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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났던 20, 30대와 50대 이상의 세대간 간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를 놓고도 그대로 재현됐다. 다만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테러’에 대해선 절대 다수가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국회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 2030 대 5060 사이 ‘균형추’ 40대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22, 23일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 20대에선 한미 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31.2%에 그쳤다. 반면 부정적 평가는 60.6%로 거의 두 배에 달했다. 30대는 20대보다는 덜했지만 역시 부정적이라는 평가(47.5%)가 긍정적이라는 평가(34.3%)보다 우세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69.3%) 30대(75.8%)가 야권 단일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흐름이 한미 FTA 문제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0대는 2030세대의 정반대에 섰다. 비준안 처리에 대해 62.5%가 긍정적, 25.2%가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60대 이상에선 긍정 평가가 68.0%까지 올라갔다. 40대에서도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한 부정 평가(47.8%)가 긍정 평가(41.6%)보다 약간 높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40대는 서울시장 보선 때 박 후보에 대해 압도적 지지(66.8%)를 보냈지만 한미 FTA 문제에 대해선 2030세대와 5060세대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행위에 대해선 50대(73.6%) 60대(81.8%)뿐 아니라 20대(61.4%) 30대(63.7%)에서도 “국회를 모독한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20대(50.5%) 30대(53.1%)를 포함한 모든 연령층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지역별로는 서울에선 비준안 처리에 대해 긍정 평가(52.0%)가 부정 평가(36.7%)보다 많았고 경기 인천(긍정 48.6%, 부정 40%)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반면 호남권에선 부정 평가(70.4%)가 긍정 평가(12.3%)보다 훨씬 많았다. 김 의원의 ‘최루탄 테러’에 대해서는 광주 전남에서도 절반 이상(50.5%)이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나라당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의견도 39.1%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 안철수 지지층은 부정적 평가이번 조사에서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는 35.5%로 보수(31.6%)나 진보(20.9%)보다 많았다. 중도파 중에선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해 부정 평가(52.9%)가 긍정 평가(38.2%)보다 많았다. 여야 간에 합의하지 못한 현안의 국회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단독 처리 반대(45.9%)보다는 다수결 우선(50.9%)에 다소 무게를 뒀다. 관념적으론 ‘다수결’을 선호하는 듯하지만 실제 표결 처리에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보수 성향 응답자 중에선 72.8%가 긍정 평가를 내렸지만 진보 성향 응답자 중에선 29.6%만 긍정 평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대선후보 지지 성향에 따라서도 한미 FTA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지지층에선 긍정 평가(75.1%)가 부정 평가(14.4%)를 압도했다. 거꾸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지지층에선 부정 평가(63.5%)가 긍정 평가(24.2%)를 앞질렀다.○ 무당층 부상대선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박 전 대표(27.3%)와 안 원장(29.4%)이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박 전 대표는 보수 성향에서 43.1%의 높은 지지율을 보인 반면 안 원장은 진보 성향에서 42.6%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념 성향에 따라 지지 성향도 확연히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도파에서 안 원장 지지율(36.7%)이 박 전 대표 지지율(20.4%)보다 높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이번 조사 결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52.3%에 달했다는 점이다. 무당층은 서울(55.5%), 인천 경기(52.7%), 대전 충청(56.2%) 등 전국적으로 골고루 포진해 있다. 호남권에서도 민주당 지지는 33.4%에 그쳤고 무당층이 4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안 원장 지지율이 29.6%로 박 전 대표 지지율(22.3%)보다 다소 높았으며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부동층도 33.6%나 됐다.한나라당이 민심 이반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부산 경남(PK)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5.8%로 안 원장(31.5%)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후속 대책과 관련해 “정부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소홀함이 없도록 철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협정문 완성에서 비준까지) 4년 7개월이 걸렸지만 어찌 보면 정부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챙기는 기회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미 FTA 처리 과정의 진통과 관련해서는 “한미 FTA를 놓고 더 이상 갈등을 키우는 것은 국가나 개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 대통령은 농민과 소상공인 피해대책과 관련해 “정부가 이미 보완대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앞으로 반대 의견을 포함해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FTA 대책의 지원 규모는 정부가 8월에 발표한 22조1000억 원에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이 대통령은 “농업 피해를 우려하고 있으나 피해 보상이라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농업이라고 세계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농업도 수출산업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지원하면 덴마크 등 유럽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장관들에게 “젊은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이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한미 FTA 협정문에 정식 서명할 계획이다. 한미 양국은 내년 1월 1일 발효를 위해 다음 달부터 실무 협의를 시작할 방침이다.당초 청와대가 검토했던 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당장 이뤄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한미 FTA 이외의 여러 현안을 한꺼번에 설명할 기회를 12월 중에 갖게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이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한 데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날치기 규탄대회’에서 “기본권 유린하고 민주주의 후퇴시키는 이명박 대통령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22일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 긍정 평가(47.2%)가 부정 평가(41.0%)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에 대해선 ‘야당의 반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41.5%)이라는 옹호론보다는 ‘다수당의 횡포’(50.5%)라는 비판론이 더 많았다.동아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22, 23일 이틀 동안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다.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행위에 대해서는 ‘국회를 모독한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68.9%나 됐다.