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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팝음악의 본고장 미국을 강타했다는 점에서 한류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특정 곡을 중심으로 한 일회성 인기였다면 BTS는 곡을 넘어 그룹 자체에 인기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같은 걸그룹의 미국 진출도 과거 관심을 끌긴 했지만 오늘날 보이그룹 BTS가 얻고 있는 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BTS가 24일 유엔에서 연설까지 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청년세대를 위한 ‘세대를 뛰어넘어(Generation Unlimited)’ 행사장에서다. 멤버들이 모두 나와 늘어선 가운데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대표로 6분여간 영어로 연설했다. 주제는 ‘자신을 사랑하라’였다. BTS가 올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두 앨범이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라는 주제의 시리즈 앨범이다. BTS는 그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유니세프와 손잡고 세계 아동·청소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자신을 사랑하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설에는 “사람들이 BTS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며 그러나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절망을 극복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BTS는 SM, YG, JYP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소속된 그룹이 아니지만 유튜브에서 얻은 인기로 출발해 세계적 성공을 일궈냄으로써 인터넷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전 세계의 BTS 팬들은 피부색이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BTS의 최근 인기곡 ‘아이돌’의 영어로 된 후렴구 ‘넌 내가 날 사랑하는 걸 막지 못해(You can‘t stop me lovin’ myself)’라고 외치며 노래한다. 그렇게 노래하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RM은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긍심의 소중함을 일깨운 연설이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30회로 끝난 동아일보 창간기획 시리즈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생전 술은 안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해서 조상 제사 때마다 ‘커피와 바나나만 올려 달라’고 하셨는데 남의 눈 때문에 못 했었다. 이번 제사엔 한번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일(忌日) 제사만 있었지 명절 차례는 없었는데 근대에 들어와 일제강점기 때부터 명절 차례가 생겼다. 퇴계 이황의 집안처럼 전통 있는 집안에서는 기일 제사에 충실하려고 하지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명절 차례가 기일 제사에 더해 또 다른 부담을 더하는 것이라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집성촌을 이뤄 살던 농촌사회에서는 기일이면 가족이 다 모일 수 있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은 국가적 공휴일인 명절에나 모일 수 있게 됐다. 차례를 단순히 조상에게 절을 올리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후손들이 차례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화목을 도모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요새는 더 많은 후손들이 모일 수 있는 명절 차례가 더 의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명절에 며느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시댁 가서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가 저리도록 전 부치는 일이라고 한다. 상 차리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받을 바에야 치킨을 시켜 나눠 먹더라도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게 명절 차례를 지내는 본래 정신이다. ▷남자들은 TV나 보면서 놀고 있는데 그 옆에서 여자들만 음식 장만에 애쓰는 모습은 명절이면 여지없이 드러나는 남녀 차별의 전근대성이다. 명절에 시가와 처가를 다 들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우선순위는 시가인 것이 현실이다. 페미니스트 여성도 남편의 동생들을 도련님이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 언어적 관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예의만큼 본래 정신을 잃고 형식만 남기 쉬운 것도 없다. 박제화되기 쉬운 예의를 어떻게 시대정신과 조화시켜 갈 것인가. 늘 새롭게 써가야 할 신예기의 과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바다의 부표(浮漂)는 단순한 식별수단에서 기상관측용까지 다양한 목적에 쓰인다. 배와 갈매기와 하늘의 구름밖에 그릴 게 없는 망망한 바다에서 화가들이 사랑한 이색적 소재이기도 하다. 이 정겨운 오브제가 전쟁에 긴히 쓰이게 된 것은 잠수함이 처음 사용된 제2차 세계대전부터다. 잠수함의 접근을 사전에 탐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중음파탐지기(소나)를 장착한 부표도 대잠항공기를 통해 바다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어제 3000t급 잠수함 1호인 ‘안창호함’ 진수식을 가졌다. 그런데 중국이 올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과 이어도 근해에 8개의 부표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백령도 서쪽 공해상에 첫 부표가 발견된 이후 갑작스럽게 부표가 늘어났다. 부표에는 중국해양관측부표라고 표시돼 있지만 이들 중 4개는 우리 해군의 공해상 작전 구역에 설치돼 있어 한미의 잠수함 기동을 감시할 수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해양 관측을 가장한 군사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 군용기가 지난달 29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강릉 동쪽 상공까지 비행했다. 올해만 5번째 침범이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2013년 동중국해에 선포한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이후 급증했다. 중국은 당시 일본 센카쿠 열도와 한국 이어도 상공을 포함한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은 초기에는 이어도 남서쪽 구역에 집중됐으나 지난해부터 과감히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도 동시에 무단 진입하게 된다. ▷중국의 계속되는 KADIZ·JADIZ 무단 진입과 서해상에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는 부표의 설치는 중국이 하늘과 바다에서 한일 방향의 정찰 및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동해상에서 러시아의 KADIZ·JADIZ 무단 진입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육상에서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높은 하늘과 먼바다에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은 해가 갈수록 고조되는 느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4월 27일, 난 독일에 있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독일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몇몇 신문에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손에 이끌려 군사분계선을 넘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1면에 실렸다. 며칠 머문 것도 아닌데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유를 하다 상점 주인으로부터, 또 한 번은 출국하면서 공항 보안검색요원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축하의 인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슈투트가르트 인근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울리히 레너 사장과 나눈 대화였다. 