교수는 “유교와 불교의 근본 이치가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임천가화는 조선 중기 학자 김휴(1597~1638)가 1637년에 남긴 도서해제목록집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등을 통해 저술의 이름과 머리말만 전해져왔다. 차 교수는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반까지는 국내에 있던 책이 19세기 초 일본으로 전해진 걸로 보인다”며 “관에서 발행한 매월당집엔 유교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불교와 관련된 임천가화를 제외시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찬인 호사문고본에는 빠져 있는 세조 찬양 시문도 눈에 띈다. ‘신역연경’(新譯蓮經)이라는 시 뒷부분에는 “우리 전하처럼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역대의 제왕보다 초월하면서…”라며 세조를 극찬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 다른 시 ‘망경운백관치하’(望卿雲百官致賀)는 “성주께선 오백년 만에 중흥하신 임금이시라/백성들 태평을 즐겨 그 업적 아주 뛰어나네…/온갖 정사 잘 처리한 뒤 불교를 숭상하니/백관들이 비로소 태평성대를 축하하네/부처께서 안목 있어 눈길을 돌리시면/우리 대왕 만세를 누리라고 축수(祝壽)하시리”라며 세조의 성덕과 불교 숭상을 찬미한다. 차 교수는 이와 관련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김시습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면서도 “당대 제왕과 신하의 절대적 관계를 고려해보면 그가 자신의 속마음과 관계없이 겉으로는 세조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시습은 1463년과 1465년 두 차례에 걸쳐 법화경 언해, 원각사낙성회 등 세조의 불교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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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제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저자는 노화, 돌봄, 죽음을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자다. 그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주사위 놀이’에 비유한다. 행운을 기대하며 주사위를 던지듯, 사회는 죽음을 가볍게 다뤄 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프랑스, 일본 등의 의료 현장에서 연구 활동을 한 저자는 고국에 돌아와 ‘각자도사(各自圖死)’하는 사회의 모습을 마주했다. 돌봄과 간병을 각자의 몫으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노화와 죽음은 모두에게 공포가 되었다고 말한다. 책은 존엄한 죽음에 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요양시설과 병원, 호스피스와 관계된 노인, 환자, 간호사, 의사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현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집안일’이던 돌봄과 죽음의 이슈가 ‘의료’와 ‘행정’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 배경부터 정부가 값싼 노인 부양을 위해 공급한 요양시설의 처참한 모습을 꼬집는다. 또 환자의 존엄한 죽음보다는 생명 연장을 우선시한 채 이뤄지는 연명치료, 임종 처리 기관으로 전락한 호스피스의 현실도 낱낱이 보여준다. 안락사에 대한 화두도 던진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말기 환자 중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된 가운데 국내 안락사 논의의 기점이 된 세 가지 사건을 조명한다. 그러면서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논의하는 등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에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 논의하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사람이 일하다가 죽고, 가난해서 죽고, 학대로 죽고, 고립으로 죽고, 차별로 죽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리고 그런 사건 사고가 어떻게 나의 노화, 질병, 돌봄, 죽음과 연결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현장 사례와 논증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해나가야 할 책무임을 일깨운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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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튀니지 총선 투표율 10%… 꽃피우지 못한 ‘아랍의 봄’

    2010년 한 20대 청년의 죽음은 중동 지역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행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이야기다. 그는 과일 수레를 압수하는 경찰에 저항하다 따귀를 맞자 분노하며 자기 몸에 불을 질렀고 이후 숨졌다. 이는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 불을 붙였다. 13년이 지난 지금 중동 지역의 민주화 물결인 ‘아랍의 봄’은 여전히 유효한가. 전문가들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최근 중동 전문가 10명과 함께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집필한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46·사진)를 13일 만났다. 그는 “아랍의 봄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에 근접한 나라로 꼽혔던 튀니지마저 최근 총선 투표율이 10%에 그쳤다”며 “아랍권 국가들은 여전히 시린 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정부 시위로 2013년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집트다. 이집트에서는 다시 군부의 철권 통치가 강화됐다. 