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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시즌을 맞이한 미국증시가 모처럼 급등세를 연출했습니다. 27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가 모두 크게 상승했는데요. 다우지수 1.57%, S&P500 1.96%, 나스닥 지수는 2.43% 올랐습니다. 빅테크들이 연이어 예상을 웃돈 호실적을 발표하며 시장을 이끌었는데요. 그중 가장 돋보인 건 이날 주가가 13.93% 급등한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입니다. 전날 장 마감 직후 메타는 올해 1분기 매출이 286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 늘었다고 발표했는데요. 3분기 연속 매출 감소 이후 처음 증가로 돌아선 겁니다. 페이스북 광고 수익이 늘어났는데요. 수잔 리 최고재무책임자는 “1분기에 중국 업체들이 광고를 많이 한 것이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합니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를 봤단 뜻이지요. 회사 측은 2분기 매출도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295억~320억 달러일 걸로 가이던스를 제시했습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월가는 메타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상향했죠.아마존은 이날 장 마감 이후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아마존 역시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호실적을 발표하며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1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1분기 주당순이익 31센트를 기록했는데, 월가 추정치(21센트)를 크게 웃돈 겁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광고 사업, 둘 다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렸기 때문인데요.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부(AWS)는 전년 동기보다 15.8%, 광고 사업은 21%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전자상거래 부문은 매출 성장이 정체돼있죠. 앞서 25일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알파벳(구글 모회사)도 깜짝 실적을 냈죠. 둘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부문이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날 증시에서도 MS 주가는 3.2%, 알파벳은 3.74% 올랐고요. 모처럼 찾아온 빅테크 실적 랠리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리해고 약발’이 먹힌 듯해서 씁쓸한데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으로 메타는 2만1000명, 아마존은 2만7000명의 직원을 해고했죠. 월가에서는 정리해고를 통한 비용 절감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시장을 뒤흔든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는 이날 8.79% 반등했습니다. 이 은행은 지난 24일 1분기 예금 잔액이 40%나 줄었다고 발표한 뒤 주가가 이틀 연속 폭락(25일 -49.38%, 26일 -29.75%)했는데요. 주가는 반등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해법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은 불안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기자 haru@donga.com}
도심 대형 오피스빌딩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텅 비어간다. 유명 부동산 투자회사들이 오피스타워를 담보로 받은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사무실의 종말’이 다가오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임차인 못 구하는 오피스빌딩 세계 최대 부동산 투자회사인 브룩필드는 이달 중순 12개 워싱턴 주변 사무실 건물의 담보대출(1억6140만 달러) 원리금 상환에 실패했다. 2월 로스앤젤레스 오피스타워 담보대출(7억8400만 달러) 채무불이행에 이어 두 번째다. 글로벌 채권운용사 핌코 산하의 컬럼비아프로퍼티트러스트는 2월 17억 달러 담보대출의 이자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보스턴 등에 있는 7개 사무실 건물이 담보였다. 잇따른 채무불이행 배경엔 금리 인상이 있다. 사무실 담보대출은 주로 변동금리다. 컬럼비아프로퍼티의 경우 2021년 말 3%이던 대출금리가 올해 초 6%까지 뛰었다. 더 큰 이유는 사무실이 텅 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실 수요 감소로 임차인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공실이 갈수록 늘어간다. 무디스애널리틱스에 따르면 1분기(1∼3월)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9.0%에 달한다. 5개 분기 연속 올랐고, 1992년 이후 최고치다. 부동산 가격 급락이 촉발한 저축대부조합(S&L) 위기 당시 공실률 기록(1991년 19.3%)에 가까워졌다. 공실률 상승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분석회사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의 부동산 가치는 1년 전보다 25%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원격근무로 사무실이 비었다 미국 기업은 예전만큼 사무실 공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보안업체 캐슬시스템스가 출입증 데이터로 파악한 지난주 미국 10대 도시 사무실 점유율은 49.6%에 그쳤다. 사무실 자리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직전엔 이 수치가 100%에 육박했다. 이는 원격근무가 늘어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업의 근로자 중 35%는 항상 집에서 일한다. 주 2, 3일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자도 41%에 달한다. 미국에서 원격근무가 대세인 건 유독 뜨거운 고용시장 영향 때문이다. 신용석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인난 때문에 미국 기업은 채용을 위해 재택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집이 넓은 것도 재택근무가 자리 잡은 이유로 꼽힌다. 미국의 1인당 주거면적(2020년 기준 65㎡)은 한국(33.9㎡)의 1.9배이다. ● 소형은행 부실로 이어지나 사무실이 비어서 생기는 문제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부실이 은행으로 번질 수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채 4조5000억 달러 중 3분의 1은 2025년 말 이전에 만기가 돌아온다. 리사 살럿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는 “새 대출금리는 기존보다 3.5∼4.5%포인트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처럼 사무실 공실률이 치솟고 가치가 떨어진다면 사무실 부동산 투자자들이 줄줄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 충격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를 보유한 소규모 지역은행에 집중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금융안정성 보고서에서 “높은 금리와 구조적 수요 감소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광범위하게 조정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사무실이 비면서 도심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상권이 위축돼 자영업자와 소기업의 손해로 이어진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뉴욕 직장인이 2019년보다 30% 덜 출근해서 생긴 소비 감소분은 연간 124억 달러나 된다. 사무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세 수입 감소도 불가피하다. ‘사무실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면 도심을 살릴 방법은 무엇일까. 낡은 오피스빌딩을 아파트로 개조하는 것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부동산 회사 라이스너그룹의 레미 라이스너 대표는 포브스 기고문에서 “오피스타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며 “중산층을 위한 주택으로 전환해 오피스 밀집지역을 주거지로 바꾸자”고 제안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다음 위기 진원지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이다.’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이후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오피스 빌딩만 보면 이런 위기론이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 미국 대도시 도심의 사무실이 텅텅 비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의 종말’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팬데믹도 끝났는데 왜 그럴까요. 미국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왜일까요. 오피스빌딩의 종말, 그 이후엔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까요. 오늘은 미국의 사무실 부동산 위기론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임차인 못 구하는 오피스빌딩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인프라 투자회사로 유명하죠. 한국에선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를 소유한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엔 이걸로 많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사무실 담보대출 채무 불이행’.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지난 2월 LA 대형 오피스빌딩 2개를 담보로 받았던 대출금(7억8400만 달러)을 갚지 못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달 들어 또다시 워싱턴DC 사무실 12곳을 담보로 한 대출(1억6140만 달러) 상환에 실패했습니다. 브룩필드만이 아닙니다. 퍼시픽인베트스먼트와 핌코(PIMCO)도 사무실 담보대출에 대해 줄줄이 디폴트를 선언했습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있는 멀쩡한 대형 오피스빌딩들이 잇따라 대출금 상환에 실패한 겁니다.왜 이런 일이 줄이어 생길까요. 한가지 이유는 금리인상입니다. 미국도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엔 변동금리 대출이 더 많은데요. 치솟은 대출금리를 감당할 길 없게 되면서 제때 갚지 못하는 겁니다. 핌코의 경우엔 2021년 12월 3% 수준이던 대출금리가 6%로 뛰면서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고 하죠.하지만 진짜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도심 사무실이 텅텅 비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올 임차인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무디스가 집계한 올해 1분기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9.0%에 달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감이 안 잡힐 텐데요. 사무실 공실률이 5분기 연속 증가했을 뿐 아니라,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코로나 정점이던 때(18.5%)보다 높은 건 당연하고요. 역사적 최정점이던 1991년 19.3%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1991년은 저축은행 수백곳이 파산한 S&L(저축대부조합) 위기 당시였죠. 미국 저축은행들이 고위험을 좇아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늘렸다가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줄줄이 망했던 그때입니다. 보통 심각한 수치가 아닌 겁니다. 사무실은 공실이 발생하면 임대료에 크게 타격을 입으니 그 가치가 뚝뚝 떨어지죠. 부동산 분석회사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 자산의 가치는 지난해 3월보다 25% 하락한 걸로 추정됩니다. ‘공실 증가→가치 하락→대출 만기연장 불발(또는 연장 되더라도 대출금이 깎임)’이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겁니다.원격근무로 사무실이 비었다오피스 공실률이 늘어난다는 건 기업들이 전보다 사무실을 덜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이겠죠. 직원 수를 줄이거나(정리해고), 아니면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일하거나(원격근무). 지난해부터 엄청난 규모의 정리해고를 진행한 빅테크들은 사무실을 줄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맨해튼 일부 사무실 계약 연장을 포기했고요. 세일즈포스도 샌프란시스코의 약 3000평짜리 사무실 계약을 해지했죠. 구글은 신규 캠퍼스를 짓는다는 계획을 중단했고요. 하지만 사무실의 위기를 일부 빅테크 정리해고 탓으로만 돌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사무실이 비어가는 현상이 미국 전역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어서인데요.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사무실 점유율입니다.사무실 점유율이란 직원들의 출입증 데이터를 통해 ‘실제 직원이 얼마나 사무실로 출근했느냐’를 집계한 수치인데요. 캐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10대 도시의 평균 점유율은 46.3%에 그쳤습니다. 사무실 자리의 절반 넘게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팬데믹 이전엔 이 수치가 95%에 달했죠. 아니, 그 많던 직원들이 다 어디 간 거죠? 아마도 집에 있을 겁니다. 부동산펀드회사 더라이스너그룹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직장인의 약 10%는 완전히 원격근무를 합니다. 주 5일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은 9%에 불과하고요. 나머지는? 아마 일주일에 이틀, 또는 사흘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중이겠죠. 그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2021년 때 이야기 아니냐고요? 미국에서 원격근무 확산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에 대해 보통 ‘고용시장이 너무 뜨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이 ‘출근 안하면 해고할 거야!’라고 할 처지가 아니게 된 겁니다. 유럽과 아시아 등 대부분 지역에선 원격근무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특이한데요. 이를 두고 미국 주거환경의 특수성 때문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다른 나라보다 미국인들은 집이 큰 편입니다(1인당 평균 생활면적 85.5㎡). 독일의 1.8배, 일본의 2.7배 수준이죠. 이는 재택근무를 하기에 상당히 편한 주거여건이란 뜻입니다. 미국에서도 다시 주5일 출근 시대가 돌아오긴 할까요? 대부분 전문가들은 회의적인데요. 앞으로도 사무실 점유율은 55~60% 정도가 될 거란 관측입니다. 주3일 정도만 사무실로 나오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뉴노멀’이 된다고 보는 거죠. 당연히 사무실 공실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변화인데요. 실제 “최근 로펌들이 임대기간이 끝나면 공간을 약 30% 줄이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베스티안글로벌워크플레이스서비스의 마이클 실버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사무실은 많이 비어있을 거고, 도심은 예전만큼 북적거리진 않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도심이 비면 생기는 일사무실이 텅텅 비는 건 여러모로 경제엔 마이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염려되는 건 은행, 특히 중소형은행이 덩달아 부실해질 수 있다는 거죠. SVB 파산사태로 이런 걱정은 더 커졌는데요.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부채 4조5000억 달러 중 거의 3분의 1이 2025년 말 이전에 만기가 돌아옵니다. 특히 이 중 오피스빌딩 대출의 경우 4분의 1이 올해 안에 대출 만기가 도래한다고 하죠(미국 모기지은행 협회). 이들 대출의 현재 금리는 대부분 3%대이지만, 만기 연장을 한다면 당연히 금리는 크게 뛸 수밖에 없죠. 지금처럼 공실률이 높아지고 임차인 찾기가 어렵다면 사무실 투자자들이 줄줄이 대출 연장을 포기할 가능성(채무불이행 선언과 은행의 부동산 압류)이 작지 않아 보이는데요. 특히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는 소규모 지역은행이 보유하기 때문에 걱정이 더 큽니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옵니다. 최근 IMF는 금융안정성 보고서에서 “높은 금리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구조적 수요 감소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광범위하게 조정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죠. 최근 실적을 발표한 미국 은행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론 오핸리 CEO는 “상업용 부동산, 특히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가장 큰 우려사항”이라고 말했고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CEO는 지난주 투자메모에서 “부동산 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상업용 부동산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까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 위험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트윗.다만 그 정도로(소규모 은행이 줄줄이 망해서 금융위기급 충격을 몰고 올 정도로) 심각하게 가진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흔히 ‘상업용 부동산’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이 중 실제 큰일 난 건 사무실 부동산뿐이기 때문인데요. 사무실과 달리 쇼핑몰이나 창고 같은 상업용 부동산은 공실률도 전혀 높지 않고 괜찮다고 합니다. 호텔의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요금을 올리면서 오히려 기록적인 수익을 올린다는군요. 하지만 설사 은행에 큰 타격이 없다고 해도 사무실이 비는 건 꽤 심각한 일입니다. 사무실이 비면 그만큼 유동인구와 통행량이 줄어들고 상권이 위축되면서 결국 자영업자와 소기업들이 피해를 볼 테니까요. 사무실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지자체는 재산세 수입까지 줄어들 겁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애틀 시장이 “모든 사람이 시내에서 일하던 좋은 시절은 앞으로 결코 없을 것”이라며 세수 감소를 우려했던 것도 이런 이유이죠. ‘도심 사무실의 종말’이 대세인데 뭐 어쩌겠냐고요? 네, 이 흐름 자체를 돌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대신 텅 비어있는 사무실을 바꿔야겠죠. 뭘로? 주거공간으로요!아파트로 변신? 할 수 있을까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둔화하는데도 미국 주택시장은 꽤 잘 버티고 있다고 하죠. 서부 지역에서는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선 오히려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도심의 빈 사무실 건물을 아파트로 개발하자는 겁니다. 낮에만 바글바글하고 밤에는 텅 비는 상업지구가 아니라 사무실과 주택, 쇼핑센터, 호텔 등이 다 모여있는 도심으로 바꾸자는 거죠. 부동산 회사 라이스너그룹의 레미 라이스너 CEO는 포브스 기고문에서 “오래된 오피스 타워는 더 이상 쓸모가 없고 용도변경이 필요하다”며 “중산층을 위한 주택으로 전환해, 오피스 밀집지역을 주거지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거주지와 직장, 쇼핑공간이 모여있는 ‘15분 도시’라는 개념을 주장했죠. 지난해 말 비즈니스인사이더 칼럼도 비슷한 주장인데요. “빈 사무실이 아파트가 되면 주택 부족을 완화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을 도심으로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물론 1990년대 또는 그 이전에 세워진 노후한 오피스빌딩을 아파트로 바꾼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일단 금리인상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용이 만만찮죠. 규제도 까다롭습니다. 오피스 건물은 창문이 적고 환기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건축법상 그대로 아파트로 이용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새 건물을 짓는 것 못지 않게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지원(세금 공제, 규제 완화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원격근무와 사무실의 종말 끝에 ‘도심의 화려한 부활’이란 반전의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겠습니다. By.딥다이브도심 사무실이 텅 비다니. 미국의 사무실 부동산 상황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데요(한국은 공실률 하락세). 사무실이 비면 부동산 투자회사와 은행만 곤란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 경제적 여파가 생각보다 크다고 하니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국의 사무실 부동산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유명 투자회사들의 오피스빌딩 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실이 늘어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 데다 대출금리까지 오르면서 제때 대출을 갚지 못하는 겁니다.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3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원격근무 확산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10대 도시의 사무실 점유율은 47%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많이 들고 있는 소형 지역은행이 위기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유동인구가 줄고 상권이 활력을 잃게 되면 소매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자체 재산세 세수 감소가 우려됩니다.-비어 있는 도심 사무실을 아파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용도변경을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든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제이긴 합니다.