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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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문화 일반40%
음악30%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 제37회 인촌상 시상식… 부문별 상금 1억원씩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7회 인촌상 시상식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11일 열렸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진강)와 동아일보사는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맞춰 매년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날 수상자는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참빛그룹 회장(교육)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언론·문화) △최순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교수(과학·기술)로 각각 상장과 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수상자 공적은 본보 9월 18일자 A8면 참조 이진강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인촌상은 인촌 선생의 나라 사랑 외침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기고, 미래로 나가고자 하는 역사 인식의 표상”이라며 “수상자들이 더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 나갈 마음을 다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도연 인촌상 운영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운영위원회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후보군을 추린 뒤 6∼8월 수차례 회의를 열고 최종 수상자를 확정했다. 이대봉 이사장(82)은 36년 전 촉망받는 성악도였던 아들이 서울예고 2학년 때 선배들에게 맞아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하자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2010년 서울예술학원(서울예고, 예원학교) 재단을 인수한 뒤 지금까지 사재 약 550억 원을 출연했다. 올해 5월 서울예고에 1084석 규모의 공연장(도암홀)을 갖춘 서울아트센터를 개관했다. 학교 인수 후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발레리나 박세은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하며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서울예고를 국내 최고 예술 명문고로 키웠다. 이 이사장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교육을 강조했던 인촌 선생의 뜻이 담긴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아들을 떠나보낸 후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고 참으려 애썼다. 여러분도 큰일이 닥쳤을 때 원수를 용서하시면 좋을 것 같다. 상금은 미혼모를 위한 시설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김종규 이사장(84)은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지키고 가꾸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헌신했다. 1990년 국내 최초 출판·인쇄 박물관인 삼성(三省)출판박물관 설립을 주도했다. 박물관은 초조대장경 등 국보를 비롯한 문화재 10만여 점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2009년부터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12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한제국공사관 매입에 나서 1910년 일제가 강제 매각한 지 10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다. 김 이사장은 “인촌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는 물론 광복 후 우리나라, 우리 시대를 이끌어주신 큰 어른”이라며 “더 열심히 하라는 주마가편으로 알겠다. 수상의 영광을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과 박물관·미술관인들에게 돌린다”고 했다. 최순원 교수(36)는 양자시뮬레이션, 양자계측, 양자인공지능, 양자계산 및 알고리즘 개발 등 양자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쳐 최첨단 연구 결과를 낸 세계적인 석학이다. 다이아몬드 인공 원자를 활용해 양자시뮬레이션으로 시간 결정(Time Crystals)을 구현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최 교수는 “국가·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인생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10년 넘게 깊이 고민하다가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양립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대한민국 출신의 초일류 과학자가 되겠다. 그 과정에서 저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이웃과 조국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헌신하는 삶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엔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장석영 대한언론인회장,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축하 공연은 서울예고 학생들이 펼쳤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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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를 물려준 아빠, 이야기로 팽창시킨 딸

    “너는 네가 사는 나라가 지구의 중심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엔 많은 나라가 있단다.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우주의 중심이 아닐 수 있어.” 미국 작가 사샤 세이건(41)은 최근 한국을 찾기 며칠 전 딸에게 지구본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코스모스’를 쓴 미국 천문학자인 아버지 칼 세이건(1934∼1996)이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한 말 그대로였다. 그는 지구본을 빙빙 돌리며 덧붙였다. “네 할아버지는 인류의 시선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한 분이야.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라는 걸 깨닫게 한 분이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10일 사샤 세이건을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코스모스’를 TV 다큐멘터리로 칼 세이건과 함께 만들어 에미상을 받은 영화 제작자 앤 드리앤(72)이다. 그는 미국 뉴욕대에서 극문학을 전공한 뒤 시나리오,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의 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방한한 그는 에세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2021년·문학동네·사진)를 펴낸 이유를 묻자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 책은 아버지께 드리는 제 연서입니다. 종교, 신화, 과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나누지 않고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아버지의 시각이 담겼죠.” 에세이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며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면서도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라며 인류애를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평소 언행이 담겼다. 또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우주적 관점’으로 탄생, 결혼, 죽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단상을 써 내려간 글도 포함됐다. 그는 “아버지는 평소 글을 쓰기보단 말하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며 “나와 대화하며 ‘네 덕에 새로운 생각이 났다’고 말한 적도 자주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인류는 문화, 종교의 차이에 집착하며 서로를 다르다고 생각하고 싸운다”며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작은 지구에 사는 미미한 존재라는 걸 깨달으며 우리가 서로 비슷한 존재라는 걸 상기하면 화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책 출간은 부모 덕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전 운이 좋아요. 특별한 아버지가 물려주신 ‘생각’이란 유산 덕에 제가 있을 수 있었죠. 아버지와의 만남, 상실 그 모든 것이 절 만들었기 때문에 제 글에 아직 아버지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아버지의 책을 읽으면 여전히 아버지와 제가 연결돼 있다고 느껴요.” 그는 웃으며 다음 계획을 밝혔다. “제 두 아이와 이야기하면 생각이 샘솟아요. 언젠가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책을 쓰고 싶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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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살리는 가장 완벽한 복수는 용서”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됩니다. 흙은 빨갱이도 적군도 아닙니다. 그냥 흙일 뿐이니 미워할 가치도 없습니다.” 1971년 7월 휴전선 부근에서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김홍신 작가(76)는 육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이렇게 진술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제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달 1일, 휴전선에 침투하다가 사살된 북한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줬다는 이유로 조사받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김 작가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적장이 죽었을 때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곤 한다”며 “시신에 경의를 표한 건 인간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김 작가는 별다른 고초 없이 풀려났지만 당시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가 52년이 지나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해냄)를 10일 펴낸 이유다. 김 작가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간은 1971년 내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구상한 작품”이라며 “세상이 좋아지기 전에는 출간이 어렵다고 생각해 그동안 발표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육군 소위로 휴전선 부근에서 대간첩작전을 하고, 사살된 북한 장교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하고,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것 모두 제가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여기에 상상을 더했어요.” 신간은 국내 첫 밀리언셀러로 유명한 대하소설 ‘인간시장’(전 10권·1981년·해냄)으로 유명한 그가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2017년·해냄)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북한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빨갱이’라 불리고 고초를 당한 국군 소위 한서진의 일대기를 그렸다. 그는 “당시 난 처벌받지 않았지만 소설 주인공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며 “한순간의 행동으로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취급을 받았던 ‘적인종’(빨간색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한서진이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이들을 향해 복수를 꿈꾸지만 끝내 용서를 선택한 것에 대해선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괴롭다. 가장 완벽한 복수는 용서”라고 했다. “1971년 저를 조사했던 분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향과 초를 켜고 108배를 했어요. 나를 살리는 게 용서입니다. 그분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도하니까 제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1976년 등단 후 펴낸 책이 모두 138권이에요. 3년 후면 등단 50주년인데 그때까지 열심히 써서 140권을 채울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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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여년 ‘배우 일지’ 쓰며 ‘연습만이 살길’ 쉼 없이 단련”

