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김정은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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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정은 기자입니다.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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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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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386 세대가 적폐”…진영논리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반격

    “20·30대에게 누가 제일 나쁠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386세대다. 홍준표·김무성은 젊은 세대에게 논외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콘크리트치고 사다리 걷어차는 것이 나쁜 사람 아닐까.” “유시민 씨는 정권이 교체되자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했다. 정의당 평당원이 무슨 생각으로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나. 사실은 전 장관이자 국회의원이면서 ‘작가’ 호칭을 고수하며 발언에 아무런 책임을 안 진다. 이것이 386 세대의 논리다.” “김어준은 음모론이 장난인 줄 안다. 아무 말이나 하면서 팩트체크가 된 것이냐고 물어보면 ‘판명 나기까진 음모론’이라하고 ‘합리적 의심’이란 단어로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국민TV를 통해 방송된 팟캐스트 ‘까고있네’가 유시민, 김어준, 정봉주 등 이른바 진보진영 논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방송 2회 만에 퇴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TV는 2013년 자본·정치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언론을 표방하며,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 씨가 참여해 만든 협동조합 언론사다. 국민TV 소속 PD·기자가 제작한 ‘까고있네’는 첫 방송으로 ‘천하제일 나쁜놈대회’를 주제로 했는데 386세대가 후보로 꼽혔다. 이들은 “유시민은 성폭력 문제제기하는 당원에게는 ‘해일이 오는 데 조개를 줍고 있을거냐’고 면박 주더니 책을 팔 때는 ‘미시 파시즘을 경계해야 한다’며 조개 줍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러나 이 팟캐스트는 방송 2회 만에 국민TV 조합원들의 반발로 제작진이 징계를 받고 컨텐츠가 삭제됐다. ‘뚜렷한 근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인사를 비방했다’는 이유였다.‘까고있네’를 기획한 성지훈 기자는 “스스로 진보라 생각하지만 고정된 진영 논리는 깨고 싶었다”며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의 태도 비판도 기획 의도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은 요즘 젊은세대들에게 더 이상 좌우이념 진영논리나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 ‘공이 있으니 허물을 감싸라’는 집단논리가 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월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20~40대 지지율 하락이 두드려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20~40세대에게 요즘 가장 큰 화두는 ‘공정성’과 ‘개인의 권리’가 꼽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개인의 출현을 알린 ‘더 미(The Me) 세대’였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더 개인에 집중하는 ‘더 미미미(The Me Me Me) 세대’라고 규정했다. 타임은 이들이 ‘실용적 이상주의자’이자 ‘행동가’이며 사회의 낡은 시스템이 해체되는 흐름에 적응한 신인류라고 분석했다. 인터넷 독립저널 ‘DSLR’을 운영하는 김아현 씨(23)는 “거악이 사라지면 청년들도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며 “정치인이 어떤 이념 운동을 했다거나 누굴 변호했다는 등의 상징성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가 어떤 정책 구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안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베이비붐 세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았다면 ‘더 미미미 세대’는 현재와 자신이 중요하기에 과정이나 절차에서 개인의 권리가 희생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탈진영주의적 성향을 가진 청년 세대의 등장은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 다양화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구성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수 의견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젊은 세대는 물론 여성, 6070 세대 등 다양한 가치관을 담은 의견도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국민TV ‘까고있네’ 출연진 인터뷰▼‘까고있네’는 국민TV가 젊은 조합원을 포섭하려 기획한 방송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해 기획안 결재도 받았지만 2회 만에 폐지됐다. 출연진(개친빠·마가린·김만석)은 유튜브·페이스북에서 자체 방송을 하고 있다. ‘일베 방송이냐’, ‘자유한국당 의원이나 까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권용득 씨(41·개친빠)와 최황 씨(34·마가린)를 11일 직접 만나봤다. 권 씨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만화로 그렸고, 김만석 씨는 한때 정의당 당원이었을 정도로 진보성향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비판에도 방송하는 이유는…. ▽권용득=A를 부정한다고 B를 긍정하는 게 아니다. 방송 슬로건이 ‘너만 기분 나쁘라고 하는 방송’인데, 기분 나쁘게 듣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개인이 아닌 386세대나 진보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여긴다. 진보·보수를 선악 이분법으로 이해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최황=민주주의는 끝없이 갈등하고 분열해야 한다. ‘한번 우리 편이면 영원한 우리 편’이라는 건 조폭 논리다. 정치적 스탠스가 다양한데 좌우만 구분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 ―‘집단주의’를 적폐로 꼽았다. ▽권=슬라보이 지제크는 ‘ 이기주의자가 남에게 해코지할 확률이 낮다’고 했다. IS(이슬람국가)는 신의 뜻을 내세우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나라를 위했다’고 한다. 386세대는 ‘거악 척결을 위해 목소리를 합쳐야 한다’며 개인을 말살하니 똑같은 폭력으로 느껴진다. ▽최=대의는 실체가 없지만 개인은 실존한다. 그런 것을 사회가 감지하지 못해 여성, 장애인, 소수자의 목소리가 배제됐다. 유시민 씨가 과거 개혁국민정당 내 성폭력 사건 공론화에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느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386 세대’나 ‘깨시민’이 기득권인가. ▽권=유시민, 김어준은 방송 권력이 됐다. 김어준은 정봉주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방송을 해놓고 징계도 안받았다. 직접 사과도 제스처도 없었다. ▽최=국민TV에서 김용민의 방송을 준비했는데 정봉주가 서울시장 출마로 SBS AM ‘정봉주의 정치쇼’를 하차하자 김용민이 지상파로 가버렸다. ▽권=정봉주 김어준 김용민은 권력을 나눠 쓰며 서로 보호한다. ‘나꼼수’가 이명박에게 맞섰다지만 그들보다 성실하게 부조리를 고발한 사람도 많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공감하는 이유는…. ▽최=수많은 루트로 정보를 습득해 ‘어 이게 아닌데?’가 바로 감지되는 세대다. 기성세대는 ‘다음에 여러분 차례가 온다’지만 왜 참아야 하는지 이해 못한다. 선거 공천 등의 과정을 보면 386세대가 주축을 이루지 않나. ▽권=김광진 장하나 이자스민 전 의원은 이미지로만 소비됐다. 장애인에게 비례 1번을 주지만 누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까고있네’는 어떻게 되나. ▽권=주목 못 받고 사라질 수 있지만 ‘까고있네’ 사태가 더 큰 부조리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문빠’가 자발적 권리라며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고 무균 상태를 지향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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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실극장 재개관… 연극인에 대관료 반값