중동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한 튀니지는 최근 불거진 권력 투쟁과 테러 세력의 준동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구 교수는 “숲과 나무 모두를 본 뒤 ‘아랍의 봄’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배경, 종교·정치적 상황 등이 너무 다른 각 나라를 자세히 살펴야만 중동의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책을 쓰기 위해 튀니지 이집트 이란 등 국가별 전문가를 골고루 섭외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에는 ‘아랍의 봄’ 현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 교수는 “집필진 대부분이 해당 시기에 현장에 체류하며 그 거리의 공기를 맡아본 학자들”이라며 “현장의 울분, 민중의 힘을 가까이서 느끼고 쓴 것”이라고 했다. 구 교수 역시 박사과정 중인 2009년 테헤란에서 이란의 반정부 시위인 ‘녹색운동’을 목격했다. 구 교수는 “무력·유혈 진압에도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나서는 건 ‘희생 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며 “밖에서 볼 땐 더디지만 중동 민중의 민주화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했다. 한편 구 교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이 양국 정권에 각각 위기와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튀르키예는 5월에 조기 대선이 예정돼 있어 이번 강진이 현 정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면 대규모 학살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입장에선 재난 지원을 통해 고립 국면을 전환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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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민주화 운동 13년…“아랍은 여전히 시린 봄”

    2010년 한 청년의 죽음은 중동 지역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26살 행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이야기다. 그는 과일이 담긴 수레를 압수하는 경찰에 저항하다 따귀를 맞고 분노하며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이는 아랍권 민주화 열기에 고삐를 당겼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중동 지역의 민주화 물결인 ‘아랍의 봄’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최근 10명의 중동 전문가와 함께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집필한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46)는 13일 기자와의 만나 “아랍의봄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에 근접한 나라로 꼽혔던 튀니지마저 최근 총선 투표율이 10%에 그쳤다”며 “아랍권 국가들은 여전히 시린 봄을 맞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정부 시위 물결에 힘입어 2013년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집트다. 이집트에서는 또다시 군부의 철권통치가 강화됐다. 중동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한 튀니지는 최근 불거진 권력 투쟁과 테러 세력의 준동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구 교수는 “숲과 나무 모두를 본 뒤 ‘아랍의 봄’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배경, 종교·정치적 상황 등이 너무 다른 각 나라별 상황을 자세히 살펴야만 중동의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책을 쓰기 위해 각 국가 별 전문가를 섭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 중 한 명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책에서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일어난 시위는 시민혁명에 가까웠지만, 리비아는 부족전쟁, 예멘은 종파 분쟁의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한다. 책에는 ‘아랍의 봄’ 현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구 교수는 “집필진 대부분이 해당 시기에 현장에 체류하며 그 거리의 공기를 맡아본 학자들”이라며 “현장의 울분, 민중의 힘을 가까이서 느끼고 쓴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박사과정 시절인 2009년 테헤란에서 이란의 반정부 시위인 ‘녹색운동’을 목격했다. 지난해 ‘반(反)히잡시위’ 때는 현지 지인들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구 교수는 “무력·유혈 진압에도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나서는 건 ‘희생 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며 “밖에서 볼 땐 더디지만 중동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단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했다. 한편 구 교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지진의 영향이 양국 정권에 각각 위기와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튀르키예는 곧 5월에 조기 대선이 예정돼 있어 이번 지진의 영향을 받겠지만, 대규모 학살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입장에선 재난 지원을 통해 고립 국면을 전환하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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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망뒤 백제왕씨 여성들, 日 건너가 일왕 아이 낳기도”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신은 벌써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백옥처럼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간무(桓武) 일왕(재위 781∼806년)은 수도를 나라(奈良)에서 헤이안(平安·현 교토)으로 옮긴 후 795년 곡연(曲宴·왕이 궁중에서 여는 작은 잔치)을 열고 이 같은 의미가 담긴 고가(古歌)를 읊었다고 한다. 백제 멸망(660년)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의자왕(재위 641∼660년)의 후손인 백제왕씨 일족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이 확인되는 여성인 명신을 향한 것이었다. 770년 일본 정사(正史)에 처음 등장하는 명신은 간무 일왕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간무 일왕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재위 462∼523년)의 후손이다. 