*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빅테크 실적 발표가 줄줄이 예정된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혼조세로 마감했군요. 다우지수는 0.20%, S&P500은 0.09% 상승했고, 나스닥은 0.29% 하락했습니다. 아마도 이번주는 빅테크의 1분기 실적에 따라 시장이 울고 웃게 될 텐데요. 25일 화요일엔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 26일은 메타, 27일은 아마존이 분기 실적을 내놓습니다. 빅테크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수천 명의 직원들을 정리해고 해왔는데요. 투자자들은 이런 구조조정이 실제 기업 이익으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려 할 겁니다. 또 요즘 가장 핫한 AI(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한 미래 전략이 나오길 기대할 거고요. 기술주 주가는 올해 들어 이미 꽤 올랐는데요. 이런 주가 흐름을 뒷받침할 만한 괜찮은 실적이 나오느냐가 관건입니다.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전날 파산 보호를 신청한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입니다. 이미 바닥이던 주가가 35.67% 더 하락했죠. 1년 전 17달러였던 주가가 이제 0.19달러로 쪼그라든 건데요. 전날 BB&B는 6월 30일까지 모든 매장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1971년 설립 후 52년 만에 문을 닫게 되는 겁니다. 여러 요인이 얽혀 있지만 무엇보다 전자상거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경쟁에서 밀린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온라인과 물류엔 투자를 게을리한 채 무리하게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를 키우는 데만 몰두했죠. BB&B는 ‘밈주식’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엔 공매도에 맞선 개인투자자들의 지원으로 주가가 20여 일 만에 400%나 폭등한 적도 있었죠(당시 4.6달러에서 23.08달러로 치솟음).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들도 여기에 동참했었는데요. 이후 주가가 급락하고 결국 이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연초부터 이미 파산설이 파다했던 BB&B에 최근까지 투자한 서학개미들이 꽤 많다는 겁니다. 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니 이달 들어 서학개미가 거래한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로는 BB&B가 무려 10위에 랭크됐군요(1405만 달러어치 순매수). 이것 참.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세계 두번째 부자’ 일론 머스크와 ‘챗GPT의 아버지’ 샘 알트만. 과연 AI(인공지능)가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AI의 지배자는 둘 중 누가 될까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고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두 CEO가 바로 이 주제를 놓고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스크는 ‘거짓말쟁이‘라며 샘 알트만의 챗GPT를 공격하고, 알트만은 머스크를 ‘얼간이(jerk)’라고 부르면서 말이죠. 두 사람간 갈등은 그 본질이 ‘돈’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데요. 머스크가 오픈AI에 맞설 ‘X.AI’를 설립하면서 경쟁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AI 개발을 둘러싼 둘 사이의 오랜 스토리를 통해 이들이 지향하는 ‘인공일반지능(AGI)’ 이야기까지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머스크가 오픈AI를 떠난 이유“챗GPT는 무섭도록 좋다. 우리는 위험하도록 강한 AI에서 멀지 않다.”(2022년 12월 4일)일론 머스크는 오픈AI가 AI 챗봇 ‘챗GPT’를 처음 내놨을 때부터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후 올해 초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픈AI에 대규모로 추가 투자를 하자 공격강도를 높였는데요. “오픈AI는 구글의 균형추 역할을 하려고 비영리 기업이자 ‘오픈소스’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클로즈드소스’가 됐다”(2023년 2월 17일)거나 “내가 1억 달러를 기부한 비영리 단체가 어떻게 해서 300억 달러짜리가 되었는지 아직도 혼란스럽다”(2023년 3월 15일)는 트윗을 남겼죠. 지난달 28일엔 ‘GPT-4보다 강력한 AI 개발을 최소 6개월 중단하자’는 공개서한에 그가 동의 서명하면서 큰 화제가 됐고요. 머스크는 혹시 챗GPT와 오픈AI가 잘 되는 게 배 아파서 그러는 걸까요? 그렇게 볼 만한 부분도 분명히 있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머스크는 2015년 샘 알트만, 리드 호프만, 피터 틸과 공동으로 비영리단체 오픈AI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2018년 2월 오픈AI 이사회를 떠나며 완전히 결별했고요.그동안은 결별 이유가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오픈AI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됐기 때문(잠재적 이해상충)이라고 설명해왔는데요. 지난달 말 세마포 보도로 진짜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머스크는 2018년 초 ‘오픈AI를 내가 직접 이끌겠다’고 나섰다는데요. 오픈AI의 다른 공동 창업자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별하게 됐다고 합니다. 당시 머스크는 오픈AI가 구글에 치명적으로 뒤쳐져 있다고 보고 본인이 CEO로 나서려고 했다는군요. ‘이런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머스크는 초기에 오픈AI에 1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결별 이후엔 약속했던 나머지 기부금(처음에 공동창업자들이 총 10억 달러 기부를 약속)은 내지 않았는데요. 그 결과 AI 개발을 위한 막대한 컴퓨팅 비용을 마련할 길 없던 오픈AI의 샘 알트만은 비영리단체라는 정체성에 변화를 꾀합니다. 2019년 3월 영리법인을 만들어 MS의 투자를 받은 건데요. 이후 오픈AI는 비영리단체와 영리법인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운영됩니다. 결과적으로 MS의 영리법인 투자를 바탕으로 챗GPT가 탄생했습니다. 오픈AI는 글로벌 AI 기술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고요. 그럼 샘 알트만이 역시 옳았나요? 뒤늦게 쏟아지는 머스크의 오픈AI 비판은 배 아픈 자의 딴지일 뿐일까요?인공일반지능(AGI)이란 목표여기서 잠깐. 오픈AI가 밝힌 그들의 사명이 뭔지 아시나요? ‘안전하고 유익한 인공일반지능(AGI)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냥 AI가 아닌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라는 데 주목하세요! AGI란 진짜 인간 수준의 강력한 AI입니다. 인간이 하는 어떠한 지적 활동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스스로 생각하는 AI를 가리키죠. 물론 AGI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개발될 수 있을지도 아무도 모르죠. AGI 자체가 도달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꿈이라는 회의론도 많습니다. 비판론자들은 AGI를 두고 ‘AI 개발자들이 신이 되려고 한다’고 꼬집기도 하죠. 하지만 구글과 오픈AI를 포함한 여러 기관이 AGI 개발을 목표로 이미 달리고 있습니다. 오픈AI가 GPT-4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연구한 것 역시 LLM이 AGI로 가기 위한 유망한 경로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AGI가 진짜 나온다면 그건 환영할 만한 일일까요? AI가 의식이 있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달리 말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일단 AGI가 한번 나오면 그걸 되돌릴 수도 없게 될 겁니다. FT 칼럼에선 AGI를 ‘신과 같은 AI’라고 부르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2001:스페이스오디세이’ 영화처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진 통제 불가능한 AGI가 인류 문명을 파괴하게 되진 않을까요.상상력이 지나친 거 아니냐고요? 꼭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닙니다. 오픈AI가 왜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AI 개발’을 그토록 강조할까요. 샘 알트만은 왜 “AI가 두렵다”고 말할까요. 실제로 안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2016년 머스크와 알트만,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았을 때 나눈 대담이 있는데요. 그때도 머스크는 “인류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기술은 AI”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나쁜 방식으로 강력한 AI를 사용하는 것은 인류에 큰 위험”이라고 경계했는데요. 동시에 “AI기술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지 않도록 퍼뜨리기 위해” 오픈AI는 개방형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미래에 (AI로 인한) 실존적 피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픈AI가 비영리단체로 운영돼야 한다고 설명했고요. 정리하자면 AGI를 가장 먼저 개발해서 이를 모두에게 공개해 ‘AI 기술의 민주화’를 달성하겠다는 게 애초에 오픈AI의 설립 취지입니다. 순수하면서도 이상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픈AI를 보면 어떤가요? 오픈AI가 지난달 GPT-4를 공개한 뒤 전문가들은 상당히 실망했는데요. 연구와 특허를 공개한다는 당초 설명과 달리 GPT-4 훈련 데이터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오픈AI측은 ‘경쟁사 대비 회사의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픈AI가 ‘클로즈드소스’가 됐다는 머스크 비판이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샘 알트만의 오픈AI는 머스크 말대로 위험한가요? 유연한 이상주의자, 샘 알트만샘 알트만은 여러모로 머스크와 참 다릅니다. 일단 성격부터 그렇죠. 그의 중학교 교장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혔듯이 그는 “똑똑할 뿐 아니라 매우 사교적”인 인물이거든요. 적어도 머스크처럼 괴팍하진 않은가 봅니다. 샘 알트만 본인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요. 최근 팟캐스트에서 머스크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얼간이(jerk)”라면서 “그는 나랑은 맞지 않는 스타일이다”라고 솔직히 말했죠. 자금 부족으로 좌초 위기에 놓였던 오픈AI를 되살린 그의 경영능력도 인정할 만한데요. 2019년 영리법인 설립 직전 알트만이 정부자금 지원을 받거나 코인을 출시해서 돈을 마련하는 방법까지 고민해야 했을 정도로 오픈AI 자금사정은 어려웠다고 하죠. 영리법인을 만들고 MS와 손잡으면서 그는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많이 뒀습니다. 일단 오픈AI 영리법인은 투자자의 이익을 제한합니다. 투자자는 투자금의 100배까지만 수익을 올릴 수 있고요. 그 이상은 다 비영리단체로 귀속됩니다. 또 알트만과 MS CTO가 포함된 ‘합동안전위원회’를 만들어서, 만약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오픈AI와 MS 제품 배포를 중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알트만 본인이 영리법인 지분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은 것도 특이한데요. ‘강력한 AI모델 개발의 원동력이 돈이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평소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오픈AI의 공동창립자인 피터 틸은 알트만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상주의의 스킬라와 야망의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이보다 더 나은 길을 찾는 사람은 없다”고 WSJ에 얘기했죠(스킬라와 카라브디스는 모두 그리스 신화 속 괴물, 영어에선 딜레마적 상황을 의미). 원칙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진 않는 선에서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경영자란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오픈AI 내부에선 MS와 손잡은 알트만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AI안전 책임 부사장이었던 다리오 아모네이가 대표적인 인물이죠. 아모네이는 결국 핵심 연구원들을 데리고 나가 AI스타트업(안트로픽)을 차렸습니다. 이를 두고 “안전한 AGI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달랐다”고 알트만은 설명하는데요. AI 개발의 안전을 위한 까다로운 원칙(비영리, 연구와 특허 공개 등등)을 철저히 따르면서 기술을 개발한다는 게 쉽지 않은 미션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AI 인간? 보편적 기본소득?샘 알트만 입장에선 MS와 손 잡은 건 오픈AI의 고귀한 사명 달성을 위한 약간의 전략 변화였을 겁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에겐 오픈AI가 초심을 잃고 변했다고 비판하기엔 충분한 근거가 됐죠. 지난 17일 방송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오픈AI는 AI가 거짓말하도록 훈련시켰다”고 비난했는데요. 자신이 오픈AI 설립을 주도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이것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았는데, 내가 눈을 떼자 그들은 소스를 폐쇄하고 분명히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AI, 이른바 ‘트루스(Truth)GPT’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본격적으로 오픈AI와 AI기술 개발을 두고 경쟁하겠다는 건데요. 한번(오픈AI) 해봤으니, 두번도 못할 건 없긴 합니다. 머스크는 자신이 AGI의 무서운 파워를 감당할 만한 인물이라고 자신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머스크가 AI 개발을 맡기기에 믿을 만한 인물일까요? 머스크가 추구하는 AI기술의 방향을 파악하려면 그가 과거에 밝혔던 미래 구상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2016년 대담에서 누군가가 강력한 AI를 나쁘게 쓰는 위험을 막기 위해 우리가 뇌에 AI 칩을 박고 ‘AI인간’이 돼야 한다고 밝혔죠. “우리가 집단적으로 AI가 되면 사악한 독재자나 AI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데요. 뭔 뚱딴지 같은 얘기인가 하실 수 있는데, 이미 머스크는 뇌 연구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운영 중입니다. AI 칩을 인간의 뇌에 이식해서 컴퓨터와 연결하겠다는 연구를 여전히 하고 있는데요(단, 인체실험은 지난달 FDA가 승인 거부함). 터미네이터의 디스토피아를 피하려면 뇌에 칩을 꽂고 AI인간이 되는 게 최선이다? 이런 머스크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시나요. 그럼 샘 알트만이 생각하는 AI 기술의 최종 비전은 뭘까요? 그는 “기계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여 더 창의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보편적 기본 소득’을 주장하는데요. 진보한 AI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막을 수 없으니 웬만한 노동은 AI한테 시키고 사람은 다른 창의적인 걸 하면 된다는 겁니다. 어떠신가요. 우리가 꿈꾸는 미래상인가요? 글쎄요. 요제프 바이첸바움 박사(딥다이브에서 ‘일라이자 효과’를 설명하며 소개한 바 있음) 대담집 ‘이성의 섬’에 나오는 대목을 소개하며 마무리합니다. “컴퓨터가 습관적인 일을 떠맡고 인간들에게는 ‘보다 고차원적인 일들’을 맡긴다는 주장이 있어요. (중략) 맥도널드 계산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판에 햄버거 그림이 장착되어 있어서 더 이상 숫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보죠. 그림 자판만 정확히 누르면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계산대에 앉은 젊은 남자가 횔덜린(독일 시인)과 셰익스피어를 생각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컴퓨터가 습관적인 일을 떠맡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동화일 뿐이죠. 어쩌면 동화보다 신화라고 해야 할 거예요. 신화는 언제나 어떤 신비로운 분위기에 둘러싸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니까요.” By.딥다이브‘인간 수준의 AI’를 개발한다는 오픈AI의 목표에 동의하시나요? 솔직히 저는 무엇을 위한 기술 개발인지를 모르는 채 기술 자체에 너무 심취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데요. 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만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만은 ‘안전한 인공일반지능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비영리단체 오픈AI를 2015년 설립했습니다. 인간 수준의 AI를 개발하되 이 기술을 모두에게 공개해 AI 기술을 민주화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머스크는 자신이 CEO가 돼서 이끌겠다는 요구가 거부되자 2018년 오픈AI를 떠났습니다. 이후 오픈AI는 재원 마련을 위해 영리법인을 만들고 MS와 손잡았습니다. 그리고 챗GPT 탄생으로 AI 선두기업으로 올라섰습니다.-MS와 손잡은 건 ‘비영리’와 ‘오픈소스’라는 원칙에서 어긋난 거 아닐까요. 머스크뿐 아니라 전 오픈AI 부사장도 이를 두고 알트만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영리기업 투자자의 수익을 제한하는 등 어느 정도 안전장치를 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머스크는 ‘트루스GPT’를 만들겠다며 AI 기술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최종적으로 뇌에 칩을 심은 ‘AI 인간’을 만들겠다는 머스크를 믿어도 될까요. 아니면 ‘보편적 기본소득을 받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알트만의 비전이 더 신뢰할 만한가요.*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테슬라발 실적쇼크가 뉴욕증시를 흔들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하락했습니다. 다우지수는 0.33%, S&P500 0.60%, 나스닥은 0.80% 하락으로 마감했군요. 전날 장 마감 직후 테슬라가 1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매출(233억29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24.4% 늘었는데, 순이익(25억1300만 달러)은 24.3% 감소했습니다. 차량 가격을 공격적으로 인하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겁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 CEO는 ‘박리다매’ 전략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머스크는 “우리는 더 많은 판매량을 추구하는 것이 더 적은 양과 높은 마진 쪽보다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이날 추가로 주요 모델 가격을 더 내렸죠. 올해 들어 총 6차례나 가격을 인하한 겁니다. 애널리스트들은 테슬라 투자등급과 목표주가를 줄줄이 하향했는데요. JP모건은 테슬라 투자의견을 ‘비중축소’로 제시했고요. 웰스파고는 목표주가를 190달러에서 170달러로, 모건스탠리는 220달러에서 200달러로 낮췄습니다. 결국 20일 테슬라 주가는 9.75%나 폭락한 162.99달러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올해 1월 26일 이후 약 석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밀려난 겁니다. 하필 이날 스페이스X의 대형 우주선 ‘스타십’까지 첫 시험비행에 실패해서(공중 폭발), 머스크에겐 우울한 날이 되었습니다.이날 AT&T도 주가가 10.41%나 폭락했는데요. 예상치에 못 미치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탓이었습니다. 특히 AT&T는 1분기 잉여 현금흐름이 10억 달러라고 밝혔는데, 월가 예측치(30억200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죠. AT&T가 가입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기업 실적에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건데요. 모건스탠리는 20일 낸 보고서에서 “실적에 대한 도전으로 인해 미국 주식에 상당히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동안 1분기 기업 실적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미국 증시 상승을 이끌었지만, 실제로는 어닝쇼크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미 연준이 상당기간 고금리를 유지하거나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점도 증시엔 부담인데요. 모건스탠리는 연준의 통화정책이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 하락과 겹치면서 상장기업엔 더 강력한 실적 압박으로 작용할 거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중국 문 열린다’, ‘한한령 풀렸다’, ‘만리장성 넘는다’.한국 게임산업과 관련해 이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중국이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3월에도 게임서비스 허가권인 ‘판호(版號)’를 여러개 발급하면서 한국 게임의 중국진출이 다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수출품이라는 건 잘 아실 텐데요. 2017년 사드(THAAD) 배치를 이유로 중국은 한국 게임에 판호 발급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 게임산업을 얘기할 땐 ‘과연 언제쯤 판호가 풀릴까’가 주요 화두였는데요. 이제 판호도 풀렸다니까 그럼 K-게임이 ‘판호 훈풍’을 타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을까요? 게임 산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과 중국 게임시장과 K-게임을 주제로 인터뷰했습니다.*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너무 조였나? 느슨해진 중국 게임정책―중국이 한동안 거의 외자판호 발급을 안 하다가 이번에 한국 게임이 여러 개 판호를 한꺼번에 발급했습니다. 중국이 왜 게임시장 정책을 바꾼 건가요?“중국 게임시장이 2010년대 초반 이후 엄청난 고성장을 했습니다. 기존 PC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전환되면서 시장이 갑자기 커진 거죠. 