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진

최훈진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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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건축디자인 기사를 씁니다. 많이 보고, 듣고, 묻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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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8-28~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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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엇이 韓-日 운명 갈랐나

    19세기 후반 한일 양국의 지도자인 고종과 메이지 천황은 닮은 점이 많다. 같은 해 태어나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모두 왕위에 올랐고, 개항이라는 숙제를 마주했다.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어땠을까. 저자는 일본의 정한론(征韓論·조선침략론) 파동과 조선의 청군 파병 요청을 들어 비교한다. 1873년 일본 정계에서 득세한 정한론을 메이지가 뚝심 있게 물리치고 근대화에 주력한 반면에 고종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청군에 파병을 요청해 일본을 불러들이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무슨 차이가 한국과 일본의 운명을 갈랐을까. 법학을 전공한 후 평생 금융, 컨설팅 분야에서 일한 저자는 이 궁금증을 풀고자 독학으로 양국의 근대 역사를 들여다보는 책을 출간했다. 경제·경영 분야 전문가답게 그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이 후손을 위한 보험”이라며 “우리가 근대사에서 가지는 피해의식 내지 콤플렉스를 없애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보기’ 또는 ‘제대로 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철종의 재위가 시작된 1850년부터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까지 조선을 비운의 운명으로 이끈 지도자에 대한 저자의 책망은 거침이 없다. 근대화 과정에서 제정일치로 회귀한 일본과 달리, 평등사상을 창안해 유포한 최제우(1824∼1864), 일본 극우 진영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표적인 정한론자로 ‘부국강병을 위한 화혼양재’(일본정신을 중심으로 서양의 기술을 입히다)를 강조한 요시다 쇼인(1830∼1859) 등 근대 인물 39명을 만날 수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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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통감속편’ 일본산 원료 종이로 제작 첫 확인

    “왜국의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하니, 만드는 법도 배워 오도록 하라.”(1428년 7월 1일)세종실록 문구다. 세종은 재위 10년이 되던 해에 통신사를 파견해 ‘왜국의 종이’를 탐구해 오라고 명했다. 조선의 과학기술이 정점을 구가하던 세종 재위 기간, 일본은 우리 한지보다 우수한 종이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통신사는 “왜지가 질긴 것은 원료인 왜닥나무가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보고했고, 세종은 2년 뒤 예조(禮曹)에 왜닥나무를 쓰시마섬에서 구해 오라고 했다.한국학중앙연구원은 국보 ‘통감속편(通鑑續編·1422년)’이 실록에 나온 일본산 왜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존 처리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일본산 왜닥나무 종이로 제작된 조선 초기 고문헌의 실물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연구원 자문역인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통감속편의 가장 큰 특징은 종이”라며 “일본 왜닥나무로 만든 종이인 안피지로, 종이가 얇고 윤택이 나는 데다 부드러워 인쇄된 글씨가 선명하다”고 했다.통감속편은 서지학과 인쇄기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1995년 국보 283호로 지정됐다. 1361년 원나라에서 편찬된 중국 역사서로, 1422년(세종 4년) 조선에 들어왔다. 당시 조선에선 외국 서적이 들어오면 동활자로 다시 책을 제작하는 게 관례였다. 조선에서 만든 통감속편은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1403년)와 세종 2년(1420년)에 계미자의 단점을 보완해 제작한 경자자가 같이 인쇄된 보기 드문 서적이다. 세계유산인 경주양동마을의 경주 손씨 문중이 연구원 장서각에 2003년 기탁했다.장서각 수장고에서 20년 가까이 보낸 통감속편 6권은 물 얼룩이 있고, 종이 색이 변하거나 마모돼 있었다. 연구원은 지난해 5월 보존 처리 전문위원 6명을 투입해 지난달 말 1524장의 작업을 마쳤다. 김나형 연구원 전문위원은 “안피지는 습도가 10%만 올라도 쭈글쭈글해져 보통 15분 걸리는 장당 작업 시간이 초반엔 1시간 반 정도 소요됐다”고 했다.통감속편에 안피지가 사용된 사실은 지질 분석 과정에서 확인됐다. 찢겨 나간 부분에 새 종이(메움지)를 덧대려면 문화재 원형과 동일하거나 가장 가까운 종이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배율 현미경 관찰과 전문 섬유 분석 방법을 사용했다. 국내에서는 안피지를 구할 수 없어 메움지는 안피지를 만드는 일본 고치현의 지식산업센터에서 가져왔다. 옥영정 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는 “통감속편은 지질 외에도 활자 유형 등 조선 초 문헌 제작 방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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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빗장 푼 中, 내년 200만명 한국 올듯… 신종변이 유입 우려도

