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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동부 더럼의 폐광촌 마을. 한때는 광부들과 그 가족들로 생기가 넘쳤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낡고, 닳고, 삐걱거린다. TJ(데이브 터너)의 오래된 펍 ‘올드 오크’는 빛을 잃은 폐광촌 모습 그 자체다. 떨어져 덜렁거리는 간판 글씨는 대걸레 자루로 매번 올려 끼워야 하고,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치르며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던 가게 안 응접실은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근근이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요했던 폐광촌이 들끓는다. 시리아 난민 야라(에블라 마리)의 가족들이 정부 도움을 받아 마을에 정착하러 온 것. 이들은 난민이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집과 음식을 제공받는다. 아이들은 “왜 저 사람들만 줘요?”라고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어른들은 “평생을 산 마을을 저 사람들이 빼앗아 갈 것”이라며 분노한다. 불평등과 노동계급의 현실, 사회문제에 평생 천착한 영국 노감독 켄 로치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가 17일 개봉한다. 영화는 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올해 88세인 로치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 ‘미안해요, 리키’(2019년)에 이은 로치 감독의 ‘영국 북동부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로치 감독은 제철소, 탄광 등이 쇠락하며 함께 무너진 영국 북동부 마을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만들어 왔다. 영화는 로치 감독의 작품답게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을 주민들과 시리아 난민들은 약자끼리 서로 원망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함께 밥을 지어 나눠 먹으며 연대를 향해 나아간다. 시리아 소녀 야라와 TJ를 통해 다른 인종, 다른 세대, 다른 세계 사이의 우정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단순한 로치 감독의 화법을 선호하지 않는 관객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칸영화제에 15번 초청되고,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들어 올린 거장의 마지막 작품을 감상한다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을 것 같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940년부터 지금까지 영국의 총리는 총 17명. 그중 13명이 옥스퍼드대 출신이고, 2010년 이후 배출된 총리는 모두 이 학교를 나왔다. 옥스퍼드대는 어떻게 영국 정계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보리스 존슨, 데이비드 캐머런 등 전직 영국 총리들과 비슷한 시기에 옥스퍼드대를 다녔다. 하지만 상류층에 사립학교 출신인 이들과는 달리 저자는 런던의 공립학교를 나왔다. 옥스퍼드대의 ‘비주류’였던 것. 저자는 1980년대에 그가 경험한 옥스퍼드대가 어떤 집단이었으며 ‘옥스퍼드식’ 교육을 받은 정치인들이 왜 영국인들에게 매력적인지, 또 그 카르텔이 어떤 고질적인 문제점을 갖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옥스퍼드대의 엘리트 집단이 다른 나라의 엘리트들과 구분되는 특이점은 10대 때부터 형성된 인맥이다. 이튼 같은 사립 기숙학교 학생들이 10대 때부터 인맥을 쌓아 옥스퍼드대에 입학한다. 귀족 가문의 상류층 부모를 둔 이들은 중산층 출신의 동기생들을 이방인 취급한다. 이들에게 ‘노력파’나 ‘공부벌레’와 같은 수식어는 모욕으로 여겨진다. 대신 ‘노력하지 않는 우월성’을 추구한다. 이들은 대학에서 학과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각종 정치 토론 클럽 등에 가입해 정치 감각을 익히며 장차 의회 진출을 준비한다. ‘넓고 얕은’ 지식으로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글과 웅변 실력을 갈고닦는다. 캐머런 전 총리에 대해 당시 관저 직원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주제에 대한 브리핑을 몇 분 안에 소화한 다음 국제 정상회의에서 이를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옥스퍼드대 졸업생들은 영국 근대사에서 지배계급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라고 말한다. 옥스퍼드대 출신 정치인들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건 브렉시트 사태 때였다. 영국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브렉시트에 대해 이들이 구체적인 통계나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화려한 언변을 내세워 찬반 논란을 벌인 것. 캐머런 등 유력 가문 출신의 ‘찐 엘리트’와, 존슨처럼 옥스퍼드대를 나왔지만 평생 최상류층으로 인정받기 위해 분투한 ‘아류 엘리트’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기발한 한국형 ‘어벤져스’일까, ‘너무 나간’ 공상과학(SF) 영화일까. ‘타짜’(2006년) ‘도둑들’(2012년) ‘암살’(2015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성공했던 ‘쌍천만 감독’ 최동훈이 영화 ‘외계+인’ 2부로 돌아왔다. ‘외계+인’은 한국 영화 최초로 한 이야기를 1, 2부로 나눠 개봉하는 파격적인 방식을 택했다. 총제작비 700억 원이 들어갔고, 촬영 기간이 한국 영화사상 최장인 387일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2022년 7월 개봉한 1부의 관객이 150만여 명에 그치며 흥행엔 참패했다. 3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외계+인’ 2부 기자간담회에서 최 감독은 “1부가 끝난 뒤 많이 힘들었다. 내가 편집에서 뭘 잘못했나 꿈에서 계속 아른거렸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흥행 실패) 됐을까 많이 물어보고 고민했지만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2부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며 힘든 시기를 겪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간담회 마지막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울컥하기도 했다. ‘외계+인’은 1380∼90년대 고려 말과 2022년을 오가는 타임 슬립(시간여행)물이다. 독특한 설정은 외계인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의 죄수를 지구에 있는 인간의 뇌 속에 감금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탈주하려는 외계인을 잡으러 다니는 가드(김우빈)와, 시간이동을 해 고려시대에 갇힌 이안(김태리), 고려시대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 등이 힘을 합쳐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여태까지 한국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장르다. 