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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출산율이 1.6∼1.7명에만 도달해도 고령화는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저출산을 완화하려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문화적 변화와 함께 근로시간 단축, 공교육 강화 등의 정책적 지원이 동반돼야 합니다.” 한국을 ‘인구소멸 1호 국가’로 전망한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17, 18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사장 정운찬)이 주최한 ‘한국의 저출산 위기와 미래 전망’ 학술행사 참석차 방한했다. 17일 콜먼 교수는 서울 강남구 오크우드호텔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령사회에 대비하려면 이민보다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콜먼 교수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출산율 반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이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해 1.13명이었던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까지 주저앉았다. 콜먼 교수는 “이대로라면 한국은 2750년에 국가가 소멸할 수 있고, 일본은 3000년에 일본인이 모두 사라질 위험이 있다”며 17년 전 예측을 강조했다. 콜먼 교수는 저출산·고령사회에 대비해 이민을 확대하는 방안도 “회의적”이라고 답했다. 그는 “단순히 이민을 확대하면 인구수를 늘릴 수는 있지만 이민자도 나이를 먹으므로 인구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며 “이민자의 출산율이 높아 토착 한국인의 비율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이민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한국의 정책 결정권자라면 어떤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보나’라는 질문에 대해 콜먼 교수는 △육아휴직 제도나 근무시간 단축 등의 노동 제도 개선 △공교육 강화와 같은 정책적 요소 △가족 제도와 이민에 대한 문화·인식 변화를 들었다. 그러면서 “서구권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이 피로도 관리나 동기부여 측면에서 장점이 있어 오히려 생산성이 늘어났다는 사례가 많다”며 “한국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을 방법 속에 저출산 해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긴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콜먼 교수는 “동거나 비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동거 가정처럼 결혼으로 형성된 전통 가족이 아닌 형태의 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제도를 개선하고 다양한 가족에 대해 개방적인 인식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에 이은 두 번째 거부권 행사로, 지난달 27일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20일 만이다. 민주당은 즉각 “국회 입법권을 철저히 무시한 행태”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여당이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을 단독 처리했다. 여야가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과 방송법을 두고도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는 가운데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이 입법 독주에 나서고,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이를 저지하는 대결 구도가 계속되면서 협치와 갈등 조정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안 재의 요구안을 심의, 의결한 뒤 회의 직후인 낮 12시 10분경 재의 요구안을 재가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정치 외교도, 경제 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 건강 앞에서는 후순위”라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즉각 반발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민을 거부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국민 뜻에 따라 국회에서 재투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간협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약속을 파기한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취업 후 상환하는 학자금 대출에 대해 일부 무이자 혜택을 주는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을 단독 처리하면서 여야가 또다시 충돌했다. 국민의힘 소속 교육위원들은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 포퓰리즘이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라며 강행 처리에 반발해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尹 “간호법, 과도한 갈등 불러” 野 “원안 재표결”… 충돌 악순환 尹, 양곡법 이어 간호법도 거부권野 “공약 파기하고 입법권 부정”與 “일방적 법안 강행처리 때문”野 ‘학자금 무이자’ 상임위 단독처리… 與 “年소득 1억 넘어도 혜택” 반대 “이번 간호법 제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다. 공약 파기는 민주주의를 파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윤 대통령이 야당 주도로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16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가 양곡관리법 개정안 때에 이어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입법권 부정”이라고 비판한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한 탓”이라고 맞섰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취업 후 상환하는 학자금 대출에 대해 일부 무이자 혜택을 주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학자금 무이자 대출법)도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는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 처리했다. 거야(巨野)의 입법 독주와 이를 막기 위한 정부여당 간의 벼랑 끝 대치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尹 “국민 건강 어느 것과도 못 바꿔”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정치 외교도, 경제 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 건강 앞에서는 후순위”라고 말했다. 간호법 제정이 국민 건강에 반한다고 전제한 것. 윤 대통령은 또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했다.