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구독 1

추천

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4-10-02~2024-11-01
칼럼43%
인사일반14%
경제일반11%
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4%
국제인물4%
여행4%
기획4%
문화 일반2%
  • “스트레스엔 장사없다, 성격부터 바꿔라”

    “스트레스 안 받는 성격이다? 절대 건강에 좋은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자연스러운 에너지가 생성돼야 합니다.” 듣다보면 문화강좌 행복전도사 같기도 하다. 하지만 1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변광호 박사(75)는 미국 워싱턴주립대와 이화여대, 가톨릭대 의대 교수 등을 역임하고, 198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스트레스 면역학을 소개한 학자다. 그가 최근 ‘E형 인간 성격의 재발견’(불광출판사)이란 독특한 책을 펴냈다. 심신의학계는 성격을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완벽을 추구하는 A형과 매사에 낙관적인 B형, 착하디착한 C형, 세상에 적대적인 D형. 변 박사는 “스트레스를 통해 오히려 심신을 강화하는 ‘E형 인간’도 있다는 걸 새로이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E형 인간은 위기를 긍정적 기회로 여긴다. 이타적이며 삶에 감사할 줄 안다. 뭣보다 부부 가족 친구와 대화를 많이 한다. 변 박사는 “자신의 성격이 A∼D 가운데 어떤지 파악해 E형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한 간단한 실행법이 ‘333 정수법’이다. 생각을 멈추고 3분 동안 복식호흡을 하고, 또 3분 동안 자신의 장단점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는다. 다시 3분 동안 호흡하며 개선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변 박사는 “불교 명상과 비슷하지만 각자 자신에 맞게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변 박사는 다음 달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 ‘스트레스 회복탄력성을 지닌 새로운 E타입 성격’을 대한스트레스학회지에 게재한다. 내년 국제심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건강하고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마음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비행기]초심을 잃어버린 건가

    주말 밤 진짜 오랜만에 대학 친구 집에 모였다. 와이프가 아이들과 여행을 간 덕에 집이 비었다나. 배 나온 중년들이 모여 봤자 할 일은 뻔할 뻔자. 고기 구워 술 마시고, 잡다한 수다 떨다 포커 치고. 결국 다 돌려주는 돈, 뭘 그리 열 냈는지. 또 한 번 행운의 찬스(?)를 기약하며 새벽녘에 헤어졌다. 그런데 24일 출근길에 웹툰을 보다 살짝 놀랐다. 네이버 ‘가우스전자 시즌3’에서 그날 밤 얘기했던 ‘초심(初心)’을 다룬 게 아닌가. “취직 준비할 때는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회사 생활에 치여서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다”부터 “다시 한번 열심히 달려볼까”까지. 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할 만한 얘기건만. 얼마 안 돼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다만 작가도 말했듯 초심도 어느 시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확확 달라진다. 엉뚱하게 10대 때 초심은 뭐였는지 떠올려봤다. 무조건 신나게 노는 것. 그럼 난 초심을 잃어버린 건가. 사전엔 ‘초심(焦心·마음을 졸여서 태움)’이란 단어도 있다. 쌀쌀한 가을, 좁쌀만 한 맘만 더 쪼그라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뉴스룸/정양환]오목 볼록 별의 사랑

    다행스럽게도, 여섯 살 아들은 읽고 쓰는 걸 좋아한다. 그래봤자 초콜릿과 도널드 덕이 최상위 포식자긴 하다. 어쨌든 아빠한테 “왜 매일 휴대전화만 보느냐”며 타박도 한다. 그런 아이가 아끼는 동화 가운데 ‘오목 볼록 별 이야기’란 게 있다. 미야케 야스코란 일본 작가가 쓴 이 그림책은 국내에 10년 전 출간됐다. 멀고 먼 우주, 땅콩처럼 생긴 별에 오목 나라와 볼록 나라가 있다. 두 국민은 딱 하나 손 모양이 다르다. 이름처럼 볼록 쪽은 동그라니 볼록하고, 오목네는 넓적하니 오목하다. 그게 그리 못마땅했는지 언제나 서로 헐뜯으며 업신여긴다. 최근 독일에 다녀오며 묘하게 이 책이 자주 떠올랐다.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발표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 현장을 찾는 출장이었다.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는 역사적 순간의 흔적을 더듬으며, 불경스럽게도 ‘손만 다른’ 별나라 사람들이 눈앞을 맴돌았다. 특히 보름스에서. 실은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 종교개혁 하면 먼저 선악구도가 머리에 그려진다. ‘부패한 교황’ 대 ‘용기 있는 수도사’랄까. 보름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제국회의에 불려나간 루터가 서슬 퍼런 분위기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밝혔던 곳. 옛 주교궁 자리였던 공원에서 마주한 ‘루터의 신발’은 왠지 오목 나라 체취가 묻어났다. 그런데 현장에선 다소 색다른 얘길 들었다. 올해 이 청동신발이 만들어진 게 가톨릭의 ‘배려’ 덕이란다. 사실 이 공원은 보름스대성당 옆에 붙어있다. 관계자는 “독일에선 법적으로 가톨릭 건축물 인근에 타 종교 설치물을 세울 수 없다”고 귀띔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성당 측에서 루터의 가치를 존중해 대승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개신교 역시 ‘과하지 않게’ 소담한 기념물로 조성했다. 지난주 나온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도 평소 선입견을 깨뜨리는 책이었다. 2010년 ‘탐욕의 지배’로 유명한 독일 역사가 폴커 라인하르트는 지금까지 종교개혁은 개신교 자료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한다. 전체를 보려면 바티칸 사료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한다. 오랜 연구 끝에 저자는 “종교개혁은 비텐베르크와 로마, 독일과 이탈리아 두 극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천사와 악마의 대결’이 아니라, 양측 모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있었단 주장이다. 하나 짚고 넘어갈 건 있다. 당시 교황청이 훌륭했단 뜻은 아니다. 부정이 심각했고, 개혁은 시급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도 변혁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루터 역시 초기엔 ‘혁명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쇄술이란 강력한 미디어 원군이 없었다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런다고 루터의 위대함이 흠집 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오목 볼록 별은 어찌 됐을까. 으르렁대던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겪은 뒤 마음을 고쳐먹는다. 높은 데서 발을 헛디딘 볼록 어린이의 손을 오목 어른이 잡아 구했다. 그제야 상대의 손이 자신과 맞춤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다름은 서로의 약점을 채워준다. 그 차이가 지닌 아름다움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읽고 배운다. 어른도 다 안다고? 알면서도 못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멍청이다.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10-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재판 받았던 곳에 ‘루터의 신발像’… 종교개혁 큰 걸음

