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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들이 용퇴해야 산다”라는, 이른바 ‘86용퇴론’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터진 86그룹 맏형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체 언제 적 86이냐” “아직도 86들이 다 해먹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 86그룹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대로, 1995년 이래 민주당의 주축으로 자리를 지켜 왔다. 이들을 겨냥한 용퇴론은 2015년부터 습관적으로 반복돼 왔다. 당이 위기이거나, 대형 선거를 앞두고 ‘혁신’ 키워드가 필요할 때 반짝 등장했다가, 고비를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지는 패턴이다. 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시대는 변해 가는데 (586세대는)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이동학 청년혁신위원) “권력이란 괴물과 싸우다 86세대가 또 다른 권력이 된 것은 아닌지”(임미애 혁신위원) 등 86그룹을 겨냥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듬해 총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86의 용퇴는커녕 전성시대가 열렸다. 전대협 의장 출신 임종석 전 의원이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고 이인영 의원은 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86용퇴론은 2019년 말 차기 총선을 앞두고 또 나왔다. 조국 사태로 ‘공정’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어느덧 기득권이 돼 버린 86그룹부터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면서다. 그래 놓고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자 86그룹은 당 지도부 등 요직을 꿰찼다.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는 김태년 의원(전대협 1기 부의장)이었고, 2021년엔 86그룹 윤호중 의원이 원내사령탑에 당선됐다. 송 전 대표도 그해 전당대회에서 승리했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패색이 짙자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래 놓고 고작 3개월 뒤엔 당내 반대에도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해 스스로 용퇴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그 당시 투입된 1996년생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86용퇴를 요구했다가 86 출신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고성을 내지르며 싸우기까지 했다. 올해 4월, 총선을 1년 앞두고 또다시 세대교체론이 거론될 조짐이다. 마침 돈봉투 사태가 터지기 직전 1988년생 초선 오영환 의원이 “말만 앞세운 정치개혁에 무슨 힘이 있느냐고 국민이 묻는다. 전 그 물음에 ‘내려놓음’이란 답을 드린다”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0년간 민주당 내 86용퇴론이 늘 용두사미로 끝난 건 ‘기득권화’라는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선거용 레퍼토리에 그쳤기 때문이다. 썩은 부분을 제대로 도려내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싸잡아 ‘다 나가라’고 하는 무책임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매번 정치적 이슈로만 소모되고, 결과적으로 쇄신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86그룹도 이번에는 타의에 쫓기듯 밀려나기보다는 당의 중진답게 진정성 있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들끼리 감싸고 엄호하기 전 우리 사회가 왜 유독 자신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한번 돌아볼 때다. 감동 없는 쇄신에 거듭 속아줄 유권자는 없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더불어민주당에는 각설이도 아니고,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설’(說)이 하나 있습니다. “86들이 용퇴해야 산다”라는, 이른바 ‘86 용퇴론’입니다.86그룹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대로, 1995년 이래 386(30대), 486(40대), 586(50대)으로 불리며 민주당의 주축으로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현재 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도 86그룹 모임이고, ‘민주주의 4.0’과 ‘사의재’ 등 친문(친문재인) 모임 내에도 86 출신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습니다. 이번에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의혹’으로 파문을 일으킨 송영길 전 대표도 86그룹 맏형격이죠. 이번 사태에 “대체 언제적 86이냐”부터 “86그룹이 언제까지 해 먹는 거냐”는 반응이 적지 않더군요. 돌이켜보면 ‘86 용퇴론’은 2015년부터 거의 10년째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왔습니다. 일단 ① 당이 위기일 때 ② 선거를 앞두고 ‘혁신’ 키워드가 필요할 때 반짝 등장했다가 ③ 고비를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싹 들어가는 패턴입니다.● 선거 때면 나왔다가, 선거 끝나면 사라진다새정치민주연합은 2016년 총선을 1년 앞두고 치러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지금 민주당 상황과 비슷하네요. 당시 33세의 이동학 청년 혁신위원은 전대협 1기 출신이자, 86그룹의 대표주자였던 이인영 의원에게 ‘586 전상서-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 달라’는 제목의 공개 편지를 보냅니다.“‘전대협 세대’는 든든한 후배 그룹 하나 키워내지 못했고 후배 그룹과 소통하지도 않았다. (중략) 시대는 빠르게 변해 가는데 (586세대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중략) 이제는 선배께서 당이 찾아야 할 활로가 돼주는 건 어떻겠느냐.”기득권을 내려놓고 험지로 가라는 메시지에 당이 발칵 뒤집혔죠. 이 의원은 A4 용지 7장짜리 답장에서 “근본적 성찰이 없다면 공학적 처방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지역구(서울 구로갑)가 쉬운 지역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자갈밭을 일구는 심정으로 지난 15년을 보냈지, 문전옥답을 물려받은 편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역시 86그룹 소속인 임미애 혁신위원이 “86그룹은 아직도 19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권력이라는 괴물과 싸우다 86세대가 또 다른 권력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재반박하는 등 갈등이 잔뜩 고조됐습니다.하지만 패턴 ③이 ‘고비를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들어간다’였죠?민주당이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2017년 탄핵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면서 86그룹은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전 의원이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고, 험지로 내몰리던 이 의원은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등 용퇴는커녕 ‘86 전성시대’가 열린 겁니다.하지만 여의도에서 황금기는 길게 허락되지 않죠. ②‘선거철이 되면 돌아온다’라는 법칙에 따라 2020년 총선을 앞두고 2019년 말 어김없이 ‘86 용퇴론’이 재등장했습니다. 조국 사태 여파로 ‘공정’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을 때입니다. “기득권이 돼 버린 86그룹부터 물러나야 한다”라는 분위기 속에 임 전 비서실장이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라며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앞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철희 전 의원도 “하나의 세대, 그룹으로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이제는 갈 때”라고 불을 지폈습니다.그래 놓고 결국 다시 ③의 반복입니다.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면서 86그룹도 대거 생환해서 돌아온 거죠. 그냥 살아남는 수준이 아니고, 당 지도부 등 요직을 꿰찼습니다.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엔 김태년 의원(전대협 1기 부의장)이 뽑혔고, 2021년엔 역시 86그룹인 윤호중 의원이 원내사령탑을 맡았습니다. 송 전 대표도 이 해 전당대회에서 당선됐죠. 당시 송 전 대표와 겨뤘던 홍영표, 우원식 의원 모두 86그룹입니다.2022년 1월 말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패색이 짙어지자, 아니나 다를까 86 용퇴론의 법칙에 따라 똑같은 주장이 또! 나옵니다.송 전 대표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저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승부수를 던진 겁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뒤를 따르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송 전 대표는 고작 3개월 뒤 당내 거센 반대에도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하면서 스스로 ‘용퇴’의 의미를 퇴색시켰죠. 20년 이상 내리 인천에서 정치활동을 했던 송 전 대표의 난데없는 서울시장 도전장에 “용퇴가 장난이냐”는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그 당시 위기 수습차 투입된 1996년생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86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가 “선거를 앞두고 논의할 내용은 아니다”라고 반대하는 86 출신 윤호중 당시 공동비대위원장과 고성을 내지르며 싸우기도 했죠. 그렇게 ‘86 용퇴냐 아니냐’를 두고 자중지란만 이어가던 민주당은 당연히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습니다. ●돌고 돌아 또 ‘86 용퇴론’2023년 4월, 어느덧 총선이 또 1년 앞으로 다가왔으니 다시 86 용퇴론이 나올 때가 됐죠? “총선을 1년 앞두고 386 정치인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었던 송 전 대표가 (연루됐다). 민주당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완벽히 잃어버릴 수 있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이원욱 의원)라는 등 86그룹에 대한 비판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 가운데,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는 내년 총선에선 동일 지역구 3연임 제한을 요구하는 등 재차 세대 교체론이 불어닥칠 듯한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마침 이번 사태 직전 1988년생 초선 오영환 의원이 아래와 같은 말과 함께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죠. “책임져야 할 사람이 기득권과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이 우리 정치에서 가장 먼저 개혁돼야 할 대상이다. 말만 앞세운 개혁에 무슨 힘이 있느냐고 국민들이 묻는다. 전 그 물음에 ‘내려놓음’이란 답을 드린다.” 지난 10년간 민주당 내 86 용퇴론이 늘 용두사미로 끝난 건 ‘기득권화’라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선거용 레퍼토리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썩은 부분을 제대로 도려내진 못한 채 두루뭉술하게 싸잡아 ‘다 나가라’는 무책임한 방식이다 보니 매번 정치적 이슈로만 소모되고, 결과적으로 쇄신은 안 됐던 겁니다. 86그룹은 이번에는 타의에 쫓기듯 밀려나기보다는 당의 중진답게 진정성 있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겁니다. 자기들끼리 감싸고 엄호하기 전 우리 사회가 왜 유독 자신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한 번 돌아볼 때입니다. 감동 없는 쇄신에 거듭 속아줄 유권자는 없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정치드라마 ‘퀸메이커’에서 나온 대사로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나쁜 X이 나쁜 짓 한 거랑, 좋은 X이 나쁜 짓 한 건 천지 차이야. 나에 대해 뭘 까발리든지 정의로운 코뿔소(주인공)가 서민 뒤통수 때린 건 이제 덮을 수가 없어. 그게 정치판 생리란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사진)가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조기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 “서둘러 귀국해 결자해지하라”는 비판이 빗발치자 예정했던 7월보다 귀국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20일 “송 전 대표가 22일 예정대로 현지에서 기자회견까지는 한 뒤 조기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송 전 대표가 조기 귀국을 결심한 것은 당 안팎에서 이어지는 압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송 전 대표에게 즉각 귀국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송 전 대표는 귀국 후 민주당을 탈당하는 것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송영길 정계 은퇴” 요구까지 나오고 있어 송 전 대표의 귀국 이후에도 이번 사태를 둘러싼 책임론과 내홍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았던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국회 국방위원회로 이동한다. 19일 민주당에 따르면 기 의원은 법사위에서 국방위로 이동하고, 기 의원 대신 현재 국방위 소속인 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법사위로 이동할 예정이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기 의원은 전날부터 재판받기 시작했다. 이에 기 의원은 원내지도부에 양해를 구하고 상임위 교체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을 담당하는 법사위원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스스로 상임위 교체를 요청해왔다”라고 전했다. 