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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에 성탄은 무슨…. 애들도 바쁘고. 한 푼이라도 벌려면 나와야지.” 26일 아직 동이 틀 기미조차 없는 새벽 서울 광진구 주성자원 앞. 도로가 고물상 앞으로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캄캄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위태롭게 노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물상 철문을 지난 노인들이 힘에 부친 듯 리어카를 털썩 내려놓았다. 조인열 씨(79)는 크리스마스였던 전날 저녁 식당가를 돌며 리어카에 박스를 차곡차곡 쌓아 모았다고 했다. 조 씨가 이렇게 모은 폐지의 무게는 198kg. 리어카 무게까지 합치면 270kg에 이르는 짐을 끌고 왔지만 그가 손에 받아 든 건 7900원뿐이었다. 조 씨는 지난주 폐지를 줍다 빙판길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조 씨는 “병원에 꼭 가 보시라”는 기자의 말엔 끝내 대답하지 않은 채 빈 리어카를 챙겨 고물상을 나섰다.● 월급 15만9000원…최저임금 13% 이날 고물상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철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이선규 씨(66)는 전날 종일 돌아다녀 두 대 분량의 폐지와 고철을 주웠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이 씨는 원래 엿장수 일을 했으나, 사람들이 더 이상 엿을 사지 않아 3년 전부터 폐지를 줍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폐지 가격이 너무 떨어져 힘들다”며 “집에 가서 잠깐 자고 오전 10시쯤 다시 나와 폐지를 주울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를 팔러 나온 김병년 씨(73)는 “한때 kg당 200원씩 하던 폐지가 이젠 kg당 40원까지 떨어졌다”며 한숨을 지었다. 전날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리어카 한가득 폐지를 싣고 가던 반병권 씨(81)는 “새벽부터 모았는데 1만 원 조금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올해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들은 하루 평균 5.4시간씩 주 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월평균 15만9000원을 벌고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올해 최저임금 9620원 대비 13%에 불과하다. 폐지 수집 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은 경제적 목적 때문에 폐지를 줍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노인 중 과반(54.8%)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5.3%가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현금 지급 등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폐지 수집 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폐지 수집 노인 중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1.4%에 불과했다. 특히 폐지 수집 노인 중 39.4%가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노인 대상 조사 결과(13.5%) 대비 2.9배에 이르는 수치다.● 내년 1분기 폐지 수집 노인 전수조사 복지부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폐지 수집 노인 지원 대책을 28일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전국 4282개 고물상에 오는 폐지 수집 노인 전체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내년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앞선 실태조사를 통해 전국에 폐지 수집 노인이 약 4만2000명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이렇게 전국 폐지 수집 노인들의 명단을 확보한 뒤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노인들에게는 폐지 수집보다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다른 노인 일자리 사업을 소개하고, 개인별로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있는지 확인해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폐지를 수집하고자 하는 노인들에 대해선 월 약 20만 원을 월급처럼 지급하거나 주워 온 폐지의 양에 비례해 지원금을 주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성훈 주성자원 대표는 “무작정 어르신들에게 ‘폐지 줍지 말라’고 하는 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우리 나이에 성탄은 무슨…. 애들도 바쁘고. 한 푼이라도 벌려면 나와야지.” 26일 아직 동이 틀 기미조차 없는 새벽 서울 광진구 주성자원 앞. 도로가 고물상 앞으로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캄캄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위태롭게 노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물상 철문을 지난 노인들이 힘에 부친 듯 리어카를 털썩 내려놓았다. 조인열 씨(79)는 크리스마스였던 전날 저녁 식당가를 돌며 리어카에 박스를 차곡차곡 쌓아 모았다고 했다. 조 씨가 이렇게 모은 폐지의 무게는 198kg. 리어카 무게까지 합치면 270kg에 이르는 짐을 끌고 왔지만 그가 손에 받아 든 건 7900원뿐이었다. 조 씨는 지난주 폐지를 줍다 빙판길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조 씨는 “병원에 꼭 가 보시라”는 기자의 말엔 끝내 대답하지 않은 채 빈 리어카를 챙겨 고물상을 나섰다.● 월급 15만9000원…최저임금 13% 이날 고물상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철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이선규 씨(66)는 전날 종일 돌아다녀 두 대 분량의 폐지와 고철을 주웠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이 씨는 원래 엿장수 일을 했으나, 사람들이 더 이상 엿을 사지 않아 3년 전부터 폐지를 줍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폐지 가격이 너무 떨어져 힘들다”며 “집에 가서 잠깐 자고 오전 10시쯤 다시 나와 폐지를 주울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를 팔러 나온 김병년 씨(73)는 “한때 kg당 200원씩 하던 폐지가 이젠 kg당 40원까지 떨어졌다”며 한숨을 지었다. 보건복지부는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올해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들은 하루 평균 5.4시간씩 주 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월평균 15만9000원을 벌고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올해 최저임금 9620원 대비 13%에 불과하다. 폐지 수집 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은 경제적 목적 때문에 폐지를 줍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노인 중 과반(54.8%)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답했다. “용돈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29.3%로 뒤를 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85.3%가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현금 지급 등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또한 폐지 수집 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도 다른 노인에 비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폐지 수집 노인 중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1.4%에 불과했다. 특히 폐지 수집 노인 중 39.4%가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노인 대상 조사 결과(13.5%) 대비 2.9배에 이르는 수치다.● 내년 1분기 폐지 수집 노인 전수조사 복지부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폐지 수집 노인 지원 대책을 28일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전국 4282개 고물상에 오는 폐지 수집 노인 전체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내년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앞선 실태조사를 통해 전국에 폐지 수집 노인이 약 4만2000명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이렇게 전국 폐지 수집 노인들의 명단을 확보한 뒤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노인들에게는 폐지 수집보다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다른 노인 일자리 사업을 소개하고, 개인별로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있는지 확인해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폐지를 수집하고자 하는 노인들에 대해선 월 약 20만 원을 월급처럼 지급하거나 주워 온 폐지의 양에 비례해 지원금을 주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성훈 주성자원대표는 “무작정 어르신들에게 ‘폐지 줍지 말라’고 하는 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도 일부 지자체가 자생적으로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를 전국 단위로 확대해 모든 어르신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할머니가 드셔야 하는 약의 종류가 매일 다르거든요. 하나씩 제가 분류해 드려야 해요.” 조손가정에서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민수(가명·13)는 매주 서로 다른 색의 알약 수십 개를 분류해야 한다. 민수와 동생 민철이를 길러 주신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민수는 집을 나간 부모를 대신해 할머니 병 수발을 들고 있다. 할머니 약 챙기기는 기본이고, 집 청소와 마트에서 장 본 짐 옮기기도 민수의 몫이다. ●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돌봄아동민수처럼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도리어 가족을 돌봐야 하는 아동을 ‘가족돌봄아동’ 또는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내에는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민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지원 체계가 없고, 서울과 부산 중구 등 4개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조례를 마련해 지원할 뿐이다. 