    “제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양심에 불복하는 건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서 있나이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1521년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독일 보름스에서 천명했던 이 말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당시 입장을 번복했다면 프랑스혁명도 미국도 없었다.” 두 나라엔 기분 나쁠 소리겠지만, 그만큼 루터의 신념은 칠흑 같던 중세를 찢고 타올랐던 근대의 횃불이었다. 동아일보는 ‘종교개혁 500주년’(31일)을 앞두고 비텐베르크와 아이제나흐에 이어 보름스와 아이슬레벤을 찾았다. 루터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아이슬레벤과 제국회의가 열렸던 보름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 아이슬레벤―그는 떠났을지라도 인구 약 2만4000명(2006년 기준)의 작고 아담한 아이슬레벤. 공식 지명에는 ‘루터슈타트(Lutherstadt·루터의 도시)’가 달려 있다. 구석구석 건물과 돌바닥에 루터의 상징인 ‘장미 문양’이 박혀 있다. 여기서 나고 자란 루카스 버켈 씨(54)는 “시민들은 루터의 도시에 산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후미진 골목 벽화에도 루터가 그려져 있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500주년에 맞춰 출시된 루터 플레이모빌을 어린이들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루터의 생가(生家)와 사가(死家)는 걸어서 10여 분 거리. 생가 입구엔 덴마크 동화작가인 안데르센(1805∼1875)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전시관 관계자는 “1831년 방문해 동화 집필의 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루터는 생후 1년 뒤 다른 도시로 떠났는데, 영적 기운은 머문 시간과 상관없나 보다. 목관(木棺)이 전시된 사가 2층 창밖으론 성 안드레아스 교회가 보였다. 1546년 고향에 온 루터는 2월 15일(일부에선 14일이라고 주장) 여기서 ‘마지막 설교’를 펼쳤다. 그리고 18일,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 평생의 동지였던 필리프 멜란히톤은 짤막한 글 하나를 영전에 바쳤다. “비록 그는 숨졌을지라도…, 루터는 여기 살아 있다.” ○ 보름스―나무로 변한 지팡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역사적 현장인데 의외로 루터 흔적이 적다. 게다가 14세기 완공된 보름스대성당 덕에 가톨릭 방문객이 훨씬 많다. 루터가 신성로마제국에 심문받은 주교궁도 지금은 오붓한 공원으로 바뀌었다. 1689년 프랑스군 침공 때 무너졌다. 재판 장소엔 크지 않은 기념 조형물뿐. 올해 종교개혁의 큰 발걸음을 뜻하는 ‘루터의 신발’이 새로 만들어졌다. 워낙 커서, 모두들 발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루터의 족적은 누구라도 품는단 의미일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868년 세운 ‘루터 동상’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목회자는 “훗날 독일 황제가 된 빌헬름 1세도 제막식에 참여했다”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루터 동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자들이 둘러싼 풍채가 꽤나 장엄하다. 서쪽 동네에는 흥미로운 사연의 ‘루터의 나무’가 있다. 제국회의 때 두 할머니가 다퉜는데, 루터를 응원한 이가 “그가 옳으면 여기서 싹이 날 것”이라고 했단다. 훗날 땅에 꽂은 지팡이가 자랐단다. 야사일 뿐이겠지만, 당시 이 도시엔 루터 지지자가 1만4000여 명이나 몰려들었다. 그때 보름스 인구는 겨우 7000명이었다. 진짜 기적은 나무로 변한 지팡이가 아니다. 절대세력에 맞섰던 한 선지자의 용기가 일깨운 민중의 각성이었다.  ▼ “한국교회의 개혁, 루터가 답이다” ▼ ‘종교개혁의 불꽃…’ 출간 김현배 목사“오늘날 교회의 개혁과 부흥의 답은 루터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졌다면 진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지난달 독일에서 만난 김현배 베를린비전교회 목사(사진)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무게’를 강조했다. 그는 올해 5월 ‘종교개혁의 불꽃 마틴 루터’를 출간했다. ―본질적으로 루터는 누구인가. “단순히 종교개혁자가 아니다. 신학자 번역가 목회자 교육자 등 여러 모습을 지녔다. 또 다른 종교개혁자 멜란히톤은 루터를 종종 사도 바울과 비교했다. 복음을 위한 열정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고집도 세고 때로 폭발적인 분노도 드러냈다. 그랬기에 타협하지 않고 진리에 목숨을 바쳤다.” ―올해 독일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여러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500주년은 숫자에 불과하다. 루터는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하나님이 없는 성직자를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신이 잘 전해지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교회에 가장 큰 고민은 뭐라고 보나. “유럽을 보면 현재 교회의 영적 쇠퇴가 심각하다. 독일에서 저명한 디트머 루츠 목사는 최근 ‘독일은 스스로 경작해 추수하기 불가능한 선교지가 됐다’고 한탄했다. 한국 교회도 세속화와 윤리의식 부재를 반성해야 이런 절망을 겪지 않을 것이다.”  아이슬레벤·보름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현대인들이여, 명상으로 나를 지키자

