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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비구니로 꼽히는 일엽 스님(1896∼1971)을 다룬 영문판 평전이 나왔다. 김일엽문화재단은 8일 “미국 아메리칸대의 박진영 철학과 교수가 집필한 ‘여성과 불교철학: 김일엽 선사를 통해(Women and Buddhist: Engaging Zen Master Kim Iryop·하와이대출판사)’가 현지에서 출간됐다”고 밝혔다. 재단 명예이사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2004년 일엽 스님 관련 논문을 썼으며 2014년엔 스님의 저서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번 평전은 크게 2부로 구성돼 스님의 생애를 꼼꼼하게 짚었다. 1부는 출가 이전의 삶을, 2부는 출가 뒤 스님이 추구한 불교 사상을 다뤘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일엽 스님은 개화기 신여성으로 살았던 당시 모습만 너무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여성의 시각으로 불교적인 삶과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철학 세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재단 측은 이번 출간을 계기로 일엽 스님의 한글판 평전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평남 용강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스님은 1920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신정조론’ ‘자유연애론’으로 대표되는 여성 계몽운동을 펼쳐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33년 만공 스님 문하로 출가한 뒤 비구니의 총본산인 견성암에서 참선 수행에 정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래, 어쩌면 우릴 기다리는 건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요즘 소설만 보면 자명해 보인다. 지난달 31일 나온 정지돈 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는 총기 소지가 허용된 2063년 한반도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마구잡이 총격전에 일반인도 방탄복을 입는 세상. 심지어 서울만 벗어나면 목숨마저 보장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다. 앞서 국내에 출간된 일본 소설 ‘다리를 건너다’ 속 2085년은 이보단 사정이 낫다. 하지만 유전공학이 빚은 복제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복종부터 배우는 계급사회가 펼쳐진다. 그들은 물건처럼 사고 팔리며 사랑조차 통제받는다. “현실에 대한 불안이 반영된 거라고 봅니다. 단지 먹고살기 팍팍해서는 아니에요. 더 이상 국가나 사회가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팽배합니다.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 더 나빠질 거란 피로가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거죠.”(신은영 도서출판 옥당 대표) 실은 이건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서구에서도 디스토피아 문학이 엄청난 인기다. 오마르 엘 아카드가 쓴 ‘아메리칸 워’나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집필한 ‘조안의 책’, 마이클 톨킨의 ‘NK3’…. 하나같이 비관적인 미래가 펼쳐진다. 참고로 NK3는 북한이 쏘아올린 생화학무기 탓에 인류의 기억체계가 파괴됐다는 설정. 미국 잡지 뉴요커는 이런 현상을 두고 “디스토피아 소설의 황금시대(Golden Age)가 열렸다”고까지 평가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온 건 아니다. 디스토피아 소설도 나름대로 역사가 짱짱하다. 서양 문학사에선 주로 19세기 후반을 태동기로 본다. 재밌는 건 당시는 사회주의 가치관이 짙게 깔린 유토피아 소설이 성행하던 시기. 이에 대한 ‘저항의식’이 디스토피아 소설의 씨앗이 됐단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을 절정이라 부를까. 최근 몇 년 동안 영화로도 제작됐던 소설 ‘헝거 게임’이나 ‘다이버전트’도 그다지 미래를 희망차게 그리진 않았는데. 미 뉴욕타임스는 이를 “새로운 디스토피아의 출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디스토피아 문학의 붐은 우울한 미래란 ‘설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밀어닥친 ‘위기’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미드 ‘왕좌의 게임’ 유행어를 갖다 쓴다면, 이미 벌써 “겨울이 다가온다(Winter is coming).” ‘작은 겁쟁이…’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2063년은 올해부터 46년 뒤. 지금의 웬만한 중장년이 살아있을 시대다. 그런데 이런 아노미가 벌어지게 만든 근원을 훑어보면 기시감이 상당하다. 대기 오염과 빈부 격차, 난민 급증…. 현 시대가 걱정하는 문젯거리들이 결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망가뜨린 셈이다. ‘아메리칸 워’의 엘 아카드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푸념했다. “난 현재의 몰락이 반영된 소설을 썼다. 그런데 자꾸 점술가의 예언처럼 받아들여 그게 맞나 아니나만 따진다.”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다.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 디스토피아 문학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린 나빠질 거라고, 모두 추락할 거라 저주를 퍼붓는 게 아니다. 주의 깊게 내딛지 않으면 곧장 낭떠러지에 다다른다는 경고가 배어 있다. 그걸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다만 누군가가 답을 주길 멍하니 기다리진 말자. “겨울은 이미 왔다(Winter is here).”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최근 한 불교 행사에서 ‘빵’ 하고 웃음이 터진 적이 있다. 사뭇 진지한 자린데 큰스님 인사말이 어지간히 기셨다. 살짝 어깨가 뻐근해질 찰나 드디어 끝난 덕담. 그때 아리따운 사회자의 보드라운 음성. “스님의 ‘감로수(甘露水)’ 같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카, 감로수라. 아리수도 아니고. 살면서 저 말을 생(生)으로 들어보다니. 다들 무덤덤한데 혼자 끽끽거리다 눈총깨나 받았다. 땀 좀 쏟았지만, 덕분에 감로수가 맘에 쏙 박혔다. ‘달고 맛난 이슬.’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묵은 해갈이 풀리는 순간이 있다. 나와 중생을 제도하는 깨달음까지야 바라겠나. 기진맥진한 퇴근길을 반겨주는 가족의 포옹 한 자락. 오랜만에 걸려온 벗의 시끌벅적한 전화 한 모금. 그만한 감로수 찾기 힘들다. 다만 뭐든 넘치면 곤란하지 않을까. 한 포털 사이트엔 ‘감로수 다이어트’가 첫 번째 연관검색어로 뜬다. 흐음, 어찌 쓰건 각자 사정이긴 한데. 살도 살이지만 욕심을 덜어주는 게 진짜 감로수 효능 아닐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여전히, 적당히 스며든다. 요시다 슈이치 글은 원래가 그랬다. 언제나 그리 쇼킹하거나 묵직하진 않다. 딱히 장르도 구분하기 어정쩡하다. 그럼에도 일단 재밌다. 맛깔스러운 데다 울림이 근사하다. 드디어 다다른 바닷가에 시원하게 발을 담근 기분이랄까. 뛰어들고픈 기대와 물러서고픈 주저가 동시에 뒤엉키는. 