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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crazy crazy crazy!(미쳤네 미쳤어 미쳤다!)” 17일(현지 시간) 오전 ‘갤럭시 언팩 2024’ 행사가 열린 미국 새너제이 SAP센터. 인스타그램 팔로어 500만 명, 유튜브 구독자 250만 명을 보유한 아랍에미리트(UAE) 인플루언서 웨삼 씨는 삼성전자가 새로 공개한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AI)폰 ‘갤럭시 S24 시리즈’를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상기된 목소리로 이같이 소리쳤다. 웨삼 씨와의 모든 대화는 갤럭시 S24의 실시간 통역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고받았다. 한영 통역 기능은 인터넷 연결과 상관없는 기기에 내장된 AI로 작동됐다. 웨삼 씨는 “처음으로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게 돼 정말 기쁘다”며 “갤럭시 S24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앞으로 AI폰이 전 세계 대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AI폰, 애플에 밀린 전세 뒤집을 것” 이날 갤럭시 언팩에는 글로벌 파트너사 및 미디어, 인플루언서 등 2100명이 참석했다. 행사 시작과 함께 갤럭시 S24의 AI 기능을 상징하는 별들이 대형 스크린에서 우수수 쏟아지며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부문장(사장)을 시작으로 연사들이 통·번역, 차세대 검색, 카메라, 사진·영상 편집 등 AI 기능들을 소개하자 연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외신들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블룸버그는 “그동안 애플에 밀린 삼성이 AI에서 앞서 출발하며 전세를 뒤집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삼성전자가 AI로 스마트폰 시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했다. 전 세계가 갤럭시 S24 시리즈에 주목하는 것은 삼성 최초의 ‘온디바이스 AI’이기 때문이다. 빅테크 서버가 아닌 사용자 휴대전화에 탑재된 AI가 작업을 수행한다. CNN은 “생성형 AI를 기기 자체에 내장함으로써 삼성전자는 (연산 처리의) 지연 시간을 줄이고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정보가 외부 클라우드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보안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AI폰을 구현하기 위해 삼성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현존 최고 사양인 퀄컴의 스냅드래건8 3세대를 채용했다. 삼성은 판매하는 국가에 따라 갤럭시 S24 기본 모델과 플러스 모델에 퀄컴 AP와 삼성에서 직접 개발한 엑시노스 2400을 나눠 적용했다. 엑시노스는 앞서 갤럭시 S22 시리즈에서 발열 논란을 빚었다가 2년 만에 재탑재됐다. 엑시노스 2400은 전작(엑시노스 2200) 대비 성능이 중앙처리장치(CPU)는 1.7배, AI는 14.7배 향상됐다. 노 사장은 “1년 전부터 기획한 엑시노스 2400은 성능과 안정성 모두 파트너사와 함께 검증을 마쳤다”며 “충분한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 AI로 테크 지형 재편” 노 사장은 “미래 휴대전화 삼성 갤럭시 AI와 함께 테크 지형을 재편하겠다”고 말했다. ‘아이폰을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같은 생각이고, 그런 각오라고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전 출시작도 업데이트해 연내 갤럭시 AI 적용 모델을 1억 대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갤럭시 S24 ‘연결’의 핵심은 장벽 없는 소통의 길을 연 통·번역 기능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13개 언어를 구현한다. 또 AI 비서로서 요약, 정리 등의 기능을 수행해 사용자의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 고도화된 촬영 기술이 지원되고 각종 사진·영상 편집 툴도 자동 추천, 제공된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더 ‘창의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이번 AI폰은 삼성의 개방형 생태계의 집합체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파트너사가 구글이다. 언팩 연사로 나온 히로시 록하이머 구글 수석부사장은 “갤럭시 기기와 구글이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파트너십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새너제이=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It’s crazy crazy crazy!”(미쳤네 미쳤다 미쳤어!)17일(현지 시간) 오전 ‘갤럭시 언팩 2024’가 개최된 미국 새너제이 SAP센터. 아랍에미리트 인플루언서 웨삼(Wessam) 씨는 삼성전자가 새로 공개한 인공지능(AI)폰 ‘갤럭시 S24 시리즈’를 본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에 상기된 목소리로 이 같이 소리 쳤다. 웨삼 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500만, 유튜브 구독자 250만을 보유한 게임 및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전문 크리에이터다.모든 대화는 갤럭시 S24의 실시간 통역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고 받았다. 통역 기능은 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 내장된 AI로 작동했다. 웨삼 씨는 “처음으로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게 돼 정말 기쁘다”라며 “갤럭시 S24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앞으로 AI폰이 전 세계 대세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AI폰으로 테크업계 재편”이날 갤럭시 언팩에는 글로벌 파트너사 및 미디어, 인플루언서 등 초대장을 받은 2100명이 참석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오전 9시 30분 시작에 앞서 무대 스크린에는 ‘새로운 모바일 시대를 준비하라’(Get ready for a new era of mobile)는 문구가 내걸렸다. 이어 오전 10시 행사 시작과 함께 갤럭시 S24의 새 AI 기능을 상징하는 별들이 화면에서 우수수 쏟아지며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부문장(사장)의 스피치를 시작으로 연사들이 차례로 나서며 통·번역, 차세대 검색, 카메라, 사진·영상 편집 등 AI 기능들을 하나씩 소개했고 관람석에서 연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블룸버그는 “그동안 애플에 밀린 삼성이 AI에서 앞서 출발하며 전세를 뒤집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AI로 스마트폰 시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었다”고 하는 등 외신들도 삼성전자 AI 폰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노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삼성의 첫 AI폰 갤럭시 S24 시리즈의 가능성을 연결(Connection), 창의성(Creativity), 협력(Collaboration) 등 ‘3C’로 요약했다. 노 사장은 “미래 휴대폰 삼성 갤럭시 AI와 함께 테크 지형을 재편하겠다”며 “언어·문화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내면의 예술성을 깨워 잊지 못할 스토리를 전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AI폰을 앞세워 애플, 구글, 메타 등 빅테크 일변도의 기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다.●갤럭시 S24, 삼성 개방형 생태계의 집합체갤럭시 S24 ‘연결’의 핵심은 장벽 없는 소통의 길을 연 통·번역 기능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등 13개 언어를 구현한다. 기자는 언팩 행사 이후 AI폰을 써볼 수 있는 체험관에서 페루 인플루언서 칼리롤리 씨와 각각 한국어,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했다. 칼리롤리 씨는 “한국어를 모르는데도 당신과 두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고 했다.갤럭시 S24는 또 AI 비서로서 요약, 정리 등 기능을 수행해 사용자의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 고도화된 촬영 기술이 지원되고 각종 사진·영상 편집 툴도 자동으로 추천, 제공된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더 ‘창의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AI 폰은 삼성의 개방형 생태계의 집합체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파트너사가 구글이다. 언팩 연사로 나온 히로시 록하이머 구글 수석부사장은 “갤럭시 기기와 구글이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파트너십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 S24 시리즈에는 삼성의 AI 모델과 함께 구글의 AI 제미나이 나노도 탑재됐다. 또 핵심 기능 중 하나가 구글과 공동 개발한 ‘서클 투 서치’라는 차세대 검색 기능이다. 이 밖에 AI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과, 액정은 소재 업체 코닝과 손 잡는 등 협력을 통해 갤럭시 S24 시리즈를 한 층 업그레이드 시켰다.