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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27의 어깨 짚은 수는 어떤 의미일까. 흑 29라는 강력한 수를 두기 위한 사전공작이다. 흑 29 행마의 약점은 백이 참고 1도 1처럼 째고 나오는 것. 5로 끼우고 7로 나오는 수가 성립하면 흑이 곤란한데, 지금은 흑 27이 축머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백 30의 타협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참고 2도 흑 1로 응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중국의 수담은 손을 빼고 좌상 귀에 걸쳤다. 하지만 참고 2도처럼 두는 게 좋았다. 흑 3을 선수하고 5로 백을 압박하는 모양이 시원시원하다. 백은 재빨리 32를 차지했고, 흑에게 좌상 귀 실리를 내준 대신 상변에 두터움을 쌓아 기분 좋은 흐름을 타게 됐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한돌의 예선 두 번째 상대는 중국 인공지능(AI) 수담(핸드토크·Handtalk)이다. 바둑의 별칭인 수담(手談)을 프로그램명으로 사용했다. 백 6의 3·3 침입 때 한돌은 대개 8의 곳으로 막는다. 수담과 기풍이 다른 것. 인공지능도 각자 확실히 선호하는 형태가 다르다. 흑 15로 끊을 때 참고 1도 백 1로 잡는 것도 정석이다. 백 24는 축이 유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축이 불리하면 참고 2도 백 1로 젖혀 7까지 두는 경우가 많다. 흑 25는 알파고가 처음 선보인 수로 인간에게 큰 깨달음을 준 수이다. 두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습관적으로 단수하는 타성을 깬 것이다. 20=13.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대회 첫 출전인 한돌이 과연 얼마나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관심거리였는데 첫판에서 쾌승을 거두고 순조롭게 출발했다. 상변 전투에서 침착한 수읽기로 상대의 백말을 양곤마로 몰아붙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참고도를 보자. 백 1(실전 40)로 자리 잡아 백돌이 무난하게 타개되나 싶었다. 상변 흑 진이 이렇게 무너지면 실리를 많이 벌어 놓은 백이 유리해진다. 이때부터 흑의 인내의 행군이 시작된다. 특히 흑 8, 10으로 2선으로 넘어간 것이 굴욕처럼 보이지만 먼 미래를 내다본 일보 후퇴였다. 이렇게 근거를 빼앗아 놓고 마음껏 공격하겠다는 것. 결국 흑 16, 18로 공격하게 돼선 흑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는 백의 처절한 버티기를 흑이 적절한 ‘밀당’으로 무력화하며 결국 상변에서 흘러나온 양쪽 백 대마를 모두 잡아버렸다. 61=58, 126 132 138 144 164=116, 129 135 141 151 195=123. 흑 197수 불계승.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사실 프로기사끼리의 바둑이었으면 백이 진즉에 돌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세팅된 승률 밑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항복하지 않는다. 보통 5% 미만이면 돌을 던진다고 한다. 흑 ●의 안전운행 덕에 백은 88부터 수를 조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흑 93으로 단수했을 때 응수두절이다. 패를 하고 싶어도 팻감이 없다. 여기서라도 백이 돌을 던졌어야 했는데 고 지니어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백 94로 수를 메웠다. 흑 95로 따낸 수로는 A로 양단수 해서 수를 조여도 수상전에서 이긴다. 백 96으로 우하 귀 흑이라도 잡아보겠다고 했으나 흑 97로 붙이자 백이 드디어 항복을 선언했다. 참고도 백 1로 둬도 흑 2, 4가 선수여서 6까지 살아간다. 백이 처절하게 버텼으나 흑이 상변에서 흘러나온 두 개의 백 말을 모두 잡으며 대승을 거뒀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은 어떻게든 흑의 수를 줄여야 한다. 가망이 거의 없긴 하지만 백 78부터 82까지 최선을 다해 흑의 진출을 막아서 버텼다. 이때 흑이 섣불리 참고 1도 1, 3으로 두다간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 백 6으로 끊는 수가 성립해 흑이 낭패를 본다. 침착하게 흑 83으로 수를 늘리며 야금야금 백 집을 부수는 것이 최선의 안전운행이다. 더 이상 수가 없다. 백은 84, 86으로 그야말로 억지로 막아서고 있다. 한돌이 여기서 참고 2도처럼 뒀으면 백이 돌을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흑 87로 한발 물러서는 바람에 백의 목숨이 조금 더 연장됐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이번 설 연휴 때 지인이 강력 추천한 중국 드라마 ‘사마의2: 최후의 승자’를 뒤늦게 ‘정주행’했다. 