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정미경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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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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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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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찌 장갑의 철주먹’ 펠로시가 트럼프 연설 원고 찢은 까닭[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메모를 하려는데 펜이 없더군요. 그래서 메모를 하려던 부분을 조금씩 찢어내기 시작했죠. 나중에는 아예 원고를 찢어버리기로 했습니다.”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연설이 끝나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81)이 뒤쪽에서 연설 원고를 찢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설 시작 때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의 악수를 청하는 손을 거절한데 대한 ‘보복’이라는 설이 유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문서를 찢은 것은 위법 행위”라며 노발대발(怒發大發)했습니다. 공화당은 “의회 차원에서 꾸짖어야 한다”며 징계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표를 모으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논란이 분분한 상황에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죠.최근 출간된 펠로시 의장의 전기 ‘마담 스피커: 낸시 펠로시와 권력의 교훈’에 따르면 원고를 찢은 것은 “단지 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트럼프 리더십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졌지만 사실 자신의 행위는 “악의가 없었다”는 것이죠. 원고를 읽다가 체크해 둘 부분이 있어 펜을 찾았으나 마침 의장석 책상에는 펜이 없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그 부분을 찢어내기로 했다죠. 미국 사람들이 곧잘 하는 방법입니다. 나중에는 하도 찢어낸 부분이 많아 원고가 너덜너덜해지자 “아예 찢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펠로시 의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모든 소동은 ‘펜이 어디 있지?’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며 웃었다고 합니다. 대통령 면전에서 연설 원고를 찢은 이유가 ‘펜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판가들의 주장대로 ‘대통령과의 갈등 때문’인지는 펠로시 의장 본인만이 알겠죠. 어쨌든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전기에는 앙숙 사이라는 펠로시-트럼프 관계에 대한 숨겨진 일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USA투데이 워싱턴지국장인 수전 페이지 기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팬데믹 와중에 펠로시 의장을 10회 이상 만났고, 주변 인물 100여명을 인터뷰했으며, 또한 과거 서류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책에는 펠로시 의장이 40대 후반에 정계에 뛰어든 사연, 여러 대통령들과의 관계, 미국 정치를 호령하는 여성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비결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구찌 장갑을 낀 철주먹.” 미국 정가에서 펠로시 의장을 이렇게 부릅니다. 그녀는 의회 재산 조사에서 언제나 ‘톱10’에 드는 부호(富豪) 정치인입니다. 2015년 기준으로 3000만 달러(335억 원)를 넘나들죠. 옷과 장신구 모두 명품으로 도배합니다. ‘낮은 곳을 향하는’ 민주당 정치인으로 거대한 부를 갖췄으면 뒷소리가 나오기 쉽지만, 그녀는 좀처럼 욕을 먹지 않습니다.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덫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투지에 불타는 ‘전투력 갑(甲)’ 정치인이죠. 뿐만 아니라 미국은 정치인의 개인적인 재산 축적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버지는 필라델피아 하원의원과 3선의 볼티모어 시장을 거친 유명한 정치가였습니다.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는 ‘얼굴 스팀 가습기’ 등의 특허를 출원했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넘치는 여성이었죠. 펠로시 의장은 아들 5명 뒤에 낳은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활동적인 부모님과 많은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소극적 성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거대한 와인 사업과 투자 전문가로 일하는 남편을 뒀습니다. 4녀 1남을 키운 그녀는 막내딸이 17살이 되는 198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전국적인 정치 무대에 등장합니다. 개인적 야망과 탄탄한 가문 출신, ‘리버럴의 성지’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운 정치 감각으로 그녀는 차근차근 성공 계단을 밟아갔습니다. 2001년 여성 최초의 민주당 원내총무가 됐고, 이듬해 원내대표에 당선됐습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하원의장에 당선됐습니다. 2007년 신년 국정연설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으로 자신의 뒷자리에 앉은 그녀를 소개하며 “이 단어로 연설을 시작하는 대통령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마담 스피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치 속어에 “소시지를 잘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죠. 그녀의 지론에 따르면 “잘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은 많다. 하지만 유권자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치권이나 여론의 회의적인 시선을 이겨내고 힘든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명수로 통합니다. 당적은 달랐지만 부시 전 대통령을 도와 대기업 구제금융 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는 그녀의 지원이 있었기에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개혁안 통과가 가능했죠.하지만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펠로시는 이제 내려와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녀 역시 2016년 정계 은퇴를 고려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오히려 전투력을 불사르는 계기가 됐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당선 후 먼저 축하 전화를 걸어 “곧 있을 의회 여성코커스(CCWI)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잠깐 기다려봐, 딸 바꿔줄게”하더니 이방카에게 전화를 넘겼다고 합니다.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은 여성 비하적이고, 경력이라고는 트럼프 기업에서 일했던 것이 전부였던 대통령의 35세 딸이 한바탕 늘어놓는 보육정책의 방향에 대해 들어야 했다. 아직은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남은 정치 명장면이 있습니다. 2018년 12월 백악관 집무실을 걸어 내려오는 펠로시 의장의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에게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법안 통과를 종용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1시간도 안 돼 이를 박차고 나오는 길이었죠. 당당한 발걸음, 얼굴의 미소, 멋진 패션 등과 어우러져 “펠로시표 정치의 정수를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였다면 대통령 면전에서 퇴장하는 배짱을 보이는 것이 힘들었겠지만, 직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확보에 성공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대적 상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친 낸시”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갑옷을 입어라. 격투용 너클을 손마디에 끼워라. 아침식사로 손톱을 먹어라(‘정신을 집중하라’는 의미의 속담). 이제 출정하라. 부모의 품에서 아이들을 뺏고, 아이들의 입에서 음식을 뺏는 적들을 물리쳐라.” 펠로시 의장은 전기 출간을 위한 인터뷰를 중세 전쟁 영웅들의 무용담 구절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80대 할머니의 승부사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죠. 물론 정치 서열상 더 높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탄생했지만 온전히 자기의 결단성과 추진력으로 현재의 위치를 얻은 펠로시 의장과는 비교하기 힘들죠. 아무래도 펠로시를 능가하는 여성 리더가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듯 합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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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NC+’로 미래 4차산업 전문가 키운다

    “링크플러스(LINC+·전문대 사회맞춤형학과 중점형 사업)를 통해 학교에서 경험하기 힘든 반도체 공정 실습 기회를 기업 현장에서 익힌 것이 저의 ‘무기’였습니다.” 경기 대림대 반도체장비전공학과 출신의 정대환 씨는 졸업과 함께 반도체장비 생산 회사 SENS에 입사했다. 많은 친구들이 그를 부러워했다. 정 씨는 자신의 취업 성공 비결을 “LINC+ 반도체장비반을 수료한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팬데믹 여파로 청년층 취업문이 더욱 좁아진 반면에 반도체 같은 유망 산업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인력이 급해도 대학 졸업생을 데려와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지는 않는다. 신입사원을 채용해 적지 않은 실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실습 기회를 대학 재학 동안 제공하는 것이 전문대 LINC+ 사업이다. 2017년 시작된 이 사업은 대학과 기업이 공동 운영한다. 교육부의 대표적인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실적도 좋다. 2017∼2018년 교육부의 176개 일자리 관련 사업 평가에서 3개 사업만이 선정된 최우수 ‘S’ 등급에 포함됐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350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기업은 교재 개발부터 강사 파견까지 자신들의 맞춤형 수요에 맞춰 진행한다.올해 전국에서 40개 전문대가 ‘협약반’으로 불리는 사회맞춤형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전국 5개 권역별로 진행된다. 협약반 수강을 위한 별도 수업료는 없다.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정보통신, 의료 보건 등 15개 분야에서 2017년부터 지금까지 394개 협약반이 개설됐다. 반도체 및 정보통신 분야가 남학생의 관심사라면 여학생은 치위생사, 유아교육 등에 몰린다. 기업명을 내걸고 협약 회사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는 과정도 있다. 지난해 오산대(수도권)의 아모레퍼시픽반, 경민대(수도권)의 할리스에프앤비 직무협약반, 신성대(충청강원권)의 신세계 베이커리특별반 등이 운영됐다. 학생 입장에서 매력은 채용 연계성에 있다. 물론 수료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은 자신이 공을 들여 키운 인재를 채용할 확률이 높다. 사업에 참여한 대학과 기업은 매년 협의를 거쳐 협약반을 운영할 때 수료 인원을 대상으로 ‘채용 약정’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수료생은 “채용 약정이 돼 있는 과목은 수강 지원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경기 오산대의 반도체장비반은 LB세미콘을 포함한 18개 기업과 공동으로 15주간 집중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협약 회사의 실무자가 주 4일 하루 6시간씩 집중 실습을 하는 ‘하드 트레이닝’이다. 주 1일 멘토링과 현장 견학도 이뤄진다. 이후 협약 회사로 4주간 현장 파견 실습을 나간다. 집중학기제 등의 산학협력 교육과정 덕분에 오산대 협약반의 취업률은 96%에 이른다. 해외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 동남권 연암공대는 LG화학 폴란드 전지생산법인과 협약을 맺고 지난해 전자전기 계열 등의 학과에서 15명을 선발했다. 상반기에 직무 기초 교육을 받고, 9월부터 3개월 동안 폴란드에서 생활하면서 현지 전문가의 지도를 받았다. 현지 파견에 앞서 1개월간 어학 교육도 받았다. 이 대학 관계자는 “수료 후 폴란드 현지법인 취업률 100%, 협약기업 만족도 100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호남제주권 조선이공대 컴퓨터보안과 출신인 장누가 씨는 재학 중 정보보안반 과정을 이수하며 각종 경진 대회에서 우수한 입상 성적을 보였다. 협약 기업인 가민정보시스템에 입사한 그는 지난해 자신이 배웠던 모교 정보보안반의 산업체 강사 자격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장 씨는 “열의에 찬 학생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상석 전문대 LINC+ 사회맞춤형학과 중점형 사업단 협의회장(부산과학기술대 부총장)은 “기업 수요맞춤형 인재를 키워 미래가 유망한 4차 산업혁명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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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여름 뜨겁게 달군 ‘BLM 운동’ 리더, 백인 부촌 입성 ‘시끌’[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신문을 펼쳐들면 ‘하우스 리스팅’ 섹션에 주요 매물 광고가 눈길을 잡죠. “창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진 청정 자연림. 운치 있는 대나무 바닥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하세요. 높은 천장은 확 트인 공간감을 보장합니다. 자동 창문 밖 야외 패티오에서 한 잔의 여유를 즐기셔도 좋습니다. 손님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도 마련돼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서쪽 토팡가캐년이라는 지역에서 매물로 나온 140만 달러(15억 7000만원)짜리 집의 광고입니다. 최근 이 집 잔디밭에 ‘팔렸다(Sold)’는 팻말이 나붙었습니다. 구매자가 눈길을 끕니다.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설립자인 흑인 여성 패트리스 쿨로스입니다. 쿨로스는 자신을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운동가”라고 소개합니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흑인에게 불리한 구조”라고 공공연히 말해왔죠.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BLM 운동의 지향점은 “단순한 인권 운동이 아닌 사상 이데올로기 운동”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밀리언달러’ 저택 구매를 두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보수층에서는 “BLM 사기극” “백인에게 영혼을 판 BLM 리더” 등의 조롱이 쏟아집니다. 쿨로스가 새로 집을 산 곳은 백인 지역입니다.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백인이 88%인 반면 흑인 가구는 1.8%에 불과합니다. 