고려 시대 차림의 도사들과 외계인이 한 장면에 나오는 이질감 등이 관객들에게 강한 호불호가 갈렸을 것으로 보인다. 1부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1, 2부를 동시에 촬영한 탓에 시나리오를 크게 변경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최 감독은 “디테일을 많이 바꾸려고 노력했다. 배우들에게 대사를 녹음해서 보내 달라고 부탁해 편집할 때 넣어보면서 작업했다”고 했다. 이안의 친구 민선의 이모이자 관세청 수사관인 민개인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는 등장 장면을 재촬영했다. 최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1부는 판타지 SF 장르적 성향이 강한 영화인 반면에 2부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이 잘 드러나게 작업했다”고 했다. 2부는 1부보다 확실히 더 속도가 빠르고 완성도가 있다. 특히 두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의 코믹 케미스트리가 극장 내 웃음 버튼이다. 본격적인 영화 시작 전 1부에 대한 긴 설명이 있어 1부를 보지 않아도 무리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다만 1부와 마찬가지로 장르 특성상 호불호가 갈리는 데다 1부를 보지 않고도 2부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올 관객이 많을지는 미지수다. 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무륵 역의 배우 류준열은 “영화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일이 결과가 다 만족스러울 순 없다. 늘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최 감독에 대해 “이런 (장르물) 시도 자체를 존경한다. 감독님이 여전히 작업하고 일하는 건 단순히 잘 찍어서가 아니라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기 때문”이라며 믿음을 드러냈다. ‘외계+인’ 2부로 배급사인 CJ ENM이 구긴 체면을 회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CJ ENM은 지난해 전례 없는 부진을 겪었다. 개봉한 영화 중 단 한 편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서 한때 영화 사업을 접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구창근 CJ ENM 대표가 이에 대해 해명을 하기도 했다. 최 감독은 “2부를 완성하면서 ‘관객들에게 초대장을 쓰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컸다. 2부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들떴던 연말이 지나고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시작됐다. 연말 분위기에 마음을 아직 채 가라앉히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세계 유명 영화제를 사로잡았던 영화 두 편이 연달아 개봉한다. 지난해 제76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개막작이었던 ‘클레오의 세계’와 2022년 제79회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노 베어스(NO BEARS)’다. 잔잔하고 묵직한 영화로 차분하게 한 해를 시작하기에 좋을 것 같다. 3일 개봉한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유년 시절과 성장통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스크린 위에 아름답게 풀어냈다. 여섯 살 클레오의 세계는 온통 유모 글로리아로 가득 차 있다. 엄마를 암으로 잃은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다정하고, 따뜻하고, 폭신한 엄마 그 자체다. 하지만 글로리아가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되면서 클레오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결국 아빠는 여름방학 동안 클레오를 글로리아에게 보내준다. 영화는 클레오가 글로리아의 집에서 보낸 여름을 아름답게 담았다. 끈적끈적한 바닷바람과 여름 냄새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자신의 세계엔 글로리아뿐이었지만, 글로리아에게는 그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어린 클레오가 차츰 깨닫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누구나 어린 시절 소중한 것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성장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라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노 베어스’는 이란의 억압적인 현실을 묵직하게 까발린다. ‘노 베어스’는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이란 영화계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작품이다. 파나히 감독은 2009년 반정부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징역 6년 형과 함께 출국·영화 제작·언론 인터뷰 금지 처분을 받고 가택연금됐다. 하지만 계속해서 비밀리에 영화를 찍었다. ‘노 베어스’는 자유를 빼앗긴 파나히 감독 자신이 주인공이다. 영화 속에서 파나히 감독은 당국의 감시를 피해 이란과 튀르키예의 국경 시골 마을로 피신한다. 제작진은 이란을 떠나려는 커플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있고, 그는 방에 앉아 영상통화로 감독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자주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는 관계로 촬영이 지연된다. 시골 마을에서도 그를 둘러싼 소동이 벌어진다. 이미 정혼자가 있던 여성이 다른 청년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그의 카메라에 찍혔다는 소문이 퍼진다. 마을 원로들은 그의 집에 쫓아가 사진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현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혼자 문화부터 찍으면 안 될 것을 찍었다는 설정까지 파나히 감독의 실제 상황에 대한 은유다. 파나히 감독은 자유를 억압하고 미래를 앗아가는 이란 정부에 대한 풍자를 영화 속에 켜켜이 쌓아 놓았다. 그는 이 영화를 찍은 직후인 2022년 7월 체포됐고, 구금된 상태에서 그해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이후 옥중 단식 투쟁을 하다가 지난해 2월 풀려났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캐릭터를 만들 때 약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세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우영우는 너무 사랑스럽고 마음에 남는 캐릭터입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런 캐릭터에 쉽게 공감하죠.” ‘슈퍼배드’ 시리즈의 미니언즈,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년)의 마리오·루이지 형제 등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캐릭터로 사랑받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일루미네이션이 영화 ‘인투 더 월드’로 돌아왔다. 일루미네이션이 7년 만에 새로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놓은 작품이라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새 캐릭터는 사랑스러운 청둥오리 가족이다. 10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인투 더 월드’는 가족을 과잉보호하는 아빠 맥(쿠마일 난지아니) 때문에 작은 호숫가에서만 머물던 청둥오리 가족이 난생처음 자메이카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담았다. 