노 사장은 별도 기자 간담회에서 “자체 개발이든 다른 파트너사 제품·기술이든 최적의 솔루션을 쓰는 게 우리의 철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또 다른 AI 기업과의 협력 확대에 대해 “지금은 구글과 협력하고 있지만 더 많은 파트너사들과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완성도가 높아진 시점에 적용해 갤럭시 AI의 장점을 더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연내 갤럭시 AI 1억 대 목표삼성전자는 이전 출시작도 업데이트를 통해 연내 갤럭시 AI 적용 모델을 1억 대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노 사장은 “갤럭시 S23 시리즈와 플립·폴드5, 갤럭시 탭S9 등 지난해 출시된 플래그십 모델 대상으로 우선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라고 했다.이날 언팩 행사에서는 헬스케어 기기인 ‘갤럭시 링’ 출시도 예고했다. 현재 갤럭시 워치를 보완하는 새로운 기기다. 노 사장은 “헬스케어는 지속적인 측정과 관리가 중요한데 반지 형태가 시계보다 착용할 때 느끼는 부담이 덜하다고 판단했다”며 “장시간 편하게 쓰면서 배터리 소모도 덜한 형태로 만들어 연내 출시하겠다”라고 밝혔다.새너제이=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예약 시간을 변경하려고 하는데요.” “I’d like to change the reservation time.” “Yes, what time would you like to come in?” “네, 몇 시로 변경하시겠어요?” 삼성전자가 17일(현지 시간) 공개한 인공지능(AI) 폰 ‘갤럭시 S24’를 통해 구현한 실시간 전화 통역이다. AI 한영(韓英) 통역 설정 버튼만 누르면 사용자가 한국어로 말한 내용을 영어로 바꿔주고 반대로 영어를 쓰는 상대방이 말한 내용은 한국어로 변환해 준다.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등 13개 언어가 지원된다. 중요한 점은 인터넷이 연결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화기에 AI가 장착돼 스스로 통역 기능을 수행했다. 삼성이 프리미엄 시장을 잡기 위해 AI 시대에 띄운 승부수다. ● 인터넷 끊겨도 통역 걱정 없는 AI폰 삼성전자는 이날 미국 새너제이 SAP센터에서 ‘갤럭시 언팩 2024’를 개최하고 플래그십 신작 갤럭시 S24 시리즈를 공개했다. 갤럭시 S24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가운데 처음으로 생성형 AI가 기기에 내장된 ‘온디바이스 AI’다. 기기 안에서 스스로 연산하고 필요한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뜻으로 AI폰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가 운영하는 고성능 클라우드(서버)에서 처리한 뒤 결과를 인터넷 통신으로 전달받던 기존 AI와 다른 방식이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갤럭시 S24 시리즈는 스마트폰 시대를 넘어 새로운 모바일 AI폰 시대를 열 것”이라며 “사용자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고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AI폰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실시간 통역은 전화 통화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얼굴을 보며 직접 대화할 때도 쓸 수 있다. 인터넷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해외에서의 활용이 기대된다. 기존의 통·번역 앱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서버와 연결돼 작동하기 때문에 로밍이 안 되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갤럭시 S24의 통역은 인터넷 통신 없이 기기 자체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갑자기 대화가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0, 20대 젊은층을 겨냥한 카메라 촬영 및 사진·영상 편집 기술도 눈에 띄었다. ‘100배 줌(확대)’ 기능을 전작 갤럭시 S23 울트라 대비 더 뚜렷하게 찍히도록 AI로 고도화했다. 연예인 등 좋아하는 대상을 찍는 이른바 ‘덕질’용이다. 또 갤러리 내 사진을 AI가 자동으로 편집해 주는 기능도 추가됐다. 잘려 나간 배경을 주변 이미지에 맞춰 자연스럽게 메워 준다. 예쁘게 찍힌 사진에 ‘옥에 티’처럼 진 그림자를 자동으로 없애 주기도 한다. 구글과의 클라우드 AI 협업 결과도 핵심 기능으로 소개됐다. 웹 서핑, 소셜미디어, 유튜브 사용 중 화면에 뜬 정보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 정보를 찾아주는 ‘서클 투 서치(Circle to Search)’ 기능이다. 궁금한 부분을 원으로 그려 표시하면 적절한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맥락에 따라 추가 검색도 제안한다.● AI폰으로 시장 판 흔들겠다는 삼성 삼성전자는 AI폰을 앞세워 모바일 시장의 판을 뒤흔들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애플이 주도하던 프리미엄폰 부문을 삼성 중심으로 재편하고 AI폰의 1등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7년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 가운데 10대 중 4대는 AI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 업계는 애플에 앞서 삼성이 먼저 AI폰을 선보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프리미엄폰 시장은 애플이 71%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였고 삼성은 17%로 2위였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애플을 따라잡는 게 삼성의 ‘만년 숙제’였는데 AI폰 시대가 열리며 역전을 노릴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했다. AI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을 때 ‘AI폰 하면 갤럭시’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삼성의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31일부터 갤럭시 S24 시리즈를 국내 포함 전 세계에 순차적으로 출시한다. 용량에 따라 갤럭시 S24 울트라는 169만∼213만 원, 갤럭시 S24 플러스는 135만∼150만 원, 갤럭시 S24는 115만∼130만 원에 판매된다. 국내 사전 판매는 19∼25일 1주일간 진행된다.새너제이=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중국이 흑연 수출 통제 강화에 나섰지만 한국 기업에 대해선 별도 조치 없이 허가를 내준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포스코퓨처엠에 대한 흑연 수출을 승인했다. 흑연은 배터리 4대 소재인 음극재의 필수 원료로 국내에서 포스코퓨처엠이 유일한 음극재 제조사다. 중국은 또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흑연 기반 음극재를 들일 수 있도록 허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흑연은 이전부터 중국이 허가 대상으로 정해 수출을 통제해 오던 품목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1일부터 기존 인조흑연에 더해 천연흑연까지 새로운 통제 대상에 올리면서 한국 기업들이 긴장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맞불을 놓기 위해 중국도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당장은 한국 기업이 입는 피해는 없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불똥이 언제 한국으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천연흑연 및 인조흑연의 중국 의존도는 각각 97%, 74%에 달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공급을 차단하면 언제든지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미리 흑연 재고를 확보하고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있지만 중국을 완전히 탈피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오픈AI의 챗GPT, 구글 제미나이, 삼성 가우스 등 AI는 이제 사람과 대화할 뿐만 아니라 요약, 정리 등 기본적인 업무부터 통역, 창작 등 고도화된 작업까지 해내고 있다. 정보를 읽고 기억하는 메모리에도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성능이 요구되는 것이다.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메모리 처리 속도가 지연되는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기업들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메모리 중에서도 D램 분야에서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전 세계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AI 성능의 핵심인 D램 부문은 70%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9∼12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도 AI용 메모리 반도체는 핵심 화두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고대역폭메모리(HBM) 5세대 제품과 컴퓨터익스프레스링크(CXL)라는 차세대 D램 기술을 선보였다. HBM은 속도에, CXL은 용량에서 혁신을 이뤄낸 D램 기술이다. 지난해 AI발 산업혁명으로 HBM이 침체에 빠진 반도체 시장의 구원투수가 됐다. 