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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도 아침이 올까요?”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습니까. 곧 아침도 와요.” 정신병동에서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환자의 질문, 그리고 수간호사 효신(이정은)이 담담히 건넨 답이다. 정신병동에 배치받은 간호사 다은(박보영)이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만나 함께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12부작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원작은 동명의 네이버 웹툰이다.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에서 1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재규 감독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 중 절반은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며 “내 병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 감독은 드라마 ‘다모’(2003년) ‘베토벤 바이러스’(2008년), 영화 ‘완벽한 타인’(2018년) 등을 연출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성공적인 연출 필모그래피를 쌓은 그이지만 이번 작품은 특별했다. 드라마에는 공황장애, 양극성장애(조울증), 사회불안장애 등 현대인들이 약하게나마 경험해봤을 만한 정신질환들이 등장한다. 이런 증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과 환경에 의해 발현되고, 따뜻한 관심으로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감독은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거다. 저도 촬영하면서 너무 펑펑 울어서 보영 씨가 휴지를 갖다 준 적도 있다”고 했다. 정신병동 이야기이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시청자에게 편안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 분홍, 주황 등 동화 같은 색감으로 병동 세트장을 만들었다. 박보영이 연기한 다은은 마음이 따뜻한 간호사다. 그는 실제로 10년 동안 소아 중환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며 간호사들과도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박보영은 “힘들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가 그런 과정을 쉽고 편안하게 안내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정신병동의 문턱도 낮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정은이 맡은 수간호사 효신은 병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이정은은 “저 역시 한때 카메라 울렁증을 앓았다. 멘털 케어에 대한 드라마가 나오게 돼 기쁘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투어로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 실황을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됐다. CJ CGV는 3일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를 단독 개봉한다고 밝혔다. 영화는 스위프트가 올 3월 미국 애리조나에서부터 시작해 전국을 돌며 총 52회 진행한 투어 공연의 실황을 담았다. 투어 공연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약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투어 지역마다 경기가 살아나자 ‘스위프트노믹스’(스위프트와 경제의 합성어), ‘테일러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스위프트는 이번 투어를 마치고 개인 누적 자산 11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스위프트는 2006년 데뷔해 그래미 어워드를 세 번 수상한 싱어송라이터다. 영화는 그의 대표곡 ‘You Belong With Me’ ‘Love Story’ ‘Shake It Off’ 등 총 40여 곡의 무대로 구성됐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지난달 13일 먼저 개봉한 영화는 지난달 29일까지 2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등 41개 극장에서 상영하고 아이맥스관에서도 볼 수 있다. 1일 기준 CGV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의 주말(3∼5일) 첫 시간대 상영표는 매진됐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타깃을 향한 연민도, 분노도 없이 건조한 표정으로 남자는 맞은편 건물을 응시한다. 남자의 직업은 킬러. ‘킬링’을 향한 모든 단계는 수천 번을 연습한 춤사위처럼 자연스럽다. 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세팅돼 있고, 타깃을 기다리며 남자는 수련하듯 요가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타깃을 놓치고, 보복 요청을 받은 다른 킬러들이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무참히 폭행한다. 남자는 보복 지시를 내린 사람을 찾기 위해 한 명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나를 찾아줘’(2014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년),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 ‘더 킬러’다. 1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고, 일부 극장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상영 중이다. 영화 ‘300’(2007년), ‘엑스맨’ 시리즈, ‘노예 12년’(2014년)으로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마이클 패스벤더가 킬러 역을 맡았다. 패스벤더는 첫 사살에 실패한 후 동요하는 킬러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영화 내내 그의 표정에서는 초조함과 태연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배우 틸다 스윈턴이 패스벤더에게 보복당하는 킬러로 등장한다. 10분이 안 되는 짧은 장면이지만 패스벤더와 팽팽하게 맞서는 그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핀처 감독은 주특기인 긴장감 넘치는 편집과 세련된 미장센을 이번에도 마음껏 뽐낸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삽입곡도 몰입감을 높인다. 다만 서사는 다소 식상하다. ‘소중한 것을 빼앗긴 킬러가 복수에 나선다’는 익숙한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패스벤더를 주인공으로 한 한 편의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 같다는 느낌도 준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연예계 마약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선균, 유아인 등 배우와 가수, 작곡가까지 마약류 투약 정황이 드러나며 연예계를 파고든 마약 실태가 충격을 안겼다. 영화 ‘기생충’(2019년),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년)을 비롯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연이은 성공으로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K컬처’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선균-유아인이 날린 제작비만 940억 원 이선균이 마약류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한국 영화계는 더욱 침체되는 분위기다. 