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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반악기 전문 연주자 최현영의 포르테피아노 독주회가 28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최 씨는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중 옛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쳄발로)에 매료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하프시코드(Harpsichord)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로,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독주 및 합주 악기였다. 그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를 전공한 후 학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에라스무스 장학재단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에서 수학했으며,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봅 판 에스페렌, 로버트 레빈 등 옛 건반악기 명연주자들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다. 유럽 체류 중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 연주, 오페라 코치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이날 독주회에서 최 씨는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 하이든(1732~1809)을 비롯해 빌헬름 프리드만 바흐(1710~1784), 카를 필립 에마뉴엘 바흐(1714~1788),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1748~1798) 등 18세기 중후반 시기에 포르테 피아노나 쳄발로로 연주됐던 곡들을 연주한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초기 포르테피아노 음악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반악기 환상곡들을 연주한다. 바로크 시대부터 이어져온 건반악기 즉흥연주의 전통은 토카타, 전주곡, 환상곡으로 발전해왔다. 18세기 중후반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작곡가들의 시도가 이어졌다. ―포르테피아노는 어떤 피아노인가?“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쓰였던 피아노다.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악기고, 베토벤도 초중기까지는 포르테피아노의 음역대를 염두에 두고 쓴 곡들이 많다. 초창기 포르테피아노는 현대의 피아노보다 훨씬 작아서 쳄발로(하프시코드)에 가까운 길이와 크기, 음역대를 갖고 있다.” ―포르테 피아노 전에 연주되던 쳄발로는 어떤 악기인가. “쳄발로는 소리 자체가 피아노랑 완전 다르다. 건반을 치는 것은 같지만, 현을 튕겨서 내는 소리다. 건반에 연결된 막대의 끝에 조그맣게 손톱만한 ‘퀼(quill)’이 달려 있어서 현을 튕긴다. ‘퀼’은 예전에는 새의 뼈나 깃털 등을 깎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쳄발로는 기타나 하프, 류트처럼 현악기 소리가 난다. 원래 노래반주는 류트로 연주를 많이 했다. 왼손으로 여러 줄을 동시에 누르며 류트를 연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건반을 눌러 현을 튕기도록 기계화 시킨 것이 쳄발로다. 열개의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화성을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다. 하프시코드는 현을 튕기기 때문에 ‘챙챙’ 거리는 소리가 난다. 개별 음은 명확히 잘 안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음이 들리는 화성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악기다. 대위법적인 푸가를 많이 쓰던 바로크 음악에서는 화성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프시코드는 연주자가 음량을 마음대로 키우거나 줄일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포르테피아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질서, 조화, 균형을 강조하는 바로크 음악이 약 100년간 작곡되다가, 18세기 중반 장 자크 루소의 자연주의가 나올 즈음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게 된다. 대위법적인 엄격한 화성 구조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노래 선율이 흐르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취향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현을 뜯는 소리가 났는데, 포르테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쇠줄을 땅하고 치고 내려가는 구조다. 건반을 세게 치면 큰 소리가 나고, 약하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나도록 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포르테피아노’란 이름부터 이탈리아어로 강한 소리는 ‘포르테’, 약한 소리는 ‘피아노’라고 하는 데, 강약을 잘 조절할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19세기부터는 쳄발로가 거의 사라지고, 포르테 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많아졌다.”― 현대 피아노와 포르테피아노의 음색은 어떻게 다른가. “88개의 건반을 가진 현대의 피아노는 강철 현을 커다란 해머가 때리는 구조라 음량의 표현이 거의 무한대다. 그야말로 0에서 100까지의 음량 범위 안에서 연주자가 조절하면서 원하는 다이내믹을 표현할 수가 있다. 포르테 피아노의 음량 범위는 0에서 50정도까지로 훨씬 적다. 음량이 작다는 것이 제한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표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항상 0에서 100까지의 음량을 모두 쓰고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말을 좀더 조리있게,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템포를 천천히 하거나, 끊어 읽거나,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연주하는 것)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쓰게 된다. 그래서 옛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사람이 말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표현한다. 보다 섬세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한 표현수단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옛날 악기의 표현방식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 더 맞다는 느낌이 든다.” ―포르테피아노와 현대 피아노의 구조의 차이는? “포르테피아노는 소리를 울리고 증폭시키는 공간에 사용되는 목재가 매우 얇다. 건반악기를 칠 때는 뚜껑을 열고 치는데, 소리가 나무 전체를 울린 뒤 반사판을 통해서 나온다. 포르테피아노는 나무판이 매우 얇아서 톡하고 부러질 정도다. 건반을 두드리는 해머도 작은 나무에 얇은 양가죽이 한두겹 싸여 있는 형태다. 연주자는 작은 해머가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건반을 쳐야 한다. 반면 현대의 모던 피아노는 굉장히 크고, 나무도 두껍고, 철로 된 견고한 보강물들이 있다. 낭만시대로 갈 수록 더 큰 소리를 내고, 더 많은 음역대를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의 크기 점점 커지고, 메카닉이 점점 복잡해져왔다.” ―포르테피아노가 더 맑고 투명한 음색이 나는 이유는. “현대의 그랜드피아노는 저음역대와 중음역대의 현이 대각선으로 교차되도록 설계돼 있다. 악기의 크기 안에서 최대한의 음역대와 큰 소리를 내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교차된 현의 공명현상 때문에 소리가 섞여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바흐나 모차르트와 같은 옛날 음악을 칠 때는 현대의 피아노로는 표현하기 힘들 때가 많다. 특히 저음 부분을 칠 때 명징하게 독립된 성부로 들리게 하기가 약간 어렵다는 게 느껴진다. 저는 대학시절에 원래 모던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처음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해봤을 때 부드러운 하얀 밥만 먹다가 잡곡이 섞인 밥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질감, 식감이 한꺼번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숨겨졌던 음이 하나하나 다 들렸다. 포르테 피아노의 현은 대각선으로 교차하지 않고,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 때문에 중음역, 고음역 등 개별성부가 모두 명징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음색으로 들리게 된다. 소리 구분이 더 잘되니, 제가 개인적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고, 숨겨진 보물찾기를 하는 재미가 생겼다. 현대 피아노로 연주하면 아무래도 음이 뭉쳐지게 된다. 현대 피아노로 20세기 레퍼토리를 연주하면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작곡가들도 이 피아노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날 베토벤, 모차르트 시대의 악기와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최 씨는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기가 만든 피아노를 가지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겉모양은 현대의 피아노이지만 내부는 현이 교차돼 있지 않고, 옛 건반악기처럼 현이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고 한다. 각 성부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바렌보임 자신만의 피아노인 셈이다. ―모차르트는 어떤 건반악기를 많이 연주했을까. “모차르트에게는 평생 가장 많이 연주한 악기가 ‘포르테 피아노’였다. 물론 쳄발로도 많이 연주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악기는 포르테 피아노였다. 또한 포르테 피아노의 직속 선배 악기인 ‘클라비코드(Clavichord)’도 많이 연주했다. 클라비코드는 소리가 워낙 작아 연주용 보다는 개인용 악기였다. 모차르트는 마차에 클라비코드 하나를 싣고 다니면서 호텔방에서 오페라를 작곡하곤 했다. 요즘 디지털 건반 같은 느낌이다. 클라비코드는 ‘밤의 악기’라고 불린다. 사람이 소곤대는 목소리 정도의 데시벨로, 바로 옆에 앉아서 들어야 들릴 정도로 소리가 아주 작다. 저도 집에 클라비코드가 있는데, 밤에 연주해도 층간소음에 전혀 문제가 없는 악기다. 바로크 작곡가들도 밤에 연주를 해야 한다거나, 내밀한 분위기에서 연주할 때는 클라비코드를 이용했다고 한다. 호텔방에서 갖고 다니면서 작곡하기엔 좋은 악기다.” ―쇼팽은 주로 어떤 피아노를 사용했나? “쇼팽은 플레이엘사의 피아노와 에라르 사 피아노를 주로 연주했다. 흔히 ‘낭만 피아노’라고 부르는 악기다. 소리가 거의 모던 피아노와 비교해도 그렇게 약하지 않은 소리가 난다. 내부는 평행한 줄로 제작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낭만시대 피아노는 공장식으로 제작돼 현대에도 많이 남아 있다. 피아노 회사마다 메카닉이 다르고, 음색의 차이가 컸다. 리스트는 에라르 피아노를 선호했고, 쇼팽은 플레이엘을 선호했다. 에라르는 파워풀하고 깊이 있는 소리가 났다면, 플레이엘은 둥그렇고 달콤한 음색이 특징이다.” ―시대악기를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됐나. “서울대 음대에서 전공수업 중에 쳄발리스트 오주희 선생님에게 옛 건반악기 수업을 들었다. 음반이나 영화에서만 듣던 찰랑찰랑한 소리를 들었을 때, 음악이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져들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거치고 음대에 들어갔는데, 회의감이 들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세상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있는데, 굳이 한 명의 연주자를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이론을 배워보기도 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 전과를 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쳄발로 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음악하고 싶다.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건반악기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짐을 싸서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포르테 피아노까지 전공하게 된 계기는. “챔발로를 전공하러 파리 19구에 있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했다. 학교 옆에는 악기박물관이 있었는데, 거기서 플레이엘 초기 피아노를 발견해 쳐보게 됐다. 별 생각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는데, 내가 상상만 해오던 소리가 피아노에서 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유리구슬이 또르륵 굴러가는 소리’였다. 그동안 모던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대가들만 이렇게 모차르트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절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포기하다시피했던 소리였다. 그런데 내가 연주해도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나서 포르테피아노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쳄발로에서 바로 그 다음시대의 악기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된 것이다.” 최현영 씨는 2019년 귀국 후 하우스 콘서트와 살롱 콘서트를 통해 옛 건반악기의 아름다움을 관객들과 나누고 있다. 시대악기로 고음악 연주는 물론 국악, 현대음악, 인문학, 미술사 등 다른분야와의 협업도 열정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18세기 중후반 ‘환상곡’ 레퍼토리를 연주하는데…. “바로크 음악에서 즉흥연주는 오랜 전통이었다. 성당에서 오르간으로 미사곡을 연주할 때는 즉흥연주를 해야할 순간이 굉장히 많다.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도중 예식을 할 때 배경음악을 깔아야할 때도 있고, 성체성사 줄이 굉장히 길 때는 오랫동안 음악을 연주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새로운 성가를 부르기 보다는, 연주자가 찬송가 주제를 활용해 즉흥연주를 하게 된다. 예식에 맞춰 연주하다가 언제든지 바로 끝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음악가가 귀족 집에 초대받아서 연주할 때도 처음에 피아노를 조율하고, 테스트하면서 손을 푸는 ‘자유로운 전주곡’도 즉흥연주였다. 16~17세기에는 악보로 표기 안된 즉흥연주가 많았는데, 18세기에 들어서 ‘환상곡’이라는 이름으로 악보가 출판되면서 지금까지 악보가 남게 됐다. 18세기 중반에는 미술계에서는 낭만주의가 시작된다. 음악에서도 바로크와 고전주의 사이의 짧은 기간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다. J.S 바흐가 1750년에 사망했는데, 바흐의 아들 세대 작곡가들부터 기상천외한 시도를 많이 한다. 