그렇게 2010년대 중반까지 급성장하자, 시장 성장이 너무 빠르다며 속도조절을 하면서 판호 발급을 조절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중국 게임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10% 정도로 맞춰졌어요. 그런데 워낙 판호가 안 나온 지 오래되다 보니 콘텐츠가 부족해졌죠. 그래서 지난해 중국 게임시장이 급격하게 둔화되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성장률이 -10%로 역성장을 했거든요. 여기에 당국자들도 깜짝 놀란 겁니다. 아무리 속도조절을 했어도 10%나 역성장이라니 너무 심한 거죠. 그래서 이제 다시 좀 돌리자면서 콘텐츠를 적극 적극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게 지난해 말 이후 상황입니다.”―그래서 이제 한국 게임도 좀 들어오라고 한 거군요. 중국이 2021년엔 청소년의 평일 게임을 금지한다(주말에 1시간만 게임 가능)는 매우 충격적인 게임 규제책을 내놨었는데요. 이런 것도 풀렸나요? “아니요. 그건 똑같이 가고 있습니다. 양방향으로 생각하면 되는데요. 청소년이 게임하는 걸 중국에선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청소년 규제는 지속적으로 가고요. 오히려 이걸 우회하려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우회를 막는 기술을 더 보완하라는 말을 꾸준히 합니다. 지금은 청소년 이외에 성인들이 하는 게임시장을 되살리자는 기조입니다.”중국에선 한물 간 MMORPG―중국 게임시장에선 어떤 게임이 인기 있나요? 한국에서 인기 있는 MMORPG 장르는 중국에선 한물 갔다던데요. “국내에선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있다)작품들이 인기 최상단을 차지하는데요. 중국도 2010년대 중반 MMORPG 시대가 있긴 했습니다. 한 3~4년 정도였는데요. 이후 빠르게 MMORPG 인기는 사그라들었고요.지금은 LOL(리그 오브 레전드)을 모바일로 하는 것과 비슷한 류의 게임이 중국에선 굉장히 인기가 많습니다. AOS 장르라고 하는데요. 이쪽 작품이 매출 최상단에 위치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모바일 총 게임(FPS 장르)이 있고, 그 다음이 수집형 RPG입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인기가 올라오는 건 ‘서브컬쳐 수집형 RPG’인데요. 애니메이션이나 미소녀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게임입니다. 2010년대 초반엔 서브컬쳐 장르의 매출 비중이 1%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10%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서브컬쳐라는 장르가 흥미롭더라고요. ‘말딸’이라고 부르는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도 그런 장르이던데, 미소녀를 수집하는 듯한 게임이죠? 애니메이션 느낌도 나고요. 이 서브컬쳐 장르의 특징은 뭔가요? “서브컬쳐 장르는 일단 캐릭터가 매우 귀엽고요, 무엇보다 스토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IP(지식재산권)’ 파워를 이야기하면서 리니지 같은 게임의 IP파워가 크다고 언론에서 많이 얘기하는데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리니지 같은 게임을 하는데 스토리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거의 없죠. 캐릭터를 빨리 키우고 강해져서 보스를 깨겠다는 생각만 하니까요. 그러나 우마무스메나 국내에서 출시했던 ‘에버소울’, 글로벌리 인기 있는 ‘원신’ 같은 작품을 보면 캐릭터마다 서사가 있습니다. 그 세계관의 스토리가 있고요. 그래서 그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많죠.”―방금 얘기하신 ‘원신’은 중국 게임인데 상당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요? “평균적으로 원신이란 게임의 일매출이 80억원 이상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연간 3조원 정도 매출이 나오는 거죠. 게임사가 30% 정도 가져간다면 1조원 정도 영업이익을 가져다 주고요.” ―그런 게임사는 개발비도 엄청 많이 투입한다고 하더라고요. “원신을 예로 말씀드리면 초기 개발비로 1억 달러가 들어갔고요. 이후 콘텐츠 보강비용만 해도 연간 2억 달러씩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출이 워낙 크니까 개발비를 다 회수할 수 있네요.“어마어마하게 많이 남는 장사죠.” ―그런데 어떻게 매출을 그렇게 올리나요? 게이머들이 뭔가를 계속 사게 만드나요? “캐릭터를 모으는 거죠. 이런 서브컬쳐 수집형 RPG를 보면 캐릭터들이 처음엔 20개 정도로 시작하는데, 꾸준히 한달에 하나 또는 분기에 하나씩 추가 됩니다. 그렇게 30개, 40개로 늘어나는데 그 캐릭터마다 매력이 다르고, 강점을 가진 영역-공격력, 방어력 등-이 다릅니다. 그래서 캐릭터를 잘 조합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더 좋은 캐릭터를 뽑으려고 돈을 쓰고요. 일반적으로 캐릭터를 한번 뽑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레벨업을 시켜줘야 합니다. 보통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런 캐릭터가 중복으로 필요한데, 그래서 그 캐릭터가 또 나올 때까지 계속 뽑는 겁니다. 그렇게 일반적으로 매출이 발생합니다.”가벼운 모바일 게임이 대세―중국 게임 시장에 대한 보고서 쓰신 거를 보니까 한국과는 많이 다르구나 싶더라고요. 두 가지가 눈에 띄었는데요. 하나는 게임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게임 캐릭터가 성장하게 하는 방치형 게임이 많다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위챗 같은 메신저를 통해서 친구들과 게임을 같이 한다는 것도 특이했고요. “국내 게임업계는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MMORPG 작품이고, 이걸 하는 사람들은 ‘헤비’한 유저들이거든요. 정말 많은 시간을 게임에 쏟고 정말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헤비유저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매우 소수이죠. 그러나 게임사들은 지금까지 이 소수의 헤비 유저만 잘 타게팅했어도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던 거죠. 왜냐하면 그 시장이 계속 성장을 했으니까요. 중국은 좀 다른 게 이런 헤비유저가 메인 타깃이 아니에요. ‘중위 유저’라고 하는 월 수십만원~ 수백만원 정도 매출을 올려줄 수 있는 중간층이 메인인데요. 그런 유저들이 하는 작품은 대부분 MMORPG가 아니라 캐주얼 게임이나 방금 말씀드린 수집형 RPG 같은 류의 게임입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게임을 할 때 친구들과 같이 하는 걸 좋아합니다. 커뮤니티 요소인 위챗의 미니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이유이죠. 누군가와 같이 깨 가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거라서 ‘나 혼자 강해져서 빠르게 보스를 잡고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겠다’는 희열은 약하거든요. 그래서 같이 하는 캐주얼 게임이 인기 있고요. 또 모바일 게임을 많이 하는데요. 국내의 헤비한 게임들은 폰으로 즐기기 어렵죠. 중국인들은 대부분 하루 1~2시간 정도, 이동할 때 간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주로 합니다. 좀더 캐주얼하고 라이트하게 즐길 게임을 찾게 되고, 그런 걸 도와주는 게 방치형 요소이죠. 하루에 한두 번만 접속을 해도 게임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 때문에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한국에선 정말 많은 시간과 돈까지 쏟아부어야만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구조인데, 그러면 게임하는 게 피곤하잖아요. 이와 달리 중국은 라이트한 유저가 대부분이니까 게임산업 저변은 더 넓겠군요. “훨씬 더 넓습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온 건 없지만, 인구 대비 게임하는 유저 비중 자체가 국내보다 훨씬 높을 겁니다. 중국에 가면 직업병처럼 대중교통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하는지를 살피는데요. 중국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합니다. 체감상 한국의 2배, 3배 정도에요.”K-게임은 대박 낼 수 있을까―말씀하셨듯이 국내 게임사는 여전히 MMORPG 장르 위주인데요. 그럼 중국 게임시장을 공략하기엔 어려운 건가요? 판호를 열어줬다고는 하지만, 이제 국내 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잘 안 먹히게 생겼으니까 중국도 마음 놓고 이제 들어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아무래도 MMORPG 작품들이 중국에서 잘 할 수 있는 확률은 낮은 것 같습니다. 기존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이 중국에 가서 시장에서 정말 관심이 높았는데요(2022년 4월 중국 출시). 막상 보니까 흥행을 못하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거든요. 다른 MMORPG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정말 큰 인기를 끌었던 ‘던전앤파이터’ IP나 ‘블레이드&소울’ IP 정도는 가능성이 있는데요. MMORPG 장르 중 다른 IP의 일반적인 게임이 중국에 간다고 갑자기 잘할 수 있다? 이건 너무 장밋빛 전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중국에서 성장하는 장르를 메인으로 영위하는 국내 게임사가 잘 할 수 있을 거고요. 대표적인 곳이 넥슨게임즈입니다.”―어떤 면에서 유망하게 보시는 건가요? “국내에서 서브컬쳐 수집형RPG로 가장 잘하는 게임사가 2곳인데요. 첫번째가 넥슨게임즈의 MX 스튜디오, 두번째가 ‘니케’를 개발한 시프트업입니다. 시프트업은 아직 상장사는 아니고요. 넥슨게임즈의 ‘블루아카이브’라는 IP가 나온 지 2년이 좀 넘었습니다. 2년 전 일본에서 처음 출시됐는데요. 일반적으로 게임이 출시된 뒤엔 매출이 꺾이거든요. 그런데 정말 잘 되는 게임들은 점차 스토리와 IP 매력에 사람들이 빠져들어서 2차, 3차 창작물까지 나오고 이걸 공유하면서 하나의 문화가 됩니다. IP파워가 이렇게 생기는 거죠. 이게 일본에서 생기기 시작해서 블루아카이브는 첫 1년 성적보다 2년째 성적이 더 좋고 지금도 쭉쭉 올라오고 있거든요. 일본에서 IP파워를 입증한 상황에서 중국 지역으로 판호를 받아 확장되는 시기이고요. 저는 중국에서도 상당히 큰 가능성이 있을 걸로 판단합니다.”―판호는 받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출시는 안 된 상황이군요.“2018년 이후 외자판호를 받은 게임의 출시시기를 평균적으로 내보면 판호를 받고 9~10개월 정도 걸리거든요. 그래서 빠르면 올해 3분기, 늦으면 올해 말~내년 초 출시할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까 그 펄어비스 사례처럼 기대가 컸는데 중국시장에서 생각만큼 인기가 없으면 주가가 엄청나게 빠지겠네요. “그렇죠. 그때도 중국에서 출시 뒤 생각보다 반응이 없자 단기간에 30%가 빠졌고요. 그 이후에도 계속 하락을 지속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 시장이 다시 열린 건 엄청난 기회이지만, 여기서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기업 주가는 확 꺾일 수 있겠네요. 국내 게임 업계엔 중국시장과 관련한 큰 숙제가 생긴 셈이군요.“일반적으로 게임 출시 전에 잡히는 시장의 컨센서스가 낮지 않기 때문에 기대치 이상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예전엔 외자판호를 한국 게임사가 받았다고 하면 그 기업뿐 아니라 게임 업종 자체가 전체적으로 주가가 올랐어요. 판호 받은 업체는 20~30%, 다른 게임사도 10%씩 올랐는데요. 이번에 지난해 12월, 올해 3월 판호를 받고 나서는 시장 반응이 그렇게까지 높진 않았어요. 못 받은 게임사는 거의 오른 게 없고, 판호를 받은 게임사도 10%대 초반 정도 오른 게 다였는데요. 기존에 중국에 갔던 게임들이 성과를 별로 내지 못하다 보니 기대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기대감과 게임업종의 밸류에이션이 올라올 수 있는 시나리오는 올해 출시될 넷마블이나 넥슨게임즈의 중국 진출작들이 흥행 성과를 보이는 거죠. 그렇다면 ‘한국 게임사가 생각보다 가능성 있네’라고 여겨서 주가 모멘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게임주 투자자들을 위한 조언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저는 게임시장이 전체적으로 좋아지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로는 중국 시장의 재개방이 당연히 긍정적이고요. 두번째로는 생성형AI가 화두잖아요. 생성형AI가 도입된다면 (게임개발) 비용이 많이 절감될 수 있고요. 게임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2~3년을 봤을 때 게임 업종이 지금 좋아지고 있는 국면은 맞는데요. 그럼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중요한 부분은 지금처럼 중국에서 판호를 발급 받는 것 같은 이벤트가 생기면, 이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됩니다. 이 구간에선 모멘텀을 잘 따라가고요. 게임이 출시되기 직전에는 컨센서스가 ‘이 게임이 굉장히 잘할 것’이라고 높게 잡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리스크 테이킹을 어디까지 하느냐가 중요한데요. 게임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베팅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투자) 비중을 축소해서 리스크를 분산시키기를 추천하고요. 그 다음 게임이 출시된 이후에 게임이 정말 잘 돼서 다음 분기와 다음 연도 실적에 얼마나 기여를 할지 계산이 나오면 다시 한번 접근하는 걸 추천합니다.” By.딥다이브게임 좀 하시나요? 저는 사실 겜알못이라 이번 인터뷰 내용이 다 새로웠는데요.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니, 한번 해보고 싶어집니다. 임희석 연구위원님의 게임산업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중국 정부가 지난해 역성장한 게임 시장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판호 발급을 늘렸습니다. 한국 게임 산업엔 분명 기회입니다. ―그동안 중국 게임 시장엔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장르 면에서도 MMORPG 인기는 한물 갔고 최근에 빠르게 뜨고 있는 건 ‘서브컬쳐’ 장르입니다. 세계관과 캐릭터 서사에 빠져들게 만드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입니다. ―‘헤비 유저’의 엄청난 현질(게임아이템 구입)에 의존하며 MMORPG 장르에 편중돼있던 국내 게임사들 입장에선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단순히 판호를 받은 것 말고, 중국에서 먹힐 만한 게임을 만드냐 아니냐가 게임사 주가를 좌우할 겁니다.*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우울한 실적 시즌이 될 거란 예상이 현재로선 빗나갔습니다. 미국 기업의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괜찮게 나오면서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가 강보합세를 보였습니다. 다우지수 0.3%, S&P500 0.33%, 나스닥지수 0.28% 상승. 지난주 미국 대형은행들(JP모건체이스, 시티그룹, 월스파고)이 예상을 웃도는 호실적을 발표했는데요. 17일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슈왑도 예상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내놨습니다. 1분기 순이익이 14% 증가했다는데요. 다만 고객 예치금은 1년 전보다 30% 감소했다는군요. 그래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이후 찰스슈왑도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는데 위기설은 가라앉히게 됐습니다. 찰스슈왑 주가는 이날 3.94% 상승. 반면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부진한 실적(순이익 9% 감소)을 발표하며 이날 주가가 9.18% 급락했습니다.일단 실적시즌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1주차에 보고된 1분기 기업실적은 90%가 예상치(주당순이익 추정치)를 웃돌았습니다. 2012년 이후 가장 좋은 출발이라고 합니다. BOA는 “3월 이벤트(은행 공포)가 일시적이라는 추가적인 증거가 나온다면, 현재의 실적 전망치가 너무 낮은 것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번주엔 은행 중에선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실적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기술 기업 중엔 테슬라, 넷플릭스, IBM이 이번주 실적 발표 예정이고요. 1분기 실적과 함께 기업들이 내놓을 2분기 실적 가이던스에 따라 주가가 영향을 받을 전망입니다. 이에 대해 모건스탠리의 주식전략가 마이크 윌슨은 역시나 비관적인데요. “다음 분기엔 실적 전망치 하향이 실질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구글 모기업 알파벳인데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검색엔진을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Bing)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주가가 2.66% 하락했습니다. 반면 MS 주가는 0.93% 올랐죠. 뉴욕타임스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재 연 30억 달러(약 3조9600억원)를 지불하며 구글 검색 서비스를 갤럭시 스마트폰에 적용하고 있는데요. 삼성전자가 이를 MS 빙으로 갈아타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달 전해지면서 구글 내부가 패닉에 빠졌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 협상은 진행 중이고요. 진짜 갈아탈지, 구글에 남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일단 구글은 크게 자극 받아 AI 기능을 추가한 새로운 검색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군요. 챗GPT가 일으킨 파장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흥미진진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기술적 수치심(Tech Shame)’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단어 그대로 기술 사용법을 잘 몰라서 수치심마저 느낀다는 건데요. 최근 미국에서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Z세대(1995년~2012년생)가 의외로 기술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Z세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문화를 경험했다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가 왜? 이런 의문이 생기는데요.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단순히 Z세대의 특징으로 보긴 어렵기도 합니다. 오히려 세대 공통의 이슈랄까요. 그래서 오늘은 좀 색다르지만 익숙한 주제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바로 ‘프린터’입니다.*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Z세대엔 너무 복잡한 사무기기IT 전공자인 22세 에리카 록은 사이버 보안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했습니다. 상사는 그에게 사무실에서 몇가지 서류를 인쇄한 뒤 서명하라는 업무를 지시했는데요. 자신감 있게 프린트를 시작한 그는 이내 당황했습니다. 인쇄가 되지 않았거든요. 프린터의 터치스크린 화면을 두드려 보고, 잉크를 찾아보고, 전원이 연결됐는지를 점검하며 부산을 떨던 끝에 마침내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용지가 없었던 거죠.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그걸 알아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25세 뉴요커인 아레트 베밀러는 평생을 온라인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홍보담당자로 취업한 뒤 사무실에서 시도한 첫번째 복사 작업은 큰 어려움을 안겨 줬죠. 그는 가디언에 “계속 빈 페이지로 나왔고, 그게 작동하려면 기계에 종이를 거꾸로 넣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 한참 걸렸다”면서 “스캐너와 복사기는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복사실의 베테랑인 나이든 직원들과 친해지는 식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22세 데미안 앤드류스는 얼마전 몇가지 서류를 팩스로 보내달라는 직장동료 요청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거부했습니다. 그는 뉴욕포스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웹사이트가 필요하다면 제가 직접 전체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서 세 개를 팩스로 보내라고 하면 구글에 검색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팩스를 보내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어떻게 보셨나요? 최근 한두달 사이에 미국과 영국 언론에서 다룬 Z세대 관련 기사에 나온 사례들입니다. 한마디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Z세대가 프린터∙스캐너∙팩스∙복사기 같은 고전적인 사무 기술과 씨름하고 있다는 겁니다. 뚱뚱한 데스크탑 PC와 모니터(어디에 전원 버튼이 있는지 찾기 어려움), 그리고 유선전화(외부 전화를 하려면 ‘9’를 눌러야만 함) 역시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요인이죠. 이에 대한 나름의 원인 분석도 나옵니다. Z세대가 익숙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는 사용법이 매우 직관적입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옆으로 넘기면 바로 다 작동하죠. 설명서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런 IT 기기만 다루던 Z세대 입장에선 사무실 곳곳에 놓인 거대한 사무용 복합기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구형 기계인 겁니다. 일일이 구글에서 사용법을 검색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사용법을 알 길이 없죠. 마치 고대 유물을 접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직장에선 Z세대가 기술 면에서 아주 능숙할 거라고 기대한다는 겁니다. 일종의 과대평가인데요. 그리고 본인들도 그걸 알고 있죠. 그래서 나온 말이 ‘기술적 수치심(tech shame)’입니다. 기대치가 높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심하게 느끼는 거죠. 지난해 말 휴렛 팩커드(HP) 설문조사 결과가 바로 이런 특징이 잘 보여줬는데요. 전 세계 사무직 근로자 1만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젊은 직원 중 20%는 “기술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동료들에게 판단을 받는다고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에 비해 기성세대 직원은 25명 중 1명(4%)만이 같은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느낍니다. Z세대가 기술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겁니다. 그럼 해결방법은? 일단은 기성세대가 이를 이해하고 Z세대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겠고요(‘젊은 애가 이런 것도 못하냐’고 놀리는 것 금지). 근본적으로는 번거롭고 구시대적인 사무기술과의 이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2023년이면 스캐너, 팩스, 복사기, 프린터 없이 일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아닌가요?