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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은둔형 청소년’도 위기 청소년에 포함돼 기초생계비 월 65만 원, 병원비 연 200만 원 등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여성가족부는 11일 이같은 내용의 청소년복지 지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비행·일탈 예방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 보호자의 실질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을 ‘위기 청소년’으로 규정해 지원했다. 앞으로는 은둔형 청소년도 위기 청소년에 포함시켜 돕겠다는 것이다. 은둔형 청소년이란 뚜렷한 장애는 없으나 사회적, 심리적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집에서 나가지 않고 학업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는 청소년을 뜻한다. 위기청소년 특별지원은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움 겪는 만 9~24세 위기청소년에게 1년 간(필요 시 1년 연장 가능) 생활비와 치료비 등을 현금이나 물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대상자의 필요에 따라 최대 월 65만 원의 기초생활비, 연 200만 원의 건강, 치료비, 월 30만 원의 학비, 월 36만 원의 진로상담 및 취업 지원 등을 제공한다. 이번 개정안에는 대상자 선정 기준을 중위소득의 65%에서 100%로 완화해 지원 대상자를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은둔형 외톨이 청년(19~39세)은 전체 청년의 3.1%에 해당하는 33만8000명으로 추정됐다. 은둔 요인으로는 학교폭력 등 대인관계에서의 상처,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좌절감, 가정 내 갈등 및 돌봄 부재 등이 꼽힌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국내에서 6번째 ‘엠폭스(MPOX·원숭이두창)’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국내 유행 및 치명률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와 방역당국의 조언을 토대로 엠폭스 관련 궁금증을 풀어 봤다. ―엠폭스는 어떤 감염병인가. “엠폭스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인수(사람과 동물) 공통 감염병이다.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인체 감염 사례가 보고된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으나, 지난해 5월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엠폭스에 감염되면 평균 1, 2주 잠복기를 지나 고열, 두통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증상 발현 1∼3일 뒤 피부 발진(사진)이 시작된다. 피부 발진은 수두와 비슷하다. 이런 증상은 2∼4주 뒤 자연스레 호전되지만, 일부 중증 감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손바닥 발바닥 위주로 발진이 발생하고 림프샘 비대가 나타난다.” ―어떤 경로로 감염되나. “주로 접촉을 통해 이뤄진다. 감염된 동물 및 사람의 혈액, 피부, 체액, 점막과 직접 접촉하거나 감염자의 체액 및 혈액이 묻은 침구류나 의류에 간접 접촉해 전파된다. 비말이나 에어로졸을 통한 전파가 일어나기도 한다.” ―치명률이 8%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는데…. “세계적으로 엠폭스의 치명률이 3∼8% 수준이지만, 주로 아프리카 쪽 치명률 비중이 높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8만여 명이 감염됐는데 그중 100명 정도 사망해 치명률이 0.1% 이내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우려할 만한 치명률이 아니다. 비풍토 지역인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사망자가 없고 전체적인 의료 수준이 높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백신과 예방, 치료 방법은…. “평소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정도가 예방법으로 꼽힌다. 한국은 전 국민의 70%가 맞을 수 있는 2세대 두창(천연두) 백신을 비축했다. 엠폭스에 대해 70∼80% 정도 예방 효과를 갖지만 접종 방식이 까다롭다. 3세대 백신 ‘진네오스’의 경우는 피하주사로 간단히 접종할 수 있고 효과가 입증됐으나 국내에서는 현재 개발 단계다. 작년에 5000명분을 수입해 엠폭스 관련 의료진에게 먼저 접종 중이다. 치료제는 ‘테코비리마트(Tecovirimat)’라는 치료제가 작년에 500명분 수입됐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올해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새로 배치되는 인원이 총 1106명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인원보다 184명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과, 치과, 한의과 중 의과 공보의(450명)는 최근 4년 새 39% 줄었다. 의대 정원 내 여학생 증가와 17년째 이어진 정원 동결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보의에게 의존하는 지방의료기관에는 진료 차질이 예상된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신규 의과 공보의는 총 450명으로 2019년(742명)보다 292명 줄었다. 치과(249명), 한의과(407명)를 합한 총 공보의는 1106명이다. 올해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공보의 인원(1290명)보다 184명 적다. 공보의의 군 복무 기간은 현재 36개월이다. 전국 의대 신입생 중 여학생 비율은 2011년 25.7%에서 2021년 35.1%까지 늘었다. 복지부는 공보의 인력을 농어촌 의료 취약지역 위주로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도시 지역 보건소에 배치하는 공보의를 ‘2인 이내’에서 ‘1인 이내’로 줄이고, 수술실을 운영하는 보건의료원에 2명씩 추가 배치하던 의과 공보의를 1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한편 의사 및 간호조무사 등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이 13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8일 밝혔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지위와 업무를 법으로 보호 및 규정하는 내용을, 의료법 개정안은 살인이나 성범죄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 면허를 최대 5년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국내에서 처음으로 엠폭스(MPOX·원숭이두창) 지역사회 감염자가 발생했다. 최근 3개월 내 해외여행 이력이 없는 첫 확진자다. 방역 당국은 ‘숨은 전파자’가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추가 감염 여부를 조사 중이다. 9일 질병관리청은 한국인 A 씨가 7일 유전자 검사에서 국내 6번째 엠폭스 확진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A 씨는 앞선 확진자 5명과 달리 해외에 다녀온 적이 없고, 해외 유입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었다. 질병청 관계자는 “A 씨는 해외 유입과 무관하게 지역사회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A 씨에게 엠폭스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을 찾고 있다. 그중에는 지난달 엠폭스 의심 증상을 보인 B 씨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A 씨와 접촉한 이들을 상대로 엠폭스 의심 증상 유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엠폭스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발열·발진성 질환이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유행하다가 지난해 5월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로 퍼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같은 해 7월 엠폭스에 대해 최고 경계 수준인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엠폭스 ‘숨은 전파자’ 지역사회 활보 가능성… 감염경로 파악 총력국내 첫 엠폭스 지역감염‘숨은 전파’ 의심인물 감염파악 난항첫 지역감염 접촉자 면밀 모니터링백신 5000명-치료제 500명분 확보“지역감염 본격화땐 부족 우려” 방역 당국은 첫 엠폭스(MPOX·원숭이두창) 지역사회 감염자인 A 씨의 감염 경로와 접촉자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숨은 전파자’가 여전히 지역사회를 활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전파를 초기에 차단하지 못하면, 자칫 지난달부터 유행이 본격화한 일본, 대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심 증상 있었지만… 다수 접촉질병청에 따르면 A 씨는 지난달 말부터 피부 발진 등 엠폭스 의심 증상을 보였다. 