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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각오하고 조직 내 ‘침묵의 카르텔’을 깬 내부고발자들은 음지를 배회해 왔다. 해임 파면 등 불이익은 기본이고 ‘배신자’ 낙인에 신음했다. 사적인 의리가 정의 준법 등 공동체적 가치를 압도하는 우리 특유의 정서가 이들을 짓눌렀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1990년대 이후 지난해까지 주요 공익신고를 한 50명의 ‘내부고발 이후의 삶’을 추적했다. 28명은 공익신고를 한 지 1년 이내에 파면되거나 해임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도 전보 조치(6명), 정직 및 재계약 거부(3명), 승진 누락(1명), 군 검찰 기소(1명), 폭로할 당시 부대를 이탈한 혐의로 실형 선고(1명), 동종업계 근무 불가(1명) 등의 불이익을 당했다.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은 9명은 회사를 나와 폭로했거나 타 기관의 비리를 제보한 경우였다. 이들 50명은 대부분 당시 기억을 힘겹게 끄집어 냈다. 언론의 연락을 처음 받아 봤다며 혼자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기억을 조심스레 되짚어 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5, 6년째 소속 기관과 지난한 법정소송을 벌이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들의 투쟁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실명과 얼굴을 당당히 공개하자는 취재팀의 설득에 응한 공익신고자는 3명 중 1명꼴인 18명이었다. 처음엔 얼굴 공개에 동의했다가 마음을 바꾼 사람이 5명이었다. “새 직장에 겨우 적응했는데 또 주홍글씨가 새겨질 것 같다” “또다시 보복당할까 봐 겁난다” 등의 이유였다. 관료들의 부패를 폭로해 수백억 원의 국고를 아끼고 에이즈나 간염에 오염된 혈액이 유통되는 실태를 고발해 수백 명을 위험에서 구한 영웅들이 숨죽여 지내는 현실 자체가 부조리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불의에 맞설 수 있을까. 최근 원전부품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는 원전 비리 제보자에게 최고 10억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나섰다. 공익신고자가 보호받고 존경받는 사회였다면 원전이 비리로 물들기 전 누군가 실태를 폭로했을 것이다. 문제가 불거져 치명적 대가를 치른 뒤에야 내부고발을 애걸하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신광영·손효주·서동일 기자 neo@donga.com}
군에서 미운털이 박혀 쫓겨나게 된 장교가 국가유공자 훈장을 받는 ‘사건’이 2011년 2월에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주요 부패 신고자를 선정해 치하하는 국민신문고대상 시상식에서였다. 전역을 앞둔 해군소령 김영수 씨(45·해사 45기)는 최고상인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전사에 준하는 공을 세워야 가능한 국가유공자 자격까지 부여돼 군인으로선 더없는 영예를 안았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새까만 피부, 각진 턱. 전형적인 군인 용모를 한 김 씨는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감격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날 김 씨의 하객은 한 명도 없었다. 부인과 두 자녀마저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상이 무슨 소용이냐”며 오지 않았다. 해군 제복을 입은 키 185cm의 거구는 시상식 내내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다른 수상자들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축하객과 기념사진을 찍다가 김 씨를 안타깝게 쳐다봤다. 1991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년간 입어온 남색 제복이 김 씨는 더이상 자랑스럽지 않았다. 김 씨는 2006년 계룡대(육해공군 통합기지) 근무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군납비리를 폭로했다. 당시 간부들은 사무용 가구와 전자제품을 정상가보다 일부러 비싸게 사들인 뒤 나중에 차액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수억 원을 빼돌렸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김 씨의 제보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9억4000만 원의 국고가 낭비된 사실을 확인했다. 권익위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직 내 불의와 투쟁한 용기를 높이 사 5년 뒤 김 씨를 수상자로 정했다. 하지만 김 씨는 내부고발로 혹독한 보복을 받아야만 했다. 동기 가운데 선두그룹을 달리던 그였지만 근무평정에서 최하등급을 받았다. 보급 주특기와 전혀 무관한 국군체육부대로 발령받아 사관학교 후배를 상관으로 모시며 근무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로 징계도 받았다. 나중에는 직제에도 없고 책상도 없는 보직을 받아 부대 내 떠돌이처럼 지내야 했다. 김 씨는 비리 연루자들을 보호하는 군 조직과 5년간 싸우며 일부 간부의 진급비리 단서까지 확보했지만 무마 압력에 시달리며 절망했다. 해사 생도 땐 축구부 주장, 임관 후엔 동기회장을 하며 동료들의 구심점이었던 김 씨는 권익위 훈장을 받은 지 넉 달 만인 2011년 6월 해군을 떠났다. 김 씨는 공공기관 감사실에 취업하려 했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권익위에서 받은 국가유공훈장이 희망의 씨앗이 됐다. 그의 부패고발 경력과 ‘10% 가산점’에 힘입어 전역 한 달 뒤 권익위에 6급 조사관으로 채용된 것이다. 내부고발 이후 성공적으로 새 삶을 시작한 희귀 사례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권익위 사무실에서 김 씨를 만나 내부고발자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물었다. ―왜 굳이 불이익을 감수하며 내부고발을 했나. “계룡대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뒤 상관들이 ‘그동안 다 이렇게 해왔다’며 불법을 강요했다. 나는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군인은 생명을 걸고 일한다. 군내에서 헬기 추락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공식 조사 결과는 조종사 과실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헬기를 제대로 뜯어보지 않고 볼펜으로만 정비하는 ‘페이퍼 정비’의 문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큰 사고가 한둘이 아니다. 돈 몇 푼 먹겠다고 그 20대 팔팔한 청춘을 죽인다는 게 정말 나쁘지 않나. 정치나 이념엔 관심 없지만 생명을 담보로 원칙을 저버리는 군인을 가만 놔두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내부고발자로 사는 고단함을 줄일 방법은…. “내부고발에 생활을 저당 잡히면 안 된다. 투쟁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 업무, 취미 같은 삶의 다른 부분들에도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 편안해져야만 싸울 수 있다. 내가 편한 사람이 돼야 주변에서 부담을 덜 느끼고 나를 도와줄 수 있다. 심적 동요가 없을 때 조직 안에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보인다. 내부고발은 분노와 억울함을 표출하는 게 아니고 조직의 가치와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그게 말처럼 쉽나. “내부고발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피해의식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가 있어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친한 친구도 세 번 이상 안 만나 준다. 찡그린 사람과 대면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나 스스로 부정적이 되면 사회는 나를 더 부정적으로 본다. 