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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칼럼94%
사설/칼럼3%
문학/출판3%
  • [횡설수설/송평인]매티스 사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장군을 좋아한다. 한때 트럼프의 비서실장, 국가안보보좌관, 국방장관이 모두 장군 출신이기도 했다. 단, 장군의 말을 듣는 건 싫어한다고 마이클 울프 기자는 백악관 뒷얘기를 다룬 ‘화염과 분노’에서 썼다. 백악관의 마지막 남은 장군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동맹국과 상의도 없었던 트럼프의 ‘시리아 미군 철수’ 결정에 반발해 “대통령은 견해가 자기와 맞는 국방장관을 둘 권리가 있다”며 사임키로 했다. ▷매티스의 사임은 사실 오래전부터 예상된 일이다. 그는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등과 함께 ‘백악관 내 어른들의 축(軸)’으로 불렸다. ‘주한미군이 없어도 아기처럼 잠만 잘 잘 수 있다. 주한미군 다 집으로 데려오라’고 말하는 트럼프를 매티스가 ‘초등학교 5, 6학년 수준’이라고 불렀다는 대목이 밥 우드워드 기자가 쓴 ‘공포’에 나온다. ▷‘공포’에 따르면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해 12월 트럼프는 ‘주한미군 가족을 철수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릴 생각이었다. 매티스 등 ‘백악관의 어른들’이 간신히 말렸다. 잇속에 밝은 트럼프가 막대한 돈이 드는 전쟁을 실제 일으키려 했다고 보지 않는다. 트윗 글로 실전을 불사하는 것처럼 북한에 보이려 한 듯하나 군사 문제에서 그런 식의 압박은 자칫 우발적 충돌까지 일으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트럼프는 시리아 정부가 반군 지역에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도 미사일로 보복한 게 고작이었다. 탈레반 세력이 다시 확장하는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병력 증파가 필요하다는 참모들의 조언에도 고작 3000명을 증파해 시늉만 내다가 벌써 철군을 고려하고 있다. 매티스는 사임하면서 트럼프를 향해 “당신처럼, 나도 미국 군대가 세계의 경찰이 돼선 안 된다고 말해 왔다”며 “그 대신 공동방위를 제공하기 위해 동맹에 효율적인 리더십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해 미국 국력의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한미동맹의 현실 앞에서 매티스의 말이 웅변적으로 들린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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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IS 격퇴 선언과 미군 철수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건국을 공식 선포한 것은 2014년 6월. 시리아 북부에서 이라크 북부까지 칼리프가 통치하는 국가임을 선언하고 알바그다디를 초대 칼리프로 추대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국가의 건설은 과거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정치적 꿈이었지만 그 꿈은 국제적 네트워크 운동에 그쳤다. IS는 광활한 땅을 제 영토인 양 차지하고 전 세계에서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무자비한 통치를 자행했다. ▷IS가 건국을 선포한 무렵이 실은 IS의 최전성기다. 그때부터 IS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너무 일찍 굴기(굴起)하면서 우리나라까지 74개국으로 이뤄진 반(反)IS 국제연합전선의 개입을 불러들인 것이다. IS는 이라크 쪽의 라마디, 팔루자, 유전이 집중돼 IS의 경제수도로 불린 모술을 차례로 빼앗겼다. 시리아 쪽에서는 알레포에 이어 IS가 수도로 삼아온 락까에서 패퇴했다. 물론 잔당이 곳곳에 남아있어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시리아에서 IS를 격퇴했다”며 승리를 선언하고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방침을 밝혔다. 시리아에는 약 2000명의 미군이 IS와 싸우는 시리아민주군(SDF)에 대한 군사훈련을 지원해 왔다. IS 세력이 약화됐다 해도 시리아 재건의 과제가 남은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적 철수 결정에 영국 등 서방은 반발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시리아에 개입한 러시아, SDF의 주력이 반터키적인 쿠르드족임을 우려하는 터키만이 환영했다. ▷만사 돈이 우선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주둔에 들어가는 돈이 아까웠던 터에 터키가 쿠르드족 민병대에 군사행동을 하겠다고 하자 이를 빌미로 발을 뺐다느니, 미국제 패트리엇 미사일을 터키에 팔아먹는 것과 미군 철수를 맞바꿨다느니, ‘러시아 특검’ 수사에 쏠린 미국 내 관심을 분산하려는 목적이 있다느니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이라크 전후 재건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미군을 철수시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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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수 투신에서 돌아본 검찰의 오염된 原點

    기무사령부 세월호 사찰 의혹으로 수사를 받다 투신자살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해서는 따로 아는 바 없지만 육사 37기가 자부심이 강한 기수라는 점은 알고 있다. 육사 37기 중에는 특전사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도 있다. 대위 시절의 젊은 그를 군 복무하면서 본 적이 있다. 유창한 영어로 한미 군사훈련을 조율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행동과 자세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때의 강렬한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재수 전인범 등은 동기들 중 선두주자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유서에서 보듯 죽으면서까지 절제와 배려를 잃지 않은 태도에서 그가 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에 대해서는 세월호 구조에 군이 대거 투입된 이상 기무사는 민간 동향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전 사령관의 죽음은 검찰의 몰아가기 수사 앞에서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려 한 것으로 본다. 이 전 사령관의 투신에서 문재인 정권 검찰의 원점(原點)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원점에서의 심각한 오염이 최근 법원에서 확인됐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당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영란법 위반으로 쫓겨났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특검팀에 있었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이 전 지검장은 김영란법 위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면직 처분에 대해서 무효 판결을 받았다. 원점 오염의 발단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한 신문의 보도였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날로부터 5일이 지난 지난해 5월 15일 이영렬 당시 지검장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에게 연루돼 조사를 받던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과 밥을 먹고 법무부에 파견된 후배 2명에게 100만 원씩 든 돈 봉투를 줬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처음부터 죄가 성립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죄가 성립한다 해도 대통령의 직접 지시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안 국장을 쳐내기 위한 무리수인가 생각했는데 이 지검장도 사표를 냈다. 청와대는 즉각 윤 고검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안태근이 아니라 이영렬을 쳐낼 목적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보직은 법무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는데 법무장관은 제청하기 전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이영렬은 사법연수원 18기이고 윤석열은 23기다. 둘 사이에 다섯 기수의 차이가 있다. 검찰 고위직의 후임 인사는 기껏해야 두 기수 차이가 관례다. 기수 차이만으로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시비를 걸 수 있는 인사다. 그러나 당시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모두 공석이었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날 법무장관 권한대행인 이창재 차관과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김주현 대검 차장도 사표를 냈다. 