어느새 무릎 위까지 젖어가는지도 모른 채. ‘다리를…’도 역시나 그렇다. 이 소설은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이라 줄거리 설명이 애매하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4편으로 구성됐는데, 각자 전혀 다른 주인공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처럼 어찌어찌 이어지는 끈은 있어도 남남이나 다름없다. 물론 2085년 미래를 그린 마지막 편에 가면 꽤나 질긴 실타래라는 게 드러나지만. 어쨌든 하나같이 그리 뚜렷하지도 희미하지도 않은 장삼이사(張三李四)다. 이 양반들, 살면서 누구나 그렇듯,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별것 아니라고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는. 하지만 두고두고 가슴에 생채기와 찌꺼기를 남기는 그런 갈림길. 예를 들면 ‘여름’의 아쓰코가 남편을 바라보는 감정이 그렇다. 도의원인 히로키는 도의회에서 여성 의원에게 막말을 하고 친구와 입찰 비리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아쓰코로선 어떤 상황이라도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다행히 남편의 부정도 자기만 눈감으면 그럭저럭 넘어갈 낌새다. 그런데 그러면 괜찮은 걸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맘먹으면 정말 좋은 게 되는 걸까. “문득 언제쯤이면 친구들의 죽음을 불의(不意)의 죽음이라고 여기지 않게 될까. …해를 거듭해 가면 주위에 죽음이 늘어간다. 죽음이 적은 동안은 불의의 죽음이고, 그것이 점점 많아지면 ‘뜻밖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불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죽음은 불의지만, 만 명의 불의의 죽음은 없다고 친다면, 불의의 반대말은 ‘계획적’이나 ‘당연한’이라는 말이 되는 걸까.” ‘다리를…’은 딱 10년 전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이라 불렀던 ‘악인(惡人·은행나무)’과 비교해봄 직하다. 등장인물은 예나 지금이나 비릿한 살냄새가 찐득하다. 웬만큼 이기적이고 치사하고 엉성한. 또 그만큼 괜찮은 구석도 지닌. 버스 유리창을 내다보는 기분이 그럴까. 무감하게 흘러가는 바깥 인생과 그걸 똑 닮은 차 안의 자신. 여전히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키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미묘한 변화도 뚜렷하다. ‘악인’ 속 삶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긴 해도 왠지 파도에 휩쓸린 모양새였다. 사회란 큰 물결이 배출한 쓰레기더미에 짓눌린 듯. ‘다리를…’도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떤 힘을 지니며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힘차게 파고든다. 작가가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당시 17세)를 자주 거론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수상 이듬해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했단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그리고 한 자루의 펜으로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아마, 그걸 일깨워도, 세상은 또 머뭇거리거나 돌아설 때가 많을 게다. 평범한 우리네는 대체로 ‘다리’를 건너지 않으니까. 그러나 삶에서 매번 다리를 피한다면 결국엔 섬에 갇히거나 강에 빠지는 건 아닐는지. 그 또한 누군가에겐 선택이었겠지만.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다리를…’은 한 권의 책이다. 이런들 저런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장 13절)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내놓은 ‘자의교서(自意敎書)’가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자의교서란 1484년 인노첸시오 8세를 시작으로, 교황이 자신의 권위에 의거해 교회의 특별하고 긴급한 요구에 응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를 가리킨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주 발표해왔다. 이번에 발표한 자의교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교서 제목은 요한복음에서 따온 것으로,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새로운 시복시성(諡福諡聖·복자와 성인으로 추대)의 요건으로 추가했기 때문. 로이터통신은 “기존 기준이 정착된 지 400여 년 만”이라며 “가톨릭 전체 역사에서도 중요한 변화”라고 전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인 조한건 신부에 따르면 원래 시복시성 단계는 △하느님의 종(Servi di Dio) △가경자(可敬者·공경할 만한 이) △복자 △성인 순. 이번 발표는 정확하게 따지면 ‘하느님의 종’에 오를 길이 늘어난 것이다. 기존 조건은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일반인도 친숙한 ‘순교자’. 김대건 신부(1821∼1846)처럼 한국에서 배출한 성인 103위와 복자 124위는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증거자’다. 덕행을 통해 신앙을 ‘증거(증명)’했다는 뜻이다. ①영웅적으로 덕행을 실천했거나 ②그에 걸맞은 ‘신성한 명성’을 지녀야 한다. 두 기준은 구분이 애매하나 지난해 성인에 오른 마더 테레사 수녀(1910∼1997)가 전자, 현 교황이 이름을 따온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가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면 앞으로 누가 시복될 가능성이 높아졌을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태아를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하다가 출산 뒤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여성 키아라 코르벨라(1984∼2012)가 잘 들어맞는다”고 전했다. 한국에선 그간 국내 첫 증거자로 시복이 추진돼온 최양업 신부(1821∼1861)와 김범우 ‘토마스’(1751∼1787)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조 신부는 “지난해 가경자로 선포된 최 신부는 병사해 ‘땀의 순교자’라 불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김범우는 한국 가톨릭의 첫 희생자”라며 “두 분 다 직접적 순교가 아니라 추진이 쉽지 않았는데 이번 발표로 전망이 밝아졌다”고 설명했다. 2015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된 ‘홍용호 주교와 80위’도 유력 후보다. 이들은 대부분 6·25전쟁 전후 북한 공산정권에 박해를 받다가 피살되거나 옥사 또는 병사했다.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인 장긍선 신부는 “특히 자료가 부족해 순교 입증이 어려웠던 평양교구 24위는 신앙을 꿋꿋이 지키며 목숨을 희생한 성직자의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가톨릭계에선 이번 발표가 지니는 함의도 잘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복시성 역시 결국은 시대적 가치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 신부는 “누군가를 높은 반열에 올리기보단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들의 삶을 본받자는 의미가 더 크다”며 “과거처럼 순교자가 나오기 어려운 시대에 ‘타인을 위한 희생’ 역시 거룩한 그리스도의 가치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수불 스님(안국선원장·사진)이 한국 불교의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 지도를 위해 달마대사의 고향에 간다. 