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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경제연구소 미하엘 휘터 소장(사진)은 독일 중소기업의 강점으로 유연성을 꼽았다. ―독일에는 중소기업이 많다. 중소기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유연하다는 점 외에도 오랫동안 노사가 함께 일해 파트너십이 좋고 지역에서 관계망을 잘 형성하고 있다.” ―독일이 프랑스에 비해 노사 간 타협이 잘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은 노사 간 타협의 긴 전통을 갖고 있다. 1918년 11월 중앙노사공동체협약 이후 약 100년에 가까운 타협의 전통을 갖고 있다. 프랑스는 대기업 중심 구조이고 독일처럼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지 않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노사 간 타협이 더 어렵다.” ―독일은 법정 최저임금을 2015년에야 비로소 도입했다. 왜 독일은 그토록 법정 최저임금 도입을 주저했나. “과거 독일은 제조업 공장이 많았고 근로자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서비스업 비중이 늘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생기고 최저임금 문제가 생겼다. 과거 철강회사 티센크루프는 창문 닦는 사람들도 그 회사의 직원으로 돼 있었다. 철강을 직접 생산하는 근로자들과 같은 월급을 주는 것이 비합리적으로 여겨져 창문 닦는 사람들은 서서히 분사돼 나갔다. 이런 식으로 산업구조가 서서히 변하면서 최저임금 도입을 둘러싼 환경도 변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제조업 비중이 10%밖에 안 되지만 독일은 아직 23%다. 영국에서는 독일보다 빨리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와의 국경지대에 루르몬트라는 아웃렛 도시가 있다. 인근에 사는 많은 독일인들이 휴일에 국경을 넘어 루르몬트를 찾는다. 독일은 아직도 휴일 영업은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은 옛날부터 공업이 강한 나라다. 공업에서는 1주일에 5, 6일 일하는데 보통 하루는 쉬어야 한다. 식당 등을 제외하고는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것은 독일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이다. 앞으로도 독일은 이런 점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당(SPD) 소속의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장기실업자를 위한 ‘하르츠(Hartz) 4’를 없애는 대신 국가가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월 1500유로를 주자는 연대적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기본소득은 1500유로가 아니라 2000유로를 받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갈 동기(動機)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쾰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독일의 중소기업은 375만 개에 이르고 전체 고용시장의 65.9%를 차지한다. 이들 중소기업 중 상당수는 높은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또 대부분은 가족기업의 형태로 운영된다. 가족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국내 고용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도 사업체를 해외로 이전하기보다는 국내에 두려 하고 경영자가 장기적인 명성 유지를 위해 지역공동체에 화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인근 하일브론에 위치한 펌프 및 필터 제조업체 레너(Renner)사도 그런 기업이다. 직원은 60명에 불과하지만 이 업체가 제조하는 펌프 및 필터는 반도체 PCB, 태양광 전지판 등 약품이 사용되는 모든 생산 공정에 쓰인다. 주요 고객은 미국의 물텍(MULTEK) 퍼스트솔라 다우케미컬, 한국의 삼성 LG, 독일의 BASF 등이다. 독일 가족 중소기업의 전형인 레너사를 공동경영하고 있는 4남매를 인터뷰했다. ―중소기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장이 모든 분야에 관여하기 때문에 결정이 빠르고 융통성 있게 이뤄진다. 중소기업이 다임러벤츠 같은 대기업과 똑같은 연봉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회사로부터 20∼30km 내에 사는 사람들을 채용하기 때문에 지역 고용에 크게 이바지한다. 근로자들로서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는 대기업 근로자와 달리 다양한 일을 다루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직원은 몇 명인가. “대학 학위를 가진 엔지니어 8명을 포함해 마이스터의 일종인 테크니커(Techniker)와 메커니커(Mechaniker) 등 30명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도 7명이 따로 있다. 이들은 3년간 직업교육을 받는다. 우리는 이 중 80%를 채용한다.” ―경영은 누가 맡고 있나. “아버지가 낳은 우리 네 자녀가 공동경영인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장녀 유타(58)가 마케팅, 장남 마르틴(56)이 연구개발(R&D), 차남 울리히(54)가 생산기술, 차녀 카린(48)이 생산설계 담당으로 구별돼 있긴 하다. 그러나 영업은 다 같이 하고 중요한 결정도 분야를 막론하고 4명이 공동으로 한다. 아버지가 장녀 유타에서 한 표를 더 주긴 하지만 유타는 한 번도 추가적인 한 표를 행사해 본 적이 없다.” ―지분과 이익 배분은 어떻게 하나. “4명이 회사에 갖고 있는 지분은 25%씩으로 똑같다. 월급도 똑같다. 회사 이익은 배분하지 않고 회사에 그대로 남겨 두고 R&D 등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투자한다.” 인터뷰 통역을 해준 임효석 세나(SENA)인터내셔널 사장은 도르트문트공대를 나온 독일 교포로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가 양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이익을 기업주가 가져가지 않고 회사에 남겨 투자한다는 점이 독일 중소기업과 한국 중소기업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자녀들이 모두 다 회사를 이어받는 게 전형적인가. “4명이 다 회사를 이어받는 건 전형적이지 않지만 독일의 가족 중소기업은 대개 1, 2명의 자녀가 이어받는다. 우리 남매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회사 일을 해왔다. 일반 종업원이 일하는 하루 8시간보다 더 많이 일했고 지금도 더 많이 일하고 있다.” 레너사를 방문한 날은 일요일과 국경일인 화요일 사이에 낀 월요일이었다. 독일의 많은 근로자들이 이런 날은 휴가를 내고 쉬는데도 공동경영인 남매들은 모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나. “전문 경영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사람이 현 단계에서 회사의 방향을 우리만큼 잘 이해하리하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세대에도 가족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직장 근로자로서 주 35시간 혹은 40시간만 일하고 쉬려고 한다.” ―독일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 비해 기업에 대한 상속세가 낮다고 들었다. “회사를 판다면 상속세가 높다. 다만 회사를 계속 유지하고 매출이나 이익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고용자의 수를 유지하는 한 상속세가 높지 않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정부가 점차 상속세를 높여가고 있어 중소기업 계승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독일은 해고하기 어려운 나라로 알고 있는데…. “정규직 직원은 6개월의 테스트 기간에는 해고할 수 있지만 6개월 이후 채용하면 해고하기 어렵다. 해고당한 직원이 해고 사유에 반발해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법정이 노동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창립 이후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2명을 해고한 적이 있다.” ―직원이 나이가 들면 임금을 낮출 수 있나. “독일은 연장자로 갈수록 연봉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독일에서 임금 하향 조정은 법원에 갈 수 있어 불가능하다. 게다가 연장자들은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독일 근로자의 정년이 67세로 늘었지만 몇 년 전에 4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63세에 은퇴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그 법에 따라 우리 회사에서도 67세까지 더 일할 수 있었는데 63세 나이로 은퇴한 직원이 3명이 있었다. 그때 우리 모두 크게 아쉬워했다.”슈투트가르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인생 1막은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라 결혼해 출가시키기까지를 말한다. 그것으로 인생의 한 사이클이 끝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인생 1막을 끝낼 나이의 전국 50∼64세 성인 남녀 107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인생 2막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배우자나 자식보다 ‘나’를 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센터는 이런 인생 2막 시대에 ‘리본(re-born) 세대’라는 말을 붙였다. ▷산업화와 고령화는 경로(敬老) 사상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전통적 농업사회에서는 아들이 농사를 지어 부모를 먹여 살려야 했다. 실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아들 내외와 함께 일해도 먹고살기 힘들었다. 