명신은 일왕을 가까이 모시는 여성 관인 내시사(內侍司)의 장관 격인 상시(尙侍)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은영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술지 한일관계사연구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 ‘고대 일본 도왜계(渡倭系) 씨족 여성의 동향-백제왕씨(百濟王氏)를 중심으로’에서 일본 나라(710∼794년)·헤이안(794∼887년) 시대 백제왕씨 출신 여성 18명의 동향을 분석했다. 역대 왕을 중심으로 담은 일본 정사인 육국사(六國史)를 토대로 백제왕씨 출신 여성들이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 속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했는지 살핀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명신은 나라·헤이안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백제왕씨 여성이다. 그는 후지와라(藤原) 출신의 우의정 격인 우대신과 결혼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 후궁(황후 등이 사는 공간)에 들어가 여성 관인으로 일했다. 간무 일왕이 백제왕씨를 자신의 외척으로 선언한 뒤 백제왕씨 여성들의 활동은 더 두드러졌다. 최 연구원은 “간무 일왕이 혈통과 출신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외가 일족에 관위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모계의 신분을 높이려 했다”고 했다. 일왕의 외척으로 선언된 백제왕씨 일족 여성들은 헤이안시대 초기 여성 관원으로 활동하거나 후궁이 돼 일왕의 아이를 낳았다. 사가(嵯峨) 일왕(재위 809∼823년)의 여어(후궁)였던 경명은 일왕의 아이를 낳았고, 사망한 후 백제왕씨 일족 중 가장 높은 위계인 종1위를 받았다. 최 연구원은 “간무 일왕부터 닌묘(仁明) 일왕(재위 833∼850년) 시기까지 백제왕씨 여성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면서 “백제왕씨는 헤이안 시대 중기부터는 후지와라 가문의 득세 등 대내외 변화로 인해 쇠퇴했지만 일본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에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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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로 건너간 백제왕씨 여성들, ‘장관’까지 올랐다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신은 벌써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백옥처럼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간무(桓武·재위 781~806)천황은 수도를 나라(奈良)에서 헤이안(平安·현 교토)으로 옮긴 후 795년 곡연(曲宴)을 열고 이 같은 의미가 담긴 고가(古歌)를 읊었다고 한다. 백제 멸망(660년)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의자왕(?~660년)의 후손인 백제왕씨 일족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이 확인되는 여성인 명신을 향한 것이었다. 770년 일본 정사(正史)에 처음 등장하는 명신은 생모가 무령왕(462~523)의 후손인 간무천황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천황을 가까이 모시는 여성 관인인 내시사(內侍司)의 장관격인 상시(尙侍) 자리까지 올랐다. 최은영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술지 ‘한일관계사연구’ 최신호 발표한 논문 ‘고대 일본 도왜계(渡倭系) 씨족 여성의 동향 -백제왕씨(百濟王氏)를 중심으로-’에서 일본 나라·헤이안 시대의 백제왕씨 출신 여성 18명의 동향을 분석했다. 역대 왕을 중심으로 담은 일본 정사인 육국사(六國史)를 토대로 백제왕씨 출신 여성들이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 속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했는지 살핀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명신은 나라(710~794)·헤이안(794~887)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백제왕씨 여성이다. 그는 후지와라(藤原) 출신의 우의정 격인 우대신과 결혼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 후궁에 들어가 여관으로 일했다. 간무천황이 백제왕씨를 자신의 외척으로 선언한 뒤 백제왕씨 여성들의 활동은 더 두드러졌다. 최 연구원은 “간무천황이 혈통과 출신의 정통성을 보증받기 위해 외가 일족에 관위를 수여하는 등 방식으로 모계의 신분을 높이려 했다”고 했다. 천황의 외척으로 선언된 백제왕씨 일족 여성들은 헤이안시대 초기 여관으로 활동하거나 후궁으로 진출해 천황의 아이를 낳았다. 사가(嵯峨·786~842)천황의 여어(후궁)였던 경명은 천황의 아이를 낳고 사망 후 백제왕씨 일족 중 가장 높은 위계인 종1위를 받았다. 최 연구원은 “간무천황부터 인묘(仁明·833∼849)천황 시기까지 백제왕씨 여성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면서 “백제왕씨는 헤이안시대 중기부터는 후지와라 가문의 득세 등 대내외 변화로 인해 쇠퇴했지만 일본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에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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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드니 친구들이 낙엽지듯 떠나가… 최근 내 詩에 ‘노병사’가 많아진 이유”