기 의원 측은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재판이 시작됐으니 이해충돌 우려도 있는 만큼 이동을 신청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기 의원의 ‘법사위 셀프 사보임’을 계기로 법사위원들의 자격 논란을 방지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법사위에선 기소돼 재판받는 소속 위원들의 자격을 둘러싸고 여야 간 거친 공방이 이어져 왔다. 지난해 이원석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는 당시 3건의 재판을 받고 있던 민주당 최강욱 의원의 청문위원 자격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최 의원을 겨냥해 “3건의 중대 사건의 피고인이 된 이후 법사위를 지원했다”라며 “이것만으로 이해충돌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데. 더욱이 인사청문회는 이해관계가 있거나 공정하게 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으면 청문회에서 배제하라는 제척규정이 있다”라며 최 의원의 참여를 배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해충돌 거론을 하셨던 조수진 의원도 선거법 관련해서 수사, 재판을 받고 있지 않나”라고 맞받았다. 한 재선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자격 논란에 휩싸이기 전 선제적으로 내려놓고 정쟁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이심송심(李心宋心)’,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밀월 관계’가 아니냐는 의심이 오랜 기간 있었다.”(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확산되면서 송 전 대표와 이 대표 간의 관계에도 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송 전 대표가 당선됐던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 측이 송영길 캠프를 후방 지원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야권 관계자는 “당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문재인)계 핵심 홍영표 의원에 맞서 비주류끼리 ‘전략적 연대’를 맺었다는 분석이었다”고 했다. 송 전 대표는 당선 뒤 이어진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이심송심’ 논란에 휩싸이며 친문 및 경선 경쟁자인 이낙연 전 대표 캠프의 비판을 받았다. 2021년 10월 이낙연 캠프가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화하기로 한 당 방침에 대해 이의를 신청했지만 송 전 대표가 이를 하루 만에 일축하면서다. 이듬해엔 이른바 ‘지역구 승계’ 논란으로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또 한 번 주목받았다. 당시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대선에서 패배한 이 대표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원내에 입성했다.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와 송 전 대표를 동시에 겨냥한 공세가 이어졌다. 김기현 대표는 17일 당 회의에서 “송 전 대표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얻은 이 대표이지만 송 전 대표를 즉각 귀국 조치시키는 등 엄중한 지시를 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이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할 때도 돈봉투가 오갔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라고 자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의 지역구 상속자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 공당 대표로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라고 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심송심’(李心宋心),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밀월 관계’가 아니냐는 의심이 오랜 기간 있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확산되면서 송 전 대표와 이 대표 간 관계에도 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송 전 대표가 당선됐던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 측이 송영길 캠프를 후방 지원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야권 관계자는 “당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문재인) 핵심 홍영표 의원에 맞서 비주류끼리 ‘전략적 연대’를 맺었다는 분석이었다”고 했다. 송 전 대표는 당선 뒤 이어진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이심송심’ 논란에 휩싸이며 친문 및 경서 경쟁자인 이낙연 전 대표 캠프의 비판을 받았다. 2021년 10월 이낙연 캠프가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화하기로 한 당 방침에 대해 이의를 신청했지만 송 전 대표가 이를 하루 만에 일축하면서다. 이듬해엔 이른바 ‘지역구 승계’ 논란으로 두 사람 간 관계가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당시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대선에서 패배한 이 대표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원내에 입성했다.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와 송 전 대표를 동시에 겨냥한 공세가 이어졌다. 김기현 대표는 17일 당 회의에서 “송 전 대표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얻은 이 대표이지만 송 전 대표를 즉각 귀국 조치시키는 등 엄중한 지시를 해야 한다”라며 “그러지 않으면 이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할 때도 돈봉투가 오갔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라고 자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의 지역구 상속자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 공당 대표로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라고 했다.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2019년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두 번의 아슬아슬했던 표 차이의 선거 결과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왔던 0.59%포인트, 그리고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왔던 0.73%포인트입니다. 원래 석패가 가장 아쉬운 법이죠. 패배한 쪽은 쉽사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회와 미련 속 괜한 ‘삽질’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 민주당이 딱 그렇습니다.● 송영길과 0.59%포인트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이 뒤늦게 터지면서 최근 민주당은 ‘초긴장’ 상태입니다. 검찰은 당시 송영길 캠프가 돈 봉투 90개를 만들어서 현역 의원과 당 관계자들에게 뿌렸다고 의심하고 있죠.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현역 의원 최소 10여 명이 연루돼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른바 ‘송영길 리스트’가 지라시처럼 나돌기도 했습니다. 잠시 2021년 5월 2일 전당대회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박빙의 선거 끝에 최종 득표율 35.60%로 당선됐습니다. 친문(친문재인) 핵심 홍영표 의원(35.01%)과의 격차는 0.59% 포인트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송 전 대표는 45%가 반영되는 대의원 선거에선 홍 의원을 1.50%포인트 차로 이겼지만 40%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에선 홍 의원에 0.67%포인트 차로 졌습니다.(통상 대의원은 당 지도부와 지방자치단체장, 현역 의원을 비롯한 지역위원장 등 직업 정치인이 대부분입니다. 권리당원은 가입 후 6개월간 당비를 납부한 당원으로, 전당대회 투표 등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0.59%포인트’는 송 전 대표의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의 ‘친명’ 대 ‘비명’ 갈등도 이 아슬아슬한 표차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내에선 이재명 대표 측이 송 전 대표를 전략적으로 민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실제 이 대표 최측근 모임인 ‘7인회’ 소속 멤버가 송영길 캠프에서 조직 업무 등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이 때문에 송 전 대표는 당선 직후 이어진 대선 경선 과정 내내 “이재명 편만 든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그 때 ‘이심송심’(李心宋心)이라는 말도 나왔죠. 당시 친문 지지층 사이 송 전 대표의 별명은 ‘쩜오 대표’. “0.59%포인트로 간신히 이겨놓고 왜 제멋대로 당을 운영하느냐”는 노골적 불만이었습니다.특히 그 해 10월 이낙연 전 대표가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압승하고도 결선행에 실패하자 당내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이낙연 캠프는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총유효투표수에서 제외한 방식에 문제가 있다”라며 이의를 신청했었죠. 이른바 ‘사사오입’ 논란이었습니다. 하지만 송 전 대표는 “우리 당은 어제 이재명 후보를 20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 발표했다”라고 곧장 일축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이낙연 지지자들을 향해선 “거의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수준”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도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강행으로 공석이 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이 대표가 출마하는 등 둘 간의 ‘밀월 관계’에 대한 의심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봉합하지 않았던 0.59%포인트의 갈등이 2년 만에 이뤄진 검찰 수사에 다시 터진 겁니다. 요즘 친문, 친이낙연계에선 “만약 의혹이 사실이고, 돈 봉투 살포가 없었더라면 민주당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당시 송 전 대표가 아니라 홍 의원이 당선됐더라면 대선 후보까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당직 개편 이후 겨우 잠잠해지는 듯했던 당내 갈등도 다시 불붙는 모양새입니다. “(프랑스에 있는) 송 전 대표가 제 발로 들어오시는 게 낫지 않나. 그게 더 당당하다”(조응천 의원·14일 CBS라디오), “당내 진상조사 기구를 마련해 정리할 건 하고, 사죄하고 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당 지도부가 그걸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이상민 의원·14일 CBS라디오)라는 등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뜨뜻미지근한 당 지도부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 이재명과 0.73%포인트아찔한 승부는 작년에도 있었죠.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는 1614만7738표(47.83%)를 받아 ‘역대 대선 낙선자 중 최다 득표자’라는 아이러니한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1639만4815표(48.56%)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과는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과 이 대표에겐 이 0.73%포인트 차이가 또 한 번의 독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제대로 졌더라면 이 대표도 이제까지 다른 패배자들이 그랬듯, 잠시 해외로 나가는 등 정치 행보를 중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대선 직후 오히려 ‘개딸’들과의 스킨십을 대폭 강화하더니 ‘선거 중독자’마냥 6월 보궐선거, 8월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했습니다. 스스로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돼서 졌는지 돌이켜 보고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던 셈입니다. 지난해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소식에 한 민주당 원로는 “망할 땐 확실히 망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어쭙잖게 진 게 이재명의 가장 큰 문제”라고 걱정하더군요.이 대표는 대선 석패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것인지, 아직도 혼자 ‘대선주자’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역 순회 간담회를 하는가 하면, 11일엔 외신기자 간담회에도 참석했죠.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터진 미국 측 감청 의혹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을 텐데, 여기서도 이 대표가 극도로 꺼리는 질문들만 이어졌습니다.“지금까지 측근 5명이 사망했다. 이재명이란 인물을 위험인물로 봐야 하는가”, “성남시장할 때 일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어떤 입장인가” 등 한껏 날 선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이 대표는 “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과 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수치스럽다”라며 진땀을 뺐습니다. 평소 국내 출입 기자들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는 쏟아지는 외신 질문 세례에 “청문회 하는 기분”이라고도 하더군요.이 대표가 벌써 차기 대선을 바라보고 움직일 때는 아직 아닌 듯합니다.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더넣어봉투당’, ‘쩐당대회’ 등이라며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일주일 가까이 전전긍긍하기만 했죠.