집집마다 프린터가 들어왔다네, 아마도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프린터와 관련한 통계를 찾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아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하이브리드 근무(일주일 3일 출근, 2일 재택)이 일반화되면서 놀랍게도 기업의 인쇄비용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합니다. 엡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기업 IT 관리자 설문조사 결과인데요. 무려 응답자의 89%가 “지난 12-18개월 동안 기업의 인쇄 비용이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평균 14%가 늘었다는데요. 원격근무가 늘었는데 왜 인쇄 비용이 더 들어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위해 집에 프린터를 새로 들여놨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프린터 구입비용을 지원해주거나 아예 프린터를 배송해줬고요. 잉크나 토너 같은 소모품 비용도 대줬다고 합니다. 집에 프린터가 있으면 일이 더 잘 될까요? 핀란드 제지회사 스토라엔소의 지난해 설문조사(유럽 직장인 3400명 대상)에 따르면 재택근무자의 78%는 ‘프린터가 업무 생산성을 높여준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응답자의 76%가 집에 프린터를 둘 정도로 이제 프린터가 홈오피스의 일부가 됐다는데요. 이 회사 조나단 베이크웰 부사장은 “가정용 프린터는 한때 사람들의 집에서 별난 것이었지만 지금은 전자레인지만큼 어디에나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인쇄비용 관리가 골칫거리라는데요. 예컨대 직원들이 회사가 지원한 가정용 프린터로 업무와 관련 없는 것까지 인쇄하면 소모품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으니까요. 이를 모니터링하는 솔루션까지 필요해지는 겁니다. 원격근무로 프린터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집마다 프린터가 자리잡게 될 줄이야. 프린터의 끈질긴 생명력이 놀라운데요. 달리 말해 프린터가 앞으로도 많은 근로자들을 꽤 오랫동안 괴롭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iOS’에만 익숙한 Z세대 또는 알파세대 얘기냐고요? 아니요. 우리 모두요.프린터와의 행복한 공생 방법은쿼라(미국판 지식인)나 레딧(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Printer Suck’을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글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프린터는 형편없나’는 많은 직장인들이 오래 전부터 가진 의문이었습니다.오죽하면 프린터가 1999년 개봉된 미국의 유명 블랙코미디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Office Space)’에서도 중요 소품으로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잦은 고장으로 짜증을 불러 일으켰던 사무실 프린터를 주인공들이 야구 방망이로 때려 부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죠. 한낱 사무기기를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프린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들이 넘칩니다. 주요 불만 사항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잉크와 토너가 엄청나게 비싼데, 그나마 긴급한 순간엔 바닥나곤 한다.-무선 또는 유선 네트워크가 제대로 연결이 안 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컴퓨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드라이버가 사라진다.-용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거나 자꾸 걸린다.-비밀스러운 인터페이스 때문에 고객센터에 가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프린터가 덩치 크고 돈은 많이 드는데 일은 못하고 수명도 짧은 형편없는 기계라고 생각하는데요. 냉정하게 봐도 프린터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후집니다. 각 제조업체가 서로 다른 독점적인 드라이버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서로 다른 조건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일관성이 없죠. 게다가 요즘 같은 자동업데이트 시대에 걸핏하면 드라이버가 오래돼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사라져버리기 일쑤이고요.그럼에도 필요하니까 계속 사는 거겠죠. 실제 지난해 휴렛 팩커드가 미국과 캐나다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는데요. 재택근무 중 사무실에서 가장 그리웠던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를 차지한 게 바로 프린터였습니다(57%가 선택, 복수응답). 동료와의 해피아워(스탠딩 파티)나 무료 점심식사를 제치고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왕 프린터를 쓸 거라면 불평하기보다는 관리를 잘 하는 게 먼저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싸구려 모조품 잉크 카트리지를 쓰지 않고, 질이 좋은 용지를 쓰고,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청소(퍼지 Purge)를 해주라는 겁니다. 사무실 복합기라면 렌털업체를 통해 관리를 받는 게 가장 심플한 답이고요. 한마디로 돈을 들인 만큼 얻는 게 있는 법입니다. 2010년대 초반, 한국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종이 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을 구축하겠다고 나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며 종이 없이 회의하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종이 없는 사무실이란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아시나요? 무려 48년 전인 1975년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가 쓴 ‘미래의 사무실’ 기사에 나왔습니다. 기사에서 조지 페이크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 소장은 “1995년 책상 위엔 키보드가 있는 TV디스플레이 단말기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요. 그는 “화면에 있는 내 파일에서 문서를 불러올 수 있고, 메일이나 메시지도 받을 수 있다”면서 “그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하드 카피(인쇄된 종이)를 원할지 모르겠다”고 내다봤습니다(참고로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는 그래픽이용자인터페이스(GUI)와 이더넷, 레이저 프린팅을 개발). 다른 건 다 정확히 들어 맞았는데 마지막 예언만 빗나갔죠. 오히려 PC와 저렴한 프린터가 사무실에 도입되면서 직원당 문서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종이 사용은 급증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까지 도입된 지금도 ‘종이 없는 사무실’은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적 꿈으로 여겨지는데요. 종이에 대한 애착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그렇다면 프린터와의 씨름도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20년 뒤에도 ‘요즘 신입사원들은 프린터 쓰기를 어려워한다’는 게 뉴스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By.딥다이브‘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모두가 원하는 프린터’. 지난 2월 이런 제목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읽으며 프린터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놀라웠는데요. 이번에 Z세대 관련 보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주제인데 왜 그동안 기사 쓸 생각을 못했을까요. 프린터와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직장생활을 시작한 Z세대들이 고전적인 사무용 기기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직관적인 iOS에 익숙한 이들에게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 팩스는 너무나 복잡해서 ‘기술적 수치심’마저 느끼게 합니다.-PC는 물론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까지 보편화됐지만 기업의 인쇄 비용은 오히려 늘어가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직원들이 집집마다 프린터를 들여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프린터가 있어야 일이 잘 된다고 많은 근로자들은 생각합니다.-동시에 프린터는 돈 많이 들고 고장 잘 나는 골칫거리 기기로 여겨집니다. 형편없는 기계라며 프린터에 화를 내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하지만 1995년이면 올 거라던 ‘종이 없는 사무실’ 시대는 영영 오지 않을 분위기. 프린터와 평화롭게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예상보다 낮은 물가상승률은 연준 긴축 사이클의 끝을 알리는 신호일까요. 일단 투자자들은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다우지수 1.14%, S&P500 1.33%, 나스닥지수 1.99% 상승 마감했네요. 이날 개장 전 나온 생산자물가지수(PPI) 보고서가 상승세를 견인했습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PPI는 전월보다 0.5% 하락했는데요. 2020년 4월 이후 가장 큰 하락폭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한 PPI 상승률은 2.7%로, 시장 예상치(3%)를 밑돌았습니다. 생산자물가의 상승세가 확연히 둔화된 건데요. 전날 나왔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5.0%)은 약간 애매했거든요. 예상치를 밑돌긴 했지만 시장에 안도감을 주기엔 살짝 부족했는데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좀더 뚜렷하게 인플레 둔화를 알렸습니다. 도매물가의 하락세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이날은 실업수당 통계도 나왔는데요. 신규로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 수가 예상치(23만5000명)보다 많은 23만9000명을 기록했습니다. 뜨거웠던 미국 고용시장이 식어가고 있다는 뜻인데요. 이 역시 월가에선 긍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TS롬바드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블리츠는 FT에 “실업률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오르기 시작할 거고 그렇게 되면 연준은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이날 투자자들을 환호하게 만든 또 한가지는 앤디 재시 아마존 CEO의 주주 서한입니다. 아마존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전쟁에 뛰어든다는 사실을 공개했는데요. 베드록(Bedrock)이란 이름의 새로운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개인소비자를 겨냥한 AI 챗봇을 내놓은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달리 기업용 AI 서비스에 집중한 건데요. 기업 고객은 베드록을 통해 복수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존이 자체 개발한 LLM인 ‘타이탄’은 물론 스타트업인 AI21랩스와 앤트로픽의 LLM에도 접근할 수 있다는군요. 앤디 재시 CEO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기업들은 대규모 언어모델을 사용하길 원하지만 훈련하는데 수십억 달러가 들고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은 그것을 거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그들은 이미 훌륭한 기본 모델에서 작업한 다음 목적에 맞게 사용자 정의를 할 수 있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바로 ‘베드록’”이라고 설명했죠. 이날 아마존 주가는 4.67%나 급등했습니다. 한동안 아마존은 성장동력이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주가가 급락했는데요. AI 경쟁에서도 뒤지면서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마저 MS나 구글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죠. 일단 아마존은 서둘러 AI 서비스를 내놓으며 치고 나가는 모습인데요. 클라우드 서비스를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지겠군요. By. 딥다이브*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하면 전기차가 주로 떠오르실 텐데요. 미국 정부가 보조금 100억 달러를 지원하며 육성하겠다고 한 또 다른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태양광입니다. 중국이 독주하던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데요. 미국뿐 아니라 유럽까지 ‘리파워(REPower EU)’ 정책으로 자체 태양광 산업 육성에 나섰습니다. 중국이 쥐고 있는 태양광 시장의 패권을 일부라도 다시 되찾아 오겠다는 건데요. 과연 미국과 유럽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까요. 중국산업과 기업을 담당하는 강효주 KB증권 수석연구원을 인터뷰했습니다.*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태양광이 다시 뜨거워진다-태양광 산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IRA, 유럽은 리파워EU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자국 태양광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왜 특히 태양광에 주목할까요?“첫 번째로는 경제학적 관점입니다. 화력 발전보다도 태양광 발전의 원가가 훨씬 낮아지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에 도달을 했습니다. 중국이 워낙 태양광 캐파(생산능력)를 많이 늘리고 있다 보니까 매우 빠르게 발전 단가가 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훨씬 더 떨어질 거라고 전망되다 보니까 이걸 놓칠 수 없는 거죠. 두 번째로는 정치적 관점에서 에너지 안보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전기가격이 폭등했죠. 에너지 자립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풍력은 정부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투자를 해야 하지만, 태양광은 가정에서도 쉽게 깔 수 있거든요. 그래서 유럽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열심히 하고 있죠. 미국은 그냥 중국이 싫은 겁니다. 미국이 지금 하고 있는 가스 발전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구매력 자체에서 중국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발전 원가가 낮은 태양광을 갖다 써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중국을 때리고 싶은 겁니다. 그 과정에서 태양광 시장은 어쨌든 커질 수밖에 없는 국면입니다.”-그럼 앞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규모가 얼마나 가파르게 늘까요?“중국∙미국∙유럽이 태양광 3대국이 될 텐데요. 각각 목표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유럽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600GW를 신규로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2021~2022년 유럽이 깔아놓은 신규 용량이 68GW 정도밖에 안돼요. 향후 8년간 530GW 정도를 깔겠다는 거죠. 미국은 2035년까지 발전량 중 35% 정도를 태양광으로 채우겠다고 얘기합니다. 이걸로 추산하면 2030년까지 추가로 깔려야 하는 용량이 300GW 정도 됩니다. 지금 300GW 정도 태양광 발전용량을 가진 나라는 중국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미국과 유럽이 매우 강력한 목표치 숫자를 제시한 겁니다. 중국은 목표치 총량을 밝히진 않았지만, 정부가 하려는 대형 태양광 프로젝트는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30년까지 500GW 정도 태양광을 만들겠다고 해요. 따라서 이 세 지역 목표치를 다 합치면 1300GW 정도가 추가로 깔리게 됩니다. 참고로 지난해 중국이 80GW, 미국 20GW, 유럽이 40GW 정도를 깔았거든요. 앞으로 성장할 여력은 매우 큽니다.”-목표대로 된다면 지금보다 태양광 발전 용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겠네요. “2022년 수준의 2배 정도를 매년 깔아야지만 달성할 수 있는 숫자라고 보시면 됩니다.”3세대 셀은 누가 만드나?-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중국으로 패권이 완전히 넘어갔는데요.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얼마나 압도적인가요?“태양광 밸류체인을 4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폴리실리콘-웨이퍼-셀-모듈 순서인데요. 대체적으로 다 75% 이상 중국이 차지하고요. 그 중에서도 웨이퍼 같은 경우엔 중국이 전 세계의 96%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잉곳과 웨이퍼가 없으면 결국 모듈을 못 만드니까, 어떻게 보면 전 세계를 중국이 다 장악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중국이 태양광 시장을 지배하게 된 건 아무래도 중국 정부의 지원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기술력에서도 중국 기업이 앞선다고 볼 수 있나요?“밸류 체인별로 좀 나눠서 설명할게요. 4가지 밸류체인 중 셀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폴리실리콘∙웨이퍼∙모듈은 기술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규모의 경제, 즉 얼마나 많은 양을 만들어서 가장 낮은 단가로 공급하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아무래도 중국이 가장 공장을 열심히 지어놨기 때문에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서 전 세계를 장악했고요. 셀은 조금 다릅니다. 셀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까만 체크무늬 태양광 패널은 모듈을 연결해서 만든 거죠. 이 모듈의 성능을 결정하는 게 바로 셀입니다. 셀이 결국 배터리인데요. 태양광을 받아들여서 얼마나 많은 전기로 전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게 셀이에요. 그렇다 보니 셀의 경우엔 기술에서 중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셀 기술은 현재는 2세대인 ‘퍼크(PERC)셀’이 주로 쓰이고요. 이제 기술적 한계에 와서 3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3세대는 TOPCON, HJT, IBC라는 세가지 기술이 나와있는데요. 이 세 기술 모두에서 실제 양산을 하거나 캐파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습니다.유럽이나 미국 기업 중 3세대 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기업이 다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양산 일정은 보통 2025년 이후입니다. 중국은 당장 2023년 말이면 나올 수 있는데 그들은 2년 뒤에나 나올 수 있는 거죠. 일단 셀 부분에선 중국 기술력이 좀 더 높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중국 따돌리기 가능할까-그럼 미국과 유럽이 자국에 태양광 산업을 육성하려면 결국 중국에서 원자재 수입을 늘리거나 중국 기업의 현지 생산공장을 유치해야 하나요?“그래서 그런 게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 한화솔루션 주가가 날아갔던 가장 큰 이유가 미국이 IRA를 시행하면 중국 태양광 기업이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죠. 한화큐셀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셀 모듈 기업이라고 여겼는데요. 3월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중국은 물론 글로벌리 가장 큰 셀∙모듈 기업인 융기실리콘자재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셀∙모듈 공장 5GW를 오하이오에 짓기로 했고요. 미국도 아는 거죠. IRA를 통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지으면 지원해주기로 한 100억 달러로는 자기네가 원하는 목표치 300GW를 도저히 충족시킬 수가 없다는 걸요. 그래서 중국 기업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이 IRA를 시행하면서 미국 기업 또는 동맹국 기업만 키우고 ‘중국은 절대 안돼’라고 할 줄 알았는데, 태양광에서는 그게 먹히지 않는군요. “태양광은 쉽지 않습니다. 전기차는 중국이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태양광에선 지금은 중국이 주로 마지막 완성품인 모듈을 수출하는데, 앞으로 모듈은 점유율이 좀 떨어지겠지만 그 앞단계인 셀을 주로 수출하는 나라로 변하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 현지에 중국 셀 기업들이 공장을 지으면 중국산이 미국산으로 변하는 것일 뿐, 중국 기업의 셀에 있어서의 영향력이 빠지기엔 어려울 걸로 봅니다.” -유럽도 태양광을 늘리려면 미국처럼 중국에 어느 정도 의존하게 될까요? “미국처럼 유럽도 모듈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셀은 중국 기업이 유럽에 공장을 설치하도록 하든지, 아니면 그냥 셀을 수입해오든지 하는 방법을 찾을 것 같습니다.”중국이 웨이퍼 기술 수출을 제한한다?-미국이 지난해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 신장에서 생산된 태양광 제품 수입을 규제한다고 하지 않았었나요?“첫 번째로 좀 오해들이 있었어요. 미국이 신장산 폴리실리콘을 제재하겠다라고 말은 했는데 실제로 제재는 한 적 없습니다. 중국산 모듈과 폴리실리콘은 거의 다 미국에 그냥 수입이 됐어요. 다만 시간이 딜레이 되긴 했죠. 모듈을 수출할 때 거기 쓰인 폴리실리콘이 신장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라고 미국 상무부가 요구를 했다더라고요. 그러니까 미국 규제 수준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고요. 또 다른 하나의 오해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대부분 폴리실리콘이 신장산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데요. 사실 아닙니다. 중국 폴리실리콘의 30% 정도만 신장산이에요. 그리고 폴리실리콘 기업들이 대부분 신장 이외 지역에 공장을 증설하려고 하고 있죠. 왜냐면 미국이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을 요구할 거거든요. 친환경 제품을 만들 때 만드는 방식도 친환경이어야 한다는 건데요. 신장산 폴리실리콘이 그동안 많았던 건 신장에 화력발전단지가 있어서 싸게 폴리실리콘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중국도 이제 화력 말고 수력이나 자체 태양광 발전으로 공장으로 돌리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2025년쯤엔 중국 전체 폴리실리콘 생산량 중 신장산 비중이 25% 밑으로 떨어질 겁니다.”