고립을 자초하는 셈이다. 나도 군에서 보직 못 받고 몇 달 동안 책상 의자 안 줄 때 자살하고 싶었지만 그런 불이익은 승리로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부고발은 주변을 사랑하고 내 조직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해서 하는 것 아닌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어떻게 감당하나. “비리 관련자나 조직 내 기득권층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일반 구성원들로부턴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비리에 반대하고 정의를 옹호한다. 나도 동료에게 왕따를 당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직접적으로는 못 도와줘도 간접적인 응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분노를 섣불리 드러내기보단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치밀하게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비리를 폭로하려 해도 나 홀로 가진 정보로는 한계가 있다. 내부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증거를 축적할 수 있다. 조직은 치부를 공격받을 때 무섭게 단결하기 때문에 등을 지는 순간 더이상 자료 접근이 안 된다. 그러면 그토록 밝히려 했던 부조리는 묻히고 만다.” ―지혜롭게 폭로하려면…. “패를 함부로 까면 안 된다. 부조리와 억울함을 단시간에 입증하려 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내부고발이 제기되면 어떤 조직이든 여론을 호도하며 역공을 해온다. 무턱대고 패를 다 까면 거기엔 부족한 게 있기 마련이고 상대는 그 약점을 파고든다. 단계별 대처방안을 세워두고 차근차근 패를 까야 한다. 나도 군납비리를 제보하자 해군에서 “진급이 안 돼 앙심을 품고 허위 사실을 퍼뜨린다”고 공격해왔다.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아예 고발하기 전에 진급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진급 필수요건인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다. 한 단계 한 단계 증거를 갖고 반박하면 외부에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다 안다. 상대는 옳든 그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데 내부고발자가 전략이 없다면 승산이 없다.” ―조직은 늘 내부고발자의 허물을 들춰내 음해로 몰아가는데…. “내부고발을 결심했다면 자신이 행했던 잘못을 먼저 공개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진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싸우다 보면 어차피 자신의 허물도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당당해야 동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근무나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야 한다. 근무를 게을리 하면 조직에 반격의 빌미를 주고 동료들에게서도 멀어진다. 다만 우리 사회가 제보 의도보다는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에 더욱 초점을 맞출 필요는 있다. 최근 원전비리를 봐도 누군가 나쁜 의도를 갖고서라도 미리 시험성적서 조작을 폭로했다면 적어도 지금 전력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보자에게 악의가 있었다면 사후에 처벌해도 된다. 조직은 제보자의 인성과 의도를 문제 삼겠지만 사회는 사실관계 규명을 우선해야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내부고발자들과 자주 상담하나. “비공식적인 상담 요청이 많다. 나는 일단 이렇게 물어본다. ‘모아 놓은 돈 많아요?’ ‘연금 받을 수 있어요?’ ‘조건 안 되면 하지 마요.’(웃음) 대책 없이 싸우다간 자기 것을 다 잃기 때문에 안 물어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 어떤 자료와 정보가 있는지 모아보고 어디부터 깰지 함께 전략을 세운다. 제보자들 중에는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는 분이 적지 않다. 그럴 땐 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유력한 단서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한다. 사고를 일단 쳐놓고 수습하기보단 사전에 유경험자나 전문가들과 충분히 상의하는 게 좋다.” 김 씨는 현재 권익위에서 2년째 국방보훈 관련 민원 조사 업무를 하고 있다. 내부고발자로 5년간 투쟁하며 국방 관련 비리를 연구했고 지금은 업무를 통해 유사한 부패 사례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군에 있을 땐 윗선 견제에 눌려 미처 다 파헤치지 못한 군의 총체적 비리를 밝혀내는 게 김 씨의 목표다. 그는 권익위에 둥지를 틀면서 국가가 정의를 지키려 노력한다는 예전의 신뢰를 회복하게 됐다. “군 후배들이 요즘 저에게 ‘선배처럼 살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다른 공익신고자들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김 씨가 단지 운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면,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화답하지 않는 사회라면 불의는 앞으로도 계속 승리할 것이다.신광영 기자neo@donga.com}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노래를 불러 논란을 빚은 정광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60)이 자진 사임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공단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지난달 말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은 4월 30일 일부 환경부 출입기자들과의 저녁 만찬 자리에서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열거하는 내용이 포함된 구전 가요를 불렀다. 당시 정 이사장은 자신이 노래 부를 순서가 되자 기자들에게 “야한 노래와 평범한 노래 중 어떤 것을 원하느냐”고 물었고 일부 참석자들이 “이왕이면 야한 노래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현장에 있던 일부 여기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이의를 제기해 파문이 번졌다. 정 이사장이 사표를 내자 박 대통령이 즉각 수리한 것은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파문 이후 공직자들의 성희롱 의혹에 대해 단호히 처리한다는 기조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 이사장은 측근들에게 “여기자들에게 사과했고 사퇴할 사안도 아니다. 새 정부에서 공공기관장 정리가 필요한 만큼 어차피 사표를 낼 생각이었는데 바로 그만두면 성희롱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돼 다소 늦어졌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개인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연루 의혹이 정 이사장의 사퇴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도 있다. 정 이사장은 2009∼2011년 산림청장 재직시절 원 전 원장의 청탁을 받고 인천 무의도의 홈플러스 연수원 개발허가를 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 이사장은 산림청장 퇴임 직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발탁돼 원 전 원장의 민원 해결 대가로 배려를 받은 것 아니냐는 뒷말이 있었다. 