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응답은 22.9%에 그쳤다.한미 FTA처럼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현안의 국회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상을 하되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52.4%)는 의견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수당의 단독 처리는 안 된다’(43.6%)는 쪽보다 많았다.응답자의 60.4%는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한 의원들을 겨냥해 낙선운동을 펼치겠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낙선운동은 정당하다’는 응답은 29.6%에 그쳤다.대선후보군에 대한 단순 지지율을 물은 결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29.4%)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27.3%)가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였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6.5%), 손학규 민주당 대표(3.9%), 김문수 경기도지사(3.0%)는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1년을 맞은 23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를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군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나라는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점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병사들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똑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결의와 우리 군의 투철한 결의, 특히 서북도서를 지키는 병사들의 결의를 보면서 국민도 군과 해병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연평도 해병부대 장병들과 화상통화를 하는 자리에서 “북한은 우리가 약할 때 도발한다. 우리가 강하면 함부로 도발하지 못 한다”며 “아직 북한의 공식 사과가 없지만 민족화합을 위해서라도 북쪽이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힐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초 헬기 편으로 지난해 포격을 당했던 연평도 해병부대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악천후 때문에 방문지를 서방사로 변경했다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전사자 유가족,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김황식 국무총리,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평도 포격도발 전사자 1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김 총리는 “정부는 앞으로도 국민의 안전과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에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고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화추모공원에서는 북한의 포격으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흉상 제막식이 엄수됐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22일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단독 처리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필리핀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에 이뤄졌다.이 대통령의 전용기는 이날 오후 2시 40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이 대통령은 마중 나온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승용차 편으로 오후 3시 반경 청와대에 도착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마친 뒤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 3시다.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 시도는 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도중 시작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처리 시점을 절묘하게 고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외에 체류하고 있을 때도 아니고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하지도 않은 때라는 점에서 ‘절묘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이 대통령은 청와대 복귀 직후 김효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으로부터 국회의 FTA 처리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 수석이 서울공항에 마중 나갔지만 그때까지 처리 계획을 몰랐던 만큼 ‘오늘 처리’ 방침이 있다고 보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한 참모는 “대통령 차량은 보안상 휴대전화를 차단(jamming)하는 만큼 아주 급박한 사안이 아니면 휴대전화로 국회 상황을 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TV로 지켜봤다.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은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절대적 지지를 보내준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논평했다. 또 “국회 논의 과정에서 거론된 농민과 중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을 적극 마련하고 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하고 젊은이 일자리 대책도 세우겠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한미 FTA가 비준된 만큼 이번 주 중 한미 FTA 비준의 의미와 향후 후속대책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 수석이 전했다. 다만 대국민 보고 내용을 한미 FTA에 국한할지 아니면 향후 국정운영 방향 등 폭넓게 다룰지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10·26 서울시장 선거 이틀 뒤에 “민심 수습을 먼저 한 뒤 청와대 등 인사 개편을 하겠다”고 밝혔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미 FTA 비준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현안이 마무리되는 12월에 굵직한 방향이 제시될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필리핀을 국빈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향후 2년 동안 5억 달러(약 5500억 원)를 지원하는 등 필리핀 경제개발 계획을 돕기로 했다. 양국은 이날 마닐라 말라카냥 궁에서 열린 한-필리핀 정상회담 직후 5개 협정문에 서명했다. 5대 사업은 △필리핀 농업 개발을 위한 무상원조 제공 △2013년까지 최대 5억 달러의 차관 제공 △필리핀 남부 농산업복합단지 건설을 위한 유무상 119억 원 지원 △한국전력과 한진중공업의 수비크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참여 △할라우르 강 다목적댐 건설 협력이다. 필리핀에 제공되는 차관 5억 달러 가운데 상당액은 수비크 발전소와 할라우르 강 댐 등 사회간접자본(인프라) 건설에 사용되며 한국 기업은 이 사업 개발자로 참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빈만찬에서 건배사를 통해 “(필리핀은) 친한 친구를 넘어서 피를 나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며 “필리핀이 (경제성장과 사회개혁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대한민국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열린 한-필리핀 CEO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경제 불황이 길어질 수 있는 만큼 세계 경제의 유일한 희망은 동아시아 경제권”이라고 강조했다. 최금락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인구 1억 명이 넘는 필리핀은 인적자원과 천연자원이 많아 성장잠재력이 큰 미래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중 한국과 처음 수교한 나라로 6·25전쟁 때 7400여 명이 참전했다.마닐라=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이제는 한 국가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절대 보호주의를 해선 안 된다”며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이 대통령은 이날 국빈방문차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해 교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발전이 수출 없이 됐겠느냐. 