    1월 운영난으로 42년 만에 폐관된 세실극장(본보 2017년 12월 29일자 A21면 참조)이 넉 달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서울시와 서울연극협회는 11일 오후 2시 세실극장 재개관 기념행사를 열었다. 방지영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은 “임대료 월 1100만 원 중 서울시가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서울연극협회에서 100만 원을 내 운영될 것”이라며 “서울 대학로 300석 규모 극장의 50% 수준 대관료(35만 원)로 많은 연극인에게 혜택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세실극장이 매월 2400만 원의 운영비를 못 내 문을 닫자 장기 임대해 비영리단체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공모 절차 결과 서울연극협회가 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1976년 개관한 세실극장은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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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화가 살아난듯… 전시-연극-서커스 ‘환상의 하모니’

    6일부터 3일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무대에서 공연된 아트 서커스 ‘보스 드림즈’는 전시와 연극, 서커스를 잘 버무려 근사하게 차린 잔칫상 같은 작품이다. 2016년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서거 500년을 맞아 제작된 ‘보스 드림즈’는 캐나다 서커스 단체 ‘세븐 핑거스’와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 시어터’, 프랑스 비디오 아티스트 앙주 포티에가 합심해 15세기에 활동한 보스의 그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등장인물은 1516년 임종을 앞둔 보스와 1970년대 보스의 그림에 영감을 얻어 ‘바보들의 배’란 노래를 부른 록밴드 더 도어스(The Doors)의 보컬 짐 모리슨, 1930, 40년대 젊은 화가였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2016년 대학 강단에서 보스의 그림에 대해 강의하는 대학교수와 그의 딸이다. 대학교수가 관객에게 보스의 대표작 ‘쾌락의 정원’을 시작으로 ‘은총 받은 이들의 승천’ ‘마술사’ ‘우석의 제거’ ‘바보들의 배’ 등을 설명하는 것을 매개로 보스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예술인들의 삶이 하나둘 펼쳐진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보스의 명화를 배경으로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 시어터 단원들의 연기와 세븐 핑거스 단원들의 애크러배틱 등이 러닝타임 내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 5개 만점)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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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척하면 척… “우리 참 잘 만났다”