그도 대부분의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남북 정상의 만남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식의 통일에 가까워진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왜 너희 한국인들은 통일을 하려 하냐”고 물었던 것이 특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이 갑작스러운 통일로 얼마나 큰 경제적 고통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난 남북 정상의 만남이 꼭 통일에 가까워진 것으로 볼 수 없음을 그에게 설명했다. 진보 진영에서 가까운 시일 내 통일의 꿈은 접은 지 오래다. 말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지만 실은 남북이 일단 경제적 또는 문화적 교류에 집중하고 정치적 통일은 미뤄두자는 것이다. 백낙청 씨는 최근 ‘창작과 비평’에서 진보 진영이 통일은 제쳐두고 평화만 말해도 되는 것인가 묻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통일이란 화두는 오히려 보수 진영의 것이 돼 이명박 정부는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에 대비하자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외치기도 했다. 레너 사장은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남북이 큰 경제적 격차를 지닌 채 통일할 경우에 대한 우려는 자신이 사업가로서 겪은 통일의 실제 체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은 오히려 걱정이다. ‘통일’은 대박은커녕 쪽박이 아니면 다행이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는 남북경협에 대한 환상도 걱정스럽다.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 전에 남북이 경제적인 격차를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통일에 따른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그것이 레너 사장이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다. 남북경협에 찬성하지만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판문점선언은 3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화란 말은 3번째 부문에서도 1항 불가침합의, 2항 군축, 3항 평화협정이 거론된 다음인 맨 마지막 4항에서 거론된다. 전체적으로 비핵화는 마지못해 거론된 느낌이다. 문 대통령 쪽에서는 그렇게나마 비핵화를 넣은 것이 다행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정상이 이 시점에 만나서 이런 선언을 하게 된 비핵화라는 동기가 흐릿한 데다 평화협정 체결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여러 사안이 들어 있다. 대통령은 국회의 비준 없이 독자적으로 외교 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 비준은 요구했는데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그것을 무효로 하는 것을 전제한다. 판문점선언의 경우는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무효가 되는지 불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무효가 된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문점선언은 그 비준 여부를 두고 국회와 대통령이 상호 대등한 관계에 서있지 않고 따라서 비준의 요건을 갖춘 사안이라고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것은 판문점선언에 언급된 10·4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어제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약 4700억 원에 이르는 비용 추계서를 첨부했다. 이것은 내년에만 필요한 예산이고 연도별로 모두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어 국회가 가부(可否) 판단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10·4선언 이행에는 최소 수조 원이 들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 정도 규모의 사업안은 판문점선언에 부속해서가 아니라 따로 만들어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게 옳다. 자유한국당도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북경협을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융통성이 부족하다. 일괄적이 아닌 한 비핵화가 먼저냐 남북경협이 먼저냐는 의미 없는 논란이다.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 비핵화의 단계마다 남북경협의 진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양쪽 다 단계적이라면 비핵화의 보상으로 남북경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경협이 비핵화를 선도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던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을 탈환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4후퇴를 겪게 된다. 1951년 7월 휴전회담의 개시로 전쟁은 제한된 공세로 전환된다.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고지쟁탈전이고 그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백마고지 전투다.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신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으로 전쟁 전에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전선이 고착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제하는 중요 지형지물로 유명하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 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가 됐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에게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이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백마고지역(驛)에 쓰여 있는 명칭의 유래 설명이다. ▷백마고지에서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사이에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6·25전쟁에서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27만 발의 포탄이 사용됐다. 중공군 1만3000명이 죽었고 아군은 3000명이 희생됐다. 제9사단은 이 전투의 승리로 나중에 백마부대로 불리게 됐고 그 용맹성을 인정받아 1966년 맹호부대(오늘날 수도기계화사단)에 이어 파월부대로 선정됐다. ▷남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백마고지 격전지에서의 공동 유해 발굴에 의견을 모으고 이번 주 군 장성급 회담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DMZ 내에 6·25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서의 공동 유해 발굴은 의미가 적지 않다. 백마고지역에서 북쪽으로 더 가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유명한 월정리역이 있다. 경원선 철로는 여기서 끊겨 있다. 유해 발굴 작업이 계기가 돼 인근 지뢰를 제거하고 철마를 더 달리게 하는 작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진정한 권력은 공포다(Real power is fear).” 한비자(韓非子)나 마키아벨리가 했을 법한 이 말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 정확히는 “진정한 권력은, 나는 이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공포다”이다. 