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진

최훈진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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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건축디자인 기사를 씁니다. 많이 보고, 듣고, 묻고 쓰겠습니다.

choigiza@donga.com

취재분야

2024-08-28~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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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로 산다는건…“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

    육아와 일, 이 두 과업의 무게는 유독 여성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가정과 일터, 그 어디에서도 내면의 고뇌를 쉽게 토로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사진 않을까, 혼자만 유난 떤다고 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서다. 신간 ‘돌봄과 작업’(돌고래)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다람)는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이런 두려움을 감내하고 용기를 낸 덕에 세상에 나왔다. 이들은 돌봄과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솔직하게 보여준다.“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임산부를 향한 아낌없는 호의, 뭔가 모의한 듯한 미소의 진짜 의미를. 이제 네 차례다, 이거지. 인류는 이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박찬욱 감독과 영화 ‘헤어질 결심’(2022년)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는2011년 둘째를 임신하고 이런 글을 썼다고 한다. 정 작가는 당시 박 감독이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 ‘스토커’(2013년)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이를 키우며 고통스럽지만 맹렬한 행복을 느꼈고, 그렇게 자신을 내어주고 엄마가 됐다.과학기술학자인 임소연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는 7살짜리 딸을 키우며 “양육이든, 연구든 타협만이 살길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가 박사 후 연구 과정을 했던 영국 런던정경대의 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캐리스 톰프슨에게서 배운 비결이다. 임 교수는 포기가 아닌 타협을 “여전히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고 의식하면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일과 육아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입양을 매개로 돌봄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입양 지원 실천가인 이설아의 글은 돌봄과 입양의 본질이 무엇인지 들춰낸다. 세 아이를 입양한 엄마로, 2015년 설립한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인 그는 ‘아동이 경험하는 입양’이란 관점에서 자녀를 입양시킨 생모와 입양해 키우는 부모, 입양인 당사자 모두를 지원한다. 아이에게 “네가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이 옳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돼 기뻤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돌봄은 받는 사람이나 건네는 사람 모두를 똑같은 온도로 감싸 안는 힘이 있다.…감정을 돌보는 것이 곧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 믿는다.” 이혼 뒤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교사인 백은선 소설가. 그는 엄마로 산다는 것을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아이의 말하는 것, 먹는 것 작은 동작 하나하나 모든 게 엄마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때로 그에게 구원이 됐다. 아이가 잠들고 조심스럽게 타자를 치던 새벽,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내 이름을 갖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랬다”고 되뇌어본다. 아이를 돌보다 지쳐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워, 고요한 새벽 날이 밝도록 컴퓨터를 마주하는 삶. 이 시대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상이 두 권의 책에 빼곡하다. 그들의 절절한 속내는 꼭 ‘엄마’가 아니라도 가슴 한쪽이 뻐근해진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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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아시오광산-구로베댐도 강제징용 감추고 세계유산 추진”

    “조선인도 당시엔 일본 국민이었으므로 강제로 노역에 동원된 것이 아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로 주목받았던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은 알려진 대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당시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역사를 반영하라’고 했지만, 일본 측은 억지 주장을 펴며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일본은 올해 9월 새로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다른 꼼수를 쓰고 있다. 니가타현의 사도(佐渡)광산을 ‘금을 중심으로 한 사도광산 유사군’으로 추진 중인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시기를 에도시대인 1867년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사도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한 조선인은 최소 1519명으로 추정된다. 재단 한일문제연구소의 양지혜 연구위원은 “엄연히 강제동원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아예 이 시기를 제외해 논란이나 지적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일본 문화청이 관리하는 ‘세계유산잠정일람표’를 살펴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 후보군으로 27개 유산이 등록돼 있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잠정 후보군에는 도치기현의 아시오광산과 도야마현의 다테야마·구로베 댐이 포함돼 있다. 모두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곳이다. 아시오광산은 일본 내에서도 광산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죽음의 땅’이란 오명이 붙어 있다. 과거엔 동아시아 최대 구리 산출지로 각광받았지만, 압사나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다. 조선인의 희생도 엄청났다. 1990년 일본 후생성이 발표한 ‘조선인노무자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40년 8월경부터 1945년 일본 패망까지 조선인 노동자 2416명”이 강제로 동원됐다. 다테야마·구로베 댐은 높이가 186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 1936∼1940년 공사가 실시된 구로베 제3발전소에서 약 10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의 조건 연구위원은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산세가 험준해 산사태 등 재해로 사망자가 많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문화청 세계유산잠정일람표에 올라 있는 2곳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다. 게다가 재단이 확인한 결과, 역사 왜곡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일본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이미 버젓이 아시오광산을 차기 세계유산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센터를 찾아 현안 실태조사를 벌인 양 연구위원은 “이미 등재를 추진하는 시설을 홍보하고 있어 아시오광산 등이 제2, 제3의 사도광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특히 일본이 군함도와 관련해 여전히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 우려는 더욱 커진다.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3차 이행경과 보고서에서도 강제동원 명시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근대산업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려 드는 만큼 우리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독일의 촐퍼라인 탄광지대처럼 강제동원에 대해 명확히 공개하고 관련 자료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근대산업유산을 이용해 지역 발전을 꾀하는 점은 배울 만하지만, 관련 역사를 은폐하는 건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며 “일본의 은폐 시도에 제대로 반박하고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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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 무시한채…제2, 제3 사도광산도 추진 중