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당사자 등에게 자진 탈당 등을 요구하면 ‘이재명 때는 안 그러더니’라는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고, 그렇다고 뭉개면 ‘이재명에 이어 또 방탄이냐’는 여론이 이어질 것”이라며 “어찌해도 욕을 먹는 딜레마 구조”라고 했습니다.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 대표는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 드리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이번 돈봉투 사태와 관련해 첫 공식 입장이자 사과였습니다. 그러면서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이를 위해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면서도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당부했습니다. 현재로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 같습니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이번 일로 크게 실망하고 분노한 지지층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그 동안 민주당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말·말·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당 대표가 아주 멋진 전통 세웠네~ 죄짓고 수사받으면 다 야당 탄압이야?”“지금까지 열심히 응원하던 당원들 배신하고 돈 조금에 양심을 팔고 있으니 민주당 하는 것이 X 팔려 살 수 있겠소?”“김기현 입에서 저런 쓰레기 말을 들어야 하냐? 저런 말에도 반박을 못 하겠네.”“땅을 치고 후회한들 민주당 이쁘게 봐줄 것 하나도 없다. 이번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돈 봉투 사건으로 아마 당이 해체되지 않을까 싶네.”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5개월 만에 다시 20%대로 급락한 가운데 국민의힘은 지도부의 연이은 설화에 이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둘러싼 내홍에, 더불어민주당은 ‘돈봉투 의혹’ 수렁에 각각 빠져들었다. 국정 운영의 3대 축인 대통령실과 여당, 제1야당이 동시에 총체적 난국에 빠져드는 기현상 속에 민생을 위한 정치력이 실종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27%를 기록했다는 한국갤럽의 16일 조사 결과(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대해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만 냈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부에선 미국 감청 의혹이 제기된 유출 문건을 “위조”로 성급하게 단정했다는 논란 속에 한 주 만에 4%포인트 하락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6개월 전보다 정부의 주요 정책 현안과 관련해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높아졌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집권 1년간 야당 대표를 따로 만나지 않은 것도 정치 실종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에선 국정운영 동력 회복을 위한 대통령실 인적개편과 개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31%로 지난달 8일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한 달여 만에 8%포인트 떨어졌다. 전 목사 관련 갈등이 격화되면서 “당이 전 목사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당내에서는 “집권여당으로서 정책 입안을 주도하거나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모습보다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에 의존하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갤럽 조사 지지율(36%)에서 국민의힘을 앞섰지만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이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발목이 잡혔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구체적인 진상 규명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69석의 의석수를 앞세워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간호법 제정안 등 입법 독주를 이어가면서 협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무당층이 29%에 달하는 것도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민생을 위한 협치보다 혐오 정치가 반복되면서 정부 여당과 야당 모두 지지율이 답보하거나 하락하는 이례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며 “서로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비전을 보여줘야 국민들이 호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지금까지 대표님의 측근 5명이 사망했다. 이재명이란 인물을 위험인물로 봐야 하는가.”“성남시장할 때 일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어떤 입장인가.”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한국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둘러싼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과 답을 해야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수치스럽다”라며 진땀을 뺐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청문회 하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측근 사망과 관련해 묻는 외신 질문에 “제 주변 분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그것도 본인 문제가 아니라 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들의 사망에 대해서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상태”라며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엔 “현재 검찰의 수사, 기소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을 믿고 법적 대응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다른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 당할까 말까 하는 검찰 또는 경찰 압수수색을 지금 언론에 공표된 것만 봐도 339번 당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집안 문제는 가급적이면 집 안에서 해결하는 게 좋은데 그렇게 노력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최근 논란이 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및 미국 정부 기관의 감청 의혹에 대해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감청 의혹과 관련해 “보도가 사실이라면 신뢰에 기반한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매우 실망스러운 사태”라며 “한국 정부가 발표한 것처럼 사실이 아니라 문서 위조의 결과이길 바라지만 객관적 상황을 보면 실제 도청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입장에서도 도청의 실체 여부, 실상에 대해서 사실 조사를 국회 차원에서 최대한 하고 사실이라면 재발 방지와 미국 정부의 사과 그리고 우리 정부의 도청 방지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이날 “해당 문건 상당수가 위조됐다”라고 밝히며 민주당을 겨냥해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라고 날을 세운 데에 대한 반응이다. 이 대표는 “대통령실이 ‘한미동맹 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은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라 했다. 정부가 지칭한 세력이 민주당이라 보는가”라고 묻는 질문에 웃으면서 “설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최초 보도한 미국 언론을 그렇게 (지칭)한 건 아닌지 생각이 얼핏 든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및 수산물 수입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다는 보도가 잇따르기 때문에 국민이 우려하는 건 당연하고 야당으로서 그 문제를 지적하는 것 역시 야당 본연의 책무”라며 “일본이 이웃 국가에 더 많은 배려를 해주길 부탁한다”라고 했다. 그는 “한일 정상회담 결과는 국민의 눈높이에선 매우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국민께 좋은 평가를 받길 기대한다. 최소한 반도체, 배터리 문제 등에 있어서 국익을 확보하기를 기대한다”라고 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더불어민주당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4월의 마지막 금요일인 28일에 치러질 전망입니다. 당헌당규상엔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를 매년 5월 둘째 주에 연다’고 돼 있지만 예년보다 앞당겨 치르기로 했다죠.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지도부 총사퇴로 박홍근 원내대표가 3월에 임기를 시작하기도 했고, 국민의힘이 이미 지난 7일 윤재옥 신임 원내대표를 뽑은 것도 영향이 있었습니다.‘조기 원내대표 선거’가 현실화되면서 후보군도 본격적으로 바빠졌습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가 한 마디로 ‘친윤 일색’이었다면,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는 ‘오리무중’입니다. 지금까진 박광온(경기 수원정)·이원욱(경기 화성을)·홍익표(서울 중성동갑) 등 3선 의원들 간 ‘삼파전’이 예상되죠. 아직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 않은 4선 안규백 의원(서울 동대문갑), 3선 윤관석 의원(인천 남동을)을 비롯해 재선 김두관 의원(경남 양산을)도 후보군으로 꼽힙니다.한 민주당 의원은 “선거 판세가 전혀 안 읽힌다는 게 이번 선거 특징”이라며 “주요 주자가 모두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고 캐릭터도 명확하지 않아 서로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습니다. 예년 같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아니란 거죠. 한 초선 의원은 “무조건 되는 사람에게 표를 줄 거다”라고 했습니다. 의리만 바라본 사표(死票)는 없다는 겁니다. 내년 총선 승리와 이재명 사법리스크 극복이라는 여느 때보다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게 된 주요 주자들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지난 3일 홍익표 의원이 경향신문 인터뷰로 출마를 공식화했습니다. 홍 의원은 인터뷰에서 “당의 전체적 분위기는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내년 총선을 책임 있게 치르자는 것”이라며 이 대표 사퇴론에 선을 그었죠. 그는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할 당헌 당규상의 근거 규정이 없고, 당원 상당수가 이 대표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이낙연 캠프 총괄정책본부장을 맡았던 홍 의원은 일찌감치 4선 우원식 의원 등 ‘친명’(친이재명)계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홍 의원은 김근태계 의원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회장을 맡고 있고,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소속이기도 하죠. 홍 의원은 지난달 더좋은미래의 베트남 워크숍에서도 출마 의지를 밝히며 지지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홍 의원은 ‘친문’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데다, 이해찬 전 대표 시절 수석대변인을 지낸 인연으로 ‘이해찬계’로도 분류됩니다. 한 의원은 “자진해서 서초 험지로 나간 것도 의원들 사이 약간의 가점이 되지 않겠나”라고 하더군요. (서울 중구성동갑에서 내리 3선을 한 그는 지난해 서울 서초구로 자진 이동해 서초을 지역위원장을 맡았습니다.)이런 탄탄한 당내 네트워크는 강점이지만, 일찌감치 ‘친명’을 표방하고 나선 전략이 도리어 약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누구든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커지기 마련이죠.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뒤로 만난 친명계 의원들 사이에선 “같이 표 단속이라도 좀 했어야지, 홍익표가 무슨 역할을 했냐”, “이래서 홍익표로 되겠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더군요. 개딸 등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홍 의원이 이낙연 캠프 정책본부장 시절 경쟁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도덕성 문제를 지적했던 것도 다시 거론되는 중입니다.다음날인 4일엔 이원욱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대표적 비명(비이재명)계인 그는 이날 KBS라디오에서 “이 대표와는 굉장히 오래된 친구 사이”라며 “(원내대표에 당선되면 합이) 아주 잘 맞을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전략공천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송영길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가기 위해 사퇴한 인천 계양 지역구로 이 대표가 출마하기로 한 것에 강력히 반대하는 과정에서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이 의원은 “그 뒤로 이 대표가 이른바 ‘정치 훌리건’이라고 부르는 강성 팬덤의 공격에 대해 단 한 마디 얘기를 안 하고 항상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비판 목소리를 냈을 뿐”이라며 “나 같은 비명계가 원내대표가 돼서 그 문제를 풀어갈 때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의원 역시 이 대표 사퇴에는 반대했더군요. ‘이재명 없는 민주당’을 표방하면서 산토끼를 잡으려다 자칫 집토끼 5~10%마저 놓칠 수 있다는 거죠.이 의원은 정세균계 출신으로, 대선 이후 정세균계가 사실상 와해된 탓에 뚜렷한 지지 세력이나 모임이 없는 것이 약점입니다. 