    ‘온 세상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혼자서 귀 기울이고 중얼거리며/그 속에 숨은 뜻 가까스로 불러내는/그런 친구가 곧 시인 아닌가/비록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메마른 사막에 감춰진 수맥이라도/촉촉하고 부드럽게 살려내는/그 짧은 글이 바로 시 아닌가’ 김광규 시인(82)이 최근 출간한 열두 번째 시집 ‘그저께 보낸 메일’(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시 ‘그 짧은 글’이다. 반세기 가까이 시를 써온 원로 시인의 철학이 담겼다. 1975년 등단 후 누구나 읽기 쉬운 명징한 언어로 시를 써온 김 시인을 1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나는 변화보단 지속을 추구해왔다. 포부를 갖고 시를 쓴 적은 없다. 나의 체험 세계가 현실에 부딪힐 때 불꽃이 튀어 써온 것”이라고 했다. 이번 시집엔 그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발표한 60편의 시가 수록됐다. 그는 70대 중반을 넘기며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엔 저물어가는 삶을 비춘 시가 적지 않다. 김 시인은 “70대 후반이 되니 친구들이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떠나갔다. 소설가 조세희(1942∼2022)도 가깝게 지낸 사이”라며 “시를 꾸며내지 않으니 노년기의 내가 쓴 시는 ‘생로병사’의 ‘노병사’를 다룬 게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ㄷ으로 시작되었어/그다음에 ㅁ이 뒤따랐지!/달……마…… 로 이어지는 그 이름/사흘 만에 어렴풋이 되살아났다’라는 시 ‘달맞이’는 노화로 인해 기억력 감퇴를 겪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다. 미물의 작은 속삭임까지 포착해 울림을 전하는 김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까마귀 짖는 소리 끊어진 다음에야/문득 알아차렸다/늦가을 마당에 정든 식구 남겨두고/줄무늬고양이 우리 곁을 떠났구나’(‘늦가을 마당’) 그가 시를 처음 만난 건 서울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살면서 ‘남들보다 잘한다’는 말을 스승인 조병화 시인과 김광식 소설가 등 글 쓰는 사람들한테서 처음 들었죠. 그래서 ‘아, 내가 할 일은 이거다’ 생각했죠.” 1970년대 시대적 상황을 풍자한 시 ‘안개의 나라’는 그가 꼽는 대표작이다. ‘언제나 안개가 짙은/안개의 나라에는/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10여 개 언어로도 번역돼 해외에서도 널리 읽혔다.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쉬운 시를 쓰는 비결을 묻자, 그는 “스무 번 가까이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라며 “요즘 주종을 이루는 난해한 시 또한 고뇌의 고뇌를 거쳐야 나오기 때문에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을 ‘방금 떠올랐던 생각/귓전을 스쳐 간 소리/어떻게 되살려낼까/궁리하다가 평생을 보낸 사람’(‘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2016년 서대문구 안산을 오르다 다쳐 거동이 불편한 김 시인은 “걷는 게 가장 큰 위안인데 못 하니 아무래도 슬프다”면서도 시를 쓰기 위한 궁리를 계속해 나가겠단 의지를 내비쳤다. “힘닿을 때까지 시를 써야죠. 나의 레종데트르(존재의 이유)이니까요.”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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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파무크 “정부 늑장구조에 국민들 분노”

    “나는 우리 국민이 그렇게 화가 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71·사진)가 6일(현지 시간) 지진이 발생한 후 처참한 현지 상황을 전하며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했다. 파무크는 11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린 소녀.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재난이 발생한 지) 이틀 뒤에서야 구호 활동이 시작됐지만 이재민에게는 너무 미미하고 때늦었다”고 꼬집었다. 파무크는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피해 지역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도로에 몇 시간째 멈춰 있다”며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시민들은 공무 차량이나 경찰, 공무원이 가는 길을 막고 항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들은 공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지만 분노와 절망감은 가시지 않았다”며 정부의 늑장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도로가 폐쇄되고 정전에다 통신망이 망가지면서 휴대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작은 지방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집과 가족,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과 강진 여파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어떤 조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진이 연이어 발생하며 벌어진 상황을 “종말론적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음식을 찾으러 거리를 헤맸고, 폐허가 된 16층 건물의 잔해를 맨손으로 파헤쳤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들은 놀랍고 충격적인 재앙의 규모와 참혹하게 버려졌다는 절망감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글의 제목은 SNS에 올라온 영상의 한 장면을 담은 것이다. 영상에서 소녀는 콘크리트 건물 더미에 깔린 채 “남동생도 여기 있다”고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한다. 영상을 찍은 남성이 “반드시 구해주러 오겠다”며 가려고 하자 소녀는 “가지 마세요”라고 애원한다. 파무크는 이 소녀가 구출되는 영상을 기다렸지만 끝내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999년 1만70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튀르키예 마르마라 지진(이즈미트 지진)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의 좌절과 슬픔이 오랜 시간 남았다. 이제 그 잔상은 새롭고도 익숙한 참상에 밀려나고 있다. 무력감이 엄습한다”고 탄식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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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수상자’ 파묵 “국민이 그렇게 화난걸 본적 없다” 튀르키예 정부 비판