그 발언의 ‘공포’란 단어가 우드워드가 최근 낸 신간의 제목이 됐다. ▷중국 영화 ‘영웅’을 보면 진시황이 자객 형가에게 황급히 쫓기는데도 근위병들이 명령이 없어 단 위로 오르지 못하고 단 아래서 부동자세로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진시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의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백악관은 공포의 집이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5일 뉴욕타임스에 자신을 트럼프에 맞서는 ‘레지스탕스’라고 소개하며 익명의 칼럼을 써서 트럼프 행정부를 고발한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신간 ‘공포’에는 게리 콘 백악관 전 국가경제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폐기하기 위해 서명하려 했던 서한을 대통령의 책상에서 몰래 훔쳐 나왔는데도 대통령은 서한이 없어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미 FTA를 폐기하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한 국가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생각이 슈퍼파워 미국의 대통령 머릿속에 충동적으로 일었다 잊혀진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공포는 단순히 무서워서라기보다는 힘을 가진 자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바보’라고 불렀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수준에서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 같은, 미국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사안에 의문을 표시하니 참모들은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대북 선제타격 준비를 지시하고 무력시위를 벌이다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김정은을 치켜세우며 협상하니, 한반도에 평화가 다가온다고 기뻐하는 것이 맞는가.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나이는 ‘만 14세도 채 되지 않은(she‘s not even fourteen)’ 것으로 나온다. ‘춘향전’에서 춘향은 이팔청춘(二八靑春)으로 만 나이로 따지면 14세나 15세다. 청소년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는 어린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고 사랑의 주인공도 된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청소년다운 사랑의 범주가 따로 생기고 줄리엣이나 춘향 식의 사랑은 더 나이 많은 어른의 것이 된다.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성인의 나이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만 15세, 한국 일본 독일 같은 전형적인 대륙법 국가에는 만 14세, 프랑스에서는 만 13세 이상으로 줄리엣이나 춘향이 사랑의 주인공이 된 나이와 비슷하다. 대개 18∼20세인 민법상 성인의 나이보다 훨씬 빠르다. 사랑과 범죄는 애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증폭된 것일 뿐 감정에 기초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감정적으로는 그 나이에 성인이나 다름없이 격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어제 형법상 성인의 나이를 만 13세로 내리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만 13세와 만 14세 사이에 신체나 의식의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어서 만 13세로 내리는 게 옳은지, 아니면 만 14세를 유지하는 게 옳은지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만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제에서 중학교 입학 나이가 보통 만 13세니까 만 13세부터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응이 형법상의 처벌이냐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이냐의 양자택일에 머물러서는 근본적 해법이 되지 못한다. 만 10세부터 만 14세 미만의 촉법(觸法) 청소년에게는 소년법상의 보호처분만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보호처분이 보호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나이에 맞는 적절한 처벌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년법 자체가 어린이와 성인만 알던 형사법에 청소년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긴 하지만 어리면서도 벌써 성인이나 다름없는 청소년에 맞춰 더 세분화된 처벌과 교화의 방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권력분립의 개념을 근원에서부터 살펴보면 외교에 특별한 위치가 부여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분립을 처음 언급한 영국 정치철학자 로크는 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으로 나누지 않고 입법 행정 연합(외교)권으로 나눈다. 사법시험 준비하며 달달 외운 박제화된 권력분립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외교에는 ‘한목소리 원칙(one voice principle)’이란 게 있다. 행정부 내에서 서로 다른 부처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행정부를 넘어 국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1828년 과테말라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 논란이 됐을 때 랜실롯 섀드웰이라는 영국 대법원장이 “영국 외무성이 과테말라를 스페인 영토라고 선언했는데 영국 법원이 과테말라는 스페인의 영토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이 원칙을 천명한 이후 외교의 주요 원칙으로 통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재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면서 검찰이 유독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왜 하필이면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재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외교에서의 ‘한목소리 원칙’을 고려하면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사안을 놓고 정부와 법원이 협의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 강제징용 피해보상과 관련해 ‘한목소리 원칙’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과거 적국(敵國)에 의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강제 노역한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일본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과 중국인이 캘리포니아주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에서 미국 국무부는 “각 주(州)가 대통령이 표명한 국가 전체의 외교 정책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부담을 부과할 자유를 지닌다면 대통령의 외교적 레버리지(leverage)를 심각하게 제약함으로써 외국 정부와 교섭할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그 법은 위헌 판정을 받았다. 외교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라면 당연히 하는 일이다. 강제징용은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돼 정부 간 배상이 이뤄졌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배상 의무만이 아니라 민간 기업의 배상 의무까지 사라졌다고 본다. 한국이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가 남아 있다고 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위안부 문제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일관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하고 과거 모든 정부가 우려했던 것이다. 2012년 한국 대법원의 한 소부(小部)가 일본 기업들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떠나 한국 정부가 취해온 애매모호한 입장이란 선(線)을 넘어서 외교에서의 ‘한목소리 원칙’을 깬 측면이 있다.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통쾌하기는 하겠지만 손익은 따져봐야 한다. 일본 법원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의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국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한다고 한들 일본에서 집행할 방법은 없다. 결국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한국 정부가 압류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이 초래할 외교적 손실은 압류의 실익보다 클 수 있다. 