안국선원은 25일 “수불 스님이 인도 기업 ‘TVS모터스’ 베누 스리니바산 회장의 초청을 받아 첸나이시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TVS모터스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생산하는 인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기업 본사가 있는 첸나이시는 달마대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인도 남부의 대표적 도시다. 2014년 부산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스리니바산 회장은 수불 스님과 인연이 깊다. 그는 같은 해 한국 방문 당시 범어사 주지였던 스님을 방문한 뒤 2015년 스님을 인도로 초청해 간화선 지도를 받았다. 수불 스님은 이번 방문 기간 동안 ‘2017 인도-한국문화원 비엔날레’에 참가해 인도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간화선을 지도한다. 안국선원은 “한국 불교가 간직해온 고귀한 인류문화유산인 간화선을 인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취재차 성형외과를 찾은 서경. 상담에 응해준 의사 조성환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며 그의 퇴근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동거. 게다가 성환은 그녀를 성형외과에 취직까지 시켜준다. 그런데 이 남자, 한집에서도 손끝 하나 대질 않는다. 사실 서경은 걸그룹 출신으로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여자. 그런데 이 남자 뭐지. 왜 자길 건드리지 않는 거지.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도시 세태의 기록자.’ 소설 뒤표지에 쓰인 이 별칭은 누가 붙였는지 몰라도 정아은 소설가에게 꽤나 잘 어울린다. 헤드헌터의 세계(‘모던 하트’)나 잠실 재건축 아파트(‘잠실동 사람들’)를 그린 전작에서 보듯, 지극히 세속적인 소재를 다루는 데 능수능란하다고나 할까. 술술 잘 읽히면서도 맥을 딱딱 짚는다. 성형외과와 연예계를 다룬 ‘맨 얼굴…’ 역시 이런 강점이 오롯하다. 매끈매끈. 흥미진진. 심지어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착시현상도 벌어진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건지, TV를 보고 있는 건지. 다소 자극적인 소재 탓이겠지만 꽤 수위 높은 막장드라마를 감상하는 기분마저 든다. 살짝 개연성 없는 소재와 에피소드가 뒤섞이는 스타일이 닮았다. 보다 보면 자꾸만 결말이 궁금해지는 것까지. 작가는 여기에 비장의 ‘만두소’도 차려냈다. 얼기설기 벌어진 틈새마다 서경의 심리를 켜켜이 쌓아올린다. 이로 인해 속도감이 살짝 처지긴 해도, 뻔한 막장이 ‘웰메이드 멜로’로 탈바꿈하는 마법을 부린다. 다만 취재를 너무 열심히 한 걸까. 이것저것 다 담으려다 잽만 쏟아진 느낌도 없지 않다. 하긴, 요런 장르는 그래야 볼 맛이 나는 건지도. 어떤 끝맺음이 기다리고 있건 간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삶은 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17일 오후 경기 고양시 원각사 앞에서 올려다본 하늘도 그랬다. 좀 전까지도 구름 가득 찌푸려 우산을 챙겼다. 근데 막상 당도하니 쨍쨍한 햇볕에 셔츠 깃마저 거치적거린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려니, 푸른 잔디 곁에 정각 스님(59)이 진작부터 마중을 나와 섰다. 사실 스님만큼 인생의 변환이 극적인 이도 드물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영세까지 받은 그는 누구나 신부가 될 줄 알았다. 허나 군 제대 뒤 철학에 심취하다 불교에 귀의해 1987년 사미계를 받았다. 그리고 불교문헌을 비롯해 고문헌을 수집 보존하는 ‘문화재 지킴이’로 20여 년. 최근 그간의 노고를 집대성한 원각사 소장 고문헌 612점이 담긴 도록 ‘원각사의 불교문헌’(동국대 불교학술원)도 출간됐다. “다 연(緣)이 그렇게 닿았을 따름이지요. 띄엄띄엄 ‘팩트’만 놓고 보면 왜 신부의 길을 걷다 승려가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은 순리 따라 간 겁니다. 그걸 억지로 비틀면 그게 더 ‘사달’이 나는 거예요. 물론 신학교 다닐 때야 짐작조차 못했죠.” 실제 스님은 가톨릭 신앙생활에 오롯이 청춘을 바쳤다. 소신학교를 거쳐 가톨릭대 신학과에서 착실하게 교육을 받았다. 그것도 매주 고해성사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마음속 의문이 커졌다. 당시 담임신부였던 최창무 대주교에게 상담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길은 우연히 택시를 타고 “아무 가까운 절이나 가 달라”고 청해 도착했던 서울 성북구 개운사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문선규 전 전남대 교수)는 제가 미학 공부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반대가 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사람 모두 제가 신부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고형곤 박사(전 전북대 총장)가 당숙인데 아버지가 여러 차례 고민을 털어놓으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깊은 숲속도 길은 어디론가 나 있는 법이죠. 길은 가본 사람들만 그게 길인 줄 압니다.” 고문헌을 비롯한 문화재에 열정을 쏟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억지로 이어붙인 게 없다. 막연히 어린 시절 고고학자를 동경했던 스님은 출가 뒤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계속 공부하고 답을 찾는 건 스님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창하게 문화재 분야에서 무슨 족적을 남길 뜻은 지금도 없습니다. 그저 배우다 보니 소중한 게 눈에 들어왔고, 소중한 것이니 지켰을 뿐입니다. 불교문헌만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태극기라든가 독도 지도, 심지어 가톨릭 자료도 허술히 여긴 적이 없습니다. 다 우리 땅, 우리 세월이 깃든 역사니까요.” 그런 스님도 요즘 가슴에 소망을 하나 품고 있다. 그간 모은 보물들을 도록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사찰 옆에 작게라도 박물관 하나를 세우고 싶다. 일신을 위해 모은 돈이 없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 또한 흐르는 대로 내버려둘 요량이다. “생각해 보면 출가 전 절에 가본 거라곤 딱 2번입니다. 중고교 수학여행 때뿐이죠. 그런데도 지금은 소박하나마 버젓이 한 사찰의 주지가 되지 않았습니까. 현재 가진 건 중요치 않습니다. 마음에 무엇을 지녔는가를 봐야죠. 요즘 속인들도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더군요. 근데, 지금 설령 잘못 가더라도 너무 근심에 휩싸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방향만 굳건하면 언젠가 길은 나타나거든요.” 고양=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 이렇게 머쓱할 수가.