두 사람 다 대행일 뿐인 데다 돈 봉투 사건에 동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는 마당에 청와대가 하는 인사에 시비를 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비를 걸지 않고 고분고분 사표를 내 준 덕분에 퇴직 후 변호사로 잘 활동하고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영렬처럼 뭔가로 꼬투리가 잡혀 수사를 받고 변호사 개업은커녕 법정 투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울지검 특수부 평검사 시절의 이영렬을 기억한다. 과묵하게 맡은 일을 하면서도 한칼이 있는 스타일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은 박영수 특검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면 그가 맡아 처리했을 일이다. 특검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수사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렬을 자르고 윤석열을 앉혀야 했던 것은 청와대가 통상의 검찰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에까지 보도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에서 누락했다고 국방정책실장을 직위해제했다.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자 공관병 갑질 의혹을 터뜨려 망신을 주고 고철업자 친구에게서 184만 원어치 향응을 받았다고 옷을 벗겼다. 하급 부대에 전달되지도 않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갖고 쿠데타 시도인 양 야단법석을 떨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과녁을 맞혔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검찰도 청와대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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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미니 메르켈’

    독일은 영국과 달리 여왕이 통치한 전례가 없다. 입헌군주제하에서도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통치하고 정치란 법대를 나온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나라였다. 그런 독일에서 여성이 국가 수장인 시대가 앙겔라 메르켈에게 국한한 예외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강력한 근거가 등장했다. 메르켈 총리가 맡고 있던 기민당(CDU) 대표에 ‘미니 메르켈’로 불리던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가 7일 선출됐다. ▷내각책임제인 독일에서는 당 대표가 그 당의 총리 후보가 되는 것이 관례다. 크람프카렌바워가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2년 후 기민당 대표 선거에서 재선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이긴다면 메르켈의 후임이 될 것이 분명해서다. 사민당(SPD)에서도 내년 4월 전당대회에서 여성 정치인 안드레아 날레스가 당 대표 자리를 예약해놓은 상태다. 차기 총선에서 CDU가 이기든, SPD가 이기든 다시 여성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독일 정치의 특징은 정치인들이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조직에 몸담고 활동한다는 점이다. 크람프카렌바워는 1981년 고등학교 시절 CDU에 가입한 이래 퓌틀링겐 시당(市黨)과 자를란트 주당(州黨) 조직에서 착실히 정치적 이력을 쌓으며 성장했고 2011년 이래 자를란트주 총리로 선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성이 주 총리가 된 것은 그가 세 번째다. 메르켈은 결혼을 2번 했지만 자녀는 없다. 크람프카렌바워는 세 자녀의 어머니다. 그를 두고 보수정당 내에서 가족과 커리어를 결합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의 남성 우위 정치의식은 끈질겨서 메르켈이 총리가 된 뒤에도 여성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면 남성 멘토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 남아 있었다. 메르켈은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정치적 양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콜 전 총리의 후견 속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크람프카렌바워가 당 대표 자리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차기 총리가 된다면 그런 말도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에서 여성으로의 계승’, 크람프카렌바워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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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판사보’급이 좌우하는 법관회의 新농단

    과분하게도 법원개혁안을 만드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 위원을 맡고 있다. 난 동의하지 않았지만 사발위는 가칭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넘겨받고, 사법행정회의에는 법원 외부 인사를 포함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발위 위원 10명 중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전 의장이 들어있다. 또 사발위를 돕는 12, 13명으로 구성된 2개 전문분과에는 2명씩의 법관회의 대표들이 있다. 법관회의 전 의장이 전문분과 다수 의견에 거의 동의하고 전문분과를 대변해 사발위 위원들을 설득하려 애쓰는 걸 보면 법관회의 측이 사발위와 전문분과 양쪽을 코디네이트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전문분과는 본래 미국 연방사법회의처럼 법관들로만 구성된 사법행정회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진보 성향 위원들이 외부 인사가 포함된 안을 밀어붙였다. 여기에 사법행정회의를 법관만으로 구성한 뒤 과반을 추천할 권리를 차지함으로써 법원을 좌우하려 한 법관회의의 속셈에 반발한 일부 다른 위원이 가세해 외부 인사가 포함된 안으로 결론이 났다. 사법행정회의가 졸지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기구가 되다 보니 법관회의는 법관인사위원회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전문분과는 법관인사위원회의 과반을 법관회의가 추천하는 안을 올렸다. 그러나 인사 대상자가 인사를 하는 꼴이라는 강한 반발이 제기돼 ‘과반’ 표현은 삭제됐다. 본래 ‘법관회의 추천을 포함한다’는 표현까지 없애려 했으나 법관회의 전 의장이 사정을 해 남겨뒀다. ‘농단’은 그 후 벌어졌다. 사발위 채택안을 법원조직법 개정안으로 조문화하는 과정에서 법관인사위원회의 과반을 법관회의가 추천하는 안이 되살아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처음 지명한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은 비교적 중립적인 인사였다. 그러나 올 6월부터 법관회의 대표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분위기가 변질됐다고 한 당연직 추천위원이 들려줬다. 추천위 위원 10명 중 6명이 법원 측 인사다. 이들은 법관회의 대표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하면서 설치면 그게 대법원장 뜻인가 해서 영향을 받기 쉽다. 그나마 7월 임명제청된 김선수 변호사와 노정희 고법 부장판사는 성향을 떠나 능력 면에서 대법관감이라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가 있었지만 10월 임명제청된 김상환 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앞서 김 변호사를 강력히 밀었던 이 당연직 추천위원까지 거부감이 컸던 모양이다. 법관회의의 최근 법관 탄핵 촉구 결의는 왜 필요했는지 알 수 없어 자충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다. 굳이 법관회의가 결의하지 않아도 특별재판부까지 구상한 더불어민주당은 필요하면 언제든 탄핵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단 1표 차로, 그것도 의결정족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통과된 결의는 법원 내부에서조차 분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느닷없이 지방법원 지원의 지원장 이하 몇몇 법관이 발의한 탄핵 촉구안이 6일 만에 법관회의 안건으로 채택된 사실은 ‘기획 탄핵’이라는 비난의 빌미가 되고 법원회의가 물밑 커넥션에 의해 움직이는 음모론적 조직이라는 인상을 줬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법원제도를 둔 일본만 해도 10년 차 미만은 판사보(補)라고 해서 법관회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관회의에는 15년 차 미만인 지법 단독판사와 배석판사가 약 60%를 차지한다. 판사로서는 아직 더 배워야 하는 법관들이 법관회의를 좌우하고 그 법관회의가 법원을 좌우하려 들고 있는 게 지금의 사법부다. 사법행정회의의 본래 모델이었던 미국 연방사법회의는 대법원장을 의장으로 13개 항소법원장들과 지방법원에서 뽑은 동수의 대표로 구성된다. 