반면 해외에선 일찍이 가족돌봄아동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해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영국의 경우 아동과 가족법에 따라 가족 등에게 돌봄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의향이 있는 사람 중 18세 미만을 ‘영 케어러’로, 18∼24세를 ‘영 어덜트 케어러(young adult carer)’로 규정한다. 영국 정부는 이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교육훈련 프로그램과 긴급 지원도 제공한다. 호주 역시 25세 이하 ‘영 케어러’에게 연간 3000호주달러(약 265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병부터 양육, 아르바이트까지중학교 1학년 지혜(가명·13)도 민수와 같은 가족돌봄아동이다. 지혜는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를 대신해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을 돌본다. 아침에 동생을 깨워 학교에 보내는 것도, 하교 후에 주변에서 챙겨 준 반찬으로 동생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지혜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은 지난해 재단이 지원하고 있는 만 7∼24세 아동·청소년 1494명을 대상으로 가족돌봄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46%(686명)가 가족돌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 아동·청소년 상당수가 학업과 가족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족돌봄아동 중 13.4%는 본인이 집에서 돌봄노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고, 돌봄노동을 할 다른 가족도 있지만 본인이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경우도 22.4%에 이르렀다. 초록우산의 이번 조사 결과 가족돌봄아동 중 50%는 1년 이상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5년 이상 가족을 돌봐 온 경우도 28%에 이르렀다. 돌봄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이 이 시기에 해야 할 학업이나 진로 설정, 정서 발달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초록우산에 따르면 가족돌봄아동 3명 중 1명(36%)은 심리적·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진로·진학(24%)과 학업(12%)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 만화 그려진 약 봉투로 가족돌봄아동 발굴더 큰 문제는 가족돌봄아동의 경우 다른 취약계층에 비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적을뿐더러,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올해 서울시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돌봄아동의 76%는 본인이 받을 수 있는 외부 지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민수나 지혜 같은 아이들 중 상당수가 ‘효자, 효녀’라고만 불릴 뿐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초록우산이 대한약사회와 함께 ‘돌봄 약 봉투’ 캠페인을 지난달 시작한 건 이렇듯 지원에서 소외돼 있는 ‘숨은 가족돌봄아동’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초록우산은 전국 약국 400여 곳에 특수 제작한 약 봉투를 배포했다. 일반적인 약 봉투라면 약국 이름이 쓰여 있을 자리에 가족돌봄아동들이 겪는 어려움을 캐리커처 형태로 그려 넣었다. 아픈 가족을 대신해 약을 타러 온 가족돌봄아동이 “내 이야기구나” 하며 쉽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가족돌봄아동의 하루 동선엔 약국이 빠지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에 따라 이 같은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 1명이 가족을 돌보는 기간 동안 평균 4380개의 약 봉투를 수령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돌봄 약 봉투 캠페인을 통한 가족돌봄아동 지원 신청은 내년 3월 말까지 가능하다. 돌봄 약 봉투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지원 신청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고, 전화로도 신청할 수 있다. 가족돌봄아동 당사자가 아닌 약사나 이웃 주민도 대신 신청할 수 있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아동들이 직면한 가족돌봄 문제는 가정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관련법 제정 등을 통해 공적인 복지 서비스 영역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누구 사랑 먹고 그리 이쁘게 컸니? Mommy or your daddy or them both(엄마, 아빠, 아니면 둘 다)?”(악뮤, ‘Love Lee’) 남매 가수 ‘악뮤(AKMU)’가 연말 소아 환자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했다. 서울대병원은 악뮤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로비에서 깜짝 콘서트를 열고 환자들에게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날 악뮤는 ‘Love Lee’ 등 올해 발매한 신곡부터 ‘오랜 날 오랜 밤’, ‘200%’ 등 대표곡으로 50분간 병원에서 작은 음악회를 이어 갔다. 악뮤와 서울대병원은 외부인보다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최대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공연 전날이 돼서야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홍보를 최소화했다. 이날 공연에는 환자와 보호자 250여 명이 로비를 가득 메운 채 공연을 지켜봤다. 악뮤는 공연 중 어린 관객들로부터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한 어린이 환자가 ‘거위의 꿈’을 신청하자 악뮤는 본인들의 곡이 아닌데도 즉석에서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불렀다. 멤버 이수현(24)은 “‘후라이의 꿈’이 뭐야, 꿈은 ‘거위의 꿈’이지. 후라이보단 거위야”라며 유쾌하게 신청곡을 받아 관객을 웃게 했다. ‘후라이의 꿈’은 악뮤가 4월 발매한 신곡이고, ‘거위의 꿈’은 1997년 그룹 카니발이 발표한 곡이다. 공연이 끝난 뒤 악뮤는 소아암 병동을 찾았다. 면역력이 떨어져 병실 밖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한 환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악뮤는 보호구를 착용하고 그들의 오랜 팬인 정서희 양(15)이 입원한 무균실을 찾아 정 양의 ‘최애’곡인 ‘다리 꼬지 마’를 들려줬다. 정 양은 “입원 기간 동안 악뮤의 음악이 마음의 치유제가 돼 줬다. 오늘 받은 응원을 통해 앞으로도 힘내서 치료받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어린 환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취지로 악뮤가 먼저 병원에 제안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 이후 악뮤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특별한 시간을 선사하고 싶어 음악회를 준비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더 큰 위안과 응원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영태 병원장은 “앞으로도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임신 25주 만에 태어나 비수도권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미숙아 기쁨이(가명)는 생후 3개월 차인 6월 망막에 출혈이 생겼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영영 시력을 잃을 수 있는 ‘미숙아망막증’이 의심됐지만, 병원에 이 병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기쁨이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200km 이상 떨어진 서울 소재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 했다.안과는 흔히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재영(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인기 전공과목 중 하나다. 매년 새내기 의사들이 이들 전공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정작 이들 과목에서도 소아 진료나 중증·응급 질환 진료 인력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 회복을 위해선 단순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비인기 과목에 대한 지원만 늘릴 게 아니라 ‘풍요 속 빈곤’에 빠진 인기과목에 대한 정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 부족에 미숙아망막증 ‘서울 쏠림’ 심각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의원(국민의힘)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숙아망막증을 진단받은 신생아는 총 1만1999명이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 20명 중 1명(4.8%)은 이 병으로 치료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미숙아망막증 진료 인프라가 붕괴된 상태다. 대전의 경우 2013년엔 미숙아망막증 환자 379명을 진료했지만 지난해엔 44명밖에 보지 못했다. 울산 경북 전남 등은 지난해 미숙아망막증 진료 건수가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기쁨이처럼 ‘원정 진료’를 받는 신생아가 매년 수천 명에 이른다. 지난해 서울 소재 병원에서 진료한 미숙아망막증 환자는 총 5313명이었는데, 주소지가 서울인 미숙아망막증 환자는 2068명에 불과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을 온 미숙아망막증 환자만 3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실제로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을 운영하면서도 미숙아망막증을 볼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병원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교수 1명이 여러 병원의 NICU를 돌며 미숙아망막증을 진료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소아 안과 분야는 고가의 특수 장비가 필요하고, 인력도 성인 환자를 볼 때보다 두세 배로 필요한데 책정된 진료비는 낮아 병원들도 투자를 꺼린다”고 말했다. ● 의사 부족해 시술로 충분한 환자 수술하기도다른 인기 과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판독하는 영상의학과는 대표적인 인기 과목이지만, 영상 ‘인터벤션(중재)’ 분야는 인력난에 허덕인다. 