산업사회라고 해서 자식의 부모 봉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부모는 모아놓은 재산을 갖고 살아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자식 도움 없이 수명대로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소중할 수 있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이번 조사에서 이혼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으로는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생활을 즐기라’는 답이 33%로 가장 많았다. ‘좀 더 참고 살아보라’는 답이 25.2%로 2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졸혼(卒婚)’과 ‘이혼’을 권한 대답이 각각 20.9%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생활을 즐기라’는 이혼은 하지 않되 주거지까지 따로 정해 살 수 있는 ‘졸혼’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백년해로(百年偕老)는 이미 옛말이다. ▷영국 노년학 전문가 세라 하퍼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는 결혼 서약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 기간도 그만큼 늘고 있다. 근래 추세대로 수명이 늘어나면 결혼 기간이 무려 백 년이 될 수 있다고 하퍼 교수는 전망했다. 결혼식에서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것은 수명이 고작 40세나 50세이던 시절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화일 수 있다. 정작 대부분 백년해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백년해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나 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동아일보 기획시리즈 ‘왜 프랑스는 처지고 독일은 앞서갔나’ 취재차 지난달 프랑스와 독일을 다녀왔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1997년은 독일과 프랑스에도 향후 20년의 진로를 바꾼 중요한 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프란츠 필츠 교수는 “1997년 4월 고용촉진법(Arbeitsf¨orderungsgesetz)의 발효로 독일 노동시장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흔히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노동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용촉진법은 기독민주당의 헬무트 콜 정부 집권 시절 입안됐다. 슈뢰더 총리는 그 법이 발효된 때로부터 1년 6개월 뒤인 1998년 10월 집권했다. 슈뢰더 총리의 업적은 콜 정부의 방향 전환에 딴지를 걸지 않고 오히려 강화해 ‘어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을 만들어 실행한 것이다. 2005년 집권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또 그것을 이어받았다. 잇단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이어진 노동시장 개혁이 오늘날 ‘라인강의 기적’을 넘어서는 독일의 번성을 가져왔다. 프랑스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사실 프랑스는 1995년 알랭 쥐페의 공화당 내각이 출범하면서 독일보다 빨리 노동시장 개혁에 착수했다. 그러나 1997년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집권해 쥐페가 추진한 개혁을 뒤집고 오히려 주당 근무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는 법을 제정하는 등 역주행을 했다. 2007년 집권한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주 35시간 노동제의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지만 실패했다. 2012년 집권한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비록 자기 당이 도입한 제도이지만 폐해를 인정하고 2016년에 일부 완화를 이뤄냈지만 국민들로부터 사회당 공화당 모두 정치적 불신을 받은 뒤였다. 슈뢰더의 개혁이 반발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사민당 내에서 오스카어 라퐁텐 경제장관을 중심으로 강력한 저항이 있었다. 슈뢰더의 개혁은 1999년 라퐁텐이 사임하면서 본격화됐다. 라퐁텐은 결국 사민당을 탈당해 좌파당을 결성했다. 사민당과 좌파당의 분리는 사민당의 총선 패배를 가져오고 기민당의 네 차례 연임을 허용한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사민당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망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슈뢰더 총리가 집권 내내 노동시장 개혁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막대한 통일비용의 후유증이 워낙 커 독일은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렸다. 2005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평균 1%의 성장률로 유로지역에서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같은 저성장그룹으로 분류됐고 실업률도 11.2%까지 치솟았다. 2006년부터 실업률이 떨어지기 시작해 10년이 지난 2016년 6% 미만으로 떨어져 ‘라인강의 기적’ 당시 수준으로 돌아오고 2017년 말 3.8%까지 떨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2025년까지 3%의 완전고용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조스팽 총리가 도입한 35시간 노동제는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였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3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1997년 10.9%였던 실업률은 2001년부터 8%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35시간 노동제는 연장근무수당 지출 비용을 늘려 결국 기업의 인건비를 증대시킴으로써 프랑스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실업률이 치솟기 시작해 2013∼2016년 실업률은 4년 연속 10%대로 독일의 2배 이상 수준을 기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5년 올랑드 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의회에 경제개혁안 107개를 제출했다. 이것을 마크롱 법안이라 부른다. 35시간 노동제를 완화하는 주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그는 사회당 정부를 뛰쳐나왔다. 그의 압박으로 사회당 정부는 2016년 미리암 엘 콤리 노동장관의 이름을 딴 엘 콤리 법을 통과시켰다. 법보다 단체협약을 우선 적용하고, 중소기업에는 단체협약의 적용조차 면제하는 등 주요 내용은 슈뢰더 이래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을 20년이 지나 그대로 본받고 있다. 결국 프랑스의 ‘잃어버린 20년’이었던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000년 전후만 해도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독일보다 높았고 실업률은 낮았다. 그러나 2006년을 기점으로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독일에 추월당했다. 실업률은 프랑스가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덕분에 일시적으로 9.4%로 떨어지긴 했지만 2013∼2016년 4년 연속 10%대를 기록한 반면에 독일은 2005년 11.2%까지 치솟던 실업률이 지난해 말 3.8%로 떨어졌다. 무엇이 두 나라의 차이를 낳았나.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 중 특히 노동시장 유연성이 두 국가의 경제성적표를 결정지었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키우는 개혁을 추진해 인건비를 절감한 반면 프랑스는 노동을 경직시키는 반대의 길을 걷는 바람에 인건비가 상승해 국가경쟁력이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다른 길은 노동 격변기를 맞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취재진이 직접 양국을 방문해 살펴보고 분석한 차이와 그 이유, 그리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시리즈로 게재한다. ○ 독일에선 법 위에 단체협약 슈투트가르트 인근 하일브론에 위치한 펌프 및 필터 제조업체 레너사는 직원이 60명 정도인 중소기업이다. 카린 레너 공동대표는 “금속기업의 경우 산업별 단체협약에 따른 주당 노동시간은 37시간이지만 우리 회사는 일반 직원의 경우에는 주당 40시간, 직위가 높은 간부의 경우에는 주당 45시간 정도로 계약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연장근무가 일상근무의 일부처럼 돼 있지 않지만 사업주가 근로자와 노동계약을 맺을 때 한 해 달성할 성과도 계약에 포함한다. 레너 공동대표는 “단체협약을 따르는 금속 대기업에서도 근로자들이 37시간 내에 주어진 업무를 다 하지 못해 퇴근했다 다시 돌아와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은 해고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나라이지만 2년간 연속해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해고 사유가 된다. 그래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발적으로 연장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연장근무 가산수당 지급 기준이 되는 주당 계약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독일은 산업별 지역별 단체협약이 법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주당 계약근로시간은 천차만별이다. 단체협약 당사자로 가입하지 않아 단체협약을 따르지 않는 중소기업도 많다. 중소기업의 경우 직급에 따라서는 노동시간법이 규정한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을 넘는 근로시간 계약도 가능하다. 독일에서 주당 최장 근로시간은 법에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연속 24주간(약 6개월) 하루 평균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 하루 근로시간을 10시간(주당 5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이마저도 예외 조항이 많아 1년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더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다만 하루 노동 후 그 다음 날 노동까지 최소 11시간의 휴식시간을 엄격히 보장해야 한다. 최근 연방고용주연맹(BDA)은 “하루 최장 노동시간과 휴식시간 규정이 오늘날 디지털로 심화되는 경쟁적인 현실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며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했다. 