2018년 발간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에 따르면 그녀는 새 집에서 자동자로 20분 거리인 LA 밴너이스의 빈곤 가정 출신입니다. 자서전에는 싱글 맘이었던 어머니가 자신을 포함한 자식 3명을 힘들게 키워낸 이야기가 실려 있죠. 그녀는 강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문은 어긋나 제대로 닫히지 않고 인터콤은 달려 있지만 한번도 작동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습니다. 물론 쿨로스의 백인 부촌(富村) 입성을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인들도 우리나라만큼 자수성가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특히 빈곤가 출신 흑인의 백인 사회 성공 스토리는 언론이 좋아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층 뿐 아니라 일반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쿨로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최근 BLM 운동이 권력 내분에 휩싸이며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BLM은 쿨로스, 알리샤 가자, 오팔 토메티 등 3명의 흑인 여성이 공동 설립한 사회운동 단체입니다.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질식 사망 사건 이후 유명해졌지만 원래 2012년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히스패닉계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에게 사살되는 사건 이후 소셜 미디어에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해시태그를 처음 선보였습니다. BLM은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10여개 군소 운동단체들을 ‘합병’하며 사회운동의 리더로 부각됐습니다. 이 사건의 정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가 각광을 받으면서 BLM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죠. 지난해 6월 퓨리서치 조사에서 미국인의 67%가 BLM 운동을 “지지한다” 또는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조던 등 스타들의 지지 메시지가 잇따르면서 BLM은 지난해 90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인종 차별 반대 시위 이후 BLM은 방향성을 잃었습니다. 강경 노선의 쿨로스와 달리 지역사회 운동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다른 공동 설립자 2명은 지난해 9월 BLM을 탈퇴하고 다른 단체를 차렸습니다. 단일 리더가 된 쿨로스는 BLM을 정치활동위원회(PAC) 단체로 등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흑인 후보들을 밀겠다는 좋은 뜻도 있지만, 선거모금 단체인 PAC으로 등록되면 자금 운영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나오기 십상이죠. 쿨로스는 강연 활동 비중이 커지더니 지난해 10월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와 지상파, 케이블, 스트리밍 등 다채널을 이용한 콘텐츠 개발을 위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기업과의 제휴 관계를 물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대선 후 쿨로스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때 BLM은 동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죠. 지난해 12월 BLM 지부들은 쿨로스를 포함한 본부 운영진에게 공개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이 서한에서 오클라호마 등 10개 지부는 “본부와 결별해 ‘BLM10’을 조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부들은 동등한 발언권을 주겠다는 당초 본부 방침과는 달리 “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지역 활동가들은 자기 돈으로 교통비와 식비를 해결할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쿨로스는 “내부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했다”고 밝힌 후 별다른 공개 활동을 보이지 않더니 이번에 LA 저택 구입으로 다시 화제가 된 것이죠.전문가들은 BLM 내분 사태에 대해 “외부 요인에 의해 집결된 대다수 사회 운동이 분열과 난립으로 막을 내리는 익숙한 과정을 밟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오마르 와소 프린스턴대 정치학 교수는 “특히 BLM 운동처럼 인종, 성별, 계급적으로 상이한 조직들이 협력할 경우 장기적인 결속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지금 한쪽에서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목이 눌린 플로이드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한 전문의와 경찰관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죠. 다른 한편에서는 플로이드 사건이 촉발시킨 BLM 운동권 리더의 ‘내로남불’ 스토리가 들려옵니다. 미국인들의 냉소주의와 정치 혐오증은 깊어만 갈 뿐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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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FDR도 LBJ도 아니지만…” 역사학도 바이든의 말, 무슨 뜻?[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역사 열공 모드.’ 요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해 이런 평가가 나옵니다. 요즘 워싱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마련한 역사 스터디모임이 화제입니다. 지난달 초 비공개로 열렸던 역사학자들과의 회동이 바로 그것이죠. 임기 초 바쁜 대통령이 대면 모임을 거의 갖지 않는 백악관에서 2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만난 것을 보면 대단한 행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모임에서 ‘학생’ 바이든은 역사학자들이 풀어주는 역대 대통령 강의를 노트에 받아 적어가며 열심히 경청했다고 합니다. 백악관 스태프들이 일일이 음료를 서빙하는 것도 방해가 될까봐 아예 다과 테이블을 한쪽에 마련해 놓고 참석자들이 가져다 먹으면서 공부 삼매경 분위기였다고 하죠.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에도 번역서들이 다수 출간된 저명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 마이클 베슐로스를 비롯해 아넷 고든 리드 하버드대 교수, 에디 글라우드 주니어 프린스턴대 교수, 조앤 프리먼 예일대 교수, ‘스티브 잡스’ 전기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 아스펜연구소 회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역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보인 바이든 대통령의 질문은 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린든 존슨 등 2명의 전임 대통령에게 집중됐습니다. 민주당 출신으로 비교적 늦은 나이에 대통령에 올랐다는 점이 바이든 대통령과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단발성 정책이 아닌 긴 안목의 시대정신을 제시한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 의회의 대통령 권한 최대 보장을 골자로 하는 ‘뉴딜’로 대공황을 이겨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롤모델로 유명하죠. 존슨 전 대통령 역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사망 후 혼란기에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과감한 복지 정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통령입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의 정책 추진 속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개혁적 아이디어가 부딪히기 쉬운 사회적 저항을 덜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내야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2명의 전임 대통령에게서 찾으려는 것이지요. “나는 FDR(루즈벨트 대통령의 약칭)도, LBJ(존슨 대통령의 약칭)도 아니야. 하지만….” 모임에 참석했던 역사학자들은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꼽아달라고 질문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 한마디를 꼽았습니다. “나는 FDR, LBJ와는 다른 나만의 아이디어와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은 대략 이런 것이겠죠. 이 말 속에는 단임 대통령으로서의 실적 부담감이 담겨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4년 재선 도전 여부에 대해 아직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최고령 대통령으로서 그의 나이에 대한 다양한 조롱이 나도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4년 후 80대 나이의 대통령을 뽑아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반면 극도의 혼란기였던 도널드 트럼프 시대와의 결별, 코로나19 등 바이든 대통령이 부딪힌 문제는 미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역사의 교훈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꿈’을 외치는 이상주의 리더십이 아닌 정치의 생리를 아는 노련한 협상가 출신 대통령인 만큼 전임자들의 실적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바이든식 생존 비결이라고 할 수 있죠.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도 역사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긴 호흡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이슈를 바라봐야 한다”는 식으로 답했죠. 첫 질문자로 나선 AP통신 기자가 최근 미국-멕시코 국경을 물밀 듯 넘어오는 어린이 난민 문제에 대해 묻자 바이든 대통령은 “장기적인 문제다. 이민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답했습니다. PBS 기자가 현재 의회에서 밀고 당기기 중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규칙 개정에 대해 묻자 “내가 처음 상원의원이 됐던 120년 전부터 정치권의 논란거리였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많은 나이(79세)를 농담으로 삼은 것이지요. 그러면서 “1917년부터 1971년까지 58차례의 필리버스터 제한 시도가 있었다. 의원들은 기절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다른 의원들의 마라톤 발언을 들어야 하는 고충을 호소했다.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식의 답변이었습니다. 해당 이슈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은 길게 이어진 반면 정작 기자들이 원하는 현재 정책 대응방향이나 당내 추진상황에 대한 답변은 거의 생략됐습니다. 재선 도전에 관한 질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스(Yes)냐 노(No)냐’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역사로 화제를 돌립니다. “당신 자식이나 손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논문을 쓸 것이다. 단지 중국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기술 환경의 변화에 우리는 잘 적응할 수 있는가. 21세기는 민주주의와 독재주의가 대결하는 시대다. 우리는 과연 조상이 물려준 민주주의의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는가….”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독재와 자신의 민주주의 시대를 비교하고 싶었던 듯하지만 재선 도전 여부에 대한 답변은 아니었죠. 그래서 바이든의 첫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립니다. “보기 드문, 철학적인 대통령 회견이었다”는 의견과 “도통 무슨 얘기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주장이 맞섭니다. 역사학자 모임, 기자회견 등에서 보여준 역사학도로서의 바이든 대통령의 면모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옵니다. 미국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여준 해박한 역사 지식에 국민들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한가해 보인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역사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 “위대한 리더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 위한 재창조 작업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역사에 매진하는 이유야 어찌됐던 간에 우리나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역사탐구 정신을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북한 핵미사일,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주둔 등의 이슈를 두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 미국 역사를 거론하며 이해력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전략이겠죠.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나 역사공부에 푹 빠졌는지 역사학자들과의 2시간 회동이 끝난 뒤의 아쉬움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2시간은 내쳐 더 할 수 있었는데(I could have gone another two hours)….”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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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물놀이에 끌리고 한양도성에 푹… 푸른 눈의 한국문화 전도사