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 그가 누군가.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그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끝내주는 글맛의 소유자. 요 책은 또 어떤 장관을 펼쳐놓았을지 당연히 침이 고인다. 그런데…, 책을 펼친 독자는 ‘극한의 (생경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저자가 심취한 거대 담론과 달리 이 책은 전쟁문화사(史)란 비교적 세부 영역에 집중했다. 그러나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라, 하라리 교수가 가장 잘 아는 분야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천의무봉(天衣無縫) 휘젓는 솜씨가 더욱 거침없다. 특히 서구에서 중세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전쟁 회고록을 바탕으로 엮어내는데, 어어 하는 순간 서양 문화의 변천과 근간까지 파고든다. 꽤나 두툼한 책이나 목적지는 의외로 친근하다.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경험이다. 이는 개인에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강력한 변화(혹은 깨달음)를 안긴다. 그런데 여기엔 ‘당연히’ 당대의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다. 신의 섭리가 우선하던 중세엔 전쟁을 숭고한 정신이란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엔 인본주의나 유물론이 등장하며 참전군인의 감정과 경험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결국 전쟁을 통한 경험을 ‘지식의 습득’이란 틀로 해석하면 인류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는지까지 통찰할 수 있다. 사실 ‘극한의 경험’은 저자가 2008년에 쓴 책이다. 앞서 언급한 두 베스트셀러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쓰였다. 그래서일까. 총기나 매력은 여전하나 다소 논거가 거칠다. 게다가 워낙 보편적이지 않은 소재라 그런지, 뒤돌아서면 뭘 들려주려 했던 건지 살짝 헷갈린다. 호불호야 있겠지만, 하라리 교수는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다. 분명 된장찌개 재료인데 뚝딱뚝딱 김치찌개, 아니 똠얌꿍을 내놓는 재주를 가졌다. 그것도 아주 근사하게. ‘극한의 경험’ 역시 신묘하다. 다만 낯선 재료로 만든 이름 모를 요리를 처음 마주한 기분이 이럴까. 이게 맛있는 건지, 아닌지 선뜻 가늠이 어렵다. 원제는 ‘The Ultimate Experience’.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리 땅 방방곡곡을 비추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빛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비로자나불은 ‘부처의 진신(眞身·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을 뜻한다. ‘깨달음의 빛-비로자나불’(사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국에 산재한 비로자나불상 157좌 모두를 사진으로 찍고 해석을 곁들인 도록이다. 이 도록은 단순히 기존 자료수집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숫자 파악도 어렵던 전국의 비로자나불을 일일이 찾아가 현재 모습 그대로 담았다. 정태호 사진작가(스페이스포토스튜디오 실장)는 “전국 사찰과 박물관을 돌며 사진을 찍는 데만 7∼8년이 걸렸다”며 “크기나 현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비로자나불을 대할 때마다 묘한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도록의 해설 글을 맡은 이숙희 박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성을 지닌 모든 비로자나불을 책에 수록했다”며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불상까지 모두 발굴하고 가치를 알릴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도록을 펼쳐보면 국보 제26호인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부터 조성 시기는커녕 문화재 지정도 되지 않은 불상까지 다양한 비로자나불을 만날 수 있다. 정 작가는 “때로 풍파에 휩쓸려 형체마저 희미해진 부처더라도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계신지 귀를 기울이며 촬영에 임했다”고 떠올렸다. 19일부터는 출판을 기념한 사진전 ‘깨달음의 빛-비로자나불’도 서울 종로구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이번 출간은 경남 창녕군 영축산 법성사가 10여 년을 공들인 불사(佛事)의 결과물이다. 2005년 작고한 법성사 회주(會主·절의 창건주나 큰 어른)의 유지를 받들어 2008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법성사 주지인 법명 스님은 “외지고 그늘진 곳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법을 설파하는 비로자나불의 뜻을 세상에 전하자는 법성 보살님의 바람을 이제야 이루게 됐다”며 “종교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출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대한불교관음종 총무원장인 홍파 스님(낙산묘각사 주지)은 “비로자나불은 다양한 불상 형태 가운데에도 부처가 세상에 전하는 ‘진리의 빛’을 상징하는 본질이라 할 수 있다”며 “비교적 작은 사찰에서 오랜 세월과 정성을 들여 대단한 업적의 불사를 이룬 것이야말로 참된 선(善)의 길로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주말 중국 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을 봤다. 아마 중년들은 무협소설 ‘영웅문’ 1부라고 해야 친근할 터.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절대고수 5인을 일컫는 이 호칭은 당시 남자 중고교에선 람보나 코만도에 버금가는 아이콘이었다. 근데 이 작품, 참 끈질기게 리메이크된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1976년부터 7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1994년)도 이 소설이 모티브다. 1991년인가, 학력고사가 끝난 뒤 지인의 집에서 비디오로 봤던 기억도 난다. 그 ‘사조영웅전’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1957년 소설로 출간된 뒤 60년 동안 세계적 인기를 누린다. 실은 10년쯤 전 홍콩에서 작가인 진융(金庸) 선생을 인터뷰했었다. 희미하긴 한데 작가는 “난 펜을 잡았을 뿐, 소설은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며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문득 강호의 도리를 논하며 백주(白酒) 한 잔 들이켜고 싶다. 또 이렇게 술자리 핑계가 늘어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성경이든 불경이든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경(經)’이라 하지요. 그건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다룬 겁니다. 저희가 만든 영화 ‘산상수훈’도 마찬가지죠. 그 가르침을 퍼뜨린다는 뜻에서 하나의 ‘영화경’이라 할 수 있겠네요.” 스님은 거침이 없었다. 아니, 되레 거침 있는 걸 이상히 여겼다. 문제가 있으니 풀어봤고, 답이 나왔으니 내놓았다. 