후베르투스 하일 노동장관도 최장 근로시간을 노사의 자율적 결정에 맡기는 논의에 열린 태도를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주 35시간 노동제’ 경직성 깬 프랑스 약 20년 전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며 독일과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프랑스는 최근 경직된 노동의 틀을 깨려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난달 파리 외곽 몽트뢰유의 노동총동맹(CGT) 본부에서 만난 파브리스 앙제이 중앙위원은 “지난해 연장근로를 포함한 프랑스 전일(全日)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41시간”이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2000년 주당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고 해서 주당 35시간, 즉 하루 7시간만 일하고 퇴근한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앙제이 중앙위원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평균적으로 주당 6시간은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받는다. 법정근로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셈이다. 프랑스 근로자의 주당 최장 근로시간은 원칙적으로는 48시간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연속 12주간(약 3개월) 평균 노동시간이 46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당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이 경우 연속 12주간 중 6주간은 하루 12시간씩 주당 60시간 일하고 나머지 6주간은 주당 32시간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스는 2016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엘 콤리’ 법안을 통과시켜 주당 60시간 노동이 가능한 조건을 완화하고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노사 합의로 10%까지 낮출 수 있도록 했다. 기존 35시간 노동제하에서 근로자는 43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하면 시간당 통상임금의 25%, 44시간부터는 50%의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받았다. 안경 제작 중소업체 ‘디렉톱틱’의 카림 쿠이데 사장은 “기존 35시간 노동제 아래서는 최장 근로시간이 별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50%의 가산수당을 주면서 44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인건비가 너무 높아 이득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앙제이 중앙위원은 반대로 “최근 일련의 노동개혁은 35시간 이상을 일해도 임금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파리·슈투트가르트·쾰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독일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의 노동문제 전문가인 도미니크 그롤 박사(사진)는 “임금과 노동시간을 법으로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은 해고가 어려운데도 어떻게 노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는가. “정규직은 전일노동자(Vollzeitarbeiter)든 시간제노동자(Teilzeitarbeiter)든 해고가 어렵다. 회사가 힘들 때도 누구 한 명만 해고하는 식으로 개별적으로 해고할 수 없고 10%라는 정해진 비율에 따라 해고해야 한다. 그래서 기간제 노동자(befristete Arbeiter)가 도입됐다. 2003∼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가 장기 실업자 구직 지원책과 함께 확대한 제도가 기간제 노동이다. 기간제 노동자는 3번 이상 계약을 갱신할 수는 없지만 1년 혹은 2년 지나서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업체에 유리한 제도다.” ―슈뢰더 개혁이 끼친 다른 영향을 들자면…. “무엇보다 임금의 완만한 상승으로 기업의 채용 여력을 늘려줘 많은 사람이 고용되는 계기가 됐다. 독일은 산업별 지역별 단체협약(Tarifvertrag)이 있어서 기업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슈뢰더 개혁으로 단체협약에 예외 조항이 많이 생기고 더 많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임금과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거꾸로 단체협약에도 영향을 줘 전반적으로 임금 인상시 노동자의 생산성 이상으로 오르지 않게 됐다. 같은 시기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이런 개혁을 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35시간 노동제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법으로 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나 독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일은 법으로 단일하게 규정하지 않고 기본틀(Rahmenbedingungen)만 정하고 여지를 줘 현실에 맞게 고칠 수 있게 한다. 노동 분야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쓰인다.” ―독일이 이웃 나라 프랑스에 비해 노사 간 타협이 잘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많고 사업자들과 근로자들이 스스로 조정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파업이 마지막 수단이 된다. 독일에서는 개별적으로 맞추고, 정부는 별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독일식 모델이 영미식보다 뛰어나다고 보는가. “실업률만 보면 독일이 프랑스보다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영국도 실업률이 낮아서 독일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영미식이 더 유연한 건 사실이다.”킬=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14일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후반 인저리타임에 탄성을 자아내는 프리킥 골을 집어넣었다. 이런 골을 보는 맛에 축구를 본다. 축구팬으로도 유명한 독일계 미국 외교학자 헨리 키신저는 축구를 발레에 비유하곤 한다. 아르헨티나의 메시 같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드리블, 정교한 패스, 절묘한 프리킥은 모두 발레리나에 못지않은 섬세한 발동작의 결과다. ▷프리킥에서 과거 감아 차는 킥이 유행했으나 근래 들어 무회전 킥이 중거리에서는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려면 공에 회전을 줘야 한다. 그러나 무회전 킥은 공과 공기 사이의 미묘한 마찰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볼의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골키퍼로서는 눈앞에서 볼이 툭 떨어지거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잘 차는 무회전 프리킥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도 궁금하다. ▷메시의 기술 축구와 호날두의 파워 축구의 대결만이 아니라 ‘이집트 왕자’로 불리는 초특급 신예 무함마드 살라흐의 활약도 자못 기대된다. 살라흐는 잉글랜드 리버풀 소속으로 2017∼2018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해 축구계 최고 권위를 가진 발롱도르의 올해 유력한 수상 후보이기도 하다. 다만 지난달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입은 부상에서 얼마나 회복됐는지가 변수다. 프랑스의 앙투안 그리에즈만,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 독일의 티모 베르너 등도 주목할 신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0-5로 참패했다. 아시아 팀들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한국이 18일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 나선다. 한국에도 두말할 필요 없는 특급 선수인 손흥민이 있고 환상적인 드리블과 패스 능력을 갖춘 이승우, 위력적인 무회전 킥을 구사하는 정우영 등이 있다. 한국이 아시아 무승(無勝)의 불명예 행진을 깨줄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018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분위기를 명화(名畵)처럼 완벽하게 포착한 외신 사진 한 장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사진을 보는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한다. 메르켈 총리는 검정 계통 슈트 차림의 남성 정상들에게 둘러싸여 홀로 밝은 톤의 상의를 입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 속 공주처럼 화면의 중심인물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쏘아보면서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짚고 서서 말썽꾸러기 학생을 훈계하는 교사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왼편에 옆모습만 조금 보이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수리 라인이, 테이블에 손을 짚느라 약간 몸을 숙인 메르켈 총리를 거쳐 앉아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까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흐르며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 사선(斜線)을 따라 쏟아지는 무게감이 유럽의 정상들이 미국 정상을 압박하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사의 말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집 센 표정으로 유럽 정상들의 시선을 멀뚱멀뚱 받아치고 있다. 이 장면을 중간 뒤쪽에 서서 유럽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않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그 오른편에는 혼자인 트럼프 대통령 측의 열세를 보완하는 듯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완고함을 감춘 특유의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나라면 이 사진에 ‘G7의 분열’이란 제목을 붙여보겠다. 