올해 개봉할 예정이던 이선균 주연의 제작비 200억 원 영화 ‘탈출: PROJECT SILENCE’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탈출…’은 5월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뒤 해외 판매에도 주력하고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중단된 상태다. 제작비 약 90억 원을 투입한 영화 ‘행복의 나라’도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올스톱됐다.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첫 촬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선균이 하차하면서 대체할 배우를 찾고 있고, 그가 주인공인 ‘Dr.브레인 시즌2’는 제작이 불투명해졌다. 앞서 올해 3월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유아인 역시 영화 ‘승부’, ‘하이파이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개를 앞두고 있었지만 모두 무기한 연기됐다. 세 작품의 제작비는 총 650억 원이다. 이선균, 유아인 두 배우가 출연했다가 개봉이 연기된 작품 제작비는 약 940억 원에 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연이은 악재에 영화계 패닉 영화계는 팬데믹 이후 좀처럼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약 사태까지 터져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영화산업 전체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2017∼2019년 각 상반기 평균)의 72.5%였고, 관객 수는 57.8%에 그쳤다. 특히 영화계 대목으로 꼽히는 추석이 있던 9월에도 영화산업 전체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 같은 기간의 52.9%로 절반 수준이었다. 올해 추석에 맞춰 개봉한 대작 한국 영화 3편(‘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 ‘1947 보스톤’)도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 마약 사태까지 벌어져 걱정이 크다”며 “연말에도 관객 수가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제작사 관계자는 “마약 관련 루머만 돌아도 긴장하고 있다”며 “우리 작품에서는 부디 (마약 이슈가) 터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폭탄 돌리기 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외신도 이번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버라이어티지는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스타 이선균이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이선균은 ‘기생충’으로 미국 배우조합상도 받은 유명 배우”라고 보도했다. 미국 할리우드리포터도 이선균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연예계에서 최근 마약 관련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우들의 일탈이 한국 영화·콘텐츠업계의 해외 투자에도 리스크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배우 개인의 책임을 실효성 있게 묻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작품마다 계약서가 제각각이고, 위약금 조항 유무와 배상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의 출연료에 비례해 위약금 조항을 넣지만 수백억 원의 콘텐츠 투자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업이어서 문제를 일으킨 배우의 소속사와 법적 공방을 벌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한 명만 추락해도 도미노 붕괴 이선균과 함께 작곡가 등도 수사 대상에 오르자 가요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이돌 그룹은 멤버 한 명의 마약류 투약이 팀 활동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2019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가 마약 사건으로 입건된 후 탈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더이자 프로듀싱 멤버였던 비아이의 탈퇴 후 아이콘의 팬덤 규모나 활동 범위는 현격히 축소됐다.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작곡가이자 가수 돈스파이크는 필로폰을 투약하고 엑스터시를 건네 지난달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츠의 위상과 영향력이 단시간에 높아지면서 연예인들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부족했다”며 “몇몇 사람에 의해 K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지 않으려면 연예인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82)이 은퇴를 번복하고 10년 만에 내놓은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25일 개봉했다. 홍보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지만 개봉 하루 만에 25만5000명이 관람했고, 예매율은 60%에 달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영화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기 방식대로 쓴 한 편의 아름다운 자서전이자, 이 세계에서 찰나를 공유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영화는 데일 듯 생생한 시뻘건 불길로 시작한다. 일본 도쿄에서 공습 경보가 울리고 화마는 11세 소년 마히토(목소리 연기 산토키 소마)의 엄마를 집어삼킨다. 화재 이후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기무라 다쿠야)는 마히토와 함께 시골로 거처를 옮기고, 처제인 나쓰코(기무라 요시노)와 재혼한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아버지를 향한 서운함, 이모가 새엄마가 된 데 대한 복잡한 감정으로 마히토는 남몰래 마음속 악의를 쌓아간다. 어느 날 커다란 왜가리 한 마리(구니무라 준)가 날아와 “죽은 엄마가 살아있으니 나를 따라 오라”고 말한다. 마히토는 엄마를 찾아 시공이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영화는 전개가 친절하지 않고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로 가득하다. 미야자키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됐다.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동명의 소설에서 따왔는데, 미야자키 감독이 어릴 적 어머니가 선물한 책이라고 한다. 미야자키 감독 역시 마히토처럼 1941년에 태어났고, 전쟁 공습을 피해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큰할아버지는 5년 전 별세한 선배 애니메이션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왜가리 남자는 미야자키 감독의 동료이자 친구인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를 묘사했다.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손으로 그려 제작에만 7년에 걸렸다. 일렁이는 불꽃과 나풀거리는 종이의 질감, 꿀렁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생선 내장 등 생동감이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위험하고, 더러운 곳이더라도 친구들이 있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마히토에게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으라”고 조언한다. 