영화 ‘군함도’에서 보듯 사지(死地)로까지 몰렸던 강제징용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스 신화의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해야 하는 냉엄한 외교적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법원과 협의해 재상고심 재판을 가능한 한 연기하는 방식으로 재판의 확정을 미룬 것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뒤에 그나마 대통령의 외교적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완곡한 방식의 대응이었다고 본다. 가타부타 결정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는 방식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재판거래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이 대목은 외교의 현실을 고려한 보다 융통성 있는 권력분립 개념을 적용할 곳이 아닐까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청와대는 얼마 전 ‘제주 난민 수용 반대 청원’이 일자 난민 신청 절차를 없앨 수는 없다며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도 일제의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건너간 정치적 난민이 수립한 망명정부였다”고 답했다. 그때 문재인 정부가 왜 내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려 하는지 비로소 짐작이 갔다. 임시정부와 망명정부의 차이를 모르거나 그 차이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일찍이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폴란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기 전 제2공화국이라는 민주 정부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치 독일에 쫓겨나 해외로 옮겨간 폴란드 제2공화국 정부는 스스로를 망명정부라고 부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1948년까지 제국(帝國)의 정부, 즉 대한제국 정부는 있었어도 민국(民國)의 정부,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그때까지 조선인은 한 번도 민국의 대표들을 자기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자들은 너무나 당연히 스스로를 임시정부라고 부르고 임시라는 수식이 필요 없는 정부의 건설, 즉 건국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폴란드 망명정부는 과거 정식 정부였기 때문에 육군만도 10만이 넘었고 해군까지 보유한 채 나치 독일과 싸웠다. 그럼에도 소련의 공산 괴뢰정권이 폴란드를 차지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분함이야 오죽했을까. 폴란드 망명정부는 1990년 폴란드가 민주화될 때까지 영국에 남아 있었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에 의해 괴뢰정권이 무너지고 폴란드 제3공화국이 세워지자 폴란드 망명정부는 제2공화국의 국새를 바웬사 대통령에게 넘겨주고 자진 해산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늘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광복절 73주년으로 덮어씌워 건성건성 지나간다. 북한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70주년을 맞는 9월 9일 성대한 기념식을 계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민족 화합의 견지에서였다면 먼저 북한 김정은에게 제안하고 화답을 받아내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고 나서 국민에게 호소를 해도 호소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온 결과는 고작 3·1운동 100주년을 같이 기념한다는 것이었다. 건국 100주년은 고사하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조차도 북한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제안이다. 북한의 ‘조선력사’는 임시정부의 행태를 독립을 구걸하러 다닌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사대주의 망동으로 규정한다. 해방 정국에서 임시정부를 누구보다 배척한 것이 김일성의 북조선노동당과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세력이었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는 바로 이 공산주의자들의 임시정부 배척 노선을 따르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3·1 인민봉기는 김일성이 주도했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더라도 북한은 3·1운동의 대부분은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해 실패했다고 보고 그 결과로 태어난 부르주아적 임시정부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본다. 나는 박근혜 정권 시절 칼럼을 통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려는 일부 우파의 시도를 비판한 적이 있다. 건국절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날이 아니다. 그렇다면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과거의 한 시점을 반드시 건국의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면 1948년 8월 15일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러나 건국절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보다는 국론 분열만 조장한다면 굳이 건국절을 만들 필요가 없고, 나아가 미래에 북한까지 포함하는 한반도에서 더 큰 의미의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을 위해 유보해 두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건국 100주년을 들고나온 것은 ‘네가 건국 70주년이라 하니 나는 건국 100주년이라 하겠다’는 유치한 발상이다. 건국 70주년도, 건국 100주년도 그만뒀으면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는 임시정부에 합당한 평가를 하고 대한민국 정부에는 정부에 합당한 평가를 하면 된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축하하고 내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축하하면 될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럽에서 터키계 이민자는 중동·북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권 이민자 중에서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내가 아는 프랑스인은 터키인을 같은 백인인 러시아인보다 더 친밀하게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독재로 터키의 이미지가 악화되고 있다. 그는 세 번 총리를 연임한 뒤 자신이 바꾼 대통령 중심제 헌법에 따라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올 6월 다시 대선에서 이겼다. ▷중근동(中近東)에서 이란과 터키는 각각 샤와 파샤라고 불린 세속군주의 지배하에서 20세기 초 서구식 근대화의 맛을 본 대표적 국가다. 하지만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장악됐고 터키는 에르도안 집권 이후 이란 정도는 아니지만 원리주의로 기울고 있다. 그것이 국내적으로는 독재로, 국외적으로는 반(反)서방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반발하는 내부 세력도 만만치 않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에 2배의 관세를 부과해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20%가량 폭락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거둬들이지 않자 터키발 경제위기 공포로 어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해 여파가 크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지만 1990년대 멕시코발 위기와는 달리 미국이 위기 해결을 도우려 하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47년 냉전의 시작을 알린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와 터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왔다. 독일 엘베강의 동쪽에서 한반도의 북쪽까지 유라시아가 붉게 물들 때 두 나라는 서구 쪽 자유진영의 변방에 위치한 약한 고리였다. 