상태가 점차 심해지자 이달 3일 국내 한 의료기관을 찾았다. 당시 의사는 엠폭스가 아닌 다른 감염병을 먼저 의심하고 검사했다. 전부 음성으로 확인되자 6일 관할 보건소에 엠폭스 의심 신고를 했고, 다음 날(7일) 유전자 검사 결과에서 양성으로 확인됐다. 질병청은 A 씨가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고 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혔다. A 씨는 피부 발진이 나타난 이후에도 며칠간 지역사회에서 여러 명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가운데 엠폭스 의심 증상을 나타낸 사람은 9일 현재까지 아직 없다고 한다. 다만 당국은 잠복기가 통상 7∼10일, 최장 21일인 점을 감안해 접촉자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A 씨의 감염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역학조사 결과, 지난달 13일 발생한 국내 5번째 엠폭스 확진자를 포함한 기존 확진자들과도 접점이 없었다. 다만 방역 당국은 A 씨가 의심 증상을 보이기 전에 접촉했던 B 씨를 주목하고 있다. B 씨는 지난달 엠폭스 의심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B 씨는 당시 방역망에 포착되지 않았고 현재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엠폭스 검사는 주로 피부 병변에서 조직을 채취해 바이러스 유전자를 검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피부 증상이 사라진 후에는 감염 이력을 밝혀내기 어렵다.● 백신-치료제 부족 우려… “감염 경로 밝혀야” A 씨는 국내 엠폭스 확진자 가운데 해외 유입 관련성이 없는 첫 사례다. 기존 확진자 5명 가운데 3명은 독일, 아랍에미리트 등을 방문한 이력이 있었다. 나머지 2명 중 1명은 의료진인데 엠폭스 확진자를 치료하던 중 감염됐다. 다른 1명은 해외여행객과 밀접 접촉했다. 질병청은 이미 확보된 백신과 치료제에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방역 당국은 엠폭스에도 일부 효과가 있는 3세대 두창 백신을 5000명분, 엠폭스 치료제를 약 500명분 확보한 상태다. 다만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하면 이 같은 대비 태세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8월 하루 평균 1000명이 넘었던 전 세계 확진자는 지난달 들어 30명 이하로 줄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와 인접한 일본과 대만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청은 지난해 6월 22일 국내 첫 환자 발생 당시 위기경보 수준을 총 4단계 중 3번째로 높은 ‘주의’로 상향했다가 국내외 상황이 안정되자 올 2월 20일 ‘관심’으로 낮춘 상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어디서 어떻게 감염됐는지를 모르는 환자가 발생한 건 중대한 일”이라며 “꼬리를 무는 감염을 막으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감염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엠폭스는 ‘원숭이두창’이라는 옛 병명이 차별과 낙인을 조장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바꾼 이름이다. 질병청은 지난해 12월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병명을 엠폭스로 바꿔 부르되 6개월간 엠폭스와 원숭이두창을 함께 사용하는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착하게 생긴 아줌마들이 ‘기억력과 집중력을 올려주는 음료’라고 권했다고 했어요.” 3일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서 고교생 6명에게 마약 성분이 담긴 음료를 속여 마시게 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2인 1조로 움직였던 일당 4명을 직접 만났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맘카페 등에는 직접 음료를 권유받았거나 권유받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수십 건 올라왔다. 이를 두고 현재까지 밝혀진 고등학생 6명 외에 추가 피해자가 적잖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한 학부모는 5일 자신의 블로그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대치동 학원가 횡단보도 앞에서 시음 행사를 했다더라. 같은 반 친구가 음료를 마셨는데, 다행히 그 친구는 맛이 없어서 한 모금만 마시고 버렸다고 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도 “길거리 시음 행사에서 나눠 준 음료를 마셨는데, 알고 보니 마약 음료였다”, “음료를 마신 한 명은 먹자마자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밤에 잠을 못 잤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6일 강남구 대치동 일대에서 만난 박모 양(14)도 “(범행 당일) 학원에서 나오다가 길에서 20대 여성들이 ‘이거 먹으면 기억력 좋아진다’고 음료를 권하자 한 언니가 그걸 마시는 걸 봤다”고 했다. 경찰에는 전날까지 접수된 고등학생 6명 외에 추가 피해 사례가 접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마약 투약을 신고하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고, 입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고를 꺼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강남구청역 인근 한 학원 원장은 “만에 하나 마약 복용 사실이 기록에 남을 경우 대학 입시에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할 것”이라고 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입시에 민감한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를 악용한 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치동 거리에서 만난 김모 군(18)은 “주변에 마약 성분 음료를 마신 사람이 있는데 민망하다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걸로 안다”고 밝혔다.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오모 군(18)은 “부모님 친구가 ‘당신 아들 마약 먹었으니 돈 내놔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는데 흔한 보이스피싱으로 여겼다가 뒤늦게 아들이 마약 음료 마신 걸 알았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도 안 했고 아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켰다고 들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약을 복용하게 된 경우 범죄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피해가 의심될 경우 즉각 신고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25세까지 뇌 성장기… 마약, 청소년에 더 치명적”“성인보다 대뇌피질손상 더 심해한번 노출로 중독가능성은 낮아”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에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로폰이나 엑스터시와 같은 마약에 노출될 경우 아직 발달이 진행 중인 청소년이 성인에 비해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마약 치료 전문병원인 인천 참사랑병원의 천영훈 원장은 “25세까지는 뇌가 발달하며 신경회로가 만들어지는 시기”라며 “청소년기에 마약에 노출되면 30, 40대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마약에 중독되면 기억력, 판단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엽, 측두엽의 대뇌피질이 얇아진다. 청소년은 마약 중독 시 대뇌피질 등의 손상이 성인보다 훨씬 더 심하다. 마약으로 뇌가 손상되면 제대로 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해 충동 조절 기능이 떨어질 수 있고,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커진다. 천 원장은 “건물을 지을 때 마지막에 외장재를 덮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바람이 치면 구조물이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들이 한 번 마약 성분에 노출됐다고 해서 바로 중독 증세를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필로폰은 가장 중독성이 강한 마약에 속하지만 최소 2, 3회 이상 사용했을 때 중독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에 쓰인 음료 병에는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ADHD’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고, 유명 제약회사 상호도 표기돼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6일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 중 집중력 강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개선 효과를 인정받은 제품은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식약처는 대한약사회 등 7개 기관과 협력해 이달부터 11월까지 온라인상에서의 의약품·마약류 불법 판매 광고 행위에 대한 집중 점검을 벌인다고 이날 밝혔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우리나라의 영유아 보육 정책은 선진국 수준입니다. 