    배우 유준상(54)은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 들어서면서 목청을 높이거나 흥얼거리며 노래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일 열리는 북토크에서 부를 곡을 연습 중이었다. 반백 살을 훌쩍 넘긴 그는 뮤지컬 무대에서 롱런하는 대표적인 배우다. 2021년 뮤지컬 ‘비틀쥬스’ 초연을 앞두고 하루 12시간 이상 연습하거나 2013년부터 10년째 출연한 뮤지컬 ‘그날들’의 모든 대사와 동선을 숙지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대본을 습관처럼 달달 외운다. “연습만이 살길”, “연습한 것보다 잘 안 될 때는 무섭다”…. 그가 3일 펴낸 에세이 ‘나를 위해 뛴다’(수오서재)엔 연습이란 단어가 수십 번 등장한다. 연습이 지겹지 않냐고 묻자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답했다. “배우는 운동선수와 비슷해요. 무대나 경기장에 서는 찰나의 순간에 영광을 얻을 수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열심히 한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연습 없이는 결과도 없습니다.” 그는 1995년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후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에서 약 100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지치지 않는 비결은 ‘일지’다. 대학 1학년 연기 수업 때 “끊임없이 반복 훈련을 하는 배우는 일지를 써야 한다”는 스승의 한 마디에 30여 년 동안 36권의 일지를 썼다. “처음엔 ‘오늘 다리 찢기를 했다’ 같은 사소한 문장을 적었죠. 그러다 공연을 망치면 ‘뭐가 문제였지’라고 썼어요. 공연에 임하는 마음,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용기를 불어넣는 말을 채워 나갔고요.” 신간엔 그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일지를 담았다. 일지를 모아 2012년 에세이 ‘행복의 발명’(열림원)을 낸 데 이은 두 번째 책이다. 그는 배우 윤여정에게 “(누구든) 다 열심히 하지”라는 말을 듣고 연습이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 배우의 숙명에 대해 고민했다. 그럼에도 “버텨야 욕도 칭찬도 받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고백한다. “데뷔했을 때만 해도 뮤지컬 시장이 한국에서 자리 잡지 못했을 때였어요. 드라마에 출연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놀이공원에서 열리던 뮤지컬 공연에 나가며 버텼죠.” 무대는 늘 그렇듯 만만치 않다. 뮤지컬 ‘비틀쥬스’ 출연 전 쓴 일지에선 “매번 이겨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성공한 사람보다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 내년엔 어른을 위한 동화를 펴낼 거예요. 펼치고 싶은 상상의 나래는 어디서든 펼칠 겁니다. 하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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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예쁜 꽃 가득한 정원으로 내 친구 찾으러 같이 가요!

    “집에는 숨기 없음!” 세 아이가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술래가 된 아이는 나무를 향해 선 뒤 눈을 가리고 “하나, 둘, 셋” 숫자를 센다. 다른 아이들은 정원의 나무와 수풀 뒤로 자그마한 몸을 숨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란 술래의 외침과 함께 게임은 시작된다. “아이들은 어디 갔을까?” 술래는 나무에 올라타고, 수풀을 뒤지며 아이들을 찾는다.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말이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가득 채울 무렵 드디어 술래가 다른 아이들을 찾아낸다. 아이들은 하하 호호 웃으며 소리친다. “또 뭐 하고 놀까?” 누구나 한 번쯤 숨바꼭질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과 후 학원에 가느라 바쁜 요즘 아이들이 자연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을까. 집이나 빌딩 안이 아닌 정원과 숲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초록, 빨강, 노랑 등 자연의 다채로운 색감을 따뜻하게 담아낸 점도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즐기는 그림을 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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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폐허가 된 러시아, 숭고한 정신의 출현