    중국이 내년 1월 8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해외에서 중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적용했던 시설 강제격리를 폐지한다. 또 그동안 통제해 온 중국인의 해외여행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 3년 만에 국경 완전 개방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2019년 602만 명을 넘었다가 올해 17만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던 한국행 중국인 관광객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봉쇄정책 폐지 이후 중국 내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새 변이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국무원 합동방역통제기구는 코로나19에 적용해 온 감염병 방역 방침을 최고 등급인 ‘갑’에서 아래 단계인 ‘을’로 전환한다고 26일 밤 발표했다. 현재는 해외에서 중국에 입국한 사람들은 5일간 지정 시설에서 격리하고 3일간 자택 격리를 해야 한다. 특히 중국 당국은 “여권 발급 절차를 비롯해 중국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질서 있게 정상화한다”고 밝혔다. 이날 곧바로 일본 정부는 30일부터 중국에서 오는 입국자 전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는 입국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추가 방역 강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中, 해외여행 통제 해제 “내달 춘제때 한국 가서 쇼핑할것”해외항공편 검색량 850% 폭증韓관광-면세업계는 매출확대 기대질병청 “필요시 추가 검역조치 도입” “다음 달 춘제(중국의 설) 연휴 때 연차 휴가를 붙여서 한국에 갈 생각이에요. 옷과 화장품 등을 살 생각입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 다롄에 사는 직장인 여성 리루이쉐(李瑞雪·29) 씨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날 밤 나온 중국 당국의 국경 완전 개방 방침을 반기며 다음 달 비자를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새해 설 연휴 때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복수의 한중 여행업계 소식통은 “당초 예상보다 중국의 국경 개방 속도가 빨라졌다. 내년 200만 명 이상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봉쇄 정책 폐지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해 국내로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방역 당국은 중국발 입국자 중 일부를 선별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실시하는 방안 등 추가 방역 강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다음 달 설 연휴 때 한국 가고 싶다”여행업계 소식통은 “3년 동안 누적된 중국인들의 해외 관광에 대한 이른바 ‘보복 소비 수요’까지 더해지면 내년 한국행 관광객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여행 수요 증가에 대비해 중국 대형 여행사들을 한국에 초청하려는 한국 측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중국이 여행 규제를 풀면 내년 하반기부터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관광이 서서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 경제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에 따르면 중국 당국의 국경 개방 발표 이후 해외 항공편에 대한 중국인들의 실시간 검색량이 850% 증가했다. 비자 검색량은 1000% 증가했다. 중국의 대표적 온라인 여행업체 셰청(携程·시트립)에 따르면 국경 개방 발표 이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여행지는 일본, 한국, 태국 순이었다. 특히 내년 1월 춘제 연휴 기간 비행기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평소보다 6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면세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방 조치로 중국에서 오는 다이궁(보따리상)의 왕래가 원활해지면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2, 3개월 후 노선까지 증편되면 내년 하반기에는 업황이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발 새 변이 발생해 국내 퍼질 수도”하지만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폭증 상황이 한국에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BA.5나 BN.1 등 현재 유행하는 ‘오미크론 변이’ 계열의 하위 변이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 국내에 유입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새 변이가 나타날 경우 ‘파이 변이’라는 이름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에서 새로운 변이가 발생해 국내로 퍼진다면 현재 방역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방역당국은 16일 중국을 ‘표적 검역국’에 포함시키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에 대한 정상 체온 기준을 37.5도에서 37.3도로 강화했다. 기준을 넘으면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의 국경 개방 선언 다음 날인 27일 한국 방역 당국은 추가 방역 강화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이날 입국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한 일본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중국의 유행 상황과 신규 변이 출현 등을 예의 주시하며 추가 조치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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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수미, 콘서트 출연진과 함께 자립준비청년에 1억5000만원 기부

    소프라노 조수미 씨(60·사진)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23일 열린 콘서트 ‘조수미&프렌즈 인 러브’ 출연진과 함께 1억5000만 원을 기부했다. 서울시는 “조수미 씨를 비롯해 홍진호(첼로), 대니 구(바이올린), 길병민(베이스 바리톤), 송영주(피아노), 나리(해금), 최영선 씨(지휘)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위해 써 달라며 콘서트 당일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25일 밝혔다. 조 씨는 “음악으로 위로를 전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기부금은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서울시아동자립지원사업단에 전달할 예정이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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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적 상상 너머… ‘눈멂’을 다시 생각하다[책의 향기]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정보를 얻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시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저자는 ‘시각이 사유를 좌우한다’는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본인이 ‘시각을 잃은’ 이였기 때문이다. 비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10대 때 망막조직 위축을 일으키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렸고 차츰 시력을 잃었다. 현재 50대로 추정되는 저자는 희미하게 빛 정도만 분간할 수 있다. 저자는 “흔치 않은 경험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고 말한다. 대부분 장애인에게 사회가 요구해온 ‘장애를 딛고 일어난 성공 스토리’가 아닌 ‘눈멂’이란 것 자체에 집중해 문화사를 쓰기로 했다. 작가이자 공연예술가, 문학연구자인 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각 중심주의’ 관점에서 시각장애를 편향적으로 다뤄온 문화예술사를 샅샅이 톺아본다. “보는 것이 곧 지식이요, 보지 못하는 것은 무지다.” 고대 그리스인의 이런 사고는 시각장애인을 천부적인 시적 재능과 예지력을 가진 이들로 여기게 했다.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무지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시각장애인은 다른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먼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조차 대표작 오디세이아에서 시각장애인을 초월적 재능을 가진 음유시인으로 그렸다. 요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각장애인 예언자’는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질병은 은유가 아니다. 질병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그리고 가장 건강하게 아프려면 은유를 없애야 하며 은유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수전 손태그(1933∼2004)가 1978년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쓴 글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시각장애인이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은유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헬렌 켈러(1880∼1968)다. 일반적으로 켈러는 장애라는 역경을 이겨낸 아이콘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이는 그의 생을 반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켈러는 20대에 출간한 자서전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40대 때부터는 생계를 걱정하며 평생의 스승 앤 설리번과 버라이어티쇼 공연을 전전해야 했다. 또 켈러의 강렬한 열애나 적극적인 정치활동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작위적으로 만든 ‘시련을 극복한 성스러운 시각장애인’이란 이미지가 덧칠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이 보이지 않을 뿐, 시각장애인 역시 각자의 개성이나 존재 방식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로만 타인을 바라보는 건 또 다른 차별이자 억압일지도 모른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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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영웅 혹은 인간… 그 삶의 궤적서 마주한 시대의 얼굴

