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 주변 4강 대사 가운데 유일하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불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8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전날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1주년 행사에 해리스 대사가 아닌 로버트 래프슨 부대사가 대사대리 자격으로 참석했다. 4강 가운데 대사가 직접 오지 않은 것은 미국이 유일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안드레이 쿨리크 주한 러시아대사는 참석했다. 행사를 앞두고 통일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해당 대사관 등에 ‘대사급 인사’의 참석을 요청했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은 “다른 일정상 참가하기 어렵다”며 불참을 통보해 왔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주한 미대사관 측은 동아일보에 “해리스 대사는 미 해군 함정 명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오키나와)에 체류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4·27 1주년을 닷새 앞두고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의 이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절충안인 ‘굿 이너프 딜’에 대해 “사실 (빅딜과 스몰딜의 사이에 있는) 중간 단계가 뭔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황인찬 hic@donga.com·한기재 기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지 28일로 딱 두 달이 됐다. 북-미 간 팽팽한 대치 국면은 여전하지만 북-러(25일) 중-러(26일) 미일(26, 27일) 등 한반도 주변국들은 잇달아 정상회담을 이어가고 있다. 미일 정상은 5, 6월에 또 만날 예정이고 북-중 정상회담도 6월 전후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비핵화 논의 트랙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듯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물밑 징후도 별로 없다. 급기야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는 남북 정상이 모두 불참하는 ‘주인공 없는 행사’가 되어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점차 ‘북핵 외딴섬’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만 빼고 분주한 북핵 주변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스트 하노이’ 첫 대외행보로 러시아를 찾은 이후 비핵화 당사국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빅딜 압박에 북-중-러가 스크럼을 짜자 미일이 급속히 밀착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習近平)과 북-러 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 구상(로드맵)을 갖고 있다”면서 “이 로드맵의 첫 번째 부분은 상당 정도 이행됐으며 이제 두 번째 부분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중-러의 기존 비핵화 구상에서 ‘쌍중단(雙中斷·북한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이 이행됐으니 이젠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 동시 진행)’에 나설 때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이젠 빅딜 압박에서 물러나 북한과 눈높이를 맞춰야 할 때라고 강조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간) 북-러 회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우릴 돕고 있는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협조의 공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앞으로도 대북제재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 관련국 정상들의 광폭 행보는 다음 달 이후에도 예고돼 있다. 당장 시 주석의 평양 방문, 푸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을 만나기 위해 다음 달 25∼28일 일본을 국빈 방문한다. 6월 28, 29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文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1주년인 27일 별다른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청와대 관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1주년 기념식에는 참석하는 대신 영상 메시지를 보내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 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의 불참으로 ‘반쪽 행사’가 됐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올 상반기에도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현재로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은 하나하나 이행되고 있다”면서 △전사자 유해 발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을 사례로 거론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 단독으로 유해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사무소 남북 소장급 회의가 9주째 열리지 않고 있는 만큼 현실과는 온도 차가 있다. 이번 행사를 연출한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행사였다. (북한이 참석하지 않아) 반쪽짜리 행사라는 말도, 지금 기념행사나 하고 있을 때냐는 말들도 다 담아 들었다. 이해도 간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럼 통일이 그렇게 쉽게 될 거라 생각했단 말입니까?’라며 지난 판문점 회담 때 힘들다고 한숨 쉬던 제게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해주었던 말이 준비하는 내내 생각났다”고도 적었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북-러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비(非)선의적인 태도를 취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지경”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전했다. 하노이 합의 결렬 이후에도 빅딜 압박을 유지하는 미국에 대해 ‘비핵화 대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위협한 것. 동시에 북한 매체들은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하루 앞두고 한국 정부에 “좌고우면하지 말라”는 등의 불만을 터뜨렸다. 김 위원장은 2박 3일간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3시경(현지 시간) 귀국 특별열차에 탑승했다.○ 판문점 선언 1주년 하루 앞두고 “모든 것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말한 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근 조선반도와 지역정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또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압박 기류에 변화가 없으면 군사적 도발을 포함해 대응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위협한 것. 북한 매체들은 이날 한국 정부에 대해선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고 좌고우면하지 말라”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북남선언 이행에서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통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일에 신경을 쓰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 보조를 맞추고 실천적 행동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했다.○ 푸틴 방북 약속까지 받고 웃으며 돌아간 김정은 도착할 때 궂었던 날씨와 달리 26일 김 위원장이 떠날 때 블라디보스토크의 날씨는 화창했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진행된 환송식에 검은색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등장했으며, 도착 때처럼 코트 안에 오른손을 집어넣는 제스처도 잠시 취하며 환하게 웃었다. 러시아 군악대는 북한 국가를 연주한 뒤 ‘아리랑’을 두 번 연주하며 ‘맞춤형 환송’을 했다. 전용차를 타고 온 김 위원장은 상석인 오른쪽 뒷좌석에서 내렸다. 동시에 리용호 외무상이 전용차 조수석에서, 최선희 제1부상이 김 위원장 옆자리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리용호와 최선희가 김 위원장과 전용차에 함께 탄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전날 회담에도 유일하게 배석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외무성 투톱을 향한 김 위원장의 신뢰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날 예상됐던 일정의 절반가량을 소화하고 일찍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인테르팍스통신은 “김 위원장이 총 4개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10시에 떠날 예정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계획이 축소됐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태평양함대사령부 인근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방문한 바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단독회담 내용을 전하며 “(북-러 정상이) 새 세기를 지향한 조로(북-러) 친선관계의 발전을 추동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조치들에 대하여 합의했으며, 당면한 협조 문제들을 진지하게 토의하고 만족한 견해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핵화 및 경협과 관련해 북한의 요구를 러시아가 일정 부분 수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이 편리한 시기에 북한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하자 푸틴 대통령이 “쾌히 수락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hic@donga.com·한기재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북-러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비(非) 선의적인 태도를 취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지경”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전했다. 