이 의원은 20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이인영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협상을 주도하는 ‘온건파’로 분류됐었죠. 그랬던 그는 대선 이후 본격 ‘마이웨이’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해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가 하면 대선 이후엔 반성과 혁신을 요구하며 비명계 의원 모임인 ‘민주당의 길’의 원년 멤버로 참여했죠. 이 과정에서 이 대표를 공격하며 개딸들의 수박 테러 1순위로도 자리 잡았습니다. 사실상 개딸들이 그를 전국구 인물로 키워준 셈이죠. 한 중진 의원은 “이재명과 독하게 각을 세운 것이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라며 “당내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중립 지대 의원들은 총선 공천을 생각해 이재명 견제 카드로 이원욱을 뽑을 수 있고, 이원욱을 원내대표로 뽑았다가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도 한다”고 전했습니다.박광온 의원도 다음날(5일) 바톤을 이어받아 출마를 공식화했습니다. 박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일단 당의 단합과 통합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해 희망을 만들어 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이기는 목표를 갖고 있다”라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당의 균형을 잡는 보완재 역할을 하겠다”라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그 역시 이 대표와의 ‘찰떡 호흡’을 자신했습니다. 박 의원은 “그(이 대표와의 호흡)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대표도 당 지도부를 단일한 색깔로 구성했더니 처음에는 좋아 보였는데 나중에는 그게 아니더라는 말을 최근에 했다”라고 했습니다. ‘원조 친문’ 중 하나인 박 의원은 이낙연 대표 때 사무총장을 지냈고, 대선 경선 때도 이낙연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아 ‘친이낙연계’로도 분류됩니다. 그의 강점은 무엇보다 온화한 성품과 원만한 이미지입니다. 그가 거듭 당내 ‘통합’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하는 배경이겠죠.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광온 의원의 최대 강점은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죽어도 박광온은 안 된다는 사람은 못 봤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반대로 ‘무조건 박광온이어야 한다’라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는 의미겠죠. 한 의원은 “친문이나 친이낙연계가 박 의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친문 의원 표심이 개인적 친분이나 인연 등에 따라 홍익표, 이원욱으로 갈리고 있다더라”라고 전했습니다. 박 의원은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 때 박홍근 원내대표와 붙었다가 이재명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비토 테러’를 당했습니다. “이낙연을 도왔던 박광온 대신 친명계 박홍근을 뽑아라”는 반협박성 문자메시지와 팩스가 의원실마다 쏟아졌었죠. 그 뒤로 절치부심한 박 의원은 이번 선거를 꽤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합니다. 의원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이미 100명 이상 만났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원내대표 선거는 말 그대로 의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선거이다 보니 개인적 관계자 서로 갖고 있는 마음의 빚 등이 의외로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 의원도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 때 2차전까지 올라갔으니 이번에도 ‘결선투표’까지 이어진다면 말 그대로 예측 불허의 경기가 예상됩니다.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기에 아직 남은 변수들도 많습니다. 20일이면 여의도에선 판세가 두 번은 바뀔 수 있는 시간이죠. 이 대표 지지율이 최근 다시 오르고 있던데, 이를 계기로 친명계에서 자신들을 대표할 만한 새 후보를 낼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체포동의안이 이번 달 국회로 또 넘어온다면 그 역시 적잖은 영향을 미칠 테고요. 어쨌든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보다는 재밌을 것 같네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 오랜만에 바리캉이 등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 윤재갑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초선)이 삭발식에 나선 것. 윤 의원 뒤로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도 윤석열 정부 규탄 피켓을 손에 든 채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절대 반대”를 외쳤다. 3일에도 여의도에선 만개한 벚꽃잎과 함께 머리털이 흩날렸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선 역시 농해수위 소속인 민주당 신정훈(전남 나주-화순·재선), 이원택(전북 김제-부안·초선) 의원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시사 가능성에 항의하며 집단 삭발을 했다. 삭발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야당 정치인들의 최후의 투쟁 수단이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겠다는 가장 절박한 표현이었다. 2019년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권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릴레이 삭발식을 벌였을 때 “110석이나 되는 제1야당이 국민으로부터 이미 받은 수많은 정치적 수단을 외면하고 삭발 투쟁이나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던 이유다. 당시 정의당 대표였던 심상정 의원은 “삭발은 몸뚱어리밖에 없는 약자가 자기 삶을 지키고 신념을 표현하는 최후의 투쟁인데 (자유한국당이) 국민이 준 제1야당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때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도 “삭발을 통한 ‘정치쇼’”(정춘숙 의원), “참 코미디 같다”(이재정 의원), “머리카락이 아니라 양심의 털부터 깎으라”(노웅래 의원)고 일제히 평가절하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야당이 된 지 1년도 안 돼서 자신들이 조롱했던 삭발식에 나선 것이다. 169석의 거야(巨野)이자 원내 1당인 민주당이 벌써 삭발 카드를 꺼내든 건 그만큼 제1야당으로서의 메시지 파워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요즘 우리 당의 메시지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야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비판과 지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여당에서 ‘이재명 방탄 정당 주제에’라고 하는 순간 모든 명분이 사라진다. 이 대표가 입바른 소리를 해도 사람들이 ‘너나 잘하세요’라고들 하지 않느냐”라고 했다. 실제 지난주 민주당이 ‘한일 정상회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하자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또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일축했다. 삭발식이 결국 어느덧 1년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 공천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 민주당 의원은 “결국 총선을 앞두고 농해수위 의원들만 삭발해서 각자 지역에 이름을 알리는 수혜를 입은 것 아니냐”며 “요즘 시대에 삭발하면서 강성으로 나가는 게 국민들 눈에 꼭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2019년 ‘조국 삭발’에 동참했던 보수 야권 의원들의 공천 생존율은 50%에 그쳤다. 삭발도 공천을 보장하진 못한다는 얘기다. 민주당과 의원들이 꼼수를 내려놓고 진짜 민생을 위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 그렇게 티 내지 않아도 유권자도 알 건 다 안다.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혹시 나만 모르는 국회의원의 엄청난 장점, 아니면 특혜가 있는 건가? 아니, 이게 정말 이렇게 머리까지 밀어 가면서 할 일이야…?”2019년 9월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 삭발이 유행처럼 번지던 어느 날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이 조심스럽게 물어보더군요. 3년도 더 된 대화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게, 당시 자유한국당의 재선 박인숙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한다”라며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직후였습니다. 의사 출신으로 당시 71세였던 박 의원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해임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했습니다. 같은 당의 김숙향 동작갑 당협위원장도 이날 나란히 머리를 밀었죠.전날 같은 장소에서 무소속 이언주 의원도 같은 이유로 삭발했습니다. 보수 야권 여성 의원들의 연이은 삭발에 놀란 집권여당 초선 의원이 “머리카락이 없어도 좋을 만큼 국회의원이 괜찮은 직업인 거냐?”고 물어봤던 거죠.● ‘조국 반대’ 외치며 릴레이 삭발 여성 정치인들의 ‘결기’에 자극받은 황교안 당시 대표도 삭발에 동참했습니다. 5일 뒤 청와대 앞 분수대에 선 그는 ‘조국 파면’을 촉구하며 머리를 밀었습니다. 다음날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같은 장소에서 삭발했고요. 당시 김 전 지사의 머리는 앞서 5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삭발했던 ‘삭발 선배’ 박대출 의원이 밀어줬습니다. 박 의원은 현재 집권여당 정책위 의장이죠. 김 전 지사는 “머리밖에 깎을 수 없는 미약함에 죄송스럽다”라며 동료 의원들을 향해 “전부 머리 깎고, 의원직 던지고, 문재인을 끌어내려야 한다”라고 했습니다.이어 삭발 바톤을 넘겨받은 강효상 의원은 동대구역 광장에서 머리를 밀어 버린 뒤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에게 공을 넘겼죠. “사실 나 원내대표도 며칠 전 조국이 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삭발 각오를 말한 적이 있다”라는 그의 말에 나 전 원내대표는 한동안 ‘언제 삭발할 거냐?’’는 질문에 시달렸습니다.그 시절 ‘조국 삭발’ 바람 속 머리를 민 보수 진영 인사만 현역 의원 9명을 포함해 총 15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릴레이 삭발식’에 대한 비판도 많았습니다. 보여주기식 쇼가 메시지의 진정성을 떨어트리고 정치를 희화화한다는 겁니다. 특히 이듬해 치러질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보다 소중한 공천이냐”는 거죠.당시 정의당 대표였던 심상정 의원은 “삭발과 단식은 몸뚱어리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약자가 자기 삶을 지키고 신념을 표현하는 최후의 투쟁 방법인데 (자유한국당이) 국민이 준 제1야당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110석이나 가진 제1야당 의원들이 이미 국민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정치적 수단을 두고 삭발이나 하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메아리도 ‘삭발의 새로운 의미’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인기 없는 정치인들의 여론 끌기”라고 비판했습니다. “삭발은 머리카락을 모조리 바싹 깎는다는 뜻으로, 머리카락이 다 자랄 때까지 지은 죄를 뉘우치라는 것으로 죄인의 징표다. (중략) 민심이 바라는 좋은 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애꿎은 머리털이나 박박 깎아버린다고 민심이 박수를 쳐줄까. 이제 말짱 깎아놓은 머리카락이 다시 다 솟아 나올 때까지도 일이 뜻대로 안 되면 그때에는 또 뭘 잘라버리는 용기를 보여줄까.” 남한 정치인들의 뼈를 무지막지하게 때렸네요.● 여의도는 또다시 삭발 중어느덧 총선이 또 1년 앞으로 다가와서일까요. 2023년 봄, 정치권엔 다시 삭발의 계절이 왔습니다. 요즘 여의도엔 만개한 벚꽃잎뿐 아니라 머리카락도 흩날리는 중입니다.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선 3년 전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다만 올해 주인공은 민주당입니다. 3년 전 보수야당 의원들이 머리를 밀었던 그 장소에서 이번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윤재갑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초선)이 삭발에 나선 거죠. “(후쿠시마 오염수의) 위험을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윤 의원이) 삭발을 결의했다”라는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의 발표에 해군 출신인 윤 의원은 “50년 동안 길러온 머리카락을 자르겠다”라며 머리를 밀었습니다.‘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삭발식엔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도 참석했습니다. 이 대표와 의원들은 윤 의원의 삭발을 응원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저지하라”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습니다. 당원들 사이에선 “윤석열도 삭발하라”라는 외침도 들려왔습니다.오늘(3일)도 삭발식이 예고돼 있습니다. 4월 3일 오후 2시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역시 농해수위 소속이자 민주당의 '쌀값 정상화 태스크포스 팀장'인 신정훈 의원이 삭발에 나선다 합니다. 169석의 거야(巨野)이자 원내 1당인 민주당이 야당이 된 지 1년도 안 돼서 벌써 ‘삭발 카드’를 꺼내든 건 그만큼 제1야당으로서의 메시지 파워가 떨어졌다는 얘기일 겁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요즘 우리 당이 내놓는 메시지의 방향성은 옳다고 본다. 야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견제와 지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저쪽에서 ‘이재명 방탄 정당용’이라고 해 버리는 순간 우리의 명분이 사라진다. 이 대표가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해도 사람들이 ‘너나 잘하세요’라고들 하지 않냐”라고 하더군요.