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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맞춰 입은 백인 사내 5명이 갑자기 무대 위로 들이닥쳤다. 근육질의 20대부터 배가 볼록 튀어나온 백발의 6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인 타임스센터 세미나장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5월 11일 오후 1시 반에 벌어진 일이다. ‘We have answers(우리에겐 답이 있다)’ 백인 사내들의 검은 티셔츠에 굵은 흰색 글씨로 새겨진 문구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들은 무슨 답을 가지고 있다는 걸까. 이날 세미나장에서는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세계총회가 진행 중이었다. INMA 총회는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 유력 언론사의 미디어 비즈니스 담당자들이 모여 미디어 시장 동향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휴식 시간에는 미디어 관련 IT기업들이 무대에 잠깐 올라와 자사를 홍보하는 시간도 있었다. 검은 티셔츠의 백인 사내들은 바로 데이터 분석 업체를 홍보하러 나온 직원들이었다. ‘We have answers’는 디지털 빅뱅 시대에 미디어 기업의 고민인 데이터 분석을 해결해주겠다는 ‘영업 구호’였다. 노골적이고 유치하지만 은근히 언론사 관계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문구였다. 연례행사인 INMA 총회에 오는 언론사 관계자들은 그동안 300~400명 선이었다가 올해 처음 500명을 넘겼다. 500석 규모 총회장에 빈자리는 없었다. 미디어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활로를 찾으려 얼마나 고심하는 지를 유례없이 만석이 된 총회장이 대변하고 있었다. 올해 총회에는 전통 언론(legacy media)이 미디어 변혁에 적응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실험 사례들이 다수 소개됐다. 동아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2015 INMA 세계총회’에 참석해 세계 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비즈니스 전략을 취재했다.● NYT, 모바일 독자가 전체의 55% 우선 기존의 ‘디지털 퍼스트’에서 ‘모바일 퍼스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많이 제기됐다. 고객들이 자사 콘텐츠를 경험하는 주 경로가 웹에서 모바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사로 나온 뉴욕타임스 알렉스 하디먼 부사장(콘텐츠 부문)은 전체 방문자 중 모바일 유입 비중이 2010년 22%에서 올해 55%로 급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PC 등 고정형 인터넷보다 스마트폰으로 뉴욕타임스를 보는 독자가 더 많아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기사를 유통시킬 모바일 기기를 스마트폰에서 애플 와치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줄 뉴스 등 작은 화면에 맞는 기사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또 모바일 이용자들의 시간대별 행태와 습성을 분석해 언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호주에서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다수의 신문을 발행하는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의 스테판 사바 모바일 담당 국장은 발표 도중 청중들에게 “하루 중 스마트폰을 몇 번 들여다보느냐”고 물었다. 적게는 100회, 많게는 400회까지 답변이 나왔다. 페어팩스 미디어가 자체 실시한 독자들의 스마트폰 이용 횟수와 분포와 비슷했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하루 수백 번씩 들여다보는 강력한 매체라는 것이다. 스테판 사바 국장은 “모바일 기기는 개인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맞는 맞춤형 기사 전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고객을 연구하라” 이번 총회에서 얼 윌킨스 INMA 총괄디렉터는 전통 언론과 신생 디지털 언론의 차이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통 미디어는 모든 뉴스를 다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지털 미디어는 잘 팔릴 것 같은 기사에 집중한다.” 기성 언론사는 기사 가치를 판단할 때 독자의 수요 보다는 개별 언론사가 판단하는 사안 자체의 중요성에 더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언론사가 뉴스를 배달하던 시대에서 독자가 뉴스를 선택하는 쪽으로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고객 데이터 분석은 기성 언론사들이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가 됐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개인 모바일 기기를 통한 뉴스 소비가 많아져 독자층이 개별화되는 만큼 데이터를 통한 소비자 행동 분석도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의 유력 지역지인 애리조나 리퍼블릭은 각종 데이터 분석 툴을 활용해 기사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편집 회의 때 독자분석 전문가를 참여시켜 간부들의 의사결정을 돕기도 한다. 20~30대 여성 전문 패션 뉴스 사이트인 ‘Refinery29’는 고객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분석해 제작에 반영하고 있다. 분석 결과 토요일에 패션과 뷰티 관련 기사 소비율이 높고, 일요일에는 연예 오락 뉴스를 소비하는 성향이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이 매체는 주말에 평일의 2배 수준으로 기사를 제작해 전파하고 있다. 미국 미디어컨설팅업체인 프레스리더의 니콜라이 마리야로프 부사장은 “복잡한 빅데이터 속에서 맥락을 찾아내는 스마트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콘텐츠와 시간, 타깃 독자층, 가격, 채널을 정밀하게 확인해 일종의 ‘(기사 소비 지도)reading map’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적절한 콘텐츠를 적절한 시간대에 올바른 독자층에 적합한 가격을 매겨 정확한 채널로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INMA 총회에 참석한 강석 미국 텍사스대 샌안토니오(UTSA)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전통 언론사들이 디지털 변혁을 겪으며 자생력이 강해지고 있는 경향을 확인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면서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과 과감한 모바일 실험을 계속한다면 새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뉴욕=신광영 기자neo@donga.com}
“출퇴근 지하철에서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을 읽으면 마치 어느 대학의 강의실에서 세계 유수의 고수들로부터 수업을 받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누구보다 내 어리석음과 고집스러움을 잘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끈기 있게 이끈다.” 3월 동아일보사의 경영전문 매거진 DBR 창간 7주년을 맞아 DBR 애독자들이 보내온 축하 메시지들이다. 독자들은 하나 같이 DBR에 매료됐다는 반응을 보인다. “DBR을 읽다보면 무릎 칠 일이 많다”거나 “유용하고 다양한 정보, 사례가 풍부해 항상 사서 보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좋은 라이브러리다. 봐도 봐도 더 보고 싶다”며 극진한 사랑을 표현한 독자도 있었다. 최신 경영지식은 물론 기업경영에 즉각 활용할 수 있는 통찰이 많아 업무나 공부에 유용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고 칭찬하는 독자들도 많다. 애정 어린 독자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창간 7돌을 맞은 DBR은 이제 국내 최고 경영 전문 매거진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을 비롯해 공기업, 금융권 등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요 기업과 기관들이 DBR을 열독하고 있다. 미래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될 전국의 경영대 학생들도 DBR의 충성 독자들이다. 언론 환경 변화로 전통 매체가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DBR만큼은 독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편집국과의 협업 등을 통해 DBR 정기구독자를 수천 명 늘리는 성과를 냈다. 이 같은 DBR의 성장세에 힘입어 미래전략연구소의 지난해 매출액도 전년 대비 30% 늘었다. 이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임직원들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DBR은 어떤 강점을 지니고 있기에 독자들이 계속 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크게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콘텐츠’를 요인으로 들 수 있다. DBR은 필자와 아이템, 콘텐츠 제작과정 등에서부터 확연히 다르다. 국내 최고 경영대학의 교수들이 국내외 최신 경영이론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석박사급으로 구성된 DBR 기자들이 현장을 누비며 경영에 꼭 필요한 성공 전략과 기업 사례를 심층 취재하고 있다. 필진의 ‘가방끈’이 긴만큼 콘텐츠의 깊이가 다른 것이다. DBR의 대표 아티클인 ‘스페셜 리포트(Special Report)’를 제작하는 과정은 특히 남다르다. 경영이론과 사례가 어우러진 결정체답게 교수와 DBR 기자들이 석 달 이상의 취재와 연구를 진행한 뒤 기사를 작성한다. 콘텐츠의 질(質)은 무서우리만큼 철저하게 관리한다. 실제로 국내 최고 경영대학 교수가 야심차게 준비한 스페셜 리포트가 수준미달로 판명돼 게재가 거부된 사례가 있었다. 잘 팔리도록 하는 것도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래전략연구소는 DBR 웹페이지 관리 등 온·오프라인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디유넷과 상시 협업하고 있으며 창간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연중 실시해 정기구독자 증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달 11일에는 창간 7주년을 기념해 정기구독자에게 유명 브랜드 가방을 증정하는 프로모션을 홍보하기 위해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 판촉행사를 열어 광화문 직장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3월 초에는 DBR을 애독하는 주요 기업 독자들에게 열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7주년 기념 떡을 돌렸다. 창간 7주년 기념호인 3월호부터는 지면도 혁신했다. 강상무 승진 프로젝트, 골프, 오너십, 협업, 럭셔리&프리미엄 등 새로운 코너를 순차적으로 게재해 독자층을 넓혀 나갈 것이다. 혁신의 전도사 DBR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미래전략연구소 신성장동력팀 이태훈}