    1440년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세례명은 아르세니. 더없이 총명했다. 네 살 때 주위에 “난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열네 살 때 아버지의 죽음을 예측했다. 역병으로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의 약제사인 할아버지 흐리스토포르는 아르세니를 거둬 의술을 가르쳤다. 의사가 된 아르세니는 아픈 이들을 무료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저는 이, 농인 등 환자를 가리지 않았다. 그의 명성은 높아졌지만 곧 그에게 슬픔이 닥쳤다. 연인 우스티나가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절망한 뒤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나는 그에게 마을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앞으로 힘든 여정을 겪게 될 것이네. 자네 사랑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니 말일세. 아르세니, 이제 모든 것은 자네 사랑의 힘에 달려 있을 거라네.” 역병이 창궐하던 15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의사 아르세니가 고난과 역경을 겪은 뒤 민중을 위해 살아가는 성직자 라우루스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았다. 2012년 러시아에서 출간된 직후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를 기려 제정된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러시아에서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에 비견되곤 한다. 역사,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약 600년 전 러시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역병에 대항하는 의사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가 생각나기도 한다. 섬세한 표현과 시적인 문장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아르세니가 우스티나의 머리를 빗겨주는 이 장면처럼 말이다. “그는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우스티나를 예술 작품 보듯 감상하곤 했다.…다시 머리를 풀어헤치고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으로 빗어줬다. 머리카락이 호수이고 빗이 작은 돛단배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황금빛 호수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그는 그 빗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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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찍듯이 기록한 아니 에르노의 파리[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발표된 후 가장 먼저 느낀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1년이 지났는데 지난해 수상자인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도 제대로 읽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문학 담당 기자로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책장을 펼쳤다. ‘바깥 일기’는 말 그대로 에르노가 밖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너무 익숙하거나 흔해서, 하찮고 의미가 결여된 듯 보이는 그 모든 것”이란 에르노의 설명처럼 1985년부터 1992년까지 그가 본 일상을 풍경화처럼 포착했다. 하지만 “집단의 일상을 포착한 수많은 스냅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현실에 가닿으려는 시도”라는 에르노의 말처럼 현상 너머 시대를 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통로에 분필로 테두리를 그린 자리가 있고, 바닥에 ‘먹을 게 없습니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표시해 놓은 남자 혹은 여자는 떠나고 없었고, 분필로 그어 놓은 원 안은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을 밟지 않으려고 피해 걸었다.” 에르노는 1986년 프랑스 파리의 한 기차역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마도 노숙자는 역에서 구걸하기 위해 분필로 자신의 공간을 의미하는 원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다 어떤 사정으로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가난 근처로 가는 일을 꺼리기 때문이다. 노숙자는 떠났으나 노숙의 자리는 그대로 남은 셈이다. “남자가 젊은 여성에게 묻는다. ‘주당 몇 시간 일해요?’ ‘몇 시에 근무 시작이죠?’ ‘원할 때 휴가 낼 수 있어요?’ 어떤 직업의 이로운 점과 불편한 점을 평가해야 할 필요성, 생활의 구체적 현실. 불필요한 호기심, 무미한 대화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앎으로써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는지를 알기.” 에르노는 1987년 파리의 한 광장에서 남자와 여자의 대화를 엿들었다. 두 사람은 연인일까, 친구일까. 관계는 모르겠지만, 대화는 지금 한국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의 심리를 에르노는 조각조각 분석한다. 다른 사람의 직업을 물을 때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형식적인 측면에선 관찰하는 주체를 설명하는 주어가 없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적 체험에 보편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라는 정혜용 번역가의 분석처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이 글을 누가 쓴 것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평소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하던 에르노다운 선택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난해 수상 직후 국내에 출간 혹은 재출간된 에르노의 책만 7권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뿐 아니라 이전 수상자의 작품도 읽어보면 어떨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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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에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4·사진)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현지 시간)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을 썼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역대 네 번째다. 1928년 소설가 시그리드 운세트가 수상한 후로는 95년 만이다. 노르웨이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포세는 1983년 장편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 ‘3부작’, ‘아침 그리고 저녁’을 비롯해 희곡,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1990년대 중반 발표한 희곡 ‘이름’, ‘기타맨’, ‘가을날의 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포세의 작품은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라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1828∼1906) 다음으로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 꼽힌다. 2003년 프랑스 공로훈장, 2007년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등을 받았다. 국내에는 ‘3부작’을 비롯해 ‘이름’, ‘기타맨’, ‘가을날의 꿈’, ‘보트하우스’ 등이 출간됐다.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3억5000만 원)다.“생존투쟁의 그늘 파고들어… 입센의 재림” 노벨문학상,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희곡-산문 넘나들며 작품 활동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려“죽음-가족 등 소재로 인간 본질 탐구”혼란이 넘치는 시대,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4)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5일(현지 시간) 선정된 포세는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끄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포세의 작업은 노르웨이의 언어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예술적 기교와 섞었고 인간의 불안과 양가성을 본질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날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널리 공연되는 극작가 중 한 명이지만, 산문으로도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수상 소식을 들은 포세는 “벅차고 다소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극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건 영국의 해럴드 핀터(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그는 희곡, 소설, 시, 에세이, 동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썼다. 한림원은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재림’이자 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환생’이라는 평가를 받는 포세가 희곡과 산문을 넘나들며 경계를 부쉈다는 점에 주목했다. 1959년 노르웨이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포세는 하르당에르피오르에서 성장했다. 대학에서는 비교문예학을 전공했다. 1983년 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고,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를 발표했다. 약 40편의 희곡은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랐다. 희곡과 소설뿐만 아니라 시, 에세이, 동화는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그는 군더더기를 극도로 배제한 구성, 리얼리즘과 부조리주의 중간쯤에 있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매일 생존투쟁에서 체념하고 절망하는 인간이 등장하는 비극을 산문과 희곡을 넘나들며 선보였다. 대표적인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은 고독하고 황량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풀어낸다. 연작소설집 ‘3부작’(새움)은 3편의 중편소설을 묶었다. 세상에 머물 자리가 없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가난하고 비루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본다. 동화 ‘오누이’(아이들판), 희곡 ‘가을날의 꿈 외’(지만지드라마) 등 여러 작품이 국내에 출간됐다. 이달 20일엔 빛을 사랑했지만 그늘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예술가의 일생을 그린 산문 ‘멜랑콜리아 I-II’(민음사)가 나온다. 포세는 한때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정민영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교수는 “죽음, 가족, 남녀관계 등 보편적 소재를 시적으로 깊게 다루는 작가”라며 “극단으로 치닫고 혼란스러워지는 시대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고들었다는 점에 한림원이 주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혜 한양대 연극영화과 명예교수는 “포세의 작품엔 눈 덮인 산과 호수 등 북유럽의 풍광과 감성이 탁월하게 담겨 있다”고 했다. 홍재웅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학과 교수는 “평범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삶과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가”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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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 못찾는 아이들에게 ‘뭐든 될 수 있다’는 용기주고 싶어”

    “아직 장래 희망이 없어요….” 어느 초등학교 교실. 민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여러 장래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민우는 고르지 못한 것이다. 다음 날 민우에겐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가상현실(VR) 기계를 통해 다양한 직업을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게 된 것. 기계 속에서 의사, 축구선수, 유튜버, 경찰이 된 민우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나는 뭐든지 될 수 있어!” 지난달 20일 출간된 ‘내 멋대로 장래 희망 뽑기’(주니어김영사)는 꿈을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동화책이다. 최은옥 동화작가(53·사진)는 4일 전화 인터뷰에서 “장래 희망을 못 정하는 아이들에게 ‘뭐든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수줍게 웃었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은 사회상이 솔직하게 반영된 거울이에요. 수년 전부터 요리사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인기였어요. 몇 개월 전부턴 동물사육사를 장래 희망으로 꼽는 아이들이 많아졌는데 아기 판다 푸바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죠. 요즘 아이들이 장래 희망이 없다는 건 큰 문제라 같다는 생각에 집필을 시작했죠.” 신간은 2016년 시작한 ‘내 멋대로’ 시리즈의 9번째 책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내 멋대로 친구 뽑기’(2016년·주니어김영사)에서 시작된 시리즈는 최근까지 총 30만 부가 팔렸다. ‘뽑기’라는 친숙한 소재에 원하는 걸 얻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담아 인기를 끌었다. 그는 “아이나 어른이나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을 상상 속에서나마 이루고 싶은 마음은 같다”며 “여러 차례 뽑기를 해도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지금 가진 것들의 소중함도 담았다”고 했다. 최 작가는 “올해만 강연을 150회 다닐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며 “2011년 등단한 뒤 펴낸 책 30여 권의 아이디어를 얻은 ‘창의력의 원천’도 아이들”이라고 했다. 이어 “소문난 말썽꾸러기가 ‘내 멋대로 선생님 뽑기’(2022년·주니어김영사)를 읽고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걸 보고 놀랐다”며 “책에는 아이를 바꾸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작가 소개에 ‘어린이 친구들이 신나고 재미있게 읽는 이야기를 쓰려고 언제나 노력한다’고 꼭 쓴답니다. ‘내 멋대로’ 시리즈를 계속 쓸지, 다른 작품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목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요. 하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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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라 작가 ‘저주 토끼’,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최종후보 선정… 韓 작품 최초