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경기 안성시 현장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해 “헌정질서를 파기하고 주권자를 무시하는 약속파기 정치”라며 “만약 공약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잘못된 공약을 한 것에 대해 당연히 국민에게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관계없이 원안을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에서 제안하는 수정안 논의는 아직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며 “수정안 논의 여부를 검토하게 되더라도 원안에 대한 재투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의료계가 두 쪽으로 갈라져 극심한 갈등과 혼란에 빠지는 부작용이 빤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의석으로 밀어붙인 일방적 입법 독주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민주당을 탓했다. ● 민주, ‘학자금 대출법’도 단독 처리민주당은 이날 교육위에서 국민의힘의 불참 속에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을 단독 처리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은 대학생이 대출을 받아 학교에 다니다가 졸업 후 소득이 생기면 원리금을 갚게 하는 제도다. 이번 개정안은 졸업 이후 취업 전까지 소득이 없을 때 발생하는 이자를 면제해주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이날 회의에는 여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만 참석해 “고졸 이하 청년들에겐 대출 혜택 자체가 없다”며 “학자금 대출 1.7% 이자까지 중상층 청년들에게 면제해주는 건 포퓰리즘”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힌 뒤 표결하지 않고 퇴장했다. 법안대로면 가구 1년 소득이 1억 원을 넘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여당의 지적이다. 정부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교육위에 참석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의 근본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방송3법, 노란봉투법 등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회부했거나 직회부 예정인 법안이 줄줄이 남아있어 여야 간 극한 갈등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해당 법안들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특정한 정치세력이 일방적으로 여야 간 합의 없이 법을 통과시킨다면 그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국민들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간호사 단체는 크게 반발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간호법의 국회 재의결을 요청하는 한편, ‘2023 총선 기획단’을 구성해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법 거부권 행사의 배경을 설명했음에도 보건의료계 직역 갈등이 ‘2라운드’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간협은 의사 역할을 일부 수행하고 있는 진료보조인력(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의 업무 중단 등 단체행동도 염두에 두고 있다. 간협 관계자는 “PA 업무 중단을 포함한 모든 집단 행동을 열어두고 17일부터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한 13개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7일 예정된 총파업을 간호법 재의결 이후까지 유보하기로 했다. PA 간호사는 의사의 진료 및 수술 시 의료행위를 보조하는 간호 인력이다. 주로 의사가 부족한 수술실에서 절제, 봉합 등을 대신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이런 업무는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PA 간호사는 필수의료 분야 인력난으로 인해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어 10개 국립대병원의 PA 간호사는 2021년 1091명으로 2019년(797명)보다 37% 늘었다. 의료계는 전국에 PA 간호사가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 때문에 이들이 업무를 중단하면 당장 수술 지연 등 의료 현장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고스란히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PA 간호사의 수술 업무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정부가 마땅히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국가가 책임지고 개선하겠다”며 간호계 달래기에 나섰다. 한편 보건의료 직역 간 업무 범위 조정이 중립적인 공론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도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정부가 60년째 의료직역 간 업무 범위를 정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며 “보건의료계 각 직역의 업무 범위를 정하는 과정이 지금처럼 정부가 알아서 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직역 전문가들과 국민들이 참여하는 중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해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놀이공원처럼 꾸며놓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자리로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린이 900명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도 출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캠퍼스 종합운동장. 국내 최고의 다태아(다둥이) 분만 권위자인 전종관 서울대 의대 교수(사진)는 이날 열린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 현장을 지켜보며 말했다. 이 자리는 그간 전 교수가 분만을 집도한 다태아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한 행사였다. 총 18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아이들만 해도 850여 명이었다. 이들은 페이스페인팅, 인기 만화 캐릭터 ‘뽀로로’ 공연 등을 만끽했다. 전 교수를 찾아오는 임산부 대다수는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임신했거나, 임신 전후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다. 2019년 9월에 각각 1.56kg, 0.41kg 쌍둥이를 낳은 박제영 씨(33)는 “다른 병원들에서는 위험하다며 두 아이 중 한 명을 포기하라고 권했지만 전 교수님이 잘 받아주셔서 건강하게 낳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지영 씨(41)도 “세쌍둥이의 자연분만은 흔치 않은 데다 첫째가 25주 만에 나와 굉장히 위험했다. 교수님이 잘 받아주셨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 쌍둥이 분만 4500건, 세쌍둥이 분만 550건을 집도했다. 네쌍둥이 12건, 다섯쌍둥이도 1건 있었다. 전 교수는 2016년부터 자신이 받아낸 아이들을 포함해 다태아 가족들을 대상으로 ‘코호트 연구’(집단연구)도 하고 있다. 전 교수는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같은 유전자 구조를 갖고 있어 질병 발병 유무를 통해 환경적 차이를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에서 홀로 지내던 60대 여성이 사망한 지 약 두 달 만에 발견됐다. 건강보험료를 수개월 동안 못 내는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고액 월셋집에 거주하는 바람에 위기가구로 분류되지 않았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8일 오후 3시경 송파구 석촌동의 한 빌라에서 A 씨(62)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2, 3주 전부터 악취가 나고 우편물이 쌓여 있다”는 이웃 신고를 받고 출동해 시신을 발견했다. 