태풍 때문에 미국 뉴욕에 불시착한 청둥오리 가족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기를 헤쳐 나간다. 크리스 멜러댄드리 일루미네이션 대표(사진)는 최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누구나 안전지대에 머무르려는 관성을 갖고 있다. 인간 역시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숨고, 피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리 가족을 새로운 캐릭터로 낙점한 것에 대해서는 “일단 내가 오리를 너무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는 “우스꽝스럽고 매력적이라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지어진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보여주려면 오리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캐릭터의 매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일루미네이션답게 위기를 헤쳐 나가는 오리 가족이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아빠 오리 맥은 겁이 많지만 가족을 위해 용감하게 앞장서고, 엄마 오리 팸(엘리자베스 뱅크스)은 뉴욕의 ‘고인물’ 비둘기 여왕 멍첨프(아쿼피나)에게 맞서 강단 있게 가족들의 샌드위치를 지켜낸다. 매 장면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청둥오리 가족의 초록색 머리와 울긋불긋하게 물든 숲, 형형색색의 자메이카 앵무새 등 화려한 색감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인상주의 회화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다양한 새들이 등장하는 만큼 깃털의 결과 비행하는 모습 등에 생동감이 넘친다. 스튜디오에 직접 오리들을 데려와 움직임을 세밀히 관찰했다고 한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더 큰 성장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 아이가 있는 가족이 새해 첫 영화로 함께 보기 좋을 것 같다. 멜러댄드리 대표는 “한국 영화 산업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선택지가 많기 때문에 관객들 눈이 높다. 우리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50억 회를 돌파했다. 2012년 공개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6시 기준 50억165만 회에 달했다. K팝 뮤직비디오 중 유튜브 조회수가 50억 회를 넘어선 것은 ‘강남스타일’이 처음이다. 앞서 2014년 조회수 20억 회를 넘어선 데 이어 2017년과 2021년에 각각 30억 회, 40억 회를 돌파했다. 싸이는 소속사 피네이션을 통해 “처음 1000만 뷰를 달성했던 날 동료들과 5000만 뷰를 꿈꿨었다. 꿨던 꿈의 100배만큼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앞서 ‘강남스타일’은 발매 당시 미국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 161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억 회를 달성해 조회수 10억 회를 넘어선 첫 유튜브 단일 영상 기록을 세웠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 씨(48)가 27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69일 만인데 경찰은 거듭된 수사를 받던 이 씨가 심리적 압박 등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서울 성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 12분경 이 씨의 매니저로부터 “이 씨가 전날 유서를 작성하고 집을 나가 귀가하지 않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차량번호 등을 토대로 추적에 나선 경찰은 오전 10시 반경 이 씨가 과거에 살던 성북구 주택이 내려다보이는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주차장에서 이 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이 씨를 발견했다. 소방 관계자는 “이미 사망한 지 시간이 꽤 흐른 상태라 심폐소생술 등을 하지 않고 경찰에 (이 씨를) 인계했다”고 설명했다.차량 조수석에선 위스키 한 병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발견 당시 정황과 이 씨가 남긴 유서 등을 토대로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고 있다. 이 씨의 유족 측은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으며, 빈소는 이날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이 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돼 올 10월부터 총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23일 세 번째 조사는 19시간 넘게 이어졌는데 이 씨는 “유흥업소 실장이 수면제라고 줘서 먹었을 뿐”이라며 고의 투약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이후 온라인에서 해당 유흥업소 실장이 “(이 씨가) 빨대를 이용해 케타민을 흡입하는 걸 봤다”고 주장하는 발언 녹취록이 공개되자 이 씨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26일 경찰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이 씨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마약류 검사를 진행했지만 양성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이 씨 수사를 담당하는 인천경찰청은 “안타깝다”면서도 “심야 조사 동의를 받았고 강압 수사를 진행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 씨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고 남은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고도 했다.이 씨의 소속사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 없다”며 “장례는 유가족 및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치러질 예정”이라고 밝혔다.한편 이 씨를 협박해 수천만 원을 뜯은 혐의로 유흥업소 여실장과 함께 이 씨로부터 고소당한 20대 여성은 전날(2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지 않고 도주했다가 27일 경찰에 붙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인천지법에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 별다른 사유를 밝히지 않고 불출석한 여성에 대한 구인장을 집행해 인천 논현경찰서 유치장에 입감했다.이 씨는 드라마 ‘하얀거탑’(2007년),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 등으로 스타가 됐고, 2019년 영화 ‘기생충’의 주연을 맡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주요 외신들도 이 씨의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미국 CNN은 “이 씨는 ‘기생충’에서 호평을 받았고 공상과학 스릴러 시리즈 ‘닥터 브레인’으로 국제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넷플릭스가 연말을 겨냥해 내놓은 드라마 ‘경성크리처’가 22일 공개됐다. ‘경성크리처’는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K 크리처물(괴물드라마)’로, 배우 박서준 한소희가 주연을 맡았다. 