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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의 열쇠를 쥔 새누리당 비주류가 4일 다시 야권이 주도하는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기로 태도를 바꿨다. 전날 전국적으로 주최 측 추산 232만 명(경찰 측 추산 42만 명)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 촛불집회가 열리자 비주류가 ‘촛불 민심 수용’으로 선회한 셈이다. 비주류의 오락가락 행보로 정국 불안정성이 더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 입장 표명과 별개로 여야가 (퇴진 시점과 방식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비상시국회의는 9일 탄핵 표결에 조건 없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은 이미 여야 협상을 거부한 채 탄핵 드라이브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여기에 여권 비주류가 ‘조건 없는 참여’를 선언하면서 9일 탄핵안 처리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날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의원은 29명이다. 탄핵안 발의에 참여한 171명을 합하면 정확히 탄핵 가결정족수(200명)인 셈이다. 다만 새누리당 비주류가 모두 찬성표를 던진다는 보장은 없어 가결 여부는 막판까지 예측 불허일 것으로 보인다. 퇴진 시점과 2선 후퇴 여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추가 입장 표명도 변수다. 이에 앞서 1일 새누리당은 비주류가 참여한 의원총회에서 ‘내년 4월 말 대통령 조기 퇴진, 6월 말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후 비주류 내에선 박 대통령이 4월 퇴진을 공식화하면 탄핵안 처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역대 최대 규모 촛불집회에 두 손을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의원은 “국민의 분노가 청와대를 넘어 국회로 향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을 받들고 국민들이 조속히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비주류의 ‘탄핵 표결 동참’ 결정 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론이 깨졌다. 야당과 최대한 협상하겠지만 안 되면 9일 탄핵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집단 불참은 없다.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양심에 따라 표를 행사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남은 닷새간 새누리당 양심세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박 대통령 탄핵 성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길진균·정동연 기자}
야권 공조를 재정비한 야 3당은 3일 새벽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하면서 탄핵에 올인(다걸기)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의 ‘4월 퇴진’ 수용 여부에 관계없이 탄핵안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야권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탄핵이라는 배수진을 쳤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한 대응을 택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野, ‘촛불 민심’에 놀라 탄핵 올인 탄핵안 발의 실패로 삐걱댔던 야권 ‘탄핵연대’가 하루 만에 회복된 것은 촛불 민심의 위력 때문이다. 일부 의원은 2일 “이제 촛불이 여의도를 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2일 탄핵안 처리’에 반대했던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소속 의원들에 대해 당의 기반인 호남에서 항의가 빗발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야권의 바람대로 9일 탄핵안이 가결 처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요구한 ‘7일 마지노선’에 박 대통령이 어떻게 화답하느냐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박계 의원 상당수는 7일까지도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말 이전 퇴진과 2선 후퇴 선언을 하지 않으면 탄핵에 동참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페이스북에 “6, 7일쯤 대통령이 여당의 건의를 받아들여 내년 4월 말 퇴진을 하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는 첩보가 방금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비박계의 탄핵 동참 의지를 사전에 꺾을 전략을 만들어놨다는 얘기다.○ 野, 정국 상황 예의주시 야권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퇴진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이 퇴진을 선언해도 탄핵안을 진행하겠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흔들림 없이 간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박계 요구를 모두 수용해) 여론이 변화할 수 있으니 탄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한 중진 의원은 “박 대통령이 7일 입장을 밝힌다고 본다”라며 “우리 지도부가 (퇴진 조건 등을) 선(先)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도 3일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12일이나 27일처럼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넘는 시민이 즉각 하야 또는 탄핵을 외치는 게 아니라, 촛불 민심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으로 드러나면 고심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있다. 또 야권 일부 의원은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으로 탄핵 여론이 누그러질 수 있으니 탄핵과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에 끌려 다니기보다 ‘2월 말 퇴진’ ‘책임총리 국회 추천’ 등을 제안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엄청난 정치적 부담과 책임이 따를 ‘탄핵안 부결’ 후폭풍을 우려해 표결을 감행할 수 있겠느냐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탄핵안, 박 대통령 뇌물액 430억 원 명기 이날 발의된 탄핵안 최종안에는 초안대로 박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죄’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이 담겼다. 헌법 위배 행위로는 △장차관 등 최순실 비호세력 임명(김종덕, 김종, 윤전추 등)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면직 △장시호 등에 대한 부당 지원 △사기업에 금품 출연을 강요하여 뇌물수수 △사기업 임원 인사 관여 △세계일보 사장 교체 등 언론기관 탄압 등이 적시됐다. 새누리당 비박 진영이 난색을 표한 세월호 참사 대응 실패 역시 헌법 10조인 ‘생명권 보장’을 위반한 것으로 규정했다. 제3자 뇌물죄로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삼성그룹과 SK, 롯데 등의 360억 원 출연, 롯데의 70억 원 추가 출연 등이 포함됐다. 최 씨가 받은 금품까지 포함해 박 대통령이 수수한 뇌물액은 모두 430억5162만 원으로 적시됐다.길진균 leon@donga.com·유근형 기자※ 야당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주요 내용▽헌법 위배행위① 국민주권주의(헌법 제1조), 대의민주주의(제67조), 국무회의에 관한 규정(제88조, 제89조),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헌법 준수의무(제66조 제2항, 제69조) 조항 위배=공무상 비밀을 최순실에게 전달하고, 비선 실세가 공직을 좌지우지하도록 한 점.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시킴.② 직업공무원 제도(제7조),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제78조) 평등원칙(헌법 제11조) 위반=최순실의 비호 세력을 통해 문화체육계 인사와 이권 개입을 도운 점. 정유라 장시호 비리.③ 재산권 보장(제23조) 직업선택의 자유(15조), 기본적 인권보장 의무(제10조) 시장경제질서(제119조),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헌법 준수의무(제66조 2항, 제69조)=안종범을 통해 사기업을 간섭하고 시장경제 질서를 저해.④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1항)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5조) 조항 위배=비선 실세 전횡을 보도한 언론을 탄압.⑤ 생명권 보장(헌법 제10조) 조항 위배=세월호 7시간 동안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법률 위배행위-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죄), 직권남용(강요죄), 공무상비밀누설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27일 “최순실 씨와 일면식이 없는 것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씨(47)가 최 씨의 지시를 받고 비서실장 공관에서 자신을 만났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도 김 전 실장의 “모른다”는 주장은 이날도 이어졌다. 그는 다만 “대통령의 지시로 차은택 씨를 만난 적은 있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채널A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차은택이라는 사람이 정부의 기조인 문화융성과 광고, 이런 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니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공관으로 불렀다”며 “이후 대통령께 ‘만나봤다’고 보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로 차 씨와 연락이 없었고, 그 사람이 하는 사업이나 일에 관여하거나 지원한 일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의 주장대로 그가 대통령의 ‘지시’로 ‘업무상’ 차 씨를 한 번 만났을 뿐이고, 이후 차 씨에 대한 특혜나 지원 등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김 전 실장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긴 어렵다. 이날 김 전 실장이 박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관측이다. 