소방 관계자는 “상태를 볼 때 두 달 전쯤 사망한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평소 A 씨는 고혈압 등 건강 문제가 있어 병원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연고자인 A 씨는 다른 빌라 주민과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A 씨는 지난해 7~10월 건강보험료 60여만 원을 미납했으며 올 2월 수도요금 약 2만5000원과 전기요금 약 20만 원을 내지 않았다. 건강보험료 체납의 경우 지역가입자 기준으로 월 보험료가 10만 원 미만이고 3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복지 사각지대로 분류한다. 하지만 A 씨의 경우 금액이 초과해 위기가구로 판단되지 않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기요금의 경우 3개월 이상 밀려야 복지 사각 발굴 시스템으로 넘어간다.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에서 홀로 지내던 60대 여성이 사망한 지 약 두 달 만에 발견됐다. 건강보험료를 수개월 동안 못 내는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고액 월셋집에 거주하는 바람에 위기가구로 분류되지 않았다. 송파구 관계자는 “위기가구 발굴 조사는 반지하 등 주거 취약계층 위주로 이루어진다”며 “A 씨의 경우 월세 100만 원이 넘는 빌라에 거주하다 보니 발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최미송 기자 cms@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나 엠폭스(원숭이두창) 등 인수공통감염병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사람과 동물을 포괄하는 통합 감시체계를 구축한다. 질병관리청은 10일 지금까지 부처별로 분절돼 관리됐던 사람과 반려·유기·야생동물의 감염병을 통합 감시하는 2차 인수공통감염병 관리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사람과 동물에 대한 정기적인 감염 실태 조사 및 항체 조사를 실시하고, 질병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관련 부처가 함께 대응 훈련을 한다. 질병청은 지난해 하반기 염소농장이나 반려동물센터 같은 인수공통감염병 취약시설 종사자와 동물을 대상으로 큐열과 브루셀라, 코로나19,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등의 인수공통감염병 항체 조사를 실시했다. 향후 도축업자나 가축방역사, 수의사와 같은 고위험군까지 감염 실태 및 항체 조사 대상자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코로나19와 엠폭스처럼 ‘사람-동물’ 종간전파(Spillover)가 가능한 감염병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모기, 진드기 등 매개체의 분포 및 개체 수가 변화하고 반려 동물이 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협이 덩달아 증가했다. 국가 간 이동량이 늘어나 감염병 전파도 빨라지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의 75%가 동물에서 유래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보건복지의료연대가 11일 단축진료 휴진 등 집단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치과의사들이 대거 동참하면서 환자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며 11일 2차 연가 투쟁에 돌입한다. 특히 3일 1차 연가 투쟁에 불참했던 치과의사들도 11일 하루 휴진을 결의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대략 2만여 곳의 치과의원들이 진료 시간을 단축하거나 휴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태근 치협 회장은 “간호법뿐만 아니라 의사면허 박탈법(의료법 개정안)도 문제”라며 “회원의 80∼90%가 이날 연가 투쟁에 동참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가 투쟁에는 병원급 의료기관과 치과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임상병리사들도 추가로 합류하면서 연가 투쟁 참여 인원이 3일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의료연대 측은 간호조무사 2만 명을 포함해 전체 약 4만 명이 연가 투쟁에 참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간호사 단체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보건복지의료연대의 예정된 11일, 간호대 교수진과 학생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간협에 따르면 ‘국제 간호사의 날’인 12일에는 간호사 10만 명이 모인 대규모 행사가 예정돼 있다. 앞서 8일 간협은 전 회원을 대상으로 ‘간호사 단체행동’ 의견 조사를 실시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는 16일 국무회의 전날인 15일 이 결과를 발표하며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 행사 시 간협은 면허증 반납, 초과근무 거부 등의 집단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앞에서 이틀째 단식 농성 중인 김영경 간협 회장은 “간호법은 국민과 한 약속이자 국가 보건 정책의 미래를 위한 해법”이라며 간호법의 조속한 공포를 촉구했다. 그는 “세 번의 국회 입법 시도 끝에 본회의 의결이라는 결실을 본 간호법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공공연하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면서 이달 중 확진자 격리 의무가 완전히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일상회복 2단계가 앞당겨 시행되는 것으로 엔데믹(Endemic·풍토병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9일 열린 코로나19 위기평가회의에서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날 위기평가회의에서는 정부는 확진자 격리 의무 등 일부 방역 조치를 조기에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당초 방역 당국은 5월 확진자 격리 의무를 5일로 줄이고, 7월에 격리 의무를 완전 해제하기로 했다. 요양시설 외출, 외박 전체 허용 등의 조치도 다뤄졌다. 질병청이 발표한 일상회복 로드맵에서 1단계를 건너 뛰고,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이 2급에서 인플루엔자와 같은 4급으로 취급하는 2단계로 직행하자는 것이다. 다만 병의원 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나 코로나19 검사비, 치료비 지원 중단 등 조치는 신중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방역 완화로 생길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열린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자문위)에서도 “코로나19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데도 확진자 격리 일수를 순차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겠냐”며 격리 의무를 해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정기석 자문위원장은 “국내 코로나19 감염 상황 및 대응 역량을 판단했을 때 7월 중순까지 확진자 격리 의무 해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협요인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틀간 자문위와 위기평가회의 논의 내용은 11일 또는 1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확정돼 발표된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간호사 단체가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의사·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11일 단축 진료를 예고했다. 