지방법원에서 뽑은 대표는 대부분 지방법원장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대법원장이 법원장들과 함께 사법행정을 하는 것이지 판사보급이 좌우하는 결의로 사법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법관은 국회의원처럼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관료처럼 충원된다. 따라서 법원을 국회처럼 운영할 수 없다. 투표에 의해 지지받는 순이 아니라 연장자 순으로 법원장이 되고 사건도 기계적으로 배당하는 것이 법원의 운영에 어울린다. 우리 법원이 모자란 것이 그런 경륜과 순서에 입각한 관행이다. 법원행정처의 임의든, 법관회의의 임의든 임의를 배제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지금 필요한 법원개혁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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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조선의 첨단무기 비격진천뢰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영국군에 결정적으로 패해 역사에서 사라진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땅에 닿으면 폭발해 사람들을 날려 보내는, 오늘날 우리가 대포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대포를 처음 사용했다. 그 전까지 대포는 발사한 대포알의 무게로 성벽을 허물어뜨리거나 들판에 밀집한 군인들을 뭉개버리는 것이지, 대포알을 폭발시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날아가 공격하는 것이 하늘을 진동시키는 우레와 같다는 대포알이다. 하지만 대포의 역사에서 비격진천뢰의 의미는 우레 같은 소리보다 서양에 앞선 폭발탄이었다는 데 있다. 중국에도 진천뢰가 있었다. 그것은 수류탄과 같이 불을 붙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폭발하는 것이었다. 그런 폭발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폭발하기 때문에 대포에서 쏠 수 있는 비격진천뢰는 조선의 독창적인 무기로 1591년 선조 때 이장손이 개발했다. ▷비격진천뢰는 조선이 임진왜란 초기의 패배를 딛고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 비격진천뢰가 전북 고창군 무장읍성에서 11점이 새로 발견됐다. 과거 발견된 비격진천뢰 6점은 모두 폭발한 뒤 탄피만 남은 상태로 발견됐다. 사용되지 않고 내부에 화약이 그대로 남아있는 비격진천뢰 11점의 발견은 획기적이다. 이틀 뒤인 11월 19일은 1598년 이순신 장군의 순국(殉國)과 노량해전 승리로 임진왜란이 끝난 날이다. 그 420년 뒤인 7주갑(周甲)에 발견됐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임진왜란 직후 명청 교체기인 17세기 전반 만주족 수장 누르하치가 요동의 요충지인 명의 영원성 공략에 번번이 실패한 것은 명이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대포인 홍이포 탓이 컸다. 이 홍이포가 인조 이후 조선에서도 제작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사용됐다. 위력적이라는 홍이포도 대포알 자체는 폭발하는 것이 아니어서 19세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발달한 양이(洋夷)의 화약식 대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임진왜란 당시 비격진천뢰가 얼마나 첨단무기였는지 짐작이 가면서 이를 더 발전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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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황제 보석’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2011년 4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간암 3기임을 이유로 63일 만에 구속집행이 정지되고 이후 보석 결정을 받아 7년 8개월째 풀려나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달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일부 혐의에 대해 다시 파기환송 선고를 받았다. 1심-항고심-상고심-파기환송심-재상고심까지 5번의 재판으로도 모자라 재파기환송심과 재재상고심까지 2번의 재판을 더 남겨두면서 수감 여부 확정이 지연되자 장기간 보석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전 회장의 보석은 단지 길어서가 아니라 간암 환자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매일 술과 담배를 즐기고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가게를 찾으며 일상을 즐기고 있다는 전직 수행비서의 증언이 나와서 황제급이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여기에 태광그룹 소유의 골프장 휘슬링락에서 전직 법무부 장관, 전직 검찰총장, 전직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 전·현직 고위 관리들이 골프와 식사비를 면제받거나 태광 골프상품권으로 비용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결국 13일 이 전 회장의 보석 취소를 검토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언론 보도 등으로 볼 때 이 전 회장의 건강 상태가 보석을 유지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의혹과 함께 보석 취소를 요청하는 진정서가 검찰에 제출된 지 2년이 넘었다. 공판 검사 중 한 명이라도 정의감이 있었다면 이 전 회장의 건강 상태를 의심하고 확인해봤을 터이지만 지금 와서도 청구의 근거라고는 언론 보도가 전부다. ▷보석에는 보석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이 반드시 허가해야 하는 필요적 보석과 보석 여부가 법원의 재량에 속하는 임의적 보석이 있다. 흔히 병보석이라 하는 것은 임의적 보석에 해당한다. 이런 보석은 법원이 쉽게 내주지 않는다. 재벌이니 호화 변호인단을 갖고 있을 것이며 그 변호인단이 붙어서 부풀린 의료진단서를 만들어내고 검찰이나 법원이 직접 확인하는 걸 막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전구속(無錢拘束) 유전보석(有錢保釋)’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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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미중(美中) 갈등의 와중에 헨리 키신저가 95세의 노구를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됐다. 키신저란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외교(diplomacy)’는 명저라고 여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문제의식을 꼽으라면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이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을 지지한 그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소련과의 군축 협상을 본격화했다. 그것을 데탕트라고 부른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소련, 즉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트루먼에 이어 집권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의 존 덜레스 국무장관은 동서(東西) 갈등을 외교적 문제가 아닌 도덕적 문제로 보고 소련 체제 내에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떤 협상도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키신저는 조지 케넌 식의 봉쇄 정책은 소련 체제 내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목적은 훌륭하지만 그 변화가 일어날 먼 훗날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긴 여정(旅程)을 위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공황은 시장에 맡겨두면 언젠가는 극복되지만 그 언젠가가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뒤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비판한 것과 비슷하다. 키신저나 케인스나 치밀한 현실감을 가진 천재였다. 소련 체제는 스탈린이 오래전에 예민하게 느낀 대로 스탈린 사후 약 한 세대 만에 붕괴하고 말았다. 북한 체제도 이대로 가면 언젠가 붕괴하고 만다고 느끼기에 김정은은 협상을 하자고 나왔을 것이다. 케넌의 봉쇄 정책처럼 북한을 군사와 경제의 양면으로 압박하는 것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이기는 하다. 다만 한반도의 휴전선 인근은 인구밀집지대여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때 인적 피해가 막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점이 압박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협상론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협상에 임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협상의 목적지는 압박의 목적지보다 훨씬 덜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키신저의 주장이다.