김 전 실장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앞세운 이상 검찰의 다음 수순은 박 대통령을 통한 사실 확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현재로선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법조인 출신인 김 전 실장은 지금 상황에서 ‘최순실 씨를 알긴 알았다’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라도 인정하면 그 다음 수순은 검찰 소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일단 끝까지 버티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보도했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장모인 김장자 삼남개발 대표(76)와 최 씨, 차 씨의 골프 회동도 이날 사실로 확인됐다. 결국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던 ‘최순실-김기춘-우병우’로 이어지는 ‘3각 커넥션’의 단초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김 전 실장이 최 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만남을 피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김 전 실장이 최 씨의 ‘힘’을 알게 된 뒤 최 씨의 전횡을 용인하면서도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직접 만나지 않고 철저히 3인방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의사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간 김 전 실장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하는 것에 유보적인 태도였다. 김 전 실장이 최 씨와의 인연을 강하게 부인하는 상황에서 차 씨의 진술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줄곧 “김 전 실장과 관련해 특별히 드러난 혐의가 없고 소환도 계획돼 있지 않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차 씨의 변호인이 “차 씨가 최 씨의 지시를 받아 김 전 실장을 만났다”고 폭로하면서 김 전 실장에 대한 검찰수사 상황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김 전 실장을 불러서 혐의 유무 등에 대해 확인을 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변수다. 다음 달 2일 특별검사가 임명되면 검찰은 수사를 중단하고 특검팀에 수사 자료를 넘겨야 한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김 전 실장에 대한 의혹 규명이 특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길진균 leon@donga.com·조건희·한상준 기자}
“경제 망치고 안보 망쳐온 가짜 보수 정치세력,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립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탄핵 국면’에서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200만 촛불은 우리 사회의 구악을 불태우고 새로운 세상을 걸어 나가는 횃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야말로 벌 받을 사람 벌 받게 하자. 박 대통령이든 최 씨 일가든 부당하게 모은 것 모두 몰수하자. 뇌물죄로 처벌받게 하자.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촛불집회 직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노변격문(路邊檄文)―시민과의 대화’에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사드 배치,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 모두 박근혜 대통령은 손을 떼고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아! 배후에 최순실이 작용했겠구나’,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F-35 도입 결정을 언급하며 “방산비리 매국노, 매국집단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야권 대선주자 중 가장 늦게 박 대통령 퇴진 운동에 합류한 문 전 대표는 19일 전국적인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 본격적인 강경 모드로 선회했다. 그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지난주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의 행보로 ‘문재인표 촛불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 전 대표는 현장 밀착형 행보를 이어가며 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표 촛불투쟁’은 21일 대구 경북대, 23일 서울 숙명여대, 25일 수원 경기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8일엔 대전지역 대학생들을 만날 예정이다. 문 전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하는데, 헌법에 무슨 죄가 있느냐.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정치권력과 검찰과 언론과 재벌대기업 간 특권 카르텔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거나 “주류 언론이 감시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니 제왕적 대통령이 생긴 것”이라며 언론 탓을 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박 대통령에게 기회와 시간을 줬지만 박 대통령이 이를 끝까지 거부한 만큼 문 전 대표도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의 바뀐 행보를 가능성이 커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 수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집토끼(핵심 지지층)와 산토끼(중도층과 무당파)를 동시에 겨냥하는 장기전 전략에서 ‘핵심 지지층 굳히기’라는 단기전 전략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는 뜻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대선 양자 대결을 염두에 둔 51% 득표 전략보다 40% 득표 전략으로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사실상 붕괴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만큼 3자 또는 4자 대결 구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4자 대결을 펼쳤던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36.64% 득표만으로도 승리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이인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해 3자 구도로 바뀌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40.27%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당 관계자는 “어느 후보나 충분한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대권만 생각하는 전술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안철수, 야권주자 경쟁속 ‘텃밭’ 호남으로… 친박-친문 동시겨냥해 우회비판… “트럼프와 나는 와튼스쿨 동문” ▼ “지금이 기득권 세력을 몰아낼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27일 광주를 찾아 “100만, 200만 명 모인 민심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마음은 대통령을 바꾸라는 것을 넘어서 국가를 바꾸라는 요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로 규정하고 기득권 타파를 중장기적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특히 여야의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 진영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동시에 나머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4·13총선 당시 통했던 구호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비상시국강연회에서 “이번 기회에 부패 기득권을 척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및 독립성 강화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안 전 대표는 촛불집회를 ‘11·12 시민혁명’으로 규정한 뒤 “여기까지 온 건 부끄럽게도 정치권이 아니다. 국민들이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이 시기에도 우리 국민들은 계속 현명한 선택을 해 왔다”고 자성했다. 그는 또 “도널드 트럼프는 저랑 같은 와튼스쿨 동문”이라며 “그 학교를 통해 알아본 결과 이제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최소한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표로, 외교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안 전 대표의 이날 광주 방문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를 앞선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주자들이 잇따라 호남으로 향하자 텃밭 사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날 강연회에서 “박 대통령만 퇴진하면 국민 4999만9999명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촛불집회에서는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청와대에서 공갈을 친다고 한다”며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청와대에서 ‘충성하겠느냐’고 묻는 게 관례인데, 그때 한 말과 쓴 편지를 갖고 ‘더 이상 박 대통령을 무섭게 수사하면 그것을 공개하겠다’고 공갈을 친다고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유근형 기자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가 임박하면서 야권의 탄핵소추안 작성을 둘러싼 고민이 커지고 있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헌법재판소는 헌재법에 따라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임의규정으로 ‘반드시’가 아닌 ‘가급적’ 180일 이내로 법조계는 해석한다. 