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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시 유명 식료품점 트레이더조스 매장. 육류 코너를 가보니 진열대 대부분이 텅 비었다. 매장 직원에게 칠면조 고기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지금은 없다. 하지만 오늘 안에는 들어오기로 돼 있다”고 말했다. ‘몇 시쯤 다시 오면 되느냐’고 물었지만 “오늘 들어온다”는 말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시간은 얘기하지 못했다. 옆 계란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매대 절반이 비어 있어서 원하는 브랜드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 빵은 더 심했다. 진열대 두 칸에 제품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 한 남성 고객은 꼼꼼히 적어 온 ‘쇼핑리스트’를 연신 쳐다보며 물건을 찾았지만 계속 “아, 이게 아닌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넓은 매장에 손님은 바글바글했지만 상품을 진열하고 고객에게 응대하는 직원은 한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텅 빈 식료품 매대…장보기에 ‘죽을 힘’요즘 미국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원하는 물건을 찾아 헤매느라 말 그대로 ‘사투(死鬪)’를 벌여야 한다. 다른 생필품 매장도 다를 바 없다. 휴지나 청소용품, 속옷, 양말 등을 파는 맨해튼의 한 잡화점에 들어가 봤다. 한쪽 벽면 선반이 거의 아무런 상품 없이 방치돼 있었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빈 선반(empty shelves)‘을 검색하면 월마트 같은 미국 전역 대형 마트의 휑뎅그렁한 진열대 사진이 쏟아진다. 한 이용자는 트위터에 텅 빈 매장 사진을 올리며 “이곳은 제품보다 가격표가 더 많다”고 씁쓸해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생필품 공급난 양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 확산으로 더 심각해졌다. 식품가공 및 물류업체와 마트 등의 근로자들이 코로나19에 무더기 감염돼 이탈하면서 공급난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이상(異常)기후로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에 몰아친 토네이도와 눈 폭풍도 유통망에 큰 타격을 줬다. 뉴욕시 음식점과 소매점도 최근 종업원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오미크론에 감염됐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치료 또는 격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인력난이 심한 와중에 직원은 더 부족하게 되자 월마트, 메이시스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는 일부 지점을 한시적으로 닫거나 영업시간을 줄이는 등 비상 대응체제에 들어갔다. 스타벅스, 치폴레 같은 유명 커피 및 음식 체인도 마찬가지다. 약국 체인 월그린스는 최근 고객들에게 대기 시간 증가와 재고 부족 등을 사과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 유명 피자집 ‘존스’의 케빈 잭슨 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지난주 종업원 6명이 부족해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손님을 잃는 것 같다”고 했다.인플레이션 부채질하는 美 공급망 위기오미크론 발(發) 공급망 위기는 현재 미국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 크다. 재화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란 데다, 부족한 근로자 확보를 위해 기업이 급여를 올리면서 물가 상승을 부를 수 있다는 것. 12일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7.0%로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전 세계 공급망 위기가 부품난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재가격을 더 밀어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미크론 변이는 공급난과 인플레이션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발생시키는 것 외에도 교통과 치안, 의료 같은 주요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뉴욕시에서는 소방관의 13%, 응급의료요원 18%, 경찰의 10%가 코로나19로 병가 중이다. 뉴욕 지하철은 기관사 등이 부족해 3개 노선 운행이 중지됐다. 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병원의 약 24%가 확진 판정 등으로 격리된 의료진 증가로 ‘심각한 의료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와 인플레이션 위협, 부채 증가, 소득 불평등, 주요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으로 올해와 내년의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세계은행(WB)이 11일(현지 시간) 전망했다. WB는 이날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5.5%였던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올해 4.1%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성장률은 3.2%로 더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이한 코세 W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계속 이어지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3.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특히 미국 등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빠르게 인상하면 성장률 전망치가 추가로 내려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이날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위협”이라며 “높은 인플레가 고착화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인플레 때문에 금리를 더 올려야 할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유동성 시대’ 종언 고한 美연준… OECD國 인플레도 25년만에 최고각국 통화정책, 물가 위협에 발목파월 “금리 낮춰 경기 부양 불필요… 3월 양적완화 끝내고 하반기 긴축”올해 모두 네 차례 금리 인상 전망… 韓銀도 내일 1.0→1.25% 올릴 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세계 경제를 굳건히 떠받쳤던 각국의 경기 부양책이 끝나 가면서 세계은행(WB)이 11일(현지 시간)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대폭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플레이션 위협,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 공급망 병목 등의 악재가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지난해 5.5%였던 전 세계 성장률이 4.1%로 낮아지고 오미크론 변이가 이어질 경우 3.4%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소속 38개국의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간 5.8%로 급등해 1996년 이후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7% 올랐다고 12일 발표했다. 1982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세계은행 “각국 인플레이션 위협”세계은행은 이날 보고서에서 지난해 5.6% 성장했던 미국 경제가 올해 3.7%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6월 내놓은 전망보다 0.5%포인트 낮은 수치다. 중국은 지난해 성장률 8%보다 2.9%포인트 낮아진 5.1%로 전망됐다. 유로화 사용 지역의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 5.2%보다 1.0%포인트 낮은 4.2%로 내다봤다. 또 선진국보다 신흥국의 경기 회복 속도가 저조해 세계 경제의 양극화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세계은행은 “미국과 중국 등 거대 경제권의 감속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대외 수요 창출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부양 여력이 부족한 일부 개도국은 인플레이션 압력 등으로 경착륙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데이비드 맬패스 총재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협곡이 더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악재도 상당하다. 연일 일일 신규 확진자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생필품 공급난 우려가 높다.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에서도 삼성전자, 도요타, 폭스바겐 등 주요 다국적 기업이 생산량을 줄이거나 공장 가동을 멈추고 있다. 특히 세계은행은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 위협이 각국의 통화정책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전 세계 물가 상승률은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신흥국과 개도국의 물가 상승률 또한 2011년 이후 가장 높다. 세계은행은 향후 몇 년간 각국 정책당국이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10년의 경제를 좌우할 것이라며 코로나19 백신 배포 확대, 불평등 완화, 개도국의 부채 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韓美 ‘돈줄 죄기’ 본격화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이날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길게 지속돼 금리를 더 올려야 할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금의 경제 여건이 이어지면 연준이 3월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은 연준이 올해 총 4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또 파월 의장은 “경제는 더 이상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취했던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는(accommodative)’ 강력한 통화 정책이 필요하지 않다”며 3월에 자산 매입(양적 완화)을 끝내고 하반기에는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를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5일 공개한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올해 금리 인상을 서둘러 실시할 뜻을 밝힌 데 이어 이날은 양적 긴축의 대강의 시기도 언급했다. 파월 의장이 공식적으로 긴축 정책의 시작을 알리며 ‘유동성 시대’에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은행은 이달 14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1.00%에서 1.25%로 0.25%포인트 올려 긴축의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지난해 8월과 11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시중에 풀린 돈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점도 이달 추가 인상의 명분을 키우고 있다. 12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통화량(M2·광의통화)은 3589조1000억 원으로 한 달 새 39조4000억 원 불었다. 