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75

추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문화 일반40%
음악30%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 [책의 향기]좋아서 한 번역, 제대로 했더니

    “아주 좋은 소식!” 지난해 초 저자는 영국 출판사 혼퍼드 스타로부터 이 같은 e메일을 받았다. 저자가 번역한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기뻐서 비명을 지르던 저자에게 곧바로 다른 e메일이 도착했다. 역시 저자가 번역한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도 같은 부문 1차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백인이 아닌 사람이 번역한 두 권의 책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동시에 후보로 선정된 건 처음이었다.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저자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첫 번째 한국인 번역가가 됐다. 저자는 당시 심정을 “유색 인종이라고, 한국인이라고, 비(非)원어민 번역가라고 날 무시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돈을 꽤 잘 벌었던 통역사였던 저자가 가난한 문학 번역가가 된 뒤 겪은 희로애락을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번역한 작품이 주목받아도 눈에 띄지 못했고, 낮은 번역료에 생활비를 걱정하면서도 문학 번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감을 주는) 클라이언트는 얼마든 대체 가능하며 번역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저자의 선언은 ‘번역가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출판계의 인식에 반기를 든다. “내 영혼의 작은 파편이 번역에 실리게 되고, 독자는 그 파편에 반응하는 듯하다”는 고백에선 문학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화려함 잦아들고, 조용하게 울리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문장은 흡인력이 높다. 곳곳에 심어둔 복선과 적절한 은유 덕에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된다.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며 또 한번 든 생각이다. 남자 주인공, 첫사랑, 평행 세계, 도서관…. 출간 전 공개된 내용으론 하루키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은 너무 익숙한 서사였다. 기대만큼 불안도 많았다. 국내 출간 뒤 읽어 보니 현재 시점에선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하루키가 기존 작품 세계에서 더 나아갔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하긴 힘들다. 예를 들어 신작에서 남자, 여자 주인공이 편지로 교류하는 장면은 하루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설정이다. 국내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진 1987년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민음사)에서도 요양원에서 지내던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편지로 소통했다. 신작에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이 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고 남자 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2017년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전 2권·문학동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연상의 유부녀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책을 계속 읽게 되는 건 매끄러운 표현력 덕이다. “마치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을 촘촘히 엮어가는 것 같다”는 남자 주인공의 고백은 사랑에 빠진 10대의 마음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풀피리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오래된 나선형 나무 계단이 있는 망루가 지키는 도시에 대한 묘사는 건조하지만 세밀하다. 빈약한 서사는 실패가 아닌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하루키는 신작 출간 직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에는 대중적이고 액션이 있는 작품에 이끌렸다.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차분하게 사람의 내면을 제대로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하루키는 2020년 소설집 ‘일인칭 단수’(문학동네)에서 20여 년 동안 절연했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런 걸 고려하면 신작엔 최근 작품 경향이 반영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작의 번역가 홍은주 씨는 최근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신작에선 그동안 하루키의 장편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모험적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애초에 이야기를 넓히기보다 ‘좁힐’ 생각으로 파고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홍 씨는 “최근 하루키의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날 선 긴장감, 화려함이 있던 자리에 ‘조용함’이 자리 잡았다”고 했다. 그동안 일본 문학계에선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려면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노년의 하루키는 이와 정반대로 내면에 집중한 작품을 내놨다. 그럼에도 14일 기준 영국의 유명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에서 하루키는 다음 달 5일(현지 시간) 발표되는 올해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1위에 올랐다. 물론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된 건 한두 번이 아니긴 하다. 그래도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신작은 그의 작품 세계를 논할 때 빼놓기 힘들 것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웹툰작가 되면 일확천금?… 기회 올 때까지 맷집 키워라”

    2009년 대기업에 입사했다. 자영업을 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쓰디쓴 실패를 맛본 아버지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회사에선 부모님에게 꽃바구니를 보내 합격 사실을 알렸다. 회사 배지를 가슴에 달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자랑스러웠다. 희망찬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에선 매일 오전 6시 50분부터 회의가 시작됐다. 영업직이라 접대가 일상이었다. 점심 저녁으로 술을 마셨다. 대리가 된 뒤 오른 연봉이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잡았지만 버티기 어려웠다. 2013년 회사를 박차고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유명 웹툰 작가로 우뚝 섰다. 경기 부천시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17일 ‘청춘월담-불안을 넘어, 현재까지’라는 주제로 웹툰 작가 지망생에게 강연하는 김보통 작가(42) 이야기다.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11일 만난 그는 자신의 인생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수필 같은 만화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 작가다웠다. 