예전같으면 말도 안되는 화성을 과감하게 넣기도 하고,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으로 ‘환상곡’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후기 바로크, 로코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당시에 포르테 피아노도 생겼다. 제가 연주하는 곡 중에 1801년에 쓰여진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3번이 있는데, ‘Quaisi una Fantasia’(거의 환상곡처럼)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소나타는 엄격한 형식(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이 있는데, 베토벤은 이 곡에서 환상곡이라는 장르를 활용해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 이번 독주회에서 바흐 사후 약 50년 동안 좀더 과감한 표현을 하기 시작한 건반악기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다.” ―바로크 음악에서 통주저음이란. “통주저음(通奏低音·Basso continuo)은 앙상블에서 즉흥연주를 할 때 쓰는 저음 반주다. 왼손 악보는 첼로의 베이스 선율을 따라가고, 오른손은 그 코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통주저음은 요즘의 재즈하고도 비슷하다. 콘트라베이스가 통주저음을 연주해주면, 나머지 악기는 기본 코드 안에서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는 것이 재즈다. 바로크 음악도 그런 요소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샤콘느라는 양식에서 첼로랑 쳄발로 파트 악보에는 네가지 음밖에 없다. 곡 전체에서 계속 반복이 된다. 네가지 음만 연주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걸 변주하기도 하고, 분위기에 따라서 피치카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해 나간다. 음악이란 것이 악보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현대의 연주자와 옛 작곡가들의 생각과 느낌이 서로 연결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음악을 더 살아 있게 만든다.” ―시대악기를 연주하는 원전연주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로크나 고음악을 한다고 하면 흔히 옛날 연주를 고증해서 똑같이 재현해서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1세대 연주자들은 ‘정격연주’ ‘원전연주’의 연주법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저희 세대는 그 혜택을 많이 받았다. 300~400년 전의 악기로 연주하는 고음악은 당시의 작곡가들과 접점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격연주라고 해서 옛날 연주법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더 깊이 와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목표가 옮겨가고 있다.” ―고음악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은?“고음악을 즐기는 분들은 현재 소수다. 그러나 굉장히 깊게 사랑한다. 고음악 연주를 ‘한번도 안들은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고음악 연주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아니라 작은 살롱 음악회에서 들어야 악기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역사와 문학, 미술, 무용과 함께 렉처 콘서트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바로크 미술, 무용과 고음악의 연관성이 있다면. “바로크 시대는 장식적인 게 엄청 유행하던 시기다. 음악에도 장식음이 풍부하다. 유학시절 옛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바로크 무용도 배웠다. 특히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춤곡이 대부분이다. 사라방드, 쿠랑트, 미뉴에트와 같은 바로크 시대의 무용 스텝을 알지 못하면 바로크 음악을 이해할 수가 없다. 스텝을 이해해야 프레이징을 이해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한 문장이고, 한 세트라는 것을 모르고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왈츠만해도 스텝을 몰라도 음악 리듬자체로도 확 와 닿는다. 그러나 바로크 춤곡은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귀족들만 향유했던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라방드는 우아한 느린 세박자 춤곡이다. 두 번째 박자에 엄청난 장식음이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두 번째 스텝에서 발을 들어올려서 다양한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을 음악으로 채워주기 위해 트릴, 꾸밈음을 넣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음대에서는 필수로 바로크 무용을 배운다. 별도의 바로크 무용 캠프에 가서도 배웠다. 한국에서 전통무용을 배우는 사람이 있듯이, 프랑스에서 은퇴하신 분들이 취미로 궁정에서 추던 바로크 무용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국악하고 협업을 하는 이유는.“서양 바로크 음악이랑 국악은 굉장히 유사하면서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조선시대 궁중음악을 연주하는데, 만약에 서양의 음악가들이 와서 같이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실제로 우리나라 꼭두각시 선율과 스코틀랜드 민요의 춤곡은 굉장히 유사한 선율이 반복된다. 또한 옛날 바로크 선율을 국악기가 연주해도 전혀 무리가 없고, 꾸밈음을 붙이는 방식에서 굉장히 접점이 많았다. 서양 바로크 음악 연주자들과 국악연주자들이 한국의 즉흥음악인 ‘시나위’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장구 리듬에 맞춰 시나위를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하니 연주자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기본적인 틀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해보니 굉장히 재밌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왔다. 이러한 시나위 연주는 유럽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국악도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해서 세계인들과 호흡하고 있는데, 저희 서양 고음악 바로크 연주자들도 서로 영감을 받는 부분이 많다. 옛 음악이 박물관 유리창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살아 있게 하는 것이 현대 연주자들의 역할인 것 같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해골의 집’ ‘뼈로 만든 집’으로 불리는 건물이 있다.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바트요다. 이 집은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인 성 게오르기오스가 용과 싸우는 전설을 담고 있다. 건물의 꾸불꾸불한 곡선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 같다. 발코니는 해골 모양이고, 기둥은 뼈, 지붕은 용의 비늘로 덮여 있다. 내부엔 용의 등뼈처럼 생긴 계단 난간이 이어진다. 한 편의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집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우리 집으로 가자.’ 20∼29일 열흘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개최하는 ‘공예주간’이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를 비롯해 전국 600여 곳에서 열린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제한적으로 열렸던 ‘공예주간’ 행사가 올해는 3년 만에 오프라인 전시 관람과 마켓, 체험 프로그램 등이 본격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19는 새삼 집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집은 힘들고 지쳤을 때 내 몸을 받아주고,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며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집 안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려기물인 공예품에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죠.”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올해 국민 공모로 선정된 공예주간의 슬로건인 ‘우리 집으로 가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공예주간에는 ‘집(Home)’과 관련된 공예문화에 대한 전시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마켓과 체험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다음은 김태훈 원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가장 역점을 둔 프로그램은…. “공예시장 활성화를 위해 작가와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서 컵과 그릇 등 실생활용 공예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마켓이 열립니다. 문화역서울284 서측 복도에서 구월마켓이 열리고, 양평 리버마켓과 매일상회, 곤지암 마켓, 태백의 블랙마켓, 양림동 공예마을 펭귄마을, 서순라길 공예거리, 전주 별별체험단 협동조합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전국 600여 곳의 공예주간 참여처와 창작지원센터에서는 물레 체험, 한지뜨기 체험 등을 직접 할 수 있습니다.” ―메인 행사장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전시는…. “밀라노 한국공예전에 참여한 37개 팀 작가들의 ‘사물을 대하는 태도’ 전시회가 열립니다. RTO공간에서 열리는 ‘촉각의 순간들(Touch in the Dark)’은 눈여겨봐야 할 전시입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다니는 대구 광명학교의 졸업앨범을 3D프린터로 입체로 만들어 친구들과 선생님의 얼굴을 만져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손으로 얼굴 모양을 누르면 그 사람의 녹음된 목소리도 들을 수가 있지요. 시각장애인과 작가들이 함께 작업한 공예작품도 영상과 함께 전시됩니다.” 김 원장은 이번 공예주간의 특징을 다양한 ‘협업’이라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개방형 수장고)에서 전통 소반과 반닫이 전시와 함께 작가들이 재해석한 현대적인 작품도 선보입니다. 또한 연남방앗간과 협업해서 그린요거트, 그래놀라를 공예작가들이 만든 그릇에 담아 먹을 수 있는 특별메뉴도 선보입니다.” ―‘우리 집으로 가자’는 슬로건에 맞는 전시는…. “스테이폴리오의 ‘공예와 함께하는 집’ 전시는 서울, 부산, 경북 경주 등에서 하룻밤 자면서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뉴턴의 ‘웰컴 투 마이 홈’은 서울 홍익대 앞 망원동에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스피커, 조명 등 집에 잘 어울리는 신진작가들의 공예작품으로 꾸며 전시합니다.” MZ세대들에게 미술작품 구입과 더불어 공예전시회도 요즘 점점 핫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지난해 공예트렌드페어는 사상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KCDF는 3월에 지역별로 도자기, 목공, 자수 등의 공예 클래스 2000여 건의 정보를 담은 책자를 발간했다. “올해 소외계층을 위해 ‘엘시스테마’처럼 공예를 가르쳐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내년에는 은퇴자들과 실버세대를 위한 공예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해 공예의 저변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우리 집으로 가자’ 20~29일 열흘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개최하는 ‘공예주간’이 구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를 비롯해 전국 600여 곳에서 열린다. 작년, 재작년엔 코로나19의 여파로 비대면 전시 위주로 열렸던 ‘공예주간’ 행사가 올해는 3년 만에 오프라인 전시관람과 마켓, 체험 프로그램 등이 본격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게 했지만, 새삼 집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내 몸을 받아주는 곳, 나를 쉬게 해주는 곳, 내가 아끼는 사람을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집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면서 반려기물인 공예품에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죠.”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올해 국민공모로 선정된 공예주간의 슬로건인 ‘우리 집으로 가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공예주간에는 특별히 ‘집(Home)’과 관련된 공예문화에 대한 전시가 많이 마련됐다. 또한 문화역서울 284 공예기획전시 ‘사물을 대하는 태도’, 촉각 중심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공예 특별전시 ‘촉각의 순간들(Touch in the Dark)’, 다양한 공예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마켓과 체험 등 전국 각지에서 풍성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다음은 김태훈 원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가장 역점을 둔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각종 도자기 페스티벌이 안 열리면서 공예작가들의 생태환경이 황폐화됐습니다. 그래서 작가와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서 공예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마켓을 곳곳에서 열려고 합니다. 문화역서울284 서측복도에서 구월마켓이 열리고, 양평 리버마켓과 매일상회, 곤지암 마켓, 태백의 블랙마켓, 양림동 공예마을 펭귄마을 마켓, 서순라길 공예거리 마켓, 전주 별별체험단 협동조합 마켓 등 전국 곳곳에서 컵이나 그릇, 부채 등 생활 속 공예품을 살 수 있는 마켓이 열립니다.”―메인 행사장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전시는? “밀라노 한국공예전에 참여한 37개 팀의 작가들의 ‘사물을 대하는 태도’ 전시회가 열립니다. 3등 대합실 공간에서는 생태 환경위기를 부각시킨 변종 생명체들의 모습을 표현한 도자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는데, 자연과 환경, 사람과 공예에 대한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전시입니다. 조계종 종정인 성파스님이 직접 만든 한지에 인화한 사진작품도 감동적입니다. RTO공간에서 열리는 ‘촉각의 순간들(Touch in the Dark)’은 공예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케하는 전시로 눈여겨 볼만 합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다니는 대구의 광명학교의 졸업앨범을 3D프린터로 입체적으로 만들어 손으로 친구들과 선생님의 얼굴을 만져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얼굴을 누르면 그 사람의 목소리 인사말도 들을 수가 있지요. 