시중 통화량은 지난해 초부터 11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10%대의 높은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북한이 11일 또다시 극초음속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도발을 강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5일 발사된 북한의 미사일 관련 비공개 회의를 개최한 지 2시간 반 만에 보란 듯이 무력시위에 나선 것. 이번 미사일의 비행 속도와 사거리 등이 엿새 전보다 크게 늘어남에 따라 당초 북한 미사일 성능이 과장됐다고 발표한 우리 군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오판해 오히려 국민적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대선을 앞둔 시기에 북한이 연속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데 대해 우려가 된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27분경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1발이 발사됐다. 발사체는 최대 음속의 10배 안팎, 정점고도 60km로 비행해 700km 이상 날아갔다. 5일 발사한 미사일의 최대속도(음속 6배 이상)와 사거리(500여 km·군 탐지거리, 북한은 700km 주장)보다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간 것. 극초음속미사일은 음속의 5∼20배로 궤도를 바꿔가며 비행한 뒤 표적을 타격한다. 군은 5일 발사한 탄도미사일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했다. 앞서 미사일의 성능이 과장됐고, 극초음속미사일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탄도미사일이라는 분석 결과를 발표한 7일과는 다소 배치되는 평가를 내린 것. 한미 정보당국은 비행 궤적 및 특성을 볼 때 작년 9월에 쏜 화성-8형과 유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열고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뤄진 이번 발사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도 ‘도발’로 규정하진 않았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 미사일 발사 2시간 반 전인 10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5일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안보리 차원의 규탄 성명이나 제재 결의를 도출하진 못했다. 미국 국무부는 11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복수의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하고 주변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규탄한다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북한이 11일 오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기 약 2시간 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 비공개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달 5일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해 이사국들이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유엔 안보리 회의는 10일 오후 3시(한국 시간 11일 오전 5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북한은 안보리 회의가 끝난 지 1시간 반 만에 다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는 이날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응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통상 유엔 안보리의 대응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 채택부터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의장성명과 언론성명 등이 있다. 이 중 하나도 내놓지 못하며 무력함을 드러낸 것이다. 안보리는 지난해 9월과 10월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했을 때도 긴급회의를 소집했지만 이번처럼 북한을 규탄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안보리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앞에 계속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상임이사국 중국과 러시아가 번번이 성명 채택 등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를 간파한 북한이 의도적으로 안보리 회의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미중, 미-러 간 갈등이 첨예화된 현재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중국이 5일 미사일 발사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아 북한에 ‘그린라이트(승인)’ 신호를 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엔 차원의 대응이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알바니아는 안보리 회의 시작 전에 모여서 북한이 5일 발사한 미사일 관련 규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 등 6개국 유엔 대사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전 세계에 대한 불법 무기 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고 지적했다. CVID는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는 용어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11일 발사한 미사일을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규탄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브리핑에서 “각국은 발사물의 성질을 섣불리 규정하거나 과잉반응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북한이 11일 오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기 약 2시간 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 비공개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달 5일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해 이사국들이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유엔 안보리 회의는 10일 오후 3시(한국시간 11일 오전 5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북한은 안보리 회의가 끝난 지 1시간 반 만에 다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는 이날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응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통상 유엔 안보리의 대응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 채택부터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의장성명과 언론성명 등이 있다. 이중 하나도 내놓지 못하며 무력함을 드러낸 것이다. 안보리는 지난해 9월과 10월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했을 때도 긴급 회의를 소집했지만 이번처럼 북한을 규탄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안보리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앞에 계속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상임이사국 중국과 러시아가 번번이 성명 채택 등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를 간파한 북한이 의도적으로 안보리 회의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미중, 미러 간 갈등이 첨예화된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해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중국이 5일 미사일 발사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아 북한에 ‘그린라이트(승인)’ 신호를 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엔 차원의 대응이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알바니아는 안보리 회의 시작 전 모여서 북한이 5일 발사한 미사일 관련 규탄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 등 6개 국가 유엔 대사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전 세계에 대한 불법 무기 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고 지적했다. CVID는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는 용어다.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북한의 (11일) 탄도미사일 발사는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프로그램이 (역내 안보환경을) 불안정하게 하는 효과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중국이 세계 수위를 다투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최근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를 사람 심장에 비유하며 ‘반도체 굴기(굴起)’를 선언했지만,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기업 발표와 중국 관영매체 보도, 지방정부 문서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최근 3년간 적어도 6개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들 프로젝트에는 최소 23억 달러가 투입됐는데 대부분 정부 지원금이었다. 이 같은 투자에도 일부 기업은 반도체 칩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대표적 실패 사례는 허베이성 우한의 훙신반도체제조(HSMC)와 산둥성 지난시에 있는 취안신집적회로(QXIC)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지배하는 14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제품 생산을 목표로 했다. 이를 달성하고 몇 년 후 최첨단 7nm 제품도 개발한다는 포부였다. 이를 위해 HSMC와 QXIC는 대만 TSMC 출신 임원과 엔지니어들을 거액의 연봉으로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두 기업은 지금까지 상업용 칩을 생산하지 못하고 투자금을 날렸다. HSMC는 지난해 6월 문을 닫았고 QXIC는 영업을 중단했다. 반도체 굴기 선봉장으로 주목받던 칭화유니(淸華紫光)그룹도 공격적 인수합병과 과도한 투자로 부채만 쌓다가 2020년 10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지난해 말 채권단은 파산구조조정안을 통과시켜 칭화유니그룹은 사실상 국유화의 길에 들어섰다. 