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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은 번역본만 200권이 넘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널리 알려진 이 독백은 동일한 문장으로 번역된 적이 거의 없는 번역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번역가들 사이에 경쟁이 붙으면서 원문의 구조나 뜻과 거리가 먼 번역이 나오기도 했다. 영문학자로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비롯해 30종이 넘는 명작을 번역한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75)는 최근 펴낸 ‘번역가의 길’(연암서가)에서 “(원문과 멀어진) 온갖 번역이 난무하는 건 기존 번역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번역하려는 의욕이 빚어낸 오류”라고 지적했다.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읽기 쉽게 번역하려 할수록 원문과는 멀어진다”며 “번역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독창성이 아니라 성실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낯설면 낯선 대로 외국 문학을 그대로 전할 필요가 있다”며 “독자들에게 이국의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 역시 번역가의 책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남녀가 평등한 번역을 위해서는 과감해지기도 한다. ‘여교사’처럼 특정 직업에서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은 원문을 훼손하더라도 그냥 ‘교사’로 번역한다. 이미 직업을 나타낼 때는 인물이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라는 표현에도 “어원상 여성을 집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편견이 담겨 있다”고 보고 번역할 때 ‘부인’이라는 단어를 쓴다. 김 교수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이 보이지 않는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초석이 될 수 있다”며 “번역가는 그럴 책무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번역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10년에 한 번씩은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 그는 2008년 번역해 출간한 ‘앵무새 죽이기’를 2015년 다시 번역해 내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언어도 변할뿐더러 독자의 감수성도 변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까지 옮길 줄 아는 번역가가 좋은 번역가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은 일제강점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번역본만 200여 권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널리 알려진 이 독백은 현재까지 동일한 문장으로 번역된 적 없는 번역계의 난제였다. 번역 경쟁이 붙으면서 원문의 문법 구조나 뜻과 멀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노인과 바다’(민음사), ‘위대한 개츠비’(민음사), ‘앵무새 죽이기’(열린책들) 등 30권이 넘는 명저를 번역한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75·사진)는 최근 펴낸 ‘번역가의 길’(연암서가)에서 “온갖 번역이 난무하는 건 기존 번역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번역하려는 의욕이 빚어낸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읽기 쉽게 하거나 다른 번역본과 다르게 번역하려 할수록 원문과 멀어진다. 번역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독창성이 아니라 성실성”이라고 강조했다.“저도 한때는 독창성이나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낯설면 낯선 그대로, 외국 문학을 그대로 전달하는 작업도 필요다는 걸요. 독자들에게 이국의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 역시 번역가의 책무이니까요.” 다만 그는 성이 평등한 번역을 위해 과감해지기도 한다. 김 명예교수는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단어가 사실은 가부장적인 사회를 지탱해왔다”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며 ‘여교사’처럼 특정 직업에서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은 원문을 훼손하더라도 그냥 ‘교사’로 번역한다. “이제 직업을 나타낼 때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하는 ‘아내’라는 표현에는 “어원 상 여성을 집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성 편견이 담겨 있다”고 보고 대신 ‘부인’이라는 단어를 쓴다.“무심결에 써온 단어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좋은 번역가라면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왔던 단어의 어원까지 찾아보고, 그 단어에 담긴 가부장주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번역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릴 책무가 있으니까요.” 그는 “번역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은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그는 2008년 완역해 출간한 ‘앵무새 죽이기’를 2015년 다시 번역해 출간했다. 최근까지도 이전에 번역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다시 손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시대에 따라 언어도 변할뿐더러 독자의 감수성도 변한다”며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까지 옮길 줄 아는 번역가가 좋은 번역가”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가족 6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신고자는 아이들의 친부. “전 부인이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집으로 출동한 경찰이 맞닥뜨린 현장은 참혹했다. 바닥에는 어린아이 넷과 어머니, 동거 남성이 온몸에 선홍색 시반을 띤 채 쓰러져 있었다. 친모가 이별을 고하자 동거하던 남성이 계획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친부의 진술로 사건은 타살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였다. 일가족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부검 소견이 발표되자 이웃들 사이에서는 동거하던 남성이 고의로 가스를 누출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독일 법의학자로 “죽은 자의 몸과 주변에는 진실을 밝힐 ‘키보드’가 숨어 있다”고 믿는 저자는 떠도는 소문과 침묵의 현장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이들 가족이 숨지기 몇 주 전 입주한 이 주택은 보일러 계량기가 6년 동안 납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전 세입자가 관리비를 체납하자 집주인이 보일러에 땜질을 해버린 것. 가스 배기관은 누더기 천과 신문지로 꽉 막혀 있었다. 