문제는 학교에 입학한 이후입니다. 교육 시스템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그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다 보니 부모와 아이 모두 불행합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사진)는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0.78명)의 이유로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그에서 비롯된 교육 경쟁을 꼽았다. 2017∼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을 지낸 김 교수는 경제학자로서는 드물게 인구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 정책 변화 등의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해 온 탓에 우리의 가치관이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물질적, 생존적인 데 머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이 고착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는데, 그 속도에 비해 가치관의 변화는 느리다”며 “계층 이동이나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가치관은 아직 그대로인데 파이가 줄어들었다.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자녀를 키울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인 약 4000명을 대상으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물었더니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라고 대답했다는 미 프린스턴대 연구를 언급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경쟁 속에서 ‘우리 아이만큼은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완벽한 부모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것 같다”며 “완벽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완벽한 아이를 원한다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마치 ‘군비 경쟁’과 같다고 했다. 한 국가가 군비를 늘리면 인접국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듯, 한 개인이 사교육을 받으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학원을 보내게 되며 이로 인해 부모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노후 대비를 할 수 없고, ‘놀 권리’를 빼앗긴 자녀는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출산·육아 부담을 덜고 아이가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결국 기존 일터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청년세대, 특히 여성들이 출산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육아휴직 유연근무 등을 쓰는 게 당연한 사회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국민연금을 월 200만 원 이상 받는 수급자가 지난해 5410명으로 1년 새 4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1일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 공보통계’에 따르면 은퇴 후 국민연금을 매달 200만 원 이상 받는 수급자가 2021년 1355명에서 2022년 12월 기준 5410명으로 늘어났다. 국민연금을 월 200만 원 이상 받는 수급자는 2018년 1월 처음 등장했고 그해 10명이었다. 이듬해인 2019년 98명, 2020년 437명, 2021년 1355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는 4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35년이 지나면서 장기 가입자가 늘어났고, 수령액이 물가상승률에 맞춰 매년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월 200만 원 이상 수급자의 98.5%(5332명)가 남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60대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하지 않았으며 경력단절이 많았던 탓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노령연금 수급자는 531만2359명으로, 처음으로 수령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월 평균 수령액은 58만6112원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연금액이 생애평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평균 31.2%에 머물고 있다. 실제 국민연금 수령액이 20만∼40만 원인 사람이 약 40%(208만 명)를 차지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고액 연금수급자가 늘어날수록 기금 고갈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최종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운영될 경우 2055년 기금이 바닥나고, 2060년에는 월소득의 34%(개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를 보험료로 내야 할 것으로 예측됐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시간이 흘러 국민연금 고액 수급자와 전체 수급자 규모가 늘어나 기금 고갈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국민연금제도의 구조적 개혁 없이는 기금 고갈 및 미래 세대의 부담 증가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영유아에게 기관지염이나 폐렴을 일으키기 쉬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증이 7주 새 4배나 증가했다. 이달 초에는 서울 강남의 고급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5명이 RSV에 집단 감염돼 해당 산후조리원이 임시 휴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RSV는 전파력이 높은 탓에 영유아가 모여 생활하는 산후조리원이나 보육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 쉬워 영유아를 둔 부모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 2, 3월에도 환자 느는 이상 유행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1월 4주 차(22∼28일) 64명이었던 RSV 감염증 환자는 3월 2주 차(12∼18일) 265명까지 4배가 증가했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 RSV 감염증 발생은 10월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1월경 유행 정점에 도달하고 그 이후 줄어든다. 그러나 이번 RSV 감염증 유행의 경우 예년보다 일찍인 지난해 10∼11월 사이에 찾아왔다가 사그라지더니 올해 2월부터 다시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평소 유행 양상대로라면 2, 3월이면 RSV 감염증 환자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2월부터 되레 급증하는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3월 2주 차 RSV 감염증 환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4배나 많았다. RSV 감염증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의 접촉이나 침방울을 통해 쉽게 전파된다. 건강한 성인이 RSV에 감염될 시 콧물, 인후통 등의 가벼운 감기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하지만 영유아, 면역 저하자 및 고령자가 감염될 시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 등 기도 감염으로 쉽게 이어진다. RSV 감염은 만 2세가 되기 전에 한 번씩 걸릴 만큼 흔하다. 문제는 자칫하다 기관지염과 폐렴으로 발전해 호흡곤란이나 무호흡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영유아는 숨을 쉬기 어려워져 산소 수치가 떨어지거나 탈수가 올 수 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 ● 영유아 폐렴 등 중증으로 진행RSV에 감염돼 폐렴이 진행된 후 입원한 영유아의 사망률은 2%에 달한다. 