정주행은 원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른 길로 가다’라는 뜻이지만 요즘은 드라마나 웹툰 등을 처음부터 한꺼번에 몰아 보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2017∼2018년 중국에서 방영된 45분짜리 44회 분량의 사마의2를 정주행한 결과 중드의 수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사마의를 재조명하는 기본 스토리가 워낙 탄탄한 데다 배우들의 호연과 세련된 편집, 방대한 스케일, 소소한 유머 코드 등이 한국 드라마와 비교할 때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 드라마의 대사가 유치하다는 편견도 깰 수 있었다. ‘적게 버리면 적게 얻고, 크게 버리면 크게 얻는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인내’ ‘오직 승리밖에 모르는 자들이 과연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등의 대사는 사마의의 명언 모음이라고 할 만했다. 670억 원의 제작비가 헛되게 쓰이지 않았다. 국내에선 설이나 추석 연휴 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후배 한 명도 이번 설 연휴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이 목표라고 했다. 꼰대 같을까봐 어떤 드라마냐고 묻진 않았지만 그는 “넷플릭스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우선 TV 앞에 앉질 않는다. 지상파에선 설 연휴마다 감초처럼 들어갔던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이 거의 자취를 감췄고 명절 예능으로 꼽히던 MBC ‘아이돌 스타 선수권대회’는 3%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아예 정주행 드라마를 편성표에 넣기도 했다. KBS는 인기 드라마였던 ‘동백꽃 필 무렵’을 연이어 볼 수 있게 편성했다. 물론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반면 섣달 그믐날(24일) 중국중앙(CC)TV 등이 주도한 춘완(春晩)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명성을 톡톡히 과시했다. 한한령(限韓令) 이전엔 국내 아이돌들의 단골 출연무대이기도 했던 춘완은 올해 5G, VR 등 첨단기술을 접목했고, 전자상거래 업체 등을 끌어들여 세뱃돈과 경품을 나눠주는 등 더욱 화려하게 진행됐다. 최근 한류는 세계 문화에서 정주행하며 주류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BTS가 그래미상 시상식 무대에서 처음 공연하는 경사가 잇따르고 있다. 사극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속편인 ‘킹덤2’가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굴기나 넷플릭스의 국내시장 잠식을 염두에 두면 한류가 꽃길만 정주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불거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 조작이나 음원 사재기 의혹은 역주행의 전조처럼 느껴질 정도다. 국내 정상급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기획사의 관계자는 “많은 팬을 보유한 그룹이 신곡을 내놔도 1등 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팀원들이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습하고 준비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는 점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창작 의지가 꺾인다는 것이었다. 한때 가요계에서 역주행은 좋은 뜻으로도 쓰였다. 대중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좋은 노래나 작품이 재발견돼 인기를 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뜬금없이 순위에 올라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노래를 가리키기도 한다. 게임의 규칙이 이상하게 만들어지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가요계의 경우 굳이 실시간 차트라는 경쟁을 시키지 말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음원 추천으로 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한류가 정주행에서 역주행으로 일탈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의 작은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K팝에서부터 불거진 역주행의 경고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