이대로라면 거부권을 행사하든, 안 하든 보건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정부와 국회가 적극 중재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8일 전 회원을 대상으로 ‘간호사 단체행동’ 의견 조사를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의 연가 투쟁이 계속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는 내부 기류가 반영됐다. 이번 조사에는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 간호사 1인 1정당 가입 등에 대한 찬반 여부가 포함됐다. 총파업이나 진료 거부 등은 직접 언급되지 않았으나 단체행동에 거리를 둬 왔던 그간 간협의 입장이 선회한 것이다. 간협은 14일까지 이메일을 통해 간호사 단체행동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15일 결과를 공개할 방침이다. 간협 관계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하고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에 맞서 2차 연가 투쟁(11일)을 앞두고 8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대한민국 보건의료 잠시멈춤’ 대국민 설명회를 개최했다. 의료연대는 “치과 의사들이 새로 2차 연가 투쟁에 동참해 하루 휴진한다”며 “치과 근무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임상병리사 등도 이번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대한치과협회는 자체적으로 치과의원 2만여 곳이 참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의료연대 측은 참여자가 1차(1만 명)보다 2∼3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됐다. 간호법의 공포 및 재의요구 시한은 19일까지다. 9일과 16일에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9일 예정된 국무회의에서는 간호법이 상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보건의료계 갈등을 조율할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방역 당국이 이르면 주내 국내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다. 앞서 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한 데 따른 것이다. 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번 주 초반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논의하기 위한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와 위기평가회의를 소집한다. 이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유럽 순방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귀국하는 이번 주 후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이를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2020년 2월 ‘심각’ 단계로 상향된 위기경보 단계가 3년 2개월여 만에 조정된다. 지영미 질병청장도 전날 “WHO 긴급위원회 결과 및 국내외 유행 현황, 국내 방역·의료대응 역량 등을 종합 검토한 후 코로나19 위기 단계 하향 조정 방안을 신속히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추면 확진자 격리 기간이 7일에서 5일로 줄어들고 대부분 방역 조치도 해제된다. 질병청은 3월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로 바꾸는 1단계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2급)을 4급으로 하향하는 2단계 △코로나19 유행이 독감 수준이 되는 엔데믹(Endemic·풍토병화) 등 3단계에 걸친 ‘일상회복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질병청의 로드맵에 따르면 ‘경계’로 위기경보를 낮추는 1단계에선 코로나 확진자의 격리 의무 일수가 5일로 줄어들고 입국 3일 이내에 받아야 하는 유전자증폭(PCR) 검사도 권고하지 않는다. 서울역 등에 설치된 임시선별검사소의 운영도 중단한다. 매일 발표하는 코로나 확진자 통계도 일주일 단위로 발표하게 된다. ‘경계’로 위기경보 단계를 낮추더라도 의료기관과 감염취약시설에 대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유지된다. 감염취약시설 종사자 및 입소자에 대한 주 1회 코로나19 검사와 만 60세 이상 고령자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PCR 검사는 그 비용을 계속 지원한다. 코로나19로 입원할 경우 지원하는 입원 치료비도 유지된다. 취약계층이 코로나19 검사와 치료를 기피하지 않도록 중위소득 100% 이하 저소득층 대상 생활지원비, 종사자 수 3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유급휴가비는 현행대로 지급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한 총리가 주재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해체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인 ‘중앙사고수습본부’ 체제로 전환한다. 방역 당국은 이르면 7월 2단계, 내년 상반기 3단계 조정이 이뤄지며 순차적으로 완전한 일상회복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단계에선 실내 마스크 착용과 확진 시 격리 의무가 완전히 사라진다. 코로나19 검사비와 치료비는 중증 환자나 감염 취약층에 한해 일부 지원하는 방식으로 코로나 검사비와 치료비가 점차 자부담 형태로 전환될 예정이다. 엔데믹을 의미하는 3단계에서는 코로나19도 인플루엔자 등 다른 감염병처럼 상시 대응하는 체계로 전환한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3일 서울 용산구의 A 의원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열었다.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통과에 반발하는 의사단체 등의 집단행동에 동참하기 위해 평소 오후 6시까지인 진료 시간을 단축했다. 경기 성남시의 B 의원도 이날 ‘간호법 반대 투쟁 참여를 위해 단축 진료합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고 오후 4시까지만 운영했다. 이날 하루 동안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가 단축 진료를 하거나 소속 의료기관에 연가를 내는 등의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약 1만 명의 간호조무사들이 연가 투쟁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다만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 큰 혼란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오후 진료 시간만 줄였고, 연가 투쟁도 간호조무사를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1일에도 3일과 같은 방식으로 2차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이때는 의료기관 원장의 참여를 더 적극적으로 독려해 집단행동에 동참하는 인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재논의(거부권 행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7일 연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중환자실과 응급실 등 필수의료 분야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들과 대학교수들도 일단 총파업에 동참한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실제 총파업에 돌입하면 의료 현장의 혼란이 예상된다. 