인터벤션은 피부를 절개하는 대신 혈관 등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면서 뇌혈관 질환 등을 치료하는 시술이다. 하지만 영상의학과 내 다른 분야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고 당직이 잦아 신규 전임의(펠로)가 2019년 25명에서 올해 12명으로 급감했다. 수도권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영상 인터벤션을 할 의사가 없어 간단한 시술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수술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정형외과 전문의도 도수치료나 동결건(이른바 ‘오십견’) 등 개원가 수요가 높은 탓에 소아나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를 찾기 어렵다. 특히 골격 기형을 가진 아이를 수술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는 전국에 20여 명에 불과하다. 올해 61세인 조태준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 가운데 상당수는 5년 안에 은퇴한다”라며 “이대로 방치하면 가물에 콩 나듯 지원자가 나타나도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포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성형외과도 마찬가지다. 안면 외상이나 기형 환자를 상대로 재건 수술을 하는 의사는 대표적인 ‘3D 직종’이다. 특히 뇌종양 제거 후 재건 수술은 난도가 높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의사의 부담이 크다. 정지혁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성형외과 교수는 “국내 최고라는 우리 병원도 소아성형외과만 다루는 펠로를 구하지 못해 다른 분야와 순환근무를 시켜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과목 아닌 질병 따라 필수의료 재정의해야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9월 기준 국내에서 활동 중인 ‘피안성’ 전문의 8577명 중 가장 중증인 환자들이 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830명(9.7%)뿐이다. 최근 5년 새 ‘피안성’ 전문의는 1158명 늘었는데, 늘어난 의사 중 95%(1100명)가 동네 의원에서 근무한다. 소아·중증·응급 분야에서 일하면 업무 부담은 큰데 보상은 적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안과를 예로 들면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의 소득(약 1억5000만 원)은 동네 의원 의사의 3분의 1 수준이다.정부는 필수의료 회복을 위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비인기 과목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왔다. 그 사이 인기 과목 내에서 소아나 중증·응급 진료를 보는 하위 분과들은 오히려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어떤 과목을 전공했는지가 아닌 ‘어떤 질환을 진료하는가’로 필수의료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이 낮지만 생명이 오가는 진료를 하는 의사에 대해선 전공에 관계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병원 현장에서 나타나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게 정부가 할 역할이란 지적도 나온다. 소아 사시 환자를 진료하는 김응수 중앙대 광명병원 안과 교수는 “병원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환자를 보지만 병원에 가져다 주는 수익은 하위권”이라며 “이런 구조가 개선돼야 소아·중증 진료 인프라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종헌 의원은 “단순히 일부 과목에 대한 투자만 늘릴 게 아니라 국민 생명에 꼭 필요한 진료 분야들을 꼼꼼하게 따져 세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따뜻한 마음씨로 주변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던 50대 여성이 뇌사 뒤 장기기증으로 다섯 생명을 구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박세진 씨(59·사진)가 지난달 1일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에서 심장과 폐, 간, 좌우 콩팥을 기증하고 눈을 감았다고 18일 밝혔다. 한국전력공사에서 환경미화 근로자로 일하던 박 씨는 10월 27일 퇴근 후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평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 온 고인의 뜻을 받들어 뇌사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박 씨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보면 늘 도움을 아끼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10년간 간호하면서도 힘들다는 불평보다는 주변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는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박 씨의 남편 김영도 씨는 “나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아 미안해. 다음에 더 좋은 세상에서 호강시켜 줄 테니 하늘에서 잘 지내. 당신을 만나 고마웠고, 사랑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숭고한 생명 나눔을 실천하신 기증자와 유가족에게 감사드리며, 주신 사랑과 생명이 잘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전남 고흥에 사는 라마이 짠티마 씨(46·태국 출신)에게 아들 김태원 군(14)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종일 찬 바다에서 미역을 채취하는 고된 일을 한 후에도 집에 돌아와 아들의 얼굴을 보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아들과 도란도란 사는 일상이 그에겐 마치 꿈만 같다.● 낯선 한국-가정 폭력도 이겨내라마이 씨에게 김 군이 이렇게 애틋한 건 두 사람이 11년간 떨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이주해 이듬해 김 군을 낳았지만, 남편의 가정 폭력이 나날이 심해졌다. 결국 2011년 아들과 함께 남편의 집에서 나와야 했다. 홀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라마이 씨는 아들을 친정어머니가 있는 태국으로 보냈다. 라마이 씨는 남편과 헤어졌지만 연로한 시어머니를 보살피며 한국에 적응해 갔고, 지난해 김 군을 한국으로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라마이 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공로를 인정받아 ‘제13회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다문화 가족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라마이 씨는 상금 500만 원과 모국 방문 비용을 부상으로 받았다. 그는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셨던, 돌아가신 시어머니께 영광을 돌린다”며 “상금은 아들 학비로 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은 한국을 모든 문화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만드는 데 공헌한 이들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올해도 다문화 가족 구성원과 공로자 등 개인 10명과 단체 3곳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결혼이주여성 해결사-선생님 역할가족 부문 우수상은 결혼이주여성들의 빠른 한국 적응을 돕는 ‘이주 선배’들에게 돌아갔다. 우수상 수상자 박은혜 씨(29)는 7년 전 한국인 남편을 만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강원 영월군 가족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한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초기 결혼이주여성들에겐 관공서에서 행정 처리를 하거나 병원 진료를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한데, 박 씨는 지역 내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동행하며 이들의 입과 귀가 되어 준다. 박 씨는 최근 친정어머니가 투병 중인 한 결혼이주여성을 도와 함께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 여성은 어머니가 폐암 진단을 받아 꾸준히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어려운 의학 용어 탓에 의사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박 씨는 자신의 차로 여성과 어머니를 태우고 원주시 소재 병원을 오가며 통역을 해주고 있다. 박 씨는 “경찰서나 법원에 갈 일이 생기면 결혼이주여성들이 가장 막막해한다”며 “나도 한국어가 서투를 땐 같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 내가 힘이 돼줄 수 있어 보람차다”고 했다.● 언어 코치로 다른 이주여성 정착 도와또 다른 가족 부문 우수상 수상자인 량단 씨(43·중국 출신)는 대구 중구 가족센터에서 이중언어 코치로 일한다. 량 씨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엄마 나라’ 말과 글을 가르치는 방법을 지도한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엄마 나라 말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배우기 쉽지 않은 만큼 엄마가 가르쳐야 한다는 취지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자녀들의 선생님이라면, 량 씨는 ‘선생님들의 선생님’인 셈이다. 그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 중에선 엄마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엄마 나라의 말을 배우며 점차 자부심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간사인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성상환 심사위원장(서울대 독어교육과 교수·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 천광암 동아일보 논설주간 등이 참석했다. 