    정보라 작가(47)의 단편소설집 ‘저주 토끼’(Cursed Bunny·래빗홀) 미국판이 올해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전미도서재단은 3일(현지 시간) ‘저주토끼’, 필라르 킨타나(콜롬비아)의 ‘심연’, 아스트리드 뢰머(네덜란드)의 ‘여성의 광기에 관하여’, 스테니오 가르델(브라질)의 ‘남아있는 말들’, 다비드 디옵(프랑스)의 ‘돌아올 수 없는 문 너머’까지, 총 5개 작품을 올해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작 중 아시아 작품은 ‘저주토끼’가 유일하다. 미국판 번역은 ‘저주 토끼’로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정 작가와 함께 오른 번역가 허정범(안톤 허)이 맡았다. 최종 수상작은 다음달 15일 발표된다.지난해 김보영 작가의 소설집 ‘종의 기원’, 2020년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소설 ‘우에노 역 공원 출구’가 번역문학 부문,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의 시집 ‘DMZ 콜로니’가 시 부문에서 2020년 수상했으나 이들은 한국 국적이 아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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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2200권 책이 만든 ‘작은 기적’[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구름골’이란 애칭처럼 산골 사이사이 구름이 가득했다. 종종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도서관으로 향하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달려온 아이, 목욕탕 가다 발길을 멈춘 할아버지, 책이 보고 싶어 들른 귀촌인….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지난달 26일 문을 연 ‘구름골작은도서관’은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어린이집이자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사랑방, 어르신들이 땀을 식히고 가는 마을회관이었다. 인구가 2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산골 마을에 구름골작은도서관이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구름골작은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만든 111번째 도서관이다. 운주면 행정복지센터에 220㎡ 규모로 조성돼 책 2200여 권이 들어찼다. “친구들 함께 책 읽을래요?” 기자가 이날 찾은 도서관에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재해석한 그림책 ‘슈퍼 거북’(2014년·책읽는곰) 동화 구연이 열리고 있었다. 전교생이 24명뿐인 운주초등학교 학생들은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의자에 앉아 웃으며 동화 구연을 들었다. 유소영 양(12)은 “새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과 함께 왔다”며 “앞으로 도서관에서 1주일에 3권씩 책을 읽으려 한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김현서 양(10)은 “책이 너무 많아서 신기하다. 평소 책을 잘 안 읽었는데 이젠 도서관에 자주 놀러 올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작은도서관 마련은 주민들의 숙원이었다. 운주면은 청정지역으로 유명해 귀촌 인구가 늘고 있지만 문화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완주군립중앙도서관까지 가려면 차로 30분이 걸리고, 영화를 보려면 롯데시네마 전주송천점까지 역시 차를 타고 40분을 가야 해 문화생활을 하기 쉽지 않았다. 주민들이 애용하던 운주초등학교 도서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출입이 막혔던 탓에 한동안 불편이 더욱 컸다. 최경태 운주면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 위원장은 “운주면은 1960년대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 시간이 멈춰 있었다”며 “젊은 엄마 아빠가 아이와 시간을 보낼 곳이 특히 없었다”고 했다. 구름골작은도서관 개관을 특히 반긴 건 귀촌인들이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귀농 등으로 고향에 돌아온 이들에게 도서관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박용민 씨(52)는 “돈 벌러 청년 때 떠난 고향에 13년 전 돌아왔지만, 문화적으론 소외지역이라 아이에게 미안했다”며 “도서관이 생겼으니 시간이 될 때마다 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을 유치한 데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컸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자서전 ‘마음에 꿈을 그려라’(2008년·나침판)를 비롯해 7권의 책을 내기도 한 독서광이다. 유 군수는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문화 척도”라며 “작은도서관이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웃음이 넘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남용 완주군의회 의장은 “도서관이 주민들이 교류하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수연 목사는 “지혜가 담긴 책을 읽으면 인생이 아는 길을 운전해 가는 것처럼 여유로워진다”며 “무엇이든 짓는 것 못지않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 만큼 도서관 운영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작은도서관을 지역사회 문화공간으로”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앞으로 200, 300호 작은도서관을 조성하고 싶어요. 작은도서관이 지역사회의 문화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발전하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57·사진)은 2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을 통해 작은도서관 설치와 운영을 지원해왔다. 최근엔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111번째 도서관을 열었다. 앞으로도 지원을 이어가 더 많은 도서관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말까지 작은도서관 5곳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행장은 “청소년들이 책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꾸길 바란다”며 “작은도서관은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작은도서관은 문화 소외지역 주민과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화 공간이 되고 있어요. 주민들과 어린이, 청소년이 독서를 하는 곳이자 지역사회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주민들 간의 소통, 자녀와의 놀이공간으로 지역사회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죠.” KB국민은행은 온라인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도서관 전자도서 서비스를 구축했다. 이 행장은 “여러 개의 점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는 것과 같이 장기적 관점에서 작은도서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행장은 독서의 힘을 강조했다. “요즘 ‘혁신에 대한 모든 것’(청림출판)을 읽고 있어요. 실제 사례를 통해 혁신의 본질적 특성과 작동 방식을 풀어낸 책으로,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고 있죠. 독서는 새로운 시대를 배우고 나를 성장시킵니다.”완주=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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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제예산 반토막, 독서사업도 5분의 1로… “지원줄어 문화계 타격”[인사이드&인사이트]