실제 지난주 민주당이 ‘한일 정상회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하자마자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또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일축해버렸죠. 이러니 민주당 의원들이 머리를 밀던 말던 과거 보수야당만큼 관심조차 못 받는 거고요. 삭발식이 결국 어느덧 1년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 공천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결국 총선을 앞두고 농해수위 의원들만 삭발해서 각자 지역에 이름을 알리는 수혜를 입은 것 아니냐”라며 “다만 요즘 시대엔 삭발 등 강성으로 나가는 게 결코 국민 눈엔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날을 세우더군요.2019년 ‘조국 삭발’에 동참했던 보수 야권 의원들의 공천 생존률은 50%에 그쳤습니다. 어차피 삭발도 공천을 보장하진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민주당 의원님들도 아까운 머리털을 잘 지키시는 게 어떨까요. 민주당이 꼼수를 다 내려놓고 진짜 민생을 위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 그렇게 티 내지 않아도 유권자도 다 압니다.그럼 2019년 자유한국당의 삭발식을 일제히 ‘정치쇼’라고 평가절하했던 당시 민주당 의원님들의 ‘맞는 말 대잔치’로 이번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황 대표의 삭발, 참 억지스럽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진짜 모발이라고 꿋꿋이 소수 주장을 펴온 저의 시력이 드디어 입증된 날.”(박홍근 의원)“참 코미디 같다. 대표가 삭발한 현장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동의했을까” (이재정 의원, 당시 당 대변인)“머리카락이 아니라 양심의 털부터 깎으라는 것이 민심” (노웅래 의원)“자신의 지지자 결집을 위한 대권 놀음 아닌가. 민생을 제쳐두고 제1야당 대표가 삭발을 통한 ‘정치쇼’를 강행할 때가 아니다” (정춘숙 의원, 당시 원내대변인)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우리 태극기부대야?” (변재일 의원)“태극기, 우리가 빼앗아 와야 합니다.” (문진석 의원)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장에서 들려 온 두 민주당 의원님의 대화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던 이날 민주당은 ‘윤석열 대일 굴욕 외교 저지를 위한 의원 행동’을 제안하며 의총장을 온통 태극기로 도배했습니다. 회의장 전면 스크린에는 ‘역사를 팔아서 미래를 살 수는 없습니다’라는 문구 아래 대형 태극마크가 등장했습니다. 의원들은 각자 손에 태극기를 들고 흔들며 입장했습니다.민주당 대일 굴욕외교대책위원장인 김상희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은 태극기 제조, 소지도 금지했지만, 선조들은 태극기를 독립운동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의원들이 먼저 나서서 태극기 흔들기를 결심했으면 좋겠다. 가슴엔 태극기 배지를 달고, 의원실과 상임위원회 회의장엔 태극기를 걸고 대일 외교에 대한 저항 메시지를 전달하자”라고 했습니다. 이날 의총 말미엔 ‘굴욕외교에 맞서 잘 싸워 달라’는 의미로 김 의원이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에게 직접 태극기 배지를 달아주는 퍼포먼스도 벌였죠. 잠시 독립운동가들인 줄 착각할 뻔했습니다.민주당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뒤로 일주일 내내 이어졌습니다. 17일 열린 국방위원회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자신들의 노트북에 ‘태극기 피켓’을 부착했다가 결국 회의가 파행까지 됐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의총 때 썼던 ‘역사를 팔아 미래를 살 수 없다’라는 문구와 함께 태극기 팻말을 붙이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며 회의에 불참한 겁니다.국민의힘 소속인 한기호 국방위원장은 “국회법 145조는 회의장에서 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위원장이 경고나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태극기 앞에) 써놓은 문구와 국방위가 무슨 관계가 있나. 정치적인 구호”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 위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태극기는 내릴 수 없다”라며 “한 번 건 태극기를 어떻게, 자존심을 내릴 수 있겠나”라고 극렬 항의했습니다. 이들은 회의가 파행된 뒤 기자회견도 열어 “국회의원이 국기를 내거는 게 안 될 행위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같은 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은) 태극기를 부정하는 것인가. 태극기 앞에서 부끄럽나”라고 비판했습니다. 2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죠. 이날도 노트북 위에 태극기 피켓을 내 건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여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결국 회의는 개의 6분 만에 정회됐습니다.문체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이 “어떤 이유로도 태극기 자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활용돼선 안 된다”라고 하자 민주당 임종성 의원은 “태극기가 정치 쟁점화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하고 처음 듣는 얘기다. 태극기를 국회의원들이 붙였다고 이게 정치적 쟁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결국 여야는 간사 간 협의를 거쳐 각자 자신의 발언 시간에만 태극기를 붙이기로 하고 어렵사리 회의를 재개했습니다. 정회 후엔 여당도 이에 질세라 태극기 피켓을 내걸더군요.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민주당 의원님들 덕분에 저희도 태극기를 걸고 상임위를 진행하게 됐다. 구호를 좀 다르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결단, 여야 함께 합시다’라고 걸었다. 한일 간의 역사적 난제를 풀기 위한 대통령의 결단을 국회가 좀 존중하고 그 과정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여야는 거의 모든 상임위 회의장에서 ‘태극기 경쟁’을 벌이는 중입니다.태극기 사랑에는 요즘 반일 투쟁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이재명 대표도 빠질 수 없겠죠! 이 대표는 2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대일굴종외교 규탄 태극기 달기 운동’에 참석해 자신의 차량에 태극기 스티커를 직접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요즘 윤 대통령을 향한 ‘독설’에 물이 오른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다시 대한민국이 자주독립 국가임을,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대한민국을 위한 정부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제 국민이 나설 때다. 태극기를 다시 손에 들고, 각 가정에 계양하고, 차에 붙이고 해서 우리나라가 결코 일본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자주독립국임을 보여주자”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잠시 일제강점기로 돌아간 줄 알았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어져 온 민주당의 난데없는 태극기 사랑이 묘하게 불편했습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던 대한민국 국민 아니겠습니까. 태극기가 민주당의 ‘반일 투쟁’ 행각을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는 게 싫은 이유일 겁니다. 태극기가 정치판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게 싫었던 거고, 태극기를 든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매국노’, ‘친일파’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그 특유의 이분법적 논리가 불쾌했던 거죠. 저 역시 대한민국을 사랑하지만, 민주당식 애국엔 동의하지 않거든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통화에서 최근 민주당의 ‘태극기 운동’에 대해 “제1야당이 반일 감정을 자극해 어떻게 해보려는 게 정말 한심하다”라고 꼬집더군요. 그는 “당연히 한일 정상회담 과정이나 협상 결과상의 잘못된 부분은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태극기를 모든 곳에 달자고 하고, ‘이완용’, ‘매국노’ 등 감정적 표현을 남발하는 건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태극기는 이미 ‘태극기 부대’에게 충분히 시달린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8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태극기 부대의 등장 이후 태극기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비율이 35%더군요. 특히 진보층에선 49%가 태극기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응답했습니다. 국민의힘이 태극기 부대와의 결별을 선언하자마자 이번엔 민주당이 ‘우리가 이번 기회에 태극기를 빼앗아 오자’라는 상황인 겁니다. 대체 태극기는 무슨 죄인가요. PS. 온라인상에선 민주당의 태극마크 모양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공식 태극마크와 달리 태극 문양의 오른쪽 끝이 조금 찌그러졌다는 거죠. 중간에 흰 선 때문에 ‘펩시’ 음료 로고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선 “디자인인데 문제가 되느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1989년 이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국회의원의 부패 혐의 관련 사건 13건 중 10건이 법원에서 최종 유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포동의안이 투표에 부쳐지지도 못한 채 폐기된 사건 18건 중에서도 12건이 유죄로 확정됐다. 국회가 의원 개인의 부패와 비리 혐의에 대해서조차 영장실질심사를 피할 수 있게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과거 군사 정권으로부터 의원들의 정당한 의정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불체포특권이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일반인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유죄 25건 중 체포안 가결은 3건26일 동아일보가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1989년 이후 부패 범죄 관련 체포동의안 및 수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온 부패 혐의 사건 36건 중 25건이 대법원 등에서 유죄로 최종 확정됐다. 유죄로 확정된 25건 중에서는 중범죄인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 23건으로 대다수였고, 벌금형이 1건, 자격정지가 1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죄 확정 건 가운데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건은 1995년 민주당 박은태, 2010년 민주당 강성종,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 등 3건이었다. 나머지 22건 중 10건은 부결됐고, 12건은 회기 종료 등으로 자동 폐기됐다. 2018년 홍문종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이 기부받은 19억 원을 빼돌리는 등 배임,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으나 대법원에서 징역 4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21대 국회 들어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친 사건은 모두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 4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던 더불어민주당 출신 이상직 전 의원은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같은 해 9월 역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던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도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최근 잇달아 부결됐다. 이 같은 논란 때문에 정치권에선 “부패, 비리 범죄에 대해서라도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국회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정치학)는 “불체포특권은 권위주의 시절 (표결 등) 의정 활동과 관련된 활동을 보호해 주던 장치”라며 “원론적으로 의정 활동과 관계없는 일의 범죄 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결·폐기 사건 중 무죄 7건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사건 중엔 최종 무죄가 없었지만, 부결되거나 폐기된 뒤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7건이었다. 검찰이 법리를 오해했거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무부가 2003년 민주당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해 나라종금으로부터 2억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제출한 체포동의안은 6개월간 계류되다 결국 부결됐다. 박 전 의원은 자금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를 받았다. 자유민주연합 이인제 전 의원도 2004년 한나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국회로 체포동의안이 넘어왔다. 당시 체포동의안은 폐기된 뒤 재판에 넘겨졌지만 증인의 허위 진술 가능성 등의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민주, 30일 與 의원 체포안 두고 고심민주당은 30일 본회의에서 진행될 국민의힘 하영제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 깊은 고심에 빠졌다. 