정 이사장은 “홈플러스 측이 나중에 요건을 맞춰와 허가해 줬을 뿐 원 전 원장의 청탁은 없었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4860원보다 7.2%(350원) 오른 5210원으로 결정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최저임금 인상률이 2.75∼6%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인상폭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최저임금 근로자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월 108만 원(현재는 100만2000원)을 받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위원회가 5일 오전 4시까지 이어진 회의 끝에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법정 시한을 넘긴 지 8일 만이다. 당초 노동계는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21.6% 많은 5910원을 주장했다. 반면에 사용자 측은 동결을 고수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자 공익위원들은 4996원(2.8% 인상)∼5443원(12% 인상)의 심의촉진 구간을 제시했고 중간선인 5210원으로 결정됐다. 민주노총 측 위원 3인은 “100만 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최소 18%는 돼야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고 반발했고 인상안이 상정되기 전 퇴장했다. 한국노총은 “아쉬움이 많지만 소득분배 개선 효과를 일정 정도 본 것은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어려운 대내외 경제여건과 중소 영세기업의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어 유감스럽다”며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30인 미만 영세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액이 1조6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지불 주체인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노동연구원의 해외 노동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4.57달러로 프랑스(10.86달러)의 40%, 일본(8.16달러)의 60% 수준이다.신광영·장원재 기자 neo@donga.com}
토요일인 6월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한국 캐나다 수교 50주년 페스티벌’ 행사 초대가수로 무대에 선 JK 김동욱 씨가 열창했지만 그의 허스키한 음성은 옆에서 터져 나온 ‘와’ 하는 고함소리에 묻혀버렸다. 청계광장 옆 인도에 모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회원 150여 명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회원들은 확성기를 튼 채 ‘촛불 난동세력 물러가라’ ‘국정사회 혼란은 국민이 척결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청계광장 건너편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는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 등 500명이 모여 있었다. 대선 댓글 파문과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 국가정보원을 규탄하는 촛불집회였다. 시위대는 ‘쓴소리 하면 종북 낙인찍는 국정원’ ‘NLL 물타기 논쟁 국정원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촛불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려 했다. 경찰이 황급히 막아서자 몸싸움이 벌어졌다. 어버이연합 이규일 수석지부장은 기자에게 “촛불집회가 열리는 곳에 최대한 가깝게 자리를 잡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안 들리게 맞불을 놓는 것이다. 집회 인원이 많아지면 일부러 앰프 소리를 더 크게 해놓는다”고 말했다. 6월 21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 발언을 3분 분량으로 편집한 동영상이 자주 상영된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변경하더라도 헌법을 위배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NLL 안 건드리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참가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연사가 “노 대통령은 옳고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집회 참가자들은 “옳소”라고 화답했다. 대선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반(反)보수진영이 국정원 규탄이라는 깃발 아래 결집하는 양상이다. 6월 28일 전국 11개 지역에서 3000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좌파진영 일각에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때 벌어졌던 것 같은 촛불집회가 재연될 조짐이라는 기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 수의 증가 추세는 당시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6월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첫 집회에는 600여 명(경찰 추산)이 참가했고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28일은 1800여 명이었다. 한대련이 주축이 된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집회는 22일 700여 명에서 30일 150명으로 줄었다. 2008년엔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광화문과 서울광장에 하루 1만∼2만 명(경찰 추산)이 모였고 많을 땐 5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그 광장을 사이에 두고 거의 매일 저녁 우리 사회의 양극단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청계천의 저녁 정취를 즐기러 나온 연인, 가족들은 대부분 광장 양쪽에서 벌어지는 목소리 큰 집회를 무심히 지나치는 모습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57)의 성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김 전 차관이 병원 치료를 이유로 소환에 계속 불응하자 6월 29일 병실을 방문해 조사했다. 경찰이 5월 29일 김 전 차관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첫 소환요구를 한 지 한 달 만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6월 29일 김 전 차관이 입원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대학병원에 수사관 5명을 보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동안 대면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조사에 응하면서도 구체적 혐의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 진술을 거부했다.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간 혐의로 김 전 차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물증이 없어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보완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김 전 차관과 피해 여성을 대질신문하는 등의 방법으로 혐의를 밝혀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김 전 차관을 소환하지 않으면 수사가 진척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날 방문 조사에서도 김 전 차관이 진술을 거부해 이번 수사는 검찰 송치 이후 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11월부터는 꼬리물기나 끼어들기 등 반칙운전을 하면 과태료로 4만∼6만 원을 물게 된다. 