    《출판, 영화, 만화 등 문화예술계 여러 분야에서 내년 정부의 지원금이 일부 줄어들 예정이어서 관련 창작자와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8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산안에 따르면 문화예술 예산은 올해 2조3140억 원에서 내년 2조2704억 원으로 436억 원(1.9%) 줄어든다. 문체부 전체 예산안이 올해 6조7408억 원에서 내년 6조9796억 원으로 2388억 원(3.5%)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문체부가 세부 예산안 전체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삭감 폭이 큰 분야에선 “문화산업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문체부는 “비효율적 사업을 정리하는 등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고, 콘텐츠 예산은 오히려 1250억 원 늘렸다”는 입장이다.》 ● “출판 예산 62억 원 줄어” vs “중소출판사 육성 예산 신규 편성”반발이 큰 대표적인 분야가 출판계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작가회의 등 출판 단체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출판 예산은 올해 529억 원이지만 내년 예년은 62억 원(12%) 줄어든 467억 원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출판 단체들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연간 520종의 문학 도서를 선정·구입해 도서관에 배포하는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 예산이 올해 20억 원이었지만 내년엔 아예 편성되지 않았고, 동아리와 이동식 도서관 등을 지원하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은 올해 60억 원 규모로 예산이 편성됐지만, 내년엔 12억 원으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올 5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 전자책(e북) 해킹 사건과 지속적인 독서 인구 하락으로 출판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영화, 드라마 등 타 분야로 지식재산권(IP) 활용 가능성이 높은 출판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다면 한국 문화산업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반면 문체부는 우수 중소출판사 육성 예산 30억 원을 새로 편성했다는 입장이다. 또 내년 예산을 없앤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은 비문학 도서를 선정·구입해 도서관에 배포하던 기존 세종도서 지원 사업으로 통합 운영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김성은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 예산이 줄어든 건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의 차별 없는 독서 기회 보장을 위한 예산 12억 원도 새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영화제 예산 반 토막” vs “영상 투자 예산 대폭 확대”영화계는 지역 영화제 지원 예산이 줄어든 데 대해 반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유증과 성수기로 꼽히는 여름 극장가에서도 대작 한국 영화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것이다.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국내외 영화제 육성’ 예산은 올해 56억 원에서 내년 28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 예산은 올해 12억 원이지만 내년엔 폐지된다. 56개 영화제가 참여한 ‘국내개최영화제연대’는 지난달 14일 성명서를 내고 삭감 철회를 요구했다. 영화제연대에 참여한 서울독립영화제의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지금의 1000만 감독들 역시 10년 이상 작은 영화제에서 작품을 선보였던 이들”이라며 “작은 영화제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다음 작품을 만들 동력과 네트워크가 생긴다. 예산 삭감은 안 그래도 부족한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더 해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문체부는 지역 영화제 지원은 원칙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지역 영화제가 난립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국내외 영화제 육성’ 예산 지원 대상을 기존 40개 영화제에서 20여 개로 줄여 경쟁력 있는 영화제를 지원하겠다는 것. 강민아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한국 영화 투자·제작 활성화를 위한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예산을 올해 80억 원에서 내년 250억 원으로 늘린다”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비롯해 영화, 드라마 등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는 ‘콘텐츠 전략펀드’ 예산 450억 원도 신설한다”고 했다.● “‘윤석열차’ 논란 맞물려 삭감” vs “부진 사업 예산 줄인 것”일각에선 ‘미운털’이 박힌 곳의 예산을 줄였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진흥원에 대한 내년 문체부 예산은 60억 원으로, 올해(116억 원)보다 56억 원 줄어 거의 절반이 됐다. 진흥원의 만화산업 전문교육 인력 양성 사업과 만화 교육을 지원하는 웹툰창작체험관 사업은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문체부는 진흥원 사업과 상당 부분 겹치는 ‘웹툰산업 전문인력 교육 사업’을 직접 하는 사업으로 신설해 20억 원을 배정했다. 이에 대해 비슷한 분야에 지원할 예산을 진흥원에서 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흥원은 지난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한 고교생이 그린 만화 ‘윤석열차’가 금상을 받으며 논란이 됐다. 만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기차 전면에 그렸고, 부인 김건희 여사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칼을 휘두르는 검사들이 기차에 탄 모습을 담았다. 공모전을 후원한 문체부는 학생 대상 공모전에서 정치적 내용을 담은 작품은 다루지 않기로 한 후원 조건을 위반했다고 진흥원에 경고했다. 한 만화계 관계자는 “진흥원 예산 삭감은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 창작자, 단체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비칠 수 있다”며 “논란이 있었던 사안인 만큼 예산안 책정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비효율적 사업을 정리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박현경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지역웹툰캠퍼스 사업 등 투입 대비 효과가 부진한 사업의 예산을 줄인 것”이라며 “만화 출판 지원, 만화 콘텐츠 다각화 지원, 수출 작품 번역 지원 사업에선 부정 수급 사례가 발견돼 예산을 삭감했다”고 했다.● “문화계와 소통부터 해야”문체부는 전반적 문화예술 예산 감소는 문화계에 대한 지원 주체를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바꾸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로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예산 대비 33조 원 넘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유병채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예산안을 발표하며 “국고 지원을 줄이고 지방재정 교부금에서 충당하기로 했거나 지방으로 이양되는 사업 등이 늘어난 것이 (예산) 감소의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꼭 필요한 분야를 제외하면 정부의 창작자에 대한 직접 지원은 줄이고, 취약계층 등 국민의 문화 향유를 보조하는 간접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가 창작자를 직접 지원하면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이들이 생기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독립출판, 독립영화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곤 문화 역시 상업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문화계가 수익성을 높여 자립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문화계의 소통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8월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 회계 보고 과정의 문제를 발견했다며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화계에선 실제 문제가 있는지를 떠나 수사 의뢰까지 할 사안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에게 예산안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부족했다.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정부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불신을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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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추석연휴, 전시-영화-공연 ‘문화 나들이’ 떠나볼까