올해는 여기에 더해 CXL이 상용화되면 장기 불황에 빠졌던 메모리 산업이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HBM, 1차선 도로가 16차선으로 지난해 메모리 업계의 ‘라이징 스타’였던 HBM 부문에서 올해 격전이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HBM 4세대인 HBM3 양산에 본격 돌입하며 앞서 치고 나간 SK하이닉스와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6월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기업인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 이후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 왔다. 올해 최신 HBM의 품귀가 예상되며 두 기업 모두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생산능력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선 상태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메모리다. 집적도를 높여 공간 효율성은 물론이고 전력 효율도 뛰어나다. 대역폭이 현존 메모리 중 가장 넓어서 고대역폭이라고 불린다. 대역폭이란 쉽게 말해 ‘최대 속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어진 시간 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전송·처리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빠르다는 의미다. HBM3 대역폭은 주로 비교되는 업계 최신 D램인 GDDR6보다 10배가량 높다. 그만큼 더 빠르다는 뜻이다. HBM의 대역폭이 넓은 이유는 데이터가 오가는 입출력 통로(I/O) 수가 기존 D램보다 16배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로로 치면 1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16차선 도로로 확 넓어진 셈이다. 일반 D램의 I/O가 64인 반면 HBM의 I/O는 1024에 달한다. HBM은 보통 8∼12개의 D램을 쌓아서 만드는데 각 D램마다 수직으로 오가는 1024개의 엘리베이터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평 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설계다. AI 연산의 핵심인 GPU 개발사 엔비디아, AMD 등은 자사 제품의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너지를 낼 메모리 칩을 찾고 있다. 높은 효율을 내려면 단순히 GPU만 뛰어나서는 안 되고 뒷받침할 메모리도 필수이기 때문이다. HBM이 각광받는 이유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이 D램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였지만 올해 18%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HBM 시장은 국내 기업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6∼49%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미국 마이크론이 한 자릿수 점유율을 가져갔지만 이마저도 구버전인 1∼3세대가 대부분이다. 메모리 업계는 4세대 제품에 대한 열기가 식기도 전에 벌써부터 5세대, 6세대 양산을 바쁘게 준비하고 있다. 5세대 제품인 HBM3E는 4세대 대비 속도가 50% 빨라져 초당 최대 1.2TB(테라바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풀HD급 영화 23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용량, 효율성, 유연성 세 마리 토끼 잡는 CXL HBM에도 한계는 있다. 바로 용량이다. HBM 하나당 용량은 보통 16∼24GB로 HBM 여러 개를 갖다 쓰면 규모를 확장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HBM 가격은 일반적인 D램보다 6∼7배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의 AI칩 GH200도 96GB HBM과 480GB LPDDR5X를 결합해 만들었다. LPDDR5X는 전력 효율이 우수한 저전력 D램으로 HBM 대비 속도는 느리지만 가격에서는 우위다. 용량과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CXL이다. HBM이 D램 여러 개를 쌓아 만든 패키징(포장) ‘제품’이라면 CXL은 구동 원리인 ‘인터페이스’다. 인터페이스는 중앙처리장치(CPU), GPU, 스토리지(저장장치) 등 기기 내 각 장치의 통신 연결 방식을 말한다. 기존 컴퓨팅 인터페이스는 CPU, GPU, 스토리지의 인터페이스가 제각각이어서 효율적인 연결이 어려웠고, 이는 AI 시대 병목 현상의 원인으로 꼽혔다. 각 장치마다 D램 등 메모리가 연동돼 있는데 연산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메모리 간 협업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CXL이라는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일함으로써 각 장치끼리 메모리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엔비디아, AMD 등 칩 업체를 비롯해 구글, MS, 메타 등 빅테크 업체들이 모여 CXL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인터페이스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CXL의 의미도 ‘Computer Express Link’, 즉 ‘빠르게 연결해서 연산한다’는 뜻이다. CXL은 쉽게 표현하면 물컵과 물병에 비유된다. 5명의 사람이 물 1L씩 나눠 가지면 1L보다 더 마시는 사람과 덜 마시는 사람끼리 수시로 나눠야 해 번거롭다. 하지만 아예 5L짜리 병에 물을 전부 쏟아붓고 5명이 각각 필요한 만큼만 떠다 마시면 훨씬 쉽고 빠르게 물을 배분할 수 있는 것이다. CXL의 장점은 시스템 연산 속도를 효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모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유연성에도 있다. 이전에는 D램을 바꿔 쓰는 데도 규격이 맞는지 따지고 맞춰야 했다면 이제는 CXL 인터페이스만 따를 경우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용량을 늘리고 싶으면 CXL 기반 메모리를 새롭게 꽂으면 끝인 것이다. CXL D램을 적용하면 서버 1대당 메모리 용량을 8∼10배가량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2021년 CXL 기반 D램 기술을 최초 개발했고 지난해 5월 CXL 2.0을 적용한 128GB D램을 개발했다. CXL은 1.1에서 2.0버전으로 가며 메모리 관리의 유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리눅스 1위 기업 레드햇과 CXL 메모리 검증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도 CXL 2.0 기반 96GB, 128GB D램 제품을 연내 상용화해 출시할 예정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반도체 용량과 성능을 발전시켰던 미세공정도 고도화가 정체되며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HBM과 CXL도 패키징,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익 산업1부 기자 beepark@donga.com}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총 12GW(기가와트) 규모의 장기 태양광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한화큐셀은 이번 계약이 미국 내 태양광 사업 협력 중 가장 규모가 큰 모듈 공급이라고 강조했다. 한화큐셀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전력을 구매할 태양광 발전소에 2025년부터 2032년까지 8년 동안 매년 1.5GW의 모듈과 EPC(설계·조달·시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12GW는 미국에서 약 18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 규모다. 또 2022년 1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새로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인 21GW의 60% 수준이다. MS는 미국 내 제조된 모듈을 적극 사용해 친환경에너지 산업을 지원하고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늘릴 예정이다. MS는 2025년까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탄소 네거티브는 탄소를 배출량 이상으로 흡수, 상쇄해 실질적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말한다. 한화큐셀은 북미 최대 태양광 통합 생산기지 ‘솔라 허브’를 중심으로 미국 태양광 시장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조지아주 돌턴 공장이 최근 증설을 마치며 연 5.1GW 규모의 모듈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또 카터즈빌에 짓는 새 공장이 연내 완공되면 3.3GW 규모의 잉곳(소재)·웨이퍼·셀·모듈에 이르는 밸류 체인을 갖추게 된다. 카터즈빌 공장의 본격적인 가동은 내년 말로 예정됐다. 미국 태양광 시장은 기업들의 탄소 저감 노력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우드매킨지는 미국 태양광 설치 수요가 올해 36GW에서 2027년 42GW로 3년 뒤 16.7%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구영 한화큐셀 대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전 세계 친환경에너지 수요에 발맞춰 태양광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대형 프로젝트 수행 역량을 확대해 나가겠다”며 “여러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넓히고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지난해 국내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건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해 올 3월 최종 의결할 방침이다. 8일 한국의희망 양향자 의원실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적발한 반도체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13건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22년 9건보다 44%(4건) 증가한 수치다. 