경찰이 주요 교차로마다 꼬리물기 단속용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당장 적발되지 않더라도 언제든 과태료 부과통지서를 받을 수 있다. 경찰청은 꼬리물기 또는 끼어들기를 한 운전자에게 부과할 과태료 금액을 명시한 도로교통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경찰위원회를 통과했다고 26일 밝혔다. 꼬리물기 과태료는 승합차 6만 원, 승용차 5만 원이며 끼어들기는 모든 차량에 4만 원이 적용된다. 개정된 시행령은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등을 거쳐 11월에 시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꼬리물기’와 끼어들기에 대해 개정안의 과태료 액수보다 1만 원이 싼 범칙금을 부과해왔다. 범칙금은 현장 경찰관이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운전자를 특정한 경우 현장에서 스티커를 발부하는 방식으로 부과된다. 이에 비해 과태료는 카메라나 무인단속기로 적발해 위반 차량 소유주에게 부과하는 방식이어서 보다 광범위한 단속이 가능하다. 꼬리물기는 차량이 직진 신호나 좌회전 신호를 받고 교차로 및 사거리 등에 진입했더라도 신호가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교차로를 통과하지 못해 다른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다. 도로교통법 25조는 ‘앞쪽에 있는 차의 상황을 고려해 다른 차의 통행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교차로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진행 신호를 받고 교차로에 들어왔는데 앞차가 제때 안 움직여 본의 아니게 갇히게 됐다’는 운전자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차량이 완전히 교차로를 통과할 상황이 아니면 아예 진입하지 말고 보수적으로 운전해야 한다. 고속도로나 간선도로에서 샛길로 빠질 때 다른 차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묵묵히 서행하는데 뒤늦게 온 차량이 먼저 가겠다며 얄밉게 끼어드는 행위도 강력히 단속한다. 초행길이어서 뒤늦게 차로 변경을 하려했으나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어서 결과적으로 끼어들기를 하게 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단속의 대상이 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손바닥’에는 사람마다의 고유한 특징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손금 모양과 그 사이로 퍼져 나간 미세 주름의 방향, 주름 사이 거리는 제각각이다. 손바닥 무늬인 ‘장문(掌紋)’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될 경우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경찰청은 장문을 단서로 범인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올해 말까지 구축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장문은 닿는 면적이 지문보다 훨씬 넓어 수사망에도 쉽게 포착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동안 자주 활용되지는 않았다. 장문 채취 기술이 아직 초보 수준이고 채취한 뒤 비교할 대조군이 확보돼 있지 않았던 탓이다. 장문이 지문처럼 재판에서 정식 증거로 채택된 사례는 드물지만 수사 현장에선 피의자를 압박하는 간접 증거로 종종 쓰인다. 4월 부산에서 일어난 편의점 강도사건 때 폐쇄회로(CC)TV에 범인 얼굴이 찍혔지만 화면이 흐릿해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그러다 범인이 급한 마음에 편의점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문짝에 그의 장문이 찍힌 게 포착돼 실타래가 풀렸다. 용의자 김모 씨(19)는 수사관이 내민 자신의 장문 사진을 보고 결국 자백했다. 미국과 유럽, 남미 등에선 장문이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자리 잡았다. 경찰은 강력범을 체포하면 손바닥과 손 측면 등 장문을 채취해 해당 사건뿐 아니라 다른 사건 현장에서 나온 장문과 대조하는 방법으로 여죄까지 밝혀낸다. 4년간 도망 다니다 지난해 9월 붙잡힌 콜롬비아 마약거물 다니엘 바레라(50)의 경우 손에 염산을 부어 장문을 없앤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범죄자에겐 장문 때문에 꼬리를 잡힐 수 있다는 공포가 그만큼 큰 셈이다. 경찰은 최근 손바닥의 ‘특징점’을 정교하게 채취할 수 있는 자체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현장에선 내년부터 본격 운용할 계획이다. 또 범행 현장에서 장문을 적극 채취해 장문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로 했다. DB가 축적되면 장문 하나로 여러 건의 여죄 추적이 가능하다. 경찰은 강력사건으로 구속된 피의자들의 장문을 채취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 작업도 병행해 나갈 방침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건설업자 윤모 씨(52)에게서 접대를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57)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1일 그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통보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과 이달 3일 출석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 전 차관은 응하지 않았다. 김 전 차관 측은 2차 소환일 직전 수사팀에 ‘맹장수술 치료로 20일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제출하며 소환 연기를 요청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통상 세 차례 소환 요구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 경찰은 다만 “입원 등 합당한 사유가 있으면 출석을 유예할 수 있다”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보조금 전용 유혹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어린이집 운영이 자영업과 비영리사업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사업 목적으로 어린이집을 시작한 원장이 많은데 2005년 보육료 정부 지원제 단계적 도입 등 무상보육 정책 강화로 정부의 지원과 규제를 받는 공공 영역에 편입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딜레마는 1990년대 들어 급증하는 보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가 저리 융자 등을 통해 민간 어린이집을 양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1995년 3000여 개에 불과했던 민간 어린이집은 2004년에는 1만2200여 개로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민간 어린이집이 이만큼 증가하는 동안 국공립 어린이집은 1029개에서 1349개로 300여 개 느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어린이집 4만2527곳 가운데 민간 어린이집은 90%에 가까운 3만7000여 곳에 달한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장진환 정책위원장은 “민간 어린이집이 어느 정도 이윤을 내며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도록 보육료를 자율화해야 한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학부모는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료에 추가되는 금액을 자기 돈으로 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보육료에는 시설 운영비나 관리비가 다 포함돼 있어 투명하게 쓰면 운영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돈을 벌겠다는 시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했다.