시각장애인과 작가들이 함께 작업한 공예작품도 영상과 함께 전시됩니다. 전시공간을 어둡게 조명해서 비장애인들도 촉각의 경험을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김 원장은 이번 공예주간의 특징은 다양한 단체와의 ‘협업’을 통한 전시, 마켓, 체험이라고 말했다. 국립민속물관 파주관(개방형 수장고)과 협업해서 ‘소반’, ‘반닫이’ 전시를 하고,홍대앞 핫플레이스 카페인 연남방앗간과 협업해서 식음료 특별메뉴를 개발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통 소반과 반닫이를 전시하면서, 공예주간 참여작가들이 재해석한 현대적인 소반, 반닫이 작품을 선보입니다. 작년에는 강릉의 대표적인 커피숍 브랜드인 테라로싸와도 협력했는데, 이번에는 연남방앗간과 협업해서 그린요거트, 그래놀라를 공예작가들이 직접 만든 전용 그릇에 담아먹는 특별메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으로 가자’는 슬로건에 맞는 전시는. “스테이폴리오의 ‘공예와 함께 하는 집’ 전시와 에어비앤비 숙박업소에서 진행하는 뉴턴의 ‘웰컴 투 마이 홈’이 있습니다. 스테이폴리오는 20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가지고 있는 숙소공유 플랫폼인데 서울, 부산, 경주 등에서 하룻밤 자면서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벤트도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뉴턴은 홍대앞 망원동에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청주공예비엔날레,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수상한 신진 작가들의 공예작품으로 꾸미게 됩니다. 그릇, 컵 뿐 아니라 스피커, 조명까지 집에 잘 녹아든 공예작품을 체험하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관람객들이 직접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관람객들이 가장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공예체험입니다. 집 안에서 공예키트를 이용해 직접 그릇에 문양을 넣고, 매듭으로 마스크도 만들어보는 체험이 큰 인기를 끌었죠. 이번에도 문화역서울284에서는 밀라노공예전 참여작가과 함께 도자기 물레체험, 한지뜨기 체험, 섬유체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600여 곳의 공예주간 참여처와 창작지원센터에서도 공예체험 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MZ세대들에게 미술작품 구입과 더불어 공예전시회도 요즘 점점 핫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공예트렌드페어는 사상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KCDF는 3월에 각 지역별로 도자기, 목공, 자수 등의 공예 클래스가 진행되는 공방 2000여 건의 정보를 담은 책자를 발간했다.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홈페이지에도 공예공방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원래 공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입니다. 집 안에 있는 소소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썼죠. 산업화 기간 중에 이런 전통이 사라졌지만, 손으로 만들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공예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올해 소외계층을 위한 공예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 교육을 시켰던 ‘엘시스테마’처럼 공예교육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지요. 내년에는 은퇴자들과 실버세대를 위한 목공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예의 저변을 확대하는 사업을 벌여갈 계획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로마 건국 신화에는 초대 왕인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키워준 늑대가 등장한다. 마르스 신(神)과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 형제는 출생 직후 테베레강에 버려졌으나, 늑대의 젖으로 자라서 훗날 로마를 건국했다. ‘불을 뿜고 있는 늑대’는 유럽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탈리아 주유소 ‘아지프(Agip)’의 로고로 쓰인다. 이 로고에서 늑대 다리가 6개인 이유는 젖을 먹는 쌍둥이 형제가 다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멸치가 하늘을 난다. 그물을 잡아당길 때마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봄 하늘로 높이 솟구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멸치는 항구로 쏟아진다. 선원의 얼굴에도, 옷에도, 모자에도 온통 멸치다. 지나가는 구경꾼들은 멸치를 줍느라 바쁘고, 항구의 갈매기는 호시탐탐 멸치를 노리며 쉼 없이 울어댄다. 4∼6월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 가면 볼 수 있는 ‘멸치그물 털기’ 현장이다. 겨우내 먼바다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뒤 부산 앞바다를 찾아오는 생멸치 회는 봄에 대변항에서 맛볼 수 있는 미식이다. 멸치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약동하는 봄의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올해는 기장 멸치축제도 3년 만에 다시 열린다. ● 기장 미역에 싸 먹는 생멸치 회 멸치회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 대변항(大邊港)은 독특한 이름 때문에 더욱 유명한 포구다. 개교 이래 55년간 ‘똥학교’로 놀림받던 대변초등학교는 2017년 용암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는 소식이 뉴스에 전해지기도 했다. 부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5학년 학생의 공약이 실현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대변항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던 대동고(大同庫)라는 창고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대동고 주변의 포구’라는 뜻으로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라는 이름이 붙었고, 줄임말로 ‘대변포’ ‘대변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 가 본 대변항은 깊숙이 들어간 만이 아늑하고 예쁜 미항이다. 혹자는 둥그렇게 생긴 항구가 펑퍼짐한 엉덩이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변항에서는 전국 멸치 60%가 공급된다. 포구의 가건물에는 “멸치젓 사이소” 하는 외침이 들리고, 항구 주변 가게들에서는 석쇠에 멸치를 통째로 굽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대변항에서 볼 수 있는 멸치는 몸길이 10∼15cm의 크고 굵은 ‘대멸’이다. 어른 손가락만 한 크기의 기장 멸치는 고깃배가 멸치 떼를 따라가며 잡는 ‘유자망(流刺網)’ 어업 방식으로 잡는다. 유자망은 배와 함께 떠다니는 그물로, 떼를 이뤄 이동하는 멸치가 그물코에 그대로 꽂히게 된다. 남해, 사천에서는 대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서 만든 죽방렴으로 멸치를 잡고, 제주도에서는 바닷가에 돌담을 쌓고 멜(멸치의 제주 방언)을 잡기도 한다. 몇 해 전 제주도에서 다이빙을 하던 중 멜 떼를 만났는데, 수백 마리의 멸치가 바닷속에서 투명한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거리는 모습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대변항에서 새벽에 출항한 유자망 어선은 오후 3시부터 해 질 녘까지 항구로 돌아온다. 길이가 2km나 되는 유자망 어선에는 은빛 멸치가 가득 꽂혀 있다. 10여 명의 선원들이 박자를 맞추어 손목 힘으로 그물을 당기고 내려치기를 반복한다. ‘어야라 차이야∼ 어야라 차이야∼.’ 어부들은 ‘멸치 후리소리’의 구성진 가락에 맞춰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어낸다. 한 사람이라도 엇박자를 낸다면 멸치를 그물코에서 떼어낼 수 없다. 멸치는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머리가 떼어지고, 내장이 터지기도 한다. 서너 시간이 지나면 선원들의 얼굴은 땀과 비늘로 범벅이 된다. 신성한 노동,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멸치는 급한 성질 때문에 그물에 잡아 올리면 바로 죽어 버린다. 그래서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멸어(蔑魚)’라고 했다. 생멸치 회는 부산 대변항과 남해안 거제, 제주 등의 일부 포구에서만 맛볼 수 있다. 멸치회는 미나리와 양파, 상추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내는데, 기장 미역에 싸서 먹어야 제맛이다. 멸치구이는 석쇠에 올려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구워 먹는다. 큰 멸치인데도 뼈가 부드러워 발라낼 필요가 없다. 된장 베이스의 자작한 국물에 배추 우거지와 무를 넣고 끓여낸 멸치조림, 멸치찌개도 있다. 조림과 찌개 속 통멸치를 밥과 함께 상추와 깻잎, 다시마에 싸서 먹는 ‘멸치쌈밥’은 고소한 멸치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별미다. 대변항에서 잡힌 멸치는 횟감이 아니면 말려서 국물용으로 쓰거나, 멸치젓을 담가서 판다. 국물을 낼 때는 멸치 똥까지 통째로 삶아야 한다. 내장과 뼈까지 포함한 멸치 똥까지 들어가야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다. 멸치는 바다 생태계의 최하위에 속하기 때문에 플랑크톤밖에 먹지 않아 내장도 깨끗한 편이다. 멸치는 갈치, 농어, 다랑어, 고래류, 바닷새들에게 소중한 먹이다. 멸치가 풍부할수록 어업생산량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멸치는 우리 바다를 풍요롭게 만들고,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어엿한 생선이다. “똥이라 부르지 말자/(중략)/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중략)/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등뼈 곧추세우며/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복효근의 시 ‘멸치똥’) 대변항 일대에서는 20일부터 3일간 기장멸치축제가 열린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행사다. 육지에서는 멸치잡이를 기원하는 풍물패 퍼레이드가 열리고, 대변항 일대 바다에서는 어선들이 줄지어 행진을 벌인다. 인근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20일부터 나흘간 ‘해운대 모래축제’도 열린다. ‘모래로 만나는 세계여행’을 주제로 에펠탑, 피라미드 등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를 모래 작품으로 선보인다. 축제 첫날인 20일 오후 8시 반에는 해상 불꽃쇼도 펼쳐진다.● 아홉산 숲과 죽성드림세트장 대변항을 구경한 뒤에 인근 기장군 철마면의 온통 초록세상인 ‘아홉산 숲’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휴대폰을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가 떠오를 정도로 사계절 청정한 대숲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홉산(해발 361m)은 9개의 골짜기를 품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직후 이곳에 정착한 남평 문씨 가문이 9대에 걸쳐 금강송과 대나무, 편백, 삼나무 등 수백 종의 나무를 심고 가꿔온 숲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숲을 따라 난 탐방로는 총 3.2km.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보는 데에는 1시간 반가량 걸린다. 입구에 들어서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면 아홉산 숲을 상징하는 빽빽한 맹종죽 대나무 숲이 펼쳐진다. 영화 ‘군도’에서 하정우가 무공을 익히던 장면, 영화 ‘대호’에서 최민식이 호랑이를 추격하던 장면도 모두 이곳에서 찍었다. 대숲 가운데에 있는 굿터에는 두 개의 돌기둥이 서 있는데 가족들과 연인들이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다. 매표소 입구에는 문중의 종택인 관미헌이 있다.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구갑죽(龜甲竹)’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모양이 눈길을 끈다. 대나무 마디가 일(一)자가 아니라 거북 등 껍데기처럼 다이아몬드 형태로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1950년대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여온 뿌리를 이식한 것으로,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홉산 숲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대나무였다고 한다. 대변항에서 해안도로를 달려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에 다다르면 푸른 바다 갯바위에 붉은색 첨탑과 지붕이 아름다운 건물이 눈길을 끈다. 성당처럼 생긴 이 건물은 2009년 방영된 SBS 드라마 ‘드림’을 촬영했던 세트장이다. 이곳은 분홍빛 노을로 물드는 해 질 녘에 찾아가면 더 아름답다. 성당 외벽 곳곳에 켜진 조명이 바닷물에 비치는 모습이 낭만적이다. 글·사진 기장=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은 프란시스코 타레가(1852∼1909)의 기타 명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트레몰로 주법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감미로운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알람브라 궁전 곳곳에는 전기 동력도 없이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솟아오른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천장 장식, 석회동굴의 종유석이나 벌집 모양의 아라베스크 무늬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3월 초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다가 눈을 만났다. 갈리시아 지방 해발 1300m의 고원에 있는 ‘산타 마리아 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이 있었다. 산의 아랫녘에는 각종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산꼭대기에는 눈이 내렸다. 푹푹 빠지는 눈을 밟고 성당으로 향하는데, 나뭇가지에도 흰 눈이 수북수북 쌓여 있었다. 지난 겨울에 강원도의 산 속에서 나뭇가지에 얼음이 얼어붙은 상고대를 봤지만, 말 그대로 나무에 함박눈이 쌓여 핀 눈꽃은 오랜만에 보았다. 성당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종이 ‘땡땡~’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산골의 눈쌓인 성당에서 듣는 종소리는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데 담벼락에 심어진 나무에서 새빨간 열매를 발견했다. 뾰족뾰족한 초록색 잎사귀와 빨간색 열매, 그 위에 덮여진 새하얀 눈! 12월25일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 그대로였다. 그것도 봄에 스페인 산골에서 초록색, 빨간색, 흰색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현실에서 마주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호랑가시나무 잎사귀는 어찌나 뾰족한지 손을 대면 찔릴 정도다.