중국 반도체 프로젝트 실패는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이고 관련 기술 축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QXIC는 반도체 칩 생산기술은 확보했지만 이를 통합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전 직원은 밝혔다. 기술 개발에 계속 실패하자 지난시 정부는 QXIC를 인수하고 직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HSMC 프로젝트는 첨단 반도체 생산자금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WSJ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17%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프로세서 등에 들어가는 최첨단 칩 개발 능력은 미국 제재로 더 떨어졌다. ‘2025년 자급률 70%’ 목표 달성은 요원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등 중국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새 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미일 정부가 반도체 제조장치, 양자암호,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다국 간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전시대 옛 소련 등 공산권에 대한 서방 국가의 기술 유출을 막은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코콤)의 현대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통화정책회의를 하면 3주 뒤에 그 의사록을 공개한다. 개별 위원들의 구체적 발언이 모두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회의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많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12월 14, 15일 회의를 정리한 14쪽 분량의 의사록에는 종전에 보기 힘들었던 ‘Balance Sheet’(대차대조표)란 용어가 28차례나 등장한다.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연준의 통화 긴축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중 통화량을 조절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연준의 긴축은 총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테이퍼링(tapering). 연준은 2년 전 팬데믹이 터지자 경기 부양을 위해 각종 채권을 사들이며 시중에 돈을 풀어왔다. ‘점점 가늘어진다’는 의미의 테이퍼링은 이 자산 매입 규모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을 뜻한다. 다만 규모만 감소할 뿐 자산은 계속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통화량은 여전히 증가하는 단계다. 그럼에도 “이제 긴축에 발동을 걸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돈줄 죄기’가 시작된다. 테이퍼링을 통해 자산 매입을 끝내고 나면 연준은 기준금리 격인 연방기금금리(FFR)를 높인다. 그러면 시중은행의 이자율이 상승해 예금이 늘고 통화량은 감소한다. 마지막 단계는 지난 회의 때 거론된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QT)다. 연준은 지금까지 양적완화(QE)라고 불리는 채권 매입을 통해 8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쌓았다. 그와 반대인 QT는 채권에 만기가 오면 다른 채권에 재투자하지 않고 현금화해 보유 자산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시중 유동성을 직접 흡수하는 것으로 가장 강력한 긴축 수단이다. 이런 과정은 급격하게 진행되면 자칫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천천히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최근에도 그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를 헬기로 뿌리다시피 한 연준은 2013년 “이제 경기가 살아났다”는 판단에 조심스레 출구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QT로 이르는 ‘긴축 3종 세트’가 차례로 진행되는 데는 장장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까지 뜸을 들인 것은 연준이 돈줄만 조였다 하면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서 전 세계에서 자본 이탈과 증시 폭락 같은 심각한 후유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연준의 이번 행보가 심상치 않은 것은 과거 수년간 이어졌던 긴축 과정을 불과 수개월로 압축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테이퍼링에 착수한 연준은 올 3월 자산 매입을 마치면 바로 금리를 올리겠다고 사실상 예고한 상태다. 또 이번 의사록을 보면 연준 위원들은 금리 인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QT를 시작하고, 그것도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를 진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마치 군사작전을 연상케 하는 이런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은 그만큼 미국 경제 상황이 어딘가 매우 급박하다는 신호다. 오랜 ‘현금 살포’로 고삐가 풀려버린 물가, 기업들의 극심한 인력난은 그 대표적 사례다. ‘발등의 불’은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이다. 공급망 위기를 계기로 ‘홀로서기’에 돌입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해외에서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온 나라가 요동칠 정도로 대외 리스크가 크다. 그간 세계 경제는 미국의 부양 덕에 팬데믹이라는 큰 충격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순풍에 올라타 안심하던 나라들에 연준이 전례 없는 급제동 경고를 보내고 있다. 안전띠를 단단히 매야 한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중국이 세계 수위를 다투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최근 수십 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를 사람 심장에 비유하며 ‘반도체 굴기(崛起)’를 선언했지만,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기업 발표와 중국 관영매체 보도, 지방정부 문서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최근 3년간 적어도 6개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들 프로젝트에는 최소 23억 달러가 투입됐는데 대부분 정부 지원금이었다. 이 같은 투자에도 일부 기업은 반도체 칩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대표적 실패 사례는 허베이성 우한의 홍신반도체제조(HSMC)와 산둥성 지난시에 있는 취안신집적회로(QXIC)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지배하는 14nm(나노미터) 제품 생산을 목표로 했다. 이를 달성하고 몇 년 후 최첨단 7nm 제품도 개발한다는 포부였다. 이를 위해 HSMC와 QXIC는 대만 TSMC 출신 임원과 엔지니어들을 거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두 기업은 지금까지 상업용 칩을 생산하지 못하고 투자금을 날렸다. HSMC는 지난해 6월 문을 닫았고 QXIC는 영업을 중단했다. 반도체 굴기 선봉장으로 주목받던 칭화유니그룹(淸華紫光)도 공격적 인수합병과 과도한 투자로 부채만 쌓다가 2020년 10월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채권단은 파산구조조정안을 통과시켜 칭화유니그룹은 사실상 국유화의 길에 들어섰다. 중국 반도체 프로젝트 실패는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 관련 기술 축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QXIC는 반도체 칩 생산기술은 확보했지만 이를 통합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전 직원은 밝혔다. 기술 개발에 계속 실패하자 지난시 정부는 QXIC를 인수하고 직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HSMC 프로젝트는 첨단 반도체 생산자금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17%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프로세서 등에 들어가는 최첨단 칩 개발 능력은 미국 제재로 더 떨어졌다. ‘2025년 자급률 70%’ 목표 달성은 요원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등 중국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새 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미일 정부가 반도체 제조장치, 양자암호,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다국 간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전시대 옛 소련 등 공산권에 대한 서방 국가의 기술 유출을 막은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코콤)의 현대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미국과 일본이 6일(현지 시간) 열린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를 거론하면서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을 위한 방위 장비를 공동 연구, 개발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고 주장한 지 이틀 만에 미일이 공동 행동에 나선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0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요청에 따라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할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다만 이날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니라 성능이 과장된 일반적인 탄도미사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의 발사 이후 세부 제원 공개에 대해 침묵하던 군이 브리핑까지 자처하며 북한 주장을 평가절하한 건 이례적이다. 이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 美日, 극초음속 미사일 공동 대응 나서 미일 양국 장관들은 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핵무기와 탄도·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형 무기 체계의 대규모 개발에 우려를 표시한 뒤 “극초음속 기술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협력에 초점을 맞춘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한 새로운 장비의) 개발과 생산, 유지 및 시험 평가 틀에 관한 문서 교환(협정)을 환영한다”고 했다. 회담에는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이 참석했다. 