    《달이 환하게 가득 차 오르는 추석이다. 연휴 기간 나들이에 문화생활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온 가족이 함께 볼 공연과 영화, 전시, 책이 풍성하다. 본보 공연, 전시, 영화, 출판 담당 기자들이 추석 연휴에 즐길 만한 추천작을 각각 추려 봤다.》 英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마지막 기회… 장욱진 60년 활동 조명 회고전 열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품 52점을 선보이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10월 9일 막을 내린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최고의 거장 카라바조(1571∼1610)의 명작은 물론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터너, 마네, 모네, 고갱 등 서양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석 당일에만 휴관하기 때문에, 이번 연휴가 명작을 만날 막바지 기회다. 통상 해외 전시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인상주의나 현대미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N차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 풍속화나 18세기 영국 초상화 등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미술 경향을 집중해서 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를 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1920년대부터 1990년 작고하기까지 장욱진의 60년간 활동을 조명한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일본에서 발견된 1955년 ‘가족’도 최초로 공개된다. 서울관에서는 김구림, 정연두 개인전을 연다. 과천관에서는 이신자 회고전을, 청주관에서는 피카소 도예전을 각각 볼 수 있다. 서울관은 추석 당일, 과천·덕수궁·청주관은 10월 4일 대체 휴관한다.항일운동 소재 ‘도적’ 가족 모두 즐길만… 강동원 주연 ‘천박사…’ 영화 예매율 1위 추석 연휴를 겨냥해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은 ‘도적: 칼의 소리’다. 1920년대 중국 북간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선식 서부극’으로, 배우 김남길 서현 이현욱 이호정 등이 출연했다. 조선, 중국, 일본 문화가 한데 모인 북간도의 이색적인 풍경에 말을 타고 윈체스터 장총을 쏘는 시원한 액션이 더해졌다. 항일운동을 소재로 삼아 가족들이 추석에 둘러앉아 함께 즐길 만하다. 총 9화가 22일 공개됐다. 27일 개봉한 배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예매율 1위를 달리며 추석 극장가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퇴마사 행세를 하며 사람들에게 사기 행각을 벌이던 천 박사(강동원)가 악귀 범천을 만나게 되면서 진짜 퇴마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무시무시한 반인반신의 범천 역은 배우 허준호가 맡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답지 않게 러닝타임이 98분으로 짧다. 12세 관람가로 연휴 저녁에 가족들이 가볍게 보기 좋은 오락영화다.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 이달 초 개봉한 유재선 감독의 ‘잠’을 아직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들 작품도 관람하길 권한다.하루키 6년만에 장편소설 ‘도시와…’ 출간, 그림책 ‘세상에서…’은 고향 풍경 담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무라카미 하루키 지음·홍은주 옮김·768쪽·1만9500원·문학동네)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4)가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30대 남자 주인공이 10대 시절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공유했던 소녀를 떠올린 뒤 수수께끼의 도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6일 출간된 뒤 예스24에선 3주 연속, 교보문고에선 2주 연속 종합 1위에 올랐다. 하루키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했지만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동명의 중편소설을 고쳐 썼다는 점에서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두툼한 ‘벽돌책’인 만큼 연휴에 도전할 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델핀 페레 지음·백수린 옮김·128쪽·2만 원·창비)은 정겨운 고향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펼쳐진 그림책이다. 엄마의 고향을 찾은 아이는 시골집 다락에 올라 엄마의 오래된 물건들을 꺼내어 본다. 엄마가 갖고 놀던 장난감, 엄마가 즐겨 불렀던 피리,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들…. 엄마의 추억이 보물상자처럼 아이에게 닿는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연휴, 이 책 속의 엄마와 아이처럼 가족들과 옛 추억을 나눠 보면 어떨까. 지난해 프랑스 아동문학상 ‘소시에르 상’ 수상작이다.국립창극단 ‘심청가’ 4년만에 무대에… 연극 ‘더 파더’ 전무송-현아 부녀 출연 이번 추석에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으로 서로의 온기를 느껴 보는 건 어떨까.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선 국립창극단의 ‘심청가’가 4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손진책이 극작과 연출을, 안숙선 명창이 작창을 맡았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 부르는 ‘범피중류’ 장면은 공연의 백미로 꼽힌다.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안무를 짰다. 민은경, 이소연, 유태평양 등 창극단 소속 간판 소리꾼들이 출연한다. 연휴 기간에는 관람 전 창극단 단원들에게 ‘심청가’의 한 대목과 추임새를 배워 볼 수 있다. 2만∼5만 원. ‘진짜 부녀’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연극도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는 다음 달 1일까지 배우 전무송(81)과 딸 전현아(52)가 아버지와 딸을 연기하는 연극 ‘더 파더’가 공연된다.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이 원작이다. 동명 영화로도 제작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았다. 공연은 치매에 걸린 가운데 위신을 지키려는 노인 앙드레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딸 안느의 이야기를 다룬다. 4만5000∼5만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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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시장 1조… 대학에 창작연구소, 작법서도 쏟아져

    “거실 한쪽엔 거대한 유리창이 있었다. 창 너머로는 아름다운 정원과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집주인에게 정원은 그의 ‘낙원’이었다….” 지난달 9일 출간된 웹소설 작법서 ‘챗GPT와 웹소설 쓰기’(멀리깊이)가 제안한 방법을 활용해 기자가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로 얻은 결과물의 일부다. ‘자산 1조 원대를 보유한, 자수성가해서 성격이 고집스럽고 자기 확신이 강한 50대 남자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집의 거실 풍경을 묘사하라’고 입력하니 나온 결과다. 신간은 “‘부잣집 거실’처럼 뭉뚱그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하고, ‘묘사하라’처럼 하나의 요청만 해야 한다” 등 챗GPT를 웹소설 창작에 활용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결과물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기자는 74자의 요구사항을 입력해 단숨에 664자의 준수한 결과물을 얻었다. 매일 5000자 이상, 한 달에 15만 자 넘게 쓰는 웹소설 작가에겐 챗GPT가 ‘보조 작가’로서 쓸모 있는 셈이다. 신간을 쓴 웹소설 작가 이청분 씨는 “챗GPT는 독자가 좋아하는 ‘클리셰’를 만드는 데 활용하기 좋다”며 “글을 쓰다 막혔을 때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는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적지 않아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최근 웹소설 창작 이론 시장이 체계화되고 있다. 웹소설 시장 규모가 2013년 100억 원, 2020년 6400억 원에 이어 지난해 1조390억 원으로 껑충 뛴 것이 그 배경이다. 광주대 문예창작학과는 13일 ‘웹소설 창작연구소’를 개설했다. 내년 1학기부터 신입생을 모집하는 웹소설 대학원 전공과 연계해 웹소설 창작과 이론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계획이다. 올 6월 나온 ‘독자와 출판사를 유혹하는 웹소설 시놉시스와 1화 작성법’(머니프리랜서) 같은 기초 작법서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학술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김명석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올 1월 문학 저널 ‘우리문학연구’에 논문 ‘웹소설 창작론 연구’를 발표했다. 4일 출간된 ‘웹소설 보는 법’(유유)은 꽤 심도 있는 비평서다. 현실에 좌절하다 보니 옛날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청년세대의 마음이 ‘환생물’의 유행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담겼다. 이 같은 연구는 웹소설이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웹소설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환생’,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등 비슷한 패턴을 지닌 작품이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표절 논란도 잇따르고 있다. 올 7월엔 한 웹소설이 유이세스 작가의 ‘에피소드’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 삭제됐다. 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단순히 조회 수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의미 있는 웹소설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순수문학 비평이 한국 근현대소설의 질적 성장을 이끌었던 것처럼 웹소설 이론이 정립돼야 웹소설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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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0세기 과학 발전 이끈 당대 ‘최고의 두뇌’