    “조선인도 당시엔 일본 국민이었으므로 강제로 노역에 동원된 것이 아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로 주목받았던 일본 나가사키 현 하시마섬(군함도)은 알려진대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당시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역사를 반영하라’고 했지만, 일본 측은 억지 주장을 펴며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일본은 올해 9월 새로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다른 꼼수를 쓰고 있다. 니가타 현의 사도(佐渡)광산을 ‘금을 중심으로 한 사도광산 유사군’으로 추진 중인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시기를 에도시대인 1867년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사도광산에서 강제 노역을 한 조선인은 최소 1519명으로 추정된다. 재단 한일문제연구소의 양지혜 연구위원은 “엄연히 강제동원 기록이 남아있는데, 아예 이 시기를 제외해 논란이나 지적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일본 문화청이 관리하는 ‘세계유산잠정일람표’를 살펴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 후보군으로 27개 유산이 등록돼있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잠정 후보군에는 도치기 현의 아시오광산과 도야마 현의 다테야마·구로베 댐이 포함돼있다. 모두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버려가며 일했던 곳이다. 아시오광산은 일본 내에서도 광산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죽음의 땅’이란 오명이 붙어 있다. 과거엔 동아시아 최대 구리 산출지로 각광받았지만, 압사나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 조선인의 희생도 엄청났다. 1990년 일본 후생성이 발표한 ‘조선인노무자에 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940년 8월경부터 1945년 일본 패망까지 조선인 노동자 2416명”이 강제로 동원됐다.다테야마·구로베 댐은 높이가 186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 1936~1940년 공사가 실시된 구로베 제3발전소에서 약 10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의 조건 연구위원은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산세가 험준해 산사태 등 재해로 사망자가 많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문화청 세계유산잠정일람표에 올라와있는 2곳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다. 게다가 재단이 확인한 결과, 역사 왜곡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일본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이미 버젓이 아시오광산을 차기 세계유산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센터를 찾아 현안 실태조사를 벌인 양 연구위원은 “이미 등재를 추진하는 시설을 홍보하고 있어 아시오광산 등이 제2, 제3의 사도광산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특히 일본이 군함도와 관련해 여전히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 우려는 더욱 커진다.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3차 이행경과보고서에서도 강제동원 명시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근대산업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려드는 만큼 우리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독일의 졸페라린 탄광지대처럼 강제동원에 대해 명확히 공개하고 관련자료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근대산업유산을 이용해 지역 발전을 꾀하는 점은 배울만하지만, 관련 역사를 은폐하는 건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며 ”일본의 은폐 시도를 제대로 반박하고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훈진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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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 중시한 아버지 뜻 알리고파”

    “지역의 풍토(風土)를 살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중시했던 아버지의 뜻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 6일 오전 제주시 한경면 저지예술인마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저지오름(닥몰오름)이 가까운 이곳에 재일교포이자 세계적인 건축가인 고(故) 이타미 준(유동룡·1937∼2011)의 건축과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이타미준뮤지엄’이 이날 개관했다. 뮤지엄은 이타미 준이 생전에 사랑한 화산섬 제주의 야생 자연을 그대로 품었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 흔적이 드러난 암반 위에 세워졌다. 여기에 곶자왈(자연림)과 바람, 내리쬐는 햇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이타미 준의 장녀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 대표는 “흙으로 뒤덮인 땅이었는데 건물 터를 파다 보니 빌레(용암으로 형성된 평평한 암반)가 드러났다”며 “이를 고스란히 살리려 건물 배치와 설계를 전면 수정했다”고 말했다. 연면적 675m²(약 200평), 지상 2층 규모의 뮤지엄은 목재로 장식한 대형 원통형 공간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완만한 지붕을 덮었다. 제주 지형을 닮은 건축은 자연과 조응하던 이타미 준의 철학이 반영됐다. 유 대표는 “원통형 공간은 나무 원목의 결을 살려 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을 상쇄시켰다”고 했다. 뮤지엄 내부는 온전히 ‘먹의 공간’으로 꾸몄다. 노출된 콘크리트나 금속, 목재 등 소재는 다르지만 공간 전체가 먹색을 띠었다. 이타미 준이 사랑한 ‘오래된 종이의 향’을 직접 제작해 곳곳에서 그 향을 맡을 수 있다. 이곳에 흐르는 음악은 이타미 준처럼 경계인의 삶을 산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62)이 큐레이션을 맡았다. 유 대표는 “먹색은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던 이타미 준의 시그니처 색깔”이라며 “시각과 청각, 후각에 통일성을 부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상반된 재료의 믹스매치를 통해 주연으로 쓰고자 하는 재료의 본질을 부각시키셨어요. 물과 바람, 돌을 테마로 삼아 아버지가 서귀포시 안덕면에 설계한 수(水)·풍(風)·석(石) 뮤지엄에 가보셨나요. 석 뮤지엄은 돌이 단 3개뿐이에요. 돌을 주연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죠.” 유 대표는 2020년 예술 분야 사업 공모를 통해 도유지를 매입해 뮤지엄을 설계했다. 뮤지엄 설립은 2011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이타미 준이 남긴 유언을 따른 것. 유 대표는 “유언도 지키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컸기에 뮤지엄 설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뮤지엄 2층에선 개관 특별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열리고 있다. 자연이 건네는 소리에 귀 기울인 이타미 준의 작품 세계를 사진과 드로잉 스케치 등으로 소개한다. 1970년대 일본 모노파(物派·물질 및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한 사조)의 영향을 받은 그의 건축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타미 준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용했던 작업실도 재현했다. 조선 백자와 ‘토(土)’ 자가 적힌 액자 등이 전시돼 온기와 본질을 추구한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1층 라이브러리에 있는 1971년 이타미 준의 첫 작품 ‘어머니의 집’ 모형도가 인상적이다. 그가 당시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일본 시즈오카현에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람의 노래’라는 이름을 가진 티라운지와 아트숍 ‘이타미 준 에디션’도 눈길을 끈다. 뮤지엄 측은 “금속공예가 심현석 작가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타미 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을 판매한다”고 했다.제주=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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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종이향 가득한 ‘먹’의 공간… 다시 만난 이타미준의 세계