한 달 만에 겨우 잠재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후폭풍에 다시 논란의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검찰이 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국회로 넘겼다”며 “국민의힘은 가결시키겠다는데 오히려 민주당이 나서서 부결시킬 수도 없고, 반대로 가결표가 너무 많이 나오면 ‘민주당이 이재명은 부결시키더니 하영제는 가결시키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하 의원 체포동의안이 실제 가결될 경우가 민주당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의원은 “하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면 이 대표에 대해 추가 체포동의안이 넘어올 경우 민주당도 여론 역풍을 고려해 부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 의원이 표결에 앞서 과거 권성동 의원처럼 당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영장실질심사 자진 출석의 길을 가는 것도 부담이다. 이 경우 이 대표에게도 ‘동료 의원들에게 그만 부담 지우고 직접 나가라’는 당내 여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조권형 기자 buzz@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1989년 이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국회의원의 부패 혐의 관련 사건 13건 중 10건이 법원에서 최종 유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포동의안이 투표에 부쳐지지도 못한 채 폐기된 사건 18건 중에서도 12건이 유죄로 확정됐다. 국회가 의원 개인의 부패와 비리 혐의에 대해서조차 영장실질심사를 피할 수 있게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과거 군사 정권으로부터 의원들의 정당한 의정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불체포특권이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일반인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 유죄 25건 중 체포안 가결은 3건 26일 동아일보가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1989년 이후 부패범죄 관련 체포동의안 및 수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온 부패 혐의 사건 36건 중 25건이 대법원 등에서 유죄로 최종 확정됐다. 유죄로 확정된 25건 중에서는 중범죄인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 23건으로 대다수였고, 벌금형이 1건, 자격정지가 1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죄 확정 건 가운데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건은 1995년 민주당 박은태, 2010년 민주당 강성종,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 등 3건이었다. 나머지 22건 중 10건은 부결됐고, 12건은 회기 종료 등으로 자동 폐기됐다. 2018년 홍문종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이 기부받은 19억원을 빼돌리는 등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으나 대법원에서 징역 4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21대 국회 들어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친 사건은 모두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 4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던 민주당 출신 이상직 전 의원은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같은 해 9월 역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던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도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최근 잇달아 부결됐다.이 같은 논란 때문에 정치권에선 “부패, 비리 범죄에 대해서라도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국회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정치학)는 “불체포특권은 권위주의 시절 (표결 등) 의정 활동과 관련된 활동을 보호해주던 장치”라며 “원론적으로 의정 활동과 관계없는 일의 범죄 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결·폐기 사건 중 무죄 7건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사건 중엔 최종 무죄가 없었지만, 부결되거나 폐기된 뒤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7건이었다. 검찰이 법리를 오해했거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무부가 2003년 민주당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해 나라종금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제출한 체포동의안은 6개월간 계류되다 결국 부결됐다. 박 전 의원은 자금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를 받았다. 자유민주연합 이인제 전 의원도 2004년 한나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국회로 체포동의안이 넘어왔다. 당시 체포동의안은 폐기된 뒤 재판에 넘겨졌지만 증인의 허위 진술 가능성 등의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 민주, 30일 與 의원 체포안 두고 고심 민주당은 30일 본회의에서 진행될 국민의힘 하영제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 깊은 고심에 빠졌다. 한 달 만에 겨우 잠재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후폭풍에 다시 논란의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검찰이 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국회로 넘겼다”며 “국민의힘은 가결시키겠다는데 오히려 민주당이 나서서 부결시킬 수도 없고, 반대로 가결표가 너무 많이 나오면 ‘민주당이 이재명은 부결시키더니 하영제는 가결시키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하 의원 체포동의안이 실제 가결될 경우가 민주당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의원은 “하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면 이 대표에 대해 추가 체포동의안이 넘어올 경우 민주당도 여론 역풍을 고려해 부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 의원이 표결에 앞서 과거 권성동 의원처럼 당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자진 출두의 길을 가는 것도 부담이다. 이 경우 이 대표에게도 ‘동료 의원들에게 그만 부담 지우고 직접 나가라’는 당내 여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조권형 기자 buzz@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지난 20일, 국회의원들 각자 (월급으로) 1200만 원 이상 받았을 겁니다. 통장을 보며 떳떳했을 국회의원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야 청년 정치인들의 모임인 ‘정치개혁 2050’이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 세비·정수를 국민이 참여하는 제3기구에서 정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국회의원 보수산정위원회를 만들어 국회의원들의 ‘연봉 셀프 인상’ 구조를 바꾸자는 것. 이들은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는 한 해 1억 5000만 원이 넘는다. 1인당 GDP 수준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의원들이 받는 세비의 절반만큼이라도, 누리는 기득권과 특혜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생산성이 있었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이렇게까지 바닥을 치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선거제 개편안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의원 정수 확대를 둘러싼 논쟁을 언급하며 “의원 정수 확대는 선거제 개편안을 논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주제이지만 지금은 언감생심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회의원이 더 늘어나는 것을 국민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선거제도 개편이든, 국회의원 정수와 세비에 관한 문제이든 지금 국민이 국회를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를 늘 염두에 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논의해야 한다”며 국회의원 보수산정위원회 등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제3의 기구 신설을 제안했다. 이들은 “영국 등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며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 역시 국민들 보기에 ‘그들만의 리그’, ‘국회의원들끼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이 함게 참여하는 논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개혁 2050은 2050년 대한민국의 미래를 청년이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전용기 의원, 이동학 전 청년최고위원, 국민의힘 김용태 전 청년최고위원,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 10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나 나눴다는 대화 내용이 더불어민주당 내에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총단합해서 잘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 이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 정도의 얘기를 했다”라고 말했죠.이에 비명(비이재명)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면서 ‘문심’ 진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과도하게 말한 것이고 전달한 분도 잘못 전달한 것”이라며 “우리가 뭐 문 전 대통령 ‘꼬붕’이냐”고 불쾌감을 드러냈죠. 두 의원의 오늘 아침 라디오 발언을 한 번 보시죠. [20일 오전 CBS라디오] ▷진행자 : 이재명 대표의 이 자도 안 나왔습니까? ▶박용진 : 얘기 안 했었습니다. ▷진행자 : 없었어요? 그러면 박 전 원장하고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신 모양이에요. ‘이재명 대표 외에는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 ▶박용진 : 네, 두 분께서 말씀을 어떤 말씀 나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문제로 전직 대통령과 얘기하는 거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고 말씀이 혹시 나왔더라도 그걸 굳이 그럴 필요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20일 오전 SBS라디오] ▷진행자 : 박 전 국정원장이 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왔는데 “지금 이재명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이라고 했다면서 당의 단합을 주문했다고 했는데요. 박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달라지고 뭔가 결단하고 그걸 중심으로 화합하면 국민 신뢰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박 전 원장하고 박 의원이 전했다는 문 전 대통령의 말이 조금 뉘앙스가 다른 것 같지 않습니까? ▶이상민 : 그렇지요. 박 전 원장이 전하는 내용은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단일대오로 하라는 것이고, 박 의원이 전한 내용은 그런 내용은 전혀 없고요. 지금 민주당 사정상 이재명 대표의 거취 문제가 중요한 제일 큰 현안이거든요. 문 전 대통령이 어쨌든 저희 당에 영향력이 있는 분인데 그분이 그 말을 했다는 것과 그게 없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지요. ▷진행자 : 문 전 대통령의 의중은 어디에 방점이 더 찍혀 있다고 보세요? ▶이상민 : 박 전 원장이 없는 얘기 하실 분도 아니고, 박 의원도 그대로 전했을 테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문 전 대통령이 그런데 쉽게 그런 얘기를, 당의 중대한 현안이 되는 문제를 어느 쪽이라고 딱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을 표명했을까 라는 생각인데요. 만약에 했다면 (전) 대통령으로 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지금 당내 중대한 현안이 있어도 당내에서 아주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되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영향력 있는 분이 딱 그렇게 해버리면 완전히 기울어버리지요. (중략) 설사 박 전 원장이 문 전 대통령과 말씀을 나눈 게 있다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의 말씀은 어쨌든 영향력이 크고, 미묘한 문제이니까 사실은 밖에 얘기할 성질은 아니지요.결국 이재명 대표가 이번 주 중 기소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에 힘을 실어줬느냐, 아니면 민주당의 변화와 결단을 주문했느냐가 논란의 관건입니다. 퇴임 후 여전히 야권 내 최고 ‘슈퍼스타’인 문 전 대통령이 어느 쪽 ‘편’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야권 내 여론 흐름이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죠. 과연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외부로 전달될 지, 그리고 전달됐을 때 그게 어느 정도 파장을 불러올 지 몰랐을까요. 여의도 생활을 짧게라도 해 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정치인들의 말은 모두 철저하게 계산된 겁니다. 의도나, 목적이 없는 발언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드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설령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머릿 속엔 분명한 발언의 목표가 있다는 겁니다.문 전 대통령도 분명히 자신의 발언이 일으킬 파장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겁니다. 물론 스스로를 계속 노출시키는 건 본인 자유입니다. 