변론 횟수 등에 따라 탄핵심판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헌재의 의지와 판단이 핵심이라는 관측이다. ○ 범죄사실보다는 헌법가치 훼손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은 △27일 탄핵안 초안 작성 △28일 법학자 등 전문가 토론회 △29일 지도부 보고 후 국민의당 및 시민단체 등과 조율이라는 탄핵소추안 작성 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작 탄핵소추안에 담을 내용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헌재의 인용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대통령에 대한 범죄사실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적시해야 하지만 이 경우 사실인정을 위한 변론 과정이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했고, 중앙선관위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범죄사실에 대한 인정 과정이 사실상 생략됐고, 헌재는 7차례 변론을 거쳐 63일 만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현재의 청와대는 박 대통령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 기밀누설 등의 혐의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탄핵소추안에 담길 범죄사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실인정 과정이 길어지고 헌재의 결정도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박 대통령의 헌법가치 훼손을 핵심으로 작성하되 개별 법률 위반 사항은 헌법 위반의 근거로 제시하는 보충적 수단으로 적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석 민주당 탄핵추진실무단장은 25일 통화에서 “뇌물죄의 경우에도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혐의가 적시됐기 때문에 탄핵 사유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사실관계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포함 여부는 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법 51조 심판정지 논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더라도 헌재가 최순실 씨 등에 대한 형사소송 결과를 보기 위해 탄핵심판 절차를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 중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범죄사실 인정을 위해 이미 기소된 최 씨 등 공범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헌재가 심판을 정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주장은 헌재법 51조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대통령 측 변호인이 시간을 끌기 위해 ‘심판정지’를 요청할 가능성은 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소추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대통령은 이 조항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압도적 다수설”이라고 반박했다. 헌재가 펴낸 ‘주석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재법 51조의 ‘동일한 사유’는 ‘탄핵심판이 청구된 바로 그 사람을 피고인으로 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이 의외로 빨리 마무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정연주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정국 혼란과 민심을 고려해 검찰이나 특검에서 밝힌 사실 관계를 그대로 인용해 심리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은 이날 탄핵소추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막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카드로 탄핵소추안 본회의 통과를 막을 것을 우려한 사전 조치다. 현행 국회법은 대통령 및 국무총리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폐기된 것으로 간주한다.길진균 leon@donga.com·조건희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24일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안전에 무관심한 대통령이 빚은 인재”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경기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아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탄핵 사유”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신중 모드를 이어가던 문 전 대표가 다시 전통적 야권 지지층을 껴안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뛰어드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에서 이슈를 이끌기보다 뒤따라가는 행보를 보였다. 차기 대선을 고려한 중도·보수층 껴안기 전략으로 풀이됐다. ‘명예로운 퇴진 보장’ 등 박 대통령의 퇴로를 열어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우왕좌왕’ ‘좌고우면’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신중하던 문 전 대표가 갑자기 강경 발언을 꺼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 전 대표 측은 기대만큼 중도·보수층으로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같은 경쟁자는 선명성을 기치로 야권 지지층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중도 확장 전략에 대한 보수층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이날 “문 전 대표는 벌써 대통령이 다 된 듯 착각하면서 계산기만 두들기며 탄핵 절차를 머뭇거리고 있다”고 공격했다. ‘프런트리더(선두주자)의 딜레마’라는 해석이 나온다. 1위 후보는 여타 여야 후보들의 총공세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 측 내부에서는 아킬레스건으로 통하는 호남 지지율의 반등을 위해서라도 현 정국에서 선명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표 측은 호남 출신 대변인 또는 부대변인 영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박(비박근혜), 비문(비문재인) 진영 같은 여야 비주류를 주축으로 개헌을 통한 정계개편론이 확산되는 것도 문 전 대표가 강경 발언을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개헌파는 기존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개헌이 내년 상반기에 현실화돼 대통령제에 변화가 생긴다거나, 이에 수반되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분열한다면 대선 선두주자인 문 전 대표의 입지는 퇴색될 확률이 높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박근혜 게이트’라는 세간의 시각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비리와 이에 개입한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 행위가 상당 부분 밝혀졌지만 규명해야 할 의혹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검찰은 내달 초로 예정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방침이다. 최 씨,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장막을 한 꺼풀 벗겨낸 것이라면 ‘평창 겨울올림픽 사유화’ 의혹 수사는 이제 본격화되는 단계다. 올림픽 이권 사유화의 중심에는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37·구속영장 청구)가 있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상당수 드러났다. 검찰이 확보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박 대통령이 장 씨가 실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해 주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직접 챙기며 출연금 모금을 독려했듯이 영재센터도 비슷한 방식으로 직접 관리한 정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기관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6억7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예산 집행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55·구속영장 청구)이 힘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도 영재센터에 16억 원을 지원했다. 김 전 차관이 삼성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안 전 수석의 지시라고 한다. 역시 박 대통령이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 씨는 누림기획과 더스포츠엠을 통해 문체부 및 K스포츠재단의 일감을 따낸 정황도 있다. 여기에도 박 대통령 및 청와대가 간여했는지 검찰은 확인하고 있다. 장 씨는 비교적 검찰 조사에 순응하며 사실 관계를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개입 의혹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여아를 막론하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7)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49)을 강도 높게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검찰은 지금이라도 숨은 ‘우병우 사단’을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대해선 전광석화처럼 파헤치는 검찰이 우 전 수석 앞에선 작아지는 것이냐”라고 질타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법적,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준 공식적 실세는 김 전 실장”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부두목 김기춘 구속 수사를 검찰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조사에서 “차관 취임 초기 김 실장이 전화로 어딘가로 나가 보라고 했다. 갔더니 최 씨가 있었다. 이후 최 씨를 여러 번 만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이 지속적으로 최 씨를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과 배치된다.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을 막후에서 지휘한 것처럼 김 전 실장이 대통령비서실장의 힘으로 인사에 개입했거나 지시를 내렸다면 그 역시 직권남용 혐의가 될 수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미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포스코 측에 청와대 인사 개입 관련 문제를 외부에 발설하지 말도록 한 지침을 전달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도 최 씨 농단을 적극적으로 묵인하거나 도운 단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검찰 수사가 이뤄지자 민정수석실은 비선 실세 내용이 드러나지 않도록 진술하라고 한일 전 경위를 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측근 비리를 감시하고 막아야 할 민정비서관실이 반대 행보를 보였고, 우 전 수석은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다. 그 역시 이번 사태의 몸통이 될 수 있는 정황이다. 우 전 수석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7·구속)의 개인 비리를 내사하고도 이를 무마한 의혹과 함께, 사실상 박 대통령이 롯데에 70억 원을 요구해 받은 과정에도 민정수석실의 정보가 작용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받고 있다. 