    “지역의 풍토(風土)를 살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중시했던 아버지의 뜻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6일 오전 제주시 한경면 저지예술마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저지오름(닥몰오름)이 가까운 이곳에 재일교포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고(故) 이타미준(유동룡·1937~2011)의 건축과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이타미준뮤지엄’이 이날 개관했다. 뮤지엄은 이타미준이 생전에 사랑한 화산섬 제주의 야생 자연을 그대로 품었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 흔적이 드러난 암반 위에 세워졌다. 여기에 곶자왈(자연림)과 바람, 내리쬐는 햇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이타미준의 장녀인 유 대표는 “흙으로 뒤덮인 땅이었는데 건물 터를 파다보니 빌레(용암으로 형성된 평평한 암반)가 드러났다”며 “이를 고스란히 살리려 건물 배치와 설계를 전면 수정했다”고 말했다. 연면적 675㎡(약 200평), 지상 2층 규모의 뮤지엄은 목재로 장식한 타원형 기둥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완만한 지붕을 덮었다. 제주 지형을 닮은 건축은 자연과 조응하던 이타미준의 철학이 반영됐다. 유 대표는 “타원형 기둥은 나무 원목의 결을 살살려 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을 상쇄시켰다”고 했다. 뮤지엄 내부는 온전히 ‘먹의 공간’으로 꾸몄다. 노출된 콘크리트나 금속, 목재 등 소재는 다르지만 공간 전체가 먹색을 띄었다. 이타미준이 사랑한 ‘오래된 종이의 향’을 직접 제작해 곳곳에서 그 향을 맡을 수 있다. 이곳에 흐르는 음악은 이타미준처럼 경계인의 삶을 산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62)이 큐레이션을 맡았다. 유 대표는 “먹색은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던 이타미준의 시그니처 색깔“이라며 “시각과 청각, 후각에 통일성을 부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아버지는 상반된 재료의 믹스매치를 통해 주연으로 쓰고자하는 재료의 본질을 부각시키셨어요. 물과 바람, 돌을 테마로 삼아 아버지가 서귀포시 안덕면에 설계한 수(水)·풍(風)·석(石) 뮤지엄에 가보셨나요. 석 뮤지엄은 돌이 단 3개 뿐이에요. 돌을 주연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죠.”유 대표는 2020년 예술 분야 사업 공모를 통해 도유지를 매입해 뮤지엄을 설계했다. 뮤지엄 설립은 2011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이타미준이 남긴 유언를 따른 것. 유 대표는 “유언도 지키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컸기에 뮤지엄 설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뮤지엄 2층에선 개관 특별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준’이 열리고 있다. 자연이 건네는 소리에 귀기울인 이타미준의 작품 세계를 사진과 드로잉 스케치 등으로 소개한다. 1970년대 일본 모노파(物派·물질 및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한 사조)의 영향을 받은 그의 건축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타미준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용했던 작업실도 재현했다. 조선 백자와 ‘토(土)’ 자가 적힌 액자 등이 전시돼 온기와 본질을 추구한 그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1층 라이브러리에 있는 1971년 이타미준의 첫 작품 ‘어머니의 집’ 모형도가 인상적이다. 그가 당시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일본 시즈오카현에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람의노래’라는 이름을 가진 티라운지와 아트숍 ‘이타미준 에디션’도 눈길을 끈다. 뮤지엄 측은 “금속공예가 심현석 작가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타미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을 판매한다“고 했다.제주=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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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흥식 추기경 “北, 교황 방북으로 돌파구 찾을 수도”

    “(교황께선) 북한이 초대하면 거절하지 않으실 겁니다. (북한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 땐 교황 방북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인 성직자 최초로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되고 올 8월 한국의 4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유흥식 추기경(71·사진)이 2일 장관 임명 뒤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지금까지 북한에서 이런저런 대응은 없는 것으로 안다. 북한이 외교적으로 실리를 많이 계산할 것”이라며 “교황 방문은 세계에 신뢰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휴가 차 방한한 유 추기경은 이날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도 밝혔다. 유 추기경은 한국이 지향할 사회에 대해서는 “정직하고 투명하길 바란다”며 “좋은 머리를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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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 생애를 바쳐 생의 한 조각을 찾아 헤맨 남자

    중국 남쪽 도시 시진(市鎭)에 머물게 된 북쪽 출신의 린샹푸는 약 10년 전 북쪽에서 젖먹이 딸을 데리고 내려왔다. 금괴를 훔쳐 달아났다가 돌연 다시 돌아와 아이를 낳은 뒤 또다시 출산 한 달여 만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 부인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부인을 만나 딸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먼 길을 나선 린샹푸. 샤오메이는 린샹푸에게 자기 고향이 ‘원청’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누구도 모르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다. 하지만 우연히 시진에서 자신이 스쳐 지나가는 도시로 여겼던 이곳이 원청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린샹푸와 모르는 여성에게 돈을 줘가며 젖동냥으로 키운 딸 린바이자에게 시진은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 잡는다. 지난해 중국에서 출간한 ‘원청’은 1년 만에 1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장편소설이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저자가 ‘제7일’ 이후 8년 만에 낸 신간이다. 소설의 배경은 청나라가 무너져 전란이 그치지 않던 대격변기다. 시민을 지켜야 할 군은 오히려 시민을 강탈하고, ‘토비’로 불리는 도적이 난립하던 시대. 목공 기술이 뛰어나 시진에서 대부호가 된 린샹푸는 토비에게 언제 빼앗길지 모를 강 건너 완무당의 비옥한 땅을 계속 사들인다. 엄마 품에 매달리는 것과 비슷한 절절함으로. 완무당은 린샹푸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곳이다. 시진을 처음 찾은 해, 거센 회오리바람을 만나 배를 타고 있다가 젖도 못 뗀 린바이자를 놓쳤다. 삶의 모든 것이던 딸을 잃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지려는 순간, 린샹푸는 완무당이 훤히 보이는 나무 위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딸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가 완무당에 절절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 필연적 사건은 그날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 “딸을 잃어버리면 은표를 또 어디다 쓰겠습니까.” 고향 땅을 저당 잡힌 뒤 받은 은표를 딸의 옷 속에 넣는 린샹푸. 엄마 없이 자라난 딸이 그가 끝까지 삶을 이어나가게 해준 버팀목이자 이유였던 셈이다. 이야기는 린샹푸를 중심으로 펼쳐지다 후반부에서는 샤오메이로 넘어간다. 삶을 통째로 옮겨 평생을 기다렸어도 끝내 만나지 못한 부인, 그 운명은 어땠을지 기대하며 읽게 된다. 린샹푸와 가까워지면 마음이 평온해졌던 그는 본래 남편 아청과 시진으로 돌아와 살며 가슴에 묻은 딸 린바이자를 엿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옷가지만 전한다. 천재지변과 전쟁, 환란의 한가운데 놓인 린샹푸는 역사적으로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는 대혼란 속에 태어나 고단한 삶을 살아낸 평범한 중국인의 모습이다. 중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전작으로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된 저자는 ‘원청’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찾고 추측하고 조각을 맞춘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운명의 조각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이들이라면 우리네와 닮은 애환을 지닌 린샹푸를 만나 서로를 다독일 수 있지 않을까.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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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환란의 시대…운명의 조각을 찾아 나서다’…8년 만에 신간 낸 위화