    “당신의 통찰력으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바라본다면 새로운 해결책이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1943년 7월 미국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헝가리 출신 수학자 존 폰 노이만(1903∼1957)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거대 연구단지를 짓고 핵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지체되자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두뇌’라 불리던 노이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두 달 후인 9월 로스앨러모스에 도착한 노이만은 먼저 핵 연쇄반응을 위해 구의 중심 방향을 향해 폭발시키는 ‘내폭형’ 폭탄의 설계를 기존보다 정교하게 설계했다. 또 전하를 띠고 있는 쐐기 모양의 물질을 플루토늄 주변에 삽입해 폭탄의 폭발력을 높이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처음 맨해튼 프로젝트는 우라늄을 사용하는 ‘포신형’ 폭탄 개발에 초점을 맞췄지만, 노이만의 합류로 플루토늄이 쓰이는 내폭형 폭탄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결국 1945년 7월 세계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 실험’에서 사용된 건 내폭형 폭탄이었다. 전공인 수학을 기반으로 물리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천재적인 사고를 펼친 노이만을 다룬 평전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과학 전문작가인 저자가 노이만의 일생을 추적했다. 노이만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유대인이었다. 책을 읽고 싶어 도서관을 통째로 샀을 정도로 지적 호기심이 강렬했던 아버지는 노이만에게 철저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노이만은 여덟 살 때 미적분을 척척 해낼 정도로 수학에서 두각을 보였다. 독일 베를린대 교수로 재직하던 노이만은 반(反)유대주의적 분위기를 피해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33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함께 일했다. 그는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집단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게임 이론’의 기초를 세워 현대경제학 발전에 공헌했다. 또 1932년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개념들과 공식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서술해 양자역학의 발달에 이바지했다. 1941년 최초로 내장 프로그램 방식과 2진법을 도입한 ‘에드박’을 설계해 컴퓨터 혁신도 이끌었다. 평생 논문 150여 편을 발표하며 수학, 경제학, 컴퓨터과학, 기하학,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가득 생각을 채우며 운전한 탓에 교통사고를 자주 냈다. 한 곡선도로엔 ‘노이만 코너’라는 별명이 붙기까지 했다. 항상 공부에 매달린 탓에 첫 번째 아내와 사이가 틀어졌고, 결혼 7년 만에 이혼했다. 여러 학문을 건드리다 보니 깊이가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동료 중엔 그를 “고매한 학문의 전당에 빌붙어 사는 하층민”이라 부르며 질투하는 이들도 있었다. 말년엔 암이 뇌까지 퍼져 ‘7+4’ 같은 단순한 산수 문제도 풀지 못했다. 천재마저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삶이란 난제일지 모른다. 1957년 2월 8일 마지막 숨을 거둔 그에 대해 두 번째 아내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노이만은 이 세상 누구보다 똑똑했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은 거의 원시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자연의 커다란 수수께끼, 그러나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편이 더 좋은, 그런 수수께끼 같은 남자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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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브, BTS와 두 번째 재계약… 군 복무 이후에도 활동

    소속사 하이브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와 두 번째 재계약을 맺었다.하이브는 20일 “(하이브 산하) 빅히트뮤직 소속 아티스트 BTS 멤버 7인의 전속계약에 대한 재계약 체결에 대해 이사회 결의를 완료했다”고 공시했다. 2013년 6월 데뷔한 BTS는 앞서 전속 계약 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인 2018년 10월 하이브와 재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멤버 전원이 20일 두 번째 재계약을 맺음으로써 군 복무를 마친 2025년 이후에도 팀이 이어질 수 있게 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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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형제의 동화엔 민중의 목소리 담겨”

    “그림 동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 민중의 언어를 일상적이면서도 시적인 언어로 빚어냈어요.” 8일 출간된 ‘그림 동화 특별판’(전 2권·민음사·사진) 자문역을 맡은 독일 민담·동화 권위자 알프레트 메세를리 전 스위스 취리히대 대중문화학과 교수(70)는 19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 야코프(1785∼1863)와 동생 빌헬름(1786∼1859) 그림 형제가 14년 동안 독일 전역을 다니며 200여 개의 민담을 모은 이 동화엔 민중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림 동화’는 그림 형제가 1812년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라는 제목으로 처음 펴낸 뒤 수차례 개정한 책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등 한국 독자도 익숙한 서양 민담이 담겼다. 메세를리 전 교수는 “그림 형제가 채집해 정리한 수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은 이젠 하나의 장르가 됐다”며 “인간의 긍정적, 부정적 특성을 모두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그려낸 동화를 읽으며 나라는 존재와 세상을 더 넓고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 번역본이 많지만 신간은 그림 형제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판본인 1857년 7판 정본을 처음으로 완역했다. 2011년 동양 여성 최초로 독일 바이마르 괴테 학회가 주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한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72)와 김남희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49)가 함께 번역했다. 전 교수는 “원문을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다른 판본은 ‘습니다’로 끝나는데 신간은 대화에선 존대어를 사용하고 본문은 평어체로 번역하며 속도감도 살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그림 형제가 전래 동화들을 수집했을 때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 유럽에 확산했고, 이를 억누르려는 강경한 대응이 이어지던 혼란한 시기”라며 “그림 형제는 각 지역에서 전해진 민담을 채집해 엮음으로써 독일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종교, 교육, 도덕, 희망, 삶, 지혜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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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인 가뒀던 감옥 보고 전율… 7번 퇴고 거쳐 완성”