    “배 불리 얻어먹은 기억이 가장 많이 납니다.” 40여 년 전 미국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한국 땅을 밟은 오수잔나 대성그룹 고문(63)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1980년 경남 사천보건소에 파견돼 결핵관리 요원으로 일했다. 한국이 막 근대화 작업을 마치고 ‘웬만큼 사는 나라’ 대열에 들어설 때였다. “집집마다 방문해 결핵약을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한 상 뚝딱 차려주시는 것이 시골 인심이죠. 보건소로 돌아갈 때가 되면 언제나 배가 빵빵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정에 푹 빠져 2년 임기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줄곧 한국에서 살고 있는 오 고문을 최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만났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 당시 프런티어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시작된 평화봉사단은 한국에서 1980년 그의 기수를 마지막으로 활동이 중단됐다. 조지타운대에서 미국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경력을 쌓기 위해 평화봉사단에 자원했다. “한국 생활에 다 적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재래식 화장실은 ‘도전’이더군요. 그래서 언어 습득의 기회로 삼았죠. 한국말 메모장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외웠더니 실력이 쑥쑥 늘었습니다. 다리는 저렸지만요. 하하.” “제가 한국에서 많이 받는 질문은 ‘왜 잘사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미국은 한국보다 앞서지만 문화는 국가 간 순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 문화가 좋았습니다.” 임기 후 우연히 관람하게 된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에 감동을 받고 놀이패 사무실에 무작정 출근하며 제자로 받아달라고 졸랐다. 제자는 되지 못했지만 10여 년 동안 무대 뒤에서 해외담당 매니저로 활동했다. 오 고문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1980년대 초중반은 한국 사회에 민주화 열기가 가득한 때였다. 그 역시 최루탄을 뚫고 서울 신촌 대학가에 있는 놀이패 사무실에 오갔다. ‘굴레방 다리’로 불렸던 아현 고가도로가 자동차가 아닌 민주화 시위대로 인산인해가 된 모습도 목격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이뤄진다는 귀중한 ‘역사 공부’를 한국에서 하게 된 셈이죠.”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지만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본명이 수잔나 샘스탁인 그는 당시 남편 성을 그대로 쓰고 있다. 자녀 2명을 혼자 힘으로 길러낸 싱글 맘인 그는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일반 한국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글로벌 시민교육은 수준급입니다. 굳이 외국인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지요.” 이후 남이섬 문화원장, 한국판 뉴스위크 편집위원 등을 거친 그는 외국인 모임에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을 알게 되면서 그룹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세계에너지협회(WEC) 명예회장을 맡은 김 회장이 국제 무대에서 신재생 에너지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WEC 영국본부 등과 소통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오 고문은 아직도 평화봉사단을 매개로 한국과 미국을 이어주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코로나19 생존 박스’ 스토리의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국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은 역대 평화봉사단원들에게 마스크, 특산품 등을 넣은 ‘생존 박스’를 발송했다. 미국 쪽 평화봉사단 동문 모임인 ‘프렌즈 오브 코리아’에서도 활동하는 그는 자문 자격으로 단원 주소를 수소문하는 일에서부터 박스에 넣은 물품 선정에까지 관여했다. “과거 미국이 한국을 도왔다면 이제는 한국이 미국을 도울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 일이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끝없는 한국문화 탐험가인 그는 요즘 한양도성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2019년부터 주말에 짬을 내 한국청년연합(KYC)이 운영하는 한양도성 투어 프로그램의 유일한 외국인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어로 진행하는 해설가다. “조선 태조때 국민 20만명이 힘을 합쳐 무거운 돌을 나르고 쌓아 100여일 만에 1차 완성된 것이 한양도성입니다. 기획력과 협력심이 한국인의 DNA에 숨쉬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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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어줘도 OK” 플로리다 방역…주지사 인기도 ‘훨훨’[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누가 나보고 마스크도 안 썼다고 뭐라고 하던데 말이야. 아니 어떻게 마스크를 쓰고 승리의 건배주를 마시라는 거지. 우리 ‘벅스’(플로리다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약칭)가 이겼잖아. 하하.”이렇게 호탕하게 웃는 사람. 론 드산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공화당)입니다. 올해 전미프로미식축구(NFL) 결승전 슈퍼볼 경기가 지난달 플로리다 탬파 스타디움에서 열렸습니다. 드산티스 주지사가 마스크도 안 쓰고 로열석에서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슈퍼볼 같은 밀집 행사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거기다 마스크 안 쓴 걸 자랑까지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 미국에서 그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00일 2억 명 완료’로 목표를 상향 조정할 만큼 빠르게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코로나19 퇴치에서 갈 길이 먼 미국입니다. 엄중한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수칙이 느슨하기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플로리다 주가 각종 코로나19 통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주들이 ‘죄고 또 죈다’ 노선을 표방할 때 “최대한 풀어라”고 외쳤던 드산티스 주지사가 요즘 큰소리 뻥뻥 치는 것도 당연합니다. 최근 언론 보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드산티스의 자유방임 도박, 성공을 거두다(CNN)” “죄었던 캘리포니아, 풀었던 플로리다. 왜 결과는 비슷한가?(AP통신)” “드산티스, 어떻게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나(폴리티코)” 등 그를 치켜세우는 제목의 기사가 홍수를 이룹니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코로나19 초기 때부터 “경제, 경제”를 외쳤습니다. 인구 2100만 명으로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플로리다는 관광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지요. 마스크 의무화 정책은 지난해 9월 일찌감치 폐지했습니다. 다른 주들이 마스크를 안 쓴 주민에게 벌금을 부과하지만 플로리다 정부는 “왜 오는 손님 내쫓느냐”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상점에게 과태료를 매길 정도입니다. 학교도 정상등교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술집, 레스토랑 등 각종 유흥 시설과 관광 명소도 정상 운영됩니다.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는 문이 닫혀있지만,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는 활짝 열려 있습니다. 우리 주로 놀러오세요.” 플로리다의 관광 홍보 문구입니다. 플로리다는 캘리포니아와 자주 비교됩니다. 인구 많은 대형 주, 온화한 기후 조건, 중남미 이민자 고비율 등의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죠. 이 두개 주는 방역 스타일이 완전히 상반됩니다. 캘리포니아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상점의 실내 운영이 엄격히 제한되고 관광시설도 문을 닫는 등 초강력 방역주의입니다. 지난달 음식점 이용 제한이 부분적으로나마 풀리자 참고 참았던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외식하러 쏟아져 나오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죠. 반면 플로리다는 최대한 방역 규칙을 적게 만들며 자유방임을 내걸고 있습니다. ‘건강 문제는 다들 자신이 알아서 지킨다’는 것이 기본 철학이죠. 극과 극의 방역 원칙을 내걸었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주당 평균 수치를 내는 존스홉킨스대 보건안전센터 자료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감염자 수에서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는 10만 명당 9000명대로 비슷합니다. 전체 50개 주중에서 20~3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죠. ‘톱’은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가 1만3000명 수준으로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당 사망자 수도 마찬가지입니다. 27일 현재 플로리다는 10만 명당 152명, 캘리포니아는 149명으로 각각 27위, 28위입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주는 뉴저지로 270명이 넘습니다. 물론 플로리다가 1등을 차지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유방임 정책으로 이 정도의 성적을 일궈냈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플로리다 경제는 착실한 성장세를 보이며 4~5%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미국 전체 실업률이 15%까지 치솟았다가 최근에야 8%대로 하락한 것과 비교되죠. 그 여세를 몰아 드산티스 주지사는 아직 ‘엄격 방역’을 밀고 나가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하루가 멀다 하고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하늘 길만큼 뱃길도 열려야 한다”며 지난해 3월 내려졌던 유람선 운영 금지 규칙을 해제시켜달라는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주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플로리다 항구들을 출발해 중남미를 여행하는 로열캐러비안, 카니발, 디즈니 등의 호화 유람선은 플로리다에서 15만 명의 고용과 80억 달러의 임금을 창출한다고 합니다. 드산티스 주지사가 이렇게 유람선 재개까지 챙기고 있을 때 “방역 리더십” 칭송을 받았던 다른 주지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초기에 거의 ‘영웅’ 대접을 받았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잇단 성추문과 요양원의 코로나19 사망자 통계를 은폐했다는 의혹 때문에 정치 생명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아예 개빈 뉴섬 주지사의 초강력 방역 대책들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며 축출을 위한 주민소환 투표를 벌이고 있습니다. 소환 투표 정족수인 150만 명 서명은 이미 도달했죠. 전문가들은 플로리다가 느슨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과학계에서도 “미스터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존스홉킨스대 연구에 따르면 규제 정도와 확진자 사망자 수를 단순 인과 관계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합니다. 수많은 중간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구역당 인구 밀집도, 다른 주로부터의 일시적 방문자, 미신고 불법 이민자, 습도와 풍속 같은 기후환경도 모두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코네티컷은 ‘강한 규제,’ 사우스다코타는 ‘약한 규제’라는 상반된 방역원칙에 불구하고 모두 ‘감염률 톱10’ 주에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는 않은 어떤 중간 변수가 플로리다의 우수한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플로리다 시와 카운티 정부, 상점주 등은 주정부의 느슨한 방역 대책에 반발해 자율적으로 마스크 의무 착용, 거리두기 원칙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계산에 넣어야 하겠죠.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보듯이 금지 위주의 정책은 일정 수준까지만 효과를 낼 뿐 시간이 지나면 ‘위반할 사람은 위반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고 합니다. 마약 복용이나 에이즈 등 성 매개 감염병을 막기 위해 다양한 금지 캠페인을 실행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미국은 더 잘 알고 있죠. 어쨌든 드산티스 주지사는 플로리다의 코로나 성공 스토리를 온통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정치적 야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초선 주지사로 내년 재선을 앞두고 있는 그의 캠페인 진영에 공화당의 거물 선거 전략가들이 총집결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하지만 주지사 재선 정도로 만족할 사람이 아닙니다. 2024년 공화당 대선 구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성에 도전할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도널드 미니미(mini-me)’로 불리며 처음 정치 무대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코로나19가 그에게는 행운의 여신이라고 할 수 있겠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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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도 안 했는데 ‘삐걱’…美 바이든 첫 기자회견[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습니다. 최근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25일 첫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취임 후 65일만이죠. “첫 기자회견이 너무 늦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 끝에 그나마 지금이라도 한다니 다행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다수의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자회견 방식을 두고 백악관과 기자단 사이에 갈등이 쌓이고 있다고 합니다.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질문을 사전에 제출받지 않는 것이 전통입니다. 대통령은 관례적으로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악관 공보국이 사전에 질문을 받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기자들 사이에 퍼져있다고 합니다. 기자단 대표인 ABC방송 기자는 백악관 측과 이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하죠. 언론과 사이가 나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 사전 질문을 받지 않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 시절과는 다르게 언론과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매일 부지런히 언론 브리핑을 하며 기자들과 만납니다. 트럼프 행정부 때는 볼 수 없었던 일이죠. 하지만 백악관 언론 관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현재 백악관 브리핑에는 10명 정도의 기자가 참석합니다. 백악관이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엄수해야 한다”며 평소 50명씩 달하던 기자 수를 확 줄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게다가 지난달부터는 그 적은 기자들로부터 받는 질문조차 “내용을 먼저 제출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요즘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인 데이터 조사가 필요한 코로나19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브리핑용 질문을 사전에 받기 시작했으니 기자회견용 질문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죠. 언론과의 가장 극적인 갈등 사례는 코로나19 검사비용 부담 문제입니다. 백악관에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오가며 취재를 합니다.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는 기자 수는 제한되지만 백악관 내부, 특히 업무동에 해당하는 웨스트 윙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백악관 경내에 입장하는 언론사 관계자들은 매일 코로나19 신속 항원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비용이 1인당 170달러(19만 원 정도)로 매우 비싸다는 것입니다. 