최근 반도체 해외 기술 유출은 2016∼2018년 매년 1건 적발되다 2019년 3건, 2020년 6건 등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며 국내 기술을 노린 해외 정부 및 기업들의 탈취 시도가 늘고, 한국 수사기관도 적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적발된 사건 상당수가 과거 수년 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삼성전자 전 부장 김모 씨가 구속 기소된 사건도 2016년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18나노 D램 공정 정보를 중국 창신메모리(CXMT)에 무단으로 넘긴 혐의를 받는다. 기술 유출은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일어나면서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경남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전 직원 2명에 대해 잠수함 설계도면을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기술 유출로 얻는 이득이 적발 시 손실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8일 정기회의를 열고 기술유출 범죄와 관련해 법원 판결의 지침이 되는 양형 기준 범위 등을 심의했다. 양형위는 18일 추가 심의를 거쳐 이르면 다음 주 내 상향된 양형 기준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핵심 기술을 유출한 산업스파이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금으로 물게 하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처리가 무산됐다. 야당이 면책조항이 광범위하다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양 의원은 “지금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며 “유출자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고 사전 예방을 위한 시스템도 철저하게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반도체 기술 유출 38건, 수십조 피해… “정보 다 털린 뒤 발각 많아” [해외로 새는 첨단기술]美-中 갈등 속 한국기술 ‘표적’… 2019년이후 총96건 유출 적발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아산업계 “처벌-제재부터 강화해야… 인력관리 통한 예방조치도 시급” “반도체 기술 탈취는 주로 첨단 공정을 겨냥해 시도되기 때문에 적게는 수천억 원, 많게는 수조∼수십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는다.” 반도체 업계 한 임원은 반도체 기술 유출에 대해 8일 이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는 경쟁사에 기술이 넘어가면 단 한 번의 유출로 한국 기업 및 국가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 중대 범죄인 셈이다. 미국은 2022년 첨단 반도체 및 관련 장비에 대한 대(對)중국 수출 통제에 나선 데 이어 지난해 말부터는 저사양 반도체까지 규제를 추진했다. 특히 중국 기업이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선두를 달리는 한국 기술에 대한 탈취 시도가 갈수록 심화되는 배경이다.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이른바 ‘산업스파이’ 사건은 총 96건이었다. 산업별로는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16건), 자동차(9건), 이차전지(7건) 등 경제 안보 핵심 기술 분야가 뒤를 이었다. 기술 유출은 이미 핵심 정보가 경쟁사에 다 털린 이후 뒤늦게 발각되는 경우가 많아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3일 재판에 넘겨진 전 삼성전자 부장 김모 씨 등은 2016년에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중국 경쟁사로 이직해 D램 18나노 기술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2016년은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18나노 D램 양산에 성공하며 메모리 기술의 새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던 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최첨단 공정인 D램 10나노 초반대나 파운드리 3나노, 2나노에 대한 기술 탈취 시도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며 “뒤늦게 발각된다 한들 이미 해당 기술은 옛날 기술이 돼 있고 경쟁사는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우선적으로 처벌 강화 및 강력한 제재를 통해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인텔에 3나노 공정 기술을 유출하려다 적발된 전 삼성 직원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에 삼성 판박이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임원 출신 최모 씨는 당초 구속 기소됐다가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나 논란이 일었다. 사전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국은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개인의 일탈, 범죄 정도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시스템 문제로 접근한다”며 “사후 제재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막을 예방 조치에 더 많이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인력 관리 시스템이다. 퇴직 또는 이직하는 전문 인력들에 의한 리스크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2022년 우수 인력 유치 및 퇴직 인력 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겠다고 했으나 지난해와 올해 모두 관련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기술 유출은 결국 사람 문제”라며 “국가 핵심기술과 관련된 전문 인력은 아예 퇴직 시 6개월 이상 취업제한을 두거나 다른 곳으로 갈 유인이 안 생기게 보상체계를 강화하는 등 당근과 채찍 모두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는 데 따른 감시 및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에서는 첨단 기술 기업이 해외 사업장에서 외국 정부로부터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을 경우 대통령령으로 보호 조치한다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실제 미국 조 바이든 정부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안보를 이유로 들어 공급망 정보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국내 양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9∼12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새로운 패널 기술들을 대거 선보인다. 특히 IT 및 차량용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중국 등 해외 경쟁 업체와 차별화하는 ‘초격차’ 기술력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7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혁신 기술의 모든 것,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전시장을 꾸린다. 안팎으로 접을 수 있는 차세대 플립형 폴더블 제품을 세계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다. 360도 접을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된 ‘인앤드아웃 플립’이다. 기존 플립 제품은 안으로 접힌 상태에서 정보를 확인하려면 바깥쪽에 또 다른 패널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앤드아웃 플립은 하나의 디스플레이로도 접은 상태에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제품을 더 가볍고 얇게 디자인할 수 있다. 모니터 크기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접히는 ‘폴더블’과 늘리는 ‘슬라이더블’ 기술을 동시에 적용한 제품도 최초로 공개한다. 접혀 있는 폴더블 패널을 펼친 뒤 슬라이딩 방식으로 한 번 더 화면을 확장할 수 있다. 차 안에서 업무를 볼 때 노트북으로 활용하다가 최대로 펼쳐 영화를 시청할 수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또 두께가 액정표시장치(LCD)의 3분의 1 수준인 초박형 OLED 패널과 확장현실(XR) 헤드셋의 핵심 기술인 초고화질 디스플레이 ‘올레도스’도 공개할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의 전시 주제는 ‘더 나은 미래’다. 이번 CES에서 선보일 주요 기술은 화질과 성능 한계를 극복한 대형 OLED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에 최적화된 차세대 차량용 디스플레이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10년 기술력을 결집한 신기술 ‘메타(META) 테크놀로지’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공개한다고 강조했다. 메타에는 유기물의 빛 방출을 극대화하는 기술 등이 적용돼 현존 OLED TV 패널 중 가장 밝은 화면을 구현한다고 한다. 