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등을 비빈다고 해서 ‘호랑가시나무’ ‘호랑이 등긁기 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호랑가시나무는 서양에서는 성당이나 교회 앞마당, 국내에서도 외국인 선교사 사택 등에 어김없이 심어져 있는 나무다. 지난해 광주 무등산 자락에 있는 양림동 마을의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 호랑가시나무를 처음 만났다. 100여 년 전 이곳을 찾은 우일선(로버트 윌슨) 선교사가 심은 호랑가시나무, 흑호두나무, 은단풍나무 등도 아름드리 거목이 되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나무가 성탄트리로 애용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받을 때 ‘가시 면류관’의 가시나무가 호랑가시나무였다고 해서 신성시돼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잎과 줄기를 둥글게 엮은 것은 가시관을 상징하고, 빨간 열매는 예수가 흘린 성스러운 피, 줄기 껍질의 쓴맛은 고난을 의미한다고 한다. 매년 연말이면 이웃 돕기 상징으로 빨간 열매 3개가 한 송이로 된 ‘사랑의 열매’는 바로 호랑가시나무 열매다. 이 때문에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은 성스럽다는 의미의 ‘홀리(Holly)’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Hollywood), 할리스 커피(Hollys Coffee) 이름도 호랑가시나무숲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겨울이 되면 호랑가시나무 잎사귀로 둥글게 화환을 만들어 문 앞에 걸어놓는다. 나쁜 기운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고,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의 풍습이다. 세브레이로 성당은 ‘기적의 성배’가 있는 성당으로도 순례자들에게 유명하다. 때는 1300년대의 중세시대. 아랫마을에 사는 한 신자가 눈보라가 몰아치고, 엄청나게 추운 날에 산을 넘고 넘어 성당을 찾아왔다. 그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그 악천후를 뚫고 온 것이다. 사제는 이런 날씨에 산꼭대기 성당까지 미사를 보러 올 신자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농부 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그 신부는 마음 속으로 “한 조각의 빵과 포도주를 먹기 위해 온 사람이구만!”이라고 신자를 폄훼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사를 하러 들어갔더니 성배에 담겨 있던 포도주가 실제 피로 변하고, 성체는 살덩이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대 오른편에 있는 ‘기적의 성배’에 담긴 설명에는 “믿음이 부족한 사제를 깨우치기 위해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이 성당에서는 요즘도 산티아고순례길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매일 열린다. 이 성당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성서가 비치돼 있다. 그 중에는 한국어 ‘성경’도 있었고, 한국어로 된 ‘순례자를 위한 축복기도문’도 있었다. 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행복하세요./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세요.” 수백km를 걸어야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순례자들끼리 서로 물과 음식을 나누고, 짐을 들어주고, 동행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도움을 준다. 찬란한 햇빛과 들꽃, 새소리를 들으며 내 안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전우익 저),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정은령 저)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만 행복하다고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순례길에서는 내 자신을 찾은 듯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현실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혀지기도 한다. 귀국해서 사진을 정리하던 중 세브레이로 성당 벽에 걸려 있던 성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순례자의 기도’를 번역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순례자의 기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난 모든 길을 걷고, 산과 계곡을 건너더라도, 만일 내 안의 자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모든 소유물을 나누고, 길에서 만난 수천명의 순례자들과 친구가 되고, 성인과 왕자와 알베르게 숙소에 함께 지내더라도,만일 내일 만나게 될 내 이웃을 용서할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매일 음식과 물을 마시고, 매일 저녁에 지붕 아래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의 모든 상처를 치료 받을 수 있더라도,만일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나는 어느 곳에도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역사 유적을 답사하고 최고로 멋진 노을을 감상하고, 모든 언어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수많은 샘의 맑은 물을 맛본다 해도, 만일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를 공짜로 얻게 해준 창조주를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어느 곳에도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오늘부터 더 이상 내 자신의 길을 걷지 않고, 배우고 느낀대로 살지 않는다면,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순례길처럼 벗과 동료를 찾아낼 수 없다면, 내 삶의 유일한 절대자인 나자렛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어느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산티아고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글·사진 산티아고 순례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이다.” 1923년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주최한 첫 번째 어린이날 행사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1899∼1931·사진)은 ‘어린이 선언’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의 아동권리에 대한 선언이었다. 2022년 5월 5일은 100회째 어린이날이다. 100회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다양한 행사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서는 아동권리의 100년을 회고하는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를 발간하고, 5월 4일에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어린이날 100회를 기념하는 공식 행사를 개최한다. ‘어린이’, ‘권리’라는 말조차 낯설던 100년 전, 국권을 상실한 식민지 조선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 100년 아동권리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만큼이나 험난했다. 가부장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아동은 기본적인 생존권과 발달권조차 지켜지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전쟁에 동원돼 희생되기도 했다. 또한 6·25전쟁 기간 중 전쟁의 참화에 노출돼 장애를 입고, 부모를 잃은 아동을 위한 지원은 대부분 해외 원조에 의존했다. 전쟁이 끝나고 국가 재건이 본격화하면서, 아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첫발자국을 떼었다. 1960년대에는 아동복리법을 제정하고,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내에 ‘모자보건과’를 신설하는 등 아동에 대한 교육과 복지의 기틀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동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낮아 아동에 대한 차별과 학대, 특히 여아에 대한 차별은 지속됐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 대한민국의 아동권리는 크게 도약한다.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다양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이 유엔아동특별총회의 의장국으로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호주제 폐지(2005년), 학생인권조례 제정(2010년), 대한민국 아동권리헌장 선포(2016년), 아동수당 도입(2018년), 아동권리보장원 설립(2019년), 고교 무상교육 실시(2021년) 등 아동을 위한 보편적 정책의 토대가 마련됐다. 특히 2021년에는 그동안 부모의 자녀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인되어 온 민법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했다. 제100회 어린이날을 맞는 지금, 지나온 역사를 통해 얻은 중요한 시사점은 법과 제도의 보완이 곧바로 아동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인식 변화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아동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부모에게 속한 ‘미숙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100년 전 방정환 선생은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어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것을 지어낼 어림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들은 학교의 규칙과 예산 쓰임새를 정하는 일이나 지자체의 정책 입안에도 아동의회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투표 참여(만 18세)와 정당 가입(만 16세)으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보여주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5월 4일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 기념 공식 행사에서 아동권리와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활동할 ‘100인의 아동위원’을 위촉할 예정이다. 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어린이날을 제정했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아동이 스스로 권리의 주체임을 천명하고 아동의 삶과 관련된 결정 전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며 “이제 아동을 보호 대상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이자 주체적인 미래 세대로서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3월 초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 ‘산타 마리아 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다. 호랑가시나무의 새빨간 열매에도 눈꽃이 피었다.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예수의 가시면류관, 빨간 열매는 예수의 성혈을 상징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은 ‘홀리(Holly)’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Hollywood), 할리스 커피(Hollys Coffee)도 호랑가시나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라이빗 뱅킹(PB)은 은행에서 고액 예금자를 상대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오프라인 컨설팅을 해주는 금융 포트폴리오 관리 전문가다. 그런데 이런 PB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면? 하나은행의 대표 모바일 뱅킹 앱 ‘하나원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구축된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고객들이 종합적인 자산관리를 할 수 있도록 개발된 서비스다. 은행의 모바일 뱅킹이 생활금융 플랫폼을 넘어 ‘종합금융 플랫폼’이 되겠다는 목표다. ‘국내 은행권 최초’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하나원큐가 국내 디지털 금융을 선도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은행권 최초 비대면 얼굴 인증 서비스‘하나원큐’는 은행권 최초로 얼굴 촬영만으로 실명 확인이 가능한 ‘비대면 실명확인 얼굴 인증 서비스’를 선보였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안면 인식 솔루션을 통해 신분증 사진과 고객의 얼굴을 빠르게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다. 국내 은행권 최초로 휴대전화 종류와 상관없이 얼굴 인증만으로도 1초 만에 간단하게 로그인할 수 있고, 공동인증서와 보안카드, 일회용 비밀번호(OTP) 없이도 쉽고 빠른 이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은행이 지원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원큐 애자일랩(1Q Agile Lab) 참여 기업인 M사가 개발한 AI 얼굴 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된 서비스다. ‘하나원큐’는 하나금융그룹 관계사들과의 연계를 통해 주식, 보험, 카드 등 다양한 금융 거래를 이용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로그인(SSO·Single Sign On)’으로 주식을 추천받고 해외 주식 매입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가입한 보험을 분석하고, 카드 사용 내용 조회와 카드 신청도 가능하다. 또한 하나원큐에서 대출을 신청한 고객에게 적합한 한도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그룹사의 대출을 비대면으로 연계해 적시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하나원큐는 한 번에 다른 은행에 흩어져 있는 본인 계좌를 일괄 등록하고, 여러 은행과 보험, 증권 등 다른 금융회사에 흩어진 계좌를 관리하고 이체할 수 있는 오픈뱅킹 기능을 갖고 있다. 오픈뱅킹 기능을 토대로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기 전에 하나원큐 앱 푸시를 통해 고객에게 미리 알려주는 ‘카드 결제일 알림 서비스’도 내놓았다. 또한 하나금융그룹의 결제 플랫폼인 하나원큐페이(하나카드), 해외 결제인 GLN(Global Loyalty Network) 서비스 등의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원큐 앱에서 온라인 결제를 하면 고객 혜택도 풍부하다. 쿠폰 마켓에서 쿠폰을 사면 결제 금액의 7%, 골프 토털서비스인 스마트스코어에서 구매하면 결제 금액의 2% 상시 리워드를 준다. 