그리스는 복지로 퍼주기를 하다 유럽연합(EU) 퇴출 위기를 겪었고, 터키는 러시아 및 이란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물불 안 가리는 펀치가 미국이 군사기지를 둔 터키에도 날아갔다. 동아시아 쪽 자유진영의 변방 국가이며 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에도 경우에 따라선 그 펀치가 날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중국이 산아제한을 위해 실시한 한 자녀 정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이해 부부 중 한 명이 독자(獨子)일 경우 부부가 자녀를 둘까지 낳을 수 있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듬해 중국 사회과학원이 나라가 출산율 함정에 빠지기 직전이라고 경고하자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조건 없는 두 자녀 정책에 들어갔다. 그때 중국 가정이 한 자녀만을 낳아 소황제(小皇帝)처럼 떠받들며 키우던 시절이 끝나간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중국 정부가 내년 9월부터는 두 자녀 정책마저 포기하고 세 자녀 출산을 허용하거나 아예 산아제한 정책 자체를 폐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개된 내년 돼지띠 해의 신년 우표에 암수 부모 돼지가 아기 돼지 3마리를 거느린 모습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전망대로라면 불과 3년도 안 돼 두 자녀 정책에서 세 자녀 정책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은 1979년 무렵 시작됐다. 1980년대생인 바링허우(八零後)와 1990년대생인 주링허우(九零後)는 오늘날 결혼적령기의 20, 30대로 성장했다. 2000년대생인 링링허우(零零後)는 채 성인이 되지 않았다. 2014년부터 한 자녀 정책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소황제 시대는 사실상 링링허우를 끝으로 마감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황제들에게 세 자녀 시대가 열린다. ▷소황제 시대는 비인륜적 낙태의 시대이기도 하다. 의도치 않게 두 번째 아이를 가지면 정부에 의해 강제 낙태를 당하는 슬픈 일도 적지 않았다. 부모들은 한 자녀밖에 낳을 수 없자 미리 태아 성별검사를 해서 딸로 밝혀지면 스스로 지웠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남초현상이 일어나 소황제는 결혼 자체가 쉽지 않다. 어렵게 결혼한 소황제는 세 자녀를 낳는 것이 허용돼도 키울 능력이 없다. 부모들이 소황제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자녀 육아·교육비를 워낙 올려놓은 탓이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의 출산율 증대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30년 넘게 출산을 인위적으로 막아온 정책이 낳은 심대한 후유증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자동차 운전자의 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전방 50m 앞에서 걸어가며 말을 끄는 마부나 행인에게 위험을 알려야 했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영국에서 1865년 만들어진 ‘붉은 깃발 법’의 내용이다. 이 법의 진짜 문제는 조수의 걸음보다 느린 자동차 최고 속도였다. 그 속도는 시내에서는 시속 2마일(약 3.2km),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약 6.4km)로 제한됐다. 19세기 말까지 최고 속도가 시속 12마일(약 20.2km)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버린 다음이었다. ▷한국인은 페이스북의 성공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선보인 소셜미디어 개념의 서비스를 한국인은 페이스북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전에 이미 싸이월드를 통해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브스쿨 열풍이 불어 불륜을 조장한다는 비난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럼에도 싸이월드가 페이스북 앞에서 맥을 못 춘 것은 인터넷실명제라는 규제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인의 근대 경험에서 공백 중 하나가 수표에 대한 경험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자기 명의 수표를 써본 적이 없다. 고작 써본 것이라곤 은행의 자기앞수표다. 서구에서는 지금도 자기 명의로 사인한 수표를 많이 쓴다. 우리는 신용결제에서 수표를 건너뛰어 더 편리한 신용카드로 넘어왔다. 하지만 어느샌가 다시 기존 결제시스템 중심의 금융 규제가 질곡이 돼 핀테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인터넷전문은행의 진입장벽 완화를 강조하며 ‘붉은 깃발 법’을 거론했다. ▷정부마다 규제개혁 정책의 상징이 하나씩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전봇대였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손톱 밑 가시였다. 그럼에도 전봇대도, 손톱 밑 가시도 제대로 뽑혔다고 할 수 없다. 이번에는 붉은 깃발을 뽑아낼 수 있을까. 어느 시대나 규제개혁은 쉽지 않은 듯하다. 이 주의 붉은 깃발, 혹은 이달의 붉은 깃발, 혹은 올해의 붉은 깃발을 선정해 퇴치하는 지속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경제학자 토빈의 이름을 딴 토빈세처럼 경제학자 피구의 이름을 딴 피구세가 있다. 피구세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externality)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환경오염이 대표적인 외부효과다. 공장에서 배출하는 매연은 환경을 오염시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그 피해에 대한 보상 비용은 업체의 생산 원가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대신 오염세를 부과해 보상 비용을 지불받는다. 마땅히 보상해야 할 피해가 시장 내부에서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외부효과라고 한다. ▷담뱃세나 비만세도 피구세다. 담배를 피우거나 살이 찌는 식음료를 먹어 병든 사람이 많아지면 건강보험기금에서 지출하는 돈이 늘어나는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그에 대한 보상 비용을 누군가가 내야 한다면 담배나 식음료를 생산하는 업체일 수밖에 없다. 담뱃세에 비하면 비만세는 비교적 최근에 부과되기 시작한 피구세다. 덴마크가 2011년 10월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이후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탄산음료와 패스트푸드 등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6일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그 대책의 하나가 폭식을 조장하는 ‘먹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국가주의’를 화두처럼 내세우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가 먹방까지 규제하겠다는 것이냐”며 대표적인 국가주의 사례로 비판했다. 정부는 먹방을 규제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한 걸음 물러섰지만 또 다른 대책으로 비만세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피구세는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업체는 담뱃세나 비만세를 부과받으면 담배나 식음료의 가격을 올린다.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어들지만 담배에서 보듯이 가격이 올라가는 만큼 그에 비례해 수요가 줄어들지도 않는다. 더구나 빈곤층은 총지출액 중 먹는 데 들이는 비용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건강에 더 좋은 식음료를 구입할 여분의 능력이 부족하다. 비만세는 현재의 식습관을 바꾸기 힘든 빈곤층을 더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액자(額子) 소설은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말한다.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도 비슷한 액자 구조를 갖고 있다. 기무사 계엄 문건의 작성이라는 사건이 있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그 문건을 돌출시킨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액자는 영어로 프레임(frame)이다. 사건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프레임일 때가 적지 않다.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는 국방부 장관에 대한 기무사의 하극상이라고 표현된 사건을 통해 그 액자 구조가 뒤늦게 드러났다. 