하노이 합의 결렬 이후에도 빅딜 압박을 유지하는 미국에 대해 ‘비핵화 대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위협한 것. 동시에 북한 매체들은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하루 앞두고 한국 정부에 “좌고우면 말라” 등의 불만을 터뜨렸다. 김 위원장은 2박 3일간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3시경(현지시간) 귀국 특별열차에 탑승했다. ● 판문점 선언 1주년 하루 앞두고 “모든 것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말한 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근 조선반도와 지역정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또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압박 기류에 변화가 없으면 군사적 도발을 포함해 대응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위협한 것. 전날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6자 회담’ ‘체제 보장’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북한 매체들은 이날 한국 정부에 대해선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고 좌고우면 하지 말라” 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북남선언이행에서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통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일에 신경을 쓰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 보조를 맞추고 실천적 행동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했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하루 앞두고 한국과 미국의 제재 공조에 동시다발적인 불만을 터뜨린 셈이다. ●푸틴 방북 약속까지 받고 웃으며 돌아간 김정은 도착할 때 궂었던 날씨와 달리 26일 김 위원장이 떠날 때 블라디보스토크의 날씨는 화창했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진행된 환송식에 검정색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등장했으며, 도착 때처럼 코트 안에 오른손을 집어넣는 제스처도 잠시 취하며 환하게 웃었다. 러시아 군악대는 북한 국가를 연주한 뒤 ‘아리랑’을 두 번 연주하며 ‘맞춤형 환송’을 했다. 북한 측 의전팀은 현장에 몰린 인파 규모를 파악하는 데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북측 의전 당국자는 김 위원장 도착 약 20분 전 역 앞의 거리의 통제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며 취재진에게 들릴 정도로 “군중은 얼마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날 예상됐던 일정의 절반 가량 소화하고 일찍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인테르팍스통신은 “김 위원장이 총 4개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10시에 떠날 예정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계획이 축소됐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태평양함대사령부 인근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방문한 바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단독회담 내용을 전하며 “(북러 정상이) 새 세기를 지향한 조로(북-러) 친선관계의 발전을 추동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조치들에 대하여 합의했으며, 당면한 협조 문제들을 진지하게 토의하고 만족한 견해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핵화 및 경협과 관련해 북한의 요구를 러시아가 일정 부분 수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이 편리한 시기에 북한 방문을 초청하자 푸틴 대통령이 “쾌히 수락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기자 hic@donga.com블라디보스토크=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처음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사실상 ‘비핵화 중재자’ 역할을 요청하면서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 지형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기존 6자회담 체계의 복원까지 주장했다. 지금까지 북-미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비핵화 협상에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참여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를 곧 미중에 전하겠다고 밝힌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향후 비핵화 협상의 키가 될 듯하다.○ 푸틴 “힘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 개입 공식화 김 위원장은 이날 단독회담, 확대회담을 통해 5시간가량 푸틴 대통령과 비핵화 등 현안들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연회에서 “지역의 평화 안전 보장을 위한 문제들 그리고 공동의 국제적 문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략적이고 전통적인 조-러(북-러) 친선 관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며 전략적 방침”이라고 밝혔다. 집권 후 첫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 압박을 피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주도권을 쥘 모멘텀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 이에 푸틴 대통령은 “북한 속담에 ‘힘을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게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를 통해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북-러 공조 방향은 이후 열린 푸틴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에서 구체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도 비핵화를 원하고 있으며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해 논의할 땐 6자회담 체계가 가동돼야 한다. 이것은 북한의 국익에 부합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미국의 보장 메커니즘은 충분치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 있어선 다자 안보 협력 체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혔던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다자협상’ 구상에 직접 호응한 것이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비핵화 중재자’를 요청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김 위원장이 직접 북한 측의 입장을 미국 행정부와 다른 정상들에게 알릴 것을 희망했다”면서 “내일(26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얘기할 것이고 미국 행정부에도 오늘 회담 결과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했다. ○ ‘6자회담’은 북의 또 다른 판 흔들기 김 위원장이 이날 직접 비핵화 다자논의 해법 구상을 푸틴 대통령에게 밝혔는지는 불분명하다. 비핵화 판도에 개입하려는 러시아의 강한 의지가 섞였을 수도 있다. 다자논의가 되면 비핵화 협상 타결에 시간이 걸려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는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김 위원장도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며 ‘톱다운식 해결’을 선호해 왔다. 게다가 6자회담은 2005년 ‘9·19공동성명’과 후속 합의들을 도출하기도 했지만, 결국 핵시설 검증 및 시찰 방법에 대한 관계국들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실패로 끝난 협상 프로세스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 이후에 미국이 ‘빅딜’ 기조를 두 달 가까이 유지하자 북-러 정상회담, 6자회담 카드를 흔들며 틈을 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담에 대해 AFP통신은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압박하는 워싱턴에 은근한 한 방을 먹였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회담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국내에서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며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hic@donga.com / 이지훈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처음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사실상 ‘비핵화 중재자’ 역할을 요청하면서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 지형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그 방식으로 기존 6자 회담 체제의 복원까지 주장했다. 지금까지 북미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비핵화 협상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참여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를 곧 미중에 전하겠다고 밝힌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가 향후 비핵화 협상의 키가 될 듯 하다. ● 푸틴, “힘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며 개입 공식화 김 위원장은 이날 정상회담, 확대회담을 통해 5시간 가량 푸틴 대통령과 비핵화 등 현안들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연회에서 “지역의 평화 안전 보장을 위한 문제들 그리고 공동의 국제적 문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략적이고 전통적인 조러(북러) 친선 관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며 전략적 방침”이라고 밝혔다. 