평생을 바쳐 지브리라는 탑을 쌓은 노(老)감독이 여든두 해를 살고 얻은 답같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배우 수지(29)에게선 드라마 ‘드림 하이’(2011년) 속 통통 튀는 고혜미의 모습도, 영화 ‘건축학 개론’(2012년)에서 보여준 해사한 서연의 모습도 겹치지 않았다. 차분히 말을 고르는 그에게선 드라마 ‘안나’(2022년)에서 뿜어낸 서늘함이 느껴졌다. 밝고 해맑은 아이돌에서 어느덧 자신의 연예계 생활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는 배우가 된 수지를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수지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에서 아이돌 두나 역을 맡았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이 드라마에 수지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찰떡같은 배역”이라는 반응과 “제멋대로에 퇴폐미가 있는 두나 역에 밝고 청순한 느낌의 수지가 잘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갈렸다. 수지 스스로는 두나와 큰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대본을 볼 때부터 감정 기복이 크고 제멋대로인 두나가 이해됐다. 이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었다. 두나가 안쓰럽고, 아무래도 (실제 저와) 같은 상황을 겪었던 캐릭터라 더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두나는 인기 아이돌 ‘드림스윗’의 메인 보컬이지만 스트레스로 노래가 나오지 않아 도망치듯 은퇴한다. 수지 역시 걸그룹 ‘미쓰에이’로 활동하다가 7년 만에 해체한 경험이 있다. 수지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두나가 가진 경계심이었다. 수지는 “두나는 자기를 알아보는 것 같은 사람에게 더 경계심을 갖고 날카로워진다. 극 중 어떤 남자가 자기 일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데 두나가 자기를 찍는 줄 알고 흠칫 놀라는 장면이 있다. (제) 현실과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는 두나에게서는 외롭고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겨울 장면에서는 추위마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진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수지는 ‘안나’에서 거짓말을 거듭하며 망가져 가는 캐릭터로 연기력을 재평가받았다. 그는 연기 발전에 대해 “(2020년) 영화 ‘원더랜드’를 찍으며 연기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수지는 자신의 모습 같은 두나를 향해 말했다. “네가 지금 그렇게 아파하는 순간들, 지나고 보면 그런 순간들 때문에 더 빛나고 있을 거야.”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정지영 감독(77)이 4년 만에 신작 ‘소년들’로 돌아왔다. ‘부러진 화살’(2012년), ‘블랙머니’(2019년) 등 실화에 천착해 온 그답게 ‘소년들’ 역시 1999년 벌어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영화는 공권력이 가장 부정하게 작동할 때 약자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동네 친구 세 명이 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복역한 사건이다. 이들은 복역 후 수사 당시 경찰의 폭행에 못 이겨 거짓 진술을 했다고 밝혔고, 재심을 청구해 17년 만인 2016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 소재로 택한 이유에 대해 “그냥 지나가선 안 될 사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세 소년이 감옥에 가는 데 묵시적으로 동조한 건 아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한번 다시 잘 들여다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사건 1년 후인 2000년과 17년 후인 2016년이 교차되며 흘러간다. 2000년 완주군에 새로 부임한 베테랑 형사 황준철 반장(설경구)에게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진범을 알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사건을 파 보던 그는 조작 수사 중심에 경찰대 출신 엘리트 형사 최우성(유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황 반장은 사건을 제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애쓰지만 ‘조직을 음해한다’고 비난받으며 이후 궂은 부임지를 전전하게 된다. 그러다 17년이 지나 삼례 3인방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도울지 고민한다. 영화 속 황 반장은 가상의 인물이고, 수사를 조작한 형사 최우성과 검사 오재형(조진웅)은 실존 인물이다. 사건 주임검사는 지난해 삼례 3인방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가해자들이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정 감독은 “사건이 다 해결될 때까지 사과가 안 이뤄졌다. 세월이 지나서 한 사과가 진정성이 있느냐”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고맙다는 말/축하한다는 말/미안하다는 말을/시처럼 적으면서/살아온 날들/…/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그냥 그냥 기뻤다고 고백하리라//한 장의 러브레터로 살다 갔다고/누군가 그렇게 기억해주길 바란다고!”(‘꿈 일기-카드를 사며’에서) 이해인 수녀의 신작 시집이다. 저자는 여는 말에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며 위로받고 싶어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고 진솔하게 고백한다.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은 저자는 수십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고, 류머티즘도 앓고 있다. ‘위로의 시인’이라 불리는 그이지만 육체의 고통과 늙어감 앞에서 가라앉는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하늘은 푸른데/나는 아프다//꽃은 피는데/나는 시든다/…/내가 아픈 것을/사람들이/보지 말았으면 좋겠다”(‘통증 단상1’에서) 그러나 일상에서 감사와 행복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꽃에게 나비에게 나무에게/그리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이름을 불러주며/새삼 행복하다”(‘이름 부르기’ 중) “좀 어떠세요?/내가 다른 이에게/인사할 때는/사랑을 많이 담아/이 말을 건네리라/다짐하고 연습하며/빙그레 웃어보는 오늘”(‘좀 어떠세요?’에서) 저자는 “제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쉽진 않았으나 그런 노력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때에만 조금 더 좋은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고 했다. 따스한 햇볕 같은 그의 시가 아픈 이들의 그늘진 마음을 덥힐 것 같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가수 겸 배우 수지(본명 배수지)가 드라마 ‘안나’(2022년)에 이어 극 중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로 돌아왔다. 수지는 최고의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돌연 은퇴하고 숨어 버린 두나 역을 맡았다. 그룹 미쓰에이로 활동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한 맞춤옷 같은 역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년), ‘굿 와이프’(2016년)를 만든 이정효 감독이 연출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18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수지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두나에게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많았다”며 “저에게도 두나같이 차가운 면이 있는데 대중은 잘 모를 것 같다. 