그는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보며 그린 2013년 웹툰 ‘아만자’, 육군 내 탈영병 잡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 DP(Deserter Pursuit)에서 복무한 경험을 담은 2015년 웹툰 ‘D.P 개의 날’ 등을 그렸다. ‘대기업 입사, 웹툰 작가로서의 성공 모두 재능 덕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나 역시 끊임없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퇴사 후 DJ(디스크자키)를 준비하다가 재능이 없어서 포기했어요. 작은도서관을 세우는 사업을 하려고 책 2000권을 샀다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못 받아 포기하면서 퇴직금도 날려 먹었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도 떨어져 좌절했습니다.” 막막함과 불안에 시달리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웹툰 ‘송곳’의 최규석 작가(46)로부터 “웹툰 한번 그려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잠시 돈이나 벌자고 시작했는데 데뷔작 ‘아만자’에 대한 독자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5년 부천만화대상 시민만화상도 받았다. 웹툰 제작사 ‘스튜디오 타이거’도 2021년 세웠다.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심적으론 힘들었어요. 프리랜서라 불안했고, 웹툰을 주 2회 그리려면 잠을 줄이며 일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재밌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만으로 좋았죠.” 그는 자신의 영역을 한정 짓지 않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2021년 시즌1, 올 7월 시즌2 모두 각본가로 참여했다. 최근엔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고 검토 중이다. 그는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를 써봤는데 기초 자료조사에 활용할 정도는 된다”며 “작화 부문에선 AI의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웹툰 작가도 그림이 아닌 이야기로 승부해야 한다”고 했다. “웹툰, 소설, 영화, 게임 모두 매체가 다르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같아요. 그림을 잘 그리는 웹툰 작가보단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유연한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비 창작자에게 당부를 부탁하니 그는 자신이 한때 취미로 했던 권투로 비유해 답했다. “권투에서 제일 무서운 상대는 잘 때리는(성공) 사람이 아니라 세게 맞았는데(실패) 안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웹툰으로 일확천금을 얻을 거라고, 내 작품이 영상화돼 넷플릭스 1위가 될 거라고 기대하면 부담에 창작 못 해요. 기회가 올 때까지 맷집을 키우고, 일희일비하지 마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해리포터 마법 용품 사세요”… 굿즈 판매 팔 걷은 출판사들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 예언자일보, 블랙 가문 가계도 벽지…. 서울 강남구에 2일 문을 연 ‘하우스 오브 미나리마 서울’에서 판매하는 굿즈(기념품)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56)이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선보인 마법 용품을 파는 것이다. 이 가게 바닥엔 호그와트 세계를 그린 ‘도둑 지도’가 그려져 있고, ‘딱총나무 지팡이’처럼 생긴 펜으로 방명록에 글을 쓸 수 있다. 하루 500명 이상 찾아올 정도로 해리포터 마니아들에게 인기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건 해리포터 시리즈를 국내에 출간한 출판사 문학수첩이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소품을 만들었던 영국 디자인 회사 미나리마와 협업해 문을 열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 소설뿐 아니라 마법 용품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 삽화책 ‘미나리마의 마법’ 등 문학수첩이 펴낸 해리포터 관련 책도 판다. 이승희 하우스 오브 미나리마 서울 부장은 “20여 년 전 소설로 처음 해리포터를 접한 30, 40대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영화를 본 자녀를 데리고 가게를 찾는다”며 “굿즈와 해리포터 관련 책을 함께 사는 어린이 독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출판사들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굿즈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출판사 북스피어는 지난달 18일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 장편소설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를 펴내며 우표와 지도, 포스터 등 다양한 굿즈를 함께 팔았다. 1만9800원짜리 책에 모든 굿즈를 더한 가장 비싼 세트 가격은 3만9480원으로, 이 세트를 비롯해 1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김 대표는 “고급스럽게 만들어 굿즈만으로는 세트당 1000원씩 손해를 봤지만 마케팅 효과가 컸다”며 “책이 출간 3주 만에 1만 부 팔리며 전작인 장편소설 ‘영혼 통행증’(2021년)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소형 출판사들은 주로 텀블벅 등 펀딩 사이트를 통해 책과 굿즈를 함께 판매한다. 지난해 1월 장편소설 ‘마담 보바리’를 펴내며 손수건, 디퓨저를 함께 판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는 “소형 출판사는 대형 출판사처럼 마케팅에 돈을 쓸 수 없기에 굿즈를 소량 제작해 펀딩 사이트에서 판매한다”고 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마니아 독자들은 굿즈를 사기 위해 기존에 보유한 책을 또 사기도 한다”며 “굿즈 판매가 책 판매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키나와人, 간토대지진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본토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학살의)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일본 작가 메도루마 슌(63)은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고한 조선인들이 희생된 간토대지진 학살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에겐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두 가지 모습이 있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본토 일본인보다 계층이 아래였고, 본토 일본어를 능숙하게 말하지 못해 조선인으로 의심받아 죽곤 했다. 하지만 본토 일본인에게 차별받는 것이 두려워 조선인을 차별하는 편에 선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중성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역사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모두가 기울이지 않으면 언젠가 가해자가 된다”고 강조했다. 메도루마 작가는 1960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났고 1997년 장편소설 ‘물방울’(문학동네)로 나오키상과 함께 일본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2000년 ‘혼 불어넣기’(아시아)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상도 받았다. 그는 단편소설 ‘어군기’ 등으로 일본 제국주의, 본토의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 등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일본에서 천황을 비판하면 우익이 위해를 가하기 때문에 내가 천황을 비판하는 소설을 쓰면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난 굴하지 않는다.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의 책임을 묻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 은평구가 주최하는 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수상 작가로 선정돼 이날 회견에 나섰다. 이 상은 실향민 출신으로 분쟁과 평화에 대한 소설을 썼던 이호철 작가(1932∼2016)를 기리고자 2017년 제정됐다. 김성호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선정위원장은 메도루마 작가에 대해 “식민지적 차별과 억압, 미군 주둔 문제 등 오키나와가 처한 권력 구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문학적 승화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통이 사라진 세상에 부는 피바람