집권 후 첫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 압박을 피하면서 비핵화 논의의 또 다른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보겠다는 것. 이에 푸틴 대통령은 ‘힘을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북한 속담을 인용하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를 통해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북-러 공조 방향은 이후 열린 푸틴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에서 구체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 행정부에서도 비핵화를 원하고 있으며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보장 체제가 얼마나 실질적이고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해서 논의를 할 땐 6자 회담 체계가 가동 돼야 한다. 이것은 북한의 국익에 부합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한국과 미국의 보장 매커니즘은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본다. 북한에 있어선 다자안보협력체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고도 했다. 6자 회담은 2005년 북한 비핵화 원칙·목표를 담은 ‘9·19 공동성명’과 관련 후속 합의들을 도출하기도 했지만, 북미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검증·시찰 방법을 두고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 협상 프로세스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비핵화 중재자’를 요청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직접 북한 측의 입장을 미국 행정부와 다른 정상들에게 알릴 것을 희망했다”면서 “내일(26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얘기할 것이고 미국 행정부에도 오늘 회담 결과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했다. 12일 시정 연설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 하지 말라”고 했던 김 위원장이 중재자 바통을 푸틴 대통령에게 넘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6자 회담’은 북의 또 다른 판 흔들기 김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다자논의 해법 구상을 푸틴 대통령에게 밝혔는지는 불분명하다. 비핵화 판도에 개입하려는 러시아의 의지가 섞였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자논의가 되면 비핵화 협상 타결이 시간이 결려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는 더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김 위원장도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며 ‘톱다운식 해결’을 선호해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미국의 ‘빅딜’ 기조를 두 달 가까이 유지하자 북-러 정상회담, 6자 회담 카드를 흔들며 틈을 노리는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 회견 전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핵 6자 회담 재개 가능성에 대해 “현재의 톱다운 방식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기자 hic@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 대해 “지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공동으로 조정해 나가는 데 있어서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4일 특별열차를 통해 러시아의 국경도시인 하산 도착 후 러시아 국영 TV채널 ‘로시야’와의 인터뷰에서 “뜨거운 러시아 인민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으면서 이번 방문이 매우 유익하고 성공적인 방문이 되며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많은 문제 등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집권 후 자신의 첫 방러이자 8년 만에 재개된 북-러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양자 관계 강화 등과 관련해 폭넓게 의견 교환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하산 역에서 진행된 러시아 인사들과의 환담에서 “러시아 땅을 밟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개발부 장관이 “이번 방문이 좋은 추억으로 가슴에 남길 바란다”고 하자 “이번 방러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이는 첫 번째 행보일 뿐이다”라고도 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향후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력을 예고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열차를 통해 이날 오후 5시 48분 정상회담 장소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기차역 앞에선 군 의장대 연주 속에 의장대 사열 행사가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이어 숙소인 루스키섬 내 극동연방대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25일 오후 1∼2시에 극동연방대에서 첫 단독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어 확대회담과 환영회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김 위원장 집권 후 첫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경계 메시지를 보냈다. 미 국무부는 23일(현지 시간)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언론 질의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같은 목표에 전념하고 있다. 세계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이라고 했다.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파견 노동자 비자 연장 등 제재 완화를 모색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교차관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양측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계속 대화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hic@donga.com·한기재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러시아를 처음 방문해 북-러 관계 강화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러시아는 중국 못지않은 북한의 오래된 군사, 경제적 우방이지만 집권 7년 차에 ‘늦깎이’로 찾은 만큼 향후 긴밀한 광폭 교류를 예고한 것. 급성장한 중국에 밀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예전만 못했던 러시아 또한 이런 김 위원장을 적극 껴안으며 환대했다.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프로세스에 러시아 변수가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 환한 표정의 김정은, ‘즉석 인터뷰’ 응하기도 특별열차를 타고 북-러 국경을 넘은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반경(이하 현지 시간) 연해주 최남단인 하산역에 도착했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교차관 등 러시아 인사들이 환영인사로 나왔다. 김 위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레드카펫이 깔린 러시아 땅을 처음 밟았다. 이어 하산역 인근 ‘러시아-조선 우호의 집’으로 이동해 환담을 나눴다. ‘김일성의 집’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1986년 김일성의 구소련 방문을 앞두고 기념해 만든 100m² 규모의 단층 목조 건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방러 때 들른 바 있다. 김일성-김정일 때 활발했던 북-러 교류를 복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전통 관례에 따라 러시아는 전통복 차림의 여아 3명이 빵과 소금을 쟁반에 담아 선사했고, 김 위원장은 빵을 먹었다. 빵은 러시아 말로 ‘흘레프’, 소금은 ‘솔’인데 이 두 말을 합하면 단순히 ‘빵과 소금’이란 뜻뿐만 아니라 ‘환대’란 뜻도 된다. 이례적인 현장 인터뷰도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하산 도착 직후 러시아 국영 TV채널 ‘로시야’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북-러 회담에 대해 묻자 “지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공동으로 조정해 나가는 데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푸틴과의 첫 만남은 25일 오후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오후 5시 48분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2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코즐로프 장관 등의 영접을 받은 뒤 기차역 앞 도로를 통제해 마련한 광장에서 의장대를 사열했다. 러시아 군악대가 북한 국가를 연주하자, 김 위원장은 모자를 벗고 오른손을 가슴에 올렸다. 이날 김 위원장을 근접 수행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의 모습만 눈에 띄었을 뿐 앞서 해외 일정에서 늘 ‘그림자 수행’을 했던 김여정 제1부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0여 분간의 환영행사를 마친 김 위원장은 전용 차량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를 타고 회담장과 숙소가 있는 극동연방대로 향했다. 근접 경호를 하는 ‘방탄 경호단’ 12명은 이번에도 전용차가 속도를 낼 때까지 차를 둘러싸고 같이 뛰었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현지 시민들은 김 위원장 도착 장면을 보려고 자리싸움까지 벌이며 큰 관심을 보였다. 북한 인공기를 들고 나온 시민도 보였다. 행사 뒤엔 김 위원장이 밟았던 레드카펫 위에 올라가거나 특별열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북한 경호원은 ‘행사가 잘 진행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숙소로 들어간 뒤 외부로 나오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망원렌즈로 숙소 동태를 살피기 어려운 먼 거리까지 취재진의 접근이 차단됐다. 