김 장관은 “다문화 가족 구성원이 115만 명에 이르렀다”며 “다문화라는 구분 없이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들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펼치는 다문화 가족과 관계자들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말했다.제13회 동아 다문화상 수상자▽가족 부문-대상: 라마이 짠티마 씨 가족(전남 고흥군·태국출신)-우수상: 박은혜 씨 가족(강원 영월군·베트남 출신) 량단 씨 가족(대구 달성군·중국 출신)▽공헌 부문(개인)-우수상: 안복현 씨(원곡초 교장) 김연 씨(경기 파주시 가족센터 특성 화팀장·중국 출신) 김지윤 씨(전북 군산시 가족센터 통·번역사·베트남 출신) 임혜미 씨(경기 양평군 가족센터 통·번역사·베트남 출신)▽공헌 부문(단체)-우수상: 경기 구리시 가족센터-특별상: 경기 안산시 글로벌청소년센터 충남 서산시 가족센터▽청소년 부문-우수상: 강아나르 씨(가천대 글로벌캠퍼스 유럽어문학과 1학년) 최은지 양(진도국악고 3학년) 유성민 군(저동고 1학년)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 위기 해소를 위해 대학병원 인력 구조를 ‘전문의(교수) 중심’으로 재편할 방침이다.13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부산시청에서 ‘지역·필수의료 혁신을 위한 지역 순회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방침을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대학병원에 전문의가 부족한 탓에 이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보상 체계를 개선해 대학병원이 전문의를 추가로 채용하도록 유도해서 의사 한 명당 업무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이다.이는 전공의(레지던트)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대학병원에 교수가 부족하다 보니 전공의가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떠안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연속 근무 시간을 제한해 이들이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또 수련의(인턴) 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인턴 1년+레지던트 3, 4년’을 앞으로 ‘임상수련의 2년+레지던트 2, 3년’으로 바꾸는 방안 등이 거론 중이다.(본보 11월 13일자 A1·3면) 정부와 부산시는 이날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의 역할도 논의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부산에 있는 부산대와 동아대 의대는 매년 신입생의 8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고 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치매 환자가 주치의를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고, 필요시 방문 진료도 이용할 수 있는 ‘치매관리 주치의’(가칭) 시범사업이 내년 7월 시행된다. 보건복지부는 12일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이 같은 사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치매관리 주치의 시범사업은 환자가 치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의사를 선택해 치매뿐만 아니라 만성질환 등 다른 건강 문제까지 관리받는 제도다. 치매관리 주치의는 일회성 진료와 처방에 그치는 게 아니라 환자별로 맞춤형 치료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환자를 관리하게 된다.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울 경우 주치의가 환자 집으로 찾아가 방문 진료를 할 수 있고, 전화로 복약 지도나 건강상태 점검 등을 할 수도 있다. 정부는 우선 내년 7월 20개 시군구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해 점차 대상지를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환자가 시범사업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다 이용할 경우 연간 본인부담금은 17만 원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약 98만 명)이 치매 환자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건정심은 소득 하위 30%에 한해 내년도 의료비 본인 부담 상한액을 동결하기로 했다. 내년도 본인 부담 상한액은 올해와 같이 소득 하위 10%에서 연간 87만 원, 하위 10∼30%에서 108만 원으로 유지된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우리나라에서 한 해 담배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담배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사람은 5만8036명으로 추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 평균 1만 명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흡연은 코로나19보다 6배나 많은 생명을 앗아간 위험한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흡연을 ‘담배 유행병(Tobacco Epidemic)’으로 규정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의 질환들과는 달리 흡연은 ‘돈을 주고 사는 질병’이다. 그 때문에 담배 가격 인상은 가장 효과가 좋은 금연 정책 중 하나지만 ‘민생 경제’를 앞세운 반대 여론에 부딪혀 좌절되기 일쑤였다. 대한금연학회가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간호대 강당에서 ‘담배 가격정책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추계 학술대회를 여는 건 이러한 배경에서다. 20개비짜리 담배 한 갑은 통상 4500원. WHO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담배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평균의 63%에 불과하다(2018년 기준). OECD 38개국 중 담배가 가장 비싼 뉴질랜드와 호주에 비하면 가격이 4분의 1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담배 가격이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 멕시코 튀르키예 슬로바키아 일본 등 5곳뿐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국내 담배 가격이 오른 건 단 2번에 불과하다. 담뱃값 인상이 ‘표 떨어지는’ 정책이어서 정부들이 도입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2005년)와 박근혜 정부(2015년)가 담뱃값 인상을 단행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정부 모두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담배회사들도 ‘개인 자유 침해’ ‘서민 부담 가중’ 등의 이유를 들며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로비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담배 가격이 8년째 제자리걸음하는 동안 소득 수준과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담뱃값은 매년 인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담뱃값 인상이 실제로 금연을 유도하는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한미아 조선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2015년 담뱃값 인상의 영향으로 성인 흡연자 중 3.8%가 담배를 끊었다. 7일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로 나서는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학)는 “담뱃값을 9000원으로 올린다면 향후 10년간 6만 명의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발표자인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국민 소득 수준과 물가, 금연 유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담뱃세 인상지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해온 ‘원포인트’식 담뱃값 인상으로는 체계적인 금연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것. 장기적인 계획이 없으면 표심에 민감한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실제로 OECD 38개국 중 28개국은 담뱃값 인상지수를 활용하거나, 장기적인 인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센터장의 추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매년 담배 가격을 20%씩 인상할 경우 2030년에 우리나라 담뱃값이 OECD 평균 수준(2023년 기준 약 9000원)에 다다르게 된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우리나라 10, 2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외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방문을 걸어 잠근다. 학교 우울증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기 위해 거짓 답변을 쓰기도 한다. 비영리 민간단체 멘탈헬스코리아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개입을 제공하는 활동을 한다. 정신적 어려움을 먼저 이겨낸 청소년들이 이 단체 소속 ‘피어 스페셜리스트’가 돼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민다. 현재 약 300명의 피어 스페셜리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 문다나 씨(20)는 4년째 피어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의 별세 이후 우울증으로 자해와 자살 시도까지 한 적 있다는 그는 유튜브와 오프라인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정책을 제안한다. 문 씨는 “아픔의 경험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는 “‘너는 문제가 있으니 상담을 받으러 오라’는 식으론 조기 발견이 어렵다. 우리는 ‘이렇게 멋진 활동을 같이 하자’는 식으로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 문제를 겪는 청소년 1명을 조기에 발견해 중증 정신질환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으면 약 2000만 원의 사회적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청소년 눈높이에서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의 노래 ‘세븐(Seven)’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틱톡에 올리는 댄스 챌린지 ‘#마음건강나는나’는 누적 조회수 480만 회를 기록했다. ‘혼자 고민하던 것을 내려놓고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담았는데, 입시 정보와 공부법 등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함께 담아 주목도를 높였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환자가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 전화나 화상 통화로 진료받는 ‘비대면 진료’ 이용 대상이 대폭 확대된다. 