    “이 생에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수행하리오.” 국내의 대표적인 명상 수행자인 각산 스님(57·세계명상센터 참불선원장·사진)이 주최하는 ‘명상 힐링 캠프’가 26일부터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참불선원은 17일 “부처가 행했던 성불 명상법인 초기 불교 수행과 본래 부처를 체험할 수 있는 간화선 통합수행을 3박 4일 동안 개최한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회를 맞는 이 캠프는 해마다 2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세계 불교계의 대표적 수행자들인 아잔 브람(호주)과 아잔 간하(태국), 심도 선사(대만) 등 2000여 명이 참여해 ‘세계명상대전’이란 이름으로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렸다. 올해는 보다 수준 높은 집중 수행을 위해 참가 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했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보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각산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를 졸업한 뒤 미얀마의 파 욱 사야도와 아잔 브람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태국과 미얀마 스리랑카 호주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10여 년간 정진했다. 국내에서는 여러 차례 국제적 명상 대전을 개최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번 캠프는 스님이 직접 명상 지도를 맡아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산 스님에 따르면 명상 수행은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신 건강 훈련이다. 스님은 “쉽게 명상에 대해 평가하지만 ‘국자가 국 속에 있으면 국 맛을 모르듯’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며 “오로지 참선만이 욕망과 존재, 미혹으로부터 대(大)자유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캠프는 3박 4일 집중 수행을 하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엄격한 준수 사항을 요구한다. 음주나 흡연은 물론 휴대전화 사용도 안 되며 묵언(默言) 수행을 원칙으로 한다. 귀걸이나 반지 같은 귀금속 착용이나 짙은 화장, 향수도 금지된다. 참가 인원은 선착순 마감, 참가비는 9만 원(숙식비 19만 원 별도)이다. 캠프를 마치면 사단법인 한국명상지도자협회 명상지도사 이수 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참불선원()이나 BBS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577-3696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95개 논제’ 새겨진 청동門… “믿음 태동한 성지” 세계인 북적

    《 1517년 10월 31일. 이달 31일은 개신교는 물론이고 세계 종교사(史)에서 손에 꼽을 만한 뜻깊은 날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정면으로 반박한 ‘95개 논제’를 천명한 지 딱 500년이 되기 때문. 루터의 개혁은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종교를 넘어 사회와 세상을 뒤바꾼” (미국 종교학자 어윈 루처) 마중물로 평가받는다. 동아일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루터의 자취가 가득한 독일의 4개 도시를 찾았다. 16세기 한 수도사의 외침은 50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엔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까. 》 ○ 비텐베르크-개혁의 물꼬가 터지다 지난달 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새벽안개를 헤치고 약 460km를 달려 마주한 비텐베르크는 역시 루터의 도시였다. 원래 정식 지명도 ‘루터슈타트(Lutherstadt·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인 이곳은 평일 오전인데도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이들로 북적였다. 미국의 성지순례 일행인 제니 리들리 씨(62)는 “평생의 믿음이 태동한 성지(holy land)를 드디어 찾아 너무 행복하다”며 “루터의 용기로 평신도도 하나님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종교개혁이 오롯이 루터의 힘만으로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다. 체코 신학자 얀 후스(1369∼1415)를 비롯한 선대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 루터에 이르렀다. 실제로 후스는 처형 직전 “거위(체코어로 ‘후스’)를 요리해도 100년 안에 백조가 일어나 승리한다”고 예언했다. 루터가 이곳 ‘성 교회’ 대문에 써 붙였던 95개 논제는 힘찬 백조의 날갯짓이었다. 지금은 논제가 새겨진 청동 문으로 변한 교회 안엔 제단 앞에 루터의 묘도 있다. 평생의 협력자였던 필리프 멜란히톤(1497∼1560)과 함께. 멜란히톤은 종교개혁의 주요 핵심 인물이지만 온화한 성품 탓에 전면에 나서는 걸 꺼려했다. 두 사람은 당시 사제의 전유물이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매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묘지석엔 ‘마르틴 루터 여기 잠들다’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교회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박물관 ‘루터하우스’도 역시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당시 루터가 속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이 현대에 와서 바뀐 모습이다. 루터가 번역한 1534년 판본 독일어 성경과 초상화 등 귀중한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박물관은 1525년 루터와 결혼한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 전시실을 따로 개장했다. 루터하우스 측은 “루터가 갖은 박해로 벌이가 시원찮을 때, 농장과 공방을 경영하며 남편을 뒷받침한 부인의 공이 컸다”고 설명했다.○ 아이제나흐-잉크로 악마와 싸우다 다음 날 찾은 아이제나흐는 실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뒤 1521년 10개월 정도밖에 머무르지 않았다. 당시 루터는 보름스 제국의회가 교황청에 항거한 그에게 추방령을 내려 도망자 신세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루터는 이곳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최고의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그해 9월 완성해 ‘9월 성경’으로 불리는 독일어 신약성서를 완역한 것이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전국으로 퍼진 성경은 종교개혁 확산의 결정적 도화선이었다. 평지에서 400m가량을 올라간 바위산 위에 세워진 성은 주위에 전시된 대포 탓인지 왠지 ‘요새’의 풍모를 지녔다. 자신을 고립시키는 세상을 향해 성서란 무기를 곧추세운 루터의 의지가 배었기 때문일까. 전시관 관계자는 “당시 루터는 책을 쓰다 악마를 마주해 잉크병을 던졌다고 전해진다”고 귀띔했다. 진짜 악마가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앙심으로 무장한 펜 하나가 서슬 퍼런 제국의 총칼을 꺾는 순간이었다.   ▼ “1년 내내 기념전-콘서트… 방문객 벌써 작년의 倍” ▼“복잡할 것 없습니다. 루터의 가르침은 ‘오직 믿음으로’란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됩니다.” 지난달 26일 만난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의 베냐민 하셀호른 총괄매니저(사진)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말투였다. 베를린 훔볼트대 신학박사인 그는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에 이른다는 혁명적 인식의 전환을 인류에게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루터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한가. “물론이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 그때나 지금이나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나. 물론 세부적 가치나 해석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나 루터는 신을 대신해 면죄부를 파는 교황청의 가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신 앞에 선 한 인간이란 ‘단독자’ 개념을 세웠다. 이는 근대는 물론이고 현대 문명의 기반과도 직결된다. 개인의 탄생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종교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비텐베르크에서도 전체 인구의 15% 정도만 교회에 다닐 정도다. 종교개혁 500년이 흐르며 개신교 역시 ‘고인 물’이 되진 않았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루터가 신앙으로 역경을 이겨냈듯, 결국은 믿음만이 우리의 돌파구다. 이곳엔 한국인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루터의 영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500주년을 맞은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교회는 물론이고 정부도 적극적이다. 이곳을 비롯해 독일 곳곳에서 기념 전시와 콘서트가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비텐베르크는 해마다 약 20만 명이 방문하는데, 올해는 벌써 두 배가량 찾아왔다. 다만 젊은층에서 관심이 높지 않은 건 이곳에서도 큰 고민거리다. 끊임없이 변화에 목마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루터가 현재에 안주했다면 개혁이 가당하기나 했겠나.”  비텐베르크·아이제나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뉴스룸/정양환]해에게서 소녀에게