김 위원장은 25일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에도 26일 프리모스키 수족관 방문 등 시찰을 마치고, 27일 오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블라디보스토크=한기재 record@donga.com·황인찬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문을 하루 앞둔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겉으론 조용한 듯하면서도 북-러 정상회담 준비로 하루 종일 분주했다. 수송기에 실려 이날 도착한 김 위원장의 전용 차량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2대가 블라디보스토크 거리를 활보했고, 회담장 주변 도로엔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크렘린궁은 이날 북-러 정상회담을 공식 발표하며 “두 정상이 25일 만나 한반도 핵 문제의 정치적, 외교적 해법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8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만남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회담장에 벌써 도착한 김정은 마이바흐 기자가 찾아간 정상회담장인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 교정은 잔뜩 흐린 날씨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북측 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 등 캠퍼스 곳곳은 회담 준비로 분주했다. 회담이 열릴 것으로 꼽히는 교정 내 S(스포츠센터)동 앞 도로 가로등에는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가 내걸려 있었다. 현지 언론들은 이곳에서 북-러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두 정상이 러시아 측에서 준비한 발레 공연인 ‘백조의 호수’를 관람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경비도 한층 강화됐다. 외부인의 S동 진입이 금지됐고, 입구엔 일제히 검색대가 설치됐다. 이날 오전 11시경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수송기 한 대에 실려 이송된 김 위원장의 전용차량인 마이바흐 2대는 극동연방대 내 호텔 앞 임시 천막 안에 주차돼 있는 것으로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호텔 출입구에도 흰색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임시 천막에서 나와 주위를 살피는 북측 경호원에게 “잘 준비되고 있느냐”고 묻자 인상을 쓴 채 아무 말 없이 천막으로 되돌아갔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 이후 17년 만의 북한 최고지도자 방문에 현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캠퍼스에서 만난 현지 대학생은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 캠퍼스에서 벌어지게 돼 기대된다”고 했다. ○ 하노이에선 시찰 생략한 김정은, 러시아선 광폭 행보 열차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은 23∼27일 4박 5일간의 방러 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현지 매체인 블라디보스토크뉴스, 코메르산트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23일 평양을 출발해 함북 나선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24일 오전 11시(한국 시간 오전 10시)경 하산스키를 통해 러시아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오후 4, 5시경 도착할 예정이다. 25일 정상회담 후엔 26일 극동연방대에서 북한 유학생들을 만나고, 회담장 인근 프리모르스키 수족관, 러시아 태평양함대 군사역사박물관 등을 찾을 것으로 현지에선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25일 회담 이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지만 김 위원장은 ‘나 홀로 시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푸틴 대통령은 24일 오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별도의 일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오후에 출발한다고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시차가 7시간 빠른 것을 감안하면 24일 오후나 25일 오전 회담장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 출장을 온 상태라 김 위원장과 24일 만찬을 가질 가능성도 거론된다.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hic@donga.com·한기재 기자}
8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24일 만찬이 유력한 것을 감안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35)은 늦어도 23일 열차로 평양을 출발해 회담 장소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르면 24일 처음 회동하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67)의 ‘케미스트리’가 어떻게 펼쳐질지도 관심사다. 나이 차이가 32세이지만 공통점도 여럿 있다는 양 정상이 첫 만남에서 찰떡궁합을 과시한다면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또 다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두 정상은 초면이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2001년,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3번 회담한 바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따로 본 적은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통해 방러 초청을 받은 지 11개월 만에 화답했다. “두 정상 간 케미스트리는 신비할 정도”(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3월 15일 브리핑)라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만큼 김정은-푸틴 조합이 긴밀함을 보일지도 관심이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20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집권 7년 차를 맞은 김 위원장도 장기 1인 집권 체제를 탄탄히 한 공통점이 있다. 서방의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처지도 같다. 무엇보다 미국이 강조하는 북핵 ‘빅딜’에 맞서 중국과 함께 ‘동시적·단계적 해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지적 관계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의전팀이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나설 때마다 상대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토킹 포인트’를 준비하는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이) 이번엔 푸틴 대통령의 남성성을 치켜세우며 호감을 사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9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 간 케미스트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완전한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앞서 김일성은 13번, 김정일은 4번 러시아 정상을 만난 바 있다. 8년 만에 재개되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 기간에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24일 만찬, 25일 단독 및 확대 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은 22일 북-러 관계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24일 특별열차로 하산을 통해 러시아에 들어가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25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처음 러시아 땅을 밟는 김 위원장의 현지 시찰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러시아 최고 공연장인 마린스키극장, 러시아 최대인 프리모스키 수족관,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등을 돌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이 26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북한 유학생이나 연구자를 만나 독려할 가능성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푸틴 대통령이 26일 중국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만큼 김 위원장이 시찰을 한다 해도 러시아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평양∼블라디보스토크는 기차로 약 1100km 떨어져 있고, 최고 시속 60km가량의 열악한 북한 철도 상황을 고려하면 이동에 2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23일 평양 기차역을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8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24일 만찬이 유력한 것을 감안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늦어도 23일 열차로 평양을 출발해 회담 장소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르면 24일 첫 회동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35)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67)의 ‘케미스트리’가 어떻게 펼쳐질지도 관심사다. 32살 차이가 있지만 여러 공통점도 있는 양 정상이 첫 만남에서 찰떡궁합을 과시한다면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또 다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은-푸틴, 케미스트리 잘 맞을까 두 정상은 초면이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2001년, 2002년 등 3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바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따로 본 적은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통해 방러 초청을 받은 지 11개월만에 화답했다. “두 정상 간 케미스트리는 신비할 정도”(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3월 15일 브리핑)라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만큼 김정은-푸틴 조합이 긴밀함을 보일지도 관심이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20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집권 7년차를 맞은 김 위원장도 장기 1인 집권 체제를 탄탄히 한 공통점이 있다. 