이처럼 유아 사망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데도 아직 상용 가능한 백신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가급적 RSV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RSV 감염을 예방하려면 평소 손으로 눈·코·입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손을 자주 씻겨 주는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RSV 감염 증상이 나타난다면 습도를 높여주고 탈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건강한 이들이 RSV에 걸린다면 대부분 쉽게 낫지만, 2세 미만 영유아들이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 감염 시 기관지염이나 폐렴 등 중증으로 이어져 의식을 잃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며 “발열이나 기침, 인후통같이 증상만으로는 인플루엔자 등과 구별이 어렵다. 3일 이상 열이 나거나 호흡 시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즉각 병원을 방문해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산후조리원이나 신생아실에서 신생아 접촉 전후 손 씻기, 호흡기 증상이 있는 직원이나 방문객 출입 제한 등 예방 및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에서 집단 감염 예방 차원으로 권장하는 ‘모자병동’(산모와 아기가 함께 병실 이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RSV 감염 예방법이 될 수 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 의무가 5월부터 7일에서 5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7월부터는 격리 의무가 아예 사라지고 마스크 착용 의무도 전면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최근 전 세계 코로나19 유행 감소세가 확연하고 국내 방역 상황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위기단계 조정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은 총 3단계다. 1단계에서는 현재 ‘심각’ 단계인 코로나19 위기단계가 ‘경계’로 하향된다. 정부는 4월 말로 예정된 세계보건기구(WHO) 회의에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해제 여부가 결정된 뒤 5월 초쯤 위기평가회의를 열고 단계 하향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위기단계가 하향되면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는 5일로 줄어든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현재 우세종 변이인 BN.1의 전파 위험도 감소와 한국, 일본, 뉴질랜드 등을 제외한 다수의 해외 국가가 확진자 5일 의무 또는 권고로 격리 제도를 운영 중인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단, 마스크는 지금처럼 병원 등 의료기관, 일반 약국, 감염취약시설에서 계속 써야 한다. 이때부터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임시선별검사소 18곳의 운영이 중단된다. 현재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발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도 주간 단위로 발표한다. 2단계에서는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이 2급에서 인플루엔자(독감) 같은 4급으로 바뀐다. 방역당국은 2단계 시행 시점을 7월 정도로 보고 있다. 이때부터는 격리 의무가 ‘권고’로 바뀐다. 다만 지 청장은 “격리 의무의 권고 전환은 법적인 의무가 사라져 위반했을 때 벌칙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코로나19 확진자가) 비감염자처럼 자유롭게 활동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 역시 전면 해제돼 병원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노마스크’가 가능해진다. 보건소와 의료기관이 운영하는 선별진료소는 모두 운영이 종료된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집계도 중단된다. 그 대신 일반적인 호흡기감염병처럼 표본 감시 의료기관을 통해 집계된 코로나19 검출률 등을 주간 단위로 발표하기로 했다. 3단계는 한마디로 ‘완전한 엔데믹(풍토병화)’이다. 방역당국은 이르면 내년부터 3단계가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3단계에서는 현재 무상 공급되는 코로나19 치료제에 건강보험 체계가 적용되면서 일부 본인부담금이 발생한다. 금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역시 지금은 누구나 무료로 받지만 이때부터 ‘건강한 성인’은 돈을 내고 맞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도 독감 백신처럼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 백신은 생후 6개월∼13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고령자, 임신부만 무료 접종 대상이고 나머지는 유료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에 미치지 못하고, 평균(1.59명)의 절반도 안 된다. 한국의 청년들은 아이 낳기를 단념한 것일까. “당신은 아이를 몇 명 낳고 싶습니까?” 동아일보는 20∼22일 만 20∼39세 청년 6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조사에서 이를 물었다. 주요 저출산 대책(21개)을 상세히 설명한 후 청년들이 평가하도록 했고, 보건복지부 2030 청년자문단 6명을 대상으로 집단심층면접(FGI)도 실시했다. 일반 설문조사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진솔한 생각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조사에서 청년들이 낳고 싶다고 밝힌 자녀 수는 평균 1.22명이었다. 지난해 출산율(0.78명)에 비하면 0.44명이나 높은 수치다. 2022년 출생아 수 24만9000명에 대입하면, 지난해 청년들이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한’ 아이가 약 14만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간극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진행한 FGI에서 청년들은 “아이를 원한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이유로 출산을 단념하는 청년이 없도록 저출산 정책이 재설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산, 고령화는 이미 ‘뉴 노멀(new normal)’이 돼 적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2030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것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2006년부터 16년간 정부가 저출산 정책에 280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A 씨(33)는 “주 69시간 근로가 거론되는 것처럼 맞벌이 부부들은 본인들이 겪은 우리 사회의 힘들고 치열한 문화를 자녀를 낳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응답자 B 씨(29)는 “(국가가) 아이를 ‘키워 주겠다’는 정책이 아닌, 부모가 일을 하면서도 ‘내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세상이 돼야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부모 대신 양육을 책임지는 데 초점을 맞춰 왔는데, 2030 청년들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청년들, ‘신혼부부 주거 지원’ 만족도 낮아… “소득 상한 높여야” “합산소득 年7000만원 이하만 혜택… 맞벌이 부부 많은 현실 반영 못해”“아이 키우기 좋은 회사엔 세금 감면, 육아휴직 안쓰는 기업엔 페널티를” 동아일보는 국내 저출산 정책을 6개 분야(의료비, 현금, 보육, 주거, 일·가정 양립, 기타 지원) 21개 주요 정책으로 추렸다. 2030 청년 60명에게 각 정책의 핵심 내용을 설명한 후 “본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지”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6개 정책 분야 중 저출산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도 물었다.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복지부 2030 청년자문단에 집단심층면접(FGI)을 실시했다. ● “일·가정 양립이 가장 중요”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7%가 출산휴가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과 같은 ‘일·가정 양립 지원’을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로 꼽았다. 