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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에 수를 놓아도 이렇게 아름다울까. 국내 입사장(入絲匠)의 적통이라 할 수 있는 이경자 씨(65·경기 무형문화재 제19호)의 작품전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이 11일부터 서울 중구 동국대박물관(관장 정우택)에서 열린다. 입사란 금속이나 장신구 표면에 금사(金絲·금을 가느다란 실처럼 뽑은 것)나 은사(銀絲)로 다양한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한반도에선 일본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있는 4세기 백제 유물 칠지도(七支刀)가 대표적 사례로 꼽힐 만큼 오랜 전통이 깃들었다. 특히 이 씨는 조선시대 마지막 입사장인 이학응(1900∼1988)의 직계 제자로 1984년부터 금·은입사 유물 200여 점을 복원, 재현하기도 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한국문화원이나 호주 파워하우스뮤지엄 등에도 작품을 선보였으며, 대표작 ‘108 니르바나’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돼 있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불교를 주제로 한 소품부터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모두 100여 점이다. 정 관장은 “한국의 입사공예는 동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꼽히지만 제작이 어렵고 수요가 적어 전통 단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고의 작업으로 최고의 경지를 선보인 이 씨의 작품들은 삼라만상을 마음으로 수놓은 힘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2일까지. 일요일 휴관. 02-2260-3722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신께서 한국인에게 평화와 (남북한) 형제 간 화해란 선물을 주시길 언제나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 시간) 바티칸 교황궁에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와 만난 자리에서 “인류는 개인과 공동체, 민족, 국가의 분쟁을 거부하고 크나큰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는 다른 종교인과 대화하고 협력하며 그들의 자산과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길 권고한다”며 “종교 간 대화가 결실을 거두려면 늘 개방적이면서도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14년) 아름다운 한국 땅으로 향했던 순례가 떠오른다. 당시 하느님과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무척 고마웠다”며 “우리의 충만한 우정과 서로에게 받았던 좋은 것들이 모두 함께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특별 알현에는 종지협 대표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김영근 성균관장, 이경호 성공회 서울교구장 등 7대 종단 지도자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현 위기가 해결될 수 있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공동명의 서한을 전달했다. 종지협 관계자는 “교황이 한국 종교지도자와 별도로 실내에서 면담을 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엿보였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과학자가 안 됐다면, 빌 브라이슨이 되지 않았을까. 세계적인 생물학자에게 실례겠지만, 읽는 내내 그런 잡생각이 들었다. ‘유쾌한 글쟁이’란 별명을 지닌 작가 브라이슨이 떠오를 정도로, ‘공감의 시대’는 위트가 넘친다. 오해는 마시라. 그렇다고 이 책이 가볍단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진지하다. 미국 에머리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내 안의 유인원’(2005년 국내 출간) 등 영장류 연구에서 탁월한 공적을 쌓아온 인물. 실제로 과학자 입장에서 설파하는 ‘공감(empathy)’이란 주제는 매우 지적이고 논리적이고 날카롭다. 저자는 세간의 진화생물학에 대한 오해가 무척 안타깝다. 살짝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를 원망하는 뉘앙스도 풍기는데, 유전자의 진화 방식을 설명하려 ‘이기적(selfish)’이란 감성을 섞는 바람에 인간(그리고 동물)은 천성이 이기적이란 착각에 빠뜨렸다고 봤다. 마찬가지로 무지한(?) 정치·경제계도 일조했다. 예를 들어, ‘적자생존’은 찰스 다윈이 아니라 정치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한 말이다. 어쨌든 동물은 공격성만큼 공감 능력도 타고나며, 이타적 행위는 종의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걸 저자는 차고 넘치는 ‘팩트’로 중무장한 채 일러준다. 긴 말 필요 없다. 재밌고 즐겁다. 소파에 드러누워 읽어도 될 만치 편안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잃지 않는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역시 일가를 이룬 고수는 글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번역을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내공도 크게 일조했지 싶다. 원제 ‘The Age of Empathy: Nature‘s Lessons for a Kinder Society’(2009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어떤 것에도 묶여 있지 말고/통과시켜야겠습니다./삐지지 말고/꽁하지 말고/통과시키세요.’ 경기 양평군 화야산 기슭 서종사에서 만난 범일 스님은 뭐든지 참 쉬워 보였다.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비포장도로를 고생해서 달려왔는데 “오랜만에 덜컹덜컹하니 좋지요?”라지 않나, 본인이 서울 봉은사에서 나온 뒤 무일푼으로 몸 누일 곳 없던 시절 얘기도 “더 나아지려고” 그랬던 거란다. “열혈 행복전도사 강의 같다”고 슬쩍 타박했더니 “아무렴 어떠냐. 물소리 새소리 들었으니 소풍 왔다 쳐라”며 껄껄 웃었다. 2009년 베스트셀러 ‘조아질라고’를 냈던 스님은 최근 두 번째 에세이집 ‘통과 통과’(불광출판사)를 펴냈다. 6월부터 부산의 천년고찰 운수사 주지까지 맡아 바쁜 와중에 말이다. 