시장이 좁은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을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자유무역(대상)은 미국이다.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안보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또 이 대통령은 “서울을 대표하는 건물이 광화문에 있는데, 미국대사관과 바로 옆 문화체육관광부로 미국 원조로 필리핀 건설회사가 지었다. 장충체육관도 필리핀이 설계해 건물을 지었다. 한국의 일류 건설회사들이 하청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이 ‘필리핀이 6·25 때 참전했는데 이제 한국이 필리핀을 돕는 나라가 됐다. 이게 누구 탓인가’라고 한탄했던 일을 떠올린 뒤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1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국 일본 중국 3국 정상회담에 참석해 각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3국 정상은 이 회담에서 3국 간 FTA의 경제적 타당성을 연구하는 산관학 공동연구가 올해 말 종료되는 시점에 나올 권고안에 따라 3국 간 FTA가 조기에 실현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하지만 이 자리에선 북한 핵 문제의 처리 방안을 놓고 한중 간 시각차를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모든 불법적인 핵 활동을 중단하고 재개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게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최소한의 신뢰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즉각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통해 확인받는 ‘선결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그러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일단 6자회담을 열자’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원 총리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남북 및 북-미 대화가 6자회담과 동시 추진될 경우 도움이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희망한다”고 말했다.또 이 대통령은 이날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한국 국회가 처리한 뒤 한-호주 FTA를 본격적으로 협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두 정상은 안보협력 강화를 위해 양국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회담’을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다.마닐라·발리=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누사두아 컨벤션센터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소속 10개국 정상을 한꺼번에 만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은 “2007년 체결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활용해 (지난해 1000억 달러 선이었던) 양측의 교역량을 2015년 1500억 달러로 늘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양측은 한-아세안 FTA의 상품협정을 개정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이 대통령은 태국 베트남 등 최근 홍수 피해를 입은 국가 정상에게 “(메콩 강 유역을 비롯한 지역에서) 홍수 등 자연재해를 줄이는 데 한국의 4대강 개발 경험이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우리 외교장관이 최근 한강 수역의 여주에 가서 홍수 피해 방지책과 관련한 경험을 얻고 왔다. 내가 직접 가서 홍수 예방과 수자원 관리 경험을 얻고 싶다”며 한국 방문을 희망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20분간 따로 만났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원 총리는 “진행 중인 북-미 간, 남북 간 대화에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한국의 요청에 따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참석하겠다는 의사도 전달했다. 또 이 대통령은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양곤 근처의 신항만 개발과 철도 비행장 건설 등의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희망한다”는 요청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18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개막 전야 만찬에도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주 미국 하와이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주최한 뒤 호주를 거쳐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두 사람의 대면은 19일 EAS 전체회의와 오찬에서도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야당이 한미 FTA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은 없다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발리=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인도네시아의 중장기 경제개발을 돕는 ‘한-인도네시아 경제협력사무국’을 자카르타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사무국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차관급 인사가 사무총장을 맡으며 양국 정부 대표가 공동 사무차장을 맡는 3년 한시 조직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 세계 9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2011∼2025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고 지난해 12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경제개발 경험을 갖춘 한국 정부가 주파트너로 참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올 5월 한국의 T-50 고등훈련기 수출계약 및 양국 간 전투기 공동개발사업으로 구축된 방위산업 협력에 대해 “더욱 관계를 강화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어 이 대통령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비즈니스·투자 서밋 만찬 기조연설을 통해 “글로벌 재정위기가 실물 분야로 전파되는 위기 국면을 맞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자유무역 확대를 통해 경제도 성장하고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세안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내년에 자카르타에 아세안 업무를 전담하는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대사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만찬에는 한국과 아세안 소속 10개국 기업인 수백 명이 참석했으며 이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했다. 이 대통령은 18일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19일에는 한일중 3국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한다. EAS에는 아세안 10국과 한중일 3국 외에 미국 러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8개국 정상이 참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EAS에 처음 참석한다. 이 대통령은 이후 필리핀을 국빈방문해 21일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22일 귀국한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에 참모들과 만나 민주당의 반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동의가 늦춰지는 데 대해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 대만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서둘러 체결하려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안타깝고 답답하다”며 “지금처럼 국내 경제가 어려울 때 한미 FTA가 살 길이다. FTA가 빨리 되면 젊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발리=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16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유예 및 폐기 협상을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자 부글부글 끓었다.