한겨울 배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보려 이전 세입자가 한 일이었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뒤 부랴부랴 보일러 땜납을 제거했지만 배기관은 청소하지 않았다. 집주인의 관리 부실이 사인이었던 것이다. 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해마다 독일에서 2000명가량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는 통계를 덧붙인다. ‘만일 집집마다 일산화탄소 탐지기가 설치돼 있다면 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의 물음은 난방 관리 부실로 인한 소리 없는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밝힌다. 저자가 담아낸 다양한 사건 현장에서 죽은 자는 온몸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책에는 토막살인, 강간, 의료 조작 등 참혹한 사건이 여럿 나오지만 진실을 좇는 과정은 묘한 위안을 준다. 저자는 “사망자가 평소에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해도, 그가 피해를 당했는지 아닌지 검증하는 마지막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김준희)이 ‘올해의 그림책 대상’을 신설한다. 진흥원은 “올해 하반기 권위 있는 그림책 부문 상을 제정해 한국을 대표하는 시상식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장관상과 진흥원상을 수여하며 상금은 총 1억 원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현존하는 유일한 한국 전통 칸가마(내부가 여러 개로 나뉜 봉우리 모양의 가마)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북도 민속문화재인 ‘문경 관음리 망댕이 가마 및 부속시설’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1863년 처음 지어진 이 가마는 주변에 디딜방아와 모래흙을 정제하기 위한 구덩이인 땅두멍, 도공이 생활했던 부속시설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조선시대 후기 요업사의 중요 유적으로 꼽힌다. 특히 가마 축조자부터 후손까지 8대에 걸쳐 문경 지역에서 사기(沙器)를 만들며 전통 도예 가문의 명맥을 이어와 더욱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노래는 늘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어 이전에 소리가 먼저 인간의 마음에 닿았다. 세상을 떠난 망자를 위해 구슬피 우는 곡소리, 첫사랑에게 바치는 풀피리 소리, 전의를 다지는 전쟁터에서 전사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 원초적인 이들 멜로디는 초기 인류에게서 ‘유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렸다. 신경과학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저자는 “초기 인류 사이에서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낸 것은 조화로운 노래였고, 그 유대 덕분에 거대한 문명과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세계 곳곳 수많은 사람이 만든 노래는 인간에게 우정,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이라는 6가지 세상을 빚어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선조들이 일하던 낮 시간과 잠 못 이루던 밤 시간을 채워주었던 문명의 사운드트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뿐 아니라 노래가 인간 뇌에 미치는 신경과학적 변화를 풍부하게 담았다. 저자는 “인간이 지구상 다른 종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새나 돌고래도 그들만의 언어인 정교한 신호체계를 갖췄고,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쓸 줄 안다. 체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개미도 해낸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해내지만 동물들은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관계의 부호화(Encoding)’다.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 처리 방식으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옥타브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노랫말을 짓는다. 음악이 있었기에 문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말을 인용해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릴 때 근력의 사용이 서로 율동적으로 조화되지 않았다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피라미드뿐일까. 세계 모든 문명은 노동요를 갖고 있다. 노래는 동기를 부여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좀 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을 확립하는 데 관여한다. 응원가, 애국가, 교가, 군가는 신경과학적으로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슬플 때 더 슬픈 발라드가 필요한 데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슬픈 음악을 들을 때 흘리는 눈물에는 프로락틴이란 호르몬이 담겨 있다. 프로락틴은 기쁨의 눈물이나 하품할 때 흘러나오는 눈물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직 슬픔의 눈물에서만 나온다. 이 호르몬은 정신적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새 시작을 할 수 있게 돕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슬픈 음악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가상의 슬픔’을 선사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노래가 만들어낸 최고의 마법은 단연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저자의 다채로운 플레이리스트가 담겼다. 그중 그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스콧의 ‘모두 안으로 들여(Bring ′Em All In)’를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로 꼽았다. 노랫말이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다. ‘모두 안으로 들여/어둠에서 온 것들도 들여/그늘에서 온 것도 들여, 그들을 빛 속에 세워.’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함투성이 인류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음악 예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무당이 의사 노릇을 하던 시절이었다. “귀신이 붙어서 아프다”는 미신이 팽배했던 어린 시절, 장티푸스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만약 동네에 전문의가 있었다면 친구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여성 의사로서 국내 최초로 의료법인 길병원을 설립한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의사를 꿈꾸게 된 이유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이 2년간 이 총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과 분단을 모두 겪은 이 총장의 생애가 촘촘하게 담겼다. 