앞서 2020년 정부가 의과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자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에 나서 의료 대란이 발생했다. 대한간호협회 등이 속한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의사단체 등의 집단 진료 거부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제4차 긴급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대한병원협회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진료 시간 확대 및 24시간 응급의료체계 유지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기 성남시의 한 재활병원을 찾아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이 의료 현장에서 직역 간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했다.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란 간병인 없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을 하는 제도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간호·간병 통합 제도처럼 국민이 실제 요구하는 서비스는 돌봄의 다양한 직역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조하는 원팀(One-Team)이 돼야 완성될 수 있다”며 사실상 간호법 반대 의사를 재차 밝혔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청소년이 주로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자해를 묘사하는 내용이 방영된 후 응급실에 10대 자살, 자해 환자가 급증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선 자해와 관련한 내용을 다룰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이태엽 교수와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을 활용해 2015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자해(자살 기도 등)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11만5647명을 분석한 결과, 2018년 3월 30일을 기점으로 관련한 청소년 환자가 늘었다고 밝혔다.연구진에 따르면 2018년 3월 30일은 청소년을 주 시청층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Mnet의 ‘고등래퍼2’ 프로그램 6회가 방영된 날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자책감과 자해 충동으로 인한 내적 갈등을 다룬 곡이 발표됐다. 가사에서 손목을 긋는 등의 자해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했다. 분석 결과 해당 방송일 이전인 2018년 2, 3월 각 월 평균 자해로 응급실에 방문한 10~14세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0.9명이었다. 그런데 방송일 이후인 같은 해 4~12월에는 3.1명으로 늘었다.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 같은 기간 15~19세 자해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5.7명에서 10.8명으로, 20~24세는 7.3명에서 11명으로 각각 늘었다. 연도별 분석 결과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이 나타났다. 10~14세 청소년 자해 환자는 2015년 인구 10만 명당 8.1명에서 2018년 31.1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는 63.5명에서 119명으로, 20~24세는 75.7명에서 127.1명으로 각각 늘었다. 이런 경향성은 여성 청소년에서 더 두드러졌다. 김 교수는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자해는 해도 되는 것’ 혹은 ‘자해는 멋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라며 “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울산의 한 아파트 상가 건물에는 티눈 제거 시술로 유명한 동네의원이 있다. 이곳 원장 A 씨는 대학병원 수술실을 8년간 지키며 수많은 심장병 환자를 살려낸 흉부외과 전문의였다. 그는 밤낮없는 수술과 낮은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의원을 차린 뒤 발톱 무좀, 티눈 환자부터 고혈압, 당뇨 환자까지 과목을 가리지 않고 진료하고 있다. A 씨는 “나는 ‘흉부 외(外)’만 진료하는 흉부외과 의사”라고 자조했다.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3월 기준 전국 흉부외과 전문의 1154명 가운데 A 씨처럼 동네의원에서 일하면서 전공과목과 표시과목(간판)이 다른 흉부외과 전문의는 304명(26%)이었다. 외과 전문의도 사정이 비슷했다. 전국 외과 전문의(6445명) 중 1370명(21%)이 동네 의사로서 외과가 아닌 내과나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 간판을 걸고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6009명) 중 동네 의사 수(3173명)는 절반이 넘는다. 가까운 거리에 산부인과가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1207명(38%)이 본업과 무관한 진료를 한다. 이들 필수의료 과목을 포함한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상근하는 전문의 4만5314명의 표시과목을 분석한 결과, 1만2871명(28.4%)이 원래 전공과 일치하지 않았다. 김경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은 “생명과 직결된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들이 전공과 무관한 진료를 하는 의료 자원의 낭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수술실 ‘탈출’해 개원한 전문의들, 수입 적은 ‘전공 본업’ 포기 동네의원 28%, 전공과 다른 ‘간판’흉부외과 개원의 82%가 ‘다른 진료’… 인기 많은 안과 1%, 피부과 3% 그쳐수술-치료 수가 낮아 비급여 ‘부업’… “전공과 무관한 진료는 국가적 손실” 서울의 한 의원에서 미용시술과 성형수술을 하는 의사 B 씨. 그는 피부과나 성형외과가 아닌 외과를 전공한 외과 전문의다. 4년간 전공의 수련을 마친 뒤에도 경기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 남아 간암이나 담낭염 환자를 주로 수술했다. 응급수술이 많아 병원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였지만 사명감으로 버텼다. 피가 부족한 환자에게 직접 자신의 피를 수혈해 살린 적도 있다. 그런 보람이 무너진 건 2009년 어느 날이었다. 병원에서 먹고 자다가 한 달 만에 귀가하니 당시 세 살 난 첫째 아이가 B 씨의 얼굴을 못 알아보고 엄마 뒤로 숨었다. ‘이렇게 살려고 의사가 됐나….’ B 씨는 고심 끝에 대학병원을 떠났다. 그후 3년간 성형외과 병원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성형 기술을 익힌 뒤 2013년 성형 전문 의원을 차렸다. 처음엔 전공을 살려 외과의원을 차리려 했지만 동네의원에선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B 씨는 “솔직히 지금도 수술실이 그립다. 