또 그가 변호사 시절 현대그룹의 ‘막후 실세’로 의심되는 ISMG코리아 대표 A씨의 횡령 사건 변호를 맡았고,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한 단서도 포착됐다. 이 사건은 몰래 변론으로 이뤄진 정황이 강하다. 검찰 조직을 주무른 그의 흔적이다. 향후 특검 수사에서는 검찰이 밝히지 못한 모든 국정 농단 의혹의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김준일 jikim@donga.com·길진균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최순실 씨를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가장 깊숙이 개입한 인물로 봐야 한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는 18일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 일관되게 “최 씨를 모른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김 전 실장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최 씨에게 소개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김기춘-최순실 커넥션’ 의혹의 실체가 규명될지 주목된다.○ “김기춘이 소개” vs “정신 이상” 여권 관계자는 “최 씨와 차은택 씨 등이 대통령의 권위를 등에 업고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면 법적이나 행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뒷받침한 게 김 전 실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전 실장과 함께 박 대통령의 핵심 자문그룹이었던 ‘7인회’의 한 인사도 사석에서 “우리도 최 씨를 알고는 있는데, 김 전 실장이 최 씨의 존재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전 차관이 그런 말을 했는지 믿을 수 없고, 했다면 그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이어 “(김 전 차관은) 차관이 되기 전에는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라고 했다. 김 전 차관 주변에선 김 전 실장이 검사 재임 시절 재력가였던 김 전 차관의 아버지와 가까웠다는 증언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도 과거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전 차관의 형제가 일식집을 하는데, 김 전 실장이 단골이었고 김 전 차관의 부친과도 오랜 친분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지인들에게 “(재임 중) 김 실장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저도 휴가를 다녀온 뒤 취임 159일 만에 단행한 허태열 초대 비서실장 교체도 미스터리다. 허 전 실장은 ‘윤창중 성추문’과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 출범 6개월 만에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인사 개입까지 문제가 돼 ‘조기 경질’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 최 씨의 ‘저도 휴가 회동’을 거쳐 장막 뒤에 있던 김 전 실장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여권 핵심 인사의 주장도 새로 나왔다. 김 전 실장은 “픽션, 헛소리다. 당시 수술을 받고 후유증 치료할 때이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18대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2006년 무렵부터 지근거리에서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2007년 대선 경선이 본격화하자 김 전 실장은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아 최태민 목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방어 전략을 세우는 등 막후에서 박 대통령을 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도 이때부터 김 전 실장과 손발을 맞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박 대통령의 검찰 조사 대응도 김 전 실장이 총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 농단의 배후? 2013년 8월 김 전 실장이 전면에 등장한 후 그의 재임 기간(2013년 8월∼2015년 2월)에는 이해하기 힘든 인사가 적지 않았다.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한다. 김 전 실장이 ‘최순실-차은택 배후’로 지목되는 이유다.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한 CF 감독 차은택 씨의 비리 혐의에 깊이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전 차관 임명도 김 전 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한 달 뒤 이뤄졌다. 차 씨의 대학 은사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차 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의 임명은 각각 2014년 9월과 12월에 단행됐다. 김종덕 전 장관을 임명하기 전인 2014년 7월에는 후임 장관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전격 면직 처리해 그 이유를 두고 무수한 뒷말을 낳았다. 최근 언론이 보도한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의 전횡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의 비망록에는 ‘장(長)’이라는 표기 옆에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등 김 전 실장의 지시로 보이는 글이 빼곡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제기한 ‘만만회 비선 의혹’과 관련해선 “박지원 항소심 공소 유지 대책 수립” “시민단체 통해 고발”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박 위원장은 이후 보수 성향 시민단체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길진균 leon@donga.com·한상준·송찬욱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최순실 게이트’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한 CF 감독 차은택 씨의 국정 농단에 깊이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최근 검찰에서 “김 전 비서실장 소개로 최순실 씨를 처음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최 씨의 국정 농단을 김 전 실장이 묵인, 방조 또는 배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 전 차관은 검찰에서 “(2013년 9월) 차관 취임 초기 김 전 실장이 전화로 ‘만나 보라’고 해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최 씨가 있었고 이후 최 씨를 여러 번 만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은 또 “그 전에는 최 씨를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지금까지 “비서실장 당시 최 씨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고 최 씨를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취임 첫해인 2013년 박 대통령이 저도에서 1박 2일 여름휴가(7월 29, 30일)를 보낼 때 김 전 실장과 최 씨도 함께 저도에 있었으며 그 자리에서 비서실장 교체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휴가에서 복귀한 첫날인 그해 8월 5일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을 김 전 실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최 씨의 태블릿PC에는 박 대통령이 경남 거제 저도에서 찍은 사진 13장이 저장돼 있었다. 이 중 8장은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은 사진이었다. 김 전 실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전 차관이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최 씨를 모른다. 통화한 일도, 만난 일도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또 “2013년 (대통령이 머문) 저도에 간 일도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다음 주에 김 전 실장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김 전 차관에게 최 씨를 소개했는지, 최 씨와 어떤 관계인지 등 김 전 차관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김 전 실장이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라며 김 전 실장에 대한 즉각 소환 및 구속 수사를 주장했다.길진균 leon@donga.com·김민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임기를 채울 수 있겠느냐는 관측과 더불어 내년 상반기 대선론이 불거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 선언과 함께 질서 있는 퇴진의 길을 택하든, 탄핵 절차를 밟든 대선이 앞당겨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14일 “박 대통령의 퇴진 이후 수습 방안으로 내년 6월 이전에 조기 대선을 치르자”라고 주장했다. 전날 ‘질서 있는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데 이어 한 걸음 더 나아가 차기 대선 일정표까지 제시한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월에 취임한다. 6개월 내로 새로운 리더십의 한미 관계를 정립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며 조기 대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도 이날 “국회가 추천한 총리로 과도정부를 구성해 현 시국을 수습하고 개헌으로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을 △하야 △탄핵 △개헌 등 3가지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곧바로 하야할 경우 헌법에 따라 권한이 현재 국무총리에게 이양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즉각 하야’의 경우 5년 임기가 보장되는 새 대통령 선출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일 24일 전까지 후보 등록 등을 고려할 때 일정이 촉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 1월 귀국할 예정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출마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과도 내각’ 또는 ‘관리형 내각’이다. 