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근본적 결함이 있는 체제로 보는 이들에게 키신저의 논지가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것은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이 결국 공산주의자들과의 공존(共存)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은 김정은과의 공존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화정책으로 비핵화조차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를 교묘히 분리하면서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을 디커플링(decoupling)시키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ICBM 개발 중단과 미래 핵의 포기만으로 만족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김정은과의 공존이 아니라 핵을 가진 김정은과의 공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말로는 반드시 협상으로 비핵화를 이루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 가깝다는 건 그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체제는 옛 소련 체제보다 더한 허약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화정책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긴 우회로일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 정도의 높은(혹은 과도한) 낙관을 가질 수 없다면 압박론자가 될지언정 유화론자는 될 수 없다. 다만 키신저의 협상론은 피 한 방울도 나올 것 같지 않은 냉철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가 공산주의자들의 말을 믿어서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다만 공산주의자들이 체제 유지를 위해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말 너머의 허약한 현실을 봤기 때문에 한편으로 압박하면서도 한편으로 협상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를 솔직 담백하다고 평가하며 유화정책 일색인 현 정부와의 차이다. 키신저가 ‘외교’에서 프랑스 리슐리외 추기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냉전 이후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의 근거를 이끌어내는 논지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늘 천재의 분석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소련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키신저의 데탕트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지만 결정타를 가한 것은 소련을 힘으로 압박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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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헌병에서 군사경찰로

    헌병(憲兵)이 군사경찰로 바뀐다. 헌병이란 말은 일본에서 왔다. 일본 육군은 1881년 프랑스의 장다르므리(gendarmerie)를 본떠 헌병을 만들었다. 경찰군인이란 뜻의 경병(警兵)으로 부르려고도 했으나 헌병이 됐다고 한다. 헌(憲)은 법을 의미하므로 헌병은 법을 집행하는 군인이란 뜻이다. 헌병에는 주로 사무라이 출신 경찰이 차출됐다. 헌병 창설의 목적은 군사경찰 업무보다는 경찰 내의 사무라이 세력을 줄이고 이들의 폭력성을 민권운동 시위 탄압에 돌리려는 것이었다. 그런 일본 헌병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조선에 와서 악명을 떨쳤다. ▷프랑스의 장다르므리는 폴리스(police)와 별도로 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무장부대다. 치안을 도시에서는 폴리스가 담당하지만 도시를 벗어나서는 장다르므리가 담당한다. 장다르므리의 일부는 군사경찰로 특화돼 있다. 장다르므리 소속원의 신분은 군인이지만 조직 자체가 군과는 별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군으로부터 독립해 군사경찰 역할을 수행할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일본 헌병이 처음부터 군에 예속된 것과 큰 차이다. ▷우리나라 헌병은 광복 후 미국 군사경찰(MP·Military Police)을 본떠 만들어졌는데 이름만 일본 것을 썼다. 영어로는 MP라고 써 밀리터리 폴리스의 번역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군대는 프랑스나 일본과 달리 군대 내로 역할이 한정된 독자적인 경찰을 갖고 있다. 헌병의 명칭을 군사경찰로 바꾸는 것은 제도의 유래를 따져볼 때도 적절한 개명이다. ▷다만 군사경찰이란 말이 좋은 작명인지는 의문이다. 군경찰로 했으면 더 압축적인 데다 군검찰과 대구(對句)도 맞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검찰 업무처럼 경찰 업무도 군에서는 특별하다. 법을 집행하는 군인들을 키우는 업무는 본래의 군사훈련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군검찰은 법무관 제도를 통해 외부 법률 전문가를 많이 쓴다. 군사경찰은 그렇지 않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고 군 지휘관에 예속되기 쉽다. 이참에 군사경찰이 군 지휘관이나 군검찰에서 독립해서 활동할 여지도 넓혀주는 게 의미가 있을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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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제1차 세계대전과 민족주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14년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쏜 사건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싸움의 주역이 한편에서는 독일, 다른 한편에서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된 이유를 알려면 세르비아의 슬라브족 형님 격인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족 형님격인 독일의 대결구도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독일에 빼앗긴 프랑스의 원한을 이해해야 한다. ▷제1차 대전 종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11일 관련국 정상이 프랑스 파리에 모인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 사이인 간전기(間戰期)와 흡사하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제1차 대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일에 과도한 배상을 요구한 것이 독일의 민족주의적 반발을 불러일으켜 제2차 대전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 극우파가 득세하는 것이 제2차 대전 직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20세기는 1900년부터가 아니라 1918년부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근대의 끝자락까지 남아있던 ‘카이저’니 ‘차르’니 하는 구식 군주들과 그에 부합하는 낡은 신분적 문화가 사라지고 민주주의와 대중문화의 시대, 바로 우리가 사는 현대로 들어서는 계기가 된 것이 제1차 대전 종전이다. 국제적으로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태어나면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힘의 외교’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강대국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불붙어 두 차례 세계대전이 일어났지만 그 속에서 약소국들에는 민족자결주의라는 새 희망이 주어졌다. 제1차 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폴란드 등이 독립을 획득했다. 1919년 우리나라의 3·1운동도 그 영향으로 일어났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제1차 대전의 승전국이었고 3·1운동은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족자결주의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돼 제2차 대전 이후 한국 등 수많은 신생국을 탄생시킨 동력이 됐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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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국회의원의 언행 불일치