    2009년 1월, 꽤나 추웠던 날이다. 가요 담당 기자가 된 뒤 운 좋게 데뷔 1년쯤 된 걸그룹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름 첫 앨범도 뜨거웠던 팀인지라 신나서 달려갔지만, 약간 첫인상이 실망스러웠다. 10대라 그런지 딱딱한 모범답안만 내놓아 재미가 없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아직 점심 무렵인데 연일 스케줄이 빡빡했는지 살짝 지쳐 보이기까지 했다. 뭔가 더 끌어내지 못하는 능력 부족을 자책하다가 반전이 일어난 건 ‘음악’ 얘기에 집중하면서부터였다. 퀭하던 눈빛이 반짝반짝 되살아나더니 2집에 담은 노력과 애정을 마구 쏟아냈다. ‘디어 맘(엄마에게)’이란 노래를 녹음하며 모두 펑펑 울었던 일화, 곧 출산을 앞둔 큰언니에게 들려주고 싶단 속내까지.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 이래서 이 친구들을 좋아하나 보다. 음악과 함께할 때 가장 빛나는구나. 그들은 ‘소녀시대’였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소녀시대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건 말건 상관없는 분은 ‘시 유 어게인’. 소속사는 10일 멤버인 수영과 티파니, 서현은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떠난 제시카까지 전체 9명 가운데 4명이 빠지는 셈. 5인조 소녀시대라. 나름 운치야 있겠지만, 기존에 알던 소녀시대는 아니다. 한국 걸그룹의 상징 같던 존재다 보니 국내외 반향도 크다.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선 소녀시대 옛 앨범들이 주르륵 순위 차트를 점령하는 일도 벌어졌단다. 한 해외 한류전문 매체는 ‘결별(break up) 소식에 분노에 휩싸인 팬들’을 다룬 기사도 내보냈다. 미국 빌보드는 “10주년 기념앨범을 낸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더 충격이 거셌다”고 분석했다. 다만 다들, 하나 주목하지 않는 게 있다. 어쨌든 그들은 10년을 버텼다. 뭐, 억지로 가수 활동했단 얘긴 아니다. 어지간해선 꿈도 못 꿀 돈과 명예도 따랐을 테고. 하지만 이 땅에서 지금까진 어떤 걸그룹도 강산이 바뀌는 걸 누리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데뷔했던 원더걸스도 올해 1월 결국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해체했으니. 어쩌면 앞으로도 한참은 보지 못할 기록을 소녀시대는 세웠다. 역시 오래 버티는 게 장땡이란 허망한 소린 하고 싶지 않다. 10년이란 시간은 그들을 ‘소녀’라 부르기도 겸연쩍게 만들었다. 처음에야 다들 고교생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 내년이면 서른이다. 그들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와 닿으리라 생각하니…. 세월 참. “우리만 그런 건 아니지만, 국내 연예계는 여성 뮤지션이 살아남기 쉽지 않은 정글입니다. 특히 아이돌에겐 10대, 많아야 20대 초반 이미지를 유지하길 암묵적으로 강요하죠. 그런데 소녀시대는 뭔가를 뛰어넘었습니다. 사탕발림 애교 부리는 수준을 벗어나 ‘당당한 카리스마’로 승부해 정상을 지켰다고나 할까요. 물론 기획사 전략도 작용했겠지만, 그건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죠.”(아이돌 전문 비평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 이제 소녀시대는 ‘따로 또 같이’ 새로운 길을 간다. 그 앞에 뭐가 있건 한국 걸그룹사(史)는 그들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 추웠던 날, 리더인 태연은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 시작했던 순간을 잊지 말자고 수십 번씩 함께 다짐했어요. (새해에) 무언가 새로 준비하는 분이 많을 텐데, 저희와 힘차게 출발하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 바람, 그대로 돌려드린다. 당신들 인생은 이제 막 해가 떠올랐다고.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대박나는 상품… 누가, 어떻게 만들까

    대박 나고 싶다. 누군들 안 그럴까만, 자본주의는 확실히 그런 욕망을 부추기는 경향이 짙다. 갈수록 복잡한 세상. 분야를 막론하고 히트 상품을 만들 ‘비결’이 있다면 당연히 궁금할 터. 미국 시사월간지 부편집장인 저자가 그걸 파헤쳤다니 당연히 관심이 쏠린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절대 책을 허투루 썼단 얘긴 아니다. 실은 굉장히 재밌다. 미술이나 방송,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뤄 접근하기 쉽다. 심리학 경제학 등 다양한 방면을 훑은 취재력도 돋보인다. 깔끔하게 속도감을 장착한 문장력까지. 그래서 더 뼈저리게 깨닫는다. 대박의 길은 정말 험하구나. 예를 들어, ‘현대 산업디자인의 아버지’ 레이먼드 로위(1893∼1986)를 보자. 널리 알려진 코카콜라 병을 비롯해 빌딩 자동차 우주선까지 그가 손댄 디자인은 대다수가 히트 쳤다. 하지만 그 바닥은, 젊은 청춘을 쪽잠 자가며 디자인에만 매진한 열정으로 단단히 다져놓았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얻은 그의 성공 철학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진보적인” 상품이다. 말이야 쉽지, 그건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기에 시대성이라 에둘렀지만 운도 좀 따라줘야 한다.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지금 당장’ 성공에 목마른 이에겐 딱히 권유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박차고 일어서고자 할 때 읽으면 딱 좋겠다. 전혀 자기계발서가 아닌데 왠지 모르게 에너지를 전하는 매력을 지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교단 안팎 위중한 시기… 공심으로 일로매진”