미디어아트의 대가 빌 비올라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현대식으로 재현한 미디어아트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코포 다 폰토르모의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사벳 방문’을 평범한 여인들이 반갑게 만나는 ‘인사’란 동영상 작품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G7의 분열’에는 유럽에 사진이 없던 시절의 고전적 역사화에서나 볼 수 있는 완벽한 구도가 잡혀있어 단순한 시사사진을 보는 이상의 생동감을 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센토사섬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비행기로 싱가포르를 경유할 때 반나절 이상 시간이 나면 대개 센토사섬을 들른다고 보면 된다. 센토사섬은 본래 해적의 본거지로 ‘등 뒤에서 죽음을 맞는 섬’이란 뜻의 살벌한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를 뜻하는 지금의 이름은 남북한 모두에서 존경받은 리콴유 전 총리가 1970년대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새로 붙였다. ▷센토사섬에는 일본 오사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다. 김정은은 7세에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에, 중학생 때 스위스에 유학하면서는 프랑스 파리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서는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일 게다. 한국 선수들이 종종 우승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월드챔피언십 대회는 정상회담 장소인 카펠라호텔 인근의 센토사 골프클럽 탄종 코스에서 매년 개최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골프광이라면 라운딩 한번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원산 갈마지구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싶어 하는 김정은은 센토사섬의 개발에서 배워야 한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를 단지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인이 찾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고자 했는데 그 중심 산업이 관광이고 교육이고 의료였다. 엄격한 도덕주의자였던 리 전 총리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카지노는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하다가 2005년 ‘관광 2015’ 계획을 세우면서 센토사섬에 카지노까지 허용했다. ▷카펠라호텔에서 아름다운 해변 팔라완 비치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두 정상이 해변까지 함께 걸으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크림반도 남단의 항구도시 얄타는 1945년 미국 소련 영국 정상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구상을 처음 논의한 장소로 일약 유명해졌다. 센토사섬이 역사에도 오르내릴 지명이 될지는 이번 회담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법원 법원행정처란 곳이 중세의 수도원처럼 밖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를 압박하는 카드로 다음과 같은 구상을 했다. 사법부가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를 설명하되 청와대의 비협조로 상고법원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청와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청와대와 협조했다가 아니라 청와대와 협조하다가도 수가 틀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그 가벼운 변신의 사고가 눈길을 끌었다. 임 전 차장이 생각하는 사법부는 국가나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법원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적 입장으로라도 변신할 수 있는 사법부였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보수든 진보든 그런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엘리트 판사의 마키아벨리스트적인 모습을 봤다. 다만 그것은 돈키호테적인 마키아벨리스트다. ‘판결을 좌지우지하는 법원행정처’는 임 전 차장의 환상 속에나 가능한 것으로, 그 환상 속 창의 위력을 과시하며 돌진하는 돈키호테였던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극복해야 할 괴물로 여겼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 압박 운운하는 그 문서를 봤다면 웃고 말았을 것이다. 사법행정의 달인이 되려고 했다가 괴물이 된 것은 바로 임 전 차장 자신이다. 법원행정처 한가운데 그런 어이없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런 사람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신임을 얻어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대법관 후보 추천 1순위라는 법원행정처 차장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재판 거래’라는 것을 선뜻 믿기 어렵다. ‘재판 거래’ 의혹을 던지려면 최소한 재판 거래가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가늠해 보고 나서 의혹을 던지더라도 던져야 한다. 사법에 대한 불신, 특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의혹을 던져 놓고 보자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대법관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대법원장이 얼마나 논리적 설득력을 지녔느냐는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다만 대법원장은 소부(小部)에서 종결되는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소부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소속 대법관들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 정도가 예상할 수 있는 거의 전부다. 그런 방식의 개입은 설혹 일어난다 하더라도 부지런한 학자가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비교 검토해 학문적으로나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지, 검사가 판사들을 불러다 조사해서 ‘재판 거래’로 밝혀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돈키호테는 실제로는 위력적인 창을 갖고 있었으나 다만 풍차를 괴물로 여기고 돌진한 사나이다. ‘재판 거래’ 의혹을 검찰 수사로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하는 젊은 판사들도 실은 풍차를 괴물로 여기고 돌진하는 돈키호테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재판 거래라는 괴물이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적으로 계산된 돈키호테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판사라면 법은 외면(外面)에서 출발해 내면(內面)으로 향하는 것이어야지, 내면에서 출발해 외면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판사 블랙리스트’를 주장하려면 블랙리스트 때문에 불이익을 본 판사들이 있고 나서 블랙리스트를 찾아야 한다. 정작 불이익을 봤다는 판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판사 블랙리스트를 찾겠다고 남의 일기장 뒤지듯 컴퓨터를 뒤졌다. 결국 블랙리스트는 찾지 못하고 ‘재판 거래’ 의혹이 담긴 문서를 발견했다. 일기장에는 누구를 두들겨 패고 싶다고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이 폭행이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청와대 압박 카드로 재판 거래 운운했다고 해서 실제 재판 거래가 있었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문서의 액면은 청와대 맘에 들 것 같은 재판을 모아놓은 것일 뿐 재판 거래는 갖다 붙였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법관들이여, 상식적으로 생각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교사는 자녀 1명에 대해 1년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3년 이내에 쓰면 될 뿐 어떻게 쓸지에 대한 제한은 없다. 그러다 보니 얌체처럼 육아휴직을 쓰는 교사들도 있다. 가령 3월 학기 초 한 학기 육아휴직을 신청해 놓고 휴직에 들어갔다가 7월에 복직하면 육아휴직은 4개월 정도만 쓴 것이 되면서 실제로는 방학까지 포함해 6개월을 쉴 수 있다. 게다가 육아휴직 중에는 월급의 40%인 육아수당만 받지만 방학 직전 복직하면 한두 달은 놀면서도 월급 100%를 받는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정교사 육아휴직은 학기 단위로만 허용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교육공무원 인사실무 지침은 육아휴직 1년을 무제한으로 나눠 쓸 수 있게 해놓고 ‘학기 단위로 기간을 정해 휴직하도록 권장하라’는 하나 마나 한 말만 한다. 교장을 지낸 어느 교육청 공무원은 “학교에서 얌체 육아휴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사람은 아마도 기간제 교사나 그 주변인일 가능성이 높다. 정교사들의 ‘개학하면 휴직, 방학하면 복직’은 단순히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기도 하다. 정교사 대신 고용된 기간제 교사는 결원을 보충한다는 개념으로 고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을 6개월로 했든 1년으로 했든 정교사가 복귀하면 바로 그만둬야 한다. 새 학기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방학 때는 돈 한 푼 못 버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학교 교감이나 교장은 교사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쓰도록 권장한다. 그러나 교사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직전에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갑자기 아이를 봐줄 수 있게 됐다며 복직을 신청하면 핑계인 줄 뻔히 알면서도 받아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같은 거창한 말을 하기 전에 염치가 교육의 시작이다. 