《 18일 오후 1시 15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정류장. 인천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버스기사 박종호 씨(57)는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안을 돌기 시작했다. 박 씨는 10여 명의 승객에게 일일이 안전띠 착용을 권유했다. 대부분의 승객은 안전띠를 매지 않은 상태였지만 기사가 직접 착용을 권유하자 모두 벨트를 맸다. 박 씨는 모든 승객이 안전띠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리로 돌아와 운행을 시작했다. 박 씨는 “평소 안전띠 매기를 귀찮아 하는 손님도 눈을 맞추면서 정중히 말씀드리면 착용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인천공항 노선 등 5개 공항버스 노선을 운영하는 ‘한국도심공항’은 이처럼 기사가 승객에게 안전띠 착용을 직접 권유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결과는 어떨까. 한국도심공항에 따르면 2011∼2013년 이 회사의 사고 건당 승객 경상자는 0.48명, 중상자는 0.04명에 불과했다.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같은 기간 일반 고속도로의 고속버스 교통사고에서는 건당 0.22명의 사망자와 6.32명의 부상자(중상자 2.34명, 경상자 3.98명)가 발생했다. 이처럼 안전벨트 착용은 사고 시 승객의 사망 부상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5월 14일 오전 9시 55분 인천공항 방향 영종대교 상부도로(왕복 6차로)에서 공항리무진버스(6100번)가 중앙분리대 청소 준비를 위해 서행하던 25t 신호트럭에 부딪친 뒤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다. 버스의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파되고 신호트럭 뒷부분이 반파될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했지만 승객 10여 명은 대부분 경상에 그쳤다. 아무도 좌석에서 튕겨 나가거나 유리창 등에 부딪치지 않았다. 승객 모두 안전띠를 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전을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동아일보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일상 속에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일곱 가지 제언을 한다.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방안들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①20명 모인 곳 대피안내 의무화하자노래방 구석에 대피도 1장… 불나면 우왕좌왕 불보듯②안전안내, 기계 아닌 사람이 하자녹음된 음성, 지루함 유발… 육성은 각성효과 가져와③안전 관련 종사자 제복 입게하자승객 생명 지킨다는 책무… 일상적으로 느낄수 있어④안전훈련 불시에 실시하자英금융가 예고없이 경보… 실전처럼 일사불란 대피⑤안전위반 신고포상금 도입하자“위반해도 안걸리면 그만”… 공익신고 활성화 시켜야⑥생존교육 필수교과로 지정하자독일 학교들 수영 수업… 인명구조 배워야 ‘졸업’⑦매뉴얼 기관별 공개 의무화하자독립기구서 매뉴얼 평가… 부실한 곳 불이익 줘야22일 오전 10시 25분 서울 강남구 롯데시네마 씨티강남점 4관. 영화 상영 전 비상대피로 안내 영상이 17초 동안 상영됐다. “대피 시에는 왼쪽 안전 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녹음된 여성 목소리와 함께 화면 왼쪽에 “가장 가까운 출입문을 확인해 주세요” 등의 글자가 나왔다. 비상대피 영상은 앞뒤로 20여 편의 광고가 상영되는 데다 고작 17초에 불과했다. 더구나 대피 안내 영상이 4관뿐 아니라 다른 상영관의 대피로를 함께 보여줬기 때문에 정작 기자가 있던 4관의 대피로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영상에는 소화기와 소화전 등의 위치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피로 안내 영상에 따라붙는 협찬 광고주의 홍보성 동영상이 배경에 깔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형우 씨(36)는 최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에서 영화 상영 전 광고가 붙은 대피 영상을 본 뒤 “대피 안내 영상이 ‘그냥 뛰어나가면 된다’는 것 말고 무엇을 알려주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업주는 위급 상황에서 이용객들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피난계단과 통로, 피난설비 등이 표시된 안내도를 갖추거나 피난 안내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건물 내부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건물주나 시설 담당자가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노래방이나 PC방, 고시원, 영화관, 대중목욕탕 등 23곳이 다중이용업소다. 하지만 이 법 규정은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극장뿐 아니라 노래방이나 PC방도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최소한의 정보만 담은 비상 대피도를 붙여놓은 게 전부다. 유사시에 대피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엉키면 대형 인명 사고로 번질 수밖에 없다. 기준을 정해 일정 인원 이상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관리 책임자가 방문객에게 대피 요령 안내를 직접 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숱한 인재를 겪으며 안전 관련 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온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건물에서 행사가 열리면 방문객 대상으로 대피 요령 안내 및 대피 훈련을 먼저 한다. 영국은 ‘직장에서의 건강과 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ACT·1974년 제정)’에 따라 회사의 고용자나 사무실의 관리자에게 이 같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법은 사유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설에 적용된다. 콜린 그레이 주한 영국대사관 대변인은 “대사관에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근무 첫날은 안전 지침을 숙지하고 건물의 동선을 확인하고 이를 테스트하면서 하루가 다 간다”며 “안전관리 담당자는 대사관의 대피 훈련 결과를 영국 본국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피 요령을 미리 녹음된 음성으로 안내하면 실제 육성보다 사람들의 인지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지하철 열차에서 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 안전 관련 기계음성, 영화관에서 광고와 함께 섞여 나오는 대피 요령 방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직원이 대면해 안전 수칙을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사람은 규칙적인 기계음보다 불규칙적인 음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녹음된 음성처럼 일정한 음은 잠이 올 때의 뇌파인 ‘세타파’를 발생시켜 지겨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 소장은 “사람의 육성처럼 불규칙한 음성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뇌파인 ‘베타파’를 유발시켜 각성하는 효과를 가져와 집중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 버스 운전사 등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진 대표적 안전 관리자들에게 제복 착용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제복을 통해 타인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주면서 스스로의 책무를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현재는 제복 착용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이번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방치하고 자신들만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이 하나같이 제복을 벗고 사복 차림이었던 것도 제복이 갖는 책임감을 방증한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찰 및 군인 제복이 의무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것처럼 제복은 사회적으로 자기 통제와 책임성을 강화한다”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사회적 책임에 맞춰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대피 요령 안내의 실질화 외에도 안전 시스템을 보완하고 강화할 부분이 많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가 제시된다. 초중고교에서 ‘생존교육’을 필수교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파리 15구의 공립초등학교인 ‘에콜드루엘’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일주일에 한 시간씩 ‘생존 수영’을 가르친다. 물 위에 떠 있기, 호흡하는 법, 물놀이를 하면서 물속에서의 기본적인 생존능력을 키워주는 게 목표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에게 물안경을 씌우지 않는다. 실제 사고 시에도 당황하지 않고 물속에서 눈을 뜨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일도 학교의 수영 수업 마지막 단계에 인명구조를 배우고 자격증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독일 공교육을 받은 모든 학생은 인명 구조요원과 같은 수준이 돼 졸업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안전에 대해 보건교과나 ‘창의학습체험’ 등을 통해 비정기적이고 부수적으로만 교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존 과목을 신설하고 관련 교과서도 발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가가 공인하는 안전 관련 공인자격증을 만들어 취득자에게 생명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혜택을 주는 안도 검토할 만하다. 또 사고가 불시에 닥치듯 훈련도 불시에 할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2005년 7·7 지하철·버스 테러 이후 다중이용 시설의 비상 대피훈련을 불시에 실시한다. 금융의 중심가인 ‘시티’의 30∼40층 고층빌딩에서도 불시에 소방벨이 울리면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비상구로 일사불란하게 내려온다. 시내의 고급 호텔에서도 새벽 두 시 반경 불시에 훈련 화재경보가 울리기도 한다.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각종 방재 매뉴얼과 사고백서 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각 기관이 각자 작성한 매뉴얼은 3400개나 있지만 유관 부서끼리도 내용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실정이다. 유사시에 부처들이 업무 구분이 뒤죽박죽된 채 서로 영역 다툼을 해서는 사고 피해 최소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부처 등이 작성한 매뉴얼은 독립적인 전문기구가 평가해 우수한 곳에는 혜택을 주고 부실한 곳에는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매뉴얼을 보완해야 한다. 안전 관련 신고포상금제 도입도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안전 관련 규정 준수율이 낮은 이유는 위반해도 적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시인력과 인프라를 무한정 늘리기도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이 공익신고 시스템 도입이다. 시민들의 반발로 시행이 중단된 교통법규 위반 신고 포상제도도 ‘카파라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재추진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재난 대비 컨트롤타워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해마다 9월을 재난 대비의 달로 정하고 지난 1년 동안 재난 대비에 탁월한 성과를 나타낸 개인과 단체 등에 상을 수여하고 있다. ‘개인 및 지역사회 준비 대상(FEMA Individual and Community Preparedness Awards)’이다. 국가 차원의 재난 대비 능력 강화와 아울러 아래로부터 지역사회와 개인의 자발적인 재난 대비 능력을 키우기 위한 인센티브인 셈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조종엽·박성진 기자파리=전승훈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66·사진)가 제자가 쓴 논문을 자신의 연구 결과인 것처럼 학술지에 게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송광용 신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61)에 이어 김 후보자까지 교육계의 두 수장(首長)이 동시에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교육계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동아일보가 16일 박홍근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한국교원대 교수 재직 시절인 2002년 6월 ‘자율적 학급경영방침 설정이 아동의 학급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본보 특별취재팀이 논문 표절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이 논문은 같은 해 2월 정모 씨(교육행정학과)가 석사논문으로 제출했던 논문과 제목은 물론 구성과 내용이 거의 동일했다. 전체 210개 문장 중 동일문장 또는 표절의심문장에 해당되는 문장은 208개에 달했다. 김 후보자의 논문에는 김 후보자가 제1저자, 정 씨가 제2저자로 등재돼 있다. 정 씨가 석사논문을 쓸 당시 김 후보자는 지도교수였다. 송 교육문화수석이 제자가 쓴 논문을 자신의 연구 결과인 것처럼 제1저자로 표기한 것과 비슷한 사례다. 특히 김 후보자의 경우 정 씨에게 먼저 논문 제출 의향을 물어봤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정 씨는 16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교수님(김 후보자)께서 먼저 내 논문을 학술지(한국교원대 교수논총)에 게재하고 싶다고 물어봤다”며 “제1저자, 제2저자가 누군지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았기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후보자는 “그 논문이 대학원에서 우수상을 받은 논문이라 이 친구(제자) 키워줘야겠다 해서 그걸 학술지에 실어준 것”이라며 “내 이름을 뒤로 넣으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유사한 내용의 본인 논문 2건을 인용 표시없이 각기 다른 학술지에 발표해 이중 게재 의혹이 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6일 송 교육문화수석의 표절 논란과 관련한 논평을 통해 “대학 행정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위치에 있는 송 수석이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고 가로챈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밝혔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신광영·황승택 기자}