백은 일단 64로 흑 두 점을 선수로 따내 수를 늘렸다. 이 백 돌은 나중에 흑이 A로 단수할 경우 최대 6수다(흑이 패를 하면 백의 수는 더 줄어든다). 중앙에서 나온 흑이 6수가 넘으면 수상전에서 흑 승이 된다. 백은 어떻게든 6수 이내로 줄여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백 66. 참고 1도 백 5로 두는 것은 흑 16까지 간단하게 백이 안 된다. 하지만 흑 67로 치받는 것이 좋은 수. 백의 봉쇄 작전을 사실상 무산시키고 있다. 백은 72로 두지 않을 수 없는데, 흑은 73부터 말끔하게 백 2점을 잡아버렸다. 물론 참고 2도로 둬도 된다. 이젠 정말 백이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말이 53으로 빠져나오자 드디어 백 대마가 갇혔다. 백은 이런 사태만은 막고자 했으나 바둑의 흐름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백 54로 흑 두 점을 따내도 백이 살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백 54, 56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텨본다. 하지만 흑 57, 59로 빠져나와 백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백 60은 최대한 버틴 수다. 이곳 전투 장면만 놓고 보면 참고도 백 1로 막는 수가 좋다. 흑 2로 이을 때 백 3부터 9까지 사석작전을 펼치면 하변을 통째로 품에 안을 수 있다. 더구나 선수를 잡아 우하까지 정비하면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참고도처럼 진행하면 백이 흑을 거의 따라잡게 되는데 문제는 변화의 여지가 없어져 이대로 진다는 것이다. 백 62로 흑 대마를 봉쇄해 더 큰 반전을 노리는 고 지니어스. 하지만 한돌도 흑 63으로 백 대마를 가둬버렸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는 마지막 승부수. 백은 오직 이 한 수에 모든 기대를 걸어야 할 정도로 절박하다. 하지만 흑에겐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민이다. 흑은 41로 일단 패를 따내며 백의 팻감을 소진시키려고 한다. 흑 45부터는 일종의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 이 외길 수순은 중앙에서의 진행을 가장 단순화한 것이다. 흑 51로 따내자 백은 변변한 팻감도 없다. 참고도를 보자. 그나마 백에게 남은 팻감은 백 1로 끊는 수. 하지만 흑은 응수하지 않고 2로 중앙을 보강해 사실상 패를 해소한다. 이어 흑 4로 두면 중앙 백 대마도 걸려 있는 만큼 우변에서 흑이 타개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백 52는 처절한 버팀. 어떻게든 상황을 돌이켜보려는 백의 움직임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문제는 백이 양단수 된 흑 두 점을 따내도 두 집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승부의 추는 이미 많이 기울었다. 44=◎, 51=41.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가 단수로 몰렸을 때 흑 한 점을 따내지 않고 ○로 둔 것은 기발한 응수가 맞다. 백이 무기력하게 잡히는 것을 피해 흑 25까지 패를 냈으니 말이다. 흑 33은 한가해 보이는 팻감. 하지만 백이 얼씨구나 하고 참고 1도 1로 패를 해소하면 흑 10까지 오른쪽 백 대마가 위기에 빠진다. 백은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패를 버티지만 흑은 느긋하다. 급기야 흑 39로 패를 양보하고 상변 백 8점을 잡는 것으로 승부를 마무리하려 한다. 게다가 백이 참고 2도 1에 둬 패를 해소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흑 6까지 백이 살길이 막막하다. 그래서 백은 40으로 한 점을 움직이며 최후의 항전에 나섰다. 26, 32, 38=◎. 29. 35=23.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로 귀의 백은 잡혔다. 참고 1도 백 1이 맥점 같지만 흑 4의 치중으로 귀의 백은 살아날 길이 없다. 백 16은 승부수. 지금 좌상 귀가 죽었기 때문에 이 돌마저 쉽게 죽으면 바둑은 그대로 끝난다. 그러나 주변 흑이 두터워 앞길이 매우 어둡다. 백 18로 모양을 잡을 때 흑 19, 21이 멋진 맥점. 이 수로 백은 옴짝달싹하기 어렵다. 참고 2도를 보자. 모양상으로는 백 1로 따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흑 2를 선수하고 흑 4를 두면 백의 수가 확 줄어든다. 