내 손 안의 금융비서 ‘하나 합’하나금융그룹은 국내 금융회사 중 최초로 지난해 11월 그룹 통합 마이데이터 서비스 브랜드인 ‘하나 합’을 선보였다. 마이데이터는 기존 소수의 고액 자산가에게만 제공되던 자산관리와 외환 서비스를 디지털을 통해 모든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금융 소비자가 본인의 금융정보를 직접 조회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도와준다. ‘하나 합’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I)는 ㅎ,ㅏ,ㅂ을 박스 안에 담은 형상이다. 다양한 금융자산을 한곳으로 ‘모아(合)’ 관리하며 금융 서비스를 즐긴다는 뜻이다. PB 중심의 오프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빅데이터와 AI 기반으로 대중화, 디지털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브랜드다. ‘하나 합’은 △자산관리 성향을 진단하는 ‘자산관리 스타일’ △손님 개개인의 지출을 분석하는 ‘라이프 스타일 분석’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설정해 외화 자산을 불려주는 ‘환테크 챌린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중에서 ‘환테크 챌린지’, ‘내 주변 핫플레이스’는 가장 인기가 높다. ‘환테크 챌린지’는 손님이 외화 저축 목적과 목표 금액을 설정한 후 1주일, 1개월, 3개월, 6개월, 1년까지 환율 차트를 보며 외화 매수를 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지원해준다. 달러, 유로, 엔, 파운드 등 27개 외화를 지원하고 있는데, 환율 알림과 자동 매매 기능을 제공해 고객이 더욱 쉽게 외화를 모을 수 있도록 했다. ‘내 주변 핫플레이스’는 알려진 리뷰나 주관적 평점이 아닌 실제 가맹점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도에 ‘방문순’, ‘다시 방문순’, ‘인근 주민 찾는 순’, ‘멀리서도 찾는 순’ 등으로 실시간 핫플레이스를 안내해 주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사장님 서비스’와 연계해 향후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마케팅을 돕는 서비스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외에도 ‘또래와의 자산 비교’, ‘카테고리별 지출&소비 엿보기’, ‘MY단골집&푸드로그’, ‘하나합 리포트’ 등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라이브 커머스 방송으로 금융상품 판매하나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라이브커머스 방송으로 판매하기 시작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9회차 방송을 이어나갔다. 하나은행의 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시작해 롯데온, 11번가, NS홈쇼핑 등 전문 커머스 채널까지 진출했다. 하나원큐 앱 내에도 라이브 방송 플랫폼을 연계해 고객에게 평소 금융상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설명해주며 상품과 서비스를 안내하는 양방향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신록이 점차 짙푸르러진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여행 가기 좋은 날씨다. 강원 태백은 함백산, 만항재의 멋진 백두대간 풍광과 함께 옛 탄광지역을 공원으로 꾸민 통리탄탄파크, 오로라파크, 몽토랑산양목장 등 즐길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안전체험과 게임시설을 융합한 ‘365세이프타운’을 보고, 태백 한우와 물닭갈비 등 지역의 명물 음식을 맛보는 것도 가족들과 강원도에서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코스다.》 태백은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과 함께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중심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첫 물이 발원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태백산(해발 1566m) 함백산(1572m) 정상에는 4월에도 이른 아침에는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나기도 한다. 태백시 핫플 ‘365세이프타운’산불-지진-테러 등 가상체험 공간심폐소생술-실내탈출 흥미만점전망대-산책로 등 즐길거리 풍부태백시 평화길에 있는 안전체험 테마파크인 ‘365세이프타운’을 찾았다. KBS 교양프로인 ‘긴급구조 119’에 방영되는 생활 속 각종 재난에서 나와 가족을 지키는 안전체험을 게임처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테마파크다. 종합안전체험관에는 산불, 풍수해, 지진, 설해, 테러 등을 4차원(4D)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 체험해 볼 수 있다. 입체영상이 펼쳐지는 대형 스크린 앞에서 119소방헬기를 타고 산불 현장을 날아다니고, 해일이 덮친 도심을 구명 보트를 타고 달리며 인명을 구조하는 체험은 여느 놀이동산 시설 부럽지 않게 박진감이 넘친다. 멀미가 날 정도로 상하좌우로 요동치고, 비명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찔한 화면을 보고 즐기다 보면,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비상시에 생존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하게 해준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실제 완강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완강기는 화재가 났을 때 몸에 줄을 묶어서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한 장치. 그러나 막상 불이 났을 때 완강기에 매달려 내려오는 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빠와 함께 온 6세 여자 어린이는 처음에는 “무섭다”며 물러서다가 소방관 조교가 자세히 설명해주자 안전하게 내려온 후 재미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기자도 체험을 해보려고 3층 높이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척 떨렸다. 겨드랑이에 밧줄을 묶고 매달린 채 손을 놓지 않자 조교는 “두 손을 과감히 놓아야 몸이 내려간다”고 조언했다. 과연 손을 놓고 내려오니 완강기는 밧줄 중간의 브레이크 장치가 천천히 내려가도록 설계돼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365세이프타운에는 이외에도 심폐소생술을 배워보는 스마트 심폐소생술(CPR) 체험, 정전과 화재 연기로 가득 찬 암흑 같은 실내에서 탈출하는 농연(짙은 연기) 대피 체험 등을 해 볼 수 있다. 360도로 전복되는 모형 자동차에 타고 진행되는 안전벨트 체험은 교통사고 때 안전벨트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해준다. 세이프타운 내 문필봉 정상에는 챌린지월드가 조성돼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788m 산 정상에 오르면 난이도가 다른 14개 코스로 구성된 트리트랙, 길이 100m로 호수 위를 가르는 집라인, 높이 10m의 번지점프가 있다. 또한 전망대, 호수, 웰빙800 산책로, 별자리전망대, 숲속 공연장 등 즐길거리도 풍부하다. 365세이프타운 자유이용권은 2만2000원이지만 표를 구입하면 2만 원짜리 태백사랑상품권을 준다. 상품권은 태백시 가맹업소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어 연탄불에 구워 먹는 태백 한우나 쑥갓을 가득 넣어 상큼한 맛이 일품인 ‘물닭갈비’ 등 태백의 명물 음식을 맛보는 데 보태면 된다. ‘몽토랑 산양목장’과 테마파크방목중인 산양에 다가가 인증샷전망 좋은 카페서 치즈 맛볼수도‘태양의 후예’ 세트장도 가볼만 해발 800m의 산속에 위치한 ‘몽토랑 산양목장’은 산양이 방목형 목장에서 뛰어노는 곳이다. 산양은 염소과 동물로 젖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된 가축. 온순한 성격이라 사람들에게 잘 다가오기도 하고 사진 찍히는 것도 능숙해 재미있는 기념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목장 내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는 산양유와 치즈, 빵,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통리탄탄파크’는 옛 한보탄광의 폐광 부지와 폐 갱도를 활용해 만들어진 테마파크다. 최신 정보기술(IT)을 접목해 2개의 전시장 ‘기억을 품은 길’과 ‘빛을 찾는 길’을 만들었다. 입구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도 마련돼 있다. 짜릿함 넘치는 동해 ‘무릉별유천지’채석장이 체험시설 명소로 탈바꿈고공 스카이글라이더 등 스릴 만점태백 인근 동해시에 지난해 11월 20일 개장한 ‘무릉별유천지’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놀 수 있는 곳이다. 시멘트 기업 쌍용C&E가 1968년부터 40여 년간 석회석을 채광했던 무릉3지구가 관광 명소로 탈바꿈한 곳이다. 무릉별유천지의 하이라이트는 4종의 체험시설이다. 여름 썰매라는 별명처럼 레일을 따라 시속 40km로 신나게 달리는 알파인코스터, 곡선형 고공 레일에 몸을 맡기고 소나무숲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오는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채석장 내 임시관리용 도로를 주행하며 속도를 만끽하는 오프로드 루지, 그리고 공중을 날아가는 스카이글라이더다. 특히 4명이 매달려 타는 스카이글라이더는 쏜살같이 하늘을 나는 새가 된 듯한 스릴감을 맛보게 된다. 낭만 가득 캐리비안베이 ‘해변카페’파도풀에 비친 보름달 보며 칵테일 한잔 “카리브해에서 모히토 한 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 있는 캐리비안베이에 30일 매력적인 해변 카페가 등장했다. 마치 바닷가 해변에 온 듯 야자나무 아래서 칵테일과 와인을 마시며 한가롭게 버스킹을 즐길 수 있는 ‘마르 카리베 더 베이사이드 카페’(Mar Caribe The Bayside Cafe)다. 폭 120m, 길이 104m 규모 야외 파도 풀로 유명한 캐리비안베이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워터파크. 그러나 여름 성수기에 물놀이 손님들이 집중되고, 날씨가 선선한 나머지 시즌에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코로나19 여파로 2년 만에 다시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복합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재단장했다. ‘마르 카리베(Mar Caribe)’는 스페인어로 ‘카리브 바다’라는 뜻. 시그니처 포토스폿인 야외 파도 풀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보름달을 콘셉트로 지름 10m 크기의 거대한 보름달 조형물이 떠 있다. 특히 환하게 불이 켜진 야경이 멋지다. 보름달이 파도 풀 수면에 비치며 주변 수십 개의 작은 달과 배와 함께 낭만적인 인스타 감성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또한 3m 높이의 해적선 모래 조각, 셀카 거울존 등 포토스폿과 함께 백사장 모래놀이 체험도 마련돼 있어 어린이 동반 가족들이 참여하기에 좋다. 야외 파도 풀 주변에는 최고 7m 높이의 야자수 17그루를 새로 심었고 해먹, 소파, 행잉체어 등 약 260석 규모의 휴식처가 마련됐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전문 연기자가 펼치는 서커스 공연과 파이어(Fire)쇼, 가수들의 버스킹 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테이블 축구인 푸스볼, 맥주잔에 공을 넣는 비어퐁 등 아웃도어 게임도 비치돼 있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야외 파도 풀 주변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집중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며 “해변에서처럼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가롭게 쉬면서 가족과 연인들이 편안하게 즐기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파도 풀에 인접한 아일랜드존에 있는 비치사이드 바에서는 모히토, 생과일주스 등 칵테일과 음료, 주류, 핑거푸드도 맛볼 수 있다. 파에야, 파히타, 세비체, 바비큐 등 카리브해 분위기의 음식도 선보인다. 파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바텐더의 칵테일쇼도 흥을 돋군다. 글·사진 태백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국 런던의 템스강변에 있는 ‘런던아이(London Eye)’는 자전거 바퀴 모양의 회전 관람차다. ‘밀레니엄 휠’이라고도 불린다. 관람용 유리캡슐에 타면 탁 트인 런던 시내가 보인다. 높이는 135m. 2000년 완공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대관람차였다. 그러나 2006년 중국의 난창지싱(160m), 2008년 싱가포르 플라이어(165m), 201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하이 롤러(167m)에 기록을 넘겼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코로나 이전 2019년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은 필리핀을 방문한 해외 관광객 국가 중에 1위(198만 명)였습니다. 한국 관광객을 다시 맞이하게 돼 기쁩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베르나데트 로물로-푸얏 필리핀관광부 장관이 찾아왔다. 코로나19로 2년간 해외 관광객들에게 폐쇄됐던 필리핀 국경이 지난 2월10일 개방된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을 찾은 것이다. 필리핀 여행 시장의 제일 큰 고객인 한국 여행객 유치를 위한 발걸음이었다. 총 7641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 필리핀은 주요공항이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어 중 열대의 비경을 즐길 수 있는 해변 중 가장 가깝고, 가성비 높은 여행지로 꼽힌다. 베르나데트 장관은 “지난 2년간 코로나 보건 안전 시스템을 구축해 필리핀 전역의 관광업 종사자들에 대해 90% 이상의 백신 접종률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재개되는 필리핀 여행에서 주목할 곳은 필리핀 관광부가 새롭게 개발한 전국 112개 이상의 ‘관광 서킷(Tourism Circuit)’이다. 천편일률적인 패키지 여행에서 벗어나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에 맞춰 생태와 역사 문화, 해양스포츠와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보홀과 팔라완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에 위치한 보홀섬은 제주도의 2배 면적의 크기이며 70여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 보홀에서 사진촬영지로 가장 인기인 곳은 ‘초콜릿 힐’이다. 200만년 전 광활한 평원에 원뿔형 언덕 1200여개가 모여 있는데, 키세스 초콜릿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건기 시즌인 12월~5월에 이곳을 방문하면 언덕의 풀이 진한 갈색으로 변해 초콜릿 언덕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초콜릿 힐로 향하는 도로 양쪽에 자리잡은 ‘맨 메이드 포레스트’는 고급 목재 재료로 사용되는 마호가니 나무들이 즐비하다. 근처에만 가도 피톤치드 향이 느껴져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숲이다. 타르시어 안경원숭이 보호구역 또한 유명하다. 10cm의 작은 몸집의 영장류 중 하나인 타르시어 안경원숭이는 커다란 눈 때문에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와 그렘린 기즈모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보홀의 ‘로복강’은 필리핀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강이다. 