-최근엔 중국 정부가 웨이퍼 생산기술 수출을 제한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오던데요? 그게 미국이나 유럽에 어떤 타격을 줄 수 있는 건가요?“별로 큰 타격은 없어요. 웨이퍼 기술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얘기는 했는데요. 대충 대형웨이퍼 기술, 블랙 실리콘 기술이라고만 알려져 있지 구체적인 게 기준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어요. 그냥 한번 언론 플레이를 한 게 아닌가 싶고요. 두 번째로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웨이퍼는 제조 기술이 어렵지가 않습니다. 지금 중국이 웨이퍼 제조 기술을 다 갖고 있는 이유는 너무 수익성이 안 좋으니까 다른 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다 포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웨이퍼는 반도체 웨이퍼에서 사양이 좀 낮은 것을 태양광 발전에 쓰고 있거든요. 그냥 돈이면 해결 가능하기 때문에 별로 중국의 무기가 되진 않을 겁니다.” -그럼 이것도 결국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갈 확률이 높겠네요? “아마도요. 저는 그 정책은 인도를 타겟팅한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중국, 미국, 유럽 다음으로 인도가 태양광 시장에서 엄청나게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요. 인도가 지난해부터 수입산 태양광 셀, 모듈에 고관세를 매기기 시작했거든요(인도 현지 생산품 보호를 위해 수입산 셀 25%, 모듈에 40% 관세 부과). 인도도 자국에 태양광 밸류체인을 짓고 싶은 건데요. 그런데 인도는 돈이 없죠. 그럼 중국이 웨이퍼 기술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하면 인도엔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 인도가 고관세를 매기면서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수출량이 많이 줄었어요. 이걸 괘씸해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모듈 기업 말고 여기를 주목 -투자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중국 태양광 기업 하면 가장 큰 융기실리콘부터 떠오르는데요. 주가는 지난해 여름 이후 줄곧 내리막이더라고요?“아무래도 미국과 유럽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뜯어보면 모듈 말고 셀은 수출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게 아직 숫자로 찍히지 않다 보니 우려스러운 거고요. 두 번째는 가장 적극적으로 태양광을 깔아왔던 나라가 중국이었는데요. 중국 정부가 올해 태양광 설치 목표치를 좀 보수적으로 줬습니다. 기존엔 항상 태양광과 풍력 목표치를 말도 안 될 정도로 공격적으로 줬는데요. 올해는 10%도 안 되는 성장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이제 설치할 만큼 했다는 건가’라는 투자심리가 있어요. 저는 그건 별로 우려스럽지 않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중국이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서 깔겠다는 숫자를 이미 밝혔고요. 그 스케줄 대로만 가려해도 지금의 2배 이상 설치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가 이제 양보다는 좀 질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긴한데요.다만 융기실리콘은 매출의 거의 50%가 수출인데요. 아무래도 모듈 수출량이 셀 수출로 바뀌는 과정에 있는 지금 같은 과도기에는 주가가 안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셀∙모듈 기업을 그렇게 선호하진 않습니다.”-셀∙모듈 생산 기업이 별로라면 다른 태양광 기업 중 유망하게 보는 곳은 어디인가요?“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인버터입니다. 태양광은 직류라는 전기 종류를 받고요, 송전을 하려면 교류로 바꿔줘야 합니다. 직류로 받은 태양광을 교류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인버터입니다. 중국이 앞으로 질적 성장으로 태양광 정책을 바꿀 거라고 보는데요. 발전 양을 늘리기보다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꽂는 쪽으로 갈 것 같아요. 중국에 엄청난 대형 태양광 발전소를 깔아놨는데, ESS가 없으면 낮에만 잠깐 쓰고 밤엔 무용지물이 돼버리거든요. 이제 대형 태양광 발전소에 ESS를 꽂게 만들 겁니다. 이렇게 가면 크게 변하는 게 바로 인버터입니다. 지금 현재 인버터는 직류를 교류로만 바꿔주면 되는데요. ESS에 저장했다가 꺼냈다가 다시 저장했다가 하려면 ‘직류→교류’뿐만 아니라 ‘교류→직류’로도 양방향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ESS용 인버터는 기술력도 훨씬 높고 단가도 일반 인버터보다 높습니다. 중국에 있는 수많은 대형 태양광 발전소에 ESS인버터가 추가로 필요할 테니, 그 기업들이 득을 볼 가능성이 크죠. 다만 안타까운 건 그 기업 이름이 한국어로는 양광전력, 영어로는 선그로우(Sungrow)인데요. 한국 개인 투자자는 투자하지 못합니다. 창업판에 상장돼 있거든요. 그래서 그 종목이 담긴 ETF를 거래하는 게 방법이고요. 또 좋게 보는 게 태양광 셀 장비인데요. 셀 기술이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간다고 말씀드렸죠. 3세대 셀 공장을 마구 증설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거기 들어가는 장비 수요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점인데요. 문제는 그 셀 장비도 국내 개인 투자자가 투자하진 못하는 상황입니다. 장비를 담고 있는 ETF는 국내엔 없고 홍콩 또는 중국 본토에서 거래되는 ETF가 있습니다.” -태양광 셀 장비를 하는 기업들은 어디가 있나요?“세 곳이 있는데요. 가장 선호하는 기업은 마이웨이테크(Maxwell)로, 3세대 셀 중 HJT를 담당합니다. 그 다음 제자웨이촹신에너지(S.C New Energy)는 3세대 셀 중 TOPCON의 장비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입니다. 나머지 하나가 디얼레이저(DR Laser)로 이름 대로 레이저를 담당하는 업체인데요. 2세대에서 글로벌 점유율 80%를 가지고 있었으니 3세대에서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펼칠 거라고 봅니다. 혹은 우리나라 장비 업체들에서 투자 기회를 좀 찾아볼 수 있겠죠. 대표적으로 주성엔지니어링이 태양광 셀 장비를 하는 기업입니다.” By.딥다이브요즘 미국과 유럽 언론에 태양광 산업 육성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요. 대체로 ‘태양광 산업을 육성하려고 보니, 중국 기업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더라’라는 한탄이 주를 이룹니다. 저렴한 중국산 모듈에 너무 오래 의존하다 보니, 이제 와서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건데요. 전기차 시장과는 또다른 구도인 듯해서 흥미롭습니다. 태양광 시장 관련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미국과 유럽 모두 태양광 발전량을 급격하게 늘린다는 목표치를 잡았습니다. 2030년까지 중국을 포함한 3대 지역에서 총 1300GW 용량을 새로 깐다는 목표입니다. -현재 태양광 시장은 중국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셀 기술에선 중국 기업이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 받습니다. -최근 융기실리콘이 미국에 5GW의 모듈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이 태양광에선 중국 기업도 받아들이는 겁니다. 결국 셀 기술력에 있어서는 중국의 우위가 계속될 전망입니다. -투자 면에서 지금은 셀∙모듈 기업보다는 셀 장비나 인버터 기업이 더 유망한 국면입니다. 다만 관련 중국기업은 국내 개인 투자자가 직접 투자할 길이 없어서 ETF를 통한 간접투자만 가능합니다. *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물가 데이터 발표가 예정된 바쁜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미국 뉴욕증시는 월요일을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0.30%)와 S&P500(+0.10%)는 소폭 상승, 나스닥은 소폭 하락(-0.03%). 장 초반 3대 지수는 7일 발표됐던 3월 고용보고서 여파로 하락 출발했습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새로 생긴 일자리는 23만6000개로 집계됐는데요. 2월(32만6000개)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을 단념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선물 시장에선 다음 달 회의에서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약 69%에 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57%)보다 증가한 겁니다. 물론 많은 것은 수요일 발표될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목요일에 나올 생산자물가 데이터에 달려있겠지만요.이번주는 어닝시즌도 시작됩니다. 델타에어라인이 목요일, 웰스파고∙시티그룹∙JP모건체이스가 금요일에 분기 실적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어닝시즌에 대한 전망은 썩 좋지 않은데요. 애널리스트들은 S&P500 기업들이 2분기 연속으로 수익 감소를 보고할 걸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팩트셋에 따르면 1분기 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8% 감소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는 코로나 여파로 전년 동기보다 32%나 이익이 줄었던 2020년 2분기 이후로 가장 큰 감소폭일 거라는 군요. 브라운 어드바이저리의 에릭 고든 주식책임자는 WSJ에 “기업 수익의 관점에선 이미 경기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대형은행의 실적 발표에 주목해야 하는데요. 금융 불안의 여파로 은행들이 실제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알바리움티더만의 최고투자책임자 낸시 커틴은 FT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은행 수익 자체가 아니라 CEO가 대출 조건에 대해 말하는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은행의 대출 조이기가 본격화됐다면 이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기업의 수익 기대치를 떨어뜨려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줄 거고요. 이날 주요 빅테크 주가는 대체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1분기에 애플의 PC 출하량이 40.5%나 급감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애플 주가가 1.6% 하락했죠. 반면 반도체주는 상승했습니다. 마이크론 8.04%, 웨스턴디지털 8.22%, 엔비디아 2.00%, AMD는 3.26% 올랐죠. 삼성전자의 감산 발표로 반도체 업황이 이제 바닥을 칠 거란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 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2차 전지’입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으로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투자자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그런데 전기차용 배터리 세계 1위 기업이 어디인지 아시지요? 바로 중국 CATL(중국명 寧德時代, 닝더스다이)입니다. 물론 중국 시장을 빼고 계산하면 여전히 LG에너지솔루션이 1위이지만,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데요. CATL은 IRA 법이라는 장벽에도 포드(Ford)와 테슬라(Tesla)가 기어이 손 잡으려하는 배터리 기업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신경 쓰이는 중국 기업, CATL의 전략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미국 기업이 손잡는 중국 기업지난 2월 미국 포드가 CATL과 손잡고 35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까지 만들면서 배제하려고 했던 중국 기업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다들(특히 미국 정치권과 한국 배터리 업계가) 깜짝 놀랐는데요. 지분을 나눠 갖는 합작사 형태가 아닌, CATL이 기술만 제공하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규제를 피했습니다(지분은 100% 포드가 소유). ‘중국 배터리가 IRA 우회로를 찾았다’는 말이 나왔죠.3월 말엔 블룸버그 통신이 테슬라가 CATL과 미국 공장 건설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포드와 같은 방식이 될 거라는데요. 기술제휴란 꼼수를 통한 CATL의 미국 상륙 길이 뚫리는 듯합니다.그런데 전기차용 배터리 좀 아시는 분은 이런 궁금증이 생길 겁니다. 중국 배터리? 그거 에너지 밀도 낮고 주행거리 짧은 싸구려 아니야? 왜 미국 기업들이 그걸 못 써서 안달이지?네, 맞는 얘기입니다. CATL를 포함한 중국 기업의 주력 제품은 리튬인산철(LFP)배터리.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값이 싼 인산철을 씁니다. 한국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니켈∙코발트∙망간 등 비싼 소재를 양극재에 씀)보다 저렴하죠. 대신 LFP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약 20% 떨어집니다. 같은 부피∙무게 배터리라면 담을 수 있는 에너지 용량이 적다는 뜻입니다. 한번 충전했을 때 차가 달릴 수 있는 거리가 그만큼 짧은 겁니다.그래서 몇 년 전만해도 LFP배터리는 값싼 중국 전기차에서나 쓰는 걸로 알았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달라진 건 테슬라 때문입니다. 2021년 테슬라가 미국 판매용 모델3에 CATL 배터리를 쓰기 시작한 거죠. 이젠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BMW 같은 유럽차도 보급형 모델엔 CATL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왜 그럴까요? 당연히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겠죠. 짐 팔리 포드 CEO는 2월 기자회견 당시 “LFP배터리 생산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기차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LFP는 가장 저렴한 배터리 기술”이라고 CATL과 손잡은 이유를 밝혔습니다.그런데 그게 다는 아닙니다. LFP배터리의 최대 단점(낮은 에너지 밀도)을 극복한 CATL의 기술력도 작용했다고 봐야 하는데요. 바로 셀투팩(CTP, Cell to Pack) 기술입니다.1회 충전에 1000㎞ 간다?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소재를 쓰거나, 차에 배터리를 엄청 많이 넣는 거죠. CATL은 두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최대한 빽빽하게 배터리 셀을 채워 넣기로 한 거죠.그래서 2019년 CATL이 선보인 게 셀투팩(CTP) 기술입니다. 개념은 아주 간단합니다. 원래 배터리 셀을 모아서 ‘모듈’을 만들고 다시 모듈을 여러 개 합쳐서 배터리 ‘팩’으로 만들어서 전기차에 장착했는데요. CTP는 그 모듈을 없애버린 겁니다. 그냥 셀을 모아 바로 팩을 만들죠. 모듈이 차지하던 공간을 셀로 채우니까 이전보다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게 되는데요.지갑(모듈)과 가방(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5만원짜리 지폐(셀)를 여러 개 지갑에 나눠 가득 담은 뒤 가방에 넣는 것과 지갑 없이 바로 가방에 가득 담는 것. 어느 게 더 많은 돈이 들어갈지는 뻔하겠죠?한마디로 소재의 한계(에너지 밀도 낮음)를 구조(빽빽하게 많이 넣음)로 극복하는 전략입니다. CATL은 이 기술을 계속 업그레이드 시켜 지난해 ‘기린배터리’라는 이름의 신제품을 발표했는데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000㎞라고 홍보합니다(주행거리 기준이 달라서 한국 기준으로는 더 짧아짐).모듈 없애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소재 특성상 삼원계 배터리는 안정성이 좀 낮아서(화재 위험) 모듈을 없애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CTP가 LFP배터리에만 적용되는 이유이죠. 참고로 LG에너지솔루션도 CTP기술을 2025년에 적용한다는 계획이긴 합니다. 삼원계 배터리에 적용하는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겁니다.“우린 자동차 안 만들어”“우리는 자동차 만드는 방법을 모릅니다.” 지난달 투자 설명회에서 쩡위친 CATL 회장이 한 말입니다. CATL이 완성차 제작에 뛰어들 거란 시장의 관측을 부인하는 발언이었는데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CATL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 이익률은 17%에 달하는데요. 반대로 전기차 제조사들은 일부 선두업체를 제외하고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죠. 중국에선 오죽하면 ‘자동차 회사가 CATL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CATL로서는 굳이 레드오션인 완성차 분야에 뛰어들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자동차 제조사를 고객으로 두는 게 더 이익이죠.그런데도 왜 중국에선 CATL이 차를 직접 만들 거란 얘기가 꾸준히 나오는 걸까요. CATL이 여러 완성차 업체(스타트업 포함)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CATL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CTP 뒤를 잇는 다음 단계의 기술, 셀투샤시(CTC, Cell to Chassis) 때문입니다.셀투샤시(CTC)도 개념은 어렵지 않습니다. 배터리 ‘모듈’은 물론 ‘팩’도 만들지 않고 배터리셀을 바로 차량 샤시와 통합시켜 버리는 겁니다. 주행거리를 더 늘리고 비용은 더 줄일 수 있죠.셀투팩(CTP)을 조금 더 확장하면 셀투샤시(CTC)가 되는 것 아닌가 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차원이 다른 기술인데요. 왜냐하면 샤시는 본래 배터리 기업이 아니라 차량 제조사가 만들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기업이 혼자 개발하기란 불가능하죠. 초기 연구개발 단계부터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기업이 아주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만들 수 있습니다. CATL이 자동차 회사에 계속 지분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CATL은 이르면 2024년 말쯤 CTC 기술을 적용한 첫번째 차량이 출시될 거라고 밝혔는데요. 과연 완성차 업체들이 생명줄처럼 쥐고 있는 샤시설계 기술을 CATL과 공유하려 할까요. 배터리와 샤시가 통합되면 배터리가 고장 나도 수리할 수 없을 거란 걱정이 많은데, 극복 가능할까요.리튬 비싸다, 나트륨배터리! 셀투팩과 셀투샤시 둘다 결국 배터리를 더 싸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기술입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서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게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인데요. 같은 이유로 CATL이 밀고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나트륨이온전지입니다.지금 전기차에 쓰는 건 다 리튬이온전지이죠. 그런데 리튬 가격이 요즘 좀 내려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쌉니다. CATL은 아예 리튬 대신 나트륨을 쓰는 2차전지를 개발했고(2021년) 올해 안에 양산에 들어갑니다.아시다시피 나트륨은 바닷물 퍼내서 거의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죠. 배터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소재인데요. 그래서 벌써부터 ‘나트륨이온배터리가 게임체인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실제 어떻게 나올지를 두고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나트륨은 리튬보다 풍부하고 저렴하지만 단점도 뚜렷합니다.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죠. CATL 측은 나트륨배터리와 리튬배터리를 동시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500㎞ 수준으로 만들 거라고 밝혔는데요. 한편에서는 나트륨배터리 특성상 전기차용보다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주로 쓰일 거란 관측도 있습니다.바쁜데 발목 잡는 이들이 많다 한마디로 CATL은 ‘더 싼 배터리’를 만드는 기술에선 확실히 앞서 있습니다.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37%)를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요(6년 연속 점유율 1위). 그럼 CATL 미래는 밝고 희망차냐고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여기도 고민거리가 산더미입니다.우선 중국 내수 시장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게 아닙니다. 경쟁업체가 치고 올라오면서 CATL의 중국 시장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데요. 지난해 48%였던 CATL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월 44%로 떨어졌습니다. 2위인 BYD(비야디)가 34%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격차가 10%포인트까지 좁혀졌죠. CALB 같은 중견업체들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요.오죽하면 CATL이 지난달 ‘반값 리튬(톤당 20만 위안)’으로 배터리 판가를 낮추면서 중국 고객사와 3년 장기계약을 체결했을 정도인데요. 자체 리튬 광산을 보유한 CATL이 경쟁업체를 누르기 위해 가격전쟁을 시작한 겁니다.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치킨게임의 승리자가 돼서 중국 시장을 평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그걸 썩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인데요. 지난 6일 쩡위친 CATL 회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시 주석이 묘한 발언을 했습니다. CATL의 급성장에 대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도 된다”고 한 겁니다.그는 “초기에 기세 좋게, 시끌벅적하게 일어났다가 마지막에 흐지부지되는 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는데요. 시 주석 발언이 나온 지 며칠 뒤 CATL은 50억 달러 규모로 예정했던 스위스 증시 상장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기관이 상장 규모를 5분의 1로(10억 달러로) 줄이라는 지침을 줬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기업이 너무 커져서 자신들의 통제 밖에 놓이길 원치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죠.물론 가장 큰 위험요인은 미국의 견제입니다. FT의 최근 기사를 인용하자면 ‘CATL이 직면한 장기적인 위험은 미중 갈등이 고조돼 과거 ‘화웨이’ 사례처럼 미국 관료들이 CATL을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CATL을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FT에 따르면 쩡위친 CATL 회장은 지정학적 위험을 항상 걱정해왔다고 합니다.이미 미국 의회에선 견제를 시작했습니다. 