송광용 신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 이어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까지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의 두 수장이 같은 방식으로 제자의 논문을 자신의 논문으로 포장해 학술지에 버젓이 게재했다는 점에서 교육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청와대도 인사검증 시스템에 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자는 물론 가족과 사돈, 주변 지인까지 조사 대상에 올려 조사했지만 표절 문제에 있어선 검증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조사(助詞)만 다를 뿐 대부분 일치 김 후보자가 2002년 6월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자율적 학급경영방침 설정이 아동의 학급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제자 정 씨가 2002년 2월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같은 제목의 논문을 발췌한 수준으로 대부분 조사 하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 씨의 논문 5항 ‘연구결과 및 논의’ 부분에 대해선 김 후보자가 정리하고 요약한 흔적이 보였다. 김 후보자 논문은 전체적으로 210개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75개가 정 씨 논문에 나온 문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거의 같은’ 수준인 ‘표절의심문장’도 133개에 이르렀다. 정 씨의 석사학위논문은 △서론 △이론적 배경 △가설 △연구방법 △연구결과 및 논의 △요약 및 결론의 순서로 78쪽 분량. 김 후보자의 논문은 △서론 △이론적 배경 △가설 △연구방법 △연구결과 및 논의 △결론의 순서로 24쪽 분량이다. 두 논문의 구성은 대부분 같았다. 정 씨 논문의 서론에 있는 ‘용어의 정의’, 이론적 배경의 ‘선행연구고찰’, 요약 및 결론 부분의 ‘요약’ 항목 등이 빠져있을 뿐이었다. 내용도 거의 같았다. 김 후보자 논문의 서론만 놓고 보면, 정 씨 논문 서론에서 ‘더구나 학급운영은 자신을 검증해 주고 또다시 교사인 자신을 만들어 가는 최고의 실험장이건만 자율성을 담보하지 못한 학급 경영방침 설정으로 인하여 실천 전문가라고 하는 교사의 전문성 확보와 신장은 점차 확산되지 못했다’는 한 개 문장만을 뺀 것이었다. 가설 부분은 완전히 같았다. 표, 각 가설을 구분하기 위한 로마 숫자, 구두점까지 같았다. 취재팀의 요청으로 김 후보자와 정 씨의 논문을 꼼꼼하게 검증한 두 명의 교수는 “유사 논문인지 들여다볼 필요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씨의 석사논문 중 일부를 김 후보자가 뽑아 쓴 수준이란 얘기다. 서울 A 국립대의 교수는 “간혹 제자의 논문을 본인이 제1저자로 발표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제목, 구성, 내용 등 일부는 편집해 가공한다”고 꼬집었다. ○ 연이은 교육 수장의 파문에 술렁이는 교육계 송 수석에 이어 김 후보자까지 제자 논문을 본인이 제1저자로 버젓이 학술지에 등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교육계는 술렁이는 분위기다. 한 교원단체 관계자는 “교사 양성의 양대산맥인 서울교대와 한국교원대 출신의 두 인사가 동시에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교육계에선 이들이 제1저자로 논문을 발표한 사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B 사립대 교수는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려면 최소 한 명의 저자가 학술지 정회원이어야 하는 게 관행이라 지도교수가 공동저자로 나갈 때는 있다”면서 “하지만 제1저자가 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잘라 말했다. 제1저자냐 제2저자냐에 따라 교수의 논문 실적 평가, 연구력 지표 등이 좌우되기 때문에 교수가 편법으로 실적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일부 교수들은 ‘책임론’을 들었다. 본인이 제1저자로 발표한 제자의 논문이 만약 짜깁기 등 이유로 이후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 책임 역시 교수가 모두 질 수 있겠냐는 얘기다. 특히 김 후보자와 송 수석은 모두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편까지 잡았던 교육자 출신이란 측면에서 충격이 더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각각 한국교육행정학회장(김 후보자), 한국초등교육학회장(송 수석)으로 있을 때 정진곤 당시 대통령교육과학문화수석 내정자에 대한 표절 의혹이 일자 “표절로 보기 힘들다”는 공식 입장을 내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16일 취재팀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만 해도 1저자냐 2저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교수님을 존경하니까, 실어준 것만 해도 학생은 고맙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진우 niceshin@donga.com·박성진 기자}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사진)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헌법학자다. 이중 게재 의혹을 받고 있는 논문은 정 후보자가 2006년 10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회지 ‘법과 사회’에 실은 ‘탄핵제도와 헌법디자인’이란 제목의 글이다. 정 후보자는 1년 9개월 전인 2005년 3월, 학회지 ‘서울대학교 법학’에 ‘탄핵재판에 있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여부결정권’이란 제목의 유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인사검증팀이 논문 표절 검증 프로그램을 활용해 두 논문을 분석한 결과 내용의 40%가 일치하고, 한자를 한글로 바꾼 부분까지 포함하면 절반가량 겹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논문 모두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를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두 논문의 서론을 보면 여러 개 단락에서 접속사 등 일부 표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장이 일치한다. 이어 탄핵제도가 국가별로 어떻게 시작됐는지 역사를 살피는 부분, 탄핵제도의 모델 5가지를 소개하고 우리나라 탄핵제도의 특성을 분석하는 내용 등 20쪽 분량(전체 31쪽)이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 2006년 논문엔 해외 사례가 몇 가지 추가됐을 뿐이다. 정 후보자는 2006년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년에 낸 논문을 참고 또는 인용했다는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연구자 본인의 동일한 연구결과를 인용 표시 없이 동일 학계 학회지에 중복 게재하는 행위’를 부적절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논문 이중 게재는 2005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파문을 계기로 교육부가 연구윤리 규정을 강화해 엄격히 금지된다. 서울대에서 연구윤리를 가르치는 A 교수는 “연구업적을 평가할 때 등재 논문 수가 주요 잣대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쓴 유사 논문을 인용 없이 가져다 쓰면 업적을 부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 후보자는 안행부 김석진 대변인을 통해 “논문 관련 의혹은 청문회 때 소상히 밝히겠다”고 전했다. 정 후보자는 안행부가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제주4·3사건에 대해 논란이 될 수 있는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발간한 저서 ‘대한민국 헌법이야기’에서 4·3사건에 대해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봉기였고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고 썼다. 그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수장을 맡게 될 안행부는 4·3국가추념일의 주관 부처다. 정 후보자가 강단에서 엘리트주의에 매몰된 언행을 자주 보였다는 증언도 나온다. 서울대 법대 졸업생과 재학생 10여 명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강의 도중 “현행 민주주의에서 하는 1인 1표제는 문제가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100표를 줘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신광영 neo@donga.com·천효정·박성진 기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대통령제 대신 권력분산형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해 온 헌법학자다. 2012년 한나라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또 검찰개혁심의위원장으로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반부패부를 설치하는 내용의 검찰개혁안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재직 시절 “로스쿨 졸업생들의 진로를 확대하기 위해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수시로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안행부는 지방행정 위주의 행정자치부로 전환될 예정이지만 정 후보자는 지방자치나 지방재정 관련 경력은 없는 편이다. △경북 경주(57) △경북고 △서울대 법학과 △연세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24회 △서울대 법대 학장 △한국헌법학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부위원장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책임을 물어 안전행정부 조직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지만 정작 안행부 공무원들은 승진에 유리한 ‘꽃 보직’을 챙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안행부가 국가안전처 인사혁신처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공개한 지난달 28일 오후 6시경, 안행부 내부전산망 익명게시판인 ‘소곤소곤’에는 ‘빠른 승진 혹은 서울 잔류, 무엇을 택할 것인가’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안행부가 ‘행정자치부’로 축소되고, 세종시에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새 부처가 생기는 과도기에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유리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안행부 직원들은 “신설 조직이 승진은 제일 빠르다” “조직의 사기 진작을 위해 개편 전에 승진인사를 했으면 한다” “이 조직의 마지막 배려는? 근속승진” “주사 대우, 사무관 대우 등 ‘대우’ 자 붙은 직원들 승진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선임이 빨리 승진해야 후임도 희망이 보인다”라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안행부 공무원들이 겉으로는 침통한 분위기이지만, 이번 조직 개편이 승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철밥통’을 지키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무총리실은 대통령 대국민 담화 후속 조치로 진행된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전적으로 안행부에 맡긴 상태다. 국가안전처와 인사혁신처 등 조직이 신설되면 비서실, 감사관실, 총무과 등 지원부서가 각기 새로 생길 수밖에 없고 이 자리들 중 상당수가 안행부 공무원들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 행자부로 바뀌면 지자체 요직 챙길 기회도 늘어 ▼안행부 관료들이 갈 수 있는 고위직도 늘어난다. 행자부로 조직이 축소되면서 차관 자리가 하나 줄지만 국가안전처의 장관과 차관, 인사혁신처장(차관급)이 생겨 결과적으로 장관과 차관이 한 자리씩 늘어난다. 