시즌1, 2 전체에 700억 원의 제작비를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개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각본이 어설프고 배우들 연기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혹평과, “몰입도가 높아 재밌게 봤다”는 호평이 엇갈리고 있다. ‘경성크리처’는 1945년 경성, 일본군이 운영하는 옹성병원 지하에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당포 주인 장태상(박서준)과 토두꾼(실종자를 찾는 사람) 윤채옥(한소희)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들은 옹성병원에서 생체실험의 결과물인 괴물을 만나게 되고, 갇혀 있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두 사람의 로맨스까지 더해져 시대극과 로맨스물, 크리처물까지 여러 장르를 오간다. 각본은 ‘제빵왕 김탁구’(2010년),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강은경 작가가 맡았다. 1940년대 경성을 재현하기 위해 4500여 평 규모의 세트장을 지었다. 1940년대 촬영한 사진을 참고했고, 현실감을 주기 위해 가로등 간판 전봇대 등을 모두 실제 크기로 만들었다. 특히 ‘모던보이’이자 경성 제일의 전당포인 금옥당 주인 장태상의 집에 공을 들였다. 유럽의 작은 성을 연상케 하는 집 내부는 화려한 무늬의 벽지와 샹들리에로 가득하다. 장태상은 ‘조선의 개츠비’라는 콘셉트에 맞춰 자신감 넘쳐 보이도록 잘 재단된 양복 재킷과 과장되게 큰 칼라 등 복장에 신경을 썼다. 생체실험이 벌어지는 옹성병원은 병원 지하 그 자체가 괴물처럼 보이도록 어두침침하고 두려운 느낌을 구현하려 했다. 작품의 몰입감 자체는 나쁘지 않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평가 신선도 지수는 86%, 관객 평가 팝콘지수는 84%다. 국내에서 혹평이 많은 이유는 콘텐츠에 대한 한국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 2화 전개가 느리고, 총 10화인 시즌1 중 3화까지 괴물은 창살 사이로 촉수만 등장해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세트장이 화려하고 과장된 탓에 잘 만든 가짜 같다는 느낌도 준다. 익숙한 TV 드라마라면 문제 되지 않았을 부분이 ‘오징어게임’, ‘무빙’ 등 영화 수준으로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로선 부족한 느낌이 들 수 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지고, 넷플릭스에서도 시즌1부터 파트1, 2로 나누어 승부수를 건 만큼 남은 공개분과 시청자 평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파트1인 1∼7화가 공개됐고, 파트2인 8∼10화는 내년 1월 5일 볼 수 있다. 시즌2는 내년 중 공개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데뷔 25주년을 맞은 팝페라 테너 임형주(37·사진)가 영국왕립예술학회(Royal Society of Arts·RSA) 종신 석학 회원으로 선정됐다고 소속사 디지엔콤이 26일 밝혔다. 임형주는 “올해는 한영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 뜻깊고 영광스럽다”며 “한영 문화예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더 연구하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754년 설립된 영국왕립예술학회는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다. 상업, 제조, 인문 예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 중 입회를 희망하는 이를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애덤 스미스(1723∼1790), 마리 퀴리(1867∼1934) 등이 회원이다. 선정되면 이름 뒤에 FRSA(Fellow of the Royal Society of Arts)라는 직함을 붙이게 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누구라도 마음속에 빛나는 소원 하나는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룰 힘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 디즈니가 100년 동안 62편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주제를 오롯이 담은 애니메이션 ‘위시’가 내년 1월 3일 개봉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설립 100주년 기념작으로, ‘겨울왕국’ 제작진이 참여했다. 영화는 올해 100년을 맞은 디즈니를 향해 보내는 한 편의 러브레터 같다. 소원을 이뤄주는 로사스 왕국에 사는 아샤(아리아나 더보즈)가 주인공이다. 로사스 왕국을 세운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은 마법사다. 왕국의 소년 소녀들은 18세가 되면 왕 앞에서 소원을 빈다. 왕은 이들의 소원을 구슬에 담아 첨탑에 보관하고, 한 달에 한 번 소원성취식을 열어 그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소원을 이뤄준다. 소원이 구슬에 담기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된다. 그 대신 왕이 언젠가는 자신의 소원을 간택해 이뤄줄 거라고 믿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어느 날 왕의 견습생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간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는 이들의 소원을 소중하게 보관하며 언젠간 이뤄줄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자신의 왕좌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백성들은 스스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소원의 내용을 잊은 채 그저 왕이 이뤄주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샤는 소원 구슬들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여러 캐릭터는 물론이고 매 장면이 디즈니 작품에 대한 오마주다. 아샤의 모습은 ‘모아나’와 ‘포카혼타스’를 섞은 듯하고, 매그니피코 왕은 거울에게 “누가 누가 제일 잘생겼느냐”고 묻는다. 피터팬이 로사스 왕국 주민으로 카메오로 출연하고, 숲속엔 정글북의 곰 ‘발루’, 아기 사슴 ‘밤비’가 산다. 요정 대모 할머니가 막대기를 우아하게 휘두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신데렐라의 시그니처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한다. 아샤의 친구들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일곱 난쟁이에게서 각각 특징을 따왔다. 디즈니 팬이라면 오마주 장면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울 것 같다. 40년 넘게 디즈니에서 몸담으며 ‘타잔’(1999년) ‘겨울왕국’ 시리즈를 연출한 크리스 벅 감독은 “우리가 사랑하는 디즈니라는 유산의 과거와 미래를 기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별’이다. 아샤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별은 말은 하지 못하지만 장난기 가득하고 귀엽다. ‘위시’에는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 적잖게 참여했다. 