공화당인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은 “포드의 프로젝트가 미국의 가장 큰 지정학적 적을 심장부로 데려올 것”이라며 CATL과 설립하는 배터리 공장에 IAR 보조금을 주지 않는 법안을 발의했죠.떨어지는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에도 바쁜 와중에 중국 정부와 미국 정치권의 견제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왔던 CATL가 예전처럼 질주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배터리라는 미래 먹거리를 놓고 경쟁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예의주시해야 할 이슈입니다 By.딥다이브한국 기업이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는 마치 스마트폰의 아이폰 같은 하이엔드급 고성능 제품입니다. 어찌 보면 아직 CATL과는 직접적인 경쟁관계라기보다 좀 다른 물에서 놀고 있는 건데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도 LFP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데서 보듯이 그 시장이 커지는 추세인 건 분명합니다. CATL이 값 싼 배터리로 승부한다고 해서 무시할 건 아니라는 거죠. CATL 관련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포드에 이어 테슬라도 CATL과 기술제휴를 통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중국을 견제하는 IRA법을 우회할 길이 생겼습니다.•가격이 저렴하다는 건 LFP배터리의 매우 큰 장점입니다. CATL은 ‘셀투팩’이라는 기술을 통해 LFP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고 주행거리를 늘리고 있습니다.•CATL은 ‘셀투샤시’와 ‘나트륨배터리’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며 업계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죠.•하지만 CATL 앞에 놓인 난관도 적지 않습니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경쟁업체를 따돌려야 하고, 미국과 중국 정부의 견제까지 극복해야 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이 시작되는 거죠.*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뜨거웠던 미국 노동시장이 식어가고 있을까요. 고용보고서 발표와 성금요일의 날 휴장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선 관망심리가 짙어졌습니다. 거래량이 많지 않지 않은 가운데 3대 지수는 강보합세로 마감했네요. 다우지수 0.01%, S&P500 0.36%, 나스닥 0.76% 상승. 이날 개장 전 나온 실업수당 지표는 미국 노동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2만8000건이었는데요. 월가 전망치(20만)를 웃돌았습니다.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계속 청구’ 건수는 182만 건입니다. 202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군요.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의 이안 셰퍼드슨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해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고 설명합니다. 좀더 분명한 신호는 7일 발표될 3월 고용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을 텐데요. 만약 비농업 신규고용 수치마저 시장 예상을 밑돌 경우엔 경기침체가 다가온다는 관측에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예상치에 따르면 3월 비농업 고용은 23만8000명 증가할 전망인데요. 2월 31만1000명보다 줄어들 거란 뜻입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의 로버트 암스트롱은 “혼란스러운 경제사이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내다봅니다.좀더 강하게 경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JP모건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입니다. 이날 CNN과 단독 인터뷰를 했는데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이후로 첫 인터뷰였습니다. 다이먼은 “우리는 사람들이 대출을 조금 줄이고, 조금 삭감하고, 조금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은행 혼란이 “반드시 경기침체를 초래하는 건 아니지만 경기침체에 가깝다(it is recessionary)”라고 덧붙였습니다.그는 이번주 초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은행 위기의 파장을 경고했는데요. 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 사태가 “시장에서 많은 불안을 불러일으켰고 은행과 대출기관들이 더 보수적이 되어감에 따라 금융조건을 다소 긴축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위기가 일단 끝나더라도 그 영향은 수년 간 지속될 것”이라고도 썼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은 좀더 우울한데요.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워싱턴 연설에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향후 5년 간 약 3%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1990년 이후 가장 느린 속도”라고 말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경제분열과 지정학적 긴장이라는데요. 그는 “강력한 성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거칠고 안개가 자욱하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밧줄은 몇 년 전보다 약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음식점에서 식사한 뒤 서빙해준 직원에게 ‘팁(tip)’을 줘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국이라면 팁 주는 게 어색하겠지만 미국에선 팁을 주지 않는 게 무례한 행동으로 통하죠. 팁 자체가 곧 미국 문화인 건데요.그런데 팁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요즘 미국에선 서비스 가격의 20%가 기본이라는데, 정말 적정한 게 맞을까요? 어디까지가 팁의 대상일까요. 드라이브스루로 커피를 주문한다면 얼굴도 마주치지 못한 직원에게 팁을 줘야만 하는 걸까요.다른 나라에서는 별로 고민할 일 없는 팁 문화를 두고 미국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이른바 ‘팁플레이션(Tipflation, 팁+인플레이션)’ 현상 때문인데요. 미국의 팁을 둘러싼 기술적, 경제적, 심리적 이슈를 들여다 보겠습니다.*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디지털 팁’의 넛지효과오리건주에 사는 캐시 쉬레너는 리필 제품을 파는 친환경 매장인 ‘마마 앤 하파스’를 찾아 식기세척기 세제 몇 개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습니다. 직원이 그에게 보여준 태블릿 화면엔 ‘팁을 얼마를 남길 것이냐’고 묻는 메시지가 표시됐습니다. 결제 말고는 직원의 서비스를 받은 것도 없는데 굳이 팁을 줘야 하는 걸까요? 쉬레너는 순간 주저했지만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결국 팁을 남겼습니다. 미국 매체 복스(Vox)가 ‘모두가 지금 팁을 원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소개한 사례입니다. 과거엔 식당이나 술집 같은 업종에서나 주는 걸로 여겨졌던 팁을 이제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심지어 이런 곳에서도 고객은 팁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합니다. 자동 세차장, 보톡스 시술, 스무디 만드는 로봇 카페. 왜 그렇게 됐을까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태블릿 결제’ 시스템의 확산입니다. 과거엔 팁을 보통 현금으로 줬죠. 식사 뒤 테이블에 지폐 몇장을 남기거나, 결제할 때 ‘Tips’이라고 쓰인 유리병에 돈을 넣는 식이었습니다. 신용카드로 결제한다면 팁을 몇 달러로 할지를 볼펜으로 따로 써넣어야 했고요. 그런데 요즘 미국에선 어딜 가든 결제할 때 터치스크린 형태 단말기나 휴대용 태블릿을 씁니다. 대부분 매장에서 스퀘어(Square) 또는 토스트(Toast) 같은 기업이 제공하는 POS(Point of Sale)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인데요.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컸습니다. 가급적 대면 접촉을 줄이려다 보니 터치스크린 방식을 도입한 거죠.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당당하게, 그리고 교묘하고 끈질기게 팁을 달라고 고객에게 요구합니다. 결제할 때 팁을 얼마 줄 건지를 묻고, 고객이 입력을 마쳐야만 결제가 완료되는 식입니다. 결제 시스템에선 보통 고객의 선택을 쉽게 하기 위해 객관식으로 팁 비율을 제시하곤 하는데요. 레스토랑의 경우엔 그 최소비율이 일반적으로 18% 또는 20%부터 시작하고, 보통 최대 30%까지 제시합니다(업주가 비율을 설정). 만약 10%만 팁으로 주고 싶다면? 입력하는 창이 없거나, 있더라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고객은 그 버튼을 찾느라 몇십 초를 허비하는 대신 그냥 18%를 누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비자행동을 연구하는 마이클 린 코넬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상인들은 더 많이 팁을 요구할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18%에서 시작하는 팁 옵션은 이전보다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합니다.” ‘디지털 팁’ 도입으로 이전보다 팁을 주는 비율이 은근슬쩍 높아지고 있는 건데요. 일종의 넛지 효과(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라 하겠습니다. 팁이 비싸진 것보다 더 소비자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건 앞서 소개한 대로 디지털 팁을 요구하는 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 같으면 웬만하면 팁을 안 주고 넘어갔을 매장에서도 디지털 결제 과정엔 팁 선택 버튼을 넣은 거죠. 테이크아웃이 주를 이루는 커피숍이나 샌드위치 가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전엔 이름을 서로 알고 있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이거나, 친절한 서비스를 받았을 때 정도에만 고객들이 ‘팁항아리’에 팁을 남겼을 텐데요. 이젠 무조건 팁 버튼을 눌러야 결제가 끝납니다. 물론 ‘팁 없음’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웃는 얼굴로 직원이 빤히 쳐다 보고 있으니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팁을 요구 받았는데 주지 않을 때(특히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점원이 알기 쉬울수록) 죄책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구매가가 저렴한 일부 매장은 백분율이 아닌 일정 금액으로 팁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예컨대 3.75달러짜리 초콜릿 크루아상을 사는데 팁을 ‘1달러, 2달러, 3달러’ 중 선택하게 하는 식이지요. 비율로 치면 엄청난 겁니다. ‘다크패턴(소비자를 유도하기 위해 업체가 의도한 웹 설계)’ 전문가인 해리 브리그널은 “터치스크린은 큰 팁을 주는 버튼을 강조하고, 전혀 팁을 주지 않는 버튼은 덜 강조한다”며 “어떤 소비자는 원해서가 아니라 너무 당황해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버튼을 누르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런 경험을 하면 소비자들은 억지로 팁 주기를 강요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겠죠. ‘팁플레이션(Tipflation)’이란 말과 함께 ‘팁 피로’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구에프대학의 식품경제학과의 마이크 본 마소우 교수는 “팁 피로로 고객들은 팁이 주는 상호작용에서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며 “최악의 경우엔 팁 피로로 인해 고객이 팁을 적게 주거나 완전히 멈출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팁플레이션의 부작용이 분명하다는 건데요.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고객이 어쩔 수 없이 팁을 주게 만드는 ‘죄책감’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눈 앞에 있는 매장 점원이 그 이익을 온전히 취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경제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최저임금이 시간당 2.13달러라고?먼저 미국의 팁 문화가 왜 생겼는지부터 간단히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17세기 영국과 유럽 상류층의 문화였던 팁은 이후 미국으로 넘어왔는데요. 특히 남북전쟁 이후 과거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돼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널리 퍼졌습니다. 그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에 의존하게 한 거죠. 즉,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임금을 낮게 준 것이 팁이 일반화된 이유였는데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중앙정부가 정한 연방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중 더 높은 것을 적용하게 돼있는데요. 현재 연방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약 9600원)입니다. 그런데 팁을 받는 근로자의 연방최저임금(Tipped Minimum Wage)은 그보다 훨씬 낮은 시간당 2.13달러(약 2800원)에 불과합니다.팁을 받는 근로자와 받지 않는 근로자를 명시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건데요. 주별 최저임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단 8개 주에서만 팁과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똑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합니다. 나머지 42개주에선 팁을 받는 근로자에겐 더 적은 최저임금을 줄 수 있게 돼있죠. 바로 이러한 ‘팁 받는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 최소 55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한마디로 그동안에도 고용주가 줄 임금 중 상당 부분을 손님들의 팁으로 메워왔던 건데요. 최근 나타나는 ‘팁플레이션’ 현상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미국 서비스업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각종 비용이 뛰는 상황에서 점주들은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죠. 그러자 대신 직원들이 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일부 호텔에선 고객들이 쉽게 팁을 남길 수 있게 QR코드까지 도입했다고 하죠. 보스톤대학 호텔경영학부의 션정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호텔)은 임금을 인상할 예산이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팁을 디지털로 지불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이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팁플레이션은 고용주 입장에선 ‘손 안대고 코 푸는’ 좋은 방법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스타벅스입니다. 요즘 미국 스타벅스는 드라이브스루(차를 탄 채로 이용) 매장에서도 팁을 받는 거 아시나요? 지난해 9월 스타벅스가 일부 매장을 시작으로 ‘신용카드 팁 시스템’을 새로 도입했기 때문인데요. 신용카드 결제화면에서 ‘팁을 얼마 주겠냐’고 묻기 시작한 겁니다.애초에 이 ‘신용카드 팁’ 도입은 스타벅스 노조가 회사에 도입하라고 공개 요구했던 사안입니다. 바리스타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거였죠. 그런데 스타벅스 측은 이 시스템을 노조가 없는 매장에만 도입해서(노조 있는 매장엔 안 해줌) 한동안 시끄럽기도 했는데요. 스타벅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 ‘카드 팁’ 도입 이후 신용카드 구매의 거의 절반에서 팁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디지털 팁 압박의 효과가 상당한 거죠.팁이 차별 조장 vs. 미국 전통언뜻 보면 팁을 많이 받게 하는 건 고용주(임금을 적게 줄 수 있음)와 직원(실질 소득이 늘어남) 모두에 윈윈입니다. 잃는 건 손님뿐인 것 같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불평등한 구조(서비스 업종에 대한 낮은 임금)를 공고히 하는 건 아닐까요. 미국에선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가 꽤 깊습니다. 2010년대부터 활동한 ‘하나의 공정한 임금(One Fair Wage)’ 운동이 대표적입니다. 팁을 받는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인 최저임금을 없애고 누구에게나 똑 같은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며 입법 로비를 하고 있는데요.이를 지지하는 연구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팁을 받는 근로자는 여러 어려움에 처합니다. 팁을 받지 않는 근로자와 비교할 때 소득 변동성이 더 크고, (팁을 포함해도) 평균적으로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성별과 인종에 따라 팁에서도 차별을 받죠(여성과 비 백인의 팁이 더 낮은 편). 따라서 팁에 의존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결론입니다.2019년엔 팁 받는 근로자도 똑 같은 최저임금을 받게 하는 내용이 포함된 ‘임금인상법(the Raise the Wage Act)’이 미국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결국 부결됐지만요. 반대론도 그만큼 만만찮긴 합니다.가장 큰 반대 이유는 역시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는 겁니다. 소상공인 폐업이나 일자리 감소, 근로시간 감축으로 결국 이어질 거라고 보는 거죠. 팁 문화가 일종의 미국 전통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각도 있는데요. 팁 받는 근로자에 최저임금을 낮게 유지해야 팁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참으로 미국적인 논쟁이 아닐 수 없는데요. 물가상승으로 갈수록 소비자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요즘, 팁플레이션까지 더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더 커질 겁니다. By.딥다이브최근 뉴욕에 사는 지인을 만났더니 “음식값의 20%나 되는 팁이 부담스러워서 가급적 투고(to-go)로 사먹는다”고 말하더군요. 게다가 이제 음식점이 아닌 곳까지 팁을 받는다니, 안 그래도 물가도 비싼데 소비자 부담이 더 커지게 됐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가 궁금합니다. 팁플레이션 관련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디지털 팁’이 도입되면서 과거보다 더 많은 매장에서 더 많은 비율의 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압박감과 죄책감 때문에 실제 지불의사보다 더 많은 팁을 남기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팁플레이션’입니다.-이는 팬데믹 이후 인력난에 시달리는 고용주들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임금을 올려줄 돈은 없지만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팁을 유도해서 근로자의 실질 소득을 늘리려는 거죠. -미국에서 팁을 받는 근로자의 연방 최저임금은 고작 시간당 2.13달러입니다. 팁으로 낮은 임금을 보충하게 하는 건 팁 받는 근로자에 대한 차별일까요? 아니면 팁 문화라는 전통을 유지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선택일까요. *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OPEC+의 감산 소식이 월요일 시장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 뉴욕증시는 3일(현지시간) 혼조세로 마감했는데요. 정유주가 속한 다우지수는 0.98% 상승, S&P500지수는 0.37% 상승했고 나스닥지수는 0.27% 하락했습니다.전날 OPEC+는 5월부터 하루 166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을 감축한다고 밝혔는데요. 기습적인 대규모 감산 소식에 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6% 급등한 80.24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는 5.7% 오른 배럴당 84.45달러를 기록했고요. 오전엔 둘다 상승률이 8%대로 치솟았다가 살짝 누그러진 건데요. 그래도 거의 1년 만에 하루 최대폭의 상승이라고 합니다. 유가 상승에 에너지주는 일제히 뛰었는데요. 엑슨모빌(5.9%), 셰브론(4.2%), 옥시덴탈페트롤리움(4.4%) 주가가 모두 올랐습니다. 마라톤오일과 코노코필립스 주가는 9% 넘게 뛰었고요. S&P500의 에너지 지수 역시 4.91% 급등했습니다. 202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이번 감산이 국제유가를 얼마나 끌어올릴까요. 그리고 인플레이션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해석이 분분한데요. 일단 OPEC+의 실제 감산량은 공표한 것보다 적은 하루 약 7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RBC캐피털마켓 헬리마 크로프트 전략가). 이미 목표치보다 생산량이 적은 국가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했던 이번 감산 조치로 국제유가가 들썩일 수밖에 없는데요. 골드만삭스는 올해와 브렌트유 전망치를 배럴당 90달러에서 95달러로, 내년은 97달러에서 100달러로 끌어올렸습니다. UBS는 당장 6월까지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로 뛸 수 있다고 전망했고요.하지만 씨티그룹의 글로벌원자재 분석가인 에드 무스는 이날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배럴당 100달러의 시나리오가 나오지만 나는 아직 그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배럴당 100달러까지 가려면 “훨씬 더 많은 석유가 시장에서 제거돼야 하고, 더 많은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증시에선 ‘유가 상승→물가 자극→중앙은행 통화긴축 강화’로 이어질지에 특히 관심인데요. 실제로는 미국보다는 유럽 물가에 좀더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낮은 세계 1위 원유 생산국이기 때문인데요.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2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텍사스가 원유 생산량 하루 100만 배럴 증가로 대응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죠. 