국가안전처의 경우 장차관에 일반 관료가 대부분인 정무직을 보임하도록 해 소방방재청이나 해양경찰청 출신 인사가 임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약 안행부 등 일반 관료 출신 인사가 국가안전처 차관에 임명될 경우 지휘체계에 혼선이 커지고 현장 대응력도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행부가 행자부로 축소된 뒤 남게 될 지방행정 분야 공무원들은 광역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이나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으로 나가는 길이 더욱 수월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행자부 내 1, 2급 고위간부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면서 지자체 부단체장이나 기획실장 자리로 진출하는 경쟁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광역자치단체의 부지사나 부시장, 기획관리실장 등 최고위직은 중앙정부 고위관료(1, 2급)들의 몫이다. ‘중앙이 지방을 원활히 통제하면서 상호협력하자’는 취지다. 규정상 정부 어느 부처 관료든 이들 보직에 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사권을 갖고 있는 안행부 관료들이 독식해 왔다. 동아일보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의 현직 부단체장과 기획관리실장 명단을 확인한 결과 서울시와 경남도를 제외한 15곳은 안행부 출신이 행정부지사나 행정부시장을 맡고 있다. 기획실장도 안행부 출신이 10곳을 차지했다. A광역시의 한 고위공무원은 “지역 사정을 거의 모르는 부단체장이라도 안행부가 특정 인사를 내려보낸다고 하면 거절하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지자체들은 재정의 60∼70%를 중앙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고 보조와 지방교부금 배분 권한을 안행부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안행부 공무원들이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느라 다른 중앙부처와의 협업에는 무관심했다”며 “그러다 보니 세월호 참사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제 기능을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방행정 전문 부처인 안행부 출신 부단체장은 중앙과 지방의 원만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다만 안행부만 독식할 경우 지자체와 유착이 생길 수 있어 타 부처나 민간에 적극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신광영 neo@donga.com / 인천=황금천 기자 }
1일 강릉의 낮 기온이 35.4도까지 오르는 등 때 이른 더위가 주말에 기승을 부렸지만 2일부터 비가 내리면서 수그러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1일 낮 기온은 경북 영덕 35.2도, 강원 영월 34.4도, 대구 32.7도까지 올랐고 서울과 대전은 각각 29.9도, 28.9도를 기록해 전날보다 3, 4도 낮았다. 2일에는 전국 곳곳에 비가 내리고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더위가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관계자는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다가오는 비구름의 영향으로 새벽부터 제주와 전남 해안 지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 낮에는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에 따라 2일 낮 기온은 서울 26도, 강릉 23도, 대전 25도, 대구 27도로 전날보다 4, 5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29일 서울 낮 기온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30도를 넘어서는 등 전국에 불볕더위가 계속됐다. 30일에도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2도, 전주 33도, 대구 34도까지 오르는 등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다음 주부터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에 따르면 29일 서울의 낮 기온은 30.3도를 기록했고 대구 35.6도, 강릉 33.8도, 전주 32.1도, 대전 31.1도 등으로 전국 대부분의 지방이 올 들어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여기에 강한 일사까지 이어지면서 영동과 충청 이남의 자외선 지수는 ‘매우 높음’ 상태를 유지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남서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유입된 데다 낮 동안 강한 햇볕이 더해져 기온이 크게 올랐다”고 밝혔다. 주말까지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어지겠고 다음 주부터 서서히 평년 수준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황사와 미세먼지까지 나흘 연속 이어지는 가운데 29일 서울 일부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213μg까지 올라 평소의 3.4배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서울에는 초미세먼지주의보 예비단계가 내려졌다. 황사는 29일 밤사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미세먼지가 30일 오전까지 ‘약간 나쁨’ 단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노약자나 어린이는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잇따른 참사로 대한민국이 패닉(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28일 전남 장성군 삼계면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난 화재로 21명이 숨졌다. 대부분 치매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었다. 병원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경찰은 80대 치매 환자 김모 씨(82)를 유력한 방화 용의자로 지목하고 조사하고 있다. 이날 서울에서도 아찔한 사고가 이어졌다. 오전 10시 51분경 지하철 3호선 매봉역을 출발해 도곡역으로 진입하던 오금행 전동차 안에서 불이 났다.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은 승객 조모 씨(71)가 시너 11병과 부탄가스 4통 등 인화물질이 든 가방에 갑자기 불을 붙였다. 마침 같은 칸에 탔던 서울메트로 직원 권순중 씨(47)가 소화기를 꺼내 불을 껐고 다른 승객이 119에 신고하면서 초기 진화에 성공해 부상자는 1명에 그쳤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에 이어 2일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추돌, 26일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등 연이은 대형 재난에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부 박혜진 씨(40)는 “무엇보다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가 위험한지 모른 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장성=조종엽 jjj@donga.com / 이건혁 기자 ▼ 공중시설 점검하라 ▼백화점-콘서트장 등도 안심 못해… 방화셔터-비상구 원점서 재점검을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 화재 때 불길과 연기를 차단하는 방화셔터 바로 아래에 마네킹들이 서 있었다. 식품매장 내 방화셔터 자리에는 아예 판매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은 가수들의 콘서트 무대로 인기가 많다. 23∼25일 국내 최고 인기 남성그룹 ‘엑소’의 콘서트도 여기서 열렸다. 그러나 이곳은 전문 공연장이 아니다. 한번에 최대 1만5000명의 관객이 들어차지만 객석 측 출입구는 단 세 곳이다. 개방되는 문은 폭 3m짜리 7개뿐이다. 사고가 났을 때 탈출이 쉽지 않고 2차 사고마저 우려된다. 28일 둘러본 서울 도심의 한 요양병원 복도에는 각종 재활기구와 의료장비가 쌓여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이용해 대피할 때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크고 화려한 디자인의 다중이용시설이 속속 등장하고 고령화로 인해 요양시설이 급증하고 있지만 안전의식이나 정부의 점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동호 인천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 안전등급제를 도입해 이용객들이 안전한 곳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김범석 bsism@donga.com·임희윤 기자 ▼ 국민들도 훈련하자 ▼재난대피훈련 대부분 대충대충… 내 안전 지키려면 실전같이 해야“불이야”를 외치고 비상벨을 누른다→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대피한다→물에 적신 담요나 수건으로 몸과 얼굴을 감싼다→연기가 많을 때는 낮은 자세로 이동한다…. 소방방재청이 밝힌 화재 발생 시 행동 요령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정도야 다 아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시뻘건 불길과 매캐한 유독가스에 한 번이라도 맞닥뜨린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종이 속 요령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다. 방화 설비를 제대로 갖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미리 내용을 알려주고 실시하는 ‘친절한 훈련’은 진짜 재난 때 목숨을 위협하는 독이 된다. 방화셔터 스프링클러의 수와 작동 여부나 따지는 형식적 점검 대신 유독가스의 움직임과 속도, 대피자의 이동 속도를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짜 훈련을 해야 한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에서 개개인이 노력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일 수밖에 없다”며 “각자의 몸에 배지 않고서는 안전 매뉴얼이나 수칙은 절대로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이성호starsky@donga.com·신광영 기자}
기획재정부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 관련 부처의 2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금융권뿐 아니라 관련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다. 퇴직 공직자 취업이 제한되는 기관이 기존 3906곳에서 1만3043곳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취업제한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길어진다. 공직자윤리법상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에 사립대학을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교육부 고위공무원 역시 퇴직한 뒤 사립대 총장으로 가는 게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안전행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통령 담화 후속조치로 이 같은 내용의 공직자윤리법과 정부조직법,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29일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기관은 기존의 사기업은 물론 안전감독 인허가 규제 조달과 직결된 공직유관단체, 대학 등 학교법인, 종합병원과 관련법인 등이 추가됐다. 해당 기업의 기준도 ‘자본금 50억 원, 연간 거래액 150억 원’ 이상에서 ‘자본금 10억 원 이상, 연 거래액 100억 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일로부터 2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기관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업체, 법무법인,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이다. 하지만 사립대학은 이 규정에서 빠져 있어 교육부 출신 공무원들이 퇴직한 뒤 대학 총장이나 보직교수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총장, 부총장, 기획처장 등 보직교수까지 취업이 제한될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시 신설되는 국가안전처 장관이 중앙재난대책본부장을 맡고, 대형 재난 땐 국무총리가 중앙재난대책본부장 권한을 행사한다. 현장 지휘의 경우 육상은 소방관서, 해상은 해양안전기관이 맡는 것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재난 현장에서 긴급 구조를 할 때 소방서장이 구조작업에 참여한 경찰과 군을 지휘하게 된다.신광영 neo@donga.com·전주영 기자}