반면 어린이집 무상 보육과 아이 돌봄 서비스 등 ‘보육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청년은 전체의 8.3%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아이를 ‘키워주는’ 정책보다 ‘직접 키울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일·가정 양립 정책이 가장 중요하지만 실제 청년이 느끼는 만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정책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청년들의 만족도는 각각 10점 만점에 6.93점으로, 21개 정책에 대한 평균 만족도(6.66점)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다. 출산휴가는 산모에게 90일, 배우자에게 10일까지 제공된다. 육아휴직은 부모가 각각 1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회사원 류태림 씨(30)는 “육아휴직은 ‘일하면서 아이를 기르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을 하든지, 아이를 키우든지 하라는 것인데 부모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아이 2명을 키우는 김태진 씨(36)는 “정부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회사’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인증을 받은 회사에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자”고 제안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은 눈치 안 보고 휴가 등을 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절실한 만큼 직원이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업에 페널티를 부과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아동 입원비 할인이 가장 큰 도움” 21개 세부 정책 중 청년들로부터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정책은 아동 입원비 경감 정책(7.80점)이었다. 정부는 만 15세 이하 소아·청소년에 대해선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75%가량 할인해주고 있으며, 특히 생후 28일 이내 신생아에 대해선 입원비가 전액 무료다. 설문에 응답한 A 씨(33)는 “아이를 원하는 부모에 대한 난임 치료비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금성 지원 정책에 대한 호응도 높았다. 0세 아이 1명당 월 70만 원(1세는 월 35만 원)을 지급하는 부모급여와 신생아 1명당 200만 원을 일시에 지급하는 첫만남이용권이 각각 3위, 4위를 기록했다. 현금 지원 액수를 높여 달라는 의견이 많았던 가운데 “유자녀 가구에 소득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방식은 어떠냐”는 제안도 있었다. 현재 연말정산에서 자녀 1명당 15만 원(셋째 아이부터는 30만 원)의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데, 공제 금액을 늘리자는 주장이다.● “주거 대책은 청년 현실 반영 안 돼” 반면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자금 저금리 대출 등 주거 지원 대책은 만족도가 낮았다. 특히 ‘부부 합산 소득 연 6000만∼7000만 원 이하’라는 조건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주당 40시간 근로자의 법정 최저 임금이 연봉으로 환산하면 2400만 원이 넘는 만큼, 맞벌이 부부 중에선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다자녀 가구 주택 특별공급 기준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최선아 씨(27)는 “다자녀 가구 지원은 대부분 자녀가 3명 이상일 때 해당된다”며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지금은 자녀가 2명만 돼도 ‘다자녀’ 지원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6개 정책 분야 중 덜 중요한 분야로는 전체 응답자의 75%가 ‘공과금, 편의시설 할인 등 기타 혜택’을 꼽았다. 이들 정책은 개별 정책에 대한 만족도 설문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프리랜서 김율 씨(30)는 “여러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금 지원처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에 ‘선택과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뇌사 상태에 빠진 50대 가장이 장기 기증으로 2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23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충남 홍성에 살던 한형귀 씨(53·사진)는 15일 원광대병원에서 간장, 신장을 기증해 2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 씨는 지난달 22일 지인과 식사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2남 5녀 중 셋째로 태어난 한 씨는 평소 표현은 서툴지만 진중하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에 참여하는 등 나눔과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해 7월 숨진 한 씨의 매제 역시 뇌사 상태에서 장기를 기증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1981년 당시 67세가 지금의 84세라고 봅니다. 현재 60, 70대는 충분히 일할 만한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정지태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69·사진)는 “이제는 노인을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교수는 대한의학회장과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2009년 설립된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분야별 고령 전문가가 모여 고령사회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단체로, 이미 13년 전부터 노인 연령 상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과거와 달리 노인 연령 상향에 대한 공감대도 커졌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노인이 많아진 데다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나이가 듦에 따라 미세한 운동능력은 줄어들겠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심리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며 “요즘은 75세까지 거뜬히 건강을 유지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81년 당시 66.7세였지만 2021년에는 83.6세로 20년 가까이 늘어났다. 정 교수 역시 고혈압을 제외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주위를 봐도 건강 상태로만 따지면 40년 전과 지금의 노인 연령이 같을 수 없다”며 “그만큼 정년을 연장해 오래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노인도 많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65∼69세 노인의 55.1%가 ‘현재 일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2021년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78만5000명 중 96%는 ‘지속적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노인 연령이 상향되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수혜 연령도 늦춰진다. 정 교수는 “은퇴한 대학 동기들과 박물관을 관람하러 갔을 때 지하철부터 박물관까지 전부 무료였는데 ‘과연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런저런 혜택이 정말 많아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나라의 태반이 노인이 되고 나서는 우리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겠냐”고 밝혔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 예산은 23조2289억 원으로 2020년부터 매년 10% 내외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 교수는 “노인 연령을 상향하되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또 복지 혜택을 받고 있던 노인 빈곤층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점진적 상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저출산 정책은 주로 출산에 대한 지원이 많습니다. 미래에 출산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너무 먼 이야기로만 느껴져요.”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손윤희 보건복지부 청년보좌역(34·사진)은 정부가 9개 부처에 신설한 청년보좌역 중 한 명이다. 그는 복지부 2030 청년 자문단과 함께 청년 관점에서 저출산을 비롯한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손 보좌역은 아직 미혼이지만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인 언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육아를 경험하고 있다. 