문제는 퇴임 후로도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그의 정치 현안 관련 발언들이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문심’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진 건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일신하고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이기는 정당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흡사 ‘상왕’ 같은 발언입니다. “정부가 바뀌어도 남북 간 합의는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퇴임 후 첫 대북 관련 언급으로,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죠. ‘동네 책방지기’로의 데뷔를 앞둔 그의 책 추천을 둘러싸고도 꾸준히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 강제 북송 논란이 한창이던 했죠. 올해 2월엔 ‘조국의 법고전 산책’에 대해 라고 썼습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게 조국을 (한 방) 먹이는 건지, 진짜 추천하는 건지 눈을 의심했다”라고 했습니다.대통령까지 지낸 국가 원로라면 국익이나 민생, 협치에 대한 원론적 이야기도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할 때마다 논란이 되는 걸 이미 1년 가까이 충분히 경험하고도 계속 이어간다는 건 결국 ‘정치행보’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이러니 국민의힘에서도 “퇴임한 대통령이 거대야당 섭정 노릇을 해서야 되겠냐”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권성동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전 원장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전직 대통령까지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에 동참했다”고 비판했죠. 그는 “자기변명 식 독후감 쓰기, 반려견 파양 논란 후 보여주기식 반려견 장례식, 민주당 인사들과의 릴레이 면담 등 본인의 일상 자체를 중계하다시피 했다. ‘트루문쇼’를 방불케 한다”고도 썼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잊혀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거듭 얘기했습니다. 물론 지난 1년 가까이 이어진 그의 행보를 보면 되레 잊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듯합니다만, 지나간 것은 또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모처럼 패배의식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의원 A에게선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한 주 전 치러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대해 “일부러 짜라고 해도 저렇게 못 짠다. 저 묘한 숫자 속에 진정한 당의 총의가 담겨 있다”고 했다. ‘부결’(138표)보다 ‘가결’(139표)이 딱 한 표 더 나오고, 무효·기권이 20표 나온 것은 “이번엔 지켜주겠지만, 더 이상 기회는 없다”는 집단 경고라는 거다. 무엇보다 ‘패배의식’이란 그의 단어 선택에 공감이 됐다. 최근 만난 민주당 의원들에게선 ‘학습된 무기력’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 표결이 이들에게 “우리도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의 시작은 2020년 총선 이후부터였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180석을 확보하며 승리한 민주당은 21대 국회 들어 줄곧 ‘원 보이스’를 강조했다. 제2의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등 소장파 의원 모임)를 막고, 열린우리당 시절의 ‘108번뇌’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초장부터 의원들을 잡겠다는 듯했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이 “기껏 180석이나 만들어줬는데 뭐 하고 있냐”고 가세했다. 민주당이 2020년 7월 임대차보호법, 2020년 12월 공수처법 개정안 및 경제 3법 등 무리한 입법 독주에 나선 이유다.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거세질수록 당내에서도 신중파나 협상파보다는 강경파 의원들이 득세했다. ‘처럼회’가 뜬 것도 이즈음이었다. 3년 새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의원들은 어느새 각자가 헌법기관임을 망각한 채 ‘군사 작전’의 일부처럼 길들여져 갔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과 함께 등판한 ‘개딸’들의 성화에 이들의 침묵은 더 길어졌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은 “돌이켜 보면 지난 총선 이후 의원들은 늘 ‘컨트롤’의 대상이었다. 원내에선 당 지도부가 당론을 강요했고, 원외에선 개딸들의 등쌀에 알아서 눈치를 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비명계 중진 의원은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를 보고 ‘이제 나도 더는 참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동료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점점 더 목소리를 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선 “더 이상 개딸이 두렵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복수의 비명 의원들은 “그동안 전화번호를 한 3000개 정도 차단했더니 이젠 문자테러도 거의 안 온다”고 했다. 극성 개딸 규모가 대략 3000명 안팎일 거라는 거다. 실제로 변화가 조금씩 감지된다. 최근 일부 의원들은 중앙당에서 내린 ‘반일’ 현수막 게시를 거부했다. ‘이완용의 부활인가!’ 등 자극적 문구가 오히려 지역 여론에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개딸들이 지역구별 현수막 게시 건수를 토대로 ‘수박 색출’ 작업 중이라지만 이들에겐 당장 내년 총선이 더 중요해진 거다. A 의원도 이제 좀 달라진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태극기부대와 선 긋고 승리했듯이, 우리도 개딸과의 결별에 성공해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모처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의원 A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개딸’들의 테러 1순위로 꼽히는 그에게선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부결’(138표)보다 ‘가결’(139표)이 딱 한 표 더 나오고, 무효와 기권이 20표 나온 것에 대해 “일부러 짜라고 해도 저렇게 못 짠다. 저 묘한 숫자 속에 진정한 당의 총의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당 대표이니 한 번은 지켜주겠다’라는 신의와, ‘그렇지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경고라는 거죠.무엇보다 ‘패배의식’이란 그의 단어 선택에 공감이 갔습니다. 요즘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보면 “우린 뭘 해도 안 된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다”라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깔린 ‘학습된 무기력’이죠. 꼭 야당이라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여전히 169석이나 가진 원내 1당인걸요. 그런데 이번 표결 결과가 오랜만에 민주당 의원들에게 “우리도 바뀔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줬다는 거죠. 그 내막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독(毒)이 된 180석 민주당 내 학습된 무기력은 2020년 총선 이후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코로나 시국에도, 심지어 조국 사태 속에서도 180석의 압승을 거둡니다. (물론 코로나 재난지원금의 깜짝 효과와 비례 위성정당까지 띄운 ‘꼼수’ 덕도 컸습니다만….) 국회에서 180석은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법안과 예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너무 크게 이겼다. 180석이 결국 독이 될 것이다. 147석 정도가 적당한데…”라던 한 중진 의원의 말이 그땐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명언이었습니다.180석을 확보한 당 지도부는 곧장 ‘원 보이스’부터 강조했습니다. 총선 공천 과정에서 ‘조국 내전’을 거쳤던 탓에 제2의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등 소장파 의원 모임)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컸겠죠. 갑자기 커져 버린 당의 덩치가 버겁기도 했을 겁니다. 당시 한 지도부 의원이 “열린우리당 시절 ‘108번뇌’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초장부터 초선 의원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17대 국회(2004년) 당시 108명의 초선 의원들의 과도한 개인플레이로 당이 우왕좌왕하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도 가세했습니다. “기껏 180석이나 만들어줬더니 뭐 하고 있느냐”고 본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거죠. 민주당이 180명의 ‘원보이스’로 무장한 채 강성 지지층의 뜻에 따라 ‘입법 독주’에 돌입한 배경입니다. 민주당은 2020년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임차인에게 4년 계약기간을 보장하고,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을 5% 내로 제한)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합니다. 그해 12월엔 공수처법 개정안과 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논란의 법안들도 야당과 합의 없이 통과시켰습니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로 맞섰지만 결국 ‘쪽수’에 밀려 아무 힘도 못 썼습니다.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세질수록 당내에서도 신중파나 협상파보다는 강경파 의원들이 득세했습니다. 2021년 5월 전당대회에서 초선 김용민 의원이 강성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17.73%로 1위에 올라 수석 최고위원이 됐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 의원은 당선 직후 김어준 유튜브에 나가 “검찰 개혁을 빨리 끝내겠다”라고 약속했죠. 김 의원 등이 속한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 ‘처럼회’가 당 안팎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입니다. 김 의원 등의 ‘성공 사례’에 너도나도 앞다퉈 지지층 입맛에 맞춘 강성 발언들과 강경 법안의 발의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한 보좌진은 “법안을 과하게 밀어붙이면 ‘거여의 폭주’라고 욕먹고, 여론 눈치를 보느라 좀 자제하면 지지층이 난리 치고, 민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라고 했습니다.3년 새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의원들은 어느새 각자가 헌법기관인 것을 망각한 채 ‘군사 작전’을 치르듯 당의 지시대로 움직였습니다. ‘선당후사’를 위한 쓴소리는 의원총회가 아닌 술자리에서나 터져 나왔습니다. 인터뷰 때도 익명을 원하는 의원들이 늘었고요. 2020년 여름의 취재 기록을 돌아보니 그 때 이미 ‘비주류’ 의원들 사이에선 무력감이 팽배했습니다.“지금 우리 당이 다수결의 원칙을 얘기하면서 무조건 밀어붙이는데, 입법부에선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법을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고, 그래서 관행이란 게 중요한 데 너무 지나치다.” (5선 의원)“공수처는 사실 천천히 해도 된다. 이해찬 대표도 계속 민생 법안이 최우선이라 해놓고 청와대에서 쪼니까 공수처로 자꾸 그렇게 가는데, 공수처가 민생이랑 뭔 상관이냐.” (3선 의원)“요즘은 모든 의사결정과정이 당에서 논의하는 게 아니라 지도부가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다. 이럴 거면 원내대표만 뽑지, 무엇 하러 돈만 많이 들게 300명씩 뽑나 모르겠다. 요즘은 미래통합당과 같은 무력감을 느낀다. ‘말 해봤자 안 될 텐데 뭐 하려 하나’ 싶다.” (5선 의원)● 개딸과의 결별 선언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과 함께 등판한 ‘개딸’과 손잡으면서 민주당은 더욱 민심과 멀어져 갔습니다. 개딸들의 극성맞은 문자폭탄에 지친 의원들은 침묵하기 시작했고, 일부 몇몇 ‘용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입을 닫았습니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이 0.73%포인트 차로 석패하자 개딸들은 패배의 이유를 당내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경선 때 이낙연 전 대표를 도왔던 의원들의 사무실로는 수백 통의 ‘팩스 테러’가 이어졌습니다. 잉크가 빨리 닳도록 검은색 바탕의 A4 용지에 흰색으로 ‘죽어라’는 등의 메시지를 적었다죠. 친문(친문재인) 좌장 홍영표 의원은 지방선거 패배 후 ‘이재명 책임론’을 말했다가 지역 사무실이 “치매 아니냐” 등 막말 문구가 적힌 3m짜리 대형 대자보로 도배되는 일도 겪었습니다.‘이재명 사법리스크’를 거치면서 개딸들의 폭력성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당내 불만도 점점 쌓여갔던 것 같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온 이탈표가 그 증거겠죠. 비명계 의원들은 “그걸 보고 ‘나도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한 동료들이 많았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은 “돌이켜 보면 지난 총선 이후 의원들은 늘 ‘컨트롤’의 대상이었다. 원내에선 당 지도부가 당론을 강요했고, 원외에선 개딸들의 성화에 알아서 늘 눈치를 봤던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길들여 지던 중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로 오랜만에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겁니다. 비명계 의원들 사이에선 “이제 개딸들이 두렵지 않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복수의 비명 의원들은 “전화번호 한 3000개 정도 차단하면 테러 문자도 안 온다”라고 합니다. 극성 개딸 규모가 대략 3000명 안팎일 거라는 겁니다.● 민주당의 갱생은 가능할까 이미 변화는 조금씩 감지되는 듯 합니다. 민주당은 지난 6일 각 시도당과 지역위원회에 ‘윤석열 정권 치욕적 강제동원 셀프배상/ 이완용의 부활인가!’ ‘국민능멸 굴욕외교!’ ‘친일본색 매국정권!’