그런 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두나!’는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 ‘드림스윗’의 메인 보컬이었던 두나가 평범한 대학생 원준(양세종)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청춘 로맨스물이다. 두나는 활동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은퇴를 결심하고 셰어하우스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원준을 만난다. 9부작으로, 20일 넷플릭스에서 전체 공개된다. 네이버 웹툰 ‘이두나!-두근두근 누나리스트’가 원작이다. 까칠하고 경계심이 많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통을 극복하는 두나를 연기한 수지는 “제가 아이돌 시절이었을 때를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순간에 (그게 힘든 상황인지) 정말 모르기도 했다. 부정한 것 같기도 하다. 애써 밝게 넘어갔던 순간도 많았던 것 같다”며 “두나가 힘든 걸 마음껏 표출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부럽기도 했다. 그런 부분이 공감이 됐다”고 했다. 드라마는 ‘아이돌 출신 수지’를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화려한 무대 위의 수지와 셰어하우스에 사는 수지를 보여주며 판타지를 자극한다. 드라마에서 아이돌 드림스윗이 무대에 서는 장면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열린 ‘K콘’ 실제 공연 무대에서 촬영했다. 양세종에겐 제대 후 복귀작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016년)의 금수저 도인범 역으로 데뷔해 ‘사랑의 온도’(2017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2018년)로 사랑받은 그는 4년 만의 복귀를 앞두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20세 초반 역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작품을 선택했다. 열 살 이상 어린 역할이라 수염 레이저 제모를 받고 반신욕과 마스크팩도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로맨스의 장인’으로 불리는 이정효 감독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면서 서로 알아가고 이해하다 하나가 되는 과정까지 그린 드라마”라며 “서툰 20대의 청춘, 추억,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성경에 쓰인 크기로 만든 현대판 방주가 이르면 내년 상반기(1∼6월) 한국에 설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내 연면적이 1만6529㎡(약 5000평)에 이르는 이 방주는 네덜란드 건축가 요한 하위버르스(사진)가 2012년 공개해 주목받았다. 그는 분단 국가인 한국에 이 방주를 기증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17일 기독교·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한국노아의방주유치위원회’(가칭)는 최근 하위버르스가 한국에 이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무로 만든 이 방주는 총 7층 구조에 길이 125m, 너비 29m, 높이 약 26m에 이른다. 무게는 3000t이다. 노아가 대홍수를 대비해 동물 암수 한 쌍을 실었다는 성경 기록을 따라 내부엔 얼룩말, 기린, 코끼리 등 동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성서박물관 등의 공간도 있다. 제작하는 데 6년이 걸렸고, 약 420만 달러(약 56억7000만 원)가 투입됐다. 방주가 한국에 오게 된 데는 하위버르스 의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위버르스는 지난해 1월 한국을 찾았을 때 경기 김포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을 방문하는 등 남북 분단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박해 있는 방주를 바지선에 실어 한국까지 운송하는 데에 약 2개월 반가량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위원회는 “인천과 경기도의 몇몇 기초자치단체가 이 방주를 기증받아 설치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하위버르스를 한국에 초청해 1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노아의 방주를 만들게 된 과정과 한국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머리를 길게 땋은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이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서 내린다. 운전사는 모두 백인. 윤기 나는 양복과 값비싼 모자로 멋을 낸 이들을 백인들이 안내한다. 부유한 원주민들은 두세 배 비싼 돈을 치러야 물건을 구할 수 있고, 백인들은 이들을 등쳐 먹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백인들의 탐욕은 시간이 갈수록 도를 넘는다. 원주민 여성들을 유혹해 결혼한 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아내와 그 가족들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광기에 가까운 ‘인디언 사냥’이 시작된다.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 페어팩스에서 원주민 ‘오세이지족(族)’에게 벌어진 실화를 그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81)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원제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 19일 개봉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했다. 세 사람이 한 작품에서 뭉친 것은 처음이다. 영화는 제76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영화는 부유한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릴리 글래드스톤)가 참전용사 어니스트(디캐프리오)를 만나며 시작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어니스트는 페어팩스에서 부를 쌓고 있는 삼촌 헤일(드니로)의 집으로 향한다. 글도 잘 못 읽고 아둔하지만 잘생긴 그에게 헤일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몰리에게 접근해 보라”고 조언한다. 어니스트는 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결혼에 성공하지만, 헤일은 몰리가 자매들과 유산을 나누는 것에 불만을 갖고 몰리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살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을 각색했다. 봄은 보름달 아래서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지만, 키 큰 꽃들에 양분을 빼앗겨 먼저 핀 작은 꽃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터전을 침범한 백인들에게 살해당했던 오세이지족을 은유한다. ‘포레스트 검프’(1994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년)의 각본가 에릭 로스가 스코세이지 감독과 함께 각색했다. 몰리는 실존 인물이다. 오세이지족은 1870년대 원래 살던 캔자스주에서 쫓겨나 페어팩스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내몰렸다. 이후 이곳에서 막대한 석유가 발견되고, 오세이지족들은 석유회사로부터 받는 로열티로 돈벼락을 맞았다. 그러나 이들의 재산을 노린 백인들에 의해 3년간 최소 24명이 살해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 사건 조사를 시작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태동했다. 