출범 후 1개월은 이 비용을 대주던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부터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언론사에게 ‘자체 해결’을 통보했습니다. 물론 언론사가 자발적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취재하는 것이니 자체 부담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한번 촬영에 10명 이상의 보조 인력이 투입되는 방송사의 경우 매일 2000달러(226만원)를 넘나드는 검사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고 합니다. 언론사들이 “백악관의 비싼 검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검사를 받고 증명만 제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백악관은 “공신력 있는 검사 기관이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언론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백악관에 입장하는 기자들을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이용한 교묘한 언론통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현재까지 진행된 협상에 따르면 기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사전 질문 제출 요구를 수용해 기자회견을 예정대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워낙 관심이 집중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언론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이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대통령 기자회견은 TV로 생중계됐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해도 국민은 하는 줄도 모르거나 알아도 나중에 알게 됐죠. 외모와 언변이 모두 뛰어났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TV 생중계를 밀고 나갔습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 TV 보급률이 87%에 달할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받는 매체가 됐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죠. 취임 후 닷새 만인 1961년 1월 25일 시작된 케네디의 대국민 기자회견은 월 2회 꼴로 정례화 됐습니다. 기자회견 뿐 아니라 대중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즐겼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크고 작은 행사에서 공식 연설을 한 횟수가 700회에 이릅니다. 전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비슷한 수치죠. 하지만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8년이었고, 케네디 전 대통령은 3년 미만이라는 점을 비교하면 ‘연설광’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전까지 기자회견이 주로 열렸던 백악관 인디안티룸이 너무 협소하다며 200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국무부 대강당으로 옮겨 갈 정도였습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극도로 싫어한 대통령으로 꼽힙니다. 말년에 코로나19 대응 기자회견을 몇 차례 열기도 했지만 그 이외의 일반적인 국정 내용에 대한 기자회견은 4년을 모두 합쳐봤자 10회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백악관 잔디밭에 모여 있다가 헬기를 타고 떠나기 직전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질문을 외쳐대는 광경을 자주 연출했습니다. 워낙 유명해 ‘헬리콥터 기자회견’이라고 불립니다.바이든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보면 역시 기자회견을 꺼리는 쪽입니다. 30년 넘는 상원의원 경력에 부통령까지 지냈지만 “기자회견에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언론 대응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잦은 말실수 때문입니다. 본인도 “나는 말실수 기계(gaffe machine)”라고 인정할 정도입니다. 정국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기자회견도 정치화됩니다. 최근 한국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듯이 질문을 던진 기자의 평소 보도 성향을 들춰내고, ‘기자의 손가락 모양이 무엇을 암시하느냐’까지 화제가 되는 시대입니다. 아직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지지 세력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죠. 기자들은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통령은 조리 있고 당당하게 답변하는 미국식 기자회견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당국자들도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웁니다. 그런 기자회견이 사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내건 ‘존경 받는 미국의 귀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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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네온 선율은 애절하고 정열적… 한국인 심성에 딱 맞아요”

    “호텔 격리가 힘들지 않느냐고요? 전혀 고생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이름도 생소한 악기 반도네온의 젊은 거장 J P 호프레 씨(38)는 5월 경기 양평 집을 나서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해외여행이니 자가 격리를 거쳐야 하지만 반도네온을 사랑하는 청중을 만날 기대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한다. 그는 헝가리 예술의전당 격인 벨러버르토크 콘서트홀에서 국립필하모니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춰 유명 첼리스트 바르더이 이슈트반과 반도네온-첼로 이중주를 펼친다. 팬데믹 와중에도 방역수칙을 준수해가며 호프레 씨를 찾는 공연은 적지 않다. 반도네온이 큰 인기를 누리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탱고 열풍이 불면서 최근 몇 년 사이 팬이 크게 늘었다. 독일의 교회 악기로 출발한 반도네온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탱고 춤의 반주 악기로 꽃을 피웠다. 그 역시 집에서 할머니가 하루 종일 켜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탱고 음악을 듣고 자랐다. 음악에 소질이 많던 그는 10대 후반 국립예술상을 수상하고 20세 때 자신의 재능으로 승부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으로 건너가 반도네온 연주가로 명성을 쌓았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번지자 지난해 5월 짐을 싸들고 한국에 와 양평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인 아내와 세 살배기 딸과 함께. 그의 재능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다. 한 번도 등장하기 힘들다는 뉴욕타임스 예술면에 수차례 소개돼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은 호프레에 의해 예술적으로 승화됐다”는 평을 들었다. 호프레 씨가 지난해 미국을 떠나기 전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입국 예정을 알리자 한국의 반도네온 애호가들로부터 교습 요청이 줄을 이었다. KAIST 출신의 대표적인 국내 여성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씨도 그로부터 교습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요청이 들어와 원격화상 레슨을 진행하고 있다. 클래식 작곡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는 하루 24시간이 바쁜 음악인이다. 호프레 씨는 한국에서 반도네온이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정열적이면서 애절한 선율, 풍부하고 우렁찬 음색이 한국인들의 심성과 잘 맞는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보자가 취미용으로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은 악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에 반도네온을 가지고 나온 그는 직접 연주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가운데 주름상자가 있고 왼쪽에 33개, 오른쪽에 38개의 버튼이 있다. 버튼만으로도 복잡한데 동시에 주름상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주름을 얼마나 열고 닫느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탱고의 전설’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가 “악마의 악기”라고 불렀을 정도다. 반도네온 가격은 대당 4000∼8000달러(약 450만∼900만 원) 정도다. 호프레 씨는 요즘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공연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컴포트존(안전지대)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기회에 도전해볼 것”을 권했다. 그 자신도 세계 각국의 예술단체 및 연주자들과 글로벌 협업 기회를 발굴하려고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공동으로 동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공연 경력으로 꽉 찬 이력서에서 강연 활동이 이례적으로 눈에 띈다. 글로벌 강연 무대인 ‘TED 토크스’와 ‘구글 토크스’에 연사로 출연했다. 연사로서는 어떤 메시지를 청중에게 선사했을까. “제가 반도네온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스무 살이 됐을 때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늦었다’고 했죠.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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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오스크형 매장 내놓은 코레일유통 조형익 대표 “자판기 편의점 ‘스토리웨이’, 연말까지 전국 42곳 운영”

    “이제 스마트 편의점 시대입니다. 철도 이용객들이 편의점에 들어가 자동판매기에서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물건을 바로 결제해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14일로 취임 100일째를 맞은 코레일유통의 조형익 대표(59)는 편의점의 대변신을 선언했다. 코레일유통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 관련 유통 판매 전문 계열사로 전국 철도 역사(驛舍) 내 ‘스토리웨이’라는 300여 개의 편의점과 600여 개의 전문 상업 시설을 운영한다. 일반 편의점에서는 고객이 구입한 상품을 계산대로 가져와 직접 바코드 기계로 찍는 무인 결제 시스템을 갖춘 곳들이 있다. 하지만 코레일유통이 추진 중인 스마트 편의점은 한발 앞선다. 매장에 들어가면 일반 진열대가 아닌 무인 키오스크형 자판기가 펼쳐지고, 구매에서 결제까지 이 기계를 통해 원스톱으로 해결 가능하다. 조 대표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서울 영등포 본사 편의점에서 시범 운영에 들어가고, 올해 말까지 전국 역 42개 자판기형 편의점이 들어선다. 자판기에는 코레일유통이 자체 조사를 통해 선정한 철도 승객 선호 상품 200여 개가 들어간다. 자판기 편의점처럼 고객 편의를 우선시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조 대표가 정통 철도맨으로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그는 1983년 옛 철도청 말단 직원으로 출발해 코레일 부산역장, 관광사업단장, 여객사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전국 관광 자원을 남도해양, 서해골드 등 권역별로 나눠 철도 여행과 융합시킨 5대 철도관광벨트 사업은 그의 히트작이다. 대표 취임 일성으로 요즘 글로벌 경영의 화두이기도 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외쳤다. ESG를 코레일유통 경영에 접목시킨 것 중 하나가 상생 물류 지원 사업이다. “자체 물류망을 갖추지 못한 골목 상권의 개인 슈퍼들에 코레일유통이 즉석식품, 유제품 등을 공급해 주고 반품도 받아줍니다. 이 사업의 올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113% 증가한 215억 원으로 잡았습니다. 소상인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철길의 특성을 살려 지역 특산품들이 판로를 찾을 수 있도록 대형 역사 내에 ‘찬들마루’ ‘고향뜨락’ 같은 우수 농공상 융합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취임과 함께 본사에는 ‘안전경영센터’를 대표 직속으로 설치해 국가 기간시설인 철도 역사 내 상점들의 안전 점검 활동을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코레일유통은 코레일의 5개 계열사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일반 고객을 직접 접한다. 그는 직원들 사이에 ‘사장실에서 잘 볼 수 없는 사장님’으로 통한다. 일주일에 2, 3일은 10개 지역본부를 돌아다닌다. “코레일 지역 역장을 하면서 평범한 철도 이용객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그들이 코레일유통 같은 공공기관에 원하는 것은 ‘신뢰’라는 것을 직접 발로 뛰며 배웠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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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정’ 때문에 성추문에 ‘침묵’…“위선” 비판에도 입 다문 바이든[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백악관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였다면 이런 기념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갔겠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여성의 날을 챙기고, 기념 연설도 한 것이지요. 문제는 연설이 끝난 후. 기자들까지 모아놓고 연설한 뒤 질문도 받지 않고 나가버렸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쿠오모”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추문 논란으로 시끄러운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나올 것을 우려해 이런 행사에 으레 따라붙는 질의 응답 세션을 생략하고 자리를 뜬 것이지요.쿠오모 주지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 7번째 여성까지 등장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주 의회는 탄핵 조사를 승인했지만 쿠오모 주지사는 “비난받을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며 “물러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쿠오모 주지사 때문에 함께 비난을 받는 사람이 바이든 대통령입니다. 여성 유권자들의 큰 지지를 얻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쿠오모 성추문에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유세 전략으로 잘 활용해놓고 쿠오모 성추문에는 입을 다문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더블 스탠더드(이중 잣대)” “위선”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쿠오모 관련 질문에 대응하느라 매일 진땀을 뺍니다. “대통령은 언제 보고받았느냐” “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은 보장되느냐” “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아무런 언급이 없느냐” 등 기자들의 질문은 날카롭지만 사키 대변인은 비슷한 답변을 반복할 뿐입니다. “백악관은 독립적인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종종 접합니다. 