최근 6개월 이내에 대면 진료를 받은 적 있는 병원이라면 질병 종류에 관계 없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휴일과 야간에는 연령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누구나 비대면 초진이 가능해진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 방안을 1일 발표했다. 6월부터 시행 중인 시범사업에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는 환자의 폭이 너무 좁아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기존 시범사업에선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재진 환자 기준은 ‘30일 내에, 같은 의료기관에서, 같은 질병으로 대면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였다. 고혈압, 당뇨 등 11가지 만성질환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대면 진료 후 1년까지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반면 이번 개선안에선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모든 질병’에 대해 △‘대면 진료 후 6개월 이내’로 대폭 완화됐다. 대면 진료를 받았을 때와 같은 질병에 한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제한도 삭제됐다. 예를 들어 6개월 전에 감기로 대면 진료를 받은 적 있는 병원에서 장염으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고혈압 등 11가지 만성질환의 비대면 진료 가능 시한(1년) 또한 6개월로 통일된다. 주말과 공휴일, 평일 밤 시간대에는 대면 진료를 받은 적 없는 병원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사실상 ‘비대면 초진’이 전면 허용되는 것이다. 기존에는 소아·청소년만 가능했는데, 전체 국민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이번 개선안은 15일부터 적용된다.비대면 진료 완화… ‘의료취약지’ 시군구 98곳선 제한없이 허용 비대면 진료 대상 확대비대면 초진, 기초단체 40%서 가능… 비대면 진료 뒤 약은 약국서 받아야의사-약사들 “진단-처방 한계” 반발… 소비자단체 “약 배송 빠져 반쪽짜리” 비대면 진료는 주변에 의료기관이 적어 의사와의 대면 진료가 불편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제도다. 정부는 6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섬과 벽지 주민에 한해 비대면 초진을 허용했는데, 대상이 지나치게 좁아 실익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예를 들어 인구가 약 3000명인 전남 신안군 임자도는 육지에서 약 20km 떨어져 있지만,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이유로 비대면 초진 대상이 되지 않았다.● 98개 시군구에서 비대면 초진 허용이러한 지적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1일 비대면 초진이 가능한 의료 취약 지역의 범위를 98개 시군구로 대폭 확대했다. 이는 국내 기초자치단체의 약 40%에 해당한다. 수도권에서도 경기 동두천시 여주시, 인천 옹진군 등 7개 시군 주민은 아무 제한 없이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또 휴일과 야간에는 사는 지역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휴일과 야간에는 평소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재진만 가능하게 할 경우 비대면 진료를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평일에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주말에는 토요일 오후 1시 이후부터 비대면 초진이 가능해진다. 법정 공휴일에도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다. 이 조건에 해당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의료진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위해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환자에게 대면 진료를 요구할 수 있다. 오히려 제한 규정이 강해진 부분도 있다. 기존에는 마약류와 오·남용 우려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약을 처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달 15일부터는 사후피임약도 비대면 진료처방 제한 약물로 추가했다. 사후피임약은 고용량 호르몬이 포함돼 있어 정확한 용법을 지켜 복용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부작용 우려가 있는 탈모, 여드름, 다이어트약 등도 추가로 비대면 처방 금지 약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약계 ‘안정성 우려’ 반발… “반쪽짜리” 지적도비대면 진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기간에 국민 4명 중 1명이 이용하며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일 때는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 말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경계’로 하향되며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이미 정착된 만큼 중단할 수 없다”며 다시 6월 시범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와 약사 단체에선 비대면 진료 확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대면 진료로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한계가 있어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는 1일 성명을 내고 “이번 대책은 의료의 질적 향상과 환자 건강권 보호가 아닌 ‘편의성’만을 유일한 근거로 삼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약사회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많은 전문가의 반대에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를 강행했다. 즉각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단체 등에선 시범사업 개선안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면 초진 범위는 확대됐지만, 약 배송은 섬·벽지 주민과 감염병 환자 등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의료취약지 98개 지역민도 약은 직접 약국에서 수령해야 한다. 의료취약지는 병원뿐만 아니라 약국에 가는 것도 불편한데, 비대면 초진을 받더라도 약을 타러 약국에 직접 가야 한다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한편 국회에는 임시방편 격인 시범사업이 아니라 비대면 진료를 정식으로 법제화하는 법안이 5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의약계의 반대에 부닥쳐 사실상 21대 국회 임기 내에 처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정부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발표한다. 한 개인이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인생의 각 단계를 거치면서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을 때 국가가 이를 맞춤형으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2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5일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혁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담당해 온 정신건강 관련 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하는 것과,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관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반적인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바꾸는 개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 10년→2년지금까지는 ‘치료’에 집중됐던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예방·조기 발견→치료→재활·일상 회복’이라는 전 과정으로 확대해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대표적인 대책은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검사 대상 질환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수록 예후가 좋고, 중증·만성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현재 국가 정신건강 검진은 만 20세부터 10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2년으로 단축할 방침이다. 검진 대상 질환도 지금은 우울증에 한정되지만, 여기에 조현병과 조울증 등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 검진을 할 때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시기별 맞춤형 검진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검사를 통해 정신질환 위험군으로 판별되면 무료 상담 기회를 제공해 치료 문턱도 낮출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고위험군 8만 명에게 정신건강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에 내년도 예산 539억 원을 책정했고, 2027년에는 지원 대상을 50만~100만 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환자별 맞춤 관리 계획 수립이번 정신건강 혁신 방안에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중등도 이상 우울장애 등을 앓는 이로, 2021년 기준 국내에 65만 명에 달한다.퇴원 이후에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재활 치료에 참여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 퇴원을 한 환자와 가족 앞에 펼쳐지는 건 ‘치료 절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본보 11월 28일자 A1·10면 참조).