디캐프리오는 잔혹한 학살 현장에서 때로는 방관자가, 때로는 공범이 된 한 남자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드니로는 오세이지족의 친구를 자처하지만 돈에 눈이 먼 백인 기득권 남성을 실감 나게 연기한다. 두 사람의 배역에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몰리의 무력한 모습과 표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오세이지족의 비극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러닝타임은 3시간 26분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관객들이 이 비극의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정말 제대로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신중함이 묻어났다. 입에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 ‘사랑’ ‘두려움’ 같은 단어들이 자주 흘러나왔다. 배우 조현철(36)이 연출한 첫 장편영화 ‘너와 나’가 25일 개봉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D.P.’(2021년)에서 탈영병 조석봉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7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영화는 지난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 초청돼 눈길을 끈 바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2일 만난 그는 절규하던 조석봉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차분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대중의 평가보다는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여고생들의 이야기다. 세미(박혜수)는 하은(김시은) 앞에만 서면 웃음이 흘러나온다. 하은에게 모르는 전화가 오면 괜히 심술이 나고, 하은과 함께 하굣길 석양을 보며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 손꼽아 기다리던 수학여행을 앞두고 하은은 다리를 다치고, 어떻게든 하은이를 데려가고 싶은 세미는 하은에게 떼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여고생의 어지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질 만큼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는 연출 방식을 사용했다. 조현철은 “경계를 지우고 싶었다. 너와 나, 꿈과 현실, 과거와 지금, 남자와 여자의 사랑, 여자와 여자의 사랑 등 모든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세미는 꿈속에서 하은이 죽었다며 하은과 떨어져 수학여행을 가는 것에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다. 영화 배경도 경기 안산이다. 조현철은 “2016년에 겪은 개인적인 사고를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를)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됐다”고 밝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블루 자이언트’는 온도가 너무 뜨겁게 올라 노란빛을 넘어서 푸르게 빛나는 별을 뜻한다. 재즈계에서는 무아지경에 빠져 엄청난 공연을 펼친 연주자를 무대 위에 뜬 파란 별, ‘블루 자이언트’라고 부른다. 재즈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가 18일 개봉한다. 이시즈카 신이치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그는 “20대 때 미국에서 재즈를 처음 접하고 ‘이런 음악이 있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재즈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품의 소재로 삼게 됐다”고 했다. ‘블루 자이언트’는 색소폰에 푹 빠진 주인공 다이가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가’를 목표로 무작정 도쿄에 갔다가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사와베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럼 초짜인 다마다까지 합세해 ‘재스(JASS)’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일본 최고의 재즈바 ‘소 블루’에서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연습을 시작한다. 제53회 그래미 ‘베스트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상’을 수상한 일본의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우에하라는 주인공들의 각 연주곡 작곡 및 영화 전체 음악 프로듀싱을 했다. 특히 영화 속 피아니스트 사와베 장면은 히로미가 직접 연주했다. 히로미는 “처음 만화 ‘블루 자이언트’를 읽을 때 ‘소리가 들린다’고 느꼈다. 머릿속에 울리던 그 소리를 실제로 재현할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유명 드러머 이시와카 슌을 비롯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색소폰 연주자 바바 도모아키 등이 연주를 맡았다. 러닝타임 2시간 중 총 30여 분간 라이브 연주 장면이 나온다. 가사나 대사 없이 길게는 10분 넘게 연주가 계속되지만 모두 빠른 템포의 경쾌한 곡들이라 지루하지 않다. 다만 연주자들이 리듬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장면은 다소 어색하다. 실제 연주자들의 움직임을 모션 캡처로 따와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했지만 부자연스럽다. 음악 영화인 만큼 돌비관 등 사운드에 특히 중점을 둔 상영관에서 더욱 몰입감 있게 관람할 수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우리는 훌륭하고 똑똑한 여성들을 잃기 싫을 뿐이에요. ‘산만한 엄마’처럼 보이고 싶지 않잖아요?” 멀지 않은 미래 미국 뉴욕. 이제 도시에서 흙은 찾아볼 수 없고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만이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코인’을 내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집 안에서는 진짜 식물 대신 홀로그램 식물을 기르고, 심리상담 인공지능(AI)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 3일 개봉한 영화 ‘팟 제너레이션’에 그려진 모습이다. 레이첼(에밀리아 클라크)은 거대 기술 기업 페가수스에서 인정받는 직원이다. 식물학자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남편 앨비(추이텔 에지오포)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레이첼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다. 중요한 승진을 앞두고 상사가 그녀를 불러 “가족을 늘릴 계획이 있느냐”고 물은 것. 상사는 “올해 잘하고 있는데 추진력을 잃으면 참 유감일 것 같다”며 자회사인 ‘자궁 센터’에 계약금을 내주는 회사 특전을 소개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지 말고 달걀 모양 인공 자궁인 ‘팟’을 통해 아이를 낳으라는 것.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 남편 앨비는 이에 반대한다. 하지만 “수천 년간 출산의 고통을 여자 혼자 떠안았고, 임신 중 나타나는 증상은 별것 아닌 걸로 치부돼 왔다. 이젠 멈춰야 한다”란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결국 ‘팟 아기’를 낳기로 한다. 앨비는 의외로 ‘팟’과 자연스레 교감을 시작한다. 끈을 이용해 팟을 배에 메고 다니면서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한다. 괴로운 건 레이첼이다. 