흑 18까지 수상전에서 흑 승이다(15=●). 백이 돌을 던질 것이라고 본 순간 백 22가 놓였다. 기발한 수 같긴 한데 도대체 어쩌자는 것일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8은 미묘한 응수타진. 흑이 덥석 A로 백을 잡으면 핵은 9의 곳을 선수해 좌상 귀를 선수로 살릴 수 있다. 귀가 선수로 살면 백으로선 큰 짐을 하나 더는 셈이다. 흑 9가 올바른 응수다. 백 10으로 흑 두 점을 단수한 것에는 백의 고민이 담겨 있다. 정상적이라면 참고도 백 1로 양단수해서 중앙 백돌을 살리는 게 맞다. 하지만 흑 4로 백 7점을 잡고 나면 이후 백의 행마가 어려워진다. 백 5로 흑 2점을 압박해도 흑 6, 8로 탈출하면 ‘가’와 ‘나’가 맞보기여서 백이 곤란한 지경에 빠진다. 따라서 백 10, 12는 더욱 전선을 넓히자는 뜻이 담겨 있다. 흑 13은 중앙 백돌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수. 조금 느슨하게 뒀다간 백의 역습이 들이닥친다. 백은 중앙을 더 이상 두지 않고 14로 손을 돌렸다. 응수가 궁해 우선 이곳부터 챙겨 놓자는 뜻인데 흑은 용서 없이 15로 좌상 귀 백마저 손에 넣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에 대해 백은 참고도 1과 같이 좌상 귀를 살리는 것이 정수다. 다만 흑 2로 뻗어 상변에서 흘러나온 백 대마를 공격할 때 어렵다. 백 9까지 타개할 수는 있겠지만 그 와중에 흑에게 확실한 우세를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백 94부터 반발한 것. 이후 수순은 외길 수순이라고 봐야 한다. 흑 107까지 일사천리로 두어졌다. 그 결과 큰 수상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백은 흑 A로 끊기는 수와 흑 B로 잡히는 수를 동시에 방비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아무리 봐도 이 두 곳을 한 수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백 94 이후의 반발은 대책 없는 폭주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백이 그냥 좌상귀를 살리는 것에 비해 더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좌상 귀가 통째로 무너진 흑으로선 중앙 공격에서 대가를 찾아야 한다. 흑 83으로 흑 두 점을 살리며 공격에 나선 것은 당연한데 백 84, 86으로 진출하니 탈출에 성공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좌상 변화는 흑의 실패일까. 아니다. 중앙 백이 완전히 탈출하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우선 흑 87이 생각하기 힘든 강수. 보통 참고도 흑 1로 잇는 수가 떠오른다. 만약 백이 2로 버티면 흑 7까지 중앙 백을 맹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백은 3의 곳에 둬 대마를 탈출시켜야 하는데 흑은 2의 곳에 끊어 백 다섯 점을 잡는 것으로 충분하다. 백 88은 효과적으로 약점을 보강하는 수이고 흑은 89로 백 5점을 잡으며 이득을 취했다. 백 90은 공격만 당하고 살 수 없다는 반격. 흑 93으로 두 점을 살리는 것은 선수다. 이제 백은 A에 둬 좌상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백은 쉽게 살리는 길을 버려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 때 바로 막지 못하고 72로 늘 수밖에 없는 것이 백에겐 안타까울 따름이다. 흑은 신바람 행마를 한다. 흑 75를 선수하고 77로 백의 머리를 두드려 좌상 백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 좌상 백은 일견 단단해 보이지만 A의 약점 등이 있어 보기보단 허약하다. 백도 78로 버틴다. 대마 수습을 위한 최선의 수. 흑도 여기서 쉽게 처리하려고 하면 안 된다. 참고도 흑 1로 받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백 8까지 알뜰하게 선수하고 10으로 두면 쉽게 살아 버린다. 한돌은 여기서 결단을 내린다. 좌상 귀가 뚫리는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백 대마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선 쉽게 떠올리기 힘든 구상이다. 좌상 귀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칫 도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돌은 79로 그 아픔을 감수한다. 백은 80, 82로 귀에서 근거를 확보했는데, 흑은 그 대가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로 힘차게 뻗은 수가 상변 백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백 62로 머리를 내밀 수밖에 없을 때 흑 63으로 붙인 수가 강수. 