2009년 말 이전에 공직생활을 시작한 공무원들의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을 현재 만 60세에서 61세 이후로 늦추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에 따라 과거 공무원 연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열외를 인정받았던 공무원들의 기득권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27일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국무총리실과 관련 부처들이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현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편 방안은 세월호 참사 이후 지탄의 대상이 된 공직사회에 대한 고강도 개혁안이자 재정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타개책이다. ○ 94만 공무원 연금수령연령 조정 정부는 만 60세로 돼 있는 2009년 12월 이전 공무원 임용자 94만 명의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010년 1월 이후 임용자(13만 명)의 수령 개시 시점은 이미 만 65세로 늦춰져 있다. 2009년 말 이전 임용자들이 먼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5년이나 연금을 오래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데다 전체 공무원의 88%인 이들의 연금에 손을 대지 않으면 매년 발생하는 공무원연금기금의 막대한 적자를 줄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방안은 공립학교 교사를 비롯한 전체 공무원연금 가입자 107만 명의 노후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도 개편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2009년 말 이전 임용된 공무원이 사망할 때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유족연금액도 10%포인트가량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09년 말 이전 임용된 공무원이 사망할 경우 유가족이 받는 유족연금은 원래 받던 퇴직연금의 70%로 2010년 이후 임용자의 유족연금 지급률(60%)보다 높다. ○ 적자연금 악순환 고리 깰 필요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서는 것은 연금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만성적자 상태를 타개하지 않으면 나라 곳간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은 1960년 도입된 뒤 줄곧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흑자를 유지하다가 1993년부터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적자로 돌아섰다. 연금적립금이 바닥나도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도록 공무원연금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적자폭이 커질수록 국가가 받는 충격도 커진다. 작년 한 해 은퇴한 공무원들이 받은 공무원연금은 월평균 219만 원으로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84만 원)의 2.6배였다. 공무원들이 매달 받는 평균 연금액은 1990년에만 해도 57만 원이었지만 1999년 100만 원으로 올라선 뒤 매년 증가세를 보여 2011년에 200만 원 선을 넘어섰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령액 때문에 공무원은 퇴직 후 받는 연금으로 재직기간 소득의 62.7%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 가입자는 은퇴 전 소득의 40%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구조개혁이 여러 차례 이뤄진 반면에 공무원연금 개혁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했던 결과다.○ “밀실서 나와 공개 논의해야” 정부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이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09년 개혁 당시 먼저 임용된 공무원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해준 것이 패착이었던 점을 인식하고 공직 입문 시기를 배제한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연금수급 시점을 늦추고, 수급 금액을 현행보다 내리는 한편 공무원연금이 보장하고 있는 복지 혜택을 줄이는 방안까지 포괄적으로 개혁 테이블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국민연금에 비해 공무원연금 개혁이 느리게 진행돼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투명한 절차에 따라 강도 높은 개혁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정부가 관련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연구자조차 공무원연금에 대한 분석이 힘든 상태”라며 “공개적으로 공무원연금 재정상태를 정확하게 계산해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세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세월호 사고에서 해양경찰청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공식 사과한 뒤 곧바로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다양한 대책 가운데 첫 번째 카드로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관재(官災) 논란을 빚은 부처들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 작업은 유민봉 대통령국정기획수석이 주도했다. 유 수석은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도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맡았다. 유 수석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최대한 빨리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관료들의 집단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공중분해된 해경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초동대처를 제대로 못해 ‘골든타임’을 날려버린 해경은 직격탄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그 원인을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수사와 외형적 성장에 집중해 온 구조적 문제가 지속돼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로써 1953년 내무부 치안국 소속으로 출발해 1996년 경찰청에서 분리된 해경은 18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해경의 수사·정보 기능은 다시 경찰청으로 편입되고 해양구조와 해양경비 업무는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이관된다.○ 껍데기만 남은 안전행정부 공직사회는 해경 해체보다 안행부의 기능 조정에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안행부의 핵심 기능인 인사와 조직 업무를 신설될 총리 산하 행정혁신처로 이관토록 했기 때문이다. 안전 업무는 국가안전처로 통합돼 안행부에는 행정자치 업무만 남게 됐다. 이에 따라 안행부는 이름도 바꿔야 한다. 안행부 역시 사실상 해체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안행부의 현행 6개 실·본부는 3개로 줄어든다. 어느 부처나 있는 기획조정실을 빼면 안행부 고유의 업무는 지방행정실과 지방재정세제실 등 2곳뿐이다. 공직사회의 ‘갑(甲)’으로 통하던 안행부의 해체는 정부 부처에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전체 부처를 개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행부 해체를 본보기로 삼아 각 부처가 자체 개혁에 나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안행부의 기득권을 빼앗음으로써 동요하는 관료사회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해수부 기능도 축소 해양수산부 역시 기능이 대폭 축소된다. 해수부의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업무는 국가안전처로 통합된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시 해수부 관할의 제주 VTS와 해경 관할의 진도 VTS가 이원화돼 신속한 초동대처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럴 경우 해수부의 남은 업무는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 진흥 등으로 국한된다. 안행부와 해수부에서 잘려 나온 기능은 총리 산하 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처와 공공기관 인사와 조직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혁신처로 옮겨 간다. 문제는 조직개편이 관료들의 자리 이동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안행부의 인사담당자들이 그대로 행정혁신처로 옮겨간다면 조직개편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민간의 채용을 대폭 확대해 관료사회의 행정고시 기수 문화를 깨뜨리고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이재명 egija@donga.com·신광영 기자}
▼ 생일날 제자들과 케이크 장난친 ‘남쌤’ ▼학생들 대피시킨 남윤철 교사점심 직후 나른한 5교시, 영어담당 남윤철 선생님이 칠판에 ‘while’이라고 쓰며 물었다. “이 단어 무슨 뜻이지?” “∼하는 동안요.” “딱 선생님 단어네. 선생님도 동안(童顔)인데.” 남 선생님은 졸고 있는 제자를 깨울 때도 웃기려 공을 들였다. 출석을 부를 땐 이름 석 자만 읊고 넘어가진 않았다. ‘애들이 말장난을 만들어와 평가를 받고 간다. 그중 최우수작. 예수님이 제자와 쇼핑하다 맘에 드는 옷이 있어 하는 말… 예루살렘(얘로 살 거야라는 뜻).’(2011년 10월 페이스북 게시글) 남 선생님이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맡는 날 학생들은 평소보다 많이 남았다. 어느 땐 느닷없이 들어와 ‘1’을 외쳤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2’ ‘3’ 이어가면 주머니에서 떡을 꺼내줬다. 그의 생일날 학생들은 교단으로 몰려가 케이크 생크림을 그의 얼굴에 문질렀다. 그는 생크림 범벅인 채로 다시 제자들 얼굴을 비비는 스승이었다. 그는 수업시간 학생들 질문에 길게 답하는 편이었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남쌤은 항상 기본부터 설명해주셨다. 다른 선생님은 ‘다 알겠지’ 하고 건너뛰는 부분을 쌤은 지나치지 않았다”고 했다. 제자들 성적이 50점에서 55점으로 오르든, 80점에서 100점으로 오르든 그는 똑같이 말했다. “많이 올랐네.” 교실에서 그의 별명은 ‘송일국’이었다. 한 여학생은 그가 ‘○○아, 생일 축하한다. 요즘 영어공부 열심히 하던데 계속 열심히 하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고 써준 메모를 1년 넘게 지갑에 넣고 다녔다. 미혼의 아들을 떠나보내던 날 남 선생님의 어머니는 “의롭게 갔으니 됐다. 아이들 놔두고 살아나왔어도 못 견뎠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학생들이 많이 희생돼) 아들 장례 치르는 것조차 미안하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남 선생님의 발인 직전 그의 아버지는 “사랑한다. 내 아들. 잘 가거라. 장하고 훌륭한 내 자식”이라고 다 들리게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엄하지만 맞장구 잘 쳐주던 ‘왕언니’ ▼아이들 먼저 내보낸 최혜정 교사지난해 단원고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최혜정 선생님은 올해 담임을 맡은 2학년 9반 학생들과 일곱 살 차였다.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 “네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공감해주는 ‘왕언니’ 같은 교사였다. 최 선생님의 교무일지에는 제자들의 가정형편이나 말할 때 특징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카메라를 장만해 틈나는 대로 제자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의 카카오스토리에는 학생들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다. 최 선생님은 야간 자율학습 때 휴대전화를 만지는 아이들을 보면 불쑥 다가가 ‘핸드폰!’ 하고 인상을 쓰며 엄하게 보이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한테는 “내가 어린 걸 알면 무시할까 봐 나이는 비밀로 하는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강한 척해도 속이 여리다며 친구들은 그를 ‘외강내유(外剛內柔)형’이라고 놀렸다. 생일이었던 지난해 11월 26일 한 제자가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제 생일 때 주신 핸드크림 잘 쓰고 있어요. 나이 차가 별로 안 나 편한 것 같아요. 선생님, 학기 마지막 날엔 나이 알려주세요!’ 최 선생님은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에 두 동생 아침밥을 챙겨주는 맏이였다. 동생들 진학 상담도 전담했다. 사촌동생들에게도 대입 자기소개서를 보내라고 해 일일이 첨삭했다. 고모에게는 뱃살을 만지며 ‘언제 뺄 거냐’고 농담을 하고, 삼촌이 담배를 피우면 엉덩이를 툭 차며 ‘내가 끊으라고 했지’ 하고 너스레를 떨던 조카였다. 아버지 최재규 씨(53)는 “학교 다닐 때 용돈 30만 원을 주면 5만 원은 저축하고 돈을 남겨서 나한테 등산 장비를 사주곤 했다”고 말했다. 최 선생님은 집에서 부모와 복분자주 마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 최 씨는 지난달 전북 고창에 놀러갔다가 딸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함께 마시려 특산품인 복분자주를 여러 병 사왔다. 이 복분자주는 지난달 19일 고인의 빈소 영정 옆에 놓여 있었다.