여자라는 이유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이 총장은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6·25전쟁 때도 방공호에 들어가 밤낮없이 공부했다. 1964년 미국으로 유학도 떠났다. “미국에 남아 달라”는 미국 퀸스종합병원의 부탁은 물론이고 당시 연애하던 한국인 유학생의 청혼을 모두 뒤로한 채 1968년 고국으로 향했다. 가난한 조국의 환자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1978년 국내 여성 의사 최초로 길병원이라는 의료법인을 설립한 그는 무료 검진을 실시했다. 1980년 인천 길병원에 무료 자궁암 조기 진단센터를 설치했다. 검진 대상도 저소득층 여성뿐 아니라 30세 이상 모든 여성을 아울렀다. 그는 인천에 이어 경기 양평군과 강원 철원군에 길병원을 세운 이유에 대해 “그곳 주민들의 애타는 청원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지역은 병원 운영에 적자가 날까봐 정부도 엄두를 못 내던 곳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여력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니라 마음으로 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늘 사람을 생각했다는 그의 철학 때문일까. “나는 공익 경영이니 윤리 경영이니 하는 전문적인 용어는 모른다. 다만 사랑으로 경영했을 뿐”이라는 답변에서 당당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노래는 늘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어 이전에 소리가 먼저 인간의 마음에 닿았다. 세상을 떠난 망자를 위해 구슬피 우는 곡소리, 첫사랑에게 바치는 풀피리 소리, 전의를 다지는 전쟁터에서 전사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 원초적인 이들 멜로디는 초기 인류에게서 ‘유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렸다. 신경과학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저자가 12일 출간한 ‘노래하는 뇌’(와이즈베리)는 “초기 인류 사이에서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낸 것은 조화로운 노래였고, 그 유대 덕분에 거대한 문명과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세계 곳곳 수많은 사람이 만든 노래는 인간에게 우정,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이라는 6가지 세상을 빚어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선조들이 일하던 낮 시간과 잠 못 이루던 밤 시간을 채워주었던 문명의 사운드트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뿐 아니라 노래가 인간 뇌에 미치는 신경과학적 변화를 풍부하게 담았다.저자는 “인간이 지구상 다른 종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새나 돌고래도 그들만의 언어인 정교한 신호체계를 갖췄고,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쓸 줄 안다. 체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개미도 해낸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해내지만 동물들은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관계의 부호화(Encoding)’다.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처리방식으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옥타브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노랫말을 짓는다.음악이 있었기에 문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말을 인용해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릴 때 근력의 사용이 서로 율동적으로 조화되지 않았다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단 피라미드뿐일까. 세계 모든 문명은 노동요를 갖고 있다. 노래는 동기를 부여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좀 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을 확립하는 데 관여한다. 응원가, 애국가, 교가, 군가는 신경과학적으로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슬플 때 더 슬픈 발라드가 필요한 데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슬픈 음악을 들을 때 흘리는 눈물에는 프로락틴이란 호르몬이 담겨 있다. 프로락틴은 기쁨의 눈물이나 하품할 때 흘러나오는 눈물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직 슬픔의 눈물에서만 나온다. 이 호르몬은 정신적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새 시작을 할 수 있게 돕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슬픈 음악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가상의 슬픔’을 선사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다.무엇보다 저자는 노래가 만들어낸 최고의 마법은 단연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저자의 다채로운 플레이리스트가 담겼다. 그중 그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스콧의 ‘모두 안으로 들여(Bring ‘Em All In)’를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로 꼽았다. 노랫말이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다. ‘모두 안으로 들여/어둠에서 온 것들도 들여/그늘에서 온 것도 들여, 그들을 빛 속에 세워.’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함투성이 인류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음악 예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설 연휴 청와대와 고궁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은 21∼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일대에서 ‘청와대, 설레는 설’ 행사를 연다. 이 기간 매일 오후 1시 반경 춘추관 2층에서 청와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가들의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오후 3시부터는 청와대 정문 등 야외에서 사물놀이를 비롯한 전통예술 공연을 40분 동안 선보인다. 4대 궁궐인 서울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을 포함해 종묘, 조선왕릉 등 22곳은 21∼24일 무료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종묘는 이 기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설 연휴 동안 매일 오전 10시 20분과 오후 2시 20분 광화문 뒤편 동수문장청에서 불행을 막고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세화(歲畵)를 나눠 준다”고 밝혔다. ‘경복궁 수문장 모자를 쓴 호랑이’ 그림과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는 토끼 두 마리가 그려진 ‘쌍토도’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도 21일 낮 12시∼오후 4시 박물관 야외 광장에서 ‘설맞이 한마당’ 행사를 연다. 