정부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경우 약 처방이나 상담뿐 아니라 ‘집중관리군’ 등록을 통해 회복과 재활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환자별 ‘케어 플랜’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증상이 완화됐다고 느껴 스스로 약을 끊고 병세가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정부는 퇴원 환자의 직업 재활과 동료 지원, 후속 검사뿐 아니라 돌봄에 지친 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정부는 또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과 교육에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이 분야 예산은 올해 2억 원이었지만 복지부는 내년도에 31억 원을 책정했다.●“국민 정신건강 관리에 큰 힘 쏟을 것”정부가 이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내놓기로 한 건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올해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처럼 치료를 중단한 뒤 증상이 악화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잇달아 범죄를 저지르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의 허점도 드러났다.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는 데 비해 정책적 뒷받침과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자문기구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올해 4월 펴낸 보고서에서 “고소득 국가의 경우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1% 정도”라며 “한국의 경제 수준은 고소득 국가에 해당하지만 정신건강 예산 비중은 2.6%(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정부 관계자는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에 큰 힘을 쏟겠다는 메시지와 비전도 함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 당일에는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의료계, 정신질환 환자·가족 단체 등도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 시기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었던 청년이 본인의 경험을 직접 발표하는 일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국내 정신과 진료환자, 12년새 2배로… 의사 수는 OECD 절반 미달국내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한 해 4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정신질환이나 정신과적 문제 때문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는 405만8855명이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200만 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여 년 새 2배가 됐다. 하지만 이들을 진료하기 위한 의사 수는 해외 주요국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 부족 때문에 국내 정신질환자의 ‘치료 절벽’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만 명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수는 0.8명이다. 관련 통계가 수집된 OECD 29개국 평균인 1.8명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29개국 중 한국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적은 나라는 멕시코(0.1명) 콜롬비아(0.2명) 튀르키예(0.6명)뿐이었다.절대적인 의사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가장 치료가 시급한 중증 환자를 진료할 인력이 더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전국에 5곳 있는 국립정신병원의 전문의 충원율은 올해 8월 기준으로 41%에 불과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 발생 시 정신건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립정신건강센터도 전문의 충원율이 38%에 불과했다.민간 대학병원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큰 병원에 남는 것보단 개인병원을 차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까닭에 대학병원을 떠나는 의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2020년 기준 정신건강의학과 개원의는 연 소득이 2억4000만 원에 이르는 데 반해,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경우 1억3000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서울시내 정신건강의학과 개인병원은 534곳으로, 5년 전에 비해 77% 급증했다”고 밝혔다.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중증 정신질환 진료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OECD가 최근 펴낸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으로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1년 안에 자살하는 비율이 0.7%에 이른다. 이는 OECD 평균 0.38% 대비 1.8배에 해당한다. 또한 2021년 기준으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진단을 받은 국내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망할 확률이 4.2배였다. OECD 평균(2.3배)에 비해 83% 높은 수치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개원 62주년을 맞은 건국대 동물병원이 동물과 사람, 환경의 건강을 하나로 연결하는 ‘원 헬스(One Health)’ 기반 의료체계를 확충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건국대는 원 헬스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8년까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동물병원을 신축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팬데믹이 연이어 발생하며 원 헬스는 세계 보건의료계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가 숙주인 것으로 추정된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각각 낙타와 사향고양이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사람의 건강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동물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원 헬스’의 기본 개념이다. 원 헬스 발전을 위해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학과 수의학 간의 유기적인 연계와 공동 연구가 필수적이다. 건국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서울 광진구 현 동물병원 맞은편의 약 4600㎡(약 1400평) 부지에 12층 규모의 병원을 2028년까지 신축하기로 했다. 새 동물병원에는 △동물질병진단센터 △줄기세포치료센터 △반려동물알레르기센터 △말진료센터 △재활센터 △수의중재시술센터 등 차별화된 특수진료센터 클러스터를 구축할 방침이다. 건국대 관계자는 “수의과대학 및 의과대학의 우수한 연구진들이 중개연구를 통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연구 중심 동물병원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편 건국대 동물병원은 아시아 최초의 반려동물 헌혈센터인 ‘KU 아임도그너(I’m DOgNOR)’를 운영하고 있다. 아임도그너 센터에선 반려견들이 평소에 헌혈을 하고, 필요할 때 동물병원에서 피를 제공받을 수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길러진 ‘공혈견(피를 채취하기 위해 사육하는 개)’을 통해 반려견 치료에 필요한 피를 구하던 비윤리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해 8월 개소한 이후 1년여 동안 헌혈견 200여 마리가 헌혈에 참여해 300여 마리의 생명을 살린 바 있다. 아임도그너 센터는 응급 상황에 처한 반려견과 보호자를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하기 위한 ‘펫 앰뷸런스’도 운영 중이다. 건국대는 국내 사립대 중 유일하게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1961년 축산대학 부속 가축병원으로 출범한 이후 2016년에는 동물 응급의료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동물 암센터와 임상시험센터 등을 잇달아 개소했다. 유기견 구조와 보호, 군견·경찰견·안내견 등 각종 공익견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 등 공익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윤헌영 건국대 동물병원장은 “동물 치료를 넘어 사람과 동물, 환경의 건강을 하나로 연결한 원 헬스 연구를 선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을 다시 추진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고영인 의원은 간호법 제정안을 수정, 보완해 재발의했다고 22일 밝혔다. 하지만 대한간호협회를 제외한 보건의료계 직역단체들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간호법을 둘러싸고 보건의료계가 또 다시 격한 대립을 겪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과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은 4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 보건의료계 직역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고, 결국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22일 재발의된 간호법은 반발에 부딪혔던 기존 법안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됐다. 의협이 “간호사 단독 개원이 가능해질 것”이라 우려했던 제1조의 ‘지역사회’ 문구는 ‘보건의료기관, 학교, 산업현장, 재가 및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 간호인력이 종사하는 다양한 영역’으로 바뀌었다. 또 간무협이 “학력 제한”이라고 반발했던 ‘고등학교 학력’ 규정은 ‘고등학교 학력 이상’으로 수정됐다. 간무협은 이와 함께 간호법에 간호조무사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대학 설립 근거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 고 의원 측은 “보건의료직역간 수용 가능한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발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현재까지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발의했다. 