서방의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처지도 같다. 무엇보다 미국이 강조하는 북핵 ‘빅딜’에 맞서 중국과 함께 ‘동시적·단계적 해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지적 관계다. 여기에 몇몇 개인적 취향도 비슷하다. 사격과 승마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푸틴 대통령과 농구광인 김 위원장이 스포츠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인 독재자 특유의 마초적 성향도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의전팀이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나설 때마다 상대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토킹 포인트’를 준비하는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이) 이번엔 푸틴 대통령의 남성성을 치켜세우며 호감을 사려 할 것”이라고 말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 간 케미스트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완전한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 24일 만찬, 25일 정상회담 유력 앞서 김일성은 13번, 김정일은 4번 러시아 정상을 만난 바 있다. 8년 만에 재개되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 기간 동안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24일 만찬, 25일 단독 및 확대 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은 22일 북러 관계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24일 특별열차로 하산을 통해 러시아에 들어가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25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처음 러시아 땅을 밟는 김 위원장의 현지 시찰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러시아 최고 공연장인 마린스키 극장, 극동 최대인 연해주수족관,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 등을 돌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평양~블라디보스토크는 기차로 약 1100㎞ 떨어져 있고, 최고 시속 60㎞ 가량의 열악한 북한 철도 상황을 고려하면 이동에 2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23일 평양 기차역을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황인찬기자 hic@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북한 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을 맞아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신형 전술 유도 무기 사격 시험 공개와 대화 상대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배척으로 반응했으나, 미 국방부는 “탄도미사일은 아니다”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18일(현지 시간)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무기 사격 시험 보도와 관련해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규정하든 그 시험(test) 또는 발사(launch)는 탄도미사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 당국자가 북한의 무기 시험 보도를 공식 확인한 것이다. 북한의 의도에 대해선 “우리가 수집한 정보를 살펴보고 나서 메시지가 무엇인지 구성하게 해 달라. 서둘러 판단하지 않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 정부가 정보 자산 등을 동원해 북한의 진의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 미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사진과 편지들을 보낸다. 4월 15일에 김정은의 조부(김일성) 생일을 축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은 대통령의 전방위 압박 공세(full court press)”라며 “우리는 김정은이 무엇을 할 것인지 두고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생일을 축하했는지, 축하 메시지와 대화 재개를 위한 별도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미 대통령이 김일성 생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날선 비판에 지지 않고 맞대응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국무부 청사에서 북한의 의도를 묻는 취재진에게 별다른 언급 없이 미소로 답했다. 국무부는 이에 앞서 “여전히 북한과 건설적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원론적인 반응만 내놨다. 다만 ‘외교 결례’로 해석될 수 있는 북한의 불만 표출은 동력을 잃은 북-미 협상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상대국이 미국에 협상 상대로 누구를 지명해야 하는지 말할 수 없으며 특히 국무장관일 경우 더 그렇다. 그것은 매우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조만간 열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한다고 크렘린궁이 19일 밝혔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러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첫 번째로 양자 관계 발전, 두 번째로 비핵화 문제, 그리고 지역 협력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김 위원장이 2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찬을 갖고 다음 날인 25일 단독회담, 확대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황인찬 기자}
다음 달 아시아 지역 외교를 담당하는 과(課)들이 모여 있던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15층에 일대 변화가 예고돼 있다. 동북아국(局)에서 한솥밥을 먹던 일본 외교 담당과와 중국 외교 담당과가 외교부 설립 이래 처음으로 ‘분가(分家)’하는 것. 아세안 국가들을 담당하는 별도의 국도 생긴다. 2007년 아시아태평양국이 동북아국과 남아시아대양주국(현 남아시아태평양국)으로 분리된 지 약 12년 만의 외교부 조직 개편이다. 시시각각 변모하는 아시아 외교 무대에 적응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선택과 집중’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중국국’ 신설돼 북미국과 ‘투톱’ 외교부는 16일 기존 ‘동북아시아국(중국과 일본 등)’과 ‘남아시아태평양국(동남아, 서남아시아 등)’의 2국 체계를 이번에 3국 체계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새 조직 개편에 따라 △중국 중심의 ‘동북아국’(일명 중국국) △일본과 호주, 인도 등이 묶인 ‘아시아태평양국’ △아세안 10개 나라 등이 묶인 ‘아세안국’으로 구성된다. 주인공은 단연 동북아국이다. 외교부 내 지역국 가운데 사실상 단일국가를 집중 공략하는 곳은 미국을 주로 담당하는 북미국과 이 동북아국이 유이(唯二)하다. 중국의 높아진 위상과 함께 정부가 대중 외교에 두는 무게를 엿볼 수 있다. 중국국 개설을 필두로 한 외교부 조직 확대 개편 논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있었지만 한중 수교 25주년이었던 2017년 본격화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외교부가 현행 동북아국을 중국국, 일본국으로 확대 승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부터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심화되고, 같은 해 12월 문 대통령의 첫 방중이 홀대 논란과 기자 폭행 사태로 얼룩지자 청와대까지 중국 전담 외교국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과중된 업무를 분산시키자는 취지도 있다. 중국과 일본 업무를 관장해왔던 현 동북아국은 미중일러 4강 외교의 절반을 맡고 있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10·31 사드합의를 이뤄 한중 관계가 봉합 국면이 되자 지난해부터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 폐쇄,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초계기 저공 위협비행 등 일본과의 대형 외교 현안들이 줄줄이 터졌다. 동북아국 사정에 밝은 전직 외교관은 “국장 한 명이 모든 중국과 일본 외교를 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동북아국에는 국장과 그를 보좌하는 심의관 외에 조직편제에도 없는 ‘가심의관’을 두는 등 기형적인 인사구조가 존재했다. 국장이 ‘일본통’이면 심의관은 ‘중국통’인 식으로 책임을 분산했고, 가심의관이 물밑에서 국장을 도와 일본 업무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한 당국자는 “이제까지는 중국과 일본 이슈가 번갈아가며 불거지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한일 외교 이슈가 동시에 터지면 업무 과부하를 견딜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중국은 깊게, 일본은 넓게 보자는 게 목표” 중국과 일본 외교 업무 분리를 통해 현안에 보다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됐다. 외교 강국들도 보통 중국과 일본을 분리해 챙기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실 산하에 중국 담당 부차관보와 한일 담당 부차관보로 나누고 있고, 러시아도 아주1국(중국)과 아주3국(일본, 아세안, 오세아니아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영국과 일본도 중국을 별도의 과 단위로 관리하고 있다. 새로운 동북아국이 주요 2개국(G2)으로서의 중국을 심층 탐구하고 교역, 역사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비 태세를 갖추는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아시아태평양국은 일본을 중심으로 태평양 지역 정세를 살피고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쉽게 말해 중국은 깊게, 일본은 넓게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왔지만 아태국 출범은 새로운 대일 외교의 시작점으로도 평가받는다. 