별을 작업한 윤나라 애니메이터는 “한 살배기 둘째 딸을 자주 관찰했다. 기뻐할 때 온몸으로 꺄르르 웃는 모습이 별 모양처럼 보였던 날 영상으로 촬영했다가 별의 움직임을 작업할 때 참고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먼저 개봉한 북미에선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등에 밀려 흥행 성적이 썩 좋진 않다. 작품성은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아샤가 ‘겨울왕국’의 안나나 엘사만큼 매력 넘치게 그려지지 않았고, 삽입된 노래들이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디즈니가 100년 동안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볼 것. 아름다운 쿠키가 기다리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복잡한 히어로 무비 세계관에 지친 관객이라면 반가울 DC스튜디오 영화 ‘아쿠아맨’이 5년 만에 속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으로 돌아왔다. DC 세계관을 몰라도, 다른 히어로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아도 가벼운 마음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세계를 즐길 수 있다. ‘아쿠아맨’ 1편은 2018년 국내 개봉 당시 500만 명 넘게 관람하며 흥행했다. 20일 개봉한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바닷속 아틀란티스 왕국의 왕으로 갓 태어난 아기의 아빠가 된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 앞에 1편에서 그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마틴 2세)가 나타난다. 블랙 만타는 아쿠아맨의 모든 것을 앗아가겠다는 일념하에 지구를 파괴할 무기 ‘블랙 트라이던트’를 손에 넣고 아틀란티스를 공격한다. 아쿠아맨은 사막에 갇혀 있는 이부동생 옴(패트릭 윌슨)을 찾아가 손을 잡고 블랙 만타를 물리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쏘우’(2005년),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년), ‘컨저링’ 시리즈 등을 만든 제임스 완 감독(46)이 연출했다. 말레이시아계 호주인인 완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공포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아쿠아맨’을 통해 블록버스터 영화로까지 저변을 넓혔다. 이번 영화도 완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과 리듬감이 돋보인다. 특히 바닷속 세계를 구현한 다양한 시각효과가 눈을 사로잡는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파도와 형광색 바다 생물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쿠아맨의 액션이 러닝타임 내내 쏟아진다. 1편 때는 배우를 공중으로 띄운 뒤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수중 장면을 촬영했다면, 이번에는 특수 제작된 원형 부스를 사용했다. 부스엔 총 136대의 고정식 카메라가 설치돼 배우의 세세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다만 영화 전체가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등장인물의 서사나 감정 대신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벌이는 액션과 볼거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이 3편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 감독이 지난해 DC스튜디오 새 수장이 되면서 DC스튜디오가 그동안 펼쳐왔던 DC 확장 유니버스(DCEU)를 끝내고 세계관을 재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DCEU 라인업 마지막 작품이란 점에서 새 ‘DC 유니버스’에 아쿠아맨이 역할을 부여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2·12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24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지 32일 만이다. 올해 개봉한 작품으로는 ‘범죄도시3’에 이은 두 번째 1000만 영화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올 1월 1000만 관객을 넘긴 ‘아바타2’까지 포함하면 올해 세 번째 영화다. ‘서울의 봄’은 팬데믹 이후 비(非)시리즈물로는 첫 1000만 영화가 됐다. 역대 영화 개봉작 중에선 31번째, 한국 영화 가운데는 22번째 1000만 관객 영화다. 김성수 감독은 이번 영화로 처음 1000만 감독이 됐다. 1995년 영화 ‘런어웨이’로 데뷔한 김 감독은 ‘비트’(1997년) ‘태양은 없다’(1999년)로 주목 받았다. 배우 정우성(이태신 역) 역시 1994년 데뷔 후 처음으로 1000만 배우가 됐다.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은 ‘국제시장’(2014년), ‘베테랑’(2015년) 이후 세 번째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벌인 전두광과 그를 막으려는 이태신의 9시간을 그렸다. 치밀한 각본을 바탕으로 “결말을 알고 봐도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다”는 평가를 얻으며 중장년층뿐 아니라 10∼30대 사이에서 ‘심박수 측정 챌린지’가 유행하며 관람 열풍이 일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성서학자인 저자가 성서(聖書)의 기원과 발전, 변화에 대해 상세하게 파헤치며 탐구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은 독자를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시키거나 신자들의 믿음을 더 굳세게 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책은 구약 성서가 태동했던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구약 성서의 거의 모든 책이 완성된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언어, 흥미로운 사실과 논란 거리를 짚어본다. 저자는 잠언의 저자가 누군지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솔로몬 왕이라고 보는 시각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린다. 나아가 잠언을 직접 쓴 저자는 이스라엘 궁정의 서기관들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잠언 중 일부 속담이 궁정 내에서 통용될 지혜들을 담고 있고, 다양한 근거를 살펴봤을 때 이스라엘에 잠언 편찬 작업을 하는 서기관 교육 학교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왕은 이들을 후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솔로몬 왕이 잠언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기독교가 등장했던 시기의 역사와 신약 성서의 발달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한다.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가 성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도 집중했다. 