차량용 디스플레이로는 초대형 필러투필러(P2P) 솔루션을 전시한다. P2P는 운전석 디지털 계기판부터 조수석 앞까지 대시보드 전체를 덮는 패널이다. LG디스플레이는 “계기판용 12.3인치와 중앙스크린용 34인치 패널을 이어 붙여 마치 하나의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대시보드 전면을 덮은 듯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또 차량 운행 시 시야각을 조절해 운전자가 조수석 화면을 볼 수 없도록 하는 시야각 제어 기술도 소개할 예정이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이 고금리, 경기 침체 여파로 주춤했지만 프리미엄폰 부문에서는 성장세를 이어가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7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600달러(약 78만 원·도매가 기준) 이상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매출은 전년 대비 6%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프리미엄폰은 판매량 기준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4분의 1(24%)을, 매출액 기준 약 60%를 차지한 것으로 예상됐다. 1000달러 이상 최고급 폰은 전체 프리미엄폰 시장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스마트폰의 중요성이 커지며 소비자들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 기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최신 스마트폰을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됐다”며 “특히 신흥시장에서는 중저가에서 바로 프리미엄폰 시장으로 트렌드가 넘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프리미엄폰 시장의 성장은 중국과 인도, 중동, 아프리카(MEA) 등 지역에서 이끌었고, 이 지역들의 프리미엄폰 판매량은 신기록을 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인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업체별로는 애플이 프리미엄폰 시장 점유율 71%를 차지하며 선두 자리를 유지했지만 점유율은 2022년(75%) 대비 소폭 하락했다. 빈자리는 삼성전자(17%)와 중국 화웨이(5%)가 각각 점유율 1%포인트, 2%포인트를 늘리며 가져갔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프리미엄폰 부문은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실적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업체마다 차별화를 통한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골이 깊어지고 주기는 짧아진 사이클 변화에 맞춰 비즈니스 방법을 찾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일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SK하이닉스 본사인 경기 이천캠퍼스를 찾아 이같이 주문했다. 최 회장은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인공지능(AI) 메모리 분야의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올해 경영방향을 점검했다. 최 회장은 최근 반도체 시장에 대해 “역사적으로 없던 경영환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관점에서 사이클과 비즈니스 예측 모델을 만들어 살펴야 한다”며 “특정 제품군만 따지지 말고 매크로(거시경제)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마켓(시장)도 이제 월드마켓이 아니라 분화된 시장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전체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나라별, 권역별 특수성도 따져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AI 반도체 전략에 대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수요 등 고객 관점에서 투자와 경쟁상황을 이해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글로벌 시장의 이해관계자를 위한 토털 솔루션 접근을 주문했다. SK 관계자는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AI인프라’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산하에 ‘HBM 비즈니스’ 조직을 새롭게 뒀다. 미래 AI 인프라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은 다음 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인 ‘CES 2024’에 참여해 글로벌 AI 트렌드를 살필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AI 인프라의 핵심인 초고성능 메모리 제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삼성전자는 새 플래그십 스마트폰 ‘S24’를 공개하는 ‘삼성 갤럭시 언팩 2024’ 초대장을 글로벌 미디어 및 파트너들에게 발송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언팩에서는 삼성이 처음으로 개발한 인공지능(AI) 폰을 공식적으로 선보일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는 17일(현지 시간) 오전 10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갤럭시 S24를 공개한다. 언팩 타이틀은 AI 모바일의 새 시대를 연다는 뜻으로 ‘Opening a New Era of Mobile AI’이다. 언팩 초대장에는 은색 별모양 3개가 둘러싼 조형물이 가운데 있는데, 이는 갤럭시 시리즈의 AI 기능을 상징하는 심벌로 추정된다. 갤럭시 S24는 삼성 스마트폰 최초의 온디바이스 AI다. 온디바이스 AI는 PC, 스마트폰 등 개별 기기에서 AI 기능을 온전히 소화하는 형태다. 와이파이와 5세대(5G) 이동통신이 끊긴 상황에서도 사람처럼 말하고 챗GPT와 같이 업무를 돕는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간 삼성 스마트폰에서 AI 기능은 빅테크 업체들의 고성능 클라우드 서버에서 처리하고 결과물을 전달받는 방식으로 사용해 온 한계가 있었다. 이를 위해 삼성은 갤럭시 S24에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AI용 최신 칩을 탑재한다. 퀄컴의 스냅드래건8 3세대와 삼성이 만든 엑시노스 2400이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냅드래건8 3세대는 AP 평가 지표 중 하나인 긱벤치 점수에서 7501점(멀티코어 기준)을 받았다. 애플의 최신 AP A17프로(7191점)보다 높은 점수다. 엑시노스 2400은 6520점으로 한 단계 낮았으나,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인공지능 성능(NPU) 부문에서는 애플 칩을 앞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에 따르면 엑시노스 2400의 AI 연산 성능은 전작인 엑시노스 2200 대비 14.7배 강화됐다. 스냅드래건8 3세대는 하이엔드 제품인 갤럭시 S24 울트라에 탑재되고, 일반 프리미엄 제품에는 엑시노스 2200과 나눠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갤럭시 S24에는 삼성이 개발한 생성형 AI ‘삼성 가우스’도 적용돼 다양한 기능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새롭게 선보일 갤럭시에는 AI 실시간 통역 통화 기능을 탑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는 갤럭시 S24를 비롯해 AI 폰이 대거 쏟아지며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올 하반기(7∼12월) 생성형 AI를 활용한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은 AI 제미나이의 경량화 버전 ‘나노’를 스마트폰 ‘픽셀8 프로’에 적용했다.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AI폰 출시에 나서고 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HD현대오일뱅크가 전기차용 윤활유 브랜드를 공식 출시하며 국내 정유 4사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용 윤활유는 그동안 시장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뀌는 트렌드가 갈수록 확대되며 향후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전기차용 윤활유 브랜드 ‘현대엑스티어 EVF’를 출시했다. 조휘준 HD현대오일뱅크 윤활유사업본부장은 “유럽 등 까다로운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 받는 것이 목표”라며 “제품군을 확대해 전기차용 윤활유 수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월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를 통해 ‘ZIC e-FLO’를 출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신규 브랜드는 올 상반기(1∼6월) 중 선보일 계획이다. 앞서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각각 전기차 전용 윤활유 ‘킥스 EV’와 ‘세븐 EV’를 출시했다. 보통 엔진오일로 쓰이는 윤활유가 내연기관 마찰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면 전기차용 윤활유는 모터를 냉각하고 기어 마찰 저항을 줄여 전비(전기차 에너지 소비효율)를 향상시키는 데 쓰인다. 전기차가 달릴 때 배터리에서 상당한 열이 나는데 이는 배터리 수명을 줄인다. 따라서 배터리 과열을 막는 게 중요하다. 전 세계 각국이 탄소 감축을 위해 내연기관차의 비중을 줄이고 전기차를 확대하는 추세여서 정유사들은 새 먹거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윤활유는 국내 정유사 기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10% 수준으로 크지 않지만 영업이익 측면에선 많게는 50%까지도 차지할 만큼 효자 사업이다.