그렇게 세상에 영화 한 편을 툭 던진 대해 스님(58·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원장)을 6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만났다. 무심히 던졌으되 물결은 넘실거린다. ‘산상수훈’은 예수의 산상 설교를 일컫는다. 불제자가 기독교 영화를 만들었단 얘기다. 지난달 배우 손현주가 영화 ‘보통사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제39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국내외에서 관심이 크다. 왜 하필 스님이 예수의 가르침을 다뤘을까. 스님은 또 한 번 툭 던졌다. “본질은 어디서나 어디로나 통하니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리 이상한가요? 출가의 목적이 뭐겠습니까. 답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전하는 거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뜻은 하나님이건 부처님이건 같으니까요. 해외에선 제가 불자라는 점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함께 진리를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교과서’를 만났다고 반가워했습니다. 그게 이 영화를 만든 이유죠.” 대해 스님의 감독 커리어는 상당히 길다. 2007년 단편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시작으로 91편의 중단편을 만들었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영화기구인 유니카(UNICA)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을 쌓아왔다. 장편은 ‘산상수훈’이 처음이지만, 스님은 현지에서 웬만한 거장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다. “작품 줄거리는 간명합니다. 신학생 8명이 동굴 안에 모여 진리를 찾아 격렬하게 토론합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나 봐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함께 자리한 주연 백서빈(33)도 이번 작품을 “너무나 독특한 체험”으로 떠올렸다. 배우 백윤식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 뒤를 이어 모스크바에 초청됐다. 2003년 같은 영화제에서 백윤식이 출연한 ‘지구를 지켜라!’는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영광만큼이나 고민도 컸다. “실은 저를 비롯해 연기자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입니다. 때문에 처음엔 감독님 말씀이 잘 와닿지 않았어요. 게다가 동굴에서 보름을 촬영했는데, 13분 동안 혼자 대사하는 롱테이크가 있을 정도로 어려운 장면이 많았어요. 그런데 함께 하나하나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진심으로 이 영화를 대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보단 깊은 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스님의 공부는 끝이 없다. 2012년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찍었던 스님은 앞으로 부처와 공자를 다룰 예정이다. 4대 성인을 다 훑겠단 뜻이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본질은 같기 때문이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야 비로소 답도 보입니다. 왜 하필 그게 영화냐고요. 현대사회에서 이만큼 뜻을 전파할 좋은 수단이 어디 있겠어요. 시공간을 초월해 다가갈 수 있는 도구잖아요. 경(經)은 멈춤도 막힘도 없는 겁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따라가도 돼?” 이게 웬일이래. 누굴 인터뷰한다는데 이런 열화 같은 주위 반응은 처음이다. 채널A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11분 방송하는 예능 ‘러브라인 추리게임―하트시그널’이 요즘 ‘핫’하긴 한가 보다. 25일 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관련 동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33만 회를 넘겼을 정도다. 청춘남녀의 셰어하우스 체험을 담은 ‘하트시그널’에 이토록 관심이 쏠리는 이유. 역시 콸콸 매력 터지는 출연자 덕분일 터. 그 주인공 김세린(24·공연홍보) 배윤경(24·디자이너) 서지혜 씨(21·대학생)를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촬영이 끝난 지금도 일주일에 3, 4번씩 만날 정도”로 친해진 그들의 인터뷰를 ‘찜질방 수다’ 스타일로 정리했다. ▽윤경=세린스! 왜 이렇게 살 빠졌어? 너무 예뻐졌는데. ▽세린=뭐야, 엊그저께 봐 놓고선. 모니터링한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는데. 진작 빼지 그랬냐고. 둘은 날씬한데 너만 뚱뚱하다며, 킥킥. ▽지혜=아녜요. 우리 가족은 방송 보고 엄청 칭찬했어요. 다들 멋지고 착하다고. ▽윤경=에구, 우리 막둥이. 어쩜 이리 참하게 말할까. 공대(이화여대 컴퓨터공학과 3년)라 요즘도 수업 빡빡하지? 촬영 때도 과제 많아 힘들었잖아. ▽지혜=힝, 언니들밖에 없네. 그래도 한 달 동안 너무 행복했어요.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세린 언니 요리 생각난다. ▽세린=하긴 신선했지. 그런 동거를 어디서 해보겠어. 근데 난 처음엔 작심 연애 모드로 갔는데. 만약 결혼하면 제작진도 불러야 하나 미리 걱정했다니깐. ▽윤경=꺅, 못 말려. 정말 세린이가 제일 웃겼어. 방송엔 그 매력이 10분의 1도 안 나온 듯. 난 촬영 때 걱정도 컸어. 뭘 할지 몰라서 제작진한테 ‘대본 좀 달라’고 조르기도 했지. 하지만 아무런 대본 없이 ‘일상 그대로’를 보여주라고 해서 너무 힘들었어. ▽세린=그러게. 그 덕에 오빠들까지 너무 편해졌지. 속 깊은 얘기까지 나눌 줄이야. 덕분에 가치관도 바뀌었어. 예전엔 ‘첫 느낌’ 신봉자였는데,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배웠거든. ▽지혜=전 마냥 편하진 않았어요. ‘배고파’라는 혼잣말도 누군가 듣고 있고, 침대에까지 카메라가 달려 있으니. 내가 어떻게 비칠지 전혀 감도 없었고요. ▽세린=마찬가지야. 서로 너무 달라서 거리감도 있었지. 실수할까봐 걱정도 됐고. 근데 중요한 건, 좋은 기회를 망설이다가 놓치고 싶진 않았어. 왜 촬영 끝난 뒤에도 같이 모여 살아보잔 얘기도 나왔잖아. 그런 인연을 만난 것만도 감사해. ▽윤경=참, 아라(신아라·22)를 빼먹을 뻔했네. 방송 4회부터 등장하던데. ‘메기 효과’(강력한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노렸다나, 하하. 2016 미스코리아 선이라니 깜짝 놀랐지 뭐야. 지내다보니 그렇게 착한 애도 없던데. ▽지혜=아라 언니, 보고 싶어요! 아, 지금까진 초반 탐색이었다면 앞으로 진지한 속내가 드러날 거예요. 서로 주고받은 정들이 방송으로 많이 전달되면 좋겠어요. ▽윤경=세린이가 우리 엄청 챙겨줬는데. 돌이켜보면, ‘하트시그널’은 단순히 짝을 찾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어. ▽세린=맞아. 제작진이 ‘누가 좋으냐’고 최종 질문했을 때 난 윤경이 말했다가 혼났어, 히. 젊은 날 누구나 겪을 법한 감정들에 시청자들도 공감할 수 있었으면. 우리가 3월에 촬영했잖아. 겨울을 지나 봄에 밀려오는 훈훈함처럼 말이야. ▽윤경=오, 역시 세린스! 우리 2차 가자, 할 얘기 너무 많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전편에서 계속) 국내 음원 차트와 비교하기 위해 해외 차트를 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에이전트 7(임희윤)의 고민은 어떤 해외 차트를 택하느냐부터였다. 