이 차이로 인해 시대를 거치며 성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지 설명한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역사 이야기책 같다. ‘인류 베스트셀러’인 성서에 대해 궁금했던 독자라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힐 것 같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다큐멘터리 화면에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일곱 소년이 있다. 앳된 얼굴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여 있다. 흐트러짐 없는 ‘칼군무’를 연습하는 몸짓에는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스타가 됐지만 그들에게도 팬들을 만나 눈물을 흘렸던 ‘처음’이 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방탄소년단(BTS·사진)의 10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BTS 모뉴먼트: 비욘드 더 스타’ 1, 2화가 20일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됐다. 1, 2화에선 데뷔 과정부터 미국에서 작업한 정규앨범 ‘DARK & WILD’ 등 여러 앨범 작업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비롯해 멤버들이 중요한 순간들을 회상하는 인터뷰도 담겼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지민은 “사람들이 온대요? 이틀이나 할 수 있다고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RM은 여러 해외 시상식에 참석하던 때를 떠올리며 “또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BTS의 성공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은 멤버들 마음의 변화를 담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멤버들은 데뷔 전 막막했던 심정과 데뷔 후 찾아온 슬럼프까지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총 8화 분량으로 매주 수요일에 2회 차씩 공개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국립정동극장과 극단 돌파구가 공동기획한 ‘키리에’와 우란문화재단의 ‘비비비(B BE BEE)’가 제6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공동 수상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경미)는 20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이 없는 대상을 제외하고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 9개 부문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했다. 올해 본심에는 심사위원 추천작 19편이 올랐다. 이 위원장은 “올해만큼 심사위원 간에 의견이 갈린 적이 없었다. 전통적인 연극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과 새로운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고 총평했다. 이 위원장은 “수상자 상당수가 신인 때 신인연출상 등 동아연극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꾸준히 좋은 작품 활동을 해서 더 좋은 상을 받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작품상을 받은 ‘키리에’는 연기상(유은숙) 유인촌신인연기상(백성철)까지 거머쥐며 3관왕에 올랐다. ‘키리에’는 60대 한인 무용수인 엠마가 외딴 숲속에서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여관을 운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은 죽음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며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심사위원들은 “철학적인 내용이지만 죽음을 보는 흔한 방식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 점이 좋았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비비비(B BE BEE)’는 배우가 꿀벌 연기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형식의 연극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인간의 사유를 그렸다. 심사위원들은 “작은 작품이고 실험적 시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연극의 미래 담론을 향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평했다. 연기상을 받은 유은숙 배우(‘키리에’)에 대해서는 “키리에에서 엠마 역을 맡은 유 배우는 작품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줬다”며 “남편의 죽음이라는 화두를 집이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등장인물 간의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상자 이미숙 배우(‘싸움의 기술, 졸’)는 “사물과 인간을 오가는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퍼포먼스가 강한 작품인데 이미숙이 없으면 연극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이미숙 자체가 그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리에’의 백성철 배우와 ‘러브 앤 인포메이션’의 권은혜 배우는 나란히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키리에’에서 절망에 빠진 젊은 소설가 역을 맡은 백성철에 대해서는 “배우로서 중심이 잘 잡혀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권은혜는 “굉장히 파편적이고 서사가 없는 극 속에서 다양한 시공간을 넘어서는 캐릭터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희곡상은 ‘그게 다예요’의 강동훈 작가에게 돌아갔다. ‘그게 다예요’는 한국 현대사를 피가 섞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강 작가의 데뷔작이다. “진정한 상생과 연대를 담아낸 묻히기 아까운 작품”, “좋은 구슬을 하나로 잘 꿰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고쳐서 나가는 곳’으로 신인연출상을 받은 박주영 연출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대하며 방향성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서사를 역동적으로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새개념연극상은 다양한 오브제로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주제를 표현한 연극 ‘다페르튜토 쿼드’의 ‘다페르튜토 스튜디오’가 받았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구현해 미래적인 연극의 단초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엑스트라 연대기’로 무대예술상을 받은 김혜림 무대디자이너에 대해서는 “극장 공간을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서 입체적으로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특별상에는 실험극 연출로 유명한 원로연출가 김우옥 씨(‘혁명의 춤’)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아흔의 나이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을 계속 무대에 올리고 있다. 