대통령이나 집권 세력을 난처하게 만드는 논란거리가 발생하면 조사위원회 활동을 앞세워 상황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사위원회가 그다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번 경우도 논란의 장본인 쿠오모 주지사가 직접 지시를 내린 조사위원회여서 조사 결과에 대한 기대는 별로 높지 않은 듯 합니다.바이든 대통령이 쿠오모 주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우정 때문입니다. 쿠오모는 민주당 주지사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1983~1992년 뉴욕 주지사를 지낸 마리오 쿠오모입니다. 아버지 마리오 주지사는 인기가 높아 대선 출마 권유도 많이 받았죠. 1988년, 1992년 대선 때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 약속을 받지만 본인이 “대통령 야망이 없다”며 고사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1988년 대선 때는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해 당시 민주당 경선에 나섰던 바이든 후보의 고민을 덜어주기도 했습니다.아버지 때 시작된 우정은 아들 세대로 이어져 2016년 대선 때 빛을 발했습니다. 2015년 바이든 부통령과 아들 쿠오모 주지사는 비슷한 인생의 고비를 겪습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사랑하는 맏아들 보를 뇌종양으로 잃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재선에 성공해 선서하기 몇 시간 전 아버지 마리오가 세상을 떠납니다. 둘은 모두 시련에 빠졌지만 쿠오모 주지사가 먼저 털고 일어나 바이든 부통령에게 전화를 합니다. “내년(2016년) 대선에 출마해라. 그러면 가장 많은 대의원이 걸린 뉴욕은 내가 도와주겠다”는 권유였죠. 당시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는 이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바이든 부통령이 출마 의사를 정확히 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힐러리 지원 유세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힐러리에 대적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죠. 그래도 바이든은 쿠오모 주지사에게 두고두고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주저앉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일으켜 세운 사람이 바로 쿠오모”라고요.2020년 대선 때 바이든-쿠오모 관계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바이든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 가장 먼저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기획한 것이 쿠오모 주지사입니다. 민주당 경선 초반에 바이든 후보가 피터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 시장 같은 신세대 후보들에 밀려 말실수를 연발하며 체면이 서지 않자 쿠오모 주지사는 특유의 입심을 발휘해 열심히 거듭니다. 뉴욕의 토크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해 “대선 레이스에서 내 돈을 어디에 걸 거냐고? 물론 바이든이지. 그는 승리를 위한 비장의 무기를 가졌어. 바로 ‘신뢰’라는 거지” 등의 지원 발언을 합니다. 바이든 역시 쿠오모 주지사가 코로나19 리더십으로 좋은 평가를 얻자 “이게 바로 위기 관리의 ‘황금 기준(골든 스탠더드)’”이라고 치켜세웁니다. 요즘 쿠오모 주지사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빨리 ‘황금 기준’ 칭찬을 취소하라”는 원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대통령이 성추문을 일으킨 정치인에게 “물러나라”고 대놓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정도의 간접적인 언급만 해도 알아서 물러나는 것이 미국의 정치문화입니다.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죠. 하지만 쿠오모 주지사는 물러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취소 문화(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유명인을 인터넷상에서 보이콧하는 운동)’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자신에 대한 사임 압력을 조만간 사그라질 인터넷 열풍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쿠오모 성추문을 감싸는 침묵이 길어질수록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재촉하는 것은 물론 그가 내건 여성 포용 원칙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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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세 좋던 美의회 난입 주모자들, 지금은…“엄마 보고 싶어요”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공판을 앞둔 미국 의회 난입 사태 주모자들이 앞 다퉈 참회의 눈물을 보이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기세 좋게 의사당에 밀고 들어가 아수라장을 만들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인데요. 국가 체제 전복, 폭력 선동, 연방 기물 파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유죄가 확정될 경우 감방에서 최고 20년을 보내야 합니다. 이들은 “우리를 호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습니다.의회 난입 사태로 기소된 사람은 300여명에 이릅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음모론의 주술사(큐어넌의 샤먼)’로 불리는 남성. 대표적 극우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의 신봉자로 뿔이 달린 털모자에 얼굴에 성조기 무늬 페인트칠을 하고 등장해 시위를 주도했죠. 제이콥 챈슬리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상원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가 준비해온 트럼프 찬양 시를 읊어 ‘주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곧바로 체포된 챈슬리는 최근 비좁은 감방에서 TV 시사프로그램 ‘60분’과 가진 줌(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을 ‘포레스트 검프’에 비교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백악관에 초청돼 대통령들과 악수를 한 포레스트 검프처럼 자신도 “순수한 마음으로 트럼프의 ‘초대’를 받고 의회에 들어간 것 뿐”이라고 항변하죠. ‘60분’ 진행자가 “그래도 신성한 본회의장를 무단 점거하고 의사 진행을 방해한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 아니냐”고 묻자, “그건 모르는 말씀”이라며 “나의 행동은 신성한 주술 의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폭력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진정시키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의식이었다는 겁니다. 한술 더 떠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할 때 나를 사면시켜 주지 않아 배신감을 느꼈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습니다. 방송 뒤 ‘60분’ 게시판에는 “(챈슬리의 변명은) 코미디 급” “왜 저런 범죄자에게 말할 기회를 주느냐”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챈슬리는 호의적인 여론을 얻기 위해 ‘60’분 인터뷰를 했겠지만 오히려 그가 보석 허가를 받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수감 상태의 피의자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려면 일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챈슬리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셀러브리티급’이다보니 담당 변호인과 화상 접견하는 것처럼 꾸며 ‘60분’ 인터뷰에 나섰기 때문이죠. 담당 판사는 “인터뷰 허가 절차를 무시했다”며 보석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은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것이 취미인 선량한 시민”이라며 챈슬러에게 평화주의자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판사로부터 ‘60분’ 인터뷰 건 때문에 “속임수”라는 비판만 들었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브루노 큐아라는 18세 소년입니다. 기소된 300명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여서 주목 받았죠. 큐아는 챈슬리와 마찬가지로 본회의장 침입자 중 한 명입니다. 당시 시위 참가자는 본회의장 침입 여부에 따라 죄의 경중이 크게 달라집니다. 복도를 몰려다니거나 의원 집무실에 들어간 것 보다 의사진행이라는 고유의 업무를 방해한 죄목이 따라붙기 때문이죠. 큐아는 본회의장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비디오 판독으로 밝혀지면서 폭력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5월 재판을 앞두고 1차 보석허가 신청을 거부당한 큐아는 담당 판사에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직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 소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죠. 그는 편지에서 “체포된 뒤 20일간 독방 생활을 하면서 참회했다”며 “부모님과 함께 차분하게 재판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검찰 측은 “부모에게 돌아가면 문제를 키우는 꼴”이라고 반격하고 나섰습니다.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아들을 워싱턴까지 데려다준 장본인이 바로 부모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큐아가 의회 난입 사태 후에도 소셜미디어에 선동 메시지를 올린 것으로 밝혀지면서 참회의 진실성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차례 올린 소셜미디어 메시지에서 그는 “우리는 미국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시궁창의 쥐들을 공격한 것”이라며 “쥐들을 몰아넣고 몰살시켜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밖에 의회 난입 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집무실에 들어가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놔 유명해진 총기옹호 단체 회장 리처드 바넷은 최근 보석허가 심리에서 “나보다 죄가 더 중한 사람들도 다 허가를 받는데 왜 나에게는 내주지 않느냐”며 재판장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다수 참가자들과는 달리 반성의 기미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의회 난입자들의 사회심리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왜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했는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죠. 전문가들은 이들의 공통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들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기록 추적이 가능한 125명의 재무상태를 조사한 결과 60%가 파산 신청, 주택 퇴거, 압류, 4만 달러 이상의 세금 미납 등의 전력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파산의 경우 미국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은 18%가 신청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참가자 4명 중 1명꼴로 과거 채무 불이행으로 소송을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선거를 사기 당했다” “미국의 미래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불만 가득한 레토릭에 설득당하기 쉽다는 것이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모두 폭력 시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적인 사과(public apology)’에 관대한 것이 미국의 문화이기는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의 참회 퍼레이드에 동정의 눈길 대신 “충분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여론이 훨씬 더 우세합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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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가 됐다” 트럼프 첫 대권 도전 발판 됐던 CPAC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CPAC(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씨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퇴임 후 39일 만에 첫 공개연설 무대로 CPAC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 발언의 파급력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겠죠.올해 48년의 역사를 가진 CPAC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됐을 정도로 친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밀착 관계 때문에 논란도 많습니다. 특히 올해 CPAC은 “트럼프 대잔치”라는 혹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최자도 아닌 초대 연설자일 뿐인 트럼프를 위해 행사의 성격이 좌지우지될 지경이라는 것이죠. CPAC은 미국의 대표 논객인 고(故) 윌리엄 버클리 내셔널리뷰 발행인 등 몇몇 보수운동가들이 결성한 전미보수연합(ACU)이라는 단체가 1973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컨퍼런스 행사입니다. ‘미국 최대의 보수정치 행사’로 알려졌죠. 2010년대 초반 CPAC은 대형 행사로 성장하는데요, 연설자로 등장해 CPAC 지명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당시 기업가로 TV 리얼리티쇼 진행자였던 트럼프는 ‘화려한 입심’이 보장된 인물이었죠.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보수적 성향을 간간이 내보이던 그에게 CPAC 측은 2010년 처음으로 연사 초대장을 보냅니다. 일반 정치인이 아닌 ‘미디어 퍼스낼리티(미디어 친화적 인물)’가 연단에 서자 청중들은 열광했죠. ACU의 오랜 수장(首長)인 매트 슐랩 회장은 트럼프가 대통령감이라고 직감하고 대선 출마를 권유합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TV 진행자 역할에 재미가 들려있던 때였고, 미디어의 명성을 이용한 ‘트럼프왕국’ 건설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2010년 이후 트럼프는 매년 CPAC 연단에 오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 아무리 바빠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CPAC에 등장했습니다. 퇴임 후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2015년 CPAC 연설은 유명합니다. 그는 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일명 ‘버서(Birther)’ 운동의 시작이지요. 