팟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아이와 남편에게서 소외감을 느끼고,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진다. 3일 개봉한 ‘팟 제너레이션’은 ‘아이를 알에서 키워 낳을 수 있다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어떻게 바뀔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영화다. 아이를 낳는 일이 남녀가 동등하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되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이 전복되는 점이 흥미롭다. 임신과 출산,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HBO ‘왕좌의 게임’ 시리즈, 영화 ‘미 비포 유’(2016년)에 출연한 에밀리아 클라크가 레이첼 역을 맡았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갑자기 찾아온 엄마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레이첼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노예 12년’(2014년),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에 출연한 추이텔 에지오포는 앨비 역을 맡아 ‘팟’에 점점 애정을 느끼는 아빠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소화했다. 영화 ‘마담 보바리’(2015년)를 연출한 소피 바르트 감독의 작품으로 제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과학 기술을 주제로 한 영화에 수여하는 앨프리드 P 슬론 상을 받았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한복판에는 눈길을 끄는 초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다음 달 8일 공개되는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비질란테’ 포스터다. 영화축제의 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알리고 있어 OTT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올해 BIFF는 OTT 시리즈 섹션인 ‘온스크린’ 부문에 디즈니플러스의 ‘비질란테’, 티빙의 ‘운수 오진 날’ ‘LTNS’ ‘러닝메이트’, 웨이브의 ‘거래’까지 총 5개의 한국 작품을 초청했다. OTT 영화로는 넷플릭스의 ‘독전 2’와 ‘발레리나’가 ‘한국 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BIFF에 초청된 OTT 작품들은 상영 회차 티켓이 모두 매진될 만큼 관객 반응이 뜨거웠다. 이 가운데 유지태 남주혁 이준혁 주연의 ‘비질란테’는 BIFF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낮에는 모범적인 경찰대 학생이지만 밤이 되면 범죄자들을 직접 단죄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김규삼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넷플릭스에서 다음 달 17일 공개되는 백종열 감독의 ‘독전 2’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8년에 개봉해 5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영화 ‘독전’의 후속작으로, 전작의 결말에서 30일 전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배우 류준열 대신 오승훈이, 고 김주혁 대신 변요한이 특별 출연했다. 배우 한효주가 마약 조직 보스 ‘이선생’의 실체를 알고 있고 뒤처리를 담당하는 ‘큰칼’ 역할로 연기 변신을 했다. 티빙에서 다음 달 24일 공개 예정인 ‘운수 오진 날’은 평범한 택시기사인 오택(이성민)이 고액을 제시하는 지방행 손님(유연석)을 태우고 가다 그가 연쇄살인마임을 깨닫게 되며 공포의 주행을 시작하게 되는 내용이다. 배우 유승호의 첫 OTT 도전작인 웨이브의 ‘거래’는 군에서 갓 전역한 청년 이준성(유승호)이 도박으로 큰 빚을 지자 금수저인 친구를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총 8부작으로 이달 6일 1, 2회차가 공개됐다. 올가을 신작들을 연달아 내놓는 OTT 플랫폼들은 BIFF를 작품 홍보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BIFF에서는 출연 배우, 제작진이 야외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오픈토크’ 세션이 총 12번 열렸는데 그중 절반인 6개가 OTT 작품이었다. 배우 유승호 전종서 유지태 남주혁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8일 열린 아시아콘텐츠어워즈&글로벌OTT어워즈(ACA&G.OTT)는 올해 처음으로 모집 콘텐츠 범위를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넓혔다. 총 18개국에서 215편의 콘텐츠가 접수됐다.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베스트 크리에이티브상에 디즈니플러스의 ‘무빙’이 선정됐다. ‘무빙’은 베스트디지털 시각특수효과(VFX) 작품상, 작가상(강풀), 남자 주연배우상(류승룡)을 비롯해 남자 신인상(이정하)과 여자 신인상(고윤정)까지 휩쓸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으로 영화제에서 OTT 콘텐츠를 공개하는 경향성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OTT 플랫폼은 콘텐츠를 홍보하고 영화제는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 관객 역시 OTT 작품을 큰 스크린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어 영화와 OTT 콘텐츠의 경계는 점점 더 옅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BIFF에선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가 처음 공개됐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었던 ‘페르소나: 설리’ 프로젝트 총 5편 중 한 편으로, 설리는 촬영 중이던 2019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가 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다. 영화는 3회 상영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일반 개봉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부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는 공감을 넘어선 그 무엇을 위한 게 아닐까요. 남겨진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괴물’을 들고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괴물’은 올 5월 제76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올 3월 별세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작업한 곡이 담긴 유작이기도 하다.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상영을 위해 마련된 4000석이 5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인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 미나토의 담임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세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 상처가 나 있는 미나토를 보고 사오리는 이유를 추궁하고, 담임교사인 호리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말에 학교를 찾아간다. 호리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다. 교실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한 미나토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인데 교장은 “학교를 위한 일”이라며 거짓 사과를 강요한다. 미나토의 시각으로 영화가 시작될 때 관객들은 비로소 이 모든 오해를 이해하게 된다. 탄탄한 연출로 서스펜스와 감동, 여운을 모두 잡은 수작이다. ‘괴물’은 고레에다 감독이 자신이 쓰지 않은 각본으로 처음 연출한 작품이다. 