지금 국가의 각 조직은 어떻게든 적폐를 ‘발굴’해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기무사 근무는 처음인 이석구 사령관이 올 3월 기무사 계엄 문건에 대한 내부 제보를 받고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찾아가 ‘위중하다’고 보고를 했더니 그가 뭉개버렸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자 치받았다는 것이 사태의 전모다. 위중하다는 말은 ‘군대스럽다’. ‘민간인’들은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은 하지만 사안에 대해서는 심각하다고 하지 위중하다고는 잘 하지 않는다.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은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나 쓴다. 시리어스(serious)한 정도를 넘어 크리티컬(critical)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사용했다면 기무사 계엄 문건은 위중하지 않다. 촛불시위 때 탄핵이 기각되면 한쪽에서는 혁명밖에 없다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계엄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둘 다 극단적이었다. 다행히 탄핵이 인용돼 다수 국민이 받아들였고 혁명도 계엄도 필요 없어졌다. 헌법과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상황은 종료됐다. 물론 계엄 문건에는 국회의원들을 불법시위 현행범으로 체포해 계엄령 해제를 막는다는 등 어처구니 없는 몇 가지 위헌적 발상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문건은 실행과는 거리가 먼 데다 3월까지는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몰랐으며 발견하고도 4개월이나 태연히 흘려보냈는데 무슨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다고 위중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무사는 작은 흠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보고하는 조직이다. 기무사의 눈으로 보면 위중하지 않은 게 없다. 남의 흠을 잡아내는 쪽은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예상외로 커졌을 때 면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 기무사 사람들이 평소 위중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다니니까 듣는 쪽은 그냥 흘려듣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사령관의 ‘위중하다’는 판단은 정권의 구미에는 딱 맞았다. 기무사 개혁을 벼르고 있는 청와대는 하극상 이후 관심이 하극상에 쏠리자 문건 자체로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면서도 하극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오히려 송 장관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사령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이다. 기무사는 눈치가 9단인 조직이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군대는 비합리적일 정도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다반사인 조직이다 보니 숨기는 것이 용이하고 실제 숨기는 것이 많다. 그걸 찾아내 군 기강을 확립하는 게 기무사의 기본 임무다. 그렇다 보니 하극상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방첩도 보안도 가능하다. 송 장관이 국방부 간담회에서 했다는 ‘계엄 문건 큰 문제 없다’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부인하는 사실관계확인서를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받아 은폐하려 한 국방부 아닌가. 일선 부대장이 숨기는 게 있으면 담당 기무부대장은 상급 지휘관이나 국방장관에게 알리고 국방장관이 숨기는 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별도의 보고 라인이 있어야 최고 군 통수권자의 군 통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과거 기무사령관은 대통령을 독대하기도 했던 것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은 기무사가 조직 보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다 돌출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건을 둘러싼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의 공방은 기무사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켰다. 남의 기무사가 아니라 자기의 기무사라면 얘기는 달라지는 법이다. 군의 잠재적 쿠데타 가능성까지 제기하면서 심각하게 봤는데 군 감시를 안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그렇다고 기무사 축소를 하지 않으면 개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기무사 본연의 업무인 방첩과 보안은 건성건성 하면서 군 감시만 하는 더 고약한 기무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금 어디 가서 보수라고 말하면 나이 든 이는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대학가에서는 동성애보다 보수 ‘커밍아웃’이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많은 ‘샤이 보수’들은 침묵하고 만다. 현대 보수주의 사상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번역한 이태숙 경희대 교수는 서문에서 “자유주의의 기반이 부족한 한국에서 보수의 강세는 기이한 현상이었다”고 썼다. 한국 보수는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비판으로 지탱했으나 바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보수가 그동안 이만큼이나마 유지된 것은 ‘아스팔트 보수’에 힘입고 있지만 반대로 보수가 지금 이 꼴이 된 것도 아무 데나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고 다니며 태극기를 흔드는 그 아스팔트 보수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무슨 주장을 하더라도 연륜에 걸맞은 말쑥한 차림으로 절제된 주장을 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있다. 이제 젊은 보수들이 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수도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역사를 모른다고 탓하지 말라. 그들은 마블스튜디오 영화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고 스마트폰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하는 세대다. 어느 세대에서건 젊은이를 탓하는 쪽이 졌다. 젊은이들은 충분히 똑똑해서 내버려두면 그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말한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실은 그런 젊은이들이 없지 않다. ‘서울대 트루스 포럼’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60개 대학의 ‘트루스 얼라이언스’로 확대된 모임에는 700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한미동맹을 통한 북한의 해방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보수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보수의 박제화(剝製化)다. 같은 주장이라도 젊은 보수들이 하니 박제화된 주장에 확 생기가 도는 듯하다. 이들이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반대를 넘어 평화와 평등의 이념까지 포섭하는, 더 큰 자유주의를 보여준다면 보수도 다시 댄디해질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내가 군 복무할 당시 작전계획 5027에 따르면 우리 대대가 속한 30사단은 군단의 예비사단으로서 북한이 남침하면 일단 전투지역전단(FEBA) 델타(D)나 에코(E)에서 방어선을 친 뒤 역습작전을 감행해 전방 1사단을 추월, 임진강을 건너게 돼 있었다. 임진강 도하 이후 어떤 작전을 수행하는지는 도상으로도 훈련해 본 적이 없다. 이걸 보면 5027작전은 공격작전이 아니라 방어작전임이 분명하다. 군 지휘부는 진격을 계속할 경우 군단이나 사단별로 북한의 어느 지역을 장악할지 막연하나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전투단위인 대대의 작계로까지 세부화돼 있지 않는 이상 실행계획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30사단은 이번에 ‘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에도 등장하는 부대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충정훈련이라고 불린 시위진압 훈련도 했다. 