    중국 남쪽 도시 시진(市鎭)에 머물게 된 북쪽 출신의 린샹푸는 약 10년 전 북쪽에서 젖먹이 딸을 데리고 내려왔다. 금괴를 훔쳐 달아났다가 돌연 다시 돌아와 아이를 낳은 뒤 또 다시 출산 한 달 여 만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 부인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부인을 만나 딸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먼 길을 나선 린샹푸. 샤오메이는 린샹푸에게 자기 고향이 ‘원청’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누구도 모르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다. 하지만 우연히 시진에서 자신이 스쳐지나가는 도시로 여겼던 이곳이 원청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린샹푸와 모르는 여성에게 돈을 줘가며 젖동냥으로 키운 딸 린바이자에게 시진은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 잡는다. 지난해 중국에서 출간한 ‘원청’은 1년 만에 1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장편소설이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저자가 ‘제7일’ 이후 8년 만에 낸 신간이다. 소설의 배경은 청나라가 무너져 전란이 그치지 않던 대격변기다. 시민을 지켜야할 군은 오히려 시민을 강탈하고, ‘토비’로 불리는 도적이 난립하던 시대. 목공 기술이 뛰어나 시진에서 대부호가 된 린샹푸는 토비에게 언제 빼앗길지 모를 강 건너 완무당의 비옥한 땅을 계속 사들인다. 엄마 품에 매달리는 것과 비슷한 절절함으로. 완무당은 린샹푸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곳이다. 시진을 처음 찾은 해, 거센 회오리바람을 만나 배를 타고 있다가 젖도 못 뗀 린바이자를 놓쳤다. 삶의 모든 것이던 딸을 잃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지려는 순간, 린샹푸는 완무당이 훤히 보이는 나무 위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딸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가 완무당에 절절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 필연적 사건은 그날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 “딸을 잃어버리면 은표를 또 어디다 쓰겠습니까.” 고향 땅을 저당 잡힌 뒤 받은 은표를 딸의 옷 속에 넣는 린샹푸. 엄마 없이 태어난 딸이 그가 끝까지 삶을 이어나가게 해준 버팀목이자 이유였던 셈이다. 이야기는 린샹푸를 중심으로 펼쳐지다 후반부에서는 샤오메이로 넘어간다. 삶을 통째로 옮겨 평생을 기다렸어도 끝내 만나지 못한 부인, 그 운명은 어땠을지 기대하며 읽게 된다. 린샹푸와 가까워지면 마음이 평온해졌던 그는 본래 남편 아청과 시진으로 돌아와 살며 가슴에 묻은 딸 린바이자를 엿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옷가지만 전한다. 천재지변과 전쟁, 환란의 한가운데 놓인 린샹푸는 역사적으로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는 대혼란 속에 태어나 고단한 삶을 살아낸 평범한 중국인의 모습이다. 중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전작으로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된 저자는 ‘원청’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찾고 추측하고 조각을 맞춘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운명의 조각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이들이라면 우리네와 닮은 애환을 지닌 린샹푸를 만나 서로를 다독일 수 있지 않을까.최훈진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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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녀비 연구하고… 조선왕조실록 해독하고…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미국과 체코, 홍콩, 태국,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대학원생 5명이 2층 강의실로 모여들었다. 이날 수업은 ‘한문연수 펠로십’ 심화반 과정으로, 한문학자인 김지현 박사(49)가 강의했다.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편에서 ‘무엇을 지언(知言·말을 안다)이라 할 수 있느냐’는 제자 공손추의 질문에 맹자가 답하는 대목 원문을 빔 프로젝트로 띄운 김 박사는 화이트보드에 산 하나를 그렸다. “산의 한쪽 면은 완만하고 다른 쪽은 가파르죠? 가파른 쪽에서 산을 바라본 사람은 산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까요?” 한쪽 면만 보고 말하는 ‘피사(詖辭·공정하지 않고 치우친 말)’는 다른 면을 간과한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외국인 한국학 전공자를 위한 고전 강의는 2019년 시작됐다. 독일 보훔대 마리온 에거트 교수 등 해외 한국학자들이 “차세대 한국학자를 위해 한문 교육을 지원해 달라”고 건의했고 연구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회차당 4개월씩 진행하는 펠로십은 1년에 1, 2회 열린다. 올 하반기 6회 차를 맞았다. 동양 고전을 비롯해 실학자 유득공의 한시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나 추사 김정희의 문집 ‘완당전집’ 등 조선 문헌도 가르친다. 학생들에게는 숙식과 체재비 월 100만 원을 제공한다. 체코 국립카를대 한국학과 박사 과정생인 코치노바 카테리나 씨는 “조선 재난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데 한문 문장을 익히니 조선왕조실록도 직접 해석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연구원은 “해외 대학에서 한국식 한문을 가르치는 곳이 없어 펠로십을 통해 한문 교육을 처음 접했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열녀비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홍콩 출신 찬윙샨 씨(영국 런던 소아스대 한국학과)는 주말마다 경북 안동 등으로 가 조선 ‘열녀비’를 연구한다. “비문을 읽고 논문에 필요한 자료 조사를 할 수 있어 신납니다. 내실 있는 한국학 연구로 꼭 보답할게요.” 성남=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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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실록, 직접 해석하니 기뻐” 한문 배우는 외국인 대학원생들

    기습 한파가 찾아온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학생 5명이 2층 강의실로 모여들었다. 미국과 체코, 홍콩, 태국,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대학원생이다. 이날 강의는 ‘한문연수 펠로십’ 심화반 과정. 9월부터 시작된 강의는 한문학자인 김지현 박사(49)가 한다.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편에서 ‘무엇을 지언(知言·말을 안다)이라 할 수 있느냐’는 제자 공손추의 질문에 맹자가 답하는 대목 원문을 빔프로젝트로 띄운 김 박사는 대뜸 화이트보드에 산 하나를 그렸다.“산의 한쪽 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다른 쪽은 가파르죠? 가파른 쪽에서 산을 바라본 사람은 산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까요?” 한쪽 면만 보고 하는 ‘피사(詖辭·공정하지 않고 치우친 말)’는 가려진 부분이 있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모두 한국말이 유창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외국인 한국학 전공자를 위한 고전 강의는 2019년 시작됐다. 독일 보쿰대의 마리온 에거트 교수 등 해외 한국학자들이 “차세대 한국학자를 위해 한문 교육을 지원해 달라”고 건의했고 연구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회차 당 4개월씩 진행하는 펠로십은 1년에 1, 2회씩 열린다. 올 하반기 6회차를 맞았다. 학생들에게는 숙식과 월 100만 원의 체제비도 제공한다. 동양 고전을 비롯해 실학자 유득공의 한시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나 추사 김정희의 문집 ‘완당전집’ 등 조선 문헌도 가르친다. 한국학을 연구하며 고문헌을 읽으려면 한문 독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체코 국립찰스대 한국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코치노바 카테리나 씨는 “현재 조선 재난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데 한문 문장의 구조나 글자를 익히니 조선왕조실록도 직접 해석해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으로 접한 고문서는 번역된 것조차 이해가 되질 않았다”며 “체코에서 도저히 해결되지 않던 고민을 한국에 와서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원은 “해외 대학에서 한국식 한문을 가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펠로십을 계기로 한문 교육을 처음 접했다는 외국인 전공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직접 현지 조사를 하는 학생도 있다. 영국 런던 소아스대 한국학과 박사 과정인 홍콩 출신 찬윙샨 씨는 주말마다 경북 안동 등에 가서 조선 ‘열녀비‘를 연구한다. 열녀비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비문을 읽으려면 한문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해요. 펠로십을 계기로 논문에 필요한 자료 조사를 할 수 있어 신납니다. 청강하고 있는 한국학 대학원 고문헌관리학 수업도 큰 도움이 되고요. 내실 있는 한국학 연구로 꼭 보답할게요.” 최훈진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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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이드&인사이트]“사라질 위기 제주 말 지켜줍서예” 사전 만들고 박물관 추진