임현석 기자 ihs@donga.com ▼ 학교에선 ‘딸바보’… 집에선 ‘제자바보’ ▼선실 다시 내려간 박육근 교사8일 밤 12시 박육근 선생님의 빈소에 20대 청년이 한쪽 다리를 절며 들어왔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박 선생님의 제자였다. 장애가 있었던 이 제자는 영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돼 찾아오면 웃으며 맞아준다고 하셨잖아요. 저한테 ‘선생님이 되라’고 먼저 말씀하셔 놓고 약속을 깨면 어떡해요.” 몸집이 큰 한 제자도 영정 앞에서 입을 열었다. 용인대 태권도 선수였다. “선생님 저 경기 있어서 공항 가는 길이에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학교에서 싸움을 자주 했던 이 제자는 박 선생님의 조언으로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제자들은 토요일 오후 운동장에서 박 선생님과 축구 했던 추억을 많이 떠올렸다. 말썽부린 아이들에게 박 선생님이 내건 벌칙은 ‘토요일에 나랑 공차기’였다. 학생부장을 오래 맡아 사달이 나면 경찰서에 달려가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이 학교폭력 대책 회의 건으로 저한테 전화할 때마다 ‘죄송하다’며 몸을 낮추셨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박 선생님의 친형 박춘근 씨(61)는 “육근이가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시골에서 어렵게 성장해 넉넉지 않은 집 아이들을 많이 챙겼다. 사고 친 애들 직접 합의해 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한 단원고 학생은 “선생님이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돈 안 내도 수학여행 갈 수 있으니 걱정마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집에서 박 선생님은 두 딸에게 ‘서운하다’는 불평을 듣는 아버지였다. 아내는 “학생들한테 하는 만큼만 애들한테 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박 선생님은 ‘딸 바보’로 통했다. 학생들 앞에서 “우리 둘째딸이 너희들과 동갑인데…”란 말을 습관처럼 했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처음에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딸 얘기를 꺼냈다가 결국 매번 딸 자랑으로 끝났다”고 말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세월호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보다 남을 먼저 구하려 한 의인들은 평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들은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별다른 구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고 대단한 의협심을 발휘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던, 기본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생의 마지막 순간 의로운 선택을 한 분들을 취재해 왔습니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 못지않게 의로운 희생자들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 역시 살아남은 이들의 중요한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영 정현선 김기웅 안현영 양대홍(이상 승무원), 남윤철 박육근 최혜정(이상 교사), 양온유 정차웅 최덕하(이상 학생), 이광욱(잠수사) 등 12명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의 부모님, 친구, 제자와 스승 등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면서 취재팀은 고인들의 진솔했던 삶의 조각들을 맞춰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등산복은 척척 사도 자기 물건은 단돈 1만 원에 벌벌 떠는 딸, 뒷주머니에 공구를 꽂고 다니며 배 안의 고장 난 곳을 척척 고치던 여(女)선원, 홀어머니와 포장마차를 하며 익힌 솜씨로 틈틈이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던 청년, 체중 102kg에 검도 유단자지만 딸 같았던 ‘애교쟁이’ 아들, 유머가 무기였던 미남 총각 선생님, 집에선 무뚝뚝해도 학교에선 딸 자랑으로 말을 맺던 아버지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유족들은 “의롭게 죽고도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있을 텐데 왜 우리 아이만 의인이냐” “아직 시신도 못 찾은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주목받는 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12명에 포함되지 않은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살아있는 목격자가 없을 뿐 우리 아이도 살신성인했을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동아일보는 12명을 시작으로, 뜨겁고 의롭게 살다간 세월호 희생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유족이나 지인이 요청해 주시면 고인의 생전 행적을 경건한 자세로 되짚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준 세월호의 의인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김성모 기자}
▼ 아버지 돌아가신 뒤 대학 휴학하고 가장 역할 ▼학생들 먼저 탈출시킨 女승무원 박지영씨최성덕 할머니(75)는 지난달 16일 손녀의 사망 소식에 “오늘이 지 아비도 그렇게 된 날”이라며 통곡했다. 3년 전인 2011년 4월 16일, 박지영 승무원의 아버지 박유식 씨(당시 45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반년 뒤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자 박 승무원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는 가장이 됐다. 대학 1학년 때였다. 이듬해 학교를 휴학하고 PC방과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에게 사촌오빠 박현준 씨(30)가 여객선 승무원 일을 권했다. 박 씨는 “고민하던 지영이가 월급 200만 원에 숙소, 유니폼, 밥이 공짜로 나와 돈 쓸 일도 없다고 하니까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박 승무원은 스무 살이던 2012년 봄 세월호의 쌍둥이선 오하마나호를 타기 시작했다. 얼마 뒤 세월호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 선원이 드문 배 안에서 그는 ‘남자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오하마나호 고홍근 사무장은 “한 승객이 뱃멀미를 했는데 지영이가 밤을 꼬박 새우며 아침까지 옆에서 얼음찜질하고 혈압 재면서 간호했다”고 말했다. 박 승무원의 친구는 “지영이가 엄마 등산복 살 땐 몇십만 원씩 쓰는데 자기 옷은 1만 원짜리 티셔츠 살 때도 망설이다 안 샀다”고 했다. 다른 대학친구 A 씨는 “지영이가 지난해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돼 월급을 꼬박꼬박 부었다”고 말했다. 박 승무원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경기 시흥시의 42.9m²(13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하루는 인천항에 자주 가던 사촌오빠 박 씨가 정박해있는 세월호에 올라탔다. 사고 3주 전이었다. 사촌오빠가 “할 만하냐”고 물었을 때 박 승무원은 “힘들면 이 일 하겠어? 근데 배가 너무 흔들려서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무서워”라고 말했다. 남편 잃은 지 3년도 안 돼 큰딸을 빼앗긴 박 승무원 어머니의 카카오스토리에는 바다에 배가 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늘 안녕과 행운이 가득하길’이란 문구가 있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여학생들 다칠까봐 날아오는 공 얼굴로 막아 ▼학생들 구하러 식당 달려간 승무원 안현영씨안현영 씨는 열두 살 때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말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은 발을 굴렀다. 3시간이 지나 나타났다. 옷이 땀에 절어 있었다. 어머니 황정애 씨(55)가 “집에도 못 가고 걱정했잖아” 하고 호통을 치자 그가 말했다.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기에 집까지 들어다 드렸어요. 저희가 집에 가는 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안 씨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 안규희 씨(57)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들 뺨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안경 파편이 얼굴에 박혀 있었다. 남학생들이 장난을 친다며 여학생들 쪽으로 축구공을 찼는데 공을 막아서다 얼굴에 맞은 것이었다.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괜찮아’ 하더라고요.” 그는 중고교 동창들과 만든 친목 모임 ‘MUR(망우리)’에서 인맥의 중심이었다. 친구 김재홍 씨(28)는 “현영이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그는 자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똑같지”라고 답한 뒤 상대방 얘기를 물었다. 남 이야기를 자기 일처럼 듣고 반응해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그런 그가 냉정해질 때가 있었다. 안 씨는 대학 시절 호프집, 액세서리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들이 찾아가 ‘서비스 안주 좀 달라’ ‘액세서리 하나만 달라’고 하면 안 씨는 “안 된다. 내가 돈 줄 테니 그걸로 사라”고 잘랐다. 김 씨는 “호프집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를 잠깐만 쓰자고 했더니 ‘외부인은 못 들어가는 게 원칙’이라고 해 섭섭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사고 사흘 전, 그는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부탁을 했다. 스무 살 이후 내내 돈을 벌어 쓴 안 씨는 부모에게 작은 부탁도 거의 하지 않았다. “배드민턴 라켓 살 수 있는 곳 좀 알아봐 주세요. 수학여행 가는 애들이 14시간 배타고 가다 보면 심심해하거든요. 배에 몇 세트 있으면 애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드라이버 갖고 다니며 수리 척척 하던 女장부 ▼탈출기회 마다하고 남은 女승무원 정현선씨3년 전 불꽃놀이가 한창이던 오하마나호 갑판. 한 승객이 불꽃놀이를 구경한다며 무대 앞 바리케이드 위에 앉아 있다가 뒤로 자빠졌다. 깜짝 놀란 정현선 씨는 기절한 승객에게 응급처치를 한다며 뛰어가다 넘어졌다. 이 일로 발목 인대가 끊어져 3개월간 깁스를 했다. 승객은 기절한 게 아니라 만취해 누워있었다. 정 씨는 다음 날 절뚝거리며 나타나서는 ‘헤헤헤’ 웃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뭔 일만 생기면 일단 뛰고 보는 사람”으로 통했다. 정 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스무 살에 배를 탔다. 오하마나호 카페 직원이던 어머니가 병으로 일을 그만두자 대를 이어 배에 올랐다. 아버지는 정 씨가 초등학생일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 윤선 씨(35)는 “집 사정을 생각해 일을 일찍 시작했다. 당시 인천∼제주를 오가는 배가 하나뿐이었는데 그 배를 탄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했다. 배에서는 ‘정 장군’으로 불렸다. 옷 뒷주머니에 몽키 스패너나 드라이버를 꽂고 다녔다. 수리할 곳이 보이면 바로 공구를 꺼냈다. 담요는 15장씩 한 번에 날랐다. 동갑 연인인 아르바이트생 김기웅 씨가 술 상자를 옮기고 있으면 “한 번에 두세 상자씩 옮기라”고 말하며 아웅다웅했다. 동료들은 정 씨에게 ‘해군 부사관을 하면 잘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부사관 시험을 두 차례 쳤다 떨어졌다. 정 씨는 “배 타는 게 천직인가 봐요”라며 웃곤 했다. 지인들은 정 씨가 원피스와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천생 여자지만 배에 오르면 대장부가 된다고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침몰 당시 한 발짝만 옮기면 탈출할 수 있는 3층 출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연신 학생들을 내보냈다. 정 씨를 마지막으로 본 화물기사는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하던 도중 정 씨와 눈이 마주쳤다. 원망하는 눈빛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눈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임현석 기자▼ 친구들 집에 불러 직접 요리해주는 것 좋아해 ▼애인과 끝까지 남은 아르바이트생 김기웅씨학창 시절부터 김기웅 씨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손수 만든 요리를 먹이는 걸 좋아했다. 김 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한승호 씨(27)는 “기웅이에게 처음 들은 말이 ‘우리 집에 삼겹살 있으니까 놀러와’였다”고 했다.