전통예술 공연과 ‘계묘년 토끼 연하장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윷놀이,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 체험은 가족 단위로 20개 팀을 선착순으로 접수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쥐뿔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에게 쓰는 이 표현은 설화(說話)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람으로 변한 쥐가 남편 행세를 하는 ‘쥐둔갑 설화’에서 쥐의 정체가 탄로 나자 진짜 남편이 아내를 타박한다. “쥐뿔도 몰랐냐”고. 이 말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살아 있다’. 설화가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한다는 증거다. 설화는 대대로 전승하는 장인(匠人)은 없지만 할머니에게서 손주에게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한다. 문화재청이 내년부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하는 설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은 “보이지 않게 우리 공동체를 지탱해 온 설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9∼12월 사단법인 무형문화연구원과 함께 설화의 문화재 지정 가치를 검토하는 기초조사를 했다. 무형문화연구원은 1980∼1992년 전국의 설화를 채록한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총 82권) 등에 실린 이야기 1만여 편을 분석했다. 그리고 △역사성 △학술성 △예술성 △대표성 △사회문화적 가치 △재현 가능성 등 6가지 문화재 지정 기준에서 5가지 이상을 충족한 설화 142편(신화 31편, 전설 48편, 민담 63편)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추천목록’으로 선정했다. 국민이 익히 아는 단군신화와 바보온달, 선녀와 나무꾼, 콩쥐팥쥐 이야기 등이 포함됐다. 지정 예비 추천목록에는 628편을 선정했다. 연구를 맡은 박현숙 춘천교대 아동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설화는 한국 문화를 지탱하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문자가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고대부터 설화가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고 사상을 전파했다고 분석한다. 설화에는 통치 이념이 담기기도 했다. 하늘의 신인 해모수와 강의 신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주몽신화가 대표적이다. 이 이야기에는 하늘을 숭배하던 북방계 유목민족이 강 일대에 정착해 농경공동체로 변모하는 과정이 담겼다. 주몽신화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등 사료로 전해져 역사성도 확인된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세대 간 끊임없이 전수되는 ‘재현 가능성’이라는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설화는 K콘텐츠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기에 이를 가뿐히 충족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조사에서 추천목록에 오른 ‘오세암’은 현대에 더욱 유명해졌다. 겨울철 홀로 남겨진 아이가 관음의 보살핌을 받아 목숨을 구하고 득도한다는 내용으로, 본래 강원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왔다. 정채봉 작가(1946∼2001)가 이 설화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동화를 1980년대 발표해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프랑스에도 번역 출간됐다. 200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오세암’도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도 무속신화를 바탕으로 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 도깨비와 저승사자 삼신할매가 나오는 드라마 ‘도깨비’(2016년),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계룡선녀전’(2018년) 등 설화는 K콘텐츠의 원천이 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기준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야쿠트 민족의 영웅 서사시 ‘올론호’ 등 구전 종목 여러 건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된 바 있다. 박 교수는 “우리 설화 역시 세대에 걸쳐 전승되고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점에서 무형문화유산 기준에 부합한다”고 했다. 연구 자문을 맡은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권선징악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설화는 국경을 넘어 인류를 묶는 힘을 지녔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강남구 장디자인아트에서 나안나(36), 이영욱(32), 임준성(28) 등 국내외 20, 30대 젊은 작가 8인의 그룹전시 ‘Otherworld’가 열리고 있다. 다음 달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나온 직관적인 사유를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나안나 작가는 물고기를 그린 ‘초상화’(2022년·사진)를 선보인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할 정도로 의미 있게 여겨졌던 물고기가 현재는 먹을거리로만 치부되고 있다”며 “이 작품은 존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죽음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시치 작가(34)의 ‘우주: Cosmos’(2022년)는 우주를 품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무료.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빅뱅 멤버 태양(35)과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28)이 협업한 노래 ‘바이브(VIBE)’가 13일 발매 즉시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튠스의 ‘월드와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태양의 소속사 더블랙레이블이 15일 밝혔다. 지민이 피처링한 태양의 새 디지털 싱글 ‘바이브’는 태양이 2017년 발표한 정규 3집 ‘화이트 나이트’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솔로곡이다. 태양이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으며 지민이 피처링과 작곡에 힘을 보탰다.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한 뮤직비디오는 15일 기준 유튜브 조회수 3197만 회를 기록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이수지 작가의 작품에서) 굉장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글 없는 그림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자율성을 갖게 해주는 것 같아 놀라워요.”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 각 페이지마다 지닌 완결성은 제가 늘 반성하는 부분이에요.” 