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 직전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반독재 민주화 시위다.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대통령 간접선거를 통해 후계자에게 권력을 승계해주려던 군부정권의 영구집권 기도를 저지한 시민혁명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 정권의 극악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개돼 온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은 1987년 1월 초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경찰 고문으로 숨진 사건이 터지면서 최고점으로 치달았다. 정권은 사건의 진실을 덮으려 했지만 동아일보의 연이은 특종보도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전두환 대통령은 간선제를 고수하겠다며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해 5월 정권이 박종철 사건을 조작 축소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고,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경찰 최루탄에 맞아 사경에 빠져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범야권 연합조직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열었다.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전국 18개 도시에서 일제히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정권은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평범한 회사원들까지 연일 시위에 동참했다. 6월 26일엔 전국 33개 도시에서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결국 6월 29일 당시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가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6·29선언’을 발표했고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군부정권은 사실상 항복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각하(전두환 전 대통령)는 1987년 6월 시위대가 부산 거리를 가득 메우자 군을 투입해 진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라가 뒤집힐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이 절정에 달한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경찰총수였던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82·사진)은 5월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권 전 본부장은 6월 민주항쟁 26주년을 맞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시위 현장에 군을 출동시키고 민주화 세력의 ‘보루’였던 서울 명동성당에 경찰력을 투입해 일망타진하라고 명령했던 일촉즉발의 상황을 상세히 털어놨다.“6월 19일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궁정동 안가에서 회의가 있다기에 갔더니 이미 회의 전에 부산에 군을 투입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다. 그런데 회의 직전 각하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내 상황이 어떤가’라고 물어와 ‘부산이 좀 심각하지만 경찰력으로 책임지고 막겠다’고 했다. 그러자 각하가 ‘그래? 알았어’라며 출동 명령을 갑자기 유보했다. 몇 분 뒤 안현태 경호실장이 ‘오늘 회의는 없는 것으로 하라’는 각하의 지시를 전달했다.”―그런 중대 결정을 왜 쉽게 바꿨을까.“좀 의아했지만 다행스러웠다. 각하가 다른 참모들에게서 ‘경찰로는 시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군 출동 명령을 내렸다가 경찰 의견을 뒤늦게 물어보고 결정을 바꾼 것 같았다. 당시 육군에 따르면 이미 그 시간에 의정부 26사단 병력이 부산행 열차를 타기 위해 트럭으로 의정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군 출동이 취소되자 회의에 와 있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내 손을 잡고 ‘경찰력으로 막기로 한 거 잘했다’며 고마워했다.”권 전 본부장은 당시 전 대통령이 명동성당 경찰력 투입을 명령했다고 털어놓았다.“6월 14일 아침이었다. 각하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명동성당에 학생들 시위하고 있지? 경찰력 투입해서 진압해’라고 지시했다. 나는 깜짝 놀라 ‘각하, 명동성당에는 들어가면 안 됩니다’라고 만류했다. 각하는 또다시 ‘왜 못 들어가. 진압해’라고 명령했다. 6월 민주항쟁 당시 명동성당은 ‘시위대의 심장’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진압을 하려면 시위대가 숨어 있을 만한 사제실이나 수녀실까지 다 때려 부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 진입 계획을 전해 듣고 ‘성당에 들어오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들었다.”―명령에 따랐나.“그럴 순 없었다. 정권이 왔다 갔다 할 사안이었다. 각하의 형인 전기환 씨와 평소 친분이 있어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하기 어려운 이유를 각하에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청와대 회의에 갔는데 각하가 불쑥 ‘이 중에 말이지. 안일주의가 있어’라고 말해 참모들이 잔뜩 긴장했다. 그러곤 ‘명동성당을 경찰력으로 진압하려는 건 취소하라’고 했다.”권 전 본부장은 6월 민주항쟁 직후 급증한 노사분규 대처 과정에서의 비화도 들려줬다.“그해 9월쯤 울산에서 현대중공업 공장 점거시위가 장기간 이어졌다. 한 번은 정주영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공장 안에 핵심 주동세력이 있으니 경찰이 들어가서 잡아 달라’는 거였다. 공장에 위험 장비가 많아 ‘회장님이 대화로 먼저 해결해보라’며 끊었는데 몇 시간 뒤 또 전화가 왔다.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게 도저히 불가능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결국 진압작전은 성공했고 얼마 후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전 대통령)이 전경들 위문금이라며 5000만 원을 들고 찾아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KT&G가 충북 청주시에 건물을 팔면서 매각 대금을 많이 받기 위해 용역업체와 짜고 시청 공무원에게 6억여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6일 확인됐다. 경찰은 이 같은 혐의로 KT&G 민영진 사장 등 임직원 6명을 포함해 관련자 8명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은 청주시 기업지원과장 이모 씨(51)를 뇌물수수 혐의로 5일 체포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KT&G는 2008년 청주시와 연초제조창 매매 협상을 하면서 400억 원에 팔겠다고 제안했지만 청주시가 부동산 감정가 등을 근거로 250억 원에 사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협상이 결렬됐다. 그러자 KT&G는 2010년 자사의 부동산 관련 용역업체인 N사에 “협상이 결렬됐으니 (청주시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라”고 요청했고 N사는 청주시의 담당 과장인 이 씨를 로비 대상으로 점찍고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N사는 이 씨로부터 “당신들이 받는 수수료의 절반을 나에게 주면 유리한 조건으로 매각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듣고 KT&G 측과 협의해 뇌물 액수를 6억6000만 원으로 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이 씨는 N사로부터 현금으로 3억 원을 받고 차명계좌로 3억6000만 원을 입금 받았다. 