블링컨 장관은 회담에 앞서 중국의 대만·남중국해 긴장 고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주권 위협과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언급하며 “이런 진화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동맹은 보유한 도구를 강화할 뿐 아니라 새 도구들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북-중-러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일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또 미일 양국은 성명에서 “일본은 미사일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능력을 포함해 국가 방위에 필요한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한다는 결의를 표명했고, 미일은 이 과정을 통해 긴밀히 연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검토를 진행하려는 의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10일 비공개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다만 회의에서 공동성명 등 구체적인 결론이 도출될지는 불확실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9, 10월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회의를 소집했지만 중국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공동성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韓은 “북한 미사일, 극초음속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미사일의 사거리, 측면기동 등 성능을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 극초음속 비행체 기술은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군은 북한 미사일이 최고 속도 마하6(음속의 6배)이었다고 봤다. 하지만 저고도 종말 단계를 포함해 전체 비행거리의 상당 구간을 마하5 이상 속도를 유지하면서 상하좌우로 변칙기동(활공)해야 하는 극초음속활공체(HGV)의 성능과 기술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군은 북한 미사일이 원추형 탄두부에 보조날개가 붙어 있는 형태라 HGV의 특징인 글라이더 모양의 탄두부와도 형상이 다르다고도 했다. 군은 이 미사일이 신형 기동식 재진입체(MARV)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의도에 대해선 “자신감을 위한 내부적인 메시지”라고 군은 해석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미국과 일본이 6일(현지 시간) 열린 외교·국방 장관(2+2) 회담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을 위한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한 지 이틀 만에 북한뿐 아니라 극초음속 미사일 실전 배치 능력을 갖춘 중국 러시아의 위협에 미일이 함께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미일 간 밀착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0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요청에 따라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할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반면 한국은 극초음속 미사일이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에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어 북핵 문제 대응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美日, 북-중-러 극초음속 미사일 공동 대응 미일 양국 장관들은 회담 후 공동 성명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핵무기와 탄도·순항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형 무기 체계의 대규모 개발에 우려를 표시한 뒤 “극초음속 기술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협력에 초점을 맞춘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회담에는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이 참석했다. 블링컨 장관은 회담에 앞서 “극초음속 미사일의 위협에 대한 대응부터 우주 기반 능력 향상까지 (미일의)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방위 관련 이슈들에 대해 더 쉽게 협력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대만·남중국해 긴장 고조,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주권 위협을 거론한 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언급하며 “이런 진화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동맹은 보유한 도구를 강화할 뿐 아니라 새 도구들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북-중-러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일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 아방가르드는 최고 속도가 마하 20에 달하고 중국의 둥펑(東風)-17은 마하 10이 넘는다. 미일은 또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전략 수정 과정을 통해 미사일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능력을 포함해 국가의 방위에 필요한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한다는 결의를 표명했다”며 “미일은 이 과정을 통해 긴밀히 연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 검토를 진행하려는 의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강한 우려” 미일 양국은 또 성명에서 “북한의 진전되는 핵과 미사일 개발 활동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북한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회담 전 “북한의 불법적인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지속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주 가장 최근의 발사를 통해 그것이 다시 한 번 봤다”며 북한의 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겨냥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10일 비공개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번 회의는 미국과 프랑스, 영국, 알바니아, 아일랜드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다만 이날 회의에서 공동성명 등 구체적인 결론이 도출될지는 불확실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9월과 10월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회의를 소집했지만 중국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공동 성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lovesong@donga.com}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공격적인 긴축 정책에 나설 뜻을 밝혔다. 2020년 3월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0)’로 유지했던 연준이 약 2년 만에 이를 접고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그 시점과 속도 또한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특히 시장에 풀린 돈을 직접 회수하는 방안인 ‘양적 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까지 검토하면서 세계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5일(현지 시간) 공개한 지난해 12월 14,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인플레와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또는 더 빠르게 금리를 올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부분의 회의 참석자들이 첫 번째 금리 인상 후 어느 시점에서 대차대조표(보유 자산) 축소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3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긴축 우려로 뉴욕 증시는 급락하고 미 국채 금리도 상승했다. 5일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각각 전일 대비 1.07%, 1.94% 하락했다. 6일 아시아 주요국 증시와 통화 또한 일제히 하락했다. 이날 한국 코스피는 전일보다 1.13%(33.44포인트) 하락한 2,920.53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4.1원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1201.0원에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 1200원을 넘어선 것은 2020년 7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美연준, 더 강해진 ‘긴축 신호’… 韓銀도 내주 금리 0.25%P 올릴듯[빨라지는 긴축]美 인플레 경고등 켜지자 긴장… 보유자산 축소 ‘양적 긴축’도 고려신흥국 시장 자본이탈 가속화, 글로벌 주식-원자재 연쇄 충격 예고한국도 물가상승→소비위축 우려… 올 성장률 목표 3.1% 달성 빨간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조기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QT)’을 동시에 추진하는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예고한 것은 인플레이션 위협이 좌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커졌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인플레와 구인난 등을 부추기자 이대로 놔두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는 의미다. 14일로 예정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등을 포함해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 또한 연준을 뒤따를 가능성이 커졌다. ○ 금리 인상과 동시에 보유 자산 축소지난해 1월 1.4%였던 미 소비자물가는 같은 해 11월 6.8%까지 상승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 상반기(1∼6월) 중 금리를 올리고 올해 전체로도 세 차례의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5일(현지 시간) 공개된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연준은 금리 인상의 시점을 앞당길 뜻을 분명히 했다. 이미 월가 일각에서는 연준이 3월부터 인상을 단행해 올해 전체로 네 차례 이상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연준이 올해 금리를 네 번 올려야 한다”고 했다. 긴축에 따른 충격이 있더라도 고용이 빠르게 회복되는 등 경제의 기초체력은 탄탄하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더한다. 지난해 1월 6.3%에 달했던 미 실업률은 같은 해 11월 4.2%로 떨어졌다. 특히 시장은 연준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정기적으로 채권을 매입하던 것의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아니라 아예 보유 자산을 내다 파는 ‘양적 긴축’의 실행까지 적극 고려하고 있다는 데 놀란 분위기다. 현재 연준이 보유한 자산은 코로나19 이전의 배에 달하는 8조7600억 달러(약 1경512조 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줄곧 부양책을 폈던 연준은 2015년 말부터 금리를 올렸다. 