안 전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 민주당 민병두 의원 등은 박 대통령이 먼저 퇴진을 선언하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해 과도 내각을 꾸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도 내각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수사와 함께 조기 대선 관리를 맡기자는 구상이다. 조기 대선의 또 다른 방법은 국회의 탄핵소추다. 만약 국회 재적 의원(300명)의 3분의 2(200명)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에 탄핵을 결정해야 한다. 헌재가 탄핵을 결정할 경우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탄핵안 발의부터 통과까지의 논란을 제외하더라도 헌재 심리까지 포함하면 수개월이 걸려 국정 혼란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재가 기각을 결정하기까지 두 달여가 걸린 점을 고려할 때 헌재가 의지만 있다면 그 기간은 단축될 수도 있고 헌법 절차에 따라 박 대통령 거취 논란을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약 6개월의 과도기 동안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헌안 부칙에 조기 대선 일정을 담아 국민투표로 이를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문 의원은 “개헌을 하고 그에 따라 조기 대선을 치르면 박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고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다”라고 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의 함성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 크기로 전해졌을까. 이날 집회에선 박 대통령의 퇴진을 10초간 일제히 외치는 함성이 수차례 이어졌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은 방음벽 역할을 한다. 서울시청과 광화문광장 등에서 진행된 함성은 청와대 본관과 관저에 그대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위가 열릴 때 삼청동 효자동 등 청와대 주변의 통행이 전면 통제되면 청와대 주변은 더욱 적막에 휩싸인다. 그만큼 촛불의 함성이 청와대로 더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특히 12일 밤엔 법원의 결정에 따라 광화문 바로 앞과 경복궁역 사거리까지 행진이 허용돼 시민들이 청와대에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박 대통령으로선 이들의 함성이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과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관저엔 광화문 앞 광장과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관망대 같은 곳이 있다”며 “그곳에 서 있으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안에 고립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도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2008년 6월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당시 이동관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관저는 본관 위편 북악산 중턱에 있어 밤이 되면 본관에 있을 때보다 시내에서 외치는 함성이 더욱 생생하게 들려 심리적으로 큰 위압감을 준다”고 말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울려 퍼진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신을 책망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12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일제히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선 ‘2선 후퇴’부터 ‘하야’ ‘탄핵’ 등 온도 차를 보였다. 그동안 촛불집회 등 장외투쟁과 거리를 두며 ‘신중론’을 펴왔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촛불집회에선 ‘박 대통령 퇴진’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언급하진 않았다. 문 전 대표는 집회 참석에 앞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분노의 표출은 어떤 경우든 무조건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계광장에서 열린 당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 집회에선 마이크를 잡진 않았지만 촛불을 들고 형광봉을 흔들며 시민들과 호응했다. 이어 기자들과 만나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긴 위임을 철회했다”며 “박 대통령은 전국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수백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답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심에 따라 박 대통령이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의미라고 문 전 대표 측은 설명했다. 반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5년 만에 손을 잡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박 대통령의 하야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박 시장은 연설 트럭에 올라 “국민의 요구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외쳤다. 그는 “대통령 하야는 혼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라며 “그것은 헌법, 국가, 정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도 촛불집회에서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채 “(대통령) 하야하라! 퇴진하라!”란 구호를 외쳤다. 13일 대전 동구에서 열린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에 참석해선 전날 촛불집회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낀 자리였다’며 “미움은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지만 부끄러움은 어떤 방법으로도 바뀔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기문란 수준을 넘어 국기 붕괴이고 자칫하면 국가 붕괴가 된다”고도 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며 △박 대통령의 ‘정치적 퇴진’ 선언 △여야 합의로 권한대행 총리 추천 △새 총리 중심으로 대통령의 법적 퇴진 등 향후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안 전 대표와 박 시장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대통령 ‘퇴진’은 ‘조기 대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궐위로 조기대선 체제에 들어갈 경우 판세가 요동치면서 현재 야권에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 전 대표 중심의 대선 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부인 이윤영 여사와 12일 촛불집회에 참석해 “거국내각이 과도정부를 이끌어 7공화국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집회에서 “박 대통령은 퇴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탄핵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당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속도는 늦출 수 있지만 당 또한 이 길(탄핵)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야 정치권은 국정 정상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그 해법을 두고는 각자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야권은 트럼프 당선에 따른 구체적인 외교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은 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만 주장하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내치(內治)와 외치(外治)가 동시에 진공 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은 이날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을 우려하면서도 국정 정상화의 전제로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만 거듭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트럼프 당선에 대해 “현재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박 대통령으로는 이 같은(트럼프를 대비한)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이 국정 및 외교 공백을 최소화하고 혼란의 장기화를 막는 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번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내정치 문제로도 우리 국민은 피로하고 불안한데 피상적으로 불안한 생각을 가질 것”이라며 “문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야 3당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사실상 박 대통령을 하야시키거나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정국 주도권을 내년 대선까지 이어가는 ‘대통령 고사(枯死) 전략’에 돌입한 모양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날 오전 대표 회동을 갖고 전날 박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제안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거부했다. 박 대통령이 2선 후퇴와 총리의 권한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야 3당은 또 12일 예정된 민중총궐기대회에 당력을 집중하기로 합의했다. 박 대통령의 거취와 정국 수습책을 놓고 중구난방식 대응을 해 오던 야권이 ‘촛불’ 앞에 헤쳐 모여를 시도하는 셈이다. 청와대의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이후 야권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다른 방식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그동안 최순실 게이트 특검을 주장하다 여당이 이를 받아들이자 갑자기 특검을 철회했다가 재차 특검을 주장했다. 