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 씨는 집에 혼자 있는 일이 많아 친구들을 집으로 자주 불렀다. 시간이 늦어지면 자신의 방에서 자고 가라고 한 뒤 자신은 늘 거실에서 잤다. 김 씨 방은 두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김 씨 상사였던 선상 불꽃놀이 이벤트 업체 김상석 대표(41)는 “기웅이가 포장마차 일을 하던 어머니를 줄곧 도와서 그런지 곱창볶음 같은 요리를 잘했다”고 했다. 김 씨는 배에서도 한번 요리를 하면 10인분 넘게 해서 나눠 먹었다. 집에 있는 묵은지, 곱창 같은 재료들을 늘 챙겨왔다. 김 씨는 불꽃놀이 담당이었지만 주방 일을 거들어 주방 아주머니와도 친했다. 김 씨는 ‘빌게이츠’로도 불렸다. 기계 지식에 해박해 컴퓨터를 잘 고쳤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컴퓨터 살 때는 김 씨를 먼저 찾았다. 컴퓨터 용도와 예산을 말해주면 김 씨는 최저가로 부품을 구해와 컴퓨터를 뚝딱 조립해냈다. 친구들은 올해 초 친목 모임에 김 씨를 불렀다. 모임 회비는 10만 원이었다. 김 씨는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회비가 부담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생활비를 벌려면 배를 타야 돼서 참석을 못 하겠다”며 사과했다. 친구들은 “돈 안 받을 테니 걱정 말라”며 가까스로 김 씨를 설득해 인천 을왕리에 갔다. 이날 저녁 김 씨는 동갑내기 연인 정현선 씨와 통화하며 “일을 거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돌아와서는 친구들에게 “올해는 꼭 취업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인천대 도시건설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던 김 씨는 올해 연인인 정 씨와 결혼할 예정이었다.임현석 기자 ihs@donga.com▼ 취객 달래고 변기 수리… 세월호 해결사 ▼학생 구하러 간 양대홍 사무장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의 어릴 적 꿈은 개그맨이었다. 스스로를 낮추고 익살을 부려 남을 웃게 하고 싶었다. 그 꿈을 배에서 이뤘다. “얼굴 둥그스름하고 재밌고 여기저기 나타나던 그 직원요?” 배를 탔던 승객들이 양 씨의 실종 소식을 듣고 한 말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양 씨는 웃음을 머금고 잰걸음으로 배 안을 돌아다녔다. 그가 농담을 던지면 승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비스 책임자로 고위 승무원이었지만 변기 수리, 전기배선 공사,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밤 12시에야 업무가 끝나지만 로비에서 잠든 승객들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술 취한 승객 말상대를 하느라 오전 3시까지 일했다. 오하마나호 라이브 가수로 일했던 형 석환 씨(48)는 “인천에서 제주까지 가는 14시간 동안 동생은 승객들과 정이 깊게 들곤 했다”고 했다. 2011년 한 여성 승객이 남편과 다툰 뒤 바다에 뛰어들겠다며 소동을 벌였다. 이런 일이 매년 4, 5차례 있었다. 양 씨는 자살 소동이 있는 날은 잠을 안 잤다. 고홍근 오하마나호 사무장은 “자기가 잠들면 승객이 또 나쁜 생각을 할까 봐 승객과 이야기하면서 밤을 새운다고 하더라”고 했다. 고 사무장은 “승객들 얘기를 밤새 들어줘 배 탄 지 4년 됐지만 대홍이를 못 잊는 승객이 많았다”고 했다. 3남 2녀 중 막내지만 줄곧 부모를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머리를 밀고 나타나 “내 머리카락을 무덤에 넣어 달라”며 울었다. 이후 청각장애가 있는 홀어머니를 모셨다. 그는 각각 고교생, 중학생인 두 아들이 있다. 아들들과 2 대 1로 씨름하는 걸 좋아했고 “형이라고 불러”라고 할 정도로 친했다. 형에게 늘 “학생들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던 그는 학생들을 구하다 끝내 나오지 못했다. 박지영 안현영 정현선 씨 모두 그와 함께 일하던 사무부 승무원이었다. 손효주 hjson@donga.com / 진도=여인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 위축으로 경기 회복세가 직격탄을 맞은 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 챙기기 행보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셀프 개혁’으로 정부 신뢰 회복할 수 있을까 그만큼 박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개조 방안’ 발표도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 내에서는 6·4지방선거 후보 등록일(15, 16일) 전후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개조 방안에는 관료사회 개혁과 국가안전처 신설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 퇴직 공무원의 유관기관 취업 금지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방안들이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민낯을 드러낸 관료사회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혁명적인 대안이냐는 점이다. 당장 안전행정부가 관료사회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셀프 개혁’ 논란만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대 정부가 관료들의 입김에 관료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것처럼 현 정부도 성과 없는 셀프 개혁의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행부는 현재 △폐쇄적인 인적구조 △보직관리 △평가 등 세 가지 방향에서 공직사회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내용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7일 “외부 인사에게 공직의 문을 넓히면서 정부 내에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관련 보직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직 운용 체계도 손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도 안행부가 구상하는 공직 개혁 방안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채용을 확대하고, 순환보직을 축소하는 등의 대책으로 관료사회의 배타성과 복지부동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다.○ 안행부 전면개혁으로 관료사회 변화 이끌어야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 3.0’은 경직된 관료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였지만 초기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료들에게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 개혁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만큼 당과 민간 전문가들이 강력한 행정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1일 “관료들에게 ‘셀프 개혁’을 주문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공무원이 아닌 외부 민간 전문가들이 개혁 방안을 만들어 정부에 들이밀어야 하고, 관료 전체가 아니라 소수 부처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서도 관료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부처의 인사와 조직 운용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안행부를 전면적으로 개혁해 관료사회 변화의 확실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역대 정부의 ‘개혁 실패’ 반면교사로 삼아야 역대 정부에서도 관료 중심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8월 행정안전부(현 안행부)는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5급 공채를 신설하되 2015년까지 5급 채용 인원의 절반을 시험 없이 서류와 면접을 통해 뽑겠다는 내용이었다. 채용 경로를 다양화해 행정고시 기수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행안부는 “1949년 고등고시 도입 이후 61년 만에 공직사회에 획기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발표 직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외교부 5급 특채 논란이 불거지면서 특채 확대가 현대판 음서제도(고려·조선시대 귀족 또는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관료로 채용했던 제도)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행정고시를 5급 공채로 이름만 바꿨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관료가 만든 개혁안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좌초한 것이다. 외환위기로 정부 개혁 요구가 강했던 김대중 정부 때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재정부)가 행정 개혁을 주도하면서 사실상 예산만 낭비한 꼴이 됐다. 대통령직속 기구였던 기획예산위는 1998년 46억 원을 들여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전 부처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하지만 부처들의 반발이 거셌고, 실무적으로 행정자치부(현 안행부) 인사들이 개편 작업을 주도하면서 오히려 정부조직 개편 이후 부처가 한 곳 늘어나는 기형적인 결과만 낳았다. 당시 학계에서는 행정 개혁 과정에 민간의 참여가 막혀 빚어진 결과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셀프 개혁’ 논란과 관련해 “안행부의 방안을 전적으로 수용해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하는 것”이라며 “셀프 개혁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여러 보완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이재명 egija@donga.com·신광영 기자}
192명이 희생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의 발단은 한 50대 남성의 이상행동이었다. 그가 객차 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붙이는 시늉을 하며 머뭇거릴 때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한 승객은 없었다. 대부분 당황해 라이터 불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열차와 불꽃의 결합이 어떤 참상을 초래할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1년 반 뒤인 2005년 1월 서울지하철 7호선 열차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땐 승객들의 반응이 달랐다. 한 남성이 라이터로 광고 전단에 불을 붙이자 승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옆 칸으로 대피했다. 승객들은 즉각 기관사에게 신고했고 다음 정거장에서 역무원들이 투입돼 불을 껐다. 그해 4월 지하철 4호선 전동차에선 라이터를 자꾸 켜대는 취객을 승객들이 제압해 경찰에 넘기기도 했다. 열차 안에서 라이터 켜는 행위를 대하는 태도가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바뀐 것이다.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 승객들이 방화 기도에 소극적으로 반응했던 건 위험에 둔감해서라기보다 위험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안전 무지증’ 우리는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위험을 알고도 무시했다며 ‘안전 불감증’을 탓한다. 하지만 안전 심리 전문가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안전 무지증(無知症)’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지가 불안감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진화론적으로 위험에 잘 대응해온 개체만 살아남기 때문에 인간 역시 위험을 망각하기보다 회피하려는 본능이 강하다”며 “다만 산업화로 눈에 띄지 않는 위험이 급격히 늘었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경고 시스템이 취약해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상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태풍 매미. 2003년 9월 제주지역을 강타했을 때 최대순간 풍속은 초당 60m에 달했다. 전국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131명 가운데 바람이 가장 셌던 제주는 사망자가 2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풍속이 제주의 절반 정도였던 영남지역에서 104명이 숨졌다. 고대익 제주시 안전총괄과장은 “제주는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 간판이 날아다니고 가로수가 갑자기 쓰러지는 게 다반사여서 태풍 예보가 뜨면 시민들이 외출을 삼가고 대비를 한다”며 “지방정부도 태풍의 공포를 알기 때문에 건축 허가나 시설물 관리를 엄격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태풍을 자주 겪지 않았던 부산은 항구에 대형 크레인을 방치해놓았다가 전복돼 큰 피해를 봤다. 