이거, 책에서 ‘담백한 삶’을 주창해온 평소 지론과 너무 다른 거 아닌가. “움막 짓고 살며 벽돌 하나씩 기와 하나씩 서종사를 세운 지 17년 됐습니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텃밭 일구고 불경 공부하며 사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지요. 그런데 올해 초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거립디다. 번뇌 끝에 ‘아, 아직 깨치지도 못한 것이 어디 안주하려 드나’ 혼내는 거구나 싶었죠. 속세건 절에서건 몸이 바쁜 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마음이 매이지 않으면 다 좋은 겁니다.” 말이야 쉽지. 속인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 골칫거리로 머리를 싸맨다. 단박에 스님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그렇다”며 토닥였다. “인간은 정말 신비로운 존재예요. 입으로 걱정을 내뱉으면 진짜 우환이 몰려옵니다. 스스로 운 좋다 믿어야 행운도 찾아오죠. 아니라고요? 그건 첨부터 100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근심 10개 중 하나가 줄면 얼마나 나아진 겁니까. 그렇게 좋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9개만 보고 불평을 쏟아내죠. 그럼 다시 10으로 돌아가요. 8로 7로 내디뎌야 2도 1도 가는 건데. 지름길을 찾다간 있던 길도 잃어요.” 요즘 스님은 일주일에도 2, 3번씩 운수사와 서종사를 오간다. 사이버 도량 ‘조아질라고’()도 본인이 챙긴다. 건강을 걱정했더니 “어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 말했건만”이라며 짐짓 정색한 척했다. 스님은 “풀 한 포기 쳐다보며 풀의 소리를 떠올릴 여지만 있으면 법(法)은 어디서든 닦을 수 있다”며 “달이 보름달 그믐달로 차고 기울 듯 마음도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니 조급히 굴지 말라”고 말했다.양평=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 7일 문선명 총재 성화(聖和·별세) 5주기를 맞아 기념행사를 연다. 유경석 가정연합 한국회장(사진)은 지난달 30일 열린 간담회에서 “국내외 정치 경제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이 경기 가평군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문 전 총재와 한학자 총재의 효정(孝情) 문화를 기리며 평화사상으로 세상을 밝히는 축제를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가정연합은 64개국에서 온 4000여 쌍의 합동결혼식도 거행한다. 아울러 5∼10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2017 효정종교평화 초종교 성직자 국제세미나’도 개최한다. 2006년 가톨릭에서 파문당한 에마뉘엘 밀링고 전 대주교를 비롯해 국내외 종교지도자 200여 명이 참석한다. 16일에는 대한천리교 대종교 기독교선교연합회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종교평화 피스컵 종교지도자 친선 축구대회’가 경기 하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놀랄 만큼 잘 부르진 않았다. 때론 가사도 더듬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손끝이 찌릿했다. 끝자락엔 목 언저리도 뜨거워졌다. 29일 저녁 경기 과천시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에반젤리 장애청소년합창단’의 마지막 리허설은 뭔지 모를 기운이 연습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달장애청소년 47명으로 구성된 이 합창단이 창단 최초로 해외공연을 떠난다.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다음 달 2일 일본 시가(滋賀)현 리쓰메이칸대에서 열리는 ‘제34회 장애인 차별과 싸우는 공동체 전국연합(공동연) 전국대회 개막식’에 초청받았다. 1984년 설립된 일본의 대표적 장애인시민단체인 공동연이 전국대회에 해외음악단체를 초청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단장인 홍창진 신부(경기 광명성당 주임신부)와 배우 손현주 씨가 2005년 설립한 에반젤리합창단은 13년 동안 놀라운 성과를 만들었다.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등 크고 작은 자선행사에서 이름을 떨치더니 드디어 일본까지 진출했다. 운영을 맡은 신혜정 국장은 “솔직히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단원들 보호 문제로 거절하려 했다”며 “오히려 아이들이 드디어 외국무대에 설 만큼 인정받아서 너무 기쁘다며 의욕을 불태웠다”고 귀띔했다. 이번 일본 공연은 청소년 단원 23명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인솔교사도 16명이나 함께 간다. 살짝 흥분한 탓인지 이날 연습도 처음엔 꽤나 산만했다. 촬영 일정상 연습에 오지 못한 손 씨가 “뭣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다녀와야 한다”는 영상을 보내오자 아이들은 크게 박수를 치며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자 무섭도록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합창단원인 유지원 군(17·경기 용인시 신봉고 2년)은 “매일 집에서도 아빠 엄마와 노래를 부르며 연습했다”며 “우리 합창단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부를 노래는 총 3곡. 합창곡으로 유명한 ‘넬라 판타지아’와 가요 ‘마법의 성’, 일본 국민 아이돌 스마프의 노래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다. 지휘자 신호철 씨(47)는 “한국어와 일본어, 이탈리어로 된 3곡을 완전히 소화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며 “힘들었을 텐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견하고 씩씩한 친구들”이라고 전했다. 합창단의 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년 가을엔 중국 광저우(廣州)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자선공연도 펼칠 계획이다. 홍 신부는 “에반젤리합창단은 누구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노래를 통해 행복을 맛보는 게 우선이다”며 “중국과 일본 장애아들과 교류하며 한 뼘씩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과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종교는 있으세요?” 아, 이렇게 맑고 뻔할 수가. 