각본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로 잘 알려진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썼다. 고레에다 감독은 각색 작업을 사카모토 작가와 함께했다. 영화에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업한 곡들이 삽입됐다. 고인이 생전 만든 마지막 영화음악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OST 소개글에서 “칠흑 같은 호수를 소방차 사이렌이 가르는 소리로 영화 첫 장면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음악은 사카모토의 것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촬영 중반쯤에는 사카모토 음악이 아니라면 이 영화에 어떤 음악도 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가 곡 작업을 해준다고 했을 때 안도감마저 느꼈다”고 고백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사카모토가 특히 마음에 들어 한 장면은 미나토가 교장 선생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음악실 장면이었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꼽은 영화 속 최고 장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비밀을 말로 털어놓는 대신 있는 힘껏 호른과 트롬본을 분다. 불협화음 같지만 두 소리는 상대를 누르거나 이기려 하지 않는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응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레에다 감독은 7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편집된 영상을 사카모토에게 보내줬을 때 사카모토가 ‘내 음악이 이 (악기) 소리들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편지를 보내줬다”며 “그의 편지를 받았을 때 무척 기뻤다”고 했다. 올해 BIFF에는 영화 ‘러브레터’(1999년)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도 신작 ‘키리에의 노래’를 들고 내한했다. 예매 시작 3분 만에 전석 매진된 화제작 ‘키리에의 노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소녀 루카(아이나 디 엔드)가 음악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뤘다.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와이 감독은 “내 고향인 센다이 지역이 당시 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영화를 통해 이 주제를 다뤄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 타이밍이 12년이 지난 지금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부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한국은 10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영화 업계가 가장 살아 있는 곳이죠. 예전에 프랑스가 영화계에서 하던 역할을 이젠 한국이 하고 있습니다.” 신작 ‘도그맨’을 들고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뤼크 베송 감독(64·사진)은 부산 해운대구 영화진흥위원회에서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가 매년 더 힘을 받고 위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특히 젊은 감독들이 약진하는 한국 영화계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영화가 강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은 두려움 없이 영화를 만든다. 그게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도그맨’은 ‘레옹’(1995년), ‘제5원소’(1997년) 등을 연출한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 의해 투견을 사육하던 철창에 갇혀 자란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에 대한 이야기로, 학대받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어떻게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 나가는지를 담았다. 눈길을 끄는 액션 속에서도 휴머니즘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 베송 감독은 “우리 모두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 준다. 나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어떻게 탈출하고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영화는 BIFF 오픈 시네마 섹션에 초청돼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됐다. 베송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20분 정도 지난 후에도 1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기뻤다.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부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부산에서 바다 건너 일본 해안에는 인구가 5만 명 남짓 되는 하기(萩)시가 있다. 지금은 야마구치(山口)현에 속해 있지만 일본 에도시대에는 조슈(長州)번을 다스리는 번청이 있던 곳이다. ‘번’은 에도시대 영주가 다스렸던 지역을 말한다. 저자들은 이 조슈번의 발전을 통해 일본의 근대사를 풀어낸다. 조슈는 에도시대 일본에서 4, 5위 안에 드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췄던 큰 번이다. 요시다 쇼인이나 기도 다카요시 등 이곳 출신 사람들이 메이지 유신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후 일본제국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걸출한 인물들도 배출했다. 우리 입장에선 침략의 원흉들이 대거 몰려 있던 곳인 셈이다. 저자들은 조슈가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희생양이 된 한국의 모습을 짚고, 뿌리 깊은 양국 혐오의 역사를 고찰한다. 1∼3장에서는 조슈 자체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담았다. 조슈가 확장돼 나갔던 과정과 서양이 그에 미친 영향을 되짚었다. 4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다 깊게 다룬다. 특히 에도시대 말기 등장한 조선 침략론인 ‘정한론(征韓論)’의 대두 과정을 파고든다. 저자들은 삼국시대 이래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있었기에 정한론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고, 한반도 혐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침략 이데올로기로 진화했는지도 살펴본다. 일본사에 익숙하지 않으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진이 풍부하게 수록돼 이해를 돕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부산국제영화제에 올 때마다 ‘내 영화를 여기서 상영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관객들과 함께 제 영화를 봤다는 게 제겐 정말 의미가 큽니다.”6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엔 한국계 미국인 영화인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마련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 이민자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2021년)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정 감독과 ‘미나리’ ‘옥자’(2017년) ‘버닝’(2018년) 등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 영화 ‘서치’(2018년)의 배우 존 조와 ‘푸른 호수’(2021년) ‘자모자야’(2022년) 등을 연출한 감독 겸 배우 저스틴 전이 부산을 찾았다.