자기부터 얌체 짓 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염치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외교는 본래 비밀외교로 시작됐다. 오늘날의 공개외교가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정보원들은 주로 외교부에 속했다. 각국 대사관 직원은 정보의 최전선이었다. 공개외교가 대세를 이루면서 정보기관이 외교부에서 독립하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중요한 외교 무대의 막후에서는 늘 외교부와 정보기관이 함께 펼치는 비밀외교가 펼쳐진다. ▷북-미 정상회담의 길을 닦는 미국 측 두 주요 실무자가 모두 한국계다. 먼저 중앙정보국(CIA)에서 한국지부장 출신의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센터장이 나서 회담의 발판을 깔았고 이번에는 국무부에서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나서 실무회담을 벌이고 있다. 앤드루 김은 서울고 1학년 때 이민 가기 전 한국 이름이 김성현이다. 미국명을 따로 갖기 전까지는 성현 김이었고 일상에서는 미들네임을 생략하는 관례를 따라 성 김이라 불렸다고 하니 두 ‘성 김’의 활동에 싱가포르 회담으로 가는 청신호가 켜질지 말지가 결정된다. ▷성 김 대사의 풀네임은 영어로 ‘Sung Yong Kim’이다. 그는 따로 미국명을 만들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 이민 가기 전에 쓰던 한국명 김성용을 그대로 쓰고 있다. 성 김 대사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낼 당시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 김성환, 그 밑의 2차관이 김성한이던 때가 1년 남짓 있었다. 당시 미국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한미 양국에서 ‘성 김’이 판을 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성 김 대사가 한국통인 건 분명하지만 근무지인 마닐라를 떠나 홀연 판문점과 서울에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앤드루 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날 때 유일한 미국 측 배석자로 깜짝 등장했다.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미국 방문길에 안내를 맡을 적임자도 그다.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린다면 두 ‘성 김’은 역사에 남을 외교 드라마의 진정한 연출자였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의 각 지방 연방검찰청에는 단 1명의 검사가 있을 뿐이다. 가령 영화 ‘쓰리빌보드’의 배경인 미주리주에서 강간살인 사건을 다루게 될지도 모를 미주리주 서부 연방검찰청에 검사(District Attorney)는 티머시 개리슨 씨뿐이다. 이 검찰청에는 어토니(Attorney)로 불리는 사람이 50명이 넘지만 이 사람만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검사이고 나머지는 부검사(Deputy District Attorney)이거나 검사보(Assistant District Attorney)일 뿐이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공화국 검사(Procureur de la R´epublique)’라고 한다. 그 밑의 차장검사 부장검사 검사는 말이 검사일 뿐이지 모두 ‘공화국 검사’의 대리(代理·substitut)에 불과하다. 그리고 검사의 행위는 모두 검사 개인이 아니라 ‘검찰의 이름으로(au nom du parquet)’ 이뤄진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우리나라의 일부 검사들은 대한민국에 2000명의 독립된 검사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2500명의 독립된 판사가 있다는 말은 가능하지만 2000명의 독립된 검사가 있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판사는 독립해서 재판을 하지만 검사는 독립해서 수사하지도 기소하지도 못한다. 실은 지방검찰청 단위에서 보면 전국에 지방검사장이라고 불리는 15명의 검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말하자면 검사에 대한 정명(正名)이 제대로 된 나라다. 정명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은 정명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귤을 탱자로 만드는 이유다. 우리도 한 지방검찰청에서 법원에 대응할 검사는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나머지는 부(副)나 보(補)를 붙여 불렀다면 평검사가 부장검사 지시를 어기고 맘대로 구형을 하거나 구속영장을 치고, 검사장에게 외압 운운하며 맞짱 뜨는 풍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로 판사로 임용하지 않는다. 판사보로서 10년을 지내게 하고서야 판사로 임용한다. 판사보들이 주로 지방법원 배석판사를 한다. 우리나라도 지방법원의 합의는 사실상 배석판사들이 부장판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합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합의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일본처럼 판사보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독립해서 재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판사라고 부르니 판사가 다 된 것처럼 착각하고 10년도 안 된 판사들까지 사법행정권을 갖겠다고 날뛰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본은 검사의 경우 임용하자마자 바로 검사로 부르는 대신 검찰청법으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지휘감독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독일이 같은 방식을 택한다. 미국 프랑스의 방식을 택하든 한국 일본 독일의 방식을 택하든 검사동일체 원칙은 어느 나라에나 다 통용되는 원칙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도 충돌하는 생각들이 교차하는데 왜 조직에 의견 차이가 없겠는가. 다만 상하 간의 의견 차이는 내부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도 조율이 안 되면 상급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하급자가 자신의 의견을 외부로 표출해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자신을 판사로 착각한 황당한 검사나 할 짓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강조할수록 검찰 조직의 최상부에 위치한 검찰총장에 대한 신뢰 확보가 중요해진다. 우리나라 검찰총장은 대통령 지명만으로 임명되는 결함이 있다. 최근 미국 상원에서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에 대한 인준 투표가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가결됐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모든 고위직에 대해 상원이 인준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상원 인준은 우리나라의 국회 임명동의와 거의 같은 구조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제왕화를 막기 위해서는 검찰총장을 비롯해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개헌에서 권력구조 개편의 최소한이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이런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뻔뻔하게 의결시한인 24일까지 국회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야당도 국회가 국무총리 선출권을 가진 대통령제 운운하면서 권력구조를 통치 불가능의 짬뽕으로 만들려 했다. 정부와 여당은 좀 더 양심적이 되고 야당은 좀 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백아(伯牙)라는 거문고 명인에게는 종자기(鐘子期)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켜면 종자기는 ‘태산이 눈앞에 우뚝 솟은 느낌’이라고 말했고, 도도히 흐르는 강을 떠올리면서 켜면 ‘큰 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한탄하며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부르는 것은 이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다.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넥슨 주식을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해 어제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무죄가 확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30년 지기’인 두 사람을 보통 친구 사이를 넘어선 ‘지음’이라고 부르며 그 정도로 친한 사이에서 “진 전 검사장이 검사의 직무와 관련해 김 대표에게 금전을 제공받았다면 개별적 직무와 대가 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보험성 뇌물’은 인정하지 않았다. ▷진 전 검사장은 남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비상장 주식을 1만 주나 매입할 기회를 제공받고 그 매입마저 제 돈이 아니라 김 대표 돈으로 했다. 실은 항소심조차도 주식 매입 기회 자체는 뇌물로 보지 않고 매입 자금만 뇌물로 봤으니 법정의 정의는 애초 일반인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법원은 매입 자금마저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진 전 검사장은 주식 매입 자금으로 김 대표에게 4억2500만 원을 빌린다고 해놓고 갚지도 않았다. 주식은 대박이 터져 11년 만에 팔아치웠을 때 차익이 126억 원에 이르렀다. 진 전 검사장은 대한항공을 압박해 처남에게 일감을 몰아준 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긴 했지만 126억 원은 고스란히 손에 쥐었다. 두 사람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할 만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친구였는지는 몰라도 그 관계는 결코 지음이라고 할 수 없고 그 판결도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핵주먹’으로 불린 전 헤비급 세계권투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사람마다 그 나름의 계획이 있지만 주둥아리를 한 방 맞고 나면 계획이고 뭐고 다 사라지는 법(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이라며 자신의 한 방을 자랑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하면서 쓴 책 ‘불구가 된 미국’에서 그대로 갖다 쓴다. 