    “30대 중반쯤 출연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땐 저 스스로 돈키호테 역을 연기할 준비가 덜됐다고 생각해 고사했죠. 삶의 무게가 연기에 묻어나올 40대 이후에 하고 싶었거든요.” (오만석)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12일부터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무대에 오른다. 이번 시즌에서 돈키호테·세르반테스 역을 맡은 배우 오만석(44)과 돈키호테의 조력자 산초 역을 맡은 배우 김호영(35)을 5일 만났다. 2005년 초연된 ‘맨 오브 라만차’는 13년간 7차례 공연되며 누적 관객 수 75만 명을 돌파한 스테디셀러 작이다. 극작가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꿈을 향해 무모한 도전에 나선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낸 작품. 조승우, 류정한, 황정민, 홍광호 등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주인공 ‘돈키호테·세르반테스(1인 2역)’를 거쳤다. 배우 김호영도 “사실 행복했던 20대 때 관람한 ‘맨 오브 라만차’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는데, 서른이 넘어 다시 보니 가슴에서 뭔가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현실에 안주하는 게 더 미친 짓이다’ ‘천 번을 쳐도 천 번을 일어날 테니…’ 이런 대사들이 확 와닿았죠. 인생의 지혜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요즘 시대에 힘을 주는 작품이 아닐까요.” 오만석은 그간 ‘헤드윅’ ‘킹키부츠’ 등 다수의 뮤지컬에서 주인공을 맡았지만 ‘맨 오브 라만차’는 처음이다. 김호영은 3년 전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공연에서 산초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오만석과 함께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에 연극 ‘이’에서 공길 역에 만석이 형이랑 더블 캐스팅된 적이 있어요. 그땐 같은 캐릭터라 무대에서 만나지 못했죠. 만석이 형과 저는 ‘무대계의 오지라퍼’로 통해요. 연출 부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작품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배우들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에요. 같은 과의 형과 함께 호흡 맞추게 돼 진짜 설렙니다.”(김호영) 실제로 오만석은 과거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과 연극 ‘3일간의 비’ ‘트루 웨스트’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해왔다. 김호영 역시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감독 양정웅이 연출하고 배우 문근영, 박정민이 출연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극중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조력자 같았다. 김호영은 오만석에 대해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는 스페인 사람인데, 형은 수염을 붙이고 분장을 하는 순간, 혈통이 의심될 정도로 스페인 사람 외모를 지녔다”며 “역대급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이에 질세라 오만석 역시 “호영이의 산초는 그야말로 돈키호테란 인물을 존재할 수 있게 증명하는 인물”이라며 “척하면 척, 돈키호테의 모든 걸 받아주는 최고의 캐릭터”라고 강조했다. 6월 3일까지, 6만∼14만 원. 1588-5212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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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콜록콜록’ 미세먼지 범인을 찾아라!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마을에 개구리 한 마리가 살았다. 오염된 물에서 사는 개구리는 예민한 피부와 세 개의 눈을 갖고 있었다. 회색 구름이 미세먼지란 걸 알게 된 개구리는 원인을 찾아 나선다. 범인은 공장이었다. 개구리는 친구들과 함께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가져다 공장 앞에 쌓아 놓는다. 공장은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만들어야 했을까?’ 공장은 새 물건을 만들지 않고 이미 있는 물건을 다시 사용하기로 한다. 마을은 예전처럼 깨끗해졌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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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청가로 뭉친 고수들 “얼쑤∼ 판소리 제대로 보여드리리다”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71)이 20년 만에 창극 연출에 나선다. 25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가’를 통해서다. 이번 공연에선 명창 안숙선 전 국립국악원 예술감독(69)이 작창(作唱)과 도창(導唱·창극에서 공연을 이끄는 해설자)을 맡았다. 주로 마당놀이와 연극 무대 위주로 활동해온 손 감독은 1998년 동아일보 주최 창극 ‘천명’을 연출한 뒤 20년간 창극 연출에 나서지 않았다. 세 차례 창극 연출에 나섰던 것도 모두 동아일보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1987년 동아일보 명인명창공연 창작 창극 ‘임꺽정’을 연출한 데 이어, 1990년 동아일보 창간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옛 소련의 9개 지역에서 순회공연을 펼쳤던 창극 ‘아리랑’을 연출했다. 지난달 29일 국립극장에서 손 감독과 함께 만난 안숙선 명창은 “손 감독이 1987년 ‘임꺽정’을 연출했을 때 출연자로 무대에 올랐던 인연이 있다”면서 “과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재임 당시 손 감독에게 수차례 창극 연출 부탁을 했는데 매번 거절당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손 감독만큼 창극을 잘 아는 연출가가 없거든요. 손 감독이 오랜만에 창극 연출에 나선다며 내게 작창과 도창을 부탁하더라고요. 고민 없이 바쁜 스케줄을 쪼개 함께하겠다고 했죠.”(안 명창) 손 감독 역시 국립극장 개관 초기 시절 안 명창과의 인연을 전했다. 손 감독은 1973년 국립극장 개관 때부터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극단의 조연출을 맡았다. 안 명창은 1979년 또 다른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국립창극단 사무실이 달오름극장 2층에 있었는데, 모두 퇴근하고 난 뒤에도 유일하게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사람이 안 선생이었어요. 인상에 깊이 남았죠. 그런 노력 끝에 오늘날 명창이 된 거지.”(손 감독) 심청가는 국립창극단의 단골 레퍼토리다. 1969년 초연한 국극 ‘심청가’를 15차례 올렸고, 2006년엔 창극 ‘청’으로 만들어 2011년까지 해마다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도 또 ‘심청가’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손 감독은 “개인적으로 심청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애호가다. 특히 강산제 심청가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손 감독은 30여 년간 심청가 사설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소재로 한 작품도 수차례 제작한 바 있다. 이에 안 명창은 “강산제 심청가가 극적이다”며 “손 감독이 심청가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번 공연이 여타 공연과 다른 점은 뭘까. 손 감독은 “가능한 한 소리 대목을 살리고 진짜 극을 보는 재미보다 판소리로 듣는 재미를 추구하겠다”며 “관객이 판소리의 멋과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게 이번 공연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안 명창도 “판소리 속에 연기가 들어있는데 기존 창극 연출가들의 경우 판소리를 뚝뚝 잘라버리고 연기를 강조하곤 했다”며 “창극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손 감독이 야무지게 만들어 낼 거라 믿는다”고 전했다. 안 명창은 6시간 분량의 판소리 심청가를 이번 공연에서 2시간 남짓 길이로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녹록지 않은 작업이죠. 좋은 소리를 도려내려니 아까운 게 너무 많아요. 하지만 눈대목(하이라이트)은 빼지 않고 효과적으로 잘 배치했어요. 관객들도 들으면서 만족하실 겁니다.” 2만∼5만 원. 02-2280-4114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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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 꽉 채운 책 1061권… 그중 진짜는 단 7권뿐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뮤지컬 시장에서 보기 드문 2인극이다. 중극장 무대에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러닝타임 100분을 이끌지만, 나선형 책장 무대가 빈틈을 가득 메우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올해로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뱀파이어의 운명을 선택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학문엔 완벽하지만 사랑을 얻는 일엔 번번이 실패하는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 V’와 손짓만으로 상대를 홀리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드라큘라 백작’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마마 돈 크라이’ 무대는 단층 무대를 세트를 활용해 3개 층으로 나눠 입체감을 살렸다. 무대 세트는 사각 나선형 구조의 책장이다. 사방의 책장에 책이 꽂혀 있고, 책장 앞면엔 시계마냥 눈금이 촘촘하게 그어져 있다. 무대 맨 앞 책장의 크기는 가로 약 7.6m, 높이 5.6m에 이른다. 뒤이어 사각 나선형 구조로 이어진 책장 역시 가로 4.4m, 높이 3.9m로 상당한 크기다. 각 책장에는 책이 꽂혀있는데 실제 책이 아닌 스티로폼으로 만든 소품이다. 무려 1054개의 스티로폼 책 소품이 사용됐다. 극에는 프로페서 V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는 장면이 곧잘 등장한다. 이때 사용하는 건 스티로폼 소품 책이 아닌 실제 책이다. 오루피나 연출가는 “총 7권의 실제 책을 약속된 장소에 비치해 뒀다”고 귀띔했다. 드라큘라의 삶을 다룬 작품에 책장 세트와 책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오 연출가는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와 디자인 콘셉트 회의를 할 때 천재 물리학자인 프로페서 V의 이미지를 담은 책장으로 무대 세트를 만들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 V는 시간의 법칙을 연구해 타임머신을 발명한다. 이를 이용해 59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드라큘라 백작을 만난다. 책장은 프로페서 V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세트이면서 극중에 타임머신으로도 변신한다. 오 연출가는 “책장 앞에 그어진 시계 눈금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뜻한다”고 설명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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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이책]엄마와 아이가 역할을 바꾼다면