한국 그림책의 대표 작가인 백희나(52), 이수지(49)가 만나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가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주최한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세계 속의 한국 그림책: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하는가’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두 작가가 대담을 한 건 처음이다. 이 작가는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백 작가는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2020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받았다. 백 작가는 “아이들은 책을 차례대로 읽지 않고 확 펼치기도 해, 장면마다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캐릭터 인형과 소품을 직접 만들고 사진으로 촬영해 각 장면을 입체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구현한다. ‘구름빵’(2004년), ‘장수탕 선녀님’(2012년), ‘달 샤베트’(2014년), ‘알사탕’(2017년)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가는 “다양한 요소가 쌓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현실과 거울, 해변과 바다, 실체와 그림자 등 경계를 통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경계 그림책 3부작 ‘거울 속으로’(2003년), ‘파도야 놀자’(2008년), ‘그림자 놀이’(2010년)가 대표적이다. 두 작가는 서로에 대해 “창작 방식은 달라도 동시대 작가여서 좋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마저 완전히 다르다”며 웃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그림의 힘이 밀고 가는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라는 매체에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백 작가는 “많은 인력과 자원, 기술이 필요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한계에 부딪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그림책에 끌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세계의 민담에 관심이 많은 이 작가는 “그림책 작가 15명이 모여 옛이야기를 우리 관점에서 살펴보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바비 같은 인형으로 연속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모험”이라고 했다. 이어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영웅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묘지석(墓誌石·고인의 행적을 기록해 묘에 묻는 돌이나 도자기판)이 우리 박물관에 있어요.”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 이런 e메일이 왔다. 한국 컬렉션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해외 한 박물관의 학예연구사가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존재를 알려온 것. 묘지석은 원래 고인과 함께 무덤에 묻혀 있어야 할 유물이다. 이 연구사는 “묘지석의 반출 경위를 함께 조사해 보고, 불법성이 드러날 경우 한국 반환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비슷한 일은 지난해 2월에도 있었다.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조선 후기 무신 이기하(1646∼1718)의 묘지석 18점을 자진 반환한 것. 이 미술관은 해당 유물의 불법 반출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선뜻 반환을 결정했다. “후손들을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이유였다.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으로서는 조상의 묘지석이 해외에 반출돼 있는 것을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4,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치 시대 약탈 문화재 반환하는 독일 과거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외국 박물관에 연락해 “한국 컬렉션을 조사하고 싶다”고 밝혀도 날 선 반응만 하기 일쑤였다. 재단이 유물 반출의 불법성 여부를 조사해 반환을 요구할까 봐 꺼렸던 것이다.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고 박병선 박사(1923∼2011)가 파리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공개하자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당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장은 “외국 박물관이나 연구기관이 자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연구 조사를 진행하자고 먼저 제안하고 있다”며 “문화재를 약탈했던 각국 소장처가 앞장서 반환을 검토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 나치 시대(1933∼1945년) 유대인 소장자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자성하며 반환에 나선 것. 2000년대 초부터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게서 약탈한 문화재의 출처에 대한 연구를 벌이고 있다. 출처 연구는 해당 문화재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현재까지 소유권 변화 내력과 수집 정보를 모두 추적하는 것을 일컫는다. 재단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탈 여부 등 문화재의 불법 반출 정보까지 ‘분실미술품 데이터베이스’에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게르만국립박물관은 2014∼2018년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이 나치 시대에 입수한 유물 1200여 점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유물 중 약 10%의 출처를 새로 밝혀낸 박물관은 약탈한 것으로 입증된 33점을 원소장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프랑스도 동참했다. 2021년 3월 프랑스 문화부는 파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걸작 ‘나무 아래 핀 장미’(1905년)를 원소장자인 유대인 가문 후손에게 돌려줬다. 1938년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여성 노라 스티아스니가 이 그림을 나치에 강제로 헐값에 팔아야 했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로즐린 바슐로나르캥 프랑스 문화장관은 반환 당시 “이번 결정은 정의에 대한 우리의 결의를 보여준다”고 했다.● 식민지배 자성 속 출처 연구 확산 나치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성은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하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베닌 청동’ 컬렉션을 둘러싼 유럽의 대응이 대표적이다. 이 컬렉션은 1897년 영국군이 현 나이지리아 일대에 있던 베닌왕국을 점령해 왕궁에서 약탈한 유물이다.