    《어느 해라고 힘들지 않았겠습니까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 국내외에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책에서 삶에 대한 위로와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찾고픈 열망 때문일까요. 출판인, 학자 등 30명이 뽑은 ‘2022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은 소설과 시, 과학서, 평론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뽑혔습니다. 그리고 유독 ‘애도’를 다룬 책이 여럿 눈에 띕니다. 선정위원마다 3권씩 추천을 받아 그 가운데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각계 전문가들이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책’은 김훈 작가(74)의 장편소설 ‘하얼빈’과 미국 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교양과학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뽑혔다. 각각 6표를 얻었다. 독자에게 익숙한 한국 대표 작가와 생경한 해외 작가의 책이 동시에 선택됐다는 게 한국 출판시장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읽힌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하는 운명적인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안 의사가 거사를 실행하기 약 일주일 전인 1909년 10월 19일 무렵부터 이토를 저격한 26일 전후까지로 초점을 맞췄다. 안 의사와 이토가 각자 하얼빈으로 가는 행로와 과정을 3인칭으로 풀어내,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썼던 장편소설 ‘칼의 노래’(2001년·문학동네)보다 더욱 절제된 화법이 돋보인다. 출판인과 학자들은 고루 ‘하얼빈’을 역작이라 꼽았다. 안병현 교보문고 대표는 “위인 안중근에 대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다”고 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안중근이 살아있는 인간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오히려 진정한 영웅으로 느껴진다”고 평했다. “2022년에 안중근의 삶을 김훈의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겹쳐 마음을 괴롭게 했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의견도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밀러가 미국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풀어나간 책이다. 교양과학서지만 인간 자체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인문에세이로도 볼 수 있다. 밀러는 ‘미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보디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지만 국내에선 비교적 낯선 편. 중소 출판사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출간한 책이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베스트셀러의 상식을 뒤엎는 책이다. 우리가 자연에 선을 긋고 종(種), 과(科)로 나누고 가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며 편견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고 말했다. 정지혜 블러썸크리에이티브 IP사업팀장은 “관념은 뒤집힐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했다. “잔인한 혐오에 대한 명철한 질책,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뭉클한 탐사”(박상준 민음사 대표)라는 평가처럼 책이란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지음·정혜윤 옮김·408쪽·1만6000원·문학동네“엄마와 딸, 음식과 정체성, 사랑과 애도에 대해 담담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멋진 에세이.”(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미국 팝 밴드의 보컬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저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로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추천 도서로도 화제를 모았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와 다른 자신의 한국인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저자는 엄마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한국마트를 드나들며 추억을 되짚는다. “올해 본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책”(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이란 평처럼 섬세하고 감동적인 글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지음·268쪽·1만5000원·창비“2022년 한국 문학의 최대 수확. 우리도 이제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에 버금가는 작품을 갖게 됐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빨치산의 딸’(1990년)을 쓴 소설가가 3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사흘 동안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놀랍도록 흥미롭게 엮어냈다. 묵직한 현대사의 질곡을 짚어내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흐름을 잃지 않아 “오랜만에 만난 모든 것을 갖춘 소설”(김기중 더숲 대표)이란 극찬도 나왔다. MZ세대에게는 생경한 작가가 묵직한 시대적 배경을 다룬 소설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모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녹스앤 카슨 지음·윤경희 옮김·192쪽·5만5000원·봄날의책캐나다 시인이자 번역가, 고전학자인 저자가 22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던 오빠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책. 고대 로마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빠의 부재에 대한 상념을 자신의 수첩에 쓰고 그리고 오리고 붙인 것을 책으로 완성했다. 국내판 역시 “원본의 고유성을 잘 유지한 물성의 예술품”(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으로서 소장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흔적을 어루만지고 그의 손때와 온기, 사라짐까지 남기는 애잔한 틀로서의 비망록”(박상준 민음사 대표)이 이만한 결과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인간은 결국 홀로 떠나지만,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인생의 역사신형철 지음·328쪽·1만8000원·난다문학평론집이 이례적으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평론집. 10월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문학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와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등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구축한 저자는 이번에도 “전통 시화를 21세기 문학 형식으로 되살린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다)’의 표본”(안대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을 선보였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지음·140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시집은 천천히 읽어야 좋겠지만 그의 시집은 하룻밤 새 다 읽어버렸다.”(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문제의식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시인이 10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다. 작품 활동의 공백기가 “시가 지녀야 할 사회적 역할을 돌아본 시간”이었다는 저자의 신작은 시집으로는 드물게 한 온라인 서점 종합순위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어쩌면 “아무도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미움의 시대에 비춰준 가느다란 빛”(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처럼 와닿았기 때문일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유예은 양(단원고 2년)을 위한 시 ‘그날 이후’도 함께 실렸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나다 도요시 지음·황미숙 옮김·232쪽·1만5500원·현대지성일본 영화전문지에서 일했던 독립 칼럼니스트가 영화를 영화관이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관람하는 현 상황을 고찰했다. 저자는 특별한 공간에서 수동적으로 감상하던 영화를 이제 안방이나 카페에서 자유롭게 건너뛰며 보는 현상에 대해 “길고 어려운 콘텐츠 대신 짧고 이해하기 쉬운 것을 선호하는 시대”(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라고 짚어낸다. 저자가 볼 때 이 같은 효율성의 극단은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콘텐츠의 공급 과잉과 ‘가성비’ 지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상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안병현 교보문고 대표)한다. ■정상은 없다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정해영 옮김·600쪽·3만3000원·메멘토미국 조지워싱턴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역사적으로 정상이란 허구에서 비켜난 이들에게 인류사회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짚었다. “올해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신드롬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에게 추천한다는 평이 나왔다. 자본주의와 전쟁, 의료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 책은 문화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낙인이란 한계를 극복하려는 진정성이 묻어난다.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성숙한 한국 사회를 위한 모두의 필독서.”(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한청훤 지음·304쪽·1만7000원·사이드웨이패권적인 ‘제국의 길’을 선택한 중국이 왜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찰을 거듭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10년 넘게 중국 산업현장에서 일한 저자는 중국과 관련된 다양한 현안을 다뤘다. “학문적 중국 전문가는 적지 않으나 중국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하며 중국의 겉과 속을 정확하게 풀어낸”(표정훈 출판평론가) 글이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산업 굴기와 첨단산업 및 반도체 기술, 미국과의 패권 경쟁, 농촌 문제와 정치 리스크 등 중국이 당면한 주요 현안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진지한 통찰력이 돋보이면서도 “쉽고 설득력 있으며, 경험을 밑천으로 필력까지 갖춰”(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더 흥미롭게 읽힌다. 다양한 장르 사랑받은 한 해… 애도 속 ‘그리움’ 담은 시집 눈길 그 외 눈여겨볼 책들12위는 없었다. 올해는 1표씩을 받은 책 51권이 함께 ‘공동 11위’를 차지했다. 소설과 에세이, 교양서뿐 아니라 시집과 각본까지…. 올해의 책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두루 사랑받은 ‘거의 올해의 책’이 유난히 많았다. 특히 유난히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의 책에 포함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지음·문학과지성사) 외에도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고명재 지음·문학동네) ‘파울 첼란 전집 1∼5’(문학동네)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 지음·창비) 등 시집의 약진이 눈부셨다. 시집이 올해의 책에 든 것도 최근 10년 만에 처음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멍든 가슴이 여전히 시퍼렇게 남아 있어서일까.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 전집’을 추천한 김민정 난다 대표는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눈물자국의 가장자리에서 배우렴/ 사는 것을’이란 구절이 눈에 밟혔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눈물과 자국과 가장자리와 삶이란 단어를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도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를 추천하며 “그저 허무에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길을 찾아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인의 맑은 마음”을 주목했다. 과학책은 5권이 공동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가운데 해리 클리프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 교수가 펴낸 ‘다정한 물리학’(다산사이언스)에 대해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어려운 이론물리학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추천했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닐 슈빈 지음·부키)와 ‘과학은 어떻게 세상을 구했는가’(그레고리 주커만 지음·브론스테인) ‘빙하여 안녕’(제마 워덤 지음·문학수첩) ‘내 생의 중력에 맞서’(정인경 지음·한겨레출판사)도 비슷한 공통점을 지녔다. 과학정보는 물론이고 인문학적 사색도 담아 ‘과포자’(과학포기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책들 덕분에 우리는 과학이라는 일상을 더욱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는 평처럼 진입장벽을 낮추고 편안하게 다가온 교양과학서가 내년에도 많아지길 기대해본다.올해의 책 선정위원(30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세규(김영사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민정(난다 대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백지숙(서울시립미술관장) 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안지미(알마 대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장은수(출판평론가)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지혜(블러썸크리에이티브 IP사업팀장)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황서현(휴머니스트 편집주간)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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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장애 딛고 성공한 헬렌켈러? 생계위해 쇼공연 전전했다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정보를 얻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시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저자는 ‘시각이 사유를 좌우한다’는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본인이 ‘시각을 잃은’ 이였기 때문이다. 비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10대 때 망막조직 위축을 일으키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렸고 차츰 시력을 잃었다. 현재 50대로 추정되는 저자는 희미하게 빛 정도만 분간할 수 있다. 저자는 “흔치 않은 경험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고 말한다. 대부분 장애인에게 사회가 요구해온 ‘장애를 딛고 일어난 성공 스토리’가 아닌 ‘눈멂’이란 자체에 집중해 문화사를 쓰기로 했다. 작가이자 공연예술가, 문학연구자인 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각 중심주의’ 관점에서 시각장애를 편향적으로 다뤄온 문화예술사를 샅샅이 톺아본다. “보는 것이 곧 지식이요, 보지 못하는 것은 무지다.” 고대 그리스인의 이런 사고는 시각장애인을 천부적인 시적 재능과 예지력을 가진 이들로 여기게 했다. 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무지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시각장애인은 다른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먼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조차 대표작 오디세이아에서 시각장애인을 초월적 재능을 가진 음유시인으로 그렸다. 요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각장애인 예언자’는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질병은 은유가 아니다. 질병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그리고 가장 건강하게 아프려면, 은유를 없애야 하며 은유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수전 손태그(1933~2004)가 1978년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쓴 글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시각장애인이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은유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대표적인 사례가 헬렌 켈러(1880~1968)다. 일반적으로 켈러는 장애라는 역경을 이겨낸 아이콘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이는 그의 생을 반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켈러는 20대 출간한 자서전으로 성공으로 거뒀지만, 결국 40대 때부터는 생계를 걱정하며 평생의 스승 앤 설리번과 버라이어티쇼 공연을 전전해야 했다. 또 켈러의 강렬한 열애나 적극적인 정치활동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작위적으로 만든 ‘시련을 극복한 성스러운 시각장애인’이란 이미지가 덧칠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이 보이지 않을 뿐, 시각장애인 역시 각자의 개성이나 존재 방식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로만 타인을 바라보는 건 또 다른 차별이자 억압일지도 모른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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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서강록간보’ 등 조선후기 유교책판 61점 美서 환수