물론 예상은 했다. 종교 담당이니 취재원이라면 당연히 물어보리라. 신부와 목사, 스님, 이맘…, 모두가 그랬다. 종교란 영역을 표시하는 ‘시그니처(signature·서명)’ 같은 느낌? 괜히 쭈뼛거리다 먼저 털어놓은 적도 있다. 답은 한결같다. 표현은 수시로 바뀌지만 “딱히 없습니다.” 선배들에 따르면, 그러다 선교 말씀을 수 시간씩 듣기도 했다는데. 다행히 요즘은 그런 일 없다. 많이들 “차라리 잘됐네. ‘제3자’니 어디 편들거나 그러진 않겠군”이라며 격려한다. 한 목회자도 비슷한 덕담(?)을 하다, 끝자락에 슬쩍 한숨 섞인 혼잣말을 덧붙였다. “요샌 젊은이들 만나면 신앙을 가졌단 얘기 듣기 힘들어. 예년에 어디 다녔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어려 보인다니 신나서 총총 물러났지만, 국내 종교계에 신자의 감소는 몇 년 사이 심각한 화두다. 올해 발표된 10년 주기의 통계청 종교인구 조사(2015년 기준)에서 종교 없는 국민이 56.1%로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2005년 47.1%에서 9%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10대(62.0%)와 20대(64.9%) 등 청년층은 당시보다 평균 12%포인트 이상 크게 늘었다. 이러다 보니 최근 성직자에게 듣는 두 번째 시그니처 주제는 위기의식이다. 일종의 자성이랄까. ‘사회와 동떨어져 공감이 부족했다’ ‘뼈를 깎는 변화가 필요하다’ 등등. 어느 간담회에서 만난 학자는 “인간과 종교, 인류와 신앙의 근본적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때 알아듣는 척한 거,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위안이야 되진 않겠지만,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잉글랜드는 2014년 이미 무종교인이 48.5%로 종교인(43.8%)을 앞질렀다. 미국 역시 최근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단다. 장기 불황과 사회의 파편화 등 원인을 찾으려는 분위기도 우리랑 엇비슷하다. 정답은 당연히 모르겠다. 분명 한두 가진 아닐 터. 종교계 내부에선 갑론을박이 오고가는 토론회나 모임이 꽤나 잦다. 다만 제3자로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그 치열함이 밖에선 그다지 잘 ‘보이지 않는다’. 괜스레 돌려 말하지 말자. 아무 포털 사이트나 들어가서 요즘 종교 관련 검색어를 찾아보시라. 과세, 선거, 시위…, 그리고 뒤따르는 수식어는 논란 갈등 진통 반발. 속 시끄러운 주제들뿐이다. 물론 하나하나 살펴보면 나름 이유가 있다. 실제로 새겨들어 볼 만한 얘기도 많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종교가 자꾸 해명 또는 변명을 하고 있단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신도들은 종교에서 이정표와 안식처를 얻길 바란다. 하소연하려고 친구를 만났는데, 오히려 넋두리를 늘어놓는다면 또 만나고 싶을까. 지난해 말 출간됐던 ‘지금, 한국의 종교’(메디치)란 책이 있다. 국내 3대 종교전문가들이 만나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 주장에 동의하건 안 하건, 당시 출판사의 홍보 문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어쩌면 현재도 진짜 위기는 아닐지 모른다. 연예계엔 이런 말이 있다. 악플(악성 댓글)이 무플보다 낫다고. 근심이 깊으면 관심이 식는다. 그건 순식간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최근 책에서 ‘하늘과 밥은 똑같다’란 구절을 읽었어요. 둘 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단 뜻이었습니다. 다만 하늘은 저절로 공유하지만, 밥은 스스로 노력이 필요하죠. 작지만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비비안나(바다의 세례명)는 다시 또 약속을 지켰다. 걸그룹 ‘S.E.S.’ 출신 바다(본명 최성희·37)가 다음 달 6일 ‘청각장애인 성전 건립기금 마련 음악회’를 연다.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24일 만난 그는 “당시 너무 좋아서 신부님께 언제든 불러주면 달려오겠다고 했다”며 “누군가를 돕는다기보다 내가 얻는 게 훨씬 많은 행복한 자리”라고 했다. ―평소 봉사·선행에 적극적이다. “무슨 소리. 훨씬 훌륭한 분이 많다. 감사하게도 신께서 ‘목소리’란 재능을 주셨다. 그걸 잘 쓰고 싶을 뿐이다. 가톨릭 신자라 언제라도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음악회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 지난해 미국 5개 도시 자선콘서트에 참여했는데, 외국 농아인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울컥했다. 음악은 마음을 전하는 일이란 걸 다시금 느꼈다.” ―방송 활동 등으로 바쁜데 어떻게 짬을 냈나. “음…, 나의 ‘아나키아’(그리스어로 숙명)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이라 여겼으면 힘들었을 거다. 뮤지컬 ‘노트르담의 꼽추’ 때 처음 이 단어를 배웠는데, 그땐 왠지 무겁고 불편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숙명이란 받아들이기 나름이란 걸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아나키아 아닐까.”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진지하다. “하하, ‘매드’(mad·2009년 곡) 후폭풍이 정말 오래간다. 솔직히 스트레스 받은 적도 있다. 방송은 한번 이미지가 정해지면 바꾸기도 어렵고. 하지만 감사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원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도 연예인이 감당할 몫이니까. 다만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를 꿈꾸는 바다의 ‘노오력’도 봐주시면 더 고맙겠다.” ―최고의 디바, 부담스럽지 않나.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그렇게 인사한다. 당연히 ‘자뻑’이다! 여전히 선배들보다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첫째, 목표를 향해 스스로 채찍질하겠단 뜻이다. 둘째, 모든 무대를 최고로 만들겠단 다짐이다. 셋째, 디바는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존재여야 한다. 그건 평소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모자라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콘서트 제목이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해바라기 선배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평소 좋아하던 곡인데, 이번 음악회에 잘 어울리지 않나. 3월에 결혼한 남편이랑 함께 골랐다. 