    《“딴 데 강(가서) 살지. 무사(왜) 물질 헌댄(한다고) 이디왕허낸(여기와서는).”올 4∼6월 방영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 해녀 춘희(고두심)가 뭍에서 온 신참 해녀 영옥(한지민)을 면박 주며 한 말이다. 찰진 제주어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현지인이 아니면 알아듣기 힘든 방언 때문에 종종 자막을 달았다.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모은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에도 제주어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너는 과외선생이주 부름씨 하는 사름 아니여(너는 과외선생이지 심부름꾼이 아니다).” “오늘은 배 뽕끄랑허게 먹어보게(오늘은 배 터지도록 먹어보자).” 일본 요코하마로 이민 간 제주 출신 고종렬(정웅인)이 아들 한수(이민호)에게 하는 제주어는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어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방언 중 하나이지만 다른 지방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표준어와 거리가 있다. 발음도 독특하지만,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고 아래아(·)와 같은 중세 국어의 고형(古形)이 많이 남아 있다. 제주어가 한반도에 있는 다양한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위상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제주어가 처한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제주어 자체가 표준어와 워낙 동떨어진 데다 정부의 표준어 중심 교육의 영향으로 제주어는 갈수록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제주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에 제주 현지를 중심으로 제주어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도의 ‘제주어박물관’ 건립 추진이다. 도와 제주학연구센터는 이달 10일 박물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시행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제주어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연구 및 교육, 전시 등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담당할 박물관 건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대 단절로 제주어 소멸 가속화 제주어 소멸 위기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0년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유네스코는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취약 △소멸 위기 △심각한 소멸 위기 △소멸 고비 △소멸 등 5단계로 구분한다. 제주어는 이 중 4단계에 해당하는 ‘소멸 고비’에 처한 언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6년부터 유네스코가 제작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AWL)’에서 제주어는 “1만 명이 되지 않는 사용 인구를 가진 언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어의 단계를 구분하는 척도는 ‘세대 간 언어 전승’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여기에 전체 인구 대비 해당 언어 구사자 비율, 언어 교육과 읽고 쓰기 자료 사용 여부, 언어에 대한 지역 사회 구성원의 태도 등 총 9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그만큼 제주어는 젊은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제주어의 소멸 위기어 지정에는 제주대 국어문화원이 국립국어원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보고서’(2008년)가 큰 영향을 끼쳤다. 국어문화원은 20대와 50대, 70대에서 각 80명씩 240명에게 실생활에서 알아듣고 쓸 수 있는 보편 제주어 어휘 수를 조사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70%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한 어휘는 6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어디 감수강(어디 가십니까), 잘 갑서(잘 가세요), 기여(그래), 하영(많이), 갑서(가요), 가쿠다(가겠다) 등이다. 제주대 책임연구원으로 해당 조사를 진행했던 강영봉 명예교수(제주어연구소장)는 “유네스코 소속 연구자가 직접 찾아와 제주어 사용 실태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다”며 “제주어 사용 인구수는 2010년 제주통계연보 기준 70∼75세 토박이 원주민 수(5000∼1만 명)로 추산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기준으로 제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을 살핀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훨씬 더 수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 “초등 교육에 ‘제주어 수업’ 넣어야” 제주어는 이대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제주 문화와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주어 보존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제주어 박물관 건립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제주학연구센터의 김미진 전문연구위원은 “제주어 보전은 역사성이 풍부한 언어를 지킨다는 의미 외에도, 현대 국어와 중세 국어를 연결할 고리가 된다는 측면에서 국어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했다. 보존을 위한 기본적인 틀은 어느 정도 갖췄다. 제주도는 2007년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제정했다. 2009년부터는 5년 단위로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해마다 약 9억 원을 들여 노출과 활용, 조사연구 등 4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조사연구가 결실을 맺어 진행 중인 대표적인 사업이 ‘제주어 대사전’이다. 2024년 완간을 목표로 기존 제주어사전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제주어사전 애플리케이션(앱)도 나왔다. ‘소랑이나 호게 마씀’(사랑이나 합시다요) ‘무싱 거옌 고릅디가?’(뭐라고 말하던가요?) ‘귀 눈이 왁왁해라’(눈앞이 캄캄하니 정신이 없더라) 등 생활 방언을 소개해 젊은 세대도 비교적 쉽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정책이나 학술 연구 등으로 언어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제주어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소멸 위기를 벗어난 언어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의 마오리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마오리어는 1960년대 마오리족 다수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종족의 고유문화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 문화와 언어를 보전하기 위해 마오리어만 가르치는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87년에는 마오리어를 법적 공용어로 지정했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마오리어가 뉴질랜드의 고유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마오리어 사용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제주어의 보전을 위해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제주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승택 전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 영어 등 제2외국어처럼 제주어만 사용하는 수업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며 “제주를 배경으로 다룬 현기영 작가의 단편소설 ‘순이삼촌’이나 영화 ‘지슬’, 강요백 화백의 미술 작품 등을 다룬다면 효과적으로 제주어를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옥외 간판이나 버스정류장 안내문, 각 기관 홈페이지나 관광정보센터에 제주어를 병기해 친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영희 제주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은 2020년 논문 ‘제주어의 현재와 미래’에서 이를 제안했다. 강영봉 교수는 “강원도와 전남도 등 다른 지자체도 제주를 표방해 방언사전을 만들 정도로 제주는 지역어 보급에 앞장서 왔다”며 “언어 습득이 13세에 완료된다는 점을 감안해 어릴 때부터 친숙하게 만들어야 제주어 보존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진 문화부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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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가와 청나라 학자들의 교류, 現 한중관계 시사하는 바 커”