한돌이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다. 백 66이 유일한 타개의 한 수. 참고 1도 백 1로 평범하게 젖히면 흑 2, 4로 상변 왼쪽 말을 압박해 흑이 주도권을 완벽하게 쥐게 된다. 흑은 67로 공격의 완급을 조절한다. 궁지에 몰린 백이 강하게 반발할 때 세게 붙다가 외려 상처를 입을 수 있어 한 템포 여유를 주는 것이다. 백 68로 참고 2도 1로 이으면 흑 2로 뻗은 뒤 6까지 공격의 날을 더 세우게 된다. 그래서 백 68을 뒀지만 흑 71로 백 대마가 둘로 갈라졌다. A로 막아 싸울 수가 없다는 게 백의 아픔이다. 61=58.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47부터 51까지 2선으로 넘어간 것은 굴욕적인 행마. 그저 잔뜩 움츠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흑은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흑의 굴욕적(?) 행마 덕에 백 52로 보강할 수 있어 얼핏 보기에 백이 상변의 양쪽 말을 무난히 수습한 것처럼 보인다. 백 52로는 참고 1도 1에 둬 보강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흑 4의 씌움을 당해 답답하긴 한데 백 5, 7로 근근이 수습할 수는 있다. 이후 진행을 보면 이 편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흑은 55로 젖혀 우선 상변 오른쪽의 백 말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참고 2도 흑 1은 너무 소극적인 수. 백 56으로 끊겨도 흑 57로 뻗어 충분히 싸울 수 있다. 흑의 큰그림은 상변 오른쪽 말을 몰면서 왼쪽 말까지 엮으려는 것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는 육중한 탱크 같다. 웬만한 장애물은 가볍게 밟고 넘어갈 듯하다. 흑은 35로 탱크를 슬쩍 피해 간다. 백 38의 깊숙한 침입도 34라는 탱크가 멀리서 엄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백 A로 한 점 끊어 잡는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흑 39는 탱크의 엄호사격을 의식해 참은 수. 흑 39로는 참고 1도처럼 둘 수도 있다. 좌상을 지킨 대신 우상 흑을 내주게 되는데 한돌은 좋지 않다고 본 듯하다. 이젠 백에게 A를 빼앗기면 안 되기 때문에 흑 41은 당연한 수. 이때 백 42, 44가 쇠심줄처럼 끈질기게 저항한다. 타개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외려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이다. 흑은 참고 2도처럼 시원하게 공격하고 싶긴 한데….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16, 18은 한가한 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곳을 손 빼면 흑에게 16의 곳을 선수당하는 것이 아프다. 백 16의 온화한 방법이 싫다면 참고 1도 백 1, 3으로 나와 끊는 적극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흑 19의 어깨 짚는 수는 좌변과 같은 모양에서 모든 인공지능(AI)들이 항상 추천하는 수다. 백이 손 빼고 22로 두는 것도 마찬가지. 흑 23에 응수하지 않고 백 24로 끊어 간 것은 의외의 한 수. 참고 2도 백 1로 젖히는 것도 여러 선택지 중 하나다. 하지만 고 지니어스는 상변 흑 세력이 극단적으로 커지는 것을 좋지 않다고 본 듯하다. 백 32의 응수타진에 흑 33으로 엇박자를 낸다. 흑백이 서로 제 갈 길을 가고자 한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지난해 8월 20∼25일 중국 산둥성 르자오(日照)시에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끼리 대결을 펼치기 위해 모였다.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는 중국의 줴이(絶藝)와 골락시, 일본의 AQZ, 벨기에의 릴라제로 등 14팀이 자웅을 겨뤘다. 한국에선 NHN이 개발한 한돌과 국내 인공지능 바둑의 선구자 역할을 한 돌바람이 참가했다. 한돌은 첫 출전이지만 지난해 초 박정환 신진서 9단 등 국내 정상급 프로기사 5명에게 맞바둑으로 완승했기 때문에 은근한 기대를 받았다. 1차 목표는 4강 진출. 한돌이 예선 첫 판에서 만난 상대는 중국의 ‘고 지니어스’. 줴이나 골락시보단 한 수 아래로 평가받지만 얕볼 수 없는 상대다. 흑 5까지는 요즘 유행하는 포석. 흑 13의 걸침에 참고도 백 1로 두는 수도 유력하다. 흑 2의 양걸침을 당해도 백 9까지 충분히 싸울 수 있다. 한돌은 흑 15로 씌워 과감한 세력 바둑을 들고 나왔다. 해설=김승준 9단·정리=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