    어느 날 세상에 완벽한 진통제 ‘NSTRA-14’가 등장한다. 중독성도, 부작용도 없는 이 진통제 덕에 이젠 아픔을 호소하는 이는 없다. 고통이 사라지자 천국이 도래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이에 반대하는 신흥 종교 ‘교단’이 등장한다. 교단은 “고통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NSTRA-14를 만든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테러를 가한다. 고통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이에 대항해 교단 지도자들을 살해한다. 고통 없는 사회는 진정 천국일까. 고통을 두고 벌어진 이 싸움은 어디로 치달을까. 지난달 31일 출간된 정보라 작가(47)의 장편소설 ‘고통에 관하여’(다산책방·사진)는 고통이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 미래를 상상하는 공상과학(SF)에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서사가 가득한 호러를 버무린 독특한 작품을 펴냈던 정 작가가 이번엔 살인 사건의 비밀을 추적하는 스릴러를 더했다. 정 작가는 8일 전화 인터뷰에서 “고통이 사라지자 고통을 다시 갈망하기 시작한 세상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인간에게 신체와 감각이 있으니 쾌락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고통과 쾌락의 근원이 같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정 작가가 고통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2009년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을 전공하며 박사 논문을 쓰면서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 같은 러시아 작가들은 당시 러시아에 만연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유토피아 소설을 썼다. 러시아 민중이 식량이 없어 굶어 죽는 생활고와 피비린내 나는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고통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작가들은 이런 고통이 사라진 유토피아를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8년 미국의 한 SF 행사에서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문제를 들으며 다시 한번 고통에 대해 생각했어요. 1991년 걸프전, 2018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 부상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다 마약 중독자가 됐죠. 최근 한국 사회에도 프로포폴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널리 퍼지고 있는 점에도 영향을 받았어요.” 그는 “신흥 종교 ‘교단’을 소설에서 그린 건 최근 논란이 된 종교단체 JMS처럼 고통스러운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때문”이라며 “고통이 사라지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시대에 많다는 걸 깨닫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 작가는 지난해 단편소설집 ‘저주 토끼(Cursed Bunny·래빗홀)’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그는 12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국제문학축제에선 한국의 환상문학에 대해 강연한다. “해외 독자들은 옛 고대 신화 전설이 현대 한국의 환상문학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저 역시 올해 5월 구미호 설화를 재해석해 장편소설 ‘호’(읻다)를 펴냈어요. 다음 장편소설에선 귀신 이야기로 돌아올 계획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해충돌 방지 위반” 정민영 방심위원 해촉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과거 소송에서 MBC 측을 대리해 이해충돌 방지 규정 위반 논란이 불거진 정민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에 대한 해촉안을 재가했다. 정 위원의 해촉으로 방심위 구도가 여권 우위로 바뀐 가운데 방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류희림 방심위원(64)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언론 공지에서 “윤 대통령은 인사혁신처에서 상신한 정 위원에 대한 해촉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고 인도로 이동하기 직전 해촉안을 재가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변호사이자 야권 추천 방심위원인 정 위원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과 손석희 전 JTBC 대표이사의 동승자 의혹 논란 보도 등과 관련된 소송에서 MBC 측을 대리한 것으로 나타나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이날 정 위원에 대한 이해충돌 방지 위반 고발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 위원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해 징계와 과태료 부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정 위원이 최근 해촉된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의 해촉 처분 집행정지 신청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으면서도 심의위원장 호선(互選)과 관련된 회의에 신고·회피 절차 없이 참석한 점도 이해충돌 방지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변호사인 정 위원이 MBC로부터 여러 사건을 수임해 법률 대리를 하는 등 사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도 신고나 회피 절차 없이 MBC 관계자들의 징계 조치를 결정하는 방심위 심의·의결에 56회 참석했다”며 “방심위 심의의 공정성, 독립성,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의 해촉으로 방심위원의 정치적 구도는 여권 추천 4명, 야권 추천 3명으로 여권 우위로 바뀌었다. 전체회의에는 여권 추천 류희림, 황성욱, 허연회, 김우석 위원과 야권 추천인 옥시찬, 김유진, 윤성옥 위원이 참석했지만 야권 위원들은 중도 퇴장해 위원장 호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류 신임 위원장은 대구 출신으로 YTN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최근 해촉된 정연주 전 위원장의 후임으로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이 위촉한 인사다. 더불어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는 이날 성명서에서 “(해촉 사유로) 이해충돌 방지 규정 위반을 들었으나 이는 구실일 뿐 방심위의 방송심의를 좌지우지해 방송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전KDN-마사회, YTN 지분 매각 공고… 내달 입찰