기존의 양자 관계 프레임에서 벗어나 일본 업무를 주변 국가들과 연계해 접근하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본 외에 호주, 인도 등이 미국의 신 안보구상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국가인 만큼 향후 인도태평양 전략에 보조를 맞추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일 양자 관계가 어려울 때 오히려 다자 체제나 안보 협력처럼 측면 돌파를 모색하는 것이 건설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차이나 스쿨’ 기 펴나 이번 조직 개편의 최대 수혜자가 ‘차이나 스쿨’이란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중국 업무를 전담하는 동북아국이 출범하면서 중국 전문 외교관 그룹인 ‘차이나 스쿨’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차이나 스쿨은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 급속히 성장해왔지만 ‘저팬 스쿨’(일본 외교 전문가 집단)보다 역사가 짧다. 역대 동북아국장의 면면만 살펴봐도 김하중 전 주중대사, 박준용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제외하면 차이나 스쿨을 찾아보기 힘들다. 2017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일본 외교 전문 인력이 동북아시아국장·심의관을 모두 맡는, ‘저팬 스쿨’ 독점 체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였다. 외교부는 이번 중국외교 전담국 출범으로 차이나 스쿨 육성은 물론 젊은 외교관들의 중국 업무 및 근무 선호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만 8명이 순증한다. 일한 만큼 보상도 확실하다는 것을 젊은 외교관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협상 총책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카운터파트 교체를 워싱턴에 요구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동력은 유지하면서도 ‘빅딜’ 압박에서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경파 참모에 대한 ‘핀셋 공격’에 나선 것.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틀 연속 군사적 행보에 나서며 ‘신형전술유도무기’의 시험발사를 직접 참관했다. 3차 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면서도 이번엔 “새 계산법을 내놓으라”며 동시다발적 압박에 나선 것이다. ○ 北, 폼페이오 콕 집어 “바꿔 달라”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18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폼페이오는 지난 기간 평양을 찾아와 국무위원장 동지의 접견을 여러 차례 받고 비핵화를 애걸하고 뒤돌아 앉아 지난주 국회 청문회들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을 줴침(함부로 지껄임)으로써 저질적인 인간됨을 드러냈다”고 맹비난했다. 또 “하노이 수뇌(정상)회담의 교훈에 비추어 보아도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가곤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비핵화 협상 대표 교체를 요구했다. 북한이 이번에 외무성 국장을 앞세워 불만을 폭발시킨 것은 앞서 폼페이오가 9일(현지 시간) 미 상원에 출석해 김 위원장을 ‘폭군(tyrant)’으로 규정하는 등 최근의 대북 강경 메시지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여기에 북한이 ‘하노이 회담’을 끄집어낸 것은 결국 당시 폼페이오가 ‘스몰딜’에 관심을 표명한 트럼프 대통령을 만류해 ‘노딜’로 끝났다는 최근 워싱턴 일각의 분석과도 닿아있다. 결국 3차 정상회담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트럼프에게서 강경파 참모부터 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권정근 미국국장의 문답으로 불만 수위를 조절했다. 외무성 미국연구소장을 겸하는 그는 지난해 11월 논평을 통해 제재 압박에 대해 “(북한) 중학생들마저 너무나 어이없어 ‘엿이나 먹어라’ 한다”며 비난하는 등 매파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뒤 미국이 김영철 교체를 요구한 것처럼 북한이 이번엔 폼페이오 교체를 요구하면서 협상판을 유리하게 다지려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정은,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 무기 없어” 김 위원장은 16일 평양을 방어하는 공군부대를 찾아 비행 훈련을 지도한 데 이어 17일 국방과학원을 찾아 신형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했다. 워싱턴을 의식한 듯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어내는 무기가 없다”고도 했다. 지난해 비핵화 대화 시작 이후 무기시험 참관은 처음으로, 재래식무기 관련 공개 활동을 통해 저강도 도발에 시동을 건 것이다. 이날 김 위원장이 군수 생산을 정상화하고 국방과학기술을 최첨단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단계적 목표와 전략적 목표들을 제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추가적인 무기시험 도발 가능성을 예고한 셈이다. 한국과 미국 정보당국은 이번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대전차용 로켓이나 미사일로 보고 있다. 발사체의 낮은 고도와 짧은 사거리, 비행 궤적 등을 감안할 때 전차나 장갑차 같은 지상표적 파괴용 유도무기라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쏜 발사체는 미 정찰위성에 실시간 포착됐지만 비행 고도가 너무 낮아 우리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즉, 최소 비행 고도가 수십 km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북한이 옛 소련제 대전차 미사일을 역설계·제작한 ‘불새’ 계열의 대전차 로켓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한은 이 로켓의 사거리를 늘리고, 탄두의 파괴력을 증강시킨 불새-2, 불새-3 신형 대전차로켓을 개발한 후 배치 중이다. 한편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참관한 북한의 사격 시험과 관련해 18일 “현재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는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 유관 각국, 특히 북-미가 서로 마주 보고 가고 대화를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북한 영변 핵시설 지역을 12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핵연료 재처리와 관련된 의심 정황이 포착됐다. 사진이 촬영된 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에 나서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강조한 날이다. 북한이 3차 회담 뜻을 밝히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평양과 영변에서 대화와 압박 메시지를 동시에 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산하 웹사이트를 통해 영변 핵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우라늄 농축시설 및 방사화학실험실 주변에서 5대의 열차용 차량이 발견됐다”고 16일(현지 시간)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의 경우 이 차량들은 방사성물질의 이동이나 재처리에 관련된 것”이라며 “현재의 움직임으로 볼 때 이번에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는 것을 감안하면 핵무기 추가 생산 정황이 포착된 셈이다. 38노스를 운영하는 스팀슨센터 제니 타운 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에 대한 합의에 실패한 상황에서 재처리 관련 움직임이 실제 진행 중이라면 중대한 상황 전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월 28일 하노이 합의 결렬 이후 영변 재처리 시설 가동 정황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5일 국회에 출석해 “북한의 영변 5MW 원자로는 지난해 말부터 중단돼 재처리 시설은 현재 가동 징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문재인 대통령이 네 번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제안하면서 청와대는 정상회담의 사전 협상을 담당할 대북 특별사절단 구성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 2차 대북 특사단의 양축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여전히 유력한 후보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의 메시지를 미국에 제대로 전달했느냐는 말이 워싱턴 조야에서 나오면서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이 이번에 북한에서 받아오는 메시지를 토대로 북한과 다시 협상을 벌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이들을 당장 대체할 만한 비핵화 이슈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의 중재 노력을 ‘오지랖’이라며 깎아내린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특사 카드를 받을지도 불투명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6일 “지난해 3월 특사로 평양을 다녀왔던 정 실장과 서 원장이 이번에도 대북특사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 실장과 서 원장이 1년 사이 협상 파트너인 미국으로부터의 신뢰가 이전같지 않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서 원장은 지난달 미국 방문 당시 일정 등의 이유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지 않았다. 정 실장과 관련해선 “청와대가 백악관에 전하는 북한 정보를 다 믿기는 어렵다”는 말이 워싱턴 싱크탱크와 학자들 사이에서 들리고 있다. 비핵화에 대해 북-미 간 현격한 이견 차를 있는 한국 정부가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우려와 불만은 자연스럽게 이들 ‘북핵 투톱’에게도 갈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스스로도 곤혹스런 상황을 겪기도 했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당시 청와대는 “북-미 정상 서명식을 문 대통령이 참모들과 지켜볼 것”이라며 ‘하노이 노딜’의 가능성을 거의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 배경 중 하나는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의 낙관적인 상황 파악 및 분석이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때문에 청와대도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이낙연 국무총리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특사로 거론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보다 한층 복잡해진 3차 북-미 정상의 길을 닦아야 할 이번 특사로 중량감 있는 새 인사를 보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찌됐든 지난해 비핵화 논의 시작부터 청와대는 정 실장에게 백악관을, 서 원장에게 미 중앙정보국(CIA)과 북한 통일전선부를 각각 맡겨왔다. 