자면서도 수술로 환자를 살리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개원의 28%, 전공과 무관한 진료 동네의원에서 일하는 전문의 10명 중 3명은 B 씨처럼 자신이 전공한 전문과목이 아닌 다른 간판(표시과목)을 내걸고 진료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1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3월 기준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상근하는 전문의 4만5314명의 표시과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1만2871명(28.4%)이 원래 전공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대 졸업생들의 대표적인 ‘기피 전공’인 흉부외과는 표시과목과 일치하지 않은 비율이 81.9%로 가장 높았고, 외과(52.1%)와 산부인과(38.0%), 신경과(35%)도 불일치율이 평균보다 높았다. 반면 전공의 모집 때마다 지원자가 몰리는 안과의 경우 불일치율은 1%에 불과했다. 피부과(3.4%)와 이비인후과(4.7%), 정형외과(6%), 성형외과(6.8%)도 불일치율이 낮았다.● 고된 수술-당직에 ‘개원’ 탈출 러시 전문의들이 짧게는 3년, 길게는 6, 7년에 이르는 수련 경력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증 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에선 응급진료와 당직이 잦아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 과실에 따른 소송 위험도 한몫한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였던 C 씨는 2021년 서울 강남구에서 피부미용 의원을 열었다. 그는 10년 가까이 응급실을 지키며 논문 발표도 활발히 했지만, 잦은 밤샘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소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개원을 결정했다. C 씨는 “응급실 의료진의 근무 여건이 점점 나빠지면서 많은 옛 동료들이 개원을 고려하고 있다. 곧 ‘탈출 러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일수록 동네의원에서는 특기를 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중증 환자를 수술하려면 전문 의료진의 도움과 입원실, 고가의 수술 장비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심장이나 혈관 질환 등 고난도 수술을 주로 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동네의원에서 수련 경험을 100% 살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 수가 탓에 ‘부업’ 비급여 진료 치중 전문과목과 표시과목이 같다고 해서 모두 전공을 살려 진료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환자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치료와 수술에는 건강보험 수가가 낮게 책정된 탓에 ‘부업’인 비급여 진료를 앞세우는 주객전도(主客顚倒)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인천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내과 전문의 D 씨가 그렇다. 종합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 등 심장질환 환자를 진료했던 경험을 살려 심장 환자를 주로 치료하려 했다. 그런데 의원을 찾는 환자 중 심장 환자는 10%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암 검진이나 내시경 환자들이었다. 대구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는 외과 전문의 E 씨도 실제로는 통증주사 등 본업과 무관한 진료만 하고 있다. E 씨는 “간판에 ‘외과’라는 글자를 붙여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길고 고된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된 의사들, 그중에서도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전공과 무관한 진료를 하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 의원은 “국가는 병원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한편으로 동네의원에서는 포괄적 진료가 가능한 의사가, 병원급 이상에선 중증질환 치료가 가능한 전문의가 각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력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생약자원의 중요성을 국민 누구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체험활동 공간을 마련한 복합문화공간 ‘생약누리’를 개관했다. 생약누리는 ‘생약’과 세상을 뜻하는 ‘누리’의 합성어로, 아열대성 생약 자원을 확보, 보존하고 있는 제주 서귀포시 MFDS 국립생약자원관 제주센터에 설립됐다. 생약이란 의약품의 일종으로, 천연으로 산출되는 자연물을 그대로 또는 말리거나 써는 정도의 간단한 가공 처리를 거쳐 의약품이나 그 원료 제조에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생약은 의약품 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건강관리식품 제조에도 활용되며, 세계적으로 바이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생약 자원의 확보, 보존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생약누리는 제주센터 내 생약전문 전시관으로서 생약에 관한 상설 및 기획 전시를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생약누리는 2개 층과 옥상 힐링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의 생약표본실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종인 천산갑, 사향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1937년에 제작된 생약 표본 4종(사인, 초두구, 강활, 맥아)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녹용, 호골, 웅담 등 대한민국약전에 수록된 300여 점의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생약 표본을 관람할 수 있다. 1층의 생약 공방에서는 생약 자원을 주제로 다도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다. 야외에는 외국에서 생약자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열대 식물들을 재배하는 전시 온실과 재배장이 들어서 있다. 옥상에는 한라산과 서귀포 바다가 보이는 정원과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식약처는 1992년 충북 옥천센터를 시작으로 전국에 3곳의 생약자원관을 설립해 한반도의 생약 자원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위도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충북 옥천센터에서는 온대성 생약자원을, 강원 양구센터에서는 고산성 생약자원을 관리한다. 그중 제주센터는 2021년에 설립돼 아열대성 생약자원을 관리하며, 국내 생약 자원 관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권오상 식약처 차장은 “나고야의정서 채택 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의 생물자원을 확보하고 보존하기 위해 서로 무한히 경쟁하고 있다”며 “식약처는 생약자원 주권 확보와 품질관리에 힘써 앞으로도 우리 생약자원이 의약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김모 씨(33·서울 성동구)는 18세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친언니를 홀로 돌보고 있다. 언니는 김 씨가 자리를 비우면 머리를 자르거나 자해를 하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다. 부모의 부재 속에 지난 15년 동안 생계도 오로지 김씨의 몫이었고, 학업도 병행해야 했다. 하루 2시간만 자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공장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언니를 돌봤어도 휴대전화 요금 낼 돈조차 없이 궁핍했다. 