    “놀라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제부터 엄마를 직접 관리하고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 유명 동화 작가인 저자는 엄마와 아이의 역할을 뒤집어 본 독특한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이의 천진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설명서 형식을 취해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화난 엄마를 ‘작동 불량 엄마’라고 하거나 휴식 중인 엄마를 ‘전원 꺼진 엄마’, 화가 풀린 엄마를 ‘리셋된 엄마’라고 표현한 부분은 실제 물건 사용 설명서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했다. 쉬운 이해를 돕는 다양한 그림도 눈길을 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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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백 대사 너무 많고 어려워… 각자 벽 보고 외우죠”

    대학로 연극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연극열전’이 일곱 번째 시즌 첫 작품으로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게리 오언의 최신작 ‘킬롤로지(Killology)’를 선택했다. 4월 26일 국내 초연되는 킬롤로지는 3명의 배우가 독백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독특한 구조다. 온라인 인간 살상 게임 킬롤로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데이비, 아들이 살해된 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를 결심한 아버지 알란, 살인을 위한 게임 킬롤로지를 개발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폴. 이들은 1인극 같은 3인극을 선보인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알란 역을 맡은 배우 이석준(46)과 데이비 역의 이주승(29)을 22일 만났다. 연습실에서는 배우들이 각자 벽을 보고 연습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석준은 “3명의 배우 모두 독백으로 대사를 이어가는 데다 외워야 할 대사량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각자 벽 보고 대사를 외우는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이주승은 “1인극 형식의 독백 연극은 처음이라 막막하다”면서도 “공연이 끝날 즈음엔 배우로서 한 뼘 성장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극 무대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큰 두 사람이지만 킬롤로지는 “배우로서 시험에 들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형식이 진짜 독특해요. 상대 배우와 내 이야기 간의 간극이 없어요. 처음 대본을 받고 두 페이지만 여섯 번 읽었어요. 고서적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배우로서 최대의 위기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야기 구조가 이해되며 확 빨려들어 가더라고요. 막판에 알란의 독백 역시 ‘아, 얘가 이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깨닫게 만들죠.”(이석준) “저도 대본을 읽는 데 하루가 넘게 걸렸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어려웠죠.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실패란 생각이 들었고, 도전하기로 했어요.”(이주승) 배우 추상미의 남편인 이석준은 ‘프로즌’ ‘카포네 트롤로지’ 등 최근 몇 년간 주연으로 열연한 연극마다 인기를 끌었다. “왜 나한테 계속 좋은 기회가 오는가.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죠. 또래 배우 중에 이른바 ‘뜬 사람’들은 TV나 영화계로 진출했어요. 대학로에 남은 게 저밖에 없더라고요. 운이 좋았죠.”(이석준) 장난과 겸손 사이에서 말을 이어가던 그는 “최근 들어 대학로에서 극장 파괴 형식의 연극이 유행하면서 캐릭터가 강한 배우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이 빠른 배우가 유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승은 연극보다는 영화와 드라마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류준열, 변요한과 함께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소셜포비아’, KBS 예능드라마 ‘프로듀사’,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 등이 대표작이다. 연극은 ‘낮잠’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배우 예술에 최대한 가까운 장르가 연극이라고 생각하기에 연극 무대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고 말했다. 4월 26일∼7월 22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4만∼5만5000원. 02-766-6007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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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일랜드판 ‘백조의 호수’… 주인공은 왕자 대신 36세 ‘백수’

    이색적인 ‘백조의 호수’.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도, 완벽한 지크프리트 왕자도 없다. 흰색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들의 하얀 발레 군무도 없다. 화려한 왕궁 대신 시멘트 벽돌, 검은 비닐 등 단출한 세트만이 관객을 맞는다. 아일랜드 대표 연출가 겸 안무가인 마이클 키건돌런이 탄생시킨 독특한 무용극 ‘백조의 호수’가 29∼31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2016년 영국 더블린 연극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 원작을 과감하게 재해석했다. 원작의 기본 구성에 아일랜드 전설 ‘리어의 아이들’과 2000년 아일랜드를 떠들썩하게 만든 ‘존 카티 사건’을 차용했다. ‘리어의…’는 새어머니가 아버지를 독차지하기 위해 네 명의 수양딸을 백조로 만들어버린 이야기다. ‘존 카티 사건’은 우울증 병력이 있던 20대 남성 카티가 농촌주택계획으로 집이 철거되는 데 반발해 경찰과 대치하다 사살당한 사건이다. 키건돌런은 작품을 통해 정신 질환과 사회적 고립, 음흉한 정치인, 부패한 성직자가 횡행하는 아일랜드의 현실을 묘사한다. 주인공은 직업도 희망도 없이 홀어머니와 살아가는 36세 지미다. 정부의 주택 공영화 정책으로 집을 잃게 되자 호수에서 총으로 자살하려는 지미 앞에 네 마리 백조가 나타난다. 백조들은 원래 네 자매로, 가톨릭 성직자가 성추행 후 범죄를 감추고자 이들을 백조로 바꿔버렸다. 작품은 연극·춤·라이브 연주를 결합했다. 3인조 아일랜드 밴드 ‘슬로 무빙 클라우드’의 라이브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키건돌런은 e메일 인터뷰에서 “텅 빈 무대에 사다리, 종이상자, 벽돌, 검은 비닐 등 단출한 소품들을 사용해 황량한 현실을 강조했다. 세트가 거의 없는 벌거벗은 무대로, 위험하지만 아름답다”고 전했다. 마지막에 무용수들이 백조 깃털을 날리며 춤추는 장면이 작품의 백미다. 배우 2명과 무용수 8명, 연주자 3명 등 총 13명이 무대에 오른다. 아일랜드의 유명 영화 배우인 마이클 머피가 성직자, 정치인, 경찰 등 1인 5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독히도 아름답고 비범한 작품”이란 평과 함께 별 다섯 개 만점을 줬다. 4만∼8만 원. 02-2005-0114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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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린 논쟁에 ‘82년생 김지영’ 판매 급증