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으로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국회 논의를 조금 더 지켜보겠다”며 일단 표면적으로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그러나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한 참모는 “일국의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방문해 1시간 20분 머물면서 제1야당 대표에게 직접 뜻을 밝혔고, 배석한 홍보수석비서관이 전체 언론에 공식 발표했다”며 “이런데도 미국의 문서를 받아오라는 건 황당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사대주의”라고 비난한 참모도 있었다.한나라당은 더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황우여 원내대표 등과 긴급회의를 가진 뒤 “양국의 책임 있는 분들이 재협상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기현 대변인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결례의 도를 넘어 모욕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대표와 당 소속 재선 의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 의원은 “몸싸움이 아니라 총싸움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당장 한나라당은 17일 의원총회를 열어 한미 FTA 비준안의 24일 강행 처리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의 협상이 더는 불필요하며 169석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비준안에 대한 표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필요한 심사기일을 수차례 지정해 명분을 쌓은 뒤 처리하자는 의견까지 나온다.그러나 협상파로 분류되는 45명을 끌어안지 않으면 비준안 처리 조건인 전체 재적의원(295명) 과반수(148명 이상)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실제로 당내 협상파 의원 일부는 이날 긴급회동을 갖고 합의 처리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흘째 단식 중인 정태근 의원은 “FTA 정상 처리를 위해 노력해온 분들이 구체적 액션플랜을 갖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때까지 한나라당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문제가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의지를 양당 대표에게 보여주러 왔다.”(이명박 대통령)“언론에서는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는 게 야당에 대한 압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일방 처리하기 위한 수순 밟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민주당 손학규 대표)15일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만남은 오후 3시 국회 본청 3층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박희태 국회의장,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당 손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21분간 이루어졌다.이 대통령은 박 의장 안내로 접견실에 들어서면서 손 대표에게 “아이고, 자주 보네요”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손 대표는 “야당 대표가 안 나와도 대통령이 기다리겠다는데…. 실제 마음은 좀 착잡한 게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얘기했다.이에 이 대통령은 웃으며 “나는 그런 얘기한 적이 없는데…”라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래도 손 대표는 “최소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폐기)해야”라고 발언을 이어갔다.비공개 면담에서 이 대통령은 ISD와 관련해 새로운 제안을 밝히고 “나는 정치적이지 못하다. 정직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전 약속을 받아오라’는 민주당의 요구에 잔여 임기까지 들먹이며 호소했다.“나도 자존심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요구하면 응하게 돼 있는 FTA 합의문 조항이 있는데, 왜 미국에 허락해 달라고 하느냐. 주권국가로서 맞지 않다. 대통령이 그렇게 약속한다. 왜 오바마 (대통령) 말을 믿나. 대한민국 대통령 말을 믿어야지. 나도 1년 3개월 지나면 대통령 그만둔다. 그런데 이렇게 합의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깥세상에 나가 보니 세계가 지금 먹고살려고 혈안이 돼 싸우고 있다. 내가 나라를 망치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어 이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서) 모든 정상이 나만 만나면 어떻게 미국과 FTA 했냐고 부러워 죽을 지경”이라며 “야당 압박을 위해 온 게 아니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도 했다. 이어 “민족과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부끄럽지 않도록 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국면의 최전선에 섰다. 이날 국회를 방문해 여야 지도부를 만난 이 대통령은 민주당을 향해 ‘깜짝 제안’을 내놓았다. ‘빈손’일 것이란 예상을 완전히 뒤집으며 엉킨 매듭을 자신이 직접 풀겠다고 나선 것이다.이 대통령은 이날 ‘선발효-후재협상’ 카드를 꺼냈다.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발효 뒤 3개월 안에 야당이 주장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재협상을 자신이 책임지고 미국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승부수는 여야 모두를 압박하고 있다. 당장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정치의 실종’이란 파국(破局)의 장본인이 돼야 한다. 한나라당도 뒷짐을 지고 있을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면 협상의 여지는 사라진다.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냐, 아니면 무기력한 집권당으로 기록되느냐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 “파격 제안” vs “새로울 게 없다”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 뒤 기자들을 만나 “(이 대통령이) 빈손인 줄 알았는데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민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새로운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면 ISD를 폐기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양당이 똑같은 제안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은 지난달 31일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문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합의문에서 ISD와 관련해 ‘정부는 협정 발효 후 3개월 이내에 ISD 유지 여부에 대해 양국 간 협의를 시작해 1년 내에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결국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제안이 당시 합의문 내용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 합의문은 작성 당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곧바로 ‘보이콧’됐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재협상을 ‘보증’함으로써 여야 간 약속과는 차원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민주당도 지난번 합의문은 여당이 정부를 보증하는 형태였다면 15일 제안은 이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겠다고 나선 만큼 진일보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민주당이 16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통령의 제안을 논의해보겠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 제안’ 실현 가능성은?한미 FTA 협정문 22조 3항과 4항에 따르면 협정이 발효된 이후 얼마든지 협정의 개정을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달 30일 합의한 ‘서비스·투자위원회 설치’ 서한에서도 협정 발효 후 90일 이내에 위원회를 구성해 서비스·투자 분야의 모든 문제를 실무적으로 협의하기로 약속한 상태다.