시위진압 훈련을 따로 하는 것은 군인의 무기인 총기 대신 봉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군이 상시로 시위진압 훈련을 한다는 건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고약한 일이지만 정규전 혹은 비정규전 훈련만 받은 군부대가 투입돼 빚어질 수 있는 우발적 유혈사태를 막는다는 측면도 있었다. 1987년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6월항쟁이 있던 해다. 6월에 들어서자 우리 대대는 충정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딱 한 차례의 도상훈련이 있었다. 그때 우리 대대가 서울 지역의 한 여대에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향해 미국의 승인 없는 군 투입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하고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이 나오면서 모든 병사들이 불안해하던 그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기무사 계엄 문건에는 30사단도 동원된다. 청와대에 1개 여단, 광화문 일대에 2개 여단이 배치되는 것으로 나온다. 30사단에는 90, 91, 92여단 등 3개 여단이 있다. 막연히 1개 여단, 2개 여단이라고 한 걸 보면 그 자체로는 책상머리에서 스케치한 수준이다. 실행 계획이 되려면 최소한 대대 단위까지의 배치 계획은 마련돼야 한다. 대대만 해도 인원이 500명에 이른다. 500명이 청와대로 가야 할지 광화문으로 가야 할지, 간다면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계획은 있을 수 없다. 군에서는 각 군 참모총장이 검찰총장에 해당한다.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국방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관해 각 군 참모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군 검찰 역시 일반 검찰과 마찬가지로 장관이나 그 상급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수사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향해서든 각 군 참모총장을 향해서든 구체적 사건에 관해서는 직접 지휘·감독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수사 지시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임명한 국방장관을 통해서 해야 한다. 수사에 대의가 있는데도 그가 거부한다면 그를 해임하고 새 국방장관을 임명하면 된다. 이런 절차도 밟지 않고 심지어 국방장관을 배제하는 수사 지시를 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군통수권은 군정(軍政)과 군령(軍令)을 다 포함한다는 뜻일 뿐이지 제왕적 권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수사 지시 자체가 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 군대의 모든 작전계획은 최소한 2급 비밀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군의 공식 라인을 통해 당시 국방장관에게 보고가 됐으나 비밀문서로 분류되지도 않고 평문으로 남아 있는 기무사 계엄 문건은 단순한 검토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실행 계획이라면 비밀로 분류됐다가 폐기된 기록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열심히 찾아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뭐라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실은 실행 계획 비슷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대로 내란 음모로 몰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벌써 세월호 사찰 문건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별건(別件) 수사가 시작된 것 같다. 계엄 문건을 작성할 당시 기무사령관은 조현천이었다. 그는 육사 알자회 장교였다고 했다. 알자회가 하나회의 후신은커녕 무슨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알자회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 사법의 칼날이 정권이 바뀌어 똑같은 보복으로 이어지고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을 반복한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5년간의 투옥·감금 끝에 간암이 악화돼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류샤오보 같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보면 경탄을 넘어 경외의 느낌이 든다. 그들은 마블사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비유하자면 우주를 지배하려는 타노스와 아이언맨의 슈트도 없이,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없이 싸우는 사람이다. 중국 고사의 표현을 빌리면 무모하게 왕의 수레를 막아 세우겠다고 덤벼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사마귀와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에 대해서는 비구니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건조한 느낌의 마른 여인이라는 인상이 거의 전부다. 그의 내면은 류샤오보가 류샤에게 쓴 시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릴케의 시를 좋아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을 좋아한 여인, 칸트는 읽은 적이 없고 철학을 모르는 여인, 여러 번 금연을 맹세하고도 담배를 끊지 못한 여인, 종일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 담배가 없는 날은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와 같았던 여인. ▷류샤가 11일 중국을 떠나 독일에 도착했다. 중국 외교부는 “치료를 받으러 독일에 갔다”고 밝혔으나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 정부를 향해 인권 개선을 요구했다가 몇 차례나 경제 보복을 당했지만 “류샤를 외국으로 보내 달라”는 류샤오보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 인권은 고사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한마디 못하는 정부가 집권하는 나라를 향해 진짜 인권을 존중하는 지도자는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보여줬다고 하겠다. ▷류샤는 1982년 류샤오보를 만나 서로의 문학과 사상에 깊은 공감을 나누다 1989년 6·4 톈안먼 참극 고발을 계기로 사랑에 이른다. 1996년 류샤오보가 복역 중인 수용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류샤는 2010년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중국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아왔다.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이 됐던 여인, 그러나 그 칼날은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던 아름다운 칼날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고려와 조선시대에 최고 공립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장(長)을 대사성이라 불렀다. 고려 말기 정몽주로부터 조선 전기의 신숙주, 중기의 이황, 후기의 김정희까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대사성을 지냈다. 오늘날 서울대의 총장은 현대판 대사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울대 총장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형법학자 유기천 교수같이 지성과 용기에서 모두 존경받는 분들이 없지 않았으나 유신과 5공 시절을 거치면서 그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총장의 위상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991년부터 총장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학문적 깊이와 열정보다는 ‘마당발’로 총장이 되는 일이 종종 빚어졌다. 총장 이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가 되고 더 높은 자리를 기웃거린 경우도 나타났다. ▷대학 총장에게는 ‘지성의 대표자’라는 역할 외에도 최고경영자(CEO) 역할이 있다. 