행복을 준다는 건 일종의 소통이다. 부부도 사회도 대화가 정말 중요하지 않나. 요즘 수화를 열심히 배운다. 콘서트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통했으면 해서. 청중이야말로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다.” ▽콘서트 ‘행복을 주는 사람’=9월 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성당. 2만 원. 문의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02-995-7394)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솔직히 놀랐다. 실은 책장(冊張)을 열기 전엔 살짝 얕잡아 봤다. 국제 결혼한 부부(때론 연인)가 상대 나라 여행기 혹은 체험기를 묶는 형식. 그리 새로운 스타일이라곤 말 못하겠다. 게다가 통계학과 법률 전공의 프랑스 남편과 영화학 박사 아내라. 정말 ‘풍경’에 대한 ‘감각’만 나열한 게 아닐까 걱정됐다. 가끔 어떤 책은 자기들 연애담이 8할인 경우도 많기에. 와, 근데 이 책은 한 장만 읽어봐도 찌릿하게 촉이 온다. 허투루 쓴 게 아니란 걸. 부부는 파트 1과 2로 나눠 각자의 문장을 담았는데, 글을 짓는 솜씨가 느긋하면서도 오밀조밀하다. 매우 수준 높은 퀼트(quilt) 작품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그들은 프랑스어로 ‘플라뇌르(flaneur·천천히 걸어 다니는 산보객)’를 자처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사색한 티가 역력하다. 딱 그만치 공감 가고 신선하다. 뭣보다 저자들의 시선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있다. 배우자가 살아온 사회를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터전을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파리지앵 남편은 두 도시의 카페를 자연스레 비교하며 서울 커피숍의 장점을 유머러스하게 정리한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파리 카페는 오히려 면박을 주지만, 또 나름 그들의 방식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쉽게 보기 힘든 성찰이다. 얼추 다 좋지만 괜히 좀 뻗대 보련다. 아닌 척하지만 남편은 자부심이, 아내는 부러움이 짙다. ‘역시 파리는 근사한 도시야’란 전제가 여기저기 깔려 있다. 물론 틀린 말이야 아니지. 그래도 무게추가 기울다 보니 균형감은 별로다. 뭐, 서울도 나아지겠지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을 돕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스스로 돕는 자를 돕도록 한국에서 취업이나 창업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LDS·모르몬교)의 로버트 시 게이 신임 북아시아지역 회장(66·사진)은 24일 방한 간담회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종교의 의무”라며 남북한 인도주의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 1일 회장으로 임명된 게이 장로는 “LDS는 난민캠프나 장애인 지원 등 어려운 이를 돕는 데 언제나 앞장서 왔다”며 “미국에서 오랫동안 쌓은 창업 취업 프로그램 운영 경험을 한국은 물론 북아시아 전체에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회장 보좌단을 맡은 최윤환 장로는 “게이 장로는 오랫동안 아프리카 사회공헌을 위해 노력했다”며 “이번 취임 직전에도 뉴욕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지원 방안을 논의할 정도로 적극적이다”라고 했다. 게이 신임 회장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기업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금융전문가. 매킨지 앤드 컴퍼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고, LDS 신자로 2012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와 함께 베인캐피털 상무이사로 15년간 근무했다. 게이 회장은 “롬니와는 지금도 며칠마다 통화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라며 “세계의 많은 이를 빈곤에서 구제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곤 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장대비가 내리더니 더위도 한풀 꺾이는 걸까. 동네 공원에선 나름 성대한 이·취임식이 벌어졌다. 낮엔 아직도 짝을 못 찾은 매미의 목청이 구성지나, 해가 떨어진 뒤엔 귀뚜라미가 울어댄다. 늦건 이르건 계절은 길을 잃지 않는다. 매미는 자주, 인간에게 안쓰럽게 여겨진다. 5∼7년을 땅 밑에서 살다 바깥세상으로 나온 지 겨우 2주 만에 생을 마쳐서다. 심지어 17년 이상 흙 속에 머무는 종도 있단다. 일본만화 ‘은혼’에선 그 처연함을 이렇게 보듬는 대목이 나온다. “어쩌면 평생을 열심히 살았기에 주어진 ‘삶의 보너스 휴가’일지 모른다”고. 20일 영화계에선 ‘택시운전사’의 1000만 영화 등극 소식이 들려왔다.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한국영화 사상 15번째다. 우리 영화가 관객에게 사랑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 다만 그때마다 매미만큼도 극장에서 버티지 못했던 수많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한 송이 장미도 아름답지만, 흐드러진 안개꽃다발 역시 근사하건만. 떠나가는 매미와, 그 이상 위로받아 마땅한 ‘다양성 영화’에도 건배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렇게 유해라도 고향에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 덕분에 저도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아 보는군요. 통일된 조국이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만난 윤벽암 스님(61)은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유창한 한국말로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연신 되뇌면서도, 왠지 말끝엔 씁쓸한 기운이 묻어났다.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스님은 일본 재일교포 사찰인 국평사(國平寺) 주지. 