    “주서(朱書·주희의 서간문)를 읽는 데 도움 되는 것이 마치 길을 인도하며 횃불을 밝혀 준 것처럼 편리하다.” 조선시대 서책 ‘주서강록간보’에 실린,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1130∼1200)의 편지를 해석한 퇴계 이황(1501∼1570)의 주석에 대해 그의 제자들이 내놓은 평가다. 주서강록간보는 이황의 학술적 연구를 제자들이 정리한 ‘주자서절요강록’을 경북 안동 출신 학자인 이재(1687∼1730)가 다시 한번 수정, 증보한 서책이다. 안동에 있는 호계서원에서 6권 3책으로 간행됐다. 18세기 조선 후기 지성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 주서강록간보의 인쇄목판 일부가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주서강록간보를 포함해 조선 후기 안동 등 영남지역에서 판각됐던 ‘유교책판’ 61점을 미국에서 환수했다”고 21일 밝혔다. 주서강록간보는 지금까지 책으로만 전해져 내려왔고, 현존하는 인쇄목판을 찾은 건 처음이다. 이번에 되찾은 인쇄목판엔 구체적 제작연도도 남아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목판에는 이재의 외손자인 문신 이상정(李象靖)이 남긴 “교정하는 일이 먼지를 쓰는 것과 같아 보면 볼수록 생겨나지만 대체로 우리 힘을 다했다”는 글 뒤에 ‘을사년 7월 안동 호계서원 간행’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을사년 7월은 정조 9년인 1785년을 일컫는다. 이번에 고국으로 돌아온 책판은 주서강록간보 27점을 포함해 모두 4종. 1916년 발간된 박사규(1826∼1899)의 시문집인 ‘상은집’ 책판 20점과 임진왜란 의병장 최응사(1520∼1612)의 시문집인 ‘유정일집’(1915년) 책판 12점, 강헌규(1797∼1860)의 시문집인 ‘농려집’(1895년) 책판 2점이다. 주서강록간보 외에 상은집과 유정일집의 인쇄목판이 발견된 것도 처음이다. 농려집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6만4226점)에 포함돼 있는 중요한 사료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처장은 “문집 간행은 목판 제작 등 막대한 물력이 소모돼 명망 있는 가문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환수 과정에서 자문을 맡아 해당 목판들의 학술적 가치를 살펴본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유교책판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라며 “기록을 통해 후대에 학문적 성과를 전하려 했던 조선 특유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 인쇄목판들은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미국인 프랭크 윌리엄 존슨 씨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근무했던 그는 자주 한국을 방문해 해당 목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재를 수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10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존슨 씨 자택에 가서 직접 목판의 상태를 점검한 이남옥 한국국학진흥원 고전국역팀장은 “유물의 출처와 가치를 몰랐던 유족들이 8월에 처분하려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다”며 “미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임수아 큐레이터가 이를 발견한 뒤 알려줘 환수를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환수한 유교책판 61점은 목판 전용 수장고인 ‘장판각’에서 보존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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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마치 길을 밝혀주는 횃불처럼…” 조선 말기 지성사 보여주는 유교책판 61점 환수