    보도채널 YTN의 주인이 이르면 올해 말 바뀐다. YTN 1대 주주인 한전KDN(지분 21.43%)과 4대 주주인 한국마사회(9.52%)는 8일 신문 등을 통해 YTN 지분 매각 사전공고를 내고 “두 회사가 보유한 YTN 지분 30.95%(보통주 1300만 주)를 전량 일괄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 자문사는 삼일회계법인이다. 두 회사는 다음 달 중하순까지 입찰 참가 신청을 받아 최고가 입찰자를 낙찰자로 선정한다. 방송법 제15조에 따르면 낙찰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최다액 출자자 등 변경승인을 거쳐야 한다. 변경승인은 최대 60일(업무일 기준)이 걸린다. 이르면 올해 말 매각 절차가 끝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본잠식 상태였던 YTN의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획득했다. 두 회사 외에 한국인삼공사(19.95%), 미래에셋생명보험(11.72%), 우리은행(7.4%) 등이 YTN 대주주다. 지분 매각에 반대해 왔던 YTN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공공기관들은 지금이라도 일방적인 민영화 추진을 멈추라”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도 성명을 통해 “지분 매각에 공익적 고려는 없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낼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2023-09-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좀비 마약’이 파고든 도시는 먼 나라 이야기일까

    1959년 벨기에 의사 폴 얀센(1926∼2003)은 탁월한 진통제를 개발했다. 이 진통제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암 환자를 위해 주로 사용됐다. 환자들이 큰 수술을 받을 때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마취제 역할도 했다. 한때 의료계에선 이 진통제가 ‘기적의 약물’이라 불렸다. 하지만 2021년 이 진통제 때문에 사망한 미국인은 7만 명이 넘는다. 이 진통제는 만 50세 이하 미국 성인의 사망 원인 1위다. 헤로인보다 50배, 모르핀보다 100배 강력하고 2mg만 복용해도 사망할 수 있는 이 치명적인 진통제의 별명은 ‘좀비 마약’, 이름은 펜타닐이다. 미국 탐사 전문기자 벤 웨스트호프는 저서 ‘펜타닐’에서 펜타닐이 죽음의 마약이 된 과정을 추적한다. 펜타닐 원료 생산 시설에 잠입해 취재하고, 4년에 걸쳐 160여 명을 인터뷰해 펜타닐 생산과 유통 과정을 생생하게 써냈다. 저자는 최근 미국에서 펜타닐이 급속도로 퍼진 배후로 중국과 멕시코를 지목한다. 중국 화학업체들이 펜타닐 원료인 전구체(前驅體)를 생산해 멕시코 마피아에게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업들은 중국 정부에서 표창을 받지만 제재는 거의 받지 않는다. 멕시코에서 제조된 펜타닐은 국제택배로 국경을 넘어 미국 전역에 퍼진다. 마약 단속에 적극적이지 않은 중국 정부와 마약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미국 정부의 갈등은 ‘신아편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격화되고 있다. 특히 멕시코 마피아는 다크웹(접속하려면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하는 웹사이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부 단속을 피해 10대 청소년과의 ‘비대면 직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1913∼1994)이 1971년 “미국의 공공의 적 1위는 마약 남용”이라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50년이 지나도록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마약 문제가 바다 건너 이야기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장은 저서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에서 한국은 과거 주요 마약 생산국이었고, 최근엔 마약 주요 소비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부산은 일본 야쿠자들이 활약했던 ‘코리아 커넥션’의 중심지였다. 야쿠자들은 대만에서 필로폰의 원재료인 슈도에페드린과 에페드린을 수입했다. 필로폰을 제조할 때 나는 악취를 숨기기 위해 부산 근처의 악취가 심한 돼지 사육장 안에 비밀 공장을 차린 뒤 필로폰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대만에서 원료 1kg을 14만 원에 산 뒤 필로폰을 만들면 10억 원에 팔 수 있을 정도로 수익성이 높아 한국 조폭도 야쿠자를 따라 필로폰 공장을 만들었다. 1982년 일본 필로폰 시장의 88.3%를 한국산 필로폰이 차지할 정도로 한국은 마약 생산국으로 유명했다. 양 과장은 최근 한국 마약 소비층이 20, 30대로 낮아지고 있고, 청소년 마약 중독도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엑스터시, LSD(환각제의 일종), 신종 마약 ‘야바’ 등 다양한 마약이 젊은 층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마약 중독자와 거래상으로 가득한 모습을 한국의 거리에서 목격하게 될지 모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尹, 정민영 방심위원 해촉 재가…새 방심위원장에 류희림 선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과거 소송에서 MBC 측을 대리해 이해충돌 방지 규정 위반 논란이 불거진 정민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에 대한 해촉안을 재가했다. 정 위원의 해촉으로 방심위 구도가 여권 우위로 바뀐 가운데 방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류희림 방심위원(64)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대통령실은이날 언론 공지에서 “윤 대통령은 인사혁신처에서 상신한 정 위원에 대한 해촉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고 인도로 이동하기 직전 해촉안을 재가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변호사이자 야권 추천 방심위원인 정 위원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과 손석희 전 JTBC 대표이사의 동승자 의혹 논란 보도 등과 관련된 소송에서 MBC 측을 대리한 것으로 나타나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이날 정 위원에 대한 이해충돌 방지 위반 고발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 위원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해 징계와 과태료 부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정 위원이 최근 해촉된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의 해촉 처분 집행정지 신청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으면서도 심의위원장 호선과 관련된 회의에 신고·회피 절차 없이 참석한 점도 이해충돌 방지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변호사인 정 위원이 MBC로부터 여러 사건을 수임해 법률 대리를 하는 등 사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도 신고나 회피 절차 없이 MBC 관계자들의 징계 조치를 결정하는 방심위 심의·의결에 56회 참석했다”며 “방심위 심의의 공정성, 독립성,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정 위원의 해촉으로 방심위원의 정치적 구도는 여 추천 4명, 야 추천 3명으로 여권 우위로 바뀌었다. 전체회의에는 여권 추천 류희림, 황성욱, 허연회, 김우석 위원과 야권 추천인 옥시찬, 김유진, 윤성옥 위원이 참석했지만 야권 위원들은 중도 퇴장해 위원장 호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류 신임 위원장은 대구 출신으로 YTN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최근 해촉된 정연주 전 위원장의 후임으로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이 위촉한 인사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8