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단계여서 앞으로 누가 선점하는지가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산업 표준이 없어 공급 실적이 많을수록 신뢰가 쌓이고 경쟁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윤활유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용 윤활유는 1만 km 주행마다 바꿔주는 내연기관차 윤활유와 달리 차량 제조 단계부터 활용된다”며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장조사기관 BIS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은 연평균 28.8%씩 성장해 2031년 약 174억1290만 달러(약 22조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재계 주요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새해 경영 방침을 전하는 신년사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방어가 아닌 공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기 침체,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단순 우위가 아닌 독보적인 플레이어가 돼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신성장동력 화두로 인공지능(AI)을 제시한 신년사가 많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 “격차 확대 넘어 독보적 경쟁력 갖춰야”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은 2일 시무식에서 경계현 반도체(DS) 부문장(사장)과의 공동 명의 신년사를 통해 “핵심 가치인 초격차 기술 등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으로 추진하자”며 “경쟁사와의 격차 확대를 넘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삼성전자만의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하자”고 강조했다.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은 “2024년을 글로벌 경쟁자와 어깨를 겨루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톱 기업으로 전진하기 위한 ‘도움닫기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올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하고 통합 항공사 출범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업·기술 역량을 확보해 톱 티어 지위를 공고히 해 나가자”고 말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차세대 제품 및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글로벌 최고 수준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했다. 차별화를 위한 ‘도전’과 ‘혁신’도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생존을 넘어 글로벌 챔피언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인 한화만의 지향점이 필요하다”며 “차원이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 혁신하는 ‘그레이트 챌린저’가 되자”고 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하기로 한 일은 반드시 해낸다는 강한 신념으로 끈질기게 백 번, 천 번, 만 번을 도전하자”고 밝혔다.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삼양그룹의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을 새로운 삼양으로 다시 태어나는 변화의 원년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만큼 반드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각오로 임해 달라”며 포트폴리오 전환, 현금 흐름(캐시플로) 경영,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3대 경영 방침으로 강조했다.● AI 시대에 맞춰 혁신해야 신년사에 AI가 자주 등장한 점은 지난해와 다른 모습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디지털 전환을 넘어 AI 일상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생성형 AI 등 AI 트랜스포메이션(전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사업 혁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는 압도적 우위의 핵심 역량을 가진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을 바탕으로 AI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고금리 고물가에 경기 부진까지 3중고가 겹친 경영 환경 속에서 기본에 집중해 체질과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많이 나왔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그룹의 가치 증대를 위한 재무구조 개선 및 글로벌 성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우리 그룹의 가장 기본인 제조 안정화와 압도적인 제조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했다.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은 “유통업의 본질인 상품의 경쟁력 확보를 통해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내부 자산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비즈니스의 근본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밝혔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한재희 기자 hee@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내륙의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수도 리야드. 작년 12월 26일(현지 시간) 찾은 이 모래빛 도시에서 수많은 덤프트럭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이 있다. 사우디 첫 도시철도로 770만 시민의 발이 돼 줄 ‘리야드 메트로’다. 2013년 착공한 이 경전철은 총 168㎞ 길이의 6개 노선으로 4월 동시 개통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삼성물산은 킹칼리드 국제공항에서 금융지구까지 길게 뻗은 노란색의 지상철도 4호선을 책임지고 있다. 사우디의 관문을 한국의 건설사가 맡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1조 달러(약 1300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시티’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사우디 북서부 홍해 인근 2만6500㎢(서울 면적의 44배)에 미래도시를 짓는 사업으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네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수직도시 ‘더 라인’의 철도용 지하터널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수출 한파 속에 한국 경제는 크게 위축됐지만 중동이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에 대한 수출은 7.3% 늘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교역량이 줄면서 한국 수출이 3년 만에 7.4% 줄어들었고,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수출이 급감(―19.9%)한 것을 감안하면 큰 성과다. 특히 지난해 1∼11월 기준 사우디(11.3%), 아랍에미리트(UAE·8.7%), 카타르(57.9%) 등 중동 3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11.2%에 이른다. 정부가 지난해 말 중동 6개국 경제협력체인 걸프협력이사회(GCC)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관세 장벽이 낮아져 앞으로 한국 방산, 음식, 뷰티 등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중동이 한국의 실질적인 수출 대안 시장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위기 때 중동의 건설과 산업 항만 공사를 수주했던 기업들은 이제 중동 국가들의 탈(脫)탄소 전환을 위한 미래도시 구축, 모빌리티와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장은 “중동은 아직 인구 증가세가 가파르고 성장 역동성이 큰 지역”이라며 “향후 중동 시장이 점차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중동 수출, 건설서 車-전기부품 다변화… 사우디 수출 46% 급증 〈1〉 중동, 미래시장-투자 큰손으로對中수출 20%↓ 중동3국은 11%↑… 車수출, 작년 사우디에만 1.7조원중동국, 오일머니 앞세워 韓투자… UAE 韓투자액 4년새 800배로 중동이 과거의 석유 수입국을 넘어 한국의 미래 시장이자 한국에 대한 ‘큰손’ 투자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주요국들과 달리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무슬림 인구는 2050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억 명에 이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수출 한파를 맞은 한국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주요 3국 대상 수출은 지난해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이 수출 다변화를 위한 핵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신(新)중동, 석유 수입국 넘어 미래 시장으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1년 전보다 7.4% 줄어든 6326억9000만 달러(약 821조9000억 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수입은 12.1% 줄어든 6426억7000만 달러였다. 