다만 시장 충격을 줄이려고 보유 자산은 2년간 처분하지 않고 2017년 하반기에야 조금씩 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시와 달리 보유 자산 처분과 금리 인상을 동시에 고려할 만큼 인플레 위협이 심상치 않음을 인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자율을 높여 유동성을 간접 흡수하는 금리 인상과 달리 양적 긴축은 중앙은행이 풀린 돈을 직접 회수하는 것이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연준이 긴축 속도와 강도를 높이면 미 달러 가치가 올라 신흥국에서 자본 이탈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 각국 또한 금리를 올리면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 시장 등에도 큰 충격이 예상된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이 발행하는 금융시보 또한 6일 미 금리 인상으로 중국의 수출이 둔화하면서 위안화 절하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도 14일 금리 올릴 듯 미국의 조기 긴축은 한국 경제 전반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4분기 3개월 연속 3%대로 올랐다. 미국의 긴축 행보로 달러 강세가 계속되면 국내 수입물가가 오르고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가 더 치솟으면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모든 나라가 물가와 성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긴축 시계가 빨라지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3.1%다. 한은의 금리 인상 시계도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시장에서는 당장 14일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현 1.0%에서 1.25%로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연내 두세 차례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1845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의 상환 부담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전날 뉴욕 시장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연 1.7% 선으로 오르면서 금리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 국내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이미 최고 연 5%를 넘어섰다. 국내 자산시장도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동성 잔치로 과열됐던 주식시장뿐 아니라 부동산시장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단기간 집값이 급등한 수도권과 지방 부동산시장에서 ‘거래절벽’이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 주문량을 기존 1000만 명분에서 2000만 명분으로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미국의 일일 신규 확진자가 사상 최초로 1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나온 조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화이자 치료제가 “게임 체인저”라며 “이 알약 주문량을 두 배로 늘려 입원과 사망을 극적으로 감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1주일간 미국의 신규 감염자 중 95.4%가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영국 보건당국 또한 이날 일일 신규 확진자가 21만8724명을 기록해 처음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사망자는 48명에 그쳐 지난해 1, 2차 대유행일 때 일일 1000명 내외의 사망자가 나왔던 것과 대조됐다. 이에 따라 오미크론 변이의 중증 정도가 이전 변이보다 강하지 않고 신규 확진자 증가가 사망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일종의 ‘탈동조화’(디커플링)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심각한 폐렴을 유발하는 다른 변이와 달리 오미크론 변이는 호흡기 상부를 주로 감염시켜 증세가 가볍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 수 사이의 디커플링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에 참여한 앤드루 폴러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BBC에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이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다”고 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90년 만에 내수 시장 1위 자리를 내줬다. 이 자리를 일본 최대 자동차 회사 도요타가 차지했다. 미국 시장에서 외국계 자동차 기업이 판매량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도요타의 약진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공급망 위기에도 적극 대처해 온 덕이란 평가가 나온다.○ 공급망 위기에 선제적 대응 4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모두 233만2000대를 팔았다. 전년보다 10.4% 증가했다. 승용차와 트럭 등 주요 차종의 판매량이 고르게 늘었다. 반면 GM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9% 급감한 221만8000대에 그쳤다. GM은 1931년 포드 자동차를 제치고 미국 시장 1위에 올라선 이후 계속 그 자리를 지켜오다 90년 만에 도요타에 1위를 내줬다. 1965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도요타는 1988년 켄터키주에 첫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지난해 두 회사의 실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반도체 공급난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따라 희비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 GM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 확보에 실패해 미국 내 공장이 여러 차례 문을 닫았다. 그 결과 베스트셀러였던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의 판매가 한 해 전보다 10.8% 급감하는 등 고전했다. 반면 도요타는 차량용 반도체 칩의 공급난에 대비해 부품 수개월 치를 미리 확보해 놓으면서 피해를 줄였다. 도요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을 계기로 트레이드마크였던 ‘저스트 인 타임(JIT·Just In Time)’ 생산 방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부품과 재고를 상시 확보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JIT는 차량을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필요한 재고를 최대한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생산 방식이다. 이를 70여 년 동안 제품 생산의 원칙으로 지켜왔지만 전대미문의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사태를 맞아 변화에 나선 것이다. WSJ는 도요타가 비상 상황에 대비해 반도체 칩을 쌓아 둔다는 결정으로 큰 이득을 봤다고 분석했다. 이것이 공급망 위기 때도 다른 자동차업체보다 상대적으로 잘 대처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한발 먼저 내다본 것도 주효했다. 다른 기업들은 2020년 봄 코로나19 확산으로 판매량이 감소하자 반도체 등 부품 주문을 줄였다. 하지만 도요타는 조만간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부품 공급을 최대한 유지했다. 그 결과 지난해 상반기(1∼6월) 경쟁사들이 공급망 위기로 생산량을 줄여야 했을 때도 도요타는 공장 가동률을 90% 이상 유지할 수 있었다.○ GM “반도체 위기 잦아들면 판매 되살아날 것” 물론 도요타 또한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1위 자리를 언제든 다시 내줄 수 있다. 도요타 미국 법인의 잭 홀리스 수석 부사장은 4일 기자회견에서 “판매량에서 GM을 제치긴 했지만 이는 우리의 목표도 아니고 지속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GM 측 또한 “올해 반도체 공급난이 잦아들면 판매량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며 1위 탈환의 의지를 보였다. 5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78만7702대를 팔아 전년보다 판매량이 23.3% 급증했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판매량 또한 148만9118대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 역시 일본 혼다(146만630대)를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5위에 올랐다. 1986년 미국에 진출한 현대차그룹이 혼다를 제친 것은 35년 만에 처음이라고 덧붙였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90년 만에 내수 시장 1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일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차지했다. 도요타의 약진은 시장의 추세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공급망 위기에도 적극 대처해 온 덕분으로 분석되고 있다. 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모두 233만2000대를 팔아 판매량을 전년 대비 10.4% 늘렸다고 이날 밝혔다. 반면 GM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9% 급감한 221만8000대에 그쳤다. GM은 1931년 포드 자동차를 제치고 미국 시장 1위에 올라선 뒤 이후 그 자리를 지켜왔다. 미국 시장에서 외국계 자동차 기업이 판매량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승용차와 트럭 등 주요 차종의 판매량을 고르게 늘렸다. 작년 두 회사의 실적은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한 반도체 공급난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가 운명을 가른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GM은 차량 핵심 부품인 반도체 확보에 실패해 미국 내 공장이 여러 차례 문을 닫았고 그에 따라 생산량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베스트셀러였던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의 판매가 전년보다 10.8% 급감하는 등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 했다. 반면 도요타는 차량용 반도체 칩의 공급난에 대비해 부품 수개월 치를 미리 확보해놓는 등 만반의 대비를 갖춰 상대적으로 피해를 줄였다. 