    “어쩌다 만나 한방에서 함께 잔치하며 초록빛 술과 붉은 등불 아래에서 예술을 말하고 붓을 휘둘렀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만 리 떨어져 있어도 한 하늘 아래이고 멀리 있지만 날마다 가까이 한다는 말로 한갓 위로를 삼을 뿐입니다.”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 편지는 청나라의 시인 겸 서예가인 이병수가 내년에 사신으로 갈 것 같다고 전한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1750∼1805)에게 1792년 보낸 답장이다. 박제가가 청나라 지식인 172명과 나눈 필담, 시문, 서신을 모아놓은 ‘호저집(縞紵集)’이 우리말로 이달 처음 완역됐다. 2020년부터 3년간 제자들과 함께 호저집을 번역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사진)를 2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박제가만큼 청나라 학계에서 명성 높은 학자들과 많이 그리고 깊게 오랫동안 교류한 사례는 없었다”며 “200년 전 두 나라 지식인들이 나눈 존모(尊慕)의 정을 보여주는 호저집은 현재 한중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조선 후기 한문학 4대가로 꼽혔던 박제가는 20대 후반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기 전인 1778년부터 1801년까지 4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이를 통해 청나라 학계의 거목인 기윤, 옹방강 등 일급 지식인과 교유했다. 호저집 완역본 발간은 경기문화재단 산하 실학박물관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추진했다. 중국은 2016년부터 한국 콘텐츠의 수입을 막는 한한령(限韓令)을 시행해 왔다. 그나마 15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한국 영화 서비스가 재개됐다. 정 교수는 “국가 간 교류는 상황에 따라 틀어질 수 있지만 문화 교류를 통한 신뢰와 존중은 영원히 남는다”면서 “지금처럼 한중 간 문화 교류가 차단된 현실에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인간적인 만남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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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년 전 청나라 고관도 줄 섰던 박제가…“현 한중 관계에 시사하는 바 커”