당시만 해도 일부 강경 보수파들 사이에 오가던 주장이었지만 이를 전국적인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옵니다. 10차례 이상 기립 박수를 받을 정도로 행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그에게 슐랩 회장은 “이제 당신은 충분히 표를 모을 수 있다”면서 출마를 재차 권유합니다. “때가 됐다”고 판단한 트럼프는 2015년 CPAC 폐막 직후 대권 도전을 공식 발표하죠. 트럼프 전 대통령은 CPAC을 통해 정계 거물도 성장했을 뿐 아니라 CPAC의 성격도 바꿔놓습니다. CPAC은 1960년대 급팽창했던 진보주의에 대한 반발로 태동했습니다. 1960년대 내내 지속됐던 민주당 집권 시대를 마감하고 집권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퇴임하면서 혼돈에 빠진 보수층은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가독교적 가치 등 건국이념을 널리 알리자는 차원에서 CPAC을 조직했습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개막 연설을 하면서 크게 한번 주목을 받았지만 일반 미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유명세는 얻지 못했습니다.CPAC이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학술 행사 성격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CPAC은 전통적으로 워싱턴에서 매년 2월에 3박4일 정도 일정으로 개최됩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현장 취재 경험에 따르면 이때에 맞춰 전국에서 보수 지지자들이 워싱턴을 방문합니다. CPAC이 열리는 호텔의 작은 룸마다 수십 개 컨퍼런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립니다. 교수나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컨퍼런스를 듣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미국식 네트워킹 문화에 익숙해야만 CPAC의 의미를 알 수 있죠. CPAC은 오랫동안 ‘백인 남성 아저씨들만 가는 고리타분한 학술 행사’라는 평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최 측은 2010년대부터 컨퍼런스보다 유명 정치인들을 호텔 대강당으로 초청해 진행하는 연설 무대에 주력하게 됩니다. 바로 이게 미디어가 주목하는 ‘이벤트’였기 때문이죠. 점차 언론의 화젯거리가 되면서 이제 CPAC 연설을 한다는 것은 정치인에게 큰 경력이 되고, 요즘 뜨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알려면 연사들을 확인해보면 됩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CPAC의 이런 변화의 흐름을 잘 탄 동시에 흐름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CPAC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죠. CPAC은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에 올해 행사 장소를 바꿀 정도입니다. 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이 아닌 플로리다 올랜도의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주최 측은 “플로리다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수칙이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플로리다는 퇴임 후 트럼프의 본거지죠.자유분방한 플로리다를 개최지로 정했기 때문일까요. 올해 CPAC 주제도 젊은 감각으로 변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취소되지 않은 미국(America Uncanceled).’ 지난해 ‘미국 대 사회주의,’ 2019년 ‘중국의 부상: 미국 어떻게 할 것인가’와 비교할 때 분위기부터 확 다릅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취소 문화(혐오나 차별적 행동을 한 유명인들을 온라인에서 삭제하는 일종의 보이콧 운동)’를 빗댄 것이죠. 모처럼 재미있는 주제여서 개막 전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부정선거 주장의 재탕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취소 문화’가 주제가 된 것은 트럼프 계정을 삭제한 트위터, 페이스북 등 IT(정보기술) 기업들을 도마에 올리기 위한 것이었죠. 초대 연사 목록도 트럼프 충성파 위주로 짜여졌습니다. 다들 연사 초대장을 기다렸겠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갈등 관계에 있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초대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밋 롬니 상원의원 등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입니다. 올해 CPAC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아이돌(우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정치판 ‘아메리칸 아이돌(TV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혹평합니다. 인터넷매체 데일리비스트는 “단 한 명의 아이돌을 위한 특별행사”라고 조롱합니다. CPAC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죠. 독재 국가에서나 볼법한 개인 우상화라는 단어가 미국 정치 한복판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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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 통한 가족사랑 주제 오뚜기, 푸드 에세이 공모

    오뚜기가 올해 처음으로 푸드 에세이 공모전을 개최한다. ‘음식과 함께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이번 공모전은 음식을 통한 가족 사랑 ‘스위트홈’이 주제다. 일상 속 음식과 관련된 특별하고 감동적인 추억 등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억에 남은 순간들을 글을 통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나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음식과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경험 △가족과 함께했던 음식과 추억 이야기 △음식을 주제로 일상 속 웃고 울었던 감동적인 순간 △음식으로 인해 변화한 가족의 일상 △그 외 다양한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으면 된다. 접수는 22일부터 4월 12일 밤 12시까지 50일에 걸쳐 진행된다. 5월 5일 어린이날 결과가 발표된다. 분량은 A4용지 2장(200자 원고지 15장) 내외이며, 2500자 정도면 된다. ‘오뚜기 제1회 푸드 에세이 공모전’의 총상금은 1500만 원이다. 오뚜기상 1명에게는 상금 500만 원이 주어진다. 으뜸상 1명은 300만 원, 화목상 4명에게는 각 100만 원씩 수여된다. 사랑상 60명에게는 오뚜기 온라인 공식 쇼핑몰인 ‘오뚜기몰’에서 사용 가능한 구매 포인트 5만 점을 준다. 오뚜기는 “고객의 음식에 대한 스토리를 발굴하고, 고객의 경험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공모전”이라며 “즐거운 음식 생활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출은 공모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접수와 우편 접수를 통해 가능하다. 온라인 접수는 공모전 홈페이지에서 지정 서식을 내려받아 작성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직접 입력을 통해 제출하면 된다. 우편 접수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우편 응모용 지정 서식을 내려받아 작성한 후 공모전 운영사무국으로 보내면 된다. 오뚜기 관계자는 “음식과 함께하는 가족, 친구들의 다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스위트홈’을 추구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는 행사”라고 말했다. 이어 “푸드 에세이를 통해 음식과 관련된 특별하고 감동적인 추억을 담은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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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천장 극복 나선 한국 여성경영인들에 ♥를 보냅니다”

    한독상공회의소는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직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비롯해 한국지멘스 등이 굵직한 회원사들이다. 한독상공회의소를 8년째 이끌고 있는 바르바라 촐만 대표(54)를 최근 만났다. “한국은 경제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모범사례로 독일에서 자주 거론됩니다. 한국인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함께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만 봐도 알 수 있죠.” 그의 관심사는 자신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한국인 여성들이다. 2017년 여성경영인 모임 ‘위어(Wir)’를 발족시킨 배경이다. ‘위어’는 독일어로 ‘우리’를 뜻하는 ‘비어’를 영어식 발음으로 변형한 것이다. 한국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년 연속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수준, 임원직 진출, 육아휴가 등을 수치화한 지수다. 그의 경험담이다. “동료 남자 직원과 함께 한국 기업을 방문하면 사장님은 저보다 남자 직원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청합니다. 제가 더 앞쪽에 서 있는데도 말이죠(웃음).” 그는 한국 여성들의 정보 공유, 네트워킹에 도움을 주기 위해 허금주 교보생명 전무, 민희경 CJ제일제당 부사장 등과 의기투합해 40여 명 규모의 ‘위어’를 만들었다. 1년 단위의 멘토십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멘토’로는 고위 임원직에 오른 주한 외국 여성과 한국 여성 20명 정도가 활동합니다. 조언을 받는 ‘멘티’는 중간관리직이나 더 젊은 20여 명의 한국 여성이죠. 멘토는 기업 활동을 하며 서로 아는 사이이고, 멘티는 멘토가 추천하는 형태로 모집합니다. 멘토링 세션, 외부인사 강연 등의 수업을 받고 정규 활동을 마치면 수료증이 발급됩니다.” 가장 최근 행사로는 지난해 11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초청해 여성 기업인의 금융 이해도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여성 이슈는 한독상공회의소 활동에서도 빠질 수 없다. 촐만 대표는 한독상의가 주관하는 ‘이노베이션 어워드’에 지난해부터 ‘여성혁신기업인’ 분야를 창설해 이타스코리아의 젊은 여성 엔지니어 이보경 매니저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촐만 대표는 독일 코블렌츠 상공회의소를 시작으로 주미 시카고 상공회의소, 독일 상공회의소 본사 등을 거쳐 한국에 온 ‘상의통’이다. 4월 한국 생활을 마치고 헝가리로 이동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만든 하트 모양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독신인 저에게는 ‘위어’가 자식 같습니다. 기초를 잘 닦아놓은 만큼 왕성한 활동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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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코널 턱’ 소동…외모 품평은 피할 수 없는 대세?[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최근 미국에서 ‘매코널 턱’ 소동이 있었습니다. 상원 공화당을 이끄는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늘어진 턱으로 유명합니다. 올해 79세라는 나이에 따른 노화 현상 때문이죠. 매코널 대표 하면 턱이 가장 먼저 연상되지만 아무도 이를 대놓고 비웃거나 웃음거리의 소재로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외모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미국 정치의 에티켓이죠. 그런데 매코널 턱을 정조준한 사람이 있습니다. 보수 리더십 자리를 놓고 매코널 대표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퇴임 후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로 물러갔지만 여전히 공화당 내 영향력이 큰 그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매코널 대표를 “음침하고 뚱하고 웃음기 없는 정치꾼”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런 비난은 유치한 인신공격이지만 굳이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논란은 이 성명의 초판. 보좌관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얘기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성명 초판은 턱 얘기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첫 문장부터 “늘어진 턱에 똑똑하지 못한(having too many chins but not enough smarts) 정치꾼”이라고 매코널 대표를 몰아붙였다고 하죠. 보좌관들의 거센 만류로 “음침하고 뚱하고 웃음기 없는”이라는 한층 순화된 표현으로 성명이 발표된 것이죠. 노화에 따른 외모적 변화는 누구에게나 서글픈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노화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차원에서 턱을 삶의 연륜과 결부시킵니다. 늘어진 턱을 ‘지혜의 턱(wisdom chin)’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매코널 대표를 가리켜 “턱 주름도 많으면서 지혜롭지 못한 정치꾼”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죠. 어쨌든 불시에 턱 굴욕을 당할 뻔한 매코널 대표는 “내 자신을 그(트럼프)의 수준까지 낮추지 않겠다”며 대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번 턱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도 외모적으로 볼 때 매코널 대표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올해 75세로 목 부근에 지방이 많이 축적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비슷한 턱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매코널-트럼프 턱 비교 사진이 많이 나돌고 있죠.좀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상대방의 외모, 특히 외모적 약점을 도마에 올리는 트럼프 식 조롱 정치의 재가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외모나 신체적 특징을 비하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때문이기도 하고 전통적 매너(예법) 때문이기도 하죠. 흔히 ‘바디-쉐이밍(body-shaming)’이라 불리는 외모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특정 성별이나 인종 연령, 또는 신체적 특징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도덕적 수준 미달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자기 관리가 부실한 듯 보이는 초비만형 유명인들이 많지만 이것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풍자가 생활화된 미 TV 심야토크쇼 진행자들도 외모 조롱만은 피하죠. 이를 바꿔놓은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특히 2016년 대선 때 외모를 공격 소재로 삼는 트럼프의 유세 전략은 유명했죠. 특히 여성의 외모를 도마에 올리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최근 텍사스 한파 사태 와중에 멕시코 칸쿤 휴가에 대해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고 해서 비난을 받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부인 하이디 여사는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모 품평회’에서 굴욕을 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유세 때 경선 경쟁 상대였던 크루즈 의원의 부인과 자신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의 사진을 나란히 트위터에 올리고 “비교 불가”라고 비웃었죠. 