이번 안에 반영되지 못한 부분은 이후 법안 심사과정을 통해 더 채워나가겠다”고 밝혔다.의협과 간무협 등 14개 직역단체가 모인 14보건복지의료연대는 22일 성명을 통해 “간호법은 ‘간호사특혜법’일 뿐”이라며 “민주당의 간호법 재발의 추진과 관련한 어떠한 협의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재발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도 간호법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별도 입법은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특정 직역의 역할을 강조하는 법 제정보다는 의료체계 전반을 다루는 의료법 개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장애인단체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한자협)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의 집무실을 21, 22일 이틀 간 점거하고 농성했다. 한자협은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에 항의하며 이 같은 시위를 벌였다. 이 의원 측은 이를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한자협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이 의원실에 따르면 21일 오후 4시경 한자협 소속 활동가 10여 명이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이 의원 집무실에 진입했다. 이들은 이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집무실 곳곳에 항의 전단지를 붙이는 등 농성을 벌였다. 다음날 오전 10시경까지 약 18시간동안 머무른 후 해산했다.논란이 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로 지정해 회계 및 감사 등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이 의원 측은 전국 260여 곳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매년 1, 2억 원의 예산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고 있음에도 그간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한자협 측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다른 장애인복지시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닌 고유성과 그 간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며, 센터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개악”이라고 주장했다.이 의원은 22일 성명을 통해 “(한자협 활동가들이) 의원 집무실에 난입해 서랍과 가방을 뒤지고 개인 컴퓨터를 열어보는 등 불법적 행위를 자행했다. 애초부터 면담이 아닌 테러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야 의원 대다수가 자립생활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로 규정하는 법안 내용에 동의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도 정책적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 의원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다. 이 의원은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인이다.한자협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으로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전국 40개 의과대학이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정원을 지금의 2배 가까이로 늘리길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대들은 2030학년도에는 정원을 지금보다 최대 3953명 늘릴 수 있다고 응답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이르면 연내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의 해법으로 의대 증원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전국 의대들이 대폭 증원을 원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정부 기조에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의대 증원에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했다.● 40개 의대 대상 ‘희망 정원’ 조사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에 의대 정원을 얼마나 확대하기를 희망하는지 ‘최소 규모’와 ‘최대 규모’로 나눠 제출받았다. 여기서 최소 규모는 각 대학이 현재 여건에서 현실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정원을, 최대 규모는 추가 투자가 이뤄졌을 경우를 가정한 정원을 뜻한다. 조사 결과 40개 의대는 2025학년도에 정원을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 늘릴 수 있다고 응답했다. 대학들은 2030년에는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까지 늘릴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전국 의대 정원은 한 학년에 3058명이다. 수요 조사대로 증원한다면 현재 고교 2학년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에는 의대 정원이 5905명, 초등 6학년이 대학에 가는 2030학년도에는 7011명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복지부는 공무원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의학교육점검반 활동을 통해 각 대학이 써낸 수요만큼 실제로 의대생을 더 뽑아 가르칠 역량이 되는지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복지부가 12월 말∼1월 초 전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정해 교육부에 넘길 예정이다.● 정부 “최대치일 뿐 이대로 배정 아냐” 이러한 수요조사 결과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본격 착수할 때 구상한 규모에 비해 훨씬 큰 수치다. 당초 정부는 1000명 정도 증원을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이날 발표한 숫자가 ‘각 의대의 희망 수요’일 뿐 이대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수요 조사는 (각 대학이 제출한) ‘맥시멈(최대치)’이다. 이대로 다 배정한다는 것이 아니고, 적정 (의대 정원) 규모가 나오면 여기에 따라 배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수요 조사 결과처럼 의대 정원을 현재 대비 2배 안팎으로 늘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과)는 “일단 연 500명을 늘린 뒤 5년 뒤에 재평가해 추가로 늘리거나 줄이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의협 “총파업 불사” vs 의료노조 “국민만 봐야” 의협은 이날 정부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총파업을 벌이겠다며 반발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수요 조사는) 이해당사자들의 희망 사항만을 담은 졸속·부실·불공정 조사”라며 “주먹구구식 여론몰이 조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다. 반면 간호사와 임상병리사 등 의사를 제외한 보건의료인들이 주축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같은 날 “의사 눈치 보지 말고 국민만 보라”며 의대 정원 대폭 확대를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성인 1000명 대상 설문에서 82.7%가 의대 정원 확대에 동의했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의대 졸업 후 1년간 대학병원에서 여러 전공 과목을 돌며 배우는 ‘인턴(수련의)’ 제도가 이르면 2025년부터 사라진다. 1958년 도입 이후 67년 만이다. 그 대신 2년간 체계적으로 여러 진료 과목을 거치는 ‘임상수련의’ 제도가 신설된다. 인턴을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이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개원에 쏠리고 대학병원에서 새내기 의사들이 무분별하게 혹사당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임상수련의를 마쳐야만 개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양질의 필수의료 인력 확보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2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7월부터 의료계 및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전공의 수련 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 같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TF가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르면 2025년부터 새로운 수련 체계를 적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운영돼온 인턴 과정의 취지는, 의대(예과+본과) 졸업 후 1년간 병원의 모든 전공과목을 두루 경험하며 기초적인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적성에 맞는 전공과목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인턴이 끝나야 원하는 과목에 지원해서 3, 4년간 레지던트(전공의) 수련을 거친다. 그 뒤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해당 진료 과목의 전문의가 된다. 1958년 전문의 수련 제도 시행 이후 이 틀은 그간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필수의료 붕괴, 의료 인력 공백 사태에서 인턴 제도 역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커졌다. 주당 80시간을 넘나드는 장시간 근로, 체계적인 의료 기술 습득보다는 지도교수의 학회 업무에 동원되거나 온갖 허드렛일에 투입되는 현실 등이 문제로 꼽혔다. 지난해 대한전공의협의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턴 2명 중 1명(50.8%)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의료계에서는 “인턴은 병원 1층 바닥보다 아래”라는 자조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의대를 졸업한 뒤 인턴을 거치지 않고 아예 일반의 자격증만 가지고 동네 병원 개원으로 진로를 트는 젊은 의사들도 늘고 있다. 