그의 부모님은 맞벌이하는 언니 부부를 돕기 위해 함께 살며 손주를 키우고 있다. 손 보좌역은 “언니의 모습이 보통 청년들이 처한 육아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저희 부모님도 아이들을 돌봐주기 어려운 나이일텐데,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가 벌써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금성 지원과 보육 인프라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워킹맘을 위한 유연근무제가 도입됐으나 실제 사용률은 높지 않다. 근무시간이 줄어도 똑같은 업무량을 소화해야 한다거나 제도를 이용할 사내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아서다.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하는 것처럼 육아 전쟁을 벌이다 보면 자신만의 시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손 보좌역은 “아이를 낳기 전 청년들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삶이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저출산과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천차만별이다. 손 보좌역은 “수도권에서는 주거가 심각한 문제지만 비수도권에서 ‘청년 임대주택이 도움이 되겠냐’고 물으면 ‘(집값 싼데) 왜 임대주택을 사냐’고 말한다. 실제 청년이 집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청년의 삶이 너무 달라 중앙부처에 모든 정책을 수립·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지역에서는 거리가 먼 소아청소년과에 다니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려면 하루가 걸리는데 다른 자녀를 돌보며 회사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손 보좌역은 저출산 문제에 대해 개인이 처한 상황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조립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임기 여성의 난자 냉동 지원처럼 출산 이전의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손 보좌역은 “출산 위주 지원 방식은 청년들에게 와 닿지 않는 먼 이야기”라며 “출산 이전 단계에서부터 지원을 시작해야 청년들에게 정책 효능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손 보좌역은 소아청소년과 간호사 출신으로 서울아산병원 가습기살균제지원 보건센터 연구직, 국회의원 비서관 등의 경력을 쌓아 왔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출입과 고용이 금지된 업소의 예시에 ‘룸카페’를 포함했다. 15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청소년 출입, 고용 금지업소 결정고시 일부개정안을 20일간 행정 예고했다. 청소년이 드나들거나 일할 수 없는 업소의 예시에 기존 키스방, 대딸방, 유리방 외에 ‘룸카페’를 포함하고, 변종업소의 ‘밀폐된 공간’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여가부는 2011년 이후 멀티방 등 청소년 대상 변종업소들이 출현하자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이 출입하거나 일을 할 수 없는 업소의 시설기준과 예시를 정해왔다. 모든 룸카페에서 청소년 이용이 금지되는 건 아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밀폐된 공간 형태로 운영되는 룸카페만이 청소년 출입, 고용 금지업소 대상이다. 여가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룸카페의 구체적인 시설기준을 제시했고,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룸카페는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2, 3달간 이어진 단속에서 ‘밀실이나 밀폐된 공간 또는 칸막이로 구획하거나 이와 유사한 시설’이라는 모호한 시설기준 탓에 경찰, 지자체 등 단속반과 업주 사이에 갈등 및 민원이 잦았다. 이에 이번 개정안에서는 ‘잠금 장치가 없을 것’ ‘벽이나 창문에 커튼, 시트지 등이 부착돼 있지 않을 것’ ‘벽과 출입문의 1.3m 높이부터 상단까지 투명창이어야 함’과 같이 벽면, 출입문, 잠금장치, 가림막 총 4가지 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했다. 룸카페가 위 4가지 시설의 기준을 충족할 시, 청소년이 드나들거나 일을 할 수 없는 업소에서 제외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최근 룸카페 단속 과정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데도 단속 대상인지부터 커튼 유무, 유리의 투명도 등 ‘밀실’의 규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업주와 공무원 간 마찰이 많았기 때문에 명확한 시설기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개정안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고시 개정안은 업소 운영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심의, 결정 등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이문수기자 doorwater@donga.com}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전국 시도와 시군구가 출산지원금에 투입한 예산은 5700억 원이었다. 이를 포함한 전국 지자체 출산 정책 예산은 총 1조809억 원으로 전년보다 26.8%나 늘었다.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가 12일 공개한 ‘2022 지방자치단체 출산 지원 정책 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지자체의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은 1조809억 원으로, 2021년 8522억 원보다 약 2288억 원(2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예산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가족 등 전 단계에 걸쳐 출산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17개 광역지자체 중 강원도의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이 1673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 1169억 원, 대전 838억 원 순이었다. 출산 지원 정책 예산 1조809억 원 중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현금성 지원이 7496억8400만 원(69.4%)으로 가장 많았다. 현금성 지원 중에서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출산 후 일정 기간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이 가장 큰 비중(76.5%)을 차지했다. 광역지자체 17개 시도 중 서울, 경기, 충북, 전북, 전남, 경남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지역에서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히 광역지자체의 출산지원금 예산은 2021년(2371억 원)보다 52.4%가 늘었다. 출산지원금 규모가 가장 큰 강원도는 첫째와 둘째 출산에 대해 48개월 동안 매월 50만 원씩 지급한다. 기초지자체의 경우 전체 226곳 중 89.4%에 해당하는 202개 지역에서 출산지원금을 지원했다. 지자체별로 출산지원금 액수가 차이가 났는데 둘째 출산 기준으로 전남 영광군은 1인당 최대 1200만 원인 반면에 대구 동구는 10만 원이었다. 이처럼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이 늘었음에도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하면서, 현금성 지원보다는 인프라 구축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의 출산지원금이 출산율 제고에 일시적인 효과가 있지만 인구 감소 지역일수록 출산지원금과 출생률의 연관성이 낮다는 연구도 축적되고 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금성 지원보다도 아이를 키우기 용이한 환경을 제공하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며 “영유아 보육 인프라에 대한 투자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질 좋은 방과 후 학교 지원을 늘리는 등의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녀의 출산은 보육, 교육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과정이므로 단기적 지원으로는 출산율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충북에는 올해 1월부터 ‘임신부 전용 구급차’가 6대 생겼다. 충북소방본부가 보은 옥천 괴산 증평 음성 단양 소방서에 있는 예비 구급차를 임신부 전용으로 바꿔 운영하는 것이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이 구급차를 타고 검진이나 진찰을 받으러 병원에 다닐 수 있다. 