야권이 먼저 요구한 거국중립내각 구성 논의도 ‘전제 조건’을 앞세워 좀처럼 응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탄핵’ 또는 ‘하야’ 주장에 뒤따를 수 있는 리스크(부담)는 피하면서 야권에 유리한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조속히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고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분담도 정리해 트럼프 당선 후폭풍 등에 대비하자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대선 결과로 우리 경제와 안보 상황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국내외적으로 국가와 국민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여야는 정쟁을 중단하고 힘을 합쳐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의원도 “안보와 경제가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를 돌파해야 할 국가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라며 “야 3당은 하루속히 총리 적임자를 추천하고 새 총리로 하여금 실질적인 거국내각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국회에 조속한 총리 추천을 거듭 요청했다. 배성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박 대통령의 제안은) 총리에게 강력한 힘을 주고, 능력 있고 좋은 분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지체 없이 빨리 임명하겠다는 뜻”이라며 “국회에서 총리를 빨리 추천해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간절한 호소”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미국 대선이 미치는 경제·외교 영향에 치밀하게 대비하고 있는데 직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대통령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리에게 장관 임면권 등 내치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넘길 수 있지만 외치에 관해서는 박 대통령이 일정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길진균 leon@donga.com·홍수영·장택동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여야 합의로 추천한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내각 통할권 보장’을 약속하면서 ‘최순실 정국’을 풀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이날 전격적으로 국회를 방문해 야당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은 야당에 영수회담 수용을 압박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총리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넘길지, 내치(內治)에서는 확실히 손을 떼겠다는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야당도 교통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박 대통령 탓만 할 뿐 어떻게 정국을 수습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 12일 ‘민중총궐기대회’의 민심에 따라 정국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새 총리의 권한에 대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는 헌법 조항에 “실질적”이라는 말을 더해 총리의 권한을 강조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내치는 총리에게 전권을 주고 관여하지 않겠다”는 등 야당이 기대했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상황이 위급한데도 박 대통령이 헌법을 좁게 해석하면서 정치적 해법 마련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표면적으론 “명확한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건부 거부’를 내걸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공세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정 의장 주재로 박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의 총리 추천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의 언급으로는 총리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당장 수용할 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3분간 이뤄진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의 회동을 두고 민주당은 “90초 사과, 9분 재사과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모두 민심과 동떨어진 국회상륙 기습작전이었다”는 등 형식도 부적절했으며 내용도 부실했다고 혹평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국민의 요구는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이를 국민 앞에 진솔하게 공개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라는 공을 넘기자 ‘국정 손 떼라’는 공을 다시 청와대로 넘기며 핑퐁게임을 한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탈당한 뒤 영수회담을 열어 따질 것을 따지자”며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한 명확한 철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야권의 이 같은 주장은 ‘일면 협상, 일면 압박’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통한 시간 벌기로 보인다. 야당에 유리한 최순실 정국을 조기에 해소할 필요가 없는 만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민심을 확인한 뒤 당의 행보를 결정하겠다는 속내라는 얘기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이 “우리는 촛불민심만 보고 간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야당으로선 만족스럽진 못해도 영수회담 및 총리 추천 자체를 계속 거부할 명분은 약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영수회담에서 논의하자”며 당장 9일에라도 만나자는 태도를 보였다. 박 대통령이 영수회담 등을 통해 차기 총리에 대한 명확한 권한 이양을 약속한다면 정국은 급속도로 ‘후임 총리 추천’ 국면으로 옮아갈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야당도 어느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난 민심을 고려할 때 이 정도 수준으로 타협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결국 결자해지를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달라서 국정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차라리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든지, 아니면 총리 추천 제안을 받든지 결정해야 하는데 촛불 뒤에 숨어 그림자 정치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달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의 불참은 5차 북핵 실험 등 안보 상황이 엄중함을 감안해 9월에 이미 결정됐다”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 불참과 ‘최순실 사태’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황교안 총리가 APEC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장택동 will71@donga.com·길진균·조숭호 기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전에 거국중립내각 국무총리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위원장이 (총리직) 오퍼를 받았다”며 “박 위원장이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그런 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른 ‘동교동계 인사’를 거론하며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제가 그 인사를 총리로 추천하면 여당도 제안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총리 추천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국민의당과의 연대를 물밑에서 추진했다고 공개한 것이다. 새누리당 이 대표가 접촉한 동교동계 인사는 김대중 정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이라고 박 위원장은 밝혔다. 그러나 이 대표는 “‘누구를 추천하면 누구를 임명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전직 장관 등 많은 분과 통화하며 조언을 받는다”며 “거국내각이 무산되지 않도록 야당에서도 추천이 있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김성재 원장도 “(전화는 받았지만) 총리에 대한 어떠한 제안도 없었다”며 “거국내각으로 가면 장관님도 포함될 것 같다’는 덕담 수준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총리 후보론과 관련해 박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자천타천 총리 후보가 난무하고 있다”며 “최순실, 우병우보다 후임 총리가 누가 되느냐로 모든 초점이 옮겨 갔다. 역시 대통령님의 정치는 기가 막힌다”고 썼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하야 정국’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검과 국정조사 수용,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국회가 추천한 총리 임명, 박 대통령 2선 후퇴 등 기존 요구 조건을 유지하면서도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을 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폭주 개각을 철회하고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해 정국을 수습해야 한다”며 “끝까지 외면하면 불행히도 정권퇴진 운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 대통령을 겨냥한 압박의 강도를 올리는 듯했다. 그러나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뒤 전권을 주면 된다”며 “이것 하나만 받아주면 정권퇴진 운동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리가 외국 나가면 누가 만나 주나. 그 부분은 대통령이 하고 내정은 총리가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외교의 의전 부분은 박 대통령이 맡아 이어가되, 그 외 내치에 대해선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전권을 주자는 것이다. 이날 비공개 회의 직전까지 ‘하야’를 언급하며 정권퇴진 운동 돌입의 고삐를 바짝 죄던 것과는 온도차를 드러낸 것이다. 그 대신 우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여야가 후임 총리를 논의할 때 어떻게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추미애 대표가 같이 앉을 수 있겠느냐”며 새누리당 이 대표 등 지도부 퇴진을 요구했다. 