    “어쩌다 만나 한방에서 함께 잔치하며 초록빛 술과 붉은 등불 아래에서 예술을 말하고 붓을 휘둘렀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만 리 떨어져 있어도 한 하늘 아래 있고 멀리 있지만 날마다 가까이 한다는 말로 한갓 위로를 삼을 뿐입니다.”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 편지글은 청나라 시인 겸 서예가인 이병수가 내년에 사신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한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에게 1792년 보내온 답장이다. 박제가는 20대 후반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기 전 해인 1778년부터 1801년까지 4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로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조선 후기 한문학 4대가로 꼽혔던 그는 청나라 학계의 거목인 기윤, 옹방강 등 일급 지식인과 교류했다. 그가 청나라 지식인 172명과 나눈 필담, 시문, 서신을 모아놓은 ‘호저집’(縞紵集)이 우리말로 이달 처음 완역됐다. 호저집 완역본 출간은 경기문화재단 산하 실학박물관(관장 정성희)이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정 교수에게 협업 요청을 하면서 이뤄졌다. 2020년부터 3년간 제자들과 함께 호저집을 번역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제가만큼 청나라 학계의 명성 높은 정상급 학자들과 이처럼 많고 깊은 교류를 오랫동안 나눈 사례는 없었다”면서 “200년 전 두 나라 지식인이 나눈 존모(尊慕)의 정을 보여주는 호저집은 작금의 한중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한국의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발해 2016년부터 드라마나 영화 등 한국 문화 콘텐츠의 수입을 막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실시해 왔다. 그나마 15일 진행된 한중정상 회담으로 물꼬를 터 중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한국 영화 서비스가 재개됐다. 정 교수는 “국가 간 교류는 이익을 전제로 하기에 상황이 틀어질 수 있지만 학술이나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신뢰와 존중은 영원히 남는다”면서 “지금처럼 한중 간 문화 교류까지 차단된 현실에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인간적인 만남을 떠올려 관계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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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방가사 등 3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고려시대 일연 스님(1206∼1289)이 고대의 역사와 신화를 담아 쓴 ‘삼국유사’와 조선 후기 여성들이 한글로 쓴 문학 작품인 ‘내방가사’, 충남 태안의 유류 피해 극복 기록물 등 3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으로 26일 등재됐다. 문화재청과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날 경북 안동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 지역위원회(MOWCAP) 총회에서 우리나라 기록물 3건이 새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세계기록유산 지역목록은 세계 5개 지역(유럽-북미, 아시아태평양, 중동, 아프리카, 남미-카리브해)에 영향을 끼친 기록물이 등재된다. 이번 등재로 우리나라 지역목록은 한국의 편액(옛 건축물 처마와 문 사이에 글씨를 새겨둔 표지판), 조선 시대 유생들이 왕에게 올린 청원서인 만인소 중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1855년)와 ‘복제 개혁 반대 만인소’(1884년), 조선왕조 궁중 현판까지 총 6건이 됐다. 삼국유사는 13세기 민족 중심의 주체적 역사관을 형성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동에서 주로 전해져 온 내방가사(1796∼1969년)는 여성의 주체적 활동의 결과물로 인정받았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세계기록유산팀장은 “내방가사는 한글이 창제된 후 보편 문자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했다. ‘태안 유류 피해 극복 기록물’(약 22만2000건)은 2007년 12월 태안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류 유출 사고의 극복 과정을 보여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기록유산 지역목록 6건과 함께 국제목록 16건까지 세계기록유산을 모두 22건 보유하게 됐다.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가 선정하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는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등 16건이 올라 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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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루게릭병의 규칙’ 깨고 시한부 삶 너머로 가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신체장애는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2017년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진단을 받은 영국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모건(1958∼2022)은 이를 시험하기 위해 직접 사이보그가 되기로 결심한다. 굳어가는 신체에 서서히 갇혀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기꺼이 인류의 번영을 위한 시험대에 올렸다. 통계적으로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2명 가운데 1명이 2년 내에 숨진다고 한다. 하지만 꼭 정해진 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의학에 기술을 접목하면 시한부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저자는 증명하려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몸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이다. 인류 최초로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모든 사람은 우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주를 바꾸기 위한 필요조건은 ‘룰(규칙)’을 깨는 것이다.” 열여섯 살에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그는 어릴 때부터 기존 세상과의 반란을 꿈꿨다. 이러한 인식은 그에게 가장 친숙했던 가정과 학교가 성적(性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며 더욱 깊어졌다. 그는 친구 앤서니에게 기존의 룰을 깨고 우주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앞으로는 불공평한 현실을 참지 않기로 했어. 그것을 바꿀 거야. 얻어맞고 복종하는 것도, 선택지를 빼앗기고 다수에 맞춰 사는 것도 하지 않아.” 하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른 루게릭병의 룰을 깨는 건 너무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의학계는 몸이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하기 전 공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그의 접근 방식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멀쩡한 장기(위, 결장, 방광)에 관을 삽입하고, 목 쪽에 있는 후두(喉頭)를 떼어내는 데 성공한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기 전에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먹고 배설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게 됐다. 다만 후두 적출로 침이 기도로 넘어가 질식할 위험이 사라졌지만 목소리도 함께 잃었다. 이에 실제 목소리와 유사한 합성 음성도 구현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요청한다. “내 뇌의 관점에서 상황을 봐줘. 몸에서 해방된 뇌가 나를 따라 특별한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여행은 생명에 적대적인 ‘암흑의 허공’으로 가는 편도행이야. 그렇다면 적어도 이 기회를 이용해 ‘발견의 항해’를 해보려고 해. 첨단 기기를 암흑의 세계로 가져가고 싶어. 사고나 질병으로 몸이 마비된 모든 사람의 삶을 혁명적으로 개선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 사이보그 목소리와 아바타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한 그는 2019년 10월 AI 사이보그에 가까운 존재 ‘피터 2.0’으로 변신을 완료했다. 사이보그로 살길 꿈꿨던 그는 올해 6월 세상을 떠났다. 인간이 가상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인격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 미래는 과연 찾아올까. 그가 ‘피터 2.0’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동안 영국에선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그는 오랜 연인 프랜시스와 영국에서 처음 예식을 치른 동성 커플로 기록되기도 했다. 세상의 룰을 깨려 했던 그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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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한부’ 루게릭에 맞서 사이보그가 된 로봇공학자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신체장애는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2017년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진단을 받은 영국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 모건(1958~2022)은 이를 시험하기 위해 직접 사이보그가 되기로 결심한다. 굳어가는 신체에 서서히 갇혀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기꺼이 인류의 번영을 위한 시험대에 올렸다. 통계적으로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2명 가운데 1명이 2년 내에 숨진다고 한다. 하지만 꼭 정해진 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의학에 기술을 접목하면 시한부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저자는 증명하려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몸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이다. 인류 최초로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모든 사람은 우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주를 바꾸기 위한 필요조건은 ‘룰(규칙)’을 깨는 것이다.” 열여섯 살에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그는 어릴 때부터 기존 세상과의 반란을 꿈꿨다. 이러한 인식은 그에게 가장 친숙했던 가정과 학교가 성적(性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며 더욱 깊어졌다. 그는 친구 앤서니에게 기존의 룰을 깨고 우주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앞으로는 불공평한 현실을 참지 않기로 했어. 그것을 바꿀 거야. 얻어맞고 복종하는 것도, 선택지를 빼앗기고 다수에 맞춰 사는 것도 하지 않아.” 하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른 루게릭병의 룰을 깨는 건 너무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의학계는 몸이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하기 전 공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그의 접근 방식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멀쩡한 장기(위, 결장, 방광)에 관을 삽입하고, 목 쪽에 있는 후두(喉頭)를 떼어내는데 성공한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기 전에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먹고 배설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게 됐다. 다만 후두 적출로 침이 기도로 넘어가 질식할 위험이 사라졌지만 목소리도 함께 잃었다. 이에 실제 목소리와 유사한 합성 음성도 구현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요청한다. “내 뇌의 관점에서 상황을 봐줘. 몸에서 해방된 뇌가 나를 따라 특별한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여행은 생명에 적대적인 ‘암흑의 허공’으로 가는 편도행이야. 그렇다면 적어도 이 기회를 이용해 ‘발견의 항해’를 해보려고 해. 첨단 기기를 암흑의 세계로 가져가고 싶어. 사고나 질병으로 몸이 마비된 모든 사람의 삶을 혁명적으로 개선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 사이보그 목소리와 아바타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한 그는 2019년 10월 AI 사이보그에 가까운 존재 ‘피터 2.0’으로 변신을 완료했다. 사이보그로 살길 꿈꿨던 그는 올해 6월 세상을 떠났다. 인간이 가상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인격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 미래는 과연 찾아올까. 그가 ‘피터2.0’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동안 영국에선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그는 오랜 연인 프랜시스와 영국에서 처음 예식을 치른 동성 커플로 기록되기도 했다. 세상의 룰을 깨려 했던 그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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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의 최후’ 담긴 류성룡 일기 日서 귀환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副將)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아!” 서애 류성룡(1542∼1607)이 1600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다이어리’ 격인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가 일본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에선 전해지지 않았던 사료인 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순간을 묘사한 기록까지 있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화재청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영의정까지 올랐던 문신 류성룡의 소장품으로 보이는 경자년(1600년) 대통력을 9월 일본에서 환수했다”며 유물을 처음 공개했다. 대통력이란 날짜와 절기 등에 따라 일정이나 감상을 정리한 책으로 오늘날로 치면 다이어리와 비슷하다. 경자년 대통력은 가로 20cm, 세로 38cm로 A4용지보다 조금 큰 크기다. 류성룡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203일에 걸쳐 실려 있다. 일월과 절기는 활자로 인쇄됐으며, 그 옆에 여러 내용이 먹물로 쓴 묵서(墨書)와 붉은색으로 쓴 주서(朱書)로 기입돼 있다. 그날의 날씨나 개인적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술 제조법 등이 적혀 있다. 충무공에 대한 기록은 서애의 징비록(懲毖錄)과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문화재청의 정제규 전문위원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룬 징비록은 객관적 서술이 주를 이루지만, 경자년 대통력은 서애의 다양한 감정이 묻어난다”며 “충무공이 서애의 관직 파면 소식을 듣고 애석해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5월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의 제보를 받고 환수 작업에 착수했다. 노승석 여해연구소장은 해당 유물의 필적과 정보를 유성룡 문집 서애집에 실린 서애서생연보(西厓先生年譜)와 비교 검증해 그의 수택본(手澤本·직접 소장해 손때가 묻은 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 위원은 “경자년 대통력은 국내에는 현존하지 않아 사료적 가치가 크다”며 “서애 종손이 소장하고 있는 대통력 6책이 보물로 지정돼 있는데, 이번에 환수한 대통력 역시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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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軍침략 후 민간인 이주… 식민 침탈 심해”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배 때 주로 선교사나 민간인이 먼저 진출한 뒤 군이 뒤따라가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반면 일제는 군을 먼저 보내 침략한 뒤 민간인이 이주했어요. 식민 지배를 받는 국민들의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신주백 전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장(59)이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18일 열린 학술대회 ‘일제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에서 일제가 일본군을 앞세워 한반도 등 식민지를 지배하는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신 전 소장은 지난해 12월 출간한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 운영’을 통해서도 일본 침탈사(史)에서 군의 역할에 대해 조명했다. 신 전 소장은 23일 인터뷰에서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09년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벌였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이라고 했다. 당시 호남 내륙에 일제가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던 건 일본군이 의병 탄압을 명목으로 진행한 토벌작전을 통해 무력 진압한 뒤 일본 민간인의 대규모 이주를 실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일제가 청과 마찰을 빚던 간도 영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한일병합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며 “일제는 대만 등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침략 및 식민 지배 행위를 이어갔다”고 했다. 신 전 소장은 앞서 9월 일제의 광주항공기지 지도(1945년 8월 제작)를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일본 방위성에서 발굴한 해당 지도를 연구해 광주 서구 일대에 일제의 탄약고 3개와 유류고 4개가 존재한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신 전 소장의 연구를 포함해 일본의 침탈사를 다룬 연구총서 편찬 사업을 2019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편찬위원장인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그동안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활발히 연구돼 왔으나 일제 군과 경찰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배 정책에 대한 연구가 다소 부족했다”며 “신 전 소장 등의 연구는 이런 부분을 채워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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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우크라 교과서에 ‘한강 기적’ 실렸다… “국가 재건 희망 줄것”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1960년대 낙후된 농업 중심 경제에서 1980년대에 이미 높은 경제성장률로 ‘아시아의 호랑이’란 칭호를 얻었다. 현재는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일 정도로 성장했다. 또 한국은 하이테크놀로지 제품 생산에 있어 세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우크라이나 10학년 교과서 ‘세계지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련 내용을 담아 간행한 고교 정규 교과서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와 교과서 집필에 함께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6·25전쟁 뒤 한국의 경제 발전을 다룬 우크라이나 10학년(고교 2년) 세계지리 교과서를 이달 초 우크라이나 연구진이 직접 전달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원에 따르면 기존 우크라이나 교과서는 아시아 국가 중에는 중국과 일본, 인도만 다뤘으나 이번에 한국을 특별 섹션으로 추가했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는 올해 9월 20일 홈페이지에 교육과정 가이드라인 변경을 공지하며 이를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출판사 ‘페룬’이 발행한 256쪽 분량의 교과서에는 6쪽에 걸쳐 한국의 경제 성장을 상세히 소개했다. 교과서에는 “서울은 싱가포르와 홍콩 도쿄 두바이 상하이와 함께 아시아의 최대 금융 중심지 가운데 하나”, “부산은 아시아에서 최대 항구 가운데 하나”라는 내용이 지도와 함께 표기됐다. 특히 한국 기업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은 고도의 자본 집중과 기업 환경의 집약화를 통해 금융 및 투자 서비스, 정보기술(IT) 업종 등이 발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로 삼성생명과 KB금융, SK홀딩스 등이 있다. …기술 분야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 자동차 분야에선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을 지닌 산업 분야도 세세하게 설명했다. “한국의 하이테크 기술은 국제적으로 높은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하이테크 기술은 반도체와 미세회로, 통신장비(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선박 등의 생산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현재 인공지능 및 로봇공학, 수소연료자동차 및 전기자동차, 전기충전지 등의 생산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해당 교과서 집필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연구원은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요청으로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왔다. 연구원 내 한국바로알리기 사업실을 통해 교과서를 모니터링하고 잘못된 내용은 바로잡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추가하도록 도왔다. 장기홍 전문위원은 “2016년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의 흘라드코프스키 로만 수석연구위원과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이 계기가 돼 이런 결실을 맺었다”며 “우크라이나 청소년들이 한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교과서가 완성된 뒤 로만을 포함한 수석연구위원 2명 등 집필진 4명은 이달 6∼12일 직접 교과서를 들고 한국에 왔다. 교과서는 아직 학생들에게 배포되지 못했다. 전쟁으로 교과서를 인쇄할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필을 주도한 교육저널 ‘우크라이나교육’의 보이코 발렌티나 발행인은 “6·25전쟁 후 불과 70여 년 만에 이뤄낸 한국의 경제 성장이 믿기지 않는다”며 “고국에 돌아가면 이번에 한국에서 본 것들을 교과서에 추가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바하노프 코스티얀틴 우크라이나 베르댠스크대 교수는 한국의 이야기가 우크라이나인에게 큰 힘을 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 연구실과 집이 모두 불에 타 무너져 내렸어요. ‘한강의 기적’은 청소년을 포함한 우리 국민이 전쟁의 고통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희망을 보여줄 겁니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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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비극의 땅 콩고 어딘가엔 ‘다정한 유인원’이 산다