    “전남 곡성군 천주교 곡성성당 옆집을 빌려서 1년을 살았어요.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박해받았던 공간에서 소설 속 인물과 함께 지내며 글을 썼습니다.” 김탁환 소설가(55)는 1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해박해(丁亥迫害)를 다룬 장편소설 ‘사랑과 혁명’(전 3권·해냄)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곡성군에서 시작된 1827년 정해박해의 진원지이자 천주교인을 가둔 감옥이 있던 옥터성지에 머물며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오전 5시 눈을 뜬 뒤 집 앞에 있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낮엔 소설을 썼다”며 “밤엔 꿈에 나타난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고 했다. 김 소설가는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2004년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전 8권·민음사) 등 굵직한 역사소설을 발표해 왔다. ‘사랑과 혁명’은 그의 31번째 장편소설이다. 2021년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전 2권·해냄) 이후 2년 만의 장편으로 1568쪽에 달한다. 그는 “소설을 7번 퇴고하는데 정말 토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와 전업 작가로 대전과 서울에서 각각 10여 년을 살았다. 대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1년 1월 곡성군으로 이사했다. 그는 “우연히 곡성성당을 방문했다가 천주교인이 갇혔던 감옥을 복원한 공간을 보고 감전된 것 같았다”며 “이야기의 신(神)이 1800년대의 이야기를 잘 써보라고 나를 곡성군에 보낸 것 같았다.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방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19세기 조선에 살았던 천주교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순박한 농사꾼 청년 ‘들녘’이 천주교에 눈을 뜨는 것에서 시작해 박해에도 굴하지 않던 천주교인의 저항을 그렸다. 1권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음지에서 확산했던 천주교의 역사, 2권은 정해박해 사건, 3권은 감옥에서 복역한 천주교인의 고민을 다루며 정해박해를 다층적으로 조명했다. 그는 “어릴 적 개신교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천주교인은 아니다”라며 “신간은 종교소설이면서 조선의 근대화 과정을 다룬 역사소설”이라고 했다. 그는 2021년 곡성군에 작품의 주인공 이름을 딴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이란 작은 책방을 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수줍게 답했다. “만약에 ‘들녘’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읽을 만한 책들로 책방을 꾸며서 곡성군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곡성군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면서 고민하고 깨달은 것을 쓰고 싶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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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마지막 비서실장’ 정해창, 회고록 ‘…791일’ 출간

    “1988년 7월 7일 서울 올림픽 개최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란 이름 아래 7·7선언을 내외에 선포함으로써 이른바 북방정책에 시동을 걸고 일관되게 추진했다.” 정해창 전 대통령비서실장(86)은 최근 펴낸 회고록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나남출판·사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 전 실장은 1990년 12월부터 1993년 2월까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자신이 재직 때 쓴 8권의 업무 일지를 토대로 7년간 집필해 836쪽의 신간을 냈다. 신간은 노 전 대통령이 6·29민주화선언부터 북방정책까지 여러 정책을 추진한 과정을 세밀하게 담았다. 3당 합당, 대통령의 당적 탈퇴 결정도 생생하게 전한다. 당시 ‘물태우’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태우란 평가는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시대적 상황에 대한 처방으로는 물의 미지근함이 정답”이라고 밝힌 일화도 담겼다. 정 전 실장은 “잘못에 대한 질책은 아무리 따가워도 달게 받아야 할 일이었다”라면서도 “그 시대 국민과 함께 이룩한 노 대통령의 업적까지 무시되거나 폄하됐다”고 했다. 5만40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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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문학상 경력보다 해외서 통할 수 있는 서사-주제가 더 중요”

    “기술 발전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미래를 그린 신간은 영미권 독자들도 흥미로워할 겁니다. 미국에서도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딥페이크 가짜뉴스와 이미지가 논란이 되고 있으니까요.” 영미권 출판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56)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공상과학(SF) 장편소설 ‘메모리케어’(은행나무, 지난달 28일 출간·사진)를 공모전을 통해 발굴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경숙, 손원평 등 국내 순수문학 작가의 문학성 높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신인의 장르문학을 선택한 건 영미권 독자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그는 “신간은 신춘문예 등 문학상 수상 경력이 없는 진보라 작가(32)의 데뷔작이지만 해외 시장에선 한국 내 활동 경력이 중요하지 않다”며 “문장보단 서사와 주제 위주로 검토해 영미권에서 성공할 만한 작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지트워는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 문학 에이전트다. 약 20년 동안 한국 문학을 해외에 수출한 미국인으로 ‘한국 문학 전도사’로 불린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미권에 소개해 맨부커상 수상에 큰 역할을 하는 등 한국 순수문학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했다. 하지만 최근엔 한국 신예 장르문학 작가 발굴에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한국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참에이전시’를 세웠고, 두 달 뒤 제1회 ‘신예 작가 공모전’을 열었다. 이 공모전에서 지난해 11월 뽑힌 수상작이 ‘메모리케어’다. ‘메모리케어’는 번역이 진행 중이고, 곧 영미권 출판사를 통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처음 한국 문학을 소개할 땐 영미권 문학평론가를 겨냥해 순수문학을 찾았지만 상황이 변했다”며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 덕에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한국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여성 장르문학 작가의 작품도 해외 출판 계약을 추진 중이다. 웹소설 작가 출신 장세아의 장편소설 ‘런어웨이’(아프로스미디어), 번역가 출신 박현주의 장편소설 ‘서칭 포 허니맨’(위즈덤하우스) 등이 대상이다. 성과도 있다. 박소영 작가의 SF 장편 ‘스노볼’(창비)은 대형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를 통해 내년에 영미권에서 출간될 예정이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출간 계약도 진행 중이다. 그는 “특히 한국은 장르문학에서 젊은 여성 작가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향후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할까. “마케팅요. 한국에선 유명해도 영미권에서 책을 처음 낸다면 사실상 신인이나 다름없어요. 한국 작가가 눈도장을 찍기 위해선 해외 출판사 편집자도 만나고, 마케팅과 홍보에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제가 신인 작가에게 주목하는 것도 이 과정에 더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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