구급차에는 이동 중에 아이를 낳게 될 상황에 대비한 탯줄가위와 시트 등이 담긴 분만키트도 있다. 임신부 전용 구급차가 등장한 건 이 6개 지역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1시간 넘게 걸리는 지역에 있는 산부인과까지 힘겹게 오고 가는 임신부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 강원도에는 화천 인제 양구 등 5개 지역의 임신부들이 출산 3주 전부터 잠시 머물 수 있는 아파트가 1채 있다. 이들 지역 역시 차로 1시간 이내에 분만 산부인과로 접근하기 어려워 정부가 ‘분만 취약지’로 지정한 곳들이다. 언제 양수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신부들이 최대한 빨리 강원대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강원도 예산으로 병원 옆에 마련한 집이다. 이 두 지역처럼 지방자치단체마다 임신부들을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찾고 있는 건 현재 분만 인프라 붕괴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분만실은 2014년 1468개에서 2018년 1328개, 2022년 1176개로 급감했다. 특히 출산율이 낮고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방의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만 인프라 부족에 “둘째는 상상도 못 해”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임신부들은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아 떠돌고 있다. 경기 안성에 사는 이모 씨(29)는 올해 1월 첫째 아이를 낳을 때 안성 지역에 분만 산부인과가 없어 아예 친정어머니가 있는 광주광역시에 가 아이를 낳았다. 이 씨는 “임신 초기에는 2주마다 안성과 광주를 오갔고 마지막 달에는 아예 광주에서 머물렀다”며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 건 상상조차 못 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불편한 차원이 아니라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 및 생명에 대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서울대 의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만취약 지역의 평균 유산율은 4.55%로 비(非)분만취약 지역(3.56%)보다 높다. 게다가 최근엔 노산 등 고위험 산모가 늘면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유례없는 초저출산 상황에서 산모를 제대로 돌볼 곳이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분만 인프라가 붕괴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저출산으로 ‘수요’ 자체가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2031년 인구 5000만 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수도권 큰 병원으로 쏠리는 현상도 심화된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장은 “아이 한 명 한 명이 귀하다 보니 중소병원보다는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가 기피 과목이 되면서 분만 의사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분만의 특성상 의료진이 2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잦고 의료소송 위험성이 큰 탓이다. 설현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서울이 그나마 지방보다 분만 인프라 부족 문제를 덜 겪는 건 기존 의사들이 한계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 의사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신규 인력은 투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의사뿐 아니라 분만실 간호사 구인난도 겪고 있다. 홍정아 순천향대 구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실 간호사들이 수도권으로 떠나거나 병원 내 다른 파트로 옮기면서 분만실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며 “2021년 5월부터 병원에서 자연분만은 불가능하고 제왕절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왕절개는 시기를 정할 수 있어서 자연분만보다 더 적은 수의 의료진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접근성 높이고 분만 취약지 지원 늘려야” 전문가들은 먼저 분만 취약 지역에서 산부인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는 고위험 산모의 건강을 출산 전에 미리 관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소방 등과 연계해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가용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분만 취약지에 대한 재정 지원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 취약지에 있는 분만 산부인과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10여 년 동안 그대로”라며 “현실적으로 분만 산부인과를 신설하기 어렵다면 기존에 있는 병원이라도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분만 과정에서 아이나 산모가 사망하면 병원 과실이 없어도 피해보상금을 국가와 병원이 7 대 3으로 보상한다. 이 같은 ‘무과실 보상’ 체계도 전액 국가가 보상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이런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오상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무과실 보상) 관련 제도가 마련될 때 이 제도로 인해 신규 산과 의사 지원율이 급감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강행됐다”며 “산과 의사들이 과실이 없는데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경기 시흥시에 사는 A 씨는 2013년 필리핀에서 온 이주여성이다. A 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탓에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시흥시는 지난해 A 씨의 자녀에게 미술 교육을 지원했고 자녀는 대회에서 입상했다. 13일 여성가족부는 경기 화성시와 시흥시, 경남 김해시 3개 지자체에서 실시하던 이주배경청소년 대상 ‘지역자원 연계사업’을 올해 김포시, 전북 전주시까지 5개 지자체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역자원 연계사업이란, 지자체가 외국인 주민이나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필요한 조례 등 제도적 근거를 만들거나 이주배경청소년들에게 한국어나 진로 교육, 급식 지원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 사이 국내 이주배경청소년은 약 8만 명 늘어 총 28만 명이다. 여가부는 이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학교에 다니는 과정까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여가부는 지난해부터 화성시, 시흥시, 김해시에서 지역아동센터, 교육청 등과 함께 한국어 및 다른 과목 학습 지원, 진로 교육 및 체험 활동 등 이주배경청소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화성시에서는 외국인 한부모 가정의 자녀에게 한국어 교육을 지원했고, 김해시에서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어려워 하던 중도입국청소년에게 교육과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등 소외 받는 이주배경청소년들을 발굴, 지원했다. 올해는 여가부는 외국인 주민 1만 명 이상인 65개 기초단체를 대상으로 수요를 조사해 김포시와 전주시를 추가 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다. 김포시는 외국인주민지원센터와 유관 기관이 연계해 이주배경청소년의 공교육 진입, 정착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주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이주배경청소년 현황을 조사한 뒤 사업 방향을 설계할 계획이며,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과 연계해 한국어 교실을 대안교육 과정으로 인정받도록 할 예정이다.이문수기자 doorwater@donga.com}