디지털 음원의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횟수에 서로 다른 가중치를 두는 멜론 차트와 꼭 맞는 해외 차트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중적 인기가 가장 큰 노래를 매주 종합한다는 점에서 빌보드 핫100(싱글차트)를 택해 분석해 보기로 했다. 빌보드의 10년 역시 음악 소비 형태의 격변기였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다운로드 플랫폼인 아이튠스,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이 차례로 오픈했다. 이에 따라 빌보드 역시 디지털 음원 소비량을 음반 판매, 방송 횟수와 함께 순위 산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솔로 가수 절대 우세+한 번 오르면 오래간다 국내 멜론 차트를 분석한 전편들처럼 10년간(2007년 6월∼올해 5월)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을 모아 파헤쳤더니 흐름이 보였다. 빌보드에선 그룹보다 솔로 가수가 절대 우위에 있었다. 장기 집권 경향은 뜻밖에 멜론보다 훨씬 강했다. 빌보드에서 10년간 도합 10주 이상 1위를 지킨 가수는 무려 21팀. 같은 기간 멜론(9팀)보다 훨씬 많다. 21팀 가운데 17팀이 솔로. 아이돌그룹은 없다. 힙합 듀오(매클모어앤드라이언루이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듀오(체인스모커스), 혼성 4인조(블랙아이드피스) 정도가 비(非)솔로. 장르로는 댄스 팝 또는 팝 성향 힙합의 두 가지가 절대다수다. 록 밴드 중 10주 이상 1위 팀은 마룬5뿐. 서울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콜드플레이도 2008년 6월 28일자에 딱 한 주 ‘Viva La Vida’를 정상에 올려놨을 뿐이다. ‘록은 죽었는가?’ 아재의 한탄을 뿜을 때가 아니다. 분석을 이어가자. 멜론에서는 10년간 한 차례도 없었던 두 달 반 이상, 즉 10주 이상 연속 1위 곡도 빌보드에선 아홉 번이나 나왔다. 2007∼2012년 10주 이상 연속 1위 곡은 3곡에 불과했지만 2013년 이후 6곡으로 늘며 이런 경향은 더해졌다. 싱어송라이터와 솔로 가수의 선전이 도드라지지만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제작사가 될성부른 연습생을 뽑아 춤과 노래를 훈련시켜 스타로 키우는 한국의 방식과는 좀 다르지만 유니버설 소니 등 거대 회사의 입김이 세다는 면에서는 맥이 통한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의 임향민 이사는 “미국 대중음악사에서는 뉴키즈온더블록, 백스트리트보이스가 인기를 끈 1990년대를 빼면 아이돌그룹 시대가 거의 없었다”면서 “싱어송라이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빌보드 차트에서 엿보이는 건 스타성 있는 아티스트(artist)와 곡(repertoire)을 매치시키는 시스템의 힘이었다. 다수의 1위 곡에 맥스 마틴, 닥터 루크, 퍼렐 윌리엄스, 마크 론슨 등 소수 히트 프로듀서들이 공동 작곡·편곡자로 붙어 있다. 스타성에 작사·작곡 능력까지 갖춘 스타를 발굴해 그 능력을 홍보하되 ‘제품화’ 공정에선 히트 프로듀서를 활용한 강력한 ‘대중성 게이트키핑’이 들어가는 셈이다.○ 전방위 홍보… 순회공연과 앨범의 전통적 힘 빌보드 장기 집권 가수 중엔 한 앨범에서 여러 곡을 정상에 올린 이가 많다. 멜론 인기 가수가 특정 시점에 앨범 타이틀곡이나 디지털 싱글만 한 곡만 1위에 올린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진섭 팝 칼럼니스트는 “빌보드에서는 앨범 단위의 힘이 여전하다”면서 “앨범 제작 단계부터 장기 전략을 갖고 수록 곡 여러 개를 잇달아 히트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음반 발매에 맞춰 TV·라디오 라이브 프로 출연, 순회공연, 소셜미디어를 아우르는 다각도의 홍보 전략이 가동된다. 오프라인에서도 대중과 접점을 길게 끌고 가는 특징이 보인다.” 종합해 보자. 멜론과 빌보드는 회전 속도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셀러브리티형 가수 중심의 기획 콘텐츠가 대자본의 힘을 업고 승승장구했다는 면에서는 닮은 면모를 보였다. 7은 드디어 삽을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등에 땀이 흥건했다. “더울 땐, 쿨 노래지.” 제 딴엔 쿨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잠재된 아재 본능을 분출했다. ‘해변의 여인’을 재생하는 순간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었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정양환 기자}
“정신적인 법칙에는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법칙과 다르다.”(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중) 요즘 옛 친구를 만나면 그렇게들 게임 얘기를 한다. 20세기 히트작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덕이다. 군대처럼 PC방 ‘무용담’이 줄기차게 쏟아진다. 실제로 21일 출시된 모바일 버전 ‘리니지M’(사진)을 다운받은 연령은 30, 40대가 약 70%란다. 컴퓨터게임이 젊은 날의 감성을 불 지피다니. 여름에 나올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링’은 얼마나 뜨거울는지. 생각해보면 이도 참 묘한 풍경이다. ‘국민학교’ 때였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던 길. 그만 문방구 앞 오락기(아마 ‘제비우스’였다)에 혼이 팔렸다. ‘아들내미’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날 마당에서 팔이 떨어져라 벌을 섰다. 그때 어른들에게 게임은 백해무익한 ‘뿅뿅’이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어떤 게 추억이 될까. 절대적인 줄 알았던 기준도 세월 따라 달라지니. 아재는 됐더라도 꼰대는 되지 않았으면. 머리에 피가 마르면 생명에 지장이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저 한줄기 바람은 누구의 가슴을 식혀 주려는 걸까. ‘대(大)음원 시대’란 오지에서 삽질하던 에이전트2(정양환)와 7(임희윤)은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파기만 하면 뭔가 쏟아지는 광대한 자료들. 도대체 언제쯤 다 수습할 건지. 푹 젖은 귓가를 살랑 스치는 미풍. 문득 광천수를 찾아 떠난 에이전트26(유원모)이 떠올랐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될 테니. 앞서 요원들은 음원사이트 멜론의 주간차트 10년 치를 분석해 “접근은 쉬워졌는데도 취향은 획일화된”(서정민갑 평론가) 대중음악 시장의 신묘함을 감지했다. 그러나 어디 고구마 덩굴이 여기서 끊어지랴. 이런 타이밍에 꼭 흘러나오는 ‘빰빰 빠바밤’ (MBC 드라마 ‘하얀 거탑’ OST의 ‘B Rossette’).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요원들은 다시 한번 삽을 들었다. 》 ○ 팝콘형 소비에 방송 영향력도 커져 10년은 긴 세월이다. 그런데 아무리 차트를 훑어도 찾기 힘든 ‘가뭄의 콩’이 있다. 바로 팝송이다. 사실 이 차트는 가요 팝송 다 포함해 매긴 종합순위였다. 그런데 무려 524주 가운데 외국곡이 1위였던 건 단 한 차례. 2014년 2∼3월 2주 동안 정상에 올랐던 이디나 멘젤의 ‘렛 잇 고’(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가)다. 한 음악방송 PD는 “음원 시장은 ‘소장용’ 음반에 비해 음악을 영화관 팝콘처럼 가볍게 소비하는 풍조를 만들었다”며 “가요가 이런 흐름에 맞는 기획성이 뛰어나다 보니 상대적으로 팝송의 입지가 매우 좁다”고 말했다. ‘팝콘형 소비’는 주간차트 수위(首位) 곡의 1위 기간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 기간 초기인 2007년 6월부터 2년 동안 1위를 차지한 노래들은 평균 4.04주가량 정상에 머물렀다. 