크루즈 의원은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내 아내만큼은 가만 놔둬”라고 발끈했죠. 그런가 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진 MSNBC 방송의 여성 앵커에 대해 “주름 제거 수술로 피부를 하도 끌어당겨 얼굴에서 피가 나더라”는 섬뜩한 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칠 것 없는 트럼프의 조롱 정치에 “불편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지지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의 시초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에 부상한 ‘외모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보고 있습니다. 레이건 시대는 외모와 겉치장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평가 받습니다. 특히 여성의 진한 화장과 잘록한 허리 등을 강조한 패션이 대세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디어의 도움으로 백인 남성 중심의 포퓰리즘 성향을 파고든 것이죠. 전문가들은 미국 언론이 트럼프의 외모 조롱을 비판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부추긴 측면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2016년 레스 문브스 당시 CBS 회장은 외모 조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트럼프 유세를 지켜보며 “그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미국 뿐 아니라 방송 시청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프 저커 당시 CNN 사장은 “트럼프가 이전까지는 뒤에서 수군거리던 외모에 대한 논의들을 공론화시킨 업적은 있다. 그래도 미디어가 그의 외모 지상주의에 과도한 관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라는 반성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모 비하 발언이 예상외로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자 다른 정치인들도 너도나도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경쟁 상대 중 한 명이었던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공 태닝 습관 때문에 피부색이 오렌지 빛깔로 변한 것에 대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렌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웃어 관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죠. 당선 뒤 대통령이라는 직책 때문에 많이 자제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과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가면서 매코널 대표를 시작으로 다시 조롱 정치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세계도 외모에 민감합니다. 정치인이 희끗희끗하던 머리카락을 검정색으로 염색하고 등장하면 “이제 선거철이 됐구나”하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죠. 또한 성형강국답게 ‘안티 에이징’을 위한 보톡스 필러 시술을 받는 사례가 늘면서 쁘띠 성형중독 정치인 리스트도 나돕니다. 특히 눈썹 문신은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인기 시술로 꼽히죠. 노화로 인한 이중 턱 지방흡입술은 ‘대공사’라고 하는데 이러다가 어느 날 매코널 대표가 날렵한 턱 선을 자랑하면서 등장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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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키마우스와 판다, 美中 화해 이끌까?…바이든 정부 주중대사 디즈니회장 물망[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지금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백악관의 전화 한 통. “○○ 나라 대사로 당신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해외 주재 미국대사 제안 전화입니다. 이 전화를 받기 위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지 집회에 “바이든”을 외치고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몇 다발씩 꺼내 기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최근 미국 언론에 따르면 기대만큼 빨리 대사직 오퍼가 오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기다리다가 지친 이들의 입에서 욕이 나올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대통령이 되니까 모른 척하네. 이렇게 괘씸할 수가….” 물론 대사직 제안을 받는 이들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아닙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치 경제계의 거물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사직이 탐나는 것입니다. 외교 일선에서 활동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힘쓴다는 것은 그들에게 최고의 영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미국 우선주의와 결별하고 동맹 리더십을 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외교관계를 개설한 나라는 세계 190여 개국. 바이든 행정부는 자신의 외교원칙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인물들을 이들 국가 주재 대사로 파견하겠죠. 그런데 취임 후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아직 대사 임명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주재 대사만 내정했을 뿐이죠. 물론 사정은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에 매달려 있었고, 대사 인준 절차를 담당할 상원은 트럼프 탄핵 문제로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워싱턴에서는 몇몇 후보 이름만 떠도는 정도입니다. ‘바이든빅토리펀드’에 10만 달러 이상을 후원한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 회장은 주중 미국대사 유력 후보로 오르고 있습니다. HBO 중역 출신인 제임스 코스토스 전 스페인 주재 미국대사는 주영 대사로 거론되고 있죠. 그는 지난 대선 때 8만5000달러 이상을 바이든 진영에 기부했습니다. 데니스 바우어 전 벨기에 주재 미국대사는 주프랑스 대사로 유력합니다. 그녀 역시 바이든 자금 모집의 ‘큰 손’으로 불립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대사 적임자겠죠. 차관보, 부차관보, 담당국장 등 고위직까지 올라온 외교관들은 대사로 나가기 위해 젊은 날 하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밤낮없이 일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또 이들만큼 해당 국가 이슈들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도 없지요. 국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대사들을 ‘직업(커리어) 대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국무부 관리 보다는 정치 경제계 인사들이 대사로 직행하는 경우입니다. 정치자금 거액 기부자나 전 현직 유명 정치인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된 것이죠. ‘정치 대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미국에게는 당연히 주중 대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대사는 해당국이 임명해서 보내는 절차를 밟지만 중국 정도 되면 사전에 “이 후보가 괜찮은가”하고 의사를 타진합니다. 중국은 철저히 “‘빅 네임’을 원한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다고 합니다. 직업 대사보다는 무역 갈등이 빚어질 때 미 정치권에서 통할 수 있는 정치인 출신 대사를 선호하는 것이지요.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 게리 로크 전 워싱턴 주지사, 맥스 보커스 전 상원의원 등 주중대사를 역임한 이들을 보면 대개 그런 성향입니다. 최근 아이거 디즈니 회장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임명될 경우 중국에 대한 화해 제스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일본 역시 유명인 대사를 선호합니다.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등을 거쳐 외교경력이 없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 변호사가 주일 대사를 지낸 것을 보면 일본의 취향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한국은 아직 직업 대사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로 오는 분들 이력서를 보면 국무부 국방부 근무 경력으로 꽉 차있지요. 정치 대사가 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빅뉴스’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국무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주한 미대사만큼은 북한 문제를 다뤄본 경력자가 우대받습니다. 정치 대사는 트럼프 시대에 크게 늘었습니다. 직업 대사와 정치 대사의 비율은 역사적으로 7대 3 정도를 유지했던 것이 트럼프 행정부 때 5.5대 4.5로 바뀌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 후원자들에게 대사 자리를 선심 쓰듯 내줬기 때문이죠. 그 가운데는 자질 부족 논란을 일으킨 대사들도 꽤 많았습니다. 피부과 의사 출신 제프리 로스 군터 아이슬란드 주재 미대사는 경호강박증 때문에 요새 같은 사저를 짓는가 하면 치안 우수 국가인 아이슬란드에 난데없이 총기 소지 권리를 요구해 외교 논란으로 비화됐습니다. 존슨앤존슨 창업자의 증손자인 우디 존슨 주영 대사는 대사관 직원들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으로 국무부 조사를 받기도 했죠. 석탄재벌 며느리 출신인 켈리 크래프트 캐나다 주재 미대사는 부임지인 오타와에서 임기의 절반 밖에는 지내지 않고 시댁이 있는 켄터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의 대사들이 남긴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격을 갖춘 외교 관리는 많다”며 “정치자금을 많이 후원했다고 해서 (대사로)임명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기록적인 정치자금 후원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열렬한 지원 사격 덕분에 당선됐기 때문에 이들의 공로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직 대사 임명을 시작하지 못한 것은 명분과 실리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겠죠.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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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남자-한국 여자의 ‘동업하모니’

    프랑스 기업인 올리비에 무루 씨는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그에게 한국과의 우정을 보여주는 상징은 무엇인가 물어보니 한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아지앙스 코리아’라는 글로벌 마케팅 회사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김보선 씨가 그에게는 ‘보물 1호’다. 무루 대표는 그 힘든 동업을 한국 땅에서 17년 동안 성공적으로 일궈왔다. 한국인과 함께, 그것도 성별도 다른 여성과 함께. 나이도 47세(무루 씨), 46세(김 씨)로 비슷하다. “부부 사이냐”는 질문에 둘은 호탕하게 웃으며 “(결혼이 아닌) 프로페셔널 케미스트리(직업적 화학작용)”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각각의 배우자와 2명씩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지앙스 대표실은 1개다. 그 안에 ‘사장님 책상’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무루 대표는 “동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지앙스는 다국적기업의 한국 현지화 전략을 담당하는 디지털 솔루션 회사다. 고객의 80%는 루이비통, 구찌 등 럭셔리 기업들이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홍보에서 구매까지 한국어 웹사이트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e커머스 전략 수립도 담당했다. “외국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이해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소셜미디어 인터넷 마케팅을 전개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복잡한 디지털 규제법령을 이해시키는 것도 우리의 일이지요.”(무루 씨) 주한 프랑스대사관 IT 담당관으로 일하던 그는 이화여대 불문과 출신으로 디지털 출판사에서 일하던 김 대표와 의기투합해 2004년 아지앙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80여 개 고객사를 상대로 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기업 계열사가 주축인 마케팅 분야에서 독립 에이전시로는 눈에 띄는 실적이다. 무루 대표는 “동업적 성공은 일을 나누지 않은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무루-외국’ ‘김-한국’의 고객 분담, 또는 ‘무루-외부영업’ ‘김-내부관리’ 등의 역할 분담이 없다는 것. “다른 문화와 성별을 가진 두 명의 책임자가 함께 움직이는 걸 고객들은 더 신뢰하죠.” 아지앙스는 등록문화재 402호인 서울 중구 정동 신아기념관에 위치해 있다. 내부는 한국 전통가옥에서 볼 수 있는 격자무늬 목재 천장이다. “럭셔리 본사 중역들이 한국을 찾으면 우선 회사 구경을 시켜줍니다. 그리고 강남의 대형 호텔이 아니라 덕수궁 정동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인근 작은 호텔에 묵게 해주죠. 그러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무루-김 대표는 글로벌 감각과 한국 특유의 멋을 잘 융화시킨 아지앙스를 ‘글로컬리제이션(글로벌+로컬리제이션)’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김 대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저는 남자 형제가 두 명 있지만 올리비에가 더 형제처럼 느껴집니다. 가족의 정을 느낄 정도라면 할 말 다 한 거죠(웃음).”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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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약수렁서 날아 트럼프와 추락한 美베개회사 사장 이야기[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어떤 베개 베고 주무십니까. 이불에 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숙면을 취하는 데 베개만큼 중요한 게 없죠. 요즘 미국인들은 베개 얘기를 많이 합니다. ‘마이필로우(My Pillow·내 베개)’라는 회사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회사의 마이크 린델 대표(60) 때문이죠. 분당 12개씩, 하루에 3만7000개를 생산하는 ‘베개 왕국’ 사장님 린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로 유명합니다. 