타깃을 박 대통령이 아닌 박 대통령을 떠받치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진영으로 수정한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목표는 박 대통령의 2선 후퇴겠지만 박 대통령의 ‘정면돌파’ 의지가 만만치 않은 만큼 ‘탄핵 트랩(함정)’을 회피하며 친박 지도부라는 1차 저지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해찬 의원도 이날 최고위에서 “1년 4개월 동안 대통령이 직접 나가야 하는 정상회담이 6개 이상 될 텐데 외교적으로 큰 문제”라고 밝힌 것도 ‘숨고르기’의 연장선상이다. 이날 최고위에 당 외교안보통일 국정자문회의 의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 의원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3,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예로 들면서 “(이런 회의는) 총리가 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대통령이 가야 하는 곳에 (총리 시절) 대신 갔더니 작은 나라만 상대해주지 큰 나라는 총리급이라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외교 권한까지 총리에게 맡기자”고 주장하다가 하야로 돌아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박 대통령은 내치에 필요한 신뢰는 물론이고 외교에 필요한 다른 나라 신뢰도 상실했다. 외교 공백도 더 지속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당 지도부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과 만나 정국 수습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이들은 문 전 대표가 야권 인사들 중 가장 ‘신중한 시각’을 갖고 있다며, 급진적 행동보다는 국정 안정을 우선시해 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남 전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국민감정으로는 바로 하야가 나와야 하는데, 그건 국민감정에는 맞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조금 성급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혁명적 사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많다”며 “가급적 합법적 룰에 따라 풀어나가는, 비유적으로는 혁명적 사태를 반(反)혁명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순리가 아닌가 한다”고 주문했다. 루비콘 강을 무턱대고 건너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제 박 대통령은 국민을 더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며 “국민의 뜻을 존중해 국정 공백과 혼란을 하루빨리 끝낼 수 있는 결단을 스스로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중대한 결심’을 연이어 언급하며 안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정권퇴진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을 때보다 발언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민주당과 문 전 대표 측은 결국 현실성이 낮은 ‘대통령 즉각 퇴진’보다는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일단 차기 대선까지 남은 1년 4개월 동안 박 대통령 및 보수 기득권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 담화로 사과했지만 야권 대선 주자들은 박 대통령을 향한 압박 수위를 더 높였다. ○ 전략적 대응 고심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4일 “저로서도 중대한 결심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국민과 함께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일 전남 나주 발언에 이어 재차 ‘중대 결심’을 언급한 것이다. 박 대통령 담화 후 5시간여 만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시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낸 그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선택은 없다. 이것이 대통령에게 하는 마지막 요구”라고 강조했다. 하야, 탄핵 등 박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대통령 퇴진’이 임박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문 전 대표의 성명 제목은 당초 ‘마지막 요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검토 단계에서 ‘다시 요구’로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박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론에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이 ‘마이웨이’를 이어간다면 문 전 대표 역시 장외투쟁 같은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중도·보수로의 외연 확장이 필요한 문 전 대표로선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이 최근 공동 행보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날 성명도 당 지도부와의 교감 속에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의원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1987년 6월 항쟁 때도 시민 몇십만 명이 거의 한 달간 매일 거리 시위를 한 뒤에야 6·29선언이 나왔다”며 “지금처럼 주말에만 하는 집회로 박 대통령의 결단을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물론 박 대통령이 탈당과 함께 거국중립내각을 전격 수용하거나,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 등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많은 만큼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는 이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추미애 대표가 이날 ‘조건부 정권 퇴진 운동’을 예고하면서도 시한을 못 박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선명성 경쟁’ 점화 이미 ‘정권 퇴진 운동’에 뛰어든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등은 거듭 박 대통령의 하야를 강력 요구했다. 성난 민심을 타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1차 (사과)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국면 전환용, 책임 전가용 담화”라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부터 ‘온라인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에도 돌입했다. 박 시장은 전날 시청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게 돼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출마를 하려면 90일 이전에 사임해야 한다. 모든 것을 버렸다”며 대선 출마 포기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대통령 궐위에 의한 대선의 경우 지자체장은 30일 이내에 사퇴하면 출마가 가능하다. 박 시장 측은 “정권 퇴진을 위해 ‘출마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지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반응했다. 손 전 대표는 “사과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결정도 존중한다”며 “그러나 모든 걸 내려놓으라는 국민의 요구에는 아무 대답이 없다. 거국중립내각에 의한 과도정부가 나서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안 지사도 “대통령은 즉각 의회, 특히 야당에 국정 수습 권한을 넘겨야 한다”고 거듭 요청했다. 한편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박 시장, 안 지사, 민주당 김부겸 의원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은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고 백남기 씨 영결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어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탄핵 촉구 촛불집회’에는 박 시장만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길진균 leon@donga.com·황형준 기자}
야권 대선 주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고 나선 데 이어 3일 야권 일각에선 대통령 하야를 상정한 ‘조기 대선’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 끌어올린 것이다. 대통령 하야는 헌정 중단을 의미하는 중대 국면이다. 이를 의식한 두 야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이 ‘11·2 개각’을 철회하지 않으면 ‘중대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를 풍길 뿐 구체적인 움직임은 자제하고 있다. 청와대와 야권의 정면충돌이 ‘조기 대선 정국’을 낳을지 주목된다.○ 야권 일각 ‘조기 대선’ 주장까지 당초 대통령 하야를 전제로 한 조기 대선론은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등 야권에서도 극소수 의견에 불과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에 이어 이날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 임명까지 인적쇄신 드라이브를 걸자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박 대통령 하야와 조기 대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날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기 대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작은 혼란과 고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면서도 “모든 새로운 탄생은 껍질을 벗는 아픔이 있지 않으냐”라며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식물 대통령’ 상황으로, 그것도 1년 4개월이나 남은 것이 더 큰 혼란이지 않으냐”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거국중립내각 구성 및 6개월 후 대선’이라는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거국내각의 임기를 6개월로 하는 것은 안정적인 정권 이양과 정치 일정 관리를 위한 것”이라며 “각 당에 차기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국민이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의원 27명은 성명을 내고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하며 조기 대선론에 힘을 실었다. 대권 주자가 아닌 의원들이 단체로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건 처음이다. 