    “주서(朱書·주희의 편지)를 읽는 데 도움되는 것이 마치 길을 인도하며 횃불을 밝혀 준 것처럼 편리할 뿐만이 아니다.” 퇴계 이황(1501~1570)이 주자학을 만든 송나라 주희의 편지를 해석한 내용이 담긴 ‘주서강록간보’의 한 구절이다. 주서강록간보는 이황의 제자들이 먼저 정리한 ‘주자서절요강록’을 조선후기 안동 출신 학자 이재(1687~1730)가 수정·보완한 것으로 1785년 호계서원에서 6권 3책으로 간행됐지만, 지금까지 인쇄본만 전해졌다. 18세기 조선 후기 지성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주서강록간보의 유교책판 일부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주서강록간보을 비롯해 조선 후기 안동 등 영남 지역에서 판각됐지만 인쇄본만 남아있던 유교책판 총 61점을 11월 미국에서 국내로 들여와 21일 공개했다. 환수된 책판은 총 4종이다. 주서강록간보(27점)을 포함해 1916년 발간된 박사규(1826~1899)의 시문집인 ‘상은집’ 책판 20점 , 임진왜란 의병장 최응사(1520~1612)의 시문집인 ‘유정일집’(1915년) 책판 12점, 봉화 출신 학자 강헌규(1797~1860)의 시문집인 ‘농려집’(1895년) 책판 2점 등이다. 이중 농려집을 뺀 3종은 책판 자체가 국내에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아 이번에 존재가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농려집은 2015년 진흥원이 전국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6만 4226점에 포함돼 ‘한국의 유교책판’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다. 환수 과정에서 책판의 학술적 가치를 자문한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유교책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후대에 학문적 성과를 전승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특유의 기록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들여올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주서강록간보를 제외한 문집들은 조선시대에 남겨진 문집이 워낙 많아 아직 번역조차 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처장은 “목판은 간행 시 막대한 물력이 소모되는데, 조선 말기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위선 사업을 하려는 가문 중심으로 문집 간행 사업을 활발했던 상황을 보여 준다”며 “주서강록간보는 조선 후기에 이뤄진 주자서 연구를 볼 수 있는 핵심 자료”라고 말했다. 18~20세기에 판각된 책판이 어떻게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됐을까. 소장자는 올 1월 사망한 미국인 프랭크 윌리엄 존스다. 198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근무한 그는 한국에 올 기회가 많아 목판뿐 아니라 다양한 유물을 수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월 사우스캐롤라이나로 가 책판 상태를 직접 확인한 이남옥 고전국역팀장(책임연구위원)은 “유물의 출처와 가치를 몰랐던 유족들이 자산 처분을 위해 페이스북 계정에 유물을 올렸고 이를 본 임수아 미국 클리브랜드 미술관 큐레이터가 가교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국외소재문화재단에 따르면 약탈이나 불법반출, 선물 등을 통해 현재 해외로 유출돼 있는 우리 문화재는 21만 4208점에 이른다. 이중 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 개인이 소장한 문화재가 5만 4185점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국내로 환수된 문화재는 1086점에 불과하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환수한 61점의 유교책판은 최첨단 설비를 갖춘 목판 전용 수장고인 ‘장판각’에서 보존 관리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문화재 환수 사업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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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와 한국 이미지 동일시, 학술적 증명”

    “방탄소년단(BTS) 팬들은 BTS를 가까운 친구로 느낄수록 한국도 자신과 더 가깝고 친밀한 나라라고 여기는 경향이 나타났어요.” BTS가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학술 논문이 나왔다. 김수진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겸임교수(54·사진)는 최근 발표한 논문 ‘K-POP 팬덤과 한국의 국가 명성: 미국의 BTS 팬 중심 분석’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논문은 12일 한국공공외교학회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 교수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BTS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전 세계 팬들과 비대면으로 상호 작용하며 장기적으로 유대감을 느끼는 준사회적 관계를 깊게 맺어왔다”며 “이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는 결과도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와 연구진은 2020년 12월 25∼29일 미국 아마존 인력중개서비스 ‘매커니컬터크’를 통해 현지 BTS 팬 195명을 심층 설문조사했다. 이들의 소셜미디어 이용 및 참여 실태를 분석한 뒤 BTS와 얼마나 준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또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살펴봤다. 실제 5점 척도 설문에서 ‘나는 BTS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에 높은 점수를 준 응답자들은 ‘한국은 깨끗하고 잘 관리된 나라다’란 문항에도 점수를 높게 준 경향을 보였다. 또 ‘BTS를 개인적으로 알았다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BTS는 내게 완벽한 로맨틱 파트너일 수 있다’란 문항에 높은 점수를 준 팬일수록 ‘한국은 글로벌 사회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이다’ ‘한국은 사업하기 좋은 나라다’란 문항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김 교수는 “연구를 통해 BTS의 팬덤이 한국 외교 활동에 주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BTS 같은 케이팝 스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은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학술적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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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와 친구 될 수 있다’ 믿는 해외팬일수록 한국 좋게 인식”