한때 ‘트럼프 친구’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했지만 요즘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의회 난입 사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친구도 없이 은둔할 때 유일한 방문객이 린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방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팻 치폴론 법률고문이 문 앞에서 쫓아버렸다고 하죠. 문전박대 신세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트위터는 “반란 선동의 위험이 있다”며 47만4000명의 팔로어를 가진 린델의 계정을 영구 차단했습니다. 선거기기 제작회사인 도미니언 보팅시스템즈는 “선거조작 주장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행동에 돌입하겠다”는 경고장을 발부했습니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 콜스 등 온-오프라인 소매 체인과 홈쇼핑 채널 등은 “더 이상 마이필로우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변변한 경제계 거물 지지자가 없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린델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정책 홍보에 이용했습니다. 백악관이 주최하는 기업가 라운드테이블 미팅에서 트럼프의 옆자리는 언제나 그의 차지였죠. 전혀 관련이 없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나에게 치료제를 찾도록 부탁했다”고 밝혔다가 기자들로부터 “그런데 의료면허는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린델은 2016년 트럼프 유세 때 처음 알게 된 뒤 “그를 만난 건 하늘의 섭리”라며 “그와 함께 끝까지 가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종교’ ‘기업가’ 키워드가 통했던 것이죠. 그는 트럼프 최측근인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조차 포기한 부정선거 주장에 아직도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냥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주장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구체적인 논리도 가지고 있죠. “도미니언보팅시스템즈가 사전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측과 공모해 전산 소프트웨어 조작을 통해 수천만 표를 바이든 측에 몰아줬다”는 겁니다. 최근 극우 성향의 인터넷방송 뉴스맥스에 화상 출연해 또 한 번 선거조작 주장을 펴다가 ‘위험 신호’를 감지한 프로그램 앵커와 싸움이 붙어 앵커가 돌연 퇴장하는 방송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극우방송 앵커까지 박차고 나갈 정도의 그의 황당한 주장은 일명 ‘린델 폭발 사건’으로 불리며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몰이 중인 동영상입니다. 여기에 건실한 종교인 이미지로 밀고 나가는 린델이 할리우드 여배우 제인 크라코스키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며 연인 관계였다는 스캔들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그러자 크라코스키는 “‘커밋’(미국의 인기 개구리 인형 캐릭터)과 스캔들이 났으면 났지 린델은 절대 사절”이라며 극구 부인하고 나섰죠.이쯤 되면 린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네소타 교외에서 술집을 경영했던 그는 종교의 힘으로 오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났고, ‘베개 신화’를 이룩했다는 자수성가 스토리를 강연 때마다 설파하고 있습니다. 코카인 중독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섬광 같이 “내 불면증은 베개 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2004년 마이필로우를 설립했습니다. 대형 회사들이 장악한 베개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는 2011년 한밤중 TV에서 방송되는 30분짜리 인포머셜 광고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성공한 기업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직접 베개를 들고 “신개념 메모리폼”이니 “혁신적인 바느질 공법”이니 하면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광고 덕분에 ‘인포머셜 킹’으로 불리죠. 베개 1개당 45달러(5만원)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포머셜 시장에서 5위권 안에 드는 뛰어난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월마트 등 일반 소매체인으로 유통망을 확대하면서 지금까지 3000만개 이상의 베개를 팔아치웠습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린델의 재산은 3억 달러(337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물론 1800억 달러(202조 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베개 하나로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창업가로서는 괄목할만한 실적이죠. 하지만 마약 중독도 끊고 피땀 흘려 일군 베개 왕국은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정치 세계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지면서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도 린델은 “트럼프 지지 활동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베개 사업은 조롱 대상이 돼 진보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마이필로우 타도’ 투자 모집 공고들이 인터넷에서 나돌고 있죠. 이러다가 어느 날 ‘눈물의 폐업정리 세일’ 인포머셜에 나오는 건 아닌지 지켜봐야겠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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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관원, 올해 GAP 우수사례집 발간… 울산 부추 생산 농가 등 12건 선정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이 ‘2020년 GAP 우수사례집’을 최근 발간했다. GAP는 농장에서 토양 용수 등 재배 환경과 종자 비료 등 농업자재, 선별포장 등 작업 과정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인증 제도다. GAP 인증은 2003년 국내 약용작물을 중심으로 시범 도입된 후 2006년 농수산물품질관리법 개정을 통해 시행됐다. 현재 130개 이상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례집에는 생산 부문 7건, 유통 부문 5건 등 12건의 성공 사례가 포함됐다. 생산 부문 대상을 받은 ‘농소황토부추작목반’(울산)은 GAP 인증을 받은 부추 생산 23개 농가가 생산관리 교육을 통해 서울 가락도매시장 등 3개 중앙시장에 계통 출하하고 있으며 하자 발생 땐 신속하게 리콜 조치해왔다. 매출이 2017년 27억 원에서 지난해 32억 원으로 늘었다. 유통 부문 오프라인 금상을 받은 롯데마트 과일팀은 직원 대상 교육과 다양한 홍보 활동 결과 2019년 582억 원이던 GAP 매출이 지난해 1∼7월에만 364억 원을 기록했다. 온라인 금상을 수상한 마켓컬리 신선팀은 전문 품질관리 및 전담인력 배치로 GAP 농산물 취급률이 2019년 14%에서 지난해 20%로 늘었다. 2020년 우수사례집은 e-Book 형태로 지난달 27일부터 ‘GAP 정보서비스’ 시스템에서 볼 수 있으며 지자체 등을 통해서도 배포되고 있다. 이주명 농관원 원장은 “GAP 농산물의 안전관리 강화, 농업인 및 유통 관계자 대상 GAP 인증 컨설팅 교육,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통한 판로 지원, 우수사례 발굴과 홍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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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만에 기괴하지 않은 대변인 첫 탄생” 백악관 담당 기자들 감격[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지난달 20일 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흔히 ‘프레스 브리핑룸’으로 불리는 백악관 제임스 브레디룸에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조 바이든 시대를 알리는 첫 언론 브리핑이 열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도널드 트럼프 시대 4년 동안 브리핑다운 브리핑을 받지 못한 백악관 담당 기자들은 ‘굶주린’ 표정이었습니다. 1시간 뒤 파란색 원피스의 젠 사키 신임 백악관 대변인이 진행하는 브리핑을 끝낸 이들은 기뻐 날아갈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이게 얼마만인가! 이런 게 바로 브리핑이지.” 기자들 반응이었죠.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서 폭스뉴스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이든 시대가 되면 친(親)도널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완전 찬밥 신세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중재자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죠. 트럼프 시대에는 총 4명의 백악관 대변인이 있었습니다. 기자들과 싸우거나(숀 스파이서, 사라 샌더스), 아예 브리핑을 안 하거나(스테파니 그리셤), 지나치게 트럼프 찬양 일색이라 기자들이 브리핑을 보이콧(케일리 매커내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니 사키 대변인의 ‘정상적인’ 브리핑을 접하게 된 기자들이 감격스러워한 것은 당연합니다. 몇몇 기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반응을 볼까요. “사키 대변인은 단 한 번의 브리핑으로 4명의 트럼프 대변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브리핑에서 이렇게 상식이 통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4년 만에 기괴하지 않는 백악관 대변인 첫 탄생.” 사키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무부 대변인을 지냈고, 이후 CNN 전문가 패널 등으로 활동한 대(對)언론 베테랑. 저도 워싱턴 특파원 시절 국무부 대변인이었던 그녀의 브리핑에 수차례 참석했습니다. 효율적인 운영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이슈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실수를 인정한 뒤 “곧 알아봐서 (개인적으로 또는 다음 브리핑 때) 답을 주겠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더군요. 그러니 많은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가 돌아가고 다양한 이슈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죠. 당연한 대변인의 직무라고 할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시절 ‘분노의 브리핑’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사키 대변인의 또 다른 특징은 전문가나 담당자를 자주 동석시킨다는 것입니다. 국무부 대변인 시절에는 지역 담당국장 등을 자주 브리핑에 초청해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죠. 백악관 브리핑 둘째 날에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었겠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과제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전문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 것이죠. 직접 파우치 소장이 나서 40여분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그렇다고 사키 대변인 체제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새 정권과 언론의 ‘허니문(신혼) 기간’은 곧 끝나기 때문이죠. 지난 대선 때 언론의 보도 방향이 “지나치게 바이든 쪽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미 언론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국운영 능력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극우매체와의 관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름도 생소한 케이블TV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대거 주목을 받았습니다. 뉴스맥스, 데일리콜러, 게이트웨이펀딧(이상 인터넷), OAN, 싱클레어(TV) 등이죠. 이들은 대형 언론사도 하지 못한 트럼프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며 명성을 키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트위터로 홍보하며 선전도구로 활용했습니다. 백악관 취재 시스템은 중층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요. 우선 ‘출입’ 언론사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첫 관문부터 통과하기가 쉽지 않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미국과 전 세계에서 100여개 언론사만이 승인을 받습니다. 진짜 핵심은 다음 단계인 브리핑 참석.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는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하는 브리핑룸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미국 기자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하드 패스(단단한 권한)’를 얻는 것이죠. 브리핑룸은 49개의 좌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대개 50명 선에서 ‘하드 패스’를 얻습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브리핑 참석 가능 인원이 14명으로 크게 줄었지만요.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출입 언론 선정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트럼프 시대에 ‘하드 패스’를 얻은 극우매체들은 결코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송곳 같은 질문을 퍼붓겠다는 것이죠. 통합을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도 극우매체들의 브리핑 참석 권한을 “일단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폭스뉴스가 부각되는 배경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와 극우매체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친트럼프 계열이지만 극우는 아닌 폭스는 양측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바이든 비판’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폭스뉴스의 역할은 첫날 브리핑 때 여실히 증명됐습니다. 이날 사키 대변인은 단 한 차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는데요. 바로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폭스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 가족이 취임식 날 링컨기념관 방문 등 공식 행사를 하는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는 적이 수차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하는 행정명령까지 서명한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대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지적이죠. 그렇다고 극우 매체의 부정선거 주장처럼 정권의 정통성까지 뒤흔드는 체제 비판 질문도 아닙니다. 이 정도 선에서 행정부 비판이 용납돼야 한다는 것을 폭스뉴스가 보여준 것이죠.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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