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은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 기관과 협업해 영국군에 약탈된 뒤 세계로 흩어진 베닌 청동 유물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독일은 2021년 4월 “식민지 과거를 재조명하고 해결해야 할 역사적·도덕적 책임이 있다”며 독일 내 베닌 청동 1130여 점의 소유권을 모두 나이지리아 정부에 넘겼다. 지난해 8월 영국 런던 호니먼박물관도 베닌 청동 컬렉션 72점의 소유권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이양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도 베닌 청동 29점의 소유권을 모두 넘겼다. 교황청도 문화재 반환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교황청은 바티칸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3점을 그리스 정교회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교황청은 “진리의 세계적인 길을 따르려는 교황의 진정한 열망의 구체적인 표시”라고 설명했다. 문화재 반환에 회의적이던 영국 역시 19세기 초 떼어가 런던 영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부속물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 반환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세계 12개국 300여 개 기관이 약탈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불법 반출돼 경매 시장에 나온 유물을 대량 소장한 미국 박물관들이 최근 출처 연구에 적극 나서면서 약탈 문화재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해외 소재 문화재 출처 연구 확대돼야” 문화재 반환은 국외 소재 문화재가 22만9655점(15일 기준)에 달하는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움직임이다. 한국은 조선 말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 6·25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15일 현재 문화재 반출이 확인된 국가와 문화재 수는 일본 9만5622점, 미국 6만5241점, 독일 1만4286점, 영국 1만2804점이다. 이 밖에도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모두 27개국에 달한다. 우리 정부도 세계 각국의 기관과 협업해 한국 문화재의 반출 경로를 분석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올해부터 미국 다트머스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대학(SOAS)과 협업해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 등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출처 연구를 벌인다. 독일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 미국 다음으로 한국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독일은 박물관들이 협업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재단 관계자는 “향후 5년간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기 국외로 넘어간 문화재를 대상으로 연구를 벌이고, 추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에는 꾸준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의 출처 연구 지원에 2008년부터 연간 150억 원가량을 투입했다. 베닌 청동 컬렉션 반환 역시 소장 기관들과 나이지리아 정부 등으로 2010년 결성된 ‘베닌 대화 그룹’이 10년 넘게 연구와 논의를 한 끝에 최근에야 결실을 맺었다.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국 문화재를 소장한 외국 기관과 지속적으로 함께 연구하고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내다보며 문화재 환수를 위한 장기전을 벌이려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소연 문화부 기자 always99@donga.com}
1416년 여름 독일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서가. 먼지 쌓인 장서가 가득한 이곳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필경사 포조 브라촐리니(1380∼1459)가 ‘보물’을 찾고 있었다. 혹시 중세 암흑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춘 고대 그리스·로마의 명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운명처럼 ‘웅변가교육(Institutio Oratoria)’을 만났다. 고대 로마 수사학자 쿠인틸리아누스가 연설 이론을 12권으로 집대성한 책으로, 500년간 자취를 감췄던 보물이었다. 그는 32일 만에 전권을 필사해 피렌체로 책을 들여왔다. 잠들었던 고대의 지혜는 이렇게 깨어났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키아벨리…. 15세기 르네상스라고 하면 이 같은 이름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 이전에 ‘책’이 있었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15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필경사와 서적상 등 ‘책 파수꾼’의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 부흥사를 추적한다. 그중 중요한 인물은 피렌체의 서적상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1422∼1498). 그는 모든 책을 손수 필사해 발간하던 시절 1000권이 넘는 고대 명저를 판매해 ‘세계 서적상의 왕’으로 불렸다. 11세 때부터 서점 조수로 일을 배운 그는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가의 대리인으로 유럽 수도원에서 막대한 양의 필사본을 사들였다. 시뇨리아 광장 인근에 있던 그의 서점은 지식인들이 매일 토론을 벌이는 만남의 장이었다. 저자는 “책을 모으고, 지키고, 퍼뜨린 이들이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강조한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메디치 가문이 정치적 혼란을 겪을 때에도 굳건했던 다 비스티치의 서점 자리에는 현재 피자 가게가 들어서 있다.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 255개가 넘는 인쇄소가 생겨나며 고서를 필사하는 서점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15세기 ‘책 사냥꾼’이 다시 찾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은 무지를 밝히는 등대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혹시 세상 어딘가에 고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줄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에서 일하는 김민석 씨(30)는 서울시가 보낸 장례의뢰 공문을 받을 때면 서류에는 없는 고인의 인연을 늘 찾는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이 담지 못하는 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20년 8월 서울 마포구 사무실로 도착한 장례의뢰 공문에도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었다. 고인이 살았던 성동구 여관 주소가 유일했다. 한 줄뿐이었지만 고인을 알 만한 누군가에게 부고를 전해야 하는 김 씨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정보였다. 