그가 지금까지 모시던 유해 가운데 신원이 파악된 33구를 위원회와 협력해 1차로 국내에 봉환한다는 사실은 동아일보 7일자 A25면에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13일 방한해 국민추모제와 안치식 등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 온 그가 피곤했던 걸까. “전혀 아닙니다. 제 평생의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칠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할아버지 스님’(고 류종묵 스님)은 1965년 도쿄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국평사를 창건하셨습니다. 희생자 유해를 보낼 때 언젠간 꼭 통일된 우리나라로 함께 가겠노라 다짐하셨죠. 기다리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 이번에 유해를 봉환했습니다만, 그 말씀을 못 지켜 드려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스님은 국적이 ‘조선적(朝鮮籍)’이다. 조선적은 광복 뒤 일본 정부가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에게 부여했던 외국인등록상 명칭. 1965년 한일수교 뒤 다수가 한국적(韓國籍)으로 바꿨지만 일부는 원 상태를 고수했다. 스님도 할아버지 스님의 제자였던 부친 윤일삼 스님(1956∼1987)을 따라 귀화도, 국적 전환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한때는 총련이란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유는 별것 아닙니다. 조선 사람이니까요. 정치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진 나라에서 어느 한쪽을 택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도 화합 아닙니까. 우린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받아들일 때 어떤 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조선 사람’이면 되는 거였죠. 오늘 마침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오는 길입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지만 왠지 친근함이 느껴졌어요. 국평사도 일종의 비무장지대에 있는 절이니까요.” 국평사는 창건 때부터 지금까지 모신 희생자 유해가 3000구가 넘는다. 실은 창건 목적 자체가 유해 안치였다. 다행히 2000여 구는 가족 친지가 모시겠다며 찾아갔지만, 여전히 1000구 정도가 남아 있다. 이번에 33구를 포함해 신원이 확인된 101구가 귀환하지만, 여전히 무연고인 유해가 많아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 “이번에 위원회처럼, 많은 재일동포와 일부 일본인도 적극 도와주고 있습니다. 다 고마운 분들이죠. 언제 일본에 오시면 국평사에 꼭 한번 들르세요. 우리 텃밭엔 조선호박, 조선깻잎 등 모두 우리 땅에서 가져온 채소만 심었습니다. 절 내에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말만 합니다. 왜나고요? 모셔진 분들이 고향처럼 느끼길 바라니까요. 살아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죽은 뒤라도 편안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유쾌했을까 불쾌했을까. 이 소설은 꽤나 두께가 얄팍하다. 집중하면 1, 2시간이면 끝낼 분량이다. 그런데 자꾸만 읽다가 몇 장씩 되돌아오게 된다. 그리 가물가물할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다. 왠지 묘하게 질퍽질퍽 발길을 붙잡는 달까. 깜깜한 숲속의 부엉이소리처럼. 벨기에 어딘가 있다는 플뤼비에 성(城). 그곳에 사는 느빌 백작은 요즘 심사가 복잡하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나 돈 버는 재주가 없다 보니, 결국 성까지 팔아야 할 처지. 하지만 백작은 사교계에서 언제나 훌륭한 파티 접대로 이름 높은 인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가든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점술가 포르탕뒤에르 부인이 가출한 막내딸 세리외즈를 보호하고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별것 아닌 양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점술가는 보자마자 악담에 가까운 예언을 들려준다. 백작이 파티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라고. ‘최후의 만찬’을 벌이고픈 그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고민으로 며칠째 밤잠을 설치는 느빌 백작에게 세리외즈는 더 충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다름 아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노통브의 스물네 번째 소설이라는 ‘느빌…’은 읽는 이를 참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잔혹동화 같기도, 한바탕 부조리 연극을 감상한 기분도 든다. 솔직히 재미없단 소린 못하겠다. 어디선가 ‘쿵짝쿵짝’ 흥겨운 재즈 가락이 들려오는 듯 리듬감도 절묘하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 가지는 우화적인 분위기도 세련됐고. 실제로 프랑스 현지에선 ‘비극과 희극이 버무려진 풍자극’이라며 상찬을 받은 모양이다. 2015년 출간돼 19만 부 이상 팔렸단다. 그런데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이걸 썼을까. 그가 주고픈 메시지는 묵직함일까 경쾌함일까. 왠지 이 소설에서 의구심 한 줄기가 물씬물씬 피어올랐다. “실은 자기도 헛갈리는 거 아냐?” 열혈 팬이 아니라면,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겠다. 원제 ‘Le crime du comte Neville’.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다시 합쳐진다. 양측은 16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두 단체를 통합한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창립총회에선 김선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장과 이성희 예장 통합 총회장, 전명구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감독회장, 정서영 한교연 대표회장이 당분간 ‘4인 공동회장’을 맡아 한기연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한기연은 정관 작업 등을 거쳐 12월 총회를 열고 대표회장 1인을 추대할 예정이다. 