이 때문에 ISD 재협상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1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가 미국에 투자한 것이 540억 달러로 미국이 우리에게 투자한 450억 달러보다 많다”며 “ISD 조항은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문제는 ISD가 재협상 테이블에 올라가면 우리도 미국에 무엇인가를 내 줄 수도 있다. 한미 FTA에서 논의되지 않은 쌀이나 쇠고기 개방이 미국 측 요구 조건으로 내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일각에서는 원칙이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ISD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미국과의 ‘사전 교감?’이 대통령의 이날 제안이 미국과의 사전 합의에서 이뤄진 것인지도 관심을 모은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는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한미 두 정상이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ISD 관련 논의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양국 정상 사이에 깊은 교감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외교통상 당국이 “ISD를 폐기할 수는 없지만 소송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모종의 해법이 있다”고 설명하는 점도 ‘사전 교감설’에 무게가 실리게 만든다.지금까지 헌정 사상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여야 간 교착상태에 놓인 긴급 현안을 직접 중재한 적은 없다. 임기가 1년 3개월 남은 이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중재안이 거부되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만 재촉할 수 있는 부담을 떠안았다.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 부결 때도, 개헌 논의 좌절 때도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뒀던 이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을 마지막 승부수로 띄운 셈이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
《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처칠로드 초등학교는 4학년 학생들에게 내준 심화형 수학 문제풀이 쪽지 상단에 학생 이름과 함께 사인을 하도록 하고 있다. 바로 아래엔 ‘이 사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학생 자신의 생각으로 풀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이라고 적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수학 과제물을 내주면서 ‘내 생각으로 푼 것’ 을 증명하는 사인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2010년 1월 시차(時差)를 이용해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시험지를 미국 동부지역 고교생에게 전달해 준 학원 강사가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부정행위의 수혜자는 2400점 만점인 SAT 평소 성적이 2100점대였던 우수 학생들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사건이 공개된 뒤 나타났다. 일부 학부모는 과외 학원을 찾아가 ‘왜 비싼 학원비를 받고서 우리 애한테는 문제를 안 빼줘서 손해를 입히나’ 라고 따졌다.》위의 두 가지 사례는 ‘거짓말의 나라’ 대한민국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거짓 자체를 두려워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거짓으로라도 성과만 달성하면 ‘OK’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물론 미국에서도 거짓(hoax)과 마을(ville)이란 단어를 조합한 거짓공화국(Hoaxville)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거짓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같은 ‘거짓말 불감증’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부터라도 ‘명예로운 한국’을 위한 해법을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결핍되면 선진사회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프랜시스 후쿠야마). ○ 거짓말 불감증미 SAT 부정사건은 일부 부모에게 국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자녀에게 부모가 대신 해준 숙제를 제출하게 한다거나 중고교생 자녀의 자원봉사 과제를 대신 해주고 ‘남는 시간에 수학문제 더 풀라’고 한다면? 또 대학입시 자기소개서를 대행업체에 맡기기 위해 지갑을 여는 부모라면? 대학가에 퍼진 시험부정 행위와 기말과제 베껴내기는 기성 질서의 부조리를 비웃는 젊은층도 허위의 문화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은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잔재를 털어내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거짓의 생명력은 그것의 ‘단기적 만족’이 크다는 데 있다.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이보다 편한 게 없다는 것이다. 자기 평가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따지는 성향이 한국인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엄격한 평가자로서의 자기’를 잃어버린 게 거짓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진실을 아는 자신의 평가 대신에 제한된 정보를 지닌 주변인의 평판이 압도적으로 중시되면서 ‘거짓’으로 치장하려는 동기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런 진단과 함께 “겉으로 드러나는 금전적 성취나 지위보다는 스스로 평가한 자부심의 크기를 인정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실 고백의 용기거짓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진실 고백이 쉬워져야 하며, 이런 용기를 높게 평가하는 문화적 바탕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결심을 높이 평가해주는 토양은 미미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프랭크 케슬러 교사는 학생들의 과제물을 채점하면서 두 학생의 리포트가 아주 비슷한 사실을 발견했다. 케슬러 교사는 두 학생을 불러 어떻게 리포트가 이처럼 비슷한지 추궁했고,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공교롭게도 두 학생이 동시에 베낀 사실을 확인했다. 교사에게 불려간 두 학생 중 한 학생은 인터넷에서 베낀 사실을 인정했지만 다른 학생은 끝까지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에선 잘못을 인정한 학생에겐 경고 조치를 내렸지만 끝까지 표절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퇴교 조치를 내렸다. 표절이 나쁘다는 것은 똑같았지만 거짓말을 한 데 대해선 용납하지 않는 미국 학교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뉴햄프셔의 명문 사립인 세인트폴 고교의 강의실 출입문에는 ‘명예 코드’가 붙어 있다. 거기엔 “시험부정이나 표절을 하는 동료를 보면 반드시 학교 당국에 신고하라. 그것이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부정행위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춘기 청소년에게 시쳇말로 ‘고자질’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미국 사회가 미래의 리더에게 어느 정도로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를 가늠케 한다. 이 학교 교사는 “명예를 바탕으로 한 우리 학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어린 학생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요구 못할 바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명예로운 한국을 위하여전문가들은 부모의 역할이 더 명예로운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자녀들에게 “거짓말로 인한 잘못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지금 당장 더 혼나는 ‘손해’를 감내하라. 그게 훗날 달라진 너를 만든다”는 가르침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나미 원장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시작해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말했다.