    6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사람과 침팬지, 보노보 이 세 갈래로 나뉜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멸종 위기에 처한 반면에 인류는 세계 인구 80억 명을 돌파할 정도로 진화적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서로 총칼을 겨누고 약자를 희생시킨다. 주변국의 수탈과 내전으로 수천만 명이 희생되고 난민이 되어 떠도는 아프리카 중서부에 위치한 콩고. 이 참혹한 비극의 땅에 폭력과는 아주 거리가 먼 평화주의자인 보노보가 살고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개는 천재다’의 공동저자 버네사 우즈(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연구원)가 평생 존재조차 몰랐던 보노보를 알기 위해 2000년대 중반 콩고로 넘어가 어엿한 과학자이자 작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이 담겼다. 다정한 친화력을 지닌 종(種)이 번영한다는 주장이 담긴 그와 남편 브라이언 헤어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교수의 전작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론을 정면으로 반박해 주목받았다. 두 저자는 보노보 연구를 통해서도 깨달았다. 우리가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협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암컷이 중심이 된 보노보 공동체 사회는 낯선 이를 봐도 우리와 그들을 편 가르지 않는다. 오히려 보노보만의 인사법(성적 행동)으로 환대하고, 어미를 잃고 세상에 홀로 남은 어린 보노보를 힘을 합쳐 보살핀다. “나는 침팬지를 사랑한다. 그 고집과 힘을 사랑한다. 난폭한 기질 아래로 흐르는 다정함을 사랑한다. (중략) 보노보에게서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보노보와는 사랑에 빠진 기분이 든다.” 우간다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자원활동가로도 일한 저자는 침팬지와 보노보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류의 역사는 피로 물든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자를 돕고 깊이 교감하는 보노보에게 주목할 때 우리는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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