한기총과 한교연은 원래 하나였으나 2011년 대표회장직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며 둘로 나뉘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사석에서 한 여성 경영인을 만났다. 나름 ‘유리 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 분인데, 어렵사리 들은 속내는 영 딴판이었다. 한마디로 위로 갈수록 더 외롭더란 얘기다. “물론 예전보단 양성평등이 훨씬 나아졌죠. 여성 상사라고 가벼이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시를 내리면 성별이 자꾸 해석의 잣대가 돼요. 여성이라 그런 데에 관심이 많다, 여성이라 이해 못 한다는 식이죠. 오히려 남성 보스처럼 굴어야 ‘역시 트였다’는 피드백이 돌아옵니다. 그럴 땐 또 다른 벽에 갇힌 기분이 들어요.”딱히 별다른 말을 건네진 못했다. 조심스럽기도 했고. 다만 최근 책들을 검토하다 눈에 띄는 작품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 싶다. 11일 국내에 출간된 미국 소설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이다. 여주인공 콘스턴스는, 요즘으로 치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의 신조어)’이었다.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대. 서른다섯 미혼에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다. 당시 여성은 투표권조차 없던 시절. 직업 구하기도 어려웠다. 두 여동생과 입에 풀칠하기 빠듯한 지경. 현재라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야 할 판이다. 원래 나쁜 일은 몰려오는 법. 어느 날 세 자매는 마차를 몰고 가다 마구잡이로 돌진한 자동차에 들이받혔다. 하필이면 운전사는 악덕 사장으로 유명한 무뢰배. 여성이라 만만했는지 똘마니까지 끌고 와 공갈 협박을 일삼는다. 심지어 납치 방화까지 시도하고…. 우리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목에서 눈치챘듯, 그는 총을 뽑아들었다. 영화 ‘황야의 7인’(1960년)처럼 해결사 총잡이가 된 건 아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OK목장의 결투’(1957년)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버트 랭커스터)라고나 할까. 바로 미 역사상 첫 여성 보안관보가 된 콘스턴스 아멜리에 콥(1878∼?)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소설가 에이미 스튜어트가 2015년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다’. 작가는 자신의 논픽션 ‘술 취한 식물학자’ 집필 자료를 모으다가 뉴욕타임스에서 콥 자매를 다룬 짤막한 옛 기사를 마주했다. 시쳇말로 ‘확 꽂힌’ 그는 2년여 동안 동네 땅문서까지 샅샅이 뒤지고 일가친척도 찾아가 만났다. 그렇게 나온 ‘여자는…’에는 콘스턴스가 보안관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스튜어트는 앞으로 콥 자매 시리즈를 8권까지 출간할 계획이란다. 소설 자체도 흥미롭지만, 작가 홈페이지도 들어가 볼 만하다. 특히 책에 실린 실존인물 설명 가운데 콥 보안관보의 언론 인터뷰 한 자락은 꽤나 인상적이다. “어떤 여성은 집에 머물고 가족을 돌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라고 하세요. 하지만 그런 일을 잘할 사람은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그들과 달리, 어떤 여성은 사람과 사회 속에서 부대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한 사람의 여성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힘들어도 노력하면 된다는 얘기는 요즘 세상에 ‘씨알’도 안 먹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콘스턴스는 키가 6피트(약 183cm), 몸무게는 180파운드(약 82kg)였다. 웬만한 사내 못지않은 체격이다. 하지만 덩치만 좋다고 그 굴곡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문제는 심장의 크기였다. 그 여성 경영인도 어디서 배포로 밀릴 양반이 아니다. 이 지구는 그런 심장들이 모여 변화시켜 왔다. 콥이 든 건, 총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널찍한 ‘평상’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오다가다 쉴 수 있게. 큰 아름드리나무 그늘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평상을, 매일 쓸고 닦는 거라오.” 최근 찜통을 뒤집어쓴 듯한 더위에 헉헉대며 도착한 서울 서초구 구룡사 앞마당엔 진작부터 정우 스님(65·구룡사 회주·사진)이 나와 있었다. “더운데 뭘 여기까지…”라며 연신 손부채를 부쳐주더니, “젊은 사람들은 이런 커피를 좋아하지”라며 냉장고에서 이까지 시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거참, 땡볕을 타박했던 속내가 짐짓 부끄러웠다. 대한불교조계종 군종교구장으로 쉼 없이 달려왔던 정우 스님은 지난달 27일 드디어 4년 임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군종교구장으로 그가 세운 공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영내 법당 100곳 이상을 짓고 고쳤으며, 불자장병 수계법회를 지나간 이는 12만 명이 넘는다. 2014년엔 비구니를 군종법사로 뽑아 국내 종교 최초로 여성 군종장교를 배출했다. 그런데 정작 스님 맘에 제일 깊이 남은 건 따로 있었다. “전국에서 만난 장병들의 눈망울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4년 내내 장갑이랑 초코파이, 핫팩 싸들고 무던히도 돌아다녔지. 시간만 되면 꼭 짜장면을 같이 먹었어요. 불제자면 어떻고 아닌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도 1973년 현역 입대해 그때 심정 다 알지. 작은 것 하나에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오.” 임기 동안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경기 파주시의 ‘JSA(판문점 남북공동경비구역) 무량수전’ 건립도 스님은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다 이뤄질 일이 불력(佛力) 따라 흐른 거란다. 올해 3월 완공했는데 ‘참 묘하다’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법당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 전사자의 위패를 봉안했습니다. 