도요타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자사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JIT) 생산 방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부품과 재고를 상시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JIT는 부품을 적기에 조달해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70여 년 동안 제품 생산의 원칙으로 지켜왔던 도요타는 대지진 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호된 시련을 겪었다. WSJ는 “도요타는 (만일에 대비해) 반도체 칩을 쌓아둔다는 결정으로 큰 이득을 봤다”면서 도요타가 작년 공급망 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헤쳐나갔다고 보도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한 발 먼저 내다본 것도 주효했다. 다른 자동차 기업들은 2020년 봄 팬데믹의 발발로 판매량이 감소하자 저마다 반도체 등 부품 주문을 줄였다. 하지만 도요타는 조만간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부품 공급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작년 상반기 다른 회사들이 공급망 위기로 큰 피해를 볼 때 도요타는 공장 가동률을 90% 이상 유지하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1965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도요타는 1988년 켄터키주에 첫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도요타는 GM과 포드, 크라이슬라가 휘청거릴 때 좋은 품질을 앞세워 평판을 쌓았다”며 “도요타의 성장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을 촉발시켰고 ‘이러다가 일본 회사가 미국 회사를 끝장낼 수 있다’는 대중의 공포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물론 도요타도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향후 1위 자리를 언제든지 다시 내줄 수 있다. 도요타 미국 법인의 잭 홀리스 수석 부사장은 이날 언론 회견에서 “우리가 판매량에서 GM을 제쳤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우리의 목표도 아니고 이를 지속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GM 측은 “작년에는 대형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집중했다”면서 “올해 반도체 공급난이 잦아들면 판매량은 다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공급망 위기에 시달려 온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들어 반도체 기업과의 제휴나 자체 부품 생산 등을 통해 위기 탈출을 도모하고 있다. 도요타 외에 현대자동차 등 다른 외국계 자동차회사들도 지난해 좋은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73만8081대를 팔아서 전년보다 판매량이 19% 급증했다. 일본 혼다도 판매량이 147만 대로 전년보다 8.9% 증가했다. 이밖에 폭스바겐, BMW 등도 작년에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으로 리서치회사 콕스오토모티브가 추정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빌, 고맙소. 세상은 더 나은 곳이군요.” 1997년 8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는 괴로웠다. 제품의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주가 역시 채 1달러가 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잡스는 자존심을 접고 경쟁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게이츠가 1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고 애플은 기사회생했다. 이때만 해도 애플이 25년 만에 ‘주식회사 미국’의 간판 기업이자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약 3600조 원)를 넘는 기업이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시가총액, GDP 세계 5위 영국보다 많아올해 미국 증시의 첫 거래일인 3일(현지 시간) 애플의 시가총액이 장중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날 나스닥 시장에서 애플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5% 오른 182.01달러에 마쳤다. 장중 한때 182.88달러까지 올라 시가총액이 3조 달러를 넘어섰으나 종가로는 다시 3조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2020년 세계은행(WP) 기준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2조7641억 달러보다 많은 수치다. 같은 해 세계 10위를 기록한 한국 GDP(1조6378억 달러)보다 2배 가까이로 높고 한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의 시가총액보다 약 7.7배 높다. 과거 ‘주식회사 미국’을 대표했던 제너럴일렉트릭(GE)의 30배에 이른다. 1976년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공동 창업한 애플은 1980년 상장했다. 이후 여러 굴곡을 겪으면서 20여 년간 주가 또한 이렇다 할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반전의 계기는 2000년대 중반 출시한 스마트폰 ‘아이폰’이었다. 아이폰 시리즈가 전 세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면서 주가도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이에 설립 42년 만인 2018년 8월 1조 달러를 넘어섰고 2020년 8월 미 상장 기업 최초로 2조 달러 벽을 깼다. 약 16개월 만인 이날 3조 달러 고지까지 넘어섰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MS(2조5100억 달러),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1조9300억 달러), 아마존(1조7300억 달러), 테슬라(1조2000억 달러) 등 경쟁 빅테크 기업을 제치고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 팬데믹 수혜 입고 질주애플의 질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수혜를 본 덕이 크다. 비대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마트폰 의존도가 더 커졌고 주가 역시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아이폰에 안주하지 않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클라우드’, 음악 서비스 애플뮤직, 스마트워치 ‘애플워치’, 무선 이어폰 ‘에어팟’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시장을 계속 개척하는 가운데 아이폰 등 기존 베스트셀러 제품 또한 지속적으로 출시할 것이란 확신을 투자자에게 줬다고 분석했다. 수익성도 독보적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약 2억3300만 대로 삼성(약 2억7000만 대)보다 적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말 기준 세계 스마트폰 판매 영업이익 중 75%를 차지해 삼성(13%)을 압도했다. 다만 빅테크 기업이 전염병 대유행을 계기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상당하다. 반독점 조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 연일 빅테크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대한 대응, 반도체 공급난 등은 주요 과제로 꼽힌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빌, 고맙소. 세상은 더 나은 곳이군요.” 1997년 8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파산 직전이었다. 애플의 제품은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비싸기만 할 뿐 소비자들의 마음을 전혀 사로잡지 못 했다. 회사의 수익은 말라가기만 했고 주가는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잡스는 자존심을 접고 라이벌이자 친구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에 손을 벌렸다. 잡스의 요청에 게이츠가 1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고 애플은 기사회생했다. 당시 잡스가 했다는 감사의 인사말이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때 애플의 굴욕을 본 사람들은 누구도 이 회사가 20여 년 만에 MS는 물론, 세상 모든 기업의 주가를 앞지르고 새 역사를 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미국 애플의 기업가치(시가총액)가 세계 최초로 3조 달러를 돌파했다. 3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애플의 주가는 올해 거래 첫날인 이날 2.5% 오른 182.01달러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82.88달러까지 오르면서 한 때 시가총액이 3조 달러 선을 살짝 넘었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 “짧았지만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1976년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공동 창업한 애플은 4년 뒤인 1980년 증시에 입성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회사 포드 이후 가장 큰 기업공개(IPO)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20여 년 간 주가는 이렇다할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반전의 모멘텀은 2000년대 중반에 개발, 출시한 첫 스마트폰이었다. 이후 아이폰 시리즈의 판매량에 따라 급등세와 숨고르기를 거듭한 애플의 시가총액은 창사 42년 만인 2018년 8월 1조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0년 3월 잠시 1조 달러 밑으로 내려온 애플의 가치는 같은 해 8월 미국 상장기업으로는 최초로 2조 달러 벽을 넘었고 16개월 여 만인 이날 3조 달러까지 돌파했다. 애플의 기업가치는 MS(2조5100억 달러),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1조9300억 달러), 아마존(1조7300억 달러) 등 경쟁 빅테크 기업들을 제치고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한 때 미국의 대표기업이었던 제너럴일렉트릭(GE) 시가총액의 30배에 이르고, 영국이나 인도의 한해 경제규모(국내총생산·GDP)보다도 많은 수치다. 이 같은 애플의 질주는 역설적으로 팬데믹의 수혜를 입은 부분이 크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사람들의 외출이 어려워지고 비대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커졌다. 이런 영향으로 애플을 비롯한 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2020년 3월 이후 일제히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증시 랠리를 주도했다. 애플의 시가총액도 이 때부터 2년도 안되는 기간에 3배로 불어났다. 