    올해는 시인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숨진 지 50년이 되는 해다. 시인은 귀가하던 밤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에 부딪혔다. 알베르 카뮈는 기차 일정을 바꿔 편집자의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에 차가 나무에 부딪치는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죽을 때 나이는 각각 48세와 47세. 난리 통에 죽거나 병으로 죽으면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게 되지만 교통사고로 죽는 것은 어쩐지 비명에 갔다고 여겨져 더 안타깝다. ▷가장 억울한 교통사고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것일 게다. 9월 카투사에서 복무 중이던 윤창호 씨가 부산 해운대에서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 윤 씨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고 수십만 명이 함께 분노하며 동의를 해줬다. ▷이들이 국회에 제안한 것이 이른바 ‘윤창호법’ 제정이다. 음주운전 초범 기준을 2회에서 1회로 변경하고 처벌 기준인 음주 수치를 낮추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윤창호법’을 발의했고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 등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동참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행위”라며 “선진국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살인죄로 처벌받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 이 의원이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코미디 같지만 결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본인이 직접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고 했으니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언행 불일치의 표본”이라며 비판하는 글이 올랐다. 이 의원이 음주운전을 했지만 사망사고를 일으킨 것은 아닌 이상 살인죄 처벌 운운하는 건 지나치다. 다만 국회의원의 언행 불일치가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도 흔치 않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에 자신이 구속된다고 여겨 삼가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다. 말은 말일 뿐이라는 듯 스스로 열흘 전 살인행위라고 질타한 음주운전을 참으로 가볍게 저지른 의원의 ‘태연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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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법원에 맡겨라

    ‘양승태 대법원·법원행정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판사가 사법농단 재판을 맡을 경우에만 공정한 재판이 우려된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블랙리스트를 들고나와 사태를 키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관련된 판사가 재판을 맡을 경우에도 재판이 공정하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이었을 뿐 아니라 그 전신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이었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가능하다. 다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기 맘에 맞는 재판부에 대한 요구를 자제하는 것이 사법의 독립을 존중하는 자세다. 더불어민주당이 구상하고 있는 사법농단 특별재판부는 1, 2심 재판만 특별재판부에 맡기고 최종 판결은 대법원이 한다는 것이다. 1, 2심은 사실심을 책임지고 그중 2심은 사실심의 최종심이다.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의 최종심일 뿐이다. 국민은 헌법이 예정한 절차대로 사실심과 법률심을 모두 받을 권리가 있다. 1, 2심을 특별재판부에 맡기는 것은 국민에게서 헌법상의 사실심 절차를 박탈하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이 법률심만 맡는 게 아니라 주요한 사실의 확정도 다루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특별재판부가 1, 2심을 다루건, 통상의 재판부가 1, 2심을 다루건 어차피 대법원으로 사건이 올라올 수밖에 없을 텐데 1, 2심만 특별재판부에 맡기는 것은 법적으로 실효적인 의미가 없다. 단지 자기 맘에 맞는 판사들로 1, 2심을 구성해 그 재판 결과로 대법원 재판을 압박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권력 분립에 입각한 국가에서 국가의 일관성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곳은 사법부다. 국회는 다수당이 바뀌면 바뀌고 정부는 수반이 바뀌면 바뀌지만 사법부는 그런 식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하지만 바로 선출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탄핵에 의하지 않으면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일관성의 토대가 된다. 사법부가 일관성을 보장하는 한에서만 집권세력이 누가 되든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별재판부는 그 일관성을 중단시킴으로써 국가를 단절시킨다. 특별재판부를 만들고 싶으면 반민특위처럼 헌법적 근거부터 마련하거나 5·16처럼 자칭 혁명부터 하는 것이 그나마 제정신일 것이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법원 자체 조사위는 3차례 조사 끝에 사법권 남용은 부적절하지만 죄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을 유보한 것은 김 대법원장이다. 그에 대해 법원 조사위의 결론에 맞춰 사태를 봉합했어야 했으며 그러지 못해 전례 없는 사법부 불신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 비판은 사법농단 압수수색영장이 90% 가까이 기각되고 있는데도 김 대법원장은 팔짱만 끼고 있다는 비판과 똑같이 사법농단의 원인인 관료적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 조사위의 결론을 유보시킨 것은 법원 내부의 결론만으로 법원 외부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검찰 수사를 거쳐 법원 안에서만이 아니라 법원 밖에서도 수긍할 최소한의 공감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안에서 밖으로 나갔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는 변증(辨證)적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만 즉자(卽自)적 결론은 그 유치함을 극복하고 대자(對自)적 결론으로 성숙해진다. 다만 변증적 과정에서 출발점과 종착점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최종적 판단권이 법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엉뚱하게 특별재판부로 귀속되는 것은 법원에 타율(他律)을 강제하는 것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로 하면서 본래 의도한 성숙한 자율(自律)의 추구로부터 이탈이 된다. 최종적 판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 아마도 죽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법원 내에서는 이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그 시각들이 버무려져 하나의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버무려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할 때 그 양심은 단순한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법관공동체의 양심이라고 한다. 그런 양심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요구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양심은 나의 주관에도 없고 너의 주관에도 없다. 주관들이 버무려져 얻어지는 상호주관적 결론, 그것을 사후적으로 법관공동체의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모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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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미국의 폭탄 소포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미국 민주당 주요 인사들에게 폭탄 소포가 배달됐다는 보도는 ‘유너바머’와 ‘탄저균 봉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기술문명을 혐오하던 수학 천재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978∼1995년 16차례나 소포 폭탄을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보내 3명을 죽이고 2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발각되기 전까지 언론에서 ‘유너바머’로 불렸다. 2001년에는 ABC방송 등 언론사와 의회에 치명적 탄저균이 묻은 봉투 우편물이 배달돼 5명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알카에다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미 육군 전염병연구소에서 근무한 생물학자 브루스 이빈스의 반사회적 범죄로 밝혀졌다. ▷이번 폭탄 소포는 모두 10건이 발견됐다. 