    “방탄소년단(BTS)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느끼는 팬일수록 한국을 좋게 인식합니다. 팬덤을 공공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려면 이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K-POP 팬덤과 한국의 국가 명성: 미국의 BTS 팬 중심 분석’ 논문으로 이달 한국공공외교학회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개최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논문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김수진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겸임교수(54)는 20일 동아일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전에도 BTS 팬덤에 대한 연구는 있었다. 하지만 이를 문화, 지식, 정책 등을 통해 국가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는 외교 활동인 공공외교 차원으로 접근해 설문조사 등 양적 연구를 실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교수는 “올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가이미지 조사에서 BTS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걸 보고 팬덤이 어떻게 국가 명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졌다“며 연구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아마존 설문조사 업체인 매커니컬터크에 의뢰해 2020년 12월 25~29일 4일 동안 설문을 실시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한 BTS 팬 195명을 대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사용 실태 △BTS와 맺고 있는 준사회적 관계 수준 △한국의 국가 명성 등 항목에 대해 물었다. 준사회적 관계란 실제로 대면하지 않은 상대방에 대해 장기적으로 유대감을 느끼는 관계를 말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팬과 BTS 사이의 준사회적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18개 문항이 포함됐다. ‘내가 만약 BTS를 개인적으로 알았다면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수 있다‘ ‘나는 BTS가 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BTS는 내게 있어서 완벽한 로맨틱 파트너일 수 있다’ 등이다. 김 교수는 “팬들의 단순한 SNS 사용은 국가 명성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SNS에서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은 BTS와 팬 사이에 준사회적 관계를 형성시켰다”면서 “변수들간 인과 관계를 살피는 구조 방정식 모델로 통계 분석을 한 결과 준사회적 관계와 국가 명성 간 상관관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가 명성의 차원을 정서·물리적 부분 등 세분화해 각 차원과 준사회적 관계의 관련성을 추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우리 정부가 전세계 케이팝 팬덤을 공공외교에 활용하려면 무엇을 겨냥해야 할지 보여준다”고 강조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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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수성가 MZ 소상공인 조명 ‘서민갑부3’ 출간

    자수성가한 젊은 소상공인들의 성공 이야기를 담은 책 ‘서민갑부3―영&리치’(동아일보사·사진)가 14일 출간됐다. 채널A 교양 프로그램 ‘서민갑부’에 최근 3년간 출연한 15명의 사연을 정리했다.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신념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자수성가한 MZ세대 출연자들을 조명했다. 앞서 2015년, 2017년 출간된 서민갑부 1, 2권은 맨바닥에서 시작해 갑부가 된 출연자들의 창업 비결에 초점을 맞췄다. 신간에 소개된 청년갑부는 모두 40세 이하로 연 매출 수억 원을 올린 인물들이다. 제작진은 이들의 성공 비결을 △상생과 신뢰 △혁신 △트렌드 △위기관리 △자신감 등 5가지로 정리했다. ‘서민갑부’ 프로듀서인 남상효 PD는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사나 취미를 사업화하는 등 남다른 아이디어로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미래를 불안해하는 젊은층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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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은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했다[책의 향기]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문집 ‘난설헌집(蘭雪軒集)’을 간행한 조선 중기 시인이자 화가인 허초희(1563∼1589). 시 300여 수를 비롯해 많은 산문도 남겼지만 그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실은 허초희의 호는 난설헌으로 홍길동전 저자인 허균(1569∼1618)의 누이 허난설헌이다. 사실 조선시대 여성은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5만 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신사임당(1504∼1551) 역시 호가 사임당으로, 본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부인이나 어머니, 딸로 기억된다. 이름이 없었던 것도 아닐 텐데, 기록엔 남지 않는다.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여성들. 하지만 그들의 존재까지 지워질 순 없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여자가 없는 세상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3000여 편의 조선시대 문헌을 분석해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의 발자취를 좇았다. 또 당대 여성들의 삶과 관련된 오해와 진실을 구체적 사료를 통해 밝히려 노력한다. 조선시대에 여성의 문자교육은 공식적으로는 금지됐다. 어릴 때부터 문자를 배우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여성들은 남성이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이를 외워서 글을 공부하기도 했다. 경전이나 선조가 남긴 책을 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역경에도 다양한 책을 섭렵해 학문에서 상당한 진척을 이룬 여성이 적지 않았다. 아울러 저자는 18∼20세기 ‘열녀(烈女)’와 관련된 자료를 분석해 열녀가 되길 강요한 당대의 분위기를 살폈다. 저자는 당시 모범적인 여성상으로 간주하던 열녀라는 개념을 강하게 비판한다. 여성의 주체성과 생명권을 남편에게 종속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유 구조는 여성의 성에 대한 주권이 남편에게 있다는 발상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에게 힘겨운 시대였지만 당대에도 여성들의 존재감은 작지 않았다. 다만 기록에 제대로 남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저자는 “보이는 것만으로 세계와 역사를 확정짓는 건 폭력”이라며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감성과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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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남자를 사랑한 여인… 삶은 불가피한 시대상황에 좌우될수도”