미 연준은 주로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지수를 참고하기 때문에 이번 원유 감산이 통화정책 경로를 크게 흔들진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반면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물가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뜩이나 경기침체 걱정도 큰데 말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니오와 샤오펑 같은 다른 중국 전기차 업체 소개도 있었으면 좋겠어요.”지난달 전기차 시장에 대한 딥다이브를 읽고 한 구독자 분이 이런 의견을 주셨습니다. 미국에도 상장된 니오(Nio, 蔚来汽车), 샤오펑(Xpeng, 小鹏汽车), 리오토(Li Auto, 理想)를 흔히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3사’라고 칭하죠. 2020~2021년에 주식시장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종목들인데요. 지금은 고점과 비교하면 주가가 정말 많이 빠졌습니다. 들고 있는 주주라면 고민이 많을 텐데요.그래서 중국 전기차 3사를 포함한 중국 전기차 산업 전망을 전반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중국분석을 담당하는 정진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와의 인터뷰입니다.*이 기사는 3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보조금이 사라졌다-올해 들어 중국 전기차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됐는데요. “중국 전기차 시대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구간에 있습니다. 기존엔 정부 주도로 커왔지만 이젠 정부가 손을 떼고 전기차 기업들을 홀로 서게 하기 시작했죠.” -보조금 폐지 때문에 중국에서의 전기차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까요?“중국은 2016년부터 보조금 제도를 운영했는데요. 초기엔 전기차를 사면 차값의 20~30%를 지원해줬거든요. 그런데 점차 줄여서 지난해엔 5.7%였습니다. 보조금 폐지의 충격이 없진 않겠지만 그렇게 크진 않을 겁니다.그리고 교체수요가 있는데요. 과거 중국에서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동차를 많이 구매했던 ‘슈퍼 사이클’이 2012~2016년이었습니다. 중국은 무상보증 기간이 보통 6년이라 교체주기도 6년인데요. 교체 수요가 아마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될 겁니다.”-전기차 완성차 업체 얘기하기 전에 배터리 얘기부터 잠깐 여쭤볼게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있는데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걱정을 좀 덜게 되는 걸까요.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1년 공급망 충격 이슈가 있었을 땐 배터리 기업이 우위에 있어서 전기차 기업들이 애를 먹었는데요. 지금은 완전히 역전된 상황입니다. 전기차 생산 원가 중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50%로 알려져 있는데요. 배터리 가격이 내려가니까 전기차 업체는 그만큼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거죠.” -CATL은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1위 기업인데도 가격을 많이 인하했더라고요. “CATL이 파격적인 딜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배터리 가격을 절반 정도로 낮추는 대신 3년 장기 계약을 해달라고 한 겁니다. 이것 자체가 배터리가 공급 과잉이라는 걸 인정한 셈입니다. 지금의 협상 주도력은 완성차 쪽에 있죠.”불 붙은 가격 전쟁-완성차 시장에서도 가격 경쟁이 치열합니다. 테슬라가 지난해 10월 가격 인하를 시작하면서 가격경쟁에 불을 붙였는데요. “테슬라의 가격 인하가 굉장히 파격적이었어요. 가격을 내린 이유는 일단 생산성이 많이 개선됐고요. 두번째로 배터리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걸 적극적으로 가격에 반영한 건데요. 원자재 가격은 여전히 높은 레벨입니다. 최근 리튬가격이 급락했다는 뉴스 많이 나오는데요.중국에서 작년에 톤당 55만 위안이던 게 지금 27만 위안입니다. 하지만 급등 전 가격보다는 높은 상황이에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가 역대 최저 가격으로 내렸거든요. 그러니까 매우 공격적인 가격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테슬라가 주도하는 가격 인하가 시작됐고, 이어 스타트업 기업까지 동참했는데요.기업별로 대응 방식은 다릅니다. 테슬라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기업이 좀더 적극적으로 가격을 내렸는데요.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따라간 기업이 샤오펑입니다. 샤오펑 차량이 테슬라의 모델 3나 모델 y와 경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건데요. 스타트업들은 지금 물량을 뺏기면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니오와 샤오펑은 지난해 말 새로운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그런데 5~6개월 정도 지난 지금 가동률이 30% 정도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저조하면 투자 회수에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간 거고요. 니오는 프리미엄 시장 쪽이어서 테슬라와는 포지션이 좀 다릅니다. 그럼에도 (가격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올해 모델 리뉴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형모델의 악성재고를 떨어낼 필요가 있죠.리오토는 아예 방관하는 중입니다. 최근 리오토는 ‘만약 차를 구매한 지 90일 안에 판매가격이 인하되면 차액을 환급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요. 사실상 가격 인하를 안 하겠다는 거죠. 리오토는 패밀리카에 특화돼 있습니다. 대형SUV나 준대형SUV인데, 이 쪽은 약간 매니아층이 형성돼 있어서 가격을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굳이 가격인하를 따라가지 않는 거죠.”-스타트업 3사는 모두 적자 아닌가요?“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인하가 사실 좀 위험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사 중에선 리오토가 유일하게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는데요. ‘소품종 대량생산’을 추구하다 보니까 차종이 다 비슷비슷해서 원가절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요. 니오는 모델이 6개로 많은 편인데요. 모델을 교체하려면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니오의 경우 그 주기가 좀 늦은 편이었습니다. 2019년에 출시된 차량을 올해 리뉴얼할 계획인데요. 그동안 다른 기업들이 업그레이드된 스펙의 신차들을 내놓으면서 지금은 좀 인기가 하락했습니다.”하이브리드에 주목할 이유-샤오펑은 자율주행 기술력에서 앞선다고 홍보가 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그런 부분이 강점인가요? “스타트업 3사가 중국 전기차 시장의 돌풍을 이끈 주역이고, 각 기업마다 추구하는 전략이 있는데요. 샤오펑은 자율주행 기능에서 많이 어필했죠. 그런데 자율주행 기능이 아직은 미래를 보고 개발하는 기술이거든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장 레벨5 자율주행이 곧 나올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막상 뜯어보니 아직은 개발도 어려운 환경에 있다 보니까 실망감이 있었는데요. 요즘 워낙 자율주행 기술이 상향평준화가 되다 보니, 샤오펑 기술이 정교함에서 앞서긴 하지만 그게 자동차를 구매할 때 결정적인 변수로는 작용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또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을 구사하려면 많은 전자장비들이 필요한데요. 샤오펑은 중저가 엔트리급 모델 중심이라 그 가격 선에서 고도의 장비를 장착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샤오펑이 상당히 히트를 친 게 2021년입니다. 당시 스타트업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는데요. 이후 애프터서비스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요즘 부진한 이유입니다.” -리오토는 순수전기차가 아니라 엔진충전 전기차라고 하던데요? “일종의 하이브리드인데요. 엔진이 있는데 이걸 발전용으로 쓰는 전기차입니다. 이걸 직렬 하이브리드라고 하고요. 병렬 하이브리드는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그리고 직병렬 방식은 원래 도요타 전매 특허기술인데 특허가 만료됐고 현재 BYD(비야디)가 직병렬 방식으로 중국에선 가장 우위에 있습니다. BYD가 전기차도 잘하지만 저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쪽에서 더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중국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장에서 BYD 점유율은 60% 이상인데요. 중국 정부가 ‘완전 전동화’는 당장 어렵다고 보면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와 순수전기차를 50대 50으로 나눠가려고 하고 있습니다.”-최근에 파이낸셜타임스에서 ‘테슬라가 중국에서 가격을 내렸더니 오히려 BYD 판매가 급증했다’고 기사를 썼더라고요. “1, 2월에 BYD 점유율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아직까진 테슬라가 가격을 인하했어도 BYD 가격경쟁력이 좀더 앞서 있고요. 그리고 BYD를 좀더 자세히 봐야 하는 게 수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가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해인데요. 지난해 BYD 전체 판매량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 정도였는데 올해 들어 7%까지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지난달 태국 방콕에 갔더니 BYD 전기차 광고판이 엄청 크게 있더라고요. “작년 태국 전기차 판매량이 한 해 동안 연간 1만 대 수준이었는데요. 올해 1월에만 3000대 팔렸습니다. 아직까진 미약한 수준이긴 한데, 그 중 BYD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입니다. 물론 시장성이 입증된 숫자는 아닌데요. 그래도 태국에서 BYD 브랜드의 인지도가 긍정적이라고 볼 순 있겠습니다.” -BYD는 저렴하게 전기차를 파는 데도 이익을 많이 냅니다. 수직계열화의 효과일까요? “BYD를 ‘1인 군단’이라고 표현합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엄청난 규모를 가지고 혼자 다하고 있는데요. 다른 기업보다 밸류체인의 완성도가 높다는 게 장점이고요. 그 강점을 활용해 공급망 이슈 때 시장 점유율을 늘렸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중국 전기차 기업 중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기업이 되었고요.”중국 전기차, 주가는 왜 이래-주가는 많이 올랐다가 지난해 11월부터 많이 빠졌습니다.“BYD뿐 아니라 전기차 기업 주가가 다 빠졌는데요. 가장 큰 원인은 레드오션화입니다. 지난해 초부터 중국 전기차 시장이 공급과잉 때문에 과열 경쟁이 벌어질 거라고 봤는데요. 그게 현실화된 겁니다. 과거보다 전기차 사업을 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는데요. 시장 성장성은 한계가 있다 보니 기존 기업들은 파이가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넥스트 전략으로 해외 진출이 의미 있습니다. 사실 2020년 초만 해도 ‘중국 전기차 시장이 될까 안 될까’란 고민이 많았는데요. 이후 엄청나게 빠르게,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수준의 폭발적인 성장을 했어요. 안정적으로 우상향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급상승하면서 미래 가치를 과도하게 앞당겨 온 거죠. 그때 주가가 급등했던 건 ‘전기차가 과연 될까’를 고민했던 투자자들이 침투율을 보면서 점점 ‘이 시장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인데요. 침투율이 30%에 도달하면서 거의 침투율 100%를 이미 상정한 정도의 밸류에이션을 다 받게 됐습니다. 고평가 국면이 형성됐던 이유이고요. 이제는 (주가하락으로) 그런 부분이 해소가 됐습니다.” -갑자기 국내 자동차 기업 얘기를 좀 여쭤보자면. 기아가 EV5라는 준중형 전기차로 중국시장을 공략한다고 하는데요. 이런 전략이 먹힐까요? “제가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아니라서 사업성을 평가하긴 어렵고요. 다만 중국 전기차 시장이 너무 중국 토종브랜드가 압도적인 시장이라서 쉽지 않은 싸움이긴 할 겁니다.지금 중국에서 인기 있는 차종이 소형 전기차인 건 맞습니다. 기아 EV5와 비슷한 차급이죠. 배터리 기술이 좀 떨어지던 옛날엔 큰 차에 배터리를 많이 실어서 주행거리를 높였는데요. 이젠 배터리 성능이 좋아져서 작은 차여도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죠. 사실상 전기차 기업의 진짜 실력은 소형차 시장에서 나타날 겁니다. 중국이나 유럽시장 모두 소형차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기업이 많이 주목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투자 관점에서 좋게 보는 전기차 기업은 어디인가요? “이제 옥석가리기가 매우 중요한 시장입니다. 미래에 대한 성장성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현재 이익에 충실하든가. 둘 중 하나를 보여줘야 기업 가치가 오르거든요. 성장성은 역시 해외 진출이고요. 내수 쪽에선 이익이나 시장점유율을 봐야 하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단 BYD, 그리고 방어력이 좋은 기업은 리오토입니다.리오토도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게 많습니다. 현재 차종이 사실상 하나(SUV)인데요. 리오토 사업계획이 2023년부터 순수전기차를 2종씩 매년 출시하겠다는 겁니다. 올해 신차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아마도 다목적차량(MPV)일 것 같고요. 다른 하나는 엔트리급으로 갈 것 같습니다. 기존 럭셔리SUV에서 이제 엔트리급의 대중화된 시장으로 넘어가는 차종이 나올 걸로 예상은 합니다.”-아직 공식 발표는 안 했군요.“아마 샤오펑 G9처럼 리오토도 800볼트짜리 전기 아키텍처 플랫폼(고속충전 가능)을 적용할 것 같은데요. 이 기술에서 완성도를 높인 상황에서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기술 개발이 지연된다면 내년으로 미뤄질 수도 있습니다.” -엔트리급 모델을 성공적으로 내놓는다면 기업 가치가 상승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 중국 전기차 시장은 대중화시대입니다. 대중 시장을 가져가는 게 중요한데요. 이 부분에서 니오는 차량 가격 자체가 높은 ‘프리미엄’을 추구하다보니 다소 불리합니다. 니오가 그나마 엔트리급으로 내세운 게 지난해 말 출시된 ET5라는 중형 세단인데요. 그마저도 가격이 5000만원이 넘는 수준입니다. 옵션 추가하면 6000만원대가 되니까, 엔트리급이라고 하긴 어렵죠.” -한동안 중국 전기차 3사가 다 같이 주목 받았는데, 지금은 확실히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기네요. “특히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작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가장 프리미엄을 많이 받는 시장이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는 전기차 시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글로벌 판매량 비중을 보면 중국이 지난해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는 점점 하락하게 됩니다. 그럼 당연히 투자자 입장에선 비중이 확장하는 지역으로 관심을 옮겨 가겠죠. 중국을 분석하는 입장에선 좀 안타깝긴 하지만 그 시장이 지금은 유럽이나 미국인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에 테슬라가 많이 주목을 받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해외 진출 전략이 중요합니다. 이대로 가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비중은 점점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 아세안 지역만 확보하더라도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 비중을 45% 정도로 유지할 수 있거든요. 과거엔 성장성을 볼 때 침투율이 중요했다면, 올해부터는 해외시장이 의미 있습니다.”-만약 살 수 있다면 중국 전기차를 개인적으로 사실 생각이 있으세요?“지금 타는 차가 하이브리드인데, BYD의 하이브리드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한번쯤 타보고 싶은 차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 아빠라서 패밀리카인 리오토도 관심 있습니다.” By.딥다이브중국엔 등록된 전기차 완성차 브랜드만 19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레드오션’이란 말이 실감 나는데요. 내수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특유의 가성비 전략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면 만만찮은 상대가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테슬라가 가격 경쟁에 불 붙이면서 중국 토종 전기차 업체들도 일부 차종 가격을 인하하고 있습니다. 적자 상태인 전기차 스타트업들로서는 위험한 도전입니다. -스타트업 3사의 상황은 조금씩 다릅니다. 리오토가 그나마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고, 니오와 샤오펑은 새 공장의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게 시급합니다. -BYD는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중국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잡은 동시에 해외 진출로 성장을 꾀합니다.-중국 전기차 업체의 주가는 부진합니다.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진출에서 성과를 보이느냐, 돈을 잘 버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주가흐름이 달라질 겁니다.*이 기사는 3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기자 haru@donga.com}
은행 위기는 끝나고 이제 연준이 금리 내릴 일만 남은 걸까요. 낙관론이 번지면서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가 이틀 연속 상승했습니다. 다우지수 0.43%, S&P500 0.57%, 나스닥지수는 0.73% 상승 마감했습니다. 이날 상승세를 이끈 건 빅테크 기술주였습니다. 애플(0.99%), 마이크로소프트(1.75%), 메타(1.21%), 아마존(1.75%)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기술주 주가는 은행 위기가 불거진 지난 3주 동안 상승세를 보였는데요. 금융시스템의 불안이 부각되자 반대로 탄탄한 대차대조표와 강력한 현금흐름을 가진 빅테크의 안정성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연준이 하반기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기술주엔 긍정적입니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기술주 같은 성장주의 투자 매력은 떨어지니까요.하지만 기술주를 ‘안전한 피난처’로 볼 순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자산운용사를 운영하는 마이클 랜스버그는 마켓워치 인터뷰에서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기술기업의 펀더멘탈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빅테크가 공격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고 있는 게 그 증거입니다. SVB사태 이후 미국 주식시장이 놀라온 수준의 회복력을 보이자, 월가의 비관론자들이 속속 돌아서고 있습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 사이언에셋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주식을) 팔라고 말한 게 틀렸다”고 올렸는데요. 앞서 그는 지난 2월 1일 “팔아라(Sell)”라는 한단어짜리 트윗으로 투자자들을 들썩이게 만들었죠. 두달이 채 안 돼 전망을 바꾼 겁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인물로 유명하죠.시장은 이미 연준의 통화긴축은 끝났고 금리인하도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날 연준 인사들은 일제히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놨습니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연설에서 “약간의 추가적인 긴축을 한 뒤 올해 말까지 동결을 예상한다”고 말했고요.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금리를 추가로 인상해 대응할 수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더 많다”는 입장을 밝혔고요. 하지만 시장은 이미 연말 미국 금리가 현재(5.0%)보다 한참 낮은 4.3%까지 떨어질 것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앞서가고 있는 건데요. 일단 31일 발표될 개인소비지출 근원 물가지수(PCE Core Deflator)를 주목해 봐야 겠습니다. 연준이 물가판단의 척도로 선호하는 지표니까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유럽에선 크레디트스위스와 도이체방크까지. 은행의 위기가 번지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미국 경제의 ‘연착륙’은 가능할까.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거시경제 전문가인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경제가 올해 중반쯤 “길거나 깊지는 않은 마일드(mild)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27일 인터뷰에서 조 위원은 미국 경제에 대해선 하드랜딩(경착륙·hard landing) 가능성을 낮게 본 반면 한국에 대해선 성장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했다. ● 미국 기준금리 인하, 빨라도 4분기 조 위원은 미국의 저축과 고용을 주목했다. 미국 가계의 저축 규모는 약 5조 달러 수준(지난해 말 기준)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약 1조 달러 수준)에 비해 급증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가 어려워져도 소비는 크게 줄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고용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웬만큼 경제가 나빠져도 일자리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 강도가 강하지 않다는 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 기조를 쉽게 바꾸지 않을 거란 뜻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월 기준 6.0%)이 연준 목표치(2%)를 한참 웃돌기 때문이다. 조 위원은 “은행 파산 사태로 시장에선 이르면 7월에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거란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연준이 그렇게 빨리 금리 인하로 돌아서긴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오히려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 “금리를 조금 더 올릴 여지도 남아 있다”는 의견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빨라도 올해 4분기쯤에나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이미 역전됐다는 점이다. 22일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두 나라의 금리 차는 역대 최대인 1.5%포인트로 벌어졌다. 