그중에는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에게 보내진 소포도 있다. 드니로는 6월 토니상 시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파벳 F로 시작되는 욕설을 하는 등 반(反)트럼프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1962년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영웅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혀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는데 이번 사건은 그 관계가 역전된 느낌이다. ▷폭탄은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당파적 색채가 짙은 표적으로 인해 다음 달 6일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폭탄에는 개봉과 동시에 터지는 부비트랩 같은 건 없었다. 실제 폭발까지 의도한 것인지 단지 공포심만 불러일으키려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때문에 논란은 더 커졌다. 민주당은 극우 보수주의자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공화당은 민주당 열성 지지자의 자작극을 의심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 여론조사의 추세를 보면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 우위의 하원이 민주당 우위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의 일방적인 대내외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외교 분야 중 하나가 한반도 관련이다. 누가 폭탄 소포를 보냈는지의 수사 결과와 미국 민심의 향배에 우리로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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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다문화

    1990년대만 해도 다문화(multiculture)를 활용해 다문화국가, 다문화사회란 말은 썼어도 다문화가정이란 말은 잘 쓰지 않았다. 이런 의미로서의 다문화란 말은 2003년 시민단체 30여 개로 구성된 건강시민연대에서 국제결혼 부부나 혼혈아 대신 다문화가정으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언론에서 점차 쓰이기 시작했다. ▷볼테르, 루소 등 프랑스 위인들의 무덤인 팡테옹에 올 7월 안치된 시몬 베유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1970년대 여성 낙태 합법화에 기여한 저명한 여성 정치인이다. 그가 1970년대 파리 시내 동북부의 벨빌 지역을 방문했다가 너무나 많은 이민자들의 모습에 “이곳은 파리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놀랐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경기 안산시 원곡동 혹은 서울 대림동이나 가리봉동의 외국인 실태는 지금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10년 전에 그곳을 찾았다면 우리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파리 시민도 의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파리가 달라졌듯이 우리의 다문화 상황도 그렇다. ▷얼마 전 서울 대림동 대동초등학교의 올해 신입생 72명 전원이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보도가 나왔다. 전교생을 기준으로 보면 10명 중 8명이 다문화가정 자녀다. 절대 다수는 중국동포의 자녀다. 중국 동포의 대동초 선호와 한국 학부모의 대동초 기피가 맞물린 현상이다. 다문화가 그 정도로 깊어졌나 해서 놀랍기도 하지만 한국인 일색인 것이 다문화가 아닌 것처럼 중국동포 일색인 것도 다문화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다문화사회 특유의 고립화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이 어제 열렸다. 올해 8년째다. 중국 출신 여성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이주여성 사회 적응 매니저로 활동하는 천즈 씨 가족이 다문화가족상 대상을 받았다. 우리 속의 타자(他者)와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는 글로벌시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윤리적 과제이기도 하다. 공존이 혼란으로 흐르지 않고 시너지가 되도록 모두 더 노력해야 한다. 다문화란 말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다문화사회가 진정한 다문화사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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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55년 만의 JSA 3자 협의

    독일 분단 시절, 베를린의 연합군 점령구역에서 소련 점령구역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던 검문소 중 하나가 찰리검문소다. 찰리검문소는 알파검문소나 브라보검문소와 달리 외국인과 외교관에게 열린 유일한 통로여서 국제적으로 유명했다. 찰리검문소에는 달랑 부스 하나가 놓여있었지만 동독 쪽으로는 통행 차단 막대와 지그재그로 놓인 콘크리트 장벽, 감시탑 주변에 차량과 승객을 수색하는 넓은 구역이 있어 동서의 모습이 크게 달랐다. ▷남북한 사이에는 휴전선에서 각각 2km의 땅이 비무장지대(DMZ)로 설정돼 있다. DMZ 내에 남북한 군인이 대면해 경계를 서는 유일한 곳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으로 분장한 송강호가 한국군으로 분장한 이병헌에게 “(군사분계선 너머로) 구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우”라고 말하는 것으로 설정할 만큼 가까이 마주보고 있다. 과거 찰리검문소처럼 분단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JSA는 휴전협상 장소로 만들어졌다. 협상 당사자는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유엔사와 북한군이 맡았다. 그러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높이 5cm, 너비 50cm의 콘크리트 경계선이 생기면서 남측의 실제 경비는 한국군이 맡고 지휘만 유엔사가 하게 됐다. 정전협정 위반 사안이 발생하면 북한군과 유엔사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마주 앉는다. 북한군은 1991년 유엔사가 한국군 장성을 유엔사 정전위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참석을 거부하는 등 한국군 북한군 유엔사 3자가 참여하는 협의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17일 JSA에서 한국군 북한군 유엔사 장교들이 테이블을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하고 둘러앉아 JSA 비무장화를 논의했다. 3자 협의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55년 만에 처음이다. JSA에서 초소가 철수되고 형식적인 군사분계선마저 철거되면 JSA 내에서는 남북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바뀔 수도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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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교황 방북 초청도 ‘아니면 말고’인가

    김대중 정부가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을 추진할 당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맡고 있던 강우일 주교(현 제주교구장)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교황 방문은 해당국에서의 교회의 존재를 전제한다. 교회에는 신자와 사제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 교회에는 신자만 있고 사제가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고 실제 방북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들은 바로는 내년 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하신다”고 말한 그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인 정세덕 신부와 통화했다.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대리를 겸임하고 있고 교황이 방북하면 서울대교구장이 평양에 가서 교황을 맞아야 한다. 교황이 방북을 고려한다면 그 조건을 검토하는 임무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몫이다. 정 신부는 교황의 방북 조건에 대한 검토도, 검토에 대한 주문도 없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교황 방문의 전제조건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교황의 모든 방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목 방문(pastoral visit)이다. 