무역수지는 99억7000만 달러 적자를 보였다. 특히 한국에 대규모 흑자를 안겨줬던 대중(對中) 수출은 중국 경기 둔화로 인해 전년 대비 19.9% 줄어든 1248억4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시절이었던 2022년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신시장으로 중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11월까지 중동 3국(사우디, UAE, 카타르) 대상 수출액은 94억5688만 달러로 11.2% 성장했다. 2019∼2023년(11월) 약 5년간 추이를 살펴봐도 한국 전체 수출액이 6.04% 늘어나는 동안 중동 3국 대상 수출액은 25.7% 급증했다. 특히 카타르 대상 수출액은 전년 11월까지 57.9% 급증했다. 사우디도 같은 기간 11.3% 성장했고, 2022년엔 46.3% 급등하며 명실상부 신시장으로 떠올랐다.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프리카중동팀장은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수출국 다변화를 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중동은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원유 수입국’ 혹은 ‘건설 신화’로만 알려졌던 과거와 달리 최근 중동 수출을 견인하는 것은 자동차다. 자동차는 대표 수출국인 사우디를 기준으로 작년 수출액 1위(12억9900만 달러)를 기록한 품목이다. 이 외에도 변압기 등 전기부품(2억5900만 달러), 불도저 등 건설 중장비(1억5000만 달러), 고무 타이어(1억4000만 달러) 등이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일머니’ 앞세운 큰손, 한국 투자도 확대앞서 올해 3월 울산 울주군에선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 원이 투입된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이 열렸다. 샤힌은 아랍어로 ‘매’를 뜻한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기업인 아람코가 대대적으로 투자한 이 석유화학 생산 공장은 2026년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처럼 최근 중동 주요 국가들에서 오는 ‘오일머니’도 국내 산업계 곳곳에 투입되며 한국 산업계에 새 활력이 되고 있다. 산업부 외국인투자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동 3국의 국내 투자액은 일제히 급등했다. 사우디가 2019년 409만 달러에서 올해 9월 말 기준 4억4900만 달러로 늘었고, UAE는 20만 달러에서 1억5973만 달러로 늘었다. 중동 국부펀드의 국내 기업 투자도 활발하다. 지난해 1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4억8200만 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6월까지 넥슨 지분을 총 2조5000억 원어치 사들이기도 했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장은 “중동의 많은 국가가 화석연료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외국 기업들과의 관계 확대, 투자 유치를 국가 전략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러한 요소들이 중동을 새로운 미래 파트너로 주목받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리야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국내 반도체 산업은 공정 고도화와 시설 확충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지만 막상 이를 뒷받침해 줄 인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주요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까지 신설했지만, 의대 쏠림 현상 등으로 인력 사전 확보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28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한양대 등의 반도체 계약학과에서 정시모집 인원의 155.3%(추가 합격자 포함)에 달하는 학생들이 등록을 포기했다. 2024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도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에서 각각 50.0%가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 포기자 상당수가 의예과로 빠져나간 것으로 교육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입학 후 이탈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하고도 반수 등을 위해 중간에 이탈하는 학생은 매년 학교마다 1, 2명씩 꼬박꼬박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학비 면제에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취업이 보장되는데도 불구하고 의·약대 진학을 위해 중간에 그만두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 인력난은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31년 기준 국내 반도체 인력은 필요 규모에 약 5만 명이 모자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9월 서울대 강연에서 “사람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회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고 호소했을 정도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전문 교수도 부족하다. 한 지방대 반도체학과 교수는 “중요한 것은 학생을 단순히 많이 뽑는 게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라며 “지금 한국 반도체 교육 현실은 똑똑한 학생도 부족하지만 키워낼 교수도 턱없이 모자란다”고 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새해도 환경이 녹록지 않다.” 재계 단체장들은 28일 신년사를 통해 글로벌 경영환경이 내년에도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며 정부, 기업, 국민, 지역사회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헤어질 결심’을 해야 했지만 올해는 ‘뭉쳐야 산다’는 의지로 어려움을 잘 이겨내야 한다”며 “기업과 기업, 기업과 노동자, 민간과 정부 사이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헤어질 결심은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공급망 재편 등 올해 급격히 변한 시장 상황을 가리킨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새해는) 세계 경제성장률이 전년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며 “경제계는 적극적인 고용과 선제적 투자로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도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고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뒤떨어진 관행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며 “정부의 킬러규제 혁신이 아직 기업들이 체감하기엔 역부족인 만큼 좀 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내년 1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4’에 국내 주요 기업 총수와 경영진이 대거 참석한다. 장기화되는 경기 침체와 공급망 재편 등 갈수록 커지는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새 먹거리를 찾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CES는 특히 인공지능(AI)을 토대로 고도화된 기술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며 최대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내년 1월 9∼12일(현지 시간) 열리는 CES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올해 CES 2023에 이어 내년에도 연달아 CES 현장을 찾는 것이다. 정 회장이 CES에 참석하는 것은 2년 만이다. 정 회장이 2022년 CES에서 로봇 개 ‘스팟’을 소개했던 것처럼 직접 발표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4대 그룹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 대표는 참석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이 개막 전날 열리는 프레스 콘퍼런스 대표 연사로 나서 삼성의 AI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LG는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AI로 연결·확장되는 미래 고객경험’을 주제로 발표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는 정 부회장이 CES 기조연설자로 나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육상 혁신 비전인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Xite Transformation)’을 직접 소개한다. CES 2024의 주제는 ‘올 온(All On)’으로 여러 산업의 각종 기술이 모두 모여 전 세계의 과제를 해결하자는 뜻이다. 