    “마부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의 뜻을 거울삼아 종단 발전을 위해 쉼 없이 진력하겠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설정 스님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단을 운영하는 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공심으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한길로 곧장 거침없이 나아감)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받은 뒤 곧장 회견장을 찾은 설정 스님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소감과 포부를 밝혔다. 설정 스님은 “지금은 교단 안팎으로 매우 위중한 시기로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고 정치권은 분열의 모습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며 “종단 역시 지속적 불교 개혁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과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다운 불교, 존경받는 불교, 신심(信心) 나는 불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종도의 발원을 잘 알고 있다”며 “조고각하(照顧脚下·발밑을 잘 살펴 작은 일도 방심하거나 자만하지 않음)하며 종도의 뜻을 살피고 헤아릴 테니 모두가 뜻과 지혜를 모은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설정 스님의 당선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1955년 혜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61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은 스님은 종단의 신망이 두터운 원로다. 게다가 선거인단에 대한 영향력이 압도적인 자승 원장 집행부가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4명이 출마했던 선거는 전 포교원장인 혜총 스님과 전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이 중도 사퇴하며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과 2파전으로 치러졌다. 수불 스님은 82표를 얻어 분전했으나 설정 스님이 234표(무효 3표)를 얻어 세가 크게 기울었다. 설정 스님은 선거 기간 제기됐던 여러 의혹도 모두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깔끔하게 소명하겠다”며 “그것들이 소명되지 않고서는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스님은 자신의 신변 문제와 관련한 의혹을 보도한 교계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상태다. 또 마곡사 금권선거 논란 등 종단을 둘러싼 추문에 대해서도 “승려들이 진실하고 청정해야 사부대중이 신뢰하고 따르지 않겠느냐”며 “종도 및 스님들과 함께 논의해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정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본·말사 주지 임명권과 총무원 예산 집행권, 종단 소속 사찰의 재산 감독 및 처분 승인권 등 종단 전체를 총괄하는 권한을 지닌다. 앞서 2009년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던 자승 스님(63)은 2013년 연임에 성공해 8년 동안 재임했다. 설정 스님은 18일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의 인준을 거친 뒤 31일부터 공식적인 임기가 시작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계종 새 총무원장에 설정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덕숭총림(수덕사) 방장인 설정 스님(75·사진)이 선출됐다. 조계종은 12일 “설정 스님이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선거인단 319명 가운데 234표를 얻어 총무원장에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설정 스님은 득표율 약 73.4%로 절반을 넘겨 결선투표 없이 차기 총무원장으로 결정됐다. 임기는 4년이다.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설정 스님은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낸 원담 스님을 은사로 14세에 출가했으며 1994∼1998년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비행기]경구 투여? 먹으란 소리 같긴 한데…

    “식후에 경구 투여하십시오.” 꿀 같은 연휴. 애꿎게 목감기가 찾아왔다. 딱히 병원 찾긴 그렇고. 마침 문을 연 약국에서 기침약을 샀다. 뻔한 알약, 하루 3번 2알씩. 근데 우연히 읽은 복용법에 살짝 멍했다. ‘경구 투여.’ 먹으란 소리 같긴 한데. 설마 딴 데 넣으란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휴대전화 음성비서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연락처에 경구란 사람은 없다”란다. 또 당황했다. 학교 선배 이름인데 왜 없지. 어쨌든 국어사전 끝자락에 쓰인 경구(經口) 뜻은 이랬다. ‘약이나 세균 따위가 입을 통하여 몸 안으로 들어감.’ 그럼 투여는 또 뭐야. ‘역전앞’도 아니고. 이번 연휴 마지막을 장식한 건 한글날. 평소 한글 사랑에 열 올릴 깜냥도 못 된다. 하지만 이런 전문가나 알아들을 표현, 이젠 좀 사라지면 좋겠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제세동기(除細動器) 같은 몇몇 용어를 심장충격기 등으로 순화한다고 발표했다. 다행이긴 해도 어디 그것뿐이랴. 진짜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말도 쉽게 풀어 모두 알아먹게 하는 거다. 세종대왕께선 분명 그러자고 한글을 만드셨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뉴스룸/정양환]클럽가입 전상서

    “우와, ‘밀레니엄’이다.” 이게 웬일이람. 씩 미소가 번졌다. 뜸했던 친구의 ‘까똑’이 이런 기분일까. 19일 발행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마주한 흥분은 꽤나 옹골찼다. 읽은 사람은 안다. 스티그 라르손. 일면식도 없는 스웨덴 소설가의 요절이 얼마나 헛헛했는지. 2005∼2007년 나온 3권의 범죄스릴러는 그만큼 끝내줬다. 한때 국내에선 절판됐던 이 소설이 다시 번듯해져 돌아오다니. 유족과 출판사가 선임한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새로운 4권까지 함께. 무작정 꾐에 넘어가려는 찰나. 책 띠지에 야릇한 문장 하나가 눈에 콱 박힌다. “1억 부 클럽 진입을 앞둔….” ‘1억 부 클럽?’ 오호라, 그런 게 있어. 지구 곳곳에서 그렇게나 많이 봤다니. 그럼 그 클럽에 가입한 영광의 얼굴은 도대체 누굴까. 괜히 감질나서 인터넷을 쑤셔댔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역시 이 클럽의 ‘회장’은 성경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최소 5억 부 이상 찍었으리라 추산한다. 다만 1964년 출간된 마오쩌둥(毛澤東)의 ‘마오 주석 어록’이 6억5000만 부로 성경을 앞질렀단 주장도 있다. 소설에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약 5억 부로 압도적인 1위. 동양권에선 ‘홍루몽’이 1억 부를 넘겼다. 참고로 테두리 바깥이나 약 4000만 권이 팔린 한국책도 리스트에 있다. ‘수학의 정석’이다. 작가로 치면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포함해 85권이 거의 히트하며 총 20억 부 이상 팔렸다. 단일 시리즈 역시 영국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세상을 들썩였던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는 지금까지 5억1000만 부가 나갔다. 재밌긴 한데, 뭔가 영 석연찮다. 아무리 뒤져봐도 ‘1억 부 클럽’이란 명칭이 없는 거다. 판매량이 나오니 1억 부 기준으로 가르면 되긴 한데….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 한 출판사에 전화를 넣어 봤다. “저희가 알기로 그런 클럽은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국내에서’ 쓰는 말이에요. 굳이 따지면 거짓말인 거죠. 하지만 한국 독자들이 워낙 그런 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랄까요. ‘3대 기타리스트’ 뭐 이런 거처럼.” 젠장, 뒤통수가 띵했다. 분하긴 한데 대꾸할 말이 없다. 그놈의 클럽 뭐시기에 더 혹한 게 사실이니. 얼마 전 보도됐던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건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계 7대 귀여운 강아지 같은 걸 뽑은 단체한테 혈세 170억 원을 썼다. 왜 이 모양인지. “낙심할 건 없습니다. 워낙 한국인은 ‘평판’을 중시하거든요. 과하긴 해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기질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젠 균형감을 찾을 필요가 있죠. 타인의 시선, 특히 서양의 잣대에 너무 휘둘려요. ‘경제 규모 세계 10위’가 삶의 질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건 이제 다들 알잖아요?”(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그래, 이젠 좀 편해지자. 외국인한테 ‘두 유 라이크 김치(요즘은 치맥)’도 그만 하자. 그럼 대놓고 싫다 그러겠나. 어차피 밀레니엄은 모르고 봐도 좋았다. 1억 부 클럽이건 말건. 아무리 팔린들 내가 감흥 없으면 뭔 소용인가.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다. 굳이 ‘공인 인증’받지 않아도.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09-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계종 총무원장 후보등록 끝나자마자… 선거 파행 위기