    다음 달 평양 공연을 가는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본명 배주현·27·사진)이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었다고 말했다가 황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소설은 또 한 번 주목받으며 판매량이 늘고 있다. 온라인서점 예스24는 25일 “아이린 이슈 뒤 18∼20일 책 판매량이 전주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역시 “20일 판매량이 올해 일일 최고를 기록했고, 종합판매 순위도 3위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민음사에 따르면 ‘82년생…’은 현재 60만 부 이상 팔렸다. 정작 아이린은 억울한 봉변을 당했다. 그는 18일 XtvN 예능 ‘레벨업 프로젝트2’ 팬 미팅에서 최근 읽은 책을 묻는 질문에 ‘82년생…’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일부 극성 남성 팬들이 “페미니스트 책을 왜 거론했느냐”며 헐뜯은 것. 심지어 아이린 관련 상품을 훼손한 사진들을 온라인에 올리기까지 했다. 누리꾼은 분노했다. “베스트셀러 읽은 게 죄인인가” “쪽팔린다. 어디 가서 남자라고도 하지 마라” “문재인 대통령도 읽었을 텐데 왜 뭐라 안 그러나” 등 한심하단 반응이 가득했다. ‘82년생…’은 지난해 5월 청와대 오찬에서 노회찬 국회의원이 문 대통령에게 선물한 게 관심을 모으며 당시 판매량이 출간 한 달 후 대비 23배로 증가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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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가는 곳마다 졸졸 비구름아 왜 따라오니?

    외톨이 소녀 아이비와 비구름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화창한 어느 날, 늘 환영받지 못하는 비구름은 친구를 찾아 나선다. 광장에서 항상 심술이 나 있는 아이비를 발견한 비구름은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하지만 아이비는 집까지 따라온 비구름에게 온갖 짜증을 낼 뿐이다. 비구름은 자신처럼 외로운 아이비의 마음을 알아채고, 아이비가 가장 아끼는 꽃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비구름의 정성에 시들었던 꽃들은 생기를 되찾고, 아이비는 비구름에게 감동하며 친구가 된다. 친구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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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국민배우 베베르, 연극 ‘비스트로에서의 위고’로 첫 내한 공연

    프랑스 국민 배우이자 연출가인 자크 베베르(66)가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주한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하는 ‘2018 프랑코포니 축제’ 기간에 올려지는 연극 ‘비스트로에서의 위고’를 통해서다. ‘비스트로…’는 22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덜위치칼리지 서울영국학교에서 선보인다. 21일 강남구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자크베베르는 첫 내한공연을 갖는 소감에 대해 “서울 거리를 걷고 시민들을 다수 만나봤는데 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독 차분한 인상을 받았다”며 “연극 무대에서 관객으로 한국인들을 만나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프랑스 연극계 거장인 베베르는 1969년 데뷔해 50년간 주로 고전연극 무대에 오르며 ‘국민배우’란 호칭을 얻었다. 니스극장과 리옹극장의 극장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TV드라마와 영화로도 활동 반경을 넓혀왔으며 1991년 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출연해 프랑스 유명 영화상인 세자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2009년 영화 ‘발렛’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했다. 베베르가 선보이는 연극 ‘비스트로…’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초연됐다. 작품에서 베베르는 프랑스 문학계 거장 빅토르 위고의 글을 낭독한다. 그는 “작품은 굉장히 간단한 스타일”이라며 “무대에 혼자 걸어 들어가 직접 고른 위고의 글을 가지고 연기한다. 주제도 러닝타임도 정해지지 않는다. 당일 기분과 관객 반응에 따라 위고의 글을 읽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베베르는 공연 내내 위고의 글을 낭독하거나 글에 쓰인 상황을 직접 연기할 예정. 그는 “여타 공연과는 확실히 성격이 다를 것”이라며 “온몸을 다 바쳐 연기하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문학의 밤’ 무대가 아닌 배우가 무대에서 진심으로 연기하는 공연”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수많은 문인 가운데 위고의 글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베베르는 “위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인”이라며 “위고의 시적 표현은 강하고 단순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 감동을 준다. 시적인 표현을 통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한국 관객도 이번 공연을 통해 위고의 글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베베르는 홍상수 영화감독과 위고를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위고의 언어는 모든 세대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라며 “개인적으로 홍 감독을 굉장히 존경하는데 위고처럼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고 전했다. “한국 관객들과 기회가 된다면 더욱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와 한국 연극이 교류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하하.”김정은기자 kimje@donga.com}