이날 기자회견에서 존 조는 “BIFF가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해준 게 영광”이라며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한국인들이 궁금해한다는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 시점에 한국에 왔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기술, 영화, 문화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은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관찰자로서 한국에 온 의미가 크고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최근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네 사람은 “반갑다”고 입을 모았다. 정 감독은 “한국 영화는 굉장히 한국적이고 독특하다. 대담하기도 하다. 그런 작업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는다”며 “(한국과 미국의 영화인들이) 서로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저스틴 전은 “한국 영화는 감정을 중시하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다. 그래서 더 흡입력과 울림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할리우드에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도 짚었다. 저스틴 전은 “이 자리에 앉아서 우리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존중받는다는 게 굉장한 힘이 된다”면서 “이제는 백인 동료들이 한국 콘텐츠를 이야기하며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한다. 제가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라고 했다. 스티븐 연은 “한국 콘텐츠의 부흥은 당연히 너무나 기쁜 일”이라며 “디아스포라(이산·離散)로 사는 사람으로서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이날 배우인 스티븐 연과 존 조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 노조 규정에 파업 중 배우들은 해외 영화제에서 작품 관련 언급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스티븐 연은 “할리우드에서 배우나 작가들에게 안전망이 없다. 업계가 이들의 미래를 보장하고 공정한 소득을 지급하도록 안전망을 확보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부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가져왔으니 갈 때도 아무것도 안 가져가도 되겠지요. 지금 제겐 점심, 저녁 흰 쌀밥 두 그릇이면 충분합니다. 당뇨가 있어서 가끔은 한 그릇만 먹기도 해요.” 배우 저우룬파(주윤발·68)는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저우룬파는 전날 개막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2018년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당시 810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그는 휴대전화 하나를 17년 동안 사용하고, 슬리퍼 차림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검소하게 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제가 아니라 아내가 기부했다. 저는 힘들게 번 돈이라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용돈을 받아 생활해야 한다”고 농담하며 울상을 짓자 장내엔 폭소가 터졌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저우룬파는 BIFF에서 ‘주윤발의 영웅본색’이라는 특별 기획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영웅본색’(1986년) ‘와호장룡’(2000년)과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다음 달 개봉하는 ‘원 모어 찬스’까지 3편을 상영한다. 코미디 가족 영화인 ‘원 모어 찬스’에서 그는 마카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발의 홀아비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키우는 아빠 역을 맡았다. 그의 코미디 연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반가울 작품이다. 그는 “이런 장르를 안 한 지 오래돼서 저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영화다. 부자지간의 정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50년을 배우로 살았지만 그는 톱스타라는 자만도,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이 초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모든 것은 환상이고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라는 불학(佛學)의 개념을 믿는다. ‘현재에 살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금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특별한 시선으로 제가 슈퍼스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다만 연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욕심만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영화가 없으면 저우룬파도 없다”며 “저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게 큰 세상을 가져다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제가 영화를 50년 더 찍으면 볼 사람들이 있을까요”라고 되묻고는 “한국에 자주 와서 미용 시술을 받아야겠다”며 웃었다. 침체된 홍콩 영화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검열이 있어서 홍콩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창작의 자유가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7월 제기됐던 건강 이상설에 대해서는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부산에 와서 아침에 이틀 연속 러닝을 했고 내일 오전에도 10㎞를 뛸 것”이라며 루머를 불식했다. 중국 배우 판빙빙(42)도 복귀작 ‘녹야’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판빙빙은 2018년 탈세 논란에 휩싸인 뒤 돌연 자취를 감춰 사망설, 실종설이 제기됐다. 중국 당국은 그에게 약 8억830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후 5년간은 공백기였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간의 생명 주기처럼 삶에도 기복이 있다. 스스로를 침착하게 가라앉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판빙빙은 ‘녹야’로 연기 변신을 꾀했다. 그동안 해왔던 당차고 진취적인 여성과는 달리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역을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진샤’는 인천 여객항 보안검색대에서 근무하는 여성으로, 남편(김영호)의 폭력에 무력감을 느끼다 자유로운 초록머리 여자(이주영)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슈아이 감독이 연출했고, 한국에서 촬영했다. 올해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부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