트럼프는 지금 북한 김정은이 한 방 맞고 코피가 터질 것 같으니까 고분고분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도 벼랑 끝 협상에는 노하우가 쌓일 만큼 쌓여서 상대가 거친 말부터 할 때는 가능한 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니 그 이상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싸울 의지 없이 거친 말을 앞세우는 구두쇠들은 돈 안 들어가는 협상을 시작하면 자기 계획대로 된 것처럼 좋아한다는 것까지 꿰뚫어 보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두 번 속았다. 제네바합의로 북한에 한 번 속았고 6자회담에 헛된 기대를 걸었다, 미국은 이번에도 속을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사업가처럼 트럼프도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성과를 못 내는 사람을 견디지 못하고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선 더 참지 못하리라는 건 분명하다. 헨리 키신저의 책 ‘외교’는 명저이긴 하지만 ‘강대국주의’적 사고로 약소국의 희망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대목에서는 냉혈함이 느껴진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더글러스 맥아더가 평양∼원산 선 이북으로 치고 올라간 것을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단순히 군사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한반도 북쪽 지역에 대한 중국의 헤게모니를 인정해야 한다는 고약한 함의가 들어 있다. 트럼프가 역사에 도대체 관심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동아시아 역사에 무지한 건 분명하다. 지난해 트럼프는 워싱턴에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반도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더라”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말했다. 그는 과거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朝貢)관계가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의 관계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차이를 ‘도 아니면 모’인 트럼프에게 긴 시간을 설명한다 한들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트럼프는 지난달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는 말을 했다.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할 때는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런 사실을 몰랐다가 최근에야 알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휴전상태를 종전상태로 바꾸는 건 돈 한 푼 안 드는, 아니 오히려 들어가는 돈을 아끼는 길인데도 ‘멍청한’ 전임 대통령들이 방치해왔고, 관료들이 쓸데없이 생각을 복잡하게 해 과거의 상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키신저는 ‘외교’에서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미국에 유일한 초강대국의 위상이 부여됐는데도 이에 현혹되지 않고 미국이 강대국 중의 하나로 자리잡아야 할, 당시로서는 보이지 않은 미래에 적응해갔다. 이후 9·11테러가 발생하고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감행하면서 일탈이 있긴 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초강대국으로부터의 후퇴는 계속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었던 ‘전략적 인내’도 그런 후퇴를 보여준다. 키신저 식 외교는 강대국들끼리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통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18, 19세기 유럽 대륙의 외교에 모델을 두고 있다. 그에게는 이것이 모범적인 현실주의 외교다.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 소련과의 경쟁과정에서 추구했던 가치외교는 냉전 이후 쓸모가 없어졌으며 몇몇 강대국끼리의 협상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현실주의 외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에 적용될 때 분단을 계속 연장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간혹 키신저를 만나 조언을 듣는다. 키신저의 강대국주의와 트럼프의 ‘돈 안 드는 전략’이 한반도에서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 틈을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싶어 하는 문재인 정부가 파고들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큰 기러기와 고니에 비유해 큰 뜻을 지칭하는 홍곡지지(鴻鵠之志)는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사자성어다. 진나라를 무너뜨린 진승은 출신이 천한데도 명구(名句)를 잘도 토해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寧有種乎), 제비와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鴻鵠之志哉)’ 등 신분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이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한다. ▷중국 베이징대의 린젠화 총장이 4일 개교기념식에서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훙후(鴻鵠)를 훙하오(鴻浩)로 잘못 읽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베이징대 학생은 스스로 분발해 홍곡지지(鴻鵠之志)를 세워야 한다”고 말할 시점에 잠시 머뭇거린 뒤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떠올렸는지 홍호지지(鴻浩之志)라고 말해 버렸다. 그는 다음 날 “중학생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정상적 교육을 받지 못해 실수를 했다”고 사과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총리 시절 ‘한자 못 읽는 총리’로 조롱받았다. 그는 2008년 모교인 가쿠슈인(學習院)대를 찾아 강연하면서 “중일(中日) 간에 이만큼 빈번히 정상이 왕래한 적이 없다”는 대목의 일본식 표기 빈번(頻煩)을 한자쓰(煩雜·번잡)라고 잘못 읽었다. 일본에서 한자는 훈독과 음독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실수하기 쉽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빈(頻)이란 한자를 읽지 못한 것이 분명했나 보다. ▷우리나라는 한자도 한글로만 쓰는 문화가 돼 버려 뜻을 모를지언정 한자를 잘못 읽는 실수는 드물다. 다만 교수 출신인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달 검경 수사권 관련 발표를 하면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구존동이(求存同異)로 잘못 말해 뜻을 알 수 없게 만들었는데도 그대로 받아쓴 언론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과거 일본식 B급 한자로 의심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이란 말도 썼다. 목적어가 동사 뒤에 나오는 한자의 문법을 안다면 이런 엉터리 한자는 쓰지 않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카를 마르크스는 200년 전인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5일 트리어에서 가장 주목을 끈 행사는 중국이 기증한 5.5m짜리 거대한 마르크스 전신 동상의 제막식이었다. 동상은 트리어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고대 로마 유적 포르타 니그라 인근에 세워졌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곳이지만 그동안 마르크스 동상 하나 없었다는 것이나 이제야 세워지는 마르크스 동상이 중국 조각가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 트리어는 우연찮게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됐다. 이 관계는 2000년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럽을 찾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오늘날 트리어에는 매년 이곳 인구 10만 명보다 50%나 많은 15만 명가량의 중국인 관광객이 찾는다. 트리어는 유럽 대륙의 관문인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부터 모두 멀다. 모젤강가의 가파른 언덕은 에곤 뮐러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같은 고급 와인을 만들지만 고속열차의 접근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그런 곳이 중국인 유럽 단체관광의 필수 코스처럼 돼 있다. 마르크스 생가는 지난해 한국 촛불시위대에 인권상을 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오래전에 사들여 마르크스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르크스 생가를 방문한 중국인들은 대개 입장료가 드는 기념관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떠났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때 중국인 한국 단체관광이 싹 끊긴 데서 알 수 있듯이 단체관광에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다. 중국인의 유럽 단체관광은 트리어를 끼워넣어야 허가가 잘 난다고 한다. 