로복강 크루즈를 타고 21Km에 이르는 긴 강을 가로지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정글 사이를 흐르는 신비로운 녹색의 강을 따라가면 원시부족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보홀의 ‘어드벤처 서킷’은 여행객들로 하여금 ATV를직접 운전하여 초콜릿 힐로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 맹그로브 숲 터널 여행, 반딧불 체험, 자연보호 캠핑 등 보홀에서는 카약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다루는 음식 체험, 유기농 농산물, 지역 농민과 단체가 함께하는 특별한 미식경험도 즐길 수 있다. 보홀의 남쪽 팡라오섬 알로나 비치에서 배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발리카삭 아일랜드는 최고의 다이빙 명소로 해양생물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팔라완은 여행 전문지 트래블 앤 레저의 ‘전세계 베스트 섬 25’에 선정된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거대한 석회암벽이 장관을 이루는 생태관광지다. 숲 속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푸에르토 프린세사’는 팔라완 여행의 중심지이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지하강 국립공원’과 ‘사방 비치(Sabang Beach)’가 있다. 또한 팔라완의 북쪽 끝에 위치, 높은 절벽 사이에 자리잡은 ‘엘니도(El Nido)’는 스펙터클한 자연 경관을 선사한다. 30개의 다이빙 명소와 50개의 비치, 곳곳에 숨겨진 동굴, 아름다운 라군들로 유명하다. 전세계 다이버들의 사랑을 받는 ‘코론’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 해군의 공격에 바다에 침몰한 일본 함대 선박을 둘러보는 난파선 다이빙이 유명하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로 가득한 다채로운 산호로 덮여 있어 멋진 장관을 이룬다. 코론은 2017년 방탄소년단 (BTS)의 여름 화보 촬영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산비센테의 해안 마을인 ‘포트 바턴’은 자연친화적인 여행지로, 90분간 진행되는 정글 트레킹과 파무아얀 폭포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루손섬의 코르디예라, 일로코스 필리핀 북쪽의 루손섬에 자리한 코르디예라는 웅장한 계단식 논이 장관을 이룬다. 열대 지역이지만 고지대여서 선선한 날씨를 느낄 수 있다. ‘슬로우 푸드 여행카라반’은 산속에서 체험하는 농장에서부터 식탁까지 ‘팜-투-테이블(Farm-to-table)’ 컨셉의 요리 과정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코스다. 또한 돌 미로와 대나무 숲 속에서 평화롭게 명상을 할 수 있는 미라도르 유적지, 고대부족의 예술과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위나카 생태문화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만간 타쿠 요리여행에서는 전통적인 현지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로컬 요리를 체험할 수 있다. 루손섬에 있는 일로코스에서는 ‘필리핀 속의 작은 스페인’으로 불리는 16세기 역사 도시 비간(Vigan)이 있다. 스페인의 건축물과 필리핀의 전통문화가 혼합돼 있는 독특한 도시경관으로 1999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칼레 크리솔로고 거리와 살세도 광장과 부르고스 광장 등에서는 말마차가 스페인 양식의 돌길 위를 경쾌하게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의 거리 풍경은 색다른 추억사진을 남길 수 있게 한다. 일로코스 지역은 또한 필리핀 내에서 미식으로 유명하다. 일로코스 전통 소시지 롱가니사, 튀김만두 바탁 엠파나다, 기름이 빠질 때까지 바짝 튀긴 삼겹살 요리 바그넷 등이 대표 먹거리다. 산미구엘 맥주를 곁들여 마시면 금상첨화다. ●세부와 보라카이 세부는 스쿠버 다이빙과 익스트림 어드벤처, 미식탐방 여행이 각광받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의 명소인 모알보알에서는 수백만 마리의 정어리떼가 커다란 공모양으로 헤엄치며 이동하는 ‘사딘 런(Sardine Run)’이 유명하다. 말라파스쿠아 섬에서는 진환도 상어떼를 1년 내내 만날 수 있다. 또한 피그미 해마, 고스프 파이프 피쉬, 푸른 고리 문어 등 희귀종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북부 세부에는 산악자전거, 모터 바이크, 패러글라이딩, 낚시 등 익스트림 어드벤처를 할 수 있는 오슬롭 지역도 있다. 보라카이섬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드넓은 4km의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비치다. 이 섬에는 세계 3대 비치 중 하나인 화이트 비치가 있다. ‘푸카 쉘 비치(Puka Shell Beach)’는 조개가 잘게 부서져서 만들어진 백사장이 독특한 물빛을 선사한다. 일리그 일리간 비치는 보라색 일몰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보라카이는 ‘지속 가능한 관광’의 모델로서, 섬의 낙원지대를 탐험하는 저탄소 배출액티비티가 개발됐다. 보라카이 자전거 투어는 해변과 맹그로브 숲, 습지 등을 지나며 커피와 패스트리가 제공되는 그림같은 풍경의 ‘키홀(Keyhole)’에서 마무리되는 코스다. ‘보라카이 푸드 크롤(Food Crawl)’은 참가 레스토랑의 일부 메뉴를 먹을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으로, 보라카이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마닐라와 클라크 문화와 예술, 역사 유적이 숨쉬는 마닐라는 필리핀의 수도다. 국립 박물관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인트라무로스, 쇼핑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보니파시오 등 필리핀 문화의 중심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500년 전에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건설한 성벽 도시이다. 또한 마닐라 남쪽 육로에는 ‘그린 코리도 이니셔티브’ 라고 불리는 해변 관광지가 있다. 바탕가스의 아닐라오는 30개 다이빙 네트워크의 중심인 세계적인 스쿠버 다이빙 명소다. 마닐라 인근의 리잘 주는 울창한 언덕과 호숫가, 강, 동굴, 폭포 등 자연 속에서 모험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또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필리핀의 현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핀토 아트 뮤지엄, 박물관이 밀집한 앙고노 마을을 찾아가기도 한다. 북부 팜팡가에 자리한 클라크 국제 공항은 지난해 제2여객터미널이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클라크 공항에서는 필리핀의 미식 수도 팜팡가로 떠날 수 있고, 불라칸 지역까지도 갈 수 있어 미식 탐방과 농장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하이킹이나 버기를 이용해 인근의 대형 활화산 피나투보 산을 오르고, 의료 치아 안구관리 등을 체험하는 ‘팜팡가 의료 및 웰빙 투어’에도 참가할 수 있다. ●여행정보=필리핀은 입국시 백신접종 완료자는 무격리로 여행할 수 있다. 한국 출국 전 48시간 내 RT-PCR 검사나 24시간 내 신속항원 검사 음성확인서만 있으면 된다. 필리핀관광부 홈페이지(7641islans.ph)에 새롭게 론칭한 디지털 매거진 ‘7641 Islands of the Philippines’에는 다양한 필리핀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코로나 이전 2019년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198만 명)은 필리핀 해외 관광객 국가 중 1위였습니다. 이제 한국 관광객을 다시 맞이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 베르나데트 로물로푸야트 필리핀 관광부 장관이 찾아왔다. 코로나19로 2년간 해외 관광객들에게 폐쇄됐던 필리핀 국경이 2월 10일 개방된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을 찾은 것이다. 필리핀 여행 시장의 제일 큰 고객인 한국 여행객 유치를 위한 발걸음이었다.》 총 7641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 필리핀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어 열대의 비경을 가진 해변 중에서 가장 가깝고, 가성비 높은 여행지로 꼽힌다. 로물로푸야트 장관은 “지난 2년간 코로나 보건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필리핀 전역의 관광업 종사자들에 대해 90% 이상의 백신 접종률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재개되는 필리핀 여행에서 주목할 곳은 필리핀 관광부가 새롭게 개발한 전국 112개 이상의 ‘관광 서킷(Tourism Circuit)’이다. 천편일률적인 패키지여행에서 벗어나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에 맞춰 생태와 역사, 해양스포츠와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 보홀과 팔라완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에 위치한 보홀섬은 제주도의 2배 면적이며 작은 섬 70여 개로 구성되어 있다. 보홀에서 사진 촬영지로 가장 인기인 곳은 ‘초콜릿 힐’이다. 200만 년 전 광활한 평원에 원뿔형 언덕 1200여 개가 모여 있는데, 키세스 초콜릿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콜릿 힐로 향하는 도로 양쪽에 자리잡은 ‘맨 메이드 포레스트’는 고급 목재 재료로 사용되는 마호가니 나무들이 즐비하다. 근처에만 가도 피톤치드 향이 느껴져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타르시어 안경원숭이 보호구역 또한 유명하다. 10cm의 작은 몸집을 가진 타르시어 안경원숭이는 커다란 눈 때문에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와 그렘린 기즈모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보홀의 ‘로보크강’은 필리핀의 아마존이라 불린다. 로보크강 크루즈를 타고 21km에 이르는 긴 강을 가로지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울창한 나무 정글 사이를 흐르는 신비로운 녹색의 강을 따라가면 원시부족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보홀의 ‘어드벤처 서킷’은 여행객들이 ATV(사륜 바이크)를 직접 운전해 초콜릿 힐로 가까이 갈 수 있다.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숲 터널 여행, 반딧불 체험, 캠핑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고, 보홀의 남쪽 팡라오섬의 발리카사그 아일랜드로 가면 우거진 산호초와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다. 팔라완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석회암벽이 장관을 이루는 생태관광지다. 숲속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푸에르토 프린세사’는 팔라완 여행의 중심지. 세계 7대 자연경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지하강 국립공원’과 ‘사방 비치’가 있다. 또 팔라완의 북쪽 끝 높은 절벽 사이에 자리잡은 ‘엘니도(El Nido)’는 스펙터클한 자연 경관을 뽐낸다. 30개의 다이빙 명소와 50개의 비치, 곳곳에 숨겨진 동굴, 아름다운 라군들로 유명하다. ‘코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의 공격에 바다로 침몰한 일본 함대 선박을 둘러보는 난파선 다이빙이 유명하다. 코론은 2017년 방탄소년단(BTS)의 여름 화보 촬영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산비센테의 해안 마을인 ‘포트 바턴’은 자연친화적인 여행지로, 90분간 진행되는 정글 트레킹과 파무아얀 폭포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루손섬의 코르디예라, 일로코스 필리핀 북쪽의 루손섬에 자리한 코르디예라는 웅장한 계단식 논이 장관을 이룬다. 열대 지역이지만 고지대여서 선선한 날씨를 느낄 수 있다. ‘슬로 푸드 여행카라반’은 산속에서 체험하는 ‘농장에서부터 식탁까지(Farm-to-table)’ 콘셉트의 요리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코스다. 돌 미로와 대나무 숲에서 평화롭게 명상을 할 수 있는 미라도르 유적지, 고대 부족의 예술과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위나카 생태문화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루손섬에 있는 일로코스에서는 ‘필리핀 속의 작은 스페인’으로 불리는 16세기 역사 도시 비간(Vigan)이 있다. 스페인의 건축물과 필리핀의 전통문화가 혼합돼 있는 독특한 도시경관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칼레 크리솔로고 거리와 살세도 광장과 부르고스 광장 등에서는 말마차가 스페인 양식의 돌길 위를 경쾌하게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의 거리 풍경으로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명소다. 일로코스 지역은 미식으로도 유명하다. 일로코스 전통 소시지 롱가니사, 튀김만두 바타크 엠파나다, 기름이 빠질 때까지 바짝 튀긴 삼겹살 요리 바그네트 등이 대표 먹거리. 여기에산미겔 맥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세부와 보라카이 세부의 스쿠버다이빙 명소인 모알보알에서는 수백만 마리의 정어리 떼가 커다란 공 모양으로 이동하는 ‘사딘 런(Sardine Run)’을 볼 수 있다. 말라파스쿠아섬에서는 진환도상어 떼를 1년 내내 만날 수 있다. 또 피그미 해마, 고스트파이프피시, 푸른고리 문어 등 희귀종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북부 세부에는 산악자전거, 모터바이크, 패러글라이딩, 낚시 등 익스트림 어드벤처를 할 수 있는 오슬로브 지역도 있다. 보라카이섬에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드넓은 4km의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화이트 비치가 있다. ‘푸카 셸 비치(Puka Shell Beach)’는 조개가 잘게 부서져서 만들어진 백사장이 독특한 물빛을 선사한다. 일리그일리간 비치는 보라색 일몰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보라카이에는 ‘지속 가능한 관광’의 모델로 섬의 낙원지대를 탐험하는 저탄소 배출 액티비티가 마련됐다. 해변과 맹그로브 숲, 습지 등을 지나며 커피와 페이스트리가 제공되는 그림 같은 풍경의 ‘키홀(Keyhole)’에 도착하는 자전거 투어, 보라카이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보라카이 푸드 크롤’도 인기다. ○마닐라와 클라크 문화와 예술, 역사 유적이 숨쉬는 마닐라는 필리핀의 수도다. 국립박물관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인트라무로스, 쇼핑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보니파시오 등 필리핀 문화의 중심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500년 전에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건설한 성벽 도시이다. 또 마닐라 남쪽 육로에는 ‘그린 코리도 이니셔티브’라고 불리는 해변 관광지가 있다. 마닐라 인근의 리살주는 울창한 언덕과 호숫가, 강, 동굴, 폭포 등 자연 속에서 모험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북부 팜팡가에 자리한 클라크 국제공항은 지난해 제2여객터미널이 새롭게 선보였다. 클라크 공항에서는 필리핀의 미식 수도 팜팡가와 불라칸 지역까지 갈 수 있어 미식 탐방과 농장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 여행정보필리핀은 입국 시 백신접종 완료자는 무격리로 여행할 수 있다. 한국 출국 전 48시간 내 RT-PCR검사나 24시간 내 신속항원검사 음성확인서만 있으면 된다. 