    •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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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포터’ 주인공 래드클리프, ‘깜짝 연기 변신’ 영상으로 만난다

    서울 도심 공연장에서 영국의 유명 연극 작품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국립극장은 NT Live 연극 ‘예르마’와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를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상영한다. NT Live는 영국 국립극장이 대표 연극을 촬영해 공연장과 영화관에 생중계 혹은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영국 ‘영 빅 시어터’가 제작한 ‘예르마’는 지난해 영국 최고 권위 공연상인 로런스 올리비에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리바이벌상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이다. 연극 ‘로젠크란츠와…’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예르마’는 스페인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의 비극을 원작으로 한다. 연출가 사이먼 스톤은 원작의 줄거리는 그대로 가져오되 시대적 배경을 16, 17세기 스페인에서 현대 런던으로 옮겨 새롭게 각색했다. 주인공인 예르마가 아이를 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이를 갖지 못해 절망에 이르는 순간까지의 감정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예르마 역을 맡은 빌리 파이퍼의 압도적인 연기가 관전 포인트다. ‘로젠크란츠와…’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단역으로 등장하는 친구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두 주인공의 선문답과 말장난 등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언어유희를 통해 인생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자신들이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순간도 유머로 풀어낸다.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누비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배우 조슈아 맥과이어가 길덴스턴 역을 맡았고,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 래드클리프가 로젠크란츠를 연기한다. 영국 가디언지는 두 배우에 대해 “완벽한 듀오”라고 평했다. 전석 2만 원. 02-2280-411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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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 긴장감으로 꽉 찬 무대

    28년간 연기 내공을 쌓은 배우 김승우의 연극 무대 데뷔는 합격점이었다. 대사 전달력, 감정 처리, 상대 배우와의 호흡까지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배우 김승우와 김상중이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돼 화제가 된 연극 ‘미저리’는 출연 배우가 3명으로, 사실상 2인극에 가깝지만 110분의 러닝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이어지며 몰입하게 만들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소설 ‘미저리’의 작가 ‘폴’과 이 소설의 광적인 팬 ‘애니’다. 신작 원고 작업을 마친 폴은 폭설이 쏟아지던 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를 미행하던 애니는 폴을 구조해 자신의 집에 감금한 뒤 그를 보살핀다. 때로는 폴의 엄마처럼 간호하고, 때로는 광적으로 폴을 몰아붙이며 그를 소유하려 든다. 애니 역의 길해연에게서는 광기와 살기, 상냥함 등 복잡한 감정이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이 튀어나온다. 폴은 점점 미쳐가는 애니를 설득하며 탈출을 꿈꾼다. 애니가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 같은 존재라면, 폴은 위기 상황에서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캐릭터다. 김승우는 침착하면서도 안정적인 폴을 자연스럽게 그리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무대 경력이 많고 연기 내공이 탄탄한 길해연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세트는 회전무대 위에 지어진 애니의 집뿐이다. 360도로 회전하며 폴이 감금된 방, 애니의 생활공간인 주방, 폴의 실종을 수사하는 보안관과 애니가 주로 만나는 집 앞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애니 몰래 감금된 방을 탈출해 주방으로 이동하며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장면에서는 무대의 회전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배우의 동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여러 곳에 배치된 카메라에 담아낸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4월 15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5만5000∼7만7000원. 1544-1555 ★★★(★ 다섯 개 만점)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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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저승에 간다면? 7개 지옥문 통과 꿈도 못 꾸죠”

    서울예술단의 스테디셀러 뮤지컬 ‘신과 함께’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15년 초연된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을 원작으로 한다.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건 ‘저승편’으로 사람이 죽은 뒤 49일간 저승에서 벌어지는 7번의 재판 과정을 그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뮤지컬 ‘신과 함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배우 김우형(37)과 정원영(33)을 16일 만났다. 김우형은 저승사자 강림 역을, 정원영은 잦은 회식 때문에 간경화로 숨진 29세 회사원 김자홍 역을 맡았다. 동명 영화에선 배우 하정우가 강림 역을, 차태현이 김자홍 역으로 열연했다. ‘신과 함께’는 어떤 장르의 옷을 갈아입든 성공을 거뒀다. 원작 웹툰은 단행본으로 발간돼 70만 권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는 1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순위 2위에 올랐다. 뮤지컬 역시 매 시즌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진을 이어간다. 김우형은 “원작이 주는 메시지가 워낙 좋다”며 “특히 뮤지컬은 발광다이오드(LED) 무대 바닥 등 다른 작품에선 볼 수 없는 획기적인 무대가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원작 웹툰의 팬인 정원영 역시 “원작의 힘이 거대하다”며 “어떤 장르로 요리되든 각자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신과 함께’의 매력인 것 같다”고 전했다.두 배우 모두 이전 작품에서와 전혀 다른 분장으로 무대에 선다. 저승사자 강림의 분장 특징은 과장된 구레나룻이다. “리얼한 분장을 위해 구레나룻 가발을 통으로 붙이지 않고, 사극처럼 본드를 발라서 전부 한 올씩 붙여요. 분장 시간이 대개 1시간 20분 정도 걸리죠. 붙일 때도 힘들지만 떼어낼 때도 정말 힘들어요.”(김우형) 김자홍의 트레이드마크는 9 대 1 가르마와 검버섯 피부다. 정원영은 “분장 선생님이 매번 ‘너무 미안하다’고 하신다. ‘오늘 분장 잘됐다’고 하시면 더 못생겨지게 분장이 완성됐다는 이야기”라며 “검버섯 피부는 특수 컬러 스프레이를 사용해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신과 함께’는 코믹과 판타지를 묘하게 오간다. 배우별 애드리브도 여느 작품에 비해 자유롭다. 정원영은 “지난 시즌 공연에서 제가 했던 애드리브 대부분이 이번 시즌에선 정식 대사로 들어왔다”고 전했다. 김우형은 “애드리브를 잘 하지 않는데, 작품 자체가 유연해 간간이 애드리브를 한다”며 “관객의 반응과 호흡에 따라 애드리브도 다양하게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시즌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작품에서는 도산지옥, 화탕지옥, 한빙지옥, 검수지옥, 발설지옥, 독사지옥, 거해지옥 등 원작에 나오는 총 7개의 지옥이 등장한다. 만약 죽어서 재판을 받는다면 이들은 어느 지옥이 가장 무서울까. 김우형은 “첫 번째 지옥부터 통과하지 못할 거다. 모든 지옥에서 죄가 걸릴 것 같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배우의 끼가 있었던 걸까요? 부모님께 괜히 더 배고픈 척, 더 아픈 척, 불쌍한 척 이런 연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발설지옥에서 제일 먼저 혀가 뽑히지 않을까요…. 하하.”(정원영) 27일부터 4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9만 원. 1577-3363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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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과 나란히 ‘지젤’ 주인공… 서로 연기 조언”