혹시 여관 주인이 고인과 생전 친분을 쌓지 않았을까. ‘고인의 죽음을 애도해줄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그는 그날 퇴근 뒤 여관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여관 주인을 만났어요. 고인은 ‘무연고’가 아니었던 겁니다.” 최근 신간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지식의숲)를 펴낸 김 씨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장례를 치러줄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로 부르며 애도 의식을 하지 않고 시신을 처리해왔다”며 “공영장례를 통해 고인을 존엄한 인간으로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다”고 했다. 공영장례는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등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는 망자의 마지막 길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등이 조례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김 씨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조례가 유명무실한 지자체도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고인의 영정사진을 제작하는 것도 김 씨의 일이다. 공영장례를 치르는 고인 중에는 생전 영정사진을 찍어두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단체사진 속 고인의 얼굴을 확대해 쓸 때가 많다고 한다. 조문객이 장례식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 씨는 아주 작은 사진이라도 찾아낸 뒤 드로잉으로 얼굴 아래 양복이나 한복을 덧그린다. 고인에게 존엄한 모습을 선물하는 것이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에 놓인 영정사진을 보고 생전 일면식이 없는 시민들이 때로 찾아와 꽃을 놓기도 한다. “왜 그분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고인을 위해 헌화를 할까요. 우리 모두가 마지막 순간 아무렇게나 처리되는 사물이 아닌, 누군가에게 애도받아야 하는 존엄한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믿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꿉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 중기 나전함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FM)이 지난해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시대 나전함을 기증하는 기념식이 11일 열렸다. YFM은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젊은 경영인 10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 기증된 나전함은 세로 31cm, 가로 46cm로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만들어진 수작으로 평가된다. 상자 전체에 나전 연꽃 장식이 수놓아져 있고, 넝쿨 줄기와 잎사귀가 꽃 주변을 감싸 화려함을 더했다. 윤예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나전함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점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나전 칠 연화넝쿨무늬 상자’ 등 4점뿐이어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신성수 국립중앙박물관회 컬렉션 위원장은 “백제 후예로 알려진 일본 오우치(大內) 가문에서 오래 소유하다가 1991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것을 일본인 소장가가 30년 넘게 갖고 있었다”며 “지난해 일본인 소장가가 세상을 떠나며 미국 소더비 경매에 나온 나전함을 YFM이 구입해 고국으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날 조현상 YFM 위원장은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하셨다”며 “앞으로도 우리 문화재를 되찾고 박물관을 알려 우리 나라 문화의 힘을 높이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YFM은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구입해 기증하는 사업에 힘쓰고 있다. 2014년 고려나전경함을 일본에서 들여왔고, 2018년 일본에 유출됐던 고려 시대 불감을 구입해 기증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혹시 이 세상 어딘가에 외로운 고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줄 단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까.’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나눔과나눔’에서 근무하는 김민석 씨(30·사진)는 시가 보낸 장례의뢰 공문을 받을 때면 늘 서류에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고인의 인연을 떠올린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 혼인관계증명서가 담지 못하는 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20년 8월 도착한 장례의뢰 공문 속에서도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었다. 사체검안서에는 ‘기타 및 불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인을 알 수 없다는 뜻. 공문에는 고인이 살았던 서울 성동구의 한 여관 주소가 나와 있었다. 한 줄뿐이었지만 고인을 알 만한 누군가에게 부고를 전해야 하는 그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정보였다. 혹시 여관 주인이 고인과 생전 연을 맺지 않았을까. 그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그날 퇴근 뒤 여관을 찾아갔다. “고인에 대해 아는 건 주소뿐이지만 찾아갔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고인이 애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고 기도해주는 여관 주인을 만났어요. 그는 ‘무연고’가 아니었던 겁니다.” 최근 신간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지식의숲)을 펴낸 김 씨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죽음 이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라고 부르며 애도의 의식을 제공하지 않고 시신을 처리해왔다”며 “공영장례 제도는 장례를 치르며 고인을 존엄한 인간으로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영장례’는 가족 등 연고가 없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대신 장례를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를 두고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씨는 “조례는 있지만 인력과 지원 예산이 부족해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는 지자체도 많다”며 “특히 고인의 부고를 온라인 뉴스 등을 통해 알려 고인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서울시뿐”이라고 했다. “공영장례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장례 공간뿐 아니라 고인이 누군가에게 애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까지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김 씨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얼굴을 마주할 지인들을 위해 영정사진도 만든다. 