핵심 관전 포인트는 AI다. 챗GPT 등 생성형 AI의 급부상과 함께 고도화된 AI에 대해 기업들이 어떤 신기술을 선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CES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의 게리 셔피로 회장도 10월 국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CES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AI와 지속 가능성이라고 꼽았다. 삼성은 보다 진화된 AI 기술을 바탕으로 핵심 슬로건인 ‘초연결’ 생태계를 어떻게 구현할지 주목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도화된 AI를 접목해 보다 일상 생활에 밀착하고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똑똑한 가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삼성만의 독보적인 ‘푸드(식품) 생태계’를 전시할 계획이다. AI 비전(시각 솔루션)을 통해 냉장고 내 식재료를 관리하고 인덕션에 연동된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통해 레시피를 설명해 주는 기술 등으로 구성됐다. LG전자도 AI와 가전 플랫폼 ‘LG 씽큐’를 중심으로 업그레이드한 스마트홈 기술을 뽐낼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는 스마트홈 생태계의 일환으로 AI 로봇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를 처음 공개한다. 두 다리에 달린 바퀴와 자율 주행 기술로 집안 곳곳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장애물을 넘고 카메라, 모니터를 통해 집안 관리를 돕는다.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수 있고, 가전기기들과도 연동해 특정 공간에만 조명을 켜거나 에어컨을 가동할 수도 있다. 모빌리티에서의 소프트웨어(SW) 기술 발전도 주목할 포인트다. 현대차는 이번 CES 참가 주제를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으로 정하고 모빌리티 혁신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빌리티에서 SDV(소프트웨어중심 자동차)는 이미 대세가 된 큰 흐름”이라고 했다. 현대차가 행사에 참석해 부스를 차리는 것도 2년 만이어서 어떤 기술을 새롭게 선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는 ‘수율’과 ‘스피드’다. 수율이 공장이 완공된 후 생산성을 높이는 양산 기술을 얘기한다면 스피드는 투자 결정 및 실행과 관련이 깊다. 워낙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산업이어서 첨단 공정 기술 개발만큼이나 그 기술을 활용할 팹(공장)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반도체는 타이밍 싸움’이라는 말처럼 한 발이라도 앞서 고객사를 확보하고 제품을 양산하는가에 따라 향후 5년, 10년 후 입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시의 710만 m² 부지에 300조 원을 투자해 조성하는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는 2026년 말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을 위한 인프라 계획을 수립하고 이해당사자 간 의견 수렴을 진행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사업 난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장 설립에 필요한 환경영향평가나 용수 및 전력 확보 문제를 놓고 지자체나 지역구 의원, 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자 간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하이닉스가 2019년 2월 발표한 120조 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의 경험이 있어서다. 이 클러스터는 환경영향평가 및 지자체 인허가 지연 등으로 팹 착공 시점이 기존 계획인 2022년에서 2025년으로 3년 미뤄졌다. 반면 경쟁국은 계획 수립부터 인프라 조성, 착공, 준공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짓는 파운드리 1공장은 2021년 10월 계획이 발표됐고, 지난해 4월 착공했다. 통상 반도체 공장은 계획 발표 후 착공까지 2년이 걸린다는데 TSMC 공장은 겨우 6개월만 소요된 것이다. 이 공장은 내년 2월 준공 예정이다. 보통 5년이 걸릴 팹 건설이 2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끝나는 것이다. 구마모토현 지자체가 지하수로 공업 용수나 도로 정비 문제 해결에 직접 발 벗고 나서는 등 공장 부지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일본 정부도 투자금의 40%인 4760억 엔(약 4조430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공사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지원 사격을 했다. 왕메이화(王美花) 대만 경제부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TSMC 일본 공장은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일본이 반도체 부활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배경에는 산업 생태계에 필수적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여전히 핵심 축을 맡고 있다는 자신감도 자리하고 있다.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이 이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위해서라도 일본 내 생산기지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미국 안보신기술센터(CSET)에 따르면 일본이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56%로 세계 1위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특수 화합물 공급망은 일본이 틀어쥐고 있다는 평가다. 반도체 노광장비에 쓰는 포토레지스트가 대표적이다.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한 감광제(感光劑·빛반응 물질)로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 시장의 90% 이상은 JSR, 도쿄오카공업, 스미모토화학 등 일본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성형 및 접착에 쓰이는 폴리이미드는 전체의 90%, 불순물을 씻어내는 고순도불화수소는 70%를 차지하며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 역시 일본 신에쓰와 섬코가 글로벌 1, 2위 업체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은 또 글로벌 장비 시장에서 전공정 29%, 후공정 44%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도쿄일렉트론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램리서치, 네덜란드 ASML과 함께 글로벌 4대 장비 회사다. 주요 반도체 전·후공정의 대부분에 도쿄일렉트론 장비가 안 쓰이는 곳이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특히 웨이퍼를 깎는 식각과 막을 형성하는 증착 장비에서 유명하다. 또 다른 핵심 공정인 노광장비 분야에서는 캐논과 니콘이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주로 범용 노광장비에 주력해 왔으나 현재 ASML이 독점하고 있는 미세공정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교만함이 일본 반도체의 실패 원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알아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일본 반도체 기업 연합인 라피더스의 고이케 아쓰요시 사장은 10월 일본 경제매체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이 왜 쇠퇴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1980년대 전 세계 50% 이상에 달했던 일본 반도체 점유율은 현재 10%도 채 되지 않는 한 자릿수(7%)까지 떨어졌다. 고이케 사장은 “과거 일본에는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위권에 여러 기업이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기세가 있었다”며 “덕분에 일본 제조 산업이 순환하며 엄청난 효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기업들이 국제적 연계, 국가 지원, 산학 연계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달라졌다.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 기업, 대학이 한 몸처럼 똘똘 뭉쳐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반도체 전략에 깊게 관여하는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의원은 최근 “반도체를 키우는 건 산업 진흥이 아니라 국가 전략이다. 반도체를 제패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특히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도요타, 소니 등 일본 기업이 연합해 세운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부활의 상징으로 꼽힌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2n(나노·1n는 10억분의 1)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