    다음 달 12일 치러질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20일 후보 등록을 마치고 선거 국면에 접어들었다. 본격적인 선거전은 입후보 자격심사가 끝나는 25일 이후부터지만 벌써부터 선거법 위반 여부 등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입후보 기간(18∼20일) 동안 모두 4명의 스님이 후보 등록을 마쳤다. 등록 순서대로 덕숭총림(수덕사) 방장인 설정 스님,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전 조계종 포교원장인 혜총 스님, 전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이 기호 1번부터 4번까지 배정받았다. 자승 원장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기호 1번 설정 스님은 18일 후보 등록을 마친 뒤 “불교를 중흥시키고 종단 발전을 도모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성실히 그 길에 나서겠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현 집행부가 선거인단 321명에 대한 영향력이 압도적인 상황이라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힌다. 그러나 종단 개혁파가 “안팎으로 시끄러운 현 체제의 답습”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데다, 최근 불거진 학력 위조 이슈를 비롯해 개인 신상과 관련한 의혹들이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반(反)자승파’로 분류되는 기호 2번 수불 스님은 후보 자격 시비로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19일 조계종 최대 계파인 ‘불교광장’ 소속 일부 중앙종회의원들이 ‘수불 스님의 대중공양은 금품을 살포한 선거법 위반’이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불 스님 측은 20일 선관위에 보낸 입장문에서 “종헌과 종법은 물론 선거법상에도 징계 규정이 없다”고 반발했다. 또 한 관계자는 “만약 억지로 출마를 막는다면 법원에 선거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한편, 선관위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직선제는 80% 이상의 지지를 받았지만 집행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사실상 무산됐다”면서 “설정 스님과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수불 스님의 출마까지 좌절된다면 이번 선거는 최악의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 선관위는 25일까지 입후보 자격심사를 진행해 출마 가능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한편 기호 3, 4번인 혜총 스님과 원학 스님은 20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18일 수불 스님이 기자회견을 가진 건 사전 선거운동으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수불 스님 측은 “종책(공약) 제시를 한 적이 없어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짜장 보시하러 전국 교도소 갑니다”

    “힘들긴 뭐가 힘들겠습니까. 이렇게 중생에게 베풀 복이 넘치는데. 4년 반 동안 즐겁게 전국을 돌아봐야죠.” 스님들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만난 운천 스님(전북 남원시 선원사 주지)과 마가 스님(‘자비명상’ 이사장)은 새로운 장난감 선물을 받은 아이들 같은 표정이었다. 이들은 전국 교도소를 돌며 ‘법(法)과 밥을 나누는 법회’를 개최한다. 법무부 교정본부와 일정을 조정 중인데, 전국 53개 교도소를 다 도는 데 4년 6개월이 걸린단다. 사실 두 스님은 원래부터 교도소 출입(?)이 잦았다. 특히 운천 스님은 2009년부터 여러 교도소와 복지시설을 찾아 짜장면을 요리해 나누는 ‘짜장 보시’로 유명했다. 한번 가면 적어도 1000인분씩 만든 게 벌써 1000회가 넘는다.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불교계의 힐링 멘토’로 불리는 마가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작부터 안면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2015년이었습니다. 대지진이 났던 네팔에 함께 봉사활동을 갔다가 마음이 통했지요. 마침 최근에 ‘제가 짜장면을 만들 테니, 스님이 좋은 법문을 들려주세요’라고 연락이 왔습디다. 옳다구나 싶어서 일을 좀 크게 벌이기로 했지요.”(마가 스님) 두 스님의 보시는 내용만 봐도 무척 알차다. 일단 짜장면 보시는 기본. 여기에 마가 스님의 저서 ‘나를 바꾸는 100일’ ‘간추린 자비도량참법’을 10만 권씩 준비해 배포한다. 이를 바탕으로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에 위안을 주는 강의와 명상 시간을 갖는다. 운천 스님은 “젊은 불자 예술인으로 구성된 ‘그래도 예스 예술단’이 춤과 노래 공연도 선보인다”며 “수용자 가족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교정공무원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두 스님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개신교가 운영하는 소망교도소처럼 언젠가 이 땅에 불교교도소를 짓겠다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마가 스님은 “교도소 법회 봉행만으로도 예산이 빠듯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며 “이렇게 힘을 합쳤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용자 교화 활동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숯과 불 그리고 암호… 더 강렬해진 ‘화가 신부님’