근데 그 위로 난 쪽문이랑 높이를 맞추려고 길이를 쟀더니 딱 62.5cm인 거라. 더 신기한 건 법당 앞 종각에 ‘평화의 종’도 봉안했는데, 이게 만들고 보니 의도치 않게 무게가 625관(약 2344kg) 아니겠소. 또 한번 깊이 머리를 조아릴밖에.” 요즘 스님은 해질녘이면 하루 1, 2시간씩 마을을 걷고 있다. 올해 초부터 꾸준히 걸었더니 체중도 10kg이나 빠졌단다. 열심히 운동하는 까닭? 잡념도 없애주지만, 너무 뻔하게도 건강 때문이다. 그런데 스님이 이렇게 몸을 챙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곧 자신이 출가하고 주지도 지냈던 통도사로 내려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여기 구룡사가 1980년대 천막 법당으로 시작해 하나하나 맨손으로 일군 ‘가장으로서의 집’이라면, 통도사는 내 모든 시작의 뿌리이자 고향인 셈이라오. 고맙게 그쪽에서도 거처를 마련할 테니 얼른 오라고 합디다. 다 필요 없고 일신이 머물 제일 구석 쪽방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 가서 남의 신세 안 지려면 뭣보다 몸이 튼튼해야 하지 않겠소. 괜히 특별 대우할 생각 말라고 미리 으름장도 놔뒀습니다. 똑같이 마당 쓸고 텃밭 돌보고 다 해야죠. 그게 진짜 ‘평상’이 되는 길이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짬짜면(짬뽕+짜장면). 비하할 의도는 없다. 그냥 읽는 내내 그런 잡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딱히 나쁘지도 않다. 오히려 좋은 책이다. 하지만 교과서와 선언문을 같이 펴놓고 읽은 느낌이랄까. 이해는 가는데 살짝 번잡하다. 홍콩중원(中文)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인 저자는 ‘중국의 깨어있는 지성’이란 극찬을 받는 학자다. 중국 정부로선 꽤 탐탁지 않은 인사라는데, 2014년 홍콩을 휩쓸었던 민주화시위 ‘우산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이 바이블처럼 이 책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본토에선 금서로 찍혀 출간되지 않았단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저자는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1921∼2002)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롤스의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를 꼽는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모든 시민은 자유롭고 평등하므로 국가에 공정함을 요구할 도덕적 권리가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역시 시민이 부여한 도덕적 근거만이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이를 문장 하나, 페이지 하나마다 묵직하게 새겨 넣었다. 앞서 말했지만 참 ‘좋은’ 책이다. 중국 상황에 대입하지 않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정치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짚는다. 특히 6장에 실린 중국 누리꾼과의 웨이보 토론은 단연 백미. 다만 이 책은 약력이 없어도 교수님이 썼다는 걸 단박에 알겠다. 사례보단 논리에 치중해 간혹 ‘맹자 왈 공자 왈’로도 들린다. 하긴 원래 옳은 말만 하면 지루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변치 않는 건, 그게 옳은 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성직자라고 신앙 얘기만 할 거면 이리 모이지도 않았겠죠. 돈 문제나 성(性) 이슈도 허심탄회하게 다룰 겁니다. 우리도 다 돈 좋아해요, 하하. 명쾌한 해답까진 몰라도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그게 세상 사람들이 종교에 바라는 게 아닐까요.” 참 거침없다. 그런데 편안하고 유쾌하다. 9일 오후 만난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와 진명 스님(전 조계종 문화부장), 김진 목사(밀알디아코니아연구소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정말 ‘도끼 자루 썩는 줄’ 몰랐다. 배가 산을 넘어 우주까지 가는가 싶은데 어느새 딱 맞춤한 장소에 당도한 기분이랄까. 성직자 3명이 최근 흥미로운 작당 모의(?)를 했다. 28일부터 전국을 돌며 ‘3인 3색 토크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 입담 좋기로 소문난 이들이 모여 도대체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살짝 먼저 엿본 소감을 말하자면, ‘끝내준다’. ▽홍 신부=좋은 분들 만나니 무덥던 날씨도 청명해진 기분이 듭니다. 두 분도 저랑 참 질긴 인연입니다. 지겨워요, 지겨워. ▽김 목사=그러게 말입니다. 신부님이 ‘종교 간 대화와 일치위원회’ 총무 시절이니까 2002년부터죠. 타 종교인을 만나면 어색할 때도 있는데 신부님은 첨부터 만만했습니다. 하하. ▽진명 스님=딱 보고 같은 ‘과’인지 바로 알아봤죠. 신부님은 tvN ‘오 마이 갓’(2014∼16년) 함께 출연하며 친해졌고요. 목사님도 연이 깊습니다. 제가 모신 법정 스님(1932∼2010)이 강원용 목사(1917∼2006)와 절친해 오며 가며 뵀습니다. 언제나 선하고 젊은 기운이 넘치셨어요.▽김 목사=콘서트 제안이 왔을 때 두 분이라 단박에 오케이 한 건 맞습니다. 다만 다양한 종교인과의 만남은 언제 어디서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죠. 타 종교에 배타적인 사람은 자신의 종교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거거든요. ▽홍 신부=실제로 김 목사님은 과거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종교 청년 캠프’를 주도하셨죠. 6개 종단 예비성직자 모임인데 당시 반향도 컸습니다. 목사님이 2005년 인도로 사역을 가시며 맥이 끊겨 너무 아쉽습니다. 스님도 불교 원불교 가톨릭의 여성 성직자 모임인 ‘삼소회’를 이끌었고요. 그러고 보니 종교 간 소통은 세 사람에겐 오랜 사업이었네요. ▽진명 스님=이번 콘서트가 그 불씨를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삼소회 때 수녀님 여성교무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 시민들이 박수를 쳤어요. ‘그냥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하다’고 하더군요. 종교의 화합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는 겁니다. ▽홍 신부=맞습니다. 더 보태자면, 일반인이 종교에 바라는 본질은 위안입니다. 그런 뜻에서 종교인은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권위에 기대 현실과 괴리된 건 아닌지…. 