얼마 뒤 청주시는 연초제조창을 당초 사려던 액수보다 100억 원이 많은 350억 원에 사들였다. 경찰은 N사 관계자로부터 “KT&G 측이 이 씨가 요구하는 뇌물 액수를 확인한 뒤 선금을 줄 수 있도록 돈을 융통해줬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청주시가 100억 원이나 더 주고 건물을 산 경위와 담당 결재라인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별장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57)이 맹장 수술을 이유로 경찰의 소환 요청에 불응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김 전 차관이 3일 밤 변호인을 통해 ‘맹장수술 때문에 20일간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제출하며 경찰 출석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은 경찰이 출석을 요구한 지난달 29일 별다른 사유 없이 응하지 않았고 2차 출석기일인 3일 이 같은 내용을 통보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병원 진단서가 제출되면 그 내용대로 출석을 유예해주는 게 일반적”이라며 “치료가 끝날 때까지 소환조사를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진단서는 대학병원에서 발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병실 방문조사 계획도 없다고 밝혀 김 전 차관에 대한 조사는 20일 이상 미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차관은 건설 브로커 윤모 씨(57)로부터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성접대 등 향응을 제공받고 그 대가로 윤 씨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수사 초기부터 “윤 씨는 모르는 사람이고 성접대를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해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유력 인사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업자 윤모 씨(52)가 골프장 공사 수주를 위해 대우건설 서종욱 사장(64)에게 그림 로비를 시도했던 사실이 28일 확인됐다. 서 사장은 “그림을 돌려보냈고 다른 금품은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윤 씨가 그림 외에 다른 금품을 서 사장에게 건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경찰이 24일 서울 종로구 대우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한 것은 이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 사장은 경찰 압수수색 하루 전인 23일, 임기를 6개월 남겨 두고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직서를 냈지만 아직 수리되지 않은 상태다. 사정 당국과 대우건설 등에 따르면 윤 씨는 2010년 강원 춘천시의 골프장 공사 하도급을 따내기 위해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로비하는 과정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대우건설 전 임원 A 씨를 통해 서 사장에게 그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 사장은 이튿날 비서에게 그림을 돌려주라고 지시했으나 A 씨가 그림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해 그림은 중역실 앞 사무실 복도에 최근까지 걸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4일 압수수색 때 이 그림을 압수했다. 서 사장은 최근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임원들에게 “돌려준 그림 외에는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팀은 28일 서 사장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금품을 받은 사람은 서 사장이 아니라 당시 고위 임원이던 B 씨다. 퇴직 임원 A 씨가 그에게 ‘윤 씨 회사가 입찰에 참여하게 해 달라’며 금품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문제의 골프장 공사 당시 윤 씨가 운영하던 동인건설은 68억 원 규모의 클럽하우스와 토목공사 일부 등 총 240억 원 규모의 공사를 대우건설에서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동인건설이 따낸 하도급 공사 중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경찰은 서 사장이 윤 씨에게서 그림 외에 별도의 금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대목을 집중 수사 중이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서 사장이 윤 씨에게서 금품을 받고 그 대가로 윤 씨의 공사 수주를 도왔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윤 씨의 성접대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21일 윤 씨에 대한 3차 소환조사에서 성접대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여성들과 윤 씨를 대질신문했다. 윤 씨는 성접대 혐의를 전반적으로 부인하면서도 여성들의 추궁에 흥분하는 등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윤 씨에게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57)에게 29일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피의자 신분의 소환 통보여서 김 전 차관이 3차례 이상 불응할 경우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다. 경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해 “원칙에 입각해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신청한 김 전 차관 체포영장을 검찰이 승인하지 않을 경우 검경 갈등이 재연될 개연성도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건설업자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건설업자 윤모 씨(52)가 여성들에게 마약을 투약한 뒤 성접대에 동원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윤 씨가 전직 사정기관 공무원을 통해 소개받은 마약판매상으로부터 지난해 마약을 대량 사들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초기 이 마약판매상을 출국금지한 뒤 조사해왔다. 윤 씨는 21일 경찰에 3차 소환돼 1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은 뒤 오후 10시 40분경 귀가했다. 경찰은 성접대에 동원됐다고 주장하는 여성들과 윤 씨를 대질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윤 씨를 한 차례 더 소환해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경찰은 윤 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과 자택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명시된 메모지와 한글 파일 등을 확보해 해당 인사들과의 유착 및 불법 로비 여부를 확인 중이다. 경찰은 아울러 윤 씨가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도 증거자료 확보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입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 목동 주택가 재건축사업과 관련해 윤 씨에게 240억 원을 부정대출해 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오던 서울저축은행 전무급 임원이 최근 잠적해 경찰이 수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15일 강경우파 성향 사이트 회원으로 보이는 괴한이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진전’ 작품을 훼손했다. 