    ‘화가 신부’로 유명한 조광호 신부(70·사진)가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김세중미술관에서 초대전를 갖는다. 조 신부의 이번 전시 주제는 ‘로고스의 불(logos ignis)’이다. 로고스는 존재와 진리, 불은 생명의 불씨를 뜻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현대 추상화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는데, 숯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조 신부는 “내게 예술이란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의 의미를 해독하려는 실존적 인간의 뜨거운 열정과 그리움”이라며 “숯과 불을 통해 만물에 내재된 하느님의 숨결과 생명의 에너지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조 신부의 작품에는 암호와 같은 다양한 기호들이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숫자 ‘3’은 초월적 세계인 하느님의 나라를 뜻하고, ‘∞’(무한대)는 무한하고 영원한 하느님을 상징한다. 고종희 한양여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종교 미술과 달리 조 신부의 작품은 강렬하고 과감하며 실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1979년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은 조 신부는 1985년 독일 뉘른베르크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5년 동안 현대회화를 배웠다. 오스트리아에선 동판화와 스테인드글라스도 연구했다. 서울 당산철교의 대형 벽화와 서소문 순교성지 기념탑, 옛 서울역 로비 천장화 등이 그의 작품이다. 다음 달 10일까지. 02-717-5129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비행기]다시 꺼내든 ‘총, 균, 쇠’

    ‘총, 균, 쇠’(사진)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계기는 유치하다. 얼마 전 술에 취해 터벅터벅 집에 가던 길.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렀는데, 점원이 눈을 사로잡았다. 아르바이트 학생일 듯한데, 한쪽 팔에 문신이 빽빽하게 들어선 게 아닌가. 침이 꼴깍 넘어가는데, 그의 손에 들린 두툼한 책 한 권에 또다시 눈길이 꽂혔다. 맞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그 책이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뒤졌더니, 곰삭은 종이 냄새가 밴 ‘고서(古書)’가 주인을 맞았다. 반가운 마음에 몇 장을 넘겼는데…. 어라, 매캐할 정도로 내용이 깜깜하다. 분명 읽긴 했었는데. 괜스레 ‘타투인(人)’에게 질투가 피어올랐다. 마침 찾아보니 ‘총, 균, 쇠’는 올해 출간 20주년을 맞았다. 스무 해 전, 한 교수는 퓰리처상까지 받게 되는 명저를 세상에 내놓았다. 10년 전쯤, 웬 중년은 ‘×폼’ 잡으며 그 책을 읽곤 시원하게 까먹었다. 올해, 어느 멋진 젊은이는 계산대에 앉아 근사한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고 있다. 서로를 몰라도 우리는 이어져 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하이패밀리, 양평에 주기도문 산책길 조성

    ‘주기도문과 함께 걷는 올레길.’ 기독교단체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는 11일 “경기 양평군 가족테마파크 ‘더블유 스토리’에 주기도문을 주제로 한 산책로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성인 걸음으로 약 3000보(총 2.1km)가 걸리는 이 길의 또 다른 이름은 ‘비움과 채움의 길’이다. 기독교도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잡념을 비우고 소중한 주기도문의 정신으로 채우자는 뜻이 담겼다. 산책로는 이재홍 아시아미술관 이사장과 재프랑스 화가 정택영 씨가 미술감독을 맡아 7개의 주제에 따른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주기도문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또 대형 십자가 작품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복제 작품도 곳곳에 배치했다. 하이패밀리는 산책로 완공을 기념해 18일부터 ‘주기도문 해설과 함께하는 산책 프로그램’도 시행할 예정이다. 매주 목요일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함께하는 코스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했다. 송 목사는 “현대 기독교인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삶의 과제는 주기도문을 찾아오는 일”이라며 “영혼이 새롭게 피어나는 일상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31-772-3223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뉴스룸/정양환]신뢰라는 이름의 전차