최근 10년간 만성 콩팥병 진료 환자 수와 진료비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 콩팥병의 주원인인 고혈압과 당뇨 관리의 미비와 고령화로 인해 환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만성 콩팥병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는 28만2000명으로, 2011년 11만8000명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만성 콩팥병은 ‘3개월 이상 콩팥에 손상이 있거나 콩팥 기능이 저하된 상태의 질병’으로, 체내 수분량과 혈압을 조절하고 혈액 내 노폐물을 걸러내는 콩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돼 중증에 이를 시 투석이 필요한 질병이다. 이에 따라 한해 투입되는 진료비도 1조1700억 원에서 2조4000억 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0세 이상에서는 만성 콩팥병 유병률이 26.5%에 이르는 만큼 최근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령 인구 증가가 만성 콩팥병 환자 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만성 콩팥병의 경우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고, 발병 시 심부전, 고지혈증 등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률도 증가해 정기적인 검사가 중요하다. 소변에 거품이 많고 색이 탁하거나, 몸 피부 전체가 가렵다면 만성 콩팥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만성 콩팥병의 주요 원인으로는 당뇨병과 고혈압이 꼽힌다. 당뇨병은 혈액을 끈적하게 해 각종 노폐물이 혈관에 쌓이게 하며, 고혈압의 경우 사구체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만성 콩팥병 전체 환자의 3분의 2가 당뇨병과 고혈압을 원인으로 만성 콩팥병에 걸리기 때문에 당뇨병, 고혈압 환자 등 고위험군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개정 만성 콩팥병 예방관리수칙에 따르면 만성 콩팥병 환자들의 경우 하루 단백질 권장량을 넘겨 단백질을 섭취하거나, 칼륨이 많은 과일과 채소를 과도하게 섭취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질병청은 만성 콩팥병 장기추적조사 등을 통해 환자의 예후 개선 인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정책화하고, 일반 국민들이 만성 콩팥병 예방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문수기자 doorwater@donga.com}
“학교 기숙사도 떨어지고, 자취방 월세도 올라 방법이 없네요.” 올해 경기 성남시에 있는 가천대에 입학하는 김모 양(18)은 23일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충남 공주시에 사는 김 양은 기숙사를 신청했지만 치열한 경쟁 탓에 탈락했다. 학교 인근에 자취방을 구하려 했는데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지인이 사는 종로구에서 통학하기로 결정한 김 양은 “16.5㎡(약 5평) 남짓한 원룸에 2명이 함께 지낸다.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통학하는 데 왕복 3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알바하고 대출받아 월세”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대면 수업이 재개된 대학가에는 개강을 앞두고 주거난을 호소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과 비교하면 월세가 부쩍 오른 데다 난방비 등 공과금 인상에 따라 전반적인 주거 부담이 커진 탓이다. 실제로 서울 주요 대학가 월세는 전년 대비 크게 올랐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이화여대 인근 평균 월세는 2021년 11월 51만7000원에서 지난해 11월 69만1000원으로 17만4000원(33.7%)이나 올랐다. 한양대 일대 월세는 같은 기간 26.5% 상승했다. 한양대 재학생 박모 씨(21)는 “자취방을 구하다 보니 지난해와 비교할 때 같은 조건의 방이 최소 10만 원 넘게 올랐다. 결국 친구 3명과 함께 19.8㎡(약 6평) 원룸에서 함께 살면서 생활비를 아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부 대학생들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대출도 받는다. 성균관대 신입생 김모 씨(19)는 매달 50만 원씩 월세와 공과금으로 내야 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한국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 김 씨는 “이미 카페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전기요금, 난방비 등 공과금마저 크게 올라 버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기숙사 경쟁률은 더 치열해져대면 수업이 재개된 데다 자취 비용이 크게 오르면서 기숙사 입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서강대 기숙사의 경우 지난해 지원자 전원이 기숙사에 입소했던 것과 달리 올해 기숙사 경쟁률은 2 대 1로 지난해에 비해 2배가량이나 됐다. 기숙사 10곳에 1465명을 수용하는 성균관대의 경우 새 학기를 맞아 수용 인원을 23명 늘렸지만 지원자는 146명이나 늘어 더 경쟁이 치열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숙사 배정 기준을 둘러싼 불만도 나온다. 광주에 사는 서울대 신입생 박모 군(18)은 “주거 비용 감당이 안 돼 학교에서 1시간 걸리는 친척 집에서 통학하기로 했다”며 “기숙사 입소 대상을 정할 때 집이 먼 곳에서 진학한 학생에게 우선권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숙사에 떨어진 이들이 자취방보다 저렴한 셰어하우스로 몰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고려대 재학생 윤서현 씨(20)는 “기숙사에 떨어진 후 인근 셰어하우스를 알아봤는데 대기자가 30명가량 있다고 하더라”며 “당분간 자리가 날 때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3번 넘게 갈아타면서 편도 1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통학할 생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주거 공간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학 기숙사를 늘리는 동시에 정부가 공급하는 청년주택을 대학가에 배정하는 등 다양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경찰 수사전담기구인 국가수사본부(국수본) 2대 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57)의 아들 정모 씨(22)는 고교 재학 시절 피해 학생에게 “돼지 ××”, “빨갱이 ××”라고 하는 등 상습적 언어폭력을 저질러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던 정 변호사는 전학 결정이 내려지자 아들의 법정 대리인으로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 등을 진행했다. 26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정 씨의 행정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2017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유명 사립고에 입학한 정 씨는 1학년 1학기부터 피해 학생 A 씨에게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A 씨가 기숙사 방에 찾아오면 “돼지라 냄새가 난다”고 했고, A 씨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주도에서 온 돼지 ××”라고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정 씨의 괴롭힘 때문에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어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18년 2월에는 학교에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3월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정 씨의 학교폭력은 2018년 3월 A 씨가 학교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다른 피해 학생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학교 교사가 “정 씨를 선도하려 노력하는데 정 씨 부모가 많이 막고 있다”고 말한 내용도 적시돼 있다. 정 씨 부모는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며 학교폭력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결국 학교 측은 전학 처분을 결정했다. 정 씨 측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 씨 측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징계 처분 취소 행정소송도 제기했지만 1,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도 전학 처분이 확정됐다. 판결문에 기록된 당시 학교폭력 조사 보고서에는 정 씨가 주변에 당시 검사였던 아버지에 대해 자랑하면서 “검사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이라거나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목격자 진술도 담겼다. 고교 시절 정 씨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B 씨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씨는 3학년이 되는 첫날 ‘전학 간다’는 인사만 하고 떠났다. 평소 본인의 보수적 정치 성향에 대해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