북한에는 사제도 없고 수도자도 없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처음 평양교구장 대리를 맡은 김수환 추기경 이후 정진석 추기경, 또 현재 염수정 추기경까지 누구도 북한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이뤄지는 교회가 있다고 확인한 적이 없다.” ―이 대표가 한 말은 뭔가. “정치적 입장에서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제조건은 안 되지만 교황이 예외적으로 방북할 순 없나. “북한 정권이 매우 전향적으로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고 보장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교황이 방북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고 그런 의미 없는 방북은 교황이 하지 않을 것이다.” ―교황은 중국 방문을 오래전부터 희망해왔다. 최근 중국 정부와 주교 임명에 대해 타협도 했다. 내년쯤 중국을 방문한다면 북한을 함께 방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의 독자적 주교 임명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해서 중국 교회를 온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다. 교황의 방문을 위해서는 최소한 선교와 사목 활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데, 중국 교회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북한에는 그나마 중국 수준의 교회도 없다.” ―일반 언론은 교황 방북 추진을 떠들썩하게 전하는데 가톨릭 언론은 왜 이리 조용한가. “교황 방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침묵으로 전하는 게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김정은의 방북 초청을 전달할 예정이다. 교황이 초청에 응하는 것이 교황의 프로토콜상 어렵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알았다면 문 대통령이 교황을 알현한 뒤 김정은의 방북 초청 사실과 교황의 답변을 함께 전해야지, 평양회담 직후도 아니고 유럽 순방 직전에 뒤늦게 김정은의 제의를 떠들썩하게 밝힌 연유는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교황 방북의 특별한 조건을 과연 알아보기나 한 것인지 의문까지 든다. 이유가 없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해에도 가톨릭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 청와대를 향한 낙태 청원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과 다른 답변을 했다가 천주교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결국 사과했다. 천주교가 그 속의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드물게 일치하는 의제가 낙태 반대임을 알았다면 그런 엉뚱한 답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과 1983년 조국 폴란드를 방문하고 동유럽 공산권 몰락에 큰 공헌을 했다. 그것은 동유럽 국가에는 공산 치하에서도 진정한 교회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을 결정한다면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도 그런 축복을 끌어내는 기적 같은 일을 해낸 데 대해 칭송을 받아야 한다. 교황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진정한 교회가 들어설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내가 창피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 예상이 틀리길 바란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비핵화보다 더 허용하기 어려운 것이 신앙의 자유다. 신앙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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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중국 명사들의 잇단 실종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의 수장인 중국인 멍훙웨이 총재가 중국 도착 이후 사라졌다. 인터폴 본부는 프랑스 리옹에 있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거주하는 멍 총재의 부인이 프랑스 경찰당국에 신고하면서 그의 실종 소식이 알려졌다. 멍 총재 부인은 “중국에서 남편의 목숨을 거론하는 협박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남편이 지난달 20일 프랑스를 떠나 스톡홀름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홍콩의 몇몇 언론은 익명의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멍 총재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끌려갔다”며 “부패 의혹으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중국의 인기 여배우 판빙빙은 무려 4개월 넘게 언론의 추적에서 사라져 그의 실종을 둘러싸고 사망설 감금설 망명설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판빙빙은 이달 3일에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탈세를 사과한다’는 강요받은 듯한 글을 올리며 부패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음을 시사했다. ▷중국 재벌 밍톈그룹의 샤오젠화 회장은 지난해 1월 홍콩에 갔다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납치돼 사라진 뒤 아직도 생사가 불분명하다. 부패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당국은 그가 어떤 혐의로 어디서 조사를 받고 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02년에는 판빙빙 사건과 유사하게 류샤오칭이라는 인기 여배우가 탈세 혐의로 체포돼 베이징의 한 감옥에서 422일간 지내다가 풀려난 적이 있다. ▷감시와 무단 연행·연금은 권위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이래 민주주의는 인신(人身)의 자유를 요구하는 데서 시작한다. 문명사회에서 누군가를 체포할 때 그 사실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리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이다. 갑작스러운 실종은 가족이나 친지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죽음과 같은 최후의 상황을 상정하게 하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인터폴 수장과 그 가족까지도 그런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나라에서 이름도 없는 인민들에게 가해지는 공안 권력의 위압이 어떠할지 가히 짐작이 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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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중국産 CCTV

    중국산 폐쇄회로(CC)TV의 주요 시설 사용을 금지하는 새로운 국방수권법(NDAA)이 8월 미국 의회를 통과해 관심을 끌었다. 중국산 CCTV는 정보를 빼내는 ‘백도어’(보안 구멍)가 심어져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국방수권법은 중국의 특정 회사 이름까지 적시했는데 CCTV와 그 핵심 부품인 IP카메라의 세계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는 하이크비전과 다화(다후아)가 포함됐다. ▷중국산 CCTV의 의심스러운 백도어가 실제 발각된 나라 중 한 곳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다. 2015년 KAIST 시스템보안연구실과 보안업체 NSHC는 중국에서 수입한 CCTV 2개에 숨겨진 백도어를 발견해 정부에 신고했다. 백도어는 암호화 기법까지 적용해 몰래 심어져 있었다. 이 백도어에는 중국에 위치한 클라우드 서버에서만 접근이 가능했다고 한다. ▷국내 주요 기관에 얼마나 많은 중국산 CCTV가 설치돼 있는지 정부가 밝히지 않아 알 수는 없다. 올 국정감사 자료에서 정부과천청사가 하이크비전 CCTV의 최대 수주처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과천청사에 설치된 328기의 약 50%에 해당하는 155기가 하이크비전 제품이다. 그중 정보통신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건물에는 59기 중 무려 86%인 51기가 하이크비전 제품이다. 국가보안시설인 원자력발전소에도 하이크비전 제품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전체에 현재 1억7600만 대 정도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그중 안면인식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인공지능(AI) CCTV도 2000만 대나 된다. 중국이 CCTV를 통해 범죄 혐의자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민 전체를 감시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수출한 CCTV를 통해 외국의 국가 기밀이나 산업 정보를 빼낸다면 그 역시 큰 문제다. 우리나라가 중국산 CCTV에 대해 미국처럼 주요 시설 사용 금지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의 무역 보복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중국을 상대로 함부로 펀치를 날리기 어렵겠지만 철저한 보안성 검사를 통해 중국도 꼼짝 못 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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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아니면 말고’ 발언의 가벼움 혹은 속내