반면 최근 2년(2015년 6월∼2017년 5월) 동안은 평균 1.72주밖에 되지 않는다. 1개월 이상 1위에 머문 ‘메가 히트 곡’을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2007년 6월부터 5년 동안은 원더걸스 ‘텔 미’(7주)나 소녀시대 ‘Gee’(8주) 등 모두 20곡이 1위에 한 달 이상 머물렀다. 반면 최근 5년 동안은 싸이 ‘강남스타일’(6주), 소유&정기고 ‘썸’(7주) 등 딱 절반인 10곡뿐. 올해는 에일리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6주)가 유일한데, 대박 난 tvN 드라마 ‘도깨비’ 삽입곡이었다. 방송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팝콘형 소비가 가진 특징이다. MBC ‘무한도전’ 가요제 곡이나 엠넷 ‘쇼미더머니’(총 3곡·4주)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음원 강자로 군림한다. 서 평론가는 “음반보단 음원이 TV 이벤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음원 시대에 대중음악의 성공을 가름하는 최고 기준은 단연 ‘화제성’”이라고 진단했다.○ 아이돌이란 공룡의 새로운 도전 다행스러운 건 이런 ‘한없이 가벼운 획일성’이 개선될 여지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했던 ‘아이돌 음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상징하는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한류 덕분에 한국 음악산업은 세계 10위인 8억3300만 달러(약 9398억 원·2015년 기준) 규모로 올라섰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음악시장도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음악이란 공룡이 다양한 장르와 분야를 흡수하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멜론 주간차트를 장르별로 분석해 보면, 2010년까진 여전히 댄스음악이 전체 기간의 78.6%나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3년간에는 댄스음악의 비중이 48%로 확 떨어지고, 힙합 발라드 등 비(非)댄스음악이 오히려 절반을 넘었다(52%).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미묘 음악평론가는 “연예기획사들도 흑인음악이나 힙합 등과의 결합을 통해 음악적 완성도를 올리고 장르의 확장도 꾀하는 ‘다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대중의 취향도 조금씩 세분되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끝이다. 땀범벅이던 에이전트2는 겨우 허리를 폈다. 이만큼 팠으면 됐겠지. 누가 막걸리 새참이나 갖다 줬으면. 그런데 에이전트7, 아무리 불러도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왠지 모골이 송연해진 2. 천천히 뒤돌아선 7은 씩 하고 미소를 쪼갰다. “자, 이제 그럼 빌보드도 파봐야지?”(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임희윤 기자}
“깨어나라, 요원이여. 이제 때가 왔다.” 드디어 그날인 건가. 시큼한 땡볕. 코를 골며 명상에 잠겼던 에이전트7(임희윤)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옆집 소녀 복순이와 함께 동구 밖에 묻었던 교환일기. 그만큼 곰삭은 세월. 벌써 울컥한 에이전트2(정양환)는 뒤돌아선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7년은 한국 대중음악사(史)에서 이정표와 같은 해였다. 21세기,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를 들으려 CD를 찾지 않았다. 갈수록 음반시장은 쪼그라들고 MP3파일이나 스트리밍 같은 음원이 승승장구. 결국 그해, 연간 5000억 원 규모였던 음반 산업을 음원(5039억 원)이 완전히 대체하는 지경에 이른다. 요원들은 그때부터 묵묵히 기다렸다. 결혼하고 애 낳으며 꽉꽉 10년을 채웠다. 2007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10년간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의 주간차트를 분석해 봤다. 과연 ‘내 마음의 보석상자’(1986년 해바라기 곡)엔 뭐가 들어있을까. ‘맨 인 컬처’의 야심작 ‘대(大)음원 시대’는 상중하 3회 시리즈로 연재된다.○ 걸그룹이 음원 시장 10년 주도…그래도 왕좌는 ‘빅뱅’ 먼저 어떤 가수가 음원시장을 호령했는지 살펴보자. 강산이 1번 바뀌는 동안, 이곳의 지배자는 역시 지난해 데뷔 10주년을 맞았던 ‘아이돌 of 아이돌’ 빅뱅이었다. 지드래곤, 태양의 솔로 곡까지 포함해 18곡을 1위에 올렸고, 그 기간은 총 51주에 이른다. 빅뱅이 10년(524주) 가운데 9.7%나 차지한 셈이다.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미묘 음악평론가는 “빅뱅은 일반적인 남성 아이돌과 달리 소수의 팬덤은 물론이고 폭넓은 대중적 인기도 획득한 희귀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간차트 1위를 차지한 기간에 따라 톱10을 매겨 보면, 빅뱅을 제외하면 남성 아이돌은 한 팀도 없다. 아이돌과는 거리가 먼 리쌍과 싸이, 버스커버스커가 8∼10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솔로가수인 2위 아이유(36주)를 제외하더라도, 원더걸스 투애니원 씨스타 소녀시대 등 걸그룹이 압도적으로 강세다. 최고의 보이그룹들로 꼽히는 엑소나 방탄소년단 등은 주간차트엔 단 1주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는 아이돌의 ‘성별 맞춤형 전략’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빅뱅이나 아이유처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이그룹은 젊은 여성이 주축인 팬덤에 따라 성패가 갈리고, ‘아재 팬’이란 용어가 자연스러운 걸그룹은 남녀노소 전반에서 인기를 모아야 산다. 여성 아이돌은 음원이나 행사에서 얻는 수익이 크고, 남성 아이돌은 음반과 ‘굿즈’(관련 상품), 콘서트에서 강세를 보인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보이그룹은 진입 문턱이 높지만 궤도에 오르면 수익 구조가 안정적”이라며 “반면 걸그룹은 상대적으로 타율이 좋지만 티아라나 AOA 사태에서 보듯 위기에 취약하다”고 귀띔했다.○ 한류 붐은 일으켰으나 편식에 빠진 한국 음악 주간차트 10년 분석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쏠림 현상’이다. MBC 예능 ‘무한도전’ 관련 곡을 빼면, 상위 10위 팀이 1위에 오른 주를 모두 합치면 257주나 된다. 12팀이 절반에 육박하는 49.0%를 휩쓸었다. 한국 음악시장의 핵심 키워드인 ‘아이돌’과 ‘기획사’로 분석해 보면 이런 쏠림은 더 두드러진다. 전체 524주 가운데 아이돌이 1위를 차지한 주는 322주로 무려 61.5%나 차지한다. 더욱이 국내 3대 기획사로 꼽히는 SM과 YG, JYP 소속 뮤지션만 따져 봐도 38.3%(201주)다. 미묘 평론가는 “국내 시장의 특성상 ‘기획사가 만든 아이돌 음악’ 구도는 대세로 굳어진 지 오래”라며 “당연히 이런 편식은 아쉽지만 아이돌 제작 시스템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음악 산업의 성장을 일궜다는 긍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고 평했다. 문제는 ‘소수에 의한 시장 과점’이 벌어진다는 건데….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내놓은 ‘음악백서 2016’에 따르면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가온차트 1∼100위에 한 곡이라도 올린 적이 있는 기획·제작사는 2011년만 해도 241개였다. 하지만 2015년 195개, 지난해 145개로 팍팍 줄어들었다. 관련 업체가 1086개(2015년 기준)인 걸 감안하면 13.5% 남짓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며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는 획기적으로 늘었다”며 “그러나 음원 사이트와 유력 기획사에 영향력이 집중되며 오히려 대중의 선택은 폭이 좁아지는 ‘취향의 획일화’란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다음 날에 계속)임희윤 imi@donga.com·정양환 기자}