그런 반(半)강제적 관광이니 굳이 기념관까지 들어가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트리어 시내의 갤러리 ‘카센바흐’의 주인 이름은 카를로스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 집안과 관련이 있느냐고 하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트리어에는 마르크스란 성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그는 “트리어 주민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반길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중국과 트리어가 자꾸 연결되는 데다 현실적으로는 중국인 관광객이 트리어에 1시간 정도 머물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관광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 마르크스는 겨우 30세이던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썼다. 베를린에 있는 독일역사박물관에는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독일어로 발행한 ‘공산당 선언’ 초판이 전시돼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Ein Gespenst geht um in Europa)’로 시작하는 첫 장이 펼쳐져 있다. 그 책의 마지막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Proletarier aller L¨ander, vereinigt Euch!)’는 구호로 끝난다. 독일어에 포어매르츠(Vorm¨arz·3월 전)라는 말이 있다. 1848년 3월 혁명에 이르는 전까지의 정치적 요동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프러시아 정부가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세력을 탄압하고 그에 반발해 독일의 중북부 도시에서 입헌체제 수립 운동이 벌어지던 때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트리어와 그가 공부한 본은 모두 베를린의 프러시아 정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시대의 정치적 풍운아가 태어나기 가장 적합한 장소였는지 모른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정치적 팸플릿을 먼저 내고 그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자본론’을 런던에서 쓰다가 죽었다. 오늘날 경제학자 중에 자본론을 진지하게 연구할 경제학 책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자본론을 나 같은 386세대는 소련이 멸망하고 난 후에까지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머리를 싸매던 시절이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마르크스 200주년을 앞두고 3일간의 학술대회가 열렸다. 중심이 되는 발표는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계승해 비판이론을 펼친 프랑크푸르트 학파 3세대의 좌장인 악셀 호네트가 한 강연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다이내믹: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함과 한계’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마르크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다이내믹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20세기 후반 독일 엘베강 동쪽의 유라시아 대륙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동유럽의 소련 위성국가들로부터 러시아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과 북조선까지 유라시아 대륙 끝단의 한반도 남쪽을 제외하고는 공산주의가 휩쓸었다. 그 공산주의는 1990년 소련의 붕괴로 몰락했다. 유령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유령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유령이다. 중국 정부가 4일 마르크스 출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렀다. 독일의 중국학자 제바스티안 하일만은 시진핑의 사회주의를 ‘디지털 레닌주의’라고 명명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획경제는 실패했으나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의 도움을 받는 중국의 계획경제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가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민주화의 기대에서 멀어져 집단지도체제에서 단일지도체제로 회귀한 것도 이런 망상에 기인한다. 그 망상 속에 북한이 들어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형이다.▼ “마르크스는 서구적 사상가, 중국과는 거리 멀다” ▼트리어대에서 23∼25일 열릴 마르크스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준비를 총괄하는 크리스티안 얀센 역사학 교수(사진)를 만났다. ―트리어 주민은 트리어가 마르크스의 출생지임을 자랑스러워하는가.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한다. 많은 관광객이 마르크스의 출생지라는 점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사고가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도 갖고 있다. 내 의견으로는 이미 1883년에 죽은 사람에게 20세기에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이 마르크스 저작의 일부를 성서처럼 여긴 것이 문제다. 마르크스의 글은 리버럴한 것도 있고 폭력적인 것도 있다. 그는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용구는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다.” ―왜 독일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트리어에서 19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사상가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는 서구적 사상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쪽 프러시아를 싫어했다. 그는 트리어, 본, 파리, 브뤼셀, 런던에서 살았고 베를린에서는 아주 잠깐 공부했을 뿐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큰 오해가 하나 있다. 마르크스를 러시아 중국 등 동방과 관련짓는 것이다. 그는 계몽주의, 그리스 철학, 유대교와 가톨릭의 서구적 전통 속에 있었다. 트리어는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815년 프러시아에 귀속됐다. 그 때문에 프랑스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나 유럽으로 번져갈 때 트리어에서도 강력한 반프러시아적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마르크시즘은 총체성(Totalit¨at)을 추구했다. 베버는 총체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베버에게는 경제학이 없다. 역사와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 “철학자들은 칸트와 헤겔처럼 총체적 이론 체계를 추구해 왔다. 마르크스는 그런 이론 체계를 세우고자 추구한 마지막 학자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확고한 체계를 세우기에 현실은 너무 복잡하다. 다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가 그것을 말한 19세기에는 아무도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지 않았다.” ―많은 중국인이 트리어를 찾는다. 소련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국민은 중국인이 유일한 듯하다. “중국 체제는 유교와 마르크스주의의 혼합체다. 중국인은 자신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여기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교는 마르크스가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는 한번도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와 중국에서 올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위배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쓰리 빌보드’란 영화를 흥미롭게 봤다. 이 영화는 미국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진짜 범인은 잡지도 못하면서 흑인들이나 두들겨 패는 경찰의 무능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경찰의 명예를 지키는 것으로 끝난다. 무능한 경찰이 갑자기 유능해지는 식의 상투적 결말로 흐르지 않으면서 미국 시민이 경찰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래된 저변의 신뢰를 보여준다. 미국 경찰은 수사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 경찰관은 피의자를 기소하면 유죄를 받을 수 있을지 보장을 얻기 위해 검사라는 국가 변호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마치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법률 지식 자체가 혐의를 결정하는 복잡한 사건에는 검사가 수사권을 갖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의 몫이고 검찰은 예외적으로 수사할 뿐이다. 검사는 경찰관이 들고 온 사건을 검토해 기소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컴플레인트(Complaint)라는 문서를 작성한다. 중요한 점은 이 문서의 작성명의인이 검사가 아니라 경찰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검사는 기소를 결정하지도 않는다. 기소는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사는 대배심에 컴플레인트를 제시할 뿐이다. 다만 혐의자가 대배심에 의한 기소를 원하지 않을 때 보충적으로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이니까 미국과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대륙법계인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령군 수장으로 온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시행한 가장 중요한 5가지 정책 중 하나가 경찰에게 독자적 수사권을 준 것이다. 맥아더는 통일적 국가기관인 검사가 경찰까지 일괄 지휘하게 되면 민주화와 지방분권은 요원하다고 보고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줬다. 물론 이때 경찰은 검찰과 달리 통일적인 하나의 경찰이 아니라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이 수사권을 나눠 갖는 분권적 경찰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일본의 검찰과 경찰은 신뢰도가 높은 조직이 됐다. 