시장에서는 애플의 질주가 아이폰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영역을 확장해 온 덕분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애플이 자율주행차와 가상현실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가운데 베스트셀러 제품들을 계속 출시할 것이라는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줬다”고 분석했다. CNBC방송도 “아이폰이 여전히 가장 큰 매출의 원천이지만 서비스 분야의 사업도 크게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애플은 팬데믹 기간 중 아이폰을 비롯해 맥북, 애플뮤직, 애플TV 등의 분야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애플 등 테크기업들이 팬데믹을 이용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실적을 쌓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여전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의회는 이런 지적에 대응해 반독점 조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 ‘빅테크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 공급난과 이로 인한 매출 손실 역시 애플이 새해에 극복해야 할 과제들로 꼽힌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 뉴욕 기반의 스타트업 ‘블랭크스트리트’는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커피 체인이다. 하지만 노점이나 이동식 카트의 소규모 점포 형태로 임차 비용을 줄여 스타벅스 같은 경쟁사와 차별화했다. 특히 스타벅스에 비해 20∼30% 싸면서 비교적 높은 품질의 커피를 파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람들이 비대면을 선호하는 경향은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이 많은 이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20대 청년 두 명이 2020년 여름 창업한 이 회사는 최근 점포가 20곳 정도로 불어나면서 벤처 투자자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 2500만 달러(약 298억 원)를 유치한 지 석 달 만인 지난해 12월 3500만 달러 투자를 또 약속받았다. 최근 1년 사이 세 번째다. 창업자 비나이 멘다 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우리는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사업자금 확보가 과거보다 훨씬 쉬웠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선 유동성 증가로 그 어느 때보다 창업 열기가 뜨겁다. 팬데믹 시대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팬데믹 창업 러시’가 이어지면서 신규 사업체가 급증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원격근무를 적극 적용해 창업비용을 크게 낮춘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2일(현지 시간) 본보가 미국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11월 미국 창업 건수는 497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약 320만 건)보다 55% 늘어났다. 창업 건수는 2020년 중반까지만 해도 매월 30만 건이 채 안 됐지만 지난해에는 매월 40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달라진 라이프 스타일 겨냥한 창업코로나 실직자들 창업전선 이동지난해 4월 미국의 우간다 출신 자매가 서비스를 개시한 ‘퀵하이어’는 구직자와 회사 간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 회사다. 일반적인 취업 중개 회사와 다른 점은 음식점, 소매업 등 서비스업 일자리 중개에 특화됐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서비스업 종사자가 1억 명이 넘는데 정작 지금까지 취업 중개는 화이트칼라 직종 수요만 충족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창업자인 앤절라 무훼지홀, 데버라 글래드니 씨는 미 CNBC방송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기업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을 때가 사업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퀵하이어는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서비스업체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새로 직원을 구하려는 기업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기업은 지난해 11월 투자 자금 141만 달러(약 16억8000만 원)를 새로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흑인 여성들이 세운 기업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미국 중서부 캔자스주에서만 사업하는 퀵하이어는 올해 중서부 전역으로 영역을 확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팬데믹 시대 라이프스타일 겨냥한 창업 붐 이처럼 미국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팬데믹 창업’에 나서고 있다. 새 변이 오미크론 등장으로 고사 위기에 빠진 여행업계도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행 스타트업들은 예약 시스템 유연화와 아파트 숙박 활용, 비접촉 호텔 체크인을 비롯한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면서 “오미크론이 이들에게 오히려 사업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타트업을 향한 투자 자금도 밀려들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 15일까지 미국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는 사상 최대인 930억 달러(약 111조 원)의 투자 자금이 몰렸다. 2016년 300억 달러보다 약 세 배 많고, 지난해 520억 달러의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규모다. 자금이 몰리면서 스타트업 기업가치 중앙값은 2020년 16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600만 달러로 불어났다. 미 전문가들은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가 창업 증가로 연결된 이유로 유동성 증가에 따른 투자 급증 이외에도 여러 요인을 꼽고 있다. 우선 2020년 팬데믹 초기 쏟아진 수많은 실직자 중 상당수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창업 전선으로 이동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직장에서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사람이 매월 400만 명이 넘는 등 구인난이 극심하다. 따라서 이들 인력 상당수가 창업을 선택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최근엔 투자와 저축으로 ‘실탄’을 든든하게 갖춘 채 사업가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 언론들은 미국에서 ‘기업가 정신’이 부활한 배경으로 심리적 요인에도 주목한다. 코로나19로 가족과 친지를 잃고, 직장을 잃은 비극적 경험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도전 정신을 키우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미국 중소기업 자문기구 ‘스코어’에서 멘토로 활동하는 프랭크 라모나카는 NBC방송에 “팬데믹은 사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예기치 못한 ‘기회의 창’을 제공했다”며 “이들은 자기 직업의 미래를 재평가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 적용으로 창업 비용 줄어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창업 증가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팬데믹으로 원격 근무를 도입한 기업은 굳이 직원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더라도 업무가 잘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했다. 전에 없던 재택근무 옵션이 생기면서 인재를 구하기 쉬워지고 사무실 임차료 등 창업비용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시장 유동성이 늘어나 자금 확보가 용이해진 점, 팬데믹을 계기로 실업급여와 고용 지원 등 두터운 ‘창업 안전망’이 생긴 것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산업전문가들은 이 같은 스타트업 붐을 반기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규 사업체 수가 낮은 수준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다만 스타트업 창업 러시 추세가 오래갈지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기업가정신네트워크(GEN) 수석 고문 데인 스탱글러는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신규 사업체가 많아지면서 일단 올해에는 도산하는 기업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수출과 몇몇 대기업에 의존하지 말고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하라.”통화·금융정책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제학 교수(70)가 최근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세계 경제 위기에 맞서 ‘다양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자신의 은사(恩師)인 198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 전 예일대 교수의 격언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를 언급하며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에 지나치게 기대지 말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한 교육 분야에 대한 집중적 투자를 계속하고 이민 문호 개방으로 인구 감소 위험에 대처하라고 말했다.》아이컨그린 교수는 새해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이어 더 치명적인 새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 중국 경제의 하방 위험을 꼽았다.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이 2023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면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봄부터 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위험은 무엇인가. “첫째,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이다. 더 치명적이고 전파력 강한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지 봐야 한다. 둘째, 중국 경제의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감속 가능성이다. 중국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 건설 부문이 침체되고 소비자 심리도 위축될 수 있다. 나는 중국이 올해에도 4.5∼5%가량 경제를 성장시킬 수단을 갖고 있고, 이를 활용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하방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 경제에 조언을 한다면…. “인구 변동이 ‘넘버원’ 과제다. 이민에 더 개방적으로 변하면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논문을 지도해줬던 토빈 교수는 자신의 금융 이론을 설명하면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했다. ‘다양화’는 지금처럼 불확실한 세상에 (대응하는) 신중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 또 일부 몇몇 대기업에 의존하지 말고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육성에 나서라. 또 한국이 예전부터 잘해왔던 교육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 ―미국 소비자물가가 계속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다. 