영국은 대학 총장 자리를 이원화해 챈슬러(Chancellor)를 두고 그 밑에 바이스 챈슬러(Vice Chancellor) 겸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둔다. 챈슬러는 대학교에 상주하지 않는 명예총장으로 지성을 대표하고 프레지던트가 실질적 총장이다. 미국은 대학 총장 자리를 대체로 일원화해 프레지던트라고 부르고 CEO 역할을 점차 중시해 왔다. 동양은 좀 달라서 일본 도쿄대는 총장을 대학의 관리책임자로 보지 않고 ‘지성의 전당’의 상징으로 본다. ▷서울대 총장추천위원회에서 최근 총장 후보로 추천된 강대희 의대 교수가 어제 여기자를 성희롱하고 동료 여교수를 성추행한 의혹에 휘말려 후보에서 사퇴했다. 강 교수도 마당발 계열이다. 지성의 고고함을 버리고 어설픈 CEO 마인드로만 달려온 참담한 결과가 이번 사태가 아닐까. 정희성 시인은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했다. 아직도 시인의 말이 유효한지 강 교수와 추천위원회만이 아니라 서울대 전체가 깊이 자성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서울대 총장은 조국의 미래가 정말 궁금해질 이때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시대의 지성인이면 좋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98년 처음 대한항공 기내에 비빔밥이 제공됐다. 그 전만 해도 기내식은 대개 ‘서양식+밥’이었는데 한식으로 처음 제공된 것이 비빔밥이었다. 비빔밥이 외국에 널리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빔밥이 불고기나 갈비처럼 한류 음식의 대표가 된 데는 기내식 비빔밥을 맛본 외국인들의 입소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현대 항공문화가 낳은 기내식 비빔밥도 전주비빔밥처럼 명물 비빔밥으로 분류하고 싶다.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을 제공하지 못하는 ‘노 밀(No meal)’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빚어진 차질이다. 기내식 때문에 싼 외국 항공사를 놔두고 비싼 국내 항공사를 선택하는 승객도 적지 않은데 승객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제부터는 간단하나마 전 항공편에 기내식이 제공됐다고 하지만 비빔밥 등이 제공될 정도로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는 기내식 공급업체 LSG스카이셰프와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에서는 처음 기내식을 공급하게 될 게이트고메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회사가 공장 화재로 공급을 맞추지 못한 게 사태의 원인이었다. 아시아나는 급히 다른 기내식 공급업체 샤프도앤코와 단기 계약을 맺었으나 샤프도앤코의 능력으로는 충분한 양을 공급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때 납품 압박을 견디지 못한 샤프도앤코의 한 협력업체 대표가 자살하는 비극까지 빚어졌다. 30분만 공급이 늦어도 가격의 절반이 깎이는 상식 밖 조건에 따른 부담을 그가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배고프다. 고로 화가 난다(I am hungry, so I am angry)’다.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장시간 비행기를 탄 승객들이 토해내는 말이다. 기내식 사태는 7월 이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었음에도 아시아나는 태연히 비행기를 띄웠다. 사태가 불거진 5일 동안 승객을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글로벌 항공사라는 곳의 일처리가 겨우 이 정도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찬(自讚)하는 대북 관계의 성과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지난 10여 년 이래 가장 정확한 정세분석가는 주사파였던 이용대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실험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비로소 한반도에 평화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봤다. 민노당 내에서조차 그의 발표를 둘러싸고 격렬한 종북 논란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견해는 놀랍게도 현실이 되고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북핵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면 북-미 관계 개선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문재인 정부에 속속 수용된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사고는 실은 이용대의 인식 속에 대부분 들어 있던 것이다. 북핵을 자위(自衛)를 위한 무기로 보기 시작하면 그것으로부터 일련의 연쇄적 결론이 자동적으로 펼쳐진다. 남다른 학식이나 예지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단한 발상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이 정부가 주사파 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주사파의 관점이 강력한 힘을 얻은 새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주사파란 말이 그 말만 붙이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비판의 딱지여서는 안 된다. 주사파의 관점은 북한의 현존하는 정권과 연결된 실효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 정부는 올해 제주4·3사건 기념행사를 통해 남조선노동당 빨치산의 봉기보다는 군경의 민간인 학살을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은 남로당이 주도한 대구폭동을 대구인민항쟁으로 평가하는 책을 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에게 국가정보원 개조 작업과 개헌 작업을 맡겼다. 그는 해방전후사의 마지막 남은 금기인 남로당과 관련한 금기를 별 설명도 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내년 10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다음 달 15일로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남북에서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의 역사로 돌아가 남북 공존의 토대를 다지겠다는 의지를 탓할 생각은 없다. 역사는 결국 각자가 미래의 전망을 갖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에 무시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이용대는 경기동부연합의 우두머리였으나 건강이 악화돼 물러나는 바람에 그 자리가 이석기에게 갔다. 문 대통령은 이석기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서 유일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소장으로 앉히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통진당 측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출신 김선수 변호사의 대법관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대통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과 민변 출신 변호사들 사이에 형성돼 있는 통진당 해산 반대 커넥션은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보다는 반대한다는 주장만 커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일본처럼 공산당도 허용돼야 한다고 여긴다면 헌법의 위헌 정당 해산 조항 자체를 없애자고 해야 한다. 그러면서 통진당 해산 결정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논리적이다. 문 대통령은 6·13지방선거 전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서 수많은 조항을 고치면서도 그 조항은 없애지 않았다. 이 정부는 남북관계가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새 시대로 들어선 것처럼 말하지만 북핵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대부분의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평화를 얻는 대가로 핵을 포기할 것인가. 주사파라면 아니라고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도 트럼프 정부도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눈치다.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 핵을 가진 김정은과 평화는 가능한가. 정부는 이 질문에 먼저 답하고 국민을 끌고 가더라도 끌고 가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