    • 좋아요
    • 코멘트
  • 방통위 “KBS-MBC-JTBC 팩트체크 실태 점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대선 당시 허위 인터뷰 논란과 관련해 언론사를 대상으로 실태 점검에 나선다. 방통위는 “대선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가짜뉴스 및 허위정보 보도와 관련해 KBS와 MBC, JTBC 등의 팩트체크 시스템에 대해 실태 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해당 방송사들이 허위 인터뷰 논란이 일고 있는 지난해 3월 뉴스타파의 대장동 관련 보도를 인용 보도한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이들 방송사가 재허가·재승인 시 제출한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 계획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점검하고 재허가·재승인 조건을 위반한 경우 시정 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시와 함께 뉴스타파의 신문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신문법에 따르면 보도 내용이 발행 목적 등을 현저하게 반복해 위반한 경우 발행 정지 명령 등을 내릴 수 있다. 문체부는 “뉴스타파가 800여 개 인터넷신문이 참여한 인터넷신문위원회의 자율심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뉴스타파가 2018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콘텐츠 제휴 심사에서 70여 개 신청사 가운데 유일하게 통과한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관계자는 “당시 뉴스타파만 기준 점수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 2023-09-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통령실, 신학림·김만배 인터뷰에 “희대의 정치 공작…목표는 尹 낙선”

    대통령실이 5일 지난해 대선 당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고 허위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희대의 대선 정치 공작 사건”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대선 직전 허위 정보를 생산해 민의 왜곡을 시도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5일 성명을 통해 “대장동 사건 몸통을 이재명에서 윤석열로 뒤바꾸려 한 정치 공작적 행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며 “김만배·신학림 거짓 인터뷰 대선 공작은 대장동 주범 그리고 언노련 위원장 출신 언론인이 합작한 희대의 대선 정치 공작 사건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날조된 사실, 공작의 목표는 윤석열 후보의 낙선이었다”면서 “정치 공작과 가짜뉴스는 국민의 민심을 왜곡하고, 선거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 요인”이라고 했다.대통령실은 이 사건을 두고 “김대업 정치공작, 기양건설 로비 가짜 폭로 등의 계보를 잇는 2022년 대선의 최대 정치 공작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두 사건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이회창 후보를 겨냥해 제기된 의혹이었다.대통령실은 해당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언론들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조작 인터뷰를 4개 아이템에 할애해 보도한 방송사 등 집중적으로 가짜뉴스를 실어 나른 언론 매체들이 있었다”며 “기획된 정치 공작의 ‘대형 스피커 역할’이 결과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고 뉴스타파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방송사에 대한 긴급 심의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관련 민원 60여 건이 방심위에 제기된 데 따른 것이라고 방심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치권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 정치공작의 배후를 밝히고, 공모하고 동조한 자를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까지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지난해 대선과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허위 인터뷰라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진위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이상헌기자 dapaper@donga.com이호재기자 hoho@donga.com신나리기자 journari@donga.com}

    • 2023-09-05
    • 좋아요
    • 코멘트
  • 5共 ‘보도지침’ 맞선 이채주 前동아일보 주필 별세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채주 전 동아일보 주필(사진)이 4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고인은 1958년 서울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 동아일보로 옮겨 경제부장, 외신부장, 동경지사장, 출판국장,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다. 일민문화재단과 인촌기념회 이사를 역임했다. 고인은 전두환 정권의 이른바 ‘보도지침’이 있던 1983년 5월부터 3년 8개월 동안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가택연금 중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을 하던 1983년 6월, 언론은 김영삼의 이름도, 단식이란 말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동아일보는 ‘YS 단식 23일 만에 중단’ 기사를 내보냈다. 고인은 1985년 2월 총선 당시 보도지침을 여러 차례 따르지 않았고, 그해 8월 국가안전기획부로 연행돼 장시간 조사를 받으며 고초를 겪기도 했다. 고인은 2008∼2017년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국제 관계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국책 연구기관인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과 한중일 포럼을 수차례 열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방효석 씨와 아들 석호 베리타스캐피탈 대표이사, 준호 신화씨엔에스 대표이사, 제호 기아 과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6일 오전 11시 반. 02-2258-5940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70대 하루키가 청년 하루키를 만나 세계관 완성”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4) 열풍이 다시 불까. 국내에 6일 출간되는 하루키의 새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문학동네·홍은주 옮김·사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년 만의 새 장편소설인 신간은 예약 판매만으로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8월 다섯째 주 종합 1위에 올랐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작가의 직전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전 2권·문학동네·2017년) 1권보다 온라인서점 예약 판매량이 2, 3배로 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후에도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문학동네·2022년), ‘일인칭 단수’(문학동네·2020년)가 나왔지만 각각 에세이와 소설집이었다. ● “70대 하루키, 청년 시절 자신 만나 세계관 완성”신작은 30대 남자 주인공 ‘나’가 10대 시절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공유했던 여자친구를 떠올린 뒤 ‘사방이 높은 벽에 둘러싸인, 아득히 먼 수수께끼의 도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하루키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했지만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동명의 중편소설을 고쳐 쓴 작품이다. 