    “나는 우리 국민이 그렇게 화가 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71)이 6일 지진이 발생한 후 처참한 현지 상황을 전하며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했다. 파묵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린 소녀. 무얼 해야할 지 모르는 남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재난이 발생한 지) 이틀 뒤에서야 구호 활동이 시작됐지만 이재민에게는 너무 미미하고 때늦었다”고 꼬집었다. 파묵은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피해 지역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도로에 몇 시간째 멈춰 있다”며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시민들은 공무 차량이나 경찰, 공무원이 가는 길을 막고 항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들은 공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지만 분노와 절망감은 가시지 않았다”며 정부의 늑장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도로가 폐쇄되고 정전에다 통신망이 망가지면서 휴대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작은 지방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집과 가족,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과 강진 여파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어떤 조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진이 연이어 발생하며 벌어진 상황을 “종말론적 광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음식을 찾으러 거리를 헤맸고, 폐허가 된 16층 건물의 잔해를 맨손으로 파헤쳤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들은 놀랍고 충격적인 재앙의 규모와 참혹하게 버려졌다는 절망감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SNS에 올라온 피해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정부와 구조대는 어디에 있나?’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했다. 글의 제목은 SNS에 올라온 영상의 한 장면을 담은 것이다. 영상에서 소녀는 콘크리트 건물 더미에 깔린 채 소리치며 “동생도 여기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영상을 찍은 남성이 “반드시 구해주러 오겠다”며 가려고 하자 소녀는 “가지 마세요”라고 애원한다. 파묵은 이 소녀가 구출되는 영상을 기다렸지만 끝내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999년 1만 7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튀르키예 마르마라 지진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의 좌절과 슬픔이 오랜 시간 남았다. 이제 그런 잔상은 새롭고도 익숙한 참상에 밀려나고 있다. 무력감이 엄습한다”고 탄식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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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약… ‘17세의 나’ 떠올리며 집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종교적인 이유로 세계관이 너무나도 다르다면 어떨까’란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2018년 사이비 종교와 테러를 다룬 첫 장편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문학과지성사·사진)’로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권오경 작가는 11일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근 한국어로 출간된 이 소설은 사이비 종교 교주 존 릴, 어머니의 죽음 후 이 종교에 빠져 임신 중절 수술 병원을 공격하는 테러범이 되는 한국계 여성 피비, 신학대를 그만둔 뒤 사랑하게 된 피비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걸 막으려는 윌까지, 세 인물의 관점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이를 통해 신앙인과 비신앙인 간 세계관의 간극을 보여준다. “한때 목사를 꿈꿨지만 많은 책을 읽으며 저는 17세 때 신앙을 잃었습니다. ‘영원히 살 것’이라 믿다 ‘우린 결국 흙, 먼지 알갱이가 될 것’이라는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큰 충격이자 슬픔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며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외로웠던 ‘17세의 나’를 떠올렸죠.” 신앙을 잃은 경험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반영됐다. 깊은 신앙을 가져본 윌은 “피비가 간절히 찾는 건 상실을 복구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간파한다. 거침없는 문장과 흡입력 있는 서사로 낙태와 테러 등 미국 사회의 문제를 두루 짚은 이 소설로 권 작가는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주목받는 작가 4인’에 꼽혔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7개 언어로 번역됐다.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이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 “정말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에요. 지난 5년간 한국 콘텐츠는 ‘아시아계 이야기나 인물은 인기가 없다’는 할리우드의 인식이 틀렸음을 잘 증명해 왔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간 그는 금융계에서 일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작가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는 제게 어머니는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셨죠. 글을 쓸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만큼의 고통을 느끼진 않습니다.” 그가 7년째 작업하는 차기작은 발레리나와 여성 사진작가의 사랑과 야망을 다뤘다. 권 작가는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다. 그는 여성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늘 의문을 갖고 있었고, 이를 소설로 풀어냈다.“문학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실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려 합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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