부모의 역할과 함께 타인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직무를 맡은 선생님과 지식인도 적잖은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황 교수는 정부건 기업이건 훈장이나 표창을 주는 기준을 새롭게 만들면 명예의 기준을 새로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취에 대해서만 훈장을 줄 게 아니라 명예를 위한 행위를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놓고 법조계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할 헌법적 가치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의도된 거짓이나 음모론 확산으로 한국 사회 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할 ‘신뢰’를 해쳤다면 고강도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법정 거짓말에 집유이하 선고가 82%… 위증사범 솜방망이 처벌 ▼위증-증거인멸 10년새 2배 “법정 형량 상향조정해야”“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盟誓)합니다.”엄숙한 법정에서 증인 선서가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법정에 서는 증인은 누구나 선서를 해야 한다. 형법 제152조에 따라 선서를 한 증인이 거짓 진술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도 거짓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거짓말 경연장’ 된 법정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해 기소되는 위증사범은 해마다 늘고 있다. 위증과 증거인멸죄로 1심에 접수된 사건은 10년 전 836건에서 2009년 1983건에 이어 지난해에는 1625건이 접수돼 10년 새 갑절 가까이로 늘었다. 검사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형사법정이 이 정도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의 한 판사는 “민사법정은 ‘거짓말 경연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라고 자조했다.위증사범은 늘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지난해 접수된 위증죄 사건의 1심 선고 결과를 보면 집행유예 이하(재산형, 선고유예 포함) 선고율이 82%였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위증죄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법정 진술을 바탕으로 유무죄를 가리는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정착하려면 거짓 증언 차단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실제로 공판중심주의가 강조되면서 법원이 위증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정 때문에…, 또 의리 때문에…’법정에서 거짓이 판치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를 꼽는다. 신에 대한 선서나 서약위반을 중대한 범죄로 보는 기독교적 전통이 있는 영미권 국가와 달리 한국인은 선서를 하고도 지인을 위해 거리낌 없이 거짓 증언을 한다는 것이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20일 레미콘 기사인 직장 동료끼리 다투다 전치 8주의 중상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동료를 감싸주려 법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권모 씨 등 8명을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폭행 혐의로 기소된 동료 전모 씨의 부탁에 단체로 “전 씨가 동료를 때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허위 증언을 했다.상대적으로 가벼운 위증죄 처벌 규정도 위증죄가 만연하는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일본은 위증죄를 저지른 경우 3개월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1년 이상 징역이다. 고소사건이 많아 위증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사사건을 형사사건화하는 등 고소·고발을 남발하다 보니 위증을 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위증을 막으려면법조계에서는 법정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증죄에 대한 법정형량을 상향 조정하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벌에 앞서 위증을 예방할 수 있는 사법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동운 서울대 법대 교수는 “느슨하게 진행되는 재판에서는 피고인이나 증인이 입을 맞춰 위증할 여지가 크다”며 “집중 심리제를 통해 위증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방식을 개선해 유도신문 때문에 증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증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들은 13일(현지 시간) 세계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 분야 관세 인하를 통해 녹색산업 무역을 촉진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21개 회원국 지도자들은 “세계 경제가 유럽 재정위기, 저성장, 고실업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무역 자유화 조치가 필수적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며 녹색성장 촉진, 지역경제 통합 강화 및 무역 확대, 규제 완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호놀룰루 선언문’을 채택했다. 회원국들은 현재 세계 녹색산업 제품과 서비스 교역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 분야에 대해 비관세 장벽인 부품 국내 조달 규정을 2012년까지 철폐하고 관세를 2015년까지 5%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관세 인하 규모가 너무 크다며 반대했던 중국이 인하에 동의했으며 그에 상응해 회원국들은 인하 대상 품목을 당장 정하지 않고 내년까지 미루자는 중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미국은 태양광 패널, 수력 및 풍력 발전 터빈, 공기오염 필터, 하수처리 펌프 등이 인하 대상 품목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또 한 국가경제의 에너지 효율성을 나타내는 척도로 국내총생산(GDP)당 에너지 소비량으로 표시되는 ‘에너지 집약도(Energy Intensity)’를 2035년까지 45%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이에 대한 진전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각국은 자발적인 연간 보고체계도 수립하기로 했다. 이 밖에 무역투자 제한조치 신설금지(Standstill) 약속을 2015년까지 연장해 보호무역주의를 저지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날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미중 간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중국의 환율과 무역정책은 ‘더 이상은 그대로 안 된다(enough is enough)’”라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무역적자와 실업은 위안화 환율 때문이 아니다”라며 “위안을 큰 폭으로 평가 절상해도 미국이 직면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호놀룰루=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한국과 미국이 양국 여행객들에게 출입국 심사 때 대면(對面)심사를 생략하는 ‘자동출입국심사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양국 정부는 13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제19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이 제도가 계획대로 시행되면 한미 양국에서 ‘신분이 확인된 여행객’은 내년 1월부터 방문국 출입국 심사 담당자와 마주하지 않고 자동화된 출입국심사대에서 간단한 확인 절차만 거치면 된다. 신분이 확인된 여행객이란 지문과 얼굴 사진 등 신체 기록이 이미 등록돼 안전성이 확인된 여행객을 의미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아직 어떤 바이오 데이터를 수집할지, 신상 확인 절차를 어떻게 할지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며 “내년 1월에 시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과 자동출입국심사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네덜란드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가 된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APEC 정상회의에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의 창의 및 혁신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규제개혁과 경쟁력’을 주제로 열린 업무오찬 선도발언에서 2008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20여 개국 정상에게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활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규제가 여러 부처에 걸쳐 다단계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관계 부처 간 판단이 달라 규제 개혁을 하는 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위원회를 설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위원회 구성원이 된 점 △정부 관리 외에도 기업인 외국인투자자 등 정책소비자를 위원으로 위촉한 점 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APEC 정상회의는 이날 지역경제 통합 강화와 무역 확대, 녹색성장 촉진 등의 합의 사항을 담은 ‘호놀룰루선언’을 채택한 뒤 폐막했다. 