앞서 하루키는 이 중편에 나온 ‘벽에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설정을 1985년 장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전 2권·민음사)에 등장시킨 적이 있다. 이현자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신작을 “70대의 하루키가 43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청년 하루키를 만나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한 소설”이라고 했다. 이어 “하루키가 천착해온 상실과 재생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며 “작가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람들 간의 단절 속에서도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가 교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심리묘사 집중, 초기작 매력 담겨”‘세계의 끝과…’를 포함해 하루키 작품을 다수 번역한 김난주 번역가는 신작에 하루키 초기작의 매력이 담겼다고 평가했다. 하루키는 1979년 중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문학사상사)로 등단한 뒤 주로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렸다. 이후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가 일어나자 1997년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전 2권·문학동네)를 펴내는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김 번역가는 “신간은 여자친구에 대한 ‘나’의 감정 등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며 “작가가 아쉬웠던 숙제(책 출간)를 매듭짓고, 하고 싶었던 말을 마무리하려 한 것 같다”고 했다. 하루키는 후기에서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고 했다. 그는 올해 4월 신작이 일본에서 출간됐을 때 인터뷰에서 “벽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생각하며 썼다”며 “(1980년 중편소설을 쓸 당시에 비해) 쓰고 싶은 것을 쓸 만큼 실력이 늘었고 다시 써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신작이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2년 장편 ‘해변의 카프카’(전 2권·문학사상사)처럼 소년이 주인공이고, 2009년 장편 ‘1Q84’(전 3권·문학동네)처럼 현실과 유사한 평행세계가 등장하는 등 그의 작품세계가 강하게 녹아 있다는 것. 신작을 미리 읽은 김겨울 작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미지의 도시가 등장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버려야 그 도시로 넘어갈 수 있다는 설정은 하루키 독자라면 익숙할 것”이라고 했다. 신간은 일본에서 출간 2개월 만에 40만 부가 팔렸고, 일본 오리콘 차트가 집계한 올 상반기(1∼6월) 서적 판매 1위에 올랐다. “일본어 원서를 받자마자 밤새 읽었다”는 김 번역가는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긴 역사 속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서사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독자는 지루할 것이고,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작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판매량과는 별개로 독자들이 신작의 문학적 성취 여부를 중요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불면의 밤, 내 안의 생체시계에 무슨 일이…

    “침대에 눕기 전까진 피곤해 죽겠는데요. 불을 딱 끄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고 정신은 말똥말똥해져요.” 50대 영국 여성 클레어는 런던 가이병원 수면장애센터 전문의인 저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클레어는 5년 동안 끔찍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오늘도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면 거실로 가서 차를 한잔 마시고 부엌을 뱅뱅 돌았다. 다시 방으로 가서 잠자려 했지만 실패하기 일쑤였다. 잠들어도 1, 2시간이면 눈이 떠졌다. 저자는 오랜 상담 끝에 클레어가 잠을 못 이루는 건 과다각성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5년 동안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 클레어가 직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부담감에 시달린 게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클레어에게 카페인을 섭취하지 말고, 집 안을 어둡게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또 오후 11시가 되면 목욕을 하고, 오전 6시엔 꼭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항우울제, 항불안제도 처방하며 스트레스 상담을 했다. 9개월 후 클레어는 불면증에서 해방됐다. “잠이 사람의 모든 걸 바꿔요. 잠이 괜찮아지니까 진짜 다 좋아지는 느낌이더라고요.” 신경의학적 측면에서 수면장애를 다뤘다. 저자는 수면장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개는 4일에서 17일, 쥐는 11일에서 32일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 미군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잠들지 못하게 고문했다. 눈을 1분이라도 붙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면 수감자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적국의 기밀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성인 10명당 1명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는데도 수면장애를 단순히 잠을 설쳤다고 무시하는 실정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저자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들은 관타나모 수감자들만큼 괴롭다”. 수면장애의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수면위상지연증후군을 앓는 환자는 아침엔 졸리고 저녁엔 쌩쌩하다. 낮과 밤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이들을 ‘올빼미족’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은 일상을 망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뇌가 휴식을 취하는 비(非)렘(REM)수면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몽유병을 겪는다. 몽유병 환자 중엔 자신도 모르게 밤에 일어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경우도 있다. 수면무호흡증에 걸리면 다양한 합병증에 시달리고, 기면병 환자는 낮에 걷다가 갑자기 쓰러져 잠들기도 한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의식을 통제하는 이마엽, 감각을 처리하는 마루엽, 각성을 조절하는 신경핵 등 뇌 안의 다양한 기관이 수면에 영향을 미치지만 연구가 아직 미진하다는 것. 