이라고 적힌 현수막 시안 3종을 전달했습니다. 통상 중앙당에서 문구 시안을 전달하면 현역 의원 등 지역위원장들이 그대로 만든 현수막을 지역구 골목골목에 내겁니다.그런데 이번엔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이완용’은 너무 나갔다”라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현수막 내용이 오히려 지역 여론에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였죠. 지도부 소속 한 의원조차 “나도 ‘이완용 현수막’은 못 걸었다”라고 하더군요. 개딸들이 지역구별 현수막 게시 현황을 체크해 ‘수박 색출’ 작업을 하고 있다지만 어느덧 의원들에겐 당장 내년 총선이 더 중요해진 겁니다.A 의원은 이제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 좀 다른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극성 태극기부대와 결별한 덕에 승리했듯이, 우리도 개딸과의 결별에 성공해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의 갱생이 가능할지,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저도 다시 한번 기대를 갖고 지켜보겠습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2월 27일 오전 7시>박주민 의원 “170표 이상은 부결표가 나오지 않을까요.”CBS라디오 진행자 “170 이상.”>박주민 “예, 거의 저는 가결표를 던질 사람이 없다고 보는 쪽입니다.”MBC라디오 진행자 “무기명 비밀투표잖아요. 이게 변수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정성호 의원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부당하다는 데 상당히 공감대가 있고요. 또 당원 지지자들이 더 강력하게 거기에 대해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이탈표는 많지는 않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진행자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 반대표가 161표가 나왔잖아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것보다는 반대표가 더 나올 거라고 자신하십니까?”>정성호 “그렇게 생각합니다.”BBS라디오 진행자 “당 내 분위기는 역시 부결입니까?”>김의겸 의원 “네. 그렇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진행자 “무효표나 기권표, 일부에서는 ‘반란표’라고 표현을 하던데요. 이런 무효나 기권표가 나올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김의겸 “저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이날 오전부터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일제히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 나온 161표보다 훨씬 많은 부결표가 나올 것이란거죠.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날 민주당 전원(169명)에 기본소득당(1명), 민주당 출신 친명 성향의 무소속(6명, 양향자 의원 제외 시)을 합쳐 부결표는 176표가 나왔어야 합니다.●오전 9시 30분이 대표 본인에게서도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압도적 부결’로나올 거란 확신이었겠죠. 당 관계자는 “지도부가 일부러 센 척 하려던 게 아니고, 진짜 가결 가능성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 것 같더라”며 “막판에 의원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확실한 부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이 대표는 이날 오전에도 직접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 및 인사검증실태조사단 구성을 예고했습니다. “윤석열 정권 검증 기능이 완전히 작동 불능 상태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이 정권의 인사는 온통 망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오후 1시 10분그런데 표결을 1시간 여 앞두고 의원들과 통화를 해보니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더군요?“핵심은 기권표 숫자다. 다들 자꾸 가결 부결만 따지는데, 그게 아니고 무효나 기권표를 잘 봐라. 기권은 상당수 민주당에서 나올 것이고, (기표소에) 들어가서 가(可) 부(否)를 안 쓰고, ‘찬’, ‘반’이라고 쓰거나 동그라미, 엑스표 하거나 일부러 점 찍는 의원들이 꼭 있는데,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다. 그런 무표효는 ‘이재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번에는 봐주지만 다음번 (표결) 땐 안 봐준다’는 거지. 이번엔 부결이 될 거다. 다만 부결표가 과반에 한참 못 미치거나, 심지어 가결표보다 적다? 그럼 이재명 체제는 완전히 흔들리게 되는 거다.” (중립 성향의 A 의원)“오늘 부결은 될 거다. 압도적 부결이 됐든, 애매한 부결이 됐든, 어쨌든 결론은 이제 민주당은 엄청난 내분이 불가피하다는 거다. 압도적 부결이면 우리가 ‘자, 이번엔 부결시켜줬으니 이제 당신(이 대표)이 알아서 당을 위해 결단하시오’라고 할 거고, 애매한 부결이라고 해서 당장 나가라 하진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사퇴론에 더 힘이 실릴 거라고 본다. 물론 내가 아는 이재명이라면 그래도 버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면 버틸수록 그의 명분도 리더십도 사라지겠지.” (비명계 B 의원) “이탈표가 절대 (지도부가 예상하는) 10표는 아니다. 의원들 사이에서 이미 30표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보좌진 C)돌이켜보니 ‘예언’에 가까운 말들이었네요. 이 때 심상치 않은 전조증상을 알아차려야 했습니다.●오후 2시 3분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 169명 전원이 참석한 의원총회가 열렸습니다. “이재명 힘내라!”는 문정복, 이용빈 의원 등의 우렁찬 응원 속에 입장한 이 대표는 활짝 웃으며 의원들과 손 인사를 나눴습니다.“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헌법 정신에 따라 당당하게 부결시켜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국정도 정치도 내팽개친 채 대통령 선거의 경쟁자였고, 원내 1당 야당 대표를 고소하는 데만 혈안입니다. 이는 분명한 사법 시도입니다. 민주당은 윤석열 검사독재 정권의 독점을 전제하고 역사의 국회를 막아내야 합니다.” (박홍근 원내대표)●오후 2시 38분의총을 마친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우르르 입장했습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장 먼저 상정됐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 이유를 설명하러 연단에 올랐습니다. 한 장관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설명할 땐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 등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의원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그가 이날은 어떤 스탠스로 나올지 여야 의원들도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지켜보더군요.“먼저 위례 대장동 개발 범죄혐의 관련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요약하면, 성남시민의 자산인 개발이권을 ① ‘공정경쟁을 거친 상대에게’ ② ‘제값에’ 팔지 않고, ① 미리 짜고 내정한 김만배 일당에게 ② 고의로 ‘헐값에’ 팔아넘긴 것이고, 그래서 개발이권의 주인인 성남시민에게 천문학적인 피해를 준 범죄입니다. 비유하자면, 영업사원이 100만 원짜리 휴대폰을 주인 몰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짜고 10만 원에 판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90만 원의 피해를 본 것이지, 10만 원이라도 벌어준 것 아니냐는 변명이 통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시장 측은 위례, 대장동 공모지침서를 남욱, 김만배 등 일당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아예 수험생이 시험문제를 직접 출제하게 한 것입니다.”한 장관은 15분 동안 이 대표의 혐의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후불제 뇌물’ ‘할부식 뇌물’ 등 찰진 비유법을 자주 썼습니다. 꼭 대치동 1타 강사 같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여전히 비호감이긴 하지만 솔직히 설명 하나는 얄미울 만큼 잘하더라”고 했습니다. 한 장관은 체포동의 요구를 설명하는 내내 이 대표가 아닌 ‘이 시장’이라고 호칭했습니다. 무려 43번 불렀더군요. “제가 지금까지 설명 드린 어디에도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범죄혐의는 없습니다. 오직 ‘성남시장 이재명의’ 지역토착비리 범죄혐의만 있을 뿐입니다”라는 마지막 멘트에서도 의원들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래도 중간 중간 민주당 의원석에선 “김건희 여사도 구속해라” “그만 들어가” “정순신 사과해라” 등의 고성과 야유가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이 대표는 옆 자리 정청래 의원과 담소를 주고받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더군요.●오후 3시 1분드디어 헌정 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시작됐습니다. 의원들이 줄을 지어 기표소에 들어가 무기명으로 손으로 한글 또는 한 자로 ‘가’(可) ‘부’(否)를 직접 적는 식이었죠. 옆에 점 하나만 찍어도, 한자 획을 잘못 써도 모두 무효표입니다. (이를 두고 이날 지인들로부터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전자투표로 안하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본회의에서 인사 관련 사안은 무기명 수기 투표가 원칙이지만 여야가 합의 시엔 보다 간편한 전자투표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노 의원 체포동의안 때도 전자투표로 진행했죠. 국민의힘은 “우리는 전자투표를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수기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최근 인사 안건은 전자투표로 해왔으니 이번에도 그리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국민의힘에서 원칙대로 하자고 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같은 협상, 다른 말, 여의도는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오후 3시 18분투표는 17분만인 3시 18분에 끝났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진 1시간 24분이 걸렸습니다. 국회를 4년 출입하면서 이렇게 오래 걸린 개표는 처음 봤습니다.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이렇게 손에 땀나는 경험도 오랜만이었고요.이상한 분위기는 오후 3시 33분 경 감지됐습니다. 한창 감표위원들끼리 웅성웅성하더니 이윽고 국민의힘 위원들 사이에서 “다 무효야 무효!” “의사국장님 내려와보세요” 등 고성이 터져 나온거죠.한글로 ‘부’를 쓴 것 같기도 하고 ‘무를’ 쓴 것 같기도 한, 악필과 낙서 사이 묘한 느낌의 2장의 투표용지가 문제가 된 거죠. “(한자를) 보고 쓰지도 못하면서 이걸 이렇게 하면 되냐”(김형동 의원) “실수로 점 찍혀도 무효인데 뭐하시는 겁니까!” “무기명인데 다 공개합시다” (배현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민주당에서도 “배현진 네가 뭔데 띄우라(공개하라) 말라 그래” “시끄럽다” 등의 반박이 이어졌습니다.●오후 4시 42분“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표는 ‘부’냐 ‘무’냐 판단이 어려운 그런 표인데, 국회에서 그 동안 관례상 똑바로 ‘부’를 써도 점을 찍으면 무효 처리돼왔습니다. 이 글자는 깨끗하게 글자를 썼다고 볼 수도 있고, 무효로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판단했을 때 한 표는 부로 보는 게 맞고, 한 표는 가부 쓰지 않아서 무효로 봐야 합니다. (국민의힘에서 거센 항의)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고성) 조용히 하세요!! 총 297표 중 가 139 부 138 기권 9표 무효 11표로써 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출입기자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이탈표가 많으면 10여 표 아니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예상치 못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니 당황스럽더군요. “무효·기권표를 잘 보라”던 A 의원의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오후 6시줄곧 여유있는 표정으로 이날 하루를 보내던 이 대표도 이날 밤엔 지도부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원래 친문(친문재인) 의원과 잡혀있던 만찬도 급히 취소했다죠. 표결 직후 통화에서 친명계 지도부 의원들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날 밤부터 ‘기획조작설’이 일부 지도부 의원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그 직후부터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도 이탈표 색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이들은 자신들이 ‘수박’(겉으론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의미의 은어)으로 찍은 비명계 의원들에게 “부결표를 던졌다는 증거를 대라”고 문자 테러를 하는가 하면, 이들의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번호를 올린 ‘공천 탈락 살생부’를 작성해 돌렸습니다. 결국 다음날 이 대표가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이라면 (가결표 예상) 명단을 만들어 공격하는 행위를 중단해달라”는 입장을 냈지만, ‘재명이네 마을’ 등 친명 팬카페에는 “용돈 안 줘도 된다는 부모님 말씀 같은 것 아니냐. 무슨 마음인지는 이해하지만 억지로라도 쥐어드리고 나오는 게 자식 마음”이라는 전혀 다른 해석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히려 그 뒤로 미국에 있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이낙연 영구제명 청원’ 글이 올라오기까지 하더군요.이 대표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관련 신상발언에서 “아무리 깊어도 영원한 밤은 없습니다. 매서운 겨울도 봄을 이기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만, 민주당에 봄이 오려면 아직 먼 것 같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