    “소설 ‘원청’에서 샤오메이라는 여성은 작품의 ‘심장 박동’과 같은 인물이에요. 20세기 초 역사적 혼란 속에서 비극에 휩쓸린 두 남성을 동시에 사랑한 그의 운명을 독자들이 잊지 말길 바랍니다.” 모옌, 옌롄커와 함께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소설가 위화(62)가 한국을 찾았다. 그가 한국에 온 건 2017년 이후 5년 만으로, 한 방송사에서 특별강연을 한다. 서울 중구의 한 모임공간에서 15일 만난 위화는 “13일 입국하니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렸다”며 “오자마자 제일 좋아하는 삼계탕을 먹었다”며 웃었다. ‘원청’은 위화가 ‘제7일’ 이후 8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로 2일 국내에 출간됐다. 북쪽에 살던 린샹푸가 아이를 낳은 뒤 자취를 감춘 부인 샤오메이를 찾아 남쪽 도시로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는 “1998년에 처음 구상한 작품이다. 그때부터 쓰긴 했는데 안 써지면 다른 작품으로 옮겨갔다”며 “저의 글쓰기는 죽도록 뛰어서 겨우 1점을 내는 축구 같다”고 했다. 원청 전반부는 린샹푸의 시각에서 그렸지만, 후반부는 같은 사건을 샤오메이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여성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줄곧 남성이 주인공이었던 전작들과 차별화된다. “동시에 두 남성을 사랑하고, 자신이 낳은 아기를 떠난 건 샤오메이가 처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어요. 삶은 개인의 의지도 작용하지만,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에 좌우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입니다. 아내한테 보여주며 고쳐 쓰기를 반복했죠. ‘아, 내가 샤오메이란 캐릭터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낀 뒤에야 출간했습니다.” 원청의 배경은 1900년대 초 청나라가 저물던 시기. 위화는 이 시대를 조명한 작품을 처음 썼다. 그는 “20세기 중국의 역사적 사건을 작품에 한 번씩 녹여내고 싶었다”며 “원청을 통해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셈”이라고 했다. “제 소설들은 시대만 다를 뿐 추구하는 본질은 하나예요. 바로 인간다움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이 지닌 연민과 동정은 동물과 구별되는 특성이에요. 선량한 가치를 품은 인물을 통해 진정한 중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위화는 최근 중국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임에 대해 “시 주석은 연임을 안 하더라도 여전히 중국을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불거진 ‘백지시위’에 대해서도 “팬데믹으로 중국도 경제적 타격이 심하다”며 “중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으로서는 알기가 어렵다”고만 했다. “어떤 사안이든 시간이 필요합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은 지나야 쓸 수 있겠죠. 저는 문학 덕분에 삶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현실 세계는 좁고 한계가 있지만 문학이 지닌 허구의 세계는 무한하게 확장되니까요. 독자들이 제 작품 중 한 구절을 기억해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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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콘텐츠 확대… 해외관광객 年 3000만 시대로”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내년부터 한국 관광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2023년을 ‘한국 관광 러시’의 출발점으로 삼아 2027년까지 연간 해외 관광객 3000만 명을 유치하겠습니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66·사진)이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올해 10월 취임한 김 사장은 “미래사회에서는 놀이와 휴식이 삶의 중심이 된다”며 “그 핵심이 바로 관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관광 산업이 경제위기의 탈출구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K콘텐츠 활용 △지역관광 활성화 △디지털 플랫폼으로 영세관광업체 지원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맞춤형 관광 서비스 제공을 한국 관광산업이 나아갈 4가지 방향으로 제시했다. 김 사장은 “현재 대중문화에 집중된 K콘텐츠를 한국의 생활문화 전반으로 확대해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지역별 특징이 담긴 이야기도 발굴해 지역관광과 연계하기로 했다. 공공 관광 디지털플랫폼을 구축해 영세관광업체도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무료로 관광지와 축제 정보 등을 볼 수 있는 ‘한국 관광 콘텐츠 랩’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인 관광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5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규모 여행을 선호하는 외국인을 겨냥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여행 정보를 확인하는 시스템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올해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현재까지 약 310만 명으로 추산된다”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관광업체들의 인력과 시설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적극 지원해 한국 관광 러시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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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유네스코에 ‘군함도 조선인 강제노동’ 또 부인

    일본 정부가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하시마섬(일명 군함도) 탄광 등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사실을 또다시 부인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3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이행경과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의 탄광 노동은 모든 광부들에게 가혹했다. 조선인에게 더 가혹했다고 신뢰할 만한 증거는 지금까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과 동일한 환경에서 일했으며, 노예 같은 노동을 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하시마섬 탄광 등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후속 조치를 취하라”고 경고한 데 따라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보고서에서 “희생자들은 출신지와 관계없이 근대산업시설에서 사고 또는 재난으로 고통 받거나 숨진 이들을 일컫는다”고 주장했다. 강제노동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을 따로 기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오히려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이 당시의 징용 정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유감을 나타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세계유산위원회의 거듭된 결정과 일본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가 이행되지 않는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일본은 약속대로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일본 측에 유감을 표하고 한인 피해자들에 대한 불충실한 설명을 보완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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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본인 노동조건 같았다” 日 군함도 유네스코 보고서에 또 억지 주장

    일본 정부가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하시마섬(일명 군함도) 탄광 등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사실을 또 다시 부인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3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이행경과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의 탄광 노동은 모든 광부들에게 가혹했다. 조선인에게 더 가혹했다고 신뢰할 만한 증거는 지금까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과 동일한 환경에서 일했으며, 노예 같은 노동을 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하시마섬 탄광 등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후속 조치를 취하라”고 경고한데 따라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보고서에서 “희생자들은 출신지와 관계없이 근대산업시설에서 사고 또는 재난으로 고통 받거나 숨진 이들을 일컫는다”고 주장했다. 강제노동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을 따로 기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오히려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이 당시의 징용 정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유감을 나타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세계유산위원회의 거듭된 결정과 일본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가 충실히 이행되지 않는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일본은 약속한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일본 측에 유감을 표하고 한인 피해자들에 대한 불충한 설명을 보완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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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방가사는 조선시대 여성의 주체성 드러내”