    “축하는 드리지만, (방송에선) 안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껏 봤던 가장 묘한 댓글이 아닌가 싶다. 짧은 문장 한 줄에 이토록 섬뜩하게 벼린 ‘정색’이 담겨 있다니. 그것도 높임말로. 싫어도 정말 싫나 보다. 기사는 별것 아니었다. 연예인 S 씨가 득남했다는 소식. 경사스러운 일인데 반응은 쌩하니 찬바람이 분다. 그래도 우리나라 누리꾼들, 기본 예의는 차린다. 대다수가 산모와 아이는 건드리지 않았다. 건강하길 빌어준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알 사람은 다 안다. S 씨는 참 오랜만에 연예계로 돌아왔다. 원정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 7년 만. 대통령이 두 번이나 바뀌었건만. 여전히 그에겐 줄기차게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뎅기열.’ 어쩌면 S 씨는 섭섭할 수 있겠다. 그렇게 긴 세월을 자숙했건만. 사고 친 연예인이 어디 한둘인가. 도박은 물론 음주운전, 약물복용, 병역의혹 등 다양한 ‘빨간 줄’이 그이고도 버젓이 활동하는 이가 수두룩 빽빽하다. 뭐, 연예인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높은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에게 ‘직장 복귀’의 문은 일반인에 비해 확실히 좁지 않다. 그런데 왜 유독 S 씨에겐 이리도 엄격할까. 처음이 아니란 점도 한 가지 이유일 터.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식어버린 까닭이 있다. 바로 ‘거짓말’이다. “해외여행을 하다 뎅기열에 걸려 입원했다”며 공개했던 한 장의 사진. 두고두고 회자되며 굵고 질긴 멍에가 됐다. 실제로 대중이 마음을 돌린 사례를 보자. 사건사고의 경중보단 진실성 여부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한다”고 수차례 말해 놓고 정작 미국으로 가버렸던 Y 씨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던 K 씨 등등. 그 어이없던 ‘눈 가리고 아웅’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 한마디로, 상호 간의 신뢰가 깨진 것이다.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양치기소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잠깐 어쭙잖지만 아는 척 좀 하련다.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년)이란 책이 있다. 여기엔 수사슴과 토끼의 딜레마란 게 나온다. 사냥꾼 2명이 힘을 합쳐 수사슴을 사냥할지, 각자 손쉽게 토끼를 잡으러 갈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학자들은 거창하게 “집단행동의 큰 보상과 개인주의의 작은 보상 사이의 선택”이라 부른다. 인간은 대체로 수사슴으로 기우는데,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상대가 고기를 나눌 거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신뢰는 인류든 동물이든 본능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사자 무리가 포획물을 공유한단 믿음이 없다면 뭐하려고 함께 사냥에 나서겠나. 영장류는 더 민감하다. 침팬지가 사육사에게 가장 크게 화를 내는 순간은 다른 침팬지에게 더 좋은 먹이를 줬을 때다. 공정하거나 공평할 거란 상호 신뢰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거짓말은 나쁘다”고 가르친다. 실은 본인들도 꽤나 했을 텐데도. 어쩌면 그건 무의식적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생존 방식을 일러주는 게 아닐까. 한 번 어그러지면 무척이나 회복이 어렵다는 걸 알기에. 살다 보면 기차는 놓칠 수 있다. 그러나 되돌아오진 않는다. 시간을 놓치고 티켓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건 승객들이 아니다. 게다가 다음 열차는 같은 행선지로 가리란 보장도 없다. 무섭지만 그게 삶이다.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09-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총무원장 직선제 무위… 승려대회 미궁… 긴장의 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조계종은 6일 제35대 총무원장 선거를 다음 달 12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치른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2013년 재임에 성공해 8년 동안 조계종을 이끌었던 자승 원장 체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선거법상 차기 총무원장 입후보 기간은 18∼20일 사흘간. 현재까진 자승 원장이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덕숭총림(수덕사) 방장인 설정 스님(75)과 간화선 전파에 힘써온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64·전 범어사 주지)이 사실상 출마 선언을 한 상태다. 하지만 가장 뜨거운 쟁점인 직선제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최근 18일간 단식하다 쓰러진 명진 스님(67) 등 종단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안팎으로 거세 선거의 중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 총무원장 후보군 수면 위로 “종단의 어려움을 극복할 소임이 주어진다면 외면하지 않겠다.” 8일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사실상 출마선언을 한 설정 스님에 대해 자승 원장 측이 최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평이 많다. 중앙종회 의원과 교구 본사 주지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321명)에 대한 영향력이 압도적인 현 집행부와 신망이 높은 설정 스님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합은 산술적인 표 계산에서는 유리하지만 “설정 스님 출마는 자승 원장 체제의 연장선”이라는 종단 개혁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설정 스님이 학력 의혹을 최근 사실상 인정한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관건이다. 스님은 이제껏 여러 인터뷰와 저서에서 자신이 서울대 농과대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마선언 당일 “1976년 서울대 부설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를 졸업했는데 그간 본의 아니게 바로잡지 못해 참회한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밝혀온 수불 스님은 “중도 하차는 결코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일각에서 “지난해 금품을 살포하며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입후보 자격을 문제 삼고 있는 게 걸림돌이다. 한 불교계 관계자는 “수불 스님은 20년 이상 승가의 전통에 따른 대중공양을 해왔을 뿐이라고 해명한 상태”라며 “수불 스님의 출마가 무산된다면 선거는 공정성 시비에 휩쓸려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화엄사 전 주지인 종열 스님과 봉은사 전 주지인 원학 스님도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 직선제와 수좌회…선거 좌우할 쟁점들 후보군과 별개로 이번 선거의 또 다른 불씨는 여전하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스님들의 80.5%가 찬성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직선제 열망이 뜨겁지만 종단 집행부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에는 수행승 1800여 명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가 “이번 선거에 직선제를 도입하라”고 공개 천명하기도 했다. 수좌회는 지난달 9일 ‘직선제 및 적폐청산을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열겠다고 결의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1986년과 94년, 98년 세 차례 열렸던 승려대회는 열릴 때마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원로모임인 장로선림위원회의 인준이 계속 미뤄지며 개최 여부는 미궁에 빠졌다. 매주 목요일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리는 촛불법회도 집행부로선 부담이다. 주최 측인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을 위한 연석회의’와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는 14일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범불교도대회’ 개최를 예고했다. 건강 문제로 명진 스님의 단식은 중단했으나, 수좌회 소속 용상 스님과 대안 스님이 뒤를 이으며 조계사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목사 ‘이슬람 포비아’에 일침… “왜곡된 시선 갈등만 악화”

    “세계 이슬람 인구가 17억 명이 넘습니다. 세계 3대 종교로 꼽힐 만큼 전통도 깊죠. 하지만 여전히 바깥의 시선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습니다. 무지로 인한 근거 없는 비판은 갈등만 악화시킬 뿐이에요.” 1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엔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이 묻어났다. 이슬람교도의 항변 아니냐고? 실은 스스로도 “보수 교단 소속”이라고 밝힌 김동문 목사(57)가 하는 얘기다. 김 목사는 지난달 출간한 책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선율·사진)에서도 국내외에 만연한 ‘이슬람 포비아(공포·혐오)’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를 나온 그는 14년 동안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거주했으며 25년 이상 수많은 이슬람 교인과 속 깊은 친분을 맺어 왔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체류 중인 김 목사는 이슬람교가 일반화의 오류로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슬람 하면 테러집단을 떠올리는 그릇된 인식이 꽤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는 “잘못된 일을 비난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걸 전체를 매도하는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며 “무슬림 대부분은 문제 많은 극단주의를 싫어하고 반대한다”고 했다. 오히려 김 목사는 이웃 종교에 대한 포용력을 이슬람교의 장점으로 꼽았다.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과거 기독교에 박해받았던 유대교를 받아들여 공동체사회를 인정해준 건 이슬람 국가들이었다. 그가 만난 이슬람교도들은 타 종교에 대한 선입견도 훨씬 적은 편이었다. 김 목사는 “물론 지속된 전쟁의 여파로 많이 변모하긴 했지만 이슬람의 1400년 문화에는 관용의 정신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 이슬람교 역시 아쉬운 점이 있다. 이슬람교도는 대다수가 날 때부터 이슬람교도다. 집안과 가문의 전통이 우선시돼 개인의 선택에 따른 개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 목사는 “역사적으로 충분히 수긍이 가긴 해도 이슬람 내부에서도 시대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논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언했다. 김 목사는 자신이 ‘중동 전문가’로 꼽히는 것에 대해 “무슨 전문가란 말처럼 허황된 게 없다. 그것 역시 다양한 이슬람교의 색채를 단순화시키는 오류”라며 “한국도 서구사회의 일방적 논리에서 벗어나 좀 더 깊이 이슬람사회를 들여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9-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