사진전에선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 30여 장을 전시했다. 괴한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그들(계엄군)은 죄가 없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적힌 종이를 전시된 사진 위에 덧붙였다. ‘5·18 봉기에 북한군이 개입했던 상황에 대한 김일성의 발언 요지’라는 제목의 인쇄물도 함께 붙였다. 이날 저녁 괴한은 강경우파 성향의 웹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스스로 ‘범행’을 시인하는 인증샷을 올렸다. 그는 “(이걸 보고) 화가 날 좌빨(좌익과 빨갱이를 합친 비속어)들을 생각하니 흐뭇하다”고 적었다. 같은 날 서강대 부산대 등 다른 대학에서도 5·18을 소개한 대자보가 찢어졌다 최근 강경우파 인터넷 사용자들이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일부 탈북자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이어 대학 내 5·18 사진전까지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 지역감정 담긴 허위 주장 난무 하루 이용자가 평균 100만 명에 달하는 일베에는 5·18 논란이 한창이다. 일부 회원들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시각을 고수하며 “북한 특수부대가 남한에 진을 치고 국군을 향해 도발한 뒤 광주 시민들이 희생되자 국군이 학살 주범이라고 선전 선동한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무기고가 광주시민들에게 4시간 만에 털린 것은 북한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 “북한제 카빈 소총에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북한군이 이 총 갖고 있다가 들킨 거 아니겠느냐”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5·18을 ‘오씨팔’ ‘폭동절’로 비하하며 반감을 드러내는 게시물도 적지 않다. 강운태 광주시장이 5·18을 왜곡하는 글을 삭제하지 않는 온라인 사이트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일베 회원들은 “자기들만 표현의 자유 들먹거리는 ×만도 못한 민○당”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전라도가 전라도끼리 모여 전라도 양민을 무참히 죽여 온 그 인간 백정의 전라도 역사 알아보자꾸나”라는 내용의 지역감정을 원색적으로 드러내는 주장도 나온다. 회원들 사이에선 호남을 비하하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홍어’(전남 흑산도 특산물), ‘까보전(까고 보니 전라도)’, ‘알보칠(알고 보니 시계 방향으로 7시)’ 등이 호남을 비하해 지칭하는 은어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올인코리아, 뉴라이트 폴리젠 등의 사이트에서도 5·18과 관련된 강경우파적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5·18때 먼저 공격을 한 쪽은 군이 아니라 폭도들이었다” “정부의 5·18 조사 결과는 전두환 신군부에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이다. ○ 보수정권 출범과 함께 고개 들어 5·18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이 올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억눌렸던 강경우파 세력들이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선 결과를 과거 독재정권의 합리화로 착각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5·18 기념식 때마다 제창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보훈처가 올해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5·18 자체에 대한 논란이 촉발된 측면도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사에 대한 극우적 접근은 사회통합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5·18을 부정하는 주장이 여전한 것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선 강하게 항의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역사 교육에 취약했다는 증거”라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극우적 시각을 배제하는 게 건전한 보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5·18은 민주주의적 열망이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억눌린 사건인 데다 영남 출신 대통령이 무력진압을 지시하고 광주시민이 항거한 지역 갈등적 요소까지 겹쳐 있어 이 같은 주장이 싹틀 소지가 크다는 해석도 있다. 강경우파들은 ‘민주화 vs 산업화’ ‘호남 vs 영남’ 등의 이분법의 틀을 들이대며 양측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경우파 세력들은 현대사나 북한 문제처럼 피아 구분이 분명해 역풍이 불 소지가 적은 주제를 주로 이슈화한다”며 “이는 독일의 네오나치나 일본 극우집단이 보이는 행태와 유사한 것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18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인정된 엄연한 민주화운동이며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 행사”라며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역사적 사건을 비판할 때는 고도의 객관적 검증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신광영·조동주·김성모 기자 neo@donga.com}
건설업자 윤모 씨(52)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국내 대기업 계열 건설사 전 회장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여성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인사는 최근 연루설이 돌고 있는 P그룹 회장과는 별개의 인물이며, P그룹 회장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황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성접대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여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 씨의 요구로 대기업 건설사 회장 A 씨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현재 회장직에서 물러나 다른 중견기업에 재직 중이다. 최근 성접대 동영상이 발견됐다는 소문에 휩싸인 P그룹 회장과는 다른 인물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P그룹 회장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진술이나 정황은 없으며 대기업 경영자가 등장하는 동영상도 발견된 게 없다”고 밝혔다. 유명 남성 연예인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소문도 사실 무근이라고 사정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경찰은 A 씨가 회장 재직 당시 성접대 대가로 윤 씨에게 건설사업 관련 특혜를 제공한 정황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어서 알선수뢰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 성접대를 받았다고 해도 A 씨를 형사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취재팀은 A 씨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윤 씨는 최근 두 차례의 경찰 소환조사에서 성접대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회피하며 “수사팀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최근 확보한 원본 동영상뿐 아니라 윤 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성접대 인사 명단 등 물증을 제시하며 윤 씨를 압박했다. 경찰은 윤 씨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사들의 이름이 명시된 메모지와 컴퓨터 문서 파일을 확보했다. 다음 주로 예정된 윤 씨에 대한 3차 소환조사에서는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과 윤 씨의 대질신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신광영·김성규 기자 neo@donga.com}