일본 경찰은 검찰을 거치지 않고 체포영장을 독자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구속에 해당하는 구류는 일본에서도 검찰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으면 구류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는 체포전치(前置)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한 후 구류영장을 신청해 기각되는 사례가 없다. 검찰이 기각할 수 없지 않은데도 기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동등한 영장청구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만드는 단 하나의 요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수사지휘권은 물론이고 직접수사권에 영장청구권 수사종결권까지 갖고 기소권까지 독점하는 검찰을 들겠다.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만 해도 연방검찰과 주검찰이 나뉘어 있으나 우리나라 검찰은 전국을 통할하기까지 한다. 이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진 검찰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런 권한을 휘두르며 산 권력에는 한없이 자비롭고 죽은 권력에는 한없이 잔인한 검찰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 신문을 펼쳐보면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신문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 수사는 대부분 경시청이 주어로 돼 있고 한국 신문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 수사는 대부분 검찰이 주어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경찰이 모처럼 주요 사건 수사를 맡았으나 역시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로 비판받고 있다. 실은 오만 가지 수사에 개입하던 검찰이 여기서만 유독 뒷짐을 지고 있는 것 자체가 꿍꿍이가 없지 않아 보인다. 걱정되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시각이 확산돼 검경수사권 조정이 흐지부지될까 하는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못하니까 경찰에 권한을 줘보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외딴 갈라파고스섬에나 있을 법한 괴물 검찰의 권한 독점을 깨 검찰의 것은 검찰에, 경찰의 것은 경찰에 줘서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검경수사권 조정의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옹호하면서 사용한 ‘실패한 로비’라는 표현은 책에 돈 봉투를 넣어 줬으나 당사자가 그대로 다시 돌려줬을 때나 사용하는 표현이다. 피감기관이나 피감기관도 아닌 민간은행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 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실패한 로비가 아니라 그냥 얻어먹고 입 닦은 것이다. 얻어먹고 뭔가 해주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더 못한 것은 얻어먹고도 입 닦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비서까지 데리고 가서 얻어먹었고, 알고 보니 여비서도 아닌 여자 인턴이었다. 얻어먹고 뭔가 해주지도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얻어먹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 약한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 소심함이 일상에서 정의(正義)의 토대가 된다. 실제로는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가서 얻어먹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돈으로 미국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KIEP가 요청했던 유럽사무소 예산을 국회 심의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서 김 대변인의 ‘실패한 로비’라는 변명을 불렀으나 나중에 본인 해명으로는 예산심사보고서에 부대의견으로 절충안을 달아 추후 약 3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는 길을 연 것으로 드러났다. 김 원장이 야당 간사로서 KIEP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여당 간사였던 김용태 의원은 “당시 KIEP에서 여야 간사를 모시고 출장을 가자고 얘기해 거부했다”며 “우선 피감기관 돈으로 정무위원이 출장을 가는 게 말이 되지 않고 기간도 열흘이나 돼 안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 출장을 김 원장은 비서도 아닌 인턴을 데리고 갔다. KIEP 같은 연구기관은 배정된 예산이 적어서 국회에서 조금이라도 예산이 깎이면 타격이 크다는 약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얻어먹고 뭔가 해주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얻어먹고 입 닦는 것은 인간적으로 못할 일이지만, 얻어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고 하는 것은 더 나쁘다. 내가 너를 해코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데 해코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는 것이다. 이때 약자 쪽에서 해코지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대접을 좋게 의전(儀典)이라고 한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KPX) 돈으로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정부가 단지 주식을 갖고 있는 민간은행인 우리은행 돈으로 중국과 인도 출장을 다녀왔다. 국회는 감사에 필요한 예산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피감기관이나 민간은행의 예산 집행을 감사하는 데 피감기관이나 민간은행의 돈을 쓰면 그런 감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보다 더 나쁜 게 있다. 자기는 얻어먹고 다니면서 남들은 얻어먹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통과에 앞장섰으나 KIEP 출장과 우리은행 출장은 김영란법이 통과된 뒤에 이뤄졌다. 자기는 의원이 돼 얻어먹을 대로 다 얻어먹으면서 공무원들은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밥 한 그릇, 커피 한잔 얻어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는 남들이 얻어먹고 다니는 데는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국정감사 당시 한국정책금융공사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투자 기업에서 출장비를 지원받은 것을 두고 “로비나 접대의 성격이 짙다”고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김 원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1년간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 대기업이 어디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누구보다 대기업을 비판해온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대기업 돈을 받아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는 건 모순적이다. 김 원장이라고 변명할 말이 없지 않을 텐데 너무 깎아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시민운동가나 의원 중에 이보다 더한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문성이 뛰어나서 금감원장이 된 것은 아니다. 자질이 있다면 도덕성일 텐데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기대에 못 미치는 데 대한 실망감은 더 크다. 삭제해 버리고 싶은 장차관급 명단에 이름 하나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언론에서는 유명인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둔다. 너무 일찍 써두는 바람에 쓴 기자가 먼저 죽는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영화연극 기자인 멜 거소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두고 2005년 사망했으나 테일러는 정작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산 사람을 두고 부고기사를 써둘 수 있는 것은 부고기사가 실은 죽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뜻밖에 유관순 열사의 부고기사가 순국 98년 만에 최근 NYT에 실렸다. NYT는 1851년 창립 이래 자사의 부고기사가 백인 남성에 치우친 데 대한 반성으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간과된 여성 15명의 부고기사를 기획 시리즈로 싣고 있다. 동양 여성은 유관순을 포함해 청(淸) 말 중국 최초의 여성 혁명가 추근(秋瑾), 볼리우드 개척시대에 인도의 메릴린 먼로로 불린 여배우 마두발라 등 3명이다. ▷NYT는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일으킨 반향을 그의 생전에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 영어권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을 쓴 주인공의 부고기사를 쓰지 않았다. 부고기사를 놓친다는 건 신문사로선 뼈아픈 일이다.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해 부고기사를 놓치는 경우보다는 그 인물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놓치는 경우가 더 뼈아프다. ▷3·1운동으로 7000명이 사망하고 4만6000명이 체포돼 수감됐다. 수많은 희생자 속에 유 열사는 사망할 당시만 해도 널리 알려지지 않다가 광복 후에야 소설가 전영택의 발굴에 힘입어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식민시대의 ‘간과’를 견뎌내고 뒤늦게나마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평가받게 된 것은 다행이다. 선조들의 위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내일로 창간 98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도 태어날 수 있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