경남 마산 역시 별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해안 저지대가 침수돼 18명이 숨졌다. 올해 2월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사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때 건물 지붕에 50cm의 눈이 쌓였는데도 치우지 않고 행사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조트 측이 당초 하중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건물을 짓고, 학교 측이 행사를 강행했던 것은 폭설의 위험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천장을 짓누르던 눈의 무게는 약 192t. 5t 트럭 38대를 지붕에 세워둔 셈이었다. 곽호완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떤 위험이 올지 뻔히 알고도 방심한다기보다 뭐가 어떻게 위험한지 잘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데 다 안다고 착각해 필요한 만큼의 두려움을 빨리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험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해 화를 자초하는 건 외국도 다르지 않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당시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는 항공기가 날아와 부딪힌 뒤 건물이 무너지기까지 102분의 시간이 있었다. 16분 뒤 또 다른 항공기가 남쪽 타워를 들이받았을 때도 바로 무너지지 않고 57분 뒤에야 갑자기 붕괴가 시작됐다. 비행기 충돌 때는 무사했지만 이 시간 동안 두 건물에서 대피하지 못해 사망한 사람이 전체 희생자 2749명 가운데 15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이들 상당수가 ‘건물은 안전하다’ ‘각 층 상황에 따라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안에 머물러 있다 순식간에 최후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건물 내 안전 담당자들이 붕괴 가능성을 직시하지 못했던 원인은 뭘까. 8년 전인 1993년에도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테러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폭탄을 실은 승합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폭발해 6명이 사망했지만 100층이 넘는 건물은 거의 손상이 없었다. 이때 경험이 8년 뒤 테러 공격을 당한 직후 ‘폭탄이 터져도 건물은 안전하다’는 오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반복 교육과 훈련만이 안전 보장 사람은 대개 경험해보지 않은 위험에 대해선 과소평가하고 설사 위험이 오더라도 자기는 피해 갈 수 있다고 믿는 ‘통제의 환상’을 갖고 있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고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선 구체적인 지식이 없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위험의 전조가 보였을 때 정확한 상황판단 없이 평소 하던 대로 대응하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사례가 많다. 김정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논문 ‘오류의 심리과정’(2005년)을 보면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 200건 가운데 매뉴얼에 명시된 필수 행위를 관행적으로 빼먹는 잘못이 원인이 된 게 42%에 달했다. 박창호 전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안전 예방대책은 일반인들이 일상행위에 내재된 위험을 잘 모른다는 전제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항공기 조종사나 승무원이 특수훈련을 받듯이 시민들도 위험의 실체를 몸으로 익힐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형식적 민방위훈련… 84% “도움 안돼” ▼법으로 규정된 학교 안전수업… 초중고 10곳중 6곳 아예 안해화마(火魔)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그 길이 더 위험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때 불타는 열차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승객들이 향한 곳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이었다. 연기는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당시 계단에는 유독가스가 밀집돼 있었다. 좁은 계단에 몰린 수백 명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서로의 다급한 발길을 붙잡았다. 이런 경우 지하철 선로로 대피하다 환기통로를 통해 빠져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희생자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위험이 생겼을 때 막연한 상식에 의존해 반사적으로 하는 행동은 도리어 화를 키울 수 있다. 안전교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만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일반인뿐 아니라 안전담당자 교육마저 부실한 실정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서울시 등 10개 지방자치단체 재해담당 공무원의 방재교육 이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의무교육 이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47.4%, 가장 낮은 곳은 11.1%에 불과했다. 민방위훈련도 유명무실하다. 한남대 행정정책대학원 ‘민방위 교육훈련의 개선방안’ 논문을 보면 훈련생 설문 결과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답변이 83.9%에 달했다. 김현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험을 통해 몸에 새겨져야만 평소에도 위험 요인을 잘 의식할 수 있고 사고 때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안전을 생활화하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학교에서의 안전교육은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법에 규정된 안전 보건 수업을 실시한 초중고교는 전체의 36.4%(2013년)에 불과했다. 교육이 이뤄지더라도 교사들이 비전문가여서 매뉴얼만 읽어주는 수준에 그치는 게 다반사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안전 관련 내용 비중도 36쪽에서 8쪽으로 크게 줄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시민 채성진 씨는 2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개찰구에 들어서다 열차의 위치가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전동차는 앞차와 뒤차가 2, 3개 역 정도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데 전광판 화면 속에는 열차 모양 아이콘 2개가 거의 나란히 붙어 있었다. 승강장으로 내린 채 씨는 놀라온 광경을 목격했다. 전동차(2260호)가 돌진하듯 역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들어왔어요. 여기가 역인데….” 당시 선로에는 이미 다른 전동차(2258호)가 들어와 있었고 이제 막 왕십리역을 향해 출발한 참이었다. 이 열차 맨 뒤칸에 타고 있던 박모 씨(52)는 문 앞에 서서 휴대전화로 윷놀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성수역까지 네 정거장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박 씨가 탄 칸의 좌석은 빈자리가 없었고 그 앞에 사람들이 빽빽이 서 있었다. 전동차는 평소보다 역에 오래 머물며 전동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를 여러 차례 여닫았다. 일부 승객은 “왜 출발을 안 하느냐”고 항의하듯 소리쳤다. 승강장에 들어서던 전동차(2260호) 맨 앞칸에 탄 대학생 배모 씨(20)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왕십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열차가 속력을 줄이지 않는 것이었다. 배 씨가 차창 너머로 바깥 상황을 살피려던 순간 덜컹하는 진동과 함께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쾅!’ 배 씨는 앞쪽으로 구르면서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히는 충격을 받았다. 서 있던 승객들도 대부분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튕겨 나가며 서로 부딪히고 깔렸다. 잡고 있던 안전 손잡이를 계속 잡고 있던 한 중년 여성은 허리가 확 휘었다. ‘악’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열차 칸 앞쪽은 앞으로 휩쓸려온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며 생긴 상처 때문에 바닥 군데군데에 핏자국이 뱄다. 몇 초 뒤 열차 내 전등이 모두 꺼졌다. 열차 앞쪽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승객이 “이러다 폭발하는 거 아니야” 하고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승강장에 서 있었던 채 씨는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뒤차가 앞차의 꽁무니를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뒤차는 3량이 아예 선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전동차 간 이음매 부분은 구겨지고 부서져 있었다. 뒤차 앞쪽 칸 유리창도 산산이 깨졌다. 앞차 맨 뒤칸에 서 있었던 박 씨는 추돌 충격으로 의자 옆 난간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다. 순간 얼굴이 화끈하며 정신을 잃었다. 앞차도 충돌 직후 전기가 나가 객실이 어두워졌다. 일부 승객이 휴대전화 손전등 기능을 작동시켜 안을 밝히자 몇 명이 비상구 옆에 있는 수동 개폐 장치를 통해 문을 열었다. 박 씨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20대로 보이는 남성 3명이 자신을 부축해 열차 밖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박 씨의 점퍼 가슴팍은 코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 박 씨는 정신이 혼미한 채로 지하철 계단 쪽에 걸터앉았다. 승객들은 다리를 절뚝이며 어두운 선로를 통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역무원이나 제복을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선로 주변에선 “엄마!” “○○야!” 하며 서로를 다급히 찾는 외침이 간간이 들렸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을까. 뒤차에서는 “밖으로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어둠 속에서 “대기하자”는 의견과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한 남성이 “세월호 때도 시킨 대로 가만히 있다가 다 죽었어”라고 소리치자 ‘빨리 문을 열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승객이 전동차 문을 열었고 승객들은 밖으로 빠져나가 선로를 따라 상왕십리역 승강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 여성들은 두려움에 질린 듯 흐느꼈다. 승객들은 곧 “침착하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남자 승객 서너 명은 차 비상문을 열려고 손가락을 문틈에 넣고 끙끙댔다. 한 승객이 벽 쪽을 더듬더니 비상레버를 찾아 당겼다. 문이 열렸다.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머리가 희끗한 노인을 부축했다. 승강장에서 사고를 처음부터 목격한 채 씨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열차 안에서 힘들게 몸을 이끌고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머리가 새하얀 지팡이 든 할머니, 만삭의 임신부, 교복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잠시 후 뒤차 맨 앞쪽 문이 열렸다. 기관사가 어깨와 팔 부위에 피를 흘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기관사실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부상자들은 밖에 대기하던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승강장에는 “기관 고장으로 열차 운행이 불가능하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멘트가 나왔다. 다행히 다친 곳이 없는 승객들은 지상으로 올라가자마자 황급히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진 지 17일째인 2일 전동차 승객 1000여 명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신광영 neo@donga.com·강은지·박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