    세계 4대 발레단 중 하나인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6·사진)이 4월 유니버설발레단(UBC) ‘지젤’ 무대에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 역으로 오른다. 4년 만에 선보이는 UBC의 ‘지젤’은 그가 몸담고 있는 마린스키발레단 버전이다. 러시아에 있는 그를 16일 전화 인터뷰했다. 그에게 ‘지젤’은 마린스키발레단 입단의 다리 역할을 한 작품이다. “2010년 마린스키발레단 ‘지젤’ 내한공연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스승이자 마린스키발레단 주역 무용수 출신인 블라디미르 킴 선생님의 추천으로 마린스키발레단 단장님과 면담했어요. 다음 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오디션 기회를 얻어 입단하게 됐죠.” ‘지젤’ 내한공연 당시 형(김기완·국립발레단 솔리스트)과 같이 공연을 보러 간 그는 “‘마린스키발레단에서 발레 인생의 무대를 끝낸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했는데 꿈이 현실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마린스키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예카테리나 오스몰키나가 지젤 역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는 오스몰키나에 대해 “세계적인 무용수로 작품 해석력이 뛰어난 데다 신체조건이 좋아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칭찬했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2009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국내 직업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17세)로 ‘지크프리트 왕자’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2011년 동양인 최초로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한 후 두 달 만에 주역을 꿰찼다. 2015년에는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며 또다시 ‘동양인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지난해에는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수상했다. 그는 “좋은 스승을 만난 것과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것이 성과를 낸 것 같다”고 했다. “형이 25일 국립발레단 ‘지젤’에서 알브레이트 역을 맡아 저와 2주 간격으로 ‘지젤’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알브레이트 역을 나란히 맡다 보니 서로 연습 영상을 보내 조언을 주고받고 있어요. 흥미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웃음) UBC의 ‘지젤’은 4월 6∼15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1만∼10만 원. 070-7124-1737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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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지젤, 다른 감동… 국립발레단 vs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팬이라면 3, 4월에 놓쳐서는 안 될 공연이 있다. 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UBC)이 내놓은 ‘지젤’이다. ‘지젤’은 낭만 발레의 정수로 꼽힌다. 두 발레단의 ‘지젤’은 비교하며 보는 맛이 있다. 3년 만에 선보이는 국립발레단의 ‘지젤’(21∼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전 예술감독이었던 파트리스 바르가 안무를 짠 작품이다. 4년 만에 선보이는 UBC의 ‘지젤’(4월 6∼15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대극장)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버전이다. 쥘 페로와 장 코라이의 안무 작으로 1841년 초연됐다. 이번 공연에서는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발레리노 김기민이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 역을 맡아 국내 팬을 만날 예정이다. ○ 윌리 군무 놓치지 말아야 ‘지젤’의 백미는 2막 윌리(Willy·처녀귀신)들의 군무다. 남자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귀신들이 숲 속을 지나가는 남자를 잡아가 해가 뜰 때까지 춤을 추게 만드는 장면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UBC 단장 모두 이 군무를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으며 “공연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라 바야데르’ 망령들의 왕국, ‘백조의 호수’ 호숫가 안무와 함께 발레 블랑(ballet blanc·하얀 발레)을 대표하는 명장면이다. 두 발레단의 ‘지젤’ 모두 2막 공연 시간 55분 중 30분이 군무 장면일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 때문에 2막은 주인공 지젤보다 코르드발레(군무) 단원들의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발레단은 모두 24명, UBC는 18명의 군무 단원이 무대에 선다. ‘지젤’ 군무의 구성은 다른 작품에 비해 다양한 편이다. 무대를 사선으로 가르는 대각선 대열이 가장 많고 원 모양의 대열, 6줄 대열, 8줄 대열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문훈숙 UBC 단장은 2막에서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의 마무리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문 단장은 “남성 무용수가 앙트르샤 시스(뛰어오르며 발을 마주치는 스텝)를 32회 선보인다”며 “여느 발레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고난도 기술이다”라고 설명했다. ○ 유명 버전 비교하는 재미 쏠쏠 마린스키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은 어떤 점이 다를까. 문 단장은 “가장 큰 차이점은 1막의 ‘페전트 파드되’(Peasant pas de deux·농부의 2인무)”라며 “관객들이 더 많은 솔리스트들의 춤과 테크닉을 볼 수 있도록 2인무를 6인무로 바꿔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젤의 마을 친구들이 남녀 쌍을 지어 추는 장면으로 국립발레단에서는 한 쌍의 남녀 무용수가, 유니버설발레단에서는 세 쌍의 남녀 무용수가 나선다. 밤의 공동묘지가 배경인 2막의 조명도 다르다. 국립발레단은 어두운 회색빛을, UBC는 푸른빛의 조명을 사용한다. 같은 작품을 놓고 세계 유수 발레단이 서로 다른 스타일로 풀어낼 만큼 ‘지젤’은 매력적이다. 강 단장은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 ‘지젤’의 매력으로 정교한 안무와 스텝을 꼽았다.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 스타일은 섬세하면서도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발레 강국 러시아의 마린스키발레단 버전 ‘지젤’은 상체의 움직임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민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는 “춤을 통해 대사를 풀어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연기 스타일 덕분에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버전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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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합리한 편견에 실력으로 맞선 그녀… 당당함을 응원해!