다만 저자는 자신이 많은 환자를 검진하고 상담한 결과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수면장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환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가 몇 명인지, 연봉이 동료보다 높은지, 친구보다 배가 나왔는지 같은 비교에 덜 집착할수록 수면장애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은 못 자면 죽는다. 삶에서 잠이 필수라는 명제엔 반박의 여지가 ‘절대’ 없다”고 강조한다. 잠을 잘 못 자는 이들은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양을 99마리 세고, 자기 전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비싼 침대와 베개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잠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해외 독자 만나려면, 번역 더 유연해져야[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K팝이 진정한 세계의 주류가 되려면 K를 뗀 ‘그냥 팝’ 그 자체가 돼야 한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달 25일 유니버설뮤직그룹(UMG)과 손을 잡고 미국에서 대형 오디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를 시작한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K팝을 세계화하는 단계를 넘어 K팝 제작 시스템을 기반으로 해외에서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방 의장은 “세계의 재능 있는 청년들에게 K팝에 기반한 멋진 그룹의 멤버가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꿈이 있었다”며 “제작 시스템 자체가 해외에서 뿌리내려 본토 팝 시장을 공략하며 저변을 넓히는 것”이라고 했다. 방 의장은 이를 ‘또 다른 방식의 세계화’라고 정의했다. K팝과 한국문학이 세계화되는 과정이 다를 필요가 있을까. 문학 번역가 12명이 한국문학의 현실과 미래를 담은 ‘K 문학의 탄생’ 중 이형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의 글 ‘한류를 통해 바라본 한국문학 번역의 미래’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문학 번역이 지나치게 학술적 논의에 묶여 있다고 지적한다. 오역 논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대중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등의 현실적 접근을 상업적이고 속물적이라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해외 번역가들이 자유롭게 번역하는 길이 막혀 있다고 평가한다. 이 교수는 한국문학이 K팝의 세계화 방식을 참고하자고 말한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음악에 많은 해외 제작자가 참여하듯, 한국문학 번역에 더 많은 해외 번역가가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한국인 번역가보다 미국인 번역가가 미국 독자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해외 K팝 팬들이 유튜브에서 자발적으로 가사를 번역하며 노는 행위가 K팝이 오역 논란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한국문학이 학술적 오역 논란에 집착하지 말고 자유로운 번역 분위기를 독려해야 해외 번역가들이 한국문학 번역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독자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원본의 가치나 한국적 특성, 원본에 대한 충실성만을 중시하는 전략으로는 번역 독자와의 활발한 소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한국문학은 우리 것이고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현지(해외) 독자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한국문학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대중음악과 문학을 오롯이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다. 문학은 글의 비중이 음악보다 훨씬 높기에 오역에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 한국문학이 K팝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가운데 이런 생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도 다른 문화 콘텐츠의 세계화 방식은 참고할 수 있다. 문학과 대중음악의 차이점보단 공통점을 바라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다. 그러면 한국문학 해외 번역자가 많아지고, 한국문학을 찾는 해외 독자들이 많아질지 모른다. 한국문학의 ‘또 다른 방식의 세계화’를 상상해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온신협 “네이버 AI의 뉴스 무단학습은 불공정한 저작권 침해”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등이 소속된 한국온라인신문협회(온신협)는 네이버의 생성형 인공지능(AI) ‘하이퍼클로바X’가 50년 치 한국어 뉴스를 무단 학습한 데 대해 “불공정한 데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31일 밝혔다. 온신협은 네이버가 언론사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뉴스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신문협회가 네이버 등 국내외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에 AI의 데이터 학습으로 인한 뉴스 저작권 침해 방지를 요구한 데 동참한 것이다. 온신협은 신문협회와 이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온신협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뉴스 콘텐츠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권리 존중 △TDM(Text and Data Mining·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이나 구조를 추출하는 기술) 면책 규정 도입 불가 △AI가 학습한 뉴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불 등 3대 원칙을 밝혔다. 온신협은 “생성형 AI는 학습 데이터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뉴스 콘텐츠의 복제 및 전송을 할 수밖에 없기에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성형 AI 학습에 사용되는 TDM을 저작권 침해에서 면책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이미 명시된 공정 이용 규정에 더해 이 규정까지 도입된다면 한국은 저작권자 보호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뉴스 콘텐츠의 무단 활용은 콘텐츠 생산자의 의지를 꺾고, 이는 결국 생성형 AI 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9-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건희 유족 ‘서수상’ 기증… 광화문 월대 얼굴 되찾았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문화재청에 서수상(瑞獸像·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2점을 기증했다. 광화문 월대(月臺·궁궐 주요 건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은 단)에서 임금이 다니던 어도(御道)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면서 치워진 것으로, 잃어버렸던 월대의 얼굴을 되찾은 셈이다. 문화재청은 “이 회장이 생전 소장해 유족이 기증한 서수상 2점은 현재 복원 중인 광화문 월대에 활용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서수상 2점은 각각 너비 57cm, 길이 198cm, 높이 60cm다. 뿔이 1개이고, 목에 털이 있다. 서수상은 고종(재위 1863∼1907년) 때 월대를 건립하면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광화문 월대 사진을 보면 서수상의 형태와 규격, 양식이 기증품과 일치한다. 