국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위원 역시 그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연준은 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역전 폭이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미국의 금리인상 말기엔 한국에서 외국인 자본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갔다”며 “앞으로 만약 원화 가치가 떨어질 거란 기대가 형성된다면 외국인 자금 유출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중국 리오프닝 효과 기대 어려워 한국 경제의 큰 고민거리는 무역적자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41억 달러. 지난해 연간 적자 규모(472억 달러)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조 위원은 “리오프닝으로 중국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더라도 중국으로의 수출이 과거처럼 늘어날 거라고 낙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지금의 대중 무역적자 원인이 구조적 변화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많이 줄였는데, 대만에서의 수입은 그만큼 줄이지 않았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 과연 대중국 수출이 줄어든 게 중국 내부 요인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 걱정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걸까. 후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 LG경영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4%. 상반기(1.6%)보다 하반기(1.3%)가 더 좋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이다. 수출 부진은 물론이고 민간소비 둔화, 기업 설비투자 감소, 부동산 시장 침체까지 다양한 변수를 반영한 결과치다. 조 위원은 “한마디로 한국 경제 성장률을 높여줄 만한 부분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예전처럼 한국은행이 나서기도 어렵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조 위원은 “한은은 미국의 추세적인 금리 인하를 확인하는 내년 이후에나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정부의 재정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필요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정부가 재정을 잘 쓰는 것”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라는 조언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고, 크레디트스위스가 UBS로 인수되더니, 도이체방크 위기설까지. 전 세계 금융시장이 뒤숭숭합니다. ‘뱅크’와 ‘팬데믹’을 합친 ‘뱅크데믹’이라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SVB사태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는데요.안 그래도 수출 부진과 무역적자로 쉽지 않은 시절을 견뎌야 하는 한국 경제엔 걱정거리가 더 늘었습니다. 미국은 경기침체에 빠질까요? 그럼 한국은 어떨까요. 미 연준은 언제까지 금리를 올리고, 언제쯤에나 내릴까요? 한국은행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시경제 관련 질문에 답해주실 분을 만났습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과 27일 오후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연준은 더 올릴 여지 있다-먼저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여쭐게요. 지난주 FOMC에서 연준이 0.25% 포인트 금리 인상을 결정을 했습니다. 이건 예상했던 수준이지요? “저희(LG경영연구원)는 지난해부터 줄곧 ‘2023년 상반기까진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이후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빠르면 2023년 4분기쯤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을 말씀드렸는데요. 지금도 이러한 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금리 인상은 예상했던 정도였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이 아직 연준 목표치(2%)보다 많이 높은 수준입니다. 연준이 현재 5%인 기준금리를 조금은 더 높일 걸로 보시나요?“아직 (더 올릴)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최근 미국에서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매우 빠르게 금융시장의 기대가 조정되고 있습니다. 이르면 하반기가 되자마자(7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거란 기대가 확산된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연준의 물가관리 목표가 2% 수준인데 물가상승률이 크게 상회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빠르게 떨어질 걸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준은 여전히 인플레를 신경 쓸 겁니다. 저희는 미국 경제가 올해 침체에 빠지더라도 그 강도가 마일드하고, 기간도 짧을 걸로 봅니다. 따라서 생각만큼 연준이 그렇게 빨리 금리 인하로 돌아서긴 쉽지 않을 겁니다. 또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그렇게 큰 폭으로 낮추긴 쉽지 않을 거란 예상입니다.”미국 경기침체 빠지겠지만…-실리콘밸리은행 파산사태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은행의 위기가 미국 경기침체의 강도를 더 키울 거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큰 틀에서는 강한 강도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예상하진 않습니다. 왜 그렇게 보느냐면, 우선 미국 가계가 돈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정부가 굉장히 많은 보조금, 자녀 수에 따라서는 1000만원 넘는 금액까지 지급했거든요. 미국 가계가 보유한 현금 규모가 코로나 이전엔 1조 달러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연말엔 5조 달러 가까이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니까 경제가 어려워져도 가계가 저축을 까먹으면서 버티겠죠. 따라서 소비가 그렇게 급락할 걸로 보지 않습니다.두 번째 이유는 고용입니다. 여전히 미국 고용시장은 뜨겁습니다. 실업률은 3% 중반으로 거의 역사적 저점에 가깝고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기업과 소상공인이 아직 많습니다. 웬만큼 경제가 나빠져도 일자리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질문하신 미국 금융 상황과 관련이 되어 있는데요. 이 부분은 저도 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과거 금융위기(2008년)와 비교하면 미국 금융시스템이 견조해보였거든요. 미 연준이 대형 은행에 대해 정기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는데요. 지난해 6월 대형 은행 33개를 대상으로 테스트했는데 미국 실업률이 10%까지 급등하고 주가가 반 이상 급락해도 버틴다고 결론이 나왔어요. 저도 그 결과를 믿었는데요.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터진 뒤, 어떻게 된 건지 다시 들여다 보니까 실리콘밸리은행은 감독대상에서 빠져있던 겁니다. 구멍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도 금융시스템 건전성엔 우려할 상황이 생겼고 균열이 생겼다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그렇다 보니까 당초 봤던 것에 비해 경기 침체 강도가 조금 더 강해지고 기간이 조금 더 길어질 가능성은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드랜딩(hard landing)이나 과거 금융위기 같은 장기적인 경기침체(2년 정도)를 예상하진 않습니다.” 한국 경제, 기댈 게 없다-한국 경제를 여쭤보겠습니다. 위원님은 올해 성장률을 1.4%로, 썩 좋지 않게 전망하셨죠. 지금 나오는 숫자를 보면 무역적자 규모가 올해 들어 3월 20일까지 241억 달러로 엄청나더라고요. 반도체 시황도 여전히 너무 안 좋고요. 여러 모로 걱정이 되는데요. “저희 성장률 전망치(1.4%)가 지난해 발표 당시 연구기관 중 가장 낮았는데요. 기본적인 골자는 수출 부진이 올해도 지속될 거고요. 지난해는 코로나 방역 완화로 민간 소비가 회복되는 조짐이 좀 있었는데 올해는 둔화될 걸로 봤습니다. 또 국제 금융시장 상황이나 세계경제 침체 리스크,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기업 설비투자가 늘기 어렵고요.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있다보니 주택건설 투자도 쉽지가 않고요. 정부의 재정건전성 강화기조 때문에 과거처럼 SOC 투자가 많이 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즉 한국 경제 성장률을 높여줄 만한 부분이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반도체 업황을 많이 질문하시는데요. 많은 기관들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좀 높게 봤던 게 ‘반도체 경기가 회복 될 것’이란 전망에 근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전망을 위해 자문을 구했던 전문가 분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빨리 회복되길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1.4% 전망치를 제시했습니다.”-그래도 희망을 찾으려는 분들은 중국 경제 얘기를 하시는데요. 1, 2월 중국 경제가 조금은 반등 조짐이 나타났거든요. 한국 수출이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하반기가 되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기도 하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포기와 과감한 리오프닝 정책으로의 전환은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중국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이죠. 그리고 글로벌 경기측면에서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죠. 모든 게 양면성이 있으니까요. 중국이 이렇게 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은 다소 높아지겠지만 글로벌 인플레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되죠. 중국의 에너지, 광물, 식량 수입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미국이나 유로존 중앙은행이 이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고요. 어쩌면 통화 긴축 시간을 좀 길게 가져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이냐. 그 단초를 지난해 제로 코로나 상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전후로 우리의 대중국 수출이 많이 위축됐고 대중국 무역수지가 적자를 나타냈는데요. 만약 이것이 중국 내부적 요인(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이었다면 중국이 한국뿐 아니라 대만,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도 줄어야 맞겠죠. 그런데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많이 줄었는데 대만은 그만큼 안 줄었고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도리어 늘었거든요. 그럼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난해 중국에 수출을 많이 못한 게 정말 중국 내부 요인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 걱정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저는 후자 쪽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것이 구조적 문제점이라면 설령 리오프닝으로 중국의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더라도, 우리로부터 과거처럼 많은 중간재나 자본을 중국이 수입해나갈 거라 낙관하기 어렵습니다.예상되는 리오프닝 양상도 알아둬야 합니다. 중국 경제활동은 2분기에 큰 폭으로 활성화될 겁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하반기엔 강도가 약화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국 가계는 미국처럼 저축을 많이 늘리지 못했습니다. 중국 가계의 저축은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코로나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니까 불안해서 자발적으로 늘린 저축이거든요. 이제 돌아다녀도 된다라고 해도 여전히 집값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중국 가계가 저축을 막 써버리진 않을 겁니다.또 리오프닝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출보다는 내수, 그 중에서도 재화보다는 서비스 중심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중국 서비스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우리가 수출을 많이 늘릴 만한 품목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물론 중국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많이 유입된다면 그 효과를 기대할 만하지만, 항공편 정상화엔 시간이 걸리죠. 이러한 요인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중국이 리오프닝을 한다고 해서 우리 경제성장률이 많이 높아지는 효과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외국인 자금 유출 걱정할 이유-한국은행 통화정책에 대해 질문드릴게요. 한국과 미국 간 정책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진 지 오래됐고, 이미 그 격차가 역대 최고 수준인데요.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꽤 큽니다. 동시에 그렇다고 해도 무역적자가 이렇게 벌어지고 경기전망이 좋지 않은데 한은이 금리를 올리진 못할 거란 전망이 함께 나오고요. 위원님은 어떻게 전망하세요?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을 지속하면서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이 1.5%포인트까지 확대됐는데요. 지난해 금리 역전이 시작될 때도 이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그 때는 ‘금리가 역전돼도 당장 큰일 생기는 거 아닙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과거 사례를 봐도 한미 정책금리 역전 초기엔 걱정하듯이 그렇게 돈이 바로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돈이 들어왔던 적도 많았고요. 그럼 어떤 때 돈이 실제로 빠져나가느냐. 한미 정책금리 역전이 장기화되고 역전 폭이 더 커지면 빠져나갔죠. 그래서 작년엔 ‘소폭의 금리 역전보다 환율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했는데요. 지금은 정반대로 말씀 드려야 되겠습니다. 한미 정책금리가 역전된 지 시간이 꽤 지났고요. 지금은 1.5%포인트까지 확대됐고, 어쩌면 미 연준은 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어쩌면 더 못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앞으로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요. 미 연준이 금리인하로 돌아서기까지 6개월 또는 그 이상 기간 동안 그 역전 폭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떨어질 거란 기대가 형성된다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부분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과거에도 보면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의 후반기에는 항상 한미 정책금리가 역전됐었고, 말기에 가면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갔던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이부분을 더 유의해야 합니다. 저희는 한국은행이 점점 더 금리를 올리기 어려워질 거라고 보는데요.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이 올해 들어오면서 이미 물가에서 경기에 대한 우려로 옮겨왔습니다. 지난 2월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한은이 금리를 올릴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이제 금리 인상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그 때문에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고금리 충격파 끝나지 않았다-금융시장 얘기를 좀 해볼까요. 사실 연준이 이렇게까지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지 몇달 전만 해도 몰랐고요, SVB 파산도 정말 아무도 몰랐습니다. 놀라운 뉴스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서 주식이든 채권이든 뭔가에 투자하신 분들이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이 분들에게 어떤 걸 주의하라는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금융시장은 당분간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일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고 하는 건 우리가 예전에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령 이런 거죠. 예금보호 한도를 넘는 예금까지 다 보호해준다거나, 크레디트스위스의 경우처럼 주주가 아닌 채권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산(AT1채권)이 다 상각돼버리는 상황이요. 이러한 일들이 또 생길 수 있고, 생기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럼 이렇게 질문하시겠죠. 왜 이런 일이 또 생길 걸로 보느냐. 어떻게 보면 최근 경험한 일들은 각각 특수한 개별 사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뱅크, 크레디트스위스가 각각 다른 이유로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왜 실리콘밸리은행에 돈을 맡긴 스타트업이 예전처럼 예금을 맡기지 못하고 돈을 빼내갔을까, 시그니처뱅크는 왜 가상화폐 시장에서 문제가 생겼을까, 크레디트스위스는 왜 과거엔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 이번엔 이렇게 커졌을까. 그 근본 원인을 따라가면 결국은 잡히지 않은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에 당황한 듯 대응하는 중앙은행이 나옵니다. 중앙은행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먼저 스타트업 상황이 먼저 안 좋아졌고 가상화폐 가격이 빠지고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높아진 것이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통화긴축의 충격과 부담감이 누적돼 있던 것이 지금 시차를 두고 나타나고 있고요. 약한 부위에서 균열이 생긴 것이 지금 표현되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다음번 약한 균열이 어디가 될 것이냐를 지금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그러한 균열이 어디서 나타나더라도 그게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닙니다. 특히 중요한 게 아직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보기 어렵고요. 이렇게 높아진 고금리가 낮아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고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 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아직 시작일 수 있고요. 고금리의 충격과 부담이 어쩌면 아직 본격화되진 않았을 수 있다는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에 관심이 많으신 딥다이브 구독자들분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 “통화정책의 전환 시기는 우리보다 미국이 빠를 겁니다. 그 얘기는 한국은행 금리인하가 생각보다 늦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저희는 올해 안에 금리인하로 전환되기 쉽지 않을 거라 봅니다. 왜냐하면 한미 금리역전 폭이 확대된 데 대한 우려가 있는데 미국이 금리를 낮추지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낮추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국의 추세적인 금리 인하가 확인된 이후, 즉 내년 이후에나 한국은행의 금리인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한마디로 인플레 압력이 생각보다 오래 가는 상황이 될 텐데요. 결과적으로 정부의 재정정책이 아주 중요합니다. 정부가 필요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돈을 잘 쓰는 것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By.딥다이브지난해 내내 금융시장을 짓눌러온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문제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은행권의 위기가 터지더니 일파만파입니다. 갈수록 헤쳐나가기가 만만찮은 상황이 펼쳐지는데요.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미국 연준은 아직 금리를 더 올릴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마일드한 경기침체에 빠질 거기 때문에 이르면 연말쯤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미국 금융시스템에 균열이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경기침체의 골을 조금 더 깊게 할 수 있는 요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드랜딩(경착륙)’은 없을 겁니다. -한국 경제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부분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 리오프닝의 반사이익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이 커지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의 우려도 커집니다. -고금리 충격으로 약한 부분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음번 균열은 어디일지 알 수 없습니다.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 터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세요.*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