이 대통령은 14일 밤 귀국했다.호놀룰루=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치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잠시 만났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한 이 대통령 부부는 할레코아 호텔의 만찬장에서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국내 정치권의 관심은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두 정상이 만났을 때 한미 FTA 문제를 놓고 어떤 대화를 나눌지에 모아지고 있다. 15일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앞두고 민주당이 ‘국회에 와도 좋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재논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문한 상태다.이날 두 정상의 만남은 1분을 채 넘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가 만찬장 입구에 선 채로 20여 개 방문국 정상 내외를 맞이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각국 정상을 맞은 이 대통령의 경우 ‘반갑다. 잘 오셨다. 어떻게 지내셨느냐’ 이외의 말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13일 정상회의 때는 6시간가량을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회의장에 머물며 단체사진도 촬영한다.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12일 하와이 교민간담회를 열고 “나는 결과적으로는 (비준안이) 통과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회)에서도 통과시켰는데 우리도 통과시킬 것이다. 새로운 (경제) 위기가 오지만 미국과 통상을 확대하면 일본 같은 나라들이 한국에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14일 귀국하는 이 대통령은 17∼19일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어 필리핀을 국빈방문해 마닐라에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22일 귀국할 예정이다.호놀룰루=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불통(不通)과 반목(反目)으로 얼룩진 한국 정치의 ‘민낯’이 11일 고스란히 드러났다.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하려다 민주당의 반대로 취소했다. 방문 계획 공개도, 계획 취소도 전격적이었다. 청와대도, 민주당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양측은 오로지 한미 FTA 처리의 주도권을 놓고 ‘명분 쌓기’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계획은 오전 8시 20분 공식 발표됐다가 3시간여 만에 이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이후인 15일로 연기됐다. 대통령의 일정이 급변한 이날 ‘사건’은 한국 정치가 최소한의 사전 조율 능력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이 대통령은 민주당의 거부에도 “낮은 자세로 기다리겠다”며 국회 방문을 밀어붙이려다가 박희태 국회의장이 난색을 표하며 15일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자 물러섰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소통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일방통행의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에게 ‘불통 대통령’이라고 비판해온 민주당도 ‘소통’을 부인함으로써 그간의 비판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줬다.▼ 대통령은 “野 거부해도 국회 가겠다” 야당은 “와도 안 만난다”… ▼뒤늦게 손 내민 靑, 고개돌린 野… 15일 MB 헛걸음할 수도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15일로 미뤄졌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해 보인다. 한종태 국회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15일 대통령을 맞이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으나 민주당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12, 13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 FTA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을 가져온다면 (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지만 상황이 똑같다면 면담할 필요가 없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의전도 예의도 잃은’ 한국 정치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계획은 지난달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야당인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나는 반대표를 던졌다”면서도 한미 FTA 통과를 축하했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풍경이 의회 민주주의의 전형이라고 느꼈다며 자신이 직접 국회를 설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거부하며 “사전 조율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회를 방문하는 것은 국가원수의 기본적인 의전도 아니고, 야당과 국회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사전에 협의할 내용을 충분히 조율하지 않으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날 수 없다는 얘기다.이에 앞서 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직접 국회 연설을 하려 했을 때도 민주당은 “한미 FTA 통과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반대해 무산시켰다. 손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달 18일 이 대통령이 국회 부의장단과 교섭단체 원내대표 등 국회 지도부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도 불참했다.여권의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김효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여러 차례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낮은 자세’를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했지만 사전에 대통령의 뜻을 민주당에 전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아 “오만하다”는 반응과 함께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낳았다.청와대 정무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매듭을 풀어보려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오히려 APEC 정상회의에서 뭔가의 ‘선물’을 가져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 ‘꽉 막힌’ 한미 FTA 처리 더 꼬이나여야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계획이 불발되면서 한미 FTA 처리가 한층 더 복잡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민주당의 면담 거부를 명분으로 한나라당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대통령과의 면담도 거부한 야당과 과연 협상이 가능하겠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대통령이 15일로 연기를 해서라도 국회를 찾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대통령이 국회를 찾는 것은 강행 처리를 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고 분석했다. 