별장 성접대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14일 핵심인물인 건설업자 윤모 씨(52)를 재소환해 관련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경찰은 “윤 씨의 요구로 강원도 별장에서 유력 인사를 성접대했다”는 여성 10여 명의 진술을 토대로 윤 씨에게 사실 여부를 캐물었다. 또 경찰은 일부 여성들이 “유력 인사가 윤 씨와 함께 성폭행을 했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해서도 진위를 조사했다. 경찰은 윤 씨가 성접대 혐의를 계속 부인할 경우 윤 씨에게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유력 인사들을 소환하는 한편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과 윤 씨를 대질신문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윤 씨는 9일 1차 소환조사 때 공사 입찰비리 등 사업상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에 대해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대형 건설업체가 하청업체에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공사 관련 과태료까지 대납시키는 등 건설업계에서 ‘갑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중견그룹 계열 건설사인 B사는 지난해 부산에서 아파트 신축 공사를 하면서 지반에 철골 구조물을 세우는 공사를 하청 받아 진행한 N사에 계약서대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N사는 약속했던 돈을 협력업체에 지급하지 못해 회사 자산이 가압류되고 빚더미에 앉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N사는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B사를 제소했지만 합의가 안 돼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행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피치 못해 늘어난 공사비도 못 준다는 ‘갑’ 지난해 7월 계약 당시 B사는 예상 공사대금을 32억800만 원으로 책정하되 추후 물량정산을 하겠다고 명시했다. 물량정산은 계약 시점에 정확한 공사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우므로 공사가 끝난 뒤 투입된 자재와 장비 등의 값어치를 따져 추산하는 방식이다. N사는 지난해 10월 공사를 마친 뒤 물량정산을 해 소요비용을 36억9000만 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B사는 “변경된 공법 등 현장 상황을 반영해 공사 비용을 산정했기 때문에 계약 금액을 초과하는 부분은 지급할 수 없다”며 현재 N사에 30억 원만 지급한 상태다. N사는 공사 도중 지반에 두꺼운 암석층이 발견돼 공법을 바꾸면서 하루 공사 시간을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였다. 공사 소음으로 민원이 제기되자 관할 구청과 협의해 취한 조치였다. 이 때문에 공사기한이 길어져 장비 대여료와 인건비가 당초 계획보다 상승했다. N사는 이 비용까지 포함하면 공사비가 60억 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지만 B사는 “원청업체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다”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계약할 때 “현장 여건에 의해 발생되는 비용은 별도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미리 공지했다는 것이다. 이 조항대로라면 공사 도중 발생하는 돌발 변수는 모두 하청업체가 떠안아야 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종광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소음으로 민원이 제기돼 과태료가 부과되자 B사는 N사에 대신 납부하도록 한 사실도 공정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과태료나 과징금은 원청업체가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하청업체에 대납을 시킨 것이다. N사는 5차례에 걸쳐 790만 원의 과태료를 냈다. 실제 지출한 공사비를 B사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N사는 7억 원을 대출받아 협력업체에 일단 지급했지만 5억 원은 아직 못 주고 있다. 매달 은행에 대출이자로 내는 500여만 원은 직원 30여 명에 월 매출 10억 원 규모인 N사로선 큰 부담이다. N사 관계자는 “장비와 인력을 대준 협력업체에 몇 달째 돈을 못 줘 회사로 가압류가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가 돈을 못 주면 굴착기 한 대로 먹고사는 장비업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줄줄이 쓰러진다”고 말했다. N사의 제소로 이 사안을 조사한 건설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형 건설사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태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공사 못해도 을 책임 재벌그룹 계열 건설사가 대부분인 원청업체들이 갑의 지위를 이용해 중소 하청업체에 횡포를 부리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청업체 선정 과정에서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가 있음에도 공사 금액을 가장 낮게 제시한 2, 3개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다시 경쟁을 붙이는 재입찰 관행이 대표적이다. 가격을 더 낮추기 위해서다.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의 한 건설사는 2009년 인천 청라지구 구조물 공사 관련 하청업체를 선정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1억5900여만 원의 낙찰가를 낮춘 사실이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3억4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고충처리부 강성주 과장은 “원청업체들이 3, 4회 재입찰을 하며 당초 예상 금액의 60∼70% 수준으로 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불공정 관행을 막기 위해 공정위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쓰도록 권장하지만 원청업체들은 편법을 동원해 이를 피해가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표준계약서를 쓰면서 20∼30개의 ‘특약’ 조항을 붙이는 방식으로 하청업체에 불리한 내용을 담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설계변경은 하지 않는다’거나 주간의 2배인 야간 인건비는 하청업체가 부담한다는 내용들이 특약에 포함된다. 국내 도급 순위 3위권의 한 대형 건설사는 ‘전쟁이 나도 공사를 못하면 하도급사의 책임이다’라는 내용의 특약을 내걸기도 했다. 강 과장은 “하청업체로선 원청건설사의 말을 안 듣는 업체로 소문나면 아예 공사를 따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한 특약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신광영·김준일·김성모 기자 neo@donga.com}