서 원장은 드러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북측과 물밑 접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신뢰하는 인물은 여전히 서훈 원장”이라고 단언했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서 원장 외에 안보라인에 새롭게 합류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을 대북 특사단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김 차장은 이번 문 대통령의 방미에도 동행했다. 신·구 멤버의 조합을 통해 비핵화 장기전을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의중이다. 최근 잇단 대형 정치 행사 열고 ‘포스트 하노이’ 체제를 정비한 북한은 남북, 북중, 북러 등 차기 정상회담 행보를 놓고 저울질하는 상황이다. 한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서는 특사로 누가 오는 것보다는 4차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무엇을 가져올 것이냐에 더 관심이 크다”면서 “한국과 미국이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인도적 지원 정도의 카드로 북한이 움직일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황인찬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슈퍼위크’가 끝났다. 9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시작으로 10일 당 전원회의, 11∼12일 최고인민회의,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까지. 일주일간 평양이 떠들썩했다. 그런데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되고,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새 감투도 쓴 김 위원장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아 보였다. 하긴 이미 그는 절대 권력 아닌가. 이런 선전선동술이 2020년을 한 해 앞둔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다는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더 잘 안다. 결국 선전선동의 거품을 걷어내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고심 끝에 내놓은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남는다. 핵심은 12일 첫 시정연설에서 밝힌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다”가 될 듯하다.○ 연말까지 ‘시한부 대화론’ 꺼낸 김정은 김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평양 외신들의 브리핑에 내세웠다.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에 대해 “짧은 기간에 결정을 내릴 것”이란 입장을 대독시킨 셈이다. 앞서 신년사를 통해 제재가 유지되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압박했는데, 회담이 결렬됐으니 이제 그 실천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명한 메시지에 이어 구체적 행동도 나왔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을 전후로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의 복구가 시작됐다는 외신 보도들이 나오더니 급기야 국가정보원은 “미사일 발사대 복구공사가 대부분 완료됐다”(3월 29일 국회 보고)고 이례적으로 확인까지 해줬다. 한 위성 전문가는 기자에게 “북한이 이번엔 인공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한 뒤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면 미국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북한은 버튼만 누르면 되고, 책임을 회피할 구멍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신중했다. 12일 시정연설에서 “우리의 전략적 결단과 대용단을 내려 내짚은 걸음들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자아냈다”고 하면서도 “제3차 조-미 수뇌회담(북-미 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다. 굴복도, 도발도 아닌 대화 유지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기자는 김 위원장이 ‘터럭 같은 도발’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개성 남북공동사무소에서 북측 인원을 전격 철수시키면서도 남측 인원의 잔류엔 “상관 않겠다”고 밝힌 것이 그렇다. 나가면서도 복원 가능성을 강하게 밝힌 것이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카드를 택한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사흘 만에 돌아왔다. 결국 김 위원장은 당장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포기했다. 15일 김일성 생일에도 대규모 열병식은 없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시한을 연말로 정했다. “쫓기지 않겠다” “시간은 많다”고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나름의 마감 시간을 통보한 것. 이런 까닭에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에 대한 결정은 자동적으로 2020년 신년사로 유예됐다. 한 소식통은 “협상 시한을 밝힌 것은 미국을 향한 압박이지만 북한의 전술적 실패로도 보인다. 협상의 기본은 모호성인데 연말이란 북한 패를 공개적으로 보인 것은 그만큼 북한이 쫓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선희는 ‘김정은의 대미 스피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43일 만에 미국과의 대화 유지란 결정을 육성으로 밝히면서 대미 협상 창구에도 변화를 줬다. 대미 협상의 중심축을 통일전선부에서 김 위원장 직속 기구인 국무위원회로 옮겨갔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산하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들어온 것으로 관측돼 대남·대미 업무를 김 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구도 변화도 엿보인다. 이런 가운데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오르는 동시에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됐다. 또 외무성 제1부상으로 승진한 최선희가 단 11명뿐인 국무위원 자리를 꿰차며 자신의 상급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는 보이질 않던 최룡해-최선희의 ‘최-최 라인’이 3차 회담을 앞두고서 꾸려진 셈이다. 최룡해는 당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내놓는 대신 국무위원회 2인자에 집중하며 대미 협상을 총괄하는 한편,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의 대미 스피커’가 된 최선희는 국무위원회 대변인격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체급이 올라선 최선희가 미국 측 실무회담 대표인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상대할 것 같지는 않다. 기존에도 대사급(스페인)이었던 김혁철 대미정책특별대표를 내보냈는데, 외무성 수석차관이자 실세 장관급들이 포진한 국무위원회에 입성해 콧대가 높아진 최선희가 차관급에 해당하는 비건을 상대하겠느냐는 것. 게다가 북한은 대남, 대미 협상 과정에서 보통 상대보다 ‘낮은 급’을 카운터파트로 보내는 것을 선호해왔다. 이런 분석을 종합해보면 김 위원장은 국무위원회를 중심으로 외무성이 실무 대미 전략을 짜는 ‘최-최 라인’을 부각하면서도 실무적인 협상 라인은 그대로 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협상 라인 교체 자체가 기존 회담이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내부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최 라인이 전략을 수립하면 김영철은 고위급 회담, 김혁철은 실무회담 대표로 나서는 투 트랙을 가동할 것이라는 얘기다. 아무튼 슈퍼위크 기간 최고의 화제 중 하나는 최선희였다. 외교가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도 “김정은은 왜 최선희를 이리 총애할까”였다. 기자는 이번에 드러난 김 위원장의 세대교체 의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대미 협상을 총괄해온 김영철은 1946년생으로 올해 73세.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91) 등 이번에 80, 90대 원로들뿐만 아니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76)마저 일선에서 퇴진한 것을 감안하면 차기 퇴임 대상이다. 최선희의 정확한 나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하노이에서 직접 만나본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50대 중후반으로 여겨진다. 한 대북 전문가는 “현재로서는 대미 협상 총책을 김영철에게 이어받을 인물로 최선희가 유력해 보인다. 북-미 합의에 도달한다고 해도 실제 이행 과정은 수년이 걸리는 만큼 김 위원장은 김영철 후임을 고민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선희의 파격 승진은 김영철 말고도 직속상관인 리용호 외무상(63)의 처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리용호는 직책상으로만 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지만 지난 1, 2차 북-미 회담에서 그는 주연이 아니었다. 일각에선 리용호가 김 위원장의 ‘히든카드’란 말도 있지만 아직은 소수론에 가깝다. 리용호의 유약한 성격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일찌감치 협상 대표에서 배제했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북-미, 결국 톱다운에서 동력 찾을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 대화 시한을 정하면서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판은 자제했다. 2017년만 해도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불렀던 것과는 천양지차.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개인적 관계가 매우 좋다는 북한 김정은의 말에 동의한다. 