다음 주 강공으로든, 협상으로든 한미 FTA가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양당의 대표적 협상파인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주말 막바지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여야 의원 8명이 10일 “강행 처리와 몸싸움 저지 모두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강경파에 맞선 양당의 협상파도 세 불리기에 들어갔다.결국 이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겠다고 밝힌 15일이 한미 FTA의 처리 방향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공산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 ‘벤치마킹?’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식이나 취임 첫해 정기국회 시정연설 등을 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이 대통령도 지금까지 4차례 국회를 방문했다. 하지만 공식행사가 아닌 긴급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한 사례는 드물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1월 8일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부탁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것이 처음이다. 불발은 됐지만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시도는 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벤치마킹’했다고도 볼 수 있다.당시 노 전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의 요청으로 박관용 국회의장이 각 당 대표에게 연락하면서 성사됐다. 박 의장은 의장실 앞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민주당 조순형 대표, 열린우리당 김원기 공동의장 등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맞으며 “시정연설 등이 아닌 일로 국회를 찾은 최초의 대통령이다. 헌정사에 특별한 일로 아주 좋은 기록이다”라고 평가했다.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은 그해 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34명 중 찬성 162표, 반대 71표, 기권 1표로 통과됐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를 위한 다각도의 해법이 모색되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 강봉균 신낙균 김성곤 의원, 한나라당 홍정욱 황영철 주광덕 현기환 의원 등 여야 의원 8명은 10일 “강행 처리와 몸싸움 저지 모두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또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이 내놓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절충안’과 관련해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하면 한나라당은 한미 양국 정부가 ISD에 대한 재협의를 약속할 때까지 한미 FTA 비준안을 일방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ISD 절충안은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 FTA 발효와 동시에 ISD 유지 여부 및 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를 시작한다고 약속하면 비준안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의원 87명 중 45명이 동의했다.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도 회동을 갖고 절충안에 대해 논의했다. 황 원내대표는 “정부에 ‘미국으로부터 ISD 협의 문제에 대한 약속을 받아오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방문해 여야 원내대표에게 한미 FTA 비준안 처리의 중대성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중재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12일 미국 방문에 나서는 점을 감안해 11일 오후 2시 방문을 제안했다는 것. 그러나 두 원내대표는 “때가 아니다”라며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박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직권상정은 꼭 (여당이) 요청해야 되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의장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하는 것이다”는 말도 했다. 한편 민주당 내부에선 중도파와 강경파 간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강경론을 주도하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ISD 절충안에 대해 “당론에 개인적인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집단행동을 통해 당에 피해를 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김 원내대표가 전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강경파를 겨냥해 “(여당에) 짓밟히는 쇼 한 번 하자는 것”이라고 맹비난(11월 10일자 A5면 참조)한 것에 대한 강경파의 반발도 잇따랐다. 이종걸 의원은 성명에서 “한미 FTA 반대 투쟁에 온몸을 던지며 앞장선 개혁진보 진영과 한미 FTA로 피해를 보게 될 사람들의 얼굴에 인분을 투척한 것과 같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절충안을 주도한 강봉균 의원은 “대안을 찾지 않고 반대만 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며 “당내에 이 같은 점을 걱정하는 의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올겨울 상당수 대기업은 전력 사용량을 지난겨울보다 10% 이상 줄여야 한다. 또 노래방 유흥주점 등 서비스 업종은 오후 5∼7시에는 네온사인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지식경제부는 10일 “올겨울에는 예비전력이 53만 kW까지 떨어져 전력 예비율이 1%에도 못 미치는 등 전력 공급이 크게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런 내용이 담긴 ‘전력수급 안정 및 범국민 에너지절약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대책에 따르면 순간전력을 최대 1000kW 이상 쓰는 1만4000여 개의 산업체 등은 피크 기간(12월 5일∼내년 2월 말)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5∼7시 전력 사용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줄여야 한다. 산업체 전력 사용이 최대치에 도달할 내년 1월 둘째, 셋째 주에 전력 사용을 20% 줄이면 나머지 피크 기간에는 5%만 줄여도 되며, 정부는 기업이 절약한 20%에 대한 전기료의 10배를 현금으로 돌려줄 예정이다. 순간전력을 100kW 이상 쓰는 4만7000여 개의 일반건물도 피크 기간에 건물 온도를 온종일 20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노래방, 유흥주점 등이 주로 사용하는 네온사인도 오후 5∼7시에는 사용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광고 간판이 네온사인밖에 없으면 1개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을 위반하는 산업체나 일반건물에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적용해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정부는 9·15 정전 사태 당시 예고 없이 순환정전이 이뤄졌다는 비판에 따라 ‘대국민 예고 시스템 강화안’도 내놓았다. 피크 기간 중 예비전력이 400만 kW 이하로 떨어지는 ‘관심’ 단계에 들어서면 뉴스 및 방송자막, 트위터 등을 활용해 국민들에게 에너지를 절약해 달라고 당부할 예정이다. 또 예비전력이 200만 kW 이하로 떨어지는 ‘경계’ 단계가 되면 소방방재청을 통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비상시 대처 방안 등을 알리기로 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동절기 에너지 수급대책을 논의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공직자들에게 완벽한 일처리를 거듭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하루 중 전력 사용 피크 타임이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5∼7시’라는 최중경 지경부 장관의 보고를 듣고 “왜 그때냐, 요일별로 다르지 않느냐”는 등의 세세한 질문을 던진 뒤 “정부의 (에너지 수급) 계획은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열리는 제19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1∼13일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한다. 이 대통령은 APEC 회의 ‘규제개혁 및 경쟁력’ 세션에서 선도 발언을 통해 한국이 추진해온 규제개혁 사례를 발표할 계획이다. 올해 APEC 의장국인 미국은 한국이 세계은행(WB)의 기업환경 평가에서 2006년 30위에서 2010년 8위로 뛰어오른 점을 고려해 이 대통령에게 선도 발언을 요청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