연준은 언제쯤 금리를 올릴까. “연준이 너무 늦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연준이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힌 만큼 매입은 올해 3월에 종료될 것이다. 봄(4월이나 5월)에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만 이런 조치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꺾일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가상승률은 올해도 연준이 낮추려는 목표치(2%)보다 높은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고 2023년은 돼야 목표치에 근접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공급망 위기의 일부는 반도체 부족과 연관된다. 이 문제 역시 2023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기존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는 데 16개월, 새로운 공장을 짓는 데 36개월이 걸린다. 반면 컨테이너 하역, 운송 기자재 부족, 물류센터 마비, 트럭 운전사 부족 등 물류대란의 양상은 올해 초반 진정될 것으로 본다.” ―미국은 지금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가. “‘대퇴직’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현상은 분명히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해결되면 많은 퇴직자가 노동시장에 돌아올 것으로 본다. 첫째, 이들이 정부 보조금과 지출 감소 등으로 팬데믹 기간에 쌓아뒀던 저축을 다 써버렸을 때다. 둘째, 팬데믹이 어느 정도 통제돼 노동자들이 일터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다.” ―팬데믹에서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백신 개발 기술과 병상 마련 등 공공 보건 인프라에 미리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많은 전문가가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경고해 왔지만 각국 정부는 거의 대비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대응자(first responder)’로서 정부의 역할이다. 각국 정부는 팬데믹에 맞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시장에 공급하는 등 전례 없는 대응에 나섰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민간 부문, 즉 시장이 자원 배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 팬데믹은 어떤 환경에서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알려줬다. 세 번째 교훈은 국제 협력의 중요성이다. 이 부분은 아직도 각국 정부가 배워야 할 게 많다. 개발도상국을 위한 백신 공급에 아직도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탄소배출을 줄일 방법이 있나. “각국 정부는 ‘탄소 포집’(carbon capture·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 등 신기술에 많이 투자해야 한다. 탄소세(稅)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일은 특정 국가가 혼자 나설 수 없기에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 ―빈부격차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교육이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자기 지위를 공고화하기 위해 재력, 경쟁우위, 정치적 수단 등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팬데믹의 충격을 크게 받은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 개선은 큰 차질을 빚었다. 원격 수업 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곳은 인적 자본도 상실했다. 또 많은 나라가 올해 부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선진국은 대외 원조와 시장 개방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더 많이 도와야 한다.” ―가상화폐는 어떻게 될까.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내재적 가치가 없다고 본다. 비트코인이 10년 후에도 살아남을지 회의적이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만들어내기 쉽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후계자는 또 나타날 것이다. (미국 달러화에 가격을 연동한) ‘테더’ 같은 안정적 코인은 더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이런 코인들도 당국 규제에 적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아이컨그린 교수는…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제학 교수(70)는 국제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2011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사상가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9년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자문위원,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UC버클리 한국학연구소의 전임 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 경제―기적의 과거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 ‘달러 제국의 몰락’, ‘황금 족쇄(금본위제와 대공황)’ 등을 집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급속한 확산으로 미국에서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가 30만 명을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에서만 일일 신규 확진자가 50만 명에 육박하는 등 유럽에서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30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의 일주일 평균 하루 확진자 수는 29일 기준 30만1472명으로 집계됐다. 전날에는 26만7305명으로 올 1월 11일의 기존 최고 기록(25만1232명)을 넘어섰는데 하루 만에 3만여 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최근 2주 사이 미국의 하루 평균 확진자 수는 2.5배 이상 급증했다. 워싱턴과 뉴욕, 뉴저지 등 동부지역 대도시들이 확산세를 주도하고 있다. 유럽 역시 신규 확진자 수가 나날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9일 영국 정부는 18만3037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날 확진된 12만9471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전날 역시 역대 최고치였다. 같은 날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신규 확진자 수는 20만8099명으로 17만9807명이었던 전날 사상 최다 기록을 하루 만에 경신했다. 이탈리아도 9만8030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사상 최고치였던 전날 확진자 수(7만8313명)를 웃돌았다. 세계보건기구(WHO)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전염력이 매우 높은 오미크론 변이와 델타 변이가 한꺼번에 확산되면서 확진자 수가 ‘쓰나미’처럼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 급증하는 확진자 규모에 비하면 입원 환자나 사망자는 비교적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입원 환자 수는 29일 현재 약 7만5000명으로 2주 전에 비해 11% 증가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하루 평균 신규 감염자가 30만 명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만 입원 환자와 사망자의 숫자는 그에 비해 많이 증가하지 않고 있어서 미국 등 주요국들은 작년 초반과 같은 대규모 봉쇄 조치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30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의 일주일 평균 하루 확진자 수는 29일 기준 30만1472명으로 집계됐다. 전날에는 26만7305명으로 올 1월 11일의 기존 최고기록(25만1232명)을 뛰어넘었는데 하루 만에 3만 여 명이 더 증가한 것이다. 지난 2주 동안 미국의 하루 평균 확진자 수는 2.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특히 워싱턴과 뉴욕, 뉴저지 등 동부 지역 대도시가 미국의 확산세를 주도하고 있다. 다만 확진자가 몇 배씩 급증하는 것에 비해 입원 환자나 사망자는 비교적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입원 환자 수는 29일 현재 약 7만5000명으로 2주일 전에 비해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루 평균 사망자 숫자는 1207명으로 같은 기간 오히려 7%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올 1월 입원환자가 10만 명을 훌쩍 넘고 하루 사망자가 3000명을 웃돌았던 것에 비하면 이번 확산세는 비교적 피해가 덜한 것 아니냐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로셸 월렌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미크론이 지난 몇 주간 전국적으로 확산됐지만 입원과 사망은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라고 말했다. 아메시 아달자 존스홉킨스 보건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은 AP통신에 “지금은 백신과 치료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입원 환자가 이전 정점까지 증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시간이 좀 지나면 확진자 수가 이전만큼 의미가 없다는 것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입원 환자와 사망자 수는 보통 2주 이상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기 때문에 이들 지표를 낙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29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모든 지표가 오미크론이 델타보다 중증도가 낮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여기서 자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방송 출연에서도 “중증도가 낮고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를 대체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결과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절대 장담할 수 없다. 예전에도 바이러스는 우리를 속인 적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확산이 언제 정점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앞으로 몇 주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아마도 1월 말 쯤이 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