    “조선 시대는 남성 중심 사회지만, 내방가사를 통해 여성의 공간이 ‘안방’에서 ‘바깥세상’으로 확대되는 걸 감지할 수 있어요. 점차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여성의 인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내방가사는 주로 부녀자들이 한글로 지은 ‘여류문학’의 일종이다. 지난달 26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내방가사에 대해 이정옥 위덕대 자율전공학부 명예교수(66·사진)는 “당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사료”라고 평했다. 1980년대부터 내방가사를 연구해온 이 교수는 “가부장적 유교문화 아래 억압당했다고 여겨졌던 16∼17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냈다는 점이 등재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2015년 남편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과 함께 내방가사 292점을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내방가사가 처음부터 여성의 주체성이 돋보였던 건 아니다. ‘주자학의 대가’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시집가는 딸에게 덕목 등을 가르치고자 ‘우암계녀서(尤庵戒女書)’란 책을 지었다. 사대부 예절을 중시한 경북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내용을 4.4조 형식에 담은 가사가 내방가사의 초기 형태였다. 하지만 이후 여성의 주체적 의식 등을 담은 내용이 많아졌다. “이후 유람가 등을 보면 ‘이런 놀음을 남성들만 하느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등 자의식을 드러낸 작품이 많아요. 퇴계 이황(1501∼1570)을 상찬한 ‘도산별곡’이나 조선 역사를 다룬 ‘한양가’ 등 남성이 쓴 글을 여성들이 내방가사로 향유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방가사에는 곤궁해진 서민들의 애달픈 삶도 묻어난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3번이나 재가하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해 유랑하는 여성을 다룬 ‘덴동어미 화전가’가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조선 후기 가혹한 징세와 수탈로 서민들이 어떤 궁핍을 당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수작”이라고 설명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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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조선 여성들의 인식 살펴보니

    “여성의 공간이 ‘안방’에서 ‘세상 밖’으로 확대되면서 자의식의 성장과 함께 순응하지 않고 점차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인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내방가사’는 4음보 율격이란 틀 외에는 자유롭게 형식이 돋보이는 조선시대 한글 문학이다. 1980년대부터 약 40년간 내방가사를 연구해온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66)는 11일 “내방가사를 보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안동에서 해마다 열리는 ‘내방가사경창대회’의 심사위원장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최근 문화재청의 ‘미래 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 공모에 선정돼 내방가사의 무형유산적 가치를 연구하고 있다. 내방가사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돼 밖으로 표출하기 어려웠다고 여겨졌던 16~17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점들이 주목받으며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보수 유교 문화가 짙은 조선 사회. 특히 그 중심지로 알려진 안동에서 내방가사는 어떻게 향유되기 시작했을까. 이 교수는 “조선 초기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를 가던 혼인의 형태가 지금처럼 바뀌면서 시집가는 딸에게 덕목, 행동거지를 가르치고자 조선후기 학자 송시열이 쓴 ‘우암선생계녀서’(尤庵戒女書)와 같은 교양서가 나왔다”면서 “교육을 중시한 안동 지역에선 이를 4.4조의 가사형식으로 변형한 가사(계녀가)를 창작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후에 내방가사의 내용은 신세 한탄이나 풍류·기행 등으로 확대된다. 이 교수는 “화전가나 유람가를 보면 ‘이런 놀음 남자들만 하느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와 같이 강해진 자의식이 드러난다”면서 “퇴계 이황의 행적과 덕을 추모한 ‘도산별곡’이나 조선 역사를 다뤄 교과서처럼 읽힌 ‘한양가’ 등 남성이 쓴 가사도 여성들이 모여 낭송하거나 필사하는 형태로 향유했다”고 설명했다.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 지배층 수탈로 곤궁한 서민의 삶 등 사회상도 드러낸다. 이 교수는 사고로 남편을 잃고 3번이나 재가하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해 유랑하는 여성의 탄식을 담은 ‘덴동어미화전가’와 관련 “과부재가금지법이 있던 조선 사회가 후기로 가면서 과부의 재가가 자유로워졌고, 당시 가혹한 징세와 수탈로 인한 궁핍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2015년 남편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와 함께 평생 수집한 내방가사 292점을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했고, 박물관은 이를 가지고 올 상반기 ‘이내말씀 들어보소. 내방가사’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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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엄마로 산다는 건 천국을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

    육아와 일, 이 두 과업의 무게는 유독 여성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가정과 일터, 그 어디에서도 내면의 고뇌를 쉽게 토로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사진 않을까, 혼자만 유난 떤다고 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서다. ‘돌봄과 작업’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이런 두려움을 감내하고 용기를 낸 덕에 세상에 나왔다. 이들은 돌봄과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임산부를 향한 아낌없는 호의, 뭔가 모의한 듯한 미소의 진짜 의미를. 이제 네 차례다, 이거지. 인류는 이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박찬욱 감독과 영화 ‘헤어질 결심’(2022년)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는 2011년 둘째를 임신하고 이런 글을 썼다고 한다. 정 작가는 당시 박 감독이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 ‘스토커’(2013년)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이를 키우며 고통스럽지만 맹렬한 행복을 느꼈고, 그렇게 자신을 내어주고 엄마가 됐다. 과학기술학자인 임소연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는 일곱 살짜리 딸을 키우며 “양육이든, 연구든 타협만이 살길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가 박사 후 연구 과정을 했던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캐리스 톰프슨에게서 배운 비결이다. 임 교수는 포기가 아닌 타협을 “여전히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고 의식하면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일과 육아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입양을 매개로 돌봄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입양 지원 실천가인 이설아의 글은 돌봄과 입양의 본질이 무엇인지 들춰낸다. 세 아이를 입양한 엄마로, 2015년 설립한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인 그는 ‘아동이 경험하는 입양’이란 관점에서 자녀를 입양시킨 생모와 입양해 키우는 부모, 입양인 당사자 모두를 지원한다. 아이에게 “네가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이 옳아”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돼 기뻤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돌봄은 받는 사람이나 건네는 사람 모두를 똑같은 온도로 감싸 안는 힘이 있다. …감정을 돌보는 것이 곧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 믿는다.” 이혼 뒤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교사인 백은선 시인. 그는 엄마로 산다는 것을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아이의 말하는 것, 먹는 것 등 작은 동작 하나하나 모든 게 엄마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때로 그에게 구원이 됐다. 아이가 잠들고 조심스럽게 타자를 치던 새벽,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내 이름을 갖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랬다”고 되뇌어본다. 아이를 돌보다 지쳐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워 고요한 새벽, 날이 밝도록 컴퓨터를 마주하는 삶. 이 시대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이 두 권의 책에 빼곡하다. 그들의 절절한 속내는 꼭 ‘엄마’가 아니라도 가슴 한쪽이 뻐근해진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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