이들의 집단행동에는 당 지도부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날 “개각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가만히 둬도 그 길(하야 및 조기 대선)로 갈 수밖에 없다”라며 “박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그 운명을 재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이 하야를 결심할까? 조기 대선은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도록 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선행 조건인 박 대통령의 하야 결정 가능성이 낮아서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야권 일부 후보가 조기 대선을 바랄 수는 있겠지만 박 대통령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꿈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몰아치듯 개각과 비서진 인선을 잇달아 수습 방안으로 내놓은 것을 볼 때 박 대통령은 하야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조기 대선의 또 다른 방법은 국회 탄핵소추다.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호전되지 않고 청와대와 야권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 야권은 역풍을 각오하고라도 탄핵 카드를 꺼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반란표 없이는 국회 통과가 어렵다.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300명)의 3분의 2인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야권 171석(민주당 121, 국민의당 38, 정의당 6, 야권 성향 무소속 6)이 모두 찬성한다고 해도 새누리당에서 29명 이상의 이탈 표가 나와야 가능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180일 이내에 탄핵을 결정해야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헌법재판소가 기각을 결정하기까지 두 달여가 걸렸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야권이 힘을 모아도 탄핵소추안이 실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라며 “그러나 탄핵안 발의 자체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하야, 탄핵, 조기 대선 모두 청와대와의 힘겨루기에서 나오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청와대가 정국 수습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검찰 수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튀어나올 경우 정국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게 최순실 정국의 현주소다. 길진균 leon@donga.com·우경임 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하야 또는 탄핵이라는 말을 쓰기를 자제했던 야권 대선 주자들이 2일 본격적으로 ‘박 대통령 퇴임’을 들고 나왔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현재 권력(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차기 대선 주자)의 충돌이 ‘박 대통령 하야 정국’으로 옮아갈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광주 광주대교구청에서 김희중 대주교를 예방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신임 국무총리로 지명된 것과 관련해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나 절차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오전 전남 나주시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국민의 압도적인 민심은 박 대통령이 즉각 하야하고 퇴진해야 된다는 것”이라며 “그런 민심에 공감하지만 정치의 장에서 차선책이라도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하야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해법이 무산된다면 ‘민심’에 따라 하야를 촉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중대 결심’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가능성은 낮지만 하야가 현실화될 경우까지 고려해 표현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권 내 대세론을 기반으로 중도보수로의 외연 확장을 꾀하는 문 전 대표로서는 박 대통령 퇴임 주장을 먼저 꺼내 보수층의 표적이 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예 박 대통령 퇴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분노한 민심을 등에 업고 대선 레이스에서 반전을 시도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해 왔던 안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며 “더이상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전 대표는 사석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박 시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며 “오늘부터 국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비상시국회의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 퇴임이 현실화한다면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도 “하야 투쟁으로 나서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은 셈”이라며 “이제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조차 접는다”고 했다. TK(대구경북) 민심을 고려해 하야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퇴진하라는 뜻을 비친 것이다. 반면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거국내각 구성’을 재차 강조했다. 손 전 대표는 “대통령이 시국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지사 역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야당 지도자들과 협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대선 행보에 뛰어든 손 전 대표와 안 지사로서는 ‘두 달 후 대선’이라는 시나리오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길진균 leon@donga.com·황형준 기자}
“대통령을 끌어내려 하야 정국, 탄핵 정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 아니냐.”(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사태의 본질은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는 점이다.”(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최순실 게이트’ 수습 방안을 놓고 대립만 거듭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통한 ‘여야 공동 책임 국정 운영’ 카드로 정국 돌파를 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정국 주도권을 이어 가겠다는 기류다. 31일 정국 수습 방안을 위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은 5분여 만에 결렬됐다.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작심한 듯 “야당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시한 뒤 회동장을 나갔다. 야당 지도부도 언급을 자제하는 ‘하야’ ‘탄핵’이란 단어를 공개 거론해 “야권이 국정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야권은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새누리당은 거국중립내각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성명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에게 국정의 전권을 맡길 것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순실공화국’으로 만들었다”고도 했다. 거국내각 구성을 처음 제안했던 문 전 대표가 사실상 거국내각을 거부한 셈이다. 여당의 거국내각 논의에는 선을 긋고 박 대통령이 받기 어려운 ‘완전 2선 후퇴’를 요구하며 공을 넘긴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최순실 게이트 수습 방안으로 제안한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영수회담에 대해 “때가 되면 봐야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범죄) 혐의자와 만나 뭘 얘기하느냐”며 거부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하야나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당 지도부와 문 전 대표 측은 야당이 무리해서 ‘박 대통령 퇴진’을 주도하다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 대통령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졌지만 실제 하야하고 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원내 지도부가 거국내각을 받아들일지 고심하고 있다”며 “이번 주 안에 결말이 날 것 같다”고 전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탈당 없는 거국내각은 어불성설”이라며 “새누리당이 새 국무총리로 민주당 김종인, 손학규 전 대표를 거론한 것은 야권 흔들기이며 야권 분열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국민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국민의당이 앞장서서 수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거국내각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데다 박근혜 헌법 파괴 사건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교안 총리의 해임, 박 대통령의 권한 위임, 국회의 총리 선출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편 정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민주당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등 여야 중진 의원 17명은 이날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갖고 거국내각 구성과 특검 문제 등을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거국내각과 책임총리제에 대한 여야 간 입장 차를 확인했다”며 “다만 박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되고 나니 국회가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고 말했다.길진균 leon@donga.com·강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