서수상은 상상 속 신비로운 동물을 나타낸 조각상으로, 서수는 왕이 정치를 잘할 때 나타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서수상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올해 4월 이 회장 유족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서수상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2년 호암미술관을 개관할 때부터 있었다. 이달 초 이 회장 유족은 “서수상이 의미 있게 활용되길 희망한다”며 기증했다. 2021년 이 회장 유족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소장품 2만3000여 점(국가지정문화재 60건 포함)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했는데, 서수상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광화문 월대는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후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며 정문인 광화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쌓았다. 덕수궁과 창덕궁 정문에도 월대가 조성됐지만 좌우 난간을 두른 건 광화문 월대뿐이다. 학계에서는 경복궁 안팎을 잇는 광화문 월대에서 각종 왕실 행사가 열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며 월대는 땅속에 묻혔다. 문화재청은 월대 복원을 마무리하는 올해 10월에 기념행사를 열어 서수상을 포함한 광화문 월대를 공개할 계획이다.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서수상이 없었으면 옛날 사진을 바탕으로 월대를 복원해야 했다”며 “원래 유물이 돌아옴으로써 월대 복원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제에 의해 훼손됐던 광화문 월대는 재현이 아닌 원모습을 살려내는 복원에 방점이 찍힌 만큼 실제 월대에 있었던 서수상을 기증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8-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동관 방통위장 취임 “무소불위 공영방송 심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사진)이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공영방송이 국민의 선택과 심판이라는 견제 속에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2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공영방송은 각종 특혜를 당연시하면서도 노영(勞營)방송이라는 이중성으로 정치적 편향성과 가짜 뉴스 확산은 물론 국론을 분열시켜 온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책임하게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거나 특정 진영의 정파적 이해만을 대변하는 행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서비스·재원·인력구조 등의 개편까지 아우르는 공적 책무를 명확히 부여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이행 여부도 엄격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또 “언론의 기능과 역할 상당 부분을 수행하는 인터넷 포털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겠다”며 “포털에 의한 뉴스 등 독과점 횡포를 막아 황폐해진 저널리즘 생태계의 복원과 소비자의 권리 보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경세유표(經世遺表)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하며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각오”라고 강조했다.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강규형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를 EBS 이사로 임명했다. 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에 김성근 전 MBC 인프라본부장을 임명했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정원 5명 중 이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 2명뿐이지만 전체회의 소집과 안건 의결이 가능하다. 강 이사는 2015년 9월 KBS 이사에 임명됐지만 2017년 12월 해임됐다. 강 이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의 마약 밀수 논란 등 적절성 여부가 논란에 휩싸였으나 임명된 유시춘 EBS 이사장 문제부터 살피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MBC 보도와 수익구조 정상화를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날 KBS 여권 추천 이사 5명은 30일 열리는 KBS 이사회 회의에 김의철 KBS 사장 해임제청안을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대규모 적자로 인한 경영 악화, 불공정 편향 방송으로 인한 국민 신뢰 추락을 김 사장 해임 사유로 꼽았다.과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8-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그리움이 미움보다 세더라

    “새경프라자 3층 방문자는 유증상 시 가까운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바랍니다.” 2020년 5월 새경프라자 3층 ‘나리공방’을 방문했던 이들은 이런 문자를 받았다. 나리공방의 단골손님인 수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자 정부 당국이 추가 전파를 막기 위해 연락을 돌린 것이다. 불똥은 곧 나리공방의 주인인 20대 여성 나리에게 튀었다. 손님들은 나리공방에서 운영하는 비누와 양초 만들기 수업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 대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사례라며 언론이 취재를 요청해 온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리는 친구처럼 지내던 수미를 미워하게 된다. 두 사람은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던 2020년을 배경으로 나리와 수미의 관계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사실 나리와 수미의 관계가 틀어진 건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수미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 이틀 전 딸 서하 앞에서 집 안의 물건을 부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나리는 서하를 나리공방으로 데려왔다. 나리는 시간이 지나서 서하를 돌려보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어색해진 상태였다. 나리의 마음은 계속 오락가락한다. 오랜 친구를 다시 보고 싶다가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수미의 방문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기에 그가 미워진다. 커피 한 잔 함께 마시면 풀릴 일일지도 모른다. 수미가 코로나19로 격리된 탓에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나리공방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접기로 한다. 사소한 다툼도, 갈등도 서로를 그리워하던 마음을 뛰어넘지는 못했으니까. 외로움과 사투하느니 다투면서도 함께하는 관계가 두 사람에게 행복을 선사하니까. 코로나19는 우리의 마음에 슬픔과 함께 미움을 남겼다. 다만 이 재앙 덕분에 깨달은 것도 있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혼자보단 함께 살아가는 게 낫다는 것 말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섬세한 심리 묘사와 따뜻한 문체로 은은하게 전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8-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