    “여자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여자는 허영심 많은 동물에 불과해.” “여자가 여자답게 읽기나 할 것이지 무슨 글을 쓰겠다고 난리야?”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는 시대착오적 대사들이 남자배우들 입에서 쏟아진다. 여자는 글을 써도 안 되고, 남편 없이는 재산도 갖지 못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레드북’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언니들을 위한’ 뮤지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다른 글재주를 지닌 발랄한 안나가 거친 방식이 아닌 오직 실력으로 온갖 편견에 맞서 이겨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밀려오는 통쾌함에 만족하는 여성 관객이 많다.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주인공 안나는 여장남자 로렐라이의 도움으로 잡지 레드북(Red Book)에 야한 소설 ‘낡은 침대를 타고’를 연재한다. 입소문을 타며 안나의 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영국 문학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평론가 존슨이 안나를 집으로 은밀히 초대한다. 존슨은 안나에게 소설 리뷰를 호의적으로 써주겠다고 제안하며 겁탈하려 하지만 안나는 이를 거부하며 당당하게 뛰쳐나온다. 빅토리아 시대를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국 사회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영향력 있는 문화계 인사의 은밀한 제안을 거절한 안나에게 음란물을 썼다는 사회적 비난과 법적 심판의 위기까지 닥쳐오지만, 특유의 꿋꿋함과 당당함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성장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6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 선정작인 ‘레드북’은 배우들의 연기, 연출, 음악 3박자가 잘 어우러진 웰 메이드 작품이다.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 주인공 안나 역의 아이비와 로렐라이 역의 지현준, 바이올렛과 도로시 1인 2역에 나선 김국희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코미디 요소가 많지만, 작품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적정선을 지키며 재미를 배가시키는 점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5만5000∼8만5000원. 070-7789-2774 ★★★(★5개 만점)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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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은 누구? 미투운동 활화산 된 ‘디시갤’

    처음엔 정보기술(IT)기기 품평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온라인의 온갖 지저분한 사담이 쏟아지는 ‘하수구’로 변질됐다. 그러다 문득 대중문화계 ‘덕후(마니아)들의 집합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뒤흔드는 ‘미투 운동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디시갤) 이야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화되며 그 기능이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평가받던 디시갤이 최근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를 뒤흔든 미투 운동이 유독 국내에선 이 디시갤을 통해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무대는 디시갤의 한 분야인 ‘연뮤갤’(연극·뮤지컬 갤러리)이다. 지난달 20일 연극배우 이명행의 성추행 고발을 시작으로 온갖 폭로가 다 여기서 쏟아졌다. 심지어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공연계의 미투 지지 집회 제안도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예능프로그램 갤러리’(예갤)와 ‘영화갤러리’(영갤)도 응답했다. 7일 예갤에는 2011년 가을 개그맨 심현섭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심 씨가 “이미 법정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반발하자 현재 글은 삭제됐다. 앞서 영갤에도 영화감독 이해영을 둘러싼 동성 성추행 폭로 글이 올라와 이 감독이 공개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일상이 된 SNS가 아닌 디시갤이 이런 사회적 진원지가 된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익명성’을 꼽았다. SNS는 누리꾼들이 맘먹고 추적하면 금방 신분이 드러난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런 폭로가 의도와 달리 ‘2차적 가해’로 돌아오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며 “디시갤은 자신이 원하면 익명으로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고 짚었다. 특히 디시갤은 문화계 덕후라면 꼭 들르는 ‘살롱’의 성격을 지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기 쉽다. 연뮤갤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덕후나 업계 관계자들이다.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미 내막이나 소문을 아는 이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용이한 구조였다. 원 교수는 “특정 장르에 해박한 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라 이름의 초성이나 활동 이력만 거론해도 바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어 ‘폭로 효과’가 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SNS와 디시갤의 폭로 형태를 비교하면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페이스북 등은 비교적 가벼운 성추행 고발이 많은 반면 디시갤의 글은 굉장히 수위가 높다.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 김보리(가명) 씨의 폭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성폭행이나 마사지 장면을 여과 없이 세세하게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경찰 관계자는 “SNS는 사실을 적시해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디시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공간이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시갤이나 대학 익명게시판이 폭로의 소통창구 역할을 한 것을 ‘공동체의 결속’이란 측면에서 들여다봤다. 구 교수는 “결국 고백이 힘을 얻으려면 같은 부류의 지지나 공감을 통해 집단적 움직임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앞으로 이런 폭로가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려면 관련 조직이나 기구를 통한 체계적 사례 수집과 대처 방안 마련이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은 kimje@donga.com·김민 기자}

    •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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