    스탈린은 1952년 분할 점령 상태의 독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평화노트(Peace Note)’란 걸 제안한다. 독일과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독일을 통일된 중립국으로 만들되 상호 군대를 철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지도자들은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북대서양 동맹을 통해 서독을 서구로 포섭하려는 모든 시도가 차질을 빚을 것이고 한번 차질을 빚자마자 다시 북대서양 동맹을 향한 모멘텀(momentum)을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거부했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의회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이 분포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 직전에 공산당이 차지한 의석과 비슷한 비율이다. 이들 서구 공산당은 북대서양 동맹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사회민주당은 기독교민주당 총리인 아데나워가 각별한 결단력으로 추진하는 친서방 정책에 반대하면서 ‘우리 민족끼리(Wir sind ein Volk)’를 외치며 중립화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외교에서 모멘텀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 모멘텀을 깨기 위해 외교의 상대방이 얼마나 집요하게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 방문 때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한 것,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제재를 완화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속일 경우,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수사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사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해 봐도 가벼움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의 ‘아니면 그만’이라는 발언에서는 외교에서 타이밍(timing)이나 모멘텀의 중요성에 대한 고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유엔이 북한이 압박을 느낄 만한 대북제재의 모멘텀을 쌓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김정은의 말뿐인 비핵화 약속만 믿고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공세를 펴고 있다. 핵과 미사일 실험은 누가 봐도 명확한 도발인데도 대북제재의 모멘텀을 쌓는 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비핵화는 모든 군축 회담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기술적 문제로 변해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기 쉽다. 헨리 키신저 같은 외교학자는 군축은 극소수의 사람만 이해하는 난해한(esoteric)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년, 3년이 아니라 더 긴 과정이 될지도 모를 비핵화를 놓고 제재를 강화할 모멘텀을 다시 쌓기는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중단된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도 있고 종전선언을 취소할 수도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중단된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종전선언을 취소할 경우 상황은 전과 똑같은 데로 돌아왔을 뿐인데도 큰소리를 칠 권리가 북한에 넘어가는 역전이 발생한다. 이런 것이 선후(先後)의 미묘함이다. 북한은 이 인터뷰 후에 ‘비핵화가 종전선언의 대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니면 그만’인 종전선언 따위로는 비핵화의 대가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그럴듯해졌다. 한 발 더 들어가서 따져보면 남북한 지도자가 ‘미국은 북한에는 불가역(不可逆)적인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종전선언 같은 가역적인 것도 못 해주는가’라는 인식을 공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말이 단순한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같은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솔직 담백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런 평가도 립서비스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확신한다는 근거는 김정은의 말뿐이다. 확신의 근거가 김정은의 말밖에 없기 때문에 김정은은 솔직 담백한 인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말을 계산하고 하는 게 버릇이 된 사람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립서비스에 흥분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생래적으로 압박을 받을 때만 움직이는 유형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압박이다. 유화정책은 압박할 때보다 더 냉철한 현실주의에 토대를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뮌헨 회담의 영국 체임벌린 총리처럼 기만에 농락당하는 우스운 꼴이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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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나 혼자 사는’ 중년

    지난해 1인 가구가 2000년에 비해 2.5배가량 늘어 전체 가구의 28.6%를 차지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1인 가구가 크게 늘었지만 비율로 보면 1인 가구 가운데 34세 이하 1인 가구의 비율이 줄어든 반면 35세 이상 1인 가구의 비율은 늘어난 사실이 흥미롭다. 25∼34세 비율은 51.9%에서 38.0%로 13.9%포인트 감소한 반면 35∼44세 비율은 17.5%에서 24.3%로 6.8%포인트, 45세 이상 비율은 5.5%에서 19.5%로 14.0%포인트 증가했다. ▷국어사전에서는 중년을 마흔 안팎의 나이로 정의한다. 40세 이상 1인 가구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아예 결혼적령기를 놓쳐 결혼하지 않았거나 이혼한 뒤 혼자 사는 두 부류의 중년층과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배우자와 사별한 노년층이다. 40세 이상에서 미혼 이혼 사별 모두 크게 증가했다. 고령화 현상으로 노년에 혼자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마흔 무렵은 이대로 외롭게 늙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나이다. ▷만혼(晩婚)으로 30대 싱글은 흔해졌다. 이제 40대 싱글은 돼야 주변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듯하다. 인기 TV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등장하는 ‘나홀로족’은 주로 40대다. 가수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서 노래한 청춘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을 이제 ‘마흔 즈음에’로 바꿔야 할지 모른다. 40대 싱글을 향한 조명은 연장된 젊음에 대한 예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더는 붙잡을 수 없는 젊음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여성의 건강 상태가 좋아져 40대 초반까지는 아직 둘 사이에 아이가 있는 가정의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45세가 넘어가면 상황은 급속히 달라진다. 건강학으로 보면 중년은 45세 무렵부터라고도 할 수 있다. 중년에 자발적 독거를 택한 것이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비자발적 독거는 우울증, 알코올의존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이에 낀 고독한 중년의 문제에도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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