이는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인턴을 없애고 2년간의 임상수련의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2년 동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목을 집중 수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TF는 의대 졸업생이 임상수련의 과정을 마쳐야 개원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바꿀 계획이다. 현재 일반의들이 개원하는 병원은 대부분 ‘돈이 되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 미용 시술 분야에 쏠리고 있다. 정부는 임상수련의 과정을 마치지 않으면 다른 병원에 취직해 일하는 ‘페이 닥터’(월급 의사) 취업은 허용해도 단독 진료(개원)는 못 하도록 할 방침이다.2년간 ‘내외산소’ 수련해야 개원 허용… 필수의료 공백 막는다 임상수련의 도입2년제 임상수련의, 필수의료 집중… 지역 공공병원 파견근무도 검토의료계 “병원 인력 확충 없으면2년짜리 인턴으로 전락할 우려”청소, 빨래, 커피 배달, 음식 주문, 도서관 책 반납, 서류 정리….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전공의 903명 대상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한 ‘인턴이 하는 일’들이다. 설문 응답자 절반은 수련 기간 중 진료 과목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인턴 4명 중 3명(75.4%)이 주당 80시간 넘게 일하고 있지만 병원 안에서는 사실상 ‘잡일을 도맡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형적으로 운영되는 인턴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는 데는 정부와 의료계 간 이견이 없다.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 수련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는 7차례 회의를 통해 크게 3가지 방안을 논의했다.● 2년제 임상수련의 “필수의료 경험”첫 번째 TF 안은 인턴 대신 2년제 임상수련의(가칭)를 도입하고, 2년 동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응급의학과, 선택과목 등 총 6개 과목을 각각 4개월씩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인턴이 ‘내외산소’ 과목을 경험하는 기간이 각 4주에 불과하다. 두 번째 안은, 2년제 중 처음 1년은 주요 과목을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고 나머지 1년은 내과와 외과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 수련시키는 방식이다. 고교 문·이과 체계와 비슷하다. 레지던트(전공의)로서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 전문 과목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전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한편 TF에선 의대 졸업 후 임상수련의 과정 없이 바로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하는 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는 “여러 필수의료 과목을 경험해 볼 기회를 잃게 된다”는 지적이 TF 내에서 나왔다.● “수련의를 지방 병원에 파견” 제안도TF에선 전공의 수련체계를 바꿔 지방 의료인력 공백 문제를 해소하자는 제안도 검토되고 있다. 2년제 임상수련의를 일정 기간 원래 소속 병원이 아니라 지역의 공공병원 등에서 ‘순환 근무’ 시키자는 의견이다. 실제 일본은 경우 수련의 1, 2년 차 ‘주니어 레지던트’를 4∼8주씩 지역 의료기관에 보내 근무시키고 있다. 호주는 정부가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지방 소도시 병원에 레지던트를 파견해 근무시키고 있다. TF에 참여하는 한 전문가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현장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리는 만큼 수련의를 활용하는 게 당면한 지역의료 공백을 해결할 ‘묘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실제 지방 의료 현장에서 경험을 쌓다 보면 지방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그 지역에 정착하는 의료 인력의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의대 졸업 후 추가 수련을 받지 않은 ‘일반의’가 의원을 차리거나 취직하는 사례가 느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정부의 인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올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증을 따지 않고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이른바 ‘인기 과목’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는 2017년 말 128명에서 올해 9월 245명으로 늘었다. 이 중 87명(35.5%)은 성형외과 진료를 보는 것으로 나타나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는 미용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상수련의 제도가 시행되면 2년간 필수의료 과목을 수련해야만 개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의료계 “병원들도 추가 인력 뽑아야”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수련 과정 개편만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형 고려대 안암병원 내과 전공의는 “병원에서 인턴은 수없이 많은 일을 한다. 이들의 업무를 대신할 추가 인력을 뽑지 않는다면 임상수련의 제도를 도입한들 ‘2년짜리 인턴’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들이 인턴을 ‘값싼 노동력’으로 보고 추가 인력을 뽑는 대신 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전가하기 때문에 수련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턴 제도 개편을 통해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경험하는 기회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개편안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턴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인턴 1년+레지던트 3, 4년) 중 하나. 의대 졸업 후 1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내과, 외과 등 모든 과를 순환 근무한다. 일반의-전문의일반의는 의대 졸업 이후 의사면허를 딴 사람이다. 그 이후 인턴, 레지던트 등 수련 과정을 마치고 세부 전공을 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가 개원한 병원만 ‘홍길동 내과’, ‘김철수 이비인후과’와 같이 과목명을 간판에 걸 수 있다. 일반의 개원 병원은 과목 없이 ‘홍길동 의원’이라고만 내걸 수 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국민 1300만 명이 이용하며 일상으로 자리 잡았던 비대면 진료 역시 ‘표류’하고 있다.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비대면 진료가 크게 위축돼 국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는 법안 5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이익집단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상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일 때만 한시적으로 허용된다. 올해 6월 감염병 위기 경보가 ‘경계’로 하향되자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부랴부랴 시범 사업을 도입했다. 시범사업에선 환자 안전을 이유로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에 한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는데, 재진 환자의 범위가 ‘30일 이내 같은 질병으로 진료 받은 적이 있는 환자’로 너무 좁아 실효성이 떨어졌다. 주말과 공휴일엔 사실상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6월 비대면 진료 이용 건수는 전월 대비 절반 미만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반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가 다이어트 약 등을 쉽게 구하기 위한 ‘의료 쇼핑’ 창구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경계하는 의사 및 약사 단체의 입김이 ‘진짜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제화가 어렵다면 시범 사업을 개선하는 게 차선책이지만 이 또한 진척이 더디다. 복지부는 9월 ‘재진’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개선안은 나오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 정원 문제 등 현안이 쌓여 있어 당분간은 개선안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영유아와 어린이들이 주로 감염되는 호흡기 감염병인 ‘백일해’ 유행 규모가 늘고 있다. 백일해는 만 12세까지 총 6차례 예방 접종을 받아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마지막 6차 접종을 제때 받지 않은 어린이가 적지 않다며 백일해 예방 접종을 꼭 마쳐 줄 것을 당부했다.9일 질병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일까지 발생한 백일해 환자는 83명이다. 지난해 같은 시점까지 25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약 3.3배로 감염 규모가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으로 줄었던 백일해 유행이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다시 늘어나는 모양새다.백일해 예방 접종은 생후 2, 4, 6개월 세 차례에 걸쳐 기본 접종을 받고, 이후 △생후 15~18개월 △4~6세 △11, 12세 등 총 3차례 추가 접종을 받아야 한다. 접종 비용은 무료다. 질병청에 따르면 6세 아이 중 94.1%는 5차 접종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으나, 12세 아이 중에선 6차 접종을 마친 비율이 85.8%로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백일해는 보르데텔라 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2급 법정 호흡기 감염병이다. 기침 후 구토나 무호흡증 등을 동반하는 ‘발작성 기침’이 주요 증상이다. 코로나19와 유사하게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튀는 침방울을 통해 주로 전파된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