필리핀관광부 홈페이지(7641islands.ph)에 있는 디지털 매거진 ‘7641 Islands of the Philippines’에서 다양한 필리핀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페인 정부는 고성, 왕궁, 수도원, 성채 등 역사적 건물들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파라도르’라는 국영호텔로 운영하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도스 레이스 카톨리코스 호스텔’은 병원을 개조해 만든 파라도르다.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이 호텔의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2층 발코니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그는 발코니 창문을 모두 열게 한 뒤에 기타를 쳤다고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메타버스 플랫폼 아트공간에서 미술과 영화를 결합한 전시를 선보이는 ‘씨감버스(CgamVerse)’의 프리오프닝 행사가 다음달 1일까지 열린다. ‘씨감버스’는 ‘사이버 세대를 위한 메타아트(CGAM·Cyber Generation Art Meta)’와 메타버스(Metaverse)의 ‘Verse’를 합친 말이다. 메타버스 플랫폼(saptioal.io)에 접속하면 아바타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독특하게 만들 수도 있고, 자동 제공되는 아바타로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다. 다른 메타버스처럼 친구들끼리 약속시간을 정하여 단체로 함께 방문할 수도 있고, 아바타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사회적 거리도 필요 없고 인원수 제한도 없다. 물론 마스크에서도 해방이다. 작품과 영상을 클릭하면 바로 오픈씨로 연동되어 NFT 작품의 가격도 알 수 있고,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다. 씨감버스는 프리오픈 전시를 기념해 ‘CgamVerse展’(기획 에스더 김), ‘메타씨네 리좀 프리뷰’(기획 하효선), ‘메타꽃밭 순회’展(기획 심은록)이 다음달 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방혜자, 권순철, 한홍수, 유벅, 오만철, 이소, 최효형, 허지나, 하석진 작가의 작품과 세네갈, 아르헨티나, 페루, 미국 작가의 영상 작업이 소개된다. 1관과 3관에 전시된 영상은 ‘메타꽃밭’ 순회전의 작업이다. 이 전시는 지리산 아트팜의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2021(JIIAF)’, ‘아트광주 21’(김대중컨벤션센터), 창원국제민주영화제(씨네아트 리좀)에서 오프라인으로 개최된 바 있었고, 메타버스에서 순회전을 펼치게 됐다. 지속하게 된다. 세네갈(39명), 페루 (7명), 아르헨티나 (4명), 미국 (1명), 한국 (6명) 등 총 57명의 162개 작품을 영상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에스더 김 아트플러스 갤러리관장은 “CGAM은 단순히 가상현실을 넘어 영화와 미술의 결합, 아티스트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3D 공간의 혁신, 예술성, 창의성에 중점을 둔 NFT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트플러스 갤러리에서는 같은 장소에서 에스더 김, 심은록 기획자가 만든 두 개의 전시가 함께 열린다. 전시실을 분리하지 않음으로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 1관(Polaris)에서는 허지나, 최효형, 오만철, 유벅, 이소의 작품이, 2관(Onion)에서는 권순철, 3관(Castor)에서는 재불작가 방혜자, 한홍수의 작품이 소개된다. 또한 야외에서는 하석진 작가의 3D 모델링 작품이 선보인다. 이와함께 전시장 외벽의 야외 영화관 세 곳에서는 씨네아트 리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프리뷰가 소개된다. 제 1스크린(Polaris)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 신작 ‘페러렐 마더스’이 상영된다. 여성, 어머니, 바뀐 아이, 동성애 그리고 스페인 내전 민간인 학살 등 알모도바 감독 특유의 색깔과 스토리로 엮어낸 최신작이다. 제2스크린(Onion)에서는 29년을 함께한 부부의 황혼이혼을 다룬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제 3스크린(Castor)에서는 ‘불도저에 탄 소녀’, ‘천국에서 무덤까지’, ‘말임씨를 부탁해’, ‘곡녀’, ‘극장판 시그널’, ‘재춘언니’ 등 총 17편의 프리뷰가 소개된다. 창원에서 2015년도부터 예술독립영화전용관 씨네아트리좀을 운영하고있는 하효선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관보다 넥플릭스 등 OTT가 영화 관람 환경을 바꾸었다”며 “CgamVerse 내 메타씨네 리좀은 기존 영화관 기능과 OTT의 기능을 접목시켜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씨감버스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NFT아트(아트플러스 갤러리), 영화감상(씨네아트 리좀 영화관), 교육(SimEunlog MetaLab.)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구성됐다. 씨감버스는 프리오프닝 기념으로, 작가들의 협조로 NFT가격을 최대한 낮추었으며, 수익금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료비와 식료품 등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심은록 미술비평가는 “SimEunlog 메타랩은 영상과 3D모델링을 통해 최초의 메타미술비평을 시도하고 있다”며 “또한 미래 디지털 피카소의 탄생을 위해 아동들에게 AI기반 블록코딩 스크래치, 엔트리, kodular 등을 통해 미술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사업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 겸 공관이다. 프랑스는 1990년 이후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 ‘유럽문화 유산의 날’에 엘리제궁을 개방해왔다. 지난 2010년 9월19일 파리 연수시절 엘리제궁 개방하는 날에 들어가 내부 구조를 속속들이 관람했다. 파리 8구 샹젤리제 대로 인근에 있는 포부르 생 토노레 거리에 이른 아침 가족들과 함께 줄을 시작했는데, 무려 8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엘리제궁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제궁은 1만1179m² 면적을 보유한 2층 건물.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집무실 책상까지 공개하는 화끈한 관람동선이어서 적잖게 놀랐다. 이렇게까지 개방을 해도 보안에는 문제가 없을까. 대통령 집무실에 삼성TV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은근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엘리제 궁의 2층 중심에 있어 정원을 한가운데서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집무실은 나폴레옹 3세가 황후 외제니를 위해 만든 금 장식방인 ‘살롱 도레(Salon Doré)’다. 베르사유 궁에 있는 ‘거울의 방’처럼 정원으로 난 창을 마주보는 벽에 창 모양의 거울이 있어 밝고 환하다. 샹들리에가 빛을 비추고 있는 대통령의 책상은 엘리제 궁의 최고 보물로 꼽힌다. 18세기 가구장식가 샤를 그레상이 루이 15세를 위해 제작한 이 책상이다. 책상에는 필기도구와 촛대모양의 등이 놓여 있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 방을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실풍이 공화국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왼쪽에 비서실장 집무실이나 간이 회의실로 쓰이는 초록색 방인 ‘살롱 베르(Salon Vert)’가 있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오른쪽에는 대통령과 참모진이 수시로 회의를 하는 회의실(Salon d‘Angle)이 있다. 비서실장 집무실과 회의실의 옆쪽으로도 각각 수석 보좌진들의 사무실이 있다. 불과 수십 m의 동선 내에 대통령과 핵심 보좌진의 방이 나란히 있어 효율성이 높다. 대통령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집무실 옆 ‘살롱 베르’에서 참모들과 회의를 하면서 시작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임기 중 ’살롱 베르‘에서 카를라 브뤼니 여사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1층 ‘살롱 뮈라(Salon Murat)’에서는 매주 수요일 장관들이 참여하는 국무회의가 열린다. 원형 탁자에 대통령과 장관들이 둘러앉고 엘리제 궁 비서실장과 총리비서실장이 따로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앉는다. 별로 크지 않은 방이어서 내각 장관들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앉아서 회의를 하는 모양이 그려진다. 탁자에 마이크 시설은 없었다. 육성으로도 충분히 소리가 들릴만한 방이기 때문이다. 건물 1층에는 국가 공식 연회나 만찬이 열리는 ‘살 데 페트(Salle des Fete)’가 있다. 화려한 천장화와 샹들리에, 태피스트리로 꾸며진 연회장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조성된 이 연회장은 붉은색과 황금색 컬러로 디자인 돼 있다. 테이블 위에는 최고급 도자기 식기 세트와 촛대, 꽃장식으로 국빈을 맞이하는 품격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역대 대통령 취임식 축하연과 외국 정상들과의 공식 만찬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 밖에도 엘리제궁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집무실인 ‘살롱 블뢰(Salon Bleu)’, 대사들을 맞이하는 ‘대사방(Salon des Ambassadeurs)’가 있다. 대통령 전용 도서관(Bibliotheque)도 있다. 도서관에 있는 고색창연한 책꽂이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미테랑, 샤를 드골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찍은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제궁의 야외 공간에는 정문 쪽에는 분수와 정원이 있어 산책을 할 수 있고, 뒷문 쪽 마당에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이 탔던 전용차량이 전시돼 있다. 시트로앵, 르노, 푸조 등 프랑스의 고유 브랜드 차량들의 클래식 모델부터 현대 모델까지 시대별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이 전시에 타는 군용트럭도 눈길을 끈다. 엘리제궁은 1722년 유명 건축가 아르망 클로드 몰레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왕족과 귀족의 저택 및 별장으로 쓰였고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렸다. 루이 15세는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Marquise de Pompadour)에게 선물했다. 그녀를 혐오하던 정적들은 엘리제궁의 정문에 ’왕의 매춘부가 사는 집‘이라고 써있는 팻말을 써붙였다고 한다. 이후 1808년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나폴리의 왕으로 임명된 뮈라 장군이 ‘엘리제-나폴레옹 궁전’이란 이름으로 황제에게 헌납했다. ‘엘리제 궁(Le Palais de l'Élysée)’이라는 이름은 18세기 말에 근처의 샹젤리제 거리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샹젤리제(Champs-Élysées)는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엘리시온’의 프랑스어식 표기로, 신들의 총애를 받은 영웅들이 지상의 삶을 마친 뒤에 들어간다는 축복 받은 땅이다.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약혼녀인 외제니 드 몽티조에게 엘리제 궁전을 선물하기 위해 1853년에 건축가 조제프-외젠 라크루아를 시켜 전면 개축을 하였고 1867년에서야 끝난 대공사 결과, 오늘날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가 원수의 공식 공관이 된 것은 제3공화국 때인 1874년부터였고, 제5공화국인 샤를 드골 대통령 취임(195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대령이 반드시 엘리제궁에 거주해야 할 의무는 없다. 사회주의 대통령이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거의 사적 공간으로 대통령궁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공식 업무가 끝나고 밤이 되면 그의 사택으로 돌아가기를 선호했다. 반면 후임자인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995년에서 2007년까지 2번의 임기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엘리제 궁에 머물렀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은 대통령궁의 예산을 105% 증가시켜 연간 9000만 유로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 그 중 매년 1백만 유로가 엘리제 궁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마시는 와인 값으로 충당됐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사택에서 잠을 자고 엘리제궁의 집무실로 출퇴근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애인인 쥘리 가예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탄 채 엘리제궁을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스캔들을 낳기도 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 겸 공관이다. 매년 9월 셋째 주 엘리제궁을 개방해 대통령 집무실 책상까지 공개한다. 대통령 집무실은 나폴레옹 3세가 황후 외제니를 위해 만든 금 장식방인 ‘살롱 도레(Salon Dor´e)’다. 집무실 옆에는 비서실장 집무실 등으로 쓰이는 초록색 방인 ‘살롱 베르(Salon Vert)’와 참모와 수시로 만나는 회의실이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 집무 공간도 개방과 소통이 중시되기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과 들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를 걷는 ‘프랑스길(Caminos France)’이 가장 유명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출발해 해안길을 걸어가는 순례길은 색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수백년 전부터 해외에서 온 순례자들은 돛단배를 타고 거센파도가 몰아치는 이베리아 반도 서북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보로 콤포스텔라까지 계속 걸어갔다.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으로 여겨졌던 대서양 바닷길. ‘죽음의 해안’으로 불리던 이곳은 신대륙 탐험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현장이었으며, 순례자들에게는 죽음을 명상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길이었다. ● 세상의 끝, 피니스 테레 대서양은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이었다. 해가 지는 곳. 거센 폭풍우가 치는 바다. 사람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이 해변으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보고의 시신이 들어왔다.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를 당해 순교했던 야고보는 돌을 싣는 배에 태워져 파드론 이리스 플라비아 해안에 도착했다. 지중해를 건너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이베리아 반도를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 북부 앞바다에 도착한 기적의 바닷길이다.