한국 연극사에서 마땅히 주목하고 존경할 만한 연출가”라고 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9일 열릴 예정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내년, 후년에도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는 연출가가 되겠습니다. 까불어서 미움받았던 옛날 그 시절처럼 성깔 있는 작업을 해야죠. 하하.” 제60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 소식을 들은 김풍년 연출가(48·사진)는 느릿하지만 단단하게 말했다. 그가 연출한 ‘싸움의 기술, 졸’은 제60회 연기상까지 받아 2관왕을 차지했다. 그는 “상이 응원도 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더 저에 가깝게, 더 ‘막’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웃었다. 2016년부터 극단 작당모의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배우와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렇게 추운 겨울, 지금 이 시간에도 소극장을 지키고 있는 건 그분들이다. 지금까지 연극판을 지켜온 건 촌스러운 그 연극쟁이들”이라며 “(제 수상이) 서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싸움의 기술, 졸’은 장기(將棋)를 소재로 한 실험적인 연극이다. 장기판 위의 말처럼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무겁지 않고 창의적이면서도 참신하게 그렸다. 줄자와 롤러스케이트, 진공청소기 같은 사물을 기발하게 사용해 한 편의 무용 공연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연출가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걸 보면서 떠올린 작품”이라며 “사람들이 싸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니다, 싸워야 한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 이야기하자는 데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에는 문외한이어서 탑골공원은 물론이고 인터넷 강의, 유튜브 영상까지 봤다. 그는 “제작진 중 군대 내무반 장기 1등을 했던 이가 대국 시나리오를 짜주면서 장면을 만들어 나갔다. 저는 연출가지만 주로 앞에서 징징댔고 뒤에서 제작진이 문제를 해결해줬다”며 공을 돌렸다. 김 연출가는 2020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받고 이번에는 연출상을 받아 한 단계 발돋움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여기며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용기를 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많아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운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놀랍게도 이순신 장군이 꿈에 한 번을 안 나와요. 나오실 만도 한데…. 장군이 보시기에 (영화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꿈에 나와 혼내셨을 텐데 없어서 그런 걸까요?” ‘명량’(2014년), ‘한산: 용의 출현’(2022년)에 이어 20일 개봉하는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10년을 충무공 이순신에 천착한 김한민 감독(54)은 웃으며 말했다. ‘노량’으로 그가 계획한 ‘이순신 3부작’이 마무리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9일 만난 그의 얼굴에서는 개봉을 앞둔 감독의 긴장보다는 후련함이 묻어났다. “이런(이순신 3부작을 마무리하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요. 명량과 한산, 노량은 영화마다 만드는 의미를 분명하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낸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이순신 3부작 중 첫 편인 ‘명량’은 1760만 명이 관람해 한국 영화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이다. 김 감독은 “단지 후속작으로만 기능한다면 3부작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해전을 반복해 보여주면서 속편 우려먹기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3부작 완성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노량’은 러닝타임 153분 중 약 100분을 해전에 할애했지만 김 감독의 말대로 시원한 전투 장면만을 담은 건 아니다. 장군, 동료, 아버지이자 나라를 향한 충심으로 가득했던 이순신의 모습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그의 삶을 풀어낸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왜 그렇게 모두가 반대하는 전쟁을 치열하게 수행하려 했는지가 제 화두였다”고 했다. 영화 속 이순신(김윤석)은 “이 전쟁을 올바로 끝내기 위해서는 (도망치는 왜군들을)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치열했던 정신을 설명하는 문구를 생각해 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 대사가 장군에게 절대 누가 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잘 썼다고 격려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이 영화 시리즈에 쏟아부은 만큼 이순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작품에 대해서는 더욱 고민이 컸다. 그는 “영화 사운드가 가장 힘들었다”며 “언론 시사회 전날까지도 사운드 작업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순신의 죽음이 있고, 해전이 100분이기 때문에 완급 조절이 있어야 관객들이 따라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들리도록 애썼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해전 장면이 길지만 장면마다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 10년을 함께했지만 김 감독은 이순신을 “(여전히) 놓을 수 없다”며 웃었다. 그는 이순신의 전쟁 7년을 담은 드라마를 기획 중이다. “이순신 장군은 저에게 삶의 위안과 힘, 용기예요. ‘노량’을 본 관객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면 좋겠습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제20회 한국이미지상 수상자로 현대차 제네시스(디딤돌상),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징검다리상), 팝페라 테너 임형주(머릿돌상), 프랑스인 소리꾼 마포 로르(꽃돌상)를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제네시스는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럭셔리 브랜드로, 올해 8월 전 세계 누적 판매 100만 대를 돌파했다. 마리오 보타는 서울 리움미술관, 강남 교보타워, 경기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등 랜드마크를 건축했다. 임형주는 팝페라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마포 로르는 한국에 와서 판소리를 배우고, 프랑스어로도 번역해 부르며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다.