평지풍파에도, 지드래곤(권지용)은 지드래곤이었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솔로 월드투어 ‘ACT Ⅲ M.O.T.T.E(Moment of Truth The End)’의 성대한 막을 올렸다. 최근 멤버 탑(최승현)의 대마초 파동이란 악재에도, 이날 콘서트는 4만여 관객이 가득 채우며 그의 탄탄한 입지를 실감케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장 관심이 쏠렸던 탑에 대한 심경은 이날 공연장에선 들을 수 없었다. 지드래곤은 “많은 일이 있어 개인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이번 공연을 정말 못할 뻔했는데 무사히 열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긍정적이라 다 잘될 거라 생각한다. 힘든 시기를 같이 해주는 분들이 많다”며 “내년에 군대에 가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3일 일본 오사카에서 있었던 빅뱅 팬 이벤트에서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며 팀의 리더로서 사과한 바 있다. 이날 콘서트는 화려한 게스트와 응원 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같은 소속사 걸그룹 ‘투애니원’ 멤버였던 씨엘과 최근 지드래곤이 피처링에 참여했던 아이유가 무대에 올라 열기를 더했다. 또 빅뱅의 태양과 대성, 가수 싸이, 개그맨 정형돈 등 가까운 지인들이 영상을 통해 지드래곤을 격려했다. 역시 탑의 등장이나 언급은 없었다. 한편 콘서트의 성공만큼 8일 발매한 솔로앨범 ‘권지용’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타이틀곡인 ‘무제(無題)’는 발매 4일째인 11일에도 주요 음원차트에서 여전히 1위를 유지했다. ‘개소리’ ‘슈퍼스타’ 역시 상위권. 뮤직비디오 역시 공개 2일 만에 접속건수 960만 회를 넘어섰다. 해외 반응도 뜨겁긴 마찬가지. 중국 최대 음원사이트인 QQ뮤직에선 이틀 만에 디지털앨범 76만여 장이 팔렸다. 아이튠스에선 모두 39개국에서 앨범차트 1위에 올라섰다. 빌보드는 9일 지드래곤 특집 기사를 싣고 “그의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영국 팝스타 에드 시런을 밀어내고 미국 아이튠스 1위를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지드래곤은 10일 서울을 시작으로 미국과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19개 도시에서 콘서트를 가질 예정. 2009년 ‘Shine A Light’와 2013년 ‘One of A Kind’에 이은 세 번째 솔로 월드투어다. 앞서 가진 2번의 월드투어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ABC협회(회장 이성준)가 2017년(2016년분) 일간신문 유료부수 인증 결과 동아일보가 국내 일간지 중 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ABC협회는 2일 인증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2017년(2016년분) 종합편성채널·케이블TV 겸영 일간신문 23개사에 대한 유료부수 인증심사를 마친 뒤 방송통신위원회에 심사 자료로 제출했다. ABC협회 조사 결과 동아일보의 유료부수는 72만9414부로 집계됐다. 이날 공개된 유료부수 현황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유료부수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중앙일보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3만383부(4.04%)가 줄어들어 3위로 밀려났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73만1788부에서 2374부(0.32%)만 줄었다. 조선일보(1위)는 지난해보다 유료부수가 1만2466부(0.98%) 줄어들었다. ABC협회 관계자는 “유료부수는 전체 발행한 부수 중 정기구독자, 가판 등에서 실제 판매된 부수를 집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23개 매체 유료부수 순위에서는 동아일보 자매지인 스포츠동아가 9위(12만2464부), 어린이동아가 11위(7만7801부)에 올랐다. 어린이동아는 어린이 대상 신문 중에서 유료부수 1위, 스포츠동아는 스포츠신문 중에서 유료부수 2위를 차지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시그널 보내, 시그널 보내. 찌릿 찌릿 찌릿 찌릿.’(트와이스 ‘시그널’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렇게 짜릿한 관찰예능이 있다니. 알쏭달쏭한 청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채널A 신규 예능 프로그램 ‘러브라인 추리게임―하트시그널’이 2일 오후 11시 11분 시청자들의 가슴을 흔드는 시그널을 쏘아 올린다. ‘하트시그널’은 제목 그대로 한 달 동안 같은 집에 살게 된 미혼 남녀 6명의 마음(하트)이 누구를 향해 신호(시그널)를 보내는지 맞혀보는 프로그램이다. 방송계에서 ‘촉’ 좋기로 유명한 ‘예측자’ 6명이 시청자 이해를 돕는 연애탐정 역할을 맡는다. 탐정단 수장 격인 가수 윤종신은 1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지금까지 나온 연애관찰 예능 가운데 가장 섬세한 프로그램”이라며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굉장히 실험적인 예능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 2일 밤 공개되는 1화를 보면 ‘하트시그널’은 일단 ‘때깔’이 끝내준다. 참가자는 장천 서주원 강성욱 등 남성 3명과 서지혜 김세린 배윤경 등 여성 3명. 매력적인 외모와 세련된 매너가 눈길을 끈다. 함께 생활할 근사한 셰어하우스와도 잘 어울린다. 첫 회에선 이들의 직업이나 나이 등이 공개되질 않는데, 벌써부터 인터넷에선 화제가 될 조짐이다. 일단 선남선녀가 모여 있으니 몽실몽실 형성되는 기류가 장난 아니다. 슬쩍 쳐다보는 눈빛과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투 하나하나가 심상찮다. 단지 남녀 사이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가 얽히고설키는 법. 묘한 경쟁관계에 놓인 동성들 속내 역시 흥미진진하다. 뭣보다 ‘배꼽의 법칙’ ‘미러링(mirroring) 효과’처럼 아무런 말이 없는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보디 시그널을 짚어보는 재미가 무척 크다. 이런 짜릿함을 배가시켜주는 건 역시 ‘예측자’들의 공이다. 윤종신을 비롯해 요즘 ‘예능 섭외 0순위’ 가수 이상민과 슈퍼주니어 신동이 맛깔스러운 입담을 자랑한다. 여기에 천재 작사가 김이나와 미국 웰즐리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모델 심소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양재웅도 수준 높은 추리능력을 더했다. 연출을 맡은 이진민 PD는 “호감이 가는 이성을 만나면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며 “일반인 참가자들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이 한 달 동안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