김 씨는 “휴학이 잦아 8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했지만, 언니를 돌보느라 스펙이나 경험 쌓을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며 “취업 면접 때 ‘졸업이 왜 이렇게 늦었냐’ ‘이 시간 동안 스펙 안 쌓고 뭐 했느냐’는 물음을 들을 때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김 씨처럼 중증질환, 장애, 정신질환 등이 있는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돌봄청년(13∼34세)의 실태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조사다. 가족돌봄청년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주당 평균 돌봄시간은 21.6시간이었다. 가사노동, 병원 동행, 용변 보조 등이 포함된 활동이다. 이들은 “주당 평균 14.3시간이면 돌봄을 감당할 수 있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7.3시간이 긴 21.6시간을 가족 돌봄에 쏟고 있었다. 평균 돌봄 기간은 약 4년(46.1개월)에 달했다. 돌봄 부담이 과중하다 보니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청년(8.5%)에 비해 7배가 넘는다.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22.2%)도 일반 청년(10%)의 2배가 넘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36.7%가 가족돌봄 부담으로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 미래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돌봄 대상은 할머니(39.1%)에 이어 형제자매(25.5%), 어머니(24.3%), 아버지(22%) 순이었다. 중증질환자(25.7%)가 가장 많았고 장애인(24.2%), 정신질환자(21.4%), 장기요양 인정 등급(19.4%), 치매 환자(11.7%) 순이었다. 하지만 가족돌봄청년 10명 중 4명은 돌봄 지원 등의 어떠한 복지 서비스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돌봄청년의 40.7%는 의료비나 생계비 지원 등 현금성 복지 지원을 이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47.3%는 가정방문돌봄 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없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돌봄청년의 경우 복지 시스템이 있어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복지-돌봄 서비스와 연계해야 한다”며 “자립을 도우려면 구직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만6508명으로 일주일 전인 12일(1만3920명)보다 약 18.6% 증가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 등 각종 방역 조치가 풀렸지만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일상 회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가운데 다양한 방법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추적하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생활 하수 분석을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지역 확산정도를 조사하는 현장을 동아일보가 찾아갔다. 12일 충북 청주시 환경사업본부 하수처리장에 들어서니 오랫동안 음식물을 묵혀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미 냄새에 익숙해진 듯한 김상현 청주시 하수처리과 주무관은 10m 깊이의 생활 하수 유입점에 로프에 매단 바가지를 힘차게 던지더니 하수를 1L가량 퍼올렸다. 아이스박스를 들고 옆에 선 김수지 충북도 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사는 “상온에 검체를 보관하면 바이러스가 파괴돼 냉장 보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수를 담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보건환경연구원으로 향했다.● 이달부터 하수 기반 코로나19 감시체계 도입 이날 만난 김 연구사와 김 주무관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추출하기 위해 하수를 채수하던 중이었다. 이달부터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유행 추이를 분석하기 위해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 체계를 도입했다. 모든 확진자를 집계하는 현재 임상 기반 전수 감시와 달리 생활 하수에 섞인 바이러스 양을 분석해 지역사회 환자 발생을 추정하는 분석 기법이다. 이렇게 채수한 하수 검체는 충북도 보건환경연구원 생물안전실험실동으로 옮겨져 농축과 추출, 실시간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이뤄진다. 하수 검체의 ‘진액’을 뽑아내는 농축과 추출 과정이 진행되는 생물안전 2등급 실험실에는 ‘생물학적 위험’이라고 적힌 표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분변 등 이물질이 많은 생활 하수 특성상 바이러스를 제대로 검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다루는 것이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 연구사는 “실험실의 ‘BSC(Biological Safety Cabinet)’라는 안전실험대가 기류를 순환시켜 실험 중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 핵산 0.005mL 남을 때까지 농축-추출 김 연구사는 50mL의 하수 검체를 용기에 담아 냉장고로 옮겼다. 1시간가량 기다렸더니 하수 내 이물질이 가라앉았다. 걸러진 물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리보핵산(RNA)을 얻기 위해 핵산 추출 장비와 시약을 활용한 농축과 추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약 50분간의 이 과정이 끝나면 1.6mL의 하수 검체만 남는다. 이 하수 검체를 가지고 다시 핵산 추출 과정을 거친다. 핵산 추출 과정에선 단백질 덩어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RNA를 제외한 나머지 불순물들을 에탄올 등으로 씻어낸다. 결국 당초 채수량의 1만분의 1인 0.005mL만 남게 되는데 이를 PCR 진단검사에 활용한다. 김 주무관은 “이런 극소량만으로도 충북 전역의 코로나19 유행 추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진단 검사에서 도출된 결과값은 질병관리청으로 보내져 2, 3일간 분석한 후 지역 내 코로나19 확진자 추이를 비교하는 데 쓰인다. 하수 기반 코로나19 감시 체계는 기존의 개인별 임상 검사보다 20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개인정보 침해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하수 기반 감시를 새로운 감염병 감시 기술로 인정하여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세종시에서 처음 하수 기반 코로나19 감시 체계를 시범 운영해 확진자 집계와 비교한 결과 유의미한 일치도를 보였다고 한다. 질병청 관계자는 “이달 말부터 매주 전국의 하수 기반 코로나19 감시 결과를 발표하고, 장기적으로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 체계로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를 대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청주=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대한치과병원협회와 강릉원주대 치과병원은 13일 강릉 산불 이재민 임시대피소인 강원 강릉시 아이스아레나를 찾아 긴급 진료봉사활동을 진행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와 함께 구강 위생용품 1000세트를 강릉시 자원봉사센터에 전달했다. 협회와 병원 측은 구강 검진과 충치 치료 등 의료 지원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문수기자 doorwater@donga.com}