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은 내년 1월 10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2·12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중장년·노년층은 물론이고 12·12쿠데타를 교과서로만 배운 10∼30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개봉 4주 차에도 관람 열기가 뜨겁다. ‘범죄도시3’에 이어 ‘서울의 봄’이 올해 두 번째 1000만 영화에 오르며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힘을 불어넣어 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8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까지 ‘서울의 봄’은 관객 894만 명을 기록하며 시리즈물이 아닌 영화로는 팬데믹 이후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됐다. 개봉 4주 차에도 주말 관객이 120만 명을 넘어서, 이번 주말 1000만 관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봄’이 흥행에 성공한 건 화제성과 작품성, 입소문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서울의 봄’이 처음 화제를 모았던 건 정권을 탈취하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대머리 분장이었다. 파격적인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갔고 관람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특수 분장을 맡은 황효균 셀스튜디오 대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인물을 완전히 닮게 재현하는 게 아니라 특징을 살려 느낌만 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러닝타임 내내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았다”는 관람 후기가 쏟아질 만큼 속도감 있는 연출과 작품성은 젊은 세대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전두광 노태건(박해준) 등이 이끌던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벌인 군사반란과 이들에게 맞선 이태신(정우성)의 9시간을 마치 전략 게임처럼 스크린에 지도를 띄워 자세하게 보여준 연출이 젊은 세대에게 먹혔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2·12사태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영화의 연출 방식과 속도감은 이들에게 익숙한 방식”이라며 “교과서에서 잠깐 본 내용의 뒷이야기를 긴박하게 전개해 젊은 세대가 깊이 몰입했다”고 말했다. SNS에는 영화를 본 젊은 관람객들이 스마트 워치로 스트레스 지수, 혈압, 심박수 등이 모두 오른 사진을 올려 인증하는 챌린지가 유행했다. 영화에 과도하게 몰입한 일부 관객이 전두광 포스터를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영화가 입소문을 타자 유튜브에는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분석한 내용을 담은 ‘서울의 봄 관람 전 필수 시청 영상’ 콘텐츠들이 올라왔다. 이에 “예습하고 영화 보러 간다” “N차 관람하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있다”는 댓글도 여럿 달렸다. 황정민, 정우성 등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데다 영화 마지막에 실제 인물들의 사진을 공개해 역사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노년층도 계속 극장을 찾고 있다. 극장가는 ‘서울의 봄’ 성공으로 고무된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추석 뒤, 연말 전인 11월은 관객이 적어 대작이 잘 개봉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인 상황에서 ‘서울의 봄’이 틈새를 파고들어 훈풍을 불어넣었다. 20일에는 이순신 장군 3부작 마지막 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해 침체됐던 극장가가 되살아날 불씨가 될지 관심이 높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프랑스, 군대… 조세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자 그의 생애를 응축한 세 단어다. 죽은 지 2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혁명가인지 전쟁광인지 평가가 분분한 그의 생애, 그리고 그가 평생 집착했던 여성 조세핀과의 관계를 담은 영화 ‘나폴레옹’이 6일 개봉한다. 올해 나이 여든여섯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했고, ‘조커’(2019년) ‘그녀’(2014년)의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 역을 맡았다. 영화를 이끄는 두 축은 나폴레옹의 전쟁, 그리고 아내 조세핀에 대한 사랑이다. 정복자 나폴레옹의 생애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스콧 감독은 장대한 전투 장면을 영화 곳곳에 넣었다. 감독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이번 작품도 손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전투 장면도 미리 그림으로 그려 제작진과 공유했고, 최대 11대의 카메라를 사용해 풍부한 각도에서 촬영했다. 나폴레옹이 젊은 포병 장교로서 처음 존재감을 인정받았던 툴롱 전투와 그를 파멸하게 만든 워털루 전투 장면이 특히 압권이다. 마치 관객이 실제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가 지난달 북미 등 일부 지역에서 개봉하자마자 역사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화는 젊은 나폴레옹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는 당시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피라미드를 폭파하는 장면 역시 허구다. 스콧 감독은 비판이 거세지자 “당신들이 그때 그곳에 있었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논란 탓에 앞서 개봉한 국가에선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스콧 감독은 역사적 정확성보다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데 더 집중했다. 나폴레옹을 알려면 조세핀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영화에서 나폴레옹과 조세핀(버네사 커비)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함축적이다. 나폴레옹은 사교 파티에서 조세핀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자꾸 흘깃댄다. 눈치를 챈 조세핀이 바짝 다가와 “왜 자꾸 나를 쳐다보느냐”며 대담하게 유혹하고, 나폴레옹은 말을 더듬으며 어쩔 줄 모른다. 엄격한 어머니에게 애증을 갖고 있었던 나폴레옹은 연상의 조세핀에게 집착했고, 때로 폭력적이 되기도 했다. 황후가 된 조세핀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나폴레옹은 죽는 날까지 그녀를 사랑했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썼던 열렬한 사랑의 편지는 추후 공개돼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피닉스는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나폴레옹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그는 사료로 남은 나폴레옹의 모습과 연기자로서 자신이 해석한 나폴레옹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다만 ‘조커’ 때만큼 매력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