첫 토크쇼 주제로 ‘욕심’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욕심을 버리란 얘기가 아닙니다. 세속에서 그건 불가능하죠. 다만 살짝만 덜어내도 눈과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일상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종교적 조언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김 목사=결국 종교와 사회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최근 종교에 실망해 믿음을 포기하는 분들도 적지 않죠. 충분히 이해하지만 ‘목욕물 쏟으려다 아이까지 버려선 안 됩니다’. 종교의 현재 외양보단 수천 년 이어온 지혜를 볼 때예요. 물론 우리 성직자부터 자성해야죠. ▽진명 스님=지금 시대가 어렵다는 건 다들 인식하고 있어요. 마음이 바로 서야 가족도 지역도 사회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그걸 돕는 도우미가 돼야 하죠. ▽홍 신부=아이고, 토크쇼에서 할 얘기를 여기서 다 하시네. 이번 만남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성직자가 참여하는 더 큰 강물을 만들어야죠. 종교와 종교가 만나고, 종교와 세상이 만나는 일. 그건 당연하고도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박목월(1915∼1978), 황금찬 시인(1918∼2017)과 함께 품었던 꿈을 이제야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선배들도 고생했다 어깨 두드려주겠지요?” 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출판사 ‘성서원’의 김영진 회장(73)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1965년 시인으로 등단한 김 회장은 한국잡지협회장(1995∼97년) 한국기독교출판협회장(2000년) 등을 거친 출판계 산증인. 하지만 최근 출간한 책 한 권을 그는 “지금껏 살아온 이유”라고 단언했다. 바로 20여 년에 걸쳐 직접 성경 1189장을 시로 지은 ‘성경의 노래’(사진)다. 김 회장이 성경 전체를 시로 짓기로 마음먹은 건 1960년대부터. 당시 박목월 황금찬 시인 등이 참여했던 한국기독교문인협회에서 ‘시를 지어 즐거이 주를 노래하자’(시편 95장 2절)를 실천해 보자는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진척은 쉽지 않았다. 결국 감리교신학대 대학원을 나온 그가 1998년부터 방대한 작업에 몰두했다. “거의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 10시까지 매달렸습니다. 다른 일도 많았지만 제 본업은 이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죠. 워낙 고되다 보니 갖은 병마에 시달려 가족도 한사코 뜯어말렸습니다. 하지만 세계 기독교사(史)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을 우리 땅에서 이루어 보자는 사명감이 저를 채찍질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성경의 노래’는 페이지마다 정성이 가득하다. 이번에 나온 1권은 창세기 출애굽기 등 모세오경을 한 장 한 장 시로 지었다. 이를 ‘찬송가 연구의 대가’인 오소운 목사가 잘 어울리는 찬송가에 맞췄고, 삽화가 김청전 씨가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김 회장은 “두 사람도 이 작업에 최소 7년 이상씩 매진하며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책 감수를 맡은 민영진 박사(전 감신대 교수)는 “방대한 내용을 시와 노래로 정리한 것도 훌륭하지만, 정확한 문맥을 파악해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든 엄청난 역사(役事)”라고 평했다. ‘성경의 노래’는 내년까지 5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시작(詩作)은 마무리했지만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은 갈 길이 멀다. 김 회장은 “완성 때까지 건강만 유지하면 좋겠다”며 “벅찬 시도라 두려움도 크지만 복음 전도에 작은 밀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에서 한국 천주교 230여 년의 역사를 만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8일 “다음 달 9일부터 11월 17일까지 바티칸박물관의 ‘브라초 디 카를로 마뇨’ 전시실에서 한국 천주교 유물 203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바티칸에서 한국 관련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해마다 6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바티칸박물관은 특별전시회를 1년에 많아야 2, 3번만 허용할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교회의 자생적 탄생’과 ‘순교와 박해의 역사’는 물론이고 근현대 한국 사회의 격동 속에서 이뤄진 ‘교회의 사회 참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당시 증언자들이 순교자 16명에 대해 증언한 ‘기해·병오 치명 증언록’과 세례명이 토마스인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 직전 중국 뤼순 감옥에서 남긴 유묵 ‘경천’(敬天·이상 한국가톨릭순교자박물관 소장) 등이 전시된다. 18세기 대표적 실학자이자 천주교인이었던 다산 정약용(1762∼1836·세례명 요한)의 유물도 바티칸에 간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목민심서’와 다산의 무덤에서 발견된 십자가(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소장) 등이 포함됐다. 현대 작품으로는 월전 장우성(1912∼2005)의 그림 ‘성모자상’(1954년)이 눈에 띈다. 성모자상은 흰 한복을 입고 비녀 머리를 틀어 올린 성모 마리아를 그렸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다음 달 9일은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대목구의 설정을 명하는 칙서를 반포했던 날이다. 당일 전시 개막미사에는 바티칸 주재 83개 외교 공관장을 비롯해 6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전시를 주관한 원종현 신부(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는 “이번 특별전은 한국 천주교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문화와 유산을 세계에 알릴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