김 씨는 “대부분 영정을 미리 찍어두지 않기 때문에 단체 사진 속에 아주 작게 나온 고인의 얼굴 일부분을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런 사진을 찾게 되면 사진 위에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양복이나 한복을 덧그린다”고 했다. “혹여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온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합니다. 화장장에 고인의 위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외로워 보이니까요. 어떻게든 얼굴이 나온 작은 사진이라도 찾아서 가장 멋진 옷을 입혀 영정을 만들어드립니다.” 때로 고인의 영정을 보고 생전 일면식이 전혀 없는 시민들이 찾아와 헌화를 하기도 한다고. 그는 “왜 이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누군가를 위해 헌화를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그건 아마도 ‘믿음’ 때문일 것 같다”고 했다.“우리가 마지막 순간 아무렇게나 처리되고 버려지는 사물이 아니라,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애도를 받을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믿음이요. 저는 그런 믿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꿉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설, 추석 등 명절과 세배, 성묘 등 ‘명절 세시풍속’이 올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설,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등 명절과 세배, 성묘 등 명절 세시풍속의 가치에 대해 올해 7월까지 연구 용역을 마친 뒤 9월 이들을 함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명절 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관련 자문회의’를 열고 명절과 명절에 행하는 세시풍속을 아울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명절은 역사성만큼이나 오늘날까지 공동체에서 전승돼온 사회·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자문회의에 참석한 배영동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안동대 문화유산학과 교수)은 “명절 세시풍속은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며 개인화되는 오늘날에도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지탱해주고 있는 전통”이라며 “오늘날은 그 의미가 옅어졌다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이 다시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추석은 앞선 2021년 12월 연구용역을 통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 바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추석을 뜻하는 ‘가위’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가배(嘉俳)’가 기록된 사실에 미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추석 명절을 지내는 풍습이 전해 내려온 것으로 파악된다. 명절의 무형문화재 지정 추진은 속칭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기술·예능 보유자뿐 아니라 국민이 함께 전승해온 지식이나 의식주 등 공동체의 생활 관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최근 무형문화재 체계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화재청은 2015년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 전승되는 ‘공동체 종목’을 지정할 수 있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했다. 이어 최근까지 아리랑, 김치 담그기, 온돌문화, 장 담그기, 한복생활, 윷놀이 등 16개 종목을 지정했다. 공동체 전수 종목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규정하는 유네스코의 정책에 발맞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한민족의 전통 문화를 자국 고유문화라고 주장하는 중국 일각의 왜곡에 맞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비물질문화유산’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이 지정한 조선족 관련 무형유산은 널뛰기, 아리랑, 김치 담그기 등 국가 지정 무형유산 17개 종목과 동북삼성이 지정한 성급 무형유산 81개 종목 등 모두 98개 종목에 이른다. 한민족의 문화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지만 최근 한복 논란에서 보이듯 중국의 고유문화로 왜곡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중국이 조선족 관련 문화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자국 고유문화로 세계에 알리고 있는데, 그때그때 맞대응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공동체 문화유산을 검토해 문화재 지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은 명절 세시풍속의 문화재 지정 추진에 관해 “우리의 공동체 무형문화유산을 선제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며 “내년에는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와 구전설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전통시대 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설치된 군사 통신수단인 ‘봉수(烽燧)’ 유적 14곳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부산 응봉에서 서울 남산까지 이어지는 ‘제2로 직봉(直烽)’ 노선에 있는 44개의 봉수 유적 가운데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고 보존 상태 등이 양호한 14곳을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10일 밝혔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통신체계인 봉수는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외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는데 쓰였다. 직봉은 조선시대 전국 봉수망을 연결하는 중요 봉화대였다. 1908년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선 후기 5개의 직봉을 포함해 총 622개의 봉수가 운영됐다. ‘제2로 직봉’ 노선과 전남 여수 돌산도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제5로 직봉’은 남한에, 나머지 3개 직봉 노선은 북한에 있다. 문화재청은 “봉수는 최단 시간 외적의 침입을 알릴 수 있는 지리 정보를 나타내고 있어 학술적,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적 지정에 문화재청은 문화적·사회적 연결 고리를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접하지 않은 유적을 묶는 ‘연속유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14개 봉수 유적은 소재지가 각기 다르지만 전체를 ‘제2로 직봉’으로 묶어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