어쩌면 훌륭하다(excellent)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말을 시한으로 설정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은 것은 내년, 그러니까 2020년이 북-미 정상에게 적지 않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당 대회를 열고 의욕적으로 제시했던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되는 게 내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재선을 치른다. 이미 올 하반기부터는 재선 모드다. 아직은 대화 재개를 놓고 여러 조건이 충돌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하노이에선 비핵화 합의를 양 정상이 결정할 ‘빈칸’으로 남겨두고 회담 당일 담판을 했지만 이번엔 어떻게든 실무협상에서 톱다운 결렬을 막을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노이 결렬 이후 떠내려갈 것 같던 비핵화 모멘텀이 다시 올해 말을 목표로 서서히 불씨를 키우고 있는 요즘이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포스트 하노이’ 구상을 어느 정도 완성했다. 대미·대남 협상 조직에 변화를 두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돌파구를 찾는 동시에 자력갱생을 통해 미국 주도의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성과로 보여주겠다는 것. 특히 김 위원장이 핵심 대미 라인들을 국무위원회에 결집시키고,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까지 국무위원회 산하로 옮긴 것으로 분석됐다.○ 대미 협상, 통전부에서 국무위로 최룡해는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데 이어 새로 신설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됐다. 다만 권력 집중을 우려해 맡아왔던 당 조직지도부장 직책은 리만건 당 부위원장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나온다. 최룡해는 11일 김 위원장의 국무위원장 재추대 연설에 나서 “최고영도자 동지를 따르는 길에 우리 조국의 존엄과 영예, 무궁한 발전과 찬란한 미래가 있다”며 충성 맹세를 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동안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평양을 지켰던 최룡해가 대미 협상 전면에 나서느냐다. 그가 2인자가 된 국무위원회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상 위원)에 ‘김정은 집사’ 김창선 부장,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까지 있다. 하노이 결렬 이후 경질설까지 돌았던 김영철을 견제하거나 역할에 따라선 협상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당 중앙위 위원-국무위원-외무성 제1부상까지 휩쓴 최선희의 역할은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영철의 거친 화법을 불편해했던 미국으로서는 최룡해를 더 선호할 수 있다. 과거 중국, 러시아 특사 경험이 있는 최룡해가 대미 특사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내각 아래 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국무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최고인민회의 분석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대미 실무는 외무성, 대남 실무는 조평통에 맡기지만 이를 국무위원회 아래 넣으면서 김 위원장이 직접 세세히 챙기겠다는 것이다. ○ 시 주석 “北 사회주의 사업 새로운 역사 단계” 김 위원장은 10일 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투쟁 노선으로 강조하면서 경제의 새 사령탑인 내각총리에 김재룡 자강도 당 위원장을 내세웠다. 김재룡은 중앙 정치에선 낯선 ‘지방 토박이 관리’로 산간 오지인 자강도를 관리하다가 자력갱생 실무 지휘봉을 잡게 됐다. 자강도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자체적으로 경제난을 타개한 ‘강계 정신’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제재 장기전에 대비해 당시 노하우 전파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김 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된 것을 축하하며 “북한의 경제사회 발전이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얻었으며 사회주의 사업은 새로운 역사 단계에 진입했다. 중국과 북한은 끈끈한 이웃 나라”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 “양자 및 지역 현안들과 관련 (김 위원장과) 공조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황인찬 hic@donga.com·주성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되고,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해 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2인자’ 최룡해가 맡게 됐다. 최룡해가 신설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도 겸임하면서 상임위원장이 국무위원장 아래 놓이게 됐다. 김 위원장이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김정은 2기’ 시작을 알렸다. 노동신문은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에서 “김정은 동지를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했다”고 12일 전했다. 김 위원장은 기존 국무위원회 권한을 강화해 권력을 집중시키고 본인의 위상을 높였다. 최고 정책 집단인 국무위원회의 위원은 기존 9명에서 11명으로 확대됐다. 김재룡 내각총리와 리만건 당 부위원장, 김수길 총정치국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5명이 새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차관급인 최선희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 등 다른 위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통일전선부에 집중됐던 대미 협상의 중심축을 국무위원회와 외무성으로 옮기는 한편 최룡해-최선희의 ‘최최 라인’에 비핵화 협상 역할을 맡겼다는 평가가 나온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의 전략 노선을 정하는 1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25번 직접 언급했다. 김일성 항일유격대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자력갱생론’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그러면서 “제재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한 적대세력에게 타격을 줘야 한다”고 한 뒤 당의 핵심인 정치국 위원들을 절반가량 교체하면서 고위 간부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김 위원장은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집권 2기 구성을 마치고 대미 장기전 채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 상무위원들 물리고 혼자 단상에 노동신문은 10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내용을 소개하며 “(김 위원장이) 변천된 국제적 환경과 날로 첨예화되는 현 정세에 대해 밝히면서 최근에 진행된 조-미 수뇌(북-미 정상)회담의 기본 취지와 우리 당의 입장에 대해 밝혔다”고 11일 전했다. 2월 28일 하노이 합의가 결렬된 지 42일 만에 당원들에게 북-미 회담을 설명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밝힌 것. 북한 매체는 전원회의 내용을 전하며 자력갱생을 총 28번 언급했고, 이 가운데 25번은 김 위원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는 “자력갱생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총돌격전, 총결사전을 과감히 벌이는 것이 4차 전원회의의 기본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자력갱생은 ‘존립의 기초’ ‘영원한 생명선’ ‘확고부동한 정치노선’으로도 포장됐다. 실천 방안으론 △통일적 지도 강화 및 실리 보장 △효율을 높이는 경제 사업 조직 진행 △절약 투쟁 강화 등을 꼽았다. 뚜렷한 제재 돌파구를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시스템 정비 및 효율성 향상 강조에 그친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대북제재 장기화에 대비하는 것 같다”고 했다. ○ ‘당 브레인’ 정치국 절반 물갈이 김 위원장은 회의를 주재하며 붉어진 얼굴로 주먹을 쥐고 손가락질을 하는 등 참석자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또 주석단에 혼자 앉았다. 지난해 4월 20일 열린 3차 전원회의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조직지도부장, 박봉주 내각총리 등 상무위원 3명과 함께 앉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면서 하노이 합의 결렬 이후 첫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대미, 대남, 대내 정책을 조직·지도하는 당의 핵심 정치국의 절반을 물갈이했다. 상무위원을 제외한 25명 가운데 위원 7명, 후보위원 6명 등 총 13명이 교체된 것이다. 새 위원에는 김재룡 자강도 당 위원장,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휘·박태덕 당 부위원장, 김수길 총정치국장, 태형철 김일성종합대 총장, 정경택 국가보위상 등이 발탁됐다. 후보위원에는 김 위원장을 그림자 수행하는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비롯해 김덕훈·리룡남 내각부총리, 박정남 강원도 당 위원장, 리히용 함경북도 당 위원장, 조춘룡 당 중앙위 위원장 등 6명이 편입됐다. 물러나는 인사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경제 정책을 지휘하던 박봉주 내각총리는 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이동했다. 후임에는 이날 정치국 위원 가운데 가장 먼저 호명된 김재룡 당 위원장이 거론되는 가운데 김덕훈 내각부총리 승진 가능성도 나온다. 하노이 이후 ‘김정은의 대미 스피커’ 역할을 했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 지난해 공연단을 이끌고 평창을 찾았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은 나란히 중앙위 위원에 발탁됐다. 현송월은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최선희는 후보위원도 거치지 않고 위원이 됐다. 2017년까지 군수공업부장을 맡으며 핵·미사일 개발을 관장했던 리만건은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올라섰다.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여전히 대미 라인을 중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고 분석했다.황인찬 hic@donga.com·이지훈·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