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지하에서 산티아고의 무덤을 찾은 순례객 중 일부는 대서양 바닷길까지 다시한번 순례에 나선다. 콤포스텔라에서 100km 가량 떨어진 ‘피니스테레’다. ‘Finis(끝)’ ‘Terre(땅)’는 그야말로 스페인어로 ‘땅끝 마을’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목적지였다면, 산티아고의 시신이 도착한 이 곳도 또다른 종착지다. 그래서 피니스테레에 있는 조개껍데기 문양의 이정표에는 0.0km라는 표시가 돼 있다. 피니스테레는 대서양 바다 위로 툭 튀어나온 반도의 끝에 높이 솟은 바위다. 폭풍우와 암초가 많아 배의 항로를 유도하는 등대에서 밤이면 불빛과 기적소리를 낸다. 이 곳의 바위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등산화가 있다. 불어오는 거센바람에 몸이 날아갈 정도로 휘청거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바위 위에 앉거나 서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등대의 해안절벽 바위에는 누군가 ‘세상의 끝을 따라서’(Sego Fin du Monde)라는 글을 써놓았다. 사람들은 세상의 끝에서, 죽음의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 카미노를 통해 여기까지 걸어온 스스로의 여정으로 돌이켜보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도 돌아본다.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고독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여정의 끝은 죽음이라는 절벽이다. 중세시절부터 순례객들은 피니스테레의 바위 밑에서 옷과 신발을 태웠다. 수백 km에 이르는 순례길과 함께 해왔던 옷은 자신을 얽매여왔던 과거의 삶을 뜻한다. 세상의 끝에서 죽음을 마주하며,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의식이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아직도 바위 사이에는 시커먼 그을음 자욱이 있는 곳이 있다. 이 바다에서 숙연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죽음의 해안’(La Coast da Morte)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워낙 폭풍우도 많이 불고, 암초가 많아 역사적으로 이 앞바다에서는 수많은 배가 난파했다. 로마인들은 태양이 바닷 속으로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이 곳을 태양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앞바다에서는 사건이 요즘에도 해양조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피니스테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무시아 해변에서는 2002년 유조선 프레스티지호(4만2000t 급)가 침몰해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범벅이 된 바위를 닦아내기도 했다. 무시아 해변에는 그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커다란 쪼개진 돌로 된 조각상이 서 있다. 무시아 해변은 야고보 성인이 이베리아 반도에 선교여행을 왔을 때 들어왔다는 곳. 당시 폭풍우가 폈는데 바닷가 바위 위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모님이 발현한 두 개의 돌은 ‘아발라(움직이는 돌)’와 ‘카데라(콩팥 모양의 돌)’로 순례자들이 올라가거나 바위 밑에 통과하며 사진을 찍는 곳이다. 그런데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거센 파도 때문에 바위 근처도 가기가 힘들었다. 이처럼 위험한 대서양을 ‘죽음의 해변’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갈리시아 서북쪽 코루냐 항구에 로마시대부터 등대로 사용된 유명한 헤라클라스 타워 앞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샤론의 조각상이 서 있다. 사람이 죽으면 건너는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이다. 유럽인들에게 대서양은 스틱스강, 황천강, 요단강과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며, 세상의 끝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콜롬부스의 항해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아무도 건널 생각을 못했던 ‘죽음의 바다’에 나아가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 신대륙 발견의 첫 뉴스, 바이요나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해안길은 바이요나 항구로 이어진다. 항구 주변에는 거대한 성채가 있다.바요나는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배가 가장 먼저 도착해, 아메리카 발견 뉴스를 가장 먼저 스페인에 알린 영광을 갖고 있는 항구다. 콜롬부스의 선단은 3대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는데, 콜롬부스가 탔던 산타 마리아호가 폭풍우에 휘말려 바다에 침몰했다고 한다. 그래서 2대의 배가 귀국하던 중 바다에서 헤어졌는데, 핀손 형제가 선장으로 있던 라핀타호가 바이요나 항구로 1493년 3월1일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콜롬부스가 탄 ‘라니냐 호’는 사흘뒤인 3월4일 리스본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요나 항구에는 ‘도착(Arribada)기념비’가 서 있다. 그리고 매년 3월1일이 있는 첫째주 주말에는 ‘도착기념 축제’(Festa da Arribada)가 성대하게 열린다. 바요나 성채 바로 아래에는 ‘두 세계의 조우’(Encounter between the two world)라는 조각상이 있다. 이사벨라 여왕이 한 손은 하늘로 뻗은 채 서 있고, 맞은편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엄마와 아기, 망치를 든 켈틱인 등이 조각된 5개의 군상이 표현돼 있다. 또한 바이요나 항구에는 라핀타호도 똑같은 크기로 복원돼 바다에 떠 있다. 전장 17m의 라핀타호는 테니스 코트보다도 작은 크기다. 그런데 저렇게 작은 범선으로 대양을 건너 인도까지 갈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면서도 일생일대의 목숨을 건 도전이었음에 틀림없다. 라핀타호가 들어올 때 배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3명도 노예로 끌고 왔다고 한다. 유럽에 온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언이었다. 그들은 바요나에서 살다가 죽었다. 바요나에는 핀손 선장의 동상을 비롯해 선원들이 물을 담았던 우물, 항해루트를 그려놓은 타일, 기념비와 조각품 등 수많은 ‘도착’ 기념물이 있는데, 이 곳에 살았던 유럽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안을 위한 어떤 기념물도 없는 것은 허전함을 느끼게 했다. 바이요나 항구 주변에는 거대한 성채가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성채를 한바퀴 돌며 4km 구간의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성채 속에 중세수도원을 개조한 5성급 국영호텔인 파라도르가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 바다 위에는 굴, 조개, 홍합 등을 양식하는 ‘바테아(Batea)’가 군데군데 떠 있다. ● 포르투갈 해안길과 영국길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해안은 남쪽은 포르투갈, 북쪽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포르투를 거쳐 스페인 국경과 마주하는 미뇨강 하구를 만난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들판을 유유히 흐르는 미뇨 강은 투이(Tui)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나간다. 낙동강이나 한강 하구처럼 강폭이 넓어져 삼각주를 형성하면서 대서양과 만난다. 투이에는 미뇨 강 옆 언덕에 거대한 성채와 같은 산타마리아 대성당이 있다.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지붕 위에서 바라보면 미뇨 강 건너에도 성채가 보인다. 포르투갈의 도시 발렌사 도 미뇨다. 스페인의 뚜이와 포르투갈의 발렌사는 철교로 이어져 있다. 미뇨강 다리에서 산티아고콤포스텔라까지는 114km. 도보로 100km 이상만 걸으면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포르투갈길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포르투갈길은 카미노(순례길)는 내륙으로 가는 길이 있고, 해안을 따라 가는 길 두가지가 있다. 스페인 순례자 후안 씨(53)는 11일간 해안길을 249km를 걸었다고 한다. 화가이면서 취미로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한다는 그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든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 말했다. 갈리시아의 해변은 영국의 해적이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살던 켈트족들이 침입해오거나 살았던 흔적이 많다. 과르다 해안의 해발 350m 높이의 성 프란시스코 산에서는 주변에는 기원전 고대 로마시대 이전에 켈트족이 살던 돌집들이 3000여 개나 남아 있다. 중앙에 화덕을 중심으로 한 주거지는 지붕을 올렸던 지푸라기만 없을 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항구도시 코루냐의 로마시대부터 사용됐던 등대인 헤라클레스 타워 앞에는 스페인에 건너온 켈트족의 영웅 ‘브레오강’의 석상이 서 있다. 수염을 기른 브레오강은 방패와 칼을 들고 있는 전사의 모습이다. 폰테베드라 광장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나 들을 수 있는 백파이프 연주 소리가 울려퍼진다. 스페인 프리메가리가 축구클럽인 셀타비고는 항구 도시 비고의 자랑거리다. ‘셀타(Celta)’는 스페인어로 켈트 족이라는 뜻이다. 유럽 각국의 치열한 전장이었던 비고 앞바다는 신대륙에서 싣고 온 황금 보물선이 수없이 침몰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1702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당시 펼쳐졌던 ‘비고만(Vigo Bay) 해전’이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긁어온 금은보화를 가득실은 스페인 보물선 3척과 상선 13척이 영국 해군에 의해 나포당하거나 침몰했다. 영국 함대는 금과 은 4512파운드를 약탈했는데, 스페인은 보물선의 약탈을 피해 자침(自沈)을 택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1869년)’에 영감을 주었다. 상상 속의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네모 선장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비고만을 찾아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에서 금을 찾아 쓰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온다. 포르투갈 해안길을 걷다보면 ‘파소(Pazo)’로 불리는 귀족들의 대저택의 아름다운 정원도 구경할 수 있다. ‘파소 도 파라메이요’는 1714년부터 1895년까지 왕립 제지공장으로 사용됐던 집이다. 틴토강 계곡의 물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정원 앞으로 흐르고 있고, 작은 채플과 와인 창고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틴토강은 산티아고의 유해가 바다로 도착한 파드론의 이리아 플라비아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집의 10대 손인 곤잘로 리베로 씨는 “산티아고 유해를 발견한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틴토강을 따라서 별빛이 비치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갔다”며 “바로 이 길이 첫 번째 카미노(순례길)였다”고 말했다. @@@ ● 인디아노스의 성공과 눈물, 영국 루트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배를 타고 온 순례자들은 갈리시아 북서쪽에 있는 페롤리나 코루냐 항구에 도착한 후 콤포스텔라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구간이어서 1주일 정도 여행하는 유럽 순례자들이 애용하는 길이다. 영국길에 있는 가장 큰 항구도시인 코루냐는 1489년 영국의 해적왕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침입에 맞서 결사항전을 통해 도시를 지켜냈던 스페인 여성전사 마리아 피타(1565~1643)의 동상이 시청앞 광장에 서 있다. 스페인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여성 헤로인이다. 코루냐는 또한 1957년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패션브랜드인 ‘자라(Zara)’의 첫 매장이 오픈한 곳이기도 하다. 항구도시라 바람이 많이 불어 건물마다 비바람을 막고, 햇빛도 반사해주는 하얀색 발코니를 설치해놓았다. ‘갈레리아스’로 불리는 화이트 발코 덕분에 이 도시는 ‘유리의 도시’(City of Glass)로 불린다. 푸른 하늘과 흰색 창틀이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해낸다. 영국길 순례길의 주요도시인 베탄소스의 시청 앞 광장에는 1869년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가서 큰 돈을 벌어 온 가르시아 나베이라 형제의 동상이 서 있다. 부자가 된 가르시아 나베이라 형제는 24년 만인 1893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학교와 병원, 고아원과 양로원, 축구장과 성당 등을 짓는 데 엄청난 재산을 기부했다. 그들의 장례식 때 어마어마했던 행렬을 찍은 사진이 그들에 대해 주민들이 얼마나 고마워했는지를 증언해준다. 이렇듯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스페인에서는 ‘인디아노스(Indianos)’라고 불렀다고 한다. 콜롬부스가 서인도 제도를 발견했다고 믿었던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20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비고, 코루냐의 항구에서 아르헨티나, 쿠바, 멕시코, 미국 등 대규모 이민을 떠났다. 가이드 세르히오 씨는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아버지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이민을 갔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탄소스 시내로 들어오는 올드 브릿지 게이트 앞에서 헝가리에서 온 아담(32)과 펀니(28)를 만났다. 각각 스위스와 헝가리에서 일하고 있는 남매는 7일간의 휴가를 내고 페롤 항구부터 코루냐, 산티아고에 이르는 123km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아담 씨는 “영국 루트가 가장 짧고 풍경도 좋기 때문에 이 길을 택하게 됐다”며 “오래 전부터 여동생이랑 함께 카미노를 걷기로 약속했는데, 여동생과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고 성당에 들러 가족을 위해 촛불도 켜면서 걷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럽의 순례객들은 짧은 구간을 1,2주 단위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카미노는 심각한 일생일대의 도전이거나 나 자신을 찾는 고행의 길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 들판, 별빛, 꽃을 바라보면서 노래 한곡, 시 한 구절이 떠올라도 좋은 길인 셈이다. 문어, 조개, 홍합 같은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갈리시아 특산 알바리뇨 품종의 화이트 와인은 여행의 좋은 동반자가 된다. 글·사진 산티아고 순례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