의약품 제조에 쓰이는 ‘원료 혈장(血漿)’의 국내 자급률이 최근 6년 새 81.4%에서 45.6%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혈장은 사람의 피에서 적혈구, 백혈구 등을 제외한 액체 성분을 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저출산·고령화로 헌혈이 줄어들자 의료기관들은 우선 급한 ‘수혈용 혈액(전혈·全血)’ 확보에 치중했다. 그 탓에 혈장 자급률이 떨어졌다. 현재는 부족한 혈장을 해외에서 수입해 쓰고 있지만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보건 안보’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성분 헌혈 감소… 수입 의존 헌혈은 크게 ‘전혈 헌혈’과 ‘성분 헌혈’로 나뉜다. 전혈은 혈액의 모든 성분을 한 번에 320∼400mL 채혈하는 것으로, 보통 헌혈의집 등에서 피를 뽑는 헌혈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모아진 혈액은 대부분 수술에 쓰이는데 보관 기간이 35일로 짧아 수입이 불가능하다. 반면 성분 헌혈은, 우선 피를 뽑은 뒤 혈장이나 혈소판 같은 성분만 걸러서 모으고 나머지는 다시 헌혈자의 몸에 넣어주는 것이다. 헌혈차에 가끔 노란 액체가 담긴 혈액 봉투가 보이는데 바로 그것이다. 피의 붉은색을 구성하는 적혈구가 빠져 있기 때문에 붉은색이 아니라 노란색을 띤다. 의약품 제조에 쓰는 혈장은 약 1년간 냉동 보관할 수 있고, 수입도 가능하다. 혈장 중에서 의약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는 것을 원료혈장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원료혈장 사용량은 2016년 69만7793L에서 2022년 103만8925L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자급률은 81.4%에서 45.6%로 줄었고 부족한 양은 수입에 의존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군부대와 고교 등 단체 헌혈이 위축되면서 혈액 수급이 나빠지자 일선 헌혈의집과 헌혈카페에서 헌혈자들에게 성분 헌혈 대신 전혈을 많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헌혈카페 20곳을 운영하는 한마음혈액원의 황유성 원장은 “시급한 수혈용 혈액을 먼저 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원료혈장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고령화로 의약품용 수요 증가… 대책 필요 우리나라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원료혈장을 필요로 하는 의약품 수요도 점점 늘고 있다. 코로나19는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인구 감소는 장기적으로 혈장 확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장기적으로 헌혈인구 감소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예로 과다출혈이나 간경변, 면역질환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인 알부민과 면역글로불린 제제 등은 원료혈장으로만 만들 수 있다. 임영애 국가혈액관리위원장(아주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한국 등 대부분 국가가 원료혈장을 미국, 독일 등에서 수입한다.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머잖아 국가 간 ‘원료혈장 확보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헌혈이 가능한 국내 인구(만 16∼69세)는 올해 3916만 명에서 2043년 3066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미 병원들은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수혈자를 직접 구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혈액 대란을 막으려면 헌혈자에 대한 보상을 높이고, 헌혈 캠페인을 확대해 헌혈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엄태현 대한수혈학회 이사장(인제대 일산백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헌혈가능 인구 가운데 꾸준히 헌혈하는 건 5% 정도뿐”이라며 “헌혈 인구가 지금 2배 수준으로 늘어나야 혈액 부족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최근 5년간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 중증 응급환자 2명 중 1명이 ‘골든타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11일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년간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을 찾은 중증 환자 145만 명 중 약 절반(49.1%) 수준인 71만 명이 생명을 구할 적정 시간 내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중증 응급환자의 질병별로 심근경색은 발병 후 2시간 이내, 출혈성·허혈성 뇌졸중은 3시간 이내, 중증 외상은 1시간 이내를 적정 응급실 도착 시간으로 보고 조사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이미 사망한 도착 시 사망(DOA)은 제외한 수치다. 문제는 지난달 추락 사고를 당한 대구의 10대 환자가 응급 상황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했던 것처럼 ‘표류’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미도착률은 매년 증가했다. 2018년 47.2%였던 중증환자의 응급실 미도착률이 2019년 47.3%, 2020년 48.4%, 2021년 50.8%, 2022년(잠정치) 52.1%로 늘어났다. 질환별로 나눠 봐도 지난 5년간 심근경색, 출혈성 뇌졸중, 허혈성 뇌졸중, 중증외상 환자 등 모든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미도착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적정 시간 내 응급실 미도착 비율이 2018년 48.5%에서 2022년 56.5%로 8%포인트 증가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최근 5년간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 중증 응급환자 2명 중 1명이 ‘골든타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11일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년간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을 찾은 중증 환자 145만 명 중 약 절반(49.1%) 수준인 71만 명이 생명을 구할 적정 시간 내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중증 응급환자의 질병 별로 심근경색은 발병 후 2시간 이내, 출혈성·허혈성 뇌졸중은 3시간 이내, 중증 외상은 1시간 이내를 적정 응급실 도착 시간으로 보고 조사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이미 사망한 도착시 사망(DOA)은 제외한 수치다.문제는 지난달 추락사고를 당한 대구 10대 환자가 응급 상황에서 치료 받을 병원을 찾지 못 해 사망했던 것처럼 ‘표류’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미도착률은 매년 증가했다. 2018년 47.2%였던 중증환자의 응급실 미도착률이 2019년 47.3%, 2020년 48.4%, 2021년 50.8%, 2022년(잠정치) 52.1%